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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는 정말 달콤할까?
  • 가장 완벽한 복수는 무엇일까. 똑같이 되갚아주는 것? 보란듯이 잘 사는 것? 아무래도 받은만큼 돌려주는 쪽에 마음이 동한다. 내가 아팠던만큼 상대도 아파야 평등한 것이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사람의 팔을 부러뜨린 자는 팔을 부러뜨리고, 눈을 멀게한 자는 눈을 멀게 한다는 동태(同態)복수 원칙을 명시했다. 암 역시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이 원칙이 개인적 복수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를 끝마친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로 법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테니까. 가장 정의로운 방식처럼 보이지만, 본인이 다시 복수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안타깝게도, 복수는 위임된 권력이 대신 행할 때에만 정당성을 갖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의 칼날은 제자신에게 돌아온다. 복수는 달콤한만큼 유독하다. 복수의 유독성이 가장 강력하게 분출하는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복수가 성공하는(혹은 성공했다고 믿는) 순간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복수의 이중성을 잘 담고있다. 복수라는 덫에 갇혀 허우적대는 두 남자의 이야기. 한 남자는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파멸했고, 다른 한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멈췄지만 영원히 구속된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사는 남자 '오대수'가 평생 수습하지 못할 과오를 저지르며 벌어지는 복수극이다.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15년 간 그를 감금했다. 오대수가 함부로 혀를 놀렸기 때문이다. 오대수는 이수애(이우진의 누나)와 이우진이 관계를 가지는 것을 목격했고, 친구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이수애는 학교에서 깨끗하지 못한 여자로 소문이 났고,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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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당 | 도구로 버려지기 싫었던 야당의 복수극
  •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익숙함 속 틀린 그림 찾기 한국 범죄 영화에는 익숙한 그림이 있다. 검사와 경찰은 항상 싸우기 마련이다. 검사의 일방적인 수사 명령에 끌려다니는 경찰은 한탄을 멈추지 않는다. 과거 시점이라면 검사가 경찰의 횡포에 짜증 내는 정반대 상황도 볼 수 있다. 정치인, 검사, 언론인의 회동도 빠지지 않는 광경이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을 가려주고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위해 끌어주는 이 그림은 <내부자들>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근래에 유독 핫한 그림도 있다. 마약이다. 버닝썬 게이트 전후로 한국 범죄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약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마약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방식도 대동소이하다.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마약 투여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재벌 및 유력 정치인 자제와의 연관성을 찾아내고, 마약 수사는 부패 사건 수사로 전환되는 식이다. <베테랑>, <더 킹>, <모범택시> 등 많은 작품이 정형화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야당>도 익숙한 그림으로 가득하다. 정치인, 검사, 언론, 마약 조직의 연계와 부패, 비리를 고발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수사기관 간의 갈등, 연예인 가십 등도 빠지지 않고 활용된다. 그런데 보다 보면 <야당>은 뭔가 다르다. 익숙한 그림 구석구석에 틀린 그림이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사건이 아닌 인물, 특히 같은 듯 다른 두 '야당'이 대조되는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단과 목적 사이 야당은 마약사범들 중 경찰이나 검찰 등의 수사 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범죄자들을 일컫는 은어다. 수사 기관과 범죄 조직 양쪽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일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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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상상했던 빛
  •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를 바탕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 흔히 '발리우드'라는, 인도 영화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이 있었다. 과장된 연기와, 뮤지컬식 구성 등등... 흔히 그런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그러한 선입견을 뛰어넘음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이하: 우빛상모)>의 예술적인 가치와 이 영화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소개해주고 싶다. *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현대 인도의 뭄바이와 작은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인도라는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이 영화를 충분히 깊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인도는 아직도 신분제가 작동하는 나라이며 결혼 제도 또한 초기의 대한민국 내지는 조선의 제도와 닮아있을 정도로 보수적이다. 가족의 기대와 사회적 규범 즉, '결혼은 어떠해야 한다'를 두고 그 관습이 강하게 적용되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 규범은 여성들에게 더 심하다. 여성들의 결혼은 마치 '인생의 역전'처럼 인식되고, 남편이 무엇을 하든 여성은 남자를 서포트해주어야 한다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다. 또한, 인도의 종교적 배경도 주목해야 한다. 인도는 힌두교가 약 80%, 이슬람교가 약 15%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 다종교 국가이다(출처 : 위키백과). 특히나 인구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뭄바이'에서는 여러 종교들이 한데 모여 (물론 힌두교가 비율상으로는 훨씬 많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도시이다. 특히 결혼과 연애에 대해 관습적이고 보수적인 인도 내에서 힌두교와 무슬림교 신자들 간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것이다.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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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균열의 시작, 변화의 끝맺음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해피엔드> 시사회의 리뷰입니다. 지진, 시위, 10대의 끝자락. <해피 엔드> 속 모든 것은 흔들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변화의 조짐 앞에서 방황하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들. 그들은 작은 꿈 하나만으로 넓은 세상을 꿈꾸고, 균열 어린 세상 앞에 생채기를 입는다. 몰래 클럽과 학교에 숨어들어 신나는 음악 파티를 벌이는 다섯 명의 친구들. 그 중 유타와 코우의 짓궂은 장난이 교장을 자극하고, 학교에는 학생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통제하는 AI 감시 체제가 도입된다. 이들이 살고 있는 근미래는 격동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다국적 인종으로 교실이 구성되어 있음에도 분열을 부추기듯 일본인과 비일본인의 구분은 극명하고, 허공에 일렁이는 전광판이 일본 도심을 비추는 가운데 사람들은 여전히 몸을 던져 시위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지진은 오죽하랴, 흔들리는 땅 위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혼란에 잠긴다. 그곳에서 10대의 끝자락에 서 갈림길로 나뉘는 아이들. 왜 그 시절의 우리는 무심코 평생 함께할 거라는 막연한 착각을 반복했던 걸까.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태생을 찾아, 또는 꿈을 좇아, 그리고 옳음에 눈을 뜨고 제각기 나아간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유타는 아직도 변함없이 어린 아이같은 인물이다. 여전히 음악으로 잘나가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고 고리타분한 선생들이야 따돌리면 그만. 하는 것이라고는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악기를 훔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뿐. 유타와 가장 가깝던 코우는 슬슬 유타의 철없는 행동을 전처럼 받아주기가 힘들다. 그러나 변함없이 음악과 친구가 전부인 유타 또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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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간의 의미, <곤돌라>
  • 영화 <곤돌라> (바이트 헬머, 2025)의 배경이 되는 곳은 한 산골이다. 이곳에서 곤돌라는 사람, 가축, 물건 등 다양한 것을 실어 나르며 마을과 마을 사이를 연결한다. 이곳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연결고리인 곤돌라는 나아가 곤돌라의 승무원인 ‘이바’와 ‘니노’의 사이를 연결한다. 두 사람은 곤돌라의 위쪽 정류장의 체스판으로 함께 체스를 둔다. 곤돌라가 운행을 해야 위쪽 정류장으로 이동해 말을 옮길 수가 있고, 곤돌라가 운행을 하면 두 정류장의 중간 지점에서 두 대의 곤돌라가 교차하며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을 태우고 다른 한 사람을 엇갈려 지나가던 영역은 어느새 두 사람이 함께하는 데이트 장소가 된다. 이러한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곤돌라를 소유한 남성이다. 그는 자신의 곤돌라가 이윤의 창출 수단이 아닌 연결과 연대의 장이 되는 것에, 또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이바가 니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에 불만을 품는다. 하지만 오해를 넘어서며 단단해진 이바와 니노는 그의 사적인 생산수단인 곤돌라를 탈환하여 주민들을 위한 공공재로 탈바꿈하는 데에 성공하고, 그가 곤돌라로 축적한 이익을 바로 그 곤돌라 위에서 흩뿌린다. 그리고 곤돌라의 높고 얇은 줄 위에서 뛰어내려 함께 단단한 땅에 발을 붙이고 걷는다. 영화에 대한 인상은 간단하게 ‘귀엽다’는 말로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이 이러한 인상을 만든다. 상황에 맞는 소품과 코스튬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고, 거대한 장치가 곤돌라 레일에 뚝딱 설치된다. 인물들은 말 대신 표정이나 몸짓, 비명, 웃음 등을 활용해 감정을 표현한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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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압축 파일을 풀다.
  • 이 글은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내가 '불호'라고 외쳐야 할 작품이었다."왜?"라는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데다가 어떻게 타임라인이 꼬이는 것인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4화에 걸쳐 한 사건을 설명하는 동안 마치 노래방 간주 점프 마냥 겅중겅중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다. 그런 것만 있다면 내가 억울하지라도 않지(?). 일 진행 속도가 마치 우리 부장님 수기 사인 한 번 받아내는 속도로 진행 되지를 않나(대충 매우 느리다는 뜻), 사건의 다각화는커녕 내 성격만 다각화되나(?) 싶을 정도의 집요한 원테이크로 사건을 따라가니, 이건 뭐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안 봐도 된다고 말로 해도 충분할 것만 같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덩그러니 내 마음속 저장이 아니라 저장 공간에 덩그러니 다운되어버린 이 방대한 압축 파일은. 자물쇠가 조금씩 열리는 그 모든 순간동안 내 다리를 초조함으로 떨게 하는 대신, 두려움과 숙연함으로 떨리게 했다. 이보다 더한 공포와 숙연함을 담은 파일은 앞으로도 한동안 보기 힘들 것임을 직감한 사람의 심정으로. 네 시간가량의 작품이 던져놓은 화두들 중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어른들로 대변되는 부모의 무지(無知, 존 스노우)가 과연 면죄부가 될 것인가? 였다. 세 명의 도둑이 있는데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행했고, 다른 한 명은 옆의 걔를 따라왔으며 나머지 한 명은 도둑질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행동했다 했을 때. 과연 어떤 도둑이 제일 나쁜 놈이냐.라는 문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정답(?)은 세 번째 도둑이었으며, 무지라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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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과라는 서정
  •  올타임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가 뮤지컬에 이어 이번엔 영화로 곧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주인공은 60대의 여성 킬러 '조각'으로 철저하게 원칙 아래 세상에 존재하는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방역' 하던 중 그녀의 삶에 등장한 새로운 얼굴들에 의해 그 원칙들이 조금씩 깨져가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에 대한 높은 평가와 더불어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좀 처럼 찾아 보기 힘든 60대 여성 킬러를 소재로 하여 잠잠해진 극장가의 새 바람을 불어올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보다 <파과>를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는 원활한 영상화를 위해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비롯한 디테일들을 구성하여 보다 풍부하게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122분의 러닝타임 빼곡히 자리한 조각을 둘러싼 새로운 만남들은 오랜 시간 만남을 꺼려왔던 조각의 마음을 뒤흔듦과 동시에 조각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적 특성을 빠짐없이 보여주게 된다. 특히 원작보다 풍성해진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는 조각과 상반된 모습과 시종일관 그런 그녀를 뒤쫓는 인물로 그려지며 궁금증을 더하고 조각의 삶을 위협하는 극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파과> 만의 또 다른 진면목이 등장하게 되는데, 관객은 중반부부터 어쩐지 투우가 조각을 향해 분노가 아닌 색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조각과 투우, 두 인물의 대면씬마다 생겨나는 이 의구심은 영화의 결말까지 주요 관람 포인트가 되어주며 결국 한 명이 그 '진실'을 알아내는 순간 그간 쌓아올린 인물들의 감정선이 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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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한 번쯤 꿔 본 도피의 꿈
  • 영화 <한국이 싫어서> 주연 고아성, 김우겸, 주종혁 감독 장건재 “행복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계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기로 했다. 때때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는다거나, 일정에 늦을까, 늦지 않을까를 마음속으로 재 보며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서 있다거나, 상사에게 혼이 났을 때,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그 수많은 순간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아, 못 살겠다.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한국이 싫어서>의 주계나와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1. 한국이 싫어서 – 남들 눈에는 안정, 내게는 불안정!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주계나는 이미 취직한 회사원이다. 그녀에게는 기자를 꿈꾸는 남자친구가 있다. 아직 학생이고, 취업을 준비 중이긴 하나 곧 취직할 예정인, 장기연애 중이라 특별히 적응할 것도, 불안감을 가질 것도 없는 남자친구. 다만 그렇다고 해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곧 이사를 갈 예정인 부모님은 선택할 수 있는 두 평수 중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자며, 계나에게 동생과 합해 삼천을 보태라고 말한다. 동생은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로, 사실상 계나 홀로 삼천을 보태야 하는 셈이다. 자신에게 삼천이 어디 있냐고 하소연을 해 보지만, 엄마는 적금 든 게 있지 않냐며 태연하기만 하다. 아빠는 신경쓰지 말라고, 우리가 해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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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 내 안에서 영화의 개념화는 서양, 특히 유럽과 미국의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시절 영화를 제대로 전공해보자고 결심한 이후 처음 수강한 강의가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의 영화들로 모든 역사적 자취를 설명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영화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했는지, 하다 못해 아시아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수업을 탓할 수는 없다. 영화가 설명되는 방식이 으레 그랬으며, 눈을 돌려 관심을 가지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는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서양 국가를 주제로 한 발표와 그 외 국가들에 대한 발표는 분량부터 차이가 났다. 유수한 영화제라 불리우는 국제영화제들은 모두 일부 국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그럴 만했다. 영화를 더욱 넓고 깊게 소비하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금의 나 또한 변함 없이 몇 국가의 작품들과 그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었고, 다양한 국가영화를 접하고 싶던 차에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감독이 여성 주연들과 함께 연출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눈이 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으나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을 멀리서나마 접해왔기에 영화로 만나는 인도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지 하루 빨리 알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 뭄바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에겐 해결되지 않는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  미리 말해두겠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여성영화는 아니다.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라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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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서하면 누구나 천국에 가나요?
  • 인간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에, 일상을 위협하는 자극을 경계한다. 적당한 낯섦은 건강한 스트레스를 만들어 발전의 동력이 되지만, 실연이나 시한부 선고처럼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만큼의 거대한 사건은 안정 궤도를 이탈할만큼의 큰 충격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고통은 한 번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독하므로 꼭꼭 씹어삼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성을 잃고 축 늘어진 고무줄처럼 망가진다. 인간은 다섯 단계를 거쳐 비애(悲哀)를 소화한다. <죽음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 스위스 출생 정신과 의사 Elisabeth Kübler-Ross가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서 설명한 인간의 슬픔 수용 모델. 죽음을 선고받은 뒤 이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있다. 부정(Denial):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분노(Anger) : "이 세상 수 많은 사람 가운데 왜 나야?" 협상(Bargaining): "한 번만 봐주시면 정말 착하게 살게요." 우울(Depression): "세상 모든 것 다 부질 없다." 수용(Acceptance): "여생을 잘 정리하자." 마주하기에 너무 큰 사건 앞에서 인간은 도망친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믿는다. 바꿀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닫고는 분노하기 시작한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온 세상을 원망한다. 그러다가는 이내 죄인으로 변해 하늘에 용서를 구한다. 전생을 탓하거나 일상의 업보를 운운하며 절대자에게 빌기 시작한다. 절대자는 부름에 응하지 않고, 좌절한 인간은 현실로 돌아온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다며 마음껏 슬퍼하고, 뚫린 구멍을 매만지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창동 감독 <밀양>의 주인공 신애의 삶에서 거대한 고통을 마주한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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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심과 확신 그 사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콘클라베>는 일관적으로 ‘이방인’에 주목한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서 알파벳 ‘I’만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다양한 알파벳을 흰색으로 칠하나 각 이름마다 단 하나의 알파벳만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교황을 선출하는 마지막 투표 전, 하얀 우산을 쓴 추기경들의 행렬 쇼트를 자세히 살펴보자. 한 명의 추기경이 우산을 쓰고 있지 않다. 투표를 앞두고 추기경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공유하는 씬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너 명씩 모여 있는 추기경들과 달리 추기경 한 명이 혼자 의자에 앉아 있다. 베니테즈 추기경은 이방인이다.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로렌스조차 알지 못하고 오직 선종한 교황만이 베니테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가톨릭 신자가 거의 없는 카불의 대주교로 로마에 온 추기경이며 준비된 명단에 없던 인물이다. 이 이방인은 로렌스의 부탁으로 추기경들의 식사 전 기도를 맡는다. 그는 주신 음식에 대한 감사뿐 아니라 식사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기도, 그리고 음식을 준비해준 수녀들에 대한 기도까지 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콘클라베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안락한 식사 자리가 일상이 아닌 이들을 떠올리고 있다. 여기서 수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수녀들은 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없다. 교황 선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당연히 교황이 될 수도 없다. 수녀 또한 콘클라베에서의 이방인에 해당한다. 그러나 콘클라베 자체는 수녀들의 노동력 없이 열릴 수 없다. 영화는 이러한 수녀의 역할을 조명한다. 마지막 교황 투표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씬에서 계단을 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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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가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 익스펜더블(Expendable),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 미키는 죽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한 인간이다. 쫓기듯 지구를 벗어나기 위해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원해버린 미키. 그들은 인류 발전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목하에 인간에게 해로운 온갖 인체 실험을 한다. 그리고는 다시 똑같은 신체, 똑같은 기억으로 완벽하게 휴먼 프린트를 한다. 인간이 해낼 수 없는 ‘*뺑이’, 그것이 미키의 운명이다. 하찮은 독재자 마크 러팔로는 자신의 역할인 케네스 마샬 역으로 하여금 3년 전 촬영할 때는 너무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This is over the top), 이제 와보니 너무 약한 연기(It‘s totally underplayed)였단 걸 깨달았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았을 땐, 이민자들을 배척하고 성별은 오직 2개라며 정체성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없게 시행 중인 ‘트럼프’가 떠오르고, 한국의 관점에서 보았을 땐, 지난 12월 3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언자가 되어버린 것. 어느 나라에서 보아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의 형태는 보편적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권력 있는 자들의 하찮음, 낮은 계급의 사람들의 멍청함. 필모그래피 초기 단편작 <지리멸렬>부터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세팅이다. 미키 17과 미키 18 크리퍼(Creeper)들에 의해 생존한 미키 17은 본부로 돌아와 미키18을 만난다. “I’m Fine.”을 말하던 미키는 이제 더 이상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게 되는 계기이다. 크리퍼에게 구해진 미키 17과 그 사실을 모른 채 프린트된 미키 18은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 ‘분리된’ 존재이기에 여기서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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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거야
  • SYNOPSIS. “빅밴드 재즈? 그게 뭐하는 건데?” 지루한 보충수업을 째고 싶었을 뿐, 토모코(색소폰) 야구부 선배에게 홀딱 반했을 뿐, 요시에(트럼펫) 남들보다 폐활량이 뛰어났을 뿐, 세키구치(트럼본) 어쩌다 친구 따라왔을 뿐, 나오미(드럼) 심벌즈가 적성에 안 맞았을 뿐, 나카무라(피아노) 짝사랑하는 재즈 덕후일 뿐, 수학 선생님(지휘) 대단한 이유 없음! 눈부신 재능 없음! 거창한 목표 없음! 그래서 우린 스윙한다♬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POINT. ✔️ 우에노 주리가 실제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촬영한 영화. 조금 엉뚱하고 풋풋한 매력이 빛납니다. ✔️ 그러나 배역 준비는 풋풋하지 않음. 실제로 배우들이 악기를 배워서 연기했다고 해요. ✔️ 교복 입고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우는 청춘 영화... 안 좋아하는 법 아시는 분? ✔️ <워터 보이즈>로도 사랑받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 작품입니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해맑게 나와서 각자의 청춘을 향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특정 시대 콘텐츠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다. 요즘 교복 입은 애들은 해맑게 청춘 타령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괴생명체랑 싸우고, 좀비 바이러스 퍼진 학교에 고립되고, 성매매에 연루되고, 온갖 폭력에 맞서고, 기껏 공부 좀 해보려는 애도 타고난 재능이 싸움이고 뭐 그렇다... 다시 말해 학원물 또한 액션물과 장르물의 파도를 타는 시대다. 갖은 욕망들이 드글드글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빨간 맛 드라마가 각광 받는 시대. 다이나믹한 스토리에 강한 K-콘텐츠 특성이기도 하고, 다이나믹한 현실을 노련하게 담아낸 창작물이라는 뜻도 되겠지만, 유순하고 말간 학원물이 이따금 그리울 때가 있다. 청춘 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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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 막히는 ‘우리의 시간’
  •  동급생 여학우 케이티(아멜리아 홀리데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13세 제이미 밀러(오언 쿠퍼).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일까? 왜 제이미는 그런 사고를 가지게 되었을까? 불쾌한 데이트 신청의 거절로 루저 프레임을 씌운 여자아이의 잘못일까, 죄책감 없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에 대한 화를 비정상적인 장식으로 분출하는 남자아이의 잘못일까. 그저 방관하고 놀림에 동조한 아이들의 잘못, 혹은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일까. 사건을 파헤치며 전개되는 시리즈 <소년의 시간>(2025, 필립 배런티니)는 “왜?”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며 현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숨 막히는 현실 체험, 롱테이크 약 60분의 러닝타임인 한 회를 각각 원테이크 기법으로 촬영하였다. 왜 굳이 원테이크로 촬영했을까? 인물의 1시간을 그대로 따라간다. 관객으로 하여금 숨이 턱 막히게 만든다. 캐릭터가 60분간 겪는 상황을 그대로 따라가며 관객은 타인의 삶을 ‘체험’하게 한다. 극중 인물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겪는 것, 실시간으로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현실감’을 표현하기에 원테이크는 그 어떤 연출 기법보다 효과적이다. 이것이 한 회당 3주씩 런쓰루를 하는 불편함에도, 흐름상 피해자에 대한 추모를 생략하는 아쉬움을 느낌에도, 롱테이크를 고집한 이유일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소년의 ‘시간’을 통해 문제의식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베일을 벗은 사건 담당 형사(애슐리 월터스)의 아들이 던져준 ‘인셀’이라는 단서로 사건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셀이란, 비자발적 순결주의자로, 연애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성소외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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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함 뒤의 악의, 두 소녀가 갇힌 집
  • 할리우드 제작사 A24는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영화로 옮기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회사다. <유전>, <미드소마>, <펄>처럼 감각적인 공포 영화를 선보이는가 하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언컷 젬스>, <더 웨일> 같은 드라마 장르도 파격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오락성과 작품성 중 하나만을 골라 집중하기보다는, 관객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점이 A24의 강점이다. 그래서 A24의 로고가 뜨는 순간, 왠지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오는 4월 2일 한국에 개봉 예정인 <헤레틱>도 그런 A24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점프 스케어나 피 튀기는 장면을 최소화하고, 심리적 압박감과 폐쇄감을 극대화해 ‘새로운 형식의 공포’를 시도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A24가 제작한 영화 중 7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두었으나, 정작 한국에는 정식 개봉하지 않아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작품이기도 하다. <헤레틱>은 두 명의 소녀 선교사가 외딴 지역에 사는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의 집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늘 그렇듯 문을 두드리고 자신들의 신앙을 전하려 애쓰지만, 비오는 날 만나게 된 리드의 집은 묘하게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거실의 불이 마음대로 꺼졌다 켜지고, 문이 잠기거나 창문이 어딘지 모르게 작고 답답해 보이며, 집주인 리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어쩐지 기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폐쇄된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첫번째 감정] 미스터 리드의 따뜻함 첫인상에서 리드는 순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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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빛으로 전하는 감사의 순환
  •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영화 <플로우>가 지난 19일 수요일 관객들을 찾아오게 되었다. <플로우>는 고양이X골든리트리버X카피바라X여우원숭이X뱀잡이수리라는 독특한 라인업을 캐치프레즈 삼아 홍보해온만큼 개봉 전부터 그 내용에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바 역시 있다. 그렇게 영화관에서 만난 어느 고양이의 특별한 여정은 기대 이상으로 더 깊은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그들이 살아있지는 않은 어느 자연. 우리들의 주인공 ‘고양이’는 영역동물답게 자신의 영역에서 때로는 물고기를 잡고, 때로는 개들에게 쫓기며 일상을 살아간다. 드문드문 보여지는 고양이 관련 상징물들은 이곳에 체류했을지 모를 인간에게 고양이가 존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듯 보여지나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 공생하는 동물들 만이 삶을 이어 나가고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건은 본격적으로 해수면이 차오르며 벌어진다. 이미 오래전 떠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님 그저 자신의 삶을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를 고양이의 모험은 물에 잠길 위험을 몇 번이나 거듭한 끝에 저 멀리서 떠내려온 배 한 척에서부터 비롯된다. 하지만 이미 배에는 낯선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관객은 하고 많은 동물 중 왜 고양이가 그 주인공 되었는지 짐작이 가능해진다. 경계심과 겁이 많고 영역에서 생활하는 동물, 물을 꺼리고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동물이기에 대사를 비롯한 장치가 굳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고양이라는 주인공에게 모험은 그 자체로 시련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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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 나이트>,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는 과정
  • <그린 나이트>, 현실이 영화로 이행되는 과정 활짝 열린 사각의 창틀 너머를 관망하던 카메라가 그 배면에 잠들어 있는 주인공의 얼굴을 담기까지, <그린 나이트>의 도입부는 <이창>(알프레드 히치콕, 1954)의 그것과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두 영화의 카메라는 모두 누군가의 시점처럼 운용되다가 그 시점의 주체를 다른 차원의 것으로 전환시킨다. <이창>에서 건너편 아파트 내부의 은밀한 공간을 훑으며 관객의 ‘훔쳐보기’ 욕망을 자극하던 카메라는 돌연 휠체어에서 잠을 자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면서 해당 쇼트가 특정 인물의 시점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탄로한다. 이 쇼트는 다름 아닌 관객의 시점 쇼트였다. 그렇게 히치콕은 <이창>이 영화와 관계하는 관객의 관음증적 욕망을 다룬 메타 영화임을 드러낸다. <그린 나이트>의 도입부에서 창틀 너머의 이름 모를 기사 부부와 가축들을 한동안 관조하는 쇼트는 마치 움직이는 그림을 감상하는 누군가의 시선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불현듯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까지만 해도 특정 인물의 뒷걸음질로 여겨졌던 쇼트는 후진의 움직임을 계속하면서 그 주체가 작중 인물이 아님을 밝힌다. 동시에 바깥의 세계를 투사하는 틀이 스크린 모양의 사각 창틀이라는 점을 넌지시 드러내며, 여자 친구의 물세례를 받고 번쩍 잠에서 깨어나는 주인공 가웨인의 모습을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다. 그렇게 카메라는 하나의 움직이는 그림(영화)처럼 표현된 예술 세계와 차가운 물의 성질을 즉각 몸으로 받아들이는 현실 세계를 연계하며 두 세계의 물리적 단절과 내적 긴밀함을 동시에 암시한다. 현실에서 예술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 세계를 흐릿하게 처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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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래디 코베의 정육면체는 무엇을 말하는가
  • 전쟁과 홀로코스트로 인해 국경을 넘지 못했던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은 먼저 미국 땅에 당도해 있던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가 한창 작업 중인 ‘마가렛 밴 뷰런 인스티튜트’의 도면을 보며 말한다. “당신을 보고 있어.” 라즐로와 오랜 기간 마음을 주고받았을 에르제벳은 헝가리에서 타국으로 건너와 생활하고 있던 남편 라즐로의 속내를 건축 도면에서 읽는다. 건축가이자 남편인 라즐로 토스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걸 에르제벳은 알고 있다. 에르제벳은 라즐로를 이해하는 만큼 마음과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 동반자다. 에르제벳이 라즐로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터전을 잃은 유대인 건축가가 사라지지 않을 건축물이자 자기 자신을 건설하려는 이야기다. <브루탈리스트>에서 중요한 것은 이민자의 역사나 자본의 폭력성보다 한 예술가의 집착에 가까운 신념이다. 라즐로는 직접 정육면체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라즐로는 건축, 즉 자신의 예술품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예술적 신념을 굽히지 않는 건축가에게 3,4미터의 높이나 대리석의 종류와 색은 절대로 사소한 부분이 아니다. 자신의 급여를 내놓아서라도 지켜내야만 한다. 라즐로가 건축을 택한 이유는 그 ‘영속성’에 있다. 시간과 침식 속에서도 견고한 본질을 잃지 않는 것. 파시즘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유린당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춰 해석되더라도 침식되지 않을 건축이야말로 라즐로의 삶이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조피아는 ‘마가렛 리 밴 뷰런 인스티튜트’와 수용소의 유사성을 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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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넓은 우주 속 나의 여정이 특별한 이유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세 개의 부, 1부 'Everything' 2부 'Everywhere' 3부 'All at Once'로 나뉘어져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에블린이 자신의 '모든 것' (에블린의 모든 감정과 고민들 그리고 능력)을 '모든 곳' (다양한 차원에서 에블린의 모습)을 '한꺼번에' 마주하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다. 영화 내내 많은 정보가 쏟아져나오고 다중우주가 나오면서 혼란스럽다는 평도 있지만,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삶의 철학을 얻는다. 모순에서 얻는 용기 이 영화가 주는 위로와 용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모든 것이 모순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 오히려 그 모순이 삶을 살아갈 힘이 된다. 우리는 흔히 실패와 성공, 무의미와 가능성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 경계를 허문다. 내가 실존하는 우주에서 실패했기에, 다른 우주에서 성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진동하며 중첩되는 미립자의 무작위 재배열에 불과한 세계이기에, 부질없는 세상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도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하찮고 어리석으며, 때로는 허접한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 역설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때로 모순 속에서 길을 잃더라도, 결국 그 속에서 용기를 얻고 다시 걸어간다. 가끔은 온 세상이 허무해보이고 절망적이지만 나만의 개성으로 살아남기 '내가 늘 세상을 밝게만 보는 건 순진해서가 아니야 전략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이지 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았어' 영화 중 에블린 남편 웨이먼드의 대사이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너무 순진하고 어리숙해보이고 답답해보이지만 결국 가장 단단하고 강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웨이먼드의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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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제된 악의 미학
  •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깊은 악역 캐릭터로 빠지지 않는 그 이름, 한니발 렉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는, 영화 속에서 신입 FBI 요원 클라리스 스털링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범죄 심리 스릴러의 정점을 찍으며 동시에, 둘 사이에 미묘하게 흐르는 애틋함은 이 영화를 더욱 깊이 있는 작품으로 만든다. 살아숨쉬는 캐릭터의 품격 주인공 클라리스 스털링은 FBI 연수생으로, 연쇄 살인범 ‘버팔로 빌’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그녀가 범죄자를 추적하던 중 자신의 과거와 겹쳐 보이게 되고, 한니발 렉터 박사에 의해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안겼던 사건을 꺼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자신이 지키지 못한 양들의 울음소리에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그녀는 과거를 마주하고, 피해자를 구출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극복했다. 영화는 스털링의 내면을 세밀하게 조명하며, FBI와 범죄자의 세계에서 자신 내면과 싸우며 극복하고 한니발 렉터의 주도권을 서서히 잡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인상깊게 남는다. 한니발 렉터는 잔인한 식인 살인마이면서도 품격과 예의를 갖추었으며, 뛰어난 지적 능력까지 지닌 인물이다. 그의 대사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면도날 같은 질문이며, 그를 마주한 순간 상대는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내면의 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렉터는 등장하는 장면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며, <양들의 침묵>을 단순한 스릴러에서 심리적 탐구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 중 하나는 한니발과 스털링의 관계다. 렉터는 스털링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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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Trailers

Awesome trailers from cinLab
    • 영화 <호랑이 소녀> 메인 예고편
    •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 [#호랑이소녀] 메인 예고편 대공개🎬 "악마를 몰아내자!" 😱 말레이시아 오컬트 바디 호러가 온다! [호랑이 소녀] 5월 7일 대개봉🔥
    • 영화 <기동전사 건담 F91> 메인 예고편
    • 깨어나라 우주! 건담 신시대 제 1장 ‘크로스본’ 시리즈의 시작! 아무로와 샤아의 최후의 결전 이후의 세계를 그린 [기동전사 건담 F91] 메인 예고편 대공개🌌!
    • 영화 <하이파이브 Hi-5> 1차 예고편
    • 제가 이식 받은 게 장기가 아니라... 초능력이라구요?😱😱 🎬#하이파이브 1차 예고편 공개! 우리는 초능력을 이식 받았다🫀🔁 [하이파이브] 6월 3일 극장 대개봉 #하이파이브 #강형철감독 #이재인 #안재홍 #라미란 #김희원 #유아인 #오정세 #박진영 #6월3일극장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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