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06-30 23:43:23
패션이라는 노동의 세계
디올 앤 아이

#디올 #오트쿠튀르 #라프시몬스
먼저 자기반성? 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패션에 관심이 있었지만 패션에 탐닉할 정도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란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은 가져야 하지만 그 정도가 명품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사람을 천박한 허영심의 노예로 바라보게 된다고 믿어왔다. 결국 나는 명품 브랜드라는 존재에 대해서 하나쯤은 갖고 싶지만 사람의 허영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으로 폄하하면서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디올 앤 아이,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명품 브랜드에 관한 상반된 감정 중에서 전자, 브랜드에 대한 동경 때문에 내면 속 허영심을 자극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낯선 인물이 등장한다. 라프 시몬스. 패알못은 주섬주섬 핸드폰을 들어 라프 시몬스를 검색한다. 오호, 질 샌더 디자이너였군. 그럼 질 샌더는 무슨 브랜드이지? 패션에 대해서는 정말 1도 모른다는 사실을 통감한 채 검색을 포기하고, 영화를 계속 본다. 보다보니 이 영화, 잘 골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오트쿠튀르의 정신
Ready to wear, 남자 기성복만을 만들어온 라프 시몬스에게 디올 오뜨꾸뛰르는 정말 큰 도전이었다. 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을 만드는 컬렉션을 기성복을 만드는 과정과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귀족, 부르주아 상류층을 위해 존재해왔던 오뜨꾸뛰르가 산업 혁명을 거쳐 일반인들을 위한 패션, 즉, 대량생산이 가능한 패션인 기성복 라인과는 옷을 만드는 목적과 방식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라프 시몬스의 작업 방식은 영화 초반까지도 "For only one"을 위한 의상이 아니라 "For every people"이었기 때문에 수석 디자이너가 고객 때문에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의 개인에게 특별함을 부여해주는 오뜨꾸뛰르의 정신은 돈을 많이 써주는 고객에게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예술성을 추구하지만 수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한 고객이 쓰는 어마어마한 돈에는 오뜨꾸뛰르가 제공하는 익스클루시브, 특별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대우 속에는 '당신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오뜨꾸뛰르의 예술성을 누리기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일반인들을 왕따시키는 개념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 속에서 라프 시몬스가 해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2. 오뜨꾸뛰르의 원동력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직원들은 진정 예술가로 인정받을 만하다. 모든 컬렉션을 총괄하고, 구상하는 역할은 라프 시몬스가 담당했지만 라프 시몬스가 구상한 옷을 물리적으로 표현해주는 사람들은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재봉사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이 2D의 그림을 3D의 현실로 구사해내는 과정을 보면, 신의 손은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컬렉션이 끝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디자이너에게 쏠리게 되지만 실제적인 노고는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점이 들었던 것이, 그들은 자신만의 디자인을 표현해내고 싶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디올의 오뜨꾸뛰르 작품들은 라프 시몬스만의 디자인이 아니라 디올 하우스의 모든 직원들이 감성이 표현된 작품이라는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 궁금증이 사라지게 된다. 작업 과정 중에서 개개인의 감각이 녹아있는 옷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디올 하우스가 유지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디올 하우스의 직원들이 디올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모습은 정말 존경할 만하다.
3.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이 영화 속에서 나레이션으로 크리스찬 디올의 자서전의 대목들은 라프 시몬스의 상황과 묘하게 일치한다.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 총괄자로서 직원들을 채찍질해야 하는 라프 시몬스의 상황이 아주 오래전 크리스찬 디올이 느꼈던 감정과 일치하곤 한다. 이런 감정은 이 둘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모든 창작자들의 감정과도 동일시될 것이다. 크리스찬 디올은 자신의 "샴 쌍둥이"라고 표현한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으로 드러나 있는 자아로 자신의 자아를 분리시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 속 라프 시몬스의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려하는 내면적인 자아와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교계 인사로 남아야만 하는 상황을 대비시키다 보면 이 상황은 결국 예술가들이 맞이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도 이런 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얼핏 보면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둘 만이 비슷한 고뇌를 공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내 진짜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좀 더 특별한 직업을 가진 것일 뿐.
하지만 비싼 가방을 드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듯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용한 마케팅의 노예가 되는 것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 브랜드는 비싸다는 이유로 종교처럼 신봉하는 사람들이나 비싸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사람들 모두 하나의 옷을 만드는 데에 드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느껴보라고 권유하는 의미에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명품에는 사실 크게 관심없고, 저렴하고, 알뜰한 쇼핑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 영화 안 봐도 될 것 같다. 눈 호강하겠다는 의미로 본다면 또 모르겠는데, 눈 호강은 사실 막판 10분 정도가 전부라서 크게 재밌는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의 컬렉션이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은 마케팅을 탓해야지 디자이너를 비롯한 아뜰리에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의 컬렉션 작품을 볼 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듯 해석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듣는 예술, 보는 예술, 먹는 예술을 넘어 입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면, 하나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 드는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오뜨 꾸뛰르 아뜰리에에서 요구하는 비싼 가격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는 늘 생각해요. 디올 하우스에서 디자이너들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아뜰리에라고. 디올 하우스의 모든 보배가 모든 소중한 뿌리가 아뜰리에에 남아있죠. 40년 또는 44년 동안 여기서 일하신 재봉사들도 계십니다. 함께 어울리고 서로 소통하고 그렇게 풍요로워지는 거죠."
디올 앤 아이 중에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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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데일리] 파스타샤 강변에 사는 아이들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하지 않으신 분은 읽으실 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리뷰
[포스터]
[감독] 이네스 알베스
[출연] 에콰도르와 페루의 국경지대인 파스타사강 변에서 살아가는 아추아 부족 아이들
[시놉시스] 아마존 우림에서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파스타사강 줄기와 나무 꼭대기를 오가며생활하는 그들은 협동하며 자율적인 일상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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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을 엿본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볼 때면 나는 내 안의 관음증적인 욕망이 해갈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다른 사람의 삶 그 자체를 살핀다는 것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파스타샤 강 유역에 사는 <워터 오브 파스타샤>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동북아시아의 도시인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종류의 삶을 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통해 새로운 종류의 영감, 감회, 혹은 사색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아마존의 열대우림으로 떠나보자. 에콰도르와 페루의 어느 국경지대, 강과 숲을 벗하며 살아가는 아추아부족의 아이들을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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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대우림에 있다. 거대한 파스타샤 강이 있고 그 옆에는 무성한 숲이 있다. 그 숲에는 많은 식물과 곤충, 날짐승과들짐승이 있으며, 그 사이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난다. 그들은 서슴없이 나무를 올라 열매를 따고, 겁도 없이 거대한칼을 휘둘러 그것을 깨먹는다. 어른의 도움도 없이 그릇을 빚고, 예쁜 목걸이를 만들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짓는다. 그들의 부모가 너무 바쁜 까닭에 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양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데, 카메라는 고집스럽게 그들만을 조명한 것은 이러한 낯선 곳에서 허물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담아내고자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시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아이들이 쉴 새 없이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그 열악하기 짝이 없는 지저분한 옷과 진흙 위를 뒹굴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아동 학대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 거대한 정글칼을 겁도 없이 휘두르는 아이들을 보고있노라면 '저러다 다치면 어쩌나' 싶어 공연히 보는 나의 간담이 다 서늘해진다. 그러나 우선은, 그러한 우려와 편견을 잠시 미루어 두자. 판단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거대한 숲은 아이들의 일터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놀이터이기도 하다. 개구리와 풀벌레는 울고, 나무덩쿨과 개울은 각각그네와 수영장이 되어 그들을 맞이한다. 바나나 잎은 근사한 치마가 되고, 나무 열매는 팽이가 되는 세상. 강과 숲은 아이들에게 그러한 세상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때가 되면 배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숲의 한복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그것에서부터 흘러나온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아이들은 결코 문명에서 아주 동떨어진 이들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들 착각하는 완전한 타인이 아니라는소리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노트북 화면에 출력된 영미 영화를 본다. 각자의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시간이 남으면 빗줄기를 뚫고서라도 공을 차고 논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파스타샤 강변을 감히 원더랜드라고 칭하지는 않겠다. 이것은 그들의 삶을 단순히 낭만적으로 미화하고 그들의 노동의가치를 폄훼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통스럽고 '미개한' 삶을 살고 있노라 비하하지도 않겠다. 그런 오만함을 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지구 반대편에는 어떤 삶이 있는지 엿보았다. 그 어린 아이들의 세곱절은 살았는데도,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할 삶이었다.(우리의 삶의 터전이 다른 것에 기인한 것이다.)
나는 에리카, 눈크이, 지저스, 누피르, 위마스, 나이암, 로살리나, 베르톨메오, 라몬, 치아스, 차님, 슈와, 파멜라, 와인치, 니샤, 야지, 야기, 파트리샤, 사라, 셰리, 페인트, 그리고 그밖에 차마 내가 기록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들은 너무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것을 긍정하면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견뎌내면서. 그것이 삶이기 때문에. 나 또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삶을 엿본 것은 대단히 기쁜 일이었다.
아직 파스타샤의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그들을 만나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존에서의 삶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워터 오브 파스타샤', 22.08.30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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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종말 직전 드러나는 사회의 모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은 정치와 관련이 있다. 정치적인 결정은 무언가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고, 그 사회 구성원이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려고 애쓴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그 많은 정치인들 중 자신과 사회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누구일지 투표를 통해 선택한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선출되지 않았더라도 정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 그래서 정치는 우리 삶에서 완전히 떼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는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발전을 막기도 한다. 인류가 그동안 겪었던 전쟁은 바로 정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정치에 관심을 두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선택을 한다. 정치라는 것이 언제나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흘러가지는 못한다. 수많은 경쟁이 벌어지고, 다양한 분야에 그 정치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 영역에서조차 정치적 영향력은 힘을 뻗고 있다. 과학 연구의 방향성이나 연구 인력의 숫자 등이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주 탐사 같은 영역은 온전히 정치적인 상황과 결정으로 인한 예산 투자가 없다면 진행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지구 충돌 혜성을 발견한 두 과학자 그리고 정치인
영화 <돈 룩 업>은 지구에 곧 충돌할 혜성을 발견하게 된 두 과학자가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과정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영화 초반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박사 과정 제자 케이트(제니퍼 로렌스)가 혜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여느 재난 영화의 장면과 다를 바 없다. 기존 재난 영화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건 그들이 관련 보고를 하기 위해 백악관에 간 이후 벌어진다. 여기엔 나사의 테디 박사(롭 모건)도 동행하게 되는데, 이들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만난다.
민디, 케이트, 테디 이렇게 세 과학자가 처음 대면하는 정치인은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하루 이상을 기다리게 되는데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먼저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혜성의 지구 충돌을 전달했을 때, 그는 정치적으로 그 사안을 언제 공개하고 이용할지를 계산하기 바쁘다. 인류 멸망이라는 엄청난 재난 상황 앞에서도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과학자들의 말을 온전히 과학적 발견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 안에 정치적인 의도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언론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유명 방송사도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정치인들이 잘 받아주지 않자 다음 해결 방법으로 매스컴을 택한다. 그들은 처음에는 백악관이 그 사실을 무시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을 방송에 출연시키지만 그들 역시 과학자들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심지어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 즉 천문학자들과 반대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천문학자들의 저의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방송사 간부들 조차 그 과학자들이 아주 순수한 학문적 발견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소비되어 버리는 과학자들
방송사에서 과학자들을 소비하는 방식도 이 영화에 잘 나와있다. 잭(타일러 페리)과 브리(케이트 블란쳇)는 아주 가벼운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인류 종말이라는 상황을 심각하게 이야기하지만 진행자인 잭과 브리는 그것을 별일 아닌 것처럼 농담으로 받아넘긴다. 그리고 화를 내는 케이트와 침착하게 대응한 민디 박사를 비교하면서 케이트는 SNS에 이상한 마녀 이미지로 떠돌게 만들고, 민디 박사는 전문가로 떠받든다. 그러니까 같이 혜성을 발견한 두 사람조차 그들의 이익을 위해 각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민디 박사와, 케이트, 테디 박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정치적인 판단을 벗어나려 애쓴다. 자신은 순수하게 과학적 발견을 했고, 그것이 곧 지구 종말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한낱 정치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여진다. 대중들은 현재 정부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한쪽은 과학자의 의견을 믿지 않고, 다른 한쪽은 과학자의 의견을 믿는다. 영화에서는 그 의견 대립을 ‘돈룩업(위를 쳐다보지 마)’과 ‘룩업(위를 쳐다봐)’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종의 정치적인 해쉬태그 대립을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세 과학자는 끊임없이 그들의 방법으로 종말을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외친다. 우리 사회에서 지구적 환경 재난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사회단체나 과학자들의 의견이 떠오르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알고 있지만 당연히 그 안에 정치적인 문제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과학적인 사실 만으로는 대중을 움직일 수 없고,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정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지지나 행동은 요원하다. 반대의 의견은 사회연결망을 통해 확산되고 더 굳게 믿어진다.
영화 속 정치인들은 그들의 프로파간다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영웅을 이용한다. 베네딕트(론 펄만)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핵미사일을 발사할 때 참여시킴으로써 대통령 본인과 집권당의 정치적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면서 이 사안을 더욱더 정치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이런 정치인의 의도된 행동을 매스컴은 라이브로 중계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확산시킨다. 여기서 영웅은 혜성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위해 전혀 엉뚱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든다.
현실 속의 모습이 잘 드러난 블랙코미디
영화 <돈 룩 업>은 관객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비슷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집권하고 있는 여당에 대입해도, 그 대척점에 있는 야당에 대입해서 해석해도 충분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라는 것이 진행되는 프로세스와 그것으로 대중들이 받는 영향이 이 영화에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에서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대중의 입장에서 어떤 정치인들의 말이 맞을지, 과학자의 말에 정치적인 성향은 들어가 있지 않을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만약 정말 종말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면 그것의 진위를 파악하는데 한참 걸리거나, 아예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아픈 부분일 수 있다. 결국 모든 활동에 대한 판단은 무언가를 보고 자기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사회적 정쟁과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세 과학자가 처한 상황은 꽤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처음엔 안절부절못하다가 이성을 찾는 과학자 민디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주 순수한 모습과 자신만만한 모습을 오가며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그가 지구 종말을 외치는 장면은 압권이다. 혜성을 처음 발견한 박사과정 학생 케이트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는 전혀 정치적인 색깔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방송에서 짜증을 부렸던 것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역할을 잘 연기했다. 그런 답답함과 분노가 제니퍼 로렌스의 뾰로통한 얼굴에 잘 드러나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빅쇼트>나 <바이스> 같이 사회적인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가 각본까지 도맡아 하면서 꽤 맛깔스럽고 재치 넘치는 대사와 상황을 통해 정치적으로 벌어지는 부조리와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돈 룩 업>에서도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그것을 보는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에서 보이는 웃픈 상황들이 허구라는 측면에서는 안도감이 들지만, 그것이 현실과 아주 가깝다는 사실에서는 불안감이 들게 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돈 룩 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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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수하지만, 류승완이라서 끝내 아쉽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화학 공장이 들어선 군천 앞바다. 바닷물이 더러워지자 해녀들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고 만다. 이에 '춘자'(김혜수)는 리더 '진숙(염정아)'을 설득해 살 길을 찾아낸다. 바닷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밀수의 세계가 바로 그것. 그러나 밀수 작업 도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고, 둘도 없는 친구였던 진숙과 춘자는 불구대천 원수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춘자는 진숙 앞에 다시 나타난다.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조인성)가 군천에서 밀수판을 키우기로 했으니 다시 협업하자는 것. 사고 이후 생계가 막막했던 진숙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군천 밀수판의 주인 '장도리'(박정민)가 사업에 끼어들면서 춘자의 계획은 조금씩 꼬여 버리고, 군천 앞바다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류승완이라서 기대했다
대한민국에서 믿고 보는 흥행 감독 중 하나인 류승완. 그의 필모그래피는 퍽 흥미롭다.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부당거래>부터 그의 영화는 자기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관객의 욕구를 저격할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군함도>로 실패를 겪은 뒤 담백하고 깔끔하게 스토리를 담아내는 데 집중한 <모가디슈>를 내놓은 것처럼.
그래서 류승완 감독의 <밀수>는 기대가 컸다. 본연의 색깔, 대중성, 새로운 시도가 한 데 어우러진 듯 싶었기 때문이다. 예고편은 짧게나마 감독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B급 액션 범죄영화 같은 분위기, 만화 같은 연출, 센스 있는 대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말해봐야 입만 아픈 캐스팅은 케이퍼 무비에 최적화됐고, 해녀가 참여한 밀수라는 소재와 수중 액션은 익숙한 장르에 신선함과 계절감을 더할 듯 보였다.
결과물도 나쁘지는 않다. 여름 시장 텐트폴 무비의 첫 주자는 충분히 준수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끝끝내 아쉬운 지점도 있다. 특히 아쉬움은 결말에 집중된다. 류승완의 각본은 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사회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밀수>는 마지막 순간 과감함이 살짝 부족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김혜수와 염정아가 빛나는 이유
<밀수>의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무난하다. 극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밀수>에서 의외로 가장 눈을 사로잡는 지점 역시 스토리다. 예고편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은 짙은 우수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혜수와 염정아의 얼굴을 한 채 스크린을 사로잡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영화는 1970년대 감성으로 가득하다. 단순히 레트로풍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산업화 시대의 감성이 짙다. 방법과 절차에 관계없이 생존이 최우선 되는 그 시대의 얼굴을 비춘다. 당장 해녀들은 굶어 죽을 위기다. 군천 바다 옆에 생긴 공장 때문에 전복이 다 폐사하는 지경이니. 그들이 밀수업에 가담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진숙과 춘자가 있다. 춘자 주도로 금괴를 담은 상자를 옮기다가 세관에 적발된 해녀들. 체포되는 과정에서 진숙은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반면, 춘자는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이에 진숙은 춘자가 보상금을 챙기기 위해 밀고 했다고 오해하고, 춘자는 자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자책하며 오해를 풀지 않는다. 영화는 이처럼 오해가 쌓여 애정이 애증이 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악을 쓰는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그러다 보니 전반부는 느슨한 듯 싶다가도 예상치 못한 순간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감정선은 음악 덕분에 배가된다. 음악감독 장기하가 만든 70년대풍 신곡과 70년대 가요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며 구슬픔과 애달픔을 강조해 준다. 미장센도 한몫한다. 다방과 나이트 등 당시 시대상을 충실하게 재현한 세트, 의상, 소품, 프로덕션 디자인 덕분에 진숙과 춘자의 삶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충분하지 못한 자맥질
다만 전반부 드라마가 주는 감흥에 비해 후반부의 장르적 쾌감은 다소 부족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짜임새가 문제다. 다이아몬드 밀수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 자체는 분명 화려하다. 가이 리치의 범죄 영화 같다. 그는 한 편의 영화를 각기 다른 인물의 시점과 시간대로 분해한 뒤 새로운 모양으로 다시 짜 맞추는데 능한데, <밀수>도 마찬가지다. 하루 전과 하루 뒤, 몇 시간 전과 몇 시간 후를 넘나들며 관객을 현혹하려 한다.
정작 내실은 부족하다. 돈이나 보석을 쟁취하려는 이전투구가 없어서 케이퍼 무비 특유의 긴장감을 찾기 어렵다. 각자 목적이 다르다는 게 일찌감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목적의 무게감과 톤도 제각기 다르다. 일례로 진숙의 계획에 비해 장도리의 목적은 너무 가볍다. 진숙은 사무친 원한을 풀려고 하고, 장도리는 단순히 이익을 좇는다. 그러다 보니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각 캐릭터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문제의 금괴나 다이아몬드 모두 그저 장르의 논리에 따라오는 부속물에 불과하다.
물론 불협화음을 없애려는 시도는 있다. 먹먹한 서사와 장르를 엮는 역할을 춘자에게 맡긴다. 하지만 춘자에게도 이 임무는 벅차다. 그녀가 관객을 사로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녀가 숨긴 이야기도, 모든 사건의 전말도 클라이맥스 직전에서야 밝혀지기 때문이다. 결국 색깔도 온도도 다른 두 장르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유리되어 있다. 화려한 편집과 기막힌 선곡이 때로는 두서없이 느껴지고, 초반부터 쌓아온 빌드업에 비해 마지막 쾌감이 부족한 이유다.
장르의 관성에 잡아먹히다
쾌감이 부족한 다른 이유는 결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밀수>는 더 과감할 수 있는 지점에서 몸을 아끼는 듯하다. 진숙은 아버지와 동생의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한다. 악인들을 처절히 징벌한다. 그런 그녀에게 다이아몬드가 보상으로 주어진다. 다이아몬드와 금괴는 그간의 고생을 전부 안다는 듯이 해녀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춘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마무리다.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말의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결말이 뻔해서가 아니다. 씁쓸하기 때문이다. 춘자는 몰라도, 사실 진숙은 단 한 번도 다이아몬드가 목적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잃었던 우정을 되찾고, 가족의 복수를 하고, 빼앗겼던 아버지의 배도 되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에게 금괴와 다이아몬드는 값비싼 물건이기 이전에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니 아픔 가득한 다이아몬드가 그녀에게 과연 적절한 보상일지는 의문이다.
류승완 감독은 <모가디슈>에서 뻔한 길을 가지 않은 전적이 있다. 남북한 사람들은 함께 부둥켜서 눈물을 흘리는 대신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에 비하면 <밀수>의 결말은 편의적이다. 케이퍼 무비이니 살아남은 이에게 전리품을 안긴 셈이다. 장르적 관습에 캐릭터 개개인의 서사가 종속된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텐트폴 무비로서 깔끔한 마무리인 것은 맞다. 다만 '류승완이니까' 아쉬움이 남는 끝맺음일 따름이다.
그래도 류승완은 류승완이다
하지만 유달리 영화에 생동감이 느껴지는 몇몇 장면 덕분에 호불호가 갈릴 단점 내지는 약점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는 고민시의 존재감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권 상사의 역할도 눈에 띈다. 스토리텔링의 중심을 염정아 김혜수가 잡고 있다면, 조인성은 마치 액션을 향한 류승완 감독의 열망이 담긴 캐릭터 같다.
사실 권 상사는 전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판을 깔고, 판을 키우고, 퇴장한다. 하이스트 영화에서 꼭 있어야 할 캐릭터다. 그런데 이 전형성이 오히려 반갑다. 등장 자체는 많지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불꽃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드라마는 권 상사가 칼을 빼 든 순간 갑자기 장르를 전환한다. 차분하다면 차분하고 답답하다면 답답한 전개가 그제야 본격적으로 풀린다.
언제나 류승완의 장기인 액션도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물론 액션 분량 자체가 많지는 않다. 전작인 <모가디슈>도 후반부 추격전을 제외하면 액션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적은 느낌이다. 스케일의 차이도 한몫한다. 그러다 보니 텐트폴 무비에 기대할 만큼 화끈한 임팩트를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퀄리티는 살아있다. 좁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나이프 액션은 박진감과 타격감을 제대로 전달하며, 의외로 잔인한 면도 있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수중 액션도 인상적이다. 보통 한국 영화의 액션은 수평적인 경우가 많은데, 바닷속이라는 환경을 살린 수직적인 움직임이 특히 신선하다.
<밀수>가 류승완 감독의 정점은 아닐 것이다. 완성도 면에서는 전작인 <모가디슈>도 넘어서지 못했다. 상업적으로는 차기작인 <베테랑 2>를 기대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 본연의 색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매력 포인트는 확실하다. 개성, 완성도,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솜씨도 여전하다.
관건은 흥행이다. 손익분기점은 관객 330만 명. 전통의 강자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간신히 300만 관객을 넘기는 극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다. 다행히도 개봉 타이밍은 잘 잡았다. 1주일 동안 온전히 극장가를 장악할 수 있다. 출발도 좋았다. '문화의 날' 덕분에 첫날 30만이 넘는 관객이 <밀수>를 선택했다. <더 문>과 <비공식작전>이 쫓아오기 전에 <밀수>가 과연 얼마나 도망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Acceptable 무난함
서사와 장르의 미묘한 엇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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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지망생의 크리스마스 동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함
12월 9일 목요일(내일!) 국내 개봉하는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원제는 <My Salinger Year>로, 이 영화는 조안나 라코프가 쓴 동명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다. 뉴욕의 전통 있는 작가 에이전시 '해롤드 오버 어소시에이츠'에서 일했던 라코프는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2010년에 BBC 라디오 4 채널을 위한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방송도 전에 이 다큐멘터리는 영국 출판계에서 유명해졌고, 라코프는 격려를 받아 다큐멘터리 대본을 토대로 회고록을 써 2014년에 출판한다.
국내 개봉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갓 대학을 졸업한 23세의 조안나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에 상경한다. 작가로서의 데뷔 전까지 수입이 필요했던 조안나는 꿈과 가까운 출판계에서 일하고 싶어하고, 직업소개소는 그런 조안나를 작가 에이전시에 소개해준다. 이 에이전시는 아가사 크리스티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헤럴드 핀처 등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담당했던 회사이다. 조안나의 주 업무는 역시나 쟁쟁한 작가이자 동시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J. D. 샐린저에게 쏟아지는 팬레터에 답장하는 일이다. 그는 팬레터에 하나하나 답장하고 싶은 욕망과 무서운 상사 마가렛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샐린저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즐겁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고민거리를 더한다...
많은 관람객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듯이, <마이 뉴욕 다이어리>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섭지만 멋진 상사와 뉴욕이라는 배경 때문도 있겠지만, 두 영화가 공유하는 특징은 그게 다가 아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조안나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는 모두 원하는 것이 있어 비싼 집세를 지불해가며 화려하지만 정신없는 뉴욕에 살고 있고, 현재 직장은 그들의 꿈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고뇌를 멈출 수 없다. 또한 조안나는 작가(문학), 앤디는 기자(저널리즘)가 되기를 원한다. 다른 분야이나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직업들인데, 오랜 시간 미디어에서 부여해온 뉴욕의 낭만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직업 선정이다. 꿈과 아메리칸 드림의 도시, 지망생의 도시(그러나 지망생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지망생들이 모이는) 뉴욕.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쇼퍼홀릭> 등 오랜 세월 칙릿 소설의 무대는 뉴욕이었다. (조안나가 영화에서 말하듯) 비좁은 아파트에 낑겨 살더라도 그 아파트가 뉴욕의 어느 모퉁이에 있다면 젊은이들은 행복하게 잠들 수 있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에서 관객이 즐길 수 있는 묘미 중 일부도 친구네 집에 얹혀 사는 조안나의 허름한 침대를 비추는 불빛이 얼마나 따스한지, 남자친구와 구한 조안나의 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 편지를 읽고 글을 쓰는 연인의 모습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조안나의 90년대 패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와 같은 것들이다. 고급스러운 디저트 가게에서 혼자 여유를 즐기는 조안나, 소설을 독파하며 도시 곳곳의 카페를 섭렵하는 조안나의 모습은 대도시의 낭만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심지어는 조안나의 고민 원인인 팬레터 읽기마저도 낭만적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주인공은 조안나이지만, 조안나를 돋보이게 하는 매력적인 다른 인물들도 주목할 만하다. 1990년대라는 디지털 시대에 도입하기 시작한 시간적 배경, 조안나의 보스인 마가렛은 컴퓨터를 못마땅해하고 녹음 테이프와 타자기를 선호하는 아날로그한 인물이다. 갓 입사한 조안나를 엄하게 대하지만, 조안나와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마가렛과 마가렛을 연기하는 시고니 위버의 매력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축이자 이야기의 핵심인 샐린저는 영화 내내 전화로, 혹은 멀리 떨어진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샐린저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조안나지만, 이 노작가의 수줍은 성격과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이 어린 작가 지망생의 흥미를 자극한다.
30년 가량의 세월이 지나며 정작 뉴욕에서는 예전 뉴욕다운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 덕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올 겨울, 용감하게 대도시를 누비는 젊은이와 비밀스러운 대작가를 만나러 극장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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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당신을 위해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꿈을 안은 채 대도시 뉴욕에 발을 내딛는 젊은이를 따라가고자 한다. 조안나는 작가의 삶을 간절히 원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무시할 수 없기에, 되는대로 글과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직장에 취업한다. 언뜻 보면 최적의 조건처럼 보인다. 작가 에이전시는 작가들과 교류를 맺을 수도 있고, 출판업에 관해서도 배울 수 있으며, 글쟁이들이 모인 업계 상황을 파악하기도 좋아서, 작가 지망생에겐 분명 좋은 자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조안나에게 닥쳐오는 위기들, 그녀의 심리를 뒤흔드는 순간들은 모두 이 일자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전통 있는 뉴욕의 한 작가 에이전시에서 대표의 조수직으로 취업하게 된 조안나에게 대표 마가렛은 당신이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했다고 말한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려면 작가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 회사에선 조안나가 작가로 등단하고 싶은 열망을 숨길 수밖에 없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어쩌면 가깝지만 멀리 있는 것들에 관한 딜레마를 다루기도 한다. 조안나는 근무처에서 J.D. 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1951) 저자) 관련 업무를 맡게 되는 사람인데도 정작 그 작가의 소설을 단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았다. 심지어 샐린저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이며, 조안나 또한 문학 전반에 관심이 많은 작가 지망생이라, 역시 소설가를 지망하는 남자친구 돈은 이런 조안나를 보면서 신기해한다. 조안나는 샐린저와 통화까지 했는데도 정작 그녀가 그의 글과 조우하는 순간은 한참 뒤에서야 성사된다. 어떻게 보면 조안나가 몸담은 회사도 그렇다. 작가의 집필과 출판 업무 전반을 지원하는 에이전시라는 이유로 글과 가까이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이 회사의 사람들은 아무도 ‘글’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조안나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진 양식에 따라 타자기로 찍어낸 ‘답장용 편지’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일이다. 글을 쓰는 작가들을 관리하면서도 한편으론 결코 글과는 가깝지 않은 회사에서, 조안나가 혼란과 괴리감을 맛보게 되는 건 어쩌면 운명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조안나는 이 회사에서 그간 가깝게 느껴왔던 것들이 부쩍 멀어졌다는 생각에 자꾸만 사로잡힌다. 원래 글이라는 건, 자신의 내면과 헐벗은 채 마주하는 일이 아니었나. 그런데 조안나가 쓰게 되는 답장용 편지에는 그녀가 시를 쓰고 글을 적어오면서 추구해오던 것들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 진심이 사라진, 가식과 위선만이 남은 이 자리에 영혼 없이 말라가는 잉크 자국들이 진솔한 감정을 표출하는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하지만 조안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일을 그만두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며 작가로 등단하기 위한 집필 활동 또한 이어갈 수 없다. 그런데 그녀가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 회사에선 손에 붙잡을 수 있던 것들이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따라서 중대한 결심처럼 보이는 조안나의 선택이 비록 극적인 갈등 서사 구조로 쌓아 올린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조안나에게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사실만큼은 자명하지 않을까.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꿈을 좇는 고단한 청춘들을 보듬어 주려는 마음을 숨길 생각이 없다. 오히려 아주 명확한 의도를 내비치며 관객에게 스며들고자 한다. 특히나 이 영화는 저마다의 이유로 소리 없이 잊혀간 세상 속 수많은 문학인의 마음을 스크린을 통해서 위로해주려고 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를 멀리하고 타자기를 고집하는 마가렛 역시, 글을 쓰려는 조안나를 고단하게 하는 포지션에 있는 인물이긴 해도 문학의 가치를 사랑하고 글을 아끼는 사람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경시되는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관해 한 번쯤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종이와 펜을 꺼내서 손맛 가득한 글을 써보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다. 이토록 스산한 겨울에,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따스한 영화가 찾아왔다.
본 콘텐츠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은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시사회'를 통해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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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악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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