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11-22 11:56:09
글래디에이터 2 | 로마의 꿈에 짓눌린 검투사
<글래디에이터Ⅱ>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가 이끄는 로마군의 침공으로 인해 아내 '아리샷'(유발 고넨)을 잃고, 노예 검투사로 팔려간 '루시우스'(폴 메스칼). 아카시우스를 향한 분노를 원동력 삼아 검투장에서 본인의 능력을 증명하며 명성을 쌓은 그는 자기 실력을 알아본 노예 검투사 상인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와 계약을 맺는다. 마크리누스는 루시우스의 복수를 돕고, 루시우스는 황제가 되려는 마크리누스의 칼이 되어 주기로.
한편 쌍둥이 황제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의 폭압과 잔인한 정복욕에 환멸을 느낀 아카시우스는 자기 휘하의 군대를 동원해 반란을 계획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이자 아내인 '루실라'(코니 닐슨)를 비롯한 원로원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로마의 영웅이었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의 유지, ‘로마의 꿈’을 실현하려는 것.
하지만 루시우스의 복수, 마크리누스의 음모, 아카시우스와 루실라의 반란은 이내 새 전환점에 접어든다. 콜로세움에 입성한 루시우스가 사실 막시무스와 루실라 사이의 아들이었다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기 때문.
리들리 스콧만 몰랐던 매력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남우주연상, 음향효과상, 시각효과상. 제58회 골든글로브상 드라마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가 수상한 상들이다. 화려한 수상 내역에 비해 <글래디에이터>의 이야기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한 나라의 영웅이 정치적으로 몰락해 노예 취급을 받다가 멋지게 재기한다.' 한국 사극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클리셰다.
그렇지만 <글래디에이터>는 캐릭터, 주제, 비주얼이라는 삼박자를 딱 맞추면서 클리셰를 깨버렸다. 검투사로 몰락하고도 황제에 대적하는,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영웅 막시무스의 매력은 독보적이었다. 로마 공화정을 현대 민주주의에 빗대어 개인적인 원한을 갚으려는 복수극을 자유를 향한 사투로 치환한 스토리텔링,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재현한 볼거리는 뻔한 전개마저 잊게 할 감동을 불어넣었다.
안타깝게도, 정작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글래디에이터>의 매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 보인다. 20년이 지나서 제작된 속편, <글래디에이터 2>는 전작의 일부만 계승하는 데서 그쳤기 때문. <글래디에이터 2>는 '로마의 꿈'으로 대변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메시지에만 집착했다. 막시무스처럼 극을 주도할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전편의 감동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전편 못지않은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꿈'에 충실한 속편
사실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래디에이터 2>의 서사는 예측가능했다. 전편과의 연결고리이자, 리들리 스콧 표 시대극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당장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와 콤모두스가 갈등을 빚은 계기에는 '로마의 꿈'이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 제국을 공화정으로 복원하려 했고,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이는 콤모두스가 아버지를 살해한 뒤 황제로 즉위한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글래디에이터 2>의 의도도 마찬가지다. 콤모두스가 죽은 후 로마 제국의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쌍둥이 황제는 로마 시민의 자유나 공화정을 보호하거나 추구하는 대신 검투 경기와 정복 전쟁에만 열중했기 때문. 이러한 배경에서 <글래디에이터 2>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마지막 혈통이자 막시무스와 루실라의 아들인 루시우스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며 '로마의 꿈'을 이루는 검투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는 지극히 리들리 스콧다운 시대극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극은 항상 자기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역사를 펼쳐 보이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 <글래디에이터> 뿐만 아니라, <킹덤 오브 헤븐>, <로빈 후드>,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리들리 스콧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며 일관되게 통상적인 이미지를 파괴해 왔다. 역사 왜곡 논란에서도 불구하고 그의 시대극이 꾸준히 사랑받은 이유였다.
정작 꿈을 꿀 사람이 없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2>는 전편의 감동을 살리지도, 리들리 스콧의 장점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전편과 달리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는 나머지 이야기가 메시지에 짓눌렸기 때문. 1편의 감동이 단지 메시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정도로 <글래디에이터 2>에서는 악역인 마크리누스를 빼면 특징이나 동기가 명확한 캐릭터를 보기 어렵고, 막시무스처럼 극을 주도하는 인물도 없다.
주인공 루시우스를 보자. 그에게는 출생의 비밀을 비롯해 주인공으로서 필요한 모든 조건이 주어져 있다. 문제는 그에게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것. 일례로 그가 아내의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는 전형적이다. 로마군과의 전투 중 아내가 사망했다는 것 외에 그와 아내의 관계가 얼마나 깊거나 소중했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막시무스가 가족의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그가 로마에서 검투사들을 이끌어 반란을 주도하는 장면에서도 전율이나 감동은 느끼기 어렵다. 그가 검투사들의 지도자가 된 과정, 검투사들이 그에게 동조하는 이유를 안 보여줬기 때문. 전투나 검투장에서 루시우스가 막시무스처럼 존경받을 만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와 검투사들이 유대감을 갖는 명확한 계기도 없다. 의사 '라비'(알렉산더 카림) 외에 루시우스가 다른 검투사와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장면이 없으므로.
즉, 루시우스에게서는 어떤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단지 공화정과 민주주의라는 '로마의 꿈'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도구에 불과하니까. 그가 대의를 추구하는 명분 역시 단지 태어날 때부터 고귀했던 그의 혈통에서 비롯되는 듯 보인다. 그 결과 루시우스의 모든 선택과 행적에서는 감동을 느낄 수 없다. 그가 두 황제에게 반기를 들어도, 사적인 복수 대신 대신 대의를 선택해도, 카리스마나 비장미가 전해지지 않는다.
꿈꾸지 않은 악역만 빛나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로마의 꿈'이라는 대의를 지지하든 안 하든 개개인의 동기나 매력을 알 수 있는 캐릭터가 거의 없다. 아카시우스 장군이 대표적이다. 그는 어찌 보면 전편의 막시무스와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황제에게 대항했다가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검투사가 되었기 때문. 그와 동시에 차별점도 명확하다. 루시우스의 개인적인 원수이자, 그의 성장을 도와주는 조력자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으니까.
그런데 <글래디에이터 2>는 이러한 특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아카시우스라는 캐릭터가 파편적으로 제시된 나머지 그의 행적을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 그가 황제에게 환멸을 느끼고, 공화정을 복원하기 위해 반란을 꾀하며, 모든 권력과 지위를 버릴 정도로 아내 루실라에게 충성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결국 핵심 인물 중 하나인데도 아카시우스는 등장할 때마다 영화 전개를 뚝뚝 끊는다는 인상을 남긴다.
마크리누스가 유일한 예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노예였던 그는 힘으로써 '로마의 꿈'을 짓밟고 로마의 권력자가 되어 복수하려 한다. 막시무스나 루시우스에게 검투장이 '로마의 꿈'이는 이상향을 실현하는 성소라면, 그에게 검투장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현실을 확인하는 장소인 셈이다. 이처럼 동기와 서사가 확실하다 보니 마크리누스의 음모가 본격화되는 순간부터 영화에는 비로소 활력이 돈다.
고질병마저 재발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메시지를 위해 도구적으로 소비되어 버린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글래디에이터 2>는 서로 다른 두 영화를 합친 작품이나 다름없기 때문. 영화는 크게 둘로 나뉜다. 검투사로 전락한 루시우스가 아카시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성공해 나가는 이야기가 전반부다. 한편 아카시우스의 죽음을 목격한 루시우스가 로마의 영웅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하면서 마크리누스와 대적하는 내용이 후반부다.
사실 두 이야기는 각각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글래디에이터 2>는 애초에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럴 경우 본래 의도대로 결말을 낼 수 없기 때문. 혈통을 제외하면 루시우스는 로마의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를 로마의 구원자로 만들려면 로마의 장군이었던 막시무스와는 달리 부가적인 접점이 필요했다. 전편보다 다룰 사건도 많아지고, 이야기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캐릭터의 감정선을 세심히 조명할 여유가 없으니 템포는 빨라지고, 로마 공화정의 부활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개연성도 일부 희생되어야만 했다. 리들리 스콧의 고질병이 재발한 셈이다. <킹덤 오브 헤븐>을 비롯해 그의 영화는 극장판과 감독판의 완성도 차이가 크기로 유명하다. 분량상 편집된 장면이 삽입된 감독판의 개연성과 완성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글래더에이터 2>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공허하게 화려하다
결과적으로는 화려한 볼거리마저 빛이 바랜다. 물론 <글래디에이터> 시리즈에 바라는 장면은 확실히 등장한다. 원숭이나 코뿔소를 탄 검투사와 사투를 벌이는 검투장 시퀀스의 박진감은 전편 못지않다. 해전이라는 콘셉트도 신선하다. 해안 도시를 포위한 채 벌이는 해상전, 콜로세움 안에서 살라미스 해전을 재현하는 검투 시퀀스는 육상 전투가 주를 이뤘던 전편의 액션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 2>의 액션은 공허하다. 상술한 문제가 액션 시퀀스에도 반영된 나머지 서사의 방점을 찍는 역할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액션이 갑자기 시작돼서 급하게 마무리된다. 흐름이 빠르다 보니까 한 시퀀스 내에서도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각 인물의 감정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루시우스와 아카시우스의 검투 장면만 봐도 루시우스가 아카시우스에게 설득당하는 과정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이에 더해 각 인물의 동기나 당위성이 부족하니 볼거리가 일차원적으로 화려하다. 황제 친위대와 아카시우스의 군대가 로마 가도에서 전투태세를 갖추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루시우스가 공화정의 부활을 알리는 연설을 할 때 양 군대가 그에게 열렬히 호응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애초에 루시우스라는 캐릭터에게 그 정도의 설득력이 없다 보니 그의 연설은 공허하고, 김 빠지는 결말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흔히 '에픽'이라고 부르는 시대극이 많이 제작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래디에이터 2>는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전편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만큼 24년 만의 속편은 전편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글래디에이터 2>는 전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부실한 속편이었다.
Poor 형편없음
전편에 기대는 대신 완전히 새 판을 짰다면 달랐을까
Relative contents
-
- 흑백 현실 속 총 천연색 꿈
이 글은 영화 [더 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샤흐리야르 왕의 마음이 이랬으리라.
불륜을 저지르는 왕비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을 왕의 마음이 로이(리 페이스)는 어쩐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자신의 꼬라지를 본다면, 오히려 왕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찰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가련한 환자는 사랑에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커리어 까지도 자신의 척추처럼 박살 나게 생길 위기였으니까. 이 기구한 운명을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는 답답함을 알아주는 누군가라도 등장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로이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아직 숫자를 3까지 밖에 모르는 것만 같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운타루)의 존재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 앞니 빠진 암살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결국 그렇게 넘고 싶어 하는 요단강(?)도, 쉽게 건널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까지 내걸어 볼 심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러 온 이 구원자의 손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로이는 입을 열었다. 이 얕고 가는 자신의 목숨줄을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꼬마 샤흐리야르 왕 앞에서. 로이는 기꺼이 세헤라자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이 암살자의 스턴트는 실로 대단했다.
로이가 수행할 수 없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스턴트 역할을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물론 이 초보 복면에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이 넘어가는 숫자에 기겁을 하기도 하고(!) 공범인 주제에 도덕적 잣대가 너무 높아 대역을 하지 않겠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지만.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황홀경에 빠져 망설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미션 수행의 시간이나 방법도 치밀해져 갔다.
하지만 마지막 미션의 벽은 이 하룻강아지 대역에게는 여전히 조금은 높았다. 닿을 듯 닿지 않아 힘껏 까치발을 해야 할 것임을. 로이는 알 수 있었다. 로이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싶었고. 그러려면 알렉산드리아에게 연료를 계속 불어넣어 까치발의 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간신히, 하지만 반드시 쥐어져야만 했다.
그는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라도 스턴트를 이어가야만 했다. 오디어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더 험하고 어려워져 갔고. 그의 애달픈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스크 밴디트는 충실하게 로이의 대역을 해냈다. 알렉산드리아의 눈이 여전히 처음처럼 빛나는 것을 보면서. 로이는 현실의 자신도. 자신의 대역인 밴디트로서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삶도 조금씩 간절해지는 세헤라자데는 자꾸만 자신의 왕이자 대역인 알렉산드리아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로이는 다리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두가 실패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던 그 순간을. 단 한 번의 낙하로 인해. 자신이 알던 사람들의 등 외에는 이제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은 없을 것만 같았다. 로이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서 있던 곳이 참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로이를 대신해 그 높은 곳에 안간힘을 써서 올라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낙하해 버린. 이 꼬마 스턴트역을 보며. 로이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로이의 작은 왕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세헤라자데는 이제 이 허무맹랑한 모험의 끝이 자신의 손으로 이뤄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로이는 환상 속 모든 인물들을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패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물들의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추락은 마치 영화 [인셉션]의 킥(kick)과도 같아서.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저 한 세계에서 추방할 뿐. 그 어떤 의미의 실패도, 죽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의 추락으로 인해 겁에 질린 로이는 그 사실조차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겁쟁이인 자신을 대신해 기꺼이 추락을 감행했고. 결국 그를 죽음이라는 망상에서 구해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결국 세속적 욕심이 3까지 밖에 없는 무자비한 왕(?)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락이자 실패라 여겼던 작품을 이 꼬마 대역에게 보여주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심의 끝에. 두 운명 공동체(?)는 겨우 웃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쫓은 뒤 덩그러니 둘 만 남아버린 환상의 세계는 이제 끝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몇 번이고 재생될 것만 같은 유일하고도 독특한 이야기가 되어. 두 벤디트의 뱃속에서 영원히 날갯짓을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추락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면서.
마치면서
정제 탄 수.. 단순당 최고!!
그들의 인생은 서로를 만나기 전 까지는 흑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로를 만나는 순간부터 꾸게 된 모든 꿈들은 총천연색이었다. 차갑고 메말랐던 일상이 이렇게 질감과 색감으로 넘쳐나는 것으로 변화할 때까지의 지분은 거의 모두 알렉산드리아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영화를 보며 그저 잿빛에 지나지 않았던 회사원의 하루를 예쁘게 물들여 준. 같이 영화를 봐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만두 또 먹으러 가쟈!!!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추락, 스턴트, 그리고 세헤라자데의 모티브를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 글의 TMI]
1.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가 없다. 돌아버림
2. 환상 속 5인조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후레쉬맨 같아서 빵 터짐
3. 이런 뽀송한 질감의 영화 너무 좋다
[다음 리뷰 예고]
미키 17!!
원작이랑 얼마나 다를지(?) 기대된다. 근데 봉감독님 나빠.. 애를 원작보다 열 번이나 더 죽였어ㅠㅠ
#더폴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
- 정해진 운명과 자유의지의 싸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꽤 많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주변의 여러 상황들, 성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할 많은 것에 대해 다른 어른들에게 듣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방향성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진짜 맞는지, 선택을 했다면 그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든 그것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만이 온전히 알 수 있고 마지막 결과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주변 어른들은 삶에서 해야 할 것들이 정해져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엔 자신의 경험으로 확고한 삶의 길이 있는 부모들과 의견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부모의 입장에선 자신의 자녀가 좀 더 안전하고 쉬운 길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딱 맞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과 얻고 싶은 결과는 다르다. 아이는 최대한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가려고 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 그 길은 때론 올바르지 않아 보이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사춘기 시절 부모와 자녀 간에 의견충돌이 있기도 하다.
새로운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의 성장기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2018년에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후속 편이다.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인공은 우리가 알고 있던 피터 파커(목소리: 제이크 존슨)가 아니라 마일스 모랄레스(목소리: 샤메익 무어)다.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이 시리즈에서 마일스의 위치는 독특하다. 그가 살던 세계의 피터 파커는 죽었고, 대신 거미에 물린 마일스가 스파이더맨 역할을 하게 되지만 그에게는 영웅을 해야 할 책임이 원래 피터에 비해 적다.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과 다르게 마일스의 부모는 살아있고 대신 삼촌이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그가 영웅 역할을 해야 할 거라는 당위를 주진 않는다.
1편에서의 마일스는 우연히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그가 해결하지 못했던 악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우주의 스파이더맨인 피터 B. 파커(목소리: 제이크 존슨)와 스파이더 우먼 그웬(목소리: 헤일리 스테인필드)과 힘을 합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왜 스파이더맨이 되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1편의 이야기였다면 2편은 주요 인물들이 좀 더 궁극적인 갈등 속으로 빠져든다.
이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여전히 마일스이지만 그웬이 상당히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이번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 그웬인 것은 그가 이번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린다. 그웬은 그의 세계에서 스파이더 우먼으로 영웅 역할을 하고 있다. 경찰 서장인 자신의 아빠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그의 절친이었던 피터 파커는 잘못된 실험으로 죽었다. 그 과정에서 피터의 살인범으로 몰린 스파이더 우먼은 자신의 아빠에게 쫓기게 된다.
고립감을 느끼는 청소년 영웅, 스파이더 우먼과 스파이더맨
그웬은 아빠에게 자신이 스파이더 우먼이라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다. 그가 가진 두려움은 모든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모가 알았을 때, 부모가 보일 반응.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진짜 모습에 실망하는 부모의 얼굴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 결국 아빠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그웬은 경찰인 아빠가 당황스러워하고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 절망한다. 이건 마일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마일스도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못한다. 몇 번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부모의 앞에 서지만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마일스와 그웬이 겪는 절망감은 이내 고독감으로 옮겨간다.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립된 느낌을 받고 그나마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른 우주의 존재를 그리워한다. 이건 마일스와 그웬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영화 속에서처럼 무수히 많은 다중 우주에 스파이더맨이나 스파이더우먼이 존재한다면 그 모두가 겪게 되는 감정이다.
영화에는 모든 스파이더 유니버스를 총괄 관리하는 흡혈귀 스파이더맨인 미겔(목소리: 오스카 아이작)이 등장한다. 그는 모든 스파이더맨이 겪는 좌절과 고통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소 겪었던 당사자다. 그러니까 그는 일어나야 할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어떤 불행이 오는지를 경험한 인물로, 이후 그런 일이 벌아지지 않도록 전체 다중우주를 관리하고 있는 인물이다. 일종의 운명론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훌륭한 건, 꽤 생각할만한 문제를 관객에게 던진다는 것이다. 미겔을 비롯한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 당연히 일어나야 세상이 파괴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스파이더맨이 그런 운명론을 따르고 있을 때, 마일스는 그 운명론에 반기를 든다. "너의 삶은 이래야 된다" 라든가 "이게 너의 한계야"라는 식의 말이 마일스에게 전달되었을 때, 마일스는 그 수많은 운명론자들 앞에서 아니라고 외친다. 자신의 삶은 내가 만들어간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한다. 운명론자들과 대결을 벌이는 마일스는 자유의지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운명론과 자유의지론 사이를 훌륭하게 파고드는 서사
마일스의 선택은 다른 모든 스파이더맨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다. 스파이더맨들 중 정해져 있는 운명을 바꿨을 때 세상이 파괴되거나 혼란이 생기는 것을 목격한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들이 바꾼 일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마일스의 의견에 관객들이 따라가게 된다. 그건 불행을 보지 않으려는 감정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관객은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에 관객은 어떤 것이 진짜 옳은 일인지 한참을 고민하며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영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은 부모와 자식 간의 의견대립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영화 속 마일스와 그웬의 부모들은 정해진 길이 있고 옳은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일스와 그웬의 입장에선 자신이 선택한 길도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확고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길을 보고 있는 부모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녀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자유와 선택을 부모에게 주장하기는 힘든 일이다. 마치 미겔과 마일스의 의견대립처럼 부모와 자녀의 의견대립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각 인물들의 선택을 어떤 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고 마일스의 선택이 불러올 파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도 다음 편에서 확인해야 한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야기에서 던지는 질문은 꽤나 묵직하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다중 우주나 시간여행의 서사에선 가능하면 알고 있는 미래나 과거를 바꾸지 않아야 현재가 혼란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주인공 마일스는 다른 선택을 했고 다르게 보면 안정적인 시스템에 맞서 변화를 시도하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작화나 화면 전환 그리고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는 배경음악도 무척 훌륭하다. 마치 만화책을 움직이는 화면으로 보는 듯한 작화는 다양한 상황에서 변주되며 몰입감을 더해준다. 경쾌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흐름도 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영화의 서사와 던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무척 훌륭하기 때문에 극장 관람을 추천한다. 나는 운명론자일까, 아니면 자유의지론자일까.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불완전한 청춘을 향한 ode
여기, 문학 작가가 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품고, 뉴욕으로 무작정 온 여자, 조안나가 있다. 무작정 온 그녀는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기 때문에 주특기인 글쓰기를 이용해 밥을 벌어먹고자 한다. 그 일이 바로 작가에이전시에서의 일. 작가 에이전시란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기타 잡무들을 대신해 주는 회사로, 조안나가 취직한 회사는 그런 에이전시 중에서도 좀 알아주는 곳인듯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사장이 컴퓨터를 극혐한다는 것. 90년대, 디지털이 막 상용화되던 시기에 조안나의 상사는 디지털은 거의 사탄취급하던 사람이었기에 조안나는 타자기에 익숙해지며, 시대를 역행했다. 그녀가 시대를 역행하면서까지 받게 된 업무는 대 작가 셀린저의 팬레터에 답하는 일이었다. 샐린저는 은둔형 작가로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팬 레터도 받지 않아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답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변화하는 90년대에 구시대적인 업무를 받은 받은 조안나는 이 기묘한 과정 속에서 꽤 큰 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실 분들은 이 영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잔잔한 울림이 있는 뻘짓이기에.
1. 가능성의 다른 말은 곧 불완전함
조안나는 작가 에이전시에서 사장에 비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꿈은 작가다. 작가가 꾸미기 때문에 편지에 답장하는 일을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고, 하찮게 생각했지만 셀린저에 대한 열렬한 팬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계적인 답변이 아닌 진심 어린 답변을 해주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런 그들의 열렬한 팬심을 보며 자신은 샐린저만큼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작가인지, 자신은 이런 팬들처럼 글쓰기를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는지 편지를 읽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사장에 알게 모르게 보이는 무시와 멀쩡한 일이 아닌 허드렛 일만 시키는 것 같은 상황은 그녀의 자존감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그녀에 떨어진 자존감은 자신이 정말 작가가 되고 싶은게 맞는지, 자신은 샐린저만큼 재능이 없는데 그저 작가가 되겠다고 잘난 척 하는 거에 지나지 않은 게 아닌지 자신을 들여다본다. 왜곡된 시선이지만 그녀에게 그 왜곡된 시선조차 그녀의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런 부정적인 현실에서 탈피하기를 바라면서 영화를 관람했다. 결국 자존감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하지만 그 관점을 바꾸려면, 바닥 끝까지 감정적 부침을 겪어내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남자친구와의 의미없는 관계, 상사의 무시, 일을 하고 있지만 일에서 어떠한 보람도 느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재능까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런 감정적인 부침,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하지 못해 터져나오는 감정은 어떡해야 하냐는 그녀의 가상 친구와의 전화 속 대사는 그녀의 힘듦을 느끼게 하며, 젊음은 가능성이 있는 시기라고 하지만 그 가능성이 넘치는 시기를 살아내고 있는 당사자에겐 그저 불완전함을 견디는 시기일 뿐이라는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관리 1호 대상인 셀린저와의 전화 통화는 그녀의 고민에 꽤나 큰 깨달음을 주었다. 셀린저가 그녀에게 계속 전화한 메시지, 작가가 되고 싶다면 하루에 십오분이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할 것, 꾸준히 쓰는 시간을 가질 것 등의 조언은 꼰대 할아버지가 젊은이에게 자신만의 관점을 들이미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 불신, 자기 의심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그녀에게 그녀보다 앞선 시기에 20대를 보내온 유명한 노인네의 말은 그녀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당황하던 시기에 느끼는 외로움을 남자친구를 통해서 해소하려고 했지만 남자친구 조차 미생의 삶을 살고 있었고, 너의 외로움을 보듬어주기엔 그도 이미 불완전한 청춘이었기에 서로의 불안함을 극대화시킬 뿐이었지 그들은 관계는 상호보완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외로움을 상쇄시키는 것은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는 사람들과의 동질감이 아니라 가끔은 어른의 경험치였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20대가 가진 특권이고, 그 특권을 잘 누린 사람이야말로 신체적으로 가장 빛나지만 가장 불완전한 20대에 대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3.총평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문학 덕후다 싶은 사람,팬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영화 굉장히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지금 현재 굉장히 불완전한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꿈이 있지만 그 꿈의 첫 스텝을 밝기까지가 제가 너무 고민되는 사람들까지 이 영화를 보고 본인만의 메시지를 얻고 힐링 받을 사람들은 왠 꽤나 넓은 범위를 차지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청춘을 본 나처럼 이 영화에 대한 여러 리뷰를 찾아보시기를 추천한다. 분명히 나와는 다른 리뷰를 쓴 사람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 하였습니다.
-
- 이동진 평론가 만점 영화 리스트
입추가 지나자, 마법같이 선선해진 요즘. 밤 산책을 다니기 좋은 날씨죠.
여러분, 이동진 영화 평론가를 아시나요?
영화가 개봉하면 모두가 주목하는 이동진 평론가가 만점을 준 영화들만 모아왔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되신다면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 리스트를 참고하시길 바라면서 이동진 평론가 만점 영화 리스트, 함께보시죠!
1.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1) - 사라 폴리
Synopsis : 결혼 5년차인 프리랜서 작가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 루(세스 로건)와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일로 떠난 여행길에서 그녀는 우연히 대니얼(루크 커비)을 알게 되고, 처음 만난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대니얼이 바로 앞집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마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커져만 가는 대니얼에 대한 마음과 남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녀의 삶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순도 100%의 사랑 영화, 마음의 기척을 응시하다.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2.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2003) - 봉준호
Synopsis : 1986년 경기도. 젊은 여인이 무참히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2개월 후,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건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일대는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한 범죄의 공포에 휩싸인다.수사진이 아연실색할 정도로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살해하거나 결박할 때도 모두 피해자가 착용했거나 사용하는 물품을 이용한다. 심지어 강간사 일 경우, 대부분 피살자의 몸에 떨어져 있기 마련인 범인의 음모 조차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 후임으로 신동철 반장(송재호 분)이 부임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박두만은 현장에 털 한 오라기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근처의 절과 목욕탕을 뒤지며 무모증인 사람을 찾아 나서고, 사건 파일을 검토하던 서태윤은 비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범행대상이라는 공통점을 밝혀낸다. 선제공격에 나선 형사들은 비오는 밤, 여경에게 빨간 옷을 입히고 함정 수사를 벌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것은 또다른 여인의 끔찍한 사체.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다시 감추고 냄비처럼 들끊는 언론은 일선 형사들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형사들을 더욱 강박증에 몰아넣는데...
한국영화계가 2003년을 자꾸 되돌아보는 가장 큰 이유.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3. 옥희의 영화 Oki's Movie (2010) - 홍상수
Synopsis : 영화과 학생 옥희는 자신이 사귀었던 한 젊은 남자와 한 나이 든 남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아차산이란 곳에 만 일 년을 사이에 두고 각 남자와 한 번씩 찾아왔던 경험을 영화적으로 구성해본 것이다: 그 산에서 각기 다른 두 남자와의 경험을 공간별로 짝을 지어놓고 보여준다. 주차장, 산 입구, 정자 앞, 화장실, 목조 다리 앞, 산 중턱 등의 공간에서 각자 다른 행동과 대화들, 그들과의 모습이 짝지어 보여지면서 우린 두 경험 사이의 차이와 비슷함을 구체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린 옥희와 두 남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어떤 총체적 그림을 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구조와 공간 대신 정서와 시간을 바라보는 홍상수의 새 경지.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4.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2006) - 기예르모 델 토로
Synopsis : 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숲으로 숨은 시민군은 파시스트 정권에 계속해서 저항했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이 곳곳에 배치된다. ‘오필리아’는 만삭의 엄마 ‘카르멘’과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가 있는 숲속 기지로 거처를 옮긴다. 정부군 소속으로 냉정하고 무서운 비달 대위를 비롯해 모든 것이 낯설어 두려움을 느끼던 오필리아는 어느 날 숲속에서 숨겨진 미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산이고 숲이자 땅”이라 소개하는 기괴한 모습의 요정 ‘판’과 만난다. 오필리아를 반갑게 맞이한 판은, 그녀가 지하 왕국의 공주 ‘모안나’이며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세 가지 임무를 끝내면 돌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선택의 책”을 건넨다. 오필리아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현실 속에서 인간 세계를 떠나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이보다 깊고 슬픈 동화를 스크린에서 본 적이 없다.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5. 봄날은 간다 One Fine Spring Day (2001) - 허진호
Synopsis :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어느 겨울 그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를 만난다.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빨려든다.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 할 바를 모른다...
허진호와 이영애와 유지태, 그들 각자의 최고작.
by.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네랩 에디터 Ria
-
- 영화의 영토, 그리고 사유의 영토를 넓히다
몇 년 전, 캐나다에 있을 때의 일이다. 페미니즘 모임의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What’s your pronouns?” 처음 들어보는 질문에 의미를 되물었다. 이는 자신의 젠더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묻는 질문이었고, 평생 자신을 여성으로 정의하고 살아온 나는 “She, her, hers”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오직 ‘시스 젠더 여성’으로만 정의될 수 있는 존재인가. 고민의 답은 사실 쉬웠다. 나는 생물학적 성별과 사회적 성별에 유리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고,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누군가를 호명하는 법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던가. 결국 나는 사변적인 논의를 나눴을 뿐이었다. 어쩌면 두꺼운 책보다 나의 대명사를 고민하는 시간이 귀중했다. 나아가 타인의 대명사를 듣고, 그가 정의하는 그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 또한 그랬다.
<장미의 행렬>은 1960년대 도쿄의 게이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작품은 호스티스 중 하나인 에디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인기의 정점에 오른 에디는 바의 마담인 레다와 권력 다툼을 벌인다. 그들의 권력 다툼은 단순히 바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명의 남자를 두고 벌이는 치정극 또한 이 작품의 핵심 중 하나다.
두 명의 주인공은 겉보기에는 ‘여성’으로 패싱되는 인물들이나, 그들은 자신을 ‘게이 보이’라고 호명한다. ‘게이’도 ‘드랙 퀸’도 ‘트렌스 젠더’도 아닌 ‘게이 보이’. 그들의 호칭은 다른 어떤 단어로도 대체되지 못한다. 분명한 자기 긍정이 느껴지는 말들에 이 작품은 예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느꼈다. 사회의 주변부에 속함에도, 자신을 긍정하는 인물들의 삶이 마냥 비극적일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다름을 증명하는 장면은 에디의 샤워 씬이었다. 자신의 미에 도취된 에디. 그에게는 어떤 고뇌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탐닉한다. 시대적 배경에 기반하여 퀴어인 주인공들의 삶이 그저 비극적일 것이라고 여겼고, 작품의 서사가 그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유추한 것은 나의 상상력의 빈곤에 불과했다. 여느 이의 인생이 그렇듯, ’게이 보이‘들의 삶에도 희비극이 녹아있었다.
이 작품이 희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특기할만하다. ‘게이 보이’들은 자기 자신으로서 ‘시스 젠더 헤테로 여성’들과 경쟁한다. 그것은 만화적인 방식을 빌려 구현되며 웃음을 자아낸다. 나아가 다큐멘터리적 방법을 차용하여 배우들을 비롯한 다양한 ‘게이 보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법론도 인상적이었다. 픽션과 다큐멘터리, 실험 영화의 경계를 오가며 ’게이 보이‘들의 삶은 입체적으로 구현된다.
씨네21의 송경원 편집장은 전위 영화를 영화의 영토를 넓히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다양한 형식을 오가며 하나의 장르로 정의할 수 없이 오가는 이 작품은 전위 영화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단순히 형식의 놀이에 치중된 ‘전위 영화’는 아니다. 타인을 어떻게 ’호명‘할 수 있을 것인가. 작품에 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감독은 정답이 아닌 성실한 고민을 담아냈다.
과거 나와 당신을 호명하는 방식을 고민했던 순간을 넘어 이 작품을 만났다. 어쩌면 이 작품의 존재 가치는 단순히 영화의 영토를 넓힌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더 험난한 과거를 살아냈을 당신들이 투쟁 속에 만들어낸 작품에 빚을 지고, 나의 세계의 영토는 조금이나마 넓어져간다.
-
- 썩기 직전의 수박같은 사람
이 글은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마 후에 과일을 사면 맛이 없다고들 한다.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을 주고 수박 한 통을 기어이 집으로 들였다. 식칼의 끝에서 작은 파열음과 함께 쪼개진 수박의 속은 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둥그런 여름 속의 한쪽에 시선이 간 것은 그 순간이었다. 타오르다 못해 녹아버리기 시작한 과육에서 들큼한 냄새가 풍겨왔으니까. 절정의 단맛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는 순간이자 이제는 썩는다 라는 표현이 더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겠지.
영화는 딱 그런 냄새를 풍긴다.
축축하고 질척거리는 경계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등을 돌려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다. 그 통에 영화가 밟고 서있는 희미한 경계선마저 지저분하게 자취를 감춘다. 영화는 그렇게 넓어졌다 불러야 할지, 혹은 영역침범 되었다 해야 할지 머뭇거리기 딱 좋은 장소가 된다. 그리고 그 속의 등장인물들은 영화 속 기후에 알맞게 익어 각자의 매력을 뽐내지만, 어딘가 퀴퀴하게 골아드는 부분도 품고 있다.
과연 어디부터 도려내야 할 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찬찬히 들여다봐도 그 시작점을 찾을 수가 없다. 손에 든 칼날의 행방은 정처 없이 허공에서 맴돌고, 눈은 다시 한번 바삐 인물들을 쫓아보지만 겨눈 칼날은 단 한 조각도 들어내지 못한다.
그때치고 들어오는 감정은 허탈함이 아닌 동질감이다. 사람이란 게 이토록 복잡한 존재이며, 과연 쩍 갈라진 단면만을 보았을 때 내가 평가해도 될 것인가.라는 생각도 함께 밀려온다. 내가 품고 있을 뭉그러진 부분에 대한 연민이 밀려오는 순간 영화 제목에 대한 이해와 등장인물들에 대한 너그러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제야 영화가 우왕좌왕하며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영화가, 그리고 인물들이 밟고 있는 것은 뱅상(장-밥티스트 뒤랑)으로 상징할 수 있는 도덕, 혹은 양심의 마지노선이었겠지. 이미 벌어진 일들이 있으니 그 앞으로도, 그렇다고 뒤로도 후퇴할 수 없이 초조해하는 마음을 안은 채 애써 발을 비비며 그 선을 지워댔던 것이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이 세계와 저 세계 모두 같은 것이었던 것처럼 보여야 자신들이 서 있는 곳도, 그리고 서 있다는 사실 자체도 합리화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은 당연히 제레미(펠릭스 키실), 마르틴(캐서린 프로트), 그리고 필리페(자크 드블레)의 식사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숨기고 묻어버린 욕망 위에서 피어난 버섯을 요리해 먹는 장면. 그리고 그 불쾌함을 삼키는 의식을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제레미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친절한 금자 씨]에서의 식사장면이 오버랩되는 것만 같았다.
똑같은 인간. 똑같은 흠. 그리고 서로에게만큼은 그 썩은 부분을 들켜도 괜찮을 것이라는 것만 같은 동질감을 느끼는 눈빛들. 집으로 돌아가면 따로 보관해 두었던 물컹해지기 시작한 수박을 남김없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내 입가에도 비릿한 웃음이 슬그머니 지어졌다.
[ 이 글의 TMI]
1. 회사에서 파는 샐러드 1만 원 돌파... 안 먹어....
2. 다들 비 피해 없는 한 주를 보내시길 바란다.
3. 브런치 멤버십 글을 써야 하는데... 하.. 시간 너무 걸려...
#미세리코르디 #알랭기로디 #펠릭스키실 #캐서린프로트 #장밥티스트뒤랑 #프랑스 #코미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
-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을 전문(어)가를 모시고 리뷰 해봤습니다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나의 문어 선생님을 K-문어 선생님과 리뷰 했습니다!
씨네마사지
? 황보랑 영화 보고 싶은 사람 모여라~?? ♀
거리두기 해제 기념 씨네마사지에서 첫 번째 이벤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
다가오는 5월 18일에 개봉하는 범죄도시2를 황보와 함께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신청해주세요 ↓↓
https://forms.gle/sAATgsdoStRCPH7v8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
-
- 챌린저스 - 젠데이아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테니스 영화
-
테니스 코트 밖,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 스타급의 인기를 누리던 테니스 천재 ‘타시’(젠데이아)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남편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의 코치를 맡고 있다. 연패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트’를 챌린저급 대회에 참가시킨 ‘타시’는 남편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자 자신의 전 남친인 ‘패트릭’(조쉬 오코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선 넘는 세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테니스 코트 밖에서 더욱 격렬하게 이어지는데… 결승전 D-DAY, 가장 매혹적인 랠리가 시작된다!
-
- 티빙 <괴이> 티저 예고편
"눈을 본 자, 지옥에 갇힌다" 티빙 오리지널 [괴이] 4월 대공개
-
- 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30초 예고편
2024 칸영화제 감독주간 수상작 카이에 뒤 시네마 올해의 영화 TOP 10 “로맨스의 경이로움과 변증법, '애니홀'에 비견되는 작품” '어거스트 버진'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 작품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25년 4월 23일 개봉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