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10-02 09:37:19
나... 부국제 가지 못했으니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개봉작
사실… 부러워만 했던…부산국제영화제🥲
괜찮아요… 개봉(공개)작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다른 영화들도 얼른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이 가장 기대하는 개봉(공개) 예정작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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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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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알고리즘] 빛나고 행복했던 우리의 꿈, 나의 로봇 친구
[무비 알고리즘 Movie Algorithm]:
[무비 알고리즘]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본다. 너무나 달라보이는 영화들. 하지만 영화 하나하나를 조금씩 살펴보면, 우리는 그것들에게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무비 알고리즘의 연결고리는 ‘로봇 친구’이다. 지금부터 로봇 친구라는 연결고리로 묶인 네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살펴보자.이른 아침, 나를 깨우는 기계 소리. 윙윙거리고, 철컥거리는 그 소리에 잠깐 놀라지만 이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것의 목소리. “친구야, 일어나!” 녹슬지 않을까, 꺼져버리지 않을까, 늘 곁에서 보살피고 신경 써야 하는 나의 친구. 하지만 그 친구의 따뜻함과 사랑은 그 귀찮음과 수고를 이겨내게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에게 가장 행복한 날들을 선물한, 평생의 친구. 나의 ‘로봇 친구’들을 소개한다.
<아이언 자이언트 The Iron Giant>
- 영화: 아이언 자이언트 (1999)
- 감독: 브래드 버드
- 출연진: 제니퍼 애니스톤, 해리 코닉 주니어, 빈 디젤 外
‘회색 빛 친구’
냉전시대가 한창이던 1957년, 미국의 한 시골 마을. 근처 바다 한가운데로 대형 고철 덩어리 ‘아이언 자이언트 (빈 디젤 分)’가 불시착한다. 마을에 사는 아홉 살 소년 ‘호가드 휴즈 (일라인 멜리언솔 分)’는 우연한 계기로 그 고철 덩어리를 만나 그를 구해주게 되고, 그에게 자이언트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이렇게 그 둘은 친구가 되어,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정부 요원 ‘켄트 맨슬리 (크릭스토퍼 맥도날드 分)’가 마을을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아이언 자이언트의 존재를 장군에게 알리면서, 두 친구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최강 우주병기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착하기만 했던 아이언 자이언트. 그리고 말썽꾸러기이지만, 아이언 자이언트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호가드. 과연 그들의 우정은 변함없이, 영원할 수 있을까.
‘나를 움직이게 하는’
영화는 작가 ‘테드 휴스’가 쓴 SF 동화 ‘The Iron Man’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거대 로봇과 소년의 우정이라는 원작의 설정만을 사용했을 뿐, 영화는 상당 부분 수정을 거쳐 탄생했다. 따라서 동화 같이 마냥 따뜻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원작보다 칙칙하고 현실적이어서 우리에게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소년과 거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많이 있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거인이 아닌 거대 로봇이다. 이로 인해, 생명체의 따뜻함과 기계의 차가움이 느끼게 해주는 온도차와, 점점 더 가까워지게 하는 온기는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겉으로 보았을 때 차갑고 무서워 보였던 자이언트. 하지만, 기계인 자이언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열기인 것처럼, 그의 말과 행동은 뜨거운 온기를 내뿜는다.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해준 호가드와 초월적인 우정을 나누는 자이언트는 영화 내내 호가드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인다. 친구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이언트의 대사 ‘슈퍼맨’은 수많은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통틀어 놓고 보더라도 상징적이고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내가 되고 싶은 것’
영화는 실사 영화보다 공감이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며, 인물에게 몰입할 시간조차 부족한 짧은 러닝타임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 ‘브래드 버드’의 눈부신 재능은 작품에 관객들을 빠져들게 한 것을 넘어서, 무생명체인 로봇에게서 인간보다 더 깊은 사랑을 느끼게 만들었다. <토이 스토리>와 <니모를 찾아서> 등 많은 명작을 탄생시킨 감독이지만 그는 해당 작품을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아마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영화에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감독은 자신의 누나가 남편에게 총기로 살해당하는 아픈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건을 겪고 “총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 총은 자신이 총이 되고 싶지 않다면?”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감독의 아픔과 생각은 자연스럽게 자이언트에게 녹아 들었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사실 지구 침공을 위한 정찰기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작중에서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는데, 정작 자이언트 본인은 자신이 사람들을 해치는 총이 아니라고 말한다. "네가 무엇이 될지는 너 자신이 선택하는 거야”라는 ‘딘 맥코핀 (해리 코닉 주니어 分)’의 말. 그 말에 대한 대답이라도 하듯, 자이언트는 결국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을 불태워 모두의 친구 슈퍼맨이 되었다.
<빅 히어로 Big Hero 6>
- 영화: 빅 히어로 (2014)
- 감독: 돈 홀, 크리스 윌리엄스
- 출연진: 라이언 포터, 스콧 애짓, 다니엘 헤니 外
‘너의 선물, 나의 선물’
샌프란소쿄에 살고 있는 14살의 천재 소년 ‘히로 (라이언 포터 分)’. 형과 유달리 가까웠던 히로는 형인 ‘테디 (다니엘 헤니 分)’의 죽음 이후,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테디가 만든 헬스케어 로봇 베이맥스와 우정을 나누며, 다시 이겨내게 된다. 결국 그들은 형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히로는 테디의 대학 친구들과 팀을 이뤄 ‘빅 히어로 6’를 결성하고, 테디의 원수인 ‘스푸키맨’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한다. 과연 그들은 테디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고 온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얗고 푹신푹신한’
해당 영화 역시 원작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마블 코믹스의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그 원작이다. 그러나, 작품 속 베이맥스는 평소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마블의 슈퍼히어로들과는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하얗고 푹신푹신한 힐링 로봇인 베이맥스는 정말 보기만 해도 귀여워 곡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만든다. 또한 필자는 베이맥스가 동그랗고 하얘서 히어로가 아닌 사랑스러운 곰인형을 보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5살만 어렸다면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을 것 같은 정도였다.
작품에는 베이맥스뿐만 아니라, 테디의 친구들로 구성된 언럭키 어벤져스 느낌의 ‘빅 히어로 6’팀도 등장해 화려한 액션신 을펼친다, 이로 인해 슈퍼 히어로 영화의 느낌도 살짝 느껴진다. 또한 ‘샌프란소쿄’라는 이름의 샌프란시스코와 도쿄를 합쳐놓은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동서양의 문화가 만든 독특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특히 영화는 주인공의 이름이 ‘히로’인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로 인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던 연출과 오마주를 찾는 재미도 있다.
‘너만을 위한 나’
이렇게 시각적 재미를 뒤로 하고 스토리를 놓고 보더라도, 영화는 히로와 베이맥스의 우정을 전형적이지만, 단단하게 표현했다. ‘상실의 그림자 속에서 피어난 우정’ 이 말이 베이맥스와 히로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말인듯 하다 사고로 형을 잃어 완전히 고립된 히로 앞에 나타난 베이맥스는 히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어딘가 뚝딱거리고 서투르지만 진심으로 히로를 걱정하는 베이맥스의 마음과, 베이맥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활력을 되찾는 히로를 보며 우리를 미소 짓게 된다.
사실 포스팅을 위해 영화를 다시 보기 전에는, 내가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단순히 베이맥스의 귀여운 외모에 홀려 영화 전체를 미화하여 기억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중에서 슬퍼하는 히로를 위로해주기 위해, 베이맥스가 틀어주는 녹화된 형 테디의 영상 기록을 틀어주는 장면을 비롯해 섬세하게 쌓여가는 둘의 ‘친구되기’ 과정들을 보고 역시 <빅 히어로>는 따뜻하고 좋은 영화가 맞다는 확신을 했다.
영화 속에서 베이맥스는 히로에게 "나는 당신의 건강 관리를 위해 존재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베이맥스는 단순히 건강을 돌보는 로봇이 아니라, 히로의 마음을 치유하고 성장을 돕는 존재이다. 이처럼 "빅 히어로"는 우정이 단순한 친구 관계를 넘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성장하게 만들어 결국 모두를 ‘히어로’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와일드 로봇 The Wild Robot>
- 영화: 와일드 로봇 (2024)
- 감독: 크리스 샌더스
- 출연진: 루피타 뇽오, 페드로 파스칼, 캐러린 오하라, 빌 나이, 킷 코너, 마크 해밀 外
‘처음 널 만난 순간부터’
운송 중 사고로 인해 유니버설 다이나믹스社(사)의 한 로봇이 야생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 로봇의 이름은 ‘로줌 유닛 7134 (루피타 뇽오 分)’. 인간을 돕기 위해 설계된 최첨단 로봇이었다. 그렇게 야생에 떨어진 로줌은 야생의 생활을 익히던 중, 한 기러기의 알을 구하게 되고 그 알에서 기러기가 태어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로줌를 따라다니는 기러기. 그렇게 로줌은 그 기러기의 엄마가 된다. 결국 로줌은 새에게 ‘브라이트빌 (킷 코너 分)’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를 돌보고 교육시키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입력시킨다
브라이트빌이 겨울 이주를 위해 비행법을 배우는 동안, 로줌은 여우 ‘핑크 (페드로 파스칼 分)’와 함께 동물들과 협력하며 섬 생태계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브라이트빌이 자신이 남들과 다른 것과 로줌이 자신의 부모를 실수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들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로줌을 찾으러 유니버설 다이나믹스社(사)의 로봇들이 섬에 도착하는데, 과연 로줌과 브라이트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로봇 생존기’
대부분의 로봇이 나오는 영화가 그러하듯이 로봇 캐릭터는 낯선 곳에 도착해 경계 받는 미지의 존재처럼 등장한다. 해당 영화에서 로줌은 정말 특별한 환경에서 새롭게 살아간다. 로줌이 도착한 곳은 인간의 손길 하나 닿지 않은 자연이었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자연. 그곳에서 로줌은 모든 동물들의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고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최첨단 기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자연에 적응하는게 아니라 숲 속의 동물들은 그를 더욱 경계하고,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결국, 로줌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들의 지혜를 흡수하기시작했다. 먹이를 구하고, 집을 짓고,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로줌은 점차 야생에 적응해 간다. 동물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가는 로줌의 모습은 따뜻한 감동을 준다. 인간 혼자 자연에서 살아가는 것도 이질감이 들 텐데 철로 이루어져, 반짝반짝 광이 나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로봇이 ‘자연에서 살아남기’를 찍듯 살아가는 모습은 어딘가 더 특별하게 보여졌다.
‘내가 되는 것’
작품은 ‘로줌, 핑크, 브라이트빌이라는 세 존재의 우정과 가족애’를 다룬다고 생각해도 좋지만, 평생 남을 위해서만 살아왔던 누군가가 자신만의 의지와 마음을 갖는 영화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입력된 값으로만 행동하고, 타인의 만족을 위해서만 살아가던 로줌은 브라이트빌을 키우면서 점점 의지와 사랑, 모성애를 갖게 된다. 브라이트빌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며 로줌이 행복해지는 것은 결국 로줌이 다시 타자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브라이트빌은 로줌에게 어느 순간 타자가 아닌, 가족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로줌을 졸졸 쫓아다니다가 사춘기가 되자 로줌과 다투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후회하며 다시 사과하려는 브라이트빌의 모습은 영락없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종을 초월한 두 존재의 교감은 우정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로줌과 브라이트빌은 모두 프로그래밍이 된 존재다. 로줌은 자신이 아닌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야 했으며, 브라이트빌은 자신의 아픈 몸에 좌절하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 둘 모두 입력된 한계를 이겨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서로가 곁에 있어줬기 때문이다.
로줌에게 사랑으로 길들여진 여우 핑크, 로줌에게 로즈라는 이름을 선물한 브라이트빌. 어린왕자는 섬을 떠났지만, 장미는 섬에서 평생 어린왕자를 기다려 왔다. 그리고 계절이 지나 어린왕자가 다시 장미 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장미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그들은 서로의 소중한 관계를 다시 정의한다.
<로봇 드림 Robot Dreams>
- 영화: 로봇 드림 (2023)
-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 무성 영화
‘손을 맞잡고’
어느 때와 다를 것 없던 조용한 밤, 오늘도 혼자 냉동식품과 TV 앞에 앉은 ‘도그’는 문득 옆집 창문을 보게 된다. 자신과 다르게 행복한 그들. 처량한 자신의 신세에 도그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때 TV에서 방송되는 한 광고. 도그는 광고를 보더니 홀린 듯이, 주문 버튼을 누르게 된다. 다음날 도착한 상자. 상자를 열고 헐레벌떡 그것들을 조립하니, 멀끔한 ‘로봇’ 하나가 눈을 떴다.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친구를 얻는 도그. 도그는 로봇과 함께 뉴욕 곳곳을 누비며 잊지못할 행복한 여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해변에 놀러가 물놀이도 하며, 여유를 즐기게 되는데 집에 갈 때가 되자 로봇이 물에 녹슬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혼자 로봇을 옮길 수 없었던 도그는 눈물을 참고, 로봇을 둔 채 집으로 향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수리 도구를 들고 돌아온 도그. 그러나 해변은 내년 6월까지 폐쇄되었다. 그렇게 이별하게 된 도그와 로봇.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함께 추는 춤’
<로봇 드림>은 앞선 로봇 친구들이 나오는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영화였다. 가장 큰 차이점은 로봇과 도그(인간)의 관계가 완전히 수평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었다. 로봇과 인물/생명체가 능력이든, 역할이든 차이점이 명확하였던 앞선 영화들과는 달리 로봇 드림 속 도그와 로봇의 관계는 정말 ‘친구’였다. 물론, 로봇을 처음에 조립하고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도그라고 할 수 있지만 작품 속에서 도그는 창조자나 사용자로 그려지지 않았다.
로봇이 사용자를 위해서 수직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본인 모두가 행복을 느끼는 존재로 묘사된 것은 작품의 큰 매력이다. 이러한 수평적 관계가 가능했던 것은 로봇과 도그 모두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였고 영화 역시도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한 인물이 일방적으로 표현하고 말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두 주인공 모두에게 우리는 최대한 공평하게 이입할 수 있었다.
‘녹슨 꿈에 빠져’
로봇 드림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필자는 로봇을 통해 도그가 외로움을 이겨내고 자신이 이루고 싶어하는 꿈을 이루게 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꿈을 꾸는 대상은 도그가 아니라 로봇이었다. 추운 겨울, 홀로 해변에 남아 도그를 그리워하던 로봇. 다리를 하나 잃으면서도 계속해서 도그의 집으로 향해 도그를 만나는 로봇의 꿈들은 항상 슬픈 결말로 끝이 났다. 우정에 관한 영화이지만, 그들이 함께 있었던 시간은 9월이 전부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가 없이 1년을 보냈고, 다시 9월이 되었을 때 그들 곁에 있던 것은 서로가 아니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을 분리시키고, 꿈과 상상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는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렇게 물리적 거리를 고정하고, 둘의 마음과 생각에 온전히 빠져들게 하니, 오히려 둘 사이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영화는 현실과 꿈을 계속해서 반복시킨다. 오즈의 마법사 속 양철 나무꾼이 되어, 도그가 있는 뉴욕으로 향하는 꿈을 꾸는 로봇. 그가 그 꿈에서 걷던 걸음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로봇의 주위에는 수많은 꽃들이 함께 있고, 로봇의 목적지에는 빛나는 무지개가 떠있지만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꿈이 얼른 끝나 로봇이 그만 상처받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들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노래했던 <September- (Earth, Wind & Fire)>. 영화 초반 그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공원에서 함께 추던 춤은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서로가 없었다. 스쳐가는 인연을 다시 붙잡을 수 있지만 놓아준 그들. 로봇판 환승연애의 느낌으로 서로를 과거에 묻어두기로 한 그 결정은 모순적이게도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위하고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했다.
행복했던 9월의 순간은 분명 너무나 짧았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들은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바쳤다. 그랬기에 언젠가 <September>이 거리에서 흘러나와 다시 그 순간을 생각했을 때 변함없이 미소 지을 것이다.
‘가장 따뜻한 너’
내가 다가가서 전원을 켜줘야 비로소 움직이는 로봇처럼, 우정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먼저 다가가는 것도 필요하다. 친구 사이에서 싸우고 또 멀어질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친구와 항상 잡았던 그 손이 그립다면 용기를 내어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낸 작은 용기는 차갑게 식었던 나의 손과 너의 손을 금새 따뜻하게 만들 것이다.
너무나 익숙해져 소홀해진 이후에 지나간 순간들을 뒤돌아 보지 말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늘 내 곁에 있던 너의 눈을 마주하고 말하자. “고마워. 서로의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만들 너와 나, 그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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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개인의 기억에서 사회의 구조로
시놉시스
<증거>는 미국 정치 및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치는 검은돈의 영향, 그리고 기업 투자에 대한 분석이면서 동시에 가족과 돌봄이라는 개념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이다.
영화 정보
감독: 리 앤 슈미트 (Lee Anne SCHMITT)
제작국가: 미국
제작연도: 2025년
상영시간: 76분
장르: 다큐멘터리
상영 형식: DCP, 컬러/흑백
상영 섹션: 영화보다 낯선
아시아 프리미어
리뷰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된다.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며 영화의 첫 페이지를 펼친다. 무역회사에 다녔던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다양한 인종의 인형들을 선물해주었고, 그녀는 그 인형들을 통해 세계를 처음 마주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 회상은 곧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 놓인 미국의 거대기업, ‘올린’이라는 실체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감독의 아버지가 일했던 무역회사의 주요 거래처는 바로 올린이었다. 세계 곳곳으로 제품을 수출하며 부를 축적한 이 기업은, 화려한 외관과 달리 내면에는 수많은 폐해를 숨기고 있었다. 올린은 수많은 공장을 개발도상국과 미국 내 저소득 지역에 설립했는데, 이들 중 다섯 곳 중 세 곳이 흑인과 히스페닉 인구가 밀집해 사는 지역이었다.
공장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 즉 인구 분포다. 왜냐하면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그 피해가 누구에게 닿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철저한 계급과 인종적 계산이 깔린 결과다. 올린은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오염된 곳에 모여 산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오염된 곳으로 가난한 이들을 몰아넣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결국 그 지역의 사람들, 주로 흑인과 히스페닉계 주민들은 오염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건강을 잃고, 부를 축적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이 구조 속에서 가난은 세습된다. 올린은 한편으로 대학 재단과 연구소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보수주의의 새싹’을 키워낸다. 이 기부는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확산시키고, 인종차별과 성차별, 동성애 혐오 등 극단적인 가치관을 세력화하는 데 사용된다.
이들이 펴내는 책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 ‘남성은 동성애를 기피해야 한다’, ‘복지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사유재산은 신성하다’. 이러한 주장들은 단지 의견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교육, 법제도의 재구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논리로 발전된다.
보수집단은 복지제도를 공격한다. 왜냐하면 복지제도가 확대될수록,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곧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고, 이는 강자들의 체계를 위협한다. 따라서 그들은 가족, 사유재산, 전통적 가치의 신성화를 통해 이 시스템을 방어하고자 한다.
‘가족’은 이 서사의 또 다른 축이다. 감독은 가족이 신격화되는 구조를 비판한다. 부의 세습을 위해 가족이 필요하고, 자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은 혼자 살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에 보수집단은 불안을 느끼며, 가족이라는 형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폭력, 성폭력은 가족 내부, 혹은 아는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성역으로 간주되고, 문제를 숨긴다.
이 다큐멘터리는 ‘나의 가족’에서 출발하여, 미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자본의 논리를 하나하나 따라간다. 그리고 이는 결국 다시 ‘나의 가족’으로 되돌아온다. 이 순환의 구조는 단지 개인의 회고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재생산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다큐 속 내레이션은 차분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대신 각 장면마다 문헌과 기록, 논문과 기사, 인터뷰와 영상 자료 등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시청자의 사고를 이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상영될 수 있었던 의미는 크다.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미국 사회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한국 사회에도 깊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가족이 부의 재생산 단위로 기능하고 있다. ‘비혼’과 ‘1인가구’가 증가하면서 사회는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중심의 제도와 문화는 견고하다. 동시에 복지에 대한 혐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성소수자 혐오 역시 한국 사회에서 점점 목소리를 얻고 있다. 미국의 문제는 한국의 문제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 다큐는 말한다. “나는 다양한 인종의 인형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인형들은 귀엽고, 색이 다르고, 머리 모양이 달랐다. 나는 그것이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인형들의 고향은, 올린이 만든 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이 말은 이 작품의 본질을 드러낸다. 세계는 연결되어 있으며, 한 개인의 과거는 자본과 권력, 구조와 역사 속에 깊이 묻혀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를 낱낱이 파헤치며, ‘왜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진짜로 바꿔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작품은 단지 고발의 다큐가 아니다. 그것은 연결의 다큐이며, 성장의 다큐이고, 기억의 다큐이며, 결국에는 질문의 다큐다. 감독은 가족을 통해 세계를 보고, 세계를 통해 가족을 다시 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다큐가 존재하는 이유다.
상영 일정
2025년 5월 2일 10:00
메가박스 전주객사 5관
2025년 5월 5일 10:30
메가박스 전주객사 4관
2025년 5월 9일 10:00
CGV 전주고사 8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 2025.04.30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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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함의 미학, <해피 엔드>와 <달콤한 인생>
오늘 학생과 얘기하다가, 사람들은 미묘한 관계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피 엔드>를 본 관객들은 두 사람의 감정이 사랑인지 우정인지에 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헷갈린다). 만에 하나 둘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이 영화에 대해서 지금처럼 계속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키스는 미묘함을 끝내는 확실한 방법이다. 퀴어 영화에서 스킨십은 영화의 독해가 불가능한 이성애중심주의적 관객들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퀴어 영화는 퀴어 비평으로 읽어 볼 만한 재미가 있는 작품들이 드물다.
어쨌든 나 또한 이분법의 논리에 빠져 있었고, 영화 시놉시스를 쓰는 수업시간에도 인물들의 감정선은 명확해야 한다고 늘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는 모호함의 미학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다. 모호함의 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인생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성에서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달콤한 인생>도 모호함에 관한 영화였다. 조폭인 이병헌이 자기 보스랑 맞짱을 뜨는 이유는 ‘왜 흔들렸는지’ 말을 못해서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이병헌의 질문만이 강조되어 들렸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 그런데 어제 다시 보니 대답을 안 한 건 이병헌이 먼저였다.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관객은 영화를 추동하는 그 핵심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랬기에 이 영화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 같다.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으로 한국의 느와르 장르를 해 보고 싶었는데, 그 안에는 사실 한 남자의 어떤 섬세한 심리가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모호함’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모호함에 관한 것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같았다고. <해피 엔드>와 <달콤한 인생> 두 영화 모두 모순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해피 엔드>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고, <달콤한 인생>도 달콤한 인생을 그리지 않는다. 영제는 <A Bittersweet Life>로 더욱 직접적이다. 우리는 어쩌면 명확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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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좋아하는 가수로 주저 없이 스다 마사키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장발, 넥타이, 통기타를 들고 목소리를 긁어가며 부르는 ‘사요나라 엘러지’ 영상을 족히 50번은 본 듯하다. 그의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 대해서 알기 싫었던 마음이 있었다. 노래에 대한 감상이 그 가수의 사생활이나 성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이 싫었다. 그가 배우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은 곧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주인공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처럼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감정을 덮지 마. 어젯밤의 여운 속에 있고 싶단 말이야.” 우연히 지하철 첫 차를 기다리며 가까워진 무기(스다 마사키)의 집에서 돌아온 후 키누가 한 생각이다.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내가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이미 그가 읽고 있다. 너무나도 닮은 그들은 서로를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었다. ‘전철을 탄다’라는 말 대신 ‘전철 속에서 흔들린다’라는 말을 쓰는 무기를, 평생을 의문스러워 한 가위바위보의 규칙을 똑같은 이유로 이상하다 여기는 키누를 말이다. ‘운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일. 무기와 키누의 첫 만남이었다. 21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나이에 만난 그들은 싱그러운 사랑을 나눈다.
비록 지하철역에서 30분 동안 걸어가야 하지만, 강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빌라에서 같이 살게 된 그들은 20대 중반을 함께 마주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어도, 울고 있는 나의 앞에 슬리퍼를 신고라도 달려와 줄 당신이 있기에 그래도 괜찮은 날들이 이어진다. 인생의 목표가 ‘키누와의 현상 유지’였던 무기. 그러나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나선 후, 그의 다짐은 어딘가 어긋나게 된다. 재미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은 키누와, 인생은 책임이라는 무기. 서로가 점점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만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키누는 점점 메말라간다.
끝내 헤어짐을 택한 그들은 함께 골랐던 커튼을 정리하고 가구를 옮기며 차근차근 서로의 흔적을 덜어낸다. 그 과정이 너무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매 순간 서로를 후회 없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준 이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별하고,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약속하며 축하를 받기도 한다. 어떤 것이 좋은 결말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알 수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서로를 인생에서 분리해 내기란 당연하게 어려운 일이고, 함께했던 일상에서 혼자로 돌아가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의 젊음을 함께 나눴던 이가 있다는 것, 함께한 시간들이 나의 궤적이 되는 것 역시 값진 일일 것이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그 애달픔을 즐길 수밖에 없다.” 주인공 키누가 즐겨보던 블로그의 한 문장이다. 살아있는 꽃은 꺾는 순간 그 생명을 잃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시들어간다. 메말라 버릴 미래를 그리며 안타까워하기에는 그 당장 눈앞에 놓인 싱싱함은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언젠가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사랑이 있기를, 찾아오기를, 있었기를 바란다.
Editor.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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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없을지도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프 맥페트리지는 그래픽 디자인 계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이지만
일반인들은 그의 이름은 모를 수도 있다.
배우들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나. 그 배우의 이름 석 자보다 작품 속 역할로 대표되는 사람.
그가 그런 사람이다. 그의 이름 석 자보다 그의 작품으로 더 유명한 사람.
솔직히 나도 그의 작품들은 살면서 여러번 마주친 적이 있었으나 그가 어떤 작가인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시사회에 초대되어 정말 유익했다.
뭐랄까 예술가들이 살아야 하는 삶의 가장 정석적인 모습을 훔쳐본 것 같았다.
예술의 영감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꽤나 일상적이고 그의 작품은 그의 일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색감은 다양하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형태로, 전달하고 싶은 감정은 색깔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의 지인들의 말처럼, 그는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인 듯 하다.
예술을 정의하는 수많은 미사여구들 중에서 모호함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는 명확한 의도가 보이는 그림을 선보인다. 그래서 대중은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이란 없어선 안 될 것이지만 언제나 찾아와 주지도 않는 것이라
예술가들에게 다작이란 맘처럼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제프 맥페트리지는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그의 다작 비결을 이야기할 때 정말 깊은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상을 잘 유지하라는 것, 루틴을 만들라는 것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 나에게도 이 지점은 아주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자신을 잘 지켜낼 것, 그래야 영감이든 이벤트든 뭐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같다.
기회가 왔는데 내가 받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그건 소멸되는 기회이기에
언제나 나만의 취향, 나만의 루틴, 나만의 생각을 매일매일 잘 가꾸어야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찾아왔을 때
그것이 기회이든 불운이든 잘 대응할 수 있는 것 같다.
뭐든 움직이면서, 무계획 속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할 것
그의 삶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는데 그는 그 과정을 방황이라고 했지만
내 눈에는 그는 굉장히 상황 변화에 유연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일단 들어온 기회를 해보고 안되면 다른 길로 가 보는 그 모습이 굉장히 유연해보였다.
해볼까 말까 하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닐까 항상 고민하는 나에게
그냥 해보고 안되면 관두고 이런 모습이 상황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실 포기가 빠르다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는 하나의 것에 미련하리만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순간들도 있어서
오히려 저렇게 빠르게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는 능력이 나에게는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금 이런 다큐를 보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
우선 미술 작가인만큼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마침 미술전시를 보러 가고 싶었던 나에게 1차적 만족을 주었고
그의 삶을 훔쳐보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조금 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졌다. 그것이 일이든 취미이든 나의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면 그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취향을 조금 더 섬세하게 가꾸어나가고, 하루 루틴을 꼭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꼭 하는 루틴, 점심에 꼭 하는 루틴, 저녁에 꼭 하는 루틴 이런식으로라도 말이다.
지금처럼 흐르면 흐르는대로, 멈추면 멈춰서 고통스러워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듯한 이대로의 삶보다는 한 템포 더 멀리 갈 수는 있겠지.
사회적 성공이 되어주면 더 땡큐이지만 지금은 그것을 고민할 단계가 아니기에 우선 나의 하루부터 organize 해보겠다.
저 멀리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 컨텐츠는 여러모로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생각을 확장시켜 준다는 점에서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은 일상에 많이 숨어있으니 많이들 찾아보시길 바란다. 제프 맥페트리지, 생각보다 멋있는 사람이더라. 전시를 가고 싶었던 욕구는 일부 충족할 수 있어 좋았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되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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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시대의 땅에서 발아하는 혁명의 씨
! 해당 리뷰는 씨네랩 초청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
출연) 미삭 자레, 소헤일라 고레스타니, 마흐사 로스타미, 세타레 말레키
77회 칸 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한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국내 개봉 준비를 마쳤다. 이전부터 이란에서는 여성, 인권, 자유를 다룬 영화가 종종 만들어져왔다. 그러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이란 영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보수적인 이란 정부에 의해 영화제 출품이 금지되거나 상영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작년 개봉한 <노 베어스>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이 영화를 제작한 모함마드 라술로프 또한 이란 정부를 피해 유럽으로 망명을 갔다. 그만큼 마주하기 힘든 이란의 현실을 우리는 반드시 목격해야 한다.
질서에 대한 물음
20년 째 공무원 일을 해온 ‘이만’은 수사판사가 될 기회를 잡는다. 그가 해야하는 업무는 잡아들인 시위자들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나즈메’와 두 딸인 ‘레즈반’, ‘사나’가 있다. 아내는 가정에 헌신적이며 남편을 따른다. 두 딸 또한 큰 문제없이 부모를 잘 따르는 화목한 가정이다. 그러다 최근 벌어진 히잡 시위 영상을 우연히 접한 레즈반과 사나는 아버지의 일에 의문을 품는다.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진 이만은 본인이 가정의 중심이며 책임감을 중요시한다. 나즈메 또한 이러한 가정의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다. 반대로 레즈반과 사나에겐 과거서부터 이어진 규칙과 질서가 비논리적이며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시위 현장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만이 갖고 있던 총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정에서 사회로
정신없이 총을 찾던 이만은 이내 두 딸을 의심한다. 본인이 항상 총을 두었던 침대 옆 선반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회사에 두고온 것이 아니냐고 이만을 추궁하던 나즈메의 눈초리도 두 딸을 향한다. 특히 이만과 다툼이 있었던 장녀 레즈반이 의심을 받지만, 본인은 아버지에게 총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결백을 주장한다. 사나 또한 언니에게 들은 것이 없고, 자신 또한 훔치지 않았다고 단호히 대답한다.
총기를 잃어버린 죄로 실형에 처해질 수 있는 이만은 점점 초조해진다. 그러곤 색출 작업에 나선다. 두 딸의 방을 뒤지는가 하면, 심리학자인 지인에게 가족들을 보내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가족 내의 갈등 상황으로 볼 수 있지만, 사회적인 맥락과도 연결되어있다. 법, 질서로 통용되는 아버지의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아내, 두 딸의 죄를 캐묻는 행위는 현재 이란의 정부, 공권력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 아버지를 공무원으로 설정한 것 또한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웰메이드 영화
그렇다면 총을 가져간 범인은 누구일까? 167분이라는 조금은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이지만, 촘촘하고 긴장감 있는 이야기로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공간감을 살린 카메라 워킹과 이미지 연출 등 시각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라 보는 재미도 뛰어나다.
또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살려 각 인물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으며, 각자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따라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 지점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 지점에서 비로소 영화의 제목이 다시금 떠오른다. 신성한 나무는 무엇이고, 왜 그것의 씨앗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되뇌다보면, 우리가 살고있는 2025년 사회 속의 전통과 질서에 대해 여러 고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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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이트 리뷰 - 구담을 비틀어 뒤틀린 판타지를 개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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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8월 5일 개봉한 작품 ‘그린 나이트’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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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가 죽던 날>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외딴섬 절벽 끝에서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소녀가 사라진다.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는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소녀의 실종을 자살로 종결 짓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소녀의 보호를 담당하던 전직 형사, 연락이 두절된 가족, 그리고 소녀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마을 주민 ‘순천댁’을 만나 그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소녀가 홀로 감내했을 고통에 가슴 아파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는 소녀에게 점점 더 몰두하게 된 ‘현수’는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 앞에 한걸음 다가서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