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9 16:09:18
마음을 사로잡는 레드, 강렬한 색감의 영화 -9-
Color: RED
❣️[Cinelab Curation]❣️
이번 주에는 강렬함으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빨간색이 인상적인 영화를 들고 와 봤습니다.
영화에서 빨간색은 파워, 열정, 공포, 분노, 폭력 등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담은 은유적 표현의 하나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죠.
색감이 주는 강렬함 때문인지 포스터에서도 빨간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늘 큐레이션에 등장하는 <콘클라베>, <더 폴> 뿐만 아니라
<위플래쉬>, <퇴마록>, <에밀리아 페레즈> 등 현재 박스오피스에도 빨간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포스터들이 많네요..!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빨간색이 가득한 영화는 무엇이 있나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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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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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적인 세계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일
영화 <문라이트>를 두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만을 한다는 것은 작품을 겉도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문라이트>는 서정성 짙은 퀴어 영화로, 이 영화가 서정성 짙은 퀴어 영화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있습니다. 때문에, 굳이 저까지 이미 나와있는 수많은 좋은 평론들위에 비슷한 한마디를 거드는 것보다는 비록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훌륭한 작품은 답을 정해놓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며, <문라이트>는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이미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는 훌륭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회, 방임된 채로 자라는 빈민가의 아이들, 다름의 이유로 받는 차별의 시선과 폭력, 그리고 사랑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문라이트>를 이야기할 때 다룰 중요한 이야기들은 많지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이 영화의 화두는 ‘정체성’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정해주는 ‘나’, 내가 정의하는 진짜 ‘나’에 관한 정체성말입니다.
영화는 이 정체성에 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졌습니다. Nomen est omen, 이름은 곧 운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문라이트>는 주인공 샤이론의 성장과정을 세 시기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이 세시기에 샤이론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세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주인공 ‘샤이론’과 각각의 삶을 보자면, 각각의 샤이론과 그에게 붙여진 이름을 통해서 샤이론이 폭력적인 세상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ⅰ, Little
유년기의 샤이론은 가장 작은 존제, ‘Little’이란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덩치도 작고 키도 작은 샤이론은 또래 아이들에게 쫓겨 마약 소굴인 15번가로 도망쳐 온 후 어두운 폐가에 숨어듭니다. 캄캄하고 어두운 폐가로 친구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숨은 샤이론. 그리고 그런 폐가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돈 후안(마허샤마 알리)입니다. 이 시기 샤이론은 특히 말이 없습니다. 가장 작은 존재이자 약자인 샤이론이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침묵을 지키면서 세상을 관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Little’은 그의 또래들 사이에서 샤이론을 부르는 별명인데, 이 별명은 또래들보다 덩치가 작은 샤이론을 빗대어 비하하는 말입니다.
그 와중에 오직 한 사람만은 샤이론을 낮춰 부르지 않고 그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불러줍니다.
케빈
그는 샤이론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Little’이라고 부르지만, 그 목소리는 어떤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우정의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샤이론의 친구 케빈입니다. 케빈은 영화 <문라이트>에서 샤이론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인데, 이 시기 케빈이 샤이론에게 해준 “왜 당하고만 있어?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지.”라는 말은 샤이론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돈 후안.
돈 후안과의 만남은 첫 만남이후로도 계속됩니다. 유년기 시절 돈 후안과의 짧은 만남과 교류는 영화 <문라이트>를 관통하는 주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특히 해변가에서 둘이 나눈 대화는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탐구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유년기의 아주 짧은 시간동안 만난 돈 후안은 아버지가 없는 샤이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며,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세상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마.”
D : “한번은 어떤 할머니를 지나쳐 가고 있었어.”
D : “미친 듯이 들떠서 뛰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나를 잡고는 말했어.”
D : ‘달빛을 쫓아 뛰어다니는구나. 달빛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이지. 너도 파랗구나. 이제 널 그렇게 불러야겠다. 블루.’
C : “그럼 아저씨의 이름은 블루인가요?”
D : “아니...”
D : “언젠가는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마.”
ⅱ, Chiron
청소년기의 샤이론입니다. 샤이론은 이제 ‘리틀’이라는, 자신을 놀리는 말을 거부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인 ‘샤이론’으로 불려지길 원합니다. 샤이론은 성장했고, 이제 세상 모든 일에 침묵으로만 일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르고 약해보이는 몸은 여전합니다. 때문에 차별의 시선과 폭력앞에서 샤이론의 저항은 무력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이름, ‘샤이론’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샤이론. 그것은 샤이론의 이름이긴 해도 샤이론이 선택한 이름은 아닙니다. 때문에, 샤이론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성장의 과도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중반에 있기에 적합할 것입니다.
케빈
이 시기 만난 케빈은 샤이론과 깊은 관계로 진전됩니다. 우정처럼 보였던 케빈과 샤이론의 관계는 이 시기에 애정으로 변합니다. 샤이론에게 학교에서 관계를 맺었다며 가볍게 말하는 케빈의 눈빛은 가볍고 철없으며, 목소리와 성대모사는 경박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남성성을 과장하여 드러내어, 또래들에게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하지만, 샤이론을 대할때만큼은 케빈의 눈빛은 깊고 진지합니다.
그리고 다시 학교. 이 시기 샤이론을 괴롭히는 동급생, 테렐은 케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옵니다.
블랙.
학교의 화단 앞. 테렐은 궁지에 몰린 초식 동물을 공격하려는 맹수처럼 누군가를 응시하며 그 누군가를 중심으로 한바퀴를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테렐이 이빨을 들어내고 달려든 것은 샤이론이 아닌 케빈입니다.
“이봐 케빈. 저 새끼 갈겨. 패버려.”
“그래 저 호모새끼말이야.”
테렐은 겁먹은 케빈을 다그칩니다. 케빈의 앞에 서있는 것은 샤이론입니다. 케빈은 테렐과 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는 반면, 샤이론은 고개를 높이 들고 그들 앞에 당당하게,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샤이론은 케빈에게 맞을때마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지만 계속해서 자세를 고쳐서 똑바로 일어서서 자신을 향한 폭력과 차별의 시선에 마주합니다. 아마 이 순간에, 샤이론은 이제 자신이 겪은 아픔의 크기만큼 성장했을 것이며, 자신의 진짜 이름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블랙. 냉수에 얼굴을 담았다가 고개를 들어올린 샤이론의 모습은 말 그대로 블랙입니다. 상처에서는 선혈이 붉게 빛나고, 피부는 검정색이지만, 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투영되는 샤이론의 영혼이 가진 색은 더없이 맑고, 밝게 빛납니다. 그의 빛나는 눈빛에는 순수한 결연함과 용기가 녹아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자신의 운명을 찾은 것처럼, 그의 눈빛은 진중합니다.
ⅲ, Black
샤이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고, 해야 할 일을 하기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테렐을 향한 폭력은 단순한 복수의 감정도 있지만, 케빈을 위한 희생이자 용기이기도 합니다. 케빈은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보이는 세상과 시선에 주눅들어 자신을 감추는데 급급했던 반면, 샤이론은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했고, 케빈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냈습니다. 그래서 당시 경찰에게 연행된 샤이론과 케빈이 나눈 시선에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과 맞선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케빈의 시선에는 어떤 분함이, 샤이론의 시선에는 흐릿한 안정감과 평화가 언뜻 읽히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샤이론은 이젠 완벽한 성인이 되었고, 이 시기는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시작하는 한편의 꿈. 유년기 시절 ‘폴라’가 샤이론에게 했던 말, “쳐다보지 마!”라는 고함과 함께 잠에서 깨며 블랙의 삶이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꿈에서 깬 블랙은 세면대에 받아놓은 얼음물에 얼굴을 담았다가 꺼내는데, 이때 그의 피부는 달빛이 아닌 인공 조명의 빛을 받아서 푸르게 빛납니다. 이 두 개의 컷은 샤이론이 더이상 과거와 같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습다. 이 두 장면은 자신의 검은 피부를 인공 조명의 푸른 빛으로 물들이는 ‘부정’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는 특히 푸른 빛을 뒤집어 쓴 샤이론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푸른 빛은 그의 본래 색위에 덮어 씌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는 그가 가진 본래의 피부 색이 남아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겉모습을 근육질로 다부지게 만들어도 오랜만에 만난 옛 사랑과 엄마의 말 몇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그의 변하지 않는 여린 내면처럼, 지워질 수 없는 그의 검은 피부색 위에 블랙은 푸른색을 덧칠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이름.
흐릿하게 보이는 잔상. 푸른 바다, 푸른 달빛. 도대체 누가 푸른 달빛아래에서 흑인아이들도 모두가 푸른 빛을 낸다고 했던가요? 아이들은 푸른 세상에서 모두가 자신의 색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연스럽게도, 푸른색이 그보다 더 짙은 검정색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죠. 이 잔상은 샤이론이 점차로 세계속에서 자신의 색을 되찾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가 되찾은 색은 그의 이름이 됩니다. 그의 이름은 누군가가 지어준 것이지만, 동시에 그가 선택한 이름입니다. 바로 케빈이 샤이론을 부르곤 했던 별명, ‘블랙’입니다.
영화는 샤이론의 세 시기를 보여주며 그의 성장과정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시기, 샤이론을 칭하는 이름의 의미는 모두 다릅니다. ‘리틀’은 샤이론을 둘러싼 세계가 정해준 이름. ‘샤이론’은 태어나기전부터 부모가 정해주었으며, 샤이론 역시 옳다고 생각하는 이름. ‘블랙’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어준 이름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며 선택한 이름입니다.
영화 <문라이트>가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사랑’의 역할이 크다는 데에 있습니다. 리틀은 돈 후안과 테레사의 사랑으로 샤이론으로 성장했고, 샤이론은 케빈과 테레사의 사랑으로 성장했으며, 블랙은 폴라와 케빈의 사랑으로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정의하는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며, 그들의 사랑속에서 위로받고 한 뼘 더 성장해갈 것입니다.
푸른 빛의 상흔, 지워지지 않는 블랙
이 영화는 어린 리틀을 다시 호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푸른 달빛아래,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온통 푸른 세상속에서 홀로 서 있는 아이. 온통 푸른 세상이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여전히 자신의 색을 유지하고 꼿꼿이 서있습니다. 군데군데 푸르게 빛나는 아이의 피부는 아름답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푸른 빛이 아이가 가진 검은색의 피부위에 침투해있기에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아니, 그렇기에 아름다울지도 모르죠. 검은 피부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것은 세상이 애정어린 손길로 샤이론에게 칠해준 아름다운 반사광이 아닌, 세상이 폭력적으로 모두에게 칠해버린, 일종의 상흔입니다.
때문에, 달이 세상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칠해놓은 푸른 빛과 자신의 본연의 색을 함께 갖고 있는 샤이론의 모습을 담은 <문라이트>는 폭력적인 세계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지켜내는 인간상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온몸에 수많은 상처를 입고도 세상과 당당히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보다 서정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문라이트>의 이전과 이후로 한동안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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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행복이야말로
먹는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다. 뭐, 아무리 소식좌라고는 해도 좋아하는 음식은 있을 것 아닌가. 남극처럼 삶의 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가장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는 식욕이다. 이 이야기는 먹방을 빙자한, 한 철부지 남편의 와이프 이해하기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다. 하지만 맛있게들 먹는 모습은 덤이라고나 할까.
1. 모든 욕구가 차단된 곳, 그곳은 남극
영화를 보고 있자면, 누군 허겁지겁 먹고, 누군 천천히 먹고 각기 먹는 스타일들이 다 달라서 그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지점들이 재미있었다. 정말 각기 다른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구나 느끼게 되면서도 각자의 밥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는 지점도 은근 코믹했다. 온전히 배고픔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제 3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이리 재미있는 것이었나.
이전에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 별로라고 한 적은 있는데 이렇게 아무 욕구도 충족할 수 없는 이 남극이라는 곳에서는 먹는 게 유일한 낙일 수밖에 없으니 게걸스럽게 먹는 이들도 이해가 간다. 가족도 보고 싶고, 여자친구도 보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저 얼음만 바라보는 삶에서 우울증 안걸리려면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가족애가 빛난
이 영화의 감동 포인트는 아무래도 주인공과 딸의 원거리 대화 장면이었다. 딸은 아버지임을 알고 대화하고 아버지는 딸과 대화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정보가 불공평한 상황을 이용해 딸이 타인인척 접근해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가끔은 가족이라는 존재들은 서로가 옆에 없을 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증폭되고 서로에 대한 다정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옆에 있을 때 무뚝뚴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연구대원이 아닌 자신이 불려나온 것이 의아한 아버지도, 그저 아버지와 말하고 싶어 타인인척 귀여운 질문 던지는 딸도 너무 귀엽다.
3. 남에게 밥을 해주는 행복
주인공은 그전까지 와이프에게 반찬투정이나 하는 금쪽이 남편이었다. 하지만 타의이긴 했지만 남극에서 누군가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면서 은근히 기쁨을 느끼던 그는 남극에서 돌아오자 의외로 우울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딸이 생일상차려달라는 딸의 말에 묘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니 그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매력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랍스터를 튀겨먹는 장면이 가장 명장면이다. 은근히 웃기고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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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달, 작가, 밀수꾼, 첩보요원 조인성 그는 대체!
[극장]에서는 밀수꾼, [디즈니+] 에서는 첩보요원! 조인성 배우는 캐릭터의 폭이 다양하고 넓은 배우 인데요. 첩보원, 밀수꾼, 작가, 영화와 드라마 로맨스, 액션까지 못하는게 없는 보기만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조인성의 대표 필모그래피 같이 함께 살펴봐요!
클래식
같은 대학에 다니는 지혜와 수경은 연극반 선배 상민을 좋아한다. 하지만 호들갑스런 수경이 상민에게 보낼 편지의 대필을 부탁하고, 지혜는 수경의 이름으로 상민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고백한다. 지혜의 편지로 맺어진 수경과 상민이 가까워지면서 지혜는 괜한 죄의식에 상민을 멀리 하려 하지만, 우연하게도 자꾸만 마주치게 된다
비열한 거리
삼류조폭조직의 2인자 병두. 조직의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기회한번 잡지 못하는 그는,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고있다.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쓰러져가는 철거촌 집 한 채 뿐. 삶의 무게는 스물아홉 병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무빙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는 우여곡절 끝에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을 만나 핵심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 하게 된다 정권이 교체되는 중요한 시기, 새로운 판을 짜며 기회를 노리던 이들 앞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치는데…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첫사랑에 실패한 후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남자와 부모의 이혼과 오빠와의 결별, 갑자기 찾아온 시각 장애로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사는 여자가 만나 차갑고 외로웠던 그들의 삶에서 희망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
괜찮아 사랑이야
작은 외상에는 병적으로 집착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마음의 병은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사랑을 되짚어보는 이야기
모가디슈
내전으로 고립된 낯선 도시, 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모가디슈를 탈출하려 하는데
밀수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 군천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 그러던 어느 날,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거대한 밀수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무빙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액션 히어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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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야기를, 내가 짊어온 삶을, 들어준다면
보호자 대신 보호 시설 안팎에서 하루하루 살아내기 급급한 아이들의 불안정한 입지. 이곳, 벨기에 사람으로서 사업을 영위하는 어른은 겪을 일 없는 처지다. 아이러니하게도 거주할 권리를 증명받지 못한 '로키타'와 체류권은 있어도 한낱 꼬마에 불과한 '토리'는 여전히 벨기에 시민에 속하지 못하기에 이 어른들의 이해타산과 딱 맞는다. 마약 거래상으로 뒷돈을 챙기는 일은 의심받기 쉬울뿐더러 시민인 이상 허락되지 않는 일이기에.
푼돈에 급급한 아이들은 군말 없다. 하물며 자신들이 수고스럽게 받아온 돈 뭉탱이에서 50유로 한 장을 받는다 하더라도. 기대나 실망이 담길 틈 없는 눈빛. 그러나 공허하진 않다. 토리와 로키타에겐 서로가 있기에.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건 사람을 가장 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유약하게 만든다.
다 자라지 못한 어른들의 세상에 편입된 이미 다 커버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요 줄거리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어른의 삶은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정의할 말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타인을 간단히 가늠하는 것 아닐까. 생판 처음 보는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 가며 적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내며 인간 사회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으니까. 안타까운 건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엔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진위여부를 가리기에 급급하니 말이다. 이 말이 진짜인지, 거짓이 섞인 건 아닌지, 과장한 거라면 어느 정도가 진짜일지.
로키타가 거쳐온 인터뷰도 비슷한 양상일 테다. 어른들은 로키타가 살아온 보육원에 대해 질문하고, 토리와 만나게 된 경위를 묻는다. 하지만 로키타의 답변엔 관심이 없다. 그가 진짜를 말하고 있는지, 우리 어른이 듣기에 납득할 만한 타당한 사실인지를 확실히 가리고자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다. 취조 현장과 다를 바 없다. 잘못해서 불려 온 것도 아닌데.
마치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논리를 갖춘 구조로, 빈틈없이, 하나의 매끄러운 발표문처럼 말해야 하는 현실과 겹쳐진다. 일평생 더불어 살아온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소개하기도 어려운데, 그런 내가 겪은 한 사건의 특정 시점을 얼마나 명료하게 말할 수 있을까. 질문하는 이가 만약 질문받는 입장이 느낄 당혹스러움과 혼란을 느껴봤다면, 결코 꼬투리 잡듯 묻지 못했을 거다. 결코 상대의 처지에 놓이리라는 생각을 못했기에 뾰족하게 콕콕 찌를 수 있을 테지.
한편으로는 질문을 건네는 쪽의 최선이기도 하다. 비스름한 상황에서 엇비슷한 진술을 하는 수천수만 명을 상대로 어떻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진짜를 말하는 것인지 가늠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손쉽다. 증거의 적확함을 토대로 판결을 내리는 법이 그러하듯.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을 따라 모든 판단은 기출문제처럼 유형이 정해졌다. 그 형식에 능한 사람은 조금 더 유리한 판정을 얻어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순서가 뒤로 밀린다.
로키타는 후자에 속했다. 쉽게 당황하고, 말주변이 없고, 금세 패닉에 빠진다. 어찌 보면 그는 유약할 수밖에 없다. 온갖 궂은일을 제가 다 처리해 가며 동생인 토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동생과 함께 일하지만 직접 마약을 건네고 고객을 상대하는 건 로키타가 전담한다. 와중에 토리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하며.
다소 강박에 가까운 애씀. 이 책임감은 엄마의 불신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과 뒤섞인 걸지도 모르겠다. 그와 동생이 하루하루 모은 돈은 엄마와 다른 동생들이 있는 쪽으로 보낸다. 아니, 정확하게는 보내려고 했다. 브로커들이 낚아채지만 않았더라면. 로키타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하는 과정은 또다시 진술의 형태를 띤다. 피해 사실의 보고. 그리고 역시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일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느끼는 억울함과 분노, 슬픔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그가 증거품목이라고 내밀 수 있는 건 오로지 그의 머릿속, 그의 마음속에 있기에 무엇도 증명할 수 없다.
로키타는 자신이 겪은 세계로부터 토리를 보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증명해야 하고, 거짓을 말했다는 누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증명해야 하고, 그럼에도 반복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이 나날에서. 이미 자신은 세상의 진흙탕에 굴러 너무 더러워졌다.
하지만 로키타가 토리를 신경 쓰는 만큼 토리 또한 로키타를 아끼고 챙기려 든다. 보호받는 동시에 보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로키타보다 토리가 유리하다. 남자 어른은 여자 아이를 건들 생각만 하지, 남자아이에겐 새로운 일감을 주니까.
욕구와 요구만이 가득한 주변에서 그나마 잠시 반짝이는 빛이 그들에게도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빛에 기대지 않는다. 우리를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으니까. 도움은 측은지심에서 일어난 순간적인 반응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거나 낯선 느낌이 들면 내민 손을 금세 거둬들인다. 신기루에 이끌려 어느 하루를 버틸 생각보다는 서로에게 기대어 제 발로 이 땅을 디디고 서는 게 안정적이다.
살아가고자 하는 절박함과 간절함은 구린내가 나는가 보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모습이 그들과 동등한 사람이라기보단 길들이고 사육할 동물로 보이는 것인지. 몇 마디의 협박과 위협적인 소음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애석하게도 이 예상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기죽지 않는다. 자신이 한 노동의 대가는 비합리적일지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필요한 것을 정확히 언급한다. 음식점의 남는 빵, 손님들을 위해 불러준 공연의 값, 하다못해 깨끗한 침대보라도. 최후의 보루였는지 모른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사람임을 증명받기 위한.
이마저 통하지 않자, 둘은 그들이 함께 살아갈 새로운 방향을 찾아낸다. 머리가 지끈할 만큼 무모한 선택이다. 하지만 무어라 나무랄 수 있을까. 그 길은 막혔으니 다른 길로 가라고, 가리킬 대안이 없다. 최선의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지 않다. 때로는 최선이기에 최악이다.
서로를 부르는 음성과 깊은 포옹. 그리고 목적지가 있을 수 없는 달음박질.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노랫말이 자꾸 귀에 맴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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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을 사랑이라고 착각하지 않기를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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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더 큰 도시로 거처를 옮겨다녔다. 서울에는 고향을 떠나 온 수많은 '레이디 버드'들이 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난 이유는 아마도 소도시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이고,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고향에 갔을 때 느끼는 갑갑함 때문일 테다. 나는 직장을 다니지 않지만 아마 다시 귀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도시 사람들은 건너건너 다 아는 사이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야자를 째고 놀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우리 엄마한테 일러바쳤다는 걸 나는 몇 년 전에 알았다. 그러니까, 딴짓을 하지 못한다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살지 않으면 너무 튀어서 온 동네에 소문이 쫙 퍼진다는 거다.
아마 내가 고향에 있었으면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게 뻔하다.
"그집 딸은 대학 나왔으면서 취직도 안 하고 시집도 안 가고 어쩌고 저쩌고."
그렇기에 수많은 아이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에 몰린다. 그 돈이면 고향에 집을 살(이제는 아니지만) 만큼의 돈을 내고 콩만한 방에서 해로운 음식을 먹으며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떠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따금은 가정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택하는 여자 아이들도 있다. 내 가까운 친척도 그리하였다. 나는 같은 여자로서 그 아이의 삶이 너무 아깝고 아쉬웠는데, 그 생각 또한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인 닉의 아버지의 말처럼,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떠난다. 더 나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내 고향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니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할머니, 엄마, 이모, 고모, 숙모, 옆집 아주머니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 존재들은 외로움에 직면한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휘몰아치는 존재의 고독을 고작 이십대 초중반의 우리가 어찌 견뎌내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몇 가지 선택을 하게 되는데, 가장 쉽고 빠른 돌파구가 연애가 되겠으며 나와 몇몇 사람들처럼 술을 비롯한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한편으로는 연애도 중독이라 볼 수 있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애에 중독된 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옆에 누가 없으면 못살겠어서, 혼자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서, 못난 나를 바라보는 게 불편해서. 아주 쉽게 자존감을 채워주는 사람, 응당 나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같이 있어 주는 사람을 찾아 온 거리를 헤매는 것이다.
나는 그쪽보다는 감정과 생각을 마비시키는 편이 더 좋았으므로 술을 선택했겠지만 그것 역시 연애중독자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못난 나를 바라보고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브루클린>의 주인공 에일리스 역시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미국 브루클린으로 돈을 벌러 떠난 이십대 초반의 여성이다.
에일리스는 언니 로즈가 아는 신부님의 도움으로 미국에 간다. 아일랜드에서는 소매점에서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할 자리밖에 없다. 하지만 때는 1950년대, 기회의 땅 미국에는 일자리가 차고 넘친다.
에일리스를 태운 배는 몹시 흔들릴 예정이지만, 에일리스는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본 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모른 채로 혼자서 저녁식사를 한다. 결과적으로는 속에 든 걸 다 게워내고 배에 탄 그 누구보다 심하게 멀미를 한다. 그때, 에일리스와 같은 호실을 쓰는 여자는 에일리스를 돌봐주고, 미국에 입국할 때의 자세를 알려주고, 옷차림을 고쳐준다.
에일리스는 아일랜드 여자들이 모여 사는 하숙집에서 살면서 미국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에일리스는 낯가림이 무척 심한데, 별안간 친절하고 다정한 점원이 된다. 이탈리아 출신 남자 토니와 연애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자는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에일리스를 가족에게 소개시키고 싶어 하고, 가족을 소개하자 마자 결혼하고 싶어하고, 롱아일랜드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같이 살고 싶어 한다. 공교롭게도 롱아일랜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다.
에일리스는 백화점 점원보다는 언니 로즈처럼 회계를 공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낮에는 백화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에 다니며 경리 자격증을 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때, 언니 로즈가 갑자기 죽는다. 영화에서는 병을 앓고 있었다고 하지만, 글쎄, 언니가 스스로 선택했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한 집안의 장녀가 살아온 삶을 상상해보자. 열심히 돈 벌어서, 둘째 에일리스에게는 결혼하라고 여기저기 남자들과 연결하고 일부러 자리 만드는 동안 로즈의 애인에 대한 소식인 전혀 들리지 않는다. 자기가 미국에 가서 아메리칸드림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을 보내고, 자기는 어머니를 봉양하는 삶.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여러모로 아일랜드와 한국은 비슷한 궤를 가졌다. 섬나라의 식민지로 수탈을 당한 것도 그렇고, 독립 후 경제성장도 그렇고,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국민성도 비슷하다고 한다. 아직 아일랜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K-장녀로서 I-장녀를 이해하는 게 어려울 것도 없다.
아무튼, 언니가 죽고 에일리스는 잠시 아일랜드로 돌아오는데, 아일랜드로 간다고 하니 토니가 자기랑 결혼을 하고 가란다. 혼인신고까지 마치고 가라는데, 에일리스는 또 그렇게 하겠단다.
아일랜드에 갔더니 가장 친한 친구가 남자 하나를 붙여준다. 부잣집 아들에다 외모도 미국 토니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서 에일리스는 고민하는 눈치다. 게다가 언니의 후임으로 회계 일을 할 자리도 얻었다.
여기서, 예의 아르바이트하던 소매점 주인이 어디에서 건너건너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녀가 미국에서 이탈리아계 성을 가진 남자랑 혼인신고 했다는 걸 안다고 약간의 협박을 한다. 그렇다. 그것이 작은 마을의 특징이다. 건너건너 건너면 바다 건너 소식까지 다 아는 것이다.
잠시 고향의 안락함에 젖었던 에일리스는 당장 짐을 싸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에일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뉴욕으로 가는 배에는 갓 미국행 배를 타고 설레하는 어린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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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스가 토니와 사랑에 빠진 것이 과연 진짜 사랑이었을까. 에일리스는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토니를 만난 것도 겨우 몇 번에 불과하다. 혈혈단신으로 뉴욕에 와 보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해진 것. 토니 역시 에일리스를 정말 사랑한다면 아일랜드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려주면 되는 거였다. 굳이 혼인신고까지 해서 여자를 밧줄에 묶어둔 채로 보내준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전근대적이다.
그러나 에일리스가 아일랜드 남자와 아일랜드에 정착하게 되면 에일리스의 삶은 어머니의, 할머니의, 옆집 아줌마의 삶과 똑같아진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살아가는 것. 에일리스는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에일리스는 자신만의 삶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나의 친구들, 친분은 없지만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청년들이 자기만의 삶을 위해 집을 떠났다. 안락하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고향을 두고 머나먼 타지로 올라와 서러운 삶을 견딘다. 우리의 서러움은 반드시 외로움을 동반한다. 분명 사랑은 사람을 구원하지만, 사랑으로 구원받으려고 하지 말자. 정확히는 사랑도 아니면서 사랑인 척하는 것들을 경계하자.
끝내 에일리스가 토니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뉴욕을 활보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영화 너머에 시골에서 뉴욕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젊은이가 꿈을 이루면서 멋지게 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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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 장르를 이용한 사회 고발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 영화 속에서는 그때 당시 독일에서 인종이 다른 소수자를 배척하고 나이가 많은 여성을 소외 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모습들이 사실 몇 십년이 지난 현재에도 지속적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이 영화 속 모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하고도 연결되어 있었다. 기존의 멜로 영화와 다르다고 느낀 점이 멜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나이가 많은 남성 – 어린 여성의 관계가 주류를 차지 했다면, 이 영화는 그 반대였다. 전자의 관계 였다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비난 하지 않고 관객들의 반응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정상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성별을 바꿈으로써 기존 이성애 영화의 모순점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또한 멜로 영화는 둘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 였다면 이 영화는 둘의 사랑을 통해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를 드러냄으로써 독일 사회의 내부를 고발한 점도 기존의 멜로 장르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말 또한 새드 엔딩으로 끝나 독일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사는 삶은 결국 비극 밖에 없다는 것을 뜻했다. 새드 엔딩이었기 때문에 더 여운이 남았던 작품이다.
좋았던 장면은 문을 활용 해서 주인공들의 소외감을 드러낸 부분이었다.주인공들의 대사가 끝난 후 다음 장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데, 홀로 남겨진 모습을 끝까지 찍는다. 이런 장면을 버리지 않고 사용 함으로써 주인공들의 외로움이 더 극대화 되는 효과가 생기고 동정심이 생겨 주인공들에게 더 이입 할 수 있었다.
에미가 다른 여성들에게 소외 당할 때 계단에 앉아있는 프레임이 앞서 말했던 장면들처럼 소외감을 극대화 시킨다.. 하지만 결말부 쯤에 다른 인종의 여성이 등장하자 에미는 주류 여성들의 모임에 합류하고 다른 여성을 소외 시키게 된다. 이때 두 장면이 등장인물만 바뀌고 구도가 똑같다. 에미도 소외 받는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다른 백인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독일인인 에미와 외국인인 알리가 행복한 일이 지속 될 만하면 서로의 균열이 생긴다. 이런한 장면들을 통해 백인인 에미와 외국인인 알리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일의 현실을 둘의 로맨스 장르를 이용한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를 통해 이주 노동자들과 중년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현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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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괴물 복싱 챔피언과 견자단의 대결 시간 순삭 무술 액션의 끝판왕 엽문2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엽문2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의 사용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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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엘라 영화 후기 / 엠마 스톤이 아니면 누가?! / 미친 연기 / 디즈니애니의 빌런 탄생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크루엘라” 후기입니다.
캐스팅 소개 후 엔드크레딧 전에 쿠키영상이 있습니다!!#디즈니, #범죄드라마, #코미디, #엠마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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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55> 15초 예고편
인류를 위협하는 사상 초유의 위기 발생! 글로벌 범죄 조직에 의해 전 세계 국가 시스템을 초토화 시킬 일급 기밀 무기를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CIA 요원 '메이스'는 전 세계 최정예 블랙 에이전트를 모아 TEAM'355'를 결성한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원팀이 된 TEAM'355'는 역대급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비공식 합동 작전에 돌입하는데.. 월드클래스 블랙 에이전트 TEAM '355' 드디어 그들이 움직인다! 모두가 기다린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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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아케인> 공개 발표 예고편
[2021년 가을, 넷플릭스 공개]
《리그 오브 레전드》 제작진이 선보이는 신작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이 곧 찾아온다.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 필트오버, 억압적이고 끔찍한 지하 세계 자운.
두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두 명의 리그 챔피언이 전설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간다.
그리고 불가사의한 힘이 그들을 어떻게 갈라놓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