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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06-30 16:24:43

오징어 게임 3 | 다음 딱지치기를 위해 희생된 완결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3>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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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드러난 공허한 큰 그림

 

<오징어 게임 2>는 '성기훈'(이정재)의 반란으로 끝맺었다. 오징어 게임 자체를 중단하기 위한 그의 반란은 처절히 실패했다. 인원도 부족하고, 탄알도 부족한 채로 시도한 무모한 반란이 유발한 참혹한 대가였다. 그는 게임장 밖에서부터 친구였던 '정배'(이서환)를 비롯해 봉기에 가담한 이들을 모두 잃었다. 이 반란의 실패는 단순한 물리적 패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훈의 신념과 소신이 완전히 패배했음을 방증하는 결과물이었다.

 

 

 

시즌 2 초입에 기훈과 '프론트맨'(이병헌)은 각자의 신념을 명확히 밝힌다. 프론트맨은 거대한 이익과 가혹한 환경 앞에서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라면 악한 행위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징어 게임을 중단하고 상금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변경된 투표 규칙은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장치이자 그의 신념이 반영된 제도였다.

 

 

 

반면에 기훈은 설령 오징어 게임처럼 극단적인 환경이라 해도 지켜야만 하는 선이 있다고, 타인이 그 선을 넘도록 부추기는 것 또한 그 자체로서 악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가 프론트맨과의 대립에서 승리할 방법은 두 가지였다. 참가자들을 설득해서 투표로 게임을 끝내거나, 투표 자체의 진행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참가자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투표 진행 자체를 막기 위해 반란을 획책했으나 게임의 진행을 막지 못했다.

 

 

 

이제 기훈에게는 무슨 목표가 있을까? <오징어 게임 3>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의 목적은 더 이상 참가자들을 살리는 것도, 프론트맨에 맞서 이기는 것도 아니라고. 설령 프론트맨에게 패배했어도, 결코 그와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기훈은 사투를 벌여야 한다고. 문제는 '증명'이라는 테마가 서사적으로도, 장르적으로도 악수라는 점. 결국 <오징어 게임 3>는 공허한 큰 그림과 욕망만 남긴 채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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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훈의 마지막 반격

 

반란에 실패한 뒤 혼자만 살아남은 기훈은 절망한다. 게임 진행 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열변을 펼치던 지는 시즌과는 달리 아예 투표 자체를 포기할 정도로 목표를 잃어버린다. 자기 때문에 친구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죄책감을 회피하려고도 한다. 탄창을 가져오려다가 겁에 질려 도망친 '대호'(강하늘)를 원망하고, 술래잡기 게임에서 그를 찾아내 죽이고, 그러고도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자 자살까지 시도한다.

 

 

 

발버둥 치던 기훈에게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찾아온다. 비록 반란이 실패했어도 기훈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금자'(강애심)가 그에게 '준희'(조유리)와 준희가 술래잡기 도중 낳은 아이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 유언이 된 부탁을 들은 기훈은 게임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죄도 없는 아기를 끝까지 보호하기로 결심한다. 게임 안에서 프론트맨을 이길 수 없다면, 모든 사람이 그와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결승전 전날 밤, 프론트맨은 칼을 건네며 다른 참가자들을 다 죽이고 아기와 함께 우승자가 되라고 제안하지만, 기훈은 유혹을 끝내 뿌리친다. '오일남'(오영수)이 똑같은 제안을 했을 때 수용한 프런트맨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이에 더해 고공 오징어 게임에서도 기훈은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아기를 보호한다. 이렇게 그는 모든 인간이 자신과 같을 거라는 프론트맨의 믿음에 금을 내고, 가능한 유일한 반격을 가한다.

 

 

 

이 반격은 유효했다. 무엇보다도 돈이 우선시되고, 생명과 같은 가치도 돈으로 환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자, 인간성의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다시 한번 결말을 장식한다. 게임장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프론트맨이 아기를 챙겨서 상금과 함께 동생인 '준호'(위하준)에게 맡긴 것, 기훈의 유품을 LA에 있는 그의 딸에게 전해주는 것은 프런트맨이 패배를 인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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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폭거'라는 진짜 적수

 

이렇게 보면 <오징어 게임 3>는 기훈의 서사를 잘 갈무리한 듯싶다. 문제는 이 마무리가 첫 번째 시즌의 결말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즉, <오징어 게임 3>는 기훈을 다시 한번 오징어 게임에 던져 놓은 근본적인 동기와 물음에 답하지 못한 채 출발선으로 U턴한 셈이다. 심지어 기훈이 넘어서야 할 난관과 장애물을 짚어내고 직시하는 데 성공했는데도 답을 회피했기에 <오징어 게임 3>의 끝은 더 실망스럽다.

 

 

 

<오징어 게임 3>는 프론트맨과의 갈등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 기훈을 조명한다. 그러나 시즌 2와 3에서 그의 적수는 사실 프론트맨이 아니었다. 바로 다른 참가자들이었다. 애초에 기훈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자기 신념을 증명하는 데 집착하게 된 원인은 투표로써 이뤄진 다수의 폭거이기 때문. 만약 기훈이 투표에서 한 번이라도 더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다면, 그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다.

 

 

 

기훈은 왜 투표 결과 앞에서 무기력했을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 중 과반이 찬성한 투표 결과에는 누구도 부정 못 할 절대적인 권위가 깃든다. 설령 상금을 위해 인명을 죽이는 비윤리적인 일이 그 결과라 하더라도. 이는 게임 진행 요원이 매번 참가자들의 자유로운 투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다. 시즌 2에서 기훈은 이처럼 투표 결과가 권위를 낳고, 권위가 오징어 게임을 지지하는 메커니즘을 한 번도 논파하지 못했다.

 

 

 

시즌 3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눈앞에서 악한 일이 저질러져도 다수가 악을 지지하는 한, 기훈은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는 그 결과를 뒤집지 못한다. 고공 오징어 게임 도중에 참가자 9명 중 6명이 아기를 죽이고 상금을 나눠 갖는 데에 찬성으로 투표해도 기훈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다수의 폭거'라는 의사 결정 방식을 파괴하지 못하는 이상 그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게임은 중단되지 않는다"라는 프론트맨의 말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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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뽑았는데 무를 안 썰었어

 

즉, <오징어 게임> 시즌 2와 3가 기훈을 다시 게임에 참여시킨 동기는 위와 같은 '다수의 폭거'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회 비판물이라는 <오징어 게임>의 정체성에도 부합한다. '다수의 폭거'는 거부할 수 없는 미래의 사회적 모순이니까.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는 숫자가 많은 중노년층의 정치적 의사나 이익이 초과 반영되는 실버 민주주의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오징어 게임 3>는 투표라는 규칙을 통해 화두에 올린 이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해야만 했다. 다수결이라는 형식의 논리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내용을 압도하며 본말이 전도된 상황에 대해 기훈의 입을 빌려 첫 시즌보다 진일보한 해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완전히 해결하거나 대안을 제시할 수 없으면 새 판을 짜기 위해서 오징어 게임을 완전히 파괴하는 식으로라도.

 

 

 

하지만 <오징어 게임 3>의 결말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환상에서 '새벽'(정호연)이를 본 뒤 다른 참가자 목에 겨눴던 칼을 거두고,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아기를 살리는 선택. 이 장면들은 첫 시즌 결말의 반복에 불과하다. 그가 돈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의 선함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미 새벽이의 동생을 챙겨주고 남은 상금은 사적으로 한 푼도 쓰지 않은 시즌 1의 결말이 보여준 바 있다.

 

 

 

결국 기훈은 프론트맨에게 승리했을지언정 그의 논리와 세계는 못 이겼다. 기훈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오징어 게임은 언제든지 열릴 테니까.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인정한 채 고고히 자기 소신을 지키려고 은둔하는 역사 속 지식인들과 자기 증명에 집착한 기훈이 겹쳐 보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징어 게임 3>은 사회 비판물로써 얻은 명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비겁한 완결판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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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다

 

사회비판적 주제 의식이 쳇바퀴를 헛도는 사이, <오징어 게임 3>은 장르물로서의 쾌감도 놓치고 말았다. 데스 게임 장르의 본질적인 재미는 각 게임의 규칙을 역이용하거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한 장면들이 없지는 않다. 줄넘기 게임을 먼저 통과한 참가자가 다른 참가자들이 통과할 길목을 막고 그들을 제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고공 오징어 게임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훈과 명기를 설득하려고 가장 약한 참가자를 급습한 뒤 이른바 '도시락' 작전을 제안하는 순간도 유사한 대목이다. 기훈이 무기를 꺼내자 아기 친부임을 밝히며 동맹을 맺고, 그들만 살아남자 다시 기훈과 아기를 위협하면서 우승을 노리는 '명기'(임시완)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 장면들은 극이 늘어지려는 찰나에 긴장감과 몰입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린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기훈이 그들의 전략을 방해하거나 제지하는 나머지 극의 흐름이 다시 끊긴다는 것. 시즌 3의 첫 게임인 술래잡기 이후 기훈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게임에 참여한다. 아기를 보호할 수만 있다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도 불사한다. 그런데 정작 기훈의 서사에 담긴 의미가 안 돋보이다 보니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맞춘 기훈의 행적이 늘어날수록 도리어 생존 게임의 재미는 저해될 수밖에 없다.

 

 

 

즉, <오징어 게임 3>는 기훈의 드라마를 살리기 위해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물의 쾌감을 의도적으로 줄인 작품인 셈이다. 시즌 1과 2에 비해 유달리 시즌 3에서 인상적인 게임이 없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다만 전쟁마저도 또 하나의 생존 게임 형태로 묘사하면서 메시지와 장르물의 정체성을 모두 살리는 데 성공했던 <헝거게임> 시리즈의 사례를 고려하면, 최선의 수단이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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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고 무의미한 곁가지

 

그렇다고 기훈의 서사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지도 않다. 불필요한 곁가지가 너무 많기 때문. 준호의 섬 수색극은 없어도 스토리 전개에 영향이 없다. '민수'(이다윗)의 플롯도 마찬가지다. '세미'(원지안)를 못 지킨 자책감은 공감할 수 있으나, 다른 생존자와의 접점이 전혀 없다 보니 캐릭터의 필요성을 어필하지 못했다. 또 과거사가 안 밝혀졌던 대호, 게임마다 활약을 펼친 '현주'(박성훈)처럼 필요한 곁가지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남은 곁가지도 제대로 써먹지 못했다. 금자와 '용식'(양동근) 모자가 대표적이다. 금자는 준희와 아기를 지키려고 용식을 직접 죽이고, 본인은 자살한다. 이 전개는 부모-자식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설득력이 없다. 인간성의 회복과 중요성을 역설하는 작품치고는 도리어 인간성에 대한 공감과 고찰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시즌 2부터 예측한 아들과 엄마의 가슴 절절한 신파극을 피하려다가 둔 악수인 셈이다.

 

 

 

'노을'(박규영)과 '경석'(이진욱)의 서사도 필요한 만큼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 노을은 비록 기훈과 직접적인 접점이 없어도 그의 플롯에 담긴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경석의 절박한 상황을 아는 이상, 자신에게 돌아오는 손익과 무관하게 경석을 살리는 게 옳은 일이라서 옳은 일을 실천하는 또 다른 사람이 바로 노을이기 때문. 그들이 해피엔딩을 맞이한 몇 안 되는 인물 중에 포함된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억지스럽다. 노을과 '부대장'(박희순)이 싸울 때, 부대장은 노을을 완전히 제압하지도 않은 채로 시가를 태우며 여유를 부린다. 또 몇 분 전까지 노을이 겨눴던 총의 존재를 잊었다가 허무하게 총살당한다. 이에 더해 앞뒤도 안 맞는다. 마지막에 경석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딸 치료비를 구했다고 말한다. 이는 애초에 그가 목숨 걸고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동인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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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꼬리도 아쉽다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3>는 근본적인 의문과 메시지에 힘을 실을 정도로 과감하지 못했고, 한 편의 독립된 작품으로서도 장점마저 못 살린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시즌 2의 첫 에피소드에서 공유가 죽을 때의 전율과 충격을 생각하면 용두사미라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심지어 <오징어 게임>의 상징성을 스스로 불태워버렸기에 이 뱀의 꼬리도 실망스럽다. <오징어 게임>의 열풍은 게임의 재미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시스템을 고발하는 메시지에서 비롯됐다. 돈을 좇아 인간성을 포기하고, 그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을 다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이 메커니즘을 구조화해서 더 많은 돈을 창출하는 체계를 비판하는 드라마가 바로 <오징어 게임>이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3>의 끝은 자신이 칼날 세워 비판한 그 시스템의 일부였음을 당당히 자백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갈라드리엘, <토르> 시리즈의 헬라인 케이트 블란쳇이 딱지녀로 등장하는 순간, 작품성과 완성도 이전에 세계관 확장 IP 수익 극대화에 힘을 쏟았다는 정황은 너무나도 명백해진다. 케이트 블란쳇이 딱지치기를 하고, 상대방 뺨을 때리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을 보면서도 실망감이 놀라움을 앞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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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dful 끔찍한

 

쌓아 올린 유산을 불태우고 새출발할 준비를 마치다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3916751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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