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01 16:29:16
국내 여성 영화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모래바람> 11월 27일 대개봉!

에디터가 차기작 제작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여성 영화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들을 소개합니다!
10대의 성장통을 다룬 <보희와 녹양>, <비밀의 언덕>부터 덕후였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 <성덕>, 모녀 관계를 다룬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딸에 대하여> 등 각기 다른 장르와 소재를 다룬 데뷔 영화들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특히 곧 개봉을 앞둔 <모래바람>은 박재민 감독이 씨름에 빠져 다큐멘터리까지 찍게 되었다는 비하인드가 전해져오는데요.
2009년 최초의 여자 천하장사가 탄생한 이후 5명의 여자 씨름 선수들이 비인기 종목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고 천하장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최초의 여자 씨름 영화!
<모래바람>은 11월 27일 극장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보희와 녹양
A Boy and Sungreen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The Apartment with Two Women

성덕
Fanatic

비밀의 언덕
The Hill of Secrets

지옥만세
Hail to Hell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모래바람
Sandstorm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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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
오늘의 영화는 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정보
개요 | 멜로/로맨스, 드라마 | 한국 | 33분
감독 | 조용익
출연 | 이수경, 엄태구
등급 | 12세 관람가
줄거리
감독 지망생 도환은 지난 연애로 고통받고 있는데, 프리랜서 모임에 나갔다가 이상하게 매력적인 은하를 알게 된다. 그녀의 도움으로 그는 지난 연애의 문제점을 알게 되고, 그의 시나리오 또한 해결책을 찾게 된다. 은하와 도환은 전화와 문자로 계속 가까워진다. 도환이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지만, 그는 또다시 상처받을까 두렵다.
출처 | 다음 영화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를 보면 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택을 받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정말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과연 왜일까. 아마 좋아하던 누군가가 떠올라서, 혹은 누군가를 좋아했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서 아닐까. 도환과 은하가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렸던 것처럼 이 영화 또한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에 의해 관객이 끌렸던 것 같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싱그러움"
영화를 생각하면 딱 한 단어가 떠오른다. '싱그러움'. 싱그러운 초록 풀로 꽉 차있는 배경, 귀뚜라미와 매미 소리, 채도 높은 색감. 영화 속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에 의해 마치 싱그러운 여름 한가운데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풍경과 함께 배우들의 풋풋한 연기는 영화의 싱그러움을 더욱 극대화했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사랑스러운 두 배우"
이수경 배우는 항상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배우 최민식은 한 인터뷰에서 이수경 배우를 "천생 배우, 동물적인 본능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며 칭찬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감독과 동료 배우는 이수경 배우를 '본능'의 배우라는 말하는데요. 그러니까 이수경 배우는 계산 없이 본능적으로, 그 캐릭터 자체가 되어 연기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수경 배우가 연기한 '은하'하는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조금 포스가 있고, 센 악역을 주로 맡았던 배우 '엄태구'의 로맨스 영화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엄태구 배우의 입덕작이었다고 말하는 팬들도 많고, 관련 영상 댓글을 보면 엄태구 배우가 더 많은 로맨스 작품을 찍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적혀있다. 한국인이 사랑을 시작하는 방법이 '하여튼 웃겨', '하여튼 희한해', '하여튼 이상해'라고 하던데 극 중 은하가 도환에게 빠지게 된 것도 이게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금은 찌질하게 묘사되는 도환이지만...하여튼 웃기고, 희한하고, 이상하다.
출처 | 다음 영화
"은하의 시점은?"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도환의 시점만 있을 뿐, 은하의 시점은 알 수 없었다. 극 중 은하는 도환에게 "여자를 단순히 그냥 이별 통보하는 대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여자는 나름의 이별을 준비해 온 시간이 있었을 거라고 다가가는 건 어때요? '너무 남자 시점으로만 보는 영화보다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리는 이야기를 한다. 작품 속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는 볼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출처 | 왓챠 유튜브 캡처
싱그러운 로맨스 영화를 찾고 계시다면 <시시콜콜한 이야기> 어떨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왓챠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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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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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얼굴에 감춰둔 악
*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그 남자, 좋은 간호사 (2022)
감독: 토비아스 린드홀름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에디 레드메인
장르: 스릴러
상영시간: 121분
공개일: 2022.10.26
누구보다 친절하고 다정했던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니.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에이미(제시카 차스테인)'은 환자들과 그들을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언제나 호의적으로 대하는 상냥한 인물이다. 때로는 이러한 친절 때문에 상사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에이미'는 남들 몰래 심근경증을 앓고 있었고, 업무 도중 심장에 무리가 올 때면 호흡 곤란을 겪으며 고통스러워 했다. 회복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했지만 두 딸을 홀로 양육하는 입장에서 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도록 일 년의 근무기간을 채워야만 했다.
곤경에 빠진 '에이미' 앞에 한 남자가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중환자실 야간 근무조로 충원된 남자 간호사 '찰스 컬린(에디 레드메인)'은 처음부터 '에이미'에게 호의를 베풀며 그녀가 홀로 감내해야 했던 일들을 도와주기 시작한다. 아내에게 이혼당한 '찰리(찰스 컬린)'와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에이미'는 처음부터 대화가 잘 통했고, 두 사람은 하나의 콤비처럼 친밀해진다.
'에이미'의 담당 환자인 '애나'는 상태에 호전을 보이던 찰나 갑작스레 사망을 하고, 파크필드 기념병원은 보건부의 요청에 따라 이 사망 사건에 관해 경찰에 수사 요청을 한다. 병원 측은 모든 수사 과정에 성실히 임하는 척하며 최대한 정황을 숨기려 하고, 경찰은 조사 끝에 '찰리'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된다. 병원의 위험 관리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경찰은 '에이미'로부터 환자에게 주입되서는 안 되는 약물(인슐린)이 투여되었다는 정보를 얻고, '찰리'를 향한 수사망을 점점 좁혀간다.
'에이미'는 철썩 같이 '찰리'를 좋은 간호사라고 믿었다. 환자 가족에게 베푼 작은 친절만으로도 꾸지람을 내뱉는 삭막한 병원 환경에서 자신의 비밀을 숨겨주고, 언제나 망설임 없이 도와주는 '찰리'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동료였다. 하지만 '애나'에 이어 또 한 명의 환자 '켈리'의 몸에서도 인슐린이 발견되어 의문사를 하게 되고, 경찰과 '찰리'의 과거 동료 '로리'에게서 그의 과거 행적을 접하게 된 '에이미'는 더 이상 그 스윗한 미소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이제 경찰의 편에 서서 수사에 협조를 해야 했다. 언제 의문사를 당할 지 모르는 수많은 환자들, 그리고 아이들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연쇄살인범 '찰스 컬린'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한 '찰리'는 실제로 15년간 40명에 달하는 환자를 약물로 살해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시인하지 않은 범죄까지 포함한다면 그가 살해한 환자는 400명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많은 환자들을 죽인 것인지 작중 명확한 이유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경찰 조사에서는 중환자실의 환자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벌인 짓이라고 밝혔다. 범죄사건의 스케일에 비해서는 제법 궁색한 변명이다.
스윗하고 다정한 간호사의 미소가 섬뜩한 살인마의 조소로 느껴지기까지. '제시카 차스테인'과 '에디 레드메인'의 클로즈업 샷들을 위주로 진행되는 작품은 스릴러의 긴박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보다는 정적이고 절제된 연출을 택했지만 긴장감을 잃지는 않는다. 특히 외적으로는 온정적인 모습을 띠면서도 묘한 서늘함을 풍기는 '에디 레드메인'의 섬세한 연기는 평이한 스릴러에 깊은 몰입감을 형성한다. 환자들의 죽음에 무력감을 느끼고, 심장질환 때문에 괴로워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입체적인 연기도 훌륭하다.
다만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 것인지 이야기가 깔끔하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수사물인지, 수백 명의 환자를 죽인 범죄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심리극인지, '찰리'의 범죄 행태를 알면서도 묵인한 대형병원에 대한 사회비판극인지, 혹은 친절한 얼굴을 하고 끔찍한 범죄를 일삼는 인물을 통해 소름을 유발하는 스릴러인지 방향성이 분명치 않다. 자극적이지 않은 화면 연출과 스토리 구조는 언제든 환자들이 죽어나갈 수 있는 중환자실 배경의 삭막함과 무력감을 표현하기 좋은 장치였으나 후반부에 갑작스레 '찰리'의 고백으로 마무리되는 촘촘히 쌓아온 긴장을 한 순간에 떨어뜨린다. 배우들의 호연으로 실화를 착실하게 재연하는데만 성공했을 뿐 작품은 굉장히 무난한 스릴러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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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아카데미에 최초로 도전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최근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에서 총 4개 부문 수상 (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의 영예를 안으며 그동안 로컬 시상식으로 인식되어왔던 외국어 영화의 장벽을 허물었다. 한편,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또한 오스카의 가다로운 입후보 요건을 충족하며 한국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 중 최초로 아카데미에 도전하게 되면서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미국 아카데미 심사위원회는 지난달 말 제 93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1차 후보인 총 27개 작품을 발표했다. <레드슈즈>는 해외 제목인 <Redshoes and the Seven Dwarfs> 로 디자니픽사의 <소울>,<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 드림웍스의 <크루즈 패밀리:뉴에이지 >, <트롤 : 월드투어> 등의 유명 스튜디오 작품들과 함께 후보 리스트에 올랐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은 입후보의 자격과 절차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애니메이션 강국인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만큼 <레드슈즈>가 한국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에 입후보 한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인이 일부 제작에 참여하거나, 투자/기획으로 참가한 작품이 미국에 진출한 사럐는 있었으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체 과정을 한국 제작진이 손수 만든 상업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미국 배급사를 통해 현지에 진출한 사례는 <레드슈즈>가 최초이다. 즉, 이번 <레드슈즈>의 아카데미 도전은 순수 국내 제작진이 이루어 낸 토종 애니메이션의 아카데미 도전으로도 볼 수 있다. <레드 슈즈>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싸이더스 애니메이션이 기획한 3D 애니메이션으로 각본 및 연출은 홍성호 감독이, 캐릭터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감독은 김상진 디자이너가 맡았으며 김형순(주)로커스 대표와 황수진 PD가 프로듀서인 작품이다. 싸이더스 애니메이션 황수진 프로듀서는 "어려웠던 미국 진출에 이어 아카데미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아직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애니메이션과 스튜디오는 도전하는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계속 문을 두드리다 보면 머지않은 시기에 높은 위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애니메이션과 싸이더스 애니메이션의 도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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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의미에 대해 되묻다
사실 SF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현실성이 없어서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곤 했었다. 미래를 다루고 첨단을 다루고 있는 와중에도 그 본질적인 주제를 찾으면 지극히 현실적이라지만 이상한 기계들이 있는 저 배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 그간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편견을 깨준 작품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시놉시스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혼재된 2049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 ‘K’는 임무 수행 도중 약 30년 전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하고 충격적으로 출산의 흔적까지 찾아낸다.
리플리컨트가 출산까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에 큰 혼란이 야기되므로 이를 덮으려는 경찰 조직과 그 비밀의 단서를 찾아내 더욱 완벽한 리플리컨트를 거느리고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 K를 쫓는 니안더 월레스. 리플리컨트의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수록 점차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K는 과거 블레이드 러너였던 릭 데커드를 만나 전혀 상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리플리컨트: 21세기 초 만들어진 복제인간. 인간과 같은 지적 능력과 사고방식 그리고 신체적 조건을 갖춘, 노동력 제공을 위한 인간의 대체품
# 블레이드 러너: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색출해 ‘제거’하는 임무를 가진 특수경찰
*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항상 겨울이더라
이러한 SF영화의 특징은 미래의 세계를 다루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전제로한 작품이 많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배경이 또 ‘겨울’이다. 날씨 자체가 비가 많이 내리기도 하고 실내 장면에서는 계절감을 딱히 알기 어려운 복장들을 하고 있어서 도대체 계절이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겨울이었다.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배경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지만 이러한 영화 문법에 너무 많이 노출된 탓인지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도 마찬가지구나 싶었지만 계절감을 알 수 없도록 실내에서의 배역들의 복장이라던지 눈 대신 물을 많이 사용한다던지 어느정도 혼란을 줄 수 있는 장치들을 사용해서 그 반감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겨울이라는 배경이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 외의 부분은 재밌게 봤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작품을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를 그렇게 친절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고 관객이 궁금증을 가지게끔 장치들을 배치해서 이 장치가 어떤 의미일가? 관객 나름 생각하게끔 만들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여러 장치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물’이었다. 사방팔방 물이 나온다. 요원 케이가 어딜 이동할 때마다 비가 흩뿌려지고, 리플리컨트들을 제어하는 본부를 감사는 건물 주변에는 댐처럼 물들이 방어하고 있고, 또 리플리컨트를 만들어내는 곳에서는 건물 내부의 조명이라던지 문양들이 꼭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지막으로 케이가 실비아와 격투를 하는 장면도 바다 속에서 이뤄진다.
처음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볼 때는 왜 저렇게 축축할까? 찝찝하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보다보니 모든 요소에 물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이건 어떤 의미일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양수’의 개념이 아닐까 하고 결론을 내렸다. 태아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양수로부터 외부 충격에 보호를 받듯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리플리컨트들을 물로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닐가 하는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다.
그래서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볼 때 궁금했던 또 하나는 이 영화에 인간은 나오는가?였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존재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들만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에 인간은 있는 것인지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써는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확실히 인간이 아닌 블레이드 러너 케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자신의 선배 블레이드 러너였던 릭 데커드를 그의 딸에게 데려다주는 장면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기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아무리 기계가 인간보다 신체적으로나 능력적으로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오류인줄 알지만 그것을 행하는 인간을 더욱 선망하는 것인가? 통제된 삶이 아니라 그 통제를 벗어나 오류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리플리컨트들을 인간이 아니면 무엇일까?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해주지 않고 관객 스스로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품이었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기계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 실존의 의미를 되물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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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딩드레스로부터 도망가기
결혼식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리고 결코 빠지지 않는 장면이 그 드레스가 어떤 드레스인지 설명하는 장면이다. 유명 브랜드의 신상 드레스라거나(ex.<신부들의 전쟁>), 유명한 디자이너가 주인공만을 위해 디자인한 드레스라거나(ex.<섹스 앤 더 시티>).. 제니퍼 로페즈의 신작 영화 <샷건 웨딩>에서도 어김없이 드레스가 주인공이 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달시(제니퍼 로페즈 분)가 필리핀의 한 섬에서 치르는 결혼식에서 입는 드레스는 신랑 톰(조쉬 더하멜 분)의 가족에게서 전통적으로 물려 내려온 드레스다. 설정 덕분에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이 웨딩 드레스는 달시의 행동을 영화 내내 제약하는 장애물이다. 애초에 본인이 고른 것도 아닌, 신랑의 가족에게서 받은 드레스라는 점부터 이 웨딩 드레스는 달시에게 작용할 가부장제를 비유한다. 신랑의 어머니 캐롤(제니퍼 쿨리지 분)에 따르면 이 드레스는 캐롤이 입었고, 신랑의 동생인 지니가 이어서 입었다. 달시의 웨딩드레스는 달시를 숨도 쉬기 힘들 만큼 조이면서 캐롤과 지니가 겪었고, 겪고 있으며, 겪어야 할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대놓고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시의 결혼식은 인질극으로 변모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톰과 설전을 벌인 후 혼자 신부대기실에 돌아온 달시는 과자를 먹으며 어떻게든 웨딩드레스를 벗으려 애쓴다. 말 그대로 숨쉬기 힘들 만큼 조여오는 웨딩드레스의 코르셋은 달시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톰조차 이 드레스를 벗기지 못한다는 점인데, 와중에 톰은 드레스의 불편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달시에게 주어질 여성으로서의 역할은 달시의 숨통을 조이지만 톰에게는 당연한 것이며, 달시가 호흡 곤란을 호소함에도 원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눈 앞에 문자 그대로 생명의 위협이 다가와도 달시는 드레스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데 이는 톰과의 설전에서 집어던진 결혼반지와 상반된다. 달시는 쉽게 반지를 뽑아 톰에게 던지지만 톰은 가볍게 잡아내며 결국에는 그 반지를 달시에게 도로 끼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달시는 드레스에서 온전히 탈출하지 못하는데, 이는 아무리 달시가 발버둥쳐도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톰과 함께 해적에게 발각된 달시는 결국 같이 손목을 묶이는 신세가 된다. 반지를 집어던지고도 톰에게서 달아나지 못한 달시는 결국 드레스를 입은 채 톰과 함께 도망다니기 시작하는데,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이 모든 것을 가부장제의 비유로 본다면 무시무시한 장면이다. 편한 바지를 입은 톰은 도망다니면서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하지만 달시의 드레스는 계속해서 찢어지고, 달시의 머리에 얹어진 비싼 가발은 달시가 달리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가발을 벗어던지면서도 비싸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톰의 주머니에 쑤셔넣는 달시는 종국에 그 가발이 구원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톰이라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아마도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있었을 달시는 어느 순간 맨발이 되고, 결국 해적에게서 부츠를 벗겨내 신지만 드레스로부터는 여전히 도망치지 못한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달시의 드레스는 영화 내내 제니퍼 로페즈의 신체를 눈요깃감으로 활용하는 도구로 변모하고,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드레스의 가슴선 위로 로페즈를 잡아 관객으로 하여금 로페즈의 나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부엌에서 해적의 공격을 막아내던 톰과 달시는 자신들을 묶고 있던 끈을 끊어내는 데 성공하지만 톰의 출혈을 수반하게 되고, 이는 톰의 신체적 약화로 이어지는 대신 달시의 약점(기절)을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가부장제의 미약한 상징으로부터 탈출하면서도 달시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신체적인 자유를 얻는 대신 혼절하여 무방비로 노출되고, 톰의 도움이 없이는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비유된다. 이전 장면에서 용감하게 짚라인을 타고 수류탄을 적기에 던져 해적을 물리친 달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을 감안하면 이 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다소 노골적이다. 톰은 달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가부장제에 속박하기 위해 해적을 물리치며, 이 과정에서 약간의 출혈 정도는 감내한다. 달시는 결국 드레스의 일부를 찢어내지만 온전히 달아나지는 못하고, 결국 톰과 함께 가부장 그 자체를 상징하는 양가 가족들과 하객을 구하기 위해 풀장으로 돌아온다.
영화 내내 달시는 단곗수가 적은 계획을, 톰은 단곗수가 많은 계획을 선호하는 양상을 보인다. 달시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입는 데도, 벗는 데도 많은 단계를 요구하는 데다 드레스 이외에도 머리와 화장 등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달시가 단순한 계획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결혼식에서조차 신랑에 비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신부인 달시는 나머지 계획은 단순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반면 탈착이 자유로운 정장을 입은 톰은 단순해 보이는 자신의 역할이 단조롭다고 느낀다. 또한 복잡한 단계를 거쳐 가부장제 속으로 달시를 끌어들여야만 달시가 쉽게 떠나지 않을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마치 단순한 계획을 선호하던 달시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 계획의 단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주지만, 실상은 단계가 몇이든 이미 가부장의 덫에 걸려든 달시에게 필요한 계획은 단 한 단계뿐인지도 모른다. 결혼을 포기하고 웨딩드레스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마침내 풀장에 도달한 톰과 달시는 그 곳에서 놀랍게도 결혼의 실체를 목격한다. 이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이 모두 이상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를 상처입히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달시와 톰은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달시는 해적을 처단하는 영광마저 야구선수인 톰에게 돌린다. 아무도 보지 못할 때에는 적재적소에 수류탄을 던졌던 달시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는 수류탄을 톰이 쳐내도록 던지는 장면은 결혼제도 안에서 모든 영광은 신랑을 향할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바다 위로 가서야 톰과 달시는 그나마 동등하게 마지막 적과 겨룰 수 있게 되지만 목격자는 본인들과 망자뿐이다.
헐리웃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웨딩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며 이성연애를 찬양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세지들을 읽어내는 관객이 있다면 언젠가 웨딩드레스는 폐기될지도 모른다. 다 찢고서야, 그리고 해적의 부츠를 빼앗아 신고서야 해변을 자유롭게 달리는 달시의 모습은 결혼식이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은 여성의 희생을 은유적으로 보여주지만 읽어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 이미지 출처는 모두 다음 영화입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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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귤과 보리수 사이
정신과에 처음 방문하면 으레 받게 되는 검사 중 MMPI-2라는 게 있다. 내담자가 약술형 문장의 빈칸을 채우게 한 뒤 완성된 문장을 보고 스트레스의 원인과 강도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심리 측정 방법이다. 500개가 넘는 문항이 이어지던 검사지 후반부에 이런 항목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가족은 _____이다.”
돈 벌기 시작한 친구들이 너도나도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하던 즈음에, 가장 친했던 친구는 이 문장을 두고 “모든 가족은 화내는 아빠와 그걸 참아주는 나머지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대답했다고 말해주었다. 대체로 평화롭지만 어떤 순간들은 분명 위기였던 우리 집의 사정을 생각하면 일면 공감도 되지만, ‘모든’ 가족이 그렇다는 일반화가 가능한지 멈칫하게 돼서 즉각 동의를 표하진 못했다. 몇 년이 지나도 뇌리에 남은 그 문장을 여러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다녔다. 아는 이가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하면 딸들은 모두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기 마련이었다. 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가족은 맞는 것 같아. 모든 집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아빠는 그래.
그러니까 이건 말하자면 제주의 감귤나무 같은 이야기다. 너희 집에도 그거 있어? 하고 물으면 지역에 대한 편견이라고 짐짓 화를 내다가도 “다 그런 건 아닌데 우리 집엔 있어” 하게 되는 그런 거. 제멋대로 군림하는 아빠와 져주는 체 모르는 체 넘어가는 엄마와 결국 참다가 폭발하고 마는 딸들을 나는 너무 많이 보고 듣고 겪어왔다. 그래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극적이고 혼란스러운 매 에피소드가 그리 먼 나라의 사정 같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땅에 발을 착 붙이고 시작했다가 그 땅을 말 그대로 뚫어버리는 그리스 비극 같은 마무리로 성큼 나아간다. 집 밖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은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에 끌려갔다 의문사한 실제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만, 나즈메, 레즈반, 사나 네 가족의 집 안은 그만큼 위태롭지 않다. 2022년 히잡 시위의 면면은 이때까지만 해도 딸들이 나눠보는 영상 메시지, 뉴스 속 왜곡된 진상, 나즈메가 딸들을 데려다주며 목격한 도로 통제와 연기와 함성 등, 집의 단단한 벽 - 보호이자 철책 -에 접한 외피로만 존재한다.
20년을 현장직 수사관으로 일명 ‘도덕 경찰’처럼 일하다 드디어 ‘수사판사’로 승진했다는 아빠 이만은 야근 후 차를 챙겨주는 부인에게 “정말 고마운데,” 지금은 마시기 싫다며 제법 상냥하게 의사를 표할 줄 아는 남자다. 그간 이란, 시리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의 영화가 다양한 스펙트럼의 톤으로 고발한 폭력적 남성성의 향연에 노출되어 온 관객이라면, 이정도 매너만 해도 그가 얼마나 다정한 가장인지 곧바로 직감할 터. 그는 자신을 추천했다며 생색내던 동료가 ‘검찰의 지시’라며 신법에 반기를 든 젊은이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라 전하자 “그럴 수는 없어. 20년간 정직하게 일해왔어”라며 저항하기도 하고, 딸들의 안위를 세심히 챙기고 걱정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는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한 보수주의자, 원칙주의자이면서도 천성은 다정하고 소심한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극의 중반까지 집안의 통치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는 오히려 엄마인 나즈메다. 러닝타임 1시간 20분이 지나 아빠가 총을 잃어버리는 극적 순간에 닿기까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엄마’에 불과하지만, 그는 남편을 씻기고 돌보며 아이들을 통제하는 관리자 역할에 충실하다. 머리가 커버린 레즈반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벼려가는 사나가 종교적, 가부장적 규칙에 의문을 표할 때마다 나즈메는 아빠의 명예, 가족의 안위를 내세워 침묵과 순종의 태도를 종용한다. 그는 작중의 ‘눈’을 맡은 이, 다시 말해 실질적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딸들이 등교 직후 학생 시위대와 폭력 진압 중인 경찰 사이에 끼여 위험에 처할 때조차도, 그 딸들이 아닌 차 안에 놓인 엄마의 시점에서 로드뷰가 전개되는 것이다. 때문에 관객은 전반부 거의 모든 시퀀스에서 이만을 배경으로 밀어두고 나즈메의 긴장 가득한 감정선을 추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딸들이 곧 겪을 게 뻔한 가정 내의 싸움은, 어딘지 헐렁한 아빠 이만보다도 “이런 문제는 엄마 담당”이라고 선포한 나즈메와의 언쟁에서 시작될 것만 같다.
전반부 이만과의 관계에서도 나즈메는 종보다는 주인에 가까운 듯 보인다. 판관으로 임명된 밤 이만이 귀가해 희소식을 전하자 곧장 “우리 더 큰집을 받을 수 있을까?”하고 묻거나, 사형 선고를 내리는 ‘일’을 하고 돌아와 넋이 나간 이만이 얌전히 나즈메의 손길에 따를 때 “이만, 졸린 거 아는데 식기세척기 사준다고 한 거 기억하지?”라고 되새기며 이만을 은근하게 조종하듯 달래듯 다루는 식이다. 이때 이만은 흐릿하게 화면의 가장자리로 치워지거나 비누거품이 발라지고 면도당하는 일종의 오브제, 완전히 대상화된 남성으로 그려지는 반면, 나즈메의 얼굴은 언제나 스크린 정중앙에 정면 클로즈업샷으로 잡혀 있어 막중한 위압감을 뽐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계속해서 핸드크림을 바르는 나즈메의 버릇 또한 가사로 지친 몸을 남편의 새 지위에 기대어 보상받고자 하는 욕망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 모든 오락적 착시는 집 밖의 현실이 딸들의 어깨에 기대어 집 안으로 밀려들어온 그 즉시 탈을 벗고 본색을 드러낸다. 날이 바짝 선 엄마의 경계란 기껏해야 대여한 권위의 표현이었을 뿐이고, 변덕도 성질도 부릴 수 있는 절대권력은 처음부터 아빠 쪽에 있었음을 명시하는 후반부로의 전환은 너무도 빠르고 우악스러워 거의 황당할 정도다.
딸들이 신권정치 반대 시위에서 다친 친구 사다프를 데려왔을 때 그애의 얼굴에 박힌 총알을 빼주자마자 냉정하게 밖으로 내보내는 사람은 역시 나즈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산탄총의 흔적을 물에 쓸어내리는 슬로우 모션을 기점으로, 나즈메의 내면에서 무언가 뒤바뀐다. 그간 이만은 양심과 책무 사이 갈등을 소화하기 위해 국가가 원하는 역할에 자아를 끼워맞추는 작업을 완료해버린다. 그는 “아무리 강직하고 신앙이 견고하다 해도 사형선고는 어려운 일”이라고 풀죽어 토로하던 인간적인 남편이었다가, “여기서 버텨서 입지를 다져야 한다”는 동료의 비겁한 충고를 완벽히 흡수하곤 “운도 더럽게 없지, 이 자리에 있을 때 시위가 터지다니”라고 툴툴대는 공무원으로 이행하고, 최종적으론 “우리가 다 치울 거야. 체제에서 단물 빨아먹고 반기 드는 애들 말이야”라며 권력자의 언어를 그대로 답습하는 하수인으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그래서 엄마아빠는 경찰에 끌려간 사다프의 행방을 알려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에 이전까지의 대응과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이게 된다. 폭력이 닿은 밑바닥의 끄트머리나마 제대로 목격한 나즈메는 일말의 죄의식과 책임감에 두려워하며 사다프를 찾아달라고 남편과 친구에게 부탁하고, 이미 위에서 무감하게 수단화된 폭력을 조감한지 오래인 이만은 ‘애들이 왜 그런 친구를 사귀었냐’며 일축하고 단속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부부가 침실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나 다름없는 이 반전의 순간에, 엄마는 “정말 아무것도 안했대”라고 딸들의 증언을 되풀이하고, 아빠는 “원래 피고인 가족은 다 그렇게 말해”라며 제 딸들을 불신의 영역으로 밀어내고 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가족들에게 가감없이 발휘된 강약약강의 분노조절장애, 편집증적 불신, 기어이 돌발적 폭행까지. 후반부 1시간 동안 이만이 보여준 ‘변화’는 아마 그의 안에 아주 오래전부터 내재된 불씨였을 것이다. 온순한 사람이었던 이만의 타락이랄까 전향을 두고 놀라워할 필요도 없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무언가가 ‘깨어난’ 것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 모두 아니까. 관 안에서 나는 수십년 간 같은 것을 보고 들은 여자들의 긴 한숨과 탄식을 몇 번이고 듣는다. 언젠가 한 여자가 말했듯이, “딸들만이 아는 아빠의 매캐함이 있죠”.
통치자가 별 볼일 없고, 자격 없고, 칠칠맞고, 불안해할수록 중간관리자가 더욱 날뛰어야 체제가 유지된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 집안에서 이만의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나즈메가 대신 나서 점점 더 유난스레 딸들을 단도리했다면, 국가 차원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독재 정권의 명분 없는 헤게모니를, 신권정치와 가부장제의 오래된 유착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뒷방에 숨은 권력 대신 온갖 유난을 떠는 건 이만과 동료들 같은 중간관리자-남성 기득권 집단이다. 먼 훗날 부당한 권세가 몰락하고 갈기갈기 찢긴다면 그들은 ‘몰라서 동원된’ 것에 불과하며 본질은 선량한 자신을 무죄라 칭하겠지만 아이히만 역시 그러했다. 남성 중심적 종교국가의 법적 강제력에 기대어, 유리한 카르텔에 쏙 들어가 히잡 쓰지 않을 자유를 마음껏 누리던 이들의 신앙과 도덕이란 얼마나 같잖고 이중적인가.
처음 이만의 공포는 동료들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했고 그러니 어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초조함에서 기인한다. 총을 분실한 그는 부인 앞에서만 불안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다들 날 무능하다 할 거야.” 기어이 자기 집 여자들을 심문(십중팔구 고문과 심리적 학대를 동반했을)에 특화된 동료 수사관 알리레자에게 데려간 이만은 그로써 자기 우선순위가 무엇에 있는지, 가족보다 중요한 준거집단이 어디인지 확실히 표명한 셈이다. 그러나 그가 ‘자리를 잡을’ 그 이너 서클이야말로 부패와 불공정의 온상과도 같은 곳이다.
사려깊고 현명한데다 인내심 있는 여자들을 셋이나 가족으로 둔 이만에겐 선택을 바로잡을 기회가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이만은 자신이 어느새 악취 나는 늪 한가운데에 서있게 됐다는 사실에서 애써 눈을 돌리고 딸들과 부인을 옛 고향 집에 가둔 후 ‘순종, 믿음, 절대복종’이라는 무슬림의 대원칙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22년 히잡 시위에서 레즈반과 사나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그에 맞서는 구호를 길거리에서 외쳤다: 여성, 삶, 자유 (Women, Life, Freedom).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더 불어나며 사회의 상층부를 압박한다.
그리하여 이만의 공포는 하찮은 수컷 무리 내의 인정욕구에서 실존적 위험으로 그 근간을 달리 하게 된다. 수사판사로서 신원이 노출된 후 귀갓길에서 차들이 죄다 자신을 공격하려 하는 건 아닌지 극도로 의심하게 된 이만의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미러링이자 블랙 코미디다. 멈춰선 옆 차에서 크게 노래를 틀고 히잡도 쓰지 않고 타투와 팔을 그대로 내어놓은 채 ‘감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젊은 여자를 마주치자, 이만은 그를 체포할 직업적 의무와 자격을 모두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깔고 여성의 반대편 차로로 황급히 도망친다. 그가 드디어 불경한 존재들이 모이면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결말의 추격전, 그리고 이옥섭의 <메기>를 연상케 하는 급작스러운 귀결은 안도감과 비애를 동시에 안긴다. ‘어느 집에나 다 있는 아빠’인 이만과의 결말은 정말 그것밖에 남지 않은 것일까? 우리에게 혹시 다른 해법이 있을까, 아빠?
<올파의 딸들>이나 아쉬가르 파라하디를 닮은 치료적 재연, 혹은 마지드 마지디와 자파르 파니히의 시적인 톤을 다소 빼고 노골적인 투쟁성을 더한 리얼리즘 드라마로 칭할 만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일말의 희망을 남겨둔다. ‘영화적’으로 거의 완벽한 마무리 이후 구태여 삽입한 22년 실제 히잡 시위 푸티지 속 자유를 찾은 여자들의 얼굴이 바로 그 희망이다.
우리에겐 다음 세대가 있고 연대를 아는 약자들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 생득적 우위를 점한 이들 중에서조차 (앞선 감독들처럼) 믿는 대로 보지 않고 보는 것에 따라 믿음을 수정하는 이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아래에서 위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이 자유의 몸짓이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 나의 몫, 우리의 몫.
※ 씨네랩 초청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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