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6-06 14:29:22
6월 1주차 최신 씨네 뉴스 2호
📢 넷플릭스 ‘성난사람들 시즌2’, 윤여정·송강호 부부로 출연?
📮 6월 1주차 2번째 씨네뉴스가 도착했습니다!
📢 넷플릭스 ‘성난사람들 시즌2’, 윤여정·송강호 부부로 출연?
산타바바라 시골을 배경으로 사랑과 결혼을 다룬 시즌2에,
한국 재벌가 설정까지 더해졌다고 합니다.
회장님 윤여정과 남편 송강호라니… 벌써부터 긴장감 최고🔥
이성진 감독이 직접 밝힌 캐스팅 소식, 기대 안 할 수 없죠!
🗞️
❶ 윤여정·송강호, 넷플릭스 ‘성난사람들’에서 부부로 만난다.
❷ 제13회 무주산골영화제 6월 6일 개막, 개막작은 ‘바람’
❸ 루카 구아다니노, ‘샘 알트먼 사태’ 다룬 AI 실화 영화 연출 논의 중
❹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 신작 '페이퍼 타이거' 촬영 돌입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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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협에 구애받지 않는 아름다운 그녀들의 동행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이을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개봉한다는 소식은 폭염에 지친 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의 데뷔작 <우리, 둘>은 등장과 함께 46회 세자르영화제에서 총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데뷔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출품되면서 영화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다.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된 화제작 <우리, 둘>에 대한 소식은 확인하기 위해 용산 아이파크몰을 찾았다.
노년 은퇴 계획을 구상하며 한 껏 즐거워하는 니나(바바라 수코바)와 마도(마틴 슈발리에). 로마에서 여생을 보내기 전 마도는 가족들에게 니나와의 연애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생일날 마음속 깊이 묻혀있던 진실을 고백하려 노력하는 마도. 하지만 끝내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진 못한다. 자신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마도에게 서운함을 느낀 니나는 결국 심한 말을 하기에 이른다. 그날 밤 알 수 없는 이유로 병원에 실려간 마도, 다행히 생명에 이상은 없었지만 뇌졸중 판정을 받고 말을 잃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가족이 고용한 가정부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가갈 수 없던 니나는 조급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마도의 집 문을 열어젖히고 만다.
“일반적이지 않다”, <우리, 둘>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던 중 사라진 친구를 찾던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까마귀 소리, 대칭의 구도에 대한 집착은 예감을 확신으로 만들어갔다. 첫 데뷔작부터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일반적임을 거부하며, 미래 거장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두 노년 여성의 사랑이란 독특한 설정의 <우리, 둘>은 일련의 사건으로 자신을 찾아가며 서서히 완성되는 전형적인 영화의 문법과 거리를 둔다. 이 영화에서 니나와 마도는 이미 완성된 인물들로 등장한다. 동성애자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온전한 사랑을 위해 사회의 편견이란 최후의 벽을 넘어 인정받기 위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회는 편견으로 가득했고 결국 그들은 진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몸이 불편한 마도를 대신해 투쟁의 최전선에 선 니나는 사랑을 위해 잔인한 일면을 보이기도 하며, 영화는 뜨거움과 서늘함 사이를 오간다. 극적인 온도차를 표현하기 위해 색채와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효과적으로 장르의 변화를 도모한다. 특히 색채를 활용한 인물의 감정 변화에선 감독의 독특한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 둘>을 관람한 후 쉽게 인상에서 지워지지 않는 색채를 집어보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후의 내용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어 영화를 관람 후 읽어보길 추천한다.어떤 색에도 쉽게 물들 수 있는 색, 마도의 하양
이야기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두 소녀는 각각 검은색과 하얀색 옷을 입고 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검은색이 명백한 니나의 색이라면 하양은 마도의 색이다. 마도는 환경에 쉽게 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니나와 반대로 마도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까지 낳았다. 이후 집을 팔기로 결정했다가 아들로 인해 번복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상황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변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인다. 특정색과 혼합되는 순간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는 하양의 특성을 통해 마도의 성격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불안과 열정 사이, 검정과 빨강의 니나
독특하게도 니나는 변함없는 검정과 불꽃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빨강, 두 가지 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확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니나는 주변의 어떤 영향에도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까마귀의 모습을 통해 근거 없이 동성애를 불행이라 폄하하는 사회의 시선에 니나가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불안을 느끼는 니나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하얀(마도) 담배를 검정(니나)이란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싶어 하는 그녀의 조바심을 드려내는 듯하다. 갑작스러운 마도의 병이 니나의 조바심을 폭발시키고 얼마 남지 않는 순간이나마 화려하게 보내기 위해 그녀는 정열적인 붉은 옷을 입고 연인의 앞에 서기에 이른다. 이는 타들어가는 순간 돌이킬 순 없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나고 싶은 니나의 열정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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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과 영문 제목 사이의 괴리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정치가 싫었던 인권 변호사 문재인은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 청와대 5년, 그는 왜 권력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을까? 사저 시위대의 욕설 속에서 그는 왜 묵묵히 꽃만 심었을까? 그를 지켜본 이들이 한 조각씩,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는 왜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 시절은 왜 '대통령 문재인'을 원했을까?' 그 퍼즐이 비로소 완성된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양날의 검
노이즈 마케팅. 가장 많이 알려진 마케팅 기법 중 하나다. 이 기법의 핵심은 이슈다.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이어도 좋다. 사람들의 입에만 많이 오르내리면 된다. 품질에 관계없이 관심을 끌고, 일단 제품을 알리는 것. 노이즈 마케팅의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입니다>는 노이즈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줬다. <사이에서>, <길위에서>, <목숨>, <노무현입니다>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의 신작은 공개 전부터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정치적 갈등을 초래할만한 발언이 담긴 영상을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258회에서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그 영상은 본편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품 품질과 무관하게 관심을 끈다는 목적을 120%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은 양날의 검이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구설수를 호평으로 바꾸지 못하면 역효과가 난다. 제품 품질에 대한 평가가 구설수에 먹힐 수도 있다. <문재인입니다>도 마찬가지다. 메시지에 쏠려야 할 관심이 정치적 공방에 묻혀 버렸다. 정치 성향을 떠나서 안타깝다. 지지 정당이나 정치인 문제를 떠나서 보더라도 <문재인입니다 This is the President>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헤치다
이창재 감독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영화는 <노무현입니다>다. 하지만 이 영화로 이창재 감독을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하다. 정치적 성향을 지우고 나며 그의 작품에 깃든 독특한 세계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매개체는 달라져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일관적이다.
<사이에서>는 신내림과 속세 사이에서 갈등하는 무속인의 삶을 그려낸 영화다. <길위에서>는 비구니 스님을 통해 속세를 떠나야 하는 운명을 관찰한다. <죽음>과 <노무현입니다>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에 대해 묻고, 한 시대의 얼굴이 되었지만 죽음을 선택한 대통령을 그려낸다.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삶과 운명의 관계를 찾으려는 사색으로 가득하다.
<문재인입니다>도 같은 길을 걷는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에서 퇴임한 한국 대통령은 이상한 존재다. 그 자체로 운명과 인간적 삶이 충돌하는 아이러니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아무나 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아는 정치인이어도, 가장 유력한 후보도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다.
하지만 끝은 가혹하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현직 못지않게 무겁다. 죽거나, 망명하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자살하거나... 누구 하나 희극을 맛본 이가 없다. 그러니 퇴임 후 조용히 잊히고 싶다는 대통령은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마모되고 부서지기 일쑤인 자리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지지와 비난이 맞닿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문재인입니다>는 그 삶의 의미를 찾는다.
대통령의 두 얼굴, 아틀라스와 프로메테우스
영화는 대통령이라는 운명을 마주한 인간을 둘로 쪼개 카메라에 담는다. 한쪽에는 아틀라스가 있다. 지구만큼이나 무거운 과업을 5년 동안 수행하는 사람이다. 다른 한쪽에는 헤라클레스를 만난 프로메테우스가 있다. 그는 마침내 형벌에서 풀려나 자유를 찾았다.
처한 상황이 상이한 만큼 두 이미지를 묘사하는 분위기도 다르다. 오랜 변호사 동료와 임기 동안 함께 일한 사람들의 진술은 아틀라스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들의 증언은 단순한 '문비어천가'가 아니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의 특징을 나름 객관적으로 들려준다. 인내하는 사람, 듣는 사람, 과묵한 사람의 장단점이 빠르고 날카로운 리듬으로 제시된다.
그 과정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도 등장한다. 주한미군 방위금 문제, 일본과의 무역 전쟁, 조국 사태 등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정치적 평가에는 관심이 없다. 굵직한 현안을 헤쳐 나오는 주인공의 습관과 태도, 정치 방식을 전할 뿐이다.
반면에 자유로워진 프로메테우스는 평화롭다. 대통령 퇴임 직후 그가 아내와 비서진의 도움을 받아 정원을 가꾸는 일상을 보여준다. 반려 동물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산책에 나서는 모습이 뒤따른다. 전 대통령의 일상은 긴 템포로, 차분하게 전시된다. 물론 운명의 무게를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반대파의 외침이 그의 집을 감싼다. 과거의 결정이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지울 수 없다.
조롱과 욕설에 침묵하며 농사짓고 반려 동물을 돌보는 삶. 이 전원생활을 보다 보면 천성적으로 정치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난리 끝에도 조국 전 장관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차라리 대통령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동정과 비난 사이로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이는 <문재인입니다>가 영화적으로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듯 보이는 이유다. 아틀라스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프로메테우스가 얼마나 힘겨웠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과중한 운명을 마주한 인간의 두 얼굴을 성공적으로 포착한 셈이다.
국문과 영문 제목의 괴리감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문재인입니다>의 영화 외적인 선택은 더욱 의아하다. 마케팅을 비롯한 선택 하나하나가 영화의 본질을 가리고 불필요한 논쟁과 소모전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제목부터가 문제다. 물론 전작 <노무현입니다>와 이어지는 영화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열망이 읽히기는 한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분량도 일부 있다.
하지만 <문재인입니다>라는 제목은 내용이나 메시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영화는 문재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통령직을 수행한 한 인간을 살핀다. 그런데 매개체에 불과한 문재인이라는 이름에는 수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 이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름에는 한국 사회를 둘러싼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이슈와 논쟁이 함축되어 있다. 이슈 하나하나가 찬반이 격돌하는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남북관계, 탈원전, 한일관계 등. 즉, 문재인이라는 이름 석 자는 역으로 영화의 참뜻을 가려 버린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영문 제목인 <This is the President>가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본질에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다가간다. 잘못 번역된 외국 영화 제목이 오해를 초래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문재인입니다>는 보기 드문 반대 사례인 셈이다. 국문과 영문 사이의 괴리감은 영화 외적 요소가 평가와 해석, 감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어떤 이유 때문이든 과소평가한 결과처럼 보인다. 감독의 전작이나 정치적 성향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Poor 형편없음
의도는 흥미롭다. 그러나 방해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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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불완전한 둥지 안에도 삶은 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눈을 사로잡는 섬세한 영상미의 영화 하나를 감상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앤드리아 아널드는 삶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감독인데요. 이번에도 그는 영국 하층민의 삶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현실을 포착하는 냉철한 시선 끝에 맺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영화 <베일리와 버드>입니다.
베일리와 버드
Bird
Summary
열두 살 베일리는 싱글 대디인 벅과 오빠 헌터와 함께 북부 켄트의 무단 점거한 집에서 살고 있다. 벅은 아이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 많지 않고 사춘기에 접어든 베일리는 집 밖에서 관심과 모험을 찾으려 한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앤드리아 아널드
출연: 니키야 아담스, 배리 키오건, 프란츠 로고프스키
날갯짓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의 주인공은 사춘기 소녀 '베일리'입니다. 그는 비행 청소년, 양아치, 건달들이 무단 점거하고 있는 낡은 건물에서, 미성년자였던 시절에 자신을 낳은 아빠 '벅'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벅'은 그야말로 오늘 하루만을 사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면 버는 대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죠. 내일에 대한 계획 없이 그날그날을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사는 아빠가 석 달 만난 새 여자친구와 또다시 느닷없는 결혼을 선포하자, '베일리'는 일상에 질려버린 채 집 밖을 맴돕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밖을 배회하던 '베일리' 앞에 새의 날갯짓이 만들어낸 바람처럼 홀연히 '버드'가 나타납니다. 오래전 헤어졌다는 가족을 찾으러 이 마을에 왔다는 '버드'. 둥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베일리'는 둥지에서 떨어진 듯한 '버드'를 돕기로 합니다.
겉보기에 '버드'는 몹시 유약해 보이는 인물입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자유로움과 그대로 추락해 버릴 듯한 위태로움이 공존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는 꺾이지 않는 단단함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빠 '벅'이 뱉는 말에는 도무지 신뢰를 느끼지 못하는 '베일리'도 "Don't you worry"라는 '버드'의 말에는 강한 힘을 느낍니다. 얇고 연약한 깃털이 겹겹이 쌓여 바람을 가를 정도로 단단해진 날개로, 그는 '베일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합니다.
'버드'와의 만남은 '베일리'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결국 둥지를 완전히 떠나진 못했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된 '베일리'. 그렇게 영화는 인간보다 더 큰 범위를 조망한다는 새의 눈을 가진 '베일리'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버드'를 연기한 독일 배우 프란츠 로고스키는 이 신비로운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펄럭이는 치마를 입고 옥상에 홀로 머무를 때의 모습은 정말로 새와 같은 형상을 떠올리게 했죠. 생각해 보면, <버드맨>부터 <애니멀 킹덤>까지 우리는 영화 안에서 인간이 새로 변신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새라는 존재가 가장 자연스럽게 '자유'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버드'처럼 또 '베일리'처럼 다가올 바람을 기다리며 높게, 멀리 날아가기를 꿈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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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이진 않지만,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영화는 베일리와 버드의 관계만큼이나, 미성년자 부모가 구성한 가족의 형태에도 집중합니다. 아빠 ‘벅’은 14살에 첫째 아들 '헌터'를 낳았고, 머지않아 또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베일리'를 얻었습니다. '베일리'의 엄마에게도 세 명의 자식이 더 있죠. 그러나 젊고 치기 어린 두 부모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아이를 잉태할지는 도무지 가늠이 어렵습니다.
이들은 아이를 낳지만, 아이를 위한 적절한 환경을 준비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채 자라는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폭력에 노출되죠. '베일리'에게 세상의 전부는 무단 점거된 건물과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양아치들뿐입니다. 그 너머의 세계는 인식되지도, 정의되지도 않았죠. 주먹을 휘두르는 오빠 '헌터'를 향한 분노도 ‘끼워주지 않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토록 불완전하고 위험한 환경에 놓인 '베일리'를 보며 아빠 '벅'에게 화가 차올랐지만, 어쩐지 영화가 흘러갈수록 이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은 오묘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벅'은 자식들에게 "너희를 낳은 걸 후회해. 하지만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이 대사를 두고 누군가는 ‘비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포장한 대사’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이상하다고 평가해 버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벅'은 아이가 귀가하지 않으면 걱정하고, 자신의 결혼식에 함께해주길 바라고, 아이가 괴로워하면 곁에 앉아 진심으로 위로하려고 합니다. 그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베일리'도 끝내는 가족의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때, 영화가 포착한 베일리의 심정은 벗어날 수 없는 가족 안에서의 체념이 아니었죠.
너무 직설적이라서 마음이 아프고, 아프다 못해 그냥 외면해 버리고 싶은 가정의 모습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삶이 다르니, 사랑의 모습도 다를 수 있습니다. 삶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 안엔 저마다의 좌절과 희망이 있습니다. 누구의 방식이 옳다거나 틀렸다고 말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 이 영화는 그런 시선을 우리에게 건넵니다.
One-Liner
고장 난 둥지에서도, 누군가의 품이 있다면 새는 자란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CGV전주고사 1관 10:30
2025.05.05(월)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13:30
2025.05.06(화) 메가박스 전주객사 1관 20: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30일 -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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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계의 사랑법
해당 리뷰는 씨네랩 초청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등 이미 다수의 로맨스 영화를 감독한 미키 타카히로 감독님의 신작이다.
주인공인 리쿠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대학시절 운명적으로 만난 아내 미나미와는 결혼한지 8년차. 리쿠는 글을 쓰고 미나미는 음악을 하며 다정히 사랑했던 연애 초반과는 다르게, 이제 그에게 미나미의 내조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미나미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그였지만, 사회적인 성공을 얻기 시작하며 그때의 마음은 퇴색 되었다. 소설의 마지막 탈고를 앞두고 있던 시점, 엔딩을 보여 달라던 미나미의 말을 무시하고 잠든 다음 날, 눈을 떠보니 자신이 알던 현실과는 전혀 다른 평행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리쿠. 아내 미나미가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오히려 성공한 싱어송라이터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세계이다. 리쿠는 다시 한 번 그녀와의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처음부터 다가간다.
평행세계라는 소재를 끌어왔어도 판타지 영화보다는 로맨스 영화에 훨씬 큰 축을 둔 듯 하였다. 특히 로맨스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클리셰적인 연출은 자칫 과하다 느껴질 정도로 부각된 편이다. 클리셰적인 연출이 가장 기능적으로 유려하게 쓰인 부분은 단언컨대 오프닝 타이틀이다. 리쿠와 미나미의 연애 과정은 첫 만남의 파트를 제외하고, 타이틀이 뜨는 동안 전부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뻔하다 느껴질 수도 있으나, 대신 대사 한줄 없어도 '리쿠와 미나미의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이 리쿠의 사회적 성공과 함께 빛바랬다'는 긴 시간의 압축을 관객들은 놓침 없이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수없이 다른 영화에서 반복 되었던 클리셰들로 예측 가능한 전개를 만들어내는 이 영화는, 로맨스 장르로써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서브 인물들의 레이어를 통해 만들어낸다. 주인공들 만큼 조연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지는 영화. 주인공들이 메인 스토리를 끌어가는 사이에 조연들이 다채로운 레이어를 만들어낸다.
조연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단순히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도록 깊이를 더한다. 리쿠가 도달한 평행세계는 그냥 우연히 생긴 곳이 아니다. 누군가는 슬픔을 껴안고, 누군가는 자신의 상실을 견디며 끝내 이 삶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세계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인물은 리쿠의 선배이다. 이 세계의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지만 그 고통을 세상과 단절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그의 존재는 말하지 않아도 리쿠에게 이렇게 전하는 듯하다. “다시는 사랑할 수 없더라도, 그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는 있어.”
그는 자신의 삶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이 세계에서 리쿠가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다. 리쿠는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뒤늦게 알아간다.
더불어 미나미의 할머니는 이 세계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한다. 그녀는 젊은 시절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꿈을 내려놓고, 가족의 탄생을 선택한 인물이다. 결국 선대에 존재했던 그녀의 희생 덕분에 미나미가 살게 되고, 리쿠와 만나고, 리쿠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워진 선택들,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한 선택들이 쌓여, 이 세계의 미나미가 지금의 자리에서 노래할 수 있게 되고 저 세계의 리쿠가 미나미를 사랑할 수 있었다. 주인공의 촘촘한 주변 세팅을 통해 이 영화는,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여겼던 순간들조차 사실은 누군가의 포기와 헌신, 배려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감성적으로 되짚는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결국 리쿠가 도달한 진실은, 자신이 돌아가고 싶어 했던 원래의 세계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세계는 누군가의 눈물과 결단, 그리고 사랑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였고, 그는 그 안에서 단지 소비자처럼 사랑을 받아왔을 뿐이라는 자각에 다다른다. 이 영화는 그렇게 말한다. 모든 세계는 결국 누군가가 사랑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고.
그러니 이 영화를 본 우리도 기꺼이 사랑하고, 기꺼이 나를 던져, 누군가의 세계가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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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 표류기> - ‘고립된 세상에서 희망 찾기’
김씨 표류기 (Castaway On The Moon, 2009)
개봉일 : 2009.05.14
감독 : 이해준
출연 : 정재영, 정려원, 박영서, 구교환
‘고립된 세상에서 희망 찾기’
세상을 살아가는 건 만만치 않다. 어른은 사회에서 어른 1인분의 양을 해내야 한다. 눈에 띄지 않는 격식 있거나 평범한 옷을 차려입고, 순식간에 불어나는 여러 빚들을 모르는체하며 바쁜 발걸음의 사람들 사이에 섞일 것. 이게 바로 어른의 일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인생은 외롭고, 벅차고, 두려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왜 이리 작고 하찮은 건지, 아무리 열심히 팔을 휘저어봐도 하루하루 더 깊은 물속으로 잠길 뿐이다. 차라리 고립되거나 사라져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얼마 남지 않은 용기마저 쥐어짜기 힘들 때가 있다.
<김씨 표류기>는 이런 어른의 삶을 살다가 지친 나머지 끝내 자살을 선택한 주인공이 운수 좋게도 살아남아 도심 속 무인도(밤섬)에 고립되어 표류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포스터와 분위기가 다른 영화’, ‘포스터 때문에(?) 관심을 받지 못한 영화.’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 <지구를 지켜라>와 함께 항상 언급되는, 한국판 <캐스트 어웨이>라는 이 영화. 이러한 소문을 듣기 전인 학생 시절, 포스터 때문에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내용과 분위기가 퍽 달라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모가디슈>를 보고 구교환 배우님에게 더 강하게 스며드는 바람에.. 그의 주연작 외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던 필모그래피를 찾던 중 딱! 운명적으로 <김씨 표류기>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언젠가 다시 한번 봐야지 싶었던 영화인데, 거기에 그의 뽀짝한 시절을 아주 잠깐이나마 볼 수 있는 영화라니. 오늘은 이거다 싶었다.
어릴 땐 몰랐는데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현재에 만족한다고 해서 그것이 탄탄하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김씨 표류기>의 주인공 김씨들이 마주한 현실도 딱 그렇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 김씨는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부도나고, 당장 살아가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희망과 돈을 끌어썼지만 남는 건 곱절로 불어난 빚과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뭐 했냐”는 사회의 질책뿐이다. 김씨는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한강으로 뛰어드는데 자살시도마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화려한 도시 서울의 한가운데, 시간이 아주 느긋하게 흐르고 있는 유일한 대자연이자 또 다른 세계의 품에 안긴 김씨는 ‘어차피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죽는 것은 미뤄두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다. 단, 원래 살던 세계에서가 아닌 서울의 룰을 벗어난 무인도라는, 그를 쫓는 것들이 없는 세계에서 말이다.
또 다른 주인공 여자 김씨는 쉼 없이 흘러가는 도시 속에서 홀로 멈춘 시간을 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닌 지나간 오늘을 착실히 삭제해가는 인물이다. 쓰레기가 가득한 어두운 방안, 그것도 모자라 그 방 안에서 가장 비좁은 옷장 안에서 어떻게든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뽁뽁이를 가득 채워 넣고 겨우겨우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자 김씨. 그는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 고립된 세상을 만들게 된다. 인터넷 너머로만 소통을 이어가며 형체 없는 삶을 계획해가던 그녀는 어느 날 발견하게 된 남자 김씨의 흔적을 보고 조금씩 커튼을 열어간다. 무인도에서,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보이지 않는 타인의 온기와 날카로운 외로움을 느끼며 또 새로운 하루를 표류해가는 김씨 둘의 이야기가 가끔은 발랄하게, 가끔은 잔잔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김씨 표류기 시놉시스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한강의 밤섬에 불시착한 남자. 죽는 것도 쉽지 않자 일단 섬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모래사장에 쓴 HELP가 HELLO로 바뀌고 무인도 야생의 삶도 살아볼 만하다고 느낄 무렵. 익명의 쪽지가 담긴 와인병을 발견하고 그의 삶은 알 수 없는 희망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자신의 좁고 어두운 방이 온 지구이자 세상인 여자. 홈피 관리, 하루 만보 달리기… 그녀만의 생활리듬도 있다. 유일한 취미인 달 사진 찍기에 열중하던 어느 날. 저 멀리 한강의 섬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그에게 리플을 달아주기로 하는 그녀. 3년 만에 자신의 방을 벗어나 무서운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7천만 원이 2억으로 늘어나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는 대부업 앞에서 삶의 희망을 잃은 남자 김씨(이하 김승근)는 죽기로 결심하고 한강으로 향한다. 승근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엔 ‘희망’이 없다. 다니던 회사는 부도가 났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쳐도 알아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 무인도에 떨어졌다며 구조 전화를 걸어도 119 구급 대원과 수정이는 매정하게 전화를 끊고, 쓸모없는 상담전화는 그의 마지막 생명줄인 휴대폰 배터리를 끝까지 털어먹는다. 다급해 죽겠는데 내 말은 듣지도 않는 상담사의 목소리와 전기도 없는데 자비 없이 밥을 달라며 졸라대는 휴대폰 음성이 야속하기만 하다.
승근은 죽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원래 살던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된 이 공간에서 다시 살아남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는 야속한 도시를 향해 “진짜로 안 들리냐!!”며 소리치지만 도시는 여전히 승근에게 관심이 없다. 승근은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한다. 그는 혼자였다. 여자 김씨(이하 김정연)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두운 밤, 섬에서 소리치고 있는 승근을 바라보고 있는 단 한 사람, 정연. 그 또한 사회에서 고립되어 자기 방안에만 갇혀있는 인물이다. 왕따에 의한 트라우마로 세상에 나설 용기를 잃은 그는 미니홈피를 만들어 나만의 가짜 세상을 만든다. 미니홈피 안에 있는 건 당연하게도 모두 가짜. 용기도 희망도 없는 어두운 방안이지만 정연은 아직도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좁은 옷장 안으로 들어가 뽁뽁이를 잔뜩 휘감고 잠에든다. 나대신 충격을 흡수해 줄, 나를 감싸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걸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인 두터운 외로움과 두려움은 쉽게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적을 바라야 할지도 모릅니다.”
승근은 버려진 오리 배를 줍고 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며 섬 생활을 나름대로 잘 버텨나간다. 정연은 승근을 보며 동질감과 흥미를 느낀다. 정연은 승근을 외계인 같다고 말한다. 정말 단어의 뜻대로 ‘외계인’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모두가 바쁜 도시에서 특이하게도 혼자 멈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외계인’에는 정연 본인도 포함된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두 사람은 이름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서로에게 유일한 희망이 된다. 희망 따윈 바라지 않았던 승근은 짜파게티 분말 스프와 봉지에 있는 희망이란 단어를 보며 다시 희망과 미래(짜파게티를 먹을..)를 꿈꿔보는데, 시간이 흘러 도착한 정연의 편지와 밭에 난 작은 새싹은 승근에게 새로운 동력이 된다.
HELLO- 습관적으로 외쳤던 이 인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느끼던 외로움의 절반, 아니 8-90%쯤이 날아간 기분이다. 무겁게 비치진 않지만 승근은 외로운 사람이다. 한강에 뛰어들기 전에는 따스하게 그의 전화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고 섬에 들어와선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 그는 허수아비와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랜다.
정연의 경우엔 과거에 동급생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없어 사진을 도용하고, 가짜 세계를 꾸미면서 다른 이들이 달아주는 댓글을 통해 외로움과 의미 없는 오늘 하루를 지워간다. 작은 세계 안에 갇혀 두터운 외로움을 느끼던 두 김씨는 서로의 존재를 벗 삼아 내일을 맞이할 용기를 낸다.
김씨들에게 서로의 존재와 짜파게티는 ‘희망’이다. 승근은 짜파게티를 먹겠다는 희망을 갖고 밭을 가꾸고 섬에서의 생활을 더욱 열정적으로 꾸려나간다. 정연은 승근에게 쉽게 얻을 수 있는 희망인 짜장면을 배달하지만 승근은 그를 거절하고 끝내 자신의 손으로 이뤄낸 희망을 한 그릇 완성한다. 승근의 희망인 짜장면을 되돌려받은 정연은 그가 보내온 거대한 희망 한 그릇을 삼키며 옷장에서 벗어나 방바닥에서 잠을 자기 시작한다.
“요만큼도 허락이 안 되는 거야?”
현실은 이들에게 왜 이렇게 매정한걸까. 승근이 짜장면 한 그릇을 완성하고 정연이 옥수수를 키우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자마자 그들의 세상은 다시 무너진다. 정연의 미니홈피는 거짓인 게 탄로 나고 승근의 섬은 홍수로 인해 폐허가 된다. 홍수가 끝나고 한강 정화작업을 하러 온 공익 요원들은 승근을 노숙자로 보고 그를 섬에서 쫓아내려 한다. 처음 내 손으로 만든 나의 세상이 전부 쓸려내려가고 이렇게 허무한 현실이 다가온다.
사실 승근은 자신이 무인도에 완전하게 고립되었다고, 뭘 해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분리되었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보트만 한번 타면 접근할 수 있는 도시와 가까운 섬. 매일같이 지나가는 유람선에 매번 손을 흔들거나 불을 피웠다면 반년쯤 되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발견될 수도 있었고, 하다못해 짜장면 배달원과 함께 오리 배를 타고 나갈 수도 있었다. (매일 잠을 자던 승근의 오리배도 있다.) 하지만 그는 언제부턴가 유람선을 피했고, 반년이 되는 시간 동안 섬을 탈출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와 못한다 그 중간 어딘가에 걸쳐있다. 나가봤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근은 자신을 끌어내려는 공익 요원들에게 “그냥 여기 있게 해주세요.”라고 애원한다. 그에겐 아무도 없는 외롭고 불편한 섬 생활보다 다시 도시 속에서 살아갈 팍팍한 삶이 더 두렵다.
“1년에 2번,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내 세상을 만나는 시간.”
섬에서는 짜장면과 가끔씩 도착하는 누군가의 편지가 희망이었는데, 섬을 벗어나고 나니 승근이 해야 할 일은 ‘확실하게 죽기’뿐이다. 그는 흙이 가득한 지갑을 버스 단말기에 대며 다시 현실로 돌아왔음을 실감하고 확실하게 죽기 위해 63빌딩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뒤로 정연이 따라 달린다. 타이밍 좋게 울린 민방위 훈련 경보 덕분에 두 김씨를 서로 잘 알지 못했던 희망과 만나게 된다.
정연은 1년에 2번 있는 민방위 훈련이 온전한 ‘내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멈춘 시간을 살아가는 그 순간. 내가 당당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순간. 정연은 봄에 만난 내 세상에 들어온 승근을 가을에 만난 내 세상에서 다시 마주하고, 이번엔 마냥 지켜보는 게 아닌 용기를 내서 악수를 청한다. 나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멈춘 순간, 작은 세계에 갇혀있던 김씨 둘이 눈을 맞춘다. 그리고 훈련 경보가 끝나고 다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손을 잡는다. 멈춘 시간 속, 고립된 나만의 세상에서 홀로 살아온 두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순간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외로움과 불안감 속에서 내가 누군지 말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잃어가고 있던 시간을 지나, 드디어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온 정연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다. “My Name Is 김정연.” 그리고 묻는다. “Who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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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오브 도그> 리뷰
<파워 오브 도그>(감독 제인 캠피온)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등 출연
2021.11.17 개봉
<파워 오브 도그>를 연출한 제인 캠피온 감독은 뉴질랜드 출신으로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여성 영화 감독 중의 한 명이라고 알려져있다.
전작으로는 <피아노>, <내 책상 위의 천사>, <여인의 초상>, <브라이트 스타> 등이 있다.
특히 <피아노>(1993)는 그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알리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파워 오브 도그>로 돌아온 제인 캠피온은 역시나 그의 명성을 증명하듯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진출, 은사자상을 수상하여 다시 한번
그를 기다려온 많은 영화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파워 오브 도그>는 1925년 미국 몬타나에서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는 필(베네딕트 컴버배치)을 중심으로 그의 동생 조지(제시 플레먼스)와 주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필은 거대한 목장을 운영하여 막대한 재력은 물론 위압적이고 마초적인 매력으로 주변엔 늘 그를 따르는 동료들이 있다.
어느 날 그의 동생 조지는 로즈(커스틴 던스트)라는 과부와 결혼하게 되고 로즈의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갑작스런 동생의 결혼으로 인해 왠지 모르게 필은 분노하게 되고, 그 분노는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에게 향한다. 영화는 바로 그들 관계에서는 오는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주된 영화의 장치로 극을 이끌어간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주의 부탁드립니다*
[필이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필은 표면적으로는 마초적이고 위압적이고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로 나온다. 열댓명의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 보이며 로즈를 처음 만난 식당에서도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에게 무례하게 대하고 비아냥대며 놀려대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필의 전사를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그는 오래 전 그가 존경하고 추앙했던 '브롱코 헨리'라는 남자 인물이 언급된다.
단순히 한 인물을 존경하는 것을 넘어서 필이 사랑하는 남자였던 걸로 예상이 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20년대는 환영받지 않고 배척되었을 감정이었을 것이며 '브롱코 헨리'가 세상을 떠난 후 필은 극심한 외로움을 겪었을 것이다.
예상컨대 그 후, 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본색을 감추기 위해 더욱 마초적이고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인물로 변해갔을 것이다.
[필은 로즈의 아들 '피터'와 어떤 관계였을까]
필은 갑자기 결혼 소식을 전한 조지와 그의 가족(로즈와 피터)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자신들의 재산을 위협하는 경계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비교적 우애가 깊었던 동생 조지를 빼았겼다는 일종의 질투심이 더 컸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필은 피터를 놀려대고 괴롭히지만 점차 그 둘은 가까워진다. 필은 피터에게 승마를 가르쳐주고 밧줄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피터와 점차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예전에 필이 존경하는 '브롱코 헨리'와의 관계처럼 필과 피터는 어느새 가까운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필의 입장으로 본다면 예전 브롱코 헨리를 떠올리게 되는 '사랑'의 감정을 암시하게 된다.
[로즈와 그의 아들 피터의 입장으로 바라보다]
로즈는 조지와 결혼하고 필과 조지 가족의 구성원이 되면서 가장 심리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그는 필의 눈치를 보게 되면서부터 불안해하며 급기야는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영화에서는 로즈와 조지의 결혼 생활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기도 하다.
필과 자신의 아들 피터가 점차 가까워지는 모습을 목격하기 시작하면서 로즈의 불안한 감정은 최고조에 이른다.
피터는 겉보기에도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영화 초반부에는 필과 그의 무리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상처 받기도 한다. 피터 역시 조지의 가족 구성원이 되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피터는 어머니 로즈를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머니를 괴롭히는 필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피터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필과 가까워지는 계획을 세웠을 것이며, 그 계획은 복수의 형태가 될 것이고 차근차근 계획을 실천하기에 이른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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