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0-09 12:06:19
[BIFF 데일리]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영화 <우리들의 교복 시절> 리뷰
DIRECTOR. 촹칭션(CHUANG Ching-Shen)
CAST. 천옌페이(Yan-fei CHEN), 항첩여(Chloe XIANG), 치우이타이(Yitai CHIU) 외
PROGRAM NOTE.
1997년. 제1여고 입학시험에 실패한 아이는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제1여고의 야간 학생이 된다. 같은 교복을 입지만 명찰의 색이 다른 주야간의 학생들은 교실을 공유하는데, 아이는 주간 학생 민과 책상을 나눠쓰게 되면서 단짝 친구가 된다. 민과 함께 민의 교복을 입고 주간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던 아이는 어느 날, 루커를 만나 미묘한 설렘을 느끼게 된다.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학업 성취도에 따른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학교를 배경으로, <우리들의 교복 시절>은 십 대들의 사랑과 우정, 좌절과 성장의 스토리를 담백하고 솜씨 좋게 풀어 간다. <침묵의 숲>(2020)으로 금마장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진연비(천앤페이)를 비롯한 대만의 연기파 신인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풋풋한 성장 드라마를 완성했다. (박선영)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한 시절이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이 교과서 속 혹은 박물관의 유리벽 속에나 존재하던 시절. 모두 똑같이 소중한 제일여고 학생이라면서 주간반과 야간반 학생들의 명찰 색깔을 다르게 하고, 거기에 굳이 태양과 달이라는 의미까지 부여해 달이 발광체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로 "똑같은" 것일 리 없다. 역시나 주간반과 야간반에게는 입학 첫 날부터 사뭇 다른 공지사항이 주어진다.
입시를 대하는 1997년 대만 풍경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꽤나 익숙하다. 구체적 양상은 조금씩 달라도 큼직한 정서만큼은 같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에게 한 "여자는 사범대가 제일이야" 같은 말, 당시 훨씬 어린 나이였던 나조차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니까. 어른이 되고, 그 시절 그 분들이 진심으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것임을 이따금 실감할 때조차, 내가 아이의 나이가 될 때까지 쭉 이어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꾸 사춘기의 아이들을 채근한다. 어른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당시 입시의 중요성이란,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기회로 보였을 테니까. 인생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그 계단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 추후의 노력으로 뒤집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요즘은 많이 무너지고 있다지만 90년대와 그 이후 꽤 오랜 시간, 학벌은 그런 의미로 많이 받아들여졌으니까.
대입도 아니고 고입 시험에서부터 그런 소외감을 느껴버린 아이는,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거짓을 쌓는다. 그런 아이를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동경하는 친구 민, 자꾸 설레는 대상 루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발돋움을 해보려는 마음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거짓은 거짓이라, 결국 거짓들은 핑퐁핑퐁 튀어오르고, 누구도 못되게 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제각각의 상처를 받는다.

흔히 '친한 두 (여성) 친구가 동일한 한 남성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을 중심에 두는 구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여야 하는 게 싫고, 그 과정에서 더 소중한 감정들이 배척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설정을 사용하면서도 과하게 중심에 두지 않는다. 우정과 사랑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대신, 불평등한 현실의 감각과 퉁 부딪힌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나눠듣고 탁구를 치며 90년대 청춘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보다 평등하지 못하다는 감각이 앞서는 슬픔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청춘이 드러난다. 사실 아름답기만 한 청춘이 어디 있나.

우리가 대만 청춘영화에 기대하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정서들을 충분히 가진 영화다. 동시에 성인의 시각에서 청소년기를 산뜻하게만 그리며 얄팍해지는 대신, 내면에서 끊임없이 재난 경보가 울리는 시기라는 점도 명확히 짚는다.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말을 긍정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나는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갑갑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춘기가 그런 시기 아닌가. 나도 아직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할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혼란스러움, 할 일은 많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은 그게 아닌 것 같은 따분함, 마음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마주할 때마다 남들의 껍질은 참 단단해 보이기만 해서 계속 느끼는 초라함과 질투, 나 스스로도 내가 너무 어리고 서툴러 가끔은 나 자신을 견디는 게 벅차서 폭발할 것 같은 마음들까지.
이 영화는 그 나이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다시 오지 않을 시절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듯이. 재난만 있던 시절도 아니고, 아련함만 있는 시절도 아닌 그 시절에게. 때로는 거짓으로 위로 받은 마음조차 거짓은 아니었다고 끌어안으며, 영화에 나온 대사를 축복처럼 건넨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10/05 2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02)
10/06 1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상영코드 264)
10/08 17:00 영화의전당 중극장 (상영코드 370)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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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작이 3개 이상인 배우 모아보기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차기작이 세 개 이상인 배우를 한번 살펴볼까 하는데요!
벌써 차기작이 세 개 이상이 뜬 배우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요?
그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지소
ⓒ 싱글즈
차기작 목록
<더 글로리>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태양의 노래>
차기작 관련 소식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배우 마동석이 기획한 영화이자 직접 출연하기도 하는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은
악마를 사냥하는 어둠의 해결사 '거룩한 밤' 팀이 악을 숭배한느 집단에 맞서는 이야기이다.
마동석 배우와 더불어 서현, 이다윗, 경수진, 정지소가 출연한다.
<태양의 노래>
2006년 개봉한 일본 영화 <태양의 노래>의 리메이크작에서 주인공을 맡은 정지소 배우. '놀면
뭐하니?'에서 정지소의 노래 실력을 보고 반해 캐스팅을 제안했다고 한다. 또한,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 악뮤의 이찬혁이 참여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동욱
ⓒ 킹콩 by 스타쉽
차기작 목록
<싱글인서울>
<구미호뎐1938>
<하얼빈>
<착한 사나이>
<킬러들의 쇼핑몰>차기작 관련 소식
<구미호뎐1938>
2020년에 방영된 <구미호뎐>의 프리퀄작 <구미호뎐1938>에는 이동욱, 김소연, 김범, 류경수
등이 출연 예정이다. <구미호뎐>에서 미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이연'의 이야기를 설화에
녹여 풀어나갈 예정이다.
<싱글 인 서울>
영화 <싱글 인 서울>은 혼자여서 좋은 파워 인플루언서 '영호'와 혼자인 게 괜찮지 않은 유능한
출판사 편집장 '현진'이 싱글 라이프에 관한 책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
미디 영화이다. 영화에는 이동욱 배우와 더불어 임수정, 이솜, 이상이 배우 등이 출연한다.
이도현
ⓒ 위에화 엔터테인먼트
차기작 목록
<더 글로리>
<나쁜 엄마>
<파묘>
차기작 관련 소식
<더 글로리>
<도깨비> <태양의 후예> <미스터 션샤인> 등 수 많은 히트작을 집필한 김은숙 작가의 신작
<더 글로리>에서는 차갑고 진한 복수를 담아냈다. 드라마에는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등이
출연한다.
<파묘>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엄청난 돈을 제안하며
흉지의 묘를 이장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풍수사, 그와 동행하는 장의사, 무당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손석구
ⓒ 엘르
차기작 목록
<카지노>
<살인자ㅇ난감>
<D.P. 시즌 2>
<댓글부대>
차기작 관련 소식
<카지노>
올해 2월 크랭크인하여 8월에 크랭크업을 한 <카지노>는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의 왕이 된 한
남자가 일련의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은 후 생존과 목숨을 걸고 게임에 복귀하는 강렬한
이야기이다.
<살인자ㅇ난감>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와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이다.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 배우가 출연을 확정했다.
박서준
ⓒ 어썸이엔티
차기작 목록
<드림>
<콘크리트 유토피아>
<경성크리처>
<더 마블스>
차기작 관련 소식
<드림>
영화 <드림>은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작품으로 선수 생활 최대 위기에 놓인 축구선수
‘홍대’와 생전 처음 공을 잡아본 특별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홈리스 월드컵 도전을 그린 유쾌한
드라마를 그린 영화다. 박서준, 이지은(아이유)와 함께 출연한다.
<경성크리처>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의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크리처 스릴러 드라마이다. 박서준, 한소희, 수현, 위하준 배우 등
화려한 출연진 라인업으로 화제를 모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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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연일 장마가 계속되며 밖에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죠.
그래서 이번에 씨네랩에서는 비가 오는 날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 드리려고 합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와 함께 집에서 온전히 영화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1952
ⓒ IMDB
synopsis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변신을 주된 내용으로 젊고 발랄한 뮤지컬 스타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cine pick!
시대를 경쾌하게 풍자한 뮤지컬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았으며,
미국영화협회가 뽑은 아메리칸 베스트 필름이자 미국자본가협회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 될 정도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영화이다.
쉘부르의 우산
The Umbrellas Of Cherbourg, 1964
ⓒ 네이버 영화
synopsis
프랑스 노르망디 해협의 작은 항구도시 쉘부르,
어머니의 우산가게 일을 돕는 ‘쥬느비에브’와 자동차 수리공 ‘기’는 사랑에 빠진다.
팍팍한 현실과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어린 연인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의 군 입대로 둘은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는데…cine pick!
프랑스의 대표적인 뮤지컬 영화이자,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대단한 작품이다.
자끄 드미만의 동화같은 색감과 미셸 르그랑의 대중적인 음악이 더해져 매력을 증가시켰다.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술집을 찾은 경찰 223.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술집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마약밀매상.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고 있는 경찰 663.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쥔 단골집 점원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
cine pick!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중경삼림>은 한국에서도 벌써 3번 재개봉을 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연출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 <중경삼림>은 개봉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인생 작품으로 꼽힌다.
이프 온리
If Only, 2004
ⓒ 네이버 영화
synopsis
눈앞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남자는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연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기쁨도 잠시,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단 것을 깨달은 그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전하기로 마음먹는데…cine pick!
극장 비수기 시즌에 입소문으로 6주 이상 장기 상영을 하며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다.
또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다 알고 있는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이라는 곡이 영화의 OST로 나옵니다.
<이프 온리>는 수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손꼽히기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영화이기도 하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지상의 세계를 동경하여 지하왕국을 탈출한 공주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 가지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동화적 세계와 스페인 내전이라는 정치적인 배경이 혼합된 판타지영화
cine pick!
포스터만 보고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영화인 줄 알고 갔다가, 아이들이 울면서 나온 영화로 유명한 작품이죠.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어린이 보다는 어른이를 위한 공포 판타지 영화이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부터 의상상, 분장상 등 여러 상을 받을 정도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괴물
The Host,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한강에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며 사람들을 해치고 현서를 낚아채 한강 속으로 사라진다.
현서를 찾기 위해 현서 가족은 폐쇄된 한강에 침투하는데...
cine pick!
개봉과 동시에 한국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영화로 기록된 <괴물>.
강렬하고 긴장감 넘치는 전개, 시각적 충격과 새로움을 안겨준 괴물의 모습이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끈 작품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 2007
ⓒ 네이버 영화
synopsis
예고로 전학 온 첫날, 교정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린다.
소리에 이끌려 문을 연 음악실. 거기 한 여학생이 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홀연히 사라진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녀. 그녀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
cine pick!
배우 주걸륜이 각본부터, 감독, 주연까지 맡았으면, 이 작품이 주걸륜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예술 고등학교가 배경인만큼 환상적인 연주로 귀를 즐겁게 한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
Coraline, 200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부모님이 바빠 이사 후 혼자 집안을 돌아다니던 중 숨겨진 작은 문을 발견한다.
그날 밤 우연히 문을 열어 본 코렐라인은 또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데...
cine pick!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세계 최초로 제작한 3D 입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재미있는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 영화의 음산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노래까지!
판의 미로와 같이 어른을 위한 공포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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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 리차드> 능력주의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부성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에 거리를 다닐 때도 목숨을 위협받는 빈민촌에서 살아간 '리차드 윌리엄스(윌 스미스)'. 어느 날 TV에서 테니스 대회 우승자가 막대한 상금을 받는 장면을 본 그는 자신의 두 딸 '비너스(사니야 시드니)'와 '세리나(데미 싱글턴)'를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테니스 코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그는 균형 잡힌 시각과 면밀한 통찰력을 지닌 아내 '오레이슨(안저뉴 엘리스)'의 도움을 받아 두 자매의 육성에 몰두한다. 캘리포니아 컴튼의 형편없는 테니스 코트에서 시작된 여정은 주변인의 부정적 예측과 불리함을 모두 극복해 나가고, 성공을 눈앞에 둔 두 딸에게 리차드는 마지막 교훈을 가르친다.
현대 축구를 논하는 데 있어 메시와 호날두를 빼놓을 수 없고, 농구를 논하는 데 조던을 빼놓을 수 없듯이, 테니스를 논하는 데 있어서 윌리엄스 자매를 빠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5번의 윔블던 오픈을 포함해 수 차례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차지한 비너스와 슈테프 그라프를 제외하면 4대 메이저 대회 우승과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모두 차지한 유일한 커리어 골든 슬램 달성자인 세리나는 문자 그대로 테니스계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자매의 성공 신화가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또 성공 신화를 알고 있는 한,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윌리엄스 자매의 신화를 묘사하는 <킹 리처드>의 접근 방식은 예상을 벗어난다. 수많은 스포츠 전기 영화와는 결이 다소 다른, 신선한 접근법을 선택했다. 그 중심에는 자매의 아버지인 리차드 윌리엄스가 있다. 영화는 성공을 일구어 낸 당사자들이 아니라 조력자의 시선으로 신화를 들여다본다. 신선한 뉘앙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킹 리차드>는 스포츠 전기 영화의 흔한 공식을 넘어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결과 <킹 리차드> 보다 보편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입장에서 자칫 신화에 가려질 수도 있었던 현실을 끄집어낸다. 특히 영화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의 현실이 지닌 여러 모습을 흑인으로서의 리차드, 코치로서의 리차드, 아버지로서의 리차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흑인으로서의 리차드
매일 같이, 또 비가 오는 날에는 젖은 코트에 대한 적응력을 높인다고 딸들을 훈련시키는 리차드를 두고 주변 이웃들은 그가 딸들을 학대한다고 비난하며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한다. 또 부유층도 쉽사리 뒷바라지해주기 힘든 테니스를 굳이 할 필요가 있냐며 다른 종목을 추천하는 이들의 권유에도 리차드의 결심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단순히 딸들의 재능을 봐서가 아니다. 그에게 테니스는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하게 자란 자신과는 다른 삶을 딸들이 살고, 더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은 날 무시했지만 너흰 달라, 존중받게 할 거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리차드와 비너스, 세레나의 이야기는 흑인으로서의 꿈을 이루어낸다. 비너스가 처음으로 참가한 프로 무대에서 그녀의 플레이를 보는 흑인, 여성 관중들의 표정과 반응은 호기심에서 열광과 팬심으로 변해간다. 세 부녀가 ‘백인 스포츠’인 테니스에 낸 균열은 그들을 보고 테니스 선수를 꿈꾸기 시작한 흑인들로 인해 점점 더 커진다. 그 덕분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과잉진압 당하거나 총에 맞지 않고 마약에 빠지지 않는 삶의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다. 흑인에게도 다른 미래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리차드의 결심은 특히 그가 흑인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장면에서 강조된다. 공용 테니스 코트에서 딸들을 훈련시키는 리차드는 코트가 있는 지역의 갱들에게 숱한 모욕과 폭행을 당한다. 전설적인 NBA 선수였던 찰스 버클리도 지적한 바 있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는 흑인의 노력을 폄하하는 잘못된 관념과 리차드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 이는 리차드가 흑인으로서 지니고 있던 트라우마를 아내에게 위로받는 장면, 또 비너스에게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대목이 더욱 뭉클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치로서의 리차드
이때 그가 같은 흑인들 사이에서도 팽배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뚫고, 빈민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철저한 능력주의다. 미리 짜 놓은 계획대로 딸들에게 능력을 증명하기를 요구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스티브 잡스를 보는 듯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프로젝트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때로는 협박으로 성공시킨 잡스처럼 현실을 왜곡한 게 아닌가 싶은 능력을 끌어내는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될 거라는 거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굳은 믿음을 딸들과 공유하면서 그저 열정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뒤바꾸는 자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끄집어낸다.
그러면서도 리차드는 결코 막연한 기대나 예측, 그리고 호의와 혜택의 힘에 기대려 하지 않는다.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또 보여준 능력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유하지 않은 흑인으로서 비너스와 세리나를 지도해 이루어낸 성과와 업적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에이전트들의 말에 크게 분노하고, 그들의 계약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마찬가지로 비너스의 프로 데뷔 직전에 거대한 계약금을 제시한 나이키와의 협상에서도 아직 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능력과 증명이라는 잣대에 충실했기 때문에 작중 비너스는 리차드가 누누이 말했던 대로 테니스계의 스타이자 롤모델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자리를 차지하거나 외부의 평가에 의해 매겨진 가치에 안주하는 대신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을 둘러싼 차별과 편견을 진정으로 하나하나 깨부순다. 이처럼 작고 좁은 문틈을 뚫어서 스스로를 증명했기에 그녀의 성공은 유사한 처지에 있고 동질감을 느끼는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 힘과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리차드는 단순히 테니스뿐만 아니라 인생을 가르친 코치인 셈이다.
아버지로서의 리차드
흥미로운 것은 코치로서의 리처드가 철저히 능력주의에 입각한 사고로 딸들을 성공까지 이끄는 와중에도, 아버지로서의 리처드는 능력주의가 낳을 수 있는 병폐를 경계하고 예방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능력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주의의 승리자들이 두 가지 문제를 겪게 된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오만함이다. 성공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보상이고, 노력에 따른 대가로만 여기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피폐함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가치를 숙고하는 대신 계속해서 능력을 증명하고 성공해야 하기에 완벽주의에 빠져들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쇠약해진다.
이러한 문제점은 작중 아버지 리차드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주니어 대회에서 연전연승하는 비너스와 세리나, 그리고 다른 딸들이 패배한 경쟁자들을 조롱하는 모습에 크게 분노한다. 또 어려서부터 수많은 대회에 참가해 큰 성공을 거둔 스타 유망주가 마약에 빠지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코치와 싸우는 한이 있어도 겸손과 평범함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신데렐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면서 신데렐라의 성공이 아닌 그녀의 내면을 가득 채운 바른 품성을 보고 느끼게끔 한다. 나날이 유명해지는 딸들에게 그들이 갖는 영향력을 일깨우고, 엔딩 크레디트 속 내레이션에서도 언급하듯 사회로 그들의 능력과 성공을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두 딸을 끝없는 경쟁에서 떼어 놓으려고 한다. 주니어 대회에 참가해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는 에이전트와 코치의 의견을 무시하는 한이 있어도, 언론과의 접촉을 통제하면서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듣더라도 평범한 학생이자 청소년으로서 필요한 모든 경험을 보장해주려 한다. 이처럼 능력주의적 성공관으로 인해 오만해진 승자와 굴욕을 느낀 패자 간의 긴장관계를 풀기 위해 사회적 연대와 유대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센델의 주장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특히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그로 인해 피폐해지는 청소년들을 현실이나 미디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보면, 그 위험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아버지의 진심은 더욱 감동적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아버지 리차드의 모습은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해준다. 사실 세 부녀의 성공을 온전히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능력주의의 구호가 모두에게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을 움켜쥐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이고, 다수는 공허한 빈손에 그쳐야만 한다.
그러나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무난한 할리우드의 문법과 방식으로 풀어낸 세 부녀의 이야기는 결코 ‘하면 된다’는 명제의 반복에 그치지 않는다. 리차드와 윌리엄스 자매가 걷지 않은 길, 정반대의 길에 대한 경계와 의심이 영화 전반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킹 리차드>는 기적을 보여주지만 기적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보여주고, 그 기적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를 되짚어 보게 만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상술하였듯이 신화의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인 리차드의 관점에서 성공 신화를 바라본 신선한 접근법이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완성도가 준수하나 평범한 영화에서 윌 스미스의 연기가 유달리 인상적인 것도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 리차드 윌리엄스의 현현이 되어버린 그는 흑인으로서, 코치로서, 아버지로서 리차드가 느꼈을 모든 것을 미소 하나에, 웃음 한 번에, 눈물 한 방울에 고스란히 담아서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시상식에서의 논란으로 인해 의미와 가치가 퇴색된 감이 있기는 하나 윌 스미스에게 돌아간 남우주연상 오스카 트로피 자체는 정당해 보이는 이유다.
A(Acceptable, 무난함)
능력주의의 명과 암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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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투게더> -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가볍지만 아팠던 사랑의 단면’
해피 투게더(春光乍洩, Happy Together)
개봉일 : 1998.08.22 (한국 기준)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국영, 양조위, 장첸, 관숙의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가볍지만 아팠던 사랑의 단면’
“다시 시작하자” 보영의 한마디에 아휘는 흔들린다. 보영과 아휘는 연인이지만 연인이 아니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전부 내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깨지고 짧은 한마디로 겨우 다시 접합해놓은 사랑.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균열을 풀칠 몇 번으로 이어온, 어쩌면 지겹게도 느껴지는 사랑. 충분히 아프고 또 아팠으니 이 또한 사랑이었겠다.
1995년.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흘러가고 있던 시간을 이 영화를 통해 붙잡아본다. 저녁 8시, 도시는 바쁘게 반짝이고 보영과 아휘는 작은 집안에서 몸을 밀착한 채 춤을 추고, 사랑을 하고, 갈라서고, 다시 시작한다.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라곤 한 손에 꼽는 낯선 도시에서 다시 돌아갈 고향을 꿈꾸며 아휘는 보영을 놓지 못한다.
보영 역을 맡은 장국영과 아휘 역을 맡은 양조위의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 펼쳐지는 97분의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며칠 전 4월 1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로 영혼을 탈탈 털어가며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잡아탄 택시 라디오에서 장국영의 To You가 흘러나왔고, 저녁 7시 반쯤이 되어서야 알았다.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사실 난 장국영이라는 배우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그는 내가 10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말하기에도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근데 난 왜 성장기를 같이한 것도, 동시대를 살아본 것도 아닌 저 먼 곳에 있는 그의 눈을 보며 슬픔을 느끼고 있는 걸까. 기분이 묘하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시대를, 발 한번 붙여보지 못한 도시를,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랑의 형태를 내가 받아들이기 버거울 만큼 아련하고 반짝이게 표현해낸 영화였다. 갖고 싶지만 외면하고 싶었고, 가볍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아프게 가슴을 찔렀던 사랑이 속절없이 절벽 밑으로 추락한다. <해피투게더>는 그 사랑의 단편적인 조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해피투게더 시놉시스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보영’과 ‘아휘’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두 사람은 사소한 다툼 끝에 이별하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얼마 후 상처투성이로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 ‘보영’은 무작정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서로를 위로하며 점차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하지만 ‘보영’의 변심이 두려운 ‘아휘’와 ‘아휘’의 구속이 견디기 힘든 ‘보영’은 또다시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말을 내뱉은 뒤 헤어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다시 시작하자”
보영은 속절없이 깨져버린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다시 시작하자.”.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다 길을 잃은 이별을 선택하지만 보영은 아휘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휘는 당연하게도 보영의 한마디에 휘둘린다. 사랑하니까, 잊을 수 없으니까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아휘는 보영과 이별을 하고 탱고바에서 일하며 보영보단 고향인 홍콩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때 두 사람의 순간들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아휘의 곁을 맴돌던 보영이 아휘의 삶으로 다시 들어온 순간, 화면에 청록빛의 색채가 드리운다.
보영은 아휘에게 담배를 빌리고, 아휘의 담배로 불을 붙이고, 아휘의 침대를 차지한다. 아휘는 보영을 집에 들이긴 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휘둘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자신은 소파에, 보영은 침대에. 크지 않은 집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명확히 나눠 두려 한다. 하지만 보영은 아휘가 집을 비운 사이 침대와 소파를 붙이고, 좁은 소파에 누운 아휘의 옆을 파고든다.
보영과 아휘의 사이는 단적으로 말하면 갑과 을에 가까웠다. 헤어지는 것도 다시 만나는 것도 보영의 뜻이었고, 아휘는 그에 따를 뿐이다. 근데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휘는 손을 다친 보영을 보살폈고, 돈이 없는 보영에겐 아휘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휘는 보영의 옷 안에서 여권을 발견하고 그것을 숨겨놓는다. 보영이 가진 대부분의 것들이 아휘의 영역 안에 들어온 것이다.
아휘는 보영을 보살피며 지겨울 만큼 끈덕진 사랑을 느낀다. 감기 몸살로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날에도 밥이 필요하다는 보영의 한마디에 일어나 밥을 볶았고, 밤중에 담배가 다 떨어졌다는 보영의 말을 듣고 선반에 담배를 한 움큼 쌓아놓는다. 탱고바에서 일하는 게 싫다는 보영의 말에 설거지 일을 구했고, 아픈 보영을 보살피는 게 행복했다. 손이 낫고 나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면 그가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차라리 보영의 손이 낫지 않았으면 하는 슬픈 바람도 가져본다.
“넌 항상 제멋대로 하잖아.”
여러 번 깨어진 사랑에 단단한 신뢰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 아휘는 여권을 찾는 보영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여권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아휘는 처절하게 사랑의 환부를 잡아보지만, 보영은 그를 외면한다. 두 사람은 또다시 이별을 맞이한다. 몇 번째 이별이었을까.
“네가 불행한 게 느껴져.”
아휘의 친구이자 동료인 ‘장’은 어릴 때 눈이 아팠던 경험 때문에 사람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 인물이다. 그는 곧 일을 관두고 세상의 끝에 있는 등대에 갈 거라는 목표를 가진 청년이다. 장은 아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목소리에 묻어나는 슬픔을 가늠해본다. 사랑하는 연인도 들어주지 않았던 아휘의 슬픔. 장은 그것을 담아 세상의 끝으로 향한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 등대에 도착한 장은 아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녹음기를 틀어본다. 녹음기 안에 담긴 건 흐느끼는듯한 소리뿐이었다. 그 흐느낌이 말하고 있는 슬픔은 어떤 것이었을까, 장은 아휘의 흐느낌을 들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아휘가 이별의 아픔을 담은 흐느낌을 녹음기 안에 담아내고 있을 때, 보영 또한 이별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린다.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끝났다. 아휘는 도살장 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물로 씻어내며 보영의 지겨운 에피소드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젠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완전한 끝을 맞이했음을 알게 된 보영은 담배를 잔뜩 사들고 아휘의 집을 찾아가지만 아휘는 떠난 뒤였다. 보영은 담요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아휘는 보영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그대로 내려놓은 채 혼자 이과수 폭포로 떠난다. 테이블에 놓인 이과수 폭포 램프 안엔 다정하게 앉아있는 두 사람이 그려져있지만 진짜 이과수 폭포 앞엔 아휘 혼자 서있다. 반짝이는 이과수 폭포 램프를 보며 상상했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아휘는 보영을 생각하며 슬픔을 말한다.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서로의 스텝이 맞춰지지 않은 탱고 같았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춤을 추지만 아휘는 스텝을 자꾸 헷갈린다. 보영은 그런 아휘에게 다시 연습해보라며 홀로 연습할 시간을 주고, 다시 탱고를 춘다. 보영과 아휘는 손을 맞잡고 사랑하다가도 스텝이 엇갈리면 가차 없이 손을 놓았고, 아휘가 다시 스텝을 맞춰오면 잠시 함께 춤을 췄다가, 엇갈리면 다시 놓았다. 지금껏 아휘가 보영의 스텝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휘가 그 노력의 끈을 놓은 순간, 사랑은 정말 끝나버린다.
사랑은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 한마디로 붙일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같이 있으면 좋다고,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그 한마디를 왜 그리 아꼈던 것일까.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갖고 싶었던 것을 포기하게 만들 만큼 지독하게 아픈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엔 사랑하는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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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국내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 참여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아수라처럼>의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본 시리즈는 2025년 1월 9일에 공개 예정이며, 7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수라처럼>은 이전에 방영되었던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1979년에 방영된 가족 드라마 시리즈의 현대판으로, 무코다 구니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당 소설은 지난 2003년 장편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수라처럼>에는 미야자와 리에, 오노 마치고, 아오이 유우, 히로세 스즈가 출연하며 19979년 도쿄,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네 자매가 노년인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겪게 되는 사건들을 그립니다.
데이지 리들리, <스타워즈> 시리즈 복귀 예정
데이지 리들리가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향후 제작될 스타워즈 시리즈 중, 에피소드 X, XI, XII로 구성 예정인 사이먼 킨버그의 3부작과 샤민 오바이드 차노이가 연출하는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역할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THR은 루카스필름이 레이를 “프랜차이즈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이먼 킨버그와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의 프로젝트 외에도, 루카스필름은 제임스 맨골드, 데이브 필로니, 도널드 글로버, 타이카 와이티티, 라이언 존슨, 션 레비, 패티 젠킨스 감독이 참여하는 최소 7편의 스타워즈 영화를 개발 중입니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시간표 공개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상영 시간표 공개 일정을 알렸습니다.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오는 15일 금요일 18시에 상영 시간표가 공개됩니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서울독립영화제는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부산국제영화상 4관왕을 휩쓴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차지한 조세영 감독의 <K-Number> 등 현재 주목받는 감독의 영화들이 상영됩니다. 또한 16mm 프린트가 유실되어 필름 디지털화 포맷으로 상영하지 못하고 있던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가 디지털화 버전으로 최초 공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홍경, 오경화, 노재원 등 이제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거쳐 간 ‘배우프로젝트’, 독립영화 감독과 배급사를 연결해 주는 ‘넥스트 링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8> 첫 예고편 공개
미션 임파서블 8의 첫 번째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신작의 제목은 <Mission: Impossible — The Final Reckoning>으로 2025년 5월 23일에 북미 개봉 예정입니다.
18개월간의 긴 제작 기간과 여러 차례 지연되어 제작비가 4억 달러에 가까워졌다는 소식으로 시리즈의 위기가 거론되었던 가운데, 마지막 ‘무비 스타’라고 불리는 톰 크루즈가 과연 이번에도 큰 성공을 거둘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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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의 밤> 잔인하지만 서정적이고 낯선 누아르
1. '양도수(박호산)' 사장의 명령으로 경쟁 관계에 있는 북성파를 제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를 맛보던 '박태구(엄태구)'는 돌연 비보를 접한다. 누나와 조카가 모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 북성파가 작업에 들어온 것으로 의심한 태구는 즉시 그들의 보스를 공격하고, 북성파의 2인자인 '마상길(차승원)' 이사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도망가기로 결정한다. 러시아로 가기 전 잠시 들린 제주도에서 태구는 묘한 분위기의 '재연(전여빈)'을 만난다. 사격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는 등 걷잡을 수 없는 그녀로부터 그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동질감을 느끼며 조금씩 편안함을 되찾지만, 태구를 향한 복수의 칼날은 이내 제주도로 들이닥친다.
영화학자 토마스 슈츠는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에서 영화 장르의 변화를 네 단계로 나눴다. 실험 단계에서는 특정한 장르로 부를 수 있을 공통된 움직임이 포착된다. 고전 단계에서 공통의 움직임은 제작자와 관객 모두가 공유며 하나의 장르를 규정하는 특정한 이야기 전개의 공식과 도상(볼거리) 같은 관습으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장르 영화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는 불균질한 요소들이 더해지는 세련화 단계를 지나 기존에 확립된 장르의 전통을 파괴하는 마지막 바로크 단계에 다다른다. 비록 모든 영화 장르에 적용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장르의 흐름을 이해하는 기준으로서 위의 과정은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2. 이러한 장르의 변화라는 맥락 안에서 볼 때 박정훈 감독의 누아르 영화 <낙원의 밤>은 분명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한국형 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준 <신세계>(고전)를 거쳐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마녀>(세련화)로 이어진 박훈정 표 누아르가 한 단계 더 나아가려는 시도가 <낙원의 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외피와 이야기의 발단이 한국형 누아르의 도상과 관습을 충실히 따르는 것에 비해, 중반부에 숨겨둔 진짜 이야기는 장르의 관습에서 탈피하고 있다.
실제로 <낙원의 밤>의 연출, 도입부, 스타일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태구가 북성파 두목을 죽이거나 조폭들이 회동을 하는 장소로 한국의 누아르, 범죄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우나와 중국집이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좁은 공간에서 벌어진 액션씬 역시 감독의 전작에서 여러 차례 명장면을 남긴 바 있다. <신세계>에서는 엘리베이터 안, <브이아이피>에서는 중국의 한 아파트 복도와 방이 그 장소였다면 이번에는 차 안, 차와 차가 맞붙은 좁은 공간, 문이 잠긴 식당에서 액션이 펼쳐진다.
이야기의 발단도 마찬가지다. 양 사장의 행동대장인 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누나와 조카가 살해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북성파가 자신의 가족을 죽였다고 판단한 그는 복수를 위해 북성파 두목을 살해하고, 필연적으로 뒤따를 복수의 굴레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이러한 태구의 이야기는 냉혹하고 음울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박훈정 감독의 특유의 연출과 스타일을 만나 또 한 번 사나이들의 의리와 배신,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펼쳐 보이려는 듯 보인다.
3. 그러나 제주도로 장소를 옮긴 후 <낙원의 밤>은 예상된 경로를 벗어난다. 당장 결말부터 각 인물에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않는다. 발단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태구, 양 사장, 마상길은 모두 본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태구는 완전히 도망치지도 못하고, 가족들의 원한을 진짜 범인에게 갚아주지도 못한다. 마상길과 양 사장은 그들의 거래와 계획을 깔끔히 끝맺는데 실패한다. 대신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충격적이고 하드코어한 결말을 통해 오직 재연만 복수에 성공한다. 이는 마치 <마녀>에서 누아르 영화의 남성 주인공의 자리가 여성에게 넘어간 것을 연상시키는 마무리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방향성이 기존의 장르 관습적 선로에서 벗어나는 분기점은 공항에서 태구와 재연이 만나는 순간이다. 이 장면부터 영화는 그저 처음 만난 두 남녀가 새로이 관계를 만드는 데 주목할 뿐이다. <신세계>에서 '정청'(황정민)과 '이자성'(이정재)의 굳건한 관계가 형성되어 유지될지 혹은 파괴될지가 관건이었던 것과는 다르다. 의리와 정, 피의 복수를 되새기는 사나이들을 강조하는 누아르의 관습을 거부한다. 그러다 보니 복수의 칼날을 가는 마상길이 가끔씩 얼굴을 비추는 것을 빼면 영화는 중반부부터 누아르라는 사실마저 잠시 잊게 만들 정도로 일반적인 누아르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 이는 태구와 재연의 드라마를 유려한 앙상블에 담아낸 두 주연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의 퍼포먼스가 유달리 인상 깊은 이유기도 하다.
4. 이때 두 주인공의 관계 맺기의 중심에는 각자의 트라우마가 위치한다. 마치 거울 치료를 하듯이 서로의 과거와 현재로부터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 보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태구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재연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죽을 날이 정해진 누나를 떠올리고, 죽음을 피해 도망치는 자신과 그녀가 동병상련임을 깨닫는다. 재연의 삼촌이 총을 밀수하면서 마련한 선물을 끝내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볼 때는 끝내 생일 선물을 열지 못한 본인의 조카와 재연을 겹쳐 본다.
한편 재연은 온 가족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삼촌의 모습을 제주도로 도망쳐온 태구에게서 본다. 또 가족이 죽는 것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고, 그래서 복수심을 버릴 수 없는 그녀는 가족의 복수를 한(혹은 했다고 생각한) 태구의 심정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이처럼 회한과 트라우마가 뒤섞이면서 물회를 사이에 두고 애틋해지는 둘의 관계는 묘한 동질감으로 인해 우정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족 간의 정처럼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성 간의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굳이 이들의 관계를 정의 내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구체적인 설명 대신 아름다운 영상 안에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태구와 재연은 차가운 필터에 포착된 제주도의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함께 담배를 피운다. 둘이 서로를 온전히 알아가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불운했던 그들의 삶에 마침내 치유와 평화를 얻고 오래간만에 행복해지는 순간,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마침내 낙원이 된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담배 연기처럼 금세 사라진다. 아름다운 낙원에서 온기가 느껴지지 않듯이 그들은 이내 마상길의 모습으로 자신들을 매섭게 쫓아오는 섬뜩한 복수의 굴레에 다시 빠져든다. 이처럼 태구와 재연의 관계성을 불명확한 경계 안에 담아낸 결과 <낙원의 밤>은 서정적인 누아르라는 차별화된 정체성을 완성한다.
5. 다만 <낙원의 밤>이 거둔 독특한 성과는 결코 매끄럽지 않은 완성도로 인해 빛이 바랜다. 우선 플롯의 치밀함보다는 감정선과 정서를 담아내는 미장센에 힘을 준 결과물은 좋게 말하면 영화를 곱씹어 볼 기회를 주고, 나쁘게 말하면 애매하다. 명확하지 않은 두 인물의 관계성, 그로 인한 예상외의 전개는 창고와 식당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에 처연함과 잔인함이 맞부딪히는 충격을 가득 불어넣거나 그저 영문을 알 수 없는 당황스러움만을 남기면서 명확한 호불호를 유발한다.
또한 몇몇 한국 영화에서 반복되는 어설픈 유머, 임팩트를 주기 위해 잔뜩 힘을 준 인위적인 명대사들은 개성적인 캐릭터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 보인다. 무자비한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자신의 말과 약속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마상길, 소시민적인 듯하면서도 비열함을 숨기지 못하는 박 과장과 양 사장처럼 극에 강력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물들도 끝내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낙원의 밤>은 새로운 시도의 성취에 온전히 만족할 수는 없는, 끝내 낯섦을 새로움으로 바꾸지는 못한 한국형 누아르 영화에 머문다.
A(Acceptable, 무난함)
불완전한 영화적 시도가 담은 서늘하게 슬픈 청춘들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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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후겟츠 웨슬리> 스페셜 예고편
허구한 날 티격태격하는 결혼 5년차 부부 올리브와 클레이는 고민 끝에 이혼을 결심하고 반려견 웨슬리에게 사실을 말한다.
깔끔하게 헤어지는 줄만 알았던 것도 잠시, 두 사람은 웨슬리의 양육권을 두고 법정 싸움을 하게 되고, 법원에서는 반려견 행동 심리학자를 지정해 두 달 후에 누가 최종 양육권을 가질지 판결하기로 한다.
하지만 웨슬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두 사람 앞에 반려견 행동 교정사 글렌이 나타나면서, 둘의 관계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데..
과연 웨슬리는 누구의 품에 안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