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4-06-30 23:43:23
패션이라는 노동의 세계
디올 앤 아이

#디올 #오트쿠튀르 #라프시몬스
먼저 자기반성? 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패션에 관심이 있었지만 패션에 탐닉할 정도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란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은 가져야 하지만 그 정도가 명품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었다. 그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사람을 천박한 허영심의 노예로 바라보게 된다고 믿어왔다. 결국 나는 명품 브랜드라는 존재에 대해서 하나쯤은 갖고 싶지만 사람의 허영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으로 폄하하면서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디올 앤 아이,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명품 브랜드에 관한 상반된 감정 중에서 전자, 브랜드에 대한 동경 때문에 내면 속 허영심을 자극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낯선 인물이 등장한다. 라프 시몬스. 패알못은 주섬주섬 핸드폰을 들어 라프 시몬스를 검색한다. 오호, 질 샌더 디자이너였군. 그럼 질 샌더는 무슨 브랜드이지? 패션에 대해서는 정말 1도 모른다는 사실을 통감한 채 검색을 포기하고, 영화를 계속 본다. 보다보니 이 영화, 잘 골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 오트쿠튀르의 정신
Ready to wear, 남자 기성복만을 만들어온 라프 시몬스에게 디올 오뜨꾸뛰르는 정말 큰 도전이었다. Haute Couture, 고급 맞춤복을 만드는 컬렉션을 기성복을 만드는 과정과 결코 같을 수가 없다. 귀족, 부르주아 상류층을 위해 존재해왔던 오뜨꾸뛰르가 산업 혁명을 거쳐 일반인들을 위한 패션, 즉, 대량생산이 가능한 패션인 기성복 라인과는 옷을 만드는 목적과 방식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라프 시몬스의 작업 방식은 영화 초반까지도 "For only one"을 위한 의상이 아니라 "For every people"이었기 때문에 수석 디자이너가 고객 때문에 파리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의 개인에게 특별함을 부여해주는 오뜨꾸뛰르의 정신은 돈을 많이 써주는 고객에게 올인할 수 밖에 없는, 예술성을 추구하지만 수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한 고객이 쓰는 어마어마한 돈에는 오뜨꾸뛰르가 제공하는 익스클루시브, 특별한 대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대우 속에는 '당신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오뜨꾸뛰르의 예술성을 누리기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일반인들을 왕따시키는 개념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 속에서 라프 시몬스가 해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2. 오뜨꾸뛰르의 원동력
영화 속에 등장하는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직원들은 진정 예술가로 인정받을 만하다. 모든 컬렉션을 총괄하고, 구상하는 역할은 라프 시몬스가 담당했지만 라프 시몬스가 구상한 옷을 물리적으로 표현해주는 사람들은 디올 하우스의 수많은 재봉사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이 2D의 그림을 3D의 현실로 구사해내는 과정을 보면, 신의 손은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컬렉션이 끝나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디자이너에게 쏠리게 되지만 실제적인 노고는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의문점이 들었던 것이, 그들은 자신만의 디자인을 표현해내고 싶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디올의 오뜨꾸뛰르 작품들은 라프 시몬스만의 디자인이 아니라 디올 하우스의 모든 직원들이 감성이 표현된 작품이라는 알게 된 이후부터는 그 궁금증이 사라지게 된다. 작업 과정 중에서 개개인의 감각이 녹아있는 옷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일하기 때문에 디올 하우스가 유지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디올 하우스의 직원들이 디올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모습은 정말 존경할 만하다.
3.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이 영화 속에서 나레이션으로 크리스찬 디올의 자서전의 대목들은 라프 시몬스의 상황과 묘하게 일치한다.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 총괄자로서 직원들을 채찍질해야 하는 라프 시몬스의 상황이 아주 오래전 크리스찬 디올이 느꼈던 감정과 일치하곤 한다. 이런 감정은 이 둘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모든 창작자들의 감정과도 동일시될 것이다. 크리스찬 디올은 자신의 "샴 쌍둥이"라고 표현한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으로 드러나 있는 자아로 자신의 자아를 분리시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 속 라프 시몬스의 언론에 노출되기를 꺼려하는 내면적인 자아와 디올이라는 브랜드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교계 인사로 남아야만 하는 상황을 대비시키다 보면 이 상황은 결국 예술가들이 맞이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일반인들도 이런 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얼핏 보면 크리스찬 디올과 라프 시몬스 둘 만이 비슷한 고뇌를 공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과 내 진짜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좀 더 특별한 직업을 가진 것일 뿐.
하지만 비싼 가방을 드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듯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이용한 마케팅의 노예가 되는 것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명품 브랜드는 비싸다는 이유로 종교처럼 신봉하는 사람들이나 비싸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사람들 모두 하나의 옷을 만드는 데에 드는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느껴보라고 권유하는 의미에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명품에는 사실 크게 관심없고, 저렴하고, 알뜰한 쇼핑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사실 이 영화 안 봐도 될 것 같다. 눈 호강하겠다는 의미로 본다면 또 모르겠는데, 눈 호강은 사실 막판 10분 정도가 전부라서 크게 재밌는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같은 명품 브랜드의 컬렉션이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은 마케팅을 탓해야지 디자이너를 비롯한 아뜰리에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들만의 예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의 컬렉션 작품을 볼 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보듯 해석해보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듣는 예술, 보는 예술, 먹는 예술을 넘어 입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입는다는 생각을 하면, 하나의 옷을 만들기 위해서 드는 인건비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오뜨 꾸뛰르 아뜰리에에서 요구하는 비싼 가격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는 늘 생각해요. 디올 하우스에서 디자이너들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아뜰리에라고. 디올 하우스의 모든 보배가 모든 소중한 뿌리가 아뜰리에에 남아있죠. 40년 또는 44년 동안 여기서 일하신 재봉사들도 계십니다. 함께 어울리고 서로 소통하고 그렇게 풍요로워지는 거죠."
디올 앤 아이 중에서
Relative contents
-
- 영화의 두 번째 미래
7★/10★
〈썸머 필름을 타고!〉는 청년/성장영화에 SF 요소를 곁들인 영화다.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주인공 ‘맨발’은 심혈을 기울여 시나리오를 집필한 사무라이 영화 〈무사의 청춘〉이 촬영 지원작 심사에서 탈락해 매우 우울한 상태다. 맨발은 자신의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만 하는, 이름부터 맘에 안 드는 낯 간지러운 영화 〈사랑한단 말밖에 할 수 없잖아〉에 밀렸다는 게 영 불만이다.
그래서 결심한다. 학교에서 지원받지 못하더라도 자신만의 걸작을 만들어내기로. 맨발은 아르바이트로 촬영 예산을 모은다. 동시에 “너희들의 청춘을 내가 좀 살게”라는 멋들어진 대사로 절친한 친구 ‘킥보드’, ‘블루 하와이’를 비롯한 영화 스태프도 꾸린다. 소리만 들어도 투수의 구질을 알아채는 야구팬 소년은 음향감독, 바이크에 요란한 조명을 달고 다니는 반항아는 조명감독이 되는 식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분명한 애호하는 마음을 가진 청춘의 한 순간이 맨발의 영화로 모이기 시작한다.
마지막은 배우다. 맨발은 허름한 소극장에서 열린 사무라이 영화제에서 만난 린타로라는 남자를 주연으로 점찍는다. 린타로는 영화 출연을 완강히 거부하지만 맨발의 끈질긴 설득 끝에 팀에 합류한다. 드디어 시작된 촬영. 그러나 현장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의 연속이다. 열정 충만한 아마추어들이 어설프게나마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이 영화의 큰 재미 요소다. 맨발은 이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마냥 행복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 린타로가 엉겁결에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다. 사실 린타로가 맨발의 부탁을 거절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린타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왔다. 그가 증언하는 미래는 맨발에게 기쁨과 절망을 함께 안긴다. 기쁨은 맨발이 미래에 영화계 거장이 되었다는 데서 온다. 고등학고 영화 동아리에서조차 예산을 지원받지 못했던 맨발이 영화계 거장으로 성장했다니 엄청난 소식이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맨발이 거장이 된 미래는 영화가 사라진 시대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는 미래 사람들은 2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감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1분짜리 영상조차 너무 길다. 그래서 몇 초 분량의 쇼츠 영상이 영화를 대체한다. 린타로의 과거 여행은 여기서 시작된다. 영화가 사라진 시대, 거장이 된 맨발의 팬인 린타로는 상영기록은 있으나 필름은 남아 있지 않은 맨발의 첫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영화 촬영이 결국 폐기될 장르의 역사를 쌓는 일일 뿐이라는 데서 오는 허무한 아릿함에 맨발의 고뇌는 점점 깊어진다. 그러던 중 첫 번째 변곡점이 찾아온다. 맨발의 팀이 공유하는 정서가 있다. 사무라이 영화가 경쟁작인 멜로 영화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즉 자신들만이 ‘진짜’ 영화를 찍고 있다는 자의식이 그것이다(이것은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맨발의 절친한 친구인 블루 하와이에게는 말 못 할 비밀이 있다. 사실 그녀의 진짜 취향은 멜로 영화다. 맨발과의 우정 때문에 촬영을 돕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몰래 로맨스 만화를 보고, 〈사랑한단 말밖에 할 수 없잖아〉 촬영 현장을 궁금해한다. 맨발과 그의 팀이 공유했던 팀 스피릿이 정작 팀원의 실재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있던 셈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블루 하와이의 솔직한 마음을 알게 된 맨발은 불의의 사고로 촬영에 위기를 맞은 〈사랑한단 말밖에 할 수 없잖아〉 팀에 블루 하와이의 출연을 제안한다. 맨발이 블루 하와이 사건을 계기로 ‘진짜’ 영화, 더 ‘우월한’ 영화 따위는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맨발은 블루 하와이와 〈사랑한단 말밖에 할 수 없잖아〉의 감독에게서 멜로 영화 역시 승부를 다룬다는 사실을 배운다. 어떤 스토리와 장르에 담아내는지가 다를 뿐, 사무라이 영화와 멜로 영화는 승부라는 공통의 주제에 천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맨발은 현실의 경험으로 영화 세계를 확장한다. 그리고 또다시 영화적 깨달음을 현실의 실천으로 전환한다. 한층 성장한 맨발 앞에 두 가지 최종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사라질 운명의 영화를 위한 승부고, 둘째는 린타로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에 관한 승부다.
맨발에게 영화와 현실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두 승부는 하나의 승부로 결합된다. 맨발은 동아리 발표회에서 한창 무르익은 〈무사의 청춘〉 상영을 중단한다(이 장면은 〈썸머 필름을 타고!〉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그러고는 즉석에서 배우들을 불러 모아 디렉팅하며 기존 결말과는 다른 새로운 결말의 영화를 연출한다. 두 사무라이가 적당히 화합하며 공존하는 결말 대신 모든 것을 걸고 결투하는 결말, 즉 진정한 승부로 영화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맨발의 지시에 따라 즉석에서 바뀐 결말을 연기하는 배우들 그리고 그 과정에 동참하는 관객으로 인해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 이어 영화와 연극의 경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여기가 바로 맨발의 승부처다. 영화가 사라지는 미래를 바꿔보겠다는 다짐,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영화가 있다면 영화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이를 버무려내는 영화의 연극적 연출 말이다. 맨발과 린타로가 검 대신 빗자루를 들고 무대에서 즉석으로 펼쳐내는 연기와 그들의 눈빛은 말한다. 영화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많은 이들이 극장가의 부활을 이끌 주요 키워드로 4D, 4DX, 스크린X, 아이맥스, 돌비시네마 등의 특수 상영관을 꼽았다. 실제로 화려한 스펙터클을 선보인 영화의 특수 상영관 관람이 고사 직전인 극장의 희망이라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쇼츠 플랫폼 성장으로 영화의 자리가 위협받고, OTT 플랫폼의 대중화로 ‘극장에서 볼 영화’를 고르는 관객의 기준이 까다로워진 시대에 위기를 맞은 영화 산업이 나아갈 ‘첫 번째 미래’로 화려한 스펙터클을 극대화하는 특수 상영관을 꼽는 분석에는 합당한 데가 있다.
그러나 단일한 미래는 늘 균열의 가능성을 품는다. 모두의 욕망을 충족해주지도 않는다. 마츠모토 소우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썸머 필름을 타고〉를 기획하던 해에 5분, 1분짜리 짧은 드라마 작품 의뢰를 여럿 받았다고 밝혔다. 영화를 찍고 싶었던 감독은 자신의 욕망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는 대신 영화의 ‘또 다른 미래’에 천착하기로 마음먹었다. 맨발과 마찬가지로 연극적 방법론을 차용함으로써 말이다. 〈썸머 필름을 타고!〉 촬영은 배우, 스태프에게 대략적인 설정만 전달한 후 이후의 전개는 모두 현장의 즉흥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진행됐다고 하는데, 이는 영화보다는 연극에 더 어울리는 현장성과 그로 인한 생생한 감정선이 이 영화를 해석하는 키워드일 수 있음을 가늠케 한다.
마츠모토 소우시 감독의 방법론과 메시지에는 스펙터클의 극대화라는 영화의 첫 번째 미래가 품지 못한 ‘두 번째 미래’가 잉태되어 있다. 쇼츠 영상이 대세가 되고, OTT로 개봉 영화를 곧바로 즐길 수 있는 시대일수록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 이른바 비(非)상업영화의 영화관 상영은 중요해진다. 이들 영화는 인물의 감정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을 긴 호흡으로 전한다. 줄거리만 봐서는 뻔해 보이는 영화라도 숨 죽여 2시간 동안 영화를 따라가고 나면 마치 내가 그 인물이 된 것 같은 진한 감동이 묻어나 ‘평온하고 안전한 세계’에 자그마한 파문이 인다. 즉 이들 영화는 관객에게 자신의 세계관을 설득하기 위해 ‘승부’를 건다. 뉴스의 단신으로 접한다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괴상한’ 존재와 사건들이 인식 가능한 세계 ‘내부’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쇼츠 영상과 OTT에서 맛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영상 경험이 쇼츠에 익숙해지고, 언제든 끊어 볼 수 있는 OTT에 맞춰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삶’을 느린 호흡으로 담아내는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존재가 사실은 우리의 이웃임을, 우리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하게끔 해주는 영화를 포기할 수 없다. 영화관에서만 가능한 2시간의 ‘강제된 감상’이 필요한 이유다. 〈썸머 필름을 타고!〉가 보여준 길, 즉 위기를 맞은 영화에 대한 다소 낭만적인 ‘구닥다리’ 믿음과 연극의 현장성 차용, 그리고 이로써 가능해지는 세밀한 감정 전달은 영화의 두 번째 미래를 위한 최적의 길이다. 10초로 줄이기가 불가능한, 중간에 끊어 봐서는 그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상업영화가 포괄하지 못하는 낯선 울림을 담아내는 영화가 가야 할 길이 여기에 있다.
마츠모토 소우시 감독과 〈썸머 필름을 타고!〉가 보여준 영화의 두 번째 미래는 결코 첫 번째 미래를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 네 번째 미래로 밀리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고 오래된 미래’는 영화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비관적 전망에 저항하는 든든한 토대가 되어 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곁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이것이 언젠가 거장이 될 맨발의 첫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김소미, “‘썸머 필름을 타고!’ 마쓰모토 소우시 감독 “좋아하는 마음의 힘!””, 《씨네21》, 2022. 07. 21.
-
- 한 방 샷건처럼, 인생은 1단계 계획으로
저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툭 뱉고 보니, 일전에도 분명 비슷한 고백을 한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이런 고백을 꽤 자주 할 만큼, 로맨틱 코미디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러브 액츄얼리> 좋아하고요, <어바웃 타임> 애정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에 다른 서브 장르가 한 방울씩 떨어진 영화도 좋아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에 좀비물 한 방울 떨어진 <새벽의 황당한 저주>도 깔깔대며 보았죠.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삶이 지칠 때 틀어놓고 보기에 참 좋습니다. 평소에는 별로 안 끌리는데 갈증 날 때 한 번씩 마셔주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는 이온 음료 같아요. 자극적인 맛을 원해서 마시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시원한 느낌 때문에 마시는 그런 음료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없는 이온 음료까지 사랑해줄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맛은 중요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시원할 뿐만 아니라 맛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올해 본 영화 중에 제일 재밌었어요. (4월에 이런 말 하기 조금 이르지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3월 22일(수)에 진행된 <샷건 웨딩>의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샷건 웨딩>은 2023년 3월 29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샷건 웨딩
Shotgun Wedding
제가 생각하는 '잘 만든 영화'는 의문이 남지 않는 영화입니다. 아무리 흥미로운 주제, 스토리, 캐릭터를 내놓아도 쓸데없는 의문이 남는 영화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죠. 물론 세상엔 일부러 답을 내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글자 차이지만, 질문과 의문은 크게 다릅니다. 질문은 대답하게 하고, 의문은 반문하게 하죠. 슬프게도 꽤 많은 영화가 황당한 의문을 남긴 채 끝을 내곤 합니다. 초반부에 이야깃거리를 마구 던져놓고 이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거나, 자극과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캐릭터나 대사를 되는대로 사용하거나, 비슷한 장르의 클리셰를 대충 갖다 쓰면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샷건 웨딩>은 깔끔했습니다. 거의 모든 장면에 의문이 남지 않았습니다. 대사 하나, 도구 하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였어요. 극 중에 등장하는 캐릭터, 대사, 도구는 한 번만 사용하고 버려지는 일이 없습니다. 잘 짜인 영화임을 증명하듯,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죠. 초반부에 던져 놓은 이야깃거리들도 중후반부에 걸쳐 빠짐없이 회수합니다.
극 중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는 도구로는, 이를테면 수류탄이 있습니다. 결혼식에 쳐들어온 해적들로부터 도망치던 신부 ‘달시’와 신랑 ‘톰’은 우연히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손에 넣습니다. ‘달시’는 안전핀이 빠진 줄 모르고 수류탄을 집었다가 한 손이 수류탄에 완전히 묶여버리죠. 이로 인해 여러 ‘웃픈’ 상황들이 연달아 펼쳐집니다. 하지만 수류탄의 쓰임은 단순히 '웃픈' 해프닝을 연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동안 두 사람을 불편케 한 이 수류탄은 추후 해적을 제압해야 할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수류탄의 사용법을 익힌 '달시'와 '톰'은 절체절명의 위급상황에서 다시 한번 해적의 수류탄을 재치 있게 활용하죠.
<샷건 웨딩>은 '외딴섬에서의 결혼식'과 '해적의 습격'이라는 영화의 시공간 안에서 맥락을 갖는 캐릭터, 대사, 도구들을 이처럼 명확한 쓰임을 가지고 다채롭게 활용합니다. 덕분에 관객은 호쾌한 웃음 외에는 어떠한 찝찝함도 없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 ⊙ ⊙
로맨틱 코미디답게 유머 요소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평소 웃음이 박한 편인데, 이상하게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만 보면 웃음이 빵빵 터집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해피 바이러스에 전염된 양, 한껏 웃고 돌아왔죠. 하지만 단지 웃음 취향이 잘 맞아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코미디 영화 속 대사가 웃음을 자아내려면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합니다. 첫째, 대사가 스토리의 흐름과 잘 이어질 것. 둘째, 그 대사를 뱉는 캐릭터가 사랑스러울 것. 그렇지 않으면 관객을 억지로 웃기려는 감독과 배우가 안쓰럽게 느껴지면서 몰입이 깨지고 말죠.
<샷건 웨딩>은 어땠냐고요? 잘 해냈습니다. 스토리의 흐름을 깨면서까지 관객을 웃기려는 대사를 넣지 않았고,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하나같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캐릭터들의 매력은 해적에게 인질로 잡힌 하객들이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인생의 고난과 서글픔을 어필하던 장면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자칫 억지웃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도 관객들은 하하호호 웃음만을 터뜨렸습니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그려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번역이 없었더라면 한국인인 제가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를 보고 하염없이 웃고 즐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엔딩과 함께 떠오른 "번역: 황석희"라는 자막을 보고는 이 작품의 번역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이유를 단번에 깨달았지요. (황석희 번역가는 영어 개그가 난무하는 <데드풀> 자막을 센스 있게 번역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적인 말맛을 살려 번역된 캐릭터들의 티키타카는 영화의 맛을 배가합니다. 일례로 영화 속에는 '달시'가 '톰'이 남성용 바지인 줄 알고 여성용 바지를 샀던 일화를 꺼내며 그를 약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때 바지가 너무 작아서 꼴 보기 싫었다는 대사는 "너 그때 꼬툭튀 장난 아니었어"라는 말로 재치 있게 번역되었습니다.
⊙ ⊙ ⊙
‘원 샷’으로 해치우는 샷건처럼, ‘인생을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는 한 가지 계획만으로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 <샷건 웨딩>은 코미디 영화답게 불편함 없이 웃기고, 로맨스 영화답게 사랑을 말하는 작품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에 인질극 한 방울 제대로 떨어뜨린 이 작품 덕분에 유난히 바빴던 일상에 행복을 조금 더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종이에 출력해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은 <샷건 웨딩>의 대사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Life is always gonna be chaotic. But what I know for sure is that I wanna go through all of it with you. It’s simple, really. Just a plan with one step.
Summary
내 결혼식이 박살났다! ‘달시’와 ‘톰’의 결혼식 당일,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에 참석할 모두가 섬에 모인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던 그때! 갑자기 들이닥친 해적으로 인해 결혼식장의 모두가 인질이 되고… ‘달시’와 ‘톰’은 무사히 혼인서약을 마치기 위해 목숨을 건 버진 로드를 걷게 되는데… 죽이든가, 죽든가!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제이슨 무어
출연: 제니퍼 로페즈, 조쉬 더하멜
-
- [JEONJU IFF 데일리] 기억의 파편을 통한 연대와 마음
여름의 카메라 Summer's Camera
Korea | 2024 | 83min | Fiction | 전체관람가 | Asian Premiere
▶Director
성스러운 Divine SUNG
▶Cast
김시아 이은솔 유가은 배영란 곽민규
▶시놉시스
아빠를 따라 사진을 찍던 여름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카메라에서 손을 놓게 된다. 그런 여름이 축구부 에이스인 연우에게 첫눈에 반해 고등학교 때 아빠가 쓰던 카메라로 홀린 듯 사진을 찍는다. 필름을 현상하자 그 속에는 고등학교 시절 아빠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있다. 여름은 사진들 속에서 아빠의 비밀을 보게 된다. 과연 여름은 첫사랑을 이루고 아빠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
#기억의 파편을 통한 연결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기억의 파편이자 그중에서도 필름은 직접 감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이다. <여름의 카메라>는 그런 기억의 파편을, 어느 ‘여름’의 기억을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면으로 보여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이어서 사용하는 여름은 현상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빠의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여름의 사랑은, 그리고 여름이 마주하는 아빠의 사랑은 필름과 참 닮아있다. 여름이 마주하게 되는 아빠의 사랑은 뜨거웠던 그의 계절 중 일부일 뿐이고, 그 사랑의 주인인 아빠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처럼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파편은 이제 필름이라는 물질을 통해 딸 여름에게 전해져 그녀의 관점에서 새로이 감각되고, 재생될 뿐이다.
기억의 파편, 감각되는 물질을 통한 이러한 연결은 <여름의 카메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재일조선인이나 조선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기억이나 홀로코스트의 기억처럼 역사적 기억이 후세대로 전승되는 과정에서 중요히 언급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 기억의 당사자, 체험의 당사자가 사라졌을 때 그 기억은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여름의 카메라>와 함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임흥순 감독의 <기억 샤워 바다>에서는 ‘옷’을 통해 디아스포라로서의 한 사람의 삶이 후대로 전승되고 있고, 작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영화 필름이 과거 단절된 영화와 인물을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은 필름을 통해 아빠와 이어지고, 새로운 인연과 연결된다. 그렇게 아빠가 쓰던 여름의 카메라는 하나의 매개로서 여름을 곳곳으로 연결하고 그녀의 일상에 스며든다.
#매개체로서의 필름과 여름의 연대
<여름의 카메라> 속 인물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끈끈하게 연대하는데, 그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고자 애썼다기 보다 그들의 첫 만남은 모두 의도치 않은 우연함으로 시작된다. 여름은 우연히 축구부 연우를 만나 셔터 소리가 들리는 듯한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필름을 현상하여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사진에 의해 아빠의 과거 기억과 마주하게 되며, 그 기억을 따라가다가 마루를 만난다. 그리고 이런 우연한 만남은 따뜻한 연대로 이어진다. 이때 여름의 중요한 매개체는 ‘필름 카메라로, 여름이 사진을 찍어주고 현상하고, 그 실물을 다시 누군가와 나누는 과정을 직접 실천하며 인물들과 그녀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진다.
<여름의 카메라>에서 필름이 인물들 사이를 연결하고, 단절된 무언가와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여름의 커밍아웃과 정체성 또한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여름이 가장 가까운 절친인 민정에게 자신이 여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할 때, 민정은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하며, 여름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현상된 사진 덕에 마루에게는 의도치 않게 첫 만남부터 연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는데, 이것은 당혹스럽거나 난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루와 공통분모를 형성함으로써 그와 더욱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고, 여름 자신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함으로써 연우와 마음을 트고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여름의 카메라>에서 여름의 정체성은 인물들 간의 연대를 더욱 견고하고 단단히, 친밀하게 만드는 것이 되고,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때로는 함께 성장하는 친구가, 때로는 유일하게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되며 다양한 형태로 연대하고, 함께 성장하며 순수하고도 뜨거운 계절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과 다양한 형태의 연결을 꿈꾸게 한다.
감독은, 5/5일 진행된 <여름의 카메라> GV에서 ‘밝은 퀴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한 점에서 <여름의 카메라>는 감독님이 목표하신 바에 아주 부합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의 푸르른 배경과 따스한 색감은 주인공들의 통통 튀는 말투와 어우러져 햇살 같은 그들의 청춘을 돋보이게 하고, 인물들이 내뱉는 툭툭 내뱉는 진솔한 마음들은 숨기거나 걱정하고, 끙끙 앓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와 나눌 수 있는 것,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됨으로써 인물의 성장과 미래를 향한 여정에 기여한다. 여름의 사진처럼 그들의 사랑과 아픔, 청춘과 우정은 이내 지나가 붙잡을 수 없겠지만, 그들이 나눈 설렘과 기억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 4. 30. ~ 2025. 5. 9.
▶상영일정
2025. 05. 03 (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7:00 (GV)
2025. 05. 05 (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14:00 (GV)
2025. 05. 06 (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3관 20:30
-
- 불면의 밤이 이제 그만 멈출 수 있도록
아침이 밝기 전에 겨울 노래를 다 익혀야 해요.
도돌이표 사이 반복해 흐르던 불면의 밤이 이제 그만 멈출 수 있도록.길상호, '겨울의 노래', 『우리의 죄는 야옹』
늦은 밤, 누군가의 집 앞에서 서성이는 한 여자. 들어갈까 말까,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서기를 반복. 결국 문을 두드린다. 어떤 남자의 집이다. 이웃에 살지만 데면데면하고 서로 잘 알지는 못하는 사이인 두 사람. 집 안을 흘끗거리는 여자를 보고 남자는 어색하게 집 안으로 안내한다. 뜸을 들이며 머뭇거리던 여자가 본론을 꺼낸다.
"괜찮으시면 언제 제 집에 오셔서 같이 주무실래요?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냥,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잠들 때까지 얘기하면서 밤을 보내자는 거죠.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생각해보겠다고 한 남자는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여자의 집에 전화를 건다. “어제 이야기한 것 말인데, 좋아요.”, “언제가 좋을까요?”, “내일 밤?” 2014년 작고한 켄트 하루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2017)은 위와 같이 시작된다. ‘애디’(제인 폰다)는 남편과, ‘루이스’(로버트 레드포드)는 아내와 각각 사별한 뒤다. 두 사람은 70대고, 혼자 살고 있다. 이를테면 동네 커피숍에서 또래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고, 정원을 손질하는 등 소일하며 살던 두 사람은 서로가 수십 년을 이웃하며 한 동네에 살았다는 것에 놀라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밤에 우리 영혼은>은 흔하게 떠올릴 법한, 황혼의 로맨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혼자라는 삶에서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 없는, 누구나의 보편적인 외로움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타인과 함께 있지 않아서 찾아오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의 적막을 견디기 어려울 때 생기는 외로움. 처음에 ‘루이스’는 동네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 쓰여 ‘애디’의 집 뒷문으로 출입하지만 ‘애디’는 그가 앞문으로 들어오길 원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고독감은 누군가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애디’는 용기를 낸 것이다. 비슷한 취향이나 세계관을 가진 타인과 나누는 대화가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을 외로움을 인정하면서.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 어머, 당신도 행복할 자격 있어요. 그렇게 안 믿어요? 지난 두어 달, 그리된 것 같아요. 이유는 뭔지 몰라도요.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 여전히 회의적인 거죠? 모든 것은 변하니까요.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김재성 옮김, 뮤진트리, 2016, 111쪽.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라는, 박연준 시인이 프리다 칼로에 대해 쓴 책 제목을 떠올린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있다는 느낌. 자동차 소리나 밖을 지나는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 홀로 불 켜진 편의점과, 영업 마감 시간을 앞두고 드문드문 손님이 앉아 있는 작은 술집. 밤은 조용한 시간이어서 다른 사람보다는 혼자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 시간이다.
‘손만 잡고 자는’ 영화 속 두 사람을 보면서, ‘함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막연하게 떠올린다. 혼자인 낮에는 커피숍에 앉아 책 한 권을 낀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점원을 흘끗 관찰하기도 하지만 혼자인 밤에는 반겨주는 이 없는 집에 들어가 어둠과 적막을 뚫고 침실이나 서재로 향한다. 음악을 틀어두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에 몰입하는 건 혼자임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
이 글 역시 새벽에 쓰고 있다. 몇 명일지 모를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글보다 몇 명인지 아는 특정 소수에게 닿는 글이 더 쓰고 싶은 글이라고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바로 지금과 같은 마음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금 당장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한 외로운 사람이라 의식하지는 않는다. 실은, 혼자서 꽤 시간을 오래 잘 보내는 편이기도 하고. 그러나 이 글이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 생각하면,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말 걸기’가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괴롭거나 외롭지 않게 된다. 외로운 영혼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내서 건네는 대화로 혼자의 두 밤을 두 사람의 한 밤으로 채워가는 <밤에 우리 영혼은>의 이야기는 대단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적적한 밤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빛을 밝히는 작고 은은한 독서용 램프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 글을 하루 일과를 끝마친 밤에 읽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하자면, 물리적 거리와 시간을 넘어 생면부지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된다. 밤에 우리 영화는요, 하고 말을 걸듯이.
넷플릭스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포스터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김동진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이젠, 평범해질대로 평범해진 디즈니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는 자사의 61번째 작품이자 "디즈니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작품이다.
이를 맡은 사람으로는 <빅 히어로, 2014>의 감독 "돈 홀"과 함께 전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2021>과 합을 맞추었던 "퀴 응우옌"이 이름을 올렸고, "제이크 질렌할 - 데니스 퀘이드 - 루시 리우"가 출연하였다.
근데, 언제부터 였을까? -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이렇게나 기대를 안 되는 것이 말이다!전설적인 모험가 "아서 클레이드"의 아들. "서처"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에 자신과 함께 모험을 했던 동료 "칼리스토"가 도움을 청하고 "서처"는 이에 못 이기는 척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근데, 오래전에 실종되었던 아버지 "아서"와 재회하게 되는데...1. 익숙해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험들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의 이야기에서도 직접적으로 "모험"이 제시되는 것으로 해당 작품이 "어드벤처"라는 건 두말하면 입만 아프겠지? - 하물며, 포스터의 폰트는 <인디아나 존스, 1982-2008>시리즈를 연상케한다!
이외에도 <미이라, 1999-2008>와 <캐리비안의 해적, 2003-17>시리즈 등. 여러 작품들로 파생되었을 만큼 본 작품이 관객들에게 보여줄 장면들과 시퀀스들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그런 점에서 맞이하는 <스트레인지 월드>의 볼거리들은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해당 작품을 보기에 앞서 "모험"을 대하는 두 종류의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영화와 같은 보이는 매체인 만큼 '기대감과 공포라는 이중적인 감정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에 시각적인 효과는 필수이다!
앞선 작품들이 비슷했음에도 각기 다른 작품으로 기억하는 데에는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것이 의아할 만큼 살벌한 비주얼들이 있기 때문이다. - 살 속으로 파고드는 벌레와 얼굴에 달려있는 문어 다리들을 기억하라!2.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
그런 점에서 <스트레인지 월드>, 역시 살벌한 비주얼을 뽐내는 데에 성공한다.
물론, "디즈니"와 "애니메이션"인 만큼 과격하진 않지만 각인시키는 데에는 충분한 징그러움이 아닐까?
여기, 우당당탕거리는 추격전까지 "어드벤처 영화"가 갖춰야 하는 미덕은 다 있으니 영화를 즐기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다만, 캐릭터들과 이야기 형성에 있어 아쉬운 점들을 노출된다.영화 <스트레인지 월드>의 주인공 "아서"와 "서처", 그리고 "이든"까지 이들을 한데 묶어내는 주제는 부자(父子) 관계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에 자신과 같은 성의 부모의 행동들을 따라 하며, 사회성을 익히기에 그 누구보다 친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들이 엄마를 두고서, 아빠와 경쟁은 펼치는데 이런 이유에는 자신이 아빠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여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있다.이런 모습을 극 중. 자신의 아들 "이든"에게 아버지 "아서"의 모습을 수시로 겹쳐 보이게 함으로 경쟁을 넘어 혐오의 감정을 일깨우게 만든다.
3.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한계가 보인다. 보여!
이렇듯이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는 "가족의 화합"으로 이야기를 가져온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발암캐"라고 정리될 만큼 답답한 감정만을 가져오며, "악당"의 존재에서도 이어진다.
앞서 "이모텝"과 "데비 존스"가 무서운 비주얼만으로 기억되는 건 아닌 것처럼 "부활"과 "사랑"이라는 저마다 확실한 동기들이 있었다.
본 작품에서도 "공리주의"라는 시점에서 동기는 확실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는 기준에 금방 정리되고 만다.물론, 이후 야심 차게 준비한 "반전"도 있지만 이미 김이 빠질 대로 빠져서 크게 감흥이 오지 않는다.
· tmi. 1 -극 중. "이든"은 "게이"로 등장한다.
-
- 가족의 의미
미니언즈를 사랑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던 때 영화 《슈퍼배드》를 봤다. 이 귀여운 친구들을 그동안 외면했다니,, 옛날에는 왜 사람들이 미니언즈에 열광하는 줄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다. 그냥 귀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여움을 봐보고자 미니언즈가 나오는 작품들을 섭렵중이다.
영화 《슈퍼배드》 시놉시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명소들을 한 번에 훔쳐버린 기상천외한 주인공 그루. 그는 세계 최고의 악당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절대 훔칠 수 없는 것을 하나 훔치기로 마음 먹는다. 그것은 바로 달!!!달을 훔치기 위한 최신식 장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아원의 세 소녀들을 맡게 된 그루는 세 소녀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소녀들을 키우는 일임을 알게 된다.
소녀들에 의해 점차 사랑을 배우고 변화되어 가는 그루. 과연 그는 달을 훔칠 수 있을 것인가? 소녀들과 그루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슈퍼배드》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미니언즈 이렇게 어른스러울 일이야?
사실 영화 《슈퍼배드》에서 미니언즈는 그렇게 큰 역할이 있는 존재들은 아니다. 미니언즈가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이기에 그 의의가 있는 정도다. 여기서 인기를 얻은 미니언즈가 미니언즈라는 타이틀을 가진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나나~나나나나~ 미니언즈들의 그 노래만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얼마나 귀여운 악당일까 기대하면서 봤는데 굉장히 어른스러운 생명체였다. 그루가 은행의 대출이 막히자 파산할 처지에 놓이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미니언들에게 말을 한다.
하지만 미니언들은 나 이만큼 돈있어!! 이것도 팔면 되지 않을까? 하는 티끌모아 태산 정신을 실천하며 그루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그저 장난기 많고 어린아이 같았던 미니언들의 모습에서 그루를 살리고자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랑이 필요했던 그루
그루는 사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그루의 어머니는 니가? 라는 말을 하며 그루의 호기심과 성장동력을 무참히 짓밟은 편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루가 정말 슈퍼배드보이, 저암ㄹ 나쁜 사람이 되고나서야 그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루가 실제로 피라미드를 훔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돌아서고 만다.
그저 결과로서만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밑에서 그루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악당과 대적하기 위해 아이들을 입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점차 물들어가면서 ‘같이’의 대한 가치를 일깨우고 점차 사랑이 무엇인지 스스로 체득해간다.
난자리의 공허함
있을 때는 귀찮고 성가셨을지 모르지만 사라지고 나면 그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든자리를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 라는 속담이 있는 것 같다. 그루 역시 아이들을 입양하고 나서 물론 진심으로 그 아이들을 위해 입양한 것이 아닌 달을 훔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입양한 것이지만 입양 후 아이들이 이곳저곳 허락도 안받고 쏘다니며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모습에 굉장히 짜증낸다. 하지만 박사의 결단으로 아이들을 파양한 뒤 그는 달 포획에 집중하면서도 굉장히 공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결국 그 빈자리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아이들의 공연장을 찾아가고 아이들이 납치되자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걸어가며 아이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정을 주지 않겠다며 굿나잇 키스를 하지 않던 그가 직접 동화책을 만들어주며 아이들에게 잘자라는 인사를 하게 된다.
영화 《슈퍼배드》 속에서는 가족이 구성됨에 있어서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반목이 일어나고 그 반목을 얼마나 잘 풀어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의지를 많이하고 있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악당의 이야기라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웠던 악당 아닌 악당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슈퍼배드》. 미니언즈의 매력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 왓챠 7월 4주 신작 영화
[WEEKEND CHOICE MOVIE] #왓챠영화 #왓챠신작 #왓챠
#비와당신의이야기 #오문희 #아웃포스트 #라이더스오브저스티스 #손오공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
- 영화 아저씨 명대사 모음
- BGM
Disappeared - Without You
-
- 영화 <시카다 3301> 메인 예고편
의문의 웹 조직에게 지능 테스트 메시지를 받은 천재 해커 ‘코너’가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복잡한 퍼즐을 푸는 과정을 담은 코드브레이킹 스릴러
-
- 쿠팡플레이 <동조자> 메인 예고편
박찬욱 감독 신작 [동조자] 메인 예고편 공개 쿠팡플레이 독점 HBO 오리지널 리미티드 시리즈 4/15(월) 저녁 8시 오직 쿠팡플레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