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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2025-06-03 18:44:05

이란 여성, 침묵을 끝내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리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란의 평범한 한 가족을 내세워 신권 정치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가부장적 아버지 이만이 아내와 두 딸에게 휘두르는 억압과 폭력은 이란 사회의 권위주의적 정치 구조를 상징한다. 이만은 이란 정부의 얼굴을, 그에 맞서거나 타협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이란 국민들의 양상을 대변한다

 

이 가족은 이란 사회를 압축해놓은 작은 세계다. 그리고 동시에 신권 정치가 일상 깊숙이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까지 분명히 보여준다.

 

 

이만 가부장으로 상징되는 권력, 신권정치의 은유

 

초반의 이만은 양심과 권력 사이에서 흔들린다. 정부의 사형 명령 앞에서 주저하던 그의 손에 권력이 쥐어지자 또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승진과 함께 지급받은 총 한 자루가 사라진 일로 그는 가족을 의심하고, 딸과 아내를 강압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권력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극이 끝날 무렵 우리는 이만을 통해 이란 정부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점점 자국민, 특히 여성과 청년을 폭력으로 억누르려는 국가 권력의 전형으로 변모한다.

 

 

사다프 - 억압받는 이란의 현실

 

이야기의 전환점은 레즈반의 친구 사다프가 시위에 휘말려 산탄총에 맞는 사건이다. 2022년 이란에서 일어난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건과 그에 따른 히잡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국가는 진실을 은폐하고, 젊은 세대는 분노한다. TV 뉴스는 사건을 왜곡하지만, SNS 영상으로 시위의 실상을 목격한 레즈반과 사나는 각성한다.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진실을 기록하고, SNS를 통해 세상에 퍼뜨릴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은폐하려 해도 폭력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고, 그것은 결국 사람들을 거리로 향하게 만든다.

 

 

 

나즈메 중재자 혹은 현실과 타협하는 자

 

어머니 나즈메는 사다프와 엮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딸들의 행동이 남편의 입지에 방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녀는 레즈반의 부탁에 따라 지인을 통해 사다프의 행방을 알아보려 한다. 그녀는 완전히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 이중적인 위치에 머물지만, 결말에 이르러 두 딸과 연대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보인다. 이러한 나즈메의 모습은 이란 사회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사나 - 침묵의 파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동생 사나이다. 사다프의 일에 분노하고 행동했던 인물은 레즈반이었지만, 결국 변화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침묵의 사나였다. 염색을 하고 싶어 하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싶어 했던 사나.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작은 불씨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늘 소극적으로만 보였던 사나는 마침내 총을 들고 아버지 앞에 선다. 침묵 속에 숨겨졌던 그 불씨는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폭발한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새로운 이란의 희망을 엿본다

 

그리고 동시에 깨닫게 된다 - 변화는 침묵을 깨는 여성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여성, , 자유(Zan, Zendegi, Azadi) - 여성의 연대

 

초반에는 가부장제에 순응하던 나즈메 역시, 후반부엔 딸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에 맞선다. 나즈메, 레즈반, 사나가 함께 이만과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셋의 연대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는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난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환기시킨다. 이러한 연대야말로 이란 사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란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억압과 침묵 속에서도 변화를 향한 희망과 침묵을 깨려는 용기가 영화 전반에 흐르며, 여러 인물을 통해 연대와 저항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란 사회의 이야기는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것만은 아니다. 언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침묵할 것인가, 연대할 것인가?

 

 

 

 

 

 

 

*본 언론배급 시사회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했습니다.

작성자 . 벼리

출처 . https://blog.naver.com/dufwjd1106/223887417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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