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7-25 11:49:06
7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미나리> 정이삭 감독, <트위스터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신작 <트위스터스>가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개봉 첫 주에만 1117억원을 벌어들였고 이는 <오펜하이머>의 개봉 첫 주말 매출과 같은 기록입니다.
정이삭 감독은 2020년 윤여정 주연의 <미나리>로 제 78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은바 있습니다.
영화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국내 개봉은 8월 14일 예정입니다.
7월 4주차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미나리> 정이삭 감독 연출 <트위스터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기상청 직원과 스톰 체이서 인플루언서가 역대급 토네이도를 좇는 이야기 <트위스터스>가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미나리>를 연출했던 정이삭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트위스터스>는 주말 매출액 1700억을 넘어서며 24년 개봉작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한 <괴물> 웨이브 독점 공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웨이브에서 독점 공개를 알렸습니다.
<괴물>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의문의 사건에 연루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이야기입니다.
<탈주> 올 여름 한국영화 최초 200만 돌파
7월 3주 차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탈주>가 기세를 이어 누적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번 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 2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탈주>가 처음입니다.
<탈주>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 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리며 <탈주>의 흥행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작 공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작들이 공개되었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THE ROOM NEXT DOOR>, 루카 구아다니노의 <QUEER>, 토드 필립스의 <Joker: Folie a Deux>까지 쟁쟁한 경쟁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요.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연출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출품되어 영화 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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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천국의 나날들 Day of Heaven - 테렌스 멜릭
멜릭 감독은 데뷔작 '황무지'를 연출하고 3년만에 다시 명작을 만들었다. '황무지'에서 보여준 황량하고 메마른 장면들이 여기도 등장한다. 주이공들 역시 '황무지'에서의 연인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이 영화에서도 떠돌이 노동자로 전전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두번째 봤을 때 사뭇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쓴 글이 아래에 이어지고 있지만, 사회적 분석을 떠나, 이 영화는 처연하고 슬픔이 너무 깊어 그것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빌(리차드 기어)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노동자다. 그는 시카고에 살며 영세한 제철소에서 힘겹게 일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1916년 무렵이니까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의 배경과 비슷하다.
하지만 빌은 공장에서 일을 하다 관리자와 마찰을 빚고, 의도하지 않게 관리자를 살해한다. 이 앞부분은 매우 빠르게 진행하므로 관객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공장 내부의 소음이 너무 커서 빌과 관리자의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마치 쏘련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몽타주 기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빌은 애인 애비(브룩 아담스)와 여동생 린다(린다 만츠)를 데리고 시카고를 떠나 남쪽 텍사스까지 내려와 떠돌이 노동자들이 넓은 밀밭을 수확하려 모여 드는 곳에 주인공들도 일자리를 얻는다. 빌은 애비를 애인이나 아내가 아닌, 여동생으로 소개하는데, 부부라고 하는 것보다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빌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직한 태도는 아니었다.
떠돌이 노동자로 일하려면 부부라고 말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빌은 애인 애비를 여동생이라고 말한 이유는, 언젠가 애비와 헤어질 거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즉 빌은 자신이 공장관리자를 실수로 살해하고 도망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날 거라는 짐작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애인 애비의 삶을 위해 자기와 묶어두기 보다는 조금 느슨하고 자유롭게 연결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밀 수확을 하는 농장의 농장주는 젊은 백인으로, 그는 돈이 많았지만 아직 결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병을 앓고 있었고, 가족도 없었다. 수백 명의 일꾼들이 수확철이 되면 기차를 타고 몰려왔다가 수확이 모두 끝나면 임금을 받고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에 오똑한 집 한 채에 머무는 농장주는 부유해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농장주가 우연히 애비를 발견하게 되고, 호감을 갖는다. 빌은 우연히 농장주가 시한부 삶이라는 걸 엿들었고, 애비에게 농장주와 결혼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빌의 생각은 애비가 농장주와 결혼하고, 농장주가 곧 죽으면, 농장을 물려받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으리라.
밀 수확이 끝나 떠돌이 노동자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 남아 허드렛일을 하며 농장주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곧 농장주와 애비는 결혼식을 올린다. 그렇게 농장주와 애비는 공식 부부가 되었고, 빌은 농장주의 처남이 된다.
네 사람은 밀 수확이 끝난 들판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지낸다. 이 영화에서도 데뷔작 '황무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빌의 여동생의 시각이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빌과 여동생, 애비는 농장에서의 삶이 마치 천국에서 지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풍족한 생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아름다운 자연,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온전한 시간들이 이들에게는 처음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주는 아내 애비와 처남 빌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낌새를 챈 빌은 농장을 떠나고, 세 사람은 다시 밀을 심고, 수확할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애비는 처음에 농장주와의 결혼이 정략결혼이었고, 애정이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다정한 농장주의 태도에 자신도 남편(농장주)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느낀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밀 수확철이 되었을 때, 떠났던 빌이 멋진 자동차를 타고 나타난다. 농장주는 다시 빌과 애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결정적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밀밭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메뚜기를 없애려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농장주는 빌에 대한 분노와 배신의 감정으로 가득 찼고, 우연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는 불씨를 밀밭에 던지며 밀밭이 모두 불에 타버리도록 방치한다.
농장주는 빌을 죽이려고 총을 들고 다가서지만 빌의 공격으로 살해당하고, 빌은 다시 애비와 린다를 데리고 도망한다. 보안관들이 빌의 뒤를 추적하고, 마침내 빌은 보안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애비와 린다는 빌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지만, 살인자 빌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다.
이후 애비와 린다는 서로 헤어져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애비는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들과 함께 기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사라지고, 린다 역시 무용학원에서 친구와 함께 도망쳐 철길을 따라 사라진다.
결말은 세 명의 주인공이 죽거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운명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의 운명이 가난에서 시작했고, 가난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당시 시대 상황에 관한 인식은 아래,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썼던 글로 대신한다.
천국의 나날들. 1978년 테렌스 멜릭 감독 작품. 젊은 나이의 리차드 기어와 샘 쉐퍼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멋진 영화임에 틀림 없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하겠다.
스토리만 보면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비교적 평면적인 이야기 구조 속에 미국의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성, 역사성을 잘 구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초의 미국 즉 1900년에서 1930년대까지의 미국 사회를 살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업튼 싱클레어가 쓴 소설 '정글'부터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국 현대 소설들은 당대의 현실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시기에 이미 놀라운 판매와 함께 여론을 집중한 베스트셀러였다.
'정글'과 '분노의 포도' 사이에 이 영화의 시대가 있다. '정글'은 시카고 도살장에서 일하는 유르기스는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노동자다. 그는 도살장에서 일하는데, 그가 일하는 도축장의 현실은 생지옥이 따로 없는, 참혹한 환경이다. 그가 받는 임금은 집세를 내기에도 버겁고,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참혹한 공장 환경을 비롯해 그가 살아가는 환경은 최악이다.
'정글'은 이 시기의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그보다는 주인공 유르기스가 고통스러운 삶에 허덕이는 평범한 노동자에서 각성하는 사회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기에는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노동자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은 30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분노의 포도'에서도 조드 일가가 겪는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이 가진 재산을 모두 잃고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이 영화와도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또한 '분노의 포도'에서도 당시 미국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무대는 텍사스의 농장이다. 대도시인 시카고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빌은 공장장과 말다툼을 하다 의도치 않게 살인을 하게 되고, 그의 애인과 여동생을 데리고 도망한 곳이 텍사스의 농장이다. 광활한 농장은 밀을 키우는데, 수확철이 되면 떠돌이 노동자들을 불러 들여 그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밀 수확을 하게 된다.
백여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노동자들은 왜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들여다 봐야 한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지금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이름들-J.P 모건, 록펠러, 카네기, 제이 굴드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유명한 자본가들의 이름이며, 지금까지도 미국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는 지배집단이기도 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계급의 대립이 매우 격렬하게 맞붙게 되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이후출판사)'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의 미국사회는 거대 자본에 저항하는 세력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치되어 있는 반면, 20세기 초에는 미국에서도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으로 미국노동자들의 계급적 각성은 세계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훌륭했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미국의 자본가들은 러시아에서 권력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미국의 노동자 계급으로 전이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박살내고 사회주의자들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을 향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결국 모든 노동쟁의와 반자본투쟁의 원인은 바로 자본(가)이 만든 것이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자본의 내적 모순'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했고,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것 역시 이러한 내적 모순에 의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미국의 자본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지만, 폭력적인 방법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고 말살시킨 이후, 미국은 제3세계를 통해 착취한 이윤의 일부를 자국의 노동자들에게 분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불만을 완화했고, 미국의 노동자들은 순치되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미국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장에서 쫓겨나거나 배제된 노동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빌과 그의 애인 애비, 여동생은 텍사스의 농장에서 밀 수확을 하게 되는데, 그 농장의 주인은 미혼의 젊은 남성으로, 애비를 눈여겨 보게 된다. 빌은 자신의 애인을 여동생이라고 소개하는데, 그들이 애인 사이인 것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감정 싸움은 빌이 애인인 애비를 설득해 농장주와 결혼하라고 권하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빌은 농장주가 병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결국 빌과 애비의 관계를 눈치 챈 농장주(샘 셰퍼드)는 빌과 다투는 와중에 빌에게 살해당한다. 두 번씩이나 사람을 죽인 빌은 도망자가 되어 쫓기다가 결국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나지만, 겉으로 드러난 빌의 범죄-살인-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몰린 노동자가 두려움에 저지른 실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였던 20세기 초는 특히 노동자의 생존 조건이 말할 수 없이 열악했고, 노동자는 그야말로 소모품에 불과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때였다. 지금의 미국은 자본주의와 함께 민주주의도 발달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까지 오는 동안 미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탄압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거의 유일하게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탁월한 작품이다. 멜릭 감독은 이 영화로 음악에서는 엔리오 모리꼬네가 영국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고,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영화상, 뉴욕비평사협회 감독상, 로스엔젤레스비평가협회 쵤영상,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의 장면 한컷 한컷이 마치 회화처럼 아름답다. 이것은 영화의 주제와 내용이 매우 처연하고 슬픈 것과 대비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희생되는 떠돌이 노동자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극적으로 대비하고 있어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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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렬한 모녀 관계 영화
8★/10★
모녀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지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만큼 강렬한 영화는 없었다. 엄청난 흡인력으로 2시간 20분의 러닝 타임 동안 잠시도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 혹은 극사실주의적 스릴러라 할 만하다. 혈연이라는 강제적 인연에 묶인 모녀가 서로를 증오하고 원망하느라 진이 빠지는 과정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담아내는 이 영화를 따라가 보자.
엄마 수경과 딸 이정. 둘은 모녀 관계지만 같이 있을 때 편안함보다는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거칠고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고 몸싸움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다. 이들에게 갈등과 폭력, 무관심과 멸시는 일상이다. 수경은 어릴 때부터 이정을 때리며 키웠다. 이혼 후 조그마한 좌훈방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수경은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아이를 양육하며 거칠고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딸 이정에게만 그렇다는 게 문제다. 늘 웃는 얼굴로 손님들의 뒷이야기를 받아내야 하는 수경은 자신에게 쌓인 스트레스를 이정에게 풀었다. 이정이 아니었으면 자신이 그토록 절박하게 살 필요가 없었다는 점도 이정을 향한 원망의 감정을 키운다.
엄마의 무관심과 폭력은 이정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늘 우울한 표정의 이정은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정은 늘 혼자다. 사랑받은 적이 없기에 관계 맺을 줄도 모른다. 우연히 직장 동료가 이정의 사정을 알게 되어 급격히 가까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정은 도무지 ‘적당한 선’이란 걸 모른다. 동료에게 느닷없이 동거를 제안하고 그녀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자 한다. 선의로 이정에게 손을 내밀었던 동료는 자신에게만 의지하고자 하는 이정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끝내 수경과 같은 표정으로 이정을 바라보기에 이른다. 이정은 상처받은 딸인 동시에 질척거리는 동료였던 것이다.
이정은 수경이 자신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수경은 이정이 제발 한 번만 사과해달라고 무릎 꿇고 애원해도 콧방귀만 뀐다. 수경이 이정의 나이였을 때 그녀는 아이를 낳고 홀로 양육했다. 수경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집안 살림에 별다른 도움도 주지 않고 무기력하기만 한 이정이 한심할 뿐이다. 이정과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질린 수경 역시 애인과 결혼해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그러나 애인의 딸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어 끝내 원래의 자리, 즉 이정과 함께 사는 아파트로 돌아온다. 수경과 이정은 각각 애인과 동료를 통해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서의 탈출을 도모하지만 결국 서로에게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망스럽게 깨닫는다. 혈연이라는 강제적 인연과 오랜 세월을 이어 온 관성이 둘을 꼭 묶어 놓고 놔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교성이 좋지만 딸에게는 그렇지 못한 수경과 자기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몰라 타인에게만 구원을 갈구하는 이정. 모녀의 양면성과 결함을 과연 그들 개인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숨이 턱턱 막히는 모녀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섣불리 대답하는 대신 그저 미칠 정도로 답답한 관계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작위적 화해 따위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이 모녀에게 위로, 화해, 연대, 공감 따위의 가치는 비현실적이다 못해 초현실적이다. 그런 두 여자가 같은 속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모녀라는 건 지독한 비극이다. 물론 그 언젠가는 현실이 될지 모를 희극의 토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두 모녀가 꼬일 대로 꼬여 서로에게 탈출하지 못하고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상태라는 현실인 것만이 분명하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관계의 강제성과 관성이 야기한 폭력적 현실에 관한 가장 강력한 영화적 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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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가족의 의미를 깨닫다
진정한 가족은 그 각각의 관계들을 만들어가면서 생성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태어나면서 자신의 가족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오랜 시간 동안 현재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다. 실제로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생물학적 부모와 강하게 이어져 있다. 부모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우유를 마시고 그들의 품에서 잠이 든다. 아이가 태어나 바로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아이는 강하게 연결되어, 그 관계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된다. 그렇게 지속되는 관계는 쉽게 끊어질 수 없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그 관계는 삶의 많은 순간에 영향을 준다. 그들은 태어나서 바로 이어지는 관계지만 그들의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들 각자의 대화와 노력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원래의 생물학적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이 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성인이 되거나, 기회가 있다면 제3자에게 입양을 가기도 한다. 고아원에서 자라든, 아니면 입양을 가서 생활을 하든, 그 모든 관계는 결국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관계다. 그들을 신뢰해야 할지, 그들에게 여러 부분에서 의지해도 될지를 결정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번 관계가 끊긴 경험을 한 아이들은 그 마음을 다시 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되는 관계들에서도 그런 경향은 그대로 반영된다. 만약 오랜 시간 후 그 관계가 이어졌다면 그들 또한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어 낸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닐지라도 그들 사이에서는 신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렇게 강한 신뢰로 이어진 관계도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최근에는 그런 생각이 확대되면서 가족의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의미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영화 <블랙 위도우>
영화 <블랙 위도우>의 이야기도 최근 확대된 의미를 가지는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마블 유니버스 영화에서 블랙 위도우로 등장했던 나타샤(스칼렛 요한슨)는 그동안 주변부의 인물이나 관계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나타샤는 초기에 굉장히 차가운 스파이의 이미지로 등장했고 다양한 모습의 역할로 변장할 수 있고 뛰어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늘 혼자였고, 조금은 외로워 보였다. 그나마 어벤저스에 속한 다른 영웅들과 신뢰를 형성하여 세상을 구하는 여러 임무들을 하기 바빴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와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사이 시점에서 전개되는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 캐릭터가 등장하는 마지막 영화이자 그의 과거 삶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영화 초반에는 나타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보인다. 여동생 엘레나(플로렌스 퓨)와 엄마 멜리나(레이첼 와이즈), 아빠 레드 가디언(데이비드 하버)이 평범한 가족의 모습으로 오하이오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나온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나타샤의 조금은 무표정한 얼굴을 제외하고는 그저 행복해 보이는 한 가족의 모습이다. 사실은 첩보 활동을 위한 위장 가족이었던 이들은 아주 어렸던 엘레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그것이 단순한 임무였고 언젠가 끝날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가족의 역할에서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 그 첩보 활동의 마지막 날에 엄마 멜리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 3년이라는 시간은 나타샤와 옐레나가 한참 성장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생물학적 부모의 존재와는 거리가 있었던 그들에게 그 시기는 입양 후에 만들어진 가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부모 역할을 하는 두 사람도 아이들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 각자가 느끼기에 그 시간은 좋은 시간이었다. 영화는 오하이오의 첩보 활동이 끝나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는데,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나타샤와 옐레나의 유년기 시절은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기질과 관계를 만들어낸 시기다. 또한 그 시기 이 가족의 구성원들 사이에 어떤 신뢰가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깨지는 시점 또한 첩보 활동이 끝나는 시기와 동일하다. 가짜 가족이 깨지는 그 사건을 보고 나면, 그동안 마블 시리즈에 등장한 나타샤가 왜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늘 혼자 힘든 짊을 지고 가려고 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깨져버린 어벤저스, 신뢰하지 못하는 가족
나타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기는 어벤저스 멤버들 간의 사이가 좋지 못할 때이고, 정부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기다. 성인이 된 이후 나타샤가 가장 크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어벤저스 멤버들일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깨진 상황에 처한 나타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둡고 외로워 보인다. 또한 가장 신뢰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추적하고 배신했다는 생각에 자신의 주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기에 그가 다시 만나게 되는 동생 옐레나는 이미 신뢰가 깨져버린 과거 가족의 일원이다. 이 두 인물이 영화 속에서 처음 만나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서로에 대한 경계와 적대적인 전투다. 이 장면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와 불신 그리고 상대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다. 칼을 뽑아 휘두르고 목을 조르며 한참을 다투던 그들은 이내 그 잔인한 행위를 멈추고 대화를 시작한다.
나타샤는 자신의 생물학적인 부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3년간 보냈던 가짜 부모인 멜리나와 레드 가디언에 대해서는 기억한다. 그 3년간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그들이 자신들을 이용하고 버렸다는 배신감에 가득 차 있다. 반면 옐레나는 부모를 비롯해 나타샤까지 미워한다. 옐레나에게 나타샤는 그저 자신을 버리고 간 언니일 뿐이다. 영화는 네 가족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들이 어색하게 처음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나타샤와 옐리나가 다시 만났을 때 상대를 경계하며 원망을 담았던 것처럼 레드 가디언과 멜리나를 차례로 만나는 장면에서도 이들의 얼굴에는 경계심과 원망이 담겼다. 또 한편으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따뜻한 기억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영화 후반부 엄마와 아빠, 나타샤와 옐레나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은 영화가 감정적으로 공들여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들은 모두 마음속에 과거에 대한 응어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차갑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표출되는데 그들이 가짜 가족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가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비록 나타샤는 시종일관 거리를 두고 차갑게 대하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가진 진심을 느끼는 여러 짧은 순간들에 시종일관 흔들리는 모습이 화면에 비친다. 시종일관 터프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옐레나도 마찬가지다. 그 식탁에 앉은 이후 옐레나는 말이 없어지고 심지어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한 자리에 앉게 된 그들의 머릿속에는 가짜 가족생활을 했던 3년의 따뜻한 기억이 천천히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 던지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낸 부분이고,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가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는지 모른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나타샤
영화에는 레드룸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어린 소녀들을 납치하거나 고아인 아이들을 데려와 스파이로 만들 수 있는 아이들을 추려내고 그들의 자궁과 난소를 드러내고 훈련시킨다. 그리고 정신을 조정해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그들을 구원하려 하는 건 나타샤와 옐레나고 그들 역시 레드룸의 피해자다. 즉 이미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들을 타인의 추악한 욕망 속에서 구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나타샤와 옐레나에게 그들은 일종의 유사 자매, 즉 가족의 일원으로 볼 수도 있다.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위도우들은 나타샤의 손에 의해 해방되는데 결국 나타샤가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넓은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위도우들을 해방함으로써 그 모든 사람들에게 가족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블랙 위도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으며 특히 가족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나타샤가 다시 그 믿음을 되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간의 마블 영화들을 보아왔던 관객들은 이미 나타샤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가 가진 과거를 궁금해하게 되는데 그의 과거까지 다 보고 난 관객들은 나타샤의 마지막 모습이 좀 더 뭉클하게 다가올 것이다. 나타샤에겐 과거의 가족도 유사 가족이고 어벤저스 멤버들도 일종의 가족이다. 나타샤는 과거의 가족을 다시 만나며 나타샤는 그 유사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언가 답을 찾게 된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의미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 현대인만큼 이 영화에서 나타샤의 마지막 선택은 그가 결국 그 유사 가족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로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그것이 바로 현재의 사회 흐름이라는 것을 영화가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다페스트 장갑차 추격신이나 높은 고공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마블 영화답게 박진감 넘치게 구성되어 있다. 태스크 마스터와 나타샤가 벌이는 격투 액션과 옐레나가 보여주는 격투 액션은 사실감 있게 담겨있어 긴장감을 높인다. 그래서 영화 <본 시리즈>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운 점은 나타샤가 잘하는 타격 액션이 많이 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태스크 마스터의 특성과 나타샤나 직접 격투하는 장면의 비중이 적고, 그 외에 나타샤가 보여주는 격투 액션이 많이 없어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액션 장면은 극장에서 볼만한 큰 스케일을 보여준다.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의 멋진 퇴장
마지막으로 나타샤를 연기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그 모습 자체가 블랙 위도우가 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한 캐릭터로 활약해 온 그의 연기는 향후의 활약이 볼 수 없다는 점을 더욱 아쉽게 만든다. 그가 고공에서 착지할 때 보여주는 포즈는 옐레나에게 항상 놀림당하지만 블랙 위도우의 대표적인 액션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그 포즈를 그대로 따라 하는 옐레나의 모습은 그가 언니 나타샤를 이어 블랙 위도우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 누가 나타샤를 이어 블랙위도우를 할지 확정된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누가 해당 역할을 이어갈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찔한 십대>로 2004년 데뷔한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로어>, <베를린 신드롬> 같은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인데, 이번 <블랙 위도우>를 연출하면서 마블 영화 중 최초로 단독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나타샤와 관련된 유사 가족들로부터 진심을 끌어내는 감정적인 연출도 잘 들어가 있으며, 액션 연출도 박진감 넘치게 들어가 있어 향후 다른 마블 영화의 연출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나타샤의 마지막 모습을 아주 멋지게 마무리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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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위도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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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의 일본을 그리는 담담한 스케치, 십년(⼗年, 2018)
아시아의 신예 감독들이 모여 제작한 태국, 대만, 일본의 10년 후 이야기들. <십년> 프로젝트 중 일본의 2028년을 다룬 동명의 이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으로 잘 알려진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 총괄을 담당했다. 쉽게 말하면 일본판 <블랙 미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와닿는 가까운 실감 나는 미래를 그려낸다. 총 5개의 옴니버스식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멀고도 가까운 흐름을 따라가 보자.
- 플랜 75 / 하야카와 치에 감독
“당신의 선택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후생성 인구관리국-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낸 작품이다. 플랜 75라는 제목은 인구관리국의 프로젝트 이름이다. 75세 이상부터 가능한 안락사 시스템인데, 붙이는 약을 목 옆에 붙이면 고통 없이 잠드는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말만 들으면 굉장히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예상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슬픈 비밀이 있다. 사실 이곳의 관리자들은 국가에서 많은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단기 체류자나 저소득층,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주요 타깃으로 설정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다시 말해 국가의 복지 예산을 줄이기 위해 사회에 이바지하지 않는 인력을 강제로 줄이는 것이다.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이 들 수 있고, 100만 엔의 준비금을 지급한다는 사실에 이끌려 이 프로젝트를 자원한다. 결국 타의에 의한 자의인 셈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주인공의 장모님이 치매에 걸려 주위 가족들이 영향을 받고, 스스로 신청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단편의 인상적인 점은 주된 소재는 노인 세대를 다루고 있지만, 카메라의 시선은 젊은 세대의 시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시작과 끝은 언제나 같이 존재함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장모님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생략한 채 주인공은 또 새로 태어난 아이와 함께 그들의 삶을 계속 살아간다. 마치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그 순간에도 하얀 천이 둘러싸여 있는 병실은 가동됨을 보여주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장면은 노인을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일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는 건 너무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특히 이 주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고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또한 해당이 되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계기가 충분한 것 같다.
- 장난꾸러기 동맹 / 카노시타 유스케 감독
인공지능 교육 시스템이 만약 학교에서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이 단편은 생각보다 다정한 면모가 있다. IT혁신 특구인 한 학교는 ‘프로미스’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는 아이들의 관자놀이 부분에 연결된 통신장치와 동기화되어 아이들에게 학업 성취도와 직업과 같은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한다. 미래 세대인 아이들은 학교에서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는 법을 배우며, 프로미스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프로미스의 말에 세뇌되고, 정해진 규칙 속에 살 것이다. 인공지능은 심지어 교직원 회의에서도 의사결정을 내리고, 학생들의 얼굴을 인식해 그릇된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는 경고음이 울리는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평소에는 음성으로만 존재를 드러내던 프로미스는 극 중간마다 모습을 보인다.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공지능 HAL 9000을 연상시키는, 정면을 응시하는 렌즈를 종종 화면에 등장시킨다.
우연한 사고로 잠깐 송신기에 오류가 생기고, 그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르는 말을 지키기 위해 갑작스러운 모험을 하게 되면서 점점 틀을 벗어나게 된다. 디지털화와는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진, 말과 숲 그리고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들은 마치 판타지같이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장면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탁 트인 공간에서의 자유가 아이들에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아이다움을 지켜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와닿게 한다. 잠깐 꺼졌던 프로미스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되고, 왠지 모를 불안감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런 사례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선에서 유연한 대처를 한다면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된다. 피할 수 없는 디지털화라면, 긍정적인 면들을 잘 활용하여 인간과 공생하는 새로운 바람을 맞게 하자는 의도가 잘 담긴 영상.
- 데이터 / 츠노 메구미 감독
우리는 지금 빅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수없이 많은 정보와 함께 사적인 정보 유출의 위험에 처한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디지털 유산 카드’는 일종의 개인정보를 지키는 디지털 보험과 같은 특이한 구조를 가진다. 누군가가 죽고 난 후, 특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ex-배우자나 가족)만이 그동안 고인이 썼던 전자기기들의 영상, 사진, 쇼핑 정보, 문자 내용과 같은 정보를 열람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딸이 죽은 엄마의 디지털 유산 카드를 열어보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리움과 의문의 발자취들을 따라서 걸어간다.
나와 닮은 점이 많은 엄마에서 숨기고 있던 비밀을 풀어내는 순간, 혼란스러운 엄마에 대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모습까지. 짧지만 빨리 전개되는 이 상황은 굉장히 실감 나는 묘사가 이루어진다. 사실 이런 점들이 정보의 빛과 그림자라는 생각이 든다. 알고 싶은 정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예상치 못한 정보를 맞이했을 경우 그 해석을 자신이 오롯이 한다는 점에서 극히 주관적인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걸음에서 발견한 건 아빠와 친구,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이다. 예상했던 줄거리보다 굉장히 서정적으로 다가온 결말이어서 의외였고, 알 권리와 사생활 침해의 사이에 놓여있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여러모로 보는 내내 따스한 색감과 분위기가 느껴지는 단편.
-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 후지무라 아키요 감독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이후의 나날들, 방사능이 공기에 퍼져있지만 보이지 않는 상황을 아이들의 눈빛으로 풀어낸다. 사고가 발생한 후 사람들은 지하 벙커에 모여 그들 나름의 규칙에 맞는 생활을 한다. 미즈키와 카에데라는 두 아이가 등장하는데, 미즈키는 과거엔 일상생활을 하다 아래 지하로 내려온 경우이고 카에데는 지하에서만 살아 하늘을 본 적이 없는 아이이다. 미즈키의 엄마는 자꾸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는 카에데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지만, 둘은 계속 우정을 이어간다.
비와 햇빛, 자연의 소리 같이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경험해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매번 얘기를 하던 둘은 어느덧 카에데가 떠나버리면서 급전환을 맞는다. 그에 이어 미즈키 또한 하늘과 햇빛을 맞이하기 위해 세상의 문을 열어본다. 푸른 하늘 사이로 오묘한 표정을 짓는 미즈키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직접적으로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 이런 열린 결말이 더 좋은 것 같다. 이 단편만의 매력은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을 표현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귀여운 연출들이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연상하는 연출이 톡톡 튀면서 동심을 자극한다. 어두운 소재에 그렇지 않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괜히 더 애틋해지는 효과가 있다.
- 아름다운 나라 / 이시카와 케이 감독
한때 일본에서 논란이 되어 꾸준히 말이 오고 갔던 ‘징병제’에 대한 스토리이다. 꽤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징병제를 홍보하는 포스터 시안이 거절당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다룬다. 전쟁과 맞닿아 있는 상처를 삼대에 걸쳐서 설명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언뜻 보기엔 회사원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지만, 곳곳에 과거, 현재의 전쟁역사가 묻어나온다. 마치 요즘 재난 문자 알림이 뜨는 것처럼 전쟁이 일상화된 곳에는 사이렌과 함께 미사일 발사 경보가 울리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다. 노인 세대는 어쩌면 지나가 버린, ‘아름다웠을지도 모르는 나라’를 추억하며 이런 말을 한다. “젊은이들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나라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마치 바통 터치를 하듯이 그 책임은 이제 온전히 젊은 세대에게 쥐어지고, 방위성의 소름 돋는 문구와 함께 화면은 암전된다. 전쟁에 대한 역사가 있는 일본이 또다시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발생할 세대 간의 대물림되는 아픔을 잘 보여준다. 과거와는 또 다른 전쟁의 형태, 이를 대비하는 징병제라는 제도에 의해 고통받는 젊은 세대들과 그들을 또 잇게 되는 다음 세대들. 그들에 대한 우려와 모순적인 사회에 대한 반발이 잘 드러난다.
이렇게 <십년>은 인물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게 다루는 일본 작품답게 마냥 차가운 미래가 아닌, 따듯함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많다. 유난히 인물을 줌인하고, 클로즈업 샷들이 많은 것 또한 현재의 우리들과 맞닿아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일까. 곧 다가올 미래,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물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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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룩 업 / Don't Look Up, 2021
<더 하더 데이 폴>을 시작으로 "CGV"는 "넷플릭스"의 신작 영화들을 공개했는데요.
앞서 올린 <틱, 틱... 붐!>의 리뷰처럼 극장에서 못 본 게 후회할 만큼의 퀄리티의 영화들이 많았고, 이 중 <돈 룩 업>이 가장 큰 기대작이었습니다.
<빅 쇼트>와 <바이스>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의 신작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이에 출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시작으로 '제니퍼 로렌스 - 메릴 스트립 - 케이트 블란쳇 - 티모시 샬라메', 그리고 '조나 힐'까지 나오니 당연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먼저 본 이웃분들의 리뷰에 홀린 듯이 보았는데,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돈 룩 업>의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영화는 하나의 혜성을 발견한 대학원생 "케이트"와 담당 교수 "민디"의 축하 파티로부터 시작합니다.
기쁨도 잠시, 궤도를 계산하던 중 이를 싹 가실 만큼 안 좋은 소식이 전해지는데요.
그건, 혜성이 지구에 다가올 것이고 이로 인해 지구의 인류는 다 멸망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뉴스였습니다.
이를 대통령과 언론에 공개하나 시큰둥한 소식에 오히려, 역으로 그들이 놀라는데...안 보고 지나치기엔 너무 매력적인데?
1. 예상되었으나 막상 나오니 당황스러운
영화 <돈 룩 업>은 감독의 전작 <빅 쇼트>와 <바이스>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풍자'가 주를 이루는 작품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돈 룩 업>은 예상된 기대치에 걸맞은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이를 보여주는 표현 수위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보통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어 모티브가 되는 소재가 있을 거고, 이에 대한 과정을 "각색"으로 본다면 누군가 떠오르기는 해도 쉬쉬할 겁니다.
이를 하나의 여과 과정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영화 <돈 룩 업>은 거르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장면들을 보여줍니다.이걸, 이대로 보여준다고?
지구를 멸망시킬 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운석이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데, 이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습니다.
정치인과 사업가, 그리고 언론인들은 이득에 따라서 움직이는 공통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에 선동당하는 군중들을 보여줍니다. - 음모론으로 치부하거나 두려움에 떠는 모습으로 말이죠.
물론, 관계자들의 입을 닫게 만들거나 일자리 공약으로 국민들에게 약속하니 이런 또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함이 가득한 장면들로 이번 <돈 룩 업>도 전작 <빅 쇼트>와 <바이스>의 결을 크게 엇나가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2. 전작의 섬뜩함은 어디에?
전작 <빅 쇼트>와 <바이스>는 '우린 지금 미국 국민들이 망하는 데 배팅한 거야. 춤 추지마.'와 '비선 실세(?)'같은 제도적인 허점을 주시해 섬뜩함을 제시했다면, 이번 <돈 룩 업>에서는 이를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제도적인 부분보다는 끊임없는 조롱조로 일관되니 묵직한 배우들의 이름을 생각하면, <돈 룩 업>은 가볍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139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동안 이야기의 패턴이 반복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2시간이 넘는데도 단, 한 가지라면 뻔하지 않을까?
극중 초반 "운석에 대한 경고"를 하는 "케이트"의 모습을 임으로 남기는 장면이 다른 패턴으로 무수히 반복되는데요.
특히, 이는 '우주선 회항'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면으로 스케일만 점점 커지니 이에 대한 피로감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에 마지막 장면은 가족들의 불화에 대한 갈등도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채 이뤄졌기에 아쉬운 모습으로 적용됩니다.3. 갈 때까지 가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럼에도, 영화 <돈 룩 업>은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주선 회항"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면까지 "진짜 이럴 수가 있나?"를 끝까지 밀어붙인 창작자나 "넷플릭스"의 협업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당 영화에 쿠키에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말들이 있는데 이미 "우주선"까지 나온 만큼 이 영화에 호불호라는 단어가 존재할까요?
그만큼 갈 때까지 간 작품이라 생각하고,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1번째 쿠키는 "아담과 이브"를 묘하게 비튼 것만 같네요.
※ 2번째 쿠키는 배우가 배우라서 그런지, <디스 이즈 디 엔드>가 연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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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우리가 건넨 손길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SICFF 데일리] 우리가 건넨 손길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영화 <손길> 리뷰
감독] 서준용
시놉시스] 다혜는 박차장이 자신을 성희롱 한 사실을 고발하려 한다. 한편, 아들 민찬이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 것을 알게 된다.
#스포일러 주의#동전의 앞뒷면 같은 우리의 기준
단편영화 <손길>은 박차장이 회사를 나오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건의 당사자인 다혜와 팀장님 뿐이다. 박차장은 사실 다혜를 성희롱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장기휴가에 들어간 상태였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다혜를 불러 참고인조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혹시 그동안 박차장이 회사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는데 용서를 해줄 생각이 없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다혜를 회유하지만 다혜는 완고하다. 그런 다혜에게 갑작스럽게 박차장이 찾아와 자신의 가족을 생각해달라며 용서해달라고 빌지만, 그러한 모습에 더 치를 떨게된 다혜는 팀장님을 설득해 참고인 조사를 부탁한다.
그렇게 영화 내내 피해자일 줄 알았던 다혜는 자신의 아들 민찬이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며 가해자의 엄마가 되어버린다. 아들 민찬이가 같은 반 여자친구의 몸을 만진 것이다. 여자로서 자신이 성희롱의 피해자인데,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성희롱의 가해자가 되어 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 절대 동시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성적문제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다혜를 보면서 우리 모두 상황에 따라 모순적인 말들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성희롱의 피해자 다혜는 박차장의 징계에 대해 굉장히 단호한 편이었다. 징계위원회를 통해 박차장이 적절한 조치를 받길 바랐다. 하지만 가해자의 엄마로서 다혜는 민찬이가 배려와 이해를 받기를 바랐다. 박차장이 다해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영화 <손길>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인간은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판단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 <손길>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본능적으로 모순적인 선택과 발언을 할지라도 이성적으로 그 기준을 다시 지키려고 애쓰는 어른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받기 위해, 혹은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라는 개인적인 기준을 넘어서 사회적인 공공의 선을 생각하며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결정과 판단으로 다시 수정하여 행동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이 사회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나쁜 손길, 선한 손길영화 <손길>은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의 중의적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의 손길은 성희롱과 같은 나쁜 의미의 손길이다. 박차장이 다혜에게, 그리고 아들 민찬이 친구에게 한 손길은 옳지 않은, 해서는 안되는 손길이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어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특히, 다혜의 직장 선배인 팀장님의 말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담고 있었다. "우리 딸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아들 민찬이가 만진 친구는 팀장님의 딸이었다. 팀장님의 개인적인 입장이었다면 회사에서 다혜가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가정에서는 다혜는 가해자의 엄마일 뿐이었다. 이를 알기에 다혜 역시 팀장님을 찾아가 징계위원회 일은 안하셔도 된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팀장님은 그런 다혜를 향해 이번에 다혜씨를 돕는 일이 앞으로 내 딸이 사회를 살아갈 때 좋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면서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이렇게 시작된 선한 손길은 결국 징계위원회를 통해 박차장의 징계로 이어지고, 아들 민찬 역시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어린이집을 나오면서 피해자가 더 피해를 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너무나도 긍정적인 결말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결말을 통해 우리 사회 역시 공공의 선을 생각하고 순간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다시 그 선으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짓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흡족했던 마무리였다.
영화 <손길>은 중의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의 기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했던 작품이었다.
[상영시간표]
2023. 9. 15. 19:00 롯데시네마 은평 4관
2023. 9. 17. 12:30 롯데시네마 은평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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