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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2025-06-23 23:44:10

우리가 교차하는 순간, <곤돌라>

교차는 곧 타인과의 연결이며, 낯선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다

<곤돌라> Gondola, 2025

 

조지아드라마, 81분 

 

감독바이트 헬머          

 

 

 

우리가 교차하는 순간, <곤돌라>      

 

 

 

 

 

푸르른 산 위로, 따뜻한 노을을 머금은 곤돌라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평화로운 산골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일상이 곤돌라의 궤적을 따라 차근차근 소개되고, 관객은 잔잔한 호수를 유영하는 나뭇잎처럼, 서두를 일 없이 구석구석 탐색한다. 개개인의 삶에 정보의 범람과 기술의 개입이 당연한 세상과는 정반대인, 유일한 교통수단 곤돌라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인식되는 동화 같은 세상. 붉은 곤돌라가, 맞은편에서 오는 주황 곤돌라와 교차할 때마다 터지는 즐거운 미소와 곤돌라에 탑승한 인물들의 관계성이 전하는 따스함. 우린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모두 ‘곤돌라’에 있음을 눈치챈다. 본 작품이, 무성 영화의 아름다운 매력을 현대적으로 잘 풀어냈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말이다.

 

 

 

<곤돌라>의 언어는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다양한 음향과 전체 분위기를 잇는 배경 음악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인물 대부분이 이야기의 포인트가 되는 음향을 직접, 또 함께 연주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곤돌라를 타고 내리는 존재들이 화합해 만든, 가사 없는 멜로디와 완성된 음악이 전개하는 사건, 그리하여 탄생한 새로운 관계까지, 영화는 곤돌라 두 대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면서 불안과는 아주 먼 행복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는 마을에 새로 이사 온 ‘이바’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외지인이란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그녀는 곤돌라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점차 마을의 일원이 되어간다. 마을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승무원 선배 ‘니노’와도 마음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과연 무엇이 이바를 공동체 안에, 그것도 단기간에 들어가게 했을까. 승무원 유니폼이 그녀 체형에 꼭 맞아 채용됐다는 위트도 한몫했지만, 지대한 영향을 준 건 역시 곤돌라다. 체스로 시작한 두 사람의 소리 없는 대화는 곤돌라를 기꺼이 변형하면서 더 깊어진다. 프로펠러를 달고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바퀴를 달고 경적을 울리며 가는 자동차, 물살을 가르는 거대한 배, 화성이 목적지인 우주선까지 이들의 귀엽고 재미난 교류는 어떠한 경계도, 현실적 제약도 없이 이뤄진다. 또한 둘의 소통은 이야기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틈틈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헤아리는지 알려준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곤돌라 운행이 얼마나 많은 이의 마음을 간지럽고 따뜻하게 하는지도.

 

 

 

특별한 마법을 부리는 듯한 곤돌라는 교통수단으로써의 유일성 외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자유로운 소통’, 사람들에게 곤돌라는 자기를 포함한 모두의 일상에 평안을 주는 귀중한 소통 창구다. 사람, 가축, 시신을 담은 관은 물론이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도 실어 나르는, 없어선 안 될 마을 집배원 같달까. 분명 인간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수동적인 기계에 불과한데, 날개를 단 듯 무척이나 자유롭게 하늘을 누빈다. 이동이란 단순한 움직임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낭만적인 과정으로 변주되는 것이다. 관이 곤돌라에 담겨 옮겨지자 하던 일을 멈추고 떠난 자를 가슴 깊이 추모하고, 이브와 니노의 사랑을 응원하기 위해 다 함께 음악회를 여는 사람들의 모습, 유일한 악당인 곤돌라 사장의 횡포에도 지지 않고 모두를 위해 곤돌라를 운행하는 승무원들의 의지가, 그 모든 마음의 합일이 이를 증명한다. 이바와 니노의 이야기에서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순간이며, 영화는 이 과정을 마지막까지 따스하고 아름답게 풀어낸다.     

 

 

 

물론 마냥 행복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빛이 빛일 수 있는 건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이듯, 해피엔딩 역시 극복하기 힘든 고통(악인)을 품고 있기에 해피엔딩이니까. 이바와 니노 사이를 질투하고 방해하는 곤돌라 사장은 시작부터 돈과 자기 자신만 중요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곤돌라 운영을 독점하고 고객도 가려 받는 못된 심보를 가졌는데, 결국 어린이 동화 속 악당처럼 선한 이들의 합심에 통쾌한 웃음을 주며 자멸한다. 동시에 사장의 존재는 곤돌라가 가진 의미를 더 넓게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독재를 무너트리고 자유를 수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아가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곤돌라가 품은 다양한 가치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지 않기에 가능한 상상들이다. 이바와 니노가 서로를 위해 만든 언어를 바탕으로 담백하면서도 평화롭게 알리는 <곤돌라>만의 부드러운 화법이랄까.

 

 

 

곤돌라는 귀한 소통 창구다. 피하고 싶어도 절대 피할 수 없는 교차는 곧 타인과의 연결이며, 낯선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다. 너와 내가 손잡고 함께 걷는 과정이고,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설령 강제로 운행이 중단돼도 함께 하고자 하는 다짐과 용기로 서로를 믿고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바와 니노, 마을 사람들이 들려준 경험담이 충분한 격려가 됐으리라 믿는다. 다시 붉은 곤돌라가 출발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주황 곤돌라, 중간 지점에 도착한 순간 두 곤돌라가 정차한다. 미래의 이바와 니노가 될, 귀여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서로를 향해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곤돌라>, 함박웃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작성자 . 우란

출처 . https://brunch.co.kr/@dkdnfk91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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