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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06-29 14:15:53

F1 더 무비 | 가장 상업적으로 빚어낸 질주의 낭만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때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끔찍한 사고로 F1®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은퇴해야만 했던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그 후 30년이 지나도록 온갖 레이싱 대회를 섭렵하며 트랙을 떠나지 않았던 소니를 그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이 찾아온다. 신생 F1팀이자 최하위 팀인 APXGP의 구단주인 루벤은 소니에게 그가 이루지 못한 꿈, F1 드라이버 자리를 제안한다.

 

 

 

F1에 복귀한 소니에게는 남은 9번의 그랑프리에서 한 번은 우승해야 한다는 임무 주어진다. 그러지 못하면 루벤은 팀을 매각해야 하기 때문. 소니는 어떻게든 팀의 전력을 끌어올려서 승리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천재적인 신이자 팀 동료인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와 거듭 갈등을 빚는다. 타 팀으로 이적할 생각으로 가득한 그는 소니의 전략에 협조하지 않고, 그렇게 루벤과 소니의 도박은 실패할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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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낭만 사이에서

 

최근 OTT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스포츠 중계권 경쟁전이 치열하다. OTT 입장에서는 중간 광고를 도입하고, 고정 시청자층의 이탈 우려도 적으며, 매년 안정적으로 수급할 콘텐츠 중 스포츠만큼 적절한 대상이 없기 때문. 스포츠 입장에서도 게임을 비롯한 경쟁자에 맞서서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기에는 OTT만큼 확장력과 접근성이 좋은 수단이 없다. 이에 여러 스포츠 종목 중계권이 케이블 방송사로부터 OTT로 속속 넘어가고 있다.

 

 

 

다만 스포츠와 OTT의 밀월은 스포츠만의 가치를 위협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4,785. That's How Much It Costs to Be a Sports Fan Now'라는 뉴욕타임스 칼럼에 따르면 미국인 한 명당 주요 스포츠 경기 시청에 필요한 연간 구독료가 2,634달러(약 360만 원)를 웃다. 이처럼 스포츠 접근성이 파편화되면 지역적 자부심과 세대 간의 유대처럼 공공의 자산로서 스포츠가 지닌 가치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탑건: 매버릭>(이하 <탑건 2>)에 이어 뭉친 <F1 더 무비>(이하 <F1>)도 상술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낭만 넘치는 드라이버의 레이스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상은 철저히 상업적인 의도로 가득하기 때문. 최근 F1은 북미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넷플릭스와 함께 다큐멘터리 <본능의 질주>를 2018년부터 매 시즌 제작했고, 미국 중계권도 넷플릭스에 넘긴 상황이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이번에는 애플 스튜디오, 브래드 피트와 손잡고 레이싱 영화를 제작했다. 7회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루이스 해밀턴 경이 크레디트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을 만큼 적극적이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흥미로운 것은 대응법이다. <F1> 내재한 모순을 향한 원천 차단하려 한다. 익숙한 이야기 위에서 마치 F1 드라이버가 된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하며 눈과 귀를 현혹하는 이 속임수는 일견 거의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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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에서 F1머신으로

 

<F1 더 무비>의 기본적인 얼개는 제작자와 감독의 전작인 <탑건 2>와 매우 유사하다. 캐릭터의 성격, 인간관계 모두 복사, 붙여 넣기를 한 수준이다. 은퇴가 다가오는 나이 든 파일럿은 베테랑 드라이버가 됐다. 매버릭과 소니는 둘 다 팀워크를 모르는 반항아다. 그저 비행과 운을 즐기는 게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매버릭은 명예로운 진급을 포기했고, 소니는 각종 대회에서 우승도 다음 레이스를 위해 정처 없이 떠돈다.

 

 

 

그들에게는 뒤를 봐주는 든든한 친구가 있다. 매버릭에게는 미국 태평양 함대 사령관, '아이스맨'(발 킬머)이, 소니에게는 APXGP의 구단주, 루벤이 있다. 그들은 나이 들었지만, 경험이 풍부한 친구를 필요로 한다. 어린 파일럿은 작전에서, 드라이버는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경륜을 그들로부터 배워야 하니까. 두 베테랑은 젊은이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끝내 진정한 드라이버와 파일럿으로 길러내는 데 성공한다.

 

 

 

선후배, 선생과 제자가 같은 트라우마를 매개로 한 팀이 된다는 전개도 동일하다. 매버릭의 윙맨이자 '루스터'마일스 텔러)의 아버지였던 '구스'(앤서니 에드워즈)의 사망은 둘이 싸우는 원인이자 화해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소니와 조슈아도 다르지 않다. 레이스 도중에 앞차를 추월하려다가 죽을 뻔한 사고를 당했고, 13살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공통점 덕분에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서 APXGP 팀의 원투펀치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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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로 대체 못 하는 낭만

 

그런데 결정적인 대목에서 두 작품은 차이점을 노출한다. 파일럿과 드라이버의 본질과 낭만을 보여주는 점은 공통점이지만, 그 방식은 정반대다. <탑건 2>는 인간과 기계를 대비한다. 전투기를 무인 드론으로 교체하려는 사령관 앞에서 매버릭은 인간 파일럿의 필요성과 유효 가치를 역설한다. 그는 최후반부 도그파이트에서 고물 전투기로 최신형 전투기를 격추하며 자기 말을 증명한다.

 

 

 

반면에 <F1 >은 기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 레이스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드라이버보다 좋은 차가 우선이라는 F1의 승리 공식을 억지로 부정하지 않는다. 30년 만의 복귀전을 치른 소니만 해도 기계의 역량 차이를 인간의 잠재력을 뒤집는 기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는 코너를 돌 때 크게 흔들리는 차의 약점을 기술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사력을 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계를 인정한 덕분에 <F1>은 <탑건 2>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만의 낭만을 보여줄 수 있다. F1 세계에서 성공하고 싶은 조슈아는 우승하기 위해 더 우수한 차를 타려고 하고, 더 돈이 많고 기술력이 뛰어난 타 팀으로의 이적을 추진한다. 그 목적으로 그는 언론과 SNS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협찬사 파티 등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이적에 유리한 친근한 이미지를 조성한다.

 

 

 

소니는 그에게 일갈한다. 더 좋은 차나 이미지가 드라이버의 본질이 아니라고. 트랙 위에서 달리는 그 순간에 몰입하고, 뒤차에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전투를 불사하는 의지가 전부라고. 그 본질에 충실하면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우승과 팀 내 1번 드라이버 자리, 언론과 스폰서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소니는 다친 몸으로도 데뷔 후 처음 포디움에 오르며 자기 말을 손수 증명한다. 매버릭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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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낭만과 가치

 

온몸을 던져서 소니가 조슈아에게 건넨 날카로운 충고와 격려는 그저 한 드라이버에게만 유효한 말이 아니다. F1의 세계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본질까지도 꿰뚫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설령 F1이 가장 비싼 광고와 협찬으로 도배되는 스포츠라 한들, 그 세계는 돈으로 환원될 수 없는 낭만과 열정이라는 가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APXGP가 진정한 한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그 낭만으로 가득하다. 팀 구성원 사이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테크니컬 디렉터 '케이트'(케리 콘던)도, 수석 엔지니어도, 피트 스탑 크루도 경험이 짧으 호흡이 맞을 수가 없다. 소니는 이 오합지졸을 뭉치게 한다. 레이스 전 함께 조깅하면서 팀 문화를 만들고, 성적 관계없이 다음 경기를 위한 발전적인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며 그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는다.

 

 

 

그렇기에 소니의 트로피를 루벤과 케이트, 팀원들이 차례로 들어 올리는 결말에서는 특별한 감동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승리를 향한 열망, 열정, 노력으로 묶인 공동체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경기장 안팎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국가대항전에서 국기를 보며 눈물을 쏟는 애국심, 축구 리그에서 승격이 결정되면 팬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오는 애향심. 이는 소니의 팀이 맛본 환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본이 스포츠 산업에 돈이 집중되는 시대이기에 뻔할 수 있는 소니의 조언과 그의 드라이빙이 남긴 울림은 더 감동적이다. F1 드라이버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이 지역민의 유대감을 유지하는 주역 혹은 세대를 뛰어넘는 공동체의 존재를 온몸으로 현현하는 상징이 아니라면 명예와 부가 그들에게 쏠리지는 않을 테니까. 현대 사회에서 자리를 잃어가는 스포츠의 낭만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더 인상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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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운 짜임새

 

그런데 <F1>은 자칫 상술한 메시지를 스크린 위에 구현하지 못할 뻔했다. 평면적이고 편의적인 극본으로 인해 상업적인 기획 의도가 스포츠의 본질과 낭만이라는 주제 의식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F1>의 스토리라인은 너무 단순다. 불의의 사고로 은퇴한 재능 넘치는 신인이 방황 끝에 베테랑으로서 무너지는 팀을 되살린다는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고스란히 재활용한다.

 

 

 

소니가 30년이 지나도록 레이싱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만화적일 정도로 뻔하다. 트랙 위에서 달릴 때 차와 자신이 한 몸이 되는 희열감을 한 번만 다시 느끼고 싶다는 이유는 진부하다. 트랙을 그라운드나 코트로 바꾸면 어떤 스포츠 영화에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클리셰다. 이러한 전개가 155분 동안 이어지다 보니 <F1 더 무비>의 적 완성도는 또 다른 레이싱 영화 <포드 V 페라리>에 비할 수 없다.

 

 

 

구조적으로도 한계가 명확하다. 작전 하나에만 집중하는 <탑건 2>와 달리 9개의 그랑프리를 모두 다뤄야 하니 리듬이 자주 끊긴다. 자연히 레이스 자체에 대해서도, 팀 내부의 역학 관계에 대해서도 얕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자본이 스포츠의 본질을 침탈하는 방식도 단순하게 과시할 수밖에 없다. 팀 매각을 둘러싼 정치 싸움에 관한 복선이나 암시를 뿌려둘 여유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감정적인 순간은 매번 회피한다. 회식 자리에서 13살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소니와 조슈아. 앙숙이었던 두 선수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전환점일 수 있었지만, 영화는 이를 그저 흘려보낸다. 그 결과 정작 둘이 한 팀으로 거듭나는 전개에서는 깊이가 부족해진다. 소니 외의 다른 캐릭터는 그저 엑스트라일 뿐이고, 감정선이 희미한 영화가 마치 뛰어난 OST를 자랑하는 뮤직비디오처럼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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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귀를 현혹하다

 

<F1>은 이처럼 소니의 서사에 실린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온갖 브랜드의 간접광고가 낭만적인 메시지를 압도하는 자기모순을 넘어서야 했다. 흥미롭게도 <F1>은 가장 상업적인 방식으로 자본과 낭만의 긴장 관계를 가린다.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이 투입된 기술력은 관객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그들을 드라이버의 낭만 속에 빠트린다.

 

 

 

우선 F1머신의 묵직한 엔진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는 가운데, 곧이어 현란한 카메라 워크가 눈을 매료한다. 시속 300KM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레이싱카를 드라이버 시점에서 보여주다가, 180도 회전해서 드라이버 얼굴을 보여주고, 다시 시점을 옆으로 돌려서 경쟁하는 레이싱카를 화면에 담는다. 일련의 컷이 불과 2~3초 안에 전환되고 있으니, 극장은 F1 중계 화면으로도 느끼기 힘든 현장감과 박진감으로 가득해진다.

 

 

 

그 덕분에 다소 부족한 심리 묘사나 개연성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소니가 마지막 레이스에서 체크 플래그를 받는 순간, 그의 환희감에 온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의 고양감은 <탑건 2>에서 매버릭이 작전 후 항공모함에 착륙하는 장면 그 이상이다. 이렇게 관객 개개인이 마치 드라이버가 된 듯한 독보적인 경험을 선사하면서 <F1>의 메시지는 자본의 맥락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아 숨 쉴 동력을 확보한다.

 

 

 

그렇기에 <F1>은 전략과 기술력은 마법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스포츠의 가치, 드라이버의 낭만, 그리고 F1의 쾌감과 자연스럽게 연결 짓게 만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마법이다. 지극히 상업적인 목적을 알면서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마술이기도 하다. 주요 선수와 감독이 줄줄이 카메오로 출연할 정도로 F1 측이 공들인 <F1 더 무비>의 기획 의도는 이토록 멋지게 적중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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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마법

 

그런데 <F1>의 속임수는 한 끗이 모자란다. 관객들을 극도의 현장감과 몰입감에 빠트리려다가 F1의 본질을 훼손한 나머지 자기 마법을 스스로 깨버리기 때문이다. 소니는 30년 만에 돌아와 곧바로 영웅이 된다. 고의로 차에 부딪히고, 다른 사람들을 들이받는 식의 전략을 최하위권 팀을 우승권 팀으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준다.

 

 

 

문제는 얼핏 보기에 영리한 그의 전략이 F1의 본질적인 가치를 파괴한다는 것. 다른 선수와 직접적으로 충돌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켜 세이프티카나 레드 플래그를 유도해 이득을 보는 행위는 F1 세계에서 단순한 스포츠맨십의 결여가 아니라 승부조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FIA(국제 자동차 연맹)는 2008년에 발생한 승부조작 사건, '크래시게이트' 관련자들을 영구 제명한 바 있다.

 

 

 

즉, 소니를 영웅적으로 묘사하려던 시도가 영화적 허용의 범위를 넘어서 버린 셈이다. 이 영화로 F1을 처음 접하는 일반 관객에게 F1은 부정행위가 만연한 스포츠라고 소개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 이는 더 많은 관중과 팬을 유입하기 위해서라면 해당 스포츠의 근간을 파괴해도 무방하다는 사고방식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의 본질보다는 수익을 우선시하는 관점이 끝내 멋진 포장지를 찢고 나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결과 <F1 더 무비>의 낭만과 메시지가 선사하는 울림은 <탑건: 매버릭>과 달리 잘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이상의 수준에 올라서지 못한다. 기술적으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뛰어나고, 특별관에서 보면 압도적인 몰입감을 느낄 수 있으며, 기획 의도에 충실히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한 번 사라진 마법을 되찾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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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eptable 무난함

 

마지막 순간 무위에 그친 돈으로 낭만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3915510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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