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글다2025-04-01 00:10:24
위선으로 변한 위로, 그리고 불쾌함
영화 <아노라>
<아노라>는 스트리퍼와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 ‘아노라(마이키 메디슨)’가 클럽의 손님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결혼 후 끊임없는 반대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에서도 강한 호불호를 보인다. ‘<서브스턴스>를 꺾은 제97회 칸영화제의 주인공답다’와 같은 긍정적이거나 ‘이게 왜 상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후기. 이 글에서는 후자의 부정적인 의견을 다루고자 한다.
4명의 노동자(아노라, 이고르, 토로스, 가닉)가 비노동자 ‘이반’을 찾으러 여정을 떠나는 표면적인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주제는 노동자이다. 그러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감독 자신이 가진 남성적인 시선을 사용했다는 이 영화에서, 아노라는 노동자라기보단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 되어 물건처럼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아노라>의 첫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화는 팝 그룹 테이크 댓의 노래 ‘Greatest Day’와 함께 성매매하는 매춘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중 한 명인 아노라에게 다다르며 시작된다. 이때 스트립 클럽을 비추는 카메라의 무빙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킨다. 그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밀고, 가슴을 강조하는 매춘부들은 소비해야 할 물건인 것이다. 성행위를 하는 아노라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타이틀이 뜨는(아노라의 이름이 뜨는) 연출도 아노라가 상품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시선으로 표현된 아노라의 단편적인 모습은 영화의 주제에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아노라가 4대 보험에 대해 언급하며 따지는 장면은 ‘성 노동자에게도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감독의 의도임에도 아무런 어필이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외설적인 모습만 표현하기에 바빠 이를 이해시킬 서술 장치를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 아노라의 모습은 당차다기보단 감독의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모텔비가 오르자,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핼리’의 이기적인 모습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노동자 계급의 절망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션 베이커 감독 영화의 특징이 이번 영화에 잘 드러났는지는 의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적으로 바꾼 오마주를 다시 한번 가져온 듯한 <아노라>는 독창성은 물론 현실과도 멀리 떨어져 하나의 쇼로 남는다.
영화에서 보여준 감독 자신의 남성적인 시선은 ‘소비자의 시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는 변질되는 것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었고, 처음의 위로는 위선이 되었다. 매춘굴에 관객을 강제로 앉히고 펼쳐지는 화려한 쇼,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이를 보게 되는 관객들의 불쾌함. 그리고 아노라 역의 마이키 메디슨 배우가 인터머시 코디네이터 없이 수위 높은 장면을 찍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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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서 시작해 파멸로 끝난 한 남자의 이야기
10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아네트>. 영화 <아네트>는 2021년 칸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기대가 많이 되면서도 우려했던 작품이었다 왜냐면,, 그간 칸이 선택한 작품이 나의 취향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심오했지만 정말 재밌게 봤던 작품이었다.
영화 <아네트> 시놉시스
영화 <아네트>는 예술가들의 도시 LA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와 오페라 가수 안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둘 다 LA에서 잘나가는 배우들이었지만 결혼 후 출산을 하면서 오페라 가수 안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는 반면,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안의 인기에 가려 그 코미디가 먹히질 않고 집에서 딸 아네트를 돌보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던 차에 안과 헨리는 요트 여행을 떠나게 되고 폭풍우가 치는 밤 요트에서 그 둘의 운명은 갈리고 만다.
*이 이후로는 영화 <아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다크한 뮤지컬 영화 속 유머를 섞어 놓다
영화 <아네트>는 굉장히 다크하다. 하지만 이러한 다크함 속에서도 중간중간 유머는 놓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 중간중간 안과 헨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뉴스 속보들이 나온다. 둘이 톱스타인만큼 파파라치가 많이 따라붙는다는 설정으로 정말 헐리우드에서 볼법한 폭스사의 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심각하고 다크한 이야기들 중간중간 유쾌하면서도 조금은 비판적인 둘의 관계를 짚어주는 기사들이 섹션별로 정리되고 있어 조금은 긴 러닝타임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목각인형을 활용하다
처음 아네트가 태어났을 때 든 느낌은 ‘괴이하다’였다. 당연히 어린아이를 캐스팅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목각인형이 아기의 행세를 하고 있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잠시였다. 안과 헨리를 연기한 마리온 꼬디아르와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 목각인형을 정말 아이를 다루듯 소중하게 다루고 있어서 나마저도 저 아이가 정말 진짜 아이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연기였다.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나서 왜 감독이 목각인형으로 아이를 연출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했다. 아네트는 부모에게 이용만 당한다. 아빠 헨리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엄마 안에게는 헨리를 향한 복수의 수단으로 아네트는 이용된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의 조종에 의해 살아가는 어린 아네트의 모습을 목각인형으로 표현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나다
영화 <아네트>는 안과 헨리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우리는 너무 사랑해라는 노래를 부르며 평생의 약속을 맺는다. 하지만 둘의 커리어에서 점차 차이가 나고 안은 계속해서 성공을 헨리는 계속해서 실패를 이어가면서 둘의 사이는 틀어지고 결국 그 자격지심에 빠진 헨리는 폭풍우치는 바다 속에서 안을 바다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렇게 혼자 딸 아네트를 키우는 도중 아네트가 빛을 받으면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헨리는 안이 지휘자와 관계를 가졌고 아네트가 그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결국 지휘자까지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아네트는 마지막 무대에서 아빠의 모든 죄를 밝혀버린다. 그렇게 죄값을 치르러 교도소로 들어간 헨리를 향해 면회실에서 딸 아네트는 아빠는 날 절대 사랑하면 안된다고 노래를 부름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점이 되어서야 목각인형이 아닌 실제 사람으로 등장한 아네트. 그리고 같은 멜로디지만 사랑을 표현하던 영화의 시작과 사랑을 거부하는 영화의 마지막. 이 장면을 보면서 한 남자의 사랑이 자격지심으로 인해 파멸로 이어진 것을 여실이 보여줘서 기억에 오래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아네트>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레오 카락스의 연출, 그리고 반대되는 개념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장치들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왜 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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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치열하고, 또 애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엄마, 영순(A Mother Youngsoon)
South Korea/2022/85min/이창준 감독 작품
영순은 2007년 탈북했다. 남편은 자살했고 두 아들 중 큰아들은 북한에 있다. 그녀는 같이 온 작은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엄마가 북한에서는 형에게만 사랑을 주고 자신을 내팽개쳤으며 이제는 남한에 데려와서 탈북자로 낙인찍히게 했다고 미워한다. 영순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의 딸로 태어나 늘 가난했고 유일한 희망은 재능이 특출났던 큰아들이었다. 영순에게 작은아들은 희망 대신 숙제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하기 어려운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삶에 대해 가진 마음가짐은 워낙 견고하고 단단하며, 또 씩씩하고 용감해서 내가 감히 그 마음가짐의 무게를 예측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엄마, 영순>의 주인공 '영순'이 내겐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2007년 작은아들 '소사'와 함께 깊고 넓은 바다를 헤엄쳐서 탈북한 엄마 '영순'은 함께 경마장 근처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영순은 평일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영순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들 '소사'였다. 영순은 노가다에서 일한다고 뭐라 하는 다른 이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아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씩씩하게 자기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한편, 두 모자는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서로를 의지하거나 서로에게 진솔한 대화를 털어놓지는 않는다. 영순과 소사에게는 폭력적이었던 남편이자 아버지의 자살, 북한에서 행방불명된 큰아들이자 형, 다른 이들의 편견 어린 시선 등에서 비롯된 상처가 마음 깊이 존재한다. 이들은 남한 땅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어,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그뿐이다.
이전에 내가 시청했던 다른 탈북민의 다큐멘터리와의 차이점은 '탈북 자체에 대한 스토리보다는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인 이들이 살아가는 그 삶 자체에 더 집중'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영순과 소사의 모습을 보다보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자신의 삶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절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 자신의 아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해서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끊임없이 새로운 난관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아들. 치열하고, 또 애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가족의 삶을 생각하는 그들을 미워하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미워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모습을 원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평범해지기 위해 치열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땅에 도착했고, 또 평범한 삶을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그저 당장 내가 바라는 것은 이들을 향한 조금의 편견 어린 시선도 거두는 것. 그저 있는 그대로,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어느 순간 그 시선이 다정한 시선으로 변해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2.09.24(토) 13:30 메가박스 백석점 8관
2022.09.26(월) 10:30 메가박스 일산 벨라시타 101호
2022.09.28(수) 10:30 메가박스 백석점 컴포트 6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09월 22일 -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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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닿는 그 곳, 전부
여성국극 1세대 배우 명인 '조영숙'
여성국극, 몇 년 전부터 웹툰 <정년이>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음알음 인식되기 시작했고 최근 드라마화가 되면서 대대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내가 아는 건 딱 이 정도였다. 정확히 어떻게 발현되었고, 어떤 무대를 보여주는지 왜 인기를 얻었는지 알 턱이 없었다. 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오랜 시간동안 예술 분야의 한 주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여성국극이 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이 있던 차에 <여성국극 :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의 개봉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영화 <여성국극 :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는 다큐멘터리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인 여성국극에 대한 역사적 의의와 현대에 이르러 어떤 실태를 보이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그 중심에서는 3세대 배우 ‘박수빈’님과 ‘황지영’님의 서술이 이루어지며, 두 분의 시야로 작품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1세대, 2세대를 넘어 3세대로 넘어 온 만큼 지금의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모두 3세대 배우들의 입장에서 이입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고 가장 흥미로웠던 정보는 각 배역들마다 부르는 용어가 따로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특정 등장인물이 인상 깊게 나온다고 하면, 그 배역의 이름을 기억하고 끝이지, 어떠한 통칭되는 용어가 추가적으로 생기지는 않기 마련이다. 희극 조연 ‘삼마이’, 여역, 남역 주연 ’니마이’, 악역 ‘가다끼’ 배역마다 명칭이 생길 정도였으니 그 시절 여성국극의 인기가 어느정도였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새로운 단어가 생길 만큼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보통 많은 애정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소위 ‘덕질’해본 사람들은 분명 알 것이다.
어느 예술 분야든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갖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국극에서는 특히나 배우들이 그 무대의 캐릭터로서 존재할 때 갖는 힘, 그 극에 동화될 때 보이는 몸짓들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해볼 수 없는 가치였다. 수없이 해왔기에 거울을 안 보고도 완벽히 해내는 분장, 캐릭터의 옷을 입으면 변하는 표정, 빛나는 눈이 아름답다. 어떤 각도로 팔과 다리를 움직여야 좋을지, 무슨 대사를 추가할지, 어디서 어떻게 음을 꺾어야 여성국극다운 소리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무대, 그렇기에 더더욱 성별이 의미가 없는, 그저 배우로만 존재할 수 있는 공간, 바로 여성국극이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로서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저력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
위 사진이 촬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3세대 배우 박수빈님의 1세대 배우 조영숙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꼭 큰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덕분이다. 모든 세대의 배우들이 각자의 시대에서 타고난 특징들을 살려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해보자는 기획은 지금까지 없었던 스케일이었고, 도전이었다. 수없이 반복하고 몸에 익고 꿈에도 나오는 그 무대를 직접 만들어낸 배우들임에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각 세대의 특징을 조화롭게 한 데 섞는 작업은 보다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을 것이기에 기획부터 제작까지 완벽하게 해낸 배우들, 특히 박수빈님과 황지영님에게 존경을 표한다. 타이트한 시간 속에서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전 세대 배우들의 모습 중에서도 공연 시작 직전에 잠을 못 자고, 두려워하고, 나 때문에 무대를 망칠까 걱정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함께 긴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대를 사랑하기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불안함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감동을 느꼈다. 특히 작품 중간중간 나오는 옛 자료들이 매우 인상 깊었다. 영상/사진 자료와 함께 나오는 1, 2세대 배우들의 당시 감상과 고뇌를 서술하는 연출 또한 더욱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출처 : 시네마달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스페셜 예고편
아무래도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국극이라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무대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분위기를 상상해볼 수 있을 만큼 꽤 많은 노래들이 흘러 나온다. 그 중에서도 3세대 배우 박수빈님의 기획으로 발돋움된 ‘레전드 춘향전’의 에필로그 곡이 나를 … 울렸다. 어떤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음악의 선율에 바로 몸이 반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점 중에 기본적으로 DNA에 스며들어 있는 게 바로 ‘한’이라고 지나가듯 들은 적이 있다. 여성국극 또한 ‘한’을 담고 있으며, 그 감각을 내가 오롯이 느끼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해당 노래의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 천 년이 가고, 만 년이 가도, 우리 사랑은 이 순간에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
그저 감명 깊은 곡이었을 뿐인데, 영화의 제목 또한 이 부분에서 인용된 걸 보니 더욱 뜻깊었다. 에필로그 곡 ‘민들레’는 한반도 분단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 연인, 친구 등 모든 이들의 슬픔을 대변하는 ‘박재연’님의 창작곡으로, 춘향이 몽룡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민들레 홀씨에 빗대어 표현하며 춘향의 마음을 그려냈다고 한다. 춘향전의 마지막과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곡으로서, 그들의 모든 서사를 알게 된 관객에게 여성국극을 위하는 우리들을 알아주세요, 라고 전하는 메시지가 절절하게 느껴져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여성국극 1세대 배우 명인 '조영숙' 3세대 배우 '박수빈' '황지영'
그래, 우리가 영화를 보며 가장 집중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예술 분야가 오로지 종사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간신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영화를 사랑하고 창작하는 사람이기에 3세대 배우 황지영님의 '그냥 여성국극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단 한 명의 관객이 있다면 작은 무대부터 강연까지, 여성국극으로 그곳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어디든지 둘이서 함께 캠핑카로 바삐 돌아다닌다. 전 세대의 배우가 모이는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도, 변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고유의 예술을 담고 있는 여성국극이 그 자체로 빛날 수 있도록 고민하고 행동하는 3세대 배우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현재 여성국극의 상황은 영화 제목 그자체이다.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반짝였던 과거의 시절에 힘입어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사라질듯 이어진다. 영화 내내, 우리가 갖는 관심 하나하나가 여성국극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고 있다. 예술은 관객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고, 한 명이라도 바라보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된다.
해당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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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롯이 일어설 수 있는 용기
매번 신비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왔던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신작 ‘그린 나이트’로 돌아왔다. 미지의 존재인 용과 유령의 이야기를 지나 이번엔 아서 왕의 전설 속 인물인 가웨인의 모험을 조명할 예정이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각색한 이번 이야기는 <슬럼독 밀레니어>, <라이언>의 주연을 맡은 데브 파텔과 <툼레이더>, <데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을 예고하고 있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로 유명한 J.R.R 톨킨이 현대어로 해석한 작품답게 중후한 중세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아일랜드의 자연을 통해 가웨인이 모험 중에 겪는 혹독함과 경이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웨인(데브 파텔)은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왕이자 삼촌인 아서(숀 해리스)를 찾는다. 둘 사이가 소원했던 것에 맘이 쓰였던 아서는 조카와 친분을 위해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기를 원한다. 하지만 평소 방탕한 생활을 이어 온 가웨인은 수많은 전설을 남긴 아서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한다. 침묵이 이어지던 순간 적막을 깨고 몸이 나무로 이뤄진 거한이 등장한다. 자신을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라고 소개한 거한은 자리를 매우고 있는 수많은 기사들에게 한 가지 게임을 제안한다. “녹색 기사의 목을 배는 자는 명예와 재물을 얻게 되지만, 1년 후 녹색 예배당을 찾아 목을 배여야 된다”는 말에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자 가웨인이 직접 녹색 기사의 목을 밴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녹색 기사는 떨어진 머리를 주우며 “1년 후”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성을 떠나면서 가웨인은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만다.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인 ‘유령’을 재해석해 감성적으로 담아낸 <고스트 스토리>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을 들어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비현실적인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 로워리 감독은 믿을 수 없는 현상을 납득시키는 장치들을 영화 곳곳에 배치하며, 미지의 존재에 대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미지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 설득력은 그의 세계관을 이루는 메시지 또한 부각한다.(※이후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한정된 공간에서 더 넓은 세계로의 모험
배경에 차이가 있을 뿐 로워리 감독의 작품을 이루는 핵심 주제는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는 인물의 성장이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에 만족하고 변화를 거부한다. 틀에 박힌 삶을 살던 인물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마치 하나의 모험극처럼 담고 있다. <고스트 스토리>가 한정된 공간에서 흐르는 시간의 모험이었다면 <그린 나이트>는 다양한 로케이션을 탐방하며 수많은 시련을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 전설의 홀로서기
기사가 되기 위한 가웨인의 모험을 다루는 방식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거대한 검을 휘두르며, 악으로부터 선을 구하는 용맹한 기사의 모습보단 찌질하고 구차한 한 개인의 여정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하지만 시련을 겪으며 변화하는 과정은 자신을 가두고 있던 껍질을 부수고 태어나는 새 생명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숭고하게 과정을 다루고 있다. 로워리 감독의 작품 속 시련의 과정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프고 힘들지라도 결국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자립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 변화를 두려워했기에 그들의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녹색 기사와 가웨인의 결투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면서 누구도 알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지켜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웨인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것이다.목숨을 건 여행이 없었다면, 그들의 전설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린 나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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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이건 콘서트가 아니라 시네마잖아!’ 라고, 아이맥스 상영관을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다른 가수들이 같은 시도를 해본다면 과연 그녀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관은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의 제목이 ‘투어’라는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영화에 관한 길고 긴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 원천은 분명히 개인적인 팬심과는 다른 것이었다. 상영관 안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무대가 아닌 스크린 위에 이미지와 목소리, 내러티브를 마음껏 펼쳐 놓았다. 그리고 가사에 따라붙는 제스처와 디자인을 관객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마치 시네마처럼!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은 알게 모르게 나를 키웠다. 마일리 사이러스, 케이티 페리, 셀레나 고메즈, 아리아나 그란데와 함께 십대인 내게 유튜브로 보고 듣는 팝송의 매력을 처음으로 알려 주었고, 완벽히 꾸민 세트장에서 칼군무를 추는 2010년대 아이돌과는 달리 드라마를 함께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파티 걸’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들, 가령 방에 틀어박혀 짝사랑하는 소년이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원하는 마음, 그리고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경험하게 되는 두근거림을 노래하는 소녀였다. 그럼에도 내겐 그녀는 재능으로 충만한 채 연애담을 쓰고, 인기 많은 배우와 가수를 사귀고, 다리에 수백 억의 보험을 들어 둔, 금발의 비쩍 마른 팝스타였다. 스위프트가 마침내 디바로 거듭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그녀는 아름다움과 무해함으로 무장한 스무 살 걸그룹 멤버들과는 달리 무대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십대에 컨트리 앨범으로 데뷔한 이후 스위프트가 대중에게 얻은 관심은 의심의 형태였다. 십대 소녀가 앨범을 혼자서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레드카펫에서 성추행을 당했지만 자신이 돈을 위한 재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최소 금액을 걸고 소송을 해야 했고, 수상소감 도중 동료 가수가 난입해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았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모욕까지 겪어야 했다. 연애담을 가사에 썼다가 연인을 이용한 사랑 노래밖에 쓸 줄 모른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수많은 남성 가수들이 같은 소재로 낸 앨범에 쏟아지는 찬사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녀는 루머에 대응하던 끝에 결국 1년간 음악계와 모든 미디어에서 사라졌고, 자신의 경력 전부를 걸고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돌아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앨범(Reputation)은 홍보도, 방송 출연도, 그 어떤 설명도 없이 가공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행보를 통해 테일러 스위프트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사라지지 않은’ 여성 아티스트였다. 그녀는 언론과 대중이 만들어낸 수많은 해프닝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해명 대신 가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동료들 사이의 갈등이나 연애사가 너무나 많은 대중에게 노출되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매우 큰 심리적 부담감을 수반하는 상황 자체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만들었다. 그 세계관은 첫번째부터 마지막 트랙, 앨범과 앨범을 엮는 서사가 되면서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대중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쌓은 경력과 영향력을 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한 연단으로 삼기도 했다. 기타와 피아노,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 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이용해 자신의 삶 자체를 세계관으로 변환하는 것까지가 그녀의 빛나는 재능이다. 그 재능으로 그녀는 30대가 되어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끝없이 성장하는 여성 아티스트가 되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 또한 그녀의 이 파란만장한 세계관 안에 있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단순한 ‘공연 실황 영상’과는 달리 영화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는 것, 그리고 박스오피스를 뒤흔드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촬영의 완성도와 박스오피스 성적, 지금까지 영화를 평가하는 지표로 작용했던 이 두가지 조건을 이 콘서트 필름은 모두 성공적으로 만족했다. 하늘을 날아서 관객들의 머리 위로 스타디움에 입장하는 오프닝에 이질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영화는 음향과 촬영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서서히 카메라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기묘한 힘을 발휘한다.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쌓아올린 서사, 그것을 바탕으로 창조한 매력적인 세계관과 음악, 그리고 또 한번 성장한 그녀의 퍼포먼스 실력과 연출이 한데 모여 자그마치 세 시간의 러닝타임을 빈틈없이 채운다. 영화는 그라운드석부터 4층까지 옮겨 가며 객석에 함께 있는 듯한 음향을 들려주었다가도 가수의 코앞까지 다가간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완전한 성공을 거둔 적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 바로 다양성을 카메라에 담는 데에 성공했다. 공연 자체와 영화 모두의 완성도 높은 연출, 가수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 주는 여러 장르의 앨범, 끊임없이 흐르는 히트곡들이 맞물리면서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그야말로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스펙터클과 감동을 전달한다. 그래서 OTT 서비스에 던져온 회의적인 시선과 극장의 가치를 굳게 믿는, 어쩌면 다소 보수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새로운 장르의 탄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거장 감독인 마틴 스코세이지의 신작보다 높은 성적을 낸 이 영화는 앞으로 어떤 현상을 불러올까? 많은 가수들이 OTT 서비스를 통해 콘서트 실황 영상을 공개했고, 개중에는 <아리아나 그란데 : 익스큐즈 미, 아이 러브 유>처럼 다큐멘터리와 결합한 형태도 있다. 또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한 <올리비아 로드리고 : 네가 있는 집으로>와 같이 앨범 제작기와 라이브 세션을 함께 담은 형태도 있다. 그러나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새로운 형식적 요소를 시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계에 경제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기록을 남겼다. 또 접근성이 매우 좋은 장소에 100여명 이상의 관객이 모여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어떤 가수라도 탐이 날 법하다. 누가 이런 시도를 또 할 것인지, 어떤 기대와 우려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이 궁금증을 통해서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그녀가 관심과 자산을 더 나은 음악과 퍼포먼스에 쏟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한편 그녀는 ‘팝 컬쳐’, ‘셀럽 문화’에서 과감히 탈출하기를 선택함으로써 선망의 이미지가 넘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빠들, 우정 팔찌를 교환하는 소녀들이 모이도록 했다. 그렇게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이끌어냈다. 박스오피스에 찍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대 팝스타 중 누가 이 시도를 하고, 또 누가 영화관을 경유해 이런 형태의 경제적, 문화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 영향력은 수만 명의 관객들이 ‘내가 그 년을 유명하게 만들어 줬으니까 I made that bitch famous’라는 가사를 연호하며 그녀를 희롱했던 가수가 발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또 그녀의 공연은 폭력과 광기를 ‘쿨한 것’처럼 연출해 어린이 관객이 목숨을 잃는 사고로 변했던 콘서트는 해낼 수 없는 무형의 성과라고 감히 예상한다. 그녀는 ‘전 남자친구들의 이야기는 그만 쓰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아티스트도, 뱀 이모티콘으로 트위터를 도배했던 수많은 대중들도 발휘할 수 없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힘이 세진 기분이에요, 마치…소파이 스타디움을 매진시키는 느낌?’이라며 너스레를 떨 만큼, 다시 말해 겸손을 떨 필요도 없을 만큼의 큰 성공을 거둔 뒤에도 그 선함을 믿는 예술가로 남았다. 그래서 수만 개의 시선 앞에 그녀가 등장하는 떨리는 순간부터 카메라가 다시 하늘을 날아 스타디움을 나갈 때까지 펼쳐지는 모든 시대들(eras), 이야기를 감상하면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맙소사, 테일러가 또 해냈잖아! Oh my gosh, she nailed it again!”
*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가 국내 개봉하고 이 글이 쓰인 지 약 한달 후인 12월 6일, 타임(TIME)지는 그녀를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녀는 타임지 표지를 두 번 장식한 역사상 첫번째 여성이 되었고, 타임지는 기사를 통해 그녀가 스타 가수 그 이상의 성과를 냈음을 강조하며 이렇게 썼다.
“예술가로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문화, 비평, 상업적 성과는 너무나 많아서 논하는 것 자체가 요점을 벗어나는 것 같다. 팝 스타로서 그녀는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마돈나 같은 희소성 있는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음악가로서 그녀는 밥 딜런, 폴 매카트니, 조니 미첼에 비견된다. 사업가로서는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로 추산되는 제국을 쌓아올렸다. 그리고 연애사, 패션 등 모든 것이 낱낱이 평가당하는 여성 셀럽으로서 그녀는 지속적인 관심을 통제해 왔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스티브 닉스는 “저는 테일러에게 유명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조언을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녀에겐 필요 없는 거에요.”) 그런데 올해는 무언가 변했다. 그녀의 행보에 관해 논하는 것은 거의 정치나 기후에 관해 논하는 것 같다. 매우 널리 쓰이는 언어와 같아서 말하기 위한 맥락조차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Swift's accomplishments as an artist-culturally, critically, and commercially—are so legion that to recount them seems almost beside the point. As a pop star, she sits in rarefied company, alongside Elvis Pres-ley, Michael Jackson, and Madonna; as a songwriter, she has been compared to Bob Dylan, Paul McCartney, and Joni Mitchell. As a businesswoman, she has built an empire worth, by some estimates, over $1 billion. And as a celebrity —who by dint of being a woman is scrutinized for everything from whom she dates to what she wears-she has long commanded constant attention and knows how to use it. ("I don't give Taylor advice about being famous," Stevie Nicks tells me. "She doesn't need it.") But this year, something shifted. To discuss her movements felt like discussing politics or the weather—a language spoken so widely it needed no context. She became the main character of the world.
– from article ‘2023 Person of the Year : Taylor Swift’ written by Sam La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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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의 과정을 이토록 생생히
눈으로 뒤덮인 산. 멀리서 보기엔 아름답지만, 그 안에 고립되어 살아가야 한다면 그곳은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다. 추위와 배고픔 등 생존을 위한 한계상황에서 인간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1972년 안데스산맥 오지에서 조난당한 이들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선택과 힘겨운 생존 과정을 생생히 옮겨 담았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IMDB
1972년 우루과이 공군 571편이 추락한다. 위치는 안데스산맥 중심부. 여행에 부푼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탄 대학 럭비팀 일원들은 한순간 고립무원에 놓인다. 전체 인원 45명 중 생존자는 29명. 하지만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은 생존자들을 지독하게 괴롭힌다. 구조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이들은 어떻게든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내지만, 부상 당한 이들부터 한 명씩 숨을 거둔다. 게다가 식량은 바닥나고 굶주림은 심해지는데, 결국 이들은 죽은 시체를 먹기에 이른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1993년 개봉한 <얼라이브>에 이어 또 한 번 동일한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얼라이브>는 각색을 통한 드라마 요소가 강했던 것에 반해, 이번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중심을 둔다.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파블로 비에르시의 저서 ‘눈의 사회’(La Sociedad de la Nieve)의 판권을 구매하고, 제작진과 함께 모든 생존자와 1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녹음하는 등 초기 작업을 견고하게 진행했다. 가명을 쓴 <얼라이브>와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실명을 사용하고, 극 중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모든 이름을 화면에 게재하는 등 생존자뿐만 아니라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존재까지 알리는 노력도 기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IMDB
확실히 눈에 띄는 건 다큐처럼 느껴질 정도로 구현된 영상이다. <더 임파서블>로 사실적인 쓰나미 재난 영화를 만든 바 있는 감독은 안데스산맥의 아름답고도 공허한 풍경, 비행기 추락 장면, 조난 후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 눈사태로 고립되는 장면 등은 관객들을 극한의 안데스산맥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특히 조난 후 유일한 거처가 된 사고 비행기 안에서 눈사태의 위협으로 사람들이 파묻히는 사고 장면은 그 자체로 위협감을 느낀다. 마치 거대한 자연(혹은 재난)이 ‘이래도 살아남을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이들의 생존을 시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더불어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고 그에 따른 고통의 강도는 인물들의 얼굴로 표현되는데, 유독 영화가 인물 클로즈업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런 긴장감은 비주얼뿐만 아니다. 생존이 먼저인지, 인간성이 먼저인지에 대한 대립과 갈등이 시작되면서 극의 내적 긴장감도 더한다. 조난, 재난 등 특수 상황을 그린 영화에서 생존과 인간성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는 영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자칫 윤리적인 문제로까지 치달을 수 있는 이 부분을 영화는 그들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인식시킨 후, 그 당위성을 확보하는데 주력, 인물들이 왜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해와 삶을 향한 의지를 부각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인물들이 인육을 먹기까지 많은 고민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는 걸 보여준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 칼을 집어든 로베르트(마티아스 레칼트)와 그 반대편에 서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누마(엔조 보그린칙)를 보여주며, 인육 취식은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더불어 앞서 소개한 눈사태도 인육을 먹으며 배고픔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후 이들에게 닥치는데, 마치 금기를 어긴 이들에게 신이 형벌을 내린 것 같은 느낌, 죄책감에 짓눌린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영화는 어떠한 역경이 와도 삶을 놓지 않는 게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극 중 이를 잘 표현하는 건 난도(아구스틴 파델라)인데, 사고 후 큰 부상을 입고, 엄마와 여동생을 먼저 떠나보낸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했던 누마의 바통을 받아 그 또한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정진한다. 인육을 먹는 고통을 자처하더라도 사고에서 살아남은 삶을 살아가고 싶은 생존자들의 마음 또한 이를 같이 한다.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스틸 / 넷플릭스 제공
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생존하고, 병원에서 안식을 취하지만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이 겪은 이 일에 대해 혹자는 기적, 혹자는 비극이라 말한다. 삶은 소중하지만, 이를 영위해 나가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 사고 당시 16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인 구스타프 제르비노는 모 인터뷰를 통해 당시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이렇게 말했다. “삶이란 우리가 하던 일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50년 전에 일어난 기적 혹은 비극을 마주하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덧붙이는 말: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 및 폐막작으로 공개되었고, 제38회 고야상 13개 부문 노미네이트, 오는 7일(북미 기준) 열리는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스페인 대표 출품작이다. 과연 이 영화의 메시지가 수상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평점: 4.0 / 5.0
한줄평: 기적 혹은 비극을 마주하는 삶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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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 제 8일의 밤, 실망스러운 오컬트 영화
넷플릭스에 한국 공포영화 제8일의 밤이 공개되었어요.
예고편에서 오컬트 분위기를 한껏 뽐냈기 때문에 꽤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았을텐데요.
영화는 생각보다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을 가지고와서 번뇌와 번민을 요괴화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인데요.
생각보다 오컬트의 분위기도 약하고 그렇게 무섭지도 않아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이성민 배우가 열연하고 있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네요.
보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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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7월 4주 신작 영화
[WEEKEND CHOICE MOVIE] #왓챠영화 #왓챠신작 #왓챠
#비와당신의이야기 #오문희 #아웃포스트 #라이더스오브저스티스 #손오공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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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팸 & 토미> 공식 예고편
"만약.. 이게 세상에 공개된다면?" 1995년,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벌어졌다! 디즈니+ STAR 오리지널 시리즈 [팸 & 토미] 4월 20일 단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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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내 이름은 마더> 공식 예고편
복수는 마더처럼. 알래스카 황무지에서 수년간 숨어 지낸 치명적인 암살자. 멀리서 그리워만 하던 딸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돌아온다. 제니퍼 로페즈, 조셉 파인즈, 루시 파에스, 오마리 하드윅, 폴 레이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출연. 《내 이름은 마더》를 시청하세요.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