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04 10:37:38
[BIFF 데일리]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
영화 <청설> 리뷰
[BIFF 데일리]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
영화 <청설> 리뷰
줄거리
손으로 설렘을 말하고 가슴으로 사랑을 느끼는, 청량한 설렘의 순간 대학생활은 끝났지만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 고민하던 ‘용준’(홍경). 엄마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도시락 배달 알바를 간 ‘용준’은 완벽한 이상형 ‘여름’(노윤서)과 마주친다. 부끄러움은 뒷전, 첫눈에 반한 ‘여름’에게 ‘용준’은 서툴지만 솔직하게 다가가고 여름의 동생 ‘가을’(김민주)은 용준의 용기를 응원한다. 손으로 말하는 ‘여름’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더 잘 듣기보단 더 잘 보고 느끼려 노력하지만, 마침내 가까워졌다 생각하던 찰나 ‘여름’은 왜인지 자꾸 ‘용준’과 멀어지려 하는데…
감독: 조선호
출연: 홍경, 노윤서, 김민주
유난스러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길목. 영화 <청설>이 여름, 가을 자매. 용준과 함께 부산을 찾아왔다.
영화를 보기 전엔 ‘누가 봐도 여름에 딱 맞는 영화인데 왜 이 애매한 시기(정식 개봉은 11월)에 관객들을 찾아온 걸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싱그러운 여름과 배우들의 말간 얼굴은 이 아쉬움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걸로도 모자라 사뭇 차가워진 공기에 풋풋하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모든 청춘 배우들에게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데뷔 초 또는 20대에 꼭 풋풋한 청춘 로맨스를 찍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보기 부끄러울 만큼 오글거리는 청춘물도 좋고 올타임 레전드로 남을 로맨스를 찍어준다면 더 좋다.
올해 나이 29세로 (촬영 당시엔 28세)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홍경 배우는 <청설>을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20대 사랑 이야기’라고 하며 이 영화를 내보이게 된 게 굉장히 긴장되고 설렌다고 언급했다.
<청설>속 용준은 그의 긴장과 설렘을 그대로 안고 부드럽고 예쁘게 피어난다. 그리고 앞서 <20세기 소녀>로 부산을 찾았던 노윤서 배우와 첫 청춘 영화 필모그래피를 쌓은 김민주 배우는 여름, 가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해사한 웃음을 흩뿌리며 앞으로 두 배우가 보여줄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청설>은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떠오르는 젊은 배우들의 여름 청춘 로맨스라. 누구나 좋아할만 하지만 자칫하면 무색무취의 영화가 될 위험이 있는 소재를 선택한 이 영화의 차별점은 사랑을 뻔하게 전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의 주인공인 여름, 가을, 용준이 서로 수어를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말과 감정은 목소리가 아닌 손과 표정을 통해 표현되는데, 배우들의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은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 담백하고 진실하며 또 새롭다.
일렁일렁 찾아온 사랑
용준과 여름, 가을의 이야기는 텅 빈 자기소개서와 일렁이는 수영장 물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자기소개서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용준, 물속에 있는 동생 가을만을 생각하다가 물 밖에 있는 자신을 잊어버린 여름. 두 사람은 가을이 희망차게 물길을 가르고 있는 수영장에서 처음 만난다.
용준은 수영장 입구에 들어오는 순간 반대편에 서있는 여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일렁이는 수영장 물처럼 용준의 마음에도 일렁일렁 사랑이 찾아온다. 수영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용준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듯한 설렘을 느끼며 열심히 여름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가 담고 있는 관계, 소통에 대한 메시지 또한 중요하지만 가볍게 훑어만 보더라도 일단 <청설>은 정말 예쁘고 풋풋한 작품이다. 따사로운 여름 햇볕과 초록 잎에 둘러싸인 용준과 여름의 모습, 그들의 반짝이는 눈만 바라보더라도 ‘아, 청춘이다’ 싶은 감탄과 만족감이 자연히 차오른다.
사랑, 서로의 세상을 이해하는 것
용준은 외동아들, 여름은 떨어져사는 부모님을 대신해 수영 선수가 꿈인 동생 가을을 보살피는 언니다. 용준은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하고 여름은 손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소통한다.
용준은 이 환경과 소통 방법의 차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조금 다르면 어떤가. 똑같은 방법을 이용하면서도 소통이 안돼 싸우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한데! 용준은 중요한 건 진심이고 자신이 조금 더 배려하고 조심하면 이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름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용준, 여름. 그리고 가을과 그들의 가족들이 가진 고운 배려심은 소통의 부재와 오해를 낳기도 한다. 수어를 사용할 줄 아는 용준은 다른 이들보다 여름, 가을 자매를 더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용준과 여름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여름, 가을 자매 역시 서로를 위해 노력하지만 털어놓지 못할 부채감을 갖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진 진심과 온전한 이해라는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용준, 여름, 가을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의 세상으로 뛰어든다.
홍경 배우는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은 후 이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서로의 세상을 단단하게 구분 짓고,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수와 아픔이 넘치는 이 시대에 <청설> 같은 영화는 꼭 필요하다.
풋풋한 온기를 담은 영화 <청설>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만나볼 수 있으며 11월
6일 극장을 통해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상영 시간]
10월 4일(금)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0월 9일(수) 17:30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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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할 할리우드를 추앙하라!
8★/10★
1926년. 할리우드 인근의 고즈넉한 저택에서 비밀스러운 파티가 열린다. 파티의 분위기는 저택이 풍기는 느낌과는 정반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화려하고 소란스러우며 원초적 쾌락을 탐닉하는 광란의 유흥이 펼쳐진다. 그리고 세 명의 손님. 첫 번째는 잭 콘래드. 그는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영웅으로, 별 볼 일 없는 배우라는 직업을 모두가 동경하는 스타의 지위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두 번째는 넬리 라로이. 그녀는 아직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스스로가 ‘스타’로 태어났다고 확신하며 기회를 모색한다. 마지막은 멕시코 출신의 제임스 맥케이. 그는 영화 일을 하고 싶으나 지금은 영화계 거물이 주최한 파티에서 서빙을 할 뿐이다. 정상에 있는 인물 하나, 영화판에서 상승하고자 하는 인물 둘. 서로 다른 욕망과 위치를 가지고 할리우드에 걸친 세 사람이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조우하고, 이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할리우드는 지금과는 많은 것이 달랐다. 그 무엇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만이 업계에서 살아남았다. 파티에서 우연히 잭의 눈에 들어 그의 로드 매니저가 된 매니가 마주한 도전을 보자. 매니는 임금 투쟁을 벌이는 엑스트라 출연자들의 무리와 전쟁 장면을 촬영하다 실제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에 넋이 나간다. 설상가상으로 촬영 중 카메라가 망가져 해가 지기 전까지 새로운 카메라를 구해오라는 임무도 떠맡는다. 그러나 매니는 우격다짐으로 이 모든 일을 ‘해결’한다. 과정은 필요 없다. 결과만 좋으면 만사가 오케이다. 그것이 1920년대의 할리우드였다. 매니는 빠르게 잭의 신임을 얻고, 영화판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간다.
넬리 역시 기회를 얻는다. 한 영화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할 예정이었던 여성이 마약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자 넬리가 얼결에 기회를 얻는다. 자신이 타고난 스타라는 넬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집, 가족, 과거를 생각하기만 하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녀는 촬영장에 투입되자마자 놀라운 감정연기로 두각을 나타내고, 감독의 눈에 들어 여러 영화에 연달아 출연한다. 매니가 그러하듯, 넬리 역시 빠르게 자신이 동경하던 자리인 ‘스타’에 도달한다.
매니와 넬리만 치열한 것은 아니다. 이미 스타인 잭 역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한다. 영화가 수많은 대중에게 위안을 주는 장르라는 데, 자신이 그런 영화를 일으켰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 잭은 영화가 새로운 예술적 실험으로 나날이 진일보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그 과정에서 영화와 자신의 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즉, 그는 영화의 변환기에서 스타 배우로서의 자기 입지가 여전히 탄탄하기를 소망한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은 셋 모두를 휩쓸며 소용돌이친다. 한 장르의 거대한 흐름이 바뀔 때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익숙한 방식으로 작업하던 수많은 사람이 나가떨어지지만, 새로운 장르에 적합한 수많은 사람이 금세 그 자리를 메운다. 새로 치고 올라온 자들이 뿜어대는 빛은 낙오된 자들을 잠시나마 추모하는 일조차 사치라 여겨질 정도로 밝고 환하다. 그리고 〈바빌론〉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드라마적 요소를 만들어낸다.
〈바빌론〉은 영화판의 변화에 휩쓸려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나지 않기 위한 세 인물의 투쟁을 스펙터클하고 격정적인 드라마로 펼쳐낸다. 그리하여 끝내 도달한 자리는 어디인가? 〈바빌론〉은 단호하고도 냉정하게 말한다. 영화라는 장르는 개개인의 흥망성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하다고.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던 평론가는 고작 ‘가십 칼럼니스트’라는 부고만을 남기고, 어렵게 기회를 얻은 흑인 뮤지션은 좌절한 후 다시 밴드로 돌아온다. 넋이 나갈 정도로 치열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잭, 매니, 넬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가 곧 나’라는 자칫 오만해 보이는 자부심을 현실로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들이지만, 영화는 스러진 개인이 아무리 위대할지라도 영원히 이어진다. 심지어 위대하게. ‘네가 아무리 영화를 사랑하고 헌신했더라도, 영화는 너 같은 것 하나 없어진다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영화는 이토록 '비윤리적'이다.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이 엄혹한 진실 역시 사랑해야만 한다.
〈바빌론〉은 영화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기도 하다. 대중이 매체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뀔 때마다 기존 매체는 '위기'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위기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쇼트 콘텐츠의 유행, OTT 플랫폼의 대중화라는 동시대의 경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바빌론〉에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이를 소비하는 방식을 다소 적나라하게 비난하는 장면(폭력배 맥케이의 동굴)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장면은 어딘가 튀는 느낌을 자아내 영화의 질감을 해친다. 그러나 '영화 예찬'이라는 맥락에서 이 장면은 필요하다. 영화가 그 어떤 도전과 위기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감독의 확신이 담겨 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영화를 버리고 떠난다 해도, 영화는 영원히 이어진다.' 그러니 망할 할리우드를 추앙하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뻔뻔스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바빌론〉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덧. 1952년작 〈사랑은 비를 타고〉를 함께 보면 〈바빌론〉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캐릭터 설정부터 오마주,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영화인들이 마주한 도전까지, 〈바빌론〉에는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많은 것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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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한 죽음일까, 강요된 죽음일까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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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에서 안락사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점이다. '안락사' 자체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토론 주제로 도마에 올라 왔다. 안락사의 역사가 오래된 스위스를 필두로 북미와 유럽 국가들이 안락사를 허용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고 있다. 이 보편적 흐름에서 특이하게도 아시아만 동떨어져 있는데, 아마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인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할 것이다.
<플랜75>는 집단주의 그 자체인 일본 감독의 영화이다. 북미나 유럽에서 제작되었다면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시아 국가에서 안락사를 주제로 하니 디스토피아적 판타지처럼 다가온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 때야 내가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지만, 이제는 거울을 보면서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언젠가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희한하다. 내 마음과 정신상태는 20대 초반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육체가 늙고 사회적으로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나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 궤도의 삶을 살지도 않는데 이따금 나이를 생각해 보면 당황스러워지곤 한다.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20대도, 30대도, 40대, 50대…. 90대인 우리 할머니도 그럴 것이다.
안락사 허용에 대한 관점은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죽을 권리'가 있다는 찬성과 윤리적인 측면의 반대다.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건 너무 추상적이라, 나는 그보다 '죽음을 강요'하므로 반대한다는 쪽에 힘을 싣는다. 안락사가 허용되면 아마도 죽고 싶지 않은데 죽어야 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도 노인복지가 개판인 우리나라에서, 왜 안 죽느냐는 핍박이 없을 리 없다. 나는 살고 싶은데 누가 죽으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있을까.
그럼에도 죽을 때 죽더라도 곱게 죽고 싶다. 겨우 연명만 하며 살고 싶지 않다. 치매에 걸린다거나 의료기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살아야 한다면 그 또한 끔찍하다. 적당히 살고 죽을래, 라는 말을 죽어가면서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대로, 75살에 고통없이 죽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오케이 하고 죽을 준비를 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플랜75>는 초고령사회에 접어 들면서,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안락사를 권하는 국가정책사업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몇 분간의 장면은 후에 이어지는 장면들과 매우 이질적인데, 한 청년이 집단주의적 선언을 하며 자결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일본인들의 정서를 살짝 내비치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가미가제식 자결을 보여 주는 건 감독이 일본인이어서일까? 썩 좋지 않았다.
아무튼 이후로는 호텔 청소부로 일하는 '미치'와 그의 친구들 이야기이다. 미치는 78세의 노인이지만 아직 경제활동을 한다. 젊은이들보다야 손이 느리기는 해도 아주 못할 만큼 늙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플랜75 정책이 발표되고 나서 시청 직원인 '히로무'는 정신없이 바쁘다. 노인들에게 플랜75가 얼마나 좋은 정책인지 설명하고 신청을 받느라 여념없다. 일시금으로 지원금도 받고, 고통없이 죽을 수도 있으니 천국 아닌가.
그저 공무원으로서 나라에서 하는 일을 성실하게 하던 히로무는 삼촌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제 친척이 안락사를 신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삼촌은 히로무의 부친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을 정도였다. 몇 년 만에 만난 삼촌은 늙고 비루하기만 하다.
각종 교량이나 도로 공사에 참여하며 지역에서 수도 없이 헌혈을 했던 헌혈증을 발견하면서, 삼촌에게도 젊고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음을 안다. 그 삼촌과 지금의 비루한 삼촌이 동일 인물일까. 개인의 연속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치도 마찬가지, 젊은 시절의 미치와 지금의 미치는 동일한 인물일까. 플랜75에 관심이 없었으나 아파트 퇴거 명령이 떨어지고, 직장을 잃으면서 미치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오직 안락사뿐이다. 문자 그대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떠밀리듯 플랜75를 신청하고, 미치는 전담 콜센터 직원인 '요코'와 정기적으로 통화를 한다. 통화를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지금의 감정에 대하여 털어 놓는다. 미치에게 결국 요코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데, 요코도 회사 몰래 미치를 만나기로 한다.
같이 볼링을 치는 순간들, 크림소다의 맛, 친구들과 모여 앉아 사과를 깎아 먹는 것, 해가 지는 노을이나 비가 오는 풍경. 그런 사소한 것들이 사람을 살게 만든다. <플랜75>에서는 일상적인 풍경들을 천천히 카메라에 담는다. 미치가 빨래를 걷고, 친구의 집에 놀러 가고, 삼촌이 조카에게 요리를 해 주고, 조카가 삼촌을 모시고 짧은 여행을 떠나는, 어쩌면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의 풍경.
플랜75에 참가하는 노인들에게는 지원금이 지급되는데, 초반의 히로무는 그들에게 그 돈으로 여행이라도 다녀 오라고 권한다. 그러나 삼촌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히로무의 감정이 서서히 변한다. 미치를 만난 이후 요코의 감정도 요동친다. 그들이 낡으면 폐기되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기가 막히도록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미치가 플랜75에 사인한 것은 자발적 선택일까, 강요된 선택일까. 바꿔 말해 죽기로 선택했을까, 죽으라고 강요받았을까. 미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옆 침대에서 약물을 투입받으며 죽어가는 남자를 보며 두려워했다.
인간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죽어야 할 만큼 삶이 더 두렵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에게 안락사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 예컨대 영원히 맑은 하늘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는 일몰을 볼 수 없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영원히 못 듣는다는 것. 그런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하루만 더, 한 번만 더, 이런 미련이 질질 샐 것만 같다.
그런데 또 늙을 만큼 늙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노인이 되었을 때 나에게 곱게 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기회를 놓칠까 싶기도 하다.
영화 <미 비포 유>를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 설정도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미 비포 유>에서 촉망받았던 젊은 사업가 윌에 대한 마음과, <플랜75>의 미치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달랐다. 어이없게도 나는 무엇을 응원했나 싶다. 내가 좀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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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75(Plan 75)
감독: 하야카와 치에
출연: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러닝타임: 113분
개봉: 2024.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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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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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력한 폭발이 불러온 감정의 분열
자신이 한 일이 복합적인 방향으로 뻗어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양한 결정을 하고 그것은 당연히 최선의 고민 끝에 나온 결과여야만 한다. 당연히 그것은 그 모든 주변 상황 속에서 얻은 최선의 결과일 것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그 성취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결정이 다른 방향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분명히 그것은 내 안위를 위한, 주변 사람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한 피해를 받게 된다.
전쟁이라는 소용돌이는 그런 아이러니를 무수히 만들어낸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여러 일반인들은 최전선에 투입되어 목숨을 걸고 적군에게 총을 겨눈다. 상대 적군으로 참여한 병사도 마찬가지다. 서로 총구를 겨누고 명령에 따라 상대방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 결정하나만으로도 우리 병사가 쏜 총탄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죽음의 총탄이 된다. 이렇게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는 전쟁 속에서 무수한 결정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합적인 고민과 감정을 만들어준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 팀장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개발 연구였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결국 핵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일 그리고 일본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했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오펜하이머라는 물리학자를 중심에 세워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나치에 퍼부울 원자폭탄을 개발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개발을 한 이후 정보 열람권을 놓고 작은 청문회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과거 회상을 섞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천천히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로는 미국 원자력 협회 소속인 스트라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장관 후보 청문회 과정을 보여주면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미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있다. 영화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원자폭탄 개발 성공의 과정을 대부분 보여주긴 하지만, 정말 이 영화가 관심이 있는 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의 감정과 생각이다. 그래서 오펜하이머의 복잡한 심경을 풍부한 음향과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가 느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것보다는 영화 속 오펜하이머의 변화되는 감정을 생각해 보면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과 후 꽤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서 많은 물리학자와 군인들을 설득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했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한 곳에 융합해 내기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여러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 압박을 이겨냈다. 원자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직후 오펜하이머의 모습에선 잠시나마 안심이라는 감정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본에 수많은 일반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은 조금씩 오펜하이머의 마음을 조여왔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경전의 말을 그 자신도 인용하듯,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사용 이후 정치인들이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서 꽤 불안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 그가 아인슈타인에게 나쁜 연쇄반응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가 가진 불안이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오펜하이머는 정치인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국가를 위해 최고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그는 메카시즘 광풍에 희생당하는 처지가 된다. 과거 공산당의 이론에 관심이 있었고, 동생을 비롯한 주변 사람이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어 결국 정치적으로 희생당하고 각종 권한을 모두 박탈당한다. 그 당시 오펜하이머는 왜 그렇게 정치적인 논쟁거리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저항했을까. 자신의 지위를 보존하는 데에 조금은 부족한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오펜하이머가 스스로 만들어낸 악마 같은 무기의 통제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방어함으로써 신무기에 대한 정보와 권한을 가지길 원했고, 심지어 그 당시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만)을 만나 손에 피를 묻혔다는 말을 하며 그가 개발한 핵무기의 위험성을 전달하려 했다. 비록 인류 모두를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지만 그 자신은 그 위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는 청문회 이후 가지고 있던 지위를 모두 박탈당하면서 그 자신의 자신감이나 뿌듯한 감정도 분열되어 조금씩 사라져 버리고 만다.
크리스토퍼 놀란식으로 만들어진 파워풀한 전기 영화
이런 감정의 큰 변화는 그의 개인 연애사에서도 볼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결혼 전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과 깊은 연애를 했다. 서로 무척 사랑했지만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진과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마치 원자폭탄을 개발하듯 엄청나게 깊게 빠져들었고, 원자폭탄이 폭발하듯 터졌던 두 사람의 감정은 그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 파멸을 맞는다. 진은 이후 감정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했고, 오펜하이머는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그의 아내인 캐서린(에밀리 블런트)과 결혼한 이후에도 진을 완전히 잊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진에 대한 죄책감이 평생 남은 것처럼 그가 주도해서 만들었던 원자폭탄과 폭탄 투하에 대한 죄책감 역시 평생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영화는 그런 그가 짊어진 죄책감을 다양한 영상효과와 편집으로 표현해 낸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묵직하고 건조한 이야기의 시간 구조를 교차로 구성하여 영화적 흥미를 높인다. 특히나 오펜하이머의 반대편에 서서 안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 스트라우스의 청문회 장면과 서사는 흑백으로 처리되어 그 당시 메카시즘이 행해져 흑백으로 나눠졌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다르게 보면 스트라우스의 서사와 오펜하이머의 서사가 충돌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데, 결국 두 사람의 간접적인 충돌과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에 오펜하이머의 주변부가 폭탄처럼 분열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번 영화에는 음악과 음향이 큰 역할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교차편집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건 영화음악이다. 이번 <오펜하이머>의 음악감독은 루드비히 고란슨이 맡았다. 그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한스 짐머가 도맡아 했지만, 그가 다른 영화 음악 작업일정으로 인해, 이번 신작에서는 루드비히에게 넘어갔다. 루드비히는 2019년 마블 영화 <블랙 팬서>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받은 바 있으며, 이후 <테넷>, <베놈> 시리즈의 음악도 작업한 바 있다.
다른 무엇보다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복합적인 내면을 가진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잘 전달하고 있고, 그가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영화의 주인공 역할도 훌륭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킬리언 머피의 필모 중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 외에 스트라우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레슬리 역의 맷 데이먼, 진역의 플로렌스 퓨, 캐서린 역의 에밀리 블런트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 인물의 대한 이야기를 놀란 식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영화다. 다양한 교차편집과 힘 있는 음악으로 가장 무섭고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냈던 인물이 겪었던 일과 느꼈던 감정이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원자폭탄이 개발되고 투하된 이후, 전 세계에 뻗어나간 원자폭탄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과 다양한 일들을 보며 오펜하이머는 어떤 생각들을 하며 남은 생을 살았을까.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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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크루즈 벌써 11번째 내한! 레전드 작품 모아보기
톰크루즈 <미션 임파서블> 밖에 모르신다구요??
톰크루즈 배우는 블록버스터부터 작품성 있는 작가주의 감독 영화에도 출연하는 올라운더 배우인데요. 7월 12일 개봉하는 <미션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아주셨습니다! 벌써 11번째 방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엄청난것 같아요 수많은 명작들을 남긴 톰크루즈의 영화들 같이 살펴봐요!
<탑건>
CINEPICK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멋진 항공기술과 끝내주는 OST
탐크루즈의 전성기 외모와 그 외배우들의 훌륭한 비주얼로
1980년대를 상징하는 할리우드 영화중 하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CINEPICK
레스터 역에 캐스팅된 톰 크루즈를 원작 작가는 맘에 들어 하지
않았고 캐스팅 논란까지 일었지만 개봉하자마자 미모뿐만 아니라
연기로도 ‘레스타’역을 깔끔히 소화해 개봉 후 이러한 논란은
쏙 들어가고 급기야 작가가 사과까지 했다고...
<바닐라 스카이>
CINEPICK
스토리가 좋고 톰과 최전성기의 페넬로페 크루스와
카메론 디아즈의 케미를 엿볼 수 있는 미스터리 로맨스
"당신을 만났던 순간부터 매순간 1분 1초가 삶이 바뀌어질 수 있는
기회였다는걸 깨달았다"는 작 중 마음을 울리는 명대사.
<레인 맨>
CINEPICK
로드 무비 장르로 선과 악으로 구분지어지지 않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을 그려낸 탐크루즈. 특히 60년대의 베트남 전쟁
참패 후 혼란스러웠던 시기 영화에도 엄청난 격변이 있었는데 미국
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담고 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면서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매그놀리아>
CINEPICK
PTA 감독의 영화로 엄청난 배우들을 한 데 모아놓은 작품.
연기, 작품성 모두 인정받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제 2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작에 여럿 이름을 올린 걸작.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톰크루즈 인생 최고의 연기로 꼽기도 하는데 후반부
아버지에게 죽지 말라며 오열하는 장면은 소름끼치는 명장면이다.
<미션 임파서블>
CINEPICK
톰 크루즈의, 톰 크루즈를 위한, 톰 크루즈에 의한 영화. 톰 크루즈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작품을 고르라면 바로 <미션 임파서블>시리즈!
할리우드 액션 첩보물의 간판 시리즈 중 하나며 20년이 넘게
제작되고 있다. 언론, 대중들의 평가가 대체적으로 좋으며 시즌을
거듭할수록 작품의 퀄리티, 평가가더 좋아지는 레전드 작품.
오는 12일 개봉하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벌써 톰 크루즈의 7번째 미션입니다. 이미 수많은 미션을 성공 시키고도 어떤
말도안되는 미션이 기다리고있을지 기대가되는데요
오랜만에 태블릿은 잠시 접어두시고 방에서 나와 시원한 극장에서
팝콘도 먹고 짜릿한 액션 즐겨보는게 어떤가요?
AMY였습니다 :) 매주 수,금 큐레이션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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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의 정수를 쌓아 올리다!
3시간 35분. 극장에서 인터미션 마주할 수 있게 한 <브루탈리스트>는 잊지 못할 영화적 경험을 안긴다. 영화 외적일 뿐만 아니라 영화 내적으로도 잊지 못할 경험을 전한다. 왜 이 영화가 이렇게도 길수밖에 없는지, 긴 시간 동안 왜 우리는 미국으로 간 한 유대인 건축가가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목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끝내 알게 된다. 마치 기나긴 터널을 묵묵히 버티며 끝내 밝은 빛을 맞는 느낌처럼, 영화는 끈질기게 자유를 갈망하는 라즐로의 고통의 나날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다.
파시즘을 피해 미국행을 택한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자유의 삶이 아닌 이민자로서 겪는 냉혹한 현실이다. 사촌의 일터에 얹혀살고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은 참기 힘들다. 부유한 사업가인 해리슨(가이 피어스)의 서재를 리모델링하는 일을 맡고 유려한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한 그지만, 결과는 되려 거친 항의를 받는다. 결국 사촌 집에서 쫓겨난 라즐로는 막노동으로 근근이 먹고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에게 버럭 소리치던 해리슨이 찾아와 과거 일을 사과하며, 자기 집에 초대를 한다. 이에 응한 라즐로는 그에게 건축물 설계 제안을 받는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여긴 라즐로. 하지만 예산, 시대를 앞선 건축 양식 등 장애물을 만나고, 또 다른 시련을 겪는다.
|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자유롭다는 착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노예다”
<브루탈리스트>라는 영화를 설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건 자유다. 극 중 등장하는 괴테의 말처럼 라즐로는 파시즘의 공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배에서 올라와 자유의 공기를 마신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온전한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깊은 늪이다.
영화 초반을 생각해 보면 라즐로에게 미국은 자유의 나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비친 것만 봐도 그렇다. 라즐로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배를 타고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에게 자유의 여신상은 온전히 그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여신은 온전히 그리고 똑바로 미국인들에게만 자유를 선사하는 아이콘일 수 있다.
이렇듯 라즐로는 이민자로서 본의 아니게 차별을 받는다. 한 예로 자신을 미국인으로 칭하고, 기독교 신자인 사람을 아내로 맞이한 사촌은 라즐로의 유일한 구원자인 동시에 철저한 배신자로 나온다. 이유는? 돈값을 못 해서다. 의도가 어떻든 그가 설계한 서재를 보고 화가 난 해리슨 때문에 공사비를 못 받은 사촌은 이 모든 잘못을 라즐로에게 돌리고, 그를 쫓아낸다. 아무리 혈연관계라 해도 미국에서는 이용 가치가 없는 이민자를 곁에 둘 이유가 없다. 어찌 보면 전쟁으로 고향을 도망쳐 나왔지만, 결국 돈의 논리로 선 미국에서도 그가 누릴 자유는 없는 것이다.
| 아메리칸드림 속에 숨겨진 이민자의 수난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라즐로에게 산타가 나타난다. 바로 해리슨이다. 라즐로가 만든 서재 덕분에 유명세를 탄 덕분에 해리슨은 라즐로를 곁에 두고 자신에게 특별하고,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건축물을 지어달라고 한다. 이를 승낙한 라즐로는 그 즉시 헤어 나올 수 없는 족쇄에 채워진다.
미국과 자본주의의 결정체로 보이는 해리슨은 돈으로 라즐로의 재능을 산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착취한다. 겉으로는 선의를 배푸는 척하지만, 그의 속내는 어떻게든 라즐로의 재능을 빼먹을 궁리만 하는 것. 이런 속내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데, 자신이 고용한 이들의 입을 통해 경비 감축 등의 이유로 라즐로를 압박한다. 라즐로의 예술성만큼이나 해리슨에게 중요한 건 돈이다.
생각해보면 해리슨이 이 건축물을 짓는 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것도, 마을 공동체를 위한 것도,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예술 건축물을 짓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명예 도취. 있어 보이기 위한 과식욕의 매개체를 만드는 것뿐이다. 예산 때문에 단 몇 미터를 줄이는 것에 분노하는 라즐로를 겉으로 이해하지만, 그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해리슨의 모습은 마약 같은 명성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가를 착취하는 자본가들의 모습과 일치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그 예술성을 탐닉하고 어떻게든 동경을 넘어 빼앗고 싶어 하는 모습. 해리슨을 연기한 가이 피어스는 ‘록펠러와 살리에리 중간쯤’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한 바 있다. 해리슨의 모습은 유럽의 아름다움을 오로지 돈으로 사서 만들려고 했던 미국의 민낯과도 일치한다. 이를 보여주듯 극 중 해리슨은 라즐로는 정신적으로, 성적으로 착취한다. 결국 미국은 이런 예술가들의 피와 땀, 눈물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66:1의 화면비, 비스타비전이 주는 폐쇄성<브루탈리스트>는 현재는 거의 쓰지 않는 비스타비전으로 촬영되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이 이 화면비를 고수한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라즐로 등 이민자들이 느끼는 폐쇄성을 오롯이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영화는 조피아의 취조실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지는 장면은 짙은 어둠 속 배 안에서 가판으로 올라가는 라즐로의 모습이다. 마치 감옥처럼 느껴지는 통로를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데, 보는 입장에서는 시네마스코프와 달리, 비스타 비전만의 폐쇄성이 느껴진다. 이후, 이 화면비로 보이는 라즐로의 여정 또한 어딘가 모르게 갇힌 듯한 느낌을 전한다.
결국 영화는 이 비율을 통해 미국에 와서도 온전히 자유를 찾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 듯한 라즐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각형의 감옥에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그의 모습. 어떻게 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그만의 감옥은 그가 마약을 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브루탈리즘을 소재로 한 영화는 건축처럼 대칭과 반복 등의 구조적 특징을 오롯이 펼친다. 조피아의 얼굴로 시작해 조피아의 얼굴로 끝내는 영화는 인터미션을 기준으로 1막 ‘도착의 수수께끼’, 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은 수미쌍관 구조를 가져간다. 특히 혼자던(1부), 가족과 함께 하던(2부)는 미국이란 땅에서 그는 자유가 아닌 감옥신세라는 걸 동일하게 보여준다. 극중 에르제벳이 말한 것처럼 이들에게 미국은 썩은 나라이며, 말을 하지 않던 조피아는 결혼과 동시에 약속의 땅이스라엘로 떠난다.
|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니라 예술이자 목적지!
끝내 완성한 건축물은 해리슨이 아닌 라즐로의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나라에서 죽어가는 예술혼은 끝내 지난한 여정을 관통하며 우뚝 솟아오른다. 이 건축물은 파시즘으로부터 도망친 이후 보이지 않는 그의 마음속 아픔과 인생이 녹아 있다. 후반부 라즐로를 강간한 사실을 에르제벳의 입을 통해 공개된 이후 해리슨은 이 건물로 도망치는데, 그때 비로소 이 건축물의 내부가 온전히 공개된다. 마치 자신과 에르제벳이 경험했던 감옥이 이 공간에 녹아져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어둡고 폐쇄적이며, 기도 공간에서는 햇빛에 비치는 십자가를 통해 비로소 자유를 느끼게 한다.
라즐로의 내상과 에르제벳의 외상이 합쳐져 완성한 듯한 이 건축물은 결국 이 부부가 겪은 아픔과 인생을 응축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브루탈리즘은 ‘날것 그대로의 콘크리트’(Béton brut)라는 어원이 말해주듯, 아무런 장식 없이 콘크리트로 구축한 이 건축물은 누군가에게는 흉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시련과 고난을 버텨 끝내 자유를 찾고자 노력한 이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나이가 든 조피아는 라즐로의 예술을 전시하는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이 아무리 유린당해도 중요한 건 목적지이지 여정이 아닙니다.” 미국의 삶을 접고 예루살렘에 온 라즐로가 조피아에게 했던 이 말은, 고통의 나날을 보냈지만, 어떻게든 삶의 인장을 남긴 라즐로와 에르제벳, 그리고 수많은 이민자를 향한 찬사다. “어떤 격변이 있어도 오래 살아남는 것을 만들기 위해 건축을 한다”는 라즐로의 답은 이민자들의 역사를 바탕으로 세워 올려진 미국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과연 미국은 누가 세웠는가!
사진제공: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4.0 / 5.0
한줄평: 돈의 논리로 선 땅에서 예술의 정수를 쌓아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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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최소한의 빛 아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당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의 일환으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대도시는 그 규모 만큼이나 다수의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어주나 결코 집이 되어주진 않는다. 고향보다 훨씬 나은 밥벌이를 재공하지만 마음은 점차 그 속에 매몰되어 갈지도 모르며 도시라는 공간 아래 개개인이 조명 받지 못한 채 그저 수치화 되어, 현상화 되어 논해질 뿐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놓치지 않고 거기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카메라를 사람들에게로 돌린다. 꺼지지 않는 뭄바이의 불빛 아래 존재하는 사람들. 어딘가를 바삐 오가고 그 속에서 쪽잠을 청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인도'라는 일종의 장르성이 강하게 부여된 작품으로 해당 영화에 접근하면 큰 오산이다. 춤과 노래로 희노애락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특정 영화들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마음 속에 들어와있는 것도 사실이나 이 영화는 그런 특징을 제하고 관람해도 되는 너무나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너와나의 이야기이다. 예컨대 그런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혼자 있는 기분이 되는 사람, 이미 해야하는 일 만으로도 벅차 자꾸만 고립되어가는 것 같은 사람,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지만 내 치부가 약점이 될까 말하기 꺼려지는 사람의 이야기 말이다. 영화는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의 제시뿐 아니라 아주 다정한 위로까지 건네준다. 엔딩 크레딧 이전 등장하는 감독의 짧은 헌정사까지 관람한다면 이 영화가 다름아닌 전세계에 존재하는 우리에 대해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그 중 전반은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에 사는 '프라바'와 '아누'라는 너무나도 다른 두 친구를 조명하며 시작한다. 프라바는 정략 결혼 이후 독일로 떠난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며 성실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반면 아누는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 거침없이 사이즈와의 연애를 이어나가는 여성이다. 여기에 새로 들어서는 고급 아파트로 인해 23년간 살아왔던 집에서 나가야 하는 파르바티까지. 세 여성은 대도시에서 각자 만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모두가 모여드는 대도시인만큼 그 사이 벽도 존재한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종교적 구분은 물론 계급으로 나뉘어진 도시 안에서는 도무지 ‘우리’ 라는 개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프라바와 아누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격도 사상도 마음가짐도 다른 둘은 엄연히 다른 사람으로써 도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벽은 극 후반부, 도시가 아닌 곳에서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이 벽은 주연 중 한 명인 '프라바'의 두 가지 선언을 통해 극 중에서 개인이 이러한 통념를 허물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 하며 더 나아가 어떠한 개혁의 의미를 갖는지까지 보여주게 된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 성실하게 근무를 이어나가는 아누의 룸메이트 프라바는 오래전 정략결혼 뒤로 인도를 떠나 영국으로 가버린 남편을 그리워한다. 어쩌면 그녀는 제대로 그에 대해 알기도 전 이별부터 경험 했어야만 했기에 더욱 그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응당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려야하는 아내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동료 마누지를 거절했을지 모른다. 규율과 사회가 만들어낸 자아는 그렇게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과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게끔 한다. 그러는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아누는 어떨까. 프라바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그녀지만 반대는 고사하고 종교적 차이로 인해 연인이 될시 가족 간의 살인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퇴근 후 이어나가는 사이즈와의 밀회는 짜릿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들을 철저하게 감출 수 있는 인파 속에서나 가능하다. 사랑함에도 서로의 집을 허락할 수 없는 현실에 아누는 철저하게 절망한다.
다르면서도 각자의 억압을 안고 살아가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갈등은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부르는 결정적인 장치가 되어준다. 프라바 역시 마누지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밝혀지는 시퀀스에서 프라바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자유롭게 이성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아누에게 소문을 언급하며 핀잔을 준다. 그간 프라바가 아누에게 갖고 있던 의심과 짓눌려있던 마누지에 대한 자신의 진심들이 터져나온 것으로도 보여지는데 이는 다름 아닌 그간 프라바가 살아온 세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것이 프라바의 입을 통해 아누에게 향하게 된 것인데 다름 아닌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직후의 시퀀스에 존재한다. 바로 프라바의 사과이다. 친구와의 다툼 이후 당연하게 등장하는 사과 장면인듯 하나 해당 영화에서 프라바의 사과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이 작용한다. 밀회를 즐기는 아누를 향한 세상의 시선, 그로부터 탄생하는 뒷 이야기들. 더 나아가 나는 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사과는 그간 프라바가 사회에서 적응해나가며 체화한 것들을 깨트리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너에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이러한 생각들을 갖게 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아누에게 비로소 전하는 진심의 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선언을 기점으로 프라바는 점차 무언가를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퇴거 명령에 결국 고향행을 택한 파르바티의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도시를 벗어난 프라바와 아누는 그곳에서 도시가 막아둔, 어쩌면 사회가 막아두었던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게 된다. 그 소원은 프라바와 아누가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서로에게 조차 말 하지 않는 비밀이기도 하다. 그렇게 프라바는 이별을, 아누는 사랑을 도시가 아닌 낯선 누군가의 고향에서 찾게 된다.
아누와 사이즈의 밀회를 목격하게 된 프라바는 배신감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겪던 와중 우연히 해안가에 떠밀려 온 낯선 남자를 구해주게 된다. 빛이라고는 실내를 겨우 밝히는 전깃불이 전부인 그곳에서 프라바는 낯선 남자를 통해 자신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진심을 고백하게 된다.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연출된 해당 시퀀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뭄바이라는 대도시가 꺼지지 않는 빛들로 막아두었던 한 사람의 선언이다.
이 후반부는 아마 전반부 많은 이들이 느꼈을 도시의 환멸에서 벗어나 그 개개인들의 가로막혔던 실질적 욕망을 달성 시켜줌으로 건네는 일종의 위로와도 같은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특히 프라바가 해안가로 떠밀려 온 기억 잃은 남자를 구해주는 시퀀스가 그러하다. 번진 빛 위로 꿈처럼 연출 된 해당 장면에서 낯선 남자는 마치 독알에서부터 떠내려온, 기억 잃은 프라바의 남편인양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는 어쩌면 마법처럼 갑작스레 그녀에게로 다시 찾아온 남편에게 듣고자 한 말일지 모른다. 프라바는 아주 오랜 시간 자신의 침대 위에서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달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로소 그녀는 그 순간에 어쩌면 자신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자아가 가장 원했던 말이 아닌 비로소 자신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형태로 남편과의 이별을 선언한다. 당신을 기다리는 숱한 밤동안 번뇌가 많았으나 결국 그렇기에 더욱 명확하게 볼 수 있노라 하고. 대도시의 빛에 가려져 자신이 뚜렷하게 상상할 수 없던 스스로만의 빛을 드디어 찾았고 앞으로도 찾아나갈 것이라 말을 한다. 프라바의 이러한 선언은 물론 단순히 프라바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아누가 자신도 모르게 사이즈와의 관계를 통해 쟁취해내고자 하는 몸부림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파르바티가 한 발 물러설 지언정 불합리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언제든 싸우겠노라 다짐하는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는 개인에게 무수한 기회를 주는 곳이나 동시에 철저하게 개인을 고립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비로소 연대가 시작된다. 서로의 눈을 보고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시작되며 그로부터 저 자신의 성찰도 탄생하게 된다. 파르바티를 돕고자 하던 프라바였기에 우연으로 얽힌 여행에 도달해 진정으로 자신이 해냈어야만 했던 진심의 고백을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신만의 성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프라바는 이후 아누에게 쉬아즈를 소개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는 어쩌면 사회가, 세상이 철저하게 억압하려 했던 개인이 이룩한 혁명과도 같다. 그 개혁은 아주 조용하고도 확실하게 찾아온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파르바티 역시 한 때 아누의 행실을 문제 삼기도 했으나 그 소리 없이 찾아온 만남의 순간에, 조용하게 찾아온 그 개혁에 동참하게 된다. 해묵은 사회의 통념은 그렇게 보이지 않던 개인들에 의해 차근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빛 아래, 흥겨운 조명 아래, 그 누구보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그 빛 아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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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좀비와 #살아있다 가 의미하는 것
영화 살아있다가 개봉했습니다.
저는 시사회를 통해 그럭저럭 봤던지라,
개봉 이후 관람객 평이 생각보다도 더 좋지 않아 조금 놀랐는데요.
이 콘텐츠는 영화 살아있다를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만들게 됐습니다.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살아있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살아있다 #유아인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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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리뷰/행복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찬실이는복도많지#강말금#독립영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다들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영화는 제가 보고 올게요! 마스크 꼭 쓰고 다니세요~ 토요일엔 역사 컨텐츠가 올라갑니다. 참고로 엔딩곡 꼭 듣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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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이란> 스페셜 예고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삼류 건달 '강재'는 막장 인생의 마지막 찬스로 평생 꿈인 배 한 척을 살 돈을 받고 보스 대신 감옥에 가기로 한다. 자수를 준비하던 그에게 뜬금없이 아내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는데 그녀의 이름은 '파이란' 돈 몇 푼 받고 위장 결혼을 해준 중국 여인이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가는 길. 너무 늦게 전해진 '파이란'의 편지에는 '강재'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이 적혀있다. '모두 친절하지만 강재 씨가 가장 친절합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강재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습니까?" 세상은 날 삼류라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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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55> 15초 예고편
인류를 위협하는 사상 초유의 위기 발생! 글로벌 범죄 조직에 의해 전 세계 국가 시스템을 초토화 시킬 일급 기밀 무기를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CIA 요원 '메이스'는 전 세계 최정예 블랙 에이전트를 모아 TEAM'355'를 결성한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원팀이 된 TEAM'355'는 역대급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비공식 합동 작전에 돌입하는데.. 월드클래스 블랙 에이전트 TEAM '355' 드디어 그들이 움직인다! 모두가 기다린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