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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발 떨어지니 더 격렬히 끓어오른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592년 4월, 왜군은 단 15일 만에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점령하며 파죽지세로 북진한다. 그러나 '이순신(박해일)'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거북선을 앞세워 남해안을 장악하자 이내 왜군은 보급에 난항을 겪는다. 이에 용인 전투에서 10만 명의 조선군을 격퇴한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는 해전을 통해 이순신을 꺾고 보급품을 전달함과 동시에 명나라로 진격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부산포에 수군을 집결시키고, '나대용(박지환)'이 설계한 거북선의 도면을 훔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이순신(박해일)'은 '원균(손현주)'의 방해에 맞서가면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는 등 수세에 몰린 조선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작전을 고민하며 한산도로 출전한다. 

     

    전쟁 이론을 다룬 유명한 경구들을 이야기할 때 프로이센의 군인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속 다음 말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전쟁은 다른 수단을 동원하는 정치의 연장(延長)"이라며 전쟁이 대립하는 의지들의 충돌이라고 보았다. 모든 전쟁은 본질적으로 다른 국가에 자기 의지를 강요하려 하는 한 국가가 많은 수단 중 선택한 한 가지 옵션에 불과하다. 즉, 전쟁의 명분과 목적, 승패의 기준점은 그 전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많은 전쟁 영화들도 단지 전쟁과 전투의 양상을 그려내는 것만큼이나 그 전쟁의 명분과 정치적 의미를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례로 <300> 시리즈는 (비록 역사 왜곡 논란이 있지만) 러닝타임 동안 자유 대 압제라는 이데올로기적 대결에서 전자가 승리하는 쾌감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해준 바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도 비록 패배한 전투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분기점이 되었던 덩케르크 퇴각의 의미를 스크린 위에 온전히 재현해냈다. <고지전>은 아예 전쟁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아이러니함을 꼬집은 바 있다. 

     

     

    170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작의 반열에 오른 <명량>의 후속작이자 프리퀄로, <최종병기 활>과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은 <한산: 용의 출현>도 다르지 않다. 1592년 음력 7월 8일에 펼쳐진 한산도 대첩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한산>은 전쟁의 두 주체, 조선과 일본의 의지를 각각 의(義)와 불의(不義)로 설명한다. 이는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과도 정합한다. 일본군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는 이유로 아무런 명분 없이 조선을 침략했기에, 조선과 일본은 순도 100%의 가해자와 피해자다. 그러니 임진왜란이 의와 불의가 싸우는 전쟁인 것은 명확하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의와 불의의 전쟁을 풀어내는 드라마적 측면이다. 특히 <명량>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은 <한산>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명량>은 전쟁을 왕과 종묘사직이 아닌 백성을 위한 싸움이라 규정하며,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메시지를 극대화했다. 실제로 왕에게 버림받았다가 다시금 전쟁에 나설 것을 명 받은 백전노장은 국가와 군주를 위한 충성심에 앞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울돌목으로 향했고, 역으로 백성의 도움을 받아 기적처럼 승리한다. 이러한 정치적 함의는 2014년 개봉 당시 <명량>이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할 수 있었던 부분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다만 이 민심의 중요성을 전하는 방식이 다소 올드하고 일차원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말을 할 수 없어 치마를 흔들며 위기를 알리는 '정 씨(이정현)'의 모습이나 백성의 희생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던 '임준영(진구)'처럼 부자연스러운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극의 흐름을 툭툭 끊었다. 이 고생을 몰라주면 후손들이 전부 후레자식이라던 대사 역시 영화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한산>은 다르다. 오히려 형보다 더 낫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일본군의 시점을 강조하며 이순신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 영화는 가장 먼저 부산의 일본군 진영을 비춘다. 또 일본군이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비하는 모습을 착실하게 그려낸다. 걸핏하면 조선인들을 죽이는 평면적인 악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빈자리는 두려움이 곧 전염병이라면서 아군의 패잔병을 죽여 혹시 모를 불씨를 제거하는 주도면밀함, 간첩의 침투와 그로 인한 정보의 유출을 경계하는 치열한 첩보전, 군사적 약점을 지우기 위해 전력을 증강하고 작전을 가다듬는 철저함이 대신한다. 

     

    반면에 스크린 속 조선군은 취약하다. 거북선을 잃고, 거북선의 설계도를 탈취당하며, 학익진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 즉, 영화는 의롭지 못하다는 단편적인 인상 대신 신중하고 영리하며 강대한 불의 앞에 흔들리는 의로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순신의 학익진은,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거북선의 등장은 역으로 더 큰 감동을 준다. 철저하고 신중했던 불의가 의로움으로 쌓은 바다의 성 앞에서 필연적으로 궤멸되는 모습은 이른바 품격 있는 '국뽕'으로 이어진다. 한산 바다에 수군 군영을 구축하며 단단한 방패를 만드는 모습으로 영화가 결말을 맺는 이유이자, 작중 최고의 씬스틸러인 거북선이라는 소재가 단지 눈요기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거북선을 장님 배라는 의미의 '메구라부네'라고 줄곧 부르던 왜군 장수들은 거북선을 마주친 순간 영화 초반 패잔병들이 그러했듯이 해저 괴물이라는 의미의 '복카이센'이라고 말한다. 이는 일본군의 거북선에 대한 두려움을 단적으로 드러내며, 곧 의로움의 힘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칫 억지스럽거나 정서적으로 과장될 수 있었던 항왜 '준사'의 서사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한산도 대첩과 맞물린다. 아군을 보호하지 않는 왜군의 악의를 경험한 왜장 준사는 이순신을 만나 마음을 고쳐 먹고 의라는 글자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의병과 함께 전투에 임한다. 이 모습의 함의는 굳이 과장된 감정선이나 대사를 통하지 않아도 국가와 백성을 보호하는 강력한 성인 학익진과 자연히 오버랩된다. 그렇기에 전쟁과 전투에 담긴 의미를 전달하는 <한산>의 방식은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련되게 느껴진다. '정보름(김향기)'와 '안준영(옥택연)' 캐릭터의 분량이 전편에 비해 적어서 인위적이고 신파적인 연출이 줄어든 것도 영화의 담백함에 기여한다. 

     

     

    또 영화가 이순신의 활을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칼을 대조해 의로움의 필연적 승리와 그 쾌감을 강조하는 것도 흥미롭다. 와키자카의 칼은 명나라로 진격하려는 야욕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두려움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패잔병을 죽이는 그의 칼은 왜군끼리도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분열의 칼이며, 명나라까지 향하는 지도가 그려진 황금 부채로 변하기도 한다. 반면에 이순신은 죽을 위기에 처한 부하 나대용을 구하기 위해 총을 맞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활을 쏴 나대용을 보호하고, 약점이 드러난 거북선을 구해낸다. 그리고 나대용과 거북선은 찰나의 순간 이순신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으로 보답한다. 그래서 와키자카의 칼도 조총도 이순신을 위협할 수는 없다. 의로움이 담긴 이순신의 활 앞에서 악의로 가득한 그의 무기는 무용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한산 대첩에서 갑옷에 화살에 맞았다는 역사적 기록을 영리하게 활용한 드라마의 힘이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장수가 자신의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대비되는 점도 드라마에 입체감을 더한다.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칼을 뽑는 와키자카와 달리, 작중 이순신이 활을 쏘는 장면은 딱 세 번 등장한다. 이는 신중함을 기하면서도 끝내는 자신의 경험을 답습하는 와키자카와 달리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신중한 이순신의 차이를 드러낸다. 와키자카는 한산도 바다가 용인 전투와 같은 지형이라는 이유로, 또 이순신의 학익진이 과거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드러난 학익진의 약점을 공유할 것이라고 판단해 과거의 전술을 반복한다. 반면에 꿈속에서 녹둔도에서의 전투를 다시 한번 마주한 이순신은 와키자카의 선택을 예측한 후 마지막까지 확실한 한 수를 기다리다 왜군의 공격을 되받아 역공한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배우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연기가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요한은 본래 신중하고 치밀하지만 전투에 돌입하면서 야망에 부풀었다가 학익진 앞에서 좌절해 절망하는 와키자카의 입체적인 변화를 잘 짚어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대사와 비중에도 불구하고 박해일의 절제된 표정 연기가 지장(智將)으로서의 이순신을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이유다. 

     

     

    물론 모든 드라마적 측면은 결국 전투와 전쟁의 양상을 알기 쉽게, 또 박진감 있게 펼쳐 보인 연출과 구성 덕분에 빛난다. 우선 당포에서 견내량과 한산으로 이어지는 전투의 흐름 속에서 매 순간 변화하는 조선 수군의 학익진과 일본 수군의 어린진이라는 진형을 넓고 수직적인 구도로 잡아내 그 형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밑바닥이 둥근 일본군 함선과 밑바닥이 평평한 판옥선의 차이점을 활용해 전투의 변수를 만들기도 하며, 거북선들의 충파로 인한 박진감이나 전방위 포격으로 적을 섬멸하는 모습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또 전반적인 임진왜란의 흐름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도 영리함이 돋보인다. 지형적으로 유사한 용인 전투의 전황을 상세히 설명해 한산도 대첩의 전술적 가치까지도 부각하는가 하면, 선조의 몽진을 강조하며 한산도 대첩이 지니는 전략적 측면에서의 의의도 스크린에 담는 데 성공한다. 

     

    역사적 사실을 영화적으로 각색한 지점도 눈에 띈다. 일례로 영화는 역사 속 이치 전투와 웅치 전투의 특징을 합쳐 가상의 전투를 만들어 낸다. 본래 전주성이었던 일본군의 목적지를 전라좌수영으로 변경해 한산도 대첩 전후의 위기감을 더 고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적 서술을 충실히 따르며 서스펜스를 끌어올린다. 원균의 활용법이 대표적이다. 다른 미디어들과는 달리 무능하고 비겁한 원균의 캐릭터성을 온전히 묘사하면서 일본군과의 전투라는 외적 위기는 물론 진이 뚫릴 수 있다는 식으로 조선군 내부의 위기도 조성한다. 그 결과 거북선의 기습과 돌격 , 학익진의 위력, 평소와 달리 화약을 잔뜩 준비한 이순신의 지략 등의 임팩트는 모두 극대화된다. 

     

    특히 이는 영화를 제작할 때 한산도 대첩이 명량 해전에 비해 여러 핸디캡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명량 해전은 이순신 개인에게도, 조선 수군의 입장에서도 절대적인 어려움이 있는 전투였다. 총지휘관은 억울하게 파직당하고 어머니를 잃은 상태였고, 조선 수군도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후 12척의 판옥선만 남아 있었다. 그 와중에 130여 척이나 되는 일본군을 패퇴시켰으니 명량 해전은 별다른 각색 없이도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반면에 한산도 대첩 당시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연전연승 중이었고, 전력도 온전했다. 이순신 개인 입장에서도 사천 해전에서 총탄을 맞아 부상당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일신상에 크게 특이한 부분이 없다. 즉, 한산 대첩은 전략적인 관점에서는 중대한 승전이지만 오히려 처절함과 승리의 쾌감이 덜 직관적인 전투다. 이러한 핸디캡을 강렬한 스펙터클이 돋보이는 긴 분량의 해전 씬과 영리한 각색을 통해 극복했기에 <한산>의 임팩트는 결코 <명량>에 뒤처지지 않는다.   

     

     

    아쉬움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다. 시리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안준영과 정보름 캐릭터는 왜군과의 첩보전을 담당하면서 이번에도 일정 부분의 분량과 비중을 분배받는다. 그런데 그들은 전반적으로 담백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신파의 감정선을 유지하면서도, 시리즈의 연속성을 부각한다고 보기에는 역할이 작다. 그러다 보니 찰나의 순간 삽입된 그들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화의 최대 장점인 영리한 각색과 전투씬도 단점이 없지는 않다. 영화는 한산도 대첩 이후 조선 수군이 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기 위해 부산까지 진격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그런데 정작 부산진 전투가 한산도 대첩이 포함된 3차 출정이 아닌 이순신의 4차 출정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굳이 한 데 합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한편 거북선이 나타나는 전투씬은 배와 배가 충돌하며 원초적인 쾌감을 느끼게 해 주는데, 다만 거북선에 사용된 CG의 수준이 부자연스러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유인 작전 도중 암초 바다를 해쳐 나오는 조선군과 그대로 좌초되는 일본군을 묘사할 때처럼 순간순간의 장면에서도 부자연스러운 그래픽이 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이순신 장군이 와키자카 야스하루에 비해 적게 등장하고, 인간적인 고민이 두드러지지 않는 점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물론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명량 해전에서는 용장(勇將)을,  한산해전에서는 지장(智將)을 그려내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기는 하다. <명량>이 영웅 이면의 고뇌에 주목했다면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젊은 장군이자 리더인 이순신의 자질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량: 죽음의 바다>가 인간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한층 원숙해진 현장(賢將)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다면, 이 단점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한산: 용의 출현>은 전편의 단점은 수정하고, 객관적인 접근법을 통해 같은 주인공의 또 다른 면모를 부각하면서, 품격 있는 사극이자 영웅전, 그리고 전쟁 영화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낸다. 

     

     

    A(Acceptable, 무난함) 

    온 국민이 아는 해전에 영화적 재미를 더하는 데 성공한 의와 불의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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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와 불의의 싸움
  • 줄거리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조선은 한양을 빼앗기며 위기에 놓인다.

    왜군은 전주와 한산도를 동시에 공격하여 명으로 가는 길목을 열겠다는 작전을 짠다.

    이순신 장군은 이를 꿰뚫어 보고 바다 위에 성을 지어 왜군의 바닷길을 막기로 한다.

     

    감상 포인트

    1. 거북선이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 웅장이 가슴해지며 벅참을 느낄 수 있다.

    2. 다만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여러 인물을 거치며 전개되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으면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

    3.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감상평

     

    한산을 보고 나오면 딱 명량이 보고 싶어진다. 그땐 어떻게 영화를 보여줬는지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이 영화가 명량을 뛰어넘는 영화라는 점? 명량은 몇몇 인물에게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상황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 아쉬움을 많이 낳았고, 그 점 때문에 논란도 많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전체적인 흐름에 충실하여 한산도대첩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하나의 영화 속에 온전히 녹여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싸움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이순신에게 패한 준사가 이 싸움은 어떤 싸움이냐 묻자, 이순신이 답한다. 이 말에 관객들은 다른 생각을 모두 지우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대사는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다. 대놓고 말을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된다. 임진왜란은 대륙 침략을 위해 조선을 공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준사가 직접 의병들과 전주성에서 싸우는 장면들도 인상 깊었다. 영화 내에서 준사를 보여준 방식은 단순히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의 편에 선 것이 아니라, 불의에서 벗어나 의로 향하는 마음, 방향을 틀어 의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의와 불의는 단순히 입장 차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장수들의 정치 싸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일본군 내부에서는 심각한 분열이 일어난다. 극을 이끌어가는 와키자카를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을 잡고 싶은 인물들이 가토의 군대를 처치하고 배를 빼앗는 장면에서는 와키자카라는 인물에 대한 비열함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기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화합이나 의리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 장수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균 장군은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려고 하고 이순신에게 묘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학익진을 제때 펼치지 못해 위기의 상황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노장인 어영담이 대신 미끼가 되어 위기에 처하자 이운룡이 도우러 가고, 적진에게 붙잡힌 원균이 학익진의 날개로 들어올 수 있도록 구선을 등장시키는 등, 이순신은 절대 낙오된 자를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의’를 가졌느냐, 가지지 못한 ‘불의’냐의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의 어떤 위치에 어떤 장군을 배치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이 장면에서 굉장히 지략가적인 면모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이 그저 전술만 잘 짰다면 이토록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장군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임진왜란이란 혼돈 속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던 조선을 꺼내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던 한산도대첩. 이순신은 단순히 '이기기 위해서' 학익진을 펼친 것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 있을 때 이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학익진을 펼친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이순신이 상대방에게 어떤 정보를 주었고, 어떤 정보를 숨겼는가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장수 와키자카의 조카인 사헤에는 중으로 변장해 이들의 학익진을 전부 지켜본다. 전투 연습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가는 것도 모자라 거북선의 도면마저 훔쳐 간다. 이순신은 이걸 노린 걸까? 그런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면 좋았을걸, 싶다.

      

    이 영화는 한산도대첩이 '정보전'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순신 측에 왜군의 정보와 상황을 알리는 임준영(옥택연)과 와키자카의 기생 노릇을 하며 첩자를 지키는 정보름(김향기)이 있듯이 왜군에도 첩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정보를 내주고, 어떤 정보를 취하는지에 대한 부분들이 부각되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굵직하고 커다란 것들로 축소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깔끔한 처리를 위해서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2선에서 무너지면 여긴 끝장이야!"

    그럼에도 이순신의 학익진 배치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임진왜란이라는 침략에서 버티는 힘을 가질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이순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믿는 결연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는 한산대첩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주성에서 의병들이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는 장면 역시 비중 있게 다룬다. 서로 보이지 않고 상황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한 마음으로 필사의 노력을 다 한 것이다.

     

    이순신 위주의 영화가 아니라 이순신과 그 주변 인물들, 왜구의 침략을 타파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을 조명한 영화라서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국뽕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전작도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훨씬 더 나은 방향성으로 영화를 전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에서 만난 영화라서 더 반가웠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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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포와 마블의 결합,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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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나 진입장벽이 높은 영화로 개봉 전부터 소개되었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아주 다행이게도 유튜버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약 30분 전 완다 비전에 대한 압축 설명을 듣고 영화를 봐서 그런지 영화를 따라가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만약 어떠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작품이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시놉시스

     

     

     

    지금껏 본 적 없는 마블의 극한 상상력! 광기의 멀티버스가 깨어난다.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멀티버스,, 그렇구나!

     

     

     

    사람이 여럿 죽어나간다.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들이 아주 무참히 죽어나간다. 뭔가 실세계였다면 그 영웅들이 죽어나가는 데 있어서 그 서사가 필요했겠지만 멀티버스라는 세계관에서는 필요가 없었다. 강력한 완다에 의해서 휘리릭 날아가고 몸이 잘리고,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가 없다. 아마 본세계에서느 그대로 존재하는 캐릭터이기에 혹은 이미 죽은 캐릭터기에 쉽게 캐릭터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간의 마블 연대기를 따라와던 관객이라면 아마 죽었던 자비에 교수의 등장에 엄청난 반가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마블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지 않고 있었던 나로써는 그저 캐릭터를 소비하는 느낌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아서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이 작품은 공포영화다

     

     

     

    사실 마블과 호러가 결합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영웅 서사를 취하는 마블과 그로테스크한 공포라니.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꽤나 성공적인 조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공포의 소재를 활용하기 위해서 아마 그토록 많은 캐릭터들을 출연시키고, 소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닥터 스트레인지2에서는 완다가 최강의 빌런으로 등장하면서 완다를 막기 위한 비샨티의 책을 찾으러 가기 위해 멀티버스를 이동하며 가까스로 그 책의 행방을 알아낸다. 그런데 완다는 자신을 막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다크 홀드를 통해 집요하게 쫓아가 방해한다. 이렇게 집요하게 쫓아오는데 거의 무슨 살인마가 쫓아오는 줄 알았다. 마버사다 보니 여기저기서 막 등장하고, 다크홀드를 쓰다보니 종잡을 수 없는 등장 시점 덕분에 심장이 아주 고생을 했다. 아마 이것은 샘 레이미 감독의 고어한 성향이 잘 반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 <이블데드>를 셀프 오마주한 장면들도 많이 보이고, 좀비 스트레인지도 등장을 하질 않나 그와중에 B급 코미디도 군데군데 흩뿌려 놓아져 있어서 나름 재밌게 보았던 작품이었다. 이러한 부분들이 과하다기 보다는 마블도 이렇게 공포라는 장르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증명해낸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 공포라는 소재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던 캐릭터의 소비문제도 이해가 갔으니 말이다.

     

     

     

     

     

     

     

     

     

     


     

     

     

      

     

    앞으로의 마블은 어떨까?

     

     

     

    영화 <블랙위도우> 이후부터 개봉한 마블들을 순차적으로 봤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전 작품들은 아직 따라잡지 못한 사람으로서 작년까지만 해도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할 필요성이 없어서 좋았었다. 하지만 이번 닥스2가 나오면서 여실히 느낀 것은 이제 마블은 새로운 관객층을 유입한다기 보다는 이미 마블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확장된 세계관을 선보인다는 느낌이 강했다. 전작에 비해 너무나도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이번 작품을 위해 최소한 닥스1과 완디비전 9부작을 알고 있어야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친절한 유튜버 선생님들이 지속적으로 요약을 해주시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달라진 마블의 모습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화를 위한 사전지식이 필요함을 알려줌과 동시에 마블페이즈4를 이끌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앞으로의 마블이 기대되긴 했던 것 같다. 그전에 일단 그간의 이야기를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숙제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영화를 공부하면서 봐야한다는 것이 참으로 새롭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새로웠던 공포 장르와의 결합과 앞으로의 마블에 대한 기대감을 잘 풀어낸 나름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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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리셰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 이 글은 영화 [비상선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선생님은 내가 본 영화에 10점을 준 사람의 평가를 보고 에이 그건 아니지. 라며 1점을 주는 행동 또한 남의 의견을 신경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영화 [포제서;Posessor] GV)

     

    취향이란 것에는 옳고 그름도, 급의 차이도 없다고는 하지만 영화 티켓 값이 만 오천 원에 육박하는 데다 이례 없는 대작 파티가 펼쳐지고 있는 현재.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원하는 관객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 가능하다. 

     

    2022년 여름 4 대작 중 세 번째 영화인 [비상선언]은 이미 시사회를 통해 후반부의 진행이 다소 아쉽다는 평이 돌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아직 영화를 접하지 않은 예비 관객들 조차 소문을 통해 자신들의 선택을 조금은 단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압도한다는 말로도 부족하다는 전반부를 깎아먹을 정도로 후반부가 그렇게 나쁜지. 그리고 나쁘다면 얼마나, 어떤 점이 나쁜지. 개봉 당일에 영화를 보고 온 관객의 입장에서 느낀 점을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그 의견이 전문가의 의견이건 한 개인의 의견이건, 혹은 천만 관객 이상의 생각이건 상관없이. 자신이 보고 싶었던 영화는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작품을 놓친다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 한 번을 잃는 것과 같으므로. 

     

     

    전반전;클리셰를 영리하게 피하며 선제골을 넣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에서 박해일 배우의 모습이 보였음. 선과 악이 공존하는. 

    단지 한국 영화계에서만 낯설었을 뿐.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이미 익숙한 항공 테러, 혹은 재난 영화를 만들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가 뭐라 해도 "뻔한 것"들을 쳐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비상선언]은 이런 장르물에서 만날 수 있는 요소들을 아주 조금씩 비틀어 기시감을 최대한 피하려 노력했다.

     

    악역인 진석에게는 서사보다는 순도 높은 사이코패스 설정을 꼭 쥐어주었고. 이 테러의 목적이 돈도 인질도 누군가의 석방도 아닌 그저 모두의 죽음임을 암시하며, 타협점이 전혀 없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을 높였다.

     

    또한 대머리에 하얀 민소매를 즐겨 입고 군번줄을 걸치고 있을 것만 같은 퇴역한 특수부대 출신, 혹은 무엇이든 다 아는 방법이 있는 진실의 방으로 테러범을 데려갈 것만 같은 게임 체인저도 애초에 이 비행에 합류시키지도 않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비행기 안의 나머지 탑승객들이다. 

    그들은 이 참담한 와중에도 누구 하나 남 탓을 하지 않으며. 혼자 살려고 발버둥 치다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참고 1). 영화 안에서 성가진 긴장감을 유발하는 파워 게임이나 자원 쟁탈전도 벌이지 않는다. 

     

    배정받은 자리에 얌전히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간이 테이블까지 착실하게 내려놓은 채 입도 뻥끗하지 않을 것만 같은 승객들 덕분에. 영화는 삶에 대한 미련을 말끔히 버린 테러범이 총 한 자루, 큰 고함 한 번 없이 비행기를 탈취한 그 상황에 모든 포커스를 둘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마련된 소중한 찬스는 영화 전반부 내내 유효 골을 터뜨린다. 눈에 날아와 박히는 모든 장면들이 주는 압도감은 탄탄한 압박이 되어 그 어떤 잡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시간으로 관객들을 꽁꽁 묶어둔다.

     

    후반전;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클리셰에게 동점골 허용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실 후반부의 "신파"라고 부를 수 있는 장면의 슬픔의 강도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어느 정도 있을 법한 정도이고, 또 가족과의 마지막을 고하는 장면이니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상 그 모든 부분들이 기괴하다, 혹은 느닷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과연 이 껄끄러움의 원천이 무엇인지 조용히 들여다보면. 애초에 영화의 원만한 흐름과 긴장감을 위해 서사는커녕 자신의 입을 기꺼이 다물었던 다수인 탑승객들에게 너무 급작스럽게 스포트라이트를 줘 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당신들의 차례입니다.라는 의도가 아닌, 시간이 좀 남았는데 어떻게라도 좀 해봐요.라는 투의 취급을 하고 있다는 점은 영화의 후반부를 매우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게 보이게 하기 충분하다.

     

    그 산만함은 머릿속에서 지금 이거 날 울리려는 거지?라는 반감이 고개를 불쑥 들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과격하다 못해 무자비하게 느껴질 정도의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되던 상대방에게서 아주 조금씩 허점이 보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조금씩 무너지는 수비 진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피했다고 자부했고. 따돌렸다고 믿었던 클리셰는 결국 외통수처럼 좋은 결말로 가는 길목을 막아 선 최후의 수비수가 되어있었고. 이 명성도, 실력도, 소문도 자자한 선수는 결국 이번 경기에서도 보기 좋게 한 골을 넣고야 말았다. 

     

    모든 장르적 규칙을 파괴했다고 자부하는 전반부의 위엄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치욕적인 골로 기록될 것이다.

     

     

     

    인저리 타임;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인한 어이없는 실축.

    사진 출처:다음 영화

    과연 이 영화가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본다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 규칙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 전술의 기본은 책임감이었다.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아예 장관 숙희(전도연)의 입을 빌어 책임을 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공무원이라는 대사까지 내뱉는다. 또한 인호(송강호)는 직업적인, 그리고 가장으로의 책임감을 둘 다 내버리지 않고 허리춤에 찬 채 죽어라 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자신의 전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재혁(이병헌)의 만회 비행이 성공해 안착하는 장면으로 비유하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10분에 한 번씩 바람 방향이 바뀌어 안전한 착륙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두 명의 사상자를 내는 바람에 조종간을 놓게 만들었던 그때를 완벽하게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책임감을 통해 놓치지 않았다고. 그러니 이 플레이는 꽤나 일관되었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혹은 결과는 옳았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에 있다. 영화가 신파를 선택한 것이 문제가 아닌, 신파를 선택하는 과정이 잘못되었음이 결말에 절실히 드러난다. 재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이 경기의 설계자는 재혁에게는 잊고 싶었을 그때의 결정보다 더 형편없는 결정을 내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치 그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처럼.  

     

    과연 이 선택이 KI501 항공편이 전반부에 겪은 생화학 테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어떤 영화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법한 항공 재난 영화의 앞부분을 만들어 낸 비행기의 탑승객들은.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선택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는 이들에게 그런 선택지를 들이밀지 않았다. 우리는 책임졌다.라는 결말은 결국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못했다. 

     

     

    마치면서 

    세 사람이 도둑질을 했다.  

    한 사람은 도둑질이 나쁜 것인지 모르고 했고

    한 사람은 도둑질이 나쁜지 알면서도 했으며

    한 사람은 도둑질이 궁금해서 했다고 했다. 

     

    이 중 가장 나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정답(?)은 도둑질이 나쁜 것인지 모르고 한 사람이라 했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조차 없는 무지함 만큼 나쁜 것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분명 그럴 의도로 만든 결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비칠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 나쁜 결말이 되어버렸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부가 주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또한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박해일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한 임시완의 연기는 매서움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하다.  두 번 다시 이런 캐스팅을 볼 수 없을 것처럼 호화로운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많은 것을 관객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1 

    물론 빌런(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다른 재난 영화들에 나오는 인물들에 비하면 귀여울 지경이며, 오히려 저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정상 범위의 반응 중 하나 정도로 보인다. 솔직히 저 정도면 나도 이길 수 있다. 정도?

     

    [이 글의 TMI]

    1. 오래간만에 야식 먹고 글 쓰고 자려고 했는데 왜 벌써 새벽 다섯 시지.

    2. 하지만 후회는 없다. 

    3. 다다음주 휴가다!!!!!


    [수다쟁이의 또 다른 TMI]

    여담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생화학 테러(바이러스)가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두 배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과연 저 영화 속 바이러스는 어떤 바이러스인지.(혹은 어떤 바이러스에 가까울지) 그리고 묘사하고 있는 증상이나 전염되는 방법 등의 고증이 얼마나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하느라 박진감을 넘어서 피부로 와닿다 못해, 영화 내내 머리에서 김이 슉슉 뽑아져 나오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아 물론 이 영화를 보신 우리 연구실 리더분에 의해 다음 주 저널 클럽에서 영화에 대한 토론을 (공부해와서) 하기로 했다.


    ....?? 왜 나만 새드 엔딩인데. 나도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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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밀한 해방에 관한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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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누구나 상상해 볼 수 있는 성적 호기심에 대한 근본을 숨김없이 까발리는 날카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며 매 순간마다 쾌락에 대한 상호 간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키는 두 주인공의 끊임없는 대화에 가벼운 조소와 비아냥거림을 녹여낸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리뷰입니다. 2013년 데뷔작 ‘52번의 화요일’로 30회 선댄스 감독상과 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소피 하이드 감독 신작으로, 영국에서 주로 TV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자이자, 각본가로 알려진 케이티 브랜드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예고편이나 공개된 정보들의 경우에는 성에 대한 메시지인 듯한 분위기를 내지만 완전히 성적인 방향이 아닌 소재를 활용해 사회에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 사회의 틀에 얽매인 삶을 탐구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로 따뜻한 포용과 위로를 통한 치유와 해방이라는 포인트를 향해가는 미묘함이 있습니다. 더불어 지금 세대의 많은 관심이 쏠리는 부분이기도 한 개인의 해방을 기본적인 욕망과 연결한 지점이 꽤 흥미로워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정보

    난 평생 재밌거나 놀랄 만한 일을 못 해봤어요

    중학교 종교 교육 과목 교사로 재직 후 은퇴한 낸시는 31년간 함께 한 남편을 2년 전에 떠나보냈습니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느라 곁에 아무도 없는 삶이 무료하다고 느끼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단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한 것이 억울하다 생각이 든 그녀는 오랫동안 고민을 한끝에 퍼스널 서비스를 예약하고 호텔에서 상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방으로 찾아온 매력적인 남자 리오 그랜드를 만나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Good Luck to You, Leo Grande

    감독 : 소피 하이드│각본 : 케이티 브랜드

    출연진 : 엠마 톰슨, 다릴 맥코맥, 이사벨라 래플랜드

    장르 : 드라마, 코미디│상영 시간 : 97분│국가 : 영국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 로튼 토마토 신선도 94% 팝콘 85%, IMDB 7.1, 메타 스코어 78점

    수입 : (주)퍼스트런│배급 : (주)무비다이브

    개봉일 : 2022년 8월 11일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평점

    온전한 나를 해방시켜주는 퍼스널 서비스?!

    배경은 거의 연극처럼 단순해서 호텔방 안의 소파, 침대에 앉거나 창문으로 보이는 날씨가 전부이지만, 마치 다른 객실인 것처럼 매번 다른 주제의 대화를 통해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단순함은 주의를 산만하게 할 것이 없어 두 사람이 구축해가는 관계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그저 바뀌는 날씨와 자연광, 조명 등만이 네 번에 걸친 만남으로 인한 변화를 대변합니다. 그리고 성에 대해 솔직해진 이들은 더 이상 관계의 복잡성에 연연하지 않지만, 재미있게도 육체적 관계에만 집중해 실망스러울 수 있을 흐름으로 가지 않고 두 사람을 통해 다른 숨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각자의 삶에 녹아있는 성향의 차이이자 사회가 만들어낸 틀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며 그것이 어떻게 우리에게서 기쁨과 성취감을 빼앗는지 우회적으로 드러냅니다. 결국 리오는 낸시가 진정으로 편견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그녀는 리오의 직업에 대해 노골적인 무시로 감정적인 상처를 입히며 이 같은 대립을 극명히 보여주죠.

     

     

     

     

    (남자배우 눈 색깔이... 원래 노란색인가 -0- 너무 매력 있는..) 

     

    신인에 가까운 다릴 맥코맥은 친절하고 개방적이며 재미있고 자신감 있는 비범한 캐릭터 리오 그랜드를 맡아 자기혐오, 과잉 감정, 편협하고 히스테리가 있을지도 모를 낸시의 엠마 톰슨과 미묘한 관계의 티키타카를 이어갑니다.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시놉시스대로 성적인 것이지만, 언뜻 보기에도 두 사람은 친밀감, 노화, 성적 쾌락의 중요성 등 매혹적인 철학적인 대화들로 장면을 꽉 채웁니다. 결국 욕망에서 비롯된 상호 쾌락의 주제를 서로 간의 계약으로 시험하지만, 성관계에 있어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묘하고 장난스러운 욕구, 필요, 동정심 등 여러 감정들을 탐구해 변화되는 자신들을 마주합니다. 

     

     

     

     

    작품은 단지 쾌락에 한정된 것을 말하지 않고 보다 확장된 개인의 행복, 치유, 해방이라는 부가적인 요소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31년이란 시간 동안 교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가진 사회적 무게감에 이루지 못한 섹슈얼 판타지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억누르고 감추는 게 당연했던 잊힌 자신을 레오로 인해 마주하는 일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 부끄러운 신체를 떠나 감정적인 또 다른 헐벗음으로 거듭나는 과정, 결국 틀어진 관계에서 다시금 재회하는 두 사람이 제한되고 폐쇄된 공간이었던 호텔방을 떠나 개방된 호텔 카페에서 마주한 것은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자기 자신을 이제 보여줄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겠죠. 그렇기에 그들의 마지막 만남은 꽤나 유쾌하고 뭉클한 여운도 있어 제목처럼 행운을 빌어주고 싶었습니다. 낸시와 레오가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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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로커는 결국 누구인가?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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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 브로커. 이 작품의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호불호를 굉장히 많이 타는 감독이라고 해서 걱정을 하며 영화관을 향했다. 전체적인 감상평은 불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호의 작품도 아니었던 그저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 <브로커> 시놉시스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상현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의 동수.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그들은 베이비 박스에 놓인 한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하지만 이튿날, 생각지 못하게 엄마 소영이 아기 우성을 찾으러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솔직하게 털어놓는 두 사람. 우성이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기가 막히지만 소영은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상현, 동수와 함께하기로 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형사 수진과 후배 이형사.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고 반 년째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조용히 뒤를 쫓는다. 베이비 박스, 그곳에서 의도치 않게 만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브로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과연 누가 브로커인가?

     

     

     

    영화 <브로커>를 보기 전 예고편만 봤을 때는 브로커 일을 하는 상현과 동수가 소영을 만나면서 브로커 일을 그만두고 그들끼리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영화 제목 브로커가 가리키는 대상이 상현과 동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과연 누가 브로커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그저 돈만 바라고 아이를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찾으면서 돈에 집착하는 일반적인 브로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비춰진다. 오히려 이들을 쫓는 형사들이 브로커의 모습을 띤다. 아이를 팔려하는 현장을 덮치기 위해 사람을 매수해서 그 현장을 꾸미고, 아이를 팔기만을 기다리는 수진과 이형사의 모습을 보면서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는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결과주의의 모습에 진짜 브로커는 오히려 형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제 아이를 팔려고 한 상현과 동수, 그리고 소영의 잘못이 덜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잡기 위해 즉, 악을 잡기 위해 똑같이 악의 모습으로 그들을 잡는다면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보육원에서 멀어져야 하는 삶

     

     

     

    영화 <브로커>를 보면서 가장 가슴을 쳤던 대사가 있었다. “형은 이곳으로 돌아오면 안돼. 우리의 희망이잖아.” 보육원 출신인 동수는 보육원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동수가 브로커 일을 하며 새로운 부모를 찾기 위해 잠시 들른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동생에게 들은 말이다. 보육원 출신의 아이들이 다시는 보육원을 돌아오지 않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대사여서 굉장히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들이 힘들 때 그들을 품어줄 수 있는 안식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의 이상을 그대로 표현하다

     

     

     

    영화 <브로커>는 가족이라는 구성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고정관념인 엄마와 아빠, 그리고 유복한 가정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족의 구성이라는 것이 엄마와 아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어서 사실 좀 껄끄러웠다. 요새 다른 작품들에서 기존의 존재를 대체할 필요가 없고 가족 구성원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러한 작품들을 많이 보다보니 이 작품이 원하는 고전적인 가족구성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굳이 그래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유복하고 능력있는 아버지와 따스한 어머니를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이 원하는 가족의 이상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브로커>는 작품 자체의 지향성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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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념 앞에 가려진 개인, 무너진 관계.
  •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에서 사건이 발생하여 북한은 남한의 기습 테러 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의 납치로 주장하고 중립국에서 조사를 맡게 된다. 남한의 이수혁 병장’, 북한의 오경필 중사그사이에 놓인 조사관 소피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사건에 진실에 다가가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이야기를 필두로 공동 경비 구역 JSA’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진짜 수사관으로서 임무를 다하기 위해 온 소피의 입장과는 달리 중립국의 입장은 누가 쐈는지보다는 왜 쐈는지를 밝히고 절차를 따지며 아무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남한, 북한, 중립국 그 누구도 진실을 원하지 않았지만, 소피와 관객은 그날의 진실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 이들의 모습과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는 소피의 모습을 대조하다 그날의 진실로 카메라는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적이라고 생각했던 경필이 수혁을 도와주는 일이 계기가 되어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먼 거리에서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이 세 사람의 거리는 어느새 서로가 적이라는 것을 잊고 익숙하게 옆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라는 농담을 나눌 정도로. 교차하는 시선과 침묵을 유지하는 그들로 인해 도저히 알 수 없는 관계를 파악하는 소피는 증거물을 바탕으로 의외의 인물에서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불안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 감정이 관계의 갈고리를 무너뜨리며 총구가 향한 방향과 그 손이 누군가를 가리키는 순간을 목격하고 한없이 무너지는 개인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먼 발치에 바라봤던 그들의 거리는 한없이 멀어진 분단 국가의 현실을 드러내고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는 중립국을 보여주며 따뜻했던 서로의 거리가 차갑게 식어 다시 만나지 못할 그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씁쓸할 뿐이다개인과 개인이 마주했을 때 서로를 바라보지 않던 총구가 이념 앞에서 끊임없이 불꽃을 일으키는 모습이 마냥 서글프기만 하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역사의 현실을 영화로 투영하여 보여준다. 지나면 지날수록 깊게 패여드는 갈등은 분단의 모습으로 드러났고 가까워질 듯 하면서도 가까워질 수 없는 영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남한과 북한의 모습이 아닐까. 서로에게 들이미는 총구를 내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당시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그려지는 북한 사람의 모습을 괴물과 악마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사람으로 표현하면서 한국 영화에 명작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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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헤어질 결심(2021)> 리뷰
  • 이름은 언제나 존재 다음에 온다. 마찬가지로 관계에 있어 마음이란 최초에 발생하는 무엇이고, 행위는 눈 먼 채 마음을 따라가며, 이성은 한참 후 자신의 행동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명명한다(설령 그것이 그릇된 이름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이 영화, 제목이 이상하다. ‘헤어질 결심’이라니. 어떠한 감정을 사그라뜨리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라면 그저 갈라서면 될 일인데, 물리적으로 멀어진 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받아들이면 될 터인데, 이 영화는 헤어지는 행위에조차 ‘결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감정과 행동이 진행되는 순서를 역행하겠다는 선언 이면에 가득한 건 망설임이다. 그러하니 영화 속 주인공의 이별이 쉬울 리가 없다.

     

    <헤어질 결심>을 바라보는 데에는 참으로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쟝센에 집중할 수도 있을 테고, 그의 전작에서부터 이번 작품에서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의 모호하고도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터다. 또한 21세기 한국 사회만이 담아낼 수 있는 현상을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며 히치콕의 영화를 끌어오는 방법도, 탕웨이와 박해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집중해 보는 방법 또한 있겠다. 하지만 난 송서래(탕웨이)와 장해준(박해일)의 관계에 집중해 보고 싶다. 오랜만에 영화로 찾아온 박찬욱 감독이 꺼내든 ‘멜로’라는 장르를 아끼고 싶진 않으니까.  

     

     

     

     

     

     

    서래와 해준

     

    <헤어질 결심>은 담당 형사와 피의자로 만난 남녀에게서 출발한다. 특별하지 않은 설정이지만, 이 이야기는두 사람이 품은 믿음으로 인해 레이어가 여럿 추가되며 현실만큼 복잡해진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 누가 뭐라 해도 꺾이지 않는 신념을 지닌 사람의 품위. 서래와 해준에겐 환경이 그들을 공격하더라도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세상의 모진 풍파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서래는 어느 여름 해골 같은 몰골로 불법 입국한 중국인으로, 한국에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에 풍파가 더해지는 데에 크게 일조한 사람은 서래의 한국인 남편 기도수다. 이 남자는 서래를 학대하고,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그의 몸에 이니셜(KDS)을 새겨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서래는 자신의 처지가 곤란하기 그지없어 그를 떠날 수 없는 신세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래는 간병 업체에서 ‘에이스’로 통하고, 자신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동물들까지 살뜰히 보살피며, 무엇보다도 언제나 단정한 차림새를 유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서래가 보여주는 특유의 기품은 그의 과거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독립군 참전자인 송서래의 외조부가 일러주었다는 가문의 땅, 호미산으로부터.

     

     

    해준 역시 서래와 비슷하다. 고지식할만큼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는 그는 어떤 피의자를 만날 때에도 무죄추정원칙을 고수한다. 미결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책상 앞에 붙여두고 사건에 관련된 사소한 숫자마저 머릿속에 오래오래 보관하는 이 남자는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정중한 형사로, 서래의 말마따나 ‘현대인’ 치고 품위가 넘친다. 이러한 평가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유효한데, 후배 수완(고경표)은 다른 형사들과 다르게 끝까지 사건을 물고 늘어지는 해준을 존경해 부산으로 전근을 왔을 정도이다. 그가 불의 앞에서 늘 달려나갈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원칙에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진다. 

     

     

     

     

     

     

    사랑과 미련과 그 밖의 모든 것들

     

    멜로 영화이니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을 먼저 해 보자. 두 사람은 언제 사랑에 빠졌을까? 영화는 답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은 서래와 해준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시점에 대해, 감독과 배우와 관객의 해석이 모두 다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해준의 말마따나 서로가 같은 부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서서히 물들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사소한 단서조차 놓치지 않는 형사 해준이 ‘중국인이라 한국어가 서툰’ 서래의 의도가 변질되지 않도록 더욱 애써 유심히 살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꾸만 시선을 주어야만 했던 정황 속에서 자연스레 자라난 것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한 걸음 뒤의 시선과 녹음을 통해 상대방에게 몇 박자씩 늦게 도착하곤 했으므로. 정확한 것은 없다. 늘 그렇지만,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분명한 것은 없으니.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사랑에 빠진 자신만 남는다는 그 단일한 결과만 제외한다면. 

     

     

    그런데 신기한 건, 둘 사이에서 주도권이 서래에게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계층의 최약자인 서래 말이다. 서래는 당장의 생존이 절실한 사람이었고, 덕택에 그는 사랑을 온전히 감각할 여유가 부족했다. 이는 서래보다 해준이 먼저 사랑을 자각한 계기가 됐다. 사랑 앞에서는 형사와 피의자라는 권력 관계가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기실, 형사인 해준은 본질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후 뒤쫓아 가는 쪽이지, 먼저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에겐 대단히 비겁한 측면도 있다. 아내 정안(이정현)에게 기도수 사건을 다르게 바꿔 전달하는 것처럼. 사실은 일찌감치 끝난 관계에 무의미한 인공호흡기만 달 뿐 해준은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파리처럼 모든 일을 밀어낼 줄 모른다. 그는 모든 것을 떠맡는다. 공평하게 모든 것을 신경쓰고자 한다는 건, 사실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모른다는 듯. 

     

     

    해준이 이런 남자라는 사실은 서래에게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서래는 자신을 걱정하는 다정한 남자에게 묻는다. 자신은 왜 당신 같이 품위있는 남자를 만날 수 없을지에 대해. 답은 자명하다. 그에겐 양지바른 한국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미산은 그의 핏줄이 가진 땅이라는데 서래는 어떤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다. 정당성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서래는 고소공포증까지 있는 외국인이자, 저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면 무기징역수가 되는 젊은 여성이다. 전문직에 해당하는 간호사 자격증을 가졌음에도 하루하루 독거노인을 돌보는 불안정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제 뜻을 명확히 전달할 길이 없다. 서래는 상황을 깨뜨리고자, 운명을 거스르고자 노력하나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남편에겐 가축취급을 당하는 트로피 와이프로, 거듭하여. 

     

     

    그러나, 두 사람은 사랑 앞에서 변화한다.

     

     

     

     

     

    회피하던 해준은 행동한다. 서래가 부탁하지 않아도 요리하고, 중국어를 몰래 공부하고, 우산을 씌워주며, 무엇보다도 서래를 고스란히 눈에 담는다. 죽음보다도 더 끔찍하게 여기는 감옥생활을 각오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홍산오 사건처럼, 해준은 서래 앞에서 몇 번이고 자신의 원칙을 깨뜨린다. 해준 자신이 죽음보다도 더 치욕적으로 여기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기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전했느냐고 따지는 해준의 말은 공허하다. 사건 수사를 위한 결정적 증거를 깊은 바다에 버리라는 말은 너무나도 명백한 고백이었으니까. 

     

     

    반면 해준을 만나기 위해 이포에 간 서래는 그와 헤어지겠다고 결심한다. 부산에서처럼 사건의 주동자가 되지 않고 한 발짝 뒤에서 해준을 바라본다. 언젠가 그에게 닿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스마트 워치에 자신의 말을 녹음한다. 그런데 서래는 먼 발치에서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한 남자가 원칙을 잃어 더 이상 올곧게 달려나갈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서래는 해준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녹음할 수 없는 환경에서 중국어로 말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한다. 모든 사건을 품고 있는 스스로를 깊은 물 아래에 묻음으로써 사건을 무마한다. 서래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의 우스꽝스러운 단면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입증할 수 없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과 같다는 것을 안다. 서래 그 자신이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한국은 서래에게 외조부의 땅을 돌려주지 않았으며, 중국에서의 서래를 기억하지 못했고, 기도수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 않았나. 그렇기에 그는 거침없이 해변에 스스로를 가두는, 무자비한 선택을 한다.

     

     

    서래의 선택으로 인해 해준이라는 인간에겐 그저 긴긴 미련만이 남는다.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이 남자는 앞으로 영원히 서래를 헤아리며 살아야 한다. 서래와 헤어진 후 셈했던 402일. 그가 없어 편히 잠들지 못했던 402일은 이제 수도없이 많아질 것이다. 

     

     

     

     

     

     

    어지러이 얽힌 산과 바다

     

    자, 이젠 시놉시스에서 눈을 돌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상징을 이야기 해 보자. 영화에선 자연물인 산과 바다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을지로에서 태어났으면서 바다가 좋다고 하는 해준, 산을 가슴에 품고 바다를 건너온, 저가 돌보는 노인들에게 산해경을 읽어주는 서래. 두 사람에게 부여된 속성은 정안의 원전과 맞지 않는 힘이다. 

     

     

    서래와 해준 두 사람은 모두 산보다 바다를 선택하고, 공자의 말(智者樂水 仁者樂山)을 인용하며 스스로를 어진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공자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논어는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그러하므로 더더욱, 나는 해준이 산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다에 이끌리는 산이었고, 붕괴될지언정 침몰하지 않는 남자다. 

     

     

    다만 이러한 두 사람의 속성이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서래가 읽는 산해경 신화 속 이정표가 무의미하듯, 산과 바다의 경계는 영화 속에서 자주 흐려진다. 마치 산과 바다의 뿌리가 같기라도 한 것 마냥. 뚜렷한 상징으로 환원되는 장면은 차라리 해준의 집에서 서래가 샛노란 옷을 입고 있었던 씬과, 호미산에서 서래가 산에서 광원 자체가 된다는 점이지 않을까. 서래에게 해준의 존재가 잠시나마 구원이었듯, 해준의 삶에 있어 서래는 단 한 순간일지라도 분명한 빛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래가 바다에 잠긴다. 모래산이 무너지고, 바다의 깊은 구멍을 메운다. 서래의 소망은 충족되었다. 그는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된다. 해준은 이제 떠오르는 태양 없는 바다, 안개만이 자욱한 해변을 영원히 걸어야 한다. 헤매는 자는 목소리를 높여 운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붕괴 이전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서래가 바랐던 것은 이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영원히 결핍된 상태로 살아줘요, 당신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 언제나 나이길 바라요.

     

     

     

     

      

     

    서래와 해준의 관계에만 집중하여 후기를 적었지만, <헤어질 결심>엔 현대 한국인이기에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나는 이 영화가 오로지 2022년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재성'이라는 시간적 속성이 어쩔 수 없이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이 영화를 개봉한 해에, 이 나라에서 감상할 수 있었음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이토록 끊임없이 지각하고, 미끄러지고, 실패하는 사랑을 매끄럽게 스크린에 담아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획득하기 전 상실되는 사랑이란 파란색도, 초록색도 아닌 푸른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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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굳이 쓸 필요가 없었던 단어 비상선언
  • 헐. 눈 뜨니 8월이다. '그래도 올해는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런 건 좀 너무하다. 영화 몇 편 보니까 전반기가 끝났다. 팬데믹 초반부, 기대작들의 보도자료를 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미 개봉됐다. 물론 현재 사회복무요원인 나. 올해가 최대한 빠르게 후다닥 가는 것은 나를 위해 무조건 일어나야 할 일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니까 시간이 야속해진다. 나 진짜 20대 후반이 되는 거야? 20대 후반은 싫은데 다음 즐거운 일은 빨리 오면 좋겠다. 비단 이런 내가 나한테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근데 시간은 앞으로만 달려간다. 우리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뭐 방법이 있어? 그냥 맞이하는 수밖에!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 좇는 게 현명하게 나이를 드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쏜살같이 달려간 끝에 어느새 2022년 8월이다. 여름 빅 4 영화 중 세 번째 차례가 왔다. 주인공은 <비상선언>이다. 작년 12월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 연기가 되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그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 전도연, 송강호, 이병헌이라는 큰 이름에 많은 분들이 기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2년을 돌아 개봉한 만큼 영화가 숙성되지는 않았던 느낌이다. 앞으로의 운행이 성공적으로 이륙할지 비틀거리다 불시착할지는 봐야 알 것 같다. 2020년의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서 이 비행기에 탑승해보자.

     

     

     

     

     

     

     

     

    물러설 곳 없는

     

     

     

    사람 많은 바글바글한 공항.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 몇 명은 여행 준비에 들떴고 누구는 이별하느라 슬플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을 공항이지만 비행기 부기장 현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본 것 같다. 아닐 거야. 다시 비행기로 가는 현수. 현수를 비춰주던 카메라는 의문의 승객 진석에게로 옮겨간다. 진석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 인천 국제공항 항공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진석. 금세 직원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여기, 사람이 가장 많이 타는 비행기가 뭐예요?"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답을 거부하는 항공사 직원. "이야기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냐"라고 말했지만 답을 끝끝내 거부한다. 진석은 언짢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다 못해 한마디 덧붙인다.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요. 걸레 같은 게" 진석은 하와이행 티켓을 끊고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에서 진석은 무언가 하고 있다. 겨드랑이를 살짝 열어서 무슨 통을 넣고 있는 진석. 사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인물이 있었다. 수민이었다. 진석은 탑승수속 대기줄에서 수민이를 발견한다. 말을 거는 진석. 수민이 옆에는 수민의 아버지 재혁이 있었다. 이혼했어요? 왜 엄마는 없어요? 불필요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진석에게 '이상한 사람이네’ 대응하고 비행기에 탑승한다. 탑승한 지 머지않아 화장실로 들어가는 진석. 진석은 화장실의 천장에 어떤 가루를 뿌려놓고 혼자 나온다. 이륙한 비행기. 비행기 안, 다들 즐거워 보인다. 교복을 입고 비행기를 탄 학생들도 보인다. 휴가를 앞둔 경찰 인호의 아내도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아저씨가 눈에 피를 뿜으며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이때 이 아저씨는 비행기 내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게 전부였다. 끔찍한 살인 수법에 경악하는 승객들. 금세 이 범인의 진범인 진석이 승객들 앞으로 나서며 '이 비행기에 탄 모든 이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도망칠 곳 없다.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고 한다. 이 전대미문한 전염병과 함께 비행기를 탄 승객들. 이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땅에선 경찰 인호가, 하늘에선 승격 재혁이 최선을 다한다. 

     

     

     

     

     

     

     

    압도적인 첫 시퀀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장점은 초반부라고 말할 수 있다. 진석이 항공사 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전반부. 이때 카메라 잡는 구도는 뭔가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다. 이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진석은 우연히 만난 악 같은 존재다. 이 사람의 범죄 동기는 초반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석적으로 빌런이 누구인지 딱 보여주기엔 뭔가 엇나간 진석. 진석의 첫 등장부터 시작해 관객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잘생기고 선한 만큼 뒤틀려있는 진석의 성격을 효율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한 대비를 위해 항공사 직원과 진석의 표정이 나란히 제시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촬영은 이를 위해 일거양득의 선택지를 보여준다. 

     

     

     

    이 시퀀스의 촬영 구도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바로 임시완 배우의 연기력은 이 장면에서 임팩트를 쾅 주고 시작한다. 이 인물의 대사들을 살리는 이 연기뿐만 아니라 대사들도 잘 썼다. ‘걸레 같은 게’라는 단어도 잘 골랐다. 또 욕 하기 전에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라고 여직원에게 말하는데 이 마저도 진상 손님의 한 부분을 잘 구현한 좋은 작문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소한 장면에서 진석 캐릭터의 내면을 보여주니 영화가 좋은 시작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다음 시퀀스가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테러 모의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 없이 '이 놈은 이러고도 남을 놈'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 구성과 연출이었다. 또 이렇게 빌런이 누구인지 바로 보여주는 건 과감하게 미스터리를 포기하겠다는 말도 된다. 이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중후반부가 넘어가서 이야기의 전환이 이뤄지는데 그 하이라이트 신을 위한 준비 자체로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초중반부 진석 캐릭터가 왜 이렇게 하나? 의 이유를 경제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연출이었다.

     

     

     

    제작진 칭찬해

     

     

     

    이 첫 시퀀스에서 이 영화가 쏘아 올린 시발점은 중반부까지 내내 힘차게 작동한다. 일단 비행기 이륙 장면이 사실적으로 잘 찍혔다. 아마 비행기 이륙 자체는 실제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비행기 출발할 때의 연출은 사실적으로 잘 뽑혔다. 또 이 도입부 외적으로 비행기 안에 빛이 들어오는 구도를 잘 잡았다. 또 비행기 내부의 공간감 역시 탁월하다. 비행기 안이라는, 폐쇄라는 속성이 이 영화에 있어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일단 갑갑해야 빠져나올 구멍 없는 진석의 잔혹함이 극대화가 될 것이다. 안 그래도 답답한 것이 시각적으로도 강조되는 역할인 것이다. 또한 전염병의 위험함을 묘사할 때 공간이 좁아야 '저 사람 저렇게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비행기 연출을 보여줬다. 또 비행기 운행 동안 빛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하와이까지의 비행이 1시간 땡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 때문에 당연히 비행기 안에서 들어오는 햇빛의 색이나 발현 구도 등등 때마다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 또 비행기 세트장을 잘 만들었다. 적당히 비좁은 비행기라 결함이 없이 무난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비행기 내부 구조도 그렇지만 비행기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화면들도 깔끔했다. 조종석에서 바라보는 하늘, 관객들 쪽 창가에서 보이는 모습까지 CG를 썼다고는 믿기 살짝 어려울 정도다.

     

     

     

    이 탁월한 비행기 구현에서 시작해 영화는 초중반부까지의 서스펜스를 압도적으로 유지한다. 일단 중반부까지 사운드를 활용한 강약 조절은 아주 뛰어나다. 인호가 아내와 통화하는 신의 사운드, 진석에게 깔리는 배경음악, 현수와 재혁의 관계까지 나름 빠른 탬포의 정박으로 이어지는데 가사가 없이도 인물을 설명하는 좋은 연출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일단 흑막 진석이 자기를 드러낼 때 가운데에서 나온다. 그런데 비행기 내부의 길이 가운데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부여된 설정일 것이다. 이때 진석에게 집중되는 촬영은 제작진의 열일이 빛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첫 번째 희생자가 피를 토하며 죽을 때 굉장히 끔찍한 방식으로 죽는다. 이제까지 본 재난영화 중 아예 본 적 없던 느낌? 그 신체부위가 터지는 건 실제로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아이디어의 창의성이 돋보였던 부분이다. 또한 진석이 흑막임을 직감하고 누군가가 그의 집에 방문하는 시퀀스가 있다. 거기서 나온 시체 역시 미술팀이 디자인을 잘 구현했다. 비닐로 칭칭 쌓여있음에도 피가 범벅인 시체를 보면 이 병의 잔혹함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이렇게 소소한 요소들을 살려 1차적인 목표는 잘 충족하는 이 영화. 이야기가 한번 변하는 터닝포인트가 있다. 이 터닝포인트까지의 이야기 구성이 적절하게 잘 분배되어 있다. 인물 간의 사정 이런 거 필요 없다. 땅에서 경찰 인호의 범죄/미스터리 영화가, 비행기에선 악역 진석의 재난영화가 벌어지는데 이 두 이야기가 각자의 장르적 특색을 잘 살리며 극을 이끈다. 일단 범인이 누구인지 뻔히 드러나는 영화가 이 작품이다. 이는 후반부의 메시지 전달과 비행기에서의 상황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범인은 이미 위에 있으니까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럼 뭐를 쫓을까? 당연히 백신이다. 이 백신을 쫓아가는 과정을 나름의 뚝심을 활용해서 이끈다. 반대로 비행기 안은 무섭다. 테러 때문에 내가 걸렸는지 알 수가 없다. 이때의 막연함을 드러내기 위해  진석의 특성 중 하나가 괄호 처리된다. 이 괄호 처리가 무엇인지 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의도된 것이며 비행기에서의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소재다. 이 외에 항체군이 있는 인물들 팔에 기포가 생기는데 이런 섬세한 부분도 영화의 초중반부를 이끄는 아주 좋은 원동력이 된다. 잘 만든 두 편의 스릴러를 보는 느낌?

     

     

     

    고래 사이에 있는 새우 

     

     

     

    사실 이것을 선회하는 압도적인 장점은 임시완 배우의 캐스팅이다. <변호인>과 <미생>에서 시작한 이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아마 이 영화가 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기했던 첫 시퀀스에서 임시완 배우의 모든 것이 전부 완벽했다. 눈빛, 말투, 목소리 톤, 발음, 대사 내용까지 초반부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훌륭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비행기에 탄 사람이 전부 죽었으면 좋겠어요" 장면에서 역시 이 인물의 광기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실 같은 영화에 나온 전도연, 이병헌, 송강호 배우가 좀 전형적인 역을 맡아서 두드러지는 것도 있다. 엄청난 차이점이 있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임시완식 사이코패스'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극을 이해하는 배우의 이해도가 빛난 지점이다. 초중반부 서스펜스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한 50%이 임시완 배우의 눈빛 연기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령 극 중에서 자기가 흑막인걸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일종의 소동이 있다. 이때 영어를 뭐라 하다가 몸싸움이 벌어진다. 분명 이 임시완 배우는 연기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짧은 2~3분짜리 유사 액션신에서도 인물의 악랄함이 벌어진다. 신기한 일이다. 좀 몇 번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인물의 성격이 드러난다니. 극을 보다 보면 이 장면이 주는 광기에 많은 분들이 감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두 영화를 붙였다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의 최종 흑막으로 충분한 연기였다. 아마 주요 시상식에서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할 수가 없는데?

     

     

     

     미술도 좋고, 음향도 좋고. 핵심 조연 임시완 배우의 연기도 좋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가장 위대한 대배우 3명이 나오는 만큼 주연진들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송강호-이병헌-전도연 세 배우는 연기 잘한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다. 또 박해준-김소진-김남길 세 배우는 든든하게 자기 몫을 해낸다. 이 세 배우가 조연으로 출연한다고 하면 뭐랄까 극이 탄탄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김소진 배우 엄청 좋은 배우인 것 같다. 어? 이 영화 잘 안될 리가 없는데? 비경쟁이지만 칸에도 초청되고. 배우들도 대단하고. 소재도 신선하고. 악당 캐릭터 설정도 정말 색다른데? 완성도도 깔끔해서 이 영화에는 결함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러닝타임의 반환점을 돌아 중후반부가 된다.

     

     

     

     

     

    너무 많은 걸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빠른 템포에 섹시한 몰입감까지 영화는 단점이 없다. 그나마 찾자면 박해준 배우 대사가 잘 안 들리고 전도연 배우 비중이 별로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굉장히 많은 양의 비판을 들어야 했던 건 후반부에 나온다. 일단 이 영화의 장르는 사회에 대한 풍자극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테러에 대응하는 재난영화,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스릴러 영화 두 축은 결국 가장 중요한 러닝타임 1시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케이. 이건 그럴 수 있다. <부산행>부터 시작해서 여러 영화에서 이런 시도를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를 위해 너무 소재가 막 소비된다. 일단 이 영화에서 외국 국가 두 나라가 등장한다. 지금 2022년이다. 이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엄청 잘 나가는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이 그 선택을 거부한다? 이거부터가 뭔가 이상하다. 이는 단지 선진국이라서만 그럴까? 그 외에 분류되는 나라들도 굳이 이걸 거부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어떤 나라는 이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를 거부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기까지 한다. 이거 이럴 필요가 없다. 뭐 나라 간의 외교 이런 것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셈이다. 그냥 이 나라 수장한테 좀 연락하고 그냥 끝난다. 단순히 주인공의 고난을 묘사하기 위해 허술하게 이야기를 짠 셈이다. 

     

     

     

    또 예고에도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영화 전반적으로 확인하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어떤 소재는 희생된다. 일단 전도연 배우가 맡은 역할 숙희는 국토부 장관이다. 숙희는 경찰인 인호와 함께 TF팀을 구성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근데 장관이라는 이름값이 있음에도 인간들이 말을 안 듣는다. 뭐 영장 없으면 말 안 듣는 게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지만 나라 여론이라는 것이 있다. 저렇게 전면에 나서는 부처 수장을 무시할 수 있는 집단과 조직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있을지 의문점이 든다. 역시 마찬가지로 극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납작하게만 극에서 사용한 셈이다.

     

     

     

    그리고 몇몇 소재는 좀 불필요하기까지 하다. 초반부에 인호와 동료 경찰이 진석이 사는 곳으로 조사를 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아이가 인호에게 "이 아저씨 영어 못해서 못 알아먹는 것 아냐?"라고 한다. 이 대사가 엔딩까지 아~무 영향도 없다. 또 첫 번째 희생자가 화장실에서 감염될 때 "이코노미 석 화장실 수준 참"이라고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역시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계급적인 코드를 섞에서 우리나라의 한 단면을 비꼰다? 근데 그게 뚝심 없이 대사 몇 줄로 소비되니까 실없는 소리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어떤 여학생들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교복 입고 나온다. 무슨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친구들끼리 여행 가는데 교복 입고 여권 써서 비행기 타고 간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등하교 시간 외에 교복을 입고 싶은 마음이 단 1도 들지 않았다. 그냥 어린 배우를 써도 될 텐데 교복을 굳이 입힐 이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재혁의 딸 수민은 여자임에도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다. 이 설정도 굳이 필요하나? 싶다. 그냥 애초에 수민이 남자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이 엇갈림을 꼭 넣어야 함'이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만약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이건 아닌데' 싶다. 단지 그 장면을 위해서 여자애가 남자 화장실에 몰래 가는 꼴이 좋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상기한 이런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큰 단점이 있다. 

     

     

     

    좀 아니라고 생각했어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단점이 되는 지점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겪었던 몇몇 사건들이 생각난다. 처음에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진일보했나?'라고 묻는 게 아닐까 싶었다. 또 전염병이 사람들을 떠다니면서 병세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묘사도 뭐 갈라 치기를 소재로 삼고 싶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은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들을 전부 뒤집는다. 이야기의 맥락상으로서 아예 불필요하면서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구체적으로 인물들은 후반부에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이 영화의 초반부와 부분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극 내내 암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100여 명의 승객이 모두 동의한다(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냥 단지 엔딩부에 힘을 주려고 그 많은 인과관계와 핍진성, 개연성을 전부 깔아뭉개버렸다. 그리고 아름답지도 않은 그 광경을 바람직한 덕목으로까지 연출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에 힘입어 작위적인 신파극도 있어 이 선택이 감동적이라는 메시지까지 영화에 내포했다. 난 이 감동적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연출이 굉장히 폭력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가 어느 땐데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선택지를 고를까? 그리고 그게 이뤄진다 한들 어느 철학자가 그걸 정의롭다고 말할까? 각본가의 마음에는 이 선택이 자유로운 것이 되는 걸까? 다수만큼이나 소수가 중요해졌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이 개인 소셜 미디어로서 탁월하게 기능하는 시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제시된 것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굉장히 안타깝고 아쉬우며 두렵기까지 하다. 내가 앉은자리 옆자리에선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 할 말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2022년이다. 물론 다수 중요하다. 그게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지점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혹평이 사실 납득이 간다. 이 혹평이 한국영화가 성장하는 지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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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영화에 대한 '비상선언'
  • * <비상선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비상선언 (2022)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장르: 재난, 스릴러, 드라마

     

    상영시간: 140분

     

    개봉일: 2022.08.03

     

     

     

    전대미문의 항공 테러 사건, 상공에서의 처절한 생존기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는 비행기. 모든 승객들이 한껏 들뜬 채 비행기에 오른 가운데 공항에서부터 꺼림칙한 행색을 보였던 ‘진석(임시완)’도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는 하루 전날 인터넷에 비행기 테러를 예고했던 인물로 천식 예방 도구에 바이러스를 가져와 여객기 안 화장실에 살포한다.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간 남성 승객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대량 출혈을 일으킨 뒤 사망하고, ‘재혁(이병헌)’에 의해 범인임이 밝혀진 ‘진석’은 승객들과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비행기 전체에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항공기 테러 소식을 접한 강력계 형사 ‘인호(송강호)’는 테러범 ‘진석’의 행적을 좇고, 국토부장관 ‘숙희(전도연)’는 무사 착륙을 위해 대책 회의를 소집한다. 수포와 발열을 동반한 감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고, 사망자의 숫자가 늘자 승객들은 패닉에 빠진다. 바이러스에 모두가 잡아 먹히기 전 무사히 착륙해야 한다는 목표와 함께 모두의 처절한 생존기가 펼쳐진다.

     

     

     

     

     

    긴장과 몰입으로 채운 전반부, 그리고 임시완

     

    국내 최초의 항공 재난 액션 영화 <비상선언>은 항공 테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과정이 담긴 전반부, 그리고 생존과 착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후반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두 파트는 단순히 내용상의 측면에서 나뉘는 것만이 아니라 관객의 평가를 극명히 갈리게 할 정도로 다른 방향성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재난 상황이 불어 닥치기 이전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초반부의 흡입력은 굉장하다. 점층적으로 떡밥을 던지며 테러범이 누구일지 의심하게 만드는 기존의 문법을 비틀고 처음부터 ‘진석(임시완)’이 항공 테러를 저지를 것을 암시하며 관객의 시선을 오로지 테러범에게 집중시킨다. 다른 영화 같았으면 한 시간 정도는 질질 끌었을 이야기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전개하기 때문에 중반부까지의 속도감 있는 전개는 테러 상황의 스릴을 배가시키고, 혼돈에 빠진 승객들의 공포심에 관객이 제대로 이입하게 만든다. 극 초반을 거의 홀로 이끈다고 봐도 무방한 ‘임시완’의 소름끼치는 연기력은 함께 출연한 대선배들의 위엄을 압도하는 수준이며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까지 묘사해 낼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최악의 빌런을 연기했다. 초반부의 호흡을 후반부까지 이끌어갔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가 혹평 일색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엔 클리셰, 혹은 그보다 더한

     

    <비상선언>은 부기장 ‘현수(김남길)’가 미국에서 회항을 하게 되는 중후반부터 한국 영화의 과거로 회귀하는 패착을 저지른다. 종전까지 보여주었던 긴장감과 훌륭한 완급조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두통을 부르는 신파와 억지스러운 전개 때문에 마치 전반부와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을 정도로 분위기가 뒤바뀐다. 테러 상황이 펼쳐지기 전까지는 신선한 연출과 핸드헬드 기법을 통한 스펙터클한 액션 묘사로 충분한 재미를 선사했지만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한국 재난 액션 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계승한 후반부는 결국 조악한 결말로 이어진다. 테러범이 초반부에 큰 임팩트를 남기고 일찍 퇴장해버린 바람에 기내에서 더 강렬한 시퀀스를 만들어 내기 버거워진 영화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극적인 상황과 감정적인 캐릭터들의 행동을 적극 활용한다. 반전이랍시고 항공기의 착륙이 세 번씩이나 거부당하는 전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억지스러운 상황들을 동반했고, 바이러스 백신을 증명하고자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호(송강호)’의 행동은 감동보다 경악에 가까웠다. 별다른 서사도 없었던 승객들의 영상 통화를 연달아 보여준 결말부는 극에 달한 신파로 관객을 힘들게 할 정도다.

     

     

     

     

     

     

     

    위험할 정도로 심취된 메시지 전파

     

    생존자와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슬픔, 목숨을 건 상황에서의 이타심과 이기심의 대립,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구원자의 존재는 뻔한 장치일 지라도 웬만한 재난 영화에서는 꼭 등장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하고 감상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한재림’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념 설파에 심취한 듯 ‘대’를 향한 ‘소’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위험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후반 30분을 할애한다. 항공기가 한국에 착륙하기 직전, 국민들은 감염병 확산 위험을 이유로 착륙 반대 시위를 벌인다. 이는 우리가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몸소 체험한 감정이기도 하고, 생존권을 둔 치열한 찬반양론은 현실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고증이 잘 된 장면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혐오로 물든 사회를 소수의 완전한 희생으로 해결하려는 듯한 감독의 생각은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시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감독은 극중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지 말자는 결정을 ‘재혁(이병헌)’의 딸, 즉 약자인 아이의 입을 통해 말한다. 과연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병을 퍼뜨리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했다고 볼 수 있을까. 초등학생인 재혁의 딸은 아직 주체성이 뚜렷하지 않고, 이미 아토피 피부염으로 인해 반 친구들에게 혐오의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는 아이다. 이번에는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에게 혐오와 질타를 받고 있으니 그로 인한 압박감과 불안으로 인해 원치 않음에도 ‘희생’이라는 선택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감동은 커녕 불쾌감만 유발했고 휴머니즘을 이런 식으로 포장하는 감독의 태도에 순간 상영관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이 영화가 메시지를 전하는데 심취했다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하와이행 비행기에 굳이 보호자 없이 여행을 떠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태운 것은 노골적으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연상시키며 한국 항공기의 착륙을 막고 대형 테러의 피해자들을 격추시키려는 국가로 일본을 정한 것 또한 의도가 다분한 설정이다.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코로나 팬데믹’ 등 2000년대에 우리가 겪어온 모든 비극부터 현재의 국제 정세까지 흥행의 소재가 될 법한 것들을 모두 끌어왔고, 관객 계몽이라는 목적에 더 충실해 버리자 결국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다.

     

     

     

     

     

    제기능 못한 "비상선언"

     

    영화 초입에 ‘비상선언’의 정의를 스크립트로 띄우며 해당 용어가 극중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는 암시를 한다. 하지만 정작 극중 등장하는 부기장의 ‘비상선언’은 시스템으로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오로지 우연 혹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문제들이 해결되고, 이러한 흐름은 결말까지 이어진다. 결국 ‘비상선언’은 중반부터 경로를 완전히 이탈해 버린 작품 자체에 대한 ‘비상선언’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외계+인>에 이어 또 한 번 한국 텐트폴 영화에 큰 실망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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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욱한 안갯속을 부유하는 눅진한 에로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구소산 정상에서 추락한 남성의 사망 사건을 담당한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탕웨이)'를 만난 후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중국인이라서 말이 서툴기는 하나,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고 말하는 등  서래가 남편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단순한 유가족이 아닌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서래. 그러나 해준은 사건 당일 서래의 알리바이를 파악하고, 잠복수사를 통해 그녀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그녀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잠정적으로 판단한 후 그녀에게 더욱 빠져든다. 반면에 해준의 관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서래는 그를 이용하는지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인지 좀처럼 속을 알려 주지 않는다. 이렇게 진심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두 남녀의 관계는 조금씩 불이 붙는다. 서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보통 직선적이고 직설적이라는 인상을 남기곤 했다. 그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인 복수심은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복수가 주제가 아니어도 다르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장편 작품인 <아가씨>는 그녀들의 사랑을 가슴에 날아와 꽂히듯 강렬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선사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다르다. '헤어질 결심'이란 제목만 봐도 그렇다. 제목만 놓고 보면 도통 헤어지겠다는 것이지, 헤어진 것인지, 헤어지는 중인 전지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할 수 없다. 영화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녹색인지 파란색인지 알 수 없는 드레스만큼이나, 바다에 핸드폰을 던지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진만큼이나, 영화는 눅진하고 갑갑한 안갯속을 헤매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의 불륜 멜로는 해준과 서래 사이의 에로스를 맞춰나가는 묘미로 가득하다.

                                                                                

     

    <헤어질 결심>은 모호하다. 영화의 장르와 구조부터 그렇다. 얼핏 보기에는 스릴러 혹은 범죄 영화이나, 정작 서래의 신분이 유가족이 아닌 용의자로 바뀌는 순간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진한 멜로로 급변한다.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누아르 영화와 진한 멜로드라마 사이에서 줄을 타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실제로 해준과 서래의 대화는 취조이면서 동시에 소개팅처럼도 보인다. 서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해 정보를 알려주고, 서로에게 한 발짝씩 더 나아간다. 

     

    서래를 감시하는 해준의 시선도 그렇다. 그는 그녀가 남편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그녀를 감시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지켜보는 것은 범죄 용의점이 아니다. 그는 그녀가 슬퍼하거나 밥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걱정하고, 홀로 드라마를 보다가 잠드는 상황을 동정하며, 그녀가 간병인으로서 할머니를 극진히 간병하는 모습에 빠져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관음적인 시선이고, 또 한편으로는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겨누는 듯 보이기도 한다. 서래 역시 범죄 용의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해준을 보면서 그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마음을 연다. 취조실에서 고급 초밥을 함께 나눠먹는 둘의 모습에서는 형사와 용의자 간의 관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의 다른 장치들도 둘의 관계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는다. 언어를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중국인인 서래는 기본적인 한국어만 구사하기에 일상어가 아닌 '유일한'과 같은 어휘는 '단일한'이라고 말하며, '붕괴'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되지 않는 단어로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늘 중국어로 말하고, 그들은 진정으로 소통이 필요할 때 스마트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성 화자인 서래의 말이 번역기를 거치면 부자연스러운 남성의 목소리로 변환되듯, 그들의 소통도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취조실 안에서 카메라는 그들을 서로 다른 공간에 가둔다.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라 해도 꼭 한 명을 창문에 반사시키거나 모니터 안의 모습으로 등장시키면서 둘 사이의 연속성을 깬다. 이러한 어긋남은 서래가 범죄 혐의를 벗기 위해 해준을 이용하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지, 또 후자라면 그들의 사랑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두고 의심을 거듭하게 만든다. 

     

    이러한 모호함은 1막 이후 2막에서도 유지된다. 녹색과 파란색을 오가는 서래의 드레스와 도시를 감싼 안개는 여전히 사랑하는지, 이별한 건지, 단념한 건지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도 분위기를 고조한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라는 가사는 상대방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또 막상 벗어나자니 그렇게 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안개에 빗대고 있다. 덕분에 안개가 자욱한 도시에서 펼쳐지는 형사와 용의자이자 동시에 남자와 여자인 둘의 눅진한 이야기는 좀처럼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결심>이 멜로드라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헷갈리게 만들면서도 박찬욱 감독다운 방식으로 관객을 그들의 눅진한 멜로 속에 초대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 중심에는 에로스가 있다. 사실 폭력성 외에 박찬욱 감독을 대표하는 특징이라면 전작인 <아가씨>에서 보듯이 섹슈얼리티를 꼽을 수 있을 텐데, <헤어질 결심>에서는 성애적 요소가 명시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상하게도 야하게 보이는 대목들은 적잖이 있다. 서래의 DNA를 채취하는 장면부터 그녀가 양치하고 흡연하고 손에 붙 밴드를 입으로 부는 장면들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계속해서 서래의 입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면 입과 관련된 성은 성애의 첫 단계(구강기)를 의미한다. 이를 고려하면 해준과 서래가 에로스적 관계로 얽혀 들어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에로스적 욕동은 다른 방식으로도 표출된다. 해준과 서래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서로에게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모습에서도 입은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서래의 집을 감시하는 해준은 그녀가 좀처럼 밥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매 저녁을 아이스크림으로 대신하는 그녀를 걱정하는 해준. 이에 그는 취조실에서 비싼 초밥을 사주고, 중국식 볶음밥을 요리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한다. 한편 해준은 잠이 안 와서 잠복근무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서래를 감시할 때 그는 승용차 안에 누워 있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잠을 잔다. 또 관계가 진전되어가면서 서래는 해준의 수면을 도와주며, 해준이 잠들 때까지 자신과 호흡을 일치시키면서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이때 영화는 아이스크림과 초밥을 먹는 서래의 입, 그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두 사람의 입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러한 두 사람의 에로스적 관계는 왜 이들이 제각기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에로스적 욕동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적 질서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할 수 있고, 개개인도 에로스를 탐닉하면 본인이 문명과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면에서 에로스적 욕동은 인간에게 내재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인 타나토스(죽음)적 욕동과 쌍을 이루기도 한다. 해준은 서래가 남편 사체 사진을 보겠다고 말할 때 동질감을 품고, 그래서 그녀에 대한 수사는 유리하게 진행된다. 이는 죽은 자(남편)의 시선으로 망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질 이를 응시하는 카메라 시점이 독특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해준과 서래의 사랑이 그들을 의무로 규정된 사회적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창구이자, 동시에 깊어질수록 그들을 파괴하는 부메랑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해준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와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던 중 서래를 떠올린다. 애정 없는 관계에 갇혀 있는 자신을 구해낼 방법을 찾는 데 성공한다. 또 그녀의 도움을 받아 오랜 기간 추적하던 범인을 잡는 데 성공하면서 경찰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데도 성공한다. 한편 서래에게도 해준과의 사랑이 진전되는 것은 자신의 이니셜을 그녀에게 새겨놓을 정도로 소유욕이 강했던 남편과의 강압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그들의 욕구는 커질수록 그들에게 또 다른 압력을 강한다. 프시케를 곤경에 빠뜨리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화살에 찔려버린 에로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 서래를 사랑한 해준은 경찰로서 하면 안 될 실수를 범하고, 성실한 경찰인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범죄자인 그녀의 죄를 밝히면 안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래도 마찬가지다. 해준이 자신을 포기하려 하자 오히려 더 사랑에 빠져버린 그녀는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그를 쫓을 정도로, 경찰인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그에게 빠져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헤어질 결심>은 내용이나 연출적 특징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영화이고, 그래서 여운이 짙은 작품이기도 하다. 서래의 범죄는 용서받지 못하며, 범죄와 얽힌 에로스적 관계는 해준과 서래 모두를 마지막까지 위협해 온다. 그러자 그들은 자의와 타의가 혼재된 채로 불륜이라는 범주 안에 머무르기를 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며, 결국 이는 강렬한 신파로 향한다. 많은 사랑 이야기가 그렇듯이 사랑의 타이밍은 언제나 엇갈리기 마련이고, 상대를 소유하려 하기보다는 놓아줄 때 진정으로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신을 떠났고 이제 내가 당신을 사랑하려 하니 당신이 나를 떠나네”라는 대사에 온전히 담겨 있다. 

     

    심지어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뻔하지만 식상하지 않다. 1부와 2부, 산과 바다로 나뉘는 영화의 구성 덕분이다. 영화는 두 개로 쪼개져서 해준의 서래에 대한 사랑과 서래의 해준에 대한 사랑을 각기 맛보게 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사랑의 엇갈림마저도 하나의 영화적 장치로 활용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앞부분에서는 서래의 살인사건을 미결로 놔두어야 하는 해준의 사랑을,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살인 사건을 미결로 만들어야 하는 서래의 사랑을 풀어낸다. 두 개의 미결 사건은 하나의 영화가 되어 그들의 관계를, 엇갈리고 빗나간 사랑까지도 서사적 완결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대조적인 장소나 소재는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구소산 정상에서는 남편을 떠밀어 살해하지만 호미산에서는 해준을 뒤에서 안아주는 서래. 서래가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는 증거를 담은 핸드폰을 건네는 해준과 그 핸드폰 대신 본인을 바다에 던져 증거를 인멸하는 서래. 그래서 <헤어질 결심>의 신파는 오히려 매력적이다.

     

     

    단지 138분이라는 적지 않은 러닝타임에서 기인한 느슨함이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영화는 1막과 2막으로 나누어지는데, 사실 분기점에서 영화는 이미 절정에 다다르는 듯 느껴진다. 자신의 본심과 진실을 깨달은 해준이 '사랑한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 어떤 말보다 격렬한 사랑 고백을 한 순간 영화는 거의 끝에 도달한 듯 보인다. 1막에 꽤나 긴 분량이 주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그 결과 산을 테마로 한 1막이 끝나고 바다를 테마로 하는 2막이 다시 시작될 때, 후일담처럼 느껴지는 2막에서 이야기가 다시 한번 절정에 이르기 전까지 영화의 템포는 다소 느슨해지는 인상이 남는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이 밝힌 대로, 그리고 전작인 <아가씨>처럼 1막을 '산', 2막을 '바다'라고 자막으로 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다만 영화 자체가 안개에 싸인 듯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짜인 모호한 멜로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아쉬움조차도 <헤어질 결심>의 질감과 감정선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듯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내로남불이라는 명제에 담긴 감정을 완벽에 가깝게 영화적으로 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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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의 상실을 위하여
  •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로스트 도터>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모성'에 대한 착각

     

    '모성 신화'의 역사는 유구하다. 인간이 언어를 구사한 이래, 우리는 끊임없이 '어머니'라는 존재를 아가페적 사랑의 원천으로 숭배해 왔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그를 귀애해 마지 않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도록 칭송 받아온 바 있다. '어머니'는 현명하고 자애로우며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불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자식만을 평생토록 바라보며 자신의 꿈마저 저버리는 자기 희생적인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숱하게 남아있는 이러한 '모성 신화'에 대한 숭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릿적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성애'는 타고난 것이므로 아이를 낳기만 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터득될 것이라고.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세상의 어느 동물인들 없으랴마는, 인간들이 오래도록 쌓아온 '모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뭍 주장들과는 상반되게도, 다분히 개인의 본능과 욕망을 인위적인 방식으로 억압하고 제약함으로써 '만들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 사회의 '어머니'들은 단순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만인의 인정을 받는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올리비아 콜먼 주연의 <로스트 도터>는 이러한 모성 신화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2. '엄마'라는 이름의 족쇄


     

    레다는 일견 성공한 중년 여성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이탈리아어문학 교수로 일하고, 홀로 며칠씩 해변이 딸린 리조트에 휴가를 올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의 소유자다.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는 품위있고 고상하다. 휴가를 와서까지 하루종일 육아에 시달리는 '니나'가 더 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그를 부러워하며 '당신 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적하게 책이나 읽으며 휴가를 즐기는 레다와는 달리,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은 '니나'는 한시도 쉴 틈이 없다. 그의 귀여운 딸이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기 때문이다.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은 저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바쁘고, 육아는 언제나 그의 몫이 되고 만다. 딸아이는 집착적으로 니나에게 매달린다. 마치 그가 제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제 인형에 제 엄마를 투영하고, 엄마와 꼭 같은 자리에 타투를 그리고 그를 성심껏 돌보는 딸아이의 모습은 가히 광적인 수준이다.

     

    젊은 엄마는 눈에 띄게 지쳐 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이, 레다의 눈에 들어온다. 보지 않으면 그만일텐데, 아이의 높은 웃음 소리, 혹은 울음 소리가 자꾸만 귀에 스미고, 피로한 니나의 낯이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다.

     

    그것은, 서로 너무나 다를 것만 같던 두 사람이 실상은 같은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레다는 니나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엄마'가 아니다.

    그는 여느 엄마들처럼 딸들을 사랑했으나 그 처참한 육아의 현장을 숭고하게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보채고 울고 떼를 썼다. 유일한 공동 양육자인 남편은 스스로의 커리어를 빌미로 모든 육아를 그에게 떠안겼다. 그 또한 꿈과 욕망이 있지만 그의 가정은 그것을 충족시키기는 커녕 도리어 박탈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이의 울음 소리는 사이렌처럼 귓가에 울렸다. 제 엄마와 다르게 일과 육아, 모두를 해내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폭발했다.

     

    '이상적인 어머니'의 틀을 벗어나 일탈을 감행한 것이다. 레다는 부도덕해졌다. 육아로 인해 채 완전해지지 못했던 논문은 저명한 학자와의 하룻밤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잠시나마 육아의 현장 밖에서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펼친다. 그것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엄마'가 아닌 '사람'인 레다는 훨씬 생기 있고 사람다웠다. 그러나 그 부정한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날, 레다는 비로소 깨닫는다. 이 집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한, 자신은 그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또 떠나면 아이들은 네 어머니에게 맡길 거야.


    레다의 남편은 말했다.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편은 처음부터 그의 '공동' 양육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육아는 두 사람 모두에게 끔찍했을테지만, 남편은 그것을 또다른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고자 했다. 마치 본래 제 일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그래서 레다는 딸들을 떠났다. 무책임해졌다. 그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을 떠나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 ...라는 이야기였다면 무정할지언정 레다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레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애들이 보고 싶었던 그는 끝내 몇 년만의 일탈 끝에 그들의 품으로 돌아갔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끝내 육아에서 해방되지 못했고 젊은날 저를 괴롭히던 육아의 단면들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토록 그를 괴롭힌다. 그렇다, 마치 채 떼어내지지 않는 혹이나 종양처럼 말이다.

     

    이런 레다가 '엄마'라는 비슷한 처지의 니나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레다에게 '니나'는 자신의 과거의 단편과도 같다. 

     

     

     

     

    3. '엄마'를 훔치다

     

    두 사람은 '니나'의 딸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가까워진다. '니나'는 딸을 찾아준 '여유로운 중년 부인'인 레다를 기꺼워하고, '실은, 엄마로 산다는 게 너무나도 지치고 괴롭'노라고, 차마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런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제 눈 앞의 상대가 바로 그를 이번 휴가 내내 괴롭게 한 사건의 원흉이라는 점이리라. 니나의 딸은 아끼던 애착 인형을 잃어버려 몇 날 며칠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그 인형을 훔쳐간 이가 바로 '레다'였던 까닭이다.

     

     

     

     

     


     

     

     

    부족할 것 없는 레다가 왜 하필 아이의 인형을 훔쳤을까? 그것은 이 영화에서 '인형'은 '엄마'를 투영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레다도 딸인 '비앙카'가 어릴 적에 제가 소중히 여기던 인형을 선물한 바가 있었다. 그는 제 딸에게 말했다. '자, 내 소중한 인형이야. 이게 이제부터 네 엄마라고 생각해.'라고. 소중하게 돌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몇 시간 후 인형의 꼴은 처참했다. 온 몸에 낙서가 그려져 있고 만신창이가 된 인형의 모습은 시종 아이에게 시달려 망가져 가는 레다 본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니나의 인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니나의 딸 역시 인형에게서 제 엄마인 니나를 본다. 아이는 한시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듯 엄마를 비춰보는 인형 역시 제 품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를 귀애하듯 인형을 귀애한다. 인형은 망가져 간다. 레다의 인형이 그러했듯이.

     

    레다가 인형을 훔친 것은 어쩌면 이러한 까닭에서인지도 모른다.

    레다는 아이에게서 '엄마'를 빼앗고, 빗질하고, 옷을 갈아 입히고, 뱃속 깊숙이 채워진 구정물과 벌레 따위를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아주 소중하게 찬장에 넣어두고 그것을 보살핀다. 그러나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는 불안해진다. 아이는 끊임없이 '엄마'를 찾아 헤메고, '엄마'는 다른 무엇(예컨대 다른 인형)으로도 대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형은 본래 제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레다가 결국은 제 딸아이에게로 돌아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그럼에도 엄마이기 때문에. 그 견고한 '어머니'라는 이름의 족쇄를 그럼에도 차마 끊어내지 못했으므로.

     

    니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많은 면모는 레다의 과거와 무척 닮아 있다. 레다가 제 딸인 비앙카들에게 결국 돌아갔던 것처럼 그 역시 그 지긋지긋한 독박 육아의 세계를 차마 박차고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부정을 저지를지라도, 부도덕을 감내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그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 '엄마'가 되거나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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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동안 이 영화를 떠올리느라 리뷰를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도 엄마의 딸이었고 나도 '비앙카'로서 엄마를 내 세계의 전부로 여기며 내 엄마가 '엄마답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엄마가 내 엄마이기 때문에 내 갖은 투정과 슬픔을 당연히 감당해야하노라고,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소위 '잘못된 훈육'을 했던 일을 곱씹으며 '엄마는 그래선 안 됐어'라며 당신을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배은망덕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변명하자면, 그것이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고 세뇌시킨 모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성인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던지라 때때로 내게 성을 내기도 하고, 실수를 하거나 슬퍼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그래도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레다'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자꾸만 엄마를 떠올리게 된 것은 나의 엄마 역시 '모성 신화'의 피해자면서 '엄마'로 살아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로스트 도터>에 대한 분석 및 감상이자 '엄마'의 딸로서 쓰는 일종의 반성이기도 하며, 이 지독한 모성 신화의 세계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우리는 엄마에 대한 색안경을 좀 벗을 필요가 있다. 엄마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인데 우리는 오래도록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곤 한다.

     

    나는 이제 엄마를 그만 애틋해 하고 싶다. 이 세상의 엄마들이 스트레스, 경력 단절 따위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엄마이기 이전에 개인으로서의 욕망과 야망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가부장 문화와 '모성 신화'가 실재하는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서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고, 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엄마를 꿈꿔 본다. 어제의 엄마보다는 오늘의 엄마가 더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엄마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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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만난 두 토르, 로맨스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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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에 한 번은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그것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과 이별의 순간을 맞은 이후에 그것으로 인한 공허함이 마음을 채운다. 그 공허함은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게 만든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또 할 일을 해나가지만 과거와 같이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지난한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정리된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그건 마음의 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완벽한 짝이라고 믿었던 사랑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본 후에나 가능하다.

     

    이별은 마음속엔 늘 채워지지 않았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토르> 시리즈에서 연인 관계였던 토르(크리스 햄스워스)와 제인(나탈리 포트만)은 서로 잘 맞는 커플이었다. 하지만 토르는 인간을 뛰어넘는 신적인 존재였고 제인은 조금 똑똑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둘은 어느 시점 이후 관계를 정리한다. 하지만 이별 후 이들은 과거의 상대방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토르는 세상의 반이 죽어나가는 극한의 경험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자신을 가두었고, 제인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다. 토르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제인은 자신에게 슈퍼히어로 같은 극한의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함을 잃었다.  

     

    토르와 제인의 재회를 보여주는 네 번째 단독 영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토르와 제인이 다시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마블의 1세대 히어로인 토르는 이번 영화가 네 번째 시리즈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과는 다르게 가장 많은 단독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1편과 2편에 등장했던 제인 캐릭터를 3편에는 등장시키지 않았다가 이번 4편에는 다시 등장시키게 되는데, 그래서 이번 영화에는 로맨스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다시 포함되었다. 3편이 유머와 경쾌함을 극대화시켰던 영화라면, 이번 4편은 유머와 경쾌함은 조금 톤을 낮추고 로맨스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영화 속 다시 등장하는 제인은 암 말기로 건강을 잃은 상태다. 반면 토르는 여전히 심리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자신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확신을 하지 못해 명상을 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도우면서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시기에 제인은 지구에 있는 아스가르드 마을에 있는 망치 묠니르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 그 묠니르를 얻게 된다. 적어도 묠니르를 들고 영웅으로 활동할 때는 그에게 아픈 모습은 없다. 활기차고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망치를 놓는 순간 다시 말기 암 환자의 핏기 없는 모습이 나온다.

     

    제인과 토르가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영화의 빌런인 고르(크리스찬 베일)가 하려는 일 때문이다. 누군가와 거래하여 온 세상의 신을 죽이고 다니는 빌런 고르는 자신의 딸이 죽은 이후 신들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 캐릭터다. 이 영화에서 그가 신들을 죽이는 목적은 결국 우주의 절대적 존재인 이터널과 소통하여 죽은 딸을 다시 살리는 것이다. 그의 목적에 따른 행동은 토르를 지구로 불러들이고 과거 연인이었던 제인과 다시 만나게 만든다. 그리고는 이들이 다시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기능적으로만 활용되는 빌런 고르

     

     

    영화는 빌런 고르가 가지게 되는 분노에 대해 이해시키려 하고 그가 신들을 죽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긴장을 만들어가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가 죽이려는 신들의 모두가 타락한 것은 아닐 것이고 그 방법 자체도 너무나 폭력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가 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납치하여 토르를 협박하는 장면은 딸을 잃은 아빠가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고르가 왜 빌런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의 사연을 먼저 보여주고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가진 설득력은 영화의 말미 아이들을 납치하고 협박하면서 없어져버린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빌런 고르는 단지 제인과 토르를 만나게 하는 기능적인 역할로 보인다. 마블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전체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봐도 고르의 역할은 매우 한정적으로만 소비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렇게 빌런을 소비하면서 영화는 마이티 토르가 된 제인과 토르가 만나면서 벌이는 로맨스에 좀 더 집중한다. 전작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보여줬던 재치와 유머들이 여전히 이번 영화에도 포함되어 있다. 토르의 우스꽝스러운 말투와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행동은 제인과의 재회 순간에 활용되며 독특한 웃음을 선사한다. 또한 두 토르가 같이 전투를 벌이면서 서로 도와주는 장면은 꽤 완벽해 보인다.

     

    그렇게 힘을 얻어 마이티 토르가 된 제인과 토르는 비슷한 힘을 가졌고, 서로 만나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다. 결국 이 영화에서 이들이 다시 만나 서로가 겪은 혼란과 정신적인 성장을 서로 확인하고 진정한 사랑을 발견해 낸다. 과거 <토르> 1편과 2편에서의 제인은 상황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토르에 의지해야 했지만 이번에 다시 등장한 제인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 자신이 결정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토르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좀 더 주도적인 캐릭터로 거듭나게 된다.

     

    유머는 줄이고 로맨스는 늘리고

     

    사실 토르라는 캐릭터는 초기 마블 세계관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영웅은 아니었다. 케네스 브레너 감독이 연출했던 <토르 천둥의 신>은 너무 어둡고 심각한 스타일의 영화였고, 마블 특유의 경쾌한 느낌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는 영화였다. 알랜 테일러 감독으로 연출자를 변경하고 완성한 <토르 다크 월드>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는 너무 심각하고 어두웠다. 영화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다. 마블은 다시 감독을 타이카 와이티티로 바꾸고 <토르 라그나로크>를 내놓는다. 과거 토르 시리즈와 다르게 유머와 경쾌한 음악이 들어간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로 성공적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는 3편의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다시 연출을 맡았다. 유머와 경쾌한 음악이 포함되어 있지만 전편에 비해서는 조금 강도를 낮췄고 로맨스를 추가시키면서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시도가 그렇게 성공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머와 로맨스가 균형 있게 들어가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애매한 느낌이 든다. 빌런 고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도 적절하게 살아나지 않는데 긴장감이 올라갈 때마다 유머나 로맨스 장면이 이어지면서 그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결국 일생에 한 번은 만나는 완벽한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토르와 제인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재회와 러브스토리가 영화의 마지막 전투까지 이어진다. 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확인한 이후 보여주는 각자의 모습은 심리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토르의 성장과 치유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전반적으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마블 영화지만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분위기다. 토르가 던지는 유머와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조금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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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친 거 아냐? 제주의 여름은 덥다 못해 뜨겁다. 7월 10일, 날씨가 드디어 정신을 놓아버렸다. 바람이 잘 드는 옷을 입었는데 거의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원래 여름에 취약한 나.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더위에 금세 어디론가 도망쳐야 할 것 같다. 사실 집에서 책을 읽다 왔다. 선풍기 달달달 하는 소리에, 시원한 제로콜라까지 내 방이 역시 최고다. 그런데 사실 내 방에서만 인생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난 우리 엄마 아빠에게 효도하고 싶은 사람이고 소처럼 일해서 굉장히 잘 되고 싶은 사람이다. 당연히 나라는 사람에게 1인분의 숙제가 주어진다. 일 하는 것도 짜증나 머지않는데 날씨는 미친 듯이 더우니 그냥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그래서 그런지 극장에 가는 것이 영화 외적인 것에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빵빵한 에어컨에 공포영화던 뭐던 시각적 쾌감이 있는 영화를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날 것 같다. 근데 또 사계절 보편적으로 통하는 영화들도 있다. 작년 7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가 개봉했다. 극장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이런 영화 보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무더운 여름은 액션 영화가 최고다. 그리고 그 액션 영화 중 인기가 많은 건 역시 마블이다. 나는 역시나 덕후인지라 마블의 신작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딱 두 달을 기다려 신작이 나왔다. 타노스와의 일전을 끝낸 토르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과 빌런이 찾아왔다. 아스가르드로 바이킹을 타고 날아가 보자!

     

     

     

     

     

     

    감탄고토

     

     

     

    보기만 해도 뜨거운 사막. 한 남자는 딸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 뭔가 아파 보이는 남자와 딸.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 계속되는 배고픔에 힘겨워하는 부녀. 기댈 곳을 찾고 있는 것 같다. 털썩. 딸이 쓰러졌다. 딸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는 말과 함께 남자의 품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슬퍼하며 딸을 묻은 남자. 남자에게 한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하니 도착한 곳은 숲이었다. 숲의 개울가에 얼굴을 씻고 짚이는 과일을 먹는 남자. 남자가 도착한 곳에는 그가 섬긴 신 라푸가 있었다.

     

     

     

    남자는 라푸가 고난을 겪은 자신을 위해 잔치를 연 줄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라푸가 이 잔치의 목적은 신을 죽일 수 있는 ‘네크로 소드’의 보유자를 처치하고 난 다음 스스로를 자축하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충격받은 남자. 라푸의 마지막 신자라고 믿었던 남자는 차가운 말을 듣는다. 라푸는 말했다. “너에게 보상이란 없다. 마지막 신자에게 영원한 보상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라며 남자를 조롱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답. “네가 아니어도 나를 따르는 신자들은 많아!” 분노하는 남자. 화를 내는 남자의 목을 조르는 라푸. 그때, 어디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크로 소드는 남자에게 이 신을 죽이고 이터니티의 제단으로 가라며 남자의 용기를 북돋는다. 네크로 소드를 잡고 라푸를 사살한 남자. 네크로 소드의 계시를 들은 남자는 그렇게 신 하나, 둘 씩 사살해 이터너티에 도착해 딸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신 도살자 고르는 그렇게 탄생했다. 온갖 종류의 신을 죽이고 다니는 고르를 토르와 제인 포스터, 발키리가 힘을 합쳐 제지하려는 내용이 본작의 줄거리다.

     

     

     

    그냥 적당히 재미있음

     

     

     

    내가 기억하기엔 이 영화 마블의 페이즈 4에서 기대작 축에 속했다. 새로운 히어로들의 등장 <이터널스>와 <샹치 : 텐 링즈의 전설>과는 달리 어벤저스의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토르의 영화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이는 특별한 게스트가 있을 예정이었던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과는 궤가 달랐다.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오리지널 토르의 이야기를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봉 전주부터 시사회 평이 심상치 않더니 적지 않게 우려를 표하는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극장에 <탑건 : 메버릭>이 날개 달린 듯 입소문을 타고 있어서 이 영화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던 감이 있다. 솔직히 나도 별로 기대를 안 하고 갔다. 마블의 최근 타율이 지지부진하다는 세간의 평가 때문은 아니다. 좀 얄미웠다. '이럴 거면 <헤어질 결심> 상영관 좀 늘려주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런 나와 많은 분들의 우려가 통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냥 무난했다.

     

     

     

    이 둘은 존재감부터가 달라

     

     

     

    일단 이 영화에 있어 가장 먼저 호평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나탈리 포트만과 크리스찬 베일이다. 일단 '마이티 토르'로 컴백한 나탈리 포트만은 사실상 극을 이끌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마이티 토르 캐릭터는 물리학자지만 신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물리학자'와 '신과 사랑에 빠짐'은 사실 살짝 모순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이 신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뭐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나 자연스럽게 통하는 일이지 우리 일상 속에선 아무래도 앞 뒤가 안 맞는 일이다. 이 할리우드의 위대한 배우는 이 두 가지 지점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극을 이끈다.

     

     

     

    일단 인간 제인 포스터의 측면이다. 제인 포스터는 물리학자다. <토르 : 다크 월드>에서 결별하고 난 후 나름의 성과를 내며 성장한 제인 포스터. 제인 포스터는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토르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거리감과 그 시간 동안 얻었던 명과 실을 묘사해야 한다. 이게 영화를 이끄는 주요 원동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감정의 밀도가 떨어지면 안 된다. 긴 시간 동안 참아왔던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 토르와의 사랑이야기 둘 다 멜로 베테랑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스킬이 잘 나타났다. 극 중에서 토르와 제인의 연애사가 주마등처럼 샤삭 스쳐가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 솔직히 두 배우의 내공 차이가 너무 대놓고 드러났다. 나탈리 포트만이 웃는 신은 정말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 웃는 것 같은 느낌이라 마블 영화들이 아닌 다른 멜로를 보는 듯한 이질감이 확 느껴진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감정연기의 명확함을 보여주는 베테랑의 품격이었다. 

     

     

     

    또 제인 포스터는 마이티 토르이기도 하다. 슈퍼 히어로서의 사려 깊음이나 액션 연기도 동시에 보여줘야 했다. 이것 역시 굉장히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일단 슈퍼 히어로서의 내면 연기는 나탈리 포트만이 잘하는 감정연기를 바탕으로 적절하게 소화한다. 이 사람은 눈빛, 행동 하나하나가 선한 느낌이 든다. 배우가 얼마나 마인드셋을 잘하고 영화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또한 이 사람은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점점 진행되며 내면이 변하게 된다. 이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만한 사람의 성격을 탄탄하게 드러내는 좋은 묘사가 돋보였다. 

     

     

     

    다음은 크리스찬 베일이다. 슈퍼히어로 권위자가 이번에는 빌런으로 돌아왔다. 유달리 뛰어난 이해도 때문인지 크리스찬 베일은 돋보일 때 돋보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적절하게 강약을 조절했다. 이 강약조절 덕에 영화에 힘을 줄 때 힘을 주는 부분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다. 우선 고르가 신 도살자가 되어 흑화하는 부분에서 목소리 톤이 변하는 방식은 왠지 익숙한 맛인 것 같지만 알면서 봐도 뛰어나다. 이후에 고르가 악당이 돼서 하는 악한 행동들을 보면 어쩔 때는 리액션의 연기를 하고 다른 때에는 주체적으로 상대방의 리액션을 끌어오는 연기를 한다. 마블 페이즈 4의 빌런들이 굉장히 뛰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드라마 <팔콘 앤 윈터 솔저>에서 살짝 아쉬웠던 것 말고는 거의 다 극을 이끌어가는 존재감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신 도살자 고르는 '만다린-아가사-드레이크 장군-킹핀-시니스터 스트레인지 등'에 버금가는 강력한 존재감이었다. 마이티 토르와 함께 극을 이끄는 주요한 동력 중 하나였던 고르. 이 인물 구경하러 극장에 가도 티켓 값 중 9천 원은 한다. 

     

     

     

    캐릭터 연출 칭찬해, 하지만

     

     

     

    또한 이 둘의 인물 연출은 왜 마블이 좋은 감독을 섭외하는가? 의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마이티 토르의 액션 연출은 이 인물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였다. 열심히 벌크업 해 온 나탈리 포트만의 열연에 힘입어 묠니르를 활용한 액션 연출, 처지에 따른 조명 사용 방식 차이, 메이크업 형식, 머리색을 비롯한 코디까지 영화에서 토르와 비슷하면서도 확연하게 달랐던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타이가 와이티티의 역량이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마이티 토르의 초중반부, 극후반부 액션신은 '이 영화의 강점은 액션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는 단순히 배우의 연기력으로만 소화하는 것이 아니다. 연출 방식으로 최선을 이끌어내는 부분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썼듯 떨어져 있었던 연인의 과거가 얼마나 서로 외로웠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은 제인 포스터와 토르의 멜로 연기 디렉팅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고를 유심히 보면 신 도살자 고르의 색감 연출이 뭔가 다르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렇다. 고르가 빌런으로서 악행을 벌이던 곳은 색이 없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컬러풀한 영화의 색감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르에게 위압감을 부여한다. 뭐 감독이 각본까지 참여한 것으로 보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는 게 어느 정도는 당연할지도 모르나, 각본 자체에서 '신 도살자 고르'는 뭔가 매가리가 없다. 대신 딱 연출자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 자체의 러닝타임 동안 고르의 색을 활용한 분위기 드러내기는 효과적이었다. 비주얼적으로 눈 쪽에 분장을 덧붙이면서, 액션 연출할 때도 후반부에 토르가 썼던 무기와 네크로 소드가 부딪히는 방식의 묘사는 빌런의 악함이 관객의 머리에 흔적을 남기는 역할이다. 이는 곧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로 이어진다. 인물의 강점을 극을 이끄는 힘으로 치환시킨 감독의 연출력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또한 크리스 햄스워스의 액션 연기 역시 좋았다. 극에 이 배우의 나체가 나온다. 진짜 남자가 봐도 섹시한 햄스워스다. 그 섹시한 몸으로 액션 연기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왜 이 사람이 토르라는 슈퍼히어로에 찰떡인지를 잘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마블 히어로들 중에 액션 연기가 가장 자연스러운 배우가 아닐까 싶다. 멜로 연기는 나탈리 포트만에게 좀 부족했다. 그러나 이 부족했던 액션 연기의 '간지와 멋'으로 제 값을 해낸다. 물론 뭔가 열정이 있는 배우인 것 같아서 더 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크리스 햄스워스가 필모 보는 눈이 처참한 수준이던데 뭐랄까 터닝 포인트가 있으면 더 인기를 얻고 대단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발키리의 각본 상의 캐릭터 설정 자체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이 캐릭터가 없어도 영화의 이야기는 술술 전개된다. 그 대신 차후에 있을 영화들 이 발키리가 출연할 것이며 이를 위해 그녀의 성격을 묘사하는 대사가 몇 번 나온다. 이 지점에선 중요하지만 이 영화에선 사실 발키리의 역할을 로키가 나와서 맡아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극에서 개성이 없다. 전적으로 테샤 톰슨의 매력으로만 극을 이끈다는 건 각본 성립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다. 그 대신 이 인물에서도 타이카 와이티티의 연출력 자체는 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이 인물 역시 액션 연기 및 연출이 좋았다. 극에서 마블의 차후 시리즈들을 위해 기능적으로 쓰였다는 페널티가 있음에도 발키리가 기억에 남는 건 연출 자체는 좋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 왓챠피디아를 보면 몇몇 사람들이 이 인물의 특정 속성에 할 말이 많은 것 같던데, 발키리는 애초에 지구인이 아니다. 외계인이다. 그래서 사실 발키리가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뭐  지구인이었어도 문제가 없기야 하겠지만 외계인의 내면을 이해 못 할 거면 마블 영화 왜 보나? 싶다.

     

     

     

    이 외에도 CG를 잘 사용한 영화이기도 했다. 러셀 크로우가 맡았던 특정 역할이 기억난다. 이 인물이 좀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는 없겠지만, 이 인물이 있는 신전 묘사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가졌던 강점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굉장히 구체적이면서도, 우리가 예전에 봤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한 공간 묘사가 탁월했다. 이 궁전뿐만 아니라 스톰브레이커의 활용법, 초반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액션 연기,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전투신까지 이거 분명히 CG로 작업했을 텐데 아마 이 것에 1년은 쓰지 않았을지 생각이 든다. 제작진의 노고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도 무방한 이유가 CG 사용에도 있다고 본다. 

     

     

     

    코르그야 조용히 좀 있어라

     

     

     

    또 이 영화에 있어 압도적으로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모든 엔딩 크레딧을 보고 여러분이 이 이야기 방식에 대해 느끼는 점이 있다. 극의 핵심을 이끄는 데 있어 '..?' 싶으면 그게 맞을 것이다. 근데 이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적으면 맥 빠질 것 같으니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쓰면 재미없을 단점을 지나 영화의 큰 단점은 코르그가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 캐릭터가 적당히 유머를 보여주면 좋은데 너무 유머에 집착한 티가 난다. 아마 전작의 장점을 승계하려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작은 꽤 호평을 받았던 영화였다. 헬라의 강력함이 토르의 각성서사와 어울리며 보는 쾌감이 있었다. 이에 곁가지로 작동하는 유머가 제 값을 톡톡히 했다. <토르 : 라그나로크>가 호평받았던 이유가 굳이 유머에만 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를 잇고 싶었는지 재미없지도 않은데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은, 타율 낮은 루머를 좀 자주 해서 물리는 감이 있다.  코르그 캐릭터의 대사 1/2로 줄여도 이 영화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 코르그가 하는 유머는 1절 못하고 2,3,4,5 절하는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정도다.  

     

     

     

    또한 토르 역시 말이 너무 많다. 이 역시 전작 3편에서의 장점을 어설프계 승계하려다가 만들어진 단점인 것 같다. 동생도 잃고 아버지도 잃고 한 눈도 잃을 뻔하고 거의 모든 걸 잃을 뻔했던 가련한 삶의 토르. 뭐 이렇다고 해서 매일 똥 씹으며 살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근데 좀 진중해야 할 때 진중해질 필요는 있다. 이 적당한 선이 없이 불필요하게 말이 너무 많다. 아이언맨도 익살스러울 땐 익살스럽다가 외로운 내면 연기를 해야 할 땐 선을 지켰다. 토르는 그게 없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큼의 어마어마한 능력자도 아닌 탓에 이런 단점이 더더욱 도드라진다.

     

     

     

    근데 티켓값은 해

     

     

     

    단점을 쭉 이야기했지만 영화관에서 또 못 볼 영화는 아니다. 난 재밌었다. 몇몇 단점이 눈에 띈 것도 맞다. 그러나 은근히 웃긴 유머와 마이티 토르/신 도살자 고르/발키리/토르 네 인물의 간지, 또 건즈 앤 로지스를 위시로 한 빵빵한 BGM 선택은 '역시 마블이다'라고 생각하기 충분하다. 그러니까, 영화는 대중성 있는 소재를 골랐고 사실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돋보이는 이유는 기존에 이런 소재들을 골랐던 영화에서 더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앞에서 쓴 액션 영화로서의 장점도 분명하고 두 캐릭터의 사랑이야기를 보여줬다는 부분에서도 나름의 이야기 전개가 확실하니 극장에서 보지 말아야 할 영화는 또 아닌 것 같다. 시사회 평도 별로고 CGV 에그 지수도 별로라 '헐'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친구, 연인들과 함께 시원한 극장에서 즐거운 데이트를 하기에는 역시 충분하다. 엄청 잘 만든 수작도 아니고 망작도 아닌 극장에서 보기 좋은 영화다. 그냥 우리가 영화관에 가서 좋은 시간 보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개봉 전에 <탑건 : 메버릭>과 <헤어질 결심>, 이, 2주 있다가 <외계+인>이라는 안 좋은 대진표가 있다 하더라도 극장 한번 더 가시는 건 그렇게 안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쿠키는 보고 가셔요

     

     

     

    사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 끝까지 봐야 한다. 이 영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는 역시 마블 히어로 중 한 캐릭터의 주요 챕터라는 점이다. 이 것은 후의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적지 않게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쿠키가 굉장히 중요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일단 첫 번째 쿠키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이 원작 상으로는 선역으로 보인다. 그러나 윈터 솔저처럼 후에 반동 인물로 활약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인물이 왜 등장할까? 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중 하나다. 두 번째 쿠키는 사실 생각해보면 '굳이?' 싶다. 그러나 글쓴이의 생각은 현재 페이즈 4가 이어가고 있는 주요 키워드를 보여주기 위해 이 장면을 넣은 게 아닐까 싶다. 둘 다 앞으로의 MCU에 중요하게 작용할 이야기니 극장에 가신 분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시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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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관의 존재 이유
  •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오늘도 비행기를 정비하는 한 조종사가 있다. 무인기의 등장으로 유인 조종사의 존재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도 우리의 '매버릭'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타이틀을 놓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이 남자는 구사일생으로 탑건에 복귀한다. 하지만 탑건의 조종사가 아닌 조종사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배치되는데, 과연 조종사의 피가 흐르는 이 남자는 후배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그들이 당면한 작전은 한 사람 이상은 죽어나가야 하는, 이른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그런데 매버릭은 이런 하드코어 훈련 작전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구스의 아들, 루스터까지 참여시켜야 한다. 매버릭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는 루스터와의 관계,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그의 임무 사이에서 그는 갈등한다.

     

     

     

    1. 멋있는 어른의 모습

     

     

     

    최근 유튜브 콘텐츠이든 드라마 콘텐츠이든 각광받는 테마가 있다. 바로 "멋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유튜브의 "밀라논나'도 그렇고, 드라마  컨텐츠 속에서 인기를 얻는 캐릭터들도 모두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멋있고 쿨한 어른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도 매버릭은 멋있는 어른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처음에 매버릭은 후배들의 원망을 산다. 불가능의 영역인 고도를 계속 침범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는 군인들의 비행 서적의 내용과도 반하는 내용이고, 이런 제멋대로의 가르침은 매버릭의 상관들을 화나게 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해고 당할 상황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가르침의 필요성을 자신의 비행 능력으로 입증한다. 불가능의 영역도 그라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비행 능력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 그 이후로 후배들은 그의 말이라면 뭐든 신뢰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세상에는 세대 갈등이라는 개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기성 세대들이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 것에 화를 낸다. 반면, 기성세대들은 젊은 사람들이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는 것에 화를 낸다. 물론, 매버릭과 같이,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몸소 증명해내는 상사들은 없다. 그것은 단연코 판타지이다.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게 왜 이런 매버릭 같이 몸소 귀감이 되어 주질 않는지 따지는 것은 결국 그들의 판타지가 빚어낸 욕심이 원인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어른들이 그처럼 멋있는 증명을 해내지는 못하시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문제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란 과도한 기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기성세대도 자신의 과거의 찬란함에 매료되어 젊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수준의 패기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그것 또한, 기성 세대가 젊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각 세대들은 자신들이 당면해 본적 없는 감정들을 이해해볼 생각 조차 하지 않고, 각자 만의 판타지를 실현시켜 주기를 다른 세대들에게 요구하면서 의미없는 불만들을 쌓아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영화관의 존재 이유

     

     

     

    이 영화는 굉장히 돈을 많이 들인 전투기 액션 영화이다. 내용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선택한 사람들은 내용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전투기 조종 액션의 박진감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기에.

     

    처음에 이 영화를 보기로 했던 것은 '예상 외로'인기가 많다기에 선택했었다. 탑건 1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과연 탑건 2가 이전의 미국 군인에 대한 멋있는 이미지와 톰 크루즈에 멋있는 비주얼 때문에 인기가 많았던 탑건 1의 영광을 과연 21세기에 굳이 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마블 액션 등등 박진감 넘치는 소재는 차고 넘치고, 요새는 프리가이 처럼 게임을 소재로 하는 영화도 많아져 전투기 조종 액션만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을 텐데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영화 머리를 잘 썼다. 전투기 조종하는 장면들이 마치 전투기 조종 게임에 관객들을 참여시켜 동일시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박진감을 몸소 느끼게 했다. 그 실감나는 박진감이 이 영화의 성공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조종은 매버릭이 하지만 우리 모두 그의 전투기에 타고 있는 듯한 환상을 심어준 것이다. 전투기 액션을 하고 있는 인물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도 참여시킴으로써 공감 지수를 올린 것, 머리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들이 결국 영화관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킨다. 최근 '영화관의 위기'다 뭐다 하는데, 영화관은 세계관이 거대한 '듄'이나 '마블 유니버스' 영화 뿐만 아니라 스피디한 액션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한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소규모 독립 영화 그리고 상업 영화이지만 이 정도의 거대한 제작비가 필요하진 않은 영화들이 이런 영화들 때문에 영화관에서는 기를 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이미 그런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거대 제작사의 영화만이 영화관에서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지배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작은 영화들은 그만큼 대비를 해야 할텐데, 새로운 수익 구조에 대한 논의는 필요해보인다. 아니, 이미 업계 분들은 실감하고 계실 테지만 말이다.

     

     

     

    3. 총평

     

     

    이 영화는 살짝 주춤하는 마블의 빈자리를 잘 채워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탑건 1을 보셨던 분들이 어떤 점에서 미국 군인의 멋있는 모습에 경도되셨는지를 어렴풋이 예상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빠른 전개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고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블이 개봉할 때마다 반응이 이전보다는 미적지근하기에 사람들이 액션 장르에 많이 질렸나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의 흥행으로 이제는 마블에 대한 충성도 때문에 본다기 보다는 이제까지 봐온 가락이 있으니, 책임감으로 꾸역꾸역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액션 장르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으나, 그냥 마블 유니버스에 더이상 새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 뿐이라는 추론을 하게 한 영화였다. 이 의견에 피드백 해주실 분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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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길잃은 딸들에게
  • 자고로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미숙한 것이 '처음'입니다. 제가 지나온 몇몇의 '처음' 역시 떠올려보면 모두 부족함과 미숙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처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순간을 겪었습니다. 매기 질렌할 감독의 '처음'을 감상한 후의 일이었죠. 
     
    매기 질렌할 감독의 데뷔작을 보고 나면 부족함보다는 만족감을, 미숙함보다는 원숙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각본상을 시작으로, 영화계도 그녀의 '처음'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디 있다가 이제서야 나타나셨나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매기 질렌할 감독의 데뷔작 <로스트 도터>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6월 30일(목)에 진행된 <로스트 도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로스트 도터>는 2022년 7월 14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로스트 도터
    The Lost Daughter
     
     
    <로스트 도터>의 주인공은 '레다'와 '니나'입니다. '레다'는 중년의 대학교수이자 성인이 된 두 딸의 엄마입니다. '니나'는 '레다'가 휴가 차 방문한 그리스에 머무르며, 어린 딸 '엘레나'를 키우고 있는 젊은 여성이죠. '레다'는 젊은 엄마 '니나'를 바라볼 때마다 자꾸만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변에서 '엘레나'가 사라지고 '니나'와 족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그녀를 찾습니다. 다행히도 '엘레나'는 금방 돌아왔지만, 대신 '엘레나'가 분신처럼 여기던 인형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죠. 알고 보니 아이의 인형을 훔친 것은 '레다'였고, 그녀는 훔친 인형과 함께 지내며 지난 기억들을 마주합니다. 
     
    우리 사회는 위대함, 숭고함, 희생, 헌신 따위의 말로 '엄마'라는 존재를 추앙합니다. 좋게 말해 추앙이지, 실은 강요와 다를 바 없습니다.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자아는 모두 숨기고, '엄마'라는 코르셋을 꽉 조이기를 요구하죠. 그 과정에서 인간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자식의 편안한 의식주를 책임지는 사람, 자식을 심리적・사회적으로 훌륭하게 키워내는 사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자신의 일보다는 자식의 일에 집중하는 사람. '-하는 사람'이라고 일컬었지만 이 모든 일들을 그저 행복하게 해내야만 '엄마다운 엄마'라면, 사회가 생각하는 엄마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분명합니다. 
     
    <로스트 도터>는 '레다'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 보여주면서 이처럼 거룩한 단어들로 포장된 엄마의 전형성을 깨부숩니다. '아름답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라는 포스터 속 문구만으로도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름답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 소리 내 읽어보면 이렇게 낯설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사실이 기울어진 사회 통념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신비하면서도 부끄럽습니다. 
     
    ⊙ ⊙ ⊙
     
    영화에 등장하는 '드럽게' 말 안 듣는 딸들은 전형성을 깨부수는 과정에서 톡톡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죄송합니다. '드럽게'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쓸 말이 없었습니다.) 젊은 '레다'의 7살, 5살 난 딸들도 그렇고, '니나'의 딸 '엘레나'도 그렇습니다. 엄마를 괴롭히는 게 제 삶의 의미인 양, 쉴 새 없이 엄마를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괴롭힙니다. '어렸을 때 나도 저랬을까?' 싶어 속으로 반성하게 될 정도입니다. 미디어에서는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대체로 해맑고 순진무구한 동심 정도로 포장합니다. 피로가 가득 쌓인 얼굴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마는 얼굴에 초점을 맞추곤 하죠. 
     
    하지만 <로스트 도터>는 다릅니다. 한계치에 도달한 엄마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담습니다. 아이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귀찮아 하죠. '니나'는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지고, '레다'는 심지어 아이를 버리고 집을 떠나기까지 합니다. 
     
    '레다'가 '엘레나'의 인형을 몰래 훔치는 것도 엄마의 전형성을 지워버리는 장면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물건에 손대는 장면은 많지만, 엄마가 아이의 물건에 손대는 장면은 없으니까요. 한 마디로 너희(딸)도 힘들어 보라고 장난 좀 쳐본 겁니다. '엄마다운 엄마'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한 것이죠. 아이로 인해 우울증, 무기력증에 빠졌으면서도 딸을 잃어버리자 백방으로 아이를 찾아다니는 엄마의 본능에 분개해 저지른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찌 됐든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의 모습은 없습니다. 
     
    ⊙ ⊙ ⊙
     
    <로스트 도터>는 모성애의 이면을 그린 다른 작품들처럼 '결국 모성을 되찾고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엄마'를 그리지 않습니다. <로스트 도터>의 엄마들은 '엄마다운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끝까지 자책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며,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모성을 잃은 적이 없거든요. 엄마답지 않은 엄마처럼 그려지는 '레다'도 분명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입니다. 엄마의 역할을 버거워하면서도 아이들과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아이들이 찾아준 자신의 특징을 사랑하는 인물이죠. 영화는 이렇게 '엄마다운 엄마'가 허상임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는 '엄마'라는 정체성을 떠맡고, '엄마다운 엄마'로 거듭나지 못해 좌절하는 '레다'와 '니나'가 얼마나 많을까요? 젊은 '레다'를 연기한 배우 제시 버클리는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여러 부분을 변명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감독의 메시지는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변명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충분히 '엄마다운 엄마'입니다. 
     
    ⊙ ⊙ ⊙
     
    일반적으로 영화의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로스트 도터> 역시 해변에서 딸을 잃어버리는 사건을 가리킬 수도 있고, '엘레나'가 소중히 여기던 인형을 잃어버린 것을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길잃은 '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딸'로 태어나야만 '엄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이 작품은 특히 응시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레다'의 시선 끝에는 '니나'가 있고, 젊은 '레다'의 시선 끝에는 아이들이 없죠.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엄마'가 되어보지 않았더라도 미약하게나마 '엄마'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회가 규정한 모성애에 관한 의구심을 품어본 적 있다면, <로스트 도터>를 추천합니다. 
     
    ⊙ ⊙ ⊙
     
    Summary
    “집을 나왔어요. 그렇게 딸들을 버렸죠.” 그리스로 혼자 휴가를 떠난 대학 교수 레다는 딸을 가진 젊은 여자 니나를 보고 단번에 시선을 빼앗긴다. 매일 같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 갑자기 니나의 딸이 사라지고 레다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매기 질렌할 
    출연: 올리비아 콜맨, 다코다 존슨, 제시 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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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모든 단점을 최민식의 연기력으로 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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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베트맨>을 보러 영화관에 갔을 때 대문짝하게 포스터가 붙어있었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어떤 내용인지 굉장히 궁금했고, 최민식 배우의 작품이어서 기대를 하며 본 작품이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시놉시스

     

     

     

     

     

    “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야”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 대상 1호인 이학성은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를 만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며 이학성 역시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한국 영화의 진정한 클리셰를 모아봤어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한 줄로 평하자면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한 데 모아 놓은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수학이라는 소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독창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용의 전재라든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그 과정이라든지, 현실에서는 있 수 없는 굉장한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관객이라면 다음 장면은 이러한 내용이겠지? 이런 대사 한 번은 쳐줘야 되지 않겠어?하는 3초 스포가 자동적으로 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리셰 속에서도 수학이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청각적 요소들을 활용한다거나 칠판의 맞은 편에서 열정적으로 풀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조금은 색다른 카메라 구도를 보여줘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최민식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이러한 클리셰 덩어리들이 영화 곳곳에 포진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최민식의 연기력 때문이다. 수학을 정말로 사랑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다고? 공식을 하나 설명하고 해설하는데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고? 아름답다고 안 해주니까 세상 무너지는 듯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을 통해서 이 캐릭터가 어떠한 감정인지 너무나도 잘 드러나서 경이로웠다. 만약 표정백과사전이 있다면 거기에 등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찰나의 순간에도 변하는 최민식의 연기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인간의 감정은 다채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행복, 슬픔, 감격, 씁쓸함이 동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점을 정말 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표정을 보면서 그리고 증폭되는 감정연기를 보면서도 단 한순간도 과장됐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을 보면 왜 최민식 배우를 대한민국의 대표배우라고 하는지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말이다. 방향이 중요하지 정답이 중요하지 않다. 모두에게 옳은 정답은 없다. 하지만 치열한 입시 세계 취업 세계에서 이 말은 잘 통하지 않습니다. 내 정답이 아닌 남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답을 내밀어야 사회에서는 '나'를 봐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향해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다시 한 번 방향과 방법이 중요하다, 문제의 답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사실 그저 그런 영화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사회의 현실을 알지 못한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렇게 답만 찾아내는 입시 공부를 하는 줄 아느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인데 구조적인 체제를 비판하지 않고 그저 이상적인 소리만 해대면 어떡하냐고 신랄하게 비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민식 배우가 주는 강력한 울림은 그런 생각마저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왜 작품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배우의 연기력 만으로도 그 이상적인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반성을 하게 만드는 그 강력한 울림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보는 내내 최민식 배우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배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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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에게 들었던 가장 최악의 말
  • 영상통화 장면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존재를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경아, 그런 엄마로부터 남자친구를 숨길 수밖에 없었던 연수. 그와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헤어지고 나서도 끊임없이 연락하고 찾아오는 상현은 두 사람의 관계 영상을 유포한다. 이별을 거부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전시한 것이다. 그 영상을 받은 친구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연수는 평범한 일상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고통스러움에 빠진 연수의 모습보다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 아는 연수를 비난한다. 고통에 허우적대 빠져나오지 못했던 날, 연수는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에게 가장 최악의 말을 듣는다.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에 사랑했던 이에게 당하는 배신의 시간은 경아에게도, 연수에게도 일어났다. 연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경아의 편이 되어주었고, 경아는 연수에게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장 의지했던 존재에게서 오는 흠집의 연속성은 기존의 형태를 더욱 처참하게 망가진다. 이미 망가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무너지는 마음의 모습이 영화의 잔잔함으로 인해 더 크게 와닿는다. 그렇게 일상에서 들려오는 가시 박힌 뾰족한 말들이 가슴을 계속 찔러 고통의 순간을 안기지만 그런 순간 속에서도 살아보려는 연수의 뒷모습이 뇌리에 박힌다. ‘피해자다움이라는 단어에 얽히지 않고 슬프다가도 웃고 화나다가도 평소처럼 누군가와 마음을 털어놓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평범함을 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과 개인이 할 수 없는 최선이 흐리지만, 선이 맞물린다어디서 갑작스레 튀어나올지 모를 불행의 존재, 그로 인해 방에 갇혀 몸을 움츠리고 불안에 잠식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런 순간은 계속해서 반복되겠지만 살아가기 위해 불안의 어둠에서 헤엄쳐 나와 스스로 일어나고 또 앞으로 걸어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또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이해를 통한 치유를 건넨다. 누군가에게 받을 수 없던 그 단어는 자신을 가두지 않고 나아갔던 그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행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피해자의 고통스러움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다움의 정의를 내리지 않으며 모녀와의 관계를 필두로 하였지만, 모녀의 대화로 인해 내 마음에 왠지 모를 생채기가 났다. 가장 가까운 존재보다 가깝지 않은 타인이 건네는 위로에 그저 눈물을 흘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이 슬픔은 내가 엄마에게 있어서 가장 불편한 존재가 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고 숨 쉬지 않아야 나를 위로해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목은 경아의 딸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모녀간의 사랑이 드러난다거나 서로의 마음을 토닥여 주는 장면은 드물다. 다만 연수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이나 감정은 다르지만, 고통과 회복의 순간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그 공간에서 나온 연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경아는 그 공간에서 연수를 이해하고 화해의 손길을 이번에는 먼저 내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 탓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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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선언 #송강호 #임시완

     

    ‘비상선언’: 재난 상황에 직면한 항공기가 더 이상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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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서 하와이로 이륙한 KI501 항공편에서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비행기 안은 물론 지상까지 혼란과 두려움의 현장으로 뒤바뀐다.

     

    이 소식을 들은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는 대테러센터를 구성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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