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2025-09-25 16:47:26
[30th BIFF 데일리] 우리가 지옥을 탈출하는 법
영화 <올 그린스>를 보고
DIRECTER. 코야마 타카시
CAST. 미나미 사라, 데구치 나츠키, 요시다 미츠키
SYNOPSIS.
조용한 시골 마을의 생활은 한적하다 못해 따분하기까지 하다. 히데미, 야구치, 이와쿠마, 세 여고생은 각자의 꿈을 꾸면서, 언젠가 지겨운 고향을 탈출할 궁리를 하고 있다. 래퍼를 꿈꾸는 히데미는 어느 날 예측하지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탈출을 도와줄 위험한 물건을 손에 넣게 된다. 세 여고생은 훔친 물건으로 돈을 벌어서 최대한 빨리 마을을 빠져나가자는 황당무계한 계획을 세우고, ‘올 그린스’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 안에서 비밀스러운 일탈을 하기 시작한다.
소녀들에게 마을은 지옥이다. 가족도 학교도 그들에겐 버팀목이 아닌 감옥과 같다. 그들은 자신의 끝이 마을에서 퍼진 소문 속 한 여자의 죽음과 같지 않을까 걱정한다. 가정 폭력을 당했고, 가정에서 도망치다 뺑소니를 당했으며, 결국 자살을 선택한 여자. 심지어 그들은 여자가 차에 치이는 순간을 목격했다. 이런 그들이 원하는 바는 하나다. 마을에서 벗어나는 것. 그들은 이를 위해 커다란 일탈을 감행한다. 마리화나를 키워 한몫을 챙겨 마을을 벗어나기로 하는 것이다. 히데미는 이와쿠마, 야구치와 함께 우연히 취득한 마리화나 씨앗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학교에 ‘올 그린스’라는 원예부를 꾸려 마리화나를 키우는 거대한 일탈을 시도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일임에도 세 사람이 처음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은 아니다. 너드에 가까운 히데미와 이와쿠마는 친구였다. 하지만 야구치는 달랐다. 모두에게 인기를 얻으며, 무엇이든 잘하는 그는 히데미의 시기의 대상이자 물과 기름처럼 뒤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서로의 삶의 진실을 목격하게 되며, 두 사람은 가까워져간다.
나아가 범죄라는 비밀이 생기자 자연스레 세 사람의 우정은 점차 자라난다. 이는 마리화나의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범죄라는 비밀을 공유하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들을 공유하며 세 사람은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이 작품은 통념적인 상큼한 청춘물은 아니다. 방황하는 청춘들을 그리며 드라마적인 요소들을 배치하되, 케이퍼 무비적인 특성을 섞으며 <올 그린스>만의 장르를 창조한다. 물론 지옥 같은 삶 속에 자신들만의 탈출구를 찾고자 일탈을 일삼는 청춘들을 그리는 작품들은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딘가 한끗이 다른 울림을 준다.
유독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여느 고등학교가 그렇듯, 장래희망을 작성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때 이들은 자신에겐 어떤 꿈도 없다는 듯 그저 심드렁한 표정을 보인다. 그러나 오직 세 사람만이 존재하는 시간에 나누는 이야기는 다르다. 히데미는 래퍼를, 이와쿠마는 만화가를, 야구치는 영화계에서 일할 수 있기를 꿈꾼다. 서로에게만 말할 수 있는 서로의 꿈. 지옥 같은 삶은 끝나지 않았더라도, 이들에겐 탈출구가 되어주는 서로가 있다.
영화의 엔딩을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나도 모르게 이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에 웃음이 뒤섞였다고는 말하고 싶다. 최소한 나에게 이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나도 모르게 바랐다. 오랜만에 보석 같은 영화를 발견한 기분이다. 아마 나에게 이 작품은 청춘영화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 같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2025.09.17~09.26)]
상영일정
0920 12: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상영 코드: 213)
0922 2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상영 코드: 390)
0923 13:00 CGV센텀시티 4관 (상영 코드: 430)
0925 13:30 CGV센텀시티 2관 (상영코드: 573)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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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 Venom: Let There Be Carnage, 2021
2018년에 개봉한 영화 <베놈>은 '기대보다는 아니었다'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당초 예상되었던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15세 이용가"로 낮춰 표현 수위에 대한 불만, 이외에도 많은 원인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북미 수익 2억 달러와 전 세계 수익 8억 달러, 그리고 국내 관객수 388만명은 '오히려, 그들의 선택이 옮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나온 이번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도 전작과 동일한 "15세 이용가"로 발표했고 미리 공개된 북미 박스오피스는 이번 "코로나19"이후 북미 최고의 오프닝 수익 90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현재 국내 박스오피스는 1위와 함께 460,288명(10.15 기준)으로 '이번에도 그들의 선택이 옮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행이 비슷한 것처럼 영화에 들려오는 평가도 전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내 역시, 개봉일에만 20만명으로 좋은 시작을 알렸지만 이후 관객수가 떨어지고 있으며 북미에서는 2주차 <007 노 타임 투 다이>에게 밀려 전주 대비 65%를 기록해 큰 하락률을 기록했습니다.
그렇기에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는데요.
'과연,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어땠는지?' - 그럼, 영화의 감상을 "SCREEN X"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작에 이어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베놈'과 '에디'는 연쇄 살인범 ‘클리터스 캐서디’의 인터뷰를 위해서, 교도소에 갑니다.
하지만 이내, '캐서디'의 도발에 넘어간 '베놈'이 ‘클리터스'를 공격하고 이내 ‘클리터스'는 '에디'를 물어버립니다.
그렇게, '베놈'의 심비오트가 ‘클리터스'의 몸에 들어가 '카니지'라는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며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예고하는데...
뭐, 이리 줄이면 남는 게 있어?
1. 빠르게, 본론부터 말하죠!
먼저, 영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분량은 90분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전작 <베놈>의 러닝 타임이 107분으로 일반적으로 120분이 훌쩍 넘는 "MCU"을 비롯하여 여타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짧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런 짧은 분량은 '오히려, <베놈>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2편에 들어서면서, 눈에 띄게 줄어든 분량은 이들의 자신감으로 보였습니다.
자신이 있으니까, 짧게 한 거지?
사실, '시리즈'는 해당 작품들을 보려는 고정적인 팬층을 말하면서도 새로운 관객들을 유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동시에 말하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에는 '전작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라지는데요.
이번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만을 본다면, "에디"와 "베놈"의 모습을 '기생인지, 공생인지?'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작품은 이를 전제하에 깔아두고서, 시작하니 짧아진 분량은 관객들이 애타게 기다려온 ‘클리터스 캐서디’ 즉, '카니지'와의 대결에 기다리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보이는 건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2. 뭔가, 숨겨둔 게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등장한 ‘클리터스 캐서디’, '카니지'의 모습은 일단 비주얼에 있어 합격을 받는데 큰 부족함은 없습니다.
앞서 말한 "15세 이용가"임에도 저를 비롯하여 관객들의 눈을 이끄는데 충분하나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관람불가"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해당 영화들에서도 이를 염두에 두고서 보여주는 액션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카니지'로 각성해 사람들의 머리를 잡아먹는 모습들이 어설프게 마무리되니 자연스러운 하나의 연결 동작으로 보기에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이를 연기한 "우디 해럴슨"과 "나오미 해리스", 그리고 "톰 하디"를 생각하면 연출적인 도움이 없는 건 더 큰 아쉬움으로 보이고요.
'소니'는 '감독판'을 풀어라!
그러나,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와 그리고 개연성에 문제가 보입니다.
극 중 "베놈"과 "카니지"의 설정이 "심비오트"로 불과 소리에 민감하다는 말을 하고 이는 "카니지"와 "슈리크"의 갈등적 요소로 쓰일 만큼 중요합니다.
하지만, 축제에서 마이크를 떨어트리는데 소음이 발생해도 끄떡없는 "베놈"의 모습에는 살짝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베놈"이 "카니지"를 보고서, "에디"에게 "빨간 건 위험하고, 우리는 죽었다"라는 말을 꺼내며 위기감을 조성하나 영화에서는 이에 대해서 "왜?"가 빠져있어 바라보는 관객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3. 이번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란,
이외에도 "카니지"가 편의점 노트북을 통해서, 경찰 정보망을 뚫어버리는 설정은 '전작을 제대로 보고왔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말고도, 마지막에 "슈리크"가 "카니지"에게 "너무한 거 아니야?"라면서 애걸복걸하는 장면이나 다시 뜬 형사의 눈이 다르다는 점으로 90분 말고 다른 영화들처럼 120분으로 여유 있게 풀어냈다면 하는 아쉬움도 생깁니다.
그럼에도,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재밌는 영화입니다.
SCREEN X와 함께, 티키타카를...
이번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장점을 말하자면, 첫 번째 '버디 무비"의 문법을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극과 극의 성향을 보여주는 "에디"와 "베놈"이 주고받는 농담은 뻔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어떤지를 잘 설명하면서도 재밌게 보여줍니다.
시작부터 화장실에서 주고받는 대화에 옆 칸 사람이 바닥을 향해 내려가 확인하는 모습부터 이후 "카니지"와의 대결에 내빼는 모습까지 입꼬리를 올리기에 충분하거든요.
다음으로 두 번째, 기존 포맷에서 관람하는 액션은 "SCREEN X"로 안 보면, 손해일 정도로 잘 나왔습니다.
특히, 각성된 "카니지"의 폭주와 "베놈"과의 성당에서 펼쳐지는 대결은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를 그래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4. 베놈을 보았는데, 왜 스파이디만 떠오를까?
그래도, 가장 재밌는 장면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쿠키 영상"일겁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마블"과의 협업이 이뤄지는 순간이고, 이를 직접 목도하니 내심 "토퍼 그레이스"도 나오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이번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쿠키 영상은 앞선 영화의 아쉬움을 날려보낼 만큼 좋았지만 이게 외부적인 요소임을 생각하면 역시, 아쉽습니다.
베놈 없는 베놈 2?
이런 이유에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마지막 성당 대결만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3>의 종소리에 떨어지는 심비오트의 모습이 겹칠 만큼 성당의 종소리와 구도는 노골적으로 겹쳐 보였거든요.
여기에, 히로인이 떨어지는 장면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까지 떠오를 만큼 "오마주"가 흘러넘쳤거든요.
여기서, 쿠키 영상마저 남의 작품이니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로서는 다음 3편이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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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된 아이, 사라진 기록
해당 콘텐츠는 씨네랩 초청으로 참석한 <케이 넘버> 시사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해외 입양인들의 귀환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은 독립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의 개봉이 다가온다. 오는 14일에 개봉 예정인 해당 다큐멘터리의 시사회에 씨네랩의 초청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시사회 참석이 처음이라 설레던 마음도 잠시, 다큐멘터리 속 해외 입양의 실태와 그 아픔에 눈물을 흘리며 점등을 맞이했다.
다큐멘터리 <케이 넘버> 포스터
<케이 넘버>는 조세영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장장 6~7년의 제작기간을 거쳐 상영관을 찾아온 작품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수상하고,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70년의 해외 입양 역사에서 나아진 것이 없음을 냉철히 지적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왼쪽부터 차례로 노혜련 숭실대 명예교수(전 홀트 직원), 조세영 감독, 김유경 배냇 대표의 모습
영화의 제목이 되는 K-NUMBER란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낼 때 입양기관이 아이를 분류하기 위해 붙인 표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70,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동의 수는 자그마치 20만명에 달한다. 가정과 직장이 있는 성인이 되어 돌아온 입양인들의 귀환과, 이들의 뿌리찾기를 돕는 한국인여성모임 ‘배냇'의 추적에서 드러나는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을 영화는 조명한다. 감독의 집요한 질문과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며 해외 입양인들이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타국으로 떠나 보낸 우리 아이들의 귀환이 될 수 있음을 느껴보자.
1970년대 초, 길에서 우연히 발견된 미오카.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오카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조작된 서류와 감춰진 기록.
K-Number의 진실은 무엇이며, 사라진 서류는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시간과 국경을 넘어, 숨겨진 진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케이 넘버> 시놉시스, 출처 씨네 21
영화는 2004년, 관에서 본인의 입양서류 기록을 받지 못해 화를 내는 한 해외 입양인 여성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오카 밀러, 한국 이름은 김미옥으로 ‘추정된다’. 한국 이름이 정확한지 확인 할 수 없는 것 또한 입양서류의 불분명성과 위조 가능성 때문이다. 이후 20년간 미오카는 5번의 한국 방문을 이어가며 본인의 뿌리와 가족의 기억을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해메왔고, 그 여정에 사회봉사단체 ‘배냇’이 동참했다.
2004년에서 2024년.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으로 자라나기까지의 기간동안, 미오카와 배냇은 불분명한 서류와 감춰진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과 사투하며 ‘뿌리찾기’를 이어가고 있다. 입양 이후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입양인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앞에서 자국민의 도움없이 대여섯살때의 단편적인 기억만으로 가족을 찾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배냇 김유경 대표의 물음에는, 입양민 ‘뿌리찾기’의 실태와 그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공개되지 않는 기록에 대한 분노. 미국을 떠나 한국까지 와서도 미오카씨를 반기는 것은 사실확인조차 되지 않고, 본인의 정보조차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반의 반쪽짜리 서류다. ‘이 서류를 기반으로 가족을 찾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겠냐‘는 무력함의 끝에서 나온 질문에도 미오카 씨는 ‘지금 가지고 있는 패는 어쨌든 전부 뒤집어 보아야 한다‘고 답한다. 새로운 서류가 나오고, 정보가 나오고, 거짓이거나 조작되었음이, 혹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진실의 테두리임이 드러날 때 마다 그렇게 밝고 힘이 넘치던 미오카 씨의 얼굴이 조금씩 피로와 절망, 무력과 분노로 물들어간다.
한국 전쟁 이후, 국가 재정난을 겪던 대한민국은 국책 사업으로 ‘해외 입양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당시 한국은 전 세계 유일하게 '대리 입양' 제도가 가능했던 나라로, 입양 부모는 한국에 방문하지 않고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었기에 그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대리 입양제도에 대해 당시 미국 입양 전문가들의 반대가 극심했으나, 대표적인 해외 아동 입양 기관이었던 홀트의 로비로 무마되었다는 노혜련 교수(홀트 전 직원, 숭실대 명예교수)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 한다. 마치 품종묘를 샵에서 고르듯이, 서구 사회의 부모들은 아이의 성별, 인종적 특징을 바탕으로 원하는 아기를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동을 일종의 상품처럼 여기며 타국의 양부모에게 배달하는 이러한 '우편 입양' 서비스는 그 대가로 입양기관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국가와 사기업이 주도하는 일종의 인신매매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국가와 기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입양 대상 아동을 확보하고 아동의 출신 서류 위조까지 감행한 범죄이자 불법행위”라는 김영우 2024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의 분석은 정확하다. 해외 아동입양은 단순히 고아 아동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취지의 해외 입양이 아니었다. 입양 이후의 아동의 안전과 생활과 관련된 어떠한 보고와 의무도 없이, 아동을 판매하면 그것으로 끝인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기본권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아동의 입양 과정이 강제적이냐 자발적이냐와는 관계없이, 아동의 재화화와 이로 인한 이익의 수취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그것도 국가와 사기업의 주도하에 20만명의 아동이 해외로 이주되었고, 이들의 성장과 안전이 한국 사회에서 비가시화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아픈 단편으로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
20만명의 아동을 해외로 수출한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은, 국외 시선을 고려해 해외 아동 입양이 중단되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동 수출 과정에서 조작된 서류로 뿌리를 찾지 못하고 배신감과 무력감을 경험하는 해외 입양민들의 존재로 인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명은 저출생 국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끊임없는 재생산을 거듭한다. 가장 해외 아동 입양이 많았던 1985년, 한국은 이미 출생률 1.7%를 기록하며 저출생 국가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동을 재화화 하고 떠나보낸 책임을 지고, 해외 입양인의 귀환과 ‘뿌리찾기’를 돕는 일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어 왔던 해외 아동 입양의 진실과 역사 외에도, 영화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으로서 ‘여성’이 존재한다. 해외 아동 입양의 과정은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의 또 다른 면모를 담고 있다. 북유럽으로 입양된 해외 입양민 여성들의 인터뷰에서, 한 인터뷰이는 ‘20만명의 아이들이 국가 주도의 조직적인 인신매매 정책으로 해외로 보내졌다는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보이지 않는 신원 미상의 미혼모와 여성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망상적 서사를 너무나도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며, ‘더 나아가 그러한 믿음이 그녀들의 딸, 아들인 해외 입양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거대 권력의 국가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책임과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는 익숙한 그림이다. “적어도 제가 만나본 한국 여자들은 아이를 쉽게 버릴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입양민 여성의 평가는, ‘설령 아이를 버리는 엄마가 있었더라도, 그곳에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있으며, 남아선호사상 아래에서 셋째 딸의 낙태와 입양을 권유하는 가정과 사회는 어디에 있으며, 아이를 가정으로 돌려보내주고 키울 여건을 마련해주는 대신 길고양이를 잡아 가두듯 모아와 두 당 얼마를 받고 팔아넘긴 기업과 국가는 어디에 있으며, 이를 묵인하고 심지어는 추진한 대통령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는 무거운 질문을 불러온다.
주제가 아닌 구성의 차원에서도, 다큐멘터리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여성 감독, 배냇의 여성 회원들, 뿌리를 찾는 해외 입양민 여성들과 이들의 어머니-언니, 그리고 탐문을 돕는 시장의 할머니들. 출산과 아동의 양육이라는 테마 때문만이 아니다. 연대와 공감, 실행과 보호라는 테마에서 비로소 여성은 끈끈하게 뭉친다.
‘좋은 일’과 ‘더 좋은 환경’으로 포장된 해외 아동 입양 사업의 실태를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관객은 마주하게 된다. ‘평범한 한국인들은 입양인의 귀환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입양인의 질문 앞에, 아마 이들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던 대다수의 관객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감독의 끈질기고 따듯한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시점에서, <케이 넘버>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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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하지 못한 한 사제를 위한 자기 변명
▷한줄평 : 영화 <밀양>과는 다른 방식으로, ‘복수’가 남긴 죄책감을 다룬 이야기
▷평점 : ★★★
▷영화 :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Only God Knows Everything), 2025.8월※ 본 글은 씨네랩(http://cinelab.co.kr) 초청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신부님, 사람을 죽여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된 신부 도운(신승호)은 살인에 대한 고해성사를 듣고는 ‘하느님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 순간 도운은 스스로가 만든 덫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 고해성사했던 사람이 13년전 실종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동일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아서 였다.
과연 신부가 된 지금, 그의 공언대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살해범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그러나 아주 특별한
신부라는 신적 대리인으로서 죄에 대한 용서를 설파해 온 도운은 정작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된 상황에서는 용서와 복수 사이에서 고뇌에 빠져든다.
‘제가 가졌던 믿음은 모두 가짜입니다!’라는 도운의 고백은 우리 모두가 영혼과 육체, 죄와 구원, 선과 악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 준다.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일반적인 도덕적 규범은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실존적 자아인 나에게는 특별한 순간이 된다.
그 내면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재단하기 힘든 복잡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에 ‘당신이라면?’ 어찌할 것인지 선택하기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 영화의 화두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스토리를 쫓아가는 부질없는 감정이입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
영화 <밀양>이 떠오르다
이미 우리는 그 불편함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 영화를 보내 내내 <밀양>의 신애가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신앙적 결단을 하고 교도소에 면회를 가지만,
정작 그에게서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는 말에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아스팔트에 주저 앉아 오열하던 신애의 모습은 신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의 내적 고통을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영화 <밀양>에서 신애의 대사<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도 <밀양>과 마찬가지로 무오(無誤)한 신만이 베풀 수 있는 용서라는 신적 권위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좌절을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등지고 사제로 살기로 결심한 신부라고 해서 이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 이 영화는 <밀양>이 천착했던 용서와 복수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영화 <밀양>,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스틸컷 / 오열하는 신애(전도연)와 갈등하는 도운(신승호)※ 이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실 깊숙이 파고든 광기어린 사이비 종교의 민낯
도운은 결국 용서를 포기하고 복수를 결심한다. 그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거침이 없다.
13년전 실종되었던 어머니의 진실을 좇는 과정에서 사이비 종교 광신도인 수연(전소민)과 광기어린 무당 광운(박명훈)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아들을 산 채로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쳤던 아브라함의 신화를 이용하여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파고드는지 묘사해 낸다.
어떻게든 사랑하는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이용하여 사이비 종교 ‘전신교’는 살인마저 서슴지 않게 만든 것이다.
영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 스틸컷
이러한 허황된 종교적 신념아래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광기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현실속에서도 사이비 교주의 일탈마저 감싸기 바쁜 일단의 광신도들은 세력을 형성하고, 권력을 장악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도권에 속해 있는 사제 도운이 타개할 대상으로 사이비 종교를 마주한 것은 성, 속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현실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듯하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갖은 종교적 행위들과 무술적 사이비 신앙 간의 분별력을 갖는 일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올바르게 해석해 내기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되었다.
우연한 고해성사에서 출발한 도운의 복수에의 추적은 결국 전신교의 실체에 접근하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복수를 결심한 도운은 과연 만족한 결론에 도달했을까?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제목이 남긴 씁쓸한 뒷맛
그러나 이 영화는 <밀양>과 마찬가지로, 용서는 살인자를 향하지만 복수는 신을 향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는 이 영화의 엔딩은 <밀양>의 하늘거리는 햇빛의 그림자를 비추는 마지막 장면과 묘하게 닮아 있다.
복수를 펼칠 대상은 살인을 벌인 악마와도 같은 인간이지만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신을 향한 궁극적 원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신앙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경계인’이라는 원작의 제목에서 ‘나에게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의미로 읽히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Only God Knows Everything)’으로 바꾼 영화 제목은 그 주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낸다.
복수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선택되어진 것이다. 하느님만이 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복수는 누구를 향하는가?
그런데, 사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성경 창세기 3장에 보면 선악과를 따 먹고 숨어 있던 아담을 찾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죄를 변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창세기 3장 12절).
자신이 죄를 짓게 된 근원을 따지자면 ‘하느님’에게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의 모든 죄는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연약한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에게 책임을 지울 이유가 없다.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실 터, 자유의지라는 선택의 책임조차 회피하고픈 인간의 불순한 욕망은 여기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에서도 극명해 진다.
영화 후반에 용서의 대리인인 사제로서의 사명을 저버린 채, 복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도운은
살해자의 어린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역(逆)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순환하는 복수의 씨앗을 남겨 놓는다.
그 어린 살해자의 아들은 또다시 성인이 된 어느 날 복수의 칼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얽힌 복수의 실타래를 풀어야 할 강력계 형사 주영(한지은)조차 도운의 범죄를 모른 척해 버린다.
하느님만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용서를 하든, 벌을 주든 결정할 것이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거야! (Only God Knows Everything)’라며 슬그머니 자신의 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신앙을 값싼 용서의 도구로 사용해 버린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은 <밀양>에서와 같은 인간적 고뇌의 흔적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미스터리한 신의 저주와 같은 복수는 그리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고,
어머니를 잃고 고통스러웠던 아픈 상처를 치유해 내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역부족이다.
그저 용서를 베풀지 못한 사제로서의 죄책감을 공감하고 이해를 구하는 결말은 아쉬움을 더할 뿐이다.
영화 초반에 사제로서 가졌던 용서와 복수사이에서의 갈등은 명징한 복수의 결말 앞에서 얕은 사색의 깊이가 드러나 버렸다.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고백은 용서를 베풀지 못한 한 사제를 위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연기 변신을 꾀한 배우들의 강렬한 모습과 열정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영화 <온리 갓 노우즈 에브리띵 > 포스터
20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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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르: 러브 앤 썬더 (2022)
**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토르: 러브 앤 썬더 (2022)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출연: 크리스 헴스워스, 나탈리 포트만, 테사 톰슨, 크리스찬 베일, 타이카 와이티티
장르: SF, 액션, 판타지
상영시간: 118분
개봉일: 2022.07.06
토르, 오락영화의 본질을 되새기다
MCU 영화 중 최초로 네번째 솔로무비를 갖게 된 '토르'.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각각 은퇴와 사망으로 하차한 이후 '어벤져스 빅3' 중 유일하게 현역 히어로로 잔류한 '토르'의 행보는 세대교체로 이어질지, 새로운 플롯과 함께 영광스러운 은퇴식을 거행할지 귀추가 주목되어왔다. 특히 '토르4'의 타이틀이 <토르: 러브 앤 썬더>로 확정되고, 과거 히로인으로 출연했던 '제인 포스터(나탈리 포트만)'의 복귀가 예고되면서 그녀가 연기하는 '마이티 토르'가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뒤를 이어 히어로로 활약하는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쉬헐크'나 '케이트 비숍'처럼 현 시대상에 맞춰 젠더 스와프를 표방한 작품들이 MCU 내에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적어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이러한 의미부여성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다. 감독이 연출한 전작(토르: 라그나로크)처럼 스페이스 오페라의 화려한 영상미와 코믹스러운 연출에 포커스를 두며 마블 영화는 본래 어린아이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오락영화였음을 시사한다. 이는 다른 MCU 작품들과 달리 어린아이들을 스토리에 적극 활용한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극중 빌런 '고르(크리스찬 베일)'에 의해 납치된 아스가르드 아이들은 결말부에 썬더볼트로부터 힘을 얻어 괴수들과 직접 맞서 싸운다. 약자인 어린이들은 히어로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클리셰를 깬 부분이다. 최근 개봉했던 마블 영화들이 극중 설정만으로 관객에게 피로도를 증가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현재 MCU의 흐름보다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액션오락영화라는 본질에 좀 더 비중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시리즈의 연장 속 답보 상태에 놓인 토르
마블 영화의 초심으로 되돌아가고자 함이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의도였다면 본작의 스토리 흐름과 기획 방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현재 다면적으로 세계관을 확장 중인 MCU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토르: 러브 앤 썬더>는 페이즈4 내에서 아무 기능도 해내지 못한 채 그저 평이한 MCU 시리즈 홍보물에 가까울 정도로 보인다. 히어로물은 보통 트릴로지 정도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인데, '토르'는 무려 4편까지 제작되었다. 이는 신화적 성격이 강했던 1-2편과 달리 <토르: 라그나로크>를 시점으로 '토르' 솔로 무비의 스타일이 '코미디+스페이스 오페라'로 완벽하게 변화하였고,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일행에 합류하면서 등장인물 중 가장 변화무쌍한 행적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고향인 아스가르드는 소멸되고,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으며 '엔드게임'을 끝으로 소행을 다했기 때문에 '토르'라는 인물의 다음 페이지를 새롭게 써내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본작은 '토르'의 성장도, 인상적인 행보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MCU 시리즈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가진 히어로 중 하나였던 '토르'의 본래 매력마저 선명하지 못하다. 지금까지의 <토르> 시리즈는 주인공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매 편마다 기획의도와 명분이 뚜렷했다. 반면 이번 작품은 가만히 살펴보면 <토르: 라그나로크>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채 오히려 지금까지 빌드업해온 시리즈를 퇴보시키는 행보를 보인다. 존재감 강한 강력한 빌런의 등장은 '헬라'에서 '고르'로 대체되었으며 부모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찼던 '토르'는 추가로 친구와 동생을 잃어 삶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의 모습 그대로로 등장한다. 판타지적 배경으로 등장했던 사카아르 행성은 옴니포턴스 시티와 섀도우 렐름으로, 핵심 무기(?)를 손에 쥐고 있던 '그랜드마스터'는 '제우스'로 뒤바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3편과 4편에서 겹쳐보이는 인물이나 장치들이 완벽하게 동일한 포지션에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작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가 많다는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스토리 면에서는 퇴보했고, '토르'의 서사보다는 히로인인 '제인'과 빌런 '고르'의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이 되면서 주인공은 이렇다 할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내내 붕 떠 있기만 하다. '토르'라는 인물 자체로서는 더 이상 써내려갈 성장담이나 이야깃거리가 없는데, 시리즈물을 과하게 연장하다보니 발생한 문제점이랄까. 차라리 본작이 '토르'의 은퇴나 세대교체, 혹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과 함께 꾸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였다면 이렇게까지 맥없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 의미 있는 복귀였나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가장 주목받는 캐릭터는 단연 묠니르를 들고 9년만에 컴백한 '제인 포스터(나탈리 포트만)'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토르> 1-2편에서 히로인으로 활약했지만 이후 제작진과의 의견 충돌로 하차하면서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았다. 작중 설정도 '토르'와 '제인 포스터'가 사귀었다가 결별한 것으로 일단락 되는 듯했다. 하지만 제인은 4편을 기점으로 다시 복귀하였고, 단순히 히어로가 보호해야 하는 여주인공이 아닌 적과 대등하게 맞서는 '마이티 토르'가 되어 돌아왔다. 천문학자인 제인이 묠니르를 들고 근육질 몸매가 되어 적에 맞서 싸우는 장면은 본작의 제일 큰 볼거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마이티 토르'는 결과적으로 제인의 다음 페이지를 기약하기 위한 장치는 아니었고, MCU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기리는 일종의 선물 같은 존재였다. 이를 통해 갑작스러운 하차로 일전에 깔끔하게 마무리짓지 못했던 '토르'와의 러브스토리를 정리하고, 두 편이나 히로인으로 등장했던 '제인 포스터'라는 캐릭터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다만 '토르'와 '제인'의 9년 공백을 채우기 위해 등장한 회상 장면들은 관객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던 두 남녀의 애정을 전달하는데 역부족이었고, 작중 투샷으로 비춰지는 장면들도 애인보다는 전투 콤비로서의 성향이 더 강했다. 또한 '사랑'이라는 핵심 소재가 '고르'와의 대립이라는 또다른 주요 소재와 맞물리지 못하고 충돌하면서 토르와 제인의 애틋한 관계가 생각보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즉, 주인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위치에 놓였던 캐릭터를 전투신에서 전면에 나서 싸우는 캐릭터로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나 그 이상의 의미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마이티 토르'의 모습은 신선했다.)
황홀한 영상미, 그에 반하는 개그 남발
<토르: 라그나로크>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 곳곳의 영역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이번에도 영상미로는 뒤지지 않는 연출력을 선보였다. 특히 토르 일행이 '제우스(러셀 크로우)'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옴니포턴스 시티'는 전지전능한 신들이 모인 쾌락의 공간답게 황금빛으로 물들인 장관으로 그려진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본다면 그 시각적 감동은 좀 더 클 것이다.) 마치 십여년 전 MCU 영화에 '아스가르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 느꼈던 황홀감과 비슷했다. 후반부 '고르(크리스찬 베일)'와 전투신이 펼쳐지는 쉐도우 렐름을 피폐한 흑백으로 처리한 것도 빌런의 스산함과 공포스러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에 적절했다. 화려한 컬러로 대변되는 '토르'와 흑백으로 표현되는 '고르'의 선명한 대비는 애니메이션 속의 클래식한 선악 구도로 느껴져 이 부분에서도 어린이들을 핵심 타겟으로 잡은 감독의 지향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영상미를 빼면 남는 것이 많지 않다. 감독은 <토르: 라그나로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개그성 장면들이나 대사들을 수없이 가미했는데, 문제는 의도한 코믹함이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다. 본작의 핵심 플롯이 무엇인가. 병마와 싸우다 '마이티 토르'가 되어 마지막 생명력을 다 소진할 때까지 전투력을 불사르는 '제인', 그리고 신들의 외면으로 하나뿐인 딸을 잃고 신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혀 스스로 악당이 된 '고르'의 이야기다.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내기보다는 진지하고 무겁게 접근해야 할 스토리라는 것이다. 제인과 토르의 사랑과 이별이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고, 고르의 결말이 어물쩍하게 이뤄진 것처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웃으라고 넣은 장면과 대사들이 웃기지도 않고, 영화의 전반적인 톤 자체를 흐렸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큰 실책이 되었다.
토르는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마지막 쿠키영상에서 보았듯이 '토르'는 다시 돌아온다는 예고편을 날렸다. 시리즈의 후속편이 나올 것이라는 쪽이 가장 가능성이 높겠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다른 시리즈물에 등장할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은 토르에게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고르의 딸, '러브'가 생겼고 부녀가 함께 우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는다는 스토리라인이 추가되어 토르의 후속편을 기약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영향일까. 더 이상 '토르'의 이야기가 크게 궁금하지는 않다. 한때 자신을 죽이려 했던 빌런의 아이를 갑자기 키우게 되고, 두 사람이 전투 콤비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토르'가 써내려온 이야기 중 가장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토르: 라그나로크>로 급상승되었던 시리즈에 대한 평가가 본작으로 인해 다시 급락하게 되었으니 다음 작품을 내놓을 생각이라면 명분과 방향성이 확실한 스토리를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다.
(+)
믿었던 '토르'마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반응을 남김으로써 MCU의 향후 행보가 크게 위태로워질 듯하다. <닥터 스트레인지2>는 <완다비전>과의 연계성과 '멀티버스'라는 설정의 본격적인 도입으로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확실한 리스크가 있었고, <이터널즈>는 신생 시리즈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크게 낮았다. 따라서 극명하게 갈렸던 두 작품의 평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여지가 존재하나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많은 이들이 호평을 보장할 만한 시리즈였다. 페이즈3까지만 하더라도 마블 영화들은 절대적인 호평을 받는 추세였으나 페이즈4에 진입하면서 혹평이 지속되고 있다. 물론 계속해서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이전과 같은 완성도를 구현하지 못하는 현상이 장기화된다면 제아무리 MCU라 할지라도 하락세가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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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지라는 기적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당 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의 일환으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국내에서는 <러브 액츄얼리>를 비롯해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로맨스 장인으로 더 잘 알려진 배우 휴 그랜트의 신작 <헤레틱> 이 4월 2일 관객들을 찾게 되었다. 아니, 관객들이 그를 찾게 되었다 말해야 할까. 영화 <헤레틱>은 몰몬교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두 소녀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영화는 조금은 생뚱맞게도 콘돔을 비롯해 포르노 스타의 이야기까지 단순 두 주연의 수다로 시작하나 이는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중요한 메세지를 암시한다. 바로 맹목적인 믿음, 이다. 광고를 비롯해 성인물까지 종교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무수한 이들이 접하는 것들을 통해 영화는 극초반부터 말하고자 한다. 과연 우리는 생각이 거세 된 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두 소녀가 찾은 집에서 푸근한 노신사 리드(휴 그랜트) 종교에 무척이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렇게 찾은 집은 무언가가 이상하다. 그들이 안내받은 소파가 놓인 '거실'이어야 할 것 같은 공간이 그보다는 조금 더 응접실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무언가 이질적이다. 리드가 오가는 복도 그리고 반스 자매(소피 대처)의 시선을 따라 간접적으로 그 공간을 체험하다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다른 공간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다는 것. 불 꺼진 어두운 복도 외엔 모든 정보가 차단되어 있는 그야말로 교차로의 역할만 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말한다, 리드와의 만남은 미궁으로 향하는 함정 그 자체라고 말이다.
사실 길거리에서 누군가에게 전도 당하는 경험은 그닥 희귀한 경험이 아니다. 길 찾기를 핑계로 기운 얘길 하는 사람들을 우린 번화가에서 종종 마주한다. 이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가 하면 바로 대화 주도권을 뺏는 것이다. 자리를 뜨기 위한 핑계를 막기 위함도 있겠지만 이들은 포교를 위해 단시간 안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해야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예 말을 섞지 않거나 대답하지 않는 사람들 역시 많을 것이다. 여기 이 자매들 역시 그러하다. 반스 자매에 비해 경험이 없어 보이는 팩스턴 자매(클로이 이스트)는 무언가 께림칙함을 느끼는 반스와 달리 리드의 말에 맞장구 치며 열심히 전도를 이어 나가려 한다. 하지만 이때 공간 외로도 기묘한 일이 한 가지 더 벌어진다. 단순 반스가 발견하는 블루베리 향초의 섬뜩함이 아니다. 리드는 두 소녀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그 면면을 살펴보면 종교에 대한 관심보다 두 소녀의 의견을 묻는 것이며 더 나아가 어떠한 대답이 이미 준비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리드의 몰몬경은 인덱스와 노트로 빼곡하며 종교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이 있음이 분명해보인다. 이는 단순 광신이 아닌 그들이 몸담고 있는, 관객이 몸담고 있는 현대사회와 연결된 '믿음'에 대한 시각이다.
이는 본격적으로 리드가 만들어둔 가짜 예배당에서 더욱 심화된다. 두 자매가 믿음과 불신 중 하나를 강요 받는 것과 더불어 리드는 몰몬교 뿐 아니라 3대 종교라 칭해지는 것들이 모두 고전에서 파생된 것임을 밝히며 이는 보드게임 모노폴리의 변형과 다름 없다 비유한다. 특히 그는 몰몬교인 후기성도교회의 창시자인 조셉 스미스가 한낱 인간에 다름 없으며 그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교리를 수정했다 말하며 두 자매가 어떠한 신념 아래 이러한 종교를 영업(sale) 하고 있는지 되묻는다. 관객은 이때 압도적으로 긴 리드의 대사량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대해 사고 하게 된다. 신도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들, 매일같이 불행과 기적이 공존하는 세계 그리고 그걸 따라도 따르지 않아도 종교와 마찬가지인 각종 변형들과 대기업의 광고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선을 말이다. 이때 두 자매는 상반된 문 앞에 서게 되는데 리드의 농간이나 다름 없는 이론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반스와 그가 끼칠 피해를 걱정하며 마치 그의 의견에 설득 당한듯 구는 팩스턴의 선택에 있어서 관객은 마치 리드의 미궁과도 같은 종교로 대표되는 현 시대의 믿음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당신의 믿음은 특정 이론에 선동 된 것은 아닌가?
비록 영화는 이 부분을 끝으로 종교에 대한 설전보단 다소 <나이브즈 아웃> 같은 추리물의 전개로 나아간다. 밀실에서까지 자매에게 어떤 선택과 추리를 강요하는 부분에서는 <셜록 홈즈>의 유명 에피소드인 '주홍색 연구' 의 흔적 역시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홍색 연구' 에피소드 역시 후기 성도 교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정한 신의 목격자나 시체 바꿔치기 등과 같은 추리소설 속 장치를 써가며 영화는 종교인인 두 자매를 대상으로 하는 리드의 연구가 팩스턴의 자매의 추리를 통해 결말부에서 그가 믿고 있는 신이 다름 아닌 '통제' 였음이 밝히는데, 이때 계속 언급하고 있는 관객에게 던지는 메세지 맹목적인 믿음과 최종적으로 연결지어진다. 조던 필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할리우드 작품들이 소재로나 장치로나 사용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국민 통제 괴담은 시기를 막론하고 미 전역에 퍼져있는 하나의 사상과도 같다. 정부가 수돗물을 통해, 안테나를 통해 국민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공포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음모이나 정작 광고를 보고 구매를 결정할 때 영상 속 연기하는 배우를 볼 때 무언가를 지시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우리는 보편적인 통제 속에서 선택적인 의심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특정 종교를 사이비라 칭하기도 하고 도믿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며 누군가의 믿음을 비난하곤 한다. 자유의지 없이 보편적이지 못한 단편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자유를 되찾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되도않는 시뮬레이션 이론을 펼쳐가며 자신이 열세하고 있다는 것을 들킨 리드처럼 영화는 곳곳에 가장 통제 당하고 있는 듯한 두 자매의 자유 의지를 심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리드의 미궁이 내포하는 것처럼 그 누구도 현대 사회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부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마치 리드의 계략에 놀아나는듯 그의 미궁 속 가장 어두운 지하까지 스스로 걸어들어간 뒤 탈출에 성공한 팩스턴의 선택부터 결혼 후 가정을 꾸리는 것이 영원의 축복이라 믿는 몰몬교 신자이나 IUD를 삽입한 반스의 선택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금 과한 연출이라고도 평가되나 죽음의 문턱 앞에서 리드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반스의 의지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너를 살리고자 한 나의 의지야 말로 극강의 통제를 흐트러트리는 타인을 위한 나의 선택이라 말이다. 무엇을 믿고 믿지 않을지 선택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매너리즘에 빠진 리드는 그러한 인간의 강한 자유 의지를 보지 못한다. 신의에서 파생된 기적을 믿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이러한 부분들을 세련되게 연출한 작품이라고는 평할 수 없으나 적어도 나의 선택이 뭉개져 보이는 이 현대 사회에서 타인을 살리려는 개인의 의지야 말로 종교에서 묘사하는 기적과 같은 것이라 말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니 나 역시 슬픔으로 가득한 현 세계에서 다시 개개인이 만들어낼, 그리고 내가 만들어낼 의지의 기적을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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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 배우의 얼굴만 믿고 설계한 것 같은 '설계자'
모델 겸 저승사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검은색 옷 입고 다니는 남자 영일(강동원)이다. 키 크고 얼굴 조막만 하고 잘생겼다. 누가 보면 모델 지망생정도 되는 사람일 것 같지만 아니다. 영일의 직업은 설계자다. 살인처럼 보일 수 있는 사건을 사고로 위장시키는 게 영일의 일이다. 혼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팀원이 있다. 중년의 여성 재키(이미숙), 월천(이현욱), 점만(탕준상)이다. 매번 찾아오는 의뢰에 거부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영일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의뢰를 해결하는 영일의 팀. 모든 사건을 설계자로서 좌지우지한다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영일의 팀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함과 동시에 우연한 사고로 꾸며달라는 요청이었다. 사건을 의뢰한 사람은 주영선(정은채)이다. 이 주영선이 누구인가?라는 점이 영일이 받았던 사건들과 의 특이점이다. 바로 주영선은 검찰총장 후보자의 딸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고위공직자가 되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사건인 걸 직감하는 영일. 하지만 시선이 많다는 걸 오히려 역이용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런 영일의 바람과는 다르게 일은 점점 꼬여간다. 설계자의 존재를 설계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서히 드러나는 영일의 정체. 이 모든 악행을 기획한 사람은 누구일까?
<설계자>를 설계하다
이 영화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쓰고 싶은 것은 아이디어다.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잘 구현됐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핵심을 보여주는 방식 자체는 신선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건을 조작하는 주인공(영일)에 관한 영화다. 그럼 1차적으로 사건을 조작할 수 있을까/그렇지 않을까에 대해 서로 대립하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지 않을까? 영화는 이 1차적인 목적을 충분히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가령 영화에서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많다. 이 선택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이 마무리되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는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영화가 인물의 욕망을 단순하게 짠 편이라 영일의 시점만 쫓아가도 이야기의 표면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영화의 리듬이라는 측면에서 쓸데없이 늘어지는 장면이 많음에도 대략적으로라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까이 있고 그만큼 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재키(이미숙)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사실상 재키가 이 영화에 작동하는 모든 모티브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모티브? 바로 정서다. 이 영화에서 누가 설계자고 설계자 머리 위에 누가 있고 주인공 영일과 대결하는 흑막이 누구고 이런 거 별로 안 중요하다. 물론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본질이 아니다. 다시 돌아와서. 재키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 재키의 동선이 영일에게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중심으로 본다면 사실상 영화의 플롯이 이것과 동일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월천의 동선도 이해가 된다. 월천만? 점막과 이치현의 행보까지 영화가 같은 모티브를 인물에게 반복시키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거 놓치고 영화 보시면 솔직히 이게 뭔가 싶으실 것이다(사실 안 놓치고 봐도 이게 뭔가 싶으실 것이다). 그냥 단지 이 캐릭터들이 이 결론에 도달하는 걸 보기 위해 이 영화의 가치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다른 관점에서 관람하시는 걸 제안하는 바다.
설계자 맞아?
이 영화의 두 번째로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 구성 방식이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 치고 굉장히 불친절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어떻게? 어떤 관객들의 입장에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이게 뭐야?”라고 느낄 만큼 맥이 빠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일반적인 플롯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교훈극이 아니다. 여러 사건을 연이어 배치시켜서 이 일들이 만든 정서를 영화의 핵심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말이 좋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거지 이 단점은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근원적으로 결함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첫 번째 이유.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전적으로 다른 길만 골랐다. 상업영화의 큰 덕목이 뭘까? 기-승-전-결의 쉬운 플롯과 이에 따른 간단한 결과물이다. <범죄도시 4>나 <파묘> 같은 영화들이 작가로서의 개성을 포기하고 상업성을 택했다는 걸 많은 팬들이 기억할 것이다(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각본을 쓰는 입장에서 이 부분을 염두하고 싶었다면 그대로 가면 된다. 하지만 이 <설계자>는 반대다. 사건들만 연이어 보여줄 뿐 결론을 애매하게 지어 영화의 혼선을 스스로 만든다. 대표적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을 보면 후반부 전개와 아예 통으로 어긋난 것 같다. 한국사회의 수많은 단면을 보여준 다음 그 인물이 그렇게 말하면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에필로그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 앞에서 한 인물이 했던 말이 의미가 없어진다. 사실 그 캐릭터도 똑같은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 안에 관객들을 속이는 속임수도 너무 많다. 하우저 TV(이동휘) 같은 캐릭터가 들어간 이유를 관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왜? 이 인물이 그렇게까지 필요한 인물이 아니니까. 이 인물을 대표하는 집단은 앞에 이미 나왔다. 그리고 이야기 상에서 어떤 유효타도 만들어내지 못하는데, 이 캐릭터의 악행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리액션이 없는 수준이다. 이 인물이 보여주는 병폐를 보여주기엔 연출이 생동감 넘치지 못했다. 물론 어떤 영화가 이런 할리우드식 전개를 쫓으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상업영화라면 흔히 하는 말처럼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 설계자의 설계 치고 허점이 너무 많다. 이 허점을 하나하나 다 손꼽기엔 너무 많아 적기도 힘들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나만 써보자면, 영일이 기획하는 모든 설계에는 3자가 개입해선 안 된다. 어떤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그 버스정류장에 사람이 있는 시기도 새벽녘이 아니다(새벽녘이어도 그 근처에 사람이 있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부 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단지 거기에 그 사람이 단 한 명만 있단 이유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어떤 측면에선 설계자라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이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일이 설계자라는 것 치고 인간관계성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부실하다. 그나마 재키와의 관계가 특별한 것 말고는 이 사람의 용인술은 극을 이끌기엔 터무니없다. 설정을 뒷받침할 만 당위성을 영화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이유. 이 영화에서 현실을 다루는 방식은 굉장히 낡았다. 예를 들어보자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관련된 내용은 이 고위직의 후보로 임명되는 과정을 다 담았다고 보기엔 어렵다. 대통령은 뭐 하고 여, 야 정치인들은 무얼 하는 걸까? 법무부장관은? 이 인물은 본인의 직업인 검사를 잘 활용하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냥 단지 영화가 1차원적으로 줄거리를 전개하기 위해 해당 직업만 가져오니 인물의 개성도 납작해지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재키도 마찬가지고 월천도 마찬가지고 이치현도 마찬가지다. 이 인물들을 둘러싼 가장 핵심 설정이 이 영화의 사건들과 계속 대치되는 감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약간 갈길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을 담고 싶은 건지. 장르적으로 재미있고 싶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건지 명확하게 정하지 못한 채로 기능적인 전개만 돋보인다. 각본 상에 있는 설정들이 상호 간에 충돌하며 '서로 틀렸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뭐라는지 모르겠어요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 음향 믹싱이다. 플롯이 친절한 것도 아니고. 어떤 캐릭터는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이렇게 이물감이 심한 영화에 음향까지 안 들리는 건 영화를 더 조악하게 만드는 요소다. 대표적으로 글쓴이는 탕준상 배우가 말하는 거 못 알아들었다. 이 인물 입에서 중요한 대사가 몇 있는데도, 그걸 강조하는데도 못 알아들었다. 탕준상 배우가 비교적 신인이라? 글쓴이는 강동원, 이미숙, 이종석 배우 같은 베테랑의 입에 나오는 대사도 못 알아들었다. 특히 강동원 배우가 맡은 영일 캐릭터는 감정선이 납작한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저음으로 대사를 전달한다. 믹싱 상태가 좋았어도 안 들린다는 사람 많을 텐데 그마저도 안 좋으니 잘 안 들린다. 그래서 글쓴이가 세 사람을 돌이킬 때 후반부 이미숙 배우의 개인기를 보여주는 장면 말고는 “두두두두”만 생각난다. 이야기의 밀도가 높아지고 싶고 장력이 팽팽하려고 해도 영화가 그럴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 구조가 불친절하고 사건마다 개연성이 얼마나 헐렁한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설계자>의 가장 큰 단점은 영화의 기본적인 틀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헐렁한 이야기 틀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배우가 있다. 바로 김신록 배우다. 이 영화의 조악한 믹싱에도 이 인물이 어떤 캐릭터인지 스스로 보여준다. 가령 이치현(이무생)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이 인물은 별다른 연출이 필요 없다. 그냥 말투와 눈빛처리만으로도 이 영화가 기획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대 역인 이무생 배우가 광기를 숨기는 캐릭터라면 이 인물은 광기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사회화된 광기여야 적합하다. 그럼 목소리 톤을 높이는 대신 눈을 이용해서 몰아붙이는듯한 연기가 좋겠지? 이 배우는 그걸 그대로 구현한다. 우리가 알던 김신록 배우의 퍼포먼스와 그렇게 멀리 떨어진 모습은 또 아니지만 영화에서 유일하게 빛난다는 점에선 기록할 만하다.
여전히 4번 타자
이 <설계자>가 개봉하는 현재까지 강동원 배우는 계속해서 패전 투수를 자처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한국영화의 팬인 글쓴이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비슷한 정도의 잘생김을 가지고 있는 누구는 광고모델로 전직했는데, 이 분은 아직도 영화배우잖아? 그래서 글쓴이는 현재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처한 입장이 궁금하다. 과연 좋은 시나리오가 오는데도 이런 선택만 하는 걸까 싶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대참패를 기록한다 하더라도 강동원 배우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강동원 배우의 퍼포먼스가 아쉽지도 않았다. 강동원 배우는 자기의 색을 깔끔하게 소화한다. 영화가 괴작이더라도 강동원 배우는 제 몫을 다 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편으로는 강동원 배우가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를 표하고 싶다. 강동원이라는 이름 하에 <천박사 퇴마 연구소>나 <인랑>, <골든 슬럼버> 같은 영화들은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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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 아들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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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묵묵히 '물방울'만을 그리며 물방울 작가로 사랑받은 화가 김창열
침묵과 고독으로 가득한 그의 세상에는 기묘한 균열이 존재한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같은 예술가인 '인간 김창열'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아들은 그리움의 시간을 살다 간
그의 삶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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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템테이션 아일랜드 시즌 1>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2021년 7월 23일 공개]
결혼을 앞둔 네 커플이 아름다운 섬으로 떠난다.
선남선녀가 득실대는 템테이션 아일랜드에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와
세상 짜릿한 사랑 확인 파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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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야차> 공식 티저 예고편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거침없이 쏘고 자비없이 속이는 스파이들의 전쟁 《야차》 4월 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