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2-06 17:49:08
브로큰 | 사건도 캐릭터도 부서져 파편만 남다
<브로큰>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출소 후 '석창모'(정만식)의 조직을 떠난 '배민태'(하정우).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민태가 계획한 삶은 부서진다. 창모의 조직에 함께 속했던 하나뿐인 동생 '배석태'(박종환)가 돌연 시체로 발견되고, 동생의 아내 '차문영'(유다인)은 행방불명된 것. 이에 민태는 문영을 찾아 나선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던 만큼, 문영이 동생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던 중 민태는 자신과 같은 흔적을 좇는 소설가 '강호령'(김남길)을 만난다. 그는 호령의 베스트셀러 '야행'의 모티브가 동생과 문영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고, 문영과 호령 둘을 범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물론 사건의 진상을 숨기고 싶은 창모까지 민태 앞길에 끼어들면서 그의 복수극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사건이 전부인 영화
영화의 시나리오는 크게 두 범주, 인물 중심과 사건 중심으로 나눌 수 있다. 둘의 균형이 맞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중 후자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는 치명적인 단점을 떠안는다. 관객이 보기에 캐릭터가 플롯의 도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이 경우에는 사건이 그 자체로서 얼마나 흥미로운 지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와 몰입도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다. <인셉션>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해 여러 스타 배우가 출연했지만, 그들이 맡은 캐릭터가 뇌리에 각인될 정도로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기억을 심는 작전에 필요한 역할과 기능을 의인화한 존재였다. 그렇지만 <인셉션>은 관객을 매료하는 데 성공했다. '꿈에 침투해서 기억을 훔치거나 심는다'라는 극 중 사건 자체의 독특함이 매력적이었으니까.
김진황 감독의 신작 <브로큰>은 큰 범주에서 봤을 때 인셉션과 같은 유형의 영화다. 캐릭터 자체는 한국의 조폭 스릴러에서 익히 봐 온 인물이라서 특별하거나 흥미로울 구석이 거의 없다. 그 대신 <브로큰>은 민태의 복수극의 발단이 되는 살인 사건 차제를 결정구로 선택한 듯 보인다. 문제는 살인 사건이 신선하지도 않고, 사용법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그 결과 <브로큰>은 사건, 캐릭터, 플롯 모두 부서진 채 파편으로 흩어진다.
소재 자체에 동력이 없다
<브로큰>이 결정구로 꺼내든 소재는 살인 사건, 그중에서도 '소설 내용대로 진행되는 살인 사건'이다. 그 중심에는 호령과 그가 집필한 베스트셀러 소설 '황야'가 있다. 호령의 소설에는 마약 중독자 남편과 살아가는 여성이 등장한다.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그녀는 남편을 죽이면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살인 계획을 실행에 옮긴 후 아무도 몰래 한국을 떠난다.
그런데 극 중 현실에서 '황야'의 내용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조폭 조직원이자 마약 중독자인 석태가 돌연 사망한 채로 발견된 가운데, 그의 아내 문영이 행방불명된 것. 문영의 주변인을 탐문하던 중 호령이 그녀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경찰은 소설 내용을 근거로 호령과 문영이 함께 석태를 살해했다고 의심한다. 동생의 복수를 위해 문영을 찾던 민태도 호령의 소설에 대해 알게 된 이후로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러한 <브로큰>의 메인 플롯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우선 사건 자체의 흥미가 부족하다. 이미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미디어에서 숱하게 활용된 소재이다 보니 매력이 없다. 당장 판타지 영화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도 '타이코 도도너스'라는 마법사가 남긴 '타이타니아의 예언'이라는 시의 내용과 똑같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다는 식의 전개가 등장한 바 있다.
또한 후반부에 등장하는 반전에도 악영향을 준다. <브로큰>은 호령과 문영의 관계가 살인 사건의 동기인 것처럼 꾸민 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창모가 개입한 살인 사건의 실상을 비로소 밝히면서 반전의 묘미를 살리려 한다. 그런데 정작 전반부의 스토리가 재미없으니 긴장감은 쌓이지도 않고, 반전도 인상적이지 않다. 미끼가 그럴싸하지 않으니, 숨겨진 진실이 따로 있다고 손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맥거핀
사용 방법도 문제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어설프다. 호령의 소설이 문제가 되는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태나 경찰이 호령을 의심하게 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호령과 문영은 문화 센터 강좌에서 만난 후 연락을 주고받았다. 호령이 소설 집필 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문영과 그녀의 주변인물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 따라서 호령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추론 단계에는 논리적 비약이 많다. 소설 내용과 등장인물이 석태와 민영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호령을 의심할 합리적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호령은 민영을 1년 간 만나지 않았다. 그가 살인 및 실종 사건에 연루된 적도 없다. 즉, 호령이 소설의 내용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로 부각된다는 아이디어는 있으나 아이디어를 풀어내는 과정은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의 존재가 극 전개에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확고하다. 민태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브로큰'은 출소 후 조직을 떠나려던 민태가 동생의 죽음 때문에 원래 계획을 부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의 복수극에서 호령의 역할은 의미가 없다. 그는 동생 죽음의 주범도, 조력자도, 반동인물도 아니다. 사건의 진상을 잠시 가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의 비중이 큰 전반부가 불친절하고 허세 가득한 이유다.
호령을 맥거핀으로 봐도 문제다. 맥거핀은 극의 발단을 그럴듯하게 보여준 후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사라져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에 반해 호령은 맥거핀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복수극의 발단에는 영향을 못 끼치는 반면, 분량은 민태에 버금간다. 그러다 보니 퇴장한 후에도 그의 공백은 역으로 강조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 붙은 물음표가 안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호령이라는 캐릭터는 실패한 맥거핀이다.
무의미한 맥거핀의 나비효과
효과가 없는 맥거핀은 다방면에 악영향을 끼친다. <브로큰>에서는 특히 캐릭터의 문제가 부각된다. 애초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는 캐릭터로 도배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동생의 복수만을 추구하는 민태의 행적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창모에게 석태를 소개하고, 동생 대신 감옥을 갈 정도로 동생을 아낀다. 하지만 그 이유가 주어지지 않다 보니 막연한 형제애를 앞세운 복수극은 일견 올드하다.
비정상적인 석태의 캐릭터성 때문에 민태의 복수극은 설득력이 더욱 부족하다. 그는 형에게 기대어 살다가 조폭이 됐고, 그 후에는 마약 중독자로 지내다가 살인도 저지르고, 아내에게 가정폭력까지 행사했다. 그 어떤 연민도, 동정도 느끼기 어려운 캐릭터인 셈이다. 그 외의 등장인물도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영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없고, 경찰은 매번 뒷북을 칠 정도로 무능하고, 조폭들도 한국영화 클리셰에 충실하다.
만약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나 반전이 강조될 수 있었다면 각 캐릭터의 문제는 덜 주목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령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순간부터 캐릭터 구축 이슈는 역으로 강조된다. 공감하거나 이입할 여지 자체가 없는 캐릭터만 남아 버리니 그들의 결점이 부각되는 것. 그 결과 모두가 문영을 찾기 위해 열심히 달리지만, 왜 달리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건, 플롯, 캐릭터가 모두 제각기 따로 노는 셈이다.
액션이라는 일말의 잠재력
그나마 액션 시퀀스 두 개는 눈길을 끈다.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끌어올리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재치와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 첫 번째는 중반부 골목길 액션 시퀀스에서 좁은 건물 틈 사이로 민태의 액션을 보여주는 컷이다. 앵글이 고정되어 있고, 이에 더해 시야 자체에 한계를 두었기 때문에 활동적인 이미지가 역으로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이는 일반적인 액션 연출의 흐름이나 리듬에서 벗어나면서 순간적으로 눈길을 잡아챈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클라이맥스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 동생을 죽인 진짜 범인을 알게 된 민태는 창모를 찾아가고, 수산시장과 횟집에서 일 대 다의 구도로 창모의 부하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이때 민태가 싸우는 모습을 횟집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앞선 장면과 유사한 효과를, 더 증폭시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앵글은 고정된 가운데, 창문 아래쪽과 중앙부는 여러 도구 때문에 가려져 있다. 시야에 한계를 설정해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보여주지 않도록 건물 사이 틈과 같은 장치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 덕분에 민태의 액션은 역동성이 유달리 부각되고, 복수에 목마른 그의 심경도 더 거칠게 표출될 수 있다.
이러한 장점만 놓고 보면 <브로큰>에서도 나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엿볼 수는 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는 액션 연출만으로는 이미 파편화된 사건, 플롯, 캐릭터를 한 데 묶을 수 없다. 그 결과 <브로큰>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힘든 미완성 복수극으로 막을 내린다. 원래 제목이 <야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건 중심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인물 중심으로 재포장하다가 벌어진 참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Dreadful 끔찍한
한 순간의 재치 외에는 다 따로 노는 파편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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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키즈크리에이티브3
- 희라의 순간해당 행위가 나쁜 짓인지의 여부보다는 비싼 물건을 가지고 싶고,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나이기에 남우는 절도를 한다. 동경하던 친구가 사실은 도둑질을 손쉽게 하고, 자랑하던 것들은 죄다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희라의 작은 우주는 무너진다. 하루아침에 우주를 잃은 희라는 괜히 애먼 곳에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충동적인 행위들을 저지른다. 마음 속 우주가 붕괴되는 장면은 누구나 겪어 봤을 경험들을 떠올리게 하고, 지나온 어린날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충족이 필요한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이들의 일탈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둘의 조우는 가난을 통한 연대라기보다는 같은 비밀을 가진 어린이들 간의 공감대 형성이 적절해 보인다. 단순한 해피엔딩, 구원서사가 아닌, 나쁜 행위를 통한 연대감을 이루어내는 결말로써 오직 둘만이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을 것이다. 남우와 희라가 내일을 기약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교환일기굳게 맹세했던 영원은 이별을 마주하기 마련이고, 내 전부라 생각했던 존재는 사실 드넓은 세상의 일부였음을 알지 못하던 때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미숙했던 그때, 서로를 채워 주는 것은 마찬가지로 미숙했던 친구였고, 단짝이었고, 그것만이 추억의 총체가 된다. 이별은 새로운 만남으로 해소할 수 있다지만, 이를 깨닫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인의 위로가 아닌, 아픈 경험이다. 상실감으로 인해 찾은 놀이터에서 우연한 기회에 새 친구를 사귀게 됨으로써 공백의 채움이 일어나게 되고, 헤어짐을 새로운 만남으로 해소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물을 많이 줄 필요가 없는, 물을 많이 주면 죽어버리는 선인장에 '내 생각이 날 때만 가끔' 물을 주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떠나간 친구를 마냥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슬픔 없는 매일을 살되 지나간 인연을 잊지 말고 가끔 떠올려 달라는 바람이 드러난다. 소중했던 인연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살아간다. 물을 자주 줄 필요는 없지만 아예 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 선인장처럼, 가끔은 먼 여행을 떠난 존재들에 애정 어린 그리움이 필요하다.새벽 바다 노을관객은 영화의 막바지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새벽과 바다가 친남매가 아님을 알게 된다. 배다른 남매인 둘은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지만, 어른들은 새벽과 바다를 다르게 대한다. 어린이들의 세상은 평화롭고, 놀이를 통해 끈끈해지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어린이들의 다툼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을 만큼 복잡하고 날이 서 있다. 이런 어른들의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새벽이 유일하다. 세 아이 중 홀로 정신적, 육체적 성숙을 경험한 새벽만이 어른들의 대화 주제가 얼마나 민감한 것이고, 다툼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 노을에게 빨리 집에 가라며 부추긴다. 새벽은 어른들이 싸우는 장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한참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다 생리대를 갈지 못해 결국은 생리혈이 새고 만다. 가혹한 어른들의 세계에 더 큰 균열을 내어 이 싸움을 끝내고 싶은 어린이들의 심리가 잘 드러난다. 어른의 눈으로 마주한 순수한 어린이들의 세계가 너무도 천진해서 아프다.자전거 도둑전체적인 스토리가 고전 영화 <자전거 도둑>과 유사한 구조로 흘러간다. 다만 자전거는 도난당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병원비를 내기 위해 시장에 나가게 된 것이었고, 이를 알게 되었을 때 '자전거가 엄마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며 본인 대신 대회에 나가게 된 친구를 진심으로 응원해준다. 어린이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돈보다는 우정이 앞서는 때묻지 않은 마음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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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란한 지휘자의 무거운 발걸음
찬란한 지휘자의 무거운 발걸음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
감독] 테드 브라운
출연] 구스타보 두다멜
시놉시스]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는 테드 브라운이 시기적절하게 내놓은 희망적인 다큐멘터리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손바닥을 새기고, 수백명의 어린이에게 사인 요청을 받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그는 베네수엘라의 유소년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세계적 성공을 거둔 지휘자다. LA 필하모닉,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그는 클래식 스타의 영향력을 건설적으로 발휘할 방법을 늘 고민한다. 여전히 불안정한 고국에서 그는 음악으로 희망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스포일러 주의#
음악이 주는 치유의 메시지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이다.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가르쳐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과연 음악 하나로 인성적 사회적 교육이 가능할까?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다.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에게는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이 가장 큰 도움이 될텐데 아무리 무상이라지만 문화적 교육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제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옳았다. 또래 아이들과 악기를 통해 합주를 하면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과의 협동심을 기를 수 있었고, 한 단체에 소속되어 동료로서, 그리고 선후배로서 악기를 서로 가르쳐주면서 사회성 역시 발달되었다. 또한, 불우한 자신의 가정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닌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자신의 강점과 장점을 찾으며 자신의 환경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클래식을 연주하면서 그 음악 자체로도 심적 안정감과 힐링을 받으니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교육 시스템이 어디있을까. 한 조사에 따르면 어두운 골목길에서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것만으로도 강도, 살인과 같은 중범죄부터 소매치기와 같은 경범죄까지 그 비율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고 한다. 아마 엘 시스테마를 처음으로 만든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음악이 가지는 힘이 지금 당장의 경제적 뒷받침을 되지 못하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치 체계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엘 시스테마를 통해 혼란스러웠던 베네수엘라의 아이들을 교육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과연 늦었는가
구스타보 두다멜은 지휘자로서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 17살의 나이에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데뷔를 하고, 2004년 독일의 밤베르크 교향악단 주최로 열리는 지휘자 경연대회인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면서 지휘자로서 성공가도를 쭉쭉 달리기 시작했다. 이후 중견 지휘자들 빰치는 분주한 활동을 계속하면서 지휘자의 커리어를 알차게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커리어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고향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그들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 고뇌하고, 더불어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불안정한 베네수엘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매일같이 고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차베스 정권 당시에는 친정권적인 태도를 보이고, 마두로 정권에 들어오면서 부터 현 정권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한 것에 대해 너무 뒤늦게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아닌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이 부분도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에서 꼬집는다. 하지만 과연 구스타보 두다멜의 입장에서 차베스 정권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나 싶긴 하다. 차베스는 집권 초기 엘 시스테마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면서 지원 중단을 검토했으나 빈곤 퇴치와 범죄 예방 그리고 사회 부흥 및 국가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고 판단해 지원을 지속하며 해외 공연을 늘리면서 엘 시스테마를 해외에 알리는데 집중했다.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서 아이들의 정서발달과 사회적 교육의 일환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왔던 두다멜에게는 엘 시스테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자신이 정치적 입장을 밝혀버리면 한 집단 전체가 매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마두로의 집권 이후 유혈사태와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유혈사태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치적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입장이 뒤늦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정치성으로 이용되길 원치 않았던 그에 있어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성명 발표로 인해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하나둘 다른 일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나라로의 이민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점차 단원들의 빈자리를 보여주면서 왜 그가 정치적 입장을 이제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무게감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자신이 지휘자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을 넘어서 단원들의 생계 역시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동안의 비판에서도 침묵을 지켰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엘 시스테마부터 구스타보 두다멜의 이야기까지 베네수엘라의 현재 상황과 그의 행보에 대해서 다룬 영화 비바 마에스트로. 찬란해보였던 행보와 달리 앞으로 나아가는 한 발자국에도 엄청난 무게감이 있음을 잘 보여준, 그리고 미래의 그의 행보 역시 기대를 품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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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고 그 손으로 파괴되는 <지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22년 한국. 어느 날 불가사의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유아인)'는 이를 시연이라고 부르며, 죄를 지어도 제대로 벌주지 않는 세상에 불만을 가진 신이 인간을 직접 단죄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형사 '진경훈(양익준)'과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처럼 새진리회의 해석과 설명을 믿지 않는 이들이 등장하고, 정진수는 자신의 교리가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지옥행을 고지받은 박정자의 시연을 생중계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실제로 시연이 고지된 시간에 이루어지자 새진리회가 새롭게 정의한 죄와 그 해석은 새로운 사회의 진리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의심을 끈을 놓지 않은 민혜진과 '배영재(박정민)'로부터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구축한 진리, 정의, 질서에는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감독의 전작인 <반도>와 유사한 작품이다. 좀비 영화의 외관을 한 <반도>가 정작 보여주고 싶었던 대상이 좀비가 아니라 좀비로 가득한 땅에서 생존한 인간 군상이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옥> 역시 신과 천사, 사자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판타지 영화의 외관을 갖추지만, 정작 보여주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비현실적 존재를 대하는 인간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의도는 정진수와 민혜진의 대화에 함축되어 있다. 신의 존재, 더 나아가 종교가 대체 무슨 효용이 있냐는 민혜진의 비판에 정진수는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준 게 아닐까요? 원래 인간들이 의미가 없으면 자멸해버리는 족속이잖아요"라고 응수한다. 신의 존재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신을 내세워 만들어진 종교의 의미에 주목하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다. 실제로 <지옥>은 6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종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질서를 부여하며, 또 사람들은 그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염세주의적이면서도 도발적으로, 더 나아가 희망적인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지옥>의 내용은 크게 1-3부와 4-6부,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전반부의 내용은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한복판에서 대낮에 좀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연'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고, 수년 전부터 이 현상을 경고해온 정진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이때 정진수와 새진리회가 핵심적으로 언급하는 기제가 있다. 바로 죄와 죄책감이다. 그는 시연이 스스로를 엄격히 정죄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신이 직접 벌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사람들을 죄책감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이는 그가 고지를 받은 박정자와 시연을 중계하는 것을 두고 협상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없다며 그녀가 불륜 내지는 성매매를 저질렀을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는 이유다. 또 자신의 해석과 사람들의 죄책감에 힘을 싣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시연당한 것으로 가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정진수의 일련의 행동과 발언, 고지와 시연에 대한 그의 해석이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로이트가 자신의 저서인 <문명 속의 불만>에서 분석한 종교의 구조 및 작동 양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에로스(사랑과 성욕)와 타나토스(죽음과 파괴)의 욕동이 있으며, 종교는 이 욕동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에로스적 욕동은 가족을 이루고 사회와 문명을 이루는 기반이지만 지나치게 탐닉하면 문명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고, 타나토스적 욕동 역시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기에 문명을 위협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이트에게 종교는 두 욕동의 발현과 실천을 죄로 규정하고 개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기제다. 이러한 종교 이해는 제사장이 의미를 부여해 인간의 파멸을 막았다는 정진수의 대사, 그리고 그가 성과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암시되거나 가장 파괴적인 욕동인 살인을 저지른 이들을 자신의 설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희생자로 선택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곧 정진수에게 신의 존재와 시연의 대상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이미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종교는 단지 사람들에게 죄와 죄책감이라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서 사회를 유지하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할 뿐이다.
이 대목은 사실 <지옥>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억압한다고 비판한 종교의 모델이 기독교인데다가 작중 정진수의 모습에서는 예수의 알레고리로 느껴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진수가 성인이 되길 기다렸다가 향한 티베트 고원에서 시연을 목격하고 깨달음은 얻은 후 새진리회를 만든 것은 예수가 광야로 나가 신의 가르침을 깨달은 후 신의 말씀을 전하는 공생활을 시작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진수가 사이비로 취급받는 것, 그가 꾸준히 선행을 베풀어 온 것, 심지어 그가 일찍이 자신의 운명과 최후를 알고 있던 것 모두 예수의 공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티브다. 그러다 보니 종교는 그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제이고,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가 인간을 죄책감으로 억누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다분히 도발적인 인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반면에 후반부에서 <지옥>은 사회의 유일한 질서로 거듭난 종교와 그로 인해 강림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진리회가 만든 질서와 진리에 순응한다. 또한 종교가 지나치게 효과적으로 인간의 욕동을 통제한 나머지 심리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는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엄청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고지를 받은 이는 곧장 범죄자로 몰리고, 자신의 가족까지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이들이 부모의 죄를 대신 자백하며 용서를 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카메라는 인간을 자멸로부터 구한다는 종교가 역으로 만든 지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하지만 드라마는 작중 묘사되는 모습이 프로이트가 제시한 인간상과 유사한 배영재를 등장시키면서 지옥을 비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할 때 신경증에 시달리게 하는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당대의 확신이나 진리, 믿음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근본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PD인 배영재는 새진리회 다큐멘터리 제작을 두고 새진리회 덕분에 범죄율이 줄어들었다는 사제의 주장을 화살촉 범죄를 포함하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반박하기도 한다. 새진리회에 저항하는 조직 '소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더 나아가 소도의 도움을 받아 시연이 인간의 죄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임을 간파하는 등 '의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언론인의 책무에 충실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의심으로 가득한 배영재라는 인물의 존재는 획일화된 정의와 진리로서 종교의 구조를 만드는 정진수와 대립항을 이루고, 전혀 다른 전후반부의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작중 죄와 죄책감 못지않게 중요한 키워드가 자율성인데, 배영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면서 정진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극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더해 드라마는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배영재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에 힘을 실어준다. 새진리회의 폭거에 온몸을 던져 싸운 민혜진에게 한 택시기사가 "제가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라고 말하며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옥>의 주제의식이 단지 종교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한국 사회의 병폐와 구조적 문제, 어두운 면을 비판하고 했던 연상호 감독답게 <지옥> 역시 한국의 현실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의 믿음과 진리, 확신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관하고 언제나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의 여러 측면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는 특정 정치인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팬덤 정치 현상이나 특정 담론의 논리에만 의지하는 정치 활동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작품 내에서는 언론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작중 언론은 그저 받아쓸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진실을 추구할 것인지 이지선다를 강요받으며, 전자를 선택하며 스스로의 책무를 저버린다. 정진수가 박정자의 시연이 중계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카메라 구도로 등장해 자신의 교리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것, 그리고 그런 그에게 뉴스 앵커가 압도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새진리회의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새진리회 측의 요구를 방송국이 그저 수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허위정보와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인터넷 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언론이 마주하는 병폐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측면을 지적한다.
하지만 후반부의 주인공인 배영재의 직업이 PD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옥>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새진리회가 강조해온 죄와 죄책감, 처벌의 교리가 부정되는 현상은 개개인, 평범한 시민의 핸드폰과 sns를 통해서 중계된다.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정보를 만들고 공급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서 어젠다를 세팅할 힘이 개인에게 넘어간 현상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며 밝은 미래를 그려낸다. 아무리 강력한 프레임이 사회를 지배하더라도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의심할 때 그 프레임을 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그 원인도, 그 해결책도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지옥이다.
사실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지옥>이 마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 사자를 묘사하고 시연의 모습을 그려내는 CG의 퀄리티는 부족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연기력 역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하나의 앙상블을 이룬다는 인상은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라는 연장선상에서 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대목도 찾을 수 있는데, 신파의 활용이 대표적이다.
전작인 <부산행>이나 <반도>에서 그러했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눈물겨운 모성애와 부성애, 곧 사랑의 힘이 한 생명을 구하는 내용이 결말을 이룬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해당 장면이 상당히 담백하게 연출된 결과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염세적이고 어둡고, 잔인한 작품 분위기를 뚝심 있게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더해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을 "에로스가 자신처럼 불멸하는 맞수와의 투쟁에서 자기를 당당하게 드러내기를 기대한다"는 구절로 마무리하는 것을 고려하면, 억압적 기제로서의 종교에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눈물은 서사와 메시지 측면에서도 일관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신과 종교를 빌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비극과 일말의 희망을 속삭이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인상적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신과 종교라는 거울에 비춰 보는 한국 사회의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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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보면 귀호강, 제대로 보면 불편한 영화 《님은 먼곳에》
영화 《님은 먼곳에》는 중학생 때 영화관에서 굉장히 재밌게 보고 나온 기억이 있었던 작품이다. 수애의 노래에 꽂혀서 원곡을 찾아듣다가도 영화 속에 나온 ‘써니’ 캐릭터의 감정 만큼 와닿지 않아서 계속해서 수애가 부른 버전으로 들었었다. 영화 《님은 먼곳에》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논문의 방향을 결정하는 도중 일제강점기와 베트남 전쟁 사이에서 방황하던 무렵 보게 됐다.
영화 《님은 먼곳에》 시놉시스
1971년 베트남, 당신을 찾아 그곳으로 갑니다!
1971년 베트남, 전쟁의 한가운데 그들이 있었다!가끔씩 동네 아주머니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인 ‘순이’는 외아들 ‘상길’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매달 군대 간 남편의 면회를 간다. 그러나 언제나 살가운 말 한마디 없는 남편 상길. 어느 날, 그녀에게 취한 상길이 묻는다. “니 내 사랑하나?”
상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순이는 다음 달도 여느 때처럼 면회를 가지만, 상길이 베트남 전에 자원해 갔다는 소식을 통보 받는다. 행방조차 알길 없는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떠나기를 결심한 순이. 베트남을 갈 수 있다는 말에 무작정 ‘정만’을 쫓아 위문공연단의 보컬로 합류하여 ‘써니’란 새 이름을 얻은 그녀는 화염과 총성이 가득한 베트남, 그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해당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님은 먼곳에》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수애만이 빛났던 작품
순이라는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수애가 작품 속에서 빛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영화 작품들 속에서 대부분의 캐릭터들을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나름의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이 작품에서는 딱히 그런 면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악역이었던 정만이 왜 갑자기 순이의 남편 찾기 대장정에 그토록 애를 쓰고 순이를 보호하려고 노선이 변하면서 캐릭터 붕괴가 된 느낌이 들어서 혼란스러웠다.
남성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다
그저 생각없이 영화를 보면 수애가 남편을 찾아 베트남까지 가서 노래를 부르는 음악영화라고 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나간 과거의 노래가 이렇게 멋있고, 좋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한동안 수애가 부른 김추자의 곡을 찾아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잘 보면 남성이 여성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미국 군인들을 타깃으로 한 쇼가 실패하면서 정만의 밴드는 한국 군인들로 그 타깃을 번경한다. 여기서 정만은 순이에게 노출이 강한 옷을 입히거나 한국 국인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순이의 치마를 들추고, 공연 때 여성의 속옷을 군인들에게 던지는 등의 퍼포먼스를 행한다.
이런 무대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순이가 점점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대 위에서의 섹시함을 강조한 써니나 무대 아래에서의 조신한 순이나 다 그 시대의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원했던 이미지를 여성 스스로가 체화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을 제대로 다룬 영화는 없을까?
베트남을 주제로 기말 레포트를 쓰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느낀 점은 베트남 전쟁 그 자체에 대해 다룬 한국 영화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베트남 전쟁이 사랑이야기의 소재나 음악이야기의 소재로서 등장하거나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전쟁 후 고생하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은 종종 찾아볼 수 있어도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가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다룬 작품은 보여지지 않았다.
우리의 잘못에 대해 다루는 것이기에 베트남 전쟁 자체가 주제가 되는 영화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일까? 교과서로 그저 우리가 잘못한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매체를 통해서도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느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사실 생각없이 보기에는 정말 좋았던 영화 《님은 먼곳에》. 지루할만 하면 수애가 노래를 부르고, 루즈하다 싶으면 폭탄이 터지니 말이다. 하지만 분석을 하면서 보다보니 꽤나 불편한 지점이 많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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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찾아서
영화 <어바웃 타임>리뷰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인생영화 <어바웃 타임>의 리뷰를 작성해보려 합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어바웃타임> 영화 스틸컷>
<어바웃타임>은 팀의 아버지 빌이 팀에게 가족대대로 남자들은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가문의 비밀을 알려주며 시작됩니다. 팀은 이 능력을 이용해 여자친구를 사귀려 노력하는데 그렇게 만나게된 여자친구 메리! 팀은 메리와 완벽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시간을 되돌리고 되돌리며 자신의 실수를 하나하나 고쳐갑니다. 하지만 능력을 자주 사용하면 할수록 꼬여버리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이 시련들을 팀이 어떻게 해쳐나갈지! 빌이 팀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진정한 인생이란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영화 <어바웃 타임>을 꼭 봐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어바웃타임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첫번째, 바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의 사용입니다
보통은 '시간여행'과 같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인물이 나오면 슈퍼히어로 처럼 지구를 구하거나 나라를 구하기 마련인데 어바웃타임에서는 팀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사람들 끼리만의 일로 전개된다는 것이 인상깊었습니다. 주변사람들만의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다른 초능력 영화들과는 달리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고 인물 내면을 더 깊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인생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어바웃 타임을 보고 난 후 사람의 인생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처음 능력을 얻은 팀은 능력을 수차례 사용하지만 영화의 끝에는 능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모습을 통해 어쩌면 사람의 인생 중 순간순간에 행복함과 소중함을 느끼는 이유는 인생에서 단 한번만 경험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능력을 사용해 소중한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그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겠지만 만일 수차례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처음 느꼈던 감정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을까요? 점점 처음 그 순간의 감정을 잊게 될 것입니다.
<어바웃타임>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하루하루와 모든 사건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영화였습니다.어쩌면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하루도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소중했던 순간이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어바웃타임>의 명대사 하나를 보여드리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파노라마_에디터 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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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본 재밌고, 정겨운 한국영화
※키노라이츠 인증회원으로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영화 <리바운드>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오랜만에 나온 재밌는 한국영화
최근 한국영화가 많이 부진했었는데, <범죄도시 2>와 <올빼미> 이후 오랜만에 볼만한 한국영화였다. 특히나 <리바운드>가 좋았던 건, 눈살 찌푸리는 장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소재여서 더 좋았다. 공교롭게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농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개봉한 영화라서 그 흐름을 이어서 잘 되면 좋겠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이야기를 담은 <에어>도 있는데, <에어>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해당 영화는 나이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연결성을 보자면 조금 더 청춘 농구 스토리인 <리바운드>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농구 영화 흥행 열풍 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최근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영화들이 젊은 관객들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해서 온 가족에 알맞은 영화가 재밌게 나온 게 좋았다. 사실 온 가족을 타겟으로 하는 소위 '명절 특선영화' 감성의 영화들은 넓은 나이대의 취향을 커버하는 대신 무난하거나 심심한 경우가 많은데, <리바운드>는 김은희, 권성희(수리남 작가님), 장향준이라는 아주 짱짱한 네임벨류의 제작진이 모여서 그런지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 심심하지도 않은 적정선을 잘 잡아낸 수작이었다.
영화 <리바운드> 캐릭터 포스터, 스틸 컷 [출처: 네이버 영화]
‘감동실화’ 위에 안재홍이 재미를 더하고, 배우들의 농구실력이 몰입감을 만든 영화
안재홍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원래도 안재홍 배우의 코미디 연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드라마 <멜로가 체질> 이후 오랜만에 물이 오른 코미디를 보여준다. 아마 장향준 감독님이 워낙 재밌으신 분이라서 더 잘 살려내신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 전체적인 부분에서 보면 안재홍 외에도 극 중 선생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나, 어른 역할의 연기자들은 거의 감초/코미디 톤을 연기하고 있고, 작중 학생들은 성장/청춘 드라마 톤을 연기한다. 이 두 가지 톱니바퀴는 꽤나 적절하게 맞물려서 한 가지가 진부해질 때쯤이면 다른 부분이 맞물려서 돌아간다.
특히 그중에서도 코미디의 중심을 잡고 있는 건 안재홍이고, 성장 드라마의 중심을 잡고 있는 건 실화 기반의 스토리이다. 실화 스토리가 워낙 극적이긴 하지만 개개인 인물들의 서사를 담기 위해서 조금은 오그라드는 청춘 드라마 클리셰를 사용하는데, 그 오그라듬이 불호의 영역에 가기 직전에 개그씬이 등장한다. 이렇게 적절한 완급조절이 영화 내내 이어지면서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한 순간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이런 부분들이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고 생각하고, 추가적으로 영화에서 생각보다 농구 경기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평소 농구 경기를 안 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실제 경기를 보는 만큼 리얼했다. 일단 배우들이 다 농구를 잘하고 심지어 선출인 경우도 있어서 긴박감을 더해준다. 그렇게 리얼한 경기를 몇 차례 보다 보면 영화 말미에 가서는 자연스럽게 경기를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리바운드> 스틸 컷 [출처: 네이버 영화]
MSG를 적절하게 넣은 추억의 분식집 같은 맛
앞서 이야기한 내용들을 종합해서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느낀 감상은 정겨운 영화라는 것이었다. 평소 외화 영화나 블록버스터 작품을 좋아해서 한국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옛 한국영화의 정취를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영화 특유의 분위기는 정겨움이다. 최근 한국영화는 뛰어난 감독님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점차 세련되지거나, 개성이 담긴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정겨운 분위기의 한국영화는 가끔 명절 시즌에만 가끔 등장하는데, 대체로 감성적이거나 유치해지면서 아쉬운 성적을 거둔 경우가 많다고 느꼈다.
영화 <럭키>, <써니> 스틸 컷 [출처: 네이버 영화]
<리바운드>는 오랜만에 맛본 정겨운 영화였고, 예시를 들자면 코미디 영화 <럭키>와 청춘 영화 <써니>의 사이쯤에 위치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럭키> 유치하게 웃기는 영화인데 묘하게 정겹고, 친숙해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이고, <써니>는 라붐 같은 감성이면서 묘하게 촌스럽고 불량스러운 게 정다운 추억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포인트들이 마치 어릴 적 학교 앞에 있던 MSG가 적절하게 들어간 추억 속 분식집을 만난듯한 감성을 선사하고 그 묘한 단짠단짠에 빠져들어서 영화를 본다면 영화가 정겹다는 표현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리바운드>에서 아쉬웠던 점을 찾아보면 그것도 그것대로 많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점이 있어도 굳이 찾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 매력이라고, 4월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 좋은 영화를 찾고 있거나 온 가족이 함께 웃으며 볼 영화를 찾는다면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로 <리바운드>를 뽑을 수 있겠다.
영화 <리바운드> 캐릭터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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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따말 아이맥스?! / 2D 3D 4DX IMAX 4번 보니 보이는 영화관 선택 꿀팁 / 연말연시 가족영화 최고작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아이맥스: 물의 길"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아이맥스관에서 3D로 보실 분들은 3D 안경(재사용)이 깨끗이 안닦여 있는 경우가 있으니
안경을 닦을 수 있는 휴지 등을 준비해 가시면 좋을 듯합니다. 즐영하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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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버지의 길> 티저 예고편
세르비아의 작은 시골마을.
부당해고를 당해 일용직으로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두 아이의 아버지 니콜라.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회사에 대한 분노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부패한 사회 복지과는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두 아이들의 양육권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버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힘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들을 빼앗겨 버린 니콜라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단 하나의 일념으로
300km가 넘는 거리인 수도 베오그라드까지의 긴 여정을 결심한다.
모든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되찾을 권리와 정의를 위해
아버지 니콜라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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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원맨> 메인 예고편
#리암니슨 마지막 미션이 시작된다💥 ㄴ 리암 형 본업 컴백 완😎 돌아온 킬러, 그의 분노가 폭발한다🔥 [원맨]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 레전드 액션, 지금 바로 확인✔ 9월 4일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