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9-16 18:38:19
웬즈데이 2 | 우리네 민낯을 들추는 팀 버튼의 별종
넷플릭스 <웬즈데이 2>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왜 <웬즈데이>는 한국에서 인기가 없을까?
넷플릭스에는 '빅3'라 불리는 시리즈가 있다. <오징어 게임>,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웬즈데이>다. 세 작품은 올해 일제히 새 시즌을 공개했거나 공개할 예정이다. 이 중 2번 타자인 <웬즈데이>는 기대한 성적을 내고 있다. 공개 첫 주에 전 세계 93개국 넷플릭스 TOP 10에 진입했으며, 이 중 92개국에서 TV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딱 한 국가, 한국만 빼고.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예상 못 한 결과는 아니다. 시즌 1도 한국에서의 최고 순위는 3위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실망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결과인 것도 사실이다. 팀 버튼 감독, 제나 오르테가, 엠마 마이어스가 방한해 수많은 유튜브 채널에 모습을 비춘 노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여러 요인이 이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폭군의 셰프> 같은 경쟁자의 등장도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팀 버튼 감독 영화가 한국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그의 수많은 명작은 단 한 번도 300만 관객을 넘기지 못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이 200만 명을 넘겼을 뿐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130만 명을 동원하는 데서 그쳤다. <웬즈데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팀 버튼이 별종을 사랑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팀 버튼의 영화는 대중적으로 흥행하지 못할까? 영화 내적으로 이유를 찾아보자면, 팀 버튼이 유달리 별종에게 애정이 많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은 대체로 기괴하다. 두 손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가위가 있거나,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괴상한 실험을 일삼는 초콜릿 공장 주인이거나, 이상한 화장을 한 채로 정신이 반쯤 나간 모자 장수인 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창백한 얼굴, 주황색 폭탄 머리, 기이한 색의 렌즈를 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모자 장수'(조니 뎁)는 누가 봐도 미치광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알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는 붉은 여왕의 폭정에 의해서 소중한 이들을 잃어버린 뒤로 미치광이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즉, 모자 장수의 기괴한 겉모습에는 그를 '미쳤다'라고 규정하는 세상이야말로 미친 거라는 역설이 깃들어 있다.
'윌리 웡카'(조니 뎁)도 마찬가지다. 그는 거대한 초콜릿 공장 안에서 칩거하는 사회 부적응자다. 하지만 그의 괴팍함과 폐쇄성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여준다. 엄격한 아버지가 꿈을 억압당했던 기억으로 인해 웡카는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린 외톨이로 자라난 셈이다. 즉, 윌리 웡카라는 별종은 사회적 관계에는 서툴러도 자기만의 세계를 열정적으로 지켜내는 예술가의 고독한 초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별종들도 다르지 않다. '에드워드 시저핸즈'는 가위로 된 손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안을 수 없었다. <유령 신부>의 '빅터'도 죽은 자들의 세계에 더 큰 편안함을 느낀다. 즉, 팀 버튼의 작품 세계에서 별종은 단순한 괴짜나 이방인이 아니다. 그들은 획일화된 사회의 폭력에 저항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극복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팀 버튼의 별종은 다름의 미학을 현현하는 일종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별종을 별종답게
별종을 향한 팀 버튼의 사랑은 <웬즈데이 2>에서도 유효하다. 네버모어의 학풍만 봐도 알 수 있다. 네버모어는 별종들을 사회화하거나, 그들이 학교 밖 질서에 적응하도록 교육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능력을 억제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마음껏 사고 치도록 유도하기까지 한다. 철저히 별종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품게 하는 게 이 학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들이 특정 사건을 거친 뒤에 사회 질서에 알맞은 성인으로 거듭나는 일반적인 학원물의 전개는 <웬즈데이 2>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은 더 별종다워진다. '웬즈데이'(제나 오르테가)만 하더라도 여전히 까칠하고 우울하고 독선적이다. 가족들과의 관계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아주 살짝 유해졌을 뿐, 네버모어를 다니기 전이나 후나 그녀의 성격은 크게 차이가 없다.
'이니드'(엠마 마이어스)도 시즌 2 끄트머리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늑대인간의 정체성에 가까워진 모습이 된다. 웬즈데이를 동경하는 신입생 '아그네스'(이비 템플턴)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웬즈데이와 친해지려고 패션과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한다. 투명 인간 능력을 활용해 웬즈데이를 집요하게 쫓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웬즈데이는 아그네스를 그저 멸시한다. 마지막 화에서 그녀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전까지는.
반면에 별종이 안 되려고 발악하는 이들은 오히려 빌런으로 그려진다. 수십 년에 걸쳐 하이드 능력을 제거하려다가 비극을 맞이한 '아이작 나이트'(오웬 페인터)와 '프랑수아즈 갤핀'(프랜시스 오코너) 남매가 대표적이다. 시즌 1에서 가문의 유지를 이어 별종들을 몰살하는 계획을 꾸미고, 하이드인 '타일러'(헌터 두한)를 조종해 사람들을 살해한 '매릴린 손힐'(크리스티나 리치)이 빌런으로 등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별종을 배척하는 사회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 별종은 구조적으로 배척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일종의 병목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조지프 피시킨에 따르면 병목 사회는 우리 인생의 고비마다 병목을 설치한 뒤 병목을 통과할 때 성적으로 사람들을 줄 세우는 사회다. 병목 사회에서는 병목을 통과하는 데 유리한 특정 능력만을 고평가하고, 해당 능력의 유무가 사회적 계급을 형성하고 부와 권력을 세습할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군과 직위, 원하는 삶의 방식과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마저도 획일화되기 쉽다. 이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자화상에 가깝다. 인생의 고비마다 좁은 병목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모난 별종은 깎여서 둥글어질 수밖에 없다. 그 길에서 벗어나면 실패자나 패배자로 여겨지며 아예 질서 밖으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자연히 획일화된 사회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별종을 배척할 수밖에 없다.
아이돌 산업의 특징에서도 병목 사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K팝 아이돌 그룹의 가장 큰 특징은 칼군무다. 모든 멤버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안무를 약 3분의 무대에서 펼쳐 보여야 한다. 움직임이 과하거나 박력이 부족한 멤버가 있으면 비판의 대상이 된다. 각 멤버의 개성은 통일감 있는 군무 안에서 꽃필 때만 유효하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하나의 부품이 되기를 바라는 정서가 화려한 K팝 무대 위에도 녹아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시청자가 보기에 <웬즈데이 2>의 주인공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 말라는 일은 전부 다 하고, 좀비를 되살리는 등 온갖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말 그대로 별종들이니까. 그에 반해 별종들을 통제하고 개성을 깎아내려는 빌런들이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져도 이상하지는 않다. 한국인은 후자처럼 성장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요구받아 왔으니까.
민낯을 보여주는 거울
물론 별종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각은 <웬즈데이 2>의 흥행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인이 별종을 싫어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더 중요한 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애초에 한국에서는 <웬즈데이> 같은 기숙사 학원물 판타지의 위력이 크지 않다. <해리 포터> 시리즈 중 단 한 편도 관객 수 450만 명을 돌파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이는 <트랜스포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록이다.
또 <웬즈데이 2>만의 특이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북미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빅3'의 일원, <기묘한 이야기>도 국내에서는 반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니까. 그러나 한국에서의 <웬즈데이 2>의 부진을 그저 무시하기에는 그 함의가 너무나도 흥미롭다.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다양성 포용도가 최하위권인 것으로 알려진 한국 사회의 특징과 문제점을 <웬즈데이 2>라는 거울이 날카롭게 비춰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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