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5-07 13:45:23
차분하고도 강렬한 파란색이 가득한 영화
COLOR: 블루
❣️[Cinelab Curation]❣️
지난번에 빨간색을 주제로 영화 큐레이션을 한 적 있었죠.
이번에는 파란색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가져와 봤습니다!
파란색은 고요하고 음울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어 감정 표현의 한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죠. 또 반대로 평온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 속, 혹은 영화 포스터에서 많이 사용되는 컬러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파란색 영화는 무엇이 있나요?💙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그럼, 다음에는 또 어떤 색깔의 영화들을 가져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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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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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트 인 파리(Paris Pieds Nus/Lost in Paris/ 2016/ 프랑스, 벨기에)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보이지 않는 손>
캐나다 여성 피오나는 파리에 사는 88세의 이모 마르타로부터 짧은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양로원에 강제로 수용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구해달라는 것. 어렸을 때에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이모가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48년 동안 만난 적이 없다. 그래도 피오나는 용감하게 파리로 향한다.
어렵게 찾은 이모의 집. 그러나 이모는 집에 없다. 이웃 남자 마르탱에 따르면 며칠 전부터 행동이 이상했다고 하여 피오나는 걱정스럽다.
이모가 집에 올 때까지 파리 관광에 나선 피오나. 들뜬 기분에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다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만다. 유람선에 구조되기는 했지만 휴대전화도, 캐나다 국기를 꽂은 배낭도, 여권도, 지갑도 모두 잃어버린 그녀는 앞길이 막막하다. 다시 이모 집을 찾았지만 이모는 감감무소식.
피오나는 캐나다 대사관에서 여권 발급신청을 하고 이모를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갈 곳이 없는 그녀의 사정이 딱해 영사과 직원은 식사 교환권을 건넨다. 지정 식당으로 간 피오나, 그 식당에서 묘한 분위기의 노숙자 돔을 만난다. 그녀에게 능청맞게 춤을 권하는 돔.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사양했지만 돔의 능숙한 리드에 저도 모르게 춤을 추는 피오나. 그런데 웬일. 둘의 춤은 마치 오랫동안 함께 해온 커플의 춤처럼 정말 아름답다. 춤을 추는 두 사람도 서로에게 익숙한 자신들에게 놀란다. 그리고 돔은 피오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 물 위로 떠오른 피오나의 배낭을 발견한 것은 바로 돔이었다. 짐을 찾으려는 피오나. 횡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돔.
이튿날 돔은 마음을 고쳐먹고 배낭과 그녀의 소지품을 가지고 캐나다 대사관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피오나를 만난다. 돔에게 화를 내며 배낭을 받아 메고 이모의 이웃들을 만나 행방을 묻는 피오나에게, 이모는 이틀 전에 사망했으며 장례식이 바로 오늘이라는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장례식장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 받긴 했지만 피오나는 복잡한 파리의 전철을 탈 자신이 없다. 이때 그녀 주위를 몰래 맴돌던 돔이 나타나 길 안내를 한다.
돔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다가 이모는 마르타인데 고인은 마르트임을 알게 된다. 마르트는 이모처럼 무용수였던 데에다 이모의 이웃에 살았던 터라 사람들이 헷갈렸던 것. 마르타도, 마르타와 마르트 둘 모두의 친구였으며 마르타의 애인이었던 남자 무용수 노르망도 장례식에 나타나지만 피오나와는 길이 엇갈리고 만다.
약간 치매 증세를 보이는 마르타는 경찰이나 응급구조대가 자신을 양로원에 강제로 넣으려 한다고 오해하여 이리저리 피하며 집에 들어가지를 않는다. 경찰은 사실 피오나의 부탁을 받아 이모의 행방을 찾아 나섰던 것.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던 마르타는 돔을 만나 그와 함께 잠시 머물다가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울리는 피오나의 휴대전화를 받게 된다. 피오나가 혹시나 하여 전화를 걸었던 것. 드디어 마르타는 피오나가 파리에 온 것을 알게 되고 피오나는 이모가 지금 '파리의 뉴욕'에 있음을 간신히 알아차린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경찰들을 피해 마르타는 휴대폰을 다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고 에펠탑 위로 숨는다.
'파리의 뉴욕'으로 이모를 찾아나선 피오나는 노숙자 텐트에 있는 돔을 만나 이모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 능력을 지닌 듯한 돔 덕분에 이모가 에펠탑에 있음을 알게 되어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 꼭대기로 오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오나 역시 돔을 좋아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마침내 마르타, 피오나, 돔은 에펠탑 위에서 만나지만 반가움도 잠시, 이모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모의 '자연분해 유골함'을 들고 센강 다리 위에서 추모하는 피오나, 돔, 마르탱과 양로원 직원. 1분간의 묵념 후에 유골함을 센강으로 던짐으로써 장례식을 끝낸 일행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런데 몇 걸음 내딛던 피오나, 발걸음을 돌려 돔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주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녀의 어렸을 적 꿈도 마르타 이모와 마찬가지로 파리에 사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원제는 Paris Pieds Nus(파리를 맨발로)이며 주인공이자 감독인 도미니끄 아벨과 피오나 고든은 부부이다. 이들의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처럼 동화적이며 대사나 사실적인 연기보다 과장된 동작과 춤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항상 화면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번의 춤과 서로 상대를 꿈 속에서 만나는 피오나와 돔의 과장된 동작은 예술이다.
아울러 이들의 영화에서 줄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로스트 인 파리>는 <피오나>, <돔>, <마르타> 등 세 에피소드로 연결되어 있고 내러티브보다 각 캐릭터의 개성과 삶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영화의 내용을 간추리자면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통해 돔과 피오나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니 마르타의 구조요청은 둘을 이어주기 위한 모티브였던 셈.
피오나는 돔을 만나기 위해 이모로부터 편지를 받고, 파리로 날아가고, 파리에서 두 번이나 강물에 빠지고,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추모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에펠탑 꼭대기로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반복되는 고난과 어려움은 결코 슬프거나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홀로 지내다 가족이나 친척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는, 세상을 뜬 이가 마르트인지 마르타인지 주변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는, 양로원에 갇혀 답답하게 여생을 살아내야 하는, 한때는 젊고 아름다웠고 기운찼던 노인들의 삶이 가엾거나 쓸쓸하다기보다는 유머러스한 상황과 상큼한 색감으로 명랑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인생이 그 주인이며 인간들은 제멋대로 달리는 인생이라는 기차에 타거나 내리거나하는 승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실 그닥 슬플 일도 불행할 일도 없지 않을까.
그런데 피오나와 돔과 마르타를 에펠탑 꼭대기로 모은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무엇일까. 인생이라는 기차의 기관사는 누구일까(©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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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타니안>믿음과 신념으로 지켜내는 정의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프로 보노(pro bono,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활동의 일환으로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리타니아 출신 '슬라히(타하르 라힘)'의 변호를 맡는다.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라는 혐의를 받은 그는 기소와 재판 없이 6년 간 관타나모에서 수감생활을 이어 왔다. 그를 접견한 후 그의 무죄를 주장하기로 결정한 낸시는 동료 '테리(쉐일린 우들리)'와 그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 나서지만, 진실을 가로막은 국가 기밀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한편 그의 유죄를 확신하던 군 검찰관 ‘코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 중령은 재판 준비를 하면 할수록 아무리 봐도 부족한 증거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쿠바에 위치한 관타나모 수용소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 같은 테러리스트는 물론 단지 테러와 연관되어 있다는 '혐의'를 받은 민간인들까지 납치, 감금한 후 고문을 행한 것으로 악명 높다.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자랑으로 삼는 미국의 수치이기도 하다. 이 장소가 논란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변호인 선임권, 묵비권, 재판받을 권리 및 신체 자유와 같은 개인권의 말살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에서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믿어졌던 원칙이 복수심과 원한 앞에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흑역사인 것이다. 이곳에 무고하게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모리타니안>은 이 흑역사를 두 가지 관점에서 날카롭게 들여다본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플롯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하나는 살라히의 과거와 낸시, 코우치 중령의 현재를 연결시키며 인권이 무참히 짓밟힌 상황에서 정의가 바로 서는 과정을 조명한다. 다른 하나는 낸시와 코우치 중령이 펼치는 법정 공방을 각각 공적 맥락과 사적 맥락에서 비추며 정의의 양면성을 논한다.
이때 전자는 한 개인의 세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 그들의 종교성을 선택한다. 살라히는 신에게 모든 것을 위탁한다. 유일하게 마음 편히 말을 섞을 수 있었던 옆방 수감자가 죽자 서아프리카의 독실한 이슬람 국가 모리타니아에서 온 슬라히는 신에게 매달린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정당한 삶을 달라고, 관타나모에서 억울하게 죽은 수감자들에게 평화를 달라고 기도한다. 반면에 낸시는 철저히 변호사의 윤리와 원칙에 스스로를 의탁한다. 그녀는 살라히가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서를 작성한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며 변호를 포기한 동료 테리와 달리, 그녀는 자신이 믿는 원칙과 신념을 다시 한번 붙잡는다. 낸시는 모든 사람에게 사법 정의는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다시 한번 슬라히를 접견하고 그에게 진실을 말할, 정의를 바로잡을 기회를 준다.
코우치 중령은 두 사람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 달리 말해 살라히의 신에 대한 믿음과 낸시의 사법 정신에 대한 신념의 접점이다. 그는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타워를 들이받은 비행기에 타고 있던 친구를 잃었다. 그래서 그는 살라히를 기소해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관타나모의 실상을 깨달은 후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러던 그는 끝내 교회를 찾은 후에 마음을 정한다. 정의를 추구하고, 무고한 이들을 도우라는 신의 말씀에 응답한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동시에 개신교인으로서 슬라히를 기소할 수 없다고 결단을 내린 뒤, 군복을 벗는다. 이렇게 개인의 믿음과 신념은 비록 그 대상과 방식은 다를지언정 정의를 바로잡는 초석이 된다.
이처럼 개인의 종교적 믿음과 신념을 전면에 내세운 스토리텔링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에 감정적인 면을 북돋아 준다. 특히 신에게 호소하는 슬라히, 미국의 법과 헌법을 굳게 믿는 낸시, 신의 가르침과 헌법 정신의 공통점을 실천하기로 결심한 코치 중령의 모습이 한 데 응축된 것이나 다름없는 후반부의 법정 장면이 백미다. 8년 만에 서게 된 재판장에서 살라히는 그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일은 큰 충격이었지만 미국이 저지른 범죄를 자신이 용서했기에 자신은 자유라고 주장한다. 신의 가르침대로 아랍어로 자유와 용서는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또 법정과 판사의 결정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미국의 법정은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법의 정의를 실현할 것이기 때문에, 법정에서의 선고는 그에게 신의 뜻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살라히가 무고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할 기회도 준다는 점에서 더욱 호소력이 짙다고 볼 수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탄생시킨 테러와의 전쟁 및 미국과 중동 지역의 외교적 분쟁은 역사적, 정치외교적 뇌관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폭탄임이 분명하다. 영국의 식민통치, 유대인의 이주, 4번의 중동전쟁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테러단체의 활동,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그로 인한 반미 감정이 한 데 어우러진 결과다. 이러한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는 흔히 이슬람교와 기독교라는 두 세계 종교의 충돌이라는 피상적인 그림 밑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두 종교의 신이 알려준 가르침과 미국 법정의 정신이 다르지 않다는 <모리타니안>의 메시지는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이 종교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두꺼운 물감에 가려진 밑그림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한편 영화의 두 플롯 중 나머지 하나는 낸시와 코우치 중령을 대조시키며 신에 대한 믿음, 그에 못지않은 법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고 필요한 경우 과감히 꺾을 줄 아는 용기를 이야기한다. 낸시는 철저히 공적인 가치와 원칙에 입각해서 재판을 준비한다. 애초에 슬라히의 재판을 맡기로 한 것도 프로보노 활동의 일환이었던 만큼, 그녀에게 이 사건은 단지 무너진 법치주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에 불과했다. 그래서 낸시는 어머니에게 전화해달라는 슬라히의 요청을 연민과 동정심을 자아내려는 피고인의 전략으로 취급할 정도로 슬라히에게 인간적이고 사적인 교류를 일절 하지 않는다.
반면에 코우치 중령에게 슬라히 사건은 일, 업무, 국가적 차원의 사건이기 이전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한 일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이번 사건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는 별개로 절대 틀릴 수 없는 사건이다. 실제로 슬라히의 재판에 투입된 직후 그는 가장 먼저 죽은 친구의 아내를 찾아가 범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낸시와 코우치가 관타나모 수용소 휴게소에서 만난 장면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코우치 중령은 그녀가 미국의 적을 옹호한다고 비꼬며 이길 수 없는 재판을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낸시는 자신이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변호사라고 비난받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슬라히는 아직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면서 미국의 사법 제도가 허점이 존재했다면 어떡할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이처럼 사적인 분노와 적개심과 공적 가치에 입각한 질문과 대답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사건에 인위적이면서도 강력한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동시에 상당히 인상적인 연출을 통해 그들의 신념과 원칙을 한 번에 무너뜨리면서 그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작중 과거와 현재 장면은 각각 1.33:1과 2.35:1의 다른 화면비율로 표현되는데, 두 주인공이 관타나모의 진상을 알게 되는 상황에서는 두 화면이 겹쳐져서 나타나며 그들이 받은 충격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이는 둘이 슬라히의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180도로 달라지는 것에 대해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제 낸시는 살라히가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온갖 수모와 고통을 한 인간으로서 보듬어주려고 하고, 반대로 코우치 중령은 모든 개인적인 원한을 뒤로한 채 공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렇게 <모리타니안>은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정의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꺾을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되는 아이러니를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제시하며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다만 사건의 진상과 해결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범생처럼 훑고 지나가는 정공법을 취해서인지 영화는 간과하기 어려운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 안에서 어떠한 일들이 자행되었는지가 세상에 알려진 지도 오래된 상황에서 과연 잔혹한 고문 기법을 그리 세세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물고문과 성고문을 비롯해 시청각을 괴롭혀 잠을 못 자게 하고, 슬라히의 어머니를 납치한 후 강간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말로만 들어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만한 고문을 연달아 보여준다.
이는 고문 장면이 그렇게까지 세세하지 않아도 진상을 깨달은 낸시와 코우치 중령의 충격, 슬라히가 겪어온 고통을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연출로 보인다. 슬라히를 둘러싼 법정 공방의 이야기가 잊힐 정도로 분량이나 비중 배분에 있어서도 아쉬움을 남기며,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해당 장면이 지속되다 보니 피로감이 누적되어 그 충격이 갈수록 약해지는 역효과도 낳는다. 그 결과 <모리타니안>은 배우들의 연기, 작품의 메시지, 연출과 편집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강렬한 임팩트를 스스로 깎아내리며,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작품, 영국 작품, 각색, 남우주연, 촬영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 아쉬운 완성도로 관객을 마주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때때로 불편하지만 성공적으로 진중하게 재현된 인권 탄압과 정의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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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뽑은 올해 탑 10 영화
그렇게 한 해가 갔다. 올 한 해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코로나19라는 환경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낸 감독과 배우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근데 아쉬운 건 우리나라의 개봉 작품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구체적인 근거 있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뭔가 체감상 그런 느낌이다. 내년에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개봉이 연기되거나 촬영이 중단 된 작품들이 많이들 상영되길 바란다. 기준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며, 많은 이들이 이 작품들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10. <세 자매> / 이승원
문소리-김선영 배우가 청룡영화상 주조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난 문소리 배우하면 생각나는 되게 전형적으로 연기하는 이미지가 있다. 똑순인데 씩씩하게 사는 허당 역할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느낌? <메기>와 <하하하> <여배우는 오늘도>같은 작품들이 되게 한 갈래같이 느껴졌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되게 문소리 식 연기를 한 것 같으면서도 속은 곪을대로 곪은 중년 여성의 내면을 완벽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겉으로 드러낼 순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트라우마를 종교로 귀결 낼 수 없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데, 분출하는 분노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괴리를 모두 살리는 괴력을 보여준다.. 이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는 김선영 배우였는데, 엄마 연기 달인 다운 면모가 있다. 딸래미한테도 핍박받고, 남편한테도 쿠사리먹고, 온 세상이 함부러 대하는 소심한 어머니상을 손짓 하나 표정 하나로 구현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자매인 장윤주 배우의 연기나 현봉식 배우의 연기도 다 좋았지만 이 둘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코미디로서, 또 드라마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후반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읭? 스러운 선택지를 고른다는 점이나 전체적인 설정이 좀 과하다는 점은 아쉽긴 한데 보는데 큰 무리는 없을듯. 마음 속의 억눌린 무언가가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왓챠에 있음.
9. <랑종> / 반종 피산다나쿤
개인적으로 <티탄> 만큼이나 문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난 진짜 극장 뛰쳐나오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는데 반해 몇몇 분들은 재미 없었다고 하니 그 선명한 호불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페이크다큐라는 장르적인 허점이나 굳이..? 싶은 부분까지 만든건 몰입을 깨는 요소가 맞다고는 생각하나 님 역 배우의 중후반까지 끌고가는 카리스마나 촬영한 장소, 태국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가 나홍진식 염세주의의 글로벌화(?)를 이끌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간략하게 더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흔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클리셰라고 한다. 그 클리셰라고 하는 게 ‘아 또 이 짓거리 하네 뻔하네 ㅋㅋ’ 싶으면 흥미가 떨어지지만 어떤 영화에서는 그게 좋은 쪽으로 발휘가 되곤 하는데, 난 랑종이 그 예라고 생각한다. 정말 여기까지 갈 것인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며 운명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표현한 호러영화다. 아시아 공포영화 수작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넷플릭스에 있음.
8. <바쿠라우> / 클로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브라질 영화임. 한 정치인이 있다. 이 사람은 시장직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근데 또 이 인물은 반지성주의자라 책도 지식도 전부 부정한다. 이 인물이 한 마을의 지지를 얻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자, 바쿠라우라는 이 가상의 도시에 보복하고자 하는 내용을 플롯으로 담았다. 올 해 개봉했던 <레 미레자블>의 광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내 폭주하다 결국 파국으로 가는 영화였다. 나는 이 <레미레자블> 영화의 에너지가 ‘빨리 달린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바쿠라우>는 살짝 다르다. 광기에 씌인 채로 달린다. 자기 앞을 가로막는게 있으면 그걸 다 부숴가며 달리는 느낌인 것이다. 이렇게 현재 브라질이 처해있는 원주민과 개발자들간의 갈등을 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비틀어 영화화 한 작품이다. 슬래셔 호러나 스릴러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네이버에 있다.
7. <루카> / 에린코 카라로사
난 항상 왕따였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도 내 공감을 오롯이 받지 못했기도 하고. 부족한 사회성 탓에 난 항상 모난 돌이었어서 세상에게 딱 미움 받기 좋은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물론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해서 미움을 당연히 받아서는 안되는게 맞고, 왕따의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모든 축복을 비는 건 여전하지만 난 아픔에서 나아가기 보다 내가 세상을 먼저 따돌리던 쪽에 가깝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도 외로워서 그랬던 거지. 이런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그 누구에게 든든한 어깨가 될 수도 있고 푸근한 품이 될수도 있다. 이 <루카>는 든든한 품같은 이야기다. 꿈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 사이에서 세상에게 손가락질 받더라도 따뜻하게 품는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디즈니플러스에 있음.
6.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존 왓츠
블랙 위도우 - 샹치 - 이터널스로 올해 좀 심심했던 마블이 힘 좀 준 작품이다. 12월 15일 개봉 이후 스포가 사골국같이 우려졌을 것 같아 굳이 더 이야기를 쓰진 않아도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톰과 파이기가 아카데미 의식을 하지 않아도 MCU가 극장에서 준 전율과 감동을 믿는다. 그건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그에 걸맞는 훌륭한 3부작 마무리다. 현재 상영관에 걸려있다.
5.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 도이 노부히로
사람은 누구와 사랑에 빠질수도 있고 또 헤어질수도 있다. 그건 당연한 것. 근데 그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게
있는거 같다.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사람이라면 겪을 성장통과도 같은 뭐 그런 것이다. 이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또 겪을 수 밖에 없는 감정과 과정을 그린다. 누구 하나 잘못한 것 없이 사랑에 빠져 아름답게 불태운 지나간 시간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는 영화인 셈이다. 보내기 싫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품에서 떠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그게 누군가의 심각하게 상처를 준 일(데이트폭행, 바람 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별이었다면 가끔은 그들에게 고마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향기롭게 시드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박평식 평론가의 평가가 생각나네. 올 해 나온 로맨스코미디 영화중 단연 최고다. 네이버에 있음.
4. <노매드랜드> / 클로이 자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영화는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거 같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라던가, 예전에 썸타던 여자가 1년만에 유학 돌아와서 사귄다는가 하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별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지 않나. 몇몇의 바람과는 반대로 이별과 재회는 항상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이 <노매드랜드>는 이 이별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플롯이 영화같지 않은 하루로 가득찼다. 근데 영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을 이야기한다. 이별, 참 어렵다. 보낸다는 건 그 사람과 행복했던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근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야 말로 진짜 이별의 가치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보내지 않았기에 사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영원한 안녕이란 없으니까. 네이버에 있다.
3. <당신얼굴 앞에서> / 홍상수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홍상수는 영화에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같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비꼬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그 사건 이후 홍상수는 자기의 심리상태를 은연중에 투영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혼자’라는 제목을 통해 모든게 끝나고 나서의 자기와 김민희 배우의 모습을, <강변호텔>은 삶의 동기부여가 사라진 인물의 욕망 발현을, <풀잎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소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세 작품 다 ‘한 사건이 있고 나서 느낄 수 있거나 경험하고 있는 순간’ 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시간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이 <당신얼굴 앞에서>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혐오가 아닌 순수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그런 시도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이제 홍상수는 더이상 무언가가 끝나고 난 다음이 아니라 얼굴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간의 찌질함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적으로 보이는 상황에게 신뢰를 주려고 하는게 아닐까. 묘한 위로감에 감사했던 영화다. 네이버에 있다.
2. 소울 / 피트 닥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사실 세상에게 할 말이 없다. 내 동기부여의 본질을 깨달았거든. '정공'이라 사람들을 욕하는 미친 세상에서 군 문제도 공익으로 빼고 1인분 하는 것도, 토익 900점도, 수많은 경험치와 내 능력도 다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것도 몰라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멀어지는게 두려운게 요즘의 나다. 그 덕에 나한테 일어난 일도 아닌데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무례한 어떤 이를 미워하다가 오바하는게 맞는거 같아 실제로 표현하기엔 소심해지고, 어려운 현실에서 잘 개척해냈다는 확신은 있지만 왠지 인스타 좋아요 개수부터 사람들에게 비호감만 사는 것 같다는 느낌에 헤어나오질 못했던 것 같다. 소울은 이런 회의감에 대한 영화다. 과연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얻었다고 했을 때, 미래가 달라질까? 내가 친구가 많아진다고 또 돈이 많아진다고 행복해질까? 아닐수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그 다음의 순간이다. 정말 삶에서 중요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작은 순간들이 아닐 지. 삶의 동기부여를 잃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보다 색다른 접근법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디즈니 플러스에 있음.
1.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이해. 난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일까? 확신 할 수 없다. 나는 사실 이제서야 내가 원하는지 깨달은 사람인 듯 하다. 그리고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공허함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다는걸. 난 이제까지 헛걸음을 했다는 걸. 그리고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 늘 외롭고. 뭘 원하든 그걸 가져다주지 않고. 또 이게 당연한 사실인데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 또 방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 인간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고 본질적인 무언가를 꺼냄으로서 치유받는 것이 아닐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3시간동안의 운전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서 들었던 애매묘호한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올해의 영화.
번외
<해피 투게더> / 왕가위
코시국으로 인해 극장가 재개봉 메타가 불었고, 왕가위 특별전이 열리면서 다시 상영관에 걸린 작품. 헤어짐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과연 중요한게 무엇일까? 새로운 걸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들만 찾아 다른 길을 떠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 해에는 온 몸을 부딫히며 사랑해야지. 어떤 순간이든 행복한 채로 기억에 남을 수 있게끔. 올해 재개봉 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았으며 내 인생영화이기도 하다.
올해의 배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올해 4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게 사람이냐 소냐? <파워 오브 도그>로 아마 아카데미에 한발 더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올해의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스파이의 아내>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의 각본을 담당함. 대체 뭘 먹고 살아야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 것일까? 단 3편만으로도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츠, 아니 '하마구치 류스케'가 유력하니 그 클래스가 어마어마하다. 시간 나는 분들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정주행 해도 꽤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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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is MINARI?" 정이삭 감독이 밝힌 제목 '미나리'의 진짜 의미
오스카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되는 <미나리>가 미국 영화협회와 시상식을 석권하며 전 세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운데 국내외를 불문하고 타이틀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다. '미나리'라는 영화 제목이 누군가의 이름(mina LEE)인지 아니면 심오한 뜻을 담은 새로운 단어인지 의견이 분분했던 가운데, 감독과 배우가 '미나리'의 진짜 의미를 공개했다.
영화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정이삭 감독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채소 '미나리'를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미국에 이민 온 부모님을 두었으며, 1978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아칸소라는 시골 마을의 작은 농장에서 자랐다. 가족을 위해 농장을 시작한 아버지와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된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줄 할머니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다. 그때 할머니가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미국 아칸소에 키우게 되었는데 다른 채소보다 가장 잘 자라는 모습이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고 한다.
출처: 판씨네마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라고 밝혔다. 또한 "미나리는 땅에 심고 1년은 지나야 잘 자란다. 영화 <미나리>는 우리의 딸과 아들 세대는 행복하게 꿈을 심고 가꾸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어느 한국 가족의 다정하고 유쾌한 서사시"라고 말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와 주연 배우로 참여한 스티븐 연은 "미나리는 땅과 주변의 물을 정화하는데, 나에겐 그게 미나리다. 우린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라고 전해 영화 속 가족이 외딴곳에서도 함께 자리 잡고 살아가게 하는 가장 소중한 존재로 그려짐을 짐작하게 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엄마 '모니카' 역으로 분한 한예리는 "미나리는 사랑이다"라고 마음을 전했으며, 영화 속에서 미나리를 심는 할머니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은 "미나리는 삶의 지혜"라고 덧붙여 관객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깊은 감동을 전할 것을 예고했다.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미나리>는 올봄 3월에 전국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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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판 붙자, 흥미진진한 빅 매치 영화들
한판 붙자, 흥미진진한 빅 매치 영화들
흥미로운 대결로 나온 영화가 있는데 제목에 "vs"를 붙인 영화들로 모아보았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도 흥미로운 대결이긴 하지만, 싱겁고 어이없는 이유로 중단되어서 해당 영화는 제외하기로 했다.
■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엄청나게 거대하고 포악한 퀸 에이리언과, 최강의 전사로써 에이리언을 하나씩 사냥해가는 프레데터 리더 스칼의 어마어마한 전투가 시작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외계종족의 전투지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진 렉스. 그녀는 다시 지구가 초토화되는 비극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만 하는데…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만난다면? 70~80년대 인기를 누렸던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만나는 스핀 오프로 탄생한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는 프레데터가 남극에 묻힌 피라미드에서 100년 주기로 에이리언 사냥을 계속해왔고 사냥 일이 되자 지구로 돌아와 에이리언을 만들어 낸 숙주로 이용하기 위해 탐험대를 남극까지 유인하게 되는 내용인데 초반은 지루해도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싸우는 것만으로도 볼만해서 딱 킬링타임 용이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역시 이런 영화는 스토리, 연출 다 떠나서 에이리언과 프레데터가 만나는 맛에 보는 거다.
■ 보리 vs 매켄로
포커페이스로 완벽한 승리를 이끄는 테니스의 제왕과 동물적인 감각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코트 위의 악동이 라이벌로 만났다.
세계 최초 윔블던 5연패 달성에 도전하는 ‘보리’와 새로운 기록을 꿈꾸는 ‘매켄로’의 박빙 승부!
테니스의 제왕 비외른 보리와 새로운 신계 존 매켄로 두 전설이 펼치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세기의 대결인 <보리 vs 매켄로>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종목과 상관없이 스포츠인이라면 추천하고자 하는 영화이며, 대결 앞둔 두 선수의 상반되는 심리가 누구에게는 공감, 누구에게는 알 수 없지만 이해하게 되는 스포츠심리와 짜릿한 윔블던 경기를 보여준다. 실화 바탕이기에 드라마 장르이지만, 보리 역을 맡은 스베리르 구드나손, 매켄로 역을 맡은 샤이아 라보프 이 두 배우 연기가 실제 인물 싱크로율뿐만 아니라 몰입감도 좋아서 좋게 봤던 영화이다. 테니스라는 스포츠를 몰라도 상반되는 이 둘의 심리가 큰 편이라 윔블던 결승 대결이 오기까지 다소 지루할 수 있겠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분들이 본다면 공감하게 되는 영화이다.
■ 포드 V 페라리
출전 경험조차 없는 ‘포드’는 대회 6연패를 차지한 ‘페라리’에 대항하기 위해 르망 레이스 우승자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를 고용하고, 그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지만 열정과 실력만큼은 최고인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를 자신의 파트너로 영입한다.
포드의 경영진은 제 멋대로인 ‘켄 마일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레이스를 펼치기를 강요하지만 두 사람은 어떤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불가능을 뛰어넘기 위한 질주를 시작하는데…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 르망 24 대회 그리고 크리스찬 베일과 맷 데이먼의 만남인 <포드 V 페라리>는 세계 3대 자동차 레이싱 대회이자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포드와 페라리 대결을 리얼리티 하게 살린 실화 영화이다.
우선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면 연기, 박진감 그리고 스토리도 좋았던 영화로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영화이며, 레이싱 좋아하거나 자동차 포드, 페라리에 관심 있다면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다. 르망 24 시간 레이스의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차의 엔진 소리, 실제 레이싱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화면 구도, 레이싱 장면에서 완벽도를 높이기 위해 크리스찬 베일은 실제 레이싱 훈련을 받아 리얼리티 한 레이싱 대결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차의 엔진 소리 부우우우앙, 시동 거는 소리 등 소리부터 예술적이며, 개봉 당시 4DX 스크린으로 관람했었는데 시각적뿐만 아니라 청각도 아주 좋은 영화였다. 돌코비로 관람하고 싶었으나, 관람 시기를 놓쳐 기회가 된다면 돌코비로 재관람하고 싶을 정도이다. 차에 대해 몰라도 크리스찬 베일과 맷 데이먼의 호흡이 좋았던 배우들 연기와 박진감 넘치는 레이싱 경기로 인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이다.
■ 고질라 VS 콩
위기 상황 속, 지구 안의 또 다른 지구인 할로우 어스의 에너지원을 찾아야만 인류가 안전할 수 있다는 판단하고 콩의 보호자들은 콩과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아이 지아와 함께 타이탄들의 고향일지 모르는 그곳으로 위험한 여정을 떠난다. 그러던 중 분노에 찬 고질라의 공격을 받고, 마침내 맞붙게 된 두 전설의 장대한 대결은 앞으로 닥쳐올 대재앙의 서막에 불가했는데…
<고질라 vs 콩> 보기 전, <콩 스컬 아일랜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관람하는 것으로 권장하며, 콩은 스컬 아일랜드를 떠나 인간들의 보호관찰을 받고 있고, 인간들에게 등을 돌린 고질라는 비밀연구회사인 에이펙스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초반부터 쑥대밭으로 만든다.
고질라와 콩은 오래전부터 라이벌 관계였던 이들의 대결은 2차전으로 보여주고. 3차전에서는 미지의 존재와 싸우게 되는 내용인데 스토리는 나름 이유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어차피 큰 스케일과 콩, 고질라 격돌하는 장면을 원했던 것이니 스토리는 가볍게 보면 될 것 같다. 고질라의 브레스, 콩이 도끼를 이용한 2차전 대결은 아주 볼만하니 스트레스에 쌓인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큼직한 화면으로 관람하길 권장한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꼬맹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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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悲劇)을 비극(非劇)으로 그리다
이 글은 영화 <엘리펀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알렉스 프로스트, 에릭 두런, 존 로빈슨
5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감독상 수상작인 <엘리펀트>는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이다. 여러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여느 실화 모티브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들을 갖고 있다. 또, 극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과 포스터를 가진 영화인데, 그 이유에 대해 조심스레 추측해보고자 한다.
비선형적 구조와 평범한 캐릭터
이 영화는 아버지와 차를 타고 등교하는 ‘존’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와 아버지 사이의 대화는 일반적이며 학교에 도착하는 시점까지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물 사진을 찍는 ‘엘리’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그 또한 다른 학생들과 평범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네이트’의 시점. 운동장에서 학교로 들어간 그는 여자친구 케이트를 만난다.
이 영화를 재난 영화로 본다면, 옵니버스식 구조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여타의 재난 영화들에서도 각 캐릭터들에 서사를 부여해, 그들이 하나의 재난 앞에 내놓는 구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펀트>는 다른 영화들과는 무언가 다르다. 이 영화는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인물의 뒤를 쫓으며 그들의 서사와 다른 이와의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렇게 인물 파악이 끝나고 다음 사건을 기다리는 순간, 감독은 시점을 바꾼다.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 다른 인물의 행적은 왠지 모를 기시감을 가져다주는데, 실제로 영화 속 캐릭터들의 동선은 서로 겹치기도 하며, 이미 보았던 장면을 다른 캐릭터의 시점으로 다시 접하기도 한다.
인물들의 서사를 쫓던 관객들은 이내 진실을 알게 된다. 그들이 마주했던 캐릭터는 너무나 평범하며 그들의 시점 조각들을 하나의 퍼즐로 완성했을 때, 거대한 코끼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코끼리는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그들이 곧 마주할 비극이다.
악몽의 16분
영화의 후반부, 두 남학생이 총을 챙겨 학교로 향한다. 그들은 학교를 나서는 존과 먼저 마주한다. 그리고 존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존은 엘리와 인사를 나누고 나오던 참이었다. 급식실에서는 세 여학생이 학교를 나서는 존을 발견한다. 그 시각 미셸은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한다. 마침 엘리는 도서관에 들어선다. 그들의 시점은 한 곳에서 모아진다.
그 순간 총을 든 남학생들이 도서관으로 들어서고, 미셸과 엘리에게 총구를 겨눠 방아쇠를 당긴다. 그들은 복도로 나와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한다. 급식실에 있던 세 여학생은 화장실에 있었다. 그녀들이 바깥 소리에 무심할 때, 총을 든 남학생 하나가 화장실로 들어온다. 학교 내부는 아수라장이 된다. 경고를 들었던 존은 자신과 함께 학교로 왔던 아버지를 찾는다.
두 남학생의 학살은 약 15분간 이어진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학생들은 알 리가 없다. 동시에 관객들 또한 혼란스럽다. 총을 든 남학생들에게서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극은 일상 속에서 발생한다
이 영화 속 사건은 실화이며, 그 실상 또한 끔찍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차분하며 클라이맥스 씬 또한 처연하게 느껴진다. 이유는 정말 영화 속 대부분의 시간에 특별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스 반 산트는 비극(悲劇)을 비극(非劇)으로 그려냈다. 다시 말해 심하게 슬픈 사건을 심하지 않게 그려냈다. 그들의 서사, 사건의 인과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사건이나 감정을 과장해서 그리지도 않았다. 그에게서 이 사건은 일상 속에 갑자기 찾아온 사고에 가까운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왜 <엘리펀트>인 것일까? 여러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처럼 일부를 통해 전체의 것을 파악하는 것에 대한 비유라는 의견이 정론이다. 사건이라는 것은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우연적인 요소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의 정답을 찾을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며, 그 속에 있었던 사람들 또한 포함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속 캐릭터를 ‘맹인’과 같은 위치에서 볼 수도 있다. 관객은 캐릭터들의 관계, 상황을 조합해 큰 틀을 만들 수 있지만, 각 인물의 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들이 무척 많다. 결국 그들은 코끼리의 일부를 만졌을 뿐이며, 그들의 일상에 찾아올 비극의 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를 본 우리 또한, 코끼리의 전부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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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이즌 로즈> 메인 예고편
1978년, LA에서 활동하는 사립 탐정 ‘카슨’(존 트라볼타).
자신의 고향이었던 텍사스 쪽에 의뢰를 받고 조사에 착수한다.
내용은 바로 요양원에 있는 한 여성을 찾아달라는 것.
오랜만에 찾은 고향 텍사스에서 텍사스 최대의 브로커가 된 ‘닥’(모건 프리먼)과 마주하고,
조사하면 할수록 사건에 ‘닥’과 텍사스 주민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암묵적 살인, 완벽한 범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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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울괴담> 메인 예고편
서울, 지옥이 되다! 현실 밀착 공포의 시작? 괴이한 이야기로의 초대✉ [서울괴담]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