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2-15 00:11:41
거침없이 돌아가는 혐오, 옹호, 풍자의 트라이앵글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4)
거침없이 돌아가는 혐오, 옹호, 풍자의 트라이앵글
개봉일 : 2024.12.11.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고어
러닝타임 : 141분
감독 : 코랄리 파르쟈
출연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보통 예리한 칼을 다룰 땐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다르다. <서브스턴스>는 여성을 향한 혐오(일부 남성의 눈으로 담아낸 불쾌한 장면들이 있음)와 옹호, 사회 풍자라는 세 개의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고 정말 거침없이 휘둘러댄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심장을 자극하는 음악과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 화면, 귀를 지나 손끝까지 생생히 촉감을 전달하는 음향. 이제 끝인가 싶을 때 한걸음 더 나아가는 파격적인 흐름. ‘이만하면 뭘 말하는지 지나가는 강아지도 다 알아듣겠어!’싶은데.. 그럼에도 이 영화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 아니 탱크처럼 미친 듯이 밀고 나간다.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한때 아카데미상을 2번이나 받고 명예의 거리에 입성할 만큼 사랑받는 대스타였다. 별 안에 박힌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이름. 엘리자베스는 별, 스타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빛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중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그는 이제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만 간간이 카메라에 얼굴을 비치는 신세로 전락한다.
엘리자베스가 50살이 되던 날, 그는 쇼의 프로듀서 하비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사고까지 당한다. 꽃다발, 케이크 하나 없이 가볍게 흩어지는 초라한 생일 축하로도 모자라 50살이 되었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되다니. 최악의 생일이다. 엘리자베스는 환자복을 입은 채 눈물을 터트린다. 그때 그를 지켜보던 젊은 남성 간호사가 엘리자베스에게 인생을 바꿔줄 약물을 권유하고 엘리자베스는 그 약물을 통해 아름답고 젊은 여성 ‘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
<서브스턴스>는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목줄에 묶인 중년 여성 엘리자베스와 당연하게 그 목줄을 쥐고 있는 남성들. 그리고 그 남성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존재, 생생하고 아름다운 여성 수(SUE)의 기묘하고 질긴 관계성을 그린다. 엘리자베스는 남성에 의해 스타가 되었다가 남성에 의해 버림받고 수가 되어 다시 남성들의 위로 올라탄다. 엘리자베스는 언젠가는 그들에게 버림받고 다시 추락할 거란 걸, 자신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위험한 기회를 놓지 못한다.
영화는 서서히 깨지며 분열하는 엘리자베스의 삶을 속도감 있게 담아낸다. 카메라에 담긴 조각난 엘리자베스와 수의 모습은 매혹적이면서 역겹고 눈물겹다. 금이 가버린 별과 그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오물들. 나에겐 그것들을 자연히 받아들일 무던함이 모자라다.
새우처럼 탈피하는 엘리자베스와 새우를 게걸스레 먹는 하비
여성의 삶을 좀먹는 남성들
50살이 된 엘리자베스는 남성들이 원하는 사회적인 여성성을 모두 잃은 사람이다. 촬영을 마친 엘리자베스가 긴 복도를 따라 화장실로 향하는 장면, 엘리자베스가 들어가려던 여성 화장실에 사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는 눈치를 보고 남성 화장실로 향한다. 사용 불가가 된 여성 화장실은 남성들의 눈엔 더 이상 소비할 여성성이 남아있지 않은 엘리자베스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남성 화장실,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하비의 통화 내용을 듣는다. 여자는 어려야 해, 섹시해야 해, 25세부터 임신 가능성이 줄어든대, 새로운 애 구해!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내는 하비의 뒤에서 엘리자베스는 숨죽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엘리자베스는 여배우,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이제 그가 받을 수 있는 꽃다발은 프로그램에서 정리되었음을 알리는 꽃다발뿐이고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장난 아닌 중년의 남성이 됐다. 반짝반짝했던 명예의 거리 속 별 모양 타일은 금이 갔고 다시는 촬영장의 조명을 맛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늙어가는 것뿐인, 다시는 주목받지 못할 공허한 중년의 인생. 엘리자베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USB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약물을 받아온 엘리자베스는 욕실에 서서 활성제를 주사한다. 이내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던 그는 몸을 구부린 채 움직임을 멈춘다. 이후 그의 척추를 따라 피부가 갈라지며 새로운 여성 수가 나타난다.
이는 새우의 탈피를 떠올리게 만든다. 새우는 성장하며 낡은 껍데기를 벗고 새 갑각으로 탈피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성장하는 새우처럼 낡은 중년 여성의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갑각인 젊은 여성의 몸으로 탈피한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되어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엘리자베스의 오래된 액자가 보이고 몸을 숙였던 수의 상체가 올라오며 액자 위에 겹쳐진다. 이때 컴퓨터의 부팅 소리 같은 효과음이 삽입되며 엘리자베스의 인생이 새롭게 재부팅됐음을 알린다.
하지만 이 탈피를 마친 생생한 새우를 노리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극 중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 캐릭터다. 대표적인 인물은 에어로빅쇼의 프로듀서 ‘하비’. 그는 엘리자베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자리에서 나이 든 여성에 대해 말하며 게걸스레 새우를 먹어치운다. 하비가 떠난 자리에 남은 수많은 새우 껍질들은 그가 남성으로서 얼마나 많은 여성의 삶을 뜯어먹었을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외에도 하비는 자신의 여성 비서 이사벨라의 이름을 신디로 바꾸면서 이게 더 부르기 편하다고 우기고 아무렇지 않게 쇼에 출연했던 여성들의 액자를 싹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권력을 자랑한다.
처음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찾아간 수는 스케줄 따위는 상관없이 너를 원한다는 둥.. 하비에게 온갖 칭송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국은 하비가 만들어준 ‘새해 전야쇼’라는 목표에 휘둘리며 무너져가는 몸에 다시 활성제를 주사한다.
하비 외에도 극 중엔 여러 추한 남성 캐릭터와 그들의 시선을 암시하는 연출이 나온다. 이름보다 신체, 나이를 먼저 물어보며 이상한 품평을 하는 쇼의 심사위원들, 스파클 씨인 줄 알았다며 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수를 보자마자 추파를 던지는 이웃, 수에겐 친절하고 엘리자베스에겐 위협을 가하던 트로이(수가 파티에서 데려온 남성), 새해 전야쇼에서 헐벗은 여성 댄서들을 반기는 하비와 백발의 남성들. 그리고 수의 가슴과 엉덩이만을 찍으며 열심히 화각을 조정하는 펌프 잇 업 쇼의 카메라 렌즈 움직임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는 사람의 동공을, 수의 몸을 탐내는 남성들의 시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나마 동창 ‘프레드’는 극 중에서 가장 친절한 남성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그가 처음 엘리자베스를 만났을 때 한 칭찬마저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구나.”라는 점에서 그의 친절이 진심으로 따뜻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수의 생생한 빛깔을 따라할 수 없었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가 수를 놓지 못했던 이유
엘리자베스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다. 영화는 이 슬픈 욕망 중 일부인 ‘남성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을 매우 확대해 보여준다.
7일, 7일. 이 밸런스가 무너진 건 수가 첫 쇼를 녹화한 후 파티장에서 트로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수는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몸 교체를 미룬다. 수의 남성을 향한 욕망은 ‘7일마다 교체 예외 없음’이라는 문장에서 ‘예외’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만들고 그는 정해진 양 이상의 안정제를 뽑아낸다. 다시 안정을 찾고 돌아온 수의 엉덩이를 감싸는 트로이의 손길이 화면 가득 채운다. 그것은 악마의 손길처럼 압도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며 그 손길 한 번의 대가는 고스란히 엘리자베스의 손가락으로 돌아온다.
깨어난 엘리자베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리필을 받으러 창고로 향한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며 들어간 카페에서 자신에게 약을 권한 젊은 간호사의 원래 몸을 만나면서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고민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래된 물건’ 박스를 엎어 오래된 엘리자베스의 몸으로 받았던 프레드의 쪽지를 찾는다. 흙탕물로 오염된 너저분한 쪽지.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가슴에 폭 안으며 안도한다.
엘리자베스는 어떻게든 수가 아닌 엘리자베스가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는 갈라진 척추의 상처를 다시 봉합하듯이 척추를 따라 이어지는 원피스의 지퍼를 올리며 프레드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준비를 모두 마치고 수가 누워있는 욕실 벽을 닫고 나가려는 찰나, 생기 가득한 분홍빛 수의 입술이, 아름다운 수의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분홍빛의 수의 입술과 새빨갛게 칠해진 텁텁해 보이는 엘리자베스의 입술. 분홍 바디 슈트 사이로 보이는 탄력 있는 수의 가슴과 빨간 원피스 아래 크게 눈길이 가지 않는 엘리자베스의 가슴. 엘리자베스는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치크와 립글로스로 생기를 덧칠하고 스카프를 덮으며 가슴을 가린다. 과도한 화장으로 얼굴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젊은이의 분홍빛을 아무리 따라 해보려 해도 진한 붉은빛을 가진 중년은 그 빛깔을 따라갈 재간이 없다.
엘리자베스는 생생한 여성이 되어 사랑받고 싶다. “They are going to love you. 모두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수에게 배달된 꽃다발 속 한마디. 그는 종료 주사를 손에 들고도 그 한마디에 흔들려 수를 죽이지 못한다.
욕심이 늘어가며 분리되는 두 사람
척추에서 안정제를 뽑는 이유
7일, 7일. 이 밸런스가 깨지기 전 엘리자베스와 수는 한 사람 같았다. 처음 쇼 오디션을 보러 갈 땐 엘리자베스가 수의 몸으로 하비에게 복수를 하러 가는 느낌이었고, 수는 엘리자베스의 또 다른 슈트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밸런스가 깨지고 점점 욕심이 늘어갈수록 원형인 엘리자베스는 수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카페에서 만난 남성 간호사의 원형은 엘리자베스에게 묻는다. “그쪽도 시작했나요? 당신을 먹어치우는 것.”
앞서 엘리자베스-수의 변화를 새우의 탈피에 비유했었다. 이 탈피 이후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따라 남은 검은 흉터는 새우 등에 있는 검은 내장과 비슷해 보인다. 수는 자신의 원형이 되는 엘리자베스의 척추, 즉 그의 내장에 주사기를 꽂고 한도 끝도 없이 안정제를 뽑아낸다. 속부터 점점 망가지기 시작한 엘리자베스의 몸은 조금씩 썩고 굽어간다.
굽은 몸으로 TV를 보던 엘리자베스는 당장이라도 부서질듯한 다리를 겨우 펴고 하비가 준 퇴사 선물을 꺼내본다. “시간 보내기 딱 좋은 걸 샀어요.” 하비의 목소리와 함께 프랑스 요리책이 모습을 드러낸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악물고 요리를 한다. 네 바람대로 빨리 시간을 보내고 남성들에게, 수에게 복수를 하러 가겠다는 듯이.
피순대, 칠면조, 송아지 뇌 조림… 의미심장한 요리들이 지나가고 TV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단 수의 모습이 나온다. 분노한 엘리자베스는 수의 말들을 하나하나 비난하며 거칠게 칠면조 내장을 손질한다. 이때 영화는 칠면조와 수의 신체 부위를 번갈아 보여주는 편집을 통해 엘리자베스의 분노를 살벌하게 표현한다. 엘리자베스가 당장이라도 수의 내장을 뜯어 죽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한 분노
누군가에겐 케첩과 다르지 않을 엘리자베스의 피
하나였던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서히 분열되며 서로를 죽이기에 이른다. 엘리자베스와 수를 망친 건 그들을 ‘남성에게 사랑받는 여성’이라는 상품으로 길들인 남성들의 권력이지만 엘리자베스와 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 사태의 책임을 남성이 아닌 서로에게 돌린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자신의 시간과 생명을 뺏어가는 게 싫고 수는 굳어가는 엘리자베스가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타인처럼 지칭하며 비난한다. 이들의 갈등은 동일인의 내면의 갈등이 아닌 타인 간의 갈등, 세대 갈등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엘리자베스는 생명을 뺏어가는 수에게, 수는 종료 주사를 꽂으려 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하나라는 충고를 잊고 서로를 죽이려 달려든다. 수는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수도 엘리자베스가 죽은 후 서서히 망가진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수는 다시 한번 몸에 활성제를 투여해 엘리자베스와 수가 합쳐진 몬스트로 수로 부활한다. 그는 한껏 치장한 채 새해 전야쇼에 서지만 남성들은 그를 죽이려 한다. 이 세계에서 아름답지 않은 여성을 사랑해 줄 남성은 없다.
아름다웠던 여성의 절규와 피가 전방위로 뿌려진다. 그리고 더 이상 스튜디오에 설 수 없는, 스타로서의 생명을 다한 왕년의 대스타는 길거리에서 산산조각 나버린다. 마지막까지 남은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별 타일 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별이 가득한 하늘에 닿지 못한 3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녹아내린다.
엘리자베스가 남긴 피는 영화의 초반부, 누군가 떨어트린 햄버거의 케첩과 비슷하게 표현되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청소차에 의해 닦인다. 이는 사랑받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여배우의 역겹고 눈물겨운 마지막 흔적이지만 하비와 같은 누군가에겐 길바닥에 엎어진 빨간 케첩과 다를 바 없는 더러운 오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화도 누군가에겐 새로운 충격이 누군가에겐 그저 뜻 모를 B급 호러 무비 정도로 평가될지도 모르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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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드니 빌뇌브답게 써 내려가는 묵시록의 서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191년, 황제는 아트레이드 가문의 가주 '레토(오스카 아이작)'에게 '듄', 곧 사막과 모래언덕으로 가득한 아라키스 행성을 점령하고 아라키스에서만 나오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를 채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레토는 황제의 명령이 아라키스의 이전 주인이었던 하코넨 가문의 가주 '블라디미르(스텔란 스카스가드)'와 '글로수(데이브 바티스타)'의 음모일 수 있다고 경계하면서도, 측근인 '던컨(제이슨 모모아)'와 '거니(조쉬 브롤린)'의 도움을 받아 아라키스로 갈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한편 아트레이드 가문의 후계자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운명을 타고난 '폴(티모시 샬라메)'은 어머니이자 마녀의 일원인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에게 여러 교육을 받는 가운데 매일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인 '프레멘' 여인 '챠니(젠데잉)'를 꿈에서 만난다. 꿈에서 죽음과 파괴를 예지한 후 어머니에게 들은 자신의 운명을 두려워하던 폴은 아트레이드 가문의 일원으로 아버지와 함께 아라키스로 향하고, 사막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대면한다.
<시카리오>,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 등으로 이름을 알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트 <듄>은 기대만큼이나 많은 우려를 산 작품이었다. 특히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은 기대 요소이자 위험요소였다. 이미 수십 년간 수많은 SF와 판타지 작품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원작을 영상화하는 만큼, 과연 유사한 작품들과 차별화된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뻔할 수도 있었던 폴의 영웅담은 빌뇌브 감독의 연출과 편집, 웅장한 영상과 몽환적인 음악을 만나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1부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분명 <듄>을 보다 보면 많은 작품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우선 주인공 폴을 보자. 제국의 대가문 중 하나인 아트레이드 가문의 후계자이며, 서로를 배척하던 두 종족을 연결시켜 줄 운명적으로 정해진 메시아인 폴은 가문의 복수를 위해 거대한 전쟁에 뛰어든다. 그의 이야기에서는 수많은 유명 작품 속 주인공이 보인다. 종교적으로 예정된 구세주이자 서로 다른 종족 간의 가교이고 가문의 복수를 다짐한 후계자라는 점은 <왕좌의 게임> 속 존 스노우나 <해리 포터>의 해리를 연상시킨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내적 갈등은 <반지의 제왕> 영화 속 아라곤의 것이다. 우주의 패권을 잡은 제국과 황제의 대항마로 성장하는 소년은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의 모습을 한 적이 있고, 다른 행성에서 온 종족이 원주민들의 예언 속 영웅이 된다는 설정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유사하다.
그 외의 여러 설정도 마찬가지다. 사막으로 가득한 외계 행성이라는 공간적 배경이나 사막에서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존재에서는 <스타워즈> 속 타투인이나 자쿠 행성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아라키스 행성에 외계 종족들이 침입해 현지 자원을 약탈해 가는 것은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구하려는 경쟁에서 비롯된 유럽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지만, <아바타>를 필두로 유사한 메시지를 내놓는 작품은 사실 적지 않았다. 모든 수분을 식수로 재활용하는 것이나 한 행성은 사막으로, 수많은 동식물은 모래벌레라는 하나의 생물로 단순화시킨 설정은 지구라는 닫힌 생태계에 대한 비유 같아 보이지만, 이조차도 <매드맥스>와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갖는 힘은 그 자체로 여전히 유의미하나, 이들이 <듄>만의 매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듄>은 자칫 기시감으로 가득한 수많은 판타지 SF 영화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빌뇌브 감독의 <듄>은 위험으로 감득한 함정을 마치 모래벌레 피하듯 영리하게 피해 간다. 우선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빌뇌브는 원작으로 되돌아가 폴을 다른 작품 속 영웅들과 차별화하는 길을 찾아낸다. 영웅이 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영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와 경고를 암시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여러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작품 내에서 영웅이 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라곤, 해리 포터, 루크 스카이워커, 제이크 설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설령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아픔을 겪고 깊은 고뇌에 빠지더라도 끝내 영웅의 능력과 덕목, 재능을 발휘해 세상을 구해낸다.
하지만 원작 속 폴의 영웅 서사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으며, 빌뇌브 감독은 영리하게 꿈을 활용하여 그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영화는 꿈이란 인간의 마음속 심연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는 챠니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며, 이 내레이션의 내용처럼 폴의 꿈은 영웅의 부정적인 속성을 심연 위로 끌어올린다. 실제로 스파이스를 흡입한 후 폴의 환상은 가문의 복수를 이룬 그가 구세주로서 하나의 상징이 되고, 그로부터 비롯된 광기가 온 우주를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하고 피바다로 물들이는 불길한 미래를 보여준다. 그래서 폴은 자신이 프레멘들의 구세주가 될 운명임을 아는데도 그들의 신앙심이나 계시가 한낱 조작과 선동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여기거나, 피를 흘려야 하는 결투에서 승리하여 그들의 메시아로 인정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의 예지가 늘 현실이 되기에 더욱 그렇다.
즉, 선택받은 특출한 한 개인, 곧 초인이 세상을 얼마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해 노래하던 다른 영웅담과는 달리, <듄>의 영웅담은 초인이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힘에 대한 경계와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다. 전반적으로 희망을 잃지 않는 장조 화음으로 진행되는 다른 영화들에 반해 <듄>은 불안함을 품은 단조 화음으로 진행되면서 모래사막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나가고, 원작의 고유한 주제를 되살림으로써 오래된 고전의 약점을 지운 것이다. 이는 웅장하고 강렬하나 알게 모르게 귀를 괴롭히고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드는 한스 짐머의 선율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발걸음을 붙잡을 만큼 잘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 영화가 폴의 환상을 반복되는 암시나 복선으로 남길 뿐, 본격적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 것은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강렬한 인상과 남다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보니 원작을 접하지 않은 경우에는 폴의 서사와 일반적인 영웅담의 차이가 명확히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한편 빌뇌브 감독 본연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편집이나 연출적 특징은 많은 작품이 공유하는 설정과 세계관 외에도 뚜렷한 개성을 지닌 독자적인 영역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낸다. 우선 빌뇌브 감독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금기시되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적극적으로 영화에 끌어오면서 영화적 긴장감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듄>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에서는 미래의 사건을 삽입하는 플래시 포워드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운명과 공동체의 비극 앞에서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미래를 알기에 초인이 되어가기를 경계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한 개인의 심리가 효과적으로 부각될 수 있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는 알아도 정작 그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이다.
또한 전투 장면에서는 영화적 긴장감을 정적이면서 느린 호흡으로 풀어내는 빌뇌브 감독의 역설적인 장기가 두드러진다. 습격으로 인한 혼란과 급박한 상황을 하늘에서 대지를 내려다보는 관찰자와 같은 구도로 차분하게 담아내다 보니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아트레이드 가문의 처절함, 생존자의 좌절과 절망은 오히려 극대화된다. 마찬가지로 아라키스 행성을 보여줄 때에도 행성의 전경을 상공에서 보여주는 구도를 자주 취하며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막의 아름다움과 척박함, 모래 벌레의 위용을 스크린 가득 담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황홀한 비주얼은 폴의 서사에서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설명이나 분량을 직관적으로 채워주고도 남는 듯 보인다.
더 나아가 압도적인 스펙터클은 폴의 꿈, 프레멘들의 일상 속에서 기도, 예언과 계시를 읽어내는 마녀들의 존재 등을 만나 마치 한 편의 묵시록처럼 웅장하고 숭고한 인상을 준다. 작중 종교가 신앙의 대상이자 동시에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된 결과, 예수나 무함마드를 비롯해 이미 죽은 예언자들의 이름을 내걸고 전쟁을 치렀던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 간의 역사적 충돌을 연상시키는 종교적 알레고리가 영화 전반을 감싼다. 그래서인지 <듄>이 성인을 위한 스타워즈가 될 것이라던 빌뇌브 감독의 표현에는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만 시리즈의 1편이기에 피할 수 없는 단점이 눈에 띄기는 한다. 아무래도 시리즈의 시작인 관계로 가문을 비롯해 스파이스나 모래벌레, 그리고 각종 행성과 무기 및 도구들에 설명이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영호의 도입부는 지루한 감이 있다. 그 후로도 느린 호흡을 통해 착실히 기반을 다져나가는 장면이 많은 관계로 최근 블록버스터 영화의 트렌드와는 잘 결부되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래서 초반부 이후에도 영화 템포가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감독의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처럼 불호로 느껴질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뇌브 감독의 스타일대로 뚝심 있게 뽑혀 나온 2시간 40분은 그 어떤 판타지나 SF 작품과도 다른 독보적인 분위기와 개성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유의미해 보인다. 또한 원작을 읽었든 아니든, 감독의 스타일에 익숙하든 아니든 영화가 끝난 후에는 2부가 언제 개봉하고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게 만드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듄>은 많은 우려는 기우라는 듯이 한 편의 독립적인 작품으로나 시리즈의 초석으로나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이제는 대중성까지 잡은 듯한 드니 빌뇌브 표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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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는 비하인드가 더 달달하지
작품의 뒷모습을 담아 🧡Behind-The-Scenes🧡
영화, 드라마의 비하인드 사진은 캐릭터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죠. 그래서 종종 좋아하는 영화의 비하인드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저장을 누르게 되는 것 같은데요.
오늘은 로맨스 장르 영화와 드라마의 비하인드를 몇개 가져와 봤습니다.
망한 사랑이든... 이어진 사랑이든 뒤에서 행복한 모습의 배우들을 보면 그저 흐믓하게 보게 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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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윅 세계관 속 또 다른 불꽃
<존 윅> 세계관에서 ‘착한 킬러’라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은퇴를 결심한 존 윅(키아누 리브스)조차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세상의 모든 킬러들에게 쫓기는 사냥감이 되어버린다. 이 세계에서 과거를 지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속 “I am working on it(지금 노력 중이야)이라는 짧은 대사는 그 불가능을 깨닫는 순간에도 발버둥치고 싶은 마음,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지막 의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결심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존 윅>시리즈를 경험한 관객들은 안다.
결국 존 윅이 깨닫는 건 복수 이후에도 자신이 여전히 그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이 룰과 관계망은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허락과 조건, 혹은 죽음을 통해서만 끊어진다. 영화 <발레리나> 속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향한 복수심으로 살아왔고, 그 집념은 그녀를 조직의 규칙마저 깨뜨리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옳은가, 아니면 자신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가.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관객을 한동안 붙잡아 둔다.
[첫 번째 감정] 이브의 분노
이브의 분노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잃은 순간부터 시작된 감정은 그를 킬러의 세계로 끌어들인 원동력이자 족쇄였다. 다른 이들은 이브의 변화를 만든건 이브에게 찾아온 운명이라 포장하지만, 실상 모든 길은 이브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그녀가 만든 방향 위에 주변 인물들이 엮였을 뿐이다. 이 분노는 이브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배하며, 복수라는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영화 내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브의 모습에서 그 의지를 볼 수 있다.
이 강력한 감정의 절정은 후반부 화염방사기 시퀀스에서 폭발한다. 불꽃이 뿜어져 나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그녀 내면 깊숙이 응축된 분노의 형상처럼 보인다. 마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선언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은 영화 속 모든 액션 장면을 통틀어 가장 감정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다. 이 액션은 이브라는 인물의 감정의 끝자락이자, 앞으로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서는 입구다. 똑같이 화염 방사기를 들고 공격하는 킬러가 무척 강력해 보이지만, 이브가 전혀 기죽지 않는건, 아마도 그 분노 때문일 것이다.
존 윅이 그녀를 이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누구보다 깊은 분노가 어떤 길을 만들고, 또 그 길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안다. 비탈길이 가득한 사이비 종교 본거지를 오르내리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을 제거하는 이브의 모습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분노가 때로는 생존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느낀다.
[두 번째 감정] 존 윅의 공감
이 영화에서 존 윅은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이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래서 가장 가까이서 그녀를 말리고자 한다. ‘바바야가’라 불리며 킬러 세계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는, 복수의 길이 얼마나 끝이 없고 허무한지를 체감했다. 그렇기에 이브에게 멈추라고 말하는 장면엔 이브가 멈추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래도 여기서 멈췄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떠오른다. 하지만 존 윅의 말 속에는 이미 체념이 섞여 있다. 그 역시 이브가 돌아서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건 이미 존 윅이 걸어온 길이다.
존 윅이 다른 킬러와 구분되는 지점은 ‘공감’이다. 아내와의 삶은 그에게 다른 종류의 감정을 남겼고, 그것이 그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공감은 이 세계에서 약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브는 아직 그 감정의 깊이에 닿지 못했지만, 복수의 끝에서 결국 존 윅이 선 자리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이브도 그 공감능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또한, 존 윅의 공감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연대감이자, 자신과 닮은 이를 바라보는 두려움이다. 그는 이브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기에 안쓰러워한다. 이 감정은 영화가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로 확장된다.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힘이 아니라, 누군가의 공감과 손길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존 윅은 폭력을 이용해 그 상황을 벗어나려 애쓰는 사람이지만, 결국 그 모든 폭력을 멈춰야 다시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다. 이브는 그런 존 윅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세 번째 감정] 윈스턴의 따뜻함
윈스턴(이안 맥쉐인)은 콘티넨탈 호텔의 지배인이자, 이 세계에서 가장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규율에 철저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의외의 온기가 있다. 이브를 돕는 장면, 특히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그 복잡한 내면을 엿보게 한다. 그는 룰을 깨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그가 콘티넨탈 호텔이라는 중립지대를 만든 이유는 단순한 비즈니스만이 아니다. 살육과 복수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지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공간은 총성 대신 침묵이 허락되는 몇 안 되는 장소이며, 그것이 윈스턴이 지키려 한 평화의 방식이다. 시리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방식이 점점 따뜻하게 느껴지는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차갑기만한 킬러의 세계에서 윈스턴의 존재는, 어쩌면 그 자체로 이 세계를 지탱시키는 힘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따뜻함은 그를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세계관의 균형추로 만든다. 냉정함과 온기가 공존하는 인물, 그 복합성 덕분에 윈스턴은 다른 캐릭터들과 차별화된다. 그의 존재는 이브와 존 윅 모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무리 잔혹한 세계라도, 그 안에 온기를 품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 것.
<존 윅>과 어깨를 나린히 하는 여성 액션 시리즈의 탄생
<발레리나>는 <존 윅> 시리즈의 스핀오프로서, 원작의 액션과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인물을 통해 감정의 결을 확장하려 한다. 총격전과 근접전, 그리고 후반부의 화염방사기 시퀀스까지, 액션 설계는 탄탄하다. 특히 공간을 활용한 액션과 동선 설계는 원작 팬들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만, 여성 킬러라는 설정에서 기대했던 서사적 차별점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존 윅의 서사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전개는 신선함을 조금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는 스핀오프라는 한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를 발판 삼아 후속작에서 더 뚜렷한 개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남아 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스턴트맨 출신은 아니지만, 다수의 액션 영화 연출 경험을 바탕으로 원작의 무드를 해치지 않는 연출을 선보였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날렵하고 세련된 액션을 소화하며 주연으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했고, 키아누 리브스, 가브리엘 번, 노먼 리더스, 안젤리카 휴스턴 등 조연 배우들도 서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현재까지의 흥행 성적은 안정적인 출발을 보였으며, 앞으로의 <존 윅> 세계관 확장에도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 큰 스크린에서 관람할수록 액션의 박력과 세계관의 디테일이 더욱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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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은 나의 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율리에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몰라서 끝까지 가 봐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성적에 맞춰 의대에 갔지만 자신은 정신적인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는 걸 깨닫고 심리학과에 진학하더니, 또다시 시각적인 것에 예민하다는 걸 깨닫고 포토그래퍼를 꿈꾸며 서점에서 임시로 일한다. 꿈이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마다 연애 대상도 계속해서 변한다. 율리에가 북유럽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인생 꼬이기 딱 좋은 성격이다. 나는 율리에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율리에처럼 침울해졌다가 율리에가 왜 자꾸 사진은 안 찍고 사랑놀음이나 하고 있는 건지 갑갑해졌다.
그럼에도 율리에는 용감한 사람이다. 사람도 꿈도 아니다 싶으면 미련 없이 떠나버린다. 어쩌면 그는 좋은 걸 못하게 되는 것보다 싫은 걸 견디는 게 더 힘든 사람인지도 모른다. 성공한 예술가 악셀은 율리에에게 롤 모델이고 대화가 잘 통하지만 그와 함께할 때 율리에는 들러리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그 점 때문에 율리에는 에이빈드에게 끌린다. 에이빈드는 율리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야망이 없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에이빈드에게는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뭐냐며 무시한다. '나는 더 많은 걸 원한다'라고 말하지만 율리에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내가 보기에 율리에는 누구와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누구와 있어도 대체로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걸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떠난다는 건 결핍이 많다는 뜻이다. 동시에 결핍은 동력이 된다. 그가 사랑에 열성적이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자기 자신을 가장 깊이 알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을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20대 내내 나도 뭔갈 원했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말하기 힘들었다. 늘 뜬구름 사이를 걸어 다니는 기분이었던 건 마음속의 결핍을 채울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몰입했다. 몰입과 결핍을 반복하는 동안 나는 매번 타인의 삶이라는 대조군을 통해서 욕망을 확인하고 점점 선명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릴 때는 31가지 맛 아이스크림 중 뭘 맛볼까 고민했지만 이제 나는 쿼터 한 통을 한 가지 맛으로만 채우는 30대가 되었다. 율리에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기 위해 타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율리에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았고, 자신을 자신답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나와 혼자가 되었다. 타인의 삶을 전전하던 율리에는 드디어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 최악의 나를 수없이 지나온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결핍은 나의 힘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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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더 노비스>, 시사회 리뷰
몇 달 전 지인에게, 나는 완벽함을 추구당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 적 있었다. 며칠 뒤 생각해보니 나한테 완벽함을 요구하거나 강요한 사람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완벽하게 일을 해냈을 때 주변에서 받았던 긍정적인 시선과 칭찬만 있었지 완벽을 몰아붙인 건 나 자신이었다. 오늘은 강박을 다룬 영화 <더 노비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novice [ |nɑːvɪs ] 1. 초보자 2. 수련 수사 3. 초보 경주마
대학 신입생 ‘알렉스'는 교내 조정부에 가입한 수 동급생 ‘제이미'에게 경쟁심을 느낀다. 늘 최고를 갈망하는 ‘알렉스’는 팀 1군에 들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기 시작하는데…
영화가 시작하고, 신입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정팀 선생님은 신입생들에게 차례로 조정팀에 들어온 이유를 묻는다. 알렉스의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알렉스에게도 똑같이 묻는다. 알렉스가 대답하려는 찰나, 누군가 등장하면서 자연스레 알렉스의 답변은 증발한다. 조정팀 선생님도, 관객도, 알렉스가 조정팀에 들어온 이유를 모른 채 영화는 계속 이야기를 풀어간다. 알렉스가 조정팀 1군에 들기 위해 광기에 가까운 노력을 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기에, 알렉스가 조정팀에 들어온 명확한 이유는 더더욱 중요하고 궁금한 요소가 된다. 사실상 영화는 '알렉스의 조정팀 가입 이유 찾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그 이유를 찾으면 끝이 나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가장 주된 내용이자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다.
(아래 문단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렉스는 매번 목표를 수정하고,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듯 자신의 노트에 목표를 꾹꾹 눌러쓰고 누구보다 일찍 자체적으로 훈련을 하고, 계절학기에도 굳이 수업을 들으며 훈련실을 방문해 훈련을 지속한다. 꾸준히 목표를 새기고, 선생님이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훈련을 하는 알렉스는 일종의 '올바른' 훈련생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알렉스보다는 타고난듯한 제이미는 선생님이 시키는 훈련을 열심히 하며 선후배를 포섭하여 1군으로 가는 일종의 정치질을 더하여 목표를 달성한다. 결론적으로, 알렉스가 1군 최고가 되기 위해 하는 노력은 모두 ‘올바르다'라는 점에서도 알렉스의 목표는 그저 ‘1등'이 아닌 본인의 완벽함이었음을 증명한다.
영화에서는 알렉스가 조정팀에 들어온 이유는 설명해내지만 그 강박의 원천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알렉스의 강박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가 없는 탓에 강박은 다소 정신병의 일부처럼 다뤄지는 듯 보인다. 강박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감독이 굳이 알렉스의 강박에 대해 설명하려들지 않은 것엔 이유가 있다는 의견이다. '누구나 가진 강박이기에, 지나친 강박은 삶을 헤친다.'이것이야말로 감독이 관객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로런 헤더웨이(Lauren Hadaway)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위플래쉬>(2014), <헤이트풀8>(2015),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2021)의 음향 파트를 담당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감독이다. 이러한 경력들 덕분인지,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져주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내며 구조적 완결성을 지닌다. 더불어, <오펀: 천사의 비밀>에서 연기 천재로 이름을 알렸던 이사벨 퍼만이 주인공 알렉스를 연기한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 새로운 역할에 몰입할 수 있지만 <오펀: 천사의 비밀>에서 보여줬던 눈빛처럼 <더 노비스>의 알렉스는 여전히 강렬했다. 또한 이사벨 퍼만은 이 영화로 작년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앞으로의 연기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에서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한 <더 노비스>는 오는 5월 25일 개봉에 더불어 6월 5일 무주산골영화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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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것을 보면 정화되는 것처럼
어림잡아보니 10년이 넘었더라. 내가 영화관에서 로맨스를 본 지가.
매번 극장에서 볼 영화는 블록버스터이거나 영화관에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독립영화들이었다. 그렇다고 상업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닌데, 로맨스는 특히 영화관까지 가서 보지는 않았었다. 내가 여태껏 리뷰해온 로맨스 서사들은 ott로 접했던 영화나 드라마였다. 그런 내가 정말 뜬금없이 현재 상영중인 로맨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정말 응원하는 젊은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고, 아주 오래전에 본 대만 영화의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내용에 크게 실망할 만한 지점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 한국의 여름과 대만의 여름이 다르듯이
내 기억 속 대만판 '청설'은 대만의 습한 여름을 잘 표현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한국판 '청설'은 대만보다는 한결 싱그러운 한국의 여름을 잘 표현해내었다. 물론 한국의 여름도 습하고 무덥지만 축축한 느낌보다는 파릇파릇한 나무가 많은 그런 여름을 잘 그려냈다는 뜻이다. 그런 여름의 정서와 이 풋풋한 두 배우의 조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모두가 판타지 속 인물들이다. '저렇게 착한 사람이 어딨어'라고 할 만큼 모두들 순딩이들이다. 영화는 픽션인만큼 적당한 현실성과 적당한 판타지가 잘 조합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 속에서의 현실적인 모습이 있다면, 용준이가 취준생이라는 것과 여름이가 동생을 보살피느라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며 현대의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다. 그 이외의 모습은 사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훈훈하다. 누군가는 이런 내용을 순 거짓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픽션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떤 극을 볼 때 일말의 판타지도 없으면 다큐를 소비하는 것과 뭐가 다른걸까 라고 생각한다. 다큐와 같은 현실적 지점도 어느 정도 보유하면서 적당히 억지스럽지 않은 판타지를 섞어 '나의 삶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혹은 '저런 훈훈한 상황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상상할 수 있게 되어야 성공적인 픽션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그 지점을 나쁘지 않게 구현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그저 두 주인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지점이 있다. 영화에 빌런이 없고, 그들이 겪는 갈등도 다 착해서 생기는 것들이라 분노하게 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 소리는 없지만 눈이 호강하는 색감
이 영화의 키워드는 '수화'이기도 한데, 그래서 주인공 커플은 말을 하지 않는다. 계속 수화로만 대화하기 때문에 고요한 사운드가 오히려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여름과 용준이 데이트를 했을 때, 가을이 집에서 자고 있다가 불이 났는데, 경보 소리를 듣지 못해 연기가 가득한 집에서 깨었던 장면이다. 그 때, 흠칫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을이는 못 들으니 소리로 표현하는 위험은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나에겐 당연한 것이 가을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잠시 반성하게 되더라. 사회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간접적으로라도 이해하기에 영화만큼 좋은 매개체가 없다는 것을 다시 느끼기도 했다. 비슷한 감정을 어떤 영화를 보면서 느꼈었나 회고해보니, '코다'라는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코다인 딸이 노래하는 모습을 농인인 가족들은 들을 수 없어 농인의 입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음악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장면이었다. 그들은 딸의 공연에 호응을 하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밖에 없고, 그들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박수를 쳐야하는 모습이 참 아팠는데, 이번 영화도 가을이의 시점에서 소리가 없을 때 위험을 감지하는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용준이 가을과 여름과 놀러가는 장면에서 굳이 클럽을 데리고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소리를 못 듣는데, 왜 클럽을 간 건가 생각했었다. 소리를 물리적으로 들을 순 없어도 소리의 진동을 느낄 순 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굳이 농인들이라고 음악이 있는 곳을 기피하는 것도 과도한 배려일까 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적인 측면에서는 다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시각적으로 참 예쁜 영화다. 우리 나라의 여름의 싱그러움을 잘 표현했고, 모든 것이 푸릇푸릇한 계절이지만 더위를 견뎌내야 하는 여름처럼 청춘을 견뎌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잘 담기어 그들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계절이었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게 대단히 예쁜 옷들을 걸치고 있지도 않은데, 그저 평범한 일상을 담아내었는데도 모든 인물들이 밝게 웃고 있으니 그걸 보는 재미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뭐가 제일 중요했을까 고민해본다면 빛이 참 중요했겠다고 생각했다. 인물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도 일종의 빛이고, 그들을 조명하는 밝은 햇빛, 나무의 파란 빛, 물의 투명한 빛 등을 정말 적절히 잘 사용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일본 영화들이 빛을 잘 사용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은데, 이 영화도 혹시 빛의 사용에 있어 그런 영화들이 레퍼런스로 참고가 되었던 걸까 싶었다.
3. 총평
이 영화의 장점은 편안함이다. 하지만 단점도 편안함일 수 있다. 인물 간의 관계도 분명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렇게 긴장감 있지도 않고, 영화라는 특성상 언젠가 풀리겠지 싶은 수준이기 때문에 혹자는 지루하다, 너무 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에 있어 내용은 30% 정도 중요하고 배우의 연기와 얼굴합이 70%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배우들의 청량한 조합이 참 잘 어울려 뻔한 느낌도 어느 정도 상쇄된 것 같다. 홍경 배우의 필모그래피에 의외로 말랑말랑한 장르가 없어서 참 안타까웠었는데, 비로소 청춘을 표현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생각될 것 같아서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뿌듯했고, 노윤서 배우도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의외로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김민주 배우도 참 수수하게 나오니 가수였을 시절보다 더 예쁘다고 느꼈다. 뭔가 여름이보다 덜 종종거리고, 쿨하고 시크한 가을이 캐릭터에 참 잘 어울리는 마스크였달까. 오히려 캐릭터의 멋있음은 여름보다는 가을이 쪽에 한 표를 던진다. 그리고 용준이 친구로 나오는 배우도 자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능청스러운 연기가 참 보기 좋았다. 약간 그 옛날에 건축학개론에 나오던 조정석 배우를 봤을 때의 신선한 느낌이었다. 물론, 건축학개론처럼 살짝 도라이같은 대사는 없었지만 그 신선한, 새로운 배우를 봤다는 느낌이었다는 말이다.
한참 전에 봐놓고 이제 리뷰하는 거긴 하지만...
아직 상영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보러 가세요.
이상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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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트홈 리뷰」당신이 느꼈을 점을 세세하게 담아냈습니다ㅣ스포주의ㅣ자막을 위주로 봐주세용ㅣSweet home reviewㅣ
?"스위트홈 리뷰(*스포주의)"
뭐 저는 고민시 배우가
발레하는 거 봤으니까 만족입니다^^*- "스위트홈" 시놉시스1
세상을 차단하고 방 안에 틀어박힌 10대 소년. 현수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인간이 괴물로 변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아직은 사람이니까. 이웃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스위트홈" 시놉시스2
끔찍한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는 그린 홈이라는 낡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한다.
절망에 빠진 그는 점차 그린 홈에 관한 비밀을 깨닫는다.
왜곡된 인간 욕망을 여러 가지 형태로 투영하면서 인류를 몰아내려는 괴물이 그린 홈을 둘러싸고 있으며, 자신을 포함해 그린 홈 주민들은 그 괴물들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스위트홈" 정보
공개일: 2020년 12월 18일
화수: 10부작
제작: 스튜디오 드래곤, StudioN
장르: 호러, 크리처, 생존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
연출: 이응복
극본: 홍소리, 김형민, 박소정
출연: 송강, 이진욱, 이시영, 박규영, 고민시, 고윤정
원작: 네이버 웹툰 스위트홈
시청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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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야차> 공식 티저 예고편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거침없이 쏘고 자비없이 속이는 스파이들의 전쟁 《야차》 4월 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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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범죄도시2> 메인 예고편
가리봉동 소탕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전일만’(최귀화) 반장은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느끼고,
그의 뒤에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역대급 범죄를 저지르는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기 시작하는데...
나쁜 놈들 잡는 데 국경 없다!
통쾌하고 화끈한 범죄 소탕 작전이 다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