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펜2023-11-14 14:52:56
이번 주 넷플릭스 추천작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이번 주 추천작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코미코에서 연재되다가 계약 만료 이후 네이버로 서비스를 옮긴 이라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주인공 정다은 간호사 역할에 박보영이 캐스팅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밖에 이정은, 연우진, 장동윤 등이 주연을 맡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잘 알려진 이재규 감독이 연출을, <조선명탐정> 시리즈, <힙하게> 등의 각본을 쓴 이남규 작가 등이 각본을 맡았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로 이동한 간호사 '정다은'을 좇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다은은 내과에서 정신과로 이동하게 된 자신에게 의문과 호기심을 가지는 다른 간호사들과 유대를 쌓게 되고, 일촉즉발의 사건들이 벌어지는 병동 안에서의 다양한 일상을 마주한다. 결과적으로는 정다은을 포함한 정신과 간호사 및 의료진, 그리고 정다은을 거쳐가는 환자들의 성장기로 맺음되는 훈훈한 엔딩의 이야기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정다은은 이 과정에서 구설수에 시달려야 하고 담당 환자들의 사건사고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걸려 입원하게 되는 등 우여 곡절을 겪는다. 환자에게 진심을 다하는 간호사와 의사, 보호자들은 아무리 매달려도 속수무책으로 벌어지고 마는 사건들에 매번 좌절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아침이 온다'는 설정이, 이 작품을 빛나게 만든다.
가장 큰 순기능은 '정신 질환'에 대한 허들 낮추기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정신 질환은 사회적으로 터부시되고 있다. 아픔을 숨기며 살아가고, '정상'을 연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충과 사회적인 부조리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확하게 짚는다. 특히 치료자인 동시에 환자가 될 수 있으며, 언제든 다시 치료자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는 인간의 유동성과 질환의 인지 및 치료의 중요성을 정다은 간호사의 캐릭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면들이 몹시 좋았다. 더불어 다양한 정신 질환을 누구든 공감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연출과 대사로 묘사하려고 노력한 부분들에 대한 노고가 다분히 드러난 작품이었다. 드라마의 배우들 모두 극에 완전히 밀착된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어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현한 만큼 그 고민과 깊이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특정 질병에 대해 자극적이게 다루지 않으며 그 질병의 고충을 가능한 한 제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한국 드라마는 그리 많지 않기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선 경계인이다'라는 말이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되는 대사가 아닐까 싶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도 언제고 질병과 질환을 겪을 수 있는 예비 환자임을 인지하며 타인을 대하는 방식. 현재의 한국에 턱없이 부족한 역량을 이 작품은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Relative contents
-
- [JIFF 데일리] 팔씨름 금메달 리스트가 FML을 극복하는 법
동생이 팔씨름 선수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시다시피 팔씨름은 공인된 경기 스포츠는 아닙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오히려 돈을 내야 하죠. 돈을 내지 않으면 우승해도 메달을 주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당신의 동생은 어찌나 팔씨름에 진심인지, 코치까지 쓰면서 팔씨름 경기를 준비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동생의 취미 생활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줄 수도 있고, 쓸데없는 일에 왜 이렇게 열중이냐며 나무랄 수도 있겠죠. 어쩌면 그런 동생의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팔씨름의 모든 것>은 바로 그렇게 탄생한 작품입니다. 자신의 동생이자 팔씨름 선수인 '파노스 구시스'를 관찰하는 요르고스 구시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형 또는 누나의 마음으로 '파노스'의 삶을 같이 들여다볼까요?
팔씨름의 모든 것
ARM WRESTLER
이 작품은 <팔씨름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처럼 '파노스'의 일상을 좇으며 낯선 팔씨름 선수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합니다. 순간적인 팔심으로 상대를 압도해야 하는 팔씨름 경기는 1초 만에 승부가 갈리기도 하는 폭발적인 힘겨루기 시합입니다. 그런 만큼 선수와 심판은 모두 규칙에 따라 자세 하나하나를 바로잡으며 대회에 임하죠. 그러면서도 메달은 도떼기시장보다 정신이 없는 곳에서 대충 수여해 버리는 어딘가 이상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내 동생이 팔씨름 선수라면?"이라는 앞선 질문에 혹시 '잔소리할 것 같다'와 같은 부정적인 답을 떠올리셨나요? 그렇다면 이 영화를 한 번 시청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마도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거예요. 팔씨름을 향한 '파노스'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거든요. 그에게 '팔씨름 선수'라는 정체성은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게 하는 힘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의 눈은 언제나 반짝거리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저렇게 열정과 애정을 쏟는 것이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 ⊙ ⊙
'파노스'는 팔씨름 선수이면서 동시에 카페 주인, 광대, 마술사, 심지어 배우 지망생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팔씨름 선수가 아닐 때 그의 삶은 왠지 자꾸 꼬이기만 합니다. 카페 운영은 지치고, 하고 싶은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죠. "FML(Fuck my luck)"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날들이 반복됩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집중하고 몰두하여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일이 바로 팔씨름이죠.
'파노스'는 꽉 막힌 인생의 해답을 찾지 못합니다. "내가 문제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죠. 그러나 형이 바라본 동생의 모습은 조금 달랐습니다. 형의 카메라에 담긴 '파노스'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팔씨름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자신을 단련해 가듯이 말입니다. 이따금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짜증내면서도, '파노스'는 계속 해서 부딪히며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경기 스포츠는 고통과 한계를 넘어 우승을 쟁취해야 하는 싸움입니다. 다양한 고통과 한계가 산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은 경기 스포츠와 비슷한 면모가 있죠. '파노스'는 경기 스포츠를 치르는 것처럼 근성과 노력으로 그러한 일상의 문제들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팔씨름의 모든 것>은 '팔씨름 선수의 일상'이라는 생소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실은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모습을 포착합니다. 팔씨름 선수인 동생의 내면에 자리한 경기 스포츠인의 자질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형의 마음까지도 함께 담고 있고요.
⊙ ⊙ ⊙
<팔씨름의 모든 것>를 보면서 때때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극영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곤 했습니다.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극영화의 모양새를 갖춘 장면이 많았고, 현실을 향한 불만 가득한 한탄이나 카페 손님을 향한 짜증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들도 서슴없이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형제가 촬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삶의 권태를 느끼는 '파노스'의 모습에서 실패로 점철된 삶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던 <성난 사람들>의 '대니'가 겹쳐 보이기도 했는데요. <성난 사람들>에서 다룬 이야기가 다큐멘터리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한 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단지 팔씨름 선수의 세계를 알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작품을 고르셔도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니까요.
Summary
팔씨름꾼 '파노스'는 살던 마을을 떠나 아테네로 돌아온다. 이 여정에서 '파노스'는 진정한 자신을 억압하는 근육질 남성을 직면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요르고스 구시스
출연: 파노스 구시스
Schedule in JIFF
2023.04.29(토) CGV전주고사 2관 20:00
2023.05.02(화) CGV전주고사 3관 10:30
2023.05.05(금) CGV전주고사 8관 10: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27일 - 05월 06일
-
- 우등생이 아닌 모범생의 길을 가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나갈 날만 기다리며 외무부 중동과에서 하루하루 버틸 뿐인 외교관 ‘민준’(하정우). 그러던 어느 날, 민준은 놀라운 기회를 잡는다. 20개월 전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 '오재석'(임형국)의 암호 메시지를 받은 것. 아무도 레바논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가운데, 민준은 외무부 장관의 약속을 받아낸다. 비공식작전에 성공하면 미국 발령이라는 약속을. 이에 그는 레바논으로 향한다.
부푼 희망을 안고 베이루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경비대에게 쫓기는 민준. 공항을 간신히 빠져나온 그는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주지훈)를 우연히 만난다. 설상가상으로 인질 몸값을 노리는 갱단마저 그를 쫓기 시작하자, 민준은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은 판수만 믿고 비공식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매력 없는 모범생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국 영화계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한국 외교사의 비하인드를 다루는 작품이 여럿 공개됐다. 남북 외교관의 소말리아 탈출기를 그려낸 <모가디슈>,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다룬 <교섭>이 대표적이다. 김성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정우, 주지훈이 출연한 <비공식작전> 역시 같은 트렌드를 따른다.
사실 트렌드에 올라탄 영화는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있다. 상황이 좋게 흘러가면 관객의 니즈를 정확히 겨냥해서 흥행할 수 있다. 반대로 뒤늦게 트렌드에 올라탄 경우 리스크가 크다. 앞선 작품들과의 차별화에 실패해서 관객의 눈도장을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공식작전>은 후자에 가까운 상황이다. <교섭>의 흥행 실패는 해당 소재가 소구력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이에 <비공식작전>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최대한 넓히려고 노력했다. 초반부는 유머러스하다. 후반부를 채운 액션 시퀀스는 강렬하다. 하정우와 주지훈의 케미는 익숙하지만, 기대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 와중에 시대상을 반영한 묵직한 드라마는 심금을 울리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모범생 같다. 특출 난 지점은 없어도 고루고루 균형을 잡았다. 다만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조금 가혹하게 말하자면, 재미는 있되 매력이 없다.
묵직한 드라마의 힘
<비공식작전>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대목은 드라마다. <교섭>과 유사한 이야기가 전체 틀을 잡는다. 두 작품 모두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전달하는 방식은 다르다. <교섭>은 '정재호'(황정민)를 어떻게든 국민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의 화신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인물과 관객 간의 가교를 놓는 데는 실패했다. 개인의 일탈이 두드러진 샘물교회 사건을 소재로 삼다 보니 관객이 주인공에게 몰입할 여지가 없었다.
<비공식작전>은 영리하다.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초반부에 민준은 허술하다. 그에게 외교관으로서 대단한 사명감은 사치다. 서울대 출신 후배에게 밀려 승진 못하는 그는 평범한 공무원 중 하나다. 이 소시민적 감성 덕분에 관객은 손쉽게 민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 이 교감은 그의 변화를 납득할 수 있는 여지도 준다. 평범한 직장인이 모든 자국민을 구하려는 진정한 외교관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보조 플롯도 인상적이다. 레바논에서 그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외무부는 안기부와 갈등을 빚는다. 외교관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되지 않겠냐는 외무부 장관의 항변은 힘이 없다. 외무부의 단독 작전 때문에 안기부장 심기가 불편해졌으므로. 이 갈등은 결국 국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국익을 따지기 전에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6월 민주 항쟁과 서울 올림픽이 시대적 배경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그러다 보니 외무부 직원들의 단체 행동, 오재석 서기관과 민준의 만남은 과한 연출 없이도 뭉클하다.
분위기를 환기하는 버디 무비
물론 드라마에만 집중하면 자칫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질 수 있다. <비공식작전>는 버디 무비를 활용해 열기를 적절히 식힌다. 민준과 판수의 티키타카가 쉼터인 셈이다. 이 접근은 효과적이다.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버디 무비의 전형과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버디무비는 상극의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처음엔 온갖 갈등을 빚다가 점차 닮아가는 변화의 감동이 핵심이다. 인종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른 주인공이 등장한 <그린북>처럼. <교섭>만 해도 주인공의 성격도 스타일도 정반대였다.
<비공식작전>은 다르다. 외교관 민준과 사기꾼 판수는 사실상 같은 인물이다. 민준은 외무부 중동과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갇혀 있고, 판수는 레바논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눈앞에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오자 사투를 벌인다. 달리 말해 <비공식작전>은 같은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김성훈 감독의 장기가 곁들여진다. 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어둡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다. <터널>처럼. <비공식작전>도 마찬가지다. 문을 사이에 둔 티키타카, 돈가방을 둘러싼 추격전에서는 두 배우의 합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 과정에서 두 인물은 유대감을 쌓는다. 목적지만 가면 그만이었던 택시 기사와 승객은 서로를 진짜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지가 된다. 기사와 승객이 바뀐 듯 보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이 버디 무비는 뭉클한 진심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방점을 찍은 액션
마지막으로 <비공식작전>은 액션과 서스펜스로 관객의 눈길을 끝까지 사로잡으려 한다. 액션의 스케일은 크지 않다. 하지만 지형지물을 아기자기하게 활용해서 긴장감을 고조한다. 광야에서 들개가 나오는 장면, 베이루트의 주택 옥상에서 민준과 무장 단체와의 대치, 차가 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종횡무진하는 카 체이싱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비슷한 배경의 <모가디슈>와 비교하면 결정적인 장면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남는다.
색다른 지점도 있다. 후반부 액션에서는 두 주인공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초중반부에는 검문소 테러 장면처럼 민준과 판수가 액션의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인 대목이 있다. 오재석 씨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는 현지 중동 테러 조직의 교전 한가운데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간극은 오히려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지나치게 영화적인 액션이 아니라서 현실감이 살기 때문이다. 또 <교섭>과 달리 단조로울 수 있는 액션 패턴에 변주를 주면서 여름 대작에 걸맞은 쾌감을 주려 한다.
모범생이라 아쉽다
그러나 <비공식작전>은 끝끝내 아쉽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모범생이지만, 확실한 매력이 안 보인다. 배우 활용법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민준은 <수리남> 속 '강인구'와 결이 비슷하다. 그들은 그저 더 잘 살아보기 위해서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했고, 그 대가로 곤경에 빠진다. 둘 모두 적당히 가볍고, 종국에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대중적으로 익숙한 배우 하정우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와 분위기가 감독의 전작인 <터널>을 닮은 점도 모범생 이미지를 강화한다. 위기에 빠진 주인공은 고립된 공간에서 원맨쇼를 펼친다. 바깥에서는 주인공을 도우려는 이들과 방해하는 세력이 갈등을 빚는다. 진지한 분위기는 주인공의 예상치 못한 코미디 덕분에 환기된다. 주인공이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 결과 <터널>의 확장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한 번 찾아낸 성공 방정식을 따라갔다는 인상이 강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비공식작전>은 굳이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 <범죄도시 3>나 <밀수>가 호불호는 갈려도 자기만의 확고한 개성을 어필해 관객을 극장까지 유인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물론 팝콘 무비로서 튀는 단점이 없다는 점은 여름 시장에서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하정우와 주지훈, 그리고 김성훈 감독의 조합이 갖는 무게감과 명성에 비하면 마냥 장점이라고 하기도 애매해진다.
<비공식작전>은 여러모로 작년 여름시장의 생존자 중 하나인 <헌트>를 떠올리게 한다. 장르적으로 스릴러와 액션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포지션이 유사하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천만 영화를 만들어 냈던 하정우-주지훈 조합도 이정재-정우성 커플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헌트>와의 유사점 때문에 <비공식작전>의 단점은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러닝타임을 액션으로 꽉꽉 채우고, 두 주인공의 비중도 거의 오 대 오로 가져가면 최대한 개성을 살리려 노력한 <헌트>. 반대로 <비공식작전>은 어떤 면도 준수한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비공식작전>의 미래는 어둡다. 극장에서 <헌트>처럼 손익분기점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심지어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예매율 1위를 차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가 대기 중이니 앞날은 더욱 암울하다.
Acceptable 무난함
재미는 있다. 극장까지 가는 게 관건일 뿐.
-
- [영화 리뷰] 소울 (SOUL)
소울
감독 피트 닥터
출연 제이미 폭스, 티나 페이
네이버 평점 : 9.32 / 10 (네티즌 평점 기준 참여인원 8,230명)
왓챠 평점 : 4.1 / 5 (참여인원 4.8만 명)
개인 평점 : ★★★★★ (5 / 5)
소울 리뷰 3줄 요약
1. 영화가 끝나고 여운이 남는 작품
2. 사후 세계 내용 같지만 주로 생전 세계(?)와 삶의 의미를 다룬다.
3. 픽사 작품 중 가장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
+ 소소한 쿠키영상 있음
(큰 의미 없는 쿠키영상이지만 크레딧이 내려갈 때에도 귀여운 영혼 캐릭터가 꾸준히 등장하니 보고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음)<소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소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 픽사의 22번째 작품
소울은 픽사의 22번째 작품으로 이를 기념해 작중 어린 영혼 주인공의 이름 역시 22번이다.
픽사의 역대 장편 영화 중 가장 어른스러운 작품으로 직전 작품이었던 온워드가 굉장히 어린이용 작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 피트 닥터와 그의 전 작품 [출처: 씨네 21 인터뷰, 네이버 영화]
- 픽사 3 대장 피트 닥터
픽사에는 토이스토리 1편부터 작업을 해왔던 3명의 애니메이터 겸 감독들이 있는데 이들이 감독, 원안 등에 참여한 작품을 모두 나열하면 전체 작품의 70%에 다다른다.
그들이 바로 피트 닥터(업, 인사이드 아웃), 앤드류 스탠튼(니모, 월 E), 존 라세터(토이스토리, 카)로 존 라세터는 2018년 파문을 일으켜 현재는 퇴출당했다. 그리고 피트 닥터는 현재 퇴출당한 존 라세터의 뒤를 어이서 픽사의 CCO(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를 담당하고 있다.
<소울>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 생전 세계를 다룬 스토리
보통 영화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건 사후 세계지만 소울에서 주로 다뤄지는 배경은 생전 세계이다.
즉, 태어나기 전의 세계를 메인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영혼을 소재로 하는 작품치고 이런 독특한 설정들이 뻔할 수 있는 소재를 신선하게 담아내는 지극히 픽사스러운 상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영혼들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관리자들의 묘사를 추상화스럽게 표현한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었다.
<소울>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 재즈는 언제나 즐겁다
주인공이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인물이기 때문에 영화 속 노래들이 거의 재즈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재즈가 흐르는 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재즈 영화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재즈의 멜로디는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게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영화 속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여운을 느껴보기 좋다.
- 소울 메인 예고편
<소울> 메인 예고편 [출처: 디즈니 공식 유튜브]
H, E, (LL) 두 개의 하키 스틱ㅋㅋㅋㅋㅋㅋ
찐 새로운 인생과 리뉴얼 새로운 인생이랄까
※이후부터 스포일러
+글쓴이의 생각의 흐름
스포 방지 용 <소울>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어떻게 생각해보면 아르키메데스 때부터 살아온(?) 그리고 그 무수한 멘토들과 함께 보내본 22번에게도 모르는 세상(현실의 지구)이 있다는 것에서 경험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그 즐거움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경험할 때 온전히 즐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해준다.
살아가는 태도는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다.
마음가짐에 대한 유명한 일화로 낡을 만큼 낡아버린 예시지만 원효대사 해골물이 꾸준히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찰떡 비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효대사는 '속았다!'라고 느껴지는 느낌이 강하지만 우리가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가 우리의 평가와 판단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긍정적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실제로도 하루 동안 생기는 많은 이벤트들이 긍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무조건적인 긍정이 답은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분(주식이라던가... 주식이라던가...)에서는 예측된 긍정론을 경계하는 것도 좋은 판단에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결론은 조금 더 우리 일상 속 순간순간의 경험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 소소한 경험, 지나가는 삶에 지나치게 무심하곤 하다.
예를 들면 출근길에 바라보는 창밖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누군가에겐 감동을 줄 수 있는 풍경이고
누군가에겐 힐링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좋아하는 포인트들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마치 사탕을 좋아해서 한 움큼 집어 올 줄 아는 22번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주인공에겐 재즈였고 22번에겐 재즈한 행동들이었다면 우리가 즐거워지는 순간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물건들, 행동들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이 일상에 녹아내려있을 때 한층 풍부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굉장히 몰입해도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느끼는 부분이 현저하게 적다는 것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반대로 풍부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루가 너무 긴 것도 좋지만은 않겠지만 가끔 하루 속에 풍부하고 풍성한 순간이 숨어있는 것은 굉장한 힐링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것이 여행이기도 하고 그런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재충전과 에너지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소울이 품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약간의 사담을 더하자면 소울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우리 일상 속에는 혼, 영혼과 관련된 표현들이 많다. 예를 들면 혼을 담다, 영혼이 없다, 혼이 나갔다.
굉장한 집중을 이루어냈을 때 소위 하얗게 불태우면 혼을 담았다고 한다.
나의 혼이 담길 만큼 그것과 밀접하게 교류했다는 의미이다.
영혼이 없다. 말 그래도 아무런 느낌 없이 감정 없는 표현에 쓰이는 말이다.
혼이 나갔다.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실제로는 보고 들을 수 있지만 혼이 나가서 봐도 모르고 들어도 모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혼내다의 어원도 영혼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생각보다 많은 단어에 있었다는 게 조금 신기하더라.
이렇게 생각하면 영화 속 영혼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어린 영혼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성격 가치관 등을 장착한다.
앞서 살펴본 단어만 보더라도 우리는 영혼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생각, 성격을 담고 있다고 여기고 굉장한 몰입을 영혼과 연결시킨다
또한 감정적인 포지션을 느끼는 역할을 영혼에게 주어주고 있기 때문에 영화 속 소울에 대한 묘사가 꽤나 원초적인 영혼에 대한 생각들을 잘 표현해 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를 잘 하진 못하지만 소울과 관련된 영어 표현들을 찾아봐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게 아무래도 혼에 대한 이미지나 인식은 문화를 벗어나서 다르지 않은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故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세 얼굴
故 이선균 배우의 마지막 세 얼굴은 포개진다. 첫 번째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2024)다.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 차정원으로 분한 그는 재난을 마주한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오히려 처음에는 정반대였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을 상관으로 둔 차정원은 모든 일을 정략적으로 처리하는 데 능숙한 인물이다. 어떠한 선택에 담긴 공적 의미가 아닌 그 선택이 표와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되는지만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상관이 연루된 극비 프로젝트 때문에 되레 자신과 딸의 안전을 위협받고, 끝내 상관에게 버림받은 후 기존 가치관을 버리고 ‘생존자’로서 목소리를 낸다. 이때의 차정원은 웃는 얼굴이다.
두 번째는 〈행복의 나라〉(2024)에서의 군인 박태주다. 박태주는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에게 총을 쏜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으로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경호원 3명을 살해했다. 재판에서는 박태주가 내란 모의에 적극 동조했다는 검사의 입장과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변호사의 의견이 대립한다. 두 입장의 길항이 이어지고, 그렇다면 군인은 어떤 명령이든 복종하기만 하는지, 그것은 아이히만의 변명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가 의아할 때쯤 박태주가 수동적으로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는 군인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박태주의 총알에는 상관의 명령뿐 아니라 자신의 의지도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며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자신을 굽히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국가는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해야 한다는 차정원의 당부는 시대를 거슬러 오른 박태주에게서 ‘국민을 지키기는커녕 되레 억누르며 위협하는 국가는 총의 주인이 아닌 총구의 표적이 된다’라고 응답받는다.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재판에 임하는 박태주의 얼굴은 내내 담담하고 결연하다.
그리고 차정원과 박태주가 아닌 인간 이선균의 얼굴이 있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2달 동안 그의 얼굴은 내내 지치고 버거워 보였다. 그는 노골적인 피의 사실 공표와 자극적 보도로 배우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비난을 받았다.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 책임의 형태가 결코 이런 식이었을 리는 없다. 수사기관과 언론, 유튜버와 그들이 자극적으로 재생산한 단편적 진실들을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유포하거나 품평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에 대한 실망감을 너무 쉽게 비난의 형태로 표했고 모든 것을 손쉽게 단정했다. 내게는 이 모든 게 만약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나중에 ‘아 그래?’ 하고 이내 잊어버렸으면 그뿐일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니었다.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낸 넓고 느슨한 연결망에서 관계 맺고 있던 나와 그가 이 추문의 파도를 마주했을 때 각자 느낀 충격의 격차는 거대했다.
나는 그의 죽음으로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그의 죽음에는 나의 책임도 있었다. 자극적인 기사를 클릭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담은 게시물을 살펴보고, 수사기관과 언론‧미디어의 행태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내가 재판관이라도 되는 양 이런저런 이야기를 쉽게 내뱉고……. 이후, 다시는 전반적인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누군가의 추문에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그리고 그 이전의 비슷한 수많은 죽음에) 그토록 슬퍼하고 반성하던 사람들은 이내 다른 먹잇감을 찾았고 물어뜯었다. 나 역시 그런 소용돌이에 말을 보태지 않고 빠져 있겠다는 다짐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만큼 우리를 휩쓸리게 만들고 관여하게 하는 추문의 파도는 일상적이었고, 거셌다. 나는 그의 죽음이 내게 남긴 무거운 질문에서 출발한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비틀거리고 있다.
〈행복의 나라〉에는 박태주의 변호사 정인후가 막후에서 재판을 좌지우지하는 군인 전상두(전두환)와 대면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영화 초반, 유능한 변호사 정인후는 군인들이 선을 넘는 것 같다며 짐짓 대범한 태도로 전상두에게 재판에 임하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영화 후반, 재판이 법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에 따른다는 현실을 절감하고는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전상두 앞에 무릎 꿇고 울며 애원한다. 전상두는 첫 만남에서의 모욕감을 몇 배로 되갚는다. 그러고는 사회가 너무 혼란스럽기에 질서를 확립할 필요성을 역설하며 정인후에게 이렇게 묻는다. “누가 이 몽둥이를 들어야겠나?” 변호사가 아닌 군인이 몽둥이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인후가 기대는 법리는 전상두가 쥐고 있는 몽둥이의 힘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그리고 쿠데타로 몽둥이를 완전히 그러잡은 전상두는 우리가 알고 있듯 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만약 몽둥이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면, 그 손잡이는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군인이 아닌 보편주의에 입각한 법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전상두는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단죄받았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사실상 ‘끝났다’(이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다는 점은 이 표현을 쓰는 데 머뭇거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제 모든 국민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사받고, 재판받는다. 법의 영역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도 이 원칙을 두루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만 그렇다. 현실의 이선균 배우는 그가 법치의 원칙에 따라 마땅히 누렸어야 할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이 권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북돋아야 할 법률가 출신의 위정자는 되레 정인후보다는 전상두의 방식으로 법을 대하는 듯도 보인다. 그리하여 차정원과 박태주를 경유한 이선균 배우의 얼굴은 이런 질문으로 나아간다. 총, 칼, 법, 여론 등 그 모습을 달리하며 반복해서 휘둘리는 몽둥이의 속성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 몽둥이가 꼭 필요할까? 우리는 어떻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일을 그만둘 수 있는가? 몽둥이의 폭력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한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선균과 함께했음을 기억합니다”라는 〈행복의 나라〉 영화 자막을 보고 울컥했다. 다시는 그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데,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여러 감정이 맞물려서 한동안 몸이 저릿저릿했다. 엔딩 크레딧까지 마무리되고, 모든 관객이 퇴장하고 혼자 앉은 텅 빈 영화관에서 그의 영화와 삶이 남긴 질문과 나의 다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선균 배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온 마음을 담아 그의 명복을 빈다.
-
- 기록만이 균열을 낸다
DIRECTOR. 러우예
CAST. 저우쉰, 자훙성 외
SYNOPSIS.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쑤저우강. 비디오 촬영기사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두 연인 마다와 무단의 목숨까지도 버리는 열렬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연인 메이메이가 있지만 그들과 같은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 마다의 사랑이 꾸며낸 거짓이라고 믿었던 메이메이는 마다와 무단의 시체를 보고는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에게 마다와 같은 사랑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요구를 무시해 버린다.
POINT.
✔️ 미장센이 아름답고 감성이 세기말이에요. 이거 안 좋아하는 법 아시는 분?
✔️ 사랑은 역시 지난 세기의 사랑이 진짜다... 낭만주의적 장면
✔️ 그리고 거기 남아 있는 깊은 역사적 의미. (정성일 평론가가 알려주신 바에 따르면) 천안문 사태를 목도하고 카메라를 쥔 중국 6세대 감독이 무엇을 담았는지 바라보아야 할 영화.
✔️ 1인 2역을 소화하는 저우쉰의 연기 저력
영화 <쑤저우강>은 블랙아웃된 화면에서, 사랑을 시험하는 연인의 질문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이어 강과, 강을 둘러싼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더러 기울어지고 더러 초점이 맞지 않는, 강과 공사 현장과 배... 같은 모습이 점프컷을 통해 불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이내 내레이션을 이끌고 가는 사람은 카메라 촬영 기사로, 앵글이 1인칭 시점으로 움직인다. 카메라 촬영 기사는 동네 술집인 '해피 바' 사장에게 인어 분장을 하고 수조에 들어가 춤을 추는 여성을 촬영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인어 역할을 한 메이메이와 사랑에 빠진다.
가까이에서 연인을 보는 카메라는 이런 느낌이구나. 보이는 거라곤 상대 뿐이라, 사랑에 빠진 시선은 타이트해진다. 맹목적으로 상대를 본다. 그러나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꽉 차지 못한다. 메이메이가 연인에게 던진, 사랑을 시험하는 질문 이야기로 한 겹 더 들어간다. 메이메이의 표현에 의하면 사랑을 잃어버리고 미쳐갔다는 남자 마다의 이야기로.
촬영 기사는 마다와 그의 연인 무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다소 혼란스러워지는데, 이야기가 피자치즈처럼 하나로 쭈욱 이어지는 게 아니라,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베어 물 때마다 후두둑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황상 마다와 무단의 사랑 이야기는 메이메이가 촬영 기사에게 들려준 것인데, 이야기를 관객에게 서술하는 사람은 촬영 기사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궁금했던 건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하는 것이었다. 0에서 100까지의 스펙트럼 전체가 가능성이었다. 마다와 무단이 실존인물일 가능성과 그냥 도시 전설일 가능성. 메이메이가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가능성. 메이메이의 이야기에서 촬영기사가 변형시켰을 가능성.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고, 마다와 무단 이야기의 진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펼쳐지는 쑤저우 강의 흐름에 묶어서 나는 막연하게 느꼈다. 강은 아름답기만 한 곳도 아니고, 교과서적인 표현으로 '생명의 젖줄'이기만 한 곳도 아니다. 때로는 사람을 살리고 때로는 사람을 삼키는 강 위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나고 흘러간다. 영화 초입에 보여주었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강에 계속해서 누덕누덕 기워진다. 역사는, 인간사는 결국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윤슬처럼 무언가 반짝 빛난다. 도저히 인어가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희뿌연 강에서 (애초에 강에 인어란 생물체도 없지만) 사람들은 반짝이는 인어의 환상을, 깨진 사랑의 이야기가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리는 것을 본다. 공장 굴뚝 연기와 짓다 만 공사 현장의 투박한 사이로, 그런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살아남아 흘러간다.
어디까지가 만든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짜인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강을 따라 흐르는, 누덕누덕 내려앉은 이야기 중에는 사랑도 이별도 망설임도 추억도 있다.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도 애틋한 도시 전설이 되어 흘러갈 뿐이다.
이야기는 어쩐지 허무하게 끝나고, 페이스트리처럼 후두둑 떨어진 이야기 조각들을 보며 나는 슬퍼진다. 강에는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후두둑 떨어지고 또 누더기처럼 덧대어지며 흘러가겠지. 어찌 보면 허무하고 암담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계속 붙이는 주체를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끌어 가지만 이름도 얼굴도 나오지 않는 촬영 기사 같은 존재를 생각한다. 이야기를 남기고 재구성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도도한 시간의 흐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의 기억과 기록 뿐이다.
왕가위 영화가 생각난다는 평이 많았는데, 내겐 그다지 왕가위 생각이 나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냥 이 영화 자체로 고유했고, 영화가 주는 에너지가 커서 좀더 곱씹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시작된 라이브러리톡에서 정성일 평론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욱 커서, 일부분만 요약해서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정성일 평론가는 러우예라는 감독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러우예는 학생 시절이었던 1989년 천안문에서 민주화 항쟁과 광장에서의 학살을 목격했다. 그의 첫 영화 <주말정인weekend lovers>는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순회했지만, 정작 중국 당국의 검열로 2년간 영화 촬영을 금지당했다. 그는 다음 영화를 찍기까지 5년 가량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쑤저우강>이다. 그는 이 영화로 또 다시 1년간 촬영을 금지당한다. 다음 영화 <자호접>은 1931년 반일 레지스탕스를 소재로 하면서 좀 체제 순응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2006년 대놓고 1989년을 배경으로 한 <여름 궁전>을 내놓는다. 정성일 평론가의 표현을 빌자면 러우예의 "폭탄 같은" 영화였다. 결국 그는 또 다시 5년 동안 영화 촬영을 금지당한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러한 배경을 상세히 풀어내며, 그렇기에 이 영화를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천안문 이후의 절망과 실패, 좌절 등이 담겨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이었기에 직접적인 알레고리를 사용할 수 없지만, 지극히 간접적인 알레고리를 넣었음에도 중국 공산당은 이를 느끼고 촬영을 금지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안문 이후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개방, 정치적으로는 폐쇄를 지향하는 이중의 정책을 펼쳤고, 이 영화는 그 이후 중국 인민들의 정신과 마음 상태를 그려내고 있다. 혼탁한 진흙탕 같은 물. 간명하게 설명되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서사. 마치 유리잔을 깨뜨려 파편을 사방으로 흩듯, 의도적으로 그렇게 찍은 영화라고 했다.
2000년 당시의 중국 상황과 끊어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고 하면서도, 정성일 평론가는 우리가 중국 내부인이 아니라는 한계를 명확히 언급했다. 검열을 당하는 국가에서 알레고리는 지극히 간접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외부자의 해석은 언제나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언제든 교정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타는 열정으로 해석에 접근하는 능동적인 마음과,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외부자의 겸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발언이라 인상 깊었다.
"왕가위의 아류"라는 흔한 해석 또한 정성일 평론가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런 해석은 왕가위도 납득하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탁류 위를 흘러가는 배 같았던 당대의 중국 상황과, 길 잃은 듯 돌아다니던 <중경삼림> 시기의 홍콩 상황은 차이가 있음을 명확히 했다. 반환 앞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홍콩의 상황보다, 떠돌아다닐 수도 없이 수동적으로 흘러가야만 했던 당시 중국의 절망적 감정을 담은 것이다.
더불어, 왕가위의 점프컷은 세심하게 모두 쪼개어 이어붙인 느낌이지만, 러우예의 점프컷은 노골적인 NG컷까지 포함함으로써 찍은 풋티지를 모두 보여주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차이점도 짚었다. 이는 영화의 서술자가 카메라 촬영 기사임을 생각할 때 더욱 절묘한데, 중국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게 익명의 누군가가 최선을 다해 찍은 것을 모두 보여주는 형태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 1인칭 기법을 서방 세계의 미학적 해석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당시 중국의 상황에서 관객과 영화를 이어주는 매개로 자리하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는 그의 설명이 마음을 울렸다. 언제든 중단될 수 있을 만큼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핸드헬드, 서사와 무관한 쇼트까지 포함한 느낌으로 의도된 편집 또한 그 느낌을 뒷받침했다.
정성일 평론가의 설명을 들으며, 아무리 제재와 검열이 아스팔트처럼 뒤덮어와도 예술은 한 평 땅의 흙처럼 숨 쉴 구멍의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가 지나가는 말처럼 일갈한,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나(자신)만 불쌍'하게 보는 시각 또한 한편으로는 비판받을 지점이라 생각되면서도, 동시에 2024년의 한국 현실과 공명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사회를 배경으로 피어난다.
영화와 설명까지 모두 끝난 자리, 내겐 동일하게 한 문장이 남는다. 기록만이 균열을 낸다. 사회의 거대한 기조, 도도한 시간의 흐름, 괴로운 현실에... 이름도 얼굴도 남지 않는다 해도, 기록하는 손의 방향성만큼은 뚜렷하게 남아 균열을 낸다. 지금 우리는 무슨 균열을 낼 수 있는가. 사유하고 반응하고 싶은 마음으로 탁류를 응시한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
- 우리~~하게 아픈 어느 3대 대가족의 초상
우리~~~하게 아프다. 경북이 고향은 아니지만, <장손>을 보면 이 사투리가 절로 나온다. 약 2시간으로 압축된 대가족의 이야기를 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 특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지긋지긋한 애증 관계를 유지하다가 끝내 등을 돌리는 김씨 집안 가족의 모습은 그 자체로 쑤시고 아리는 듯한 고통을 전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이 보편적인 가족은 마주하기 싫지만, 그래서 더 보게 된다. 이게 바로 우리 가족의 모습이라고 여기면서.
경북 시골에서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김씨 집안 식구들은 분주하다. 오늘이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여느 가족처럼 남자는 놀고, 여자는 일한다. 한여름 제사라 에어컨도 틀법한데, 집 안의 안주인인 할머니 말녀(손숙)는 장손 성진(강승호)이 와야 틀 기세다. 서울에서 무명 배우로 활동하는 성진은 뒤늦게 고향 집을 찾는다. 오랜만에 내려온 터라 반가울법한데, 성진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아니나 다를까 제사 이후, 아버지 태근(오만석)이 할아버지와 자신의 대를 이어 두부 공장을 물려받으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에 반기를 든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성진은 할아버지 승필(우상전)과 말녀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올라간다. 계절이 바뀐 가을 어느 날, 성진은 급히 고향으로 내려간다. 건강했던 말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두부처럼 살아온 가족
<장손>은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것 없는 3대 대가족의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은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세대, 젠더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소리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어느 집안이나 문제는 다 있듯 김씨 집안도 마찬가지다.“아이고 우리 장손 왔나!”라는 말녀의 말 한마디에서 알 수 있듯 장남을 최고로 여기는 이 집안은 여성들만 노동한다. 1990년대 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올법한 남녀 차별이 이곳에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뿐인가. 한국전쟁 때 가까스로 살아남아 두부 공장을 운영하며 장손의 책임을 다한 할아버지 승필은 민주화 운동을 하다 다리를 절고 낙향한 아들 태근을 못 마땅해 한다. 태근 또한 자신을 빨갱이 운동에 가담했다고 미워하며, 두부 공장 운영에 일일이 간섭하는 아버지가 밉다. 성진은 술만 마시면 가슴 속 응어리진 울분을 토해내며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태근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가족 중 유일한 기독교 신자인 첫째 딸 혜숙(차미경)은 기도와 믿음으로 교통사고 후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보살피고, 성진은 그 사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 막내딸 옥자(정재은)는 사업가 남편 동우(서현철)를 따라 승필이 그토록 싫어하는 공산국가인 베트남으로 이민을 간다. 가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성진의 누나 미화(김시은)는 남편과 두부 공장을 물려받을 생각을 하고 있다.
김씨 집안 사람들은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혈연지간으로 뭉친 가족이지만, 알고 보면 실상 남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서로를 달가워하지 않는 관계다. 마치 자신의 의지 없이 억지로 뭉쳐져 네모반듯하게 나온 두부처럼 말이다. 김씨 집안의 가업이 두부 공장이라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사라져가는 가족주의
두부 같은 가족을 어떻게든 뭉치게 한 이는 바로 말녀. 영화는 그녀의 죽음 이후 바스라져 버리는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결국 이들이 와해되는 건 돈 때문이다. 전조는 장례식장에서 각자 친구 지인이 전한 조의금을 나누는 장면부터지만, 문제의 촉발 지점은 혜경으로부터 시작한다. 헤경은 과거 말순에게 맡겨 놓은 돈을 장손인 태근에게 찾아보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이로 인해 촉발된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 큰 사고가 발생하며 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혜경이 요구하는 건 돈이지만, 실상 원하는 건 그동안 이 집안을 위해 노력했다는 가족의 인정이다. 가부장적 가족주의에서 철저히 배제된 딸(혹은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정을 바라는 혜경의 모습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혜경의 남편이 두부 공장을 이어받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하고 이를 돌봐야 하는 혜경의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딸이 짊어져야 하는 차별의 무게를 비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3대 장손의 이야기를 대변하듯 여름, 가을, 겨울이란 세 계절을 담는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족주의는 해체가 되고, 관객은 이를 지켜본다. 그나마 화기애애했던 여름을 지나 냉기 서린 가족의 이면이 드러나는 겨울에 당도하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느껴진다.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엿소리처럼, 한 가족으로서 이들을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계절이 변하듯 이 과정이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연출한다.
<장손>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계절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자연이다. 이 풍광을 유려한 미장센으로 담아낸 화면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매력적인데, 반대로 무섭게 다가온다. 인간으로서 자연의 섭리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가족주의 해체 또한 막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함박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걸어가는 승필의 마지막 모습은 사라져가는 가족주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축제>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떠오르다!
<장손>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엄지척을 날린 평단의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영화가 가부장적 3대 가족을 통해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는 부분이다.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격동기를 겪은 근현대사, 압축성장에 따라 빠르게 변화한 우리 사회는 발전과 번영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대 간의 갈등을 낳았고, 서로 간의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3명의 장손은 서로 간의 오해만 쌓아놓고 산다. 저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지만, 이를 툭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이야기하지 못한다. 장남으로서 해야 할 책임과 책무에 짓눌려 살아왔기 때문이다.
장손으로서 이들은 가족을 지키지 못하고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공포감에 점차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웠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단해진 벽은 허물 수 없게 되어버린다. 후반부 승필은 성진에게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아왔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혜경이 그토록 찾는 돈의 행방을 알려주는데, 그 때야 성진과 관객은 이 할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늦었지만 비로소이해의 물꼬를 트는 장면은 과거 임권택 감독의 <축제>, 그리고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 두 작품은 사뭇 다르지만, 서로 담을 쌓고 지냈던 세대가 ‘죽음’이란 계기를 통해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은 닮아 있다. 그리고 각각 동화책(<축제>)과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그 촉매제 역할을 한다.
<장손>은 이제 사라져가는 윗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한 시대를 책임졌던 세대가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 이 현상은 누군가에게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일일 수 있지만, 감독은 마지막 승필의 뒷모습을 보여주며 왠지 모를 욱신거리는 고통의 슬픔을 안긴다. 사라진 후에야 그 세대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승필이 전한 검은 지를 확인하는 성진은 그제서야 장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 애쓴 할아버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모른척했던 장손의 역할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장손은 가족 중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닌 가족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자라는 것을 말이다.극 중에서 보이지 않는 계절인 봄은 출산을 한 미화의 아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의 이름은 ‘봄’이다. 전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그 기점. 어떤 봄을 맞이할 것인가는 검은 봉지를 받은 성진, 그리고 또 다른 성진이들의 선택에 달렸다.
사진 제공: 인디스토리
평점: 4.0 / 5.0
한줄평: 우리하게 아픈 어느 3대 대가족의 초상!
-
- 영화 자산어보 후기 / 실학자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생활 / 한국최초 어류도감 / 화려한 명품조연들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자산어보”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이준익 감독, #흑백영화, #사극, #인생띵작
-
- 내 친한친구의 아침식사 - 양산형 대만 청춘 멜로영화
-
“가슴이 두근대는 느낌 알아?”
세상 종말이 와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귀요미 먹방 요정, 웨이신
좋아하는 친구에게 1년 동안 아침 조공을 하는
댕댕이 조공 소년, 요우췐
“나는 1년 동안 절친 앞으로 온 아침 조공을 먹었다”
절친에게 아침 조공을 바친 친구와 사랑에 빠질 확률은?
러블리 먹요정 + 댕댕이 조공 소년 = 첫사랑 먹방 로맨스♥
-
- 넷플릭스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 스페셜 티저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역대급 스케일의 인질 강도극이 공개된다. 교수는 과연 어떤 가면을 선택하게 될까?
-
- 쿠팡플레이 <안나> 티저 예고편
"근데.. 너 이름이 두개야?" 강렬한 연기 변신으로 돌아온 수지! 호기심 자극하는 [안나] 티저 예고편 공개 ✨ 6월 24일 저녁 8시, 쿠팡플레이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