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4-28 19:49:56
마인크래프트 무비 | 게임 원작 영화의 전철을 답습하다
<마인크래프트 무비>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락실 게임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폐업 직전의 게임 샵 주인이 된 '개릿'(제이슨 모모아). 엄마를 잃고 동생 '헨리'(세바스찬 유진 헨슨)를 책임지고자 낯선 동네로 이사 온 '나탈리'(엠마 마이어스). 나탈리 남매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부동산 중개업자 '던'(다니엘 브룩스). 이들은 개릿의 가게에서 헨리가 우연히 발견한 큐브의 빛을 따라가다가 폐광 속에 열린 포털을 통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네모난 세상 '오버월드'에 도착한다.
밤이면 시작되는 좀비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며 오버월드에 적응하는 네 사람. 그들은 좀비와 싸우던 중 일찍이 오버월드에 도착한 '스티브'(잭 블랙)를 만나 현실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묻지만, 그는 지하 세계 ‘네더’를 다스리는 마법사 ‘말고샤’(레이첼 하우스)의 침공으로부터 먼저 오버월드를 구해야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답한다. 이에 네모난 세상에 빠진 다섯 '동글이'는 오버월드를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게임 원작 영화가 실패하는 이유
게임 원작 영화의 제작 소식이 들리면 게임 팬도, 영화 팬도 걱정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쌔신 크리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언차티드> 등 많은 게임 원작 영화가 완성도 관련해 혹평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 그러면 왜 유독 게임 원작 영화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캐릭터 역할과 활용 방식의 차이를 안 짚고 넘어갈 수 없다.
영화 속 캐릭터는 스토리텔링의 주체다. 관객은 캐릭터와의 공통점을 찾아서 몰입하거나 그의 경험을 거부하는 등 소극적 반응만 할 수 있다. 게임은 다르다. 게임의 캐릭터는 스토리텔링의 주역이자 '아바타'다. 관객과 달리 게임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또 다른 자아처럼 조작하고,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즉, 게임 플레이어에게 캐릭터는 감정 이입의 대상이자 직접 행위를 하는 주체다.
물론 게임 원작 영화는 본질적으로 관객에게 능동성을 부여할 수 없다. 대신 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며 게임을 하는 듯한 인상은 줄 수 있다. 문제는 이 차선책을 못 취하는 작품도 많다는 것. 일례로 <어쌔신 크리드>는 원작 게임의 핵심인 목표를 암살하는 과정보다는 캐릭터의 서사와 세계관 설정에 집중하면서 게임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 게임 특유의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이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도 마찬가지다. 사실 예고편을 보고 예상한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의외로 깊이가 있다.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한 적 있거나 게임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각 캐릭터의 서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아바타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위한 장치로만 기능하다 보니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다른 게임 원작 영화처럼 낙제점을 피하지 못한다. 온갖 밈과 B급 유머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는 캐릭터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깊이는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곧 포기해야 하는 것이 늘어난다는 말과도 같다. 어릴 적 품었던 꿈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맞춰 눈을 낮추고, 실망감을 억누르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주인공들도 같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 어릴 때 게임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 개릿. 하지만 계속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오락기 시장이 침체에 빠진 현재, 그는 폐업 직전의 게임 샵 사장일 뿐이다. 스티브 또한 광부라는 꿈을 접고 일반 기업 사무직으로 일한다. 나탈리 역시 부모님 없이 동생과 살기 위해 원치 않은 일자리를 위해 원치 않은 동네로 이사한다.
빌런이자 네다의 독재자인 말고샤도 마찬가지다. 말고샤가 타락한 계기는 다른 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다. 댄서가 꿈이었던 그녀는 무대에서 철저히 조롱당한 나머지 꿈을 포기했다. 다만 그다음 행보가 달랐다. 꿈을 가슴 한편에 밀어 두고 현실을 수용한 주인공들과 달리 그녀는 꿈을 지니거나 창의적인 삶을 사람을 제거하거나 통제하려 들면서 자기 좌절감과 실망감을 외부에 투사했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말고샤를 제압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극단적인 절망과 타락 대신 다른 길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려 한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과 실망을 딛고 일어서서 말고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와 각자의 방식으로 꿈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한 주인공들처럼. 오버월드에서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게임을 출시한 개릿처럼. 또 격투기 재능을 발견해서 자기 진로로 삼은 나탈리처럼.
관객과 캐릭터의 접점
혹자는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교훈이 다른 아동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익숙한 교훈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특히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가 다소 나이브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원작 게임의 출시 시점이다. 이를 영화의 교훈과 결부하면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과 함께 성장한 세대를 대변하는 영화로 의미가 확장되고, 깊어진다.
마인크래프트는 2011년에 정식 출시됐다. 청소년기에 마인크래프트를 처음 접했을 이용자들은 이제 20대 중후반, 취업 준비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이다. 달리 말해 그들 중 일부는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일을 선택하거나, 자기 꿈과 잠재력을 만개하기보다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거나, 혹은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으 실패하는 한가운데에 있을 수 있다. 개릿, 스티브, 나탈리, 헨리와 던이 그러했듯이.
이처럼 마냥 밝지 않은 현실과 미래가 불안한 '어른이'들에게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의 특징을 살린 격려를 건넨다. 마인크래프트는 게임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의 플랫폼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게임 내외적으로 이용자가 자기 취향에 맞게 변형하면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것. 바로 이 특징이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격려와도 직결된다.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오버월드에서 말고샤와 싸워서 이긴 뒤 꿈을 이룬 주인공들처럼 정해진 세상의 틀에 꺾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즉, 게임에서 발휘했던 창의성과 자유로움을 잊지 말라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재충전시켜 주는 셈이다.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실사 영화도 아니라서 어중간하게 유치한데도 <마인크래프트 무비>에서 의외의 깊이감과 매력이 발견되는 이유다.
아바타 기능을 포기한 대가
관객이 공감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는 분명 <마인크래프트 무비>의 장점이다. 전반적으로 유치한 분위기를 중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그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주인공들의 행적에서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의 묘미를 살렸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 부족하기 때문. 즉, 캐릭터만 살리고 아바타는 포기한 나머지 게임 원작 영화라는 정체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일로 주인공들이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장면은 초반부와 후반부에만 집중되어 있다. 스티브가 오버월드에 해 설명해 주는 오프닝 시퀀스, 처음 오버월드에서 밤을 보내는 주인공들이 좀비를 피하려고 작은 성을 만드는 장면, 후반부에 말고샤의 군대와 전투를 치르기 위해 골룸과 무기를 만드는 장면이 전부다. 그 외에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관을 캐릭터가 돌아다니는, 일종의 게임 튜토리얼에 가까운 장면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다른 게임 원작 영화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많다. 말고샤의 군대가 포털을 열고 오버월드로 쳐들어오는 클라이맥스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에서 오크 군대가 포탈을 열고 인간 세상에 진입하는 장면을 똑 닮았다. 주요 아이템을 찾으러 여러 광산을 돌아다니는 장면도 <언차티드>와 유사하다. 그러니 마인크래프트라는 IP를 기대한 관객이 <마인크래프트 무비>를 보고 실망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밈과 유머의 한계
그렇다고 문제를 영화적 장치로 보완하지도 못했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포탈을 열 수 있는 아이템을 찾으려고 오버월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중반부 전개는 평범한 트레저 헌터물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처럼 목숨을 건 위기가 찾아오지도 않으니, 스릴과 서스펜스도 부족하다. 이처럼 예측가능한 위기와 탈출을 보다 보면 성인 관객 시점에서는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잭 블랙과 제이슨 모모아의 슬랩스틱과 b급 유머로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두려는 노력이 엿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큰 도움은 못 된다. 북미에서는 밈화가 된 예고편 대사를 상영 도중에 따라 하는 관객으로 인해 폭력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을지 모르지만,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과도한 유머가 흐름을 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결국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게임 원작 영화의 징크스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1편 이후 제작이 취소된 선배들의 전철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도 돌파할 것 같은 흥행 추세 덕분에 벌써 속편 제작을 논의 중이라는 뉴스가 들리고 있으니까. 만약 아바타를 포기한 과오를 바로잡고, 마인크래프트만의 특성을 부각할 수 있다면,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속편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Poor 형편없음
캐릭터만큼 아바타도 챙겼더라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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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신작 <트위스터스>가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개봉 첫 주에만 1117억원을 벌어들였고 이는 <오펜하이머>의 개봉 첫 주말 매출과 같은 기록입니다.
정이삭 감독은 2020년 윤여정 주연의 <미나리>로 제 78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은바 있습니다.
영화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국내 개봉은 8월 14일 예정입니다.
7월 4주차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미나리> 정이삭 감독 연출 <트위스터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기상청 직원과 스톰 체이서 인플루언서가 역대급 토네이도를 좇는 이야기 <트위스터스>가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미나리>를 연출했던 정이삭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트위스터스>는 주말 매출액 1700억을 넘어서며 24년 개봉작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한 <괴물> 웨이브 독점 공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웨이브에서 독점 공개를 알렸습니다.
<괴물>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의문의 사건에 연루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이야기입니다.
<탈주> 올 여름 한국영화 최초 200만 돌파
7월 3주 차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탈주>가 기세를 이어 누적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번 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 2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탈주>가 처음입니다.
<탈주>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 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리며 <탈주>의 흥행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작 공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작들이 공개되었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THE ROOM NEXT DOOR>, 루카 구아다니노의 <QUEER>, 토드 필립스의 <Joker: Folie a Deux>까지 쟁쟁한 경쟁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요.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연출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출품되어 영화 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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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낙인의 틈새를 파고드는 한 노인의 묵직한 진심
아침바다 갈매기는/The Land of Morning Calm
뉴 커런츠
Korea/2024/114min/
*시놉시스
어느 밤 젊은 선원이 사라진다. 늙은 선장은 선원이 바다에 빠졌다고 신고한다.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선원의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며 매일같이 부둣가를 지킨다. 이내, 선원의 베트남인 아내에게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평생을 고집불통으로 살아온 늙은 선장이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다.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박이웅 감독의 전작 〈불도저에 탄 소녀〉에서 김혜윤 배우(혜영)가 연기한 강렬한 캐릭터가 극을 추동했듯이, 두 번째 장편 〈아침바다 갈매기는〉도 윤주상 배우(영국)가 엄청난 묵직함으로 극을 견인한다. 두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건 각기 다른 감정이다. 혜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층민 소녀의 강렬한 분노에 휩싸여 있고, 영국은 헤아릴 수 없는 책임감으로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돌파한다. 두 사람은 깊디깊은 감정으로 무언가를 지키고 싶다.
조그만 어촌 마을에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영국의 배에서 일하던 젊은 어부(박종환 배우)가 바다에 빠져 실종된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남자는 바다에 빠진 게 아니라 보험 사기를 계획했다. 자신의 사망 보험금으로 베트남인 아내(카작 배우)와 어머니(양희경 배우)에게 보탬이 되고자 영국을 이 일에 끌어들인 것이다. 영국은 젊은 남자의 가족과 한 가족처럼 지내온 사이다. 늘 썩은 동태 눈깔처럼 의욕 없이 흐리멍덩하던 남자가 보험 사기를 계획할 때 눈이 반짝이는 걸 본 영국은 그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영국은 남자의 어머니와 아내에게까지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완벽한 일처리를 위해서다.
그러나 영국의 마음은 편치 않다. 동료 어부들, 해경이 차례로 수색을 멈추는 상황에서도 남자의 어머니는 바닷가에 의자를 놓고 우두커니 앉아 돌아오지 않는/돌아올 수 없는 아들을 기다린다. 베트남인 아내도 보험금이 얼마인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죽은’ 남편 대신 자신과 결혼할 생각은 없는지 등등 마을 사람들의 못된 관심을 마주한다. 그녀의 법적 지위에만 관심을 두고 그 외의 모든 맥락을 소거한 행정 관료들의 태도도 그녀의 어려움을 배가한다. 아들/남편이 죽은 줄로만 알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두 사람 앞에서 영국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영국은 남자의 아내에게 보험금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사라진 남자의 가족이 겪는 참혹한 현실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며, 한국이 그녀가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은 죽고 국제결혼한 여자는 본국으로 보험금을 갖고 떠난다’는 통속적이며 저열한, 편견에 가득 찬 악의적으로 뻔한 이야기가 가진 힘에 비밀을 숨겨 남겨진 사람들의 새 출발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마을 주민의 말마따나, 평온한 일상 이면에 피폐한 생활로 인한 갈등과 반목 그리고 오래된 폭력이 꽉 달라붙어 도사리고 있는 이 마을은 이미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은 과거 가족을 잃은 아픔을 통해 옆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새 삶을 ‘시작할’ 힘을 준다. ‘야반도주’한 베트남인 아내를 두고 혀를 차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하고 홀로 바다로 향하는 영국의 뒷모습에는 ‘끝’에서 ‘시작’을 길어낸 어느 노인의 뚝심이 놀라운 광채로 빛나고 있다.
박이웅 감독은 전혀 다른 질감의 두 이야기에서 모두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관계망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힘이 없는 인물에게 그 관계망을 지켜내라는 임무를 준다. 그들이 가진 무기는 관계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에서 비롯한 감정뿐이다. 그리고 감정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일상적 관계망이 소리소문없이 절벽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수동적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대신 적극적으로 ‘함께 살길’을 모색하는 박이웅 영화의 주인공들은 형형한 존재감을 뽐내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힘과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것이 박이웅 영화가 가진 미덕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 초청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 상영시간
10-06/09:00/영화의전당 소극장
10-07/10:30/CGV센텀시티 1관
10-08/15:30/CGV센텀시티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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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경계를 넘어, 지경을 넓히는
DIRECTOR. 이자벨라 브루네커
CAST. 야나 맥키논, 빌 케이플
SYNOPSIS. 늦여름.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 이가가 이상적인 행복을 꿈꾸며 공상에 잠기는 시기다. 그녀는 차를 몰고 스코틀랜드로 가기로 결심한다. 여행 중 이선이라는 서른 살의 영국 남자와 동행하게 되면서 이가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목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새로운 인연을 맺게 만드는 로드무비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을까. 2010년대에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나는 몇 번이나 생각했다. 얘들아 기차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면 위험해. 그리고 잔디밭에 누우면 쯔쯔가무시의 위험이 있단다… 하지만 애초에 내겐 그런 로맨스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차에서는 내가 예매한 자리에만 얌전히 앉아있을 것이며, 옆자리 사람들이 시끄러우면 조용히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이 차가운 시대에, 전주국제영화제에 도착한 자동차 로드무비 한 편. 영화 <슈거랜드>의 스토리라인은 자못 단순하다. 한 여자가 휴게소에 잠시 멈춰섰다가, 불을 빌리며 히치하이킹을 청하는 남자를 만난다. 내키지 않았지만 고민 끝에 여자는 남자를 태우고, 두 사람은 일련의 자잘한 사건들을 겪고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모르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의 전형이고, 이 영화 속 사건들은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슈거랜드>는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물론 <비포 선라이즈>를 보며 쯔쯔가무시를 우려하던 나의 마음은 <슈거랜드>를 보면서도 드러난다. 라이터 빌려주지 마! 모르는 남자 차에 태우지 마! 내릴 때 차키를 왜 두고 내리는 거야, 그 사람이 차 끌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다행히 여정은 계속된다. <비포 선라이즈>의 시대를 지나버린 관객의 우려를 이해한 듯, 주인공 두 사람도 조금씩 쭈뼛거리고 망설인다. 단지 그 작은 망설임을 조금씩 넘기고, 서로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심심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 가게 된다.
경계하고 벽을 세우는 게 자연스럽고 안전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잊혔던 사실이, 그렇게 새삼스럽게 드러난다. 관계는 결국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쓰면서, 장벽이 낮아지면서 시작하는 거란 것. 그러다 보면 결국 상대를 버려두고 갈 수 없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아해 한다. 친절이 사라지고, 그 냉기가 나의 숨통을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답답한 세상.
그 시대는 에단(이라 불린 남성)의 입에서 “탈낭만주의” 시대라고 정리된다. 그 시대에도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믿고 싶어하는 이가(Iga), 그리고 현실은 다르다고 말하는 에단(Ethan) 두 사람 모두 사실 본질은 비슷하다. 친절의 가치를 아직 믿고 싶어하는 서로를 알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서로를 “미쳤다”고 말하면서. 이런 시대에 사랑의 가치를 믿는다는 건 거의 종교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세속적인 풍경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작은 음악 소리를 듣고 “좋아하는 노래”라며 벌떡 일어나 웃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같이 일어나 같은 동작으로 춤 출 때, 우스워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때 그 음악이 선명해지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그런 용기가 없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한 용기, 서로의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망설임이 뒤섞이면서 그 안에서 무엇이 선명해지는지를 천천히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생은 우리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그때 설렘만큼 선명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간 내용이 커지고 많아질수록, 유리창처럼 깨져 서로를 찌르는 파편들도 커질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성향과 성격은 양면적으로 평가될 수 있기에.
사랑이라고 부르기에 아직 어린 감정이지만 힘이 세다. 잠시 내 경계를 잊게 하고, 그 모든 경계를 넘어서 다른 세계로 데려가 준다. 사랑은 그래서 위험하다. 둘이 넘어선 경계는 단순히 행정구역의 경계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에서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각자 뛰어넘고 싶은 삶의 경계와 고민을 가득 안고 있었다. 삶은 그런 곳이니까.
이 영화 속 날은 늘 흐리고 안개가 끼어 있다. 채도가 낮은 16mm 필름의 색감 안에서, 물기 어린 시각으로 우리는 두 사람의 세상을 본다. 삶은 쩌면 그토록 모호한, 미지의 세계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동차 한 대처럼 유유히 차곡차곡 나아간다. 가끔은 유리창도 깨지고, 가끔은 대화도 나누면서. 가본 적 없는 곳에도 거침없이 달려가면서.
그렇게 뛰어들었다가 돌아 나오면, 세상의 경계선은 한층 넓어져 있다. 그리고 나면 비로소, 이가의 앞에 해가 뜬다. 지난 시간을 딛고, 지금까지의 시간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힘. 푸르스름한 질감 너머 그 힘의 빛이 전해지는 영화였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04.29-05.09) 상영일정]
2025.05.02 11:0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209)
2025.05.05 14:3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527)
2025.05.08 21:30 CGV전주고사 7관 (상영코드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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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름다운 인사 굿바이
※ 강력한 스포와 영화 설명이 있습니다. 보시지 않은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상영관에 단 3명이 있었다. 다들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도 눈물을 훔치느라 아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정을 오롯이 표출할 수 있었다. 영화관에 사람이 없었던 것은 그런 의미로도 참 좋았다.
눈길을 헤치며 자동차가 달린다. '이 일을 시작한지 2달..'이라는 말과 함께 다이고는 사장님과 어느 상가집으로 들어간다. 이들의 직업은 전문 납관도우미. 다이고는 말한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리고 사장님이 제안한다. "한 번 해볼텐가"
"달렸어요..." 다이고가 말한다. 여성이지만 여성이 아니었고, 남성이지만 남성이 아니었던 사람.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 녀석이 그렇게 하고 다닐때는 말도 하기 싫도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치장해 놓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아 저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내 자식이구나... 고맙습니다."
눈물이 터져나왔다. 영화 시작부터 눈물을 쏟아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손수건을 챙겨가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이 영화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이고는 원래 첼리스트였다. '잘나가는'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 늘 열심히 했고, 그가 1억 5천만엔을 빌려서 악기를 산 그 시점, 오케스트라가 해체된다. 오케스트라가 해체 위기라는 것을 그만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의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 이 작품은 오랜 공백을 깬 히로스에 료쿄의 복귀작이다. 여전히 아름답다)
나같으면 다리몽둥이를 똑 분질러서 혼내줬겠지만 아름다운 미카는 이를 용서한다. 그리고 시골인 고향에 내려가고 싶다는 그의 말도 찬성해 준다.
이 둘을 시골로 내려가서 다이고의 어머니가 물려주신 집에서 살게된다.
원래는 카페였지만 어머니가 Bar로 만들었었고.. 이제는 그 어머니도 없는 집.
아마 다이고에게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겠지만, 원망하고 있는 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할것이다. 물론, 정말로 원망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이고는 일자리를 찾는다. '초보자 우대, 여행 도우미' 관광업체인줄 알고 찾아갔던 그곳은 납관업체였다. 오타가 난거라면서 말하는 사장님이었다.
"여행 도우미가 아니라 '영원한 여행'도우미지. 오타지 오타."
사장은 얼렁뚱땅 면접을 보고 무조건 합격을 시키고, 월급도 높게 부르고, 일당도 준다. 일자리가 없는 다이고로서는 감지덕지였다. 여러모로 대책없는 다이고도 불만없이 일을 시작하게 된다. 미카한테는 비밀이었다.
다이고의 첫 번째 일은 납관과정 교육CD도우미. 물론 역할은 죽은 사람역이다. 다이고의 표정은 정말 다채롭다.
다이고가 맡은 두번째 일. 하지만 이건 어느때보다 힘든일이다.
바로 죽은지 오래된 시체를 만나는 일. 지켜보기만 하라는 사장님의 처음 말과는 다르게 시체를 옮기는 일을 도와야만 했고, 그는 먹은 음식들과 조우를 할수 밖에 없었다.
그는 페닉에 빠졌고, 버스를 탔는데 여학생들이 수근거린다.
"어디서 썩은 냄새 나는것 같아.. 저기 양복입은 아저씨.."
다이고는 황급히 내린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그 목욕탕에 간다. 비누칠을 수십번을 하고, 냄새가 사라질때까지 벅벅 문지른다.
그가 닦아낸 것이 죽은자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었을까는 모를 일이지만 그는 깨끗이 닦아 낸다. 그리고 목욕탕집 아주머니와 오랜만에 만남을 하고, 친구와도 만난다.
다이고 친구의 어머니이자. 목욕탕 주인아주머니. 그녀는 1년치 눈물을 다 쏟게 만든 장본인이다.
아주머니는 미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이고는 속이 깊은 아이야,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을 잘 안하니까.. 잘 보살펴줘야해. 지 아버지가 그렇게 집을 나가도 엄마 앞에서는 한번도 울지 않은 녀석인데.. 남탕에 혼자 들어가서 울더라고..."
속이 깊은 건지 미련한건지 그런 다이고가 나쁘지 않다. 다만, 괜시리 멍해 보이는 저 눈이 더 서글퍼 보였다.
목욕을 마친 부부는 술 마시러 가자고 하더니 술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러고보니 그 집이 Bar가 아니던가! 컵에 양주를 담고, 거기다가 데운 물을 넣었다. 청주를 데워먹는 다는 건 들었는데 이런 방식은 처음 봤다. 술을 먹고, 다이고가 어렸을때 쓰던 첼로로 연주를 듣고, 평화로운 밤이 지나가는 것 같다.
다이고가 새벽에 콜을 받아서 일을 하러 나간다. 미카는 다이고를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무슨일을 하는 걸까.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이고는 친구에게 "할일이 없어도 그런일을 하냐"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자 미카는 납관교육용 CD를 보고 있었다. 잠깐 한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이 하는 일을 다 알아본 상태였고 친정에 가겠다고 일을 그만두면 데릴러 오라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다이고는 미카를 잡았지만 미카는 울며 말한다. "불결해."
나름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에게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그는 일을 그만 두려고 한다. 사장님에게 말하려고 사장님을 찾아간다.
"아내는 아직 안 돌아왔나? 밥도 안 먹었겠군. 먹고가게"
다이고가 올걸 알고 차려 놓은 것 처럼, 그 둘을 밥을 먹는다. 사장님은 아내를 꾸며서 납관 해준 것을 기점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둘은 '복어 정자'를 먹는다.
"동물을 동물을 먹고 살지, 근데 식물을 그렇지 않아."
"맛있어, 미안하게도"
그만두겠다고 말하러간 다이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식사를 하고 나온다.
다이고는 아내가 없이도 다이고는 NK(납관)에서 콩짝콩짝 잘 산다. 잘 산게 잘 산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도 그래도 잘 산다. 혼자 바게트 빵에 마요네즈 듬뿍(정말 듬뿍)이랑 회도 얹어서 먹고, 일도 잘 하면서 다닌다. 일이 얼마나 능숙해졌는지 모른다. 시간나면 사장님이 자신한테 "넌 이 일이 천직이야"라고 말한 둑에서 첼로도 켰다.
험난했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때까지 그는 아내없이 버틴다. 아무래도 그는 아내와 일 둘다를 사랑한 것 같다. 그러다 아내가 돌아온다. 집에 돌아가는 문이 열려있고 아내가 부엌에 서 있다.
"청소 안하면서 사는구나? 역시 내가 없으면 안되네.."
"했어..가끔..."
"안한것 같은데?"
"두번했어..."
"가끔이 아니잖아"
그 둘에게 아이가 생겼다. 미카는 다이고에게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울린 전화벨...
"이럴 때 꼭 일을 하러나가야돼?" "목욕탕집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데...."
이때부터 미친듯이 펑펑 울었다. 그 전에도 "아내는 오늘 제가 본것중에 제일 예뻤습니다..." 등등도 울었지만.
설마설마 하던 때 이렇게 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주머니의 납관은 다이고가 맡는다. 친구의 어머니이자 어쩌면 다이고의 정신적인 지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이었는데 장작을 나르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끝까지 일을 하다고 돌아가셨다.. 다이고가 납관(염)을 하는 것을 본 친구와 미카는 그를 인정하기로 한것 같았다.
미카가 쪼금 경솔하긴 했지만 그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닦으면서 남편을 보고 웃었다. 이건 인정의 의미일 것이다. 아주머니는 화장을 했다. 화장터에는 위에서 목욕하고 계시는 단골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는 납골당 직원이었다. 아주머니의 아들이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도 되냐고 하면서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간다..
"사람이라는게 직감이 있나봐.. 작년 크리스마스때 웃기지만 둘이서 케익도 사고 파티를 했어. 그때 나한테 그러더라고, 목욕탕 같이 운영할 생각이 없냐고 말이야. 불 짚이는 데는 내가 선수잖아. 난 죽음이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 난 문지기로서 그들을 안내해주는 거고."
불을 붙인다. "잘가"
생각해본다. 그 할아버지는 아주머니를 사랑했을 것이다. 궂이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애틋하지만.
화장터에서 나온 두사람이 화해아닌 화해를 한다.
"아버지가 알려준거야. 자신의 마음을 닮은 돌을 꼭 쥐고 상대방에게 주면.. 상대방을 그 마음을 읽는거지. 매끈한 돌을 받으면 안심을 하고 울퉁불퉁한 돌을 집으면 걱정을 하는거야...내 마음이 어떤 것 같아?"
"비밀"
미카가 집에 혼자 있는데, 전보가 온다. 다이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이고는 미카에게 혼자 가라고 한다. 자식을 버리고 나간 아버지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었나보다.
그때 NK의 직원분이 다이고에게 부탁한다.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달라며 울면서 부탁을 한다. 자신도 6살된 자식을 버리고 나왔다고, 그런데 찾아갈수 없다고.
"자식 버린 부모는 다 똑같군요!!"라며 다이고는 모진 말을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부탁한다. 뛰쳐나간 다이고 앞에 있는 미카, 도망치듯 걸어가지만 다이고는 다시 회사로 들어간다. 사장님은 차키를 던져주며 말한다.
"관 하나 골라가"
(내 추측컨데 이분은 다이고의 어머니의 술집에서 일을 하다가 다이고의 어머니가 죽고 여기서 일하게 된 듯하다. 결국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다이고 어머니의 염(납관)을 해준 사람을 사장님이라는 것. 인연은 끊을 수 없는 듯하다. 또 사설이지만 이분이 사용하는 다기세트는 탐난다)
다이고는 아버지의 시신을 보러간다. 달리고 달려서 또 간다. 다른 여자와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얼굴을 봤는데, 아버지인지 아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동네 장의사들이 왔다. 아버지를 씻기지도 염도 하지도 않고 함부로 관에 넣으려는 걸 보고 다이고는 화를 낸다.
"남편은 전문 납관사예요"
"이 사람의 인생은 뭐 였을까. 고작 상자하나만 남긴게 인생이었을까..."
다이고는 아버지의 손에서 자신이 준 돌맹이 편지를 찾는다. 그때 기억이 난다. 뭉툭하고 커다란 돌을 자신에게 건내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 면도를 해주면서 다이고는 그렇게 울었다. 살며시 울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 돌맹이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할아버지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끝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 영화는 결말이 흐지부지하고, 너무 잔잔해서 혹은 그냥 일상 같아서 싫다고들 한다.
네이버가니까 '행복한 장의사'랑 비교하기도 했던데 난 역시 이 영화 자체가 좋다. 다이고와 미카, 사장님과 직원, 동네 사람들, 풍경, 음악(음악감독이 '히사이시 조'인데 뭘 더 바랄 수 있을까?)
2008년 마지막에 내 기억에 남을 또 하나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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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레스 페로스 (Amores Perros) 리뷰
아모레스 페로스 / Amores Per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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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
이 작품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감독의 데뷔작이라는게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잘만든영화이다.
3개의 옴니버스가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다니!
역시 명감독은 시작부터 다르구나..
1. 옥타비오와 수잔나
옥타비오와 수잔나의 관계가 솔직히 도덕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난 옥타비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자신이 예전부터 사랑했던 여자가 내 형이랑 결혼했는데, 형이라는 자식은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심지어 부인을 막대하기까지 하다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막대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는 상상도 안된다...
2. 다니엘과 발레리아
그들의 고통은 카르마인 것 같다.
본인의 이기적인 사랑을 위해서 가족을 버렸는데 이정도 고통은 감수해야되는거 아니야?
3. 엘 치보와 마루
자신의 신념때문에 가족을 버려놓고 뒤늦게 후회하는 엘 치보..
사실 영화를 볼 땐 엘 치보가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이 가족 버려놓고 딸을 그리워하는 아빠인척, 항상 가족을 생각했던 아빠인척하네;' 약간 이런 마인드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그 당시 역사적인 부분을 생각해봐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가족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누군가에겐)영웅들이 얼마나 많은가..그 영웅들과 엘 치보의 차이점은 목적 달성 성공/실패 일뿐..
뒤늦게 후회하고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 엘 치보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특히 마지막에 가족 사진을 바꾸고 전화를 하는 장면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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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개'의 존재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3개의 옴니버스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자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개를 대한다.
옥타비오는 개를 이용하고, 리치는 개를 사랑하며, 엘 치보는 개를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긴다.
난 그들이 개를 대하는 방식에서 그들의 삶에 결핍되어 있는 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엘 치보와 개들의 관계가 그 부분을 제대로 보여준다.
엘 치보가 진심으로 개들을 대하고 보살펴 주는 모습은 그가 자신의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에서 나온 행위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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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았을 땐 개나 사람이나 별반 다를거 없고, 여기 나온 인간의 삶 또한 개 못지 않게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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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Amores Perros에서 Amore는 사랑을 Perro는 개의 뜻을 지닌다.
개를 통해 사랑을 이해하는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제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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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영어 제목도 꽤 흥미롭다.
Love's a bitch.
진짜 사랑 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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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넷플릭스 <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지
오래되고 고된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나는 어느 해가 됐든 연말을 맞이할 때 가족-따스함-파티 분위기보다는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며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쓸쓸한 기분을 더 좋아한다. 그 한 해에 만족하든 안 하든, 좋았던 나빴던 어쨌든 한 해를 살아냈으니 맞이하는 마지막 달이다. 남들이야 어찌 평가하든지 어쨌든 나는 내 인생에 1년 치의 무언가를 또 적립했고 살아내야 할 한 해를 마친 것이다. '끝'은 두렵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아이리시 맨>의 200분이나 되는 러닝 타임을 어찌어찌 견뎌내고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에 이르면 실제로 1년 정도는 산 기분이 든다.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는 길고 자세한 마피아 생활의 묘사는 실제로 아일랜드 출신 백인 범죄자의 인생을 함께 살아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함께 늙어버린 듯 지친 기분이 들 때쯤 왜 스콜세지가 작정하고 영화를 이렇게 길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양로원에 홀로 앉아 있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으로 분장한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을 보며 드는 복잡한 감정은 노쇠하고 힘이 없어진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아니다. 그를 동정하기엔 우리는 그 남자가 저지른 너무 많은 죄악을 200분 내내 목격했다. 인간에게 늙고 초라해졌기 때문에 사함 받을 수 있는 죄란 건 없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의 얼굴 위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며 그 순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정당화했던 그의 젊은 날 마피아의 모습이 겹쳐질 때 우리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정체는 의문이다. 그 모든 잔인함과 비인간성은 뭘 위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딸들에게 너희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자기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든 것이 있다고 변명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 짙은 회의감이 느껴진다. 진심으로 모든 순간 그렇게 믿었을까? 이제 와서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선택에 의한 득과 실은 결국 인생의 말년에 이르자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순간순간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 무엇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뎀얀유크라는 남자가 있다. 같은 제목의 넷플릭스 미니 시리즈를 보고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뎀얀유크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가담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데에 동참했다. <아이리시맨> 속 프랭크 시런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말년을 맞이했지만 뎀얀유크는 실제로 전범 재판을 받으며 끔찍한 악행이 까발려지면서도 가족들의 무조건적이고 따듯한 사랑을 받았다. 말년까지 그는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선하고 가난한 삶,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삶, 학살자의 삶, 부귀영화를 위해 타인을 서슴지 않고 짓밟는 삶, 이 모든 선택지는 서로 대립하거나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삶은 각각 독립되어 있고 권선징악 같은 인과관계는 실제로 필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더욱 어려워진다.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살면서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 갑작스러운 두려움을 느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죽음은 목전에 와 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회개의 기도문을 중얼거려 보는 것 밖에는 없다. 역으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 왔지만 그 대신 타인에게 짓밟힌 가여운 인생들에게도 딱히 그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은 없다. 사후 세계를 믿는다면, 죽음이 안식이란 것을 믿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는 훗날의 무언가를 임의로 상상하며 선택할 수 없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살아가는 도중의 모든 선택에 대한 기준은 결국 단 한 가지의 확실한 사실, 죽음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설령 존재한다 해도 인간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그 존재에 대해 알 수도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그걸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온 시내가 루미나리에로 반짝거리고 울려 퍼지는 캐럴로 가득 차 있을 때, 모두가 쓸쓸함과 설렘과 자신의 삶에서 밀려오는 각종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내가 끝나가는 한 해를 보내며 생각하는 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문장은 전혀 슬프거나 허무하지도, 동시에 위로가 되지도 않는다. 굳이 나의 느낌을 묘사하자면 ‘고요하다’ – 나는 연말의 고요 속에서 되뇐다. 언젠가 반드시,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Good night and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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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라떼극장]"소풍왔어 소풍?"시실리2km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1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시실리 2km"를 보며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보자
친구가 훔친 다이아를 되찾기 위해 도착한 마을 '시실리'
비협조적인 마을 주민, 예상치못한 귀신과 만나며 일은 점점 꼬여만 가는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조폭들이 했던 게임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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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가 훨씬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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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겨울왕국 2'를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저의 가장 큰 힘이 됩니다!
※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4. 함부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 연락처
adonai0919@gmail.com
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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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수호전 - 백호당 임충> 예고편
수호지, 그 첫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북송 시기, 80만 금군의 장군인 임충은 소원을 빌기 위해 찾은 사당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희롱하는 고아내를 혼쭐내 준다. 이에 앙심을 품은 고아내는
임충의 지기인 육겸을 꼬드겨 임충을 없애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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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돼지의 왕> 티저 예고편
"잘 지내지?" 20년전 친구가 살인현장에 메시지를 남겼다! 연상호 감독 애니메이션 원작 [돼지의 왕] 3월 오직 티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