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08-23 15:23:16
다시 부활한 코스믹 호러
- <에이리언 로물루스>(2024)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부모의 DNA를 이어받아 작은 존재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길을 걷게 된다. 태어난 순간부터 먹고, 자라며, 배우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된다. 학자들은 이것을 종족 유지라는 학문적 개념으로 설명하지만, 사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살아가는 본능에 의해 우리는 존재하며, 계속해서 그 본능을 이어갈 뿐이다.
이러한 생명체의 본능적인 삶은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더욱 극적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SF 호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이라는 세 가지 다른 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본능을 지닌 존재는 바로 에이리언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며, 다른 이들을 해치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 점에서 그들의 삶은 극도로 본능적이며,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이 그저 생존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10대 인간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식민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환경은 무척 열악하다. 부모들은 일하다 죽거나 병에 걸리며, 아이들은 희망 없는 삶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 중심에는 레인(케일리 스패니)이 있다. 레인은 부모를 잃고 나서, 이 우울한 행성에서 벗어나 태양이 떠오르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기를 꿈꾼다. 이 여정에서 레인과 인조인간 동생 앤디(데이비드 존슨),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버려진 회사의 함선을 타고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함선에 숨어있던 에이리언들이 그들의 여정에 큰 위협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화한다.
[첫 번째 감정] 인간 레인의 희망

레인은 직접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걸 보고 싶어한다. 종일 비가 내리는 식민행성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장면이다. 부모의 죽음이후 열심히 일하는 시간을 채워 다른 행성 이주를 꿈꿨지만, 정부에서 그것조차 허가하지 않는다. 레인의 희망은 태양이다. 태양을 볼 수 있는 어딘가로 가는 것이 그에게 남아있는 작은 희망의 조각이다. 레인은 자신이 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야하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왜 살아가야하는가.
그 의문이 레인을 움직이게 만든다. 레인 뿐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도 그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버려진 함선에 가려고 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난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방법은 조금 위험한 일이라도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레인 역시 고민하지만 그 일을 해보려고 한다. 태양을 꿈꾸는 그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레인에겐 동생이 있다. 기능 오류로 버려져있었던 인조인간 앤디다. 레인에겐 정말 동생같이 챙겨줘야하는 존재이고, 레인이 힘들어보이면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며 레인에게 위로를 준다. 인조인간 앤디 역시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겐 명확한 목표가 있다. 바로 레인을 위한 선택과 행동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감정] 인조인간 앤디의 미안함

앤디는 스스로를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함을 자주 느낀다. 그의 몸이 고장나고, 움직이지 못할 때마다 레인이 그를 리부트해 주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는 앤디가 자신의 한계에 대해 느끼는 미안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에서 앤디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더 강력한 인조인간이 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은 점차 사라진다. 앤디는 점차 기계적인 존재로 변해가지만, 그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레인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그 목적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다.
앤디의 이러한 존재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등장했던 인조인간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의 철학적인 고민과도 닮아 있다. 데이빗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인간과 인조인간의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던 존재다. 앤디 역시 인간적인 감정과 기계적인 존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탐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미안함과 혼란은 단지 기계적 오류를 넘어서, 그가 가지는 존재의 이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앤디가 다시 원래의 고장난 앤디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건 거기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마치 가족처럼 레인을 생각하고 챙기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존재가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난 그 자체가 바로 가족을 위해서라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비록 인조인간이지만, 이 영화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다.
[세 번째 감정] 에이리언의 본능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한 본능을 가진 존재는 에이리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단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체를 공격하고,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싸운다. 에이리언들은 자신들이 왜 태어났는지,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단순하다. 살아남고, 더 많은 생명을 빼앗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 그들은 극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지만, 그것은 그들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이 에이리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폭력성에 경악할 수 있지만, 사실 그들 역시 생명체로서 자신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싸우는 존재다. 이 점에서 에이리언들의 존재는 인간과도 일맥상통한다. 인간 역시 생존을 위해 싸우고,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이러한 본능적인 생존에 대해 인간과 에이리언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가 그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에이리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지만, 그들이 가진 본능은 그 자체로 생존의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 인간은 그 존재를 넘어 더 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하며, 때로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결국에는 에이리언의 본능과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화하고자 하는 욕망, 더 강력한 존재가 되려는 욕구는 결국 더 큰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시도에 불과할 수 있다.
성공적으로 돌아온 코스믹 호러
영화를 연출한 페데 알바레즈는 <맨 인더 다크>와 같은 작품을 통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하는 스릴러와 호러 장르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 감독이다.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도 그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강렬한 비주얼로 에이리언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알바레즈는 공포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며, 단순한 시각적 충격을 넘어 심리적인 공포를 강조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공포 영화에서 벗어나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깊이를 담고 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알바레즈가 기존의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 설정들을 재구성하면서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에이리언의 원초적인 공포를 유지하면서도, 우주적 공포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성공적으로 표현해냈다. 기존 시리즈의 코스믹 호러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관객에게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전달했다.
케일리 스패니가 연기한 레인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연기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이 그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도록 만든다. 인조인간 앤디를 연기한 데이비드 존슨 역시 기계적인 존재와 인간적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며, 그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이들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단순한 생존 영화가 아니다. 인간과 인조인간, 그리고 에이리언의 대립을 통해 생존의 본질과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인간이 결코 에이리언의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극악의 존재로부터 오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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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마더 테레사가 아니라 한낱 인간일 뿐
서른을 앞둔 나이에 괜찮은 직장, 번듯한 남자친구 모든 걸 갖춘 임약군. 하지만 임약군은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친구들의 오지랖, 뜨뜻미지근한 남자친구와의 관계, 클라이언트들의 빗발치는 과도한 요구를 들어줘가면서도 정작 본인의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못하고 그저 쌓고만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은 정말 상큼하게 그녀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대판 싸우고, 집도 잃고, 한 허름한 방을 소개받고, 잠시 입주하게 되는데, 이 곳 허름하고, 낡았는데, 너무 잘 꾸며놓았다. 임약군은 이 곳에서 백조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하느라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그녀 인생의 2막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1. 모든 것을 견디고, 참아내는 사람들의 문제
세상에는 임약군이 겪었던 일들 중에서 하나라도 겪었던 사람들을 꽤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자친구의 바람, 상사 혹은 고객들의 갑질, 아픈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짐처럼 느껴지는 상황, 눈치없이 자기말만 해대는 친구들. 이런 경우들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 탓을 하고 살아도 되는데, 뭐든지 본인이 해결하려고만 한다.
나는 항상 내 멘탈이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나는 어딘가 돌파구를 만들고 항상 심각한 수준으로 미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작년에 논문 주제가 잡히지 않아서 아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논문 주제가 제 때, 잡히질 않고 있는데, 학기 내내 과제는 제 때 해내야 하고, 중간에 시험도 준비해야 했으며, 인간 관게도 대학원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미 졸업한 선배가 갑자기 MT라는 명목 아래 집합시켜서 술도 많이 먹었어야 했으며, 나이대가 더 높으신 어른들은 매번 볼 떄마다 졸업은 언제 하냐며 본인들에겐 안부지만 나에겐 부담인 말들을 무심하게 날리시면 더 소소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밖을 잘 못나가니, 생활 패턴도 꼬이고, 하는 일도 꼬이고, 인간 관계도 정리가 안된듯한 느낌이 한 번에 몰아치니,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심각한 수준까지 미치진 않았던 것이, 내가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게 됨을 깨닫게 되면, 나는 오히려 정신이 굉장히 맑아진다. 그리고 하나하나 정리를 한다. 그 때, 내가 정리했던 것은 불필요하고, 부담만 주는 인간 관계였다. 그리고 산책을 많이 하고, 오히려 과도한 잡생각은 줄여가면서 내 페이스를 찾고, 아무 생각 하지 않다가 생각을 해야지 했을 때, 그 생각이 논문에 관한 것이도록 패턴을 바꾸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가족 여행도 따라갔더니 리프레쉬되면서 다시 나만의 페이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임약군은 견딜 때까지 견뎌보다가 결국 한 번에 멘탈붕괴가 온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정리하지 못했다. 남자 친구가 더 이상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지만 당장 없으면 외로워 질 것이 분명하니, 바람피우는 것 같아도 놓아주질 못하고, 항상 일에 쫓기는데, 가족들이 전화가 와서 헛소리하면 짜증만 나고, 그 짜증은 고스란히 남자친구에게 가고. 그 관계는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진 관계라고밖에 정의내릴 수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임약군에게 답답했던 점이 이 부분이었다. 쳐내야 할 관계는 쳐내고, 그 중에서 우선 순위가 높은 관계만을 살려놓아야 하는데, 임약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러 관계 속의 과부하로부터 몸이 낑겨있는 상태같아 보였다는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임약군처럼 과부하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멘탈이 더 나가기 전에 나는 전혀 힘이 되지 않고, 싸움만 하게 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아버지를 돌보던지, 일에 더 매진하던지 하는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즉,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을 했을 것 같다.
2. 나와 상극인 사람에게서 얻는 위로라니, 이런 아이러니
사람은 사람에게서 위로받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임약군에게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황천락의 일기를 통해서 일시적으로 연결된 적이 있었던 황천락의 삶을 보면서 치유받은 것으로 보인다. 임약군보다 연봉도 낮고, 남자친구도 없어 우울할 것 같지만 임약군보다 더 웃으며 살고 있다.
임약군과 황천락의 차이는 외적 요소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임약군은 자신이 노력한 것에 반응이 없거나 반응이 예상과는 달리 흘러갔기 때문에 멘붕이 왔던 것이다. 자신의 행한 노력에 대해 결과물로서 반응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 혹은 기대 아래 살아가는데, 삶이란 언제나 노력에 비례한 결과를 주진 않기 때문에 결과에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천락은 대사에도 나오듯이 뭔갈 기대하고 산 적이 없었다. 그러니 하루하루 삶이 무의미해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야망은 없었기 때문에 인생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을 합쳐놓으면, 정말 완벽한 인격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둘은 정말 상극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임약군은 상극이었던 황천락이 좋아했던 것들로 가득찬 집에서 1차 위로를 얻고, 그녀의 얽매이지 않는 삶의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저 그 사람의 일기를 봤던 것 뿐인데도 임약군은 그동안 회피해왔던 자신의 문제들을 직시하고, 제대로 2막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게서 위로받는다고들 하나보다. 하지만 그 위로하는 사람이 꼭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힘들 때, 먼저 뭐부터 쳐내야할 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나와 상극인 인간에게서도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로 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내가 요새 하는 생각과 일치하는 영화를 만났을 때, 그럴 때, 강하게 리뷰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주관의 문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대한 총평을 하자면, 가끔 이렇게 좋은 중국 영화를 찾을 때, 참 기분이 좋다. 일본 영화보다도 작품성이 있는 중국 영화를 그렇게 찾기는 힘들다고 느껴온 것이, 우리 나라에 개봉하는 중국 영화가 대체로 로맨스인데, 오글거리는 로맨스가 많다는 인상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번에 리뷰 올렸던 '소년 시절의 너'처럼 정말 좋은 영화 하나 소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조금은 클리셰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면 잔잔한 여운이 남기 때문에 별점으로는 5점 만점에 3점 이상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위 영화는 왓챠를 통해 시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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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싫어서 | 모험은 위험할수록 좋으니까
계나는 한국을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 더는 못 살 것 같아서.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의 졸업장, 안정적인 직장, 오래 사귄 금수저 남자친구, 그와의 결혼, 조금만 버티면 다가올지 모르는 약간 더 나은 미래. 이런 것들은 계나에게 행복이 되어주지 못한다. 계나는 불확실한 내일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다.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인 이곳에서 계속 살다간 ‘자살하거나 암 걸려 죽거나 둘 중 하나‘라는 비관적 결론에 이른 계나는 떠난다. 영하의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나라로. 지구 반대편의 뉴질랜드로.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의 삶은 순탄치 않다. 행인에게 영어 실력을 지적당하고, 인종차별을 일삼는 직장 동료도 있다. 한순간의 치기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한다. 영화는 외부인으로서의 계나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도망친 곳이 낙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계나는 여러 인물들의 죽음에 함께 있다. 이번이 마지막 겨울이기를 바랐던 고시생 친구 경윤의 죽음, 돈 대신 행복을 모으라던 희망 전도사의 죽음, 겉으로는 완전해 보였던 하준이 가족의 죽음까지. 계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도망쳐도 나름의 추위와 슬픔은 존재한다는 것을.
계나의 행복은 소박하다. ‘춥고 배고프지만 않으면’ 행복한 계나에게 한국에서의 매일은 시리고 굶주리다. 겨울이 아닐 때에도 발걸음은 종종거리고 어깨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모든 것에 계급이 존재하고, 자신의 위치에 집착하고, 타인의 인정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한국에서 계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자꾸만 매년 더 추워지는 겨울이다. 뉴질랜드가 계나의 낙원이 아닐지라도, 추울수록 가난이 드러나는 얇은 코트를 걸치고 한없이 초라해지지 않아도 되기에 계나는 그곳에서 자유롭다.
이 영화는 번잡하게 시점을 넘나들고, 감정이 넘치고, 결론이 모호한 불친절한 영화이다. 엔딩에서 계나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한 문장을 추출해 보자면 포기는 결코 뒷걸음질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공기 좋고 햇빛 잘 드는 것’이 행복이라던 경윤은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지 못해 시들었으나, 한 학기 남은 졸업을 포기하고 다른 꿈을 찾은 재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온 계나는 뉴질랜드에서의 학위 또한 내던진 채 또다른 따뜻한 나라로 떠난다.
사실 행복은 과대평가된 개념일지도 모른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사소하고 주관적이며 모두가 원하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지나온 길을 포기하지 못해 잔혹한 현실에 기대어 행복을 향유하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영화는 새로운 마음을 먹었다면 포기는 뒷걸음질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영화 속 재인의 삶이 ‘희망편‘이라고 한다면, 계나의 삶은 지독하게도 ’현실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뉴질랜드에 정착해서 살게 된 재인과는 달리, 계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시행착오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또다시 한국을 떠나는 계나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다짐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는 춥지 않겠다고, 더 따뜻한 곳을 찾고야 말겠다고. 이 시험에 붙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겠지? 라고 묻던 경윤의 질문에 새로이 가방을 싼 계나는 이번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어때. 그걸 찾느라 좀 헤매면 어때. 그게 한국이 아니면 어때.
영화는 명확한 끝맺음을 주기보다는 그저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자꾸만 한국을 떠나려는 계나에게 어디로 가나 힘든 것은 똑같다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옳다며 참견하고 싶어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계나가 한국을 떠나 행복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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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새콤달콤 영화 결말 등장인물 반전 로맨스 영화| 장기용 채수빈 주연
새콤달콤 좋아하시나요?!
그럼, 영화 새콤달콤을 좋아하실 겁니다!
때론 달콤하게, 때론 시큼하게 다가오는
새콤달콤처럼 사랑의 맛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 넷플릭스 영화 새콤달콤
장기용과 채수빈의 흐뭇한 커플 이야기와
더불어 반전미가 가득한 영화 새콤달콤!
그럼, 넷플릭스 새콤달콤 영화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로맨틱 코미디
감독 : 이계벽
각본 : 성다솜
출연진 : 장기용, 채수빈, 정수정
개봉일 : 2021년 06월 04일
평점 : 8.11
스트리밍 : NETFLIX
기획 의도
매번 해도 어려운 연애,
하지만 그 새콤달콤한 연애의 맛에
제대로 빠져버린 달콤한 연인 장혁과 다은,
그리고 새콤한 매력의 보영까지
세 남녀가 그리는 찐 현실 로맨스
등장인물
이장혁 | 장기용
대기업으로 비정규직으로 파견을 나가며
정직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다은의 남자친구
다은 | 채수빈
병원에서 3교대를 근무하는 간호사,
장혁의 여자친구
보영 | 정수정
같은 대기업으로 파견 나간 비정규직.
여담
영화 새콤달콤의 경우
2020년 개봉을 앞두고 있었으나,
연기가 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개봉되었다.
넷플릭스 영화의 경우
실망하는 영화가 대부분이지만,
새콤달콤의 경우 평균 8점대라는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이누이 구리미 소설
<이니시에이션 러브>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새콤달콤 결말
공항에서 다은(채수빈)을 발견한
장혁(장기용)은 다은을 향해 뛰어가지만,
그때 한 남자와 부딪혀 쓰러지게 된다.
부딪힌 남자는 이장혁, 그동안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서운해진 헌 운동화 장혁과는 헤어지고
시들해진 사이에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준
새 운동화 이장혁과 제주도를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장혁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두 남자배우가 '장혁'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뭐지?스러우면서 끝까지 봤더니
2명의 장혁이 있을 줄이야...
넷플릭스 킬링타임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 새콤달콤!
여러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는 새콤달콤처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새콤달콤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넷플릭스 영화가 8점? 그럼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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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리에 박히는 강렬한 영화
지난 5월 12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5월 25일 개봉 예정인 <더 노비스> 초청 시사회에 참석했다.
처음 가보는 광화문 씨네큐브라 굉장히 기대했는데 영화관 시설 자체는 좌석 사이에 거리도 넓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만 영화관 내 취식이 안돼 커피를 마시며 영화를 못 본점은 다소 아쉬웠다..ㅠㅠ
아무래도 관리 인원이 적다보니 극장 내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취지가 아닐까 싶다.
본격적으로 <더 노비스> 관람 후기 및 개인적인 리뷰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없이 적으려고 하는데, 혹시 영화 정보에 민감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25일 개봉 이후 다시 이 글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다.
? 영화 <The Novice>
1. 강렬한 심리 스릴러물
▶ 영화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주인공의 '1등'을 향한 광기어린 집착에 관한 심리 스릴러물]이다. 살인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고 사건도 형사도 없지만 <더 노비스>는 스스로의 영혼을 살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심리적 스릴러물이다.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을 좀 먹는 열등감과 오직 1등을 향한 집착으로 인해 망가지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내내 범죄 수사물보다 더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 초반에는 주인공의 심리와 모습으로 하여금 관객에게 '와 정말 힘들겠다.' '엄청 훈련이 힘들겠네' 등의 공감을 사게하는 듯 하지만, 종장에는 관객을 철저한 관찰자로 만든다. 관객은 불안감에 좀먹힌 주인공의 모습을 러닝타임 내내 보면서 처음에는 안쓰럽다가도 종장에는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 '끔찍하다'와 같은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주인공이 불안해하는 이유, 광기어린 집착에 대한 타당성 등을 정확하게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관객은 그저 1등을 향한 광기어린 집착에 대한 묘한 불쾌감과 그런 모습에 끔찍함을 느끼게 된다. 굉장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매력적인 플롯 구성이다.
▶ 이런 주인공의 집착과 불안감을 잘 연출한 영화를 생각하면 역시 2019년에 개봉한 영화 <블랙 스완>이 떠오른다. 애시당초 이번 영화 <더 노비스>의 감독 로던 헤더웨이가 이번 작품을 두고 “조정을 소재로 한, <블랙 스완>의 느낌이 드리워진 <위플래쉬>” 라고 말을 했을 만큼 <블랙 스완>의 분위기와 정말 흡사하다. <블랙 스완>역시 발레를 하는 주인공이 배역을 따내기 위해 질투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카메라 무빙과 혼란스러운 컷 전환을 통해 잘 연출한 작품이다.
2. <위플래쉬>가 떠오르는 색다른 음악 연출
▶ 영화 <더 노비스>는 음악적 연출에 있어 상당히 진심이다. 영화 내내 대사 없이 음악과 카메라 연출로 주인공의 긴장감, 불암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엄청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조정'이라는 물 위에서 하는 스포츠를 소재로 삼고 있는 이 영화는 물 위에서의 <위플래쉬>라고 생각이 들만큼 음악과 연출적인 면에서 정말 많은 신경을 썼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 사용이 다소 클리셰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테지만, 앞서도 설명했 듯이 범인이 나오지도 귀신과 같은 무서운 존재가 나오지도 않는데 오직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 적절한 음악 사용을 통해 컷을 전환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 반가워요 '이사벨 펄먼' 배우님 !!
▶ 마지막으로 이사벨 펄먼 배우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09년에 개봉한<오펀 : 천사의 비밀>을 제외하고는 배우님이 나오는 다른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오펀 : 천사의 비밀>에서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인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으신 배우이다. 이번 <더 노비스>에서는 한 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당시에는 밖으로 배출하는 광기어린 연기를 보여주셨다면 지금은 자기 자신을 좀먹는 소름끼치는 내적인 연기를 보여주신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더욱 다양한 작품에서 얼굴을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이번 영화에서 너무나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다. 사실상 <더 노비스>는 이사벨 펄먼 배우님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 한줄 평
"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는 강렬한 스포츠 심리 스릴러물, 그런데 거기에 <위플래쉬>같은 음악적 긴장감을 더한. "
※ 아래 글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요! 영화 보고 나서, 다시 돌아와서 의견을 적어주세요! ※
? 개인적으로 궁금해요!
▶ 곧 영화를 보시게 된다면 이번 영화를 감상하시고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사실 이 영화의 결말이 일정 부분 열린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과연 다른 분들은 어떤 결말로 이 영화를 이해하셨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 부, 주인공은 비와 천둥이 치는 악천우 속에서도 홀로 경주를 마치고는, 기록을 적는 게시판에 가서 기록을 적고 기록과 함께 자신의 이름도 지워버린다. 이후 숙소를 나오며 영화는 엔딩 타이틀이 올라간다. 이 부분에서 주인공의 기록을 관객은 알 수 없다는 점과 주인공이 이름을 지우고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는 열린 결말로 끝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집착을 벗어버렸다기 보다는 결국 1등이 되지 못해 포기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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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 표류기> - ‘고립된 세상에서 희망 찾기’
김씨 표류기 (Castaway On The Moon, 2009)
개봉일 : 2009.05.14
감독 : 이해준
출연 : 정재영, 정려원, 박영서, 구교환
‘고립된 세상에서 희망 찾기’
세상을 살아가는 건 만만치 않다. 어른은 사회에서 어른 1인분의 양을 해내야 한다. 눈에 띄지 않는 격식 있거나 평범한 옷을 차려입고, 순식간에 불어나는 여러 빚들을 모르는체하며 바쁜 발걸음의 사람들 사이에 섞일 것. 이게 바로 어른의 일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인생은 외롭고, 벅차고, 두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왜 이리 작고 하찮은 건지, 아무리 열심히 팔을 휘저어봐도 하루하루 더 깊은 물속으로 잠길 뿐이다. 차라리 고립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얼마 남지 않은 용기마저 쥐어짜기 힘들 때가 있다.
<김씨 표류기>는 이런 어른의 삶을 살다가 지친 나머지 끝내 자살을 선택한 주인공이 운수 좋게도 살아남아 도심 속 무인도(밤섬)에 고립되어 표류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포스터와 분위기가 다른 영화’, ‘포스터 때문에(?) 관심을 받지 못한 영화.’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지구를 지켜라>와 함께 항상 언급되는, 한국판 <캐스트 어웨이>라는 이 영화. 이러한 소문을 듣기 전인 학생 시절, 포스터 때문에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내용과 분위기가 퍽 달라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모가디슈>를 보고 구교환 배우님에게 더 강하게 스며드는 바람에.. 그의 주연작 외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던 필모그래피를 찾던 중 딱! 운명적으로 <김씨 표류기>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언젠가 다시 한번 봐야지 싶었던 영화인데, 거기에 그의 뽀짝한 시절을 아주 잠깐이나마 볼 수 있는 영화라니. 오늘은 이거다 싶었다.
어릴 땐 몰랐는데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현재에 만족한다고 해서 그것이 탄탄하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김씨 표류기>의 주인공 김씨들이 마주한 현실도 딱 그렇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 김씨는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부도나고, 당장 살아가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희망과 돈을 끌어썼지만 남는 건 곱절로 불어난 빚과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뭐 했냐”는 사회의 질책뿐이다. 김씨는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한강으로 뛰어드는데 자살시도마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화려한 도시 서울의 한가운데, 시간이 아주 느긋하게 흐르고 있는 유일한 대자연이자 또 다른 세계의 품에 안긴 김씨는 ‘어차피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죽는 것은 미뤄두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다. 단, 원래 살던 세계에서가 아닌 서울의 룰을 벗어난 무인도라는, 그를 쫓는 것들이 없는 세계에서 말이다.
또 다른 주인공 여자 김씨는 쉼 없이 흘러가는 도시 속에서 홀로 멈춘 시간을 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닌 지나간 오늘을 착실히 삭제해가는 인물이다. 쓰레기가 가득한 어두운 방안, 그것도 모자라 그 방 안에서 가장 비좁은 옷장 안에서 어떻게든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뽁뽁이를 가득 채워 넣고 겨우겨우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자 김씨. 그는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 고립된 세상을 만들게 된다. 인터넷 너머로만 소통을 이어가며 형체 없는 삶을 계획해가던 그녀는 어느 날 발견하게 된 남자 김씨의 흔적을 보고 조금씩 커튼을 열어간다. 무인도에서,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보이지 않는 타인의 온기와 날카로운 외로움을 느끼며 또 새로운 하루를 표류해가는 김씨 둘의 이야기가 가끔은 발랄하게, 가끔은 잔잔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김씨 표류기 시놉시스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한강의 밤섬에 불시착한 남자. 죽는 것도 쉽지 않자 일단 섬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모래사장에 쓴 HELP가 HELLO로 바뀌고 무인도 야생의 삶도 살아볼 만하다고 느낄 무렵. 익명의 쪽지가 담긴 와인병을 발견하고 그의 삶은 알 수 없는 희망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자신의 좁고 어두운 방이 온 지구이자 세상인 여자. 홈피 관리, 하루 만보 달리기… 그녀만의 생활리듬도 있다. 유일한 취미인 달 사진 찍기에 열중하던 어느 날. 저 멀리 한강의 섬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게 리플을 달아주기로 하는 그녀. 3년 만에 자신의 방을 벗어나 무서운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7천만 원이 2억으로 늘어나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는 대부업 앞에서 삶의 희망을 잃은 남자 김씨(이하 김승근)는 죽기로 결심하고 한강으로 향한다. 승근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엔 ‘희망’이 없다.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쳐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 무인도에 떨어졌다며 구조 전화를 걸어도 119 구급 대원과 수정이는 매정하게 전화를 끊고, 쓸모없는 상담전화는 그의 마지막 생명줄인 휴대폰 배터리를 끝까지 털어먹는다. 다급해 죽겠는데 내 말은 듣지도 않는 상담사의 목소리와 전기도 없는데 자비 없이 밥을 달라며 졸라대는 휴대폰 음성이 야속하기만 하다.
승근은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원래 살던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된 이 공간에서 다시 살아남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는 야속한 도시를 향해 “진짜로 안 들리냐!!”며 소리치지만 도시는 여전히 승근에게 관심이 없다. 승근은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한다. 그는 혼자였다. 여자 김씨(이하 김정연)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두운 밤, 섬에서 소리치고 있는 승근을 바라보고 있는 단 한 사람, 정연. 그 또한 사회에서 고립되어 자기 방안에만 갇혀있는 인물이다. 왕따에 의한 트라우마로 세상에 나설 용기를 잃은 그는 미니홈피를 만들어 나만의 가짜 세상을 만든다. 미니홈피 안에 있는 건 당연하게도 모두 가짜. 용기도 희망도 없는 어두운 방안이지만 정연은 아직도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좁은 옷장 안으로 들어가 뽁뽁이를 잔뜩 휘감고 잠에든다. 나대신 충격을 흡수해 줄, 나를 감싸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걸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두터운 외로움과 두려움은 쉽게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적을 바라야 할지도 모릅니다.”
승근은 버려진 오리 배를 줍고 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며 섬 생활을 나름대로 잘 버텨나간다. 정연은 승근을 보며 동질감과 흥미를 느낀다. 정연은 승근을 외계인 같다고 말한다. 정말 단어의 뜻대로 ‘외계인’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모두가 바쁜 도시에서 특이하게도 혼자 멈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외계인’에는 정연 본인도 포함된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두 사람은 이름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서로에게 유일한 희망이 된다. 희망 따윈 바라지 않았던 승근은 짜파게티 분말 스프와 봉지에 있는 희망이란 단어를 보며 다시 희망과 미래(짜파게티를 먹을..)를 꿈꿔보는데, 시간이 흘러 도착한 정연의 편지와 밭에 난 작은 새싹은 승근에게 새로운 동력이 된다.
HELLO- 습관적으로 외쳤던 이 인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느끼던 외로움의 절반, 아니 8-90%쯤이 날아간 기분이다. 무겁게 비치진 않지만 승근은 외로운 사람이다. 한강에 뛰어들기 전에는 따스하게 그의 전화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고 섬에 들어와선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 그는 허수아비와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랜다.
정연의 경우엔 과거에 동급생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어 사진을 도용하고, 가짜 세계를 꾸미면서 다른 이들이 달아주는 댓글을 통해 외로움과 의미 없는 오늘 하루를 지워간다. 작은 세계 안에 갇혀 두터운 외로움을 느끼던 두 김씨는 서로의 존재를 벗 삼아 내일을 맞이할 용기를 낸다.
김씨들에게 서로의 존재와 짜파게티는 ‘희망’이다. 승근은 짜파게티를 먹겠다는 희망을 갖고 밭을 가꾸고 섬에서의 생활을 더욱 열정적으로 꾸려나간다. 정연은 승근에게 쉽게 얻을 수 있는 희망인 짜장면을 배달하지만 승근은 그를 거절하고 끝내 자신의 손으로 이뤄낸 희망을 한 그릇 완성한다. 승근의 희망인 짜장면을 되돌려받은 정연은 그가 보내온 거대한 희망 한 그릇을 삼키며 옷장에서 벗어나 방바닥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다.
“요만큼도 허락이 안 되는 거야?”
현실은 이들에게 왜 이렇게 매정한걸까. 승근이 짜장면 한 그릇을 완성하고 정연이 옥수수를 키우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자마자 그들의 세상은 다시 무너진다. 정연의 미니홈피는 거짓인 게 탄로 나고 승근의 섬은 홍수로 인해 폐허가 된다. 홍수가 끝나고 한강 정화작업을 하러 온 공익 요원들은 승근을 노숙자로 보고 그를 섬에서 쫓아내려 한다. 처음 내 손으로 만든 나의 세상이 전부 쓸려내려가고 이렇게 허무한 현실이 다가온다.
사실 승근은 자신이 무인도에 완전하게 고립되었다고, 뭘 해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분리되었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보트만 한번 타면 접근할 수 있는 도시와 가까운 섬. 매일같이 지나가는 유람선에 매번 손을 흔들거나 불을 피웠다면 반년쯤 되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발견될 수도 있었고, 하다못해 짜장면 배달원과 함께 오리 배를 타고 나갈 수도 있었다. (매일 잠을 자던 승근의 오리배도 있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유람선을 피했고, 반년이 되는 시간 동안 섬을 탈출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와 못한다 그 중간 어딘가에 걸쳐있다. 나가봤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근은 자신을 끌어내려는 공익 요원들에게 “그냥 여기 있게 해주세요.”라고 애원한다. 그에겐 아무도 없는 외롭고 불편한 섬 생활보다 다시 도시 속에서 살아갈 팍팍한 삶이 더 두렵다.
“1년에 2번,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내 세상을 만나는 시간.”
섬에서는 짜장면과 가끔씩 도착하는 누군가의 편지가 희망이었는데, 섬을 벗어나고 나니 승근이 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죽기’뿐이다. 그는 흙이 가득한 지갑을 버스 단말기에 대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음을 실감하고 확실하게 죽기 위해 63빌딩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뒤로 정연이 따라 달린다. 타이밍 좋게 울린 민방위 훈련 경보 덕분에 두 김씨를 서로 잘 알지 못했던 희망과 만나게 된다.
정연은 1년에 2번 있는 민방위 훈련이 온전한 ‘내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멈춘 시간을 살아가는 그 순간. 내가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순간. 정연은 봄에 만난 내 세상에 들어온 승근을 가을에 만난 내 세상에서 다시 마주하고, 이번엔 마냥 지켜보는 게 아닌 용기를 내서 악수를 청한다. 나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멈춘 순간, 작은 세계에 갇혀있던 김씨 둘이 눈을 맞춘다. 그리고 훈련 경보가 끝나고 다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손을 잡는다. 멈춘 시간 속, 고립된 나만의 세상에서 홀로 살아온 두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순간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외로움과 불안감 속에서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잃어가고 있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온 정연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My Name Is 김정연.” 그리고 묻는다. “Who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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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
관음과 관종. SNS 중독 시대를 살아가면서 두 단어가 지니는 부정적 무게감은 더 커지고 있다.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두 단어로 촉발된 범죄 등 SNS의 폐해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사회관계망에 의존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SNS는 시간 낭비다”라는 명언을 남긴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말은 이제 무용지물. 이를 반영하듯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SNS 중독 시대 속 병든 관음증 남자와 관종 여자의 잘못된 만남(?)을 그리고 있다. 과연 이들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직업은 공인중개사 취미는 남의 일상 훔쳐보기. 심각한 관음증에 빠진 구정태(변요한)는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부동산 매물을 맡긴 이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 사소한 물건을 가져오기까지 한다. 심지어 외딴 창고에 그 물건을 전시해 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레이더망에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걸려든다.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샐러드 이미지를 SNS에 올리는 소라의 모습을 본 정태는 반은 호기심, 반은 팬심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런 노력(?)에 하늘도 감동한 걸까? 집을 내놓기 위해 구정태의 공인중개사를 찾은 한소라는 고맙게도 그에게 키를 맡긴다. 더 활발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구정태. 하지만 여느 날처럼 소라의 집에 몰래 들어간 그는 흉기에 찔린 채 누워있는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관음과 관종이 만연한 SNS 중독 시대의 병든 남과 여. 이들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 <그녀는 죽었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 더 나아가 시선의 수가 많아질수록 더 강력해지는 권력의 폐해를 미스터리 장르로 보여준다. 정태가 소라의 실제 모습을 보기 위해 몰래 따라다니거나, 집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하는 등의 이상한 고군분투를 하는 것처럼, 관객 또한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에 ‘좋아요’를 누르며 동참한다. 특히 소라의 시신을 본 이후 정태를 향한 협박과 이름 모를 범인의 출현 등 과연 진범은 누구인지 영화는 이 미스터리를 계속 지켜보게 한다.
시선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큼, 영화는 정태의 시선만이 아닌 소라의 시선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퍼즐은 소라의 이야기가 보인 후에 맞춰진다.
정상인이라 보기 힘든(정작 극 중 본인들은 정상이라 생각하는) 두 주인공은 각각 전, 후반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재미있는 건 각자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변론이 점점 궤변처럼 느껴지고, 자기합리화의 최대치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SNS 게시물 내 작위적 연출과 멋스러운 필터로 보이지 않던 오리저널 이미지가 명확히 보이고, 자칫 죄의 무게가 한 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을 미연의 방지한다. 여기에 감독은 오영주 형사(이엘)를 통해 윤리와 법에 입각한 시선을 관개에게 부여하며, 최대한 두 캐릭터를 미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다만, 장르에 입각한 연출이 강하다 보니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활용도와 추리 과정에 대한 디테일은 아쉬움을 남긴다. SNS의 부정적 측면에 집중해 익명성에 기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에 맞춰 두 주인공이 전사는 깊이 있게 그려지진 않는다. 이는 전사로 인해 이들을 행위 자체가 용인되는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연출이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캐릭터를 표면적으로만 보게 되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병적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정태 보단 소라가 불우한 가정사 등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또한 빈약해 보인다.
다행히 이 단점은 변요한, 신혜선의 연기가 채운다.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급변하는 상황에 맞게 두 얼굴의 모습을 연기로 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변요한은 관음증으로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다 그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소라는 소셜미디어와 현실의 모습, 결이 다른 내외면의 모습을 빠르고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 자체가 소셜미디어 세상 속 사람들의 표상까지는 아니지만 어두운 단면을 잘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한다.
관음을 소재로 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이 개봉한 지 70년이 흘렀지만, <그녀가 죽었다>가 개봉하는 걸 보면,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관음의 포로인 셈이다. 영화 자체가 남의 삶을 보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보는 것은 물론, 소셜미디어에 이 영화를 보고 단평을 올리는 이들은 아마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관음 자체가 문제라기 보단 그 지나친 행위 자체와 도덕과 윤리의 기준선을 모호하게 하는 자기 합리화가 문제다. 인간이라면 사회 구성원이라면 이 기준선을 잘 지켜야 한다. <그녀가 죽었다>의 마지막 장면의 두 주인공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사진제공: 콘텐츠 지오
평점: 3.0 / 5.0
한줄평: SNS 중독 시대가 낳은 병든 이들의 웃지 못할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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