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1-05-27 15:40:43
패션계의 조커, 크루엘라!
<크루엘라> ⭐⭐⭐⭐
아직 올해가 가지 않았지만, 현재로썬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다. <크루엘라>는 디즈니 원작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서 악당을 맡고 있는 '크루엘라'의 과거 삶을 다룬 영화다.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를 보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봤지만, 큰 각색이 없는 거 같아 원작을 안 보고 영화를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크루엘라>를 보고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를 본다면 크루엘라 매력에 더 빠질 듯하다. 그리고 영화는 마치 <악마는 파라다를 입는다>가 떠오르게 만든다. 패션이라는 키워드와 냉정하고 딱딱한 상사의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루엘라> 네이버 스틸컷
패션
<크루엘라>는 197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대 배경을 살려 가풍이나 생활양식을 흩트림 없이 재연한다. 그중에서 패션이 엄청나다. 1970년대 패션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연할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펑크 문화로 생기는 펑크 룩 패션이 합쳐져 화려하고 독특한 패션을 선보인다. 1970년대 고전 패션 스타일을 선보이는 남작 부인 바로네스(엠마 톰슨) 패션과 1980년대 펑크 패션을 결합하여 새로운 패션 패러다임을 선보이는 크루엘라의 모습은 인물 관계 간의 단순한 외적 갈등을 패션이란 요소로 확장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립 구도를 표현한다. 또한, 거시적 관점으로 접한다면 당대 1970년대 패션을 가진 기성세대와 1980년대 펑크 문화와 함께 반문화를 선보이는 신세대간의 사회 갈등을 떠오르게 만든다. 자신만의 개성과 평등을 주장하는 펑크 문화의 특징처럼 크루엘라만의 아방가르드한 패션 스타일에 빠지게 된다.
패션쇼에서 '눈' 다음으로 즐거운 기관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귀'일 것이다. <크루엘라>는 다양한 각도와 샷을 통해 패션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선보이지만, 마치 영화가 아닌 패션쇼를 보는 것처럼 신나고 다양한 OST가 흘러나온다. 일부 OST는 기성 곡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러한 점이 더욱 <크루엘라>에 등장하는 패션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흥분하게 만든다.
조커
필자는 크루엘라를 보면서 <조커>의 '조커'가 생각났다. 둘 다 빌런이거니와 어머니의 정신질환으로 힘든 가정환경도 있지만, 화장과 분장을 통해 자아를 드러내거나 각성하는 방법과 세상을 향한 자신의 외침이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유혈과 폭력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조커처럼 크루엘라는 유혈과 같은 자극 없이 남작 부인 패션쇼 때 자신만의 패션을 선보이며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효과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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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래디에이터 2 | 로마의 꿈에 짓눌린 검투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가 이끄는 로마군의 침공으로 인해 아내 '아리샷'(유발 고넨)을 잃고, 노예 검투사로 팔려간 '루시우스'(폴 메스칼). 아카시우스를 향한 분노를 원동력 삼아 검투장에서 본인의 능력을 증명하며 명성을 쌓은 그는 자기 실력을 알아본 노예 검투사 상인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와 계약을 맺는다. 마크리누스는 루시우스의 복수를 돕고, 루시우스는 황제가 되려는 마크리누스의 칼이 되어 주기로.
한편 쌍둥이 황제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의 폭압과 잔인한 정복욕에 환멸을 느낀 아카시우스는 자기 휘하의 군대를 동원해 반란을 계획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이자 아내인 '루실라'(코니 닐슨)를 비롯한 원로원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로마의 영웅이었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유지, ‘로마의 꿈’을 실현하려는 것.
하지만 루시우스의 복수, 마크리누스의 음모, 아카시우스와 루실라의 반란은 이내 새 전환점에 접어든다. 콜로세움에 입성한 루시우스가 사실 막시무스와 루실라 사이의 아들이었다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기 때문.
리들리 스콧만 몰랐던 매력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남우주연상, 음향효과상, 시각효과상. 제58회 골든글로브상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가 수상한 상들이다. 화려한 수상 내역에 비해 <글래디에이터>의 이야기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한 나라의 영웅이 정치적으로 몰락해 노예 취급을 받다가 멋지게 재기한다.' 한국 사극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클리셰다.
그렇지만 <글래디에이터>는 캐릭터, 주제, 비주얼이라는 삼박자를 딱 맞추면서 클리셰를 깨버렸다. 검투사로 몰락하고도 황제에 대적하는,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영웅 막시무스의 매력은 독보적이었다. 로마 공화정을 현대 민주주의에 빗대어 개인적인 원한을 갚으려는 복수극을 자유를 향한 사투로 치환한 스토리텔링,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재현한 볼거리는 뻔한 전개마저 잊게 할 감동을 불어넣었다.
안타깝게도, 정작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글래디에이터>의 매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 보인다. 20년이 지나서 제작된 속편, <글래디에이터 2>는 전작의 일부만 계승하는 데서 그쳤기 때문. <글래디에이터 2>는 '로마의 꿈'으로 대변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메시지에만 집착했다. 막시무스처럼 극을 주도할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전편의 감동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전편 못지않은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꿈'에 충실한 속편
사실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래디에이터 2>의 서사는 예측가능했다. 전편과의 연결고리이자, 리들리 스콧 표 시대극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당장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와 콤모두스가 갈등을 빚은 계기에는 '로마의 꿈'이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 제국을 공화정으로 복원하려 했고,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이는 콤모두스가 아버지를 살해한 뒤 황제로 즉위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글래디에이터 2>의 의도도 마찬가지다. 콤모두스가 죽은 후 로마 제국의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쌍둥이 황제는 로마 시민의 자유나 공화정을 보호하거나 추구하는 대신 검투 경기와 정복 전쟁에만 열중했기 때문. 이러한 배경에서 <글래디에이터 2>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마지막 혈통이자 막시무스와 루실라의 아들인 루시우스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며 '로마의 꿈'을 이루는 검투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는 지극히 리들리 스콧다운 시대극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극은 항상 자기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역사를 펼쳐 보이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 <글래디에이터> 뿐만 아니라, <킹덤 오브 헤븐>, <로빈 후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리들리 스콧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며 일관되게 통상적인 이미지를 파괴해 왔다. 역사 왜곡 논란에서도 불구하고 그의 시대극이 꾸준히 사랑받은 이유였다.
정작 꿈을 꿀 사람이 없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2>는 전편의 감동을 살리지도, 리들리 스콧의 장점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전편과 달리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는 나머지 이야기가 메시지에 짓눌렸기 때문. 1편의 감동이 단지 메시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정도로 <글래디에이터 2>에서는 악역인 마크리누스를 빼면 특징이나 동기가 명확한 캐릭터를 보기 어렵고, 막시무스처럼 극을 주도하는 인물도 없다.
주인공 루시우스를 보자. 그에게는 출생의 비밀을 비롯해 주인공으로서 필요한 모든 조건이 주어져 있다. 문제는 그에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 일례로 그가 아내의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는 전형적이다. 로마군과의 전투 중 아내가 사망했다는 것 외에 그와 아내의 관계가 얼마나 깊거나 소중했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막시무스가 가족의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그가 로마에서 검투사들을 이끌어 반란을 주도하는 장면에서도 전율이나 감동은 느끼기 어렵다. 그가 검투사들의 지도자가 된 과정, 검투사들이 그에게 동조하는 이유를 안 보여줬기 때문. 전투나 검투장에서 루시우스가 막시무스처럼 존경받을 만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와 검투사들이 유대감을 갖는 명확한 계기도 없다. 의사 '라비'(알렉산더 카림) 외에 루시우스가 다른 검투사와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장면이 없으므로.
즉, 루시우스에게서는 어떤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단지 공화정과 민주주의라는 '로마의 꿈'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도구에 불과하니까. 그가 대의를 추구하는 명분 역시 단지 태어날 때부터 고귀했던 그의 혈통에서 비롯되는 듯 보인다. 그 결과 루시우스의 모든 선택과 행적에서는 감동을 느낄 수 없다. 그가 두 황제에게 반기를 들어도, 사적인 복수 대신 대신 대의를 선택해도, 카리스마나 비장미가 전해지지 않는다.
꿈꾸지 않은 악역만 빛나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로마의 꿈'이라는 대의를 지지하든 안 하든 개개인의 동기나 매력을 알 수 있는 캐릭터가 거의 없다. 아카시우스 장군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찌 보면 전편의 막시무스와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황제에게 대항했다가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검투사가 되었기 때문. 그와 동시에 차별점도 명확하다. 루시우스의 개인적인 원수이자, 그의 성장을 도와주는 조력자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니까.
그런데 <글래디에이터 2>는 이러한 특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아카시우스라는 캐릭터가 파편적으로 제시된 나머지 그의 행적을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 그가 황제에게 환멸을 느끼고, 공화정을 복원하기 위해 반란을 꾀하며, 모든 권력과 지위를 버릴 정도로 아내 루실라에게 충성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결국 핵심 인물 중 하나인데도 아카시우스는 등장할 때마다 영화 전개를 뚝뚝 끊는다는 인상을 남긴다.
마크리누스가 유일한 예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노예였던 그는 힘으로써 '로마의 꿈'을 짓밟고 로마의 권력자가 되어 복수하려 한다. 막시무스나 루시우스에게 검투장이 '로마의 꿈'이는 이상향을 실현하는 성소라면, 그에게 검투장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현실을 확인하는 장소인 셈이다. 이처럼 동기와 서사가 확실하다 보니 마크리누스의 음모가 본격화되는 순간부터 영화에는 비로소 활력이 돈다.
고질병마저 재발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메시지를 위해 도구적으로 소비되어 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글래디에이터 2>는 서로 다른 두 영화를 합친 작품이나 다름없기 때문. 영화는 크게 둘로 나뉜다. 검투사로 전락한 루시우스가 아카시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성공해 나가는 이야기가 전반부다. 한편 아카시우스의 죽음을 목격한 루시우스가 로마의 영웅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하면서 마크리누스와 대적하는 내용이 후반부다.
사실 두 이야기는 각각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글래디에이터 2>는 애초에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럴 경우 본래 의도대로 결말을 낼 수 없기 때문. 혈통을 제외하면 루시우스는 로마의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를 로마의 구원자로 만들려면 로마의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와는 달리 부가적인 접점이 필요했다. 전편보다 다룰 사건도 많아지고, 이야기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캐릭터의 감정선을 세심히 조명할 여유가 없으니 템포는 빨라지고, 로마 공화정의 부활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개연성도 일부 희생되어야만 했다. 리들리 스콧의 고질병이 재발한 셈이다. <킹덤 오브 헤븐>을 비롯해 그의 영화는 극장판과 감독판의 완성도 차이가 크기로 유명하다. 분량상 편집된 장면이 삽입된 감독판의 개연성과 완성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글래더에이터 2>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공허하게 화려하다
결과적으로는 화려한 볼거리마저 빛이 바랜다. 물론 <글래디에이터> 시리즈에 바라는 장면은 확실히 등장한다. 원숭이나 코뿔소를 탄 검투사와 사투를 벌이는 검투장 시퀀스의 박진감은 전편 못지않다. 해전이라는 콘셉트도 신선하다. 해안 도시를 포위한 채 벌이는 해상전, 콜로세움 안에서 살라미스 해전을 재현하는 검투 시퀀스는 육상 전투가 주를 이뤘던 전편의 액션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2>의 액션은 공허하다. 상술한 문제가 액션 시퀀스에도 반영된 나머지 서사의 방점을 찍는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액션이 갑자기 시작돼서 급하게 마무리된다. 흐름이 빠르다 보니까 한 시퀀스 내에서도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각 인물의 감정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루시우스와 아카시우스의 검투 장면만 봐도 루시우스가 아카시우스에게 설득당하는 과정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이에 더해 각 인물의 동기나 당위성이 부족하니 볼거리가 일차원적으로 화려하다. 황제 친위대와 아카시우스의 군대가 로마 가도에서 전투태세를 갖추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루시우스가 공화정의 부활을 알리는 연설을 할 때 양 군대가 그에게 열렬히 호응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애초에 루시우스라는 캐릭터에게 그 정도의 설득력이 없다 보니 그의 연설은 공허하고, 김 빠지는 결말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흔히 '에픽'이라고 부르는 시대극이 많이 제작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래디에이터 2>는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전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만큼 24년 만의 속편은 전편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글래디에이터 2>는 전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부실한 속편이었다.
Poor 형편없음
전편에 기대는 대신 완전히 새 판을 짰다면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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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큰 | 사건도 캐릭터도 부서져 파편만 남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출소 후 '석창모'(정만식)의 조직을 떠난 '배민태'(하정우).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민태가 계획한 삶은 부서진다. 창모의 조직에 함께 속했던 하나뿐인 동생 '배석태'(박종환)가 돌연 시체로 발견되고, 동생의 아내 '차문영'(유다인)은 행방불명된 것. 이에 민태는 문영을 찾아 나선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던 만큼, 문영이 동생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던 중 민태는 자신과 같은 흔적을 좇는 소설가 '강호령'(김남길)을 만난다. 그는 호령의 베스트셀러 '야행'의 모티브가 동생과 문영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문영과 호령 둘을 범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물론 사건의 진상을 숨기고 싶은 창모까지 민태 앞길에 끼어들면서 그의 복수극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사건이 전부인 영화
영화의 시나리오는 크게 두 범주, 인물 중심과 사건 중심으로 나눌 수 있다. 둘의 균형이 맞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중 후자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는 치명적인 단점을 떠안는다. 관객이 보기에 캐릭터가 플롯의 도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이 경우에는 사건이 그 자체로서 얼마나 흥미로운 지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와 몰입도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다. <인셉션>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해 여러 스타 배우가 출연했지만, 그들이 맡은 캐릭터가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기억을 심는 작전에 필요한 역할과 기능을 의인화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인셉션>은 관객을 매료하는 데 성공했다. '꿈에 침투해서 기억을 훔치거나 심는다'라는 극 중 사건 자체의 독특함이 매력적이었으니까.
김진황 감독의 신작 <브로큰>은 큰 범주에서 봤을 때 인셉션과 같은 유형의 영화다. 캐릭터 자체는 한국의 조폭 스릴러에서 익히 봐 온 인물이라서 특별하거나 흥미로울 구석이 거의 없다. 그 대신 <브로큰>은 민태의 복수극의 발단이 되는 살인 사건 차제를 결정구로 선택한 듯 보인다. 문제는 살인 사건이 신선하지도 않고, 사용법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그 결과 <브로큰>은 사건, 캐릭터, 플롯 모두 부서진 채 파편으로 흩어진다.
소재 자체에 동력이 없다
<브로큰>이 결정구로 꺼내든 소재는 살인 사건, 그중에서도 '소설 내용대로 진행되는 살인 사건'이다. 그 중심에는 호령과 그가 집필한 베스트셀러 소설 '황야'가 있다. 호령의 소설에는 마약 중독자 남편과 살아가는 여성이 등장한다.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그녀는 남편을 죽이면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인 계획을 실행에 옮긴 후 아무도 몰래 한국을 떠난다.
그런데 극 중 현실에서 '황야'의 내용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조폭 조직원이자 마약 중독자인 석태가 돌연 사망한 채로 발견된 가운데, 그의 아내 문영이 행방불명된 것. 문영의 주변인을 탐문하던 중 호령이 그녀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경찰은 소설 내용을 근거로 호령과 문영이 함께 석태를 살해했다고 의심한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문영을 찾던 민태도 호령의 소설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러한 <브로큰>의 메인 플롯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우선 사건 자체의 흥미가 부족하다. 이미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미디어에서 숱하게 활용된 소재이다 보니 매력이 없다. 당장 판타지 영화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도 '타이코 도도너스'라는 마법사가 남긴 '타이타니아의 예언'이라는 시의 내용과 똑같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는 식의 전개가 등장한 바 있다.
또한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전에도 악영향을 준다. <브로큰>은 호령과 문영의 관계가 살인 사건의 동기인 것처럼 꾸민 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창모가 개입한 살인 사건의 실상을 비로소 밝히면서 반전의 묘미를 살리려 한다. 그런데 정작 전반부의 스토리가 재미없으니 긴장감은 쌓이지도 않고, 반전도 인상적이지 않다. 미끼가 그럴싸하지 않으니, 숨겨진 진실이 따로 있다고 손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맥거핀
사용 방법도 문제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어설프다. 호령의 소설이 문제가 되는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태나 경찰이 호령을 의심하게 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호령과 문영은 문화 센터 강좌에서 만난 후 연락을 주고받았다. 호령이 소설 집필 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문영과 그녀의 주변인물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 따라서 호령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추론 단계에는 논리적 비약이 많다. 소설 내용과 등장인물이 석태와 민영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호령을 의심할 합리적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호령은 민영을 1년 간 만나지 않았다. 그가 살인 및 실종 사건에 연루된 적도 없다. 즉, 호령이 소설의 내용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로 부각된다는 아이디어는 있으나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과정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의 존재가 극 전개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확고하다. 민태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브로큰'은 출소 후 조직을 떠나려던 민태가 동생의 죽음 때문에 원래 계획을 부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의 복수극에서 호령의 역할은 의미가 없다. 그는 동생 죽음의 주범도, 조력자도, 반동인물도 아니다. 사건의 진상을 잠시 가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의 비중이 큰 전반부가 불친절하고 허세 가득한 이유다.
호령을 맥거핀으로 봐도 문제다. 맥거핀은 극의 발단을 그럴듯하게 보여준 후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사라져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에 반해 호령은 맥거핀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복수극의 발단에는 영향을 못 끼치는 반면, 분량은 민태에 버금간다. 그러다 보니 퇴장한 후에도 그의 공백은 역으로 강조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붙은 물음표가 안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호령이라는 캐릭터는 실패한 맥거핀이다.무의미한 맥거핀의 나비효과
효과가 없는 맥거핀은 다방면에 악영향을 끼친다. <브로큰>에서는 특히 캐릭터의 문제가 부각된다. 애초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는 캐릭터로 도배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생의 복수만을 추구하는 민태의 행적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창모에게 석태를 소개하고, 동생 대신 감옥을 갈 정도로 동생을 아낀다. 하지만 그 이유가 주어지지 않다 보니 막연한 형제애를 앞세운 복수극은 일견 올드하다.
비정상적인 석태의 캐릭터성 때문에 민태의 복수극은 설득력이 더욱 부족하다. 그는 형에게 기대어 살다가 조폭이 됐고, 그 후에는 마약 중독자로 지내다가 살인도 저지르고, 아내에게 가정폭력까지 행사했다. 그 어떤 연민도, 동정도 느끼기 어려운 캐릭터인 셈이다. 그 외의 등장인물도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영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없고, 경찰은 매번 뒷북을 칠 정도로 무능하고, 조폭들도 한국영화 클리셰에 충실하다.
만약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나 반전이 강조될 수 있었다면 각 캐릭터의 문제는 덜 주목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령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순간부터 캐릭터 구축 이슈는 역으로 강조된다. 공감하거나 이입할 여지 자체가 없는 캐릭터만 남아 버리니 그들의 결점이 부각되는 것. 그 결과 모두가 문영을 찾기 위해 열심히 달리지만, 왜 달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건, 플롯, 캐릭터가 모두 제각기 따로 노는 셈이다.
액션이라는 일말의 잠재력
그나마 액션 시퀀스 두 개는 눈길을 끈다.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재치와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 첫 번째는 중반부 골목길 액션 시퀀스에서 좁은 건물 틈 사이로 민태의 액션을 보여주는 컷이다. 앵글이 고정되어 있고, 이에 더해 시야 자체에 한계를 두었기 때문에 활동적인 이미지가 역으로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일반적인 액션 연출의 흐름이나 리듬에서 벗어나면서 순간적으로 눈길을 잡아챈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클라이맥스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 동생을 죽인 진짜 범인을 알게 된 민태는 창모를 찾아가고, 수산시장과 횟집에서 일 대 다의 구도로 창모의 부하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이때 민태가 싸우는 모습을 횟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앞선 장면과 유사한 효과를, 더 증폭시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앵글은 고정된 가운데, 창문 아래쪽과 중앙부는 여러 도구 때문에 가려져 있다. 시야에 한계를 설정해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도록 건물 사이 틈과 같은 장치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 덕분에 민태의 액션은 역동성이 유달리 부각되고, 복수에 목마른 그의 심경도 더 거칠게 표출될 수 있다.
이러한 장점만 놓고 보면 <브로큰>에서도 나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엿볼 수는 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는 액션 연출만으로는 이미 파편화된 사건, 플롯, 캐릭터를 한 데 묶을 수 없다. 그 결과 <브로큰>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힘든 미완성 복수극으로 막을 내린다. 원래 제목이 <야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인물 중심으로 재포장하다가 벌어진 참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Dreadful 끔찍한
한 순간의 재치 외에는 다 따로 노는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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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립 이후 PTSD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닉 퓨리'(새뮤얼 L. 잭슨)는 우주 방공 시스템 'S.A.B.E.R.'로 숨는다. 하지만 그가 우주에서 마음을 달래는 사이, 지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퓨리가 새 집을 찾아주겠다는 30년 전 약속을 배신했다고 판단한 스크럴이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
새로이 스크럴 저항군의 리더가 된 '그래빅'(킹슬리 벤아디르)은 인류를 절멸할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고, 지구는 제3차 세계 대전 직전에 빠진다. 그 사이 퓨리의 절친 '탈로스'(벤 멘델슨), 아내 '프리실라'(샬레인 우더드), 그리고 탈로스의 딸 '가이아'(에밀리아 클라크)는 목숨을 위협받는다. 이에 퓨리는 마침내 지구로 돌아온다. MI6 국장 '소냐'(올리비아 콜먼)의 도움을 받아 그래빅을 막기 위해서.
닉 퓨리도 구하지 못한 MCU
MCU가 위기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정도를 제외하면 '마블'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흥행도, 비평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앤트맨: 퀀터매니아>로 막을 올린 페이즈 5도 표류 중이다.
디즈니+ 드라마도 반응이 안 좋다. <완다비전>, <호크아이>, <팔콘과 윈터솔져> 등 익숙한 히어로가 등장한 작품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 등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는 작품은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연계도 악수가 됐다. 드라마를 보지 않으니 시리즈에 연계된 영화 역시 자연히 흥미가 떨어진다.
MCU는 여전히 두 리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셈이다. 이에 마블은 아끼던 카드를 꺼냈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만 잠시 모습을 비춘 닉 퓨리가 첩보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기획자도 MCU의 구세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크릿 인베이젼>이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인간 닉 퓨리를 보다
<시크릿 인베이젼>을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과 같이 분류하면 닉 퓨리 기분이 꽤 나쁠지 모른다. '닉 퓨리'가 주인공이라는 개성과 재미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퓨리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나 <캡틴 마블>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조연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베일에 가려 있었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MCU가 10년이 넘도록 감춘 인간 닉 퓨리를 보여준다.
퓨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약하다. 동료들을 잃고, 나이가 들었다. 그는 지키지 못한 30년 전 약속에 짓눌린다. 자기가 초래한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도통 갈피를 못 잡는다. 그는 아내와 친구 등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찾아가 도움을 구한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그의 결점과 인간적인 면모를 들려줄 기회를 잡는다.
각 에피소드는 퓨리와 특정 인물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마리아 힐과의 동료애. 탈로스와의 애증 섞인 신뢰. 그래빅과의 갈등.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이아와 퓨리의 동병상련. 퓨리를 중심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학적인 대사가 곁들여져 품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시 '마지막 단편'을 인용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결국 <시크릿 인베이젼>은 외관이 첩보물일 뿐, 퓨리의 인생을 들려주는 드라마에 가깝다.
이민자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물론 퓨리만 있지는 않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퓨리를 중심으로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나간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서사는 탈로스와 그래빅의 대립이다. 퓨리가 새로운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종족의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해야 했던 둘.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방식은 달랐다.
드라마는 이들의 갈등을 단순한 선악으로 가르지 않는다. 그래빅이 빌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살핀다. 그래빅에게 퓨리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탈로스는 퓨리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퓨리의 배신이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그래빅이 인간을 얕보는 이유와 탈로스가 믿는 인간의 강점까지. 퓨리와의 관계 안에서 그들의 신념이 만들어진 과정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니 둘의 대립은 마치 <엑스맨> 시리즈 속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갈등 같다. 탈로스는 인간과 돌연변이가 공존할 수 있다는 프로페서 X와 같은 의견이다. 그는 그래빅을 막고, 지구를 구한 대가로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요청하려 한다. 반면에 그래빅은 매그니토에 가깝다. 인간을 모두 죽이고 지구를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혐오를 선동하는 지도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을 전쟁터로 내모는 역사가 반복된다.
최근 멀티버스에 집중하는 MCU에 지친 팬들에게 이 대목은 퍽 반갑다. 잠시 과거의 마블이 보이기 때문.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세계관을 확장한 덕분이다. <캡틴 마블>이 스크럴을 난민에 비유해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스크럴을 이미 한 사회에 녹아든 이민자로 대한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 미국이 아닌 유럽인 점도 무게감을 더해준다.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꽤 만족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각 인물의 서사는 잘 쌓아 올렸지만 정작 첩보물로서의 재미가 부족하다. 케빈 파이기가 이 드라마를 두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밝힌 것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까지 등장했지만 첩보물다운 서스펜스는 부족하다.
이유는 명백하다. 마블 스튜디오가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연속성이다. 영화는 한 편의 완결성만 갖추면 된다. 속편 예고는 선택사항이다. 드라마는 다르다. 다음 화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회별로 기승전결을 가지되 전 회차 역시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드라마에 이중 플롯이 필요한 이유다.
이 작업은 정교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각 에피소드에 어떤 이야기를 분배할지, 각 회의 핵심 사건은 뭔지, 다음 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엔딩은 뭘지, 전 회차를 아우르는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낼지. 이 모든 작업이 이뤄져야 드라마의 이중 플롯이 안정적으로 완성된다.
모아 놓고 보면 부실한 이유
그런데 <시크릿 인베이젼>은 이중 플롯을 살리지 못했고, 첩보물로서의 연속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시도는 했고, 편린이 보이기도 한다. 동료도 조직도 잃은 채 그래빅의 음모에 대응하지 못하는 퓨리. 그 빈자리는 MI6 국장 소냐가 채운다. 그녀는 영국 정부에 침투한 스크럴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그래빅을 추적하고, 그의 계획을 조금씩 알아챈다.
하지만 그녀의 활약은 피상적이고, 부분적이다. 극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활용될 뿐이다. 적은 아니지만 친구도 아닌 퓨리와의 팽팽한 줄다리기도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한 퓨리부터 헛되이 희생한 셈인 탈로스, 어벤져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다 강해진 가이아와 허망하게 퇴장한 그래빅까지. 여러 캐릭터의 마지막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 두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은 50분 남짓이다. 이후 나머지 4개 에피소드는 40분 분량도 채우기 힘들어한다. 약 4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6개로 나눈 셈이다. 그러니 각 화의 플롯은 챙겨도 전체 에피소드를 연결할 플롯까지 온전히 챙길 여유가 없다. 주인공인 퓨리만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나머지 캐릭터와 이야기를 희생한 격이다.
물론 퓨리의 뒷이야기를 감상하고, MCU의 확장을 본다는 점은 여전히 만족스럽다. 그러나 이 작품에게 기대한 첩보물의 성격이 옅어진 이상 주객전도라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특히 누구로든 변할 수 있는 스크럴 종족의 특성, 곧 첩보물에 가장 걸맞은 능력도 온전히 살리지 못했으니 더더욱. 결국 드라마를 제작한 기획부터 의문이 남는다. 6개 에피소드로 쪼개기보다 과감히 편집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마블의 현재를 요약해 준다. 마블은 디즈니+ 출범과 맞물려서 드라마 제작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라마라는 형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는 듯 보인다.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었다가 영화로 제작하기로 변경된 <아머워즈>가 방증하듯.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만달로리안>과 <안도르> 등의 드라마를 영리하게 활용해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것과 자연히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고 플랫폼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이런 딜레마도 따로 없다. 이미 <로키> 시즌 2, <에코>, <아이언하트>, <데어데블: 본 어게인> 등 8개 드라마가 공개 예정인 가운데, 과연 마블은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지만, 낙관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Poor 형편없음
디즈니+, MCU의 계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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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이 돌아가는 혐오, 옹호, 풍자의 트라이앵글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4)
거침없이 돌아가는 혐오, 옹호, 풍자의 트라이앵글
개봉일 : 2024.12.11.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고어
러닝타임 : 141분
감독 : 코랄리 파르쟈
출연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보통 예리한 칼을 다룰 땐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다르다. <서브스턴스>는 여성을 향한 혐오(일부 남성의 눈으로 담아낸 불쾌한 장면들이 있음)와 옹호, 사회 풍자라는 세 개의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고 정말 거침없이 휘둘러댄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심장을 자극하는 음악과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 화면, 귀를 지나 손끝까지 생생히 촉감을 전달하는 음향. 이제 끝인가 싶을 때 한걸음 더 나아가는 파격적인 흐름. ‘이만하면 뭘 말하는지 지나가는 강아지도 다 알아듣겠어!’싶은데.. 그럼에도 이 영화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 아니 탱크처럼 미친 듯이 밀고 나간다.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한때 아카데미상을 2번이나 받고 명예의 거리에 입성할 만큼 사랑받는 대스타였다. 별 안에 박힌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이름. 엘리자베스는 별, 스타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빛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중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그는 이제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만 간간이 카메라에 얼굴을 비치는 신세로 전락한다.
엘리자베스가 50살이 되던 날, 그는 쇼의 프로듀서 하비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사고까지 당한다. 꽃다발, 케이크 하나 없이 가볍게 흩어지는 초라한 생일 축하로도 모자라 50살이 되었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되다니. 최악의 생일이다. 엘리자베스는 환자복을 입은 채 눈물을 터트린다. 그때 그를 지켜보던 젊은 남성 간호사가 엘리자베스에게 인생을 바꿔줄 약물을 권유하고 엘리자베스는 그 약물을 통해 아름답고 젊은 여성 ‘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
<서브스턴스>는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목줄에 묶인 중년 여성 엘리자베스와 당연하게 그 목줄을 쥐고 있는 남성들. 그리고 그 남성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존재, 생생하고 아름다운 여성 수(SUE)의 기묘하고 질긴 관계성을 그린다. 엘리자베스는 남성에 의해 스타가 되었다가 남성에 의해 버림받고 수가 되어 다시 남성들의 위로 올라탄다. 엘리자베스는 언젠가는 그들에게 버림받고 다시 추락할 거란 걸, 자신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위험한 기회를 놓지 못한다.
영화는 서서히 깨지며 분열하는 엘리자베스의 삶을 속도감 있게 담아낸다. 카메라에 담긴 조각난 엘리자베스와 수의 모습은 매혹적이면서 역겹고 눈물겹다. 금이 가버린 별과 그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오물들. 나에겐 그것들을 자연히 받아들일 무던함이 모자라다.
새우처럼 탈피하는 엘리자베스와 새우를 게걸스레 먹는 하비
여성의 삶을 좀먹는 남성들
50살이 된 엘리자베스는 남성들이 원하는 사회적인 여성성을 모두 잃은 사람이다. 촬영을 마친 엘리자베스가 긴 복도를 따라 화장실로 향하는 장면, 엘리자베스가 들어가려던 여성 화장실에 사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는 눈치를 보고 남성 화장실로 향한다. 사용 불가가 된 여성 화장실은 남성들의 눈엔 더 이상 소비할 여성성이 남아있지 않은 엘리자베스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남성 화장실,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하비의 통화 내용을 듣는다. 여자는 어려야 해, 섹시해야 해, 25세부터 임신 가능성이 줄어든대, 새로운 애 구해!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내는 하비의 뒤에서 엘리자베스는 숨죽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엘리자베스는 여배우,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이제 그가 받을 수 있는 꽃다발은 프로그램에서 정리되었음을 알리는 꽃다발뿐이고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장난 아닌 중년의 남성이 됐다. 반짝반짝했던 명예의 거리 속 별 모양 타일은 금이 갔고 다시는 촬영장의 조명을 맛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늙어가는 것뿐인, 다시는 주목받지 못할 공허한 중년의 인생. 엘리자베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USB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약물을 받아온 엘리자베스는 욕실에 서서 활성제를 주사한다. 이내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던 그는 몸을 구부린 채 움직임을 멈춘다. 이후 그의 척추를 따라 피부가 갈라지며 새로운 여성 수가 나타난다.
이는 새우의 탈피를 떠올리게 만든다. 새우는 성장하며 낡은 껍데기를 벗고 새 갑각으로 탈피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성장하는 새우처럼 낡은 중년 여성의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갑각인 젊은 여성의 몸으로 탈피한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되어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엘리자베스의 오래된 액자가 보이고 몸을 숙였던 수의 상체가 올라오며 액자 위에 겹쳐진다. 이때 컴퓨터의 부팅 소리 같은 효과음이 삽입되며 엘리자베스의 인생이 새롭게 재부팅됐음을 알린다.
하지만 이 탈피를 마친 생생한 새우를 노리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극 중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 캐릭터다. 대표적인 인물은 에어로빅쇼의 프로듀서 ‘하비’. 그는 엘리자베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자리에서 나이 든 여성에 대해 말하며 게걸스레 새우를 먹어치운다. 하비가 떠난 자리에 남은 수많은 새우 껍질들은 그가 남성으로서 얼마나 많은 여성의 삶을 뜯어먹었을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외에도 하비는 자신의 여성 비서 이사벨라의 이름을 신디로 바꾸면서 이게 더 부르기 편하다고 우기고 아무렇지 않게 쇼에 출연했던 여성들의 액자를 싹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권력을 자랑한다.
처음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찾아간 수는 스케줄 따위는 상관없이 너를 원한다는 둥.. 하비에게 온갖 칭송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국은 하비가 만들어준 ‘새해 전야쇼’라는 목표에 휘둘리며 무너져가는 몸에 다시 활성제를 주사한다.
하비 외에도 극 중엔 여러 추한 남성 캐릭터와 그들의 시선을 암시하는 연출이 나온다. 이름보다 신체, 나이를 먼저 물어보며 이상한 품평을 하는 쇼의 심사위원들, 스파클 씨인 줄 알았다며 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수를 보자마자 추파를 던지는 이웃, 수에겐 친절하고 엘리자베스에겐 위협을 가하던 트로이(수가 파티에서 데려온 남성), 새해 전야쇼에서 헐벗은 여성 댄서들을 반기는 하비와 백발의 남성들. 그리고 수의 가슴과 엉덩이만을 찍으며 열심히 화각을 조정하는 펌프 잇 업 쇼의 카메라 렌즈 움직임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는 사람의 동공을, 수의 몸을 탐내는 남성들의 시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나마 동창 ‘프레드’는 극 중에서 가장 친절한 남성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그가 처음 엘리자베스를 만났을 때 한 칭찬마저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구나.”라는 점에서 그의 친절이 진심으로 따뜻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수의 생생한 빛깔을 따라할 수 없었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가 수를 놓지 못했던 이유
엘리자베스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다. 영화는 이 슬픈 욕망 중 일부인 ‘남성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을 매우 확대해 보여준다.
7일, 7일. 이 밸런스가 무너진 건 수가 첫 쇼를 녹화한 후 파티장에서 트로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수는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몸 교체를 미룬다. 수의 남성을 향한 욕망은 ‘7일마다 교체 예외 없음’이라는 문장에서 ‘예외’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만들고 그는 정해진 양 이상의 안정제를 뽑아낸다. 다시 안정을 찾고 돌아온 수의 엉덩이를 감싸는 트로이의 손길이 화면 가득 채운다. 그것은 악마의 손길처럼 압도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며 그 손길 한 번의 대가는 고스란히 엘리자베스의 손가락으로 돌아온다.
깨어난 엘리자베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리필을 받으러 창고로 향한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며 들어간 카페에서 자신에게 약을 권한 젊은 간호사의 원래 몸을 만나면서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고민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래된 물건’ 박스를 엎어 오래된 엘리자베스의 몸으로 받았던 프레드의 쪽지를 찾는다. 흙탕물로 오염된 너저분한 쪽지.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가슴에 폭 안으며 안도한다.
엘리자베스는 어떻게든 수가 아닌 엘리자베스가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는 갈라진 척추의 상처를 다시 봉합하듯이 척추를 따라 이어지는 원피스의 지퍼를 올리며 프레드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준비를 모두 마치고 수가 누워있는 욕실 벽을 닫고 나가려는 찰나, 생기 가득한 분홍빛 수의 입술이, 아름다운 수의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분홍빛의 수의 입술과 새빨갛게 칠해진 텁텁해 보이는 엘리자베스의 입술. 분홍 바디 슈트 사이로 보이는 탄력 있는 수의 가슴과 빨간 원피스 아래 크게 눈길이 가지 않는 엘리자베스의 가슴. 엘리자베스는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치크와 립글로스로 생기를 덧칠하고 스카프를 덮으며 가슴을 가린다. 과도한 화장으로 얼굴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젊은이의 분홍빛을 아무리 따라 해보려 해도 진한 붉은빛을 가진 중년은 그 빛깔을 따라갈 재간이 없다.
엘리자베스는 생생한 여성이 되어 사랑받고 싶다. “They are going to love you. 모두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수에게 배달된 꽃다발 속 한마디. 그는 종료 주사를 손에 들고도 그 한마디에 흔들려 수를 죽이지 못한다.
욕심이 늘어가며 분리되는 두 사람
척추에서 안정제를 뽑는 이유
7일, 7일. 이 밸런스가 깨지기 전 엘리자베스와 수는 한 사람 같았다. 처음 쇼 오디션을 보러 갈 땐 엘리자베스가 수의 몸으로 하비에게 복수를 하러 가는 느낌이었고, 수는 엘리자베스의 또 다른 슈트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밸런스가 깨지고 점점 욕심이 늘어갈수록 원형인 엘리자베스는 수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카페에서 만난 남성 간호사의 원형은 엘리자베스에게 묻는다. “그쪽도 시작했나요? 당신을 먹어치우는 것.”
앞서 엘리자베스-수의 변화를 새우의 탈피에 비유했었다. 이 탈피 이후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따라 남은 검은 흉터는 새우 등에 있는 검은 내장과 비슷해 보인다. 수는 자신의 원형이 되는 엘리자베스의 척추, 즉 그의 내장에 주사기를 꽂고 한도 끝도 없이 안정제를 뽑아낸다. 속부터 점점 망가지기 시작한 엘리자베스의 몸은 조금씩 썩고 굽어간다.
굽은 몸으로 TV를 보던 엘리자베스는 당장이라도 부서질듯한 다리를 겨우 펴고 하비가 준 퇴사 선물을 꺼내본다. “시간 보내기 딱 좋은 걸 샀어요.” 하비의 목소리와 함께 프랑스 요리책이 모습을 드러낸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악물고 요리를 한다. 네 바람대로 빨리 시간을 보내고 남성들에게, 수에게 복수를 하러 가겠다는 듯이.
피순대, 칠면조, 송아지 뇌 조림… 의미심장한 요리들이 지나가고 TV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단 수의 모습이 나온다. 분노한 엘리자베스는 수의 말들을 하나하나 비난하며 거칠게 칠면조 내장을 손질한다. 이때 영화는 칠면조와 수의 신체 부위를 번갈아 보여주는 편집을 통해 엘리자베스의 분노를 살벌하게 표현한다. 엘리자베스가 당장이라도 수의 내장을 뜯어 죽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한 분노
누군가에겐 케첩과 다르지 않을 엘리자베스의 피
하나였던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서히 분열되며 서로를 죽이기에 이른다. 엘리자베스와 수를 망친 건 그들을 ‘남성에게 사랑받는 여성’이라는 상품으로 길들인 남성들의 권력이지만 엘리자베스와 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 사태의 책임을 남성이 아닌 서로에게 돌린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자신의 시간과 생명을 뺏어가는 게 싫고 수는 굳어가는 엘리자베스가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타인처럼 지칭하며 비난한다. 이들의 갈등은 동일인의 내면의 갈등이 아닌 타인 간의 갈등, 세대 갈등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엘리자베스는 생명을 뺏어가는 수에게, 수는 종료 주사를 꽂으려 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하나라는 충고를 잊고 서로를 죽이려 달려든다. 수는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수도 엘리자베스가 죽은 후 서서히 망가진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수는 다시 한번 몸에 활성제를 투여해 엘리자베스와 수가 합쳐진 몬스트로 수로 부활한다. 그는 한껏 치장한 채 새해 전야쇼에 서지만 남성들은 그를 죽이려 한다. 이 세계에서 아름답지 않은 여성을 사랑해 줄 남성은 없다.
아름다웠던 여성의 절규와 피가 전방위로 뿌려진다. 그리고 더 이상 스튜디오에 설 수 없는, 스타로서의 생명을 다한 왕년의 대스타는 길거리에서 산산조각 나버린다. 마지막까지 남은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별 타일 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별이 가득한 하늘에 닿지 못한 3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녹아내린다.
엘리자베스가 남긴 피는 영화의 초반부, 누군가 떨어트린 햄버거의 케첩과 비슷하게 표현되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청소차에 의해 닦인다. 이는 사랑받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여배우의 역겹고 눈물겨운 마지막 흔적이지만 하비와 같은 누군가에겐 길바닥에 엎어진 빨간 케첩과 다를 바 없는 더러운 오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화도 누군가에겐 새로운 충격이 누군가에겐 그저 뜻 모를 B급 호러 무비 정도로 평가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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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4주차 신작 개봉 영화
2022년 5월 4주 개봉영화!
안녕하세요 Good morning , 2021
국민 배우 이순재와 신들린 아역배우 김환희의 만남
영화 "안녕하세요"는 세상에 혼자 남겨져 의지할 곳 없는 열아홉 수미가 죽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호스피스 병동 수간호사 서진을 만나
세상의 온기를 배워가는 애틋한 성장통을 휴먼 드라마 입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서진에게 죽음을 앞두고도 누구보다 활기차고 열심히 사는 호스피스 병원 사람들과 생활하며 마음이 점차 바뀌는 내용인데요
성년이 된 ‘천재 아역’ 출신 김환희와 ‘국민 배우’ 이순재가 만났습니다
'곡성'에서 '뭣이 중헌디'라고 악을 쓰며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김환희의 성인연기자 모습을 볼수 있는 첫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 말하기 위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풀었다는 차봉주 감독의 신작!
이번주 추천영화 "안녕하세요" 입니다.
첫번째 추천영화 "안녕하세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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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The Goblin , 2022
K-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
영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조직의 전설적인 해결사, 일명 도깨비였던 두현과 그런 두현을 동경했던 후배 영민의 지독한 악연을 담은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영화 입니다.
제1회 아산충무공 국제액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김희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드라마 '나쁜 녀석들' 제작진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조동현, 이완 그리고 임정은, 윤철형, 이천은, 최기섭, 최왕순 등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출동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더했습니다.
거친 액션과 섬세한 감정으로 철저히 무장한 하드보일드 느와르 액션!
두번째 추천영화 "피는 물보다 진하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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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 Hommage , 2021
1962~2022 시네마 시간여행
영화 "오마주"는 한국 1세대 여성영화감독의 작품 필름을 복원하게 된 중년 여성감독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네마 여행을 그리는데요
1962년과 2022년을 잇는 아트판타지버스터로 일상과 환상을 오가는 위트 있고 판타스틱한 여정을 담았습니다.
신뢰의 연기자인 이정은 배우가 첫 단독 주연을 맡아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의 색다른 연기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삶과 예술을 사랑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보여주는데요
도쿄국제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호주시드니영화제, 영국글래스고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워싱턴한국영화제 초청과 함께 피렌체한국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중년의 여성감독이 '여판사'를 복원하는 액자식 구성과 시간여행이 흥미를 자아내는 ‘오마주’는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은원에 관한 이야기이며 한국의 모든 여성 영화감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수원감독은 우리가 모르는 여성감독들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모험적으로 살아온 분들의 기운을 ‘오마주’에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여성영화인뿐만 아니라 영화인과 예술인, 그리고 세상의 모든 꿈꾸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가 될
세번째 추천영화 "오마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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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조국 The Red Herring , 2022
내 주변의 누군가가 조국이 될수있다
영화 "그대가 조국"은 조국이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직을 사퇴한 10월 14일까지 67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정의를 잃어버린 검찰이 무참한 사냥을 벌이던 그때,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지를 다루는데요
그대가 조국은 언젠가는 ‘내’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조국’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달팽이의 별’로 아시아 최초이자 한국 최초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경쟁부문 대상 수상과
‘부재의 기억’으로 한국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다큐멘터리상 노미네이트와 뉴욕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승준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조국사태의 비밀!
네번째 추천영화 "그대가 조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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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그라운드 UN MONDE , PLAYGROUND , 2021
전 세계 영화제 30개 트로피 휩쓴, 올해의 무비
영화 "플레이그라운드"는 일곱 살 ‘노라’와 오빠 ‘아벨’이 맞닥뜨리게 된 ‘학교’라는 세상을
아이의 눈높이와 심리 상태에 초밀착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담은 영화입니다.
2021년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어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수상한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 영화제 30개의 트로피를 휩쓸었고, 지난 3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벨기에 출품작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학교’라는 집단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데요
플레이그라운드는 오빠가 당하는 괴롭힘을 통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동생 ‘노라’의 시선과 감정을 통해 폭력의 내밀한 전이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다섯번째 추천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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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조경가 정영선
도심 속 선물과도 같은 선유도공원부터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경춘선 숲길까지··· 우리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정원을 탄생시키며 한국적 경관의 미래를 그리는 조경가 정영선 공간과 사람 그리고 자연을 연결하는 그의 사계절을 만나다.
<땅에 쓰는 시> 줄거리
영화의 시작은 뛰어노는 아이들이다. 초록의 공간에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담고자 한 것의 전부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연을 물려주는 것이 소원이라는 정영선 조경가의 제프리 젤리코상 수상소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인 셈이다.
<땅에 쓰는 시>는 봄부터 겨울까지, 그리고 다시 봄으로 돌아오는 계절의 조경을 보여준다. 새순 돋고 꽃 피어 모두가 자연을 즐기러 나오는 봄, 푸르른 식물들의 생명력이 가장 돋보이는 여름, 단풍에 의해 세상이 전부 알록달록 물드는 가을, 그리고 다시 돌아올 봄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겨울까지. 영화에서는 정영선 조경가님이 참여하셨던 곳의 사계절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개중에는 가본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다. 가봤던 곳이라면 이곳을 조성한 분이 이런 생각을 갖고 만드셨구나, 거기에 있던 식물이 이거였구나 등의 생각이 들며 처음 보는듯한 새로운 공간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면, 여러 생각과 손이 거쳐 만들어진 곳이 있었구나 라는 발견을 할 수 있다.
조경은 사실 잘 티가 나지 않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풀과 나무들이 모두 조경가의 손을 거친 것일 테지만 우리는 이를 체감하면서 살아가진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더욱 기꺼웠는지도 모른다. <땅에 쓰는 시>를 보고 나오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보기 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잠깐 생겼다 사라지는 팝업스토어조차도 브랜드에 맞춰, 우리나라 생태에 맞춰 조경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느 곳을 갈 때마다 그곳의 식물들을 유심히 살펴볼 것 같다.
또 영화에서는 나오는 식물들의 이름을 꼭 하나하나 언급하고 지나갔는데, 이 부분이 매우 마음에 들었었다. 잠깐 걷는 거리에서도 우리는 정말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모르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영화에서는 이런 식물들로 공간을 조성하는 조경가를 비추기 때문인지 이들 일에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일러준다. 물론 영화에서 모든 식물이 나오지도 못했고, 한번 본 걸로 이들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땅에 쓰는 시>에서 식물 하나하나를 조명해 줌으로써 우리 근처에 존재하는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게 만든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외래종이고 무엇이 토종 식물인지 구분하지 않기 시작했다. 예쁘면 옆에 두고 원래 있던 식물들도 뽑아내고 심었다. 이런 와중에 정영선 조경가는 한반도 자생 식물들을 다시 우리 곁에 가져다 놓았다. 산수유나무, 미나리아재비 등의 식물들은 정영선 조경가의 손이 거친 어디든 존재한다.
정영선 조경가가 한국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많이 쓰는 만큼 그중 하나인 생강나무도 영화에 종종 등장했는데, 이덕에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스쳐 지나갔던 나무의 이름이 생강나무이고, 한 번도 아름다울 거라 상상하지도 않던 생강나무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깨칠 수 있었다.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이 앙상하게 남은 겨울의 풍경도 아름답게 조성하는 것이 조경가의 일이라고 한다. 황량한 겨울의 식물들을 가꾸며 다시 돋아날 새잎들을 기다리는 모습은 정영선 조경가가 가꾸어낸 조경이 우리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정영선 조경가가 가꾸는 정원에서 아이가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식물을 심는 마지막 장면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의 자연을 넘겨주고 싶다는 정영선 조경가의 뜻이 담겨있다.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정신을 엿보며 우리가 보는 풍경이 어떠한 생각을 거쳐 나왔는지 알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조경이 한국의 것, 우리의 것을 지키고 우리와 우리 다음의 세대에게 계속 자연을 사랑하고 늘 존재하는 당연한 것이 되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땅에 쓰는 시>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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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84년 영화 '듄' 기초 요약
- 1984 영화 '듄' 비하인드 스토리 소개
- 듄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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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이트 리뷰 - 구담을 비틀어 뒤틀린 판타지를 개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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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8월 5일 개봉한 작품 ‘그린 나이트’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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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침묵의 숲> 30초 예고편
청각 장애가 있는 소년 ‘창청’은
특수 학교로 전학을 간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푼 ‘창청’은
‘베이베이’라는 소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통학 버스 뒷자리에서 ‘베이베이’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창청’은 ‘베이베이’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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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온 세상이 하얗다> 한 남자의 편지 예고편
한 남자가 있다.
매일 죽음을 다짐하지만 알코올성 치매로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하며 다짐을 잊고 살고 있다.
한 여자가 있다.
그냥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우울함과 무력감으로 죽을 결심을 한다.
김모인과 류화림이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함께 죽기 위해 태백으로 향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까마귀숲에 도착했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