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글다2025-04-01 00:10:24
위선으로 변한 위로, 그리고 불쾌함
영화 <아노라>
<아노라>는 스트리퍼와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 ‘아노라(마이키 메디슨)’가 클럽의 손님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결혼 후 끊임없는 반대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에서도 강한 호불호를 보인다. ‘<서브스턴스>를 꺾은 제97회 칸영화제의 주인공답다’와 같은 긍정적이거나 ‘이게 왜 상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후기. 이 글에서는 후자의 부정적인 의견을 다루고자 한다.
4명의 노동자(아노라, 이고르, 토로스, 가닉)가 비노동자 ‘이반’을 찾으러 여정을 떠나는 표면적인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주제는 노동자이다. 그러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감독 자신이 가진 남성적인 시선을 사용했다는 이 영화에서, 아노라는 노동자라기보단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 되어 물건처럼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아노라>의 첫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화는 팝 그룹 테이크 댓의 노래 ‘Greatest Day’와 함께 성매매하는 매춘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중 한 명인 아노라에게 다다르며 시작된다. 이때 스트립 클럽을 비추는 카메라의 무빙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킨다. 그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밀고, 가슴을 강조하는 매춘부들은 소비해야 할 물건인 것이다. 성행위를 하는 아노라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타이틀이 뜨는(아노라의 이름이 뜨는) 연출도 아노라가 상품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시선으로 표현된 아노라의 단편적인 모습은 영화의 주제에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아노라가 4대 보험에 대해 언급하며 따지는 장면은 ‘성 노동자에게도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감독의 의도임에도 아무런 어필이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외설적인 모습만 표현하기에 바빠 이를 이해시킬 서술 장치를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 아노라의 모습은 당차다기보단 감독의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모텔비가 오르자,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핼리’의 이기적인 모습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노동자 계급의 절망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션 베이커 감독 영화의 특징이 이번 영화에 잘 드러났는지는 의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적으로 바꾼 오마주를 다시 한번 가져온 듯한 <아노라>는 독창성은 물론 현실과도 멀리 떨어져 하나의 쇼로 남는다.
영화에서 보여준 감독 자신의 남성적인 시선은 ‘소비자의 시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는 변질되는 것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었고, 처음의 위로는 위선이 되었다. 매춘굴에 관객을 강제로 앉히고 펼쳐지는 화려한 쇼,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이를 보게 되는 관객들의 불쾌함. 그리고 아노라 역의 마이키 메디슨 배우가 인터머시 코디네이터 없이 수위 높은 장면을 찍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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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과 전두환을 반추하기에는 너무 얕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불법 운송 사업을 하며 돈을 벌던 레이서 '동욱(유아인)'과 엔지니어 '준기(옹성우)'. 그들은 양손에 큰돈을 쥔 채 올림픽을 앞둔 1988년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절친 '복남(이규형)'을 비롯해 동욱의 여동생인 '윤희(박주현)'과 디제이 '우삼(고경표)'를 만난 반가움도 잠시, 상계동 판자촌을 무단으로 철거하는 등 기대와 다른 서울의 모습에 그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러던 중 동욱과 '상계동 슈프림팀'의 행보를 눈여겨보던 '안 검사(오정세)'는 전두환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비공식 작전을 그들에게 제안하고, 일생의 꿈인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기회를 잡기 위해 상계동 슈프림팀은 서울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상업 영화의 예술성은 대중의 열망이 반영되는 지점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상업 영화는 최대한 많은 관객을 유인해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개봉 당시 다수의 대중이 공유하는 감정과 열망, 환상을 화면에 녹여내면 자연히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래서 많은 상업 영화는 공동체의 집단적 경험을 비추는 창이 된다. 예를 들어 <터널>, <판도라> 같은 한국의 재난 영화는 세월호 사고를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한다. 정부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할리우드식 구원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대중적 인식을 스크린 속에 녹여낸다. 최근 흥행에 실패한 <비상선언>의 사례는 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열망이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역으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상업 영화의 특성은 정치적 맥락에서도 유효하다. 실제 역사 속 정치적 인물이나 사건과는 별개로 해당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영화는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씨가 대표적이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정당성 없는 대통령이자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자인 그는 사망 전까지 추징금도 다 갚지 않았고, 광주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죄의 뜻을 밝힌 적도 없다. 또 이미 사망했기에 그에게 죗값을 물릴 수단도 없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과오를 심판할 수 있다. 그의 사망 전에 제작된 작품이기는 하나 <26년>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이 그를 암살하려는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에 개봉한 <헌트>만 하더라도 그를 처단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온당한 처사임을 암시한다.
서울 올림픽과 전두환의 관계를 되짚다
8월 26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도 같은 맥락 내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끝내 환수하지 못한 그의 추징금을 탈취하는 카 레이싱 액션은 판타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의의 심판이나 다름없다. 특히 영화가 88년 서울 올림픽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단지 작품의 핵심 포인트인 레트로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부각하게 적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 올림픽은 전두환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본래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로 인한 불안한 민심을 수습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권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투입하며 올림픽 유치에 몰두했다. 그러나 정권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했던 서울 올림픽은 오히려 전두환 정부를 찌르는 칼이 되어 버렸다. 올림픽을 위해 많은 외신이 서울에 들어와 있던 관계로 87년 항쟁 당시 개최가 취소되거나 개최지가 변경될 것을 우려한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이는 민주화 개헌과 전두환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올림픽 유치에 전념했던 전두환이 정작 개회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은 서울 올림픽과 전두환 정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서울 올림픽 개막을 목전에 둔 시점을 배경으로 비자금을 몰래 빼돌려 피신하려는 전두환을 끝까지 추격해 심판하는 스토리는 합당한 역사적 심판이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낼 영화적 상상력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중반부가 대체 역사물 같은 인상을 주며, 실제 역사와는 달리 모든 비자금을 잃고 백담사에 갇힌 그의 무력한 모습이 냉소를 자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음새가 헐거운 스토리텔링
그러나 <서울대작전>은 과거의 무게를 짊어지기에는 부족했던, 깊이가 얕은 액션 영화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흡입력 있는 소재의 잠재력을 설득력 있게 구체화하는 데 실패한다. 문제는 스토리텔링의 측면과 장르적 관습 두 가지다. 우선 <서울대작전>은 동욱을 비롯한 상계동 슈프림팀의 아메리칸드림과 전두환의 비자금이라는 상이한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올드카를 사랑하고 카 레이싱을 즐기며 힙합에 빠진 만큼이나 화려한 뉴욕 브롱스 힙합 패션을 입고 다니는 이들. 그들은 필(Feel)과 소울(Soul)이 넘치는 문화의 본거지 미국을 동경하며, 자유와 멋이 가득한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
하지만 전두환을 잡아들이려는 야망 가득한 안 검사에게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불법 외화를 비롯한 여러 범죄 행각을 들킨 후 그들은 전두환을 심판하는 비밀 작전에 투입된다. 이때 영화는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지고, 동료가 납치당하는 와중에도 목숨을 걸고 전두환의 비자금을 쫓는 그들의 동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 안 검사에게 코가 꿰였다고 한들, 그들은 이미 당대의 사회적 고찰, 인식, 성찰과는 거리가 먼 행적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들이 돌연 역사에 먹칠한 독재자를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정의감을 발산하게 된 계기는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 작중 불과 1년 전인 87년 항쟁과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등장하지 않기에 레이싱 패밀리가 정의의 화신이 되는 전개는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이미 갖고 있던 좋은 패를 영화가 활용하지 못했기에 더욱 의아하기도 하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경기장 건설 및 달동네 환경정비 및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주민을 길거리로 내몬 바 있다. 성화 봉송 중 불량주택이 보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판잣집을 무단으로 철거하기도 했으며, 그중에는 상계동 천막촌도 포함된다. 사우디에서 귀국한 동욱과 준기가 자신들의 터전이었던 상계동이 초토화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도입부는 이 사건을 반영한다.
이 장면은 전두환 대 상계동 패밀리의 대립을 더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무게감 있게 묘사할 기회였다. 주인공들이 무력한 약자이자 피해자임을 강조해 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절실함을 더 부각할 수 있었다. 올림픽을 이유로 장애인과 노숙자를 탄압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과 연계해 정의감에 기대는 대신 더 날카롭게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이에 더해 라이벌이자 앙숙으로 등장하는 동욱과 '갈치(송민호)'가 협력하게 되는 계기를 더 자연스럽게 풀어낼 윤활유가 될 수도 있었다. 이 기회를 모두 놓쳤기에 <서울대작전>의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이음새가 헐겁다는 인상을 준다.
과해 보이는 장르적 유사성
한편 장르적으로 독창성이나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특히 레이싱 액션의 대표주자인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그림자가 짙다. 일례로 작중 카 레이싱이나 체이싱 시퀀스 속 장면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매우 유사하다. 전두환의 조직에 가담하기 위한 시험으로 등장한 도심을 가로지르는 레이싱 장면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작중 남서울 공항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그 구성과 순서가 시리즈의 6편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의 공항 액션 시퀀스와 흡사하다.
또한 캐릭터의 구성도 <분노의 질주>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동욱은 단단하고 뜨거운 가족애와 동료애로 무장한 리더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와 역할이 같다. 동욱의 여동생인 윤희는 도미닉의 여동생인 '미아(조다나 브루스터)'를 연상시키며, 그녀가 유달리 오토바이를 애용한다는 점은 토레토 크루의 다른 여성인 '지젤(갤 가돗)'과 닮았다. 동욱의 절친인 복남은 리더 못지않게 뛰어난 레이싱 실력을 바탕으로 그를 충실히 보좌한다는 점에서 <분노의 질주>의 또 다른 진주인공 '브라이언(폴 워커)'과 대동소이하다. 기술자인 준기나 DJ인 우삼은 쉴 틈 없는 개그 콤비인 '로만(타이리스 깁슨)'과 '테즈(루다크리스)'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비공식 수사를 펼치는 안 검사는 작전 기획부터 정보와 차량 지원에 이르기까지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를 빼닮았다.
이에 더해 80년대 음악으로 가득한 카세트테이프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음악과 드라이브의 조화를 강조하는 연출은 또 다른 카 레이싱 액션 영화인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 속 장면을 배경만 바꾸어 활용하는 연출은 한국 영화의 고질병 중 하나다. <탑건>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R2B: 리턴 투 베이스>, <300>과 <킹덤 오브 헤븐>의 액션 시퀀스를 그대로 가져와 배경만 고구려로 바꾼 <안시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기술력이 좋아졌다 한들 독창성이 느껴지지 않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서울대작전>의 만듦새와 구성은 자연히 얄팍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서울대작전>은 전반적인 설정과 톤을 잘못 맞춘 듯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중 동욱과 그의 팀, 갈치와 그의 팀은 제각기 카센터를 운영하는 자동차 마니아들이다. 이는 미국의 차고 문화를 한국에 맞게 현지화한 듯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차고 문화는 보편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차를 매개로 맺어진 우정이나 가족 의식, 연대감은 자세한 설명 없이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들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기도 힘들다.
또한 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더라도 충분히 다루고자 했던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프닝부터 엔딩 크레디트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삽입된 힙합 음악의 분위기처럼 <서울대작전>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과시적이고 과장된 멋을 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비해 캐릭터들은 붕 뜨고, 송민호를 위시한 여러 배우의 연기도 부자연스러우며, 특히 '강인숙(문소리)' 회장이나 '이현균(김성균)' 실장처럼 무게감을 잡아야 할 악역들은 우스워진다. 그 결과 전두환에 대한 가상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클라이맥스는 기대에 비해 쾌감이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그럴싸한 아이디어에서 힘차게 출발한 <서울대작전>의 질주는 역사의 무게 앞에서, 그리고 잘못된 튜닝으로 인해 간신히 결승선에 도착하는 데 그치고 만다.
D(Dreadful, 끔찍한)
실패하는 지름길만 골라 달려 나가는 88년도 한국판 <분노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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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롭힘은 관심의 표현이 아니다.
제목만 봤을 땐,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여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막상 보니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였다. 확실한 주제와 따뜻한 시선 그리고 단단함이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주어진 은연중에 내재되어 있는 보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누군가 정해주는 결말로 한정 짓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우리를 중심으로 한 단편 영화 '그날의 우린' 리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낯선 것의 시작은 우리에게 있어서 큰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 우리의 모습을 본 건우는 그를 빌미로 이상한 부탁을 한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은 황당하면서도 그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욱이 상대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이용하려는 마음은 그저 끔찍스러울 뿐인데도.
괴롭힘은 관심의 표현이 아니며 그저 폭력일 뿐이지만 아직도 은연중에 남아있는 사회의 편견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보편적인 시선은 아직 쉽게 바뀌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극 중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마지막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조금씩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우리를 응원하고 싶었다. 영화 '그날의 우린'은 2022 원주 옥상 영화제에서 볼 수 있으며 퍼플레이 온라인 상영을 통해 관람이 가능하다. 9월 10일 토요일까지 관람 가능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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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버 허드의 빈자리를 채운 대신 느껴졌던 것
내가 아쿠아맨이올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틀란티스의 왕 아쿠아맨 아서(제이슨 모모아)다. 전작에서의 모험이 끝났다. 그리고 메라(앰버 허드)와 결혼에 성공했다. 옆에는 예쁜 부인이 있고 내 왕국이 있다. 아틀란티스가 선정한 가장 성공한 남자가 된 아서. 왕국을 이끌면서 아버지가 된다는 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런 아서에게 도사린 위기가 있었다. 아버지가 아쿠아맨에게 당했다. 복수심에 불타는 블랙 만타(아히야 압둘 마틴 2세). 신 박사(랜들 박)와 함께 블랙 트라이던트를 손에 넣은 것이다. 더 어두워지는 블랙 만타. 남극에 봉인된 코닥스 왕을 구출해 아틀란티스를 무너트리려고 한다.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 중 하나는 이상기후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문제가 슈퍼히어로물에 자주 등장하지 않아서 그렇지 소재 자체는 이 장르에 등장하기 딱 좋다. 그야 우리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거니와 현세태 우리가 처해있는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 이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이 이 문제를 아쿠아맨이 다뤄야만 했던 이유를 잘 설정했다. 아쿠아맨이 살고 있는 아틀란티스는 해저 왕국이다. 바다와 지구온난화 문제는 뗄래야 땔 수 없는 관계라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이 인물의 서사에서도 지구온난화 문제의 핵심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는 영화 초반부에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아쿠아맨의 서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고 전작을 보면 더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 시리즈물의 의의도 놓지 않은 셈이다. 또 시각적으로도 여러 소재가 등장한다. 그냥 단순히 가족영화의 일부분으로서 짠하고 등장한 인물이 아닌 아기 캐릭터, 또 초반부에 공간적 배경이 되는 빙하 등 소재를 담는 그릇이 이 영화에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가 지구온난화 문제를 깊숙하게 탐구한다고 보긴 어려운 감이 있다. ‘왜 아쿠아맨이 다루는가’는 탄탄하게 설정했어도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역할에는 부족한 것이다.
호러적 상상력
또 이 영화는 감독 제임스 완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간적 배경은 두 곳이다. 아쿠아맨이 살고 있는 아틀란티스와 제목에 등장하는 ‘로스트 킹덤(잃어버린 왕국)’이다. 우선 아틀란티스를 묘사하는 방식은 아쿠아맨과 메라를 코디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형형색색의 빛나는 아틀란티스가 세상 화려한 이 부부와도 잘 어울린다. 대표적으로 아틀란티스의 국회정도 되는 공간이 영화에 등장한다. 또 아틀란티스 국민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이 두 장면에서 영화는 어디서 처음 본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이 화려한 것들을 보여주는 카메라워킹도 심해를 다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런 연출법은 본작이 가진 인공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서사를 이끄는 데 있어 나름 근거가 된다. 우리가 3D 영상매체를 친숙하게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글쓴이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 후반대생인 글쓴이는 <서든어택>이 기억에 생생하다. 뭔가 어색하지만 나름 3D의 구실을 갖췄던 이 <서든어택>처럼 이 영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간단한 화법 덕에 후반부에 아쿠아맨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을 받아들이기 쉽다.
또 제임스 완 감독의 근본이 호러 장르에 있다는 것이 이 영화에 잘 나타나는 편이다. 사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장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1차원적으로 ‘아쿠아맨 짠! 지구온난화 쨘!’하고 끝냈으면 2023년 말의 관객들에게 욕먹기 딱 좋을 것이다. 이야기 전개가 얕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 비틀기로 서스펜스를 만들기도 하고, SF물로서의 개성을 확보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 긴장감이 들어갈만한 요소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구멍도 감독 개인의 개성으로 주파한다. 특히 해양 생물이 개성이 강하면서도 끔찍하다. 글쓴이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연상됐는데, 제임스 완 감독이 샘 레이미처럼 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액션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점은 액션이다. 이 영화에서 액션이 자주 나오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봤던 슈퍼히어로 영화의 액션 중에서는 개성이 선명하다. 왜? 바로 맨몸액션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봤던 최근 슈퍼히어로 영화 중에 맨몸액션이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마블과 DC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 <더 마블스>, <플래시>까지 그린 스크린과 함께 화려한 액션을 펼쳤다. 이 영화도 CG가 들어가는 부분이 분명 있긴 하지만 액션 자체는 맨몸으로 스피디하게 보여준다. 전작에서 <아쿠아맨>이 수중 액션으로 극찬받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제임스 완이 시리즈의 전통을 유지한 셈이 된 것이다.
뚝딱거리는 인형놀이
이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은 우려한 바 자체는 잘 해결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것을 우려할까? 바로 메라의 서사다. 이 영화 이전에 담당 배우 앰버 허드가 거대한 스캔들에 휘말렸다. 사생활에 관대한 할리우드라도 차마 참을 수 없는 몇 기사들이 나왔다. DC의 운영진들이 이를 의식하고 분량에서 배제했다는 결정을 여러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글쓴이는 이 점을 가장 먼저 신경 쓰고 봤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거 앰버 허드 없는 빈자리가 좀 크게 느껴질 것 아닌가’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무색하게 메라 서사는 깔끔하다. 오히려 이상기후 문제를 옴이라는 인물과 함께 해결한다는 점이 주제와 이야기 구조가 어울리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제임스 완이 가진 영화연출가로서의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편집, 각본, CG, 음향 등 극 중 많은 요소에서 뭔가 날것의 티가 난다는 건 영화의 큰 단점이다. 이야기의 박력이 극을 이끄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성격이 섬세한 관객이라면 이물감이 느껴질 만한 요소가 많다.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바다와 인물이 함께 있는 것이 매치가 잘 안 됐다. 편집도 마찬가지. 갑자기 너무 길던가 뚝 끊기던가 왔다 갔다 흔들린다. 이야기도 (메라와 상관없는 부분에서) 분량이 갑자기 늘어진다. 뭐 이런 것들이 역시 영화를 관람하는데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아쉽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이야기의 캐릭터의 측면에서도 급조한 느낌은 여전히 이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빌런이다. 내내 강력한 카리스마를 풍기다가 갑자기 인물 서사가 끝나는 감이 있다. 이 인물이 작 중 어떤 소재와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야기의 밀도 측면에서 구멍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또 주인공 아쿠아맨에게 행동 당위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좀 있다. 가령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무기상에서 슈퍼히어로로 전직하는 계기를 극 중에서 전부 설명한다. 또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에서도 인물의 성격을 탄탄하게 묘사하고 2차 대전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아쿠아맨은 성격 묘사와 행동의 근거가 빈약하다. 동생과의 협력이나 인류에 대한 코멘트가 어느 정도 더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제이슨 모모아가 멋있고 배우 액션 연기 좋으니 슈퍼히어로다’의 결론으로 향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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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영화도 다시 보자> 1
새로운 영화를 찾다가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나에게 있어 그런 영화는 '엠마', '작은 아씨들' 등의 서양 시대극들이다. 그 중에 하나가 '오만과 편견'이다. '여자는 결혼으로서 완성되는 존재'라는 구시대적인 관념이 팽배해 있긴 하지만 그 지점을 비판만 하기에는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굉장히 섬세하다. 유치한 사랑의 표현은 없지만 그런 표현이 없어서 오히려 더 설렌다. 오늘은 '오만과 편견'을 한 열 번은 보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1. 책 오만과 편견을 읽은 중학생 나자신
당시 나는 15세였다. 그저 고전을 읽을 줄 아는 똑똑한 여학생이 되고 싶다는 지적 허영 아래 읽었을 뿐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아, 고전은 어려워서 고전이구나' 했었다. 텍스트만 읽고서는 이들이 어떻게 연인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혐관 서사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사랑한다고 하고 끝나는 이게 왜 유명한 고전인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당시 나는 그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기에는 어렸고, 그 미묘한 감정을 텍스트로 표현한 책을 이해하기엔 어휘력도 부족했다. 그 이후 나는 한 동안 고전을 읽지 않을 정도로 '오만과 편견'은 나에게 편견을 심어준 책이었다.
2. 영화 '오만과 편견'을 접한 고등학생 나 자신
당시 나는 18세 언저리였을 것이다. 나이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때, OCN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때, 내 허벅지를 연신 치며 나는 과거 몰매했던 중학생 나자신을 떠올렸다. 그제서야 이게 왜 로맨스인지를 남자 배우의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텍스트로 읽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랑에 빠진 눈빛을 다아시 역의 배우가 구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사랑의 시작점이 어디서부터였는지 이해할 순 없었다.
3. N차 관람을 했던 대학생 시절의 나 자신
대학생 시절에는 꽤나 여러번 봤었다. 관람 회차를 늘려갈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나쁜 역할은 엘리자베스였다는 것. 물론 다아시의 행동에 무심함과 오만이 담겨 있긴 했지만 그걸 천하의 나쁜 놈으로 둔갑시킨 것은 엘리자베스의 확신에 찬 시선이었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다아시의 행동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낯가림과 비슷해 보였다. 신중하게 내 사람만을 바라보는 그런 성격 말이다. 그 시절의 그 정도의 부자였기 때문에 소중한 내 사람만을 둘 수 있는 여건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 딸인 엘리자베스 시각에서는 사교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결혼 시장에서 먹히려면 어느 정도 진심을 감추고 웃는 낯을 유지해야 했기에 그런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의 사랑에 방해가 되었던 것은 집안의 격차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 영화가 좋다. 결말은 제일 결혼 못할 것 같았던 엘리자베스가 가장 부자에게 시집가는 해피엔딩이라고만 단순히 평가하기엔 서사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여자는 결혼으로 완성된다'는 관념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여성들에게는 당연한 법칙 같은 것이었기에 현 시대의 관점에서 옭고 그름을 평가할 수 만은 없다. 집안의 환경 격차로 인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두 남녀가 사랑으로 합치되는 과정을 세밀한 심리 묘사로 표현해내었다. 몰이해가 이해가 되고 사랑으로 발전해 나가는 미묘한 서사가 이 영화를 꾸준히 보게 만드는 요인이고, 그 미묘한 서사를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눈빛, 제스처가 관객을 미치게 한다.
아, 동일한 이유로 좋아하게 된 또다른 시대극은 '엘리자베스 개스갤의 남과 북'이었다. 이런 시대극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 장점이다.
쓰다보니 구구절절해졌는데, 안 보신 분들은 보시라는 뜻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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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편’이 부재하는 전쟁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Civil War)>(2024, 알렉스 갈란드)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증오의 단면
작품은 이 가상의 전쟁을 설명하지 않는다. 내전의 원인, 각 편이 주장하는 이념이나 명분은 알 수 없다. 서부군의 중심 세력도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의 화자인 기자들의 대화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자로서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대신 수도를 성역처럼 봉쇄하기를 택하고, 역시 미국 국민일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선전을 지속한다. 기자들이 그를 비판하는 것은 그 때문이지, 서부군을 응원해서가 아니다. 궁금해진다, 서부군은 어떤 이들이며 어째서 분리 정부를 내세웠는가, 아무 군대에도 속하지 않는 미국인들은 어디를 지지하는가,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인가 공화당 출신인가?) 그러나 작품은 알려주지 않는다.
오프닝, 카메라는 연설을 연습하며 단어를 반복해 뱉는 대통령을 클로즈업한다. 자신만만한 연설문은 언어일 따름이다. 너무 가까이 맺힌 상은 오히려 흐리고 거의 비현실적이다. 그 사이에는 사실적인 전쟁의 이미지가 있다. 거리를 두어야 보이는 것들과 다가가 거기 머물러야 보이는 것들- 영화는 기자들에게 밀착해서, 때로는 그들의 렌즈를 통해 그것들을 담아낸다. 모든 폭발과 총질이 극적으로 시원하거나 짜릿하지 않고 끔찍하게만 다가오는 까닭은 일차적으로, 기자들의 시선을 따르는 촬영과 연출 때문이다. 더불어, 이들도 관객도 어쩌면 그들 자신도, 군인들의 편과 정체를 구별해 낼 수 없어서 이기도 하다. 영화는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이 제 목소리라고 믿는 무언가를 삭제하고, 사실상 그들의 목소리가 된 총성과 폭발음, 비명과 신음을 조명한다.
이 전쟁의 한 실마리는 “트와일라잇 존” 근처 유원지에 있다. 리 일행은 한 군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통과하려는 찰나 총알이 날아든다. 건물 근처로 숨자, 잠복해 있는 두 군인이 보인다. 조엘은 되풀이해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편이며 저 건물에는 누가 있는가. 그들의 답도 되풀이된다, ‘저쪽이 쏘므로 이쪽도 쏠 뿐이며’, ‘저 건물엔 총 쏘는 인간이 있다’. 물론 전쟁의 ‘양 쪽’을 거울의 양면처럼 다뤄선 안 되는 경우가 많다.(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재진행형의 예시인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학살을 떠올리게 된다.) 분노도 다 같지 않다. 현재 미국의 법과 사회를 장악해가고 있는 조직화된 혐오(한국은 어떤가)에서 비롯된 분노와, 그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에 종종 실리는 분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가 가상의 ‘내전’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바는 아마도, 그 억압과 피억압의 권력관계를 따져 보는 행위가 무의미해진 전쟁이 끊임없이 생산하는 분노인 듯하다. 특히 반정부군이 최첨단 장비와 조직화된 군대를 갖고 있다는 설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미국이라는 국가 내의, 총기(효율적인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도구)를 쥔 증오 말이다.
이에 이어, 또 하나의 실마리는 서부군 주둔지 근처에서 이루어진 끔찍한 조우에 있다. 예상치 못한 전개의 연속으로 영리하게 관객의 불안과 안도를 유도하던 영화는, 관찰자 입장에 있던 기자들이 자신을 정확히 겨냥하는 총구를 맞닥뜨리도록 한다. 거기 조건적 혐오에 기반한 무조건적 폭력의 예시,라고 할만한 무언가가 있다. 제시와 보하이가 시체를 매장하고 있는 군인의 포로가 된 상황, 리와 조엘은 둘 중 조엘이 말문을 열기로 합의한다. ‘남자 대 남자’ 토킹을 시도하자는 일종의 위기 대처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마초적인 군인의 눈엔 더 ‘중요’한 것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핏빛 색안경을 낀 금발의 백인 군인은 공격적으로 기자들의 출신지를 물으며 누가 “진짜 미국인”인가를 가려내려 한다. 착취자가 ‘발견’한 땅에 건국된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그가 말하는 “진짜 미국인”이란, 착취자와 가장 닮아 있거나 닮고자 하는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정답이 없어야 할 질문에 정답이 생겼다. 그 정답은 답의 내용이 아닌 답을 강요당하는 자들의 생김새와 말투에 있다. 질문자가 보고 있는 것은 세 명의 기자가 아니다. ‘라틴계 남자’, ‘금발의 백인 여자’, ‘유달리 두려워하는 아시아인 남자’다. 토니가 거짓말은커녕 입도 제대로 떼지 못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었던 건, 홍콩 출신이어서 라기보단 아시안의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다. 그는 방금 보하이가 악센트가 두드러지는 영어를 구사하는 아시안이‘라서’ 살해당했음을 알고 있다. 그건 ‘피부에’ 곧바로 침투하는 공포이리라 감히 짐작한다. 조엘이 특히 패닉했던 것, 상황이 지나가고 만난 동료 기자들이 ‘새미와 다른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자 조엘이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다’고 반응했던 것도, 그 색안경 너머 시선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의 카메라와 거리
‘유원지의 저격수’ 시퀀스로 돌아가 본다. 리는 총알을 피해 몸을 낮추고 차 사이에 숨었다. 주위가 흐려지고, 꽃밭이 보인다. 그때 리의 긴장이 풀리고 스르르 눈이 감긴다. 어쩌면 그는 ‘트와일라잇 존’의 주민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옥상 위의 저격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며 잔디밭에 물을 주고, 멋진 옷을 사고, 깨끗한 동네를 산책한다. 제시가 건넨 원피스처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일상. 리에겐 그런 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제시의 가족, 리의 가족, 옷가게의 점원처럼- ‘내 코앞으로 시야를 좁히고 그 바깥을 외면하는 삶’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허나 참혹한 현실과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건 때로 특권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그런 날을 보낼 수는 있어도, 리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자주 카메라를 주변의 위험을 파악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그의 시야는 현장에서도 일관되게 넓다. 전쟁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 일부가 되지는 않는다. 전쟁의 장면들을 곱씹으며 괴로워하고 스스로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는 리는, 자신이 몸담은 장면도 멀리서 관찰할 수 있는 자로 보인다.
서부군이 백악관을 폭격하는 아수라장에서, 자주 패닉해 울던 제시는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쉼 없이 사진을 찍는다. 반면 리는 패닉한다. 조엘과 제시가 세 기자의 죽음을 “프로세싱”하는 동안 리는 카시트에 범벅이 된 피를 닦아내기만 했는데, 뒤늦은 프로세싱이 시작된 것일까. 그게 전부는 아닌 듯했다. 수없이 겪었을 폭발과 총성도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승리를 앞두고 긴박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서부군의 효율적인 움직임, 군복을 입은 동료 방송 기자들의 기묘한 미소,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제시의 번득이는 눈동자… 따위 모두가 리를 몰아가는 듯 보였다. 리는 그 순간, 그 장면에 ‘포함’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을까.
이내 평정을 되찾은 리를 선두로, 기자들은 리무진을 공격하는 서부군을 등지고 백악관으로 향한다. 이제까지의 취재가 주로 기자들이 군인들의 뒤를 따르는 식으로 이루어졌던 것과 반대로, 군인들이 기자들의 뒤를 밟는다. 그러나 백악관 내부로 들어가자 다시 위치가 뒤바뀐다. 한 군인은 기자들에게 ‘우리 진로를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협박한다. 냉정한 명령이 아닌 흥분에 사로잡혀 토해낸 고함으로 들린다.
리가 사진을 찍다 얻어맞은 제시를 돕기 위해 카메라를 내리고 다가가며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이별 또한 리가 제시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총을 맞으며 이루어진다. “내가 죽는 장면도 찍을 건가요?”라는 물음에 리는 “어떨 거 같아?”라고 되물었다. 그 복선은 제시가 리의 죽음을 촬영함으로써 비틀려 완성된다. 영화는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제시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지금 무엇을 위해 찍는가,를 묻게 한다. 폭력의 잔상들을 집착적으로 좇는 몰입한 표정이, 달리는 차의 창문을 넘어가며 신나 활짝 웃던 얼굴과 닮아 보였다면 착각일까, 그가 군인들의 흥분을 공유하고 있는 듯 보였다면. 전쟁을 담다가 그 일부가 돼 버렸다면, 포착한 이미지로 무엇을 전할 것인가는 이제 상관이 없고, 그 이미지들 자체가 목적이 돼 버렸다면, 그래도 괜찮은가. 리가 고민하던 바도 이와 닿아 있는 것일까. 영화는 전쟁을 바라보는 매체로 기자의 카메라를 활용하면서도, 그 형태와 거리의 윤리 역시 탐구하려는 듯했다.
백악관을 나갈 용기도 없어 가장 안쪽의 방에 숨어 있다 경호실장을 내보내 투항 협상을 하려던 대통령, ‘적’의 죽음들을 축하하는 그를 클로즈업하며 시작되었던 영화는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조엘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냐고 묻고, 대통령은 “살려주세요, 저들에게 날 살려달라고 말해요.”라고 애원한다. 제시는 그가 총알에 살해당하는 모습을 찍는다. ‘우리 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군인들이 시체 곁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스틸컷- 이 가상의 르포, 위험한 로드무비, 폭력적인 ‘성장’ 영화는, 고요하고 섬뜩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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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 보고 싶은 특별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 TOP4!
호기심을 시작으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인 영화들이 있습니다. 특히 무한한 상상력으로 기상천외한 공간에 초대해 주는 애니메이션은 독보적인 스토리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마음에 즐거움과 따뜻함을 심어줍니다.
특별한 상상력을 담아 지금껏 본 적 없는 세계관을 배경으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는 애니메이션의 풍성한 이야기들! 코로나로 지쳐있는 분들을 위해 무의식의 세계부터 꿈속 세계까지 작품마다 고유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 4편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애니메이션 드림팀이 선사하는 환상적인 모험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요?
1. 무의식의 세계 <인사이드 아웃>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는 다섯 가지 감정(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 감정의 신호를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내지만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되고 '라일리' 마음속에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되자 '라일리'의 예전 모습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는 머릿속 본부로 돌아가는 모험을 담아냈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피트 닥터 감독은 당시 11살이었던 딸의 머릿속과 변화하는 감정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라는 독창적 세계관을 탄생시켰습니다. 다섯 가지 감정을 의인화하는 신선한 발상은 물론 잊혀진 기억들이 버려지는 ‘기억 쓰레기장’ 등 기상천외한 무의식의 세계를 선보이며,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한번 쯤 상상은 해봤지만 눈으로 본 적 없는 세상 이야기를 통해 우리 내면의 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단순한 즐거움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존재 이유에 대한 이해를 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2. 사후세계 <코코>
출처: 네이버 영화
멕시코 전통 명절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화 <코코>는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 미구엘이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곳에서 만난 의문의 사나이 헥터와 함께 하는 모험을 담았습니다.
사후세계라는 흥미로운 배경에 화려한 색감과 감성적 음악 등 먼저 떠나보낸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황홀한 여정으로 어린이층 관객은 물론이고 성인층 관객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내고 여기에 흥겨운 음악들과 가족애, 꿈을 향한 열정까지 섞이기 어려워 보이는 재료들을 완벽하게 조합해 최고의 평가를 이끌어냈습니다.
3. 태어나기 전 세상 <소울>
출처: 네이버 영화
딸에 대한 관심으로 제작했던 피트 닥터 감독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이어 이번엔 아들 성격의 호기심을 시작으로 탄생된 영화 <소울>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된 ‘조’와 지구에 가고 싶지 않은 영혼 ‘22’가 함께 떠나는 특별한 모험을 그린 영화입니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서 저마다의 성격을 갖춘 영혼이 지구에서 태어나게 된다는 픽사의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누구도 본 적 없고, 상상한 적 없는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세계에 저마다 개성 넘치는 영혼 캐릭터들이 등장해 흥미로운 이야기와 볼거리를 동시에 선사합니다.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의 피트 닥터 감독과 함께 캠프 파워스가 공동 연출을 맡았고 <인사이드 아웃>과 <코코> 제작진을 필두로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인크레더블 2>, <토이스토리4> 등 주요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높은 완성도의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영화 <소울>은 12월 25일 개봉 예정이었지만 현재 코로나 여파로 내년 1월에 만나볼 수 있습니다.
4. 미지의 꿈속 세계 <드림빌더>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드림빌더>는 자상한 아빠와 귀여운 햄스터 '비고'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소녀 '미나'가 일상의 변화로 '비고'를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우연히 발견한 꿈속 세상에서 꿈을 만드는 드림빌더를 만나 '비고'와의 평온한 일상을 되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동안 본 적 없는 ‘미지의 꿈속 세계’를 담은 영화 <드림빌더>는 세상의 모든 꿈을 만드는 존재들의 비밀스러운 활약을 예고해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토이 스토리 2>, <니모를 찾아서> 등 세계 최정상 애니메이션 제작진의 의기투합으로 화제를 모은 이번 작품은 모두가 잠든 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꿈의 세계를 발견한 소녀 '미나'와 드림빌더의 판타지 드림 어드벤처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꿈의 공간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더해 눈길을 끕니다. 독특한 소재와 예측 불가한 전개 속 개성 가득한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재미를 예고한 영화 <드림빌더>는 내년 2월 개봉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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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시의적절한 가족 영화 해피엔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신작, 해피엔드가 개봉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2년 연속으로 '가족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점, 그리고 칸이 사랑한 감독 미카엘 하네케의 신작이 '가족영화'라는 점이 참 재미난 관람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관람하시고 시청해주시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콘텐츠도 재밌게 시청해주세요!제작지원 : 그린나래미디어
#해피엔드 #미카엘하네케 #영화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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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나병의 영화정보 #7? ?영화 마케팅이 궁금하다고?!?
?씨나병의 영화정보 #7? ⠀ ?일곱 번째 주제? ⠀ ?영화 마케팅이 궁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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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우먼 인 윈도>
[2021년 5월 14일, 넷플릭스 공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세상은 창문 너머로 바라봐야 안전하다. 광장 공포증이 있는 정신과 의사 애나 폭스(에이미 애덤스). 그녀가 건넛집에 이사 온 러셀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목격한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지만,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광장 공포증으로 집에서만 지내는 정신과 의사. 그녀는 건넛집에 이사한 가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창문 너머 잔혹한 범죄를 목격한다. 진실을 찾으려는 그녀의 집착, 그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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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메이드 인 이태리> 메인 예고편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을 팔기 위해
아름다운 토스카나에서
뜻밖의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아버지와 아들
이탈리아에서의 낭만적인 일상이
잊고 있던 두 사람의 행복을 되찾아주고
새로운 사랑도 가져다 주는데…
우리 여기서 다시 시작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