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2-24 08:22:07
누구도 주인공일 수 없는 아메리칸드림의 잔혹한 설계도
영화 〈브루탈리스트〉

전쟁 중인 유럽을 탈출해 미국에 도착한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가 한 성매매 업소에서 남성 성노동자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난 그런 쪽 아니야’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은 그가 훗날 마주할 해리슨의 끔찍한 성폭력을 예감하는 것이 아닐까. ‘이쪽’과 ‘저쪽’의 구획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선언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해리슨에게 강제로 자리를 부여받는 라즐로가 느낄 비감이 도입부의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느꼈다.
재능 있는 유대인 건축가가 이주 후 미국 하층부를 전전하다 한 거부의 눈에 들어 대형 프로젝트를 맡은 후 종내에는 영광을 얻는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우리가 이미 여러 영화에서 본 이방인의 성공 스토리와는 결이 다르다. 노인이 되어 휠체어에 탄 채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는 전시에 참석한 그의 얼굴은 피로해 보인다. 라즐로 부부를 떠나 이스라엘로 향한 조카 조미아가 정작 라즐로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삼촌의 업적을 설명하는 대목은 그의 피로감에 공허함을 더한다.
‘성공한 유대인’이 있는 것은 맞다. 그들의 성취는 종종 아메리칸드림의 증거로 전시된다. 그러나 그 성공은 아름답지 않았다. 지적 허영과 과시욕, 속물적 근성의 화신, 즉 가장 미국적인 인물인 해리슨은 라즐로를 자신의 자랑스러운 수집품 정도로 대우하고, 라즐로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술 취한 그를 강간한다. 그는 라즐로에게 “넌 그저 밤거리 매춘부야”라고 말한다. ‘선’을 넘지 말라는 선언이다. 라즐로 프로젝트의 철학과 예산이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미국 사회의 주인은 돈이며, 그 돈을 가진 사람은 나라는 점, 즉 자신은 성 구매자이며 너는 성 판매자라는 점을 라즐로에게 극한 모욕을 주는 방법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라즐로는 그 충격에 휩싸여 더욱 자신의 예술적 목표(혹은 해리슨의 야망)인 건축물에만 집착하고 자신이 쌓아 올린 건축물에 유폐된 듯 영혼을 강탈당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라즐로는 걸작을 창안했으나 영혼을 상실했고, 미국식 속물주의를 대변하는 해리슨은 사건이 폭로된 이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으며, 늙고 지친 라즐로를 기념하는 행사에서는 과거 그를 떠난 조카가 확신에 찬 얼굴로 숙부의 업적을 칭송한다.
이 영화가 아메리칸드림의 오욕에 관한 문제 제기라는 인상을 받은 건 그래서다. 이 세 사람이 이루는 구도에서는 누구도 온전한 아메리칸드림의 주인공일 수 없다. 자수성가했다는 자부심으로 예술에 대한 심미안 없이 뭐든 돈으로만 하려는 해리슨도, ‘걸작’을 만들었으나 생기를 잃어버린 라즐로도, 홀연히 등장해 숙부의 성취‘만’ 이야기하며 뒤늦게 자신이 라즐로의 혈육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조미아도.
영화가 한창 건축이 진행 중일 때 고통받던 라즐로를 비추다가 갑자기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노쇠한 라즐로의 얼굴로 점프하는 것은 아메리칸드림에 영광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설계의 일환일 것이다. 사람들은 완성된 건축물만 본다. 그 이면의 설계도를 상상하지 않는다/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반대로 ‘라즐로의 아메리칸드림’에서 완성물이라 할 그의 건축물과 그로부터 피어나는 영광의 순간들을 뺀 채 그 영광의 설계도만 보여준다. 누군가의 장식품으로서만 예술가일 수 있었던 이방인, 그런 이방인 예술가들이 없었다면 구축되지 않았을 미국이라는 허상, 설계 과정의 문제는 덮고 결과물만 바라보며 찬사를 보내는 사회가 이방인의 아메리칸드림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누구도 주인공일 수 없는 아메리칸드림의 잔혹한(brutal) 설계도 말이다. 라즐로가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을 추구하는 브루탈리스트였다는 점은 이 설계도가 품은 역설을 더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사람은 죽어도 예술은 남는다’는 통념 혹은 진실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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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Better Days)
개봉일 : 2020.07.09 (한국 기준)
감독 : 증국상
출연 : 주동우, 이양천새, 윤방, 오월, 주 이, 장예범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Was와 Used to는 둘다 과거시재지만, Used to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야.” 아이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뭔가를 떠올리는듯한 표정으로 영어 지문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이제 과거가 된 일에 사로잡혀있기보단 이젠 ‘그렇지 않은’ 현재를 살고싶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시절의 너>라는 제목만 봐서는 왠지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하이틴 로맨스 또는 첫사랑에 관련한 아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지만, <소년시절의 너>는 끝없이 버텨야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다’는 평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건 바로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학창시절, 물리적 폭행 장면의 수위가 꽤 높아 누군가에겐 더 힘들고 울렁이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에 관한 트라우마가 크다면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폭력적인 장면에 더해 가난한 주인공의 집안 사정과 대입을 앞둔 상황이 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되어 보는이의 마음을 누른다. 아프고 또 두렵지만 성공하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꾹 참고 견뎌야만 하는 소녀와 거친 환경에 홀로 남겨져 강해질수밖에 없었던 소년. 그리고 ‘너희는 어리니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주려 노력하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들. 부끄럽고 슬프고 미안했다. 거기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말 한마디가 더 얹어지고 나니 더 부끄럽고 아팠다.
영화의 중심은 소년과 소녀의 그 나이대에 맞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매 순간 포기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만난 나처럼 아픈 사람, 나의 안녕을 물어준 사람,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해 희생해준 사람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위로. 그리고 그 다음에 피어난 사랑.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이라기보단 아픔과 멍으로 가득찬 단단한 그 감정이 긴 계단밑으로 굴러떨어지는듯했다.
몰입도가 높고 여운이 긴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본 날은 밤새 주연배우의 사진을 찾아봤던것같다. 왠지 그들이 영화 주인공이 아닌 현실에서 웃는 얼굴을 봐야만 이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것 같아서 말이다.
소년시절의 너 시놉시스
시험만 잘 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댈 곳 없이 세상에 내몰린 우등생 소녀 ‘첸니엔’과 양아치 소년 ‘베이’.
비슷한 상처와 외로움에 끌려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첸니엔’의 삶을 뒤바꿔버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입재수를 준비하는 학교.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첸니엔은 후 샤오디에와 함께 우유를 나르고 있다. 첸니엔은 반에서 그닥 눈에 띄지 않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었다.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은 우유들 사이에 유일하게 빨대로 뚫려있는 우유처럼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게 망가져있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그런 존재였다. 같은반 아이들은 후 샤오디에의 괴롭힘을 모르는척하고 후 샤오디에는 “왜 너희는 보고만 있니?”라고 묻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후 샤오디에를 보며 “왜 뛰어내린거야?”라고 되물을 뿐이다.
후 샤오디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은 사람은 첸니엔이 유일했다. 바닥으로 추락해 죽은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카메라를 꺼내드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첸니엔은 체육복으로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첸니엔은 새로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선행을 베풀어서, 어른들에게 가해자를 고발한것 같아서. 이유는 그뿐이었다. 의자위에 고인 피 위로 첸니엔의 얼굴이 반사되고 후 샤오디에가 당했던 모든 폭력은 다음 타겟인 첸니엔에게로 향한다.
어른들은 모든 사실을 외면한다. 폭력을 당한다는 피해자에게 “애들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고, 선생님이 얘기할게.” 그게 전부다. 형사들도 이유와 상황을 물을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 행동에 더불어 엄마인 저우 레이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부풀려진 소문까지 겹쳐지고 첸니엔은 더 심한 폭력을 당하게 된다.
불법장사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하는 첸니엔의 엄마 저우 레이. 그녀는 자신의 정수리에 흰머리가 자라고 있는것도 모를만큼 열심히 일한다. 딸을 베이징 대학에 보내고 그곳에서 함께 인생을 바꿔가겠다는 희망으로 첸니엔을 키운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일 빚쟁이들만 찾아올뿐이다.
첸니엔은 마지막 희망인 ‘베이징 대학 입학’만을 바라보고 견딘다. 선을 넘은 폭력도, 불안한 가정 형편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텐데 뒷골목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남자(샤오 베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하다니. 이토록 용기있고 착한 소녀가 또 어디있을까 싶다.
샤오 베이는 그날,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홀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강하고 거칠어져야만 했던 소년 샤오 베이. 누구도 그 소년을 돌아보거나 챙겨주지 않았다. 같이 아파해주지도 않았고. 샤오 베이에게 첸니엔은 “처음으로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이었다.
“날 보호해줄래?”
위를 막아도 아래를 향해 날아오는 공처럼, 막아보고 또 모르는척 하려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괴롭힘속에서 첸니엔은 어쩔수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 베이를 만난 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새로운 방법을 찾게된다.
“다들 어리잖아. 두번째 기회는 줘야지.”라고 말하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위하는 어른들의 이상한 법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건 ‘법’이 아닌 ‘물리적 힘’이었다. 첸니엔은 샤오 베이에게 보호 받으며 열심히 대입을 준비한다. 샤오 베이는 첸니엔이 책을 볼 수 있도록 전구를 하나 더 달고 첸니엔은 샤오 베이가 누워있는 침대 방향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 첸니엔과 샤오 베이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폭력과 아픈 기억 또한 어른이 되면 잊혀질거라며 말도 안되는 위로를 한마디 던질뿐, ‘아픔을 잊는 법,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법’ 같은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세상속에서 첸니엔과 베이는 함께 앉아 머리를 밀며 눈물을 흘린다. 보호자 없이 향해야하는 수험장과 모독적인 희롱과 폭력을 견뎌야했던 골목. 첸니엔은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낸다.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런 첸니엔을 위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명뿐이다.
“넌 계속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첸니엔은 베이에게 갚을게 하나 있다.”
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첸니엔의 과실치사 혐의를, 아니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다짐한다. 사고로 인해 죽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 웨이 라이를 죽이고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 하려고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베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첸니엔은 대입을 마치기 위해 끝까지 시험을 보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다음’과 ‘다시’가 꼭 돌아올거라는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첸니엔은 죄책감을 안고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가 정 형사의 거짓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왜 우리 둘을 그냥 두지 않냐며 울부짖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견디면 견디는대로 더 아팠고, 아프다 말하면 어른들은 잊혀질거라 대답하거나 임시방편을 내놓고 사건을 외면한다. 피해자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는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친구로 지내면 좋았을걸, 이제 친구하자’와 같은 열불나는 말만 뱉어내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두려워했던건 자신의 죄가 아닌 범죄자라는 낙인정도 뿐이었으니까.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만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 첸니엔은 베이와 함께하길 선택한다. 베이는 항상 첸니엔의 뒤 또는 옆에서 첸니엔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첸니엔은 베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가 ‘어려서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무책임한 어른들보다 더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몰랐다. 이 소년과 소녀의 아픔을.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의 절망과 혼자서 살아남아야했던 버거움을. 한줄기 희망을 잡고 버텨야만 했던 소녀의 떨리는 손과 어깨를. 이제는 알아야한다.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되도 않는 위로와 동정보다는 이런 아픔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과 든든한 방패막이 필요하다.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며 이 영화와 처음 봤을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상처를 입었던 내 마음을 되돌아봤다. 항상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와 지금도 누군가가 받고있을 상처를.
<소년시절의 너>라는 영화는 힘들고 어두운 영화임은 분명하다. 10%쯤의 희망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빛나고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아프고 울렁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한다. 폭력이라는것이 얼마나 악랄하고 피해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그리고 세상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소년시절의 너>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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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11월 3주 개봉영화!
압꾸정 Men of plastic , 2022
범죄도시 제작진과 마동석 또 뭉쳤다!
영화 "압꾸정"은 샘솟는 사업 아이디어로 입만 살아있는 압구정 토박이 대국이
한때 실력파였던 성형외과 의사 지우와 손잡고 K-뷰티 사업을 시작하는 내용을 담은 코미디 휴먼 드라마입니다.
마동석은 "압꾸정"에서 샘솟는 사업 아이디어와 타고난 '말빨'의 압구정 토박이 '강대국'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180도 변신합니다.
마동석 뿐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 역시 이 세계관에서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정경호, 오나라, 최병모, 그리고 오연서가 K-뷰티의 비하인드 스토리 속 유쾌한 웃음을 책임집니다.
임진순 감독은 자연스러운 코미디를 담아내기 위해 배우들이 주고 받는 대사에
배우 각자가 실제 생활에서 쓰는 말투와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현장에서는
애드리브에 대한 자율성을 열어두고 배우들의 자유로운 티키타카에 흐름을 맡겨 유쾌한 장면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웃음!케미! 말맛의 강력한 한 방 선사하는 '마블리'표 코미디!
이번주 추천영화 "압꾸정" 입니다.
탄생 A Birth , 2022
조선근대 개척자 청년 김대건
영화 "탄생"은 조선 근대의 길을 열어젖힌 개척자 청년 김대건의 위대한 여정을 그린 대서사 어드벤처로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었던 모험가이자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선구자였던 김대건의 진취적인 면모와 안타까운 순교를 감동적으로 그린영화입니다.
김대건의 역활은 윤시윤이 맡게 되었는데요 이제껏 본 적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탄생"은 마카오 유학, 불란서 극동함대 사령관 세실의 에리곤호 승선, 아편전쟁, 동서 만주 육상 입국로 개척, 라파엘호 서해 횡단,
백령도 해상 입국로 개척 등 3,574일의 역동적인 모험을 담기 위해 자료조사와 연구, 국학진흥원의 검수를 거쳤고
서울을 제외한 충남 논산, 태안, 보령, 충북 단양, 전남 여수, 전북 부안,
강원도, 경남 창원, 경북 문경, 대구, 제주도와 경기도 일대 및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촬영으로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세계지도 번역한 언어천재,
서해를 횡단하는 모험가!3,574일 동안 세상에 없던 길을 넘나들었던
청년 김대건의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기!
이번주 추천영화 "탄생" 입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からこの恋が消えても , Even If This Love Disappears from the World Tonight , 2022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5천 여석을 매진시킨 올겨울 최고의 화제작!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여고생 '마오리'와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고생 '토루'의 풋풋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원작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4,607:1의 역대 경쟁률을 뚫고
제26회 전격소설대상 미디어웍스 문고상을 수상한 이치조 미사키의 빛나는 데뷔작입니다.
국내에서도 교보문고 9주 연속 외국소설 1위 기록, 누적 판매부수 40만 부 돌파 등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역주행과 영화화까지 이끌어내는 파급력을 보였습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츠키카와 쇼 각본!
두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최고의 청춘 로맨스!
이번주 추천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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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산에는 우정과 인생이 있었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여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산을 사랑한 두 남자의 우정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좋든 싫든 이 삶을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앞날은 예측불허하고, 그것은 때론 지난하고 때론 즐겁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 <8개의 산>은 이러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산을 사랑한 두 남자의 우정과 삶을 중심으로 그려낸다.
1. 피에트로와 브루노
토리노 출신 소년인 피에트로는 인생의 낙을 산에서 찾던 아버지를 따라 어느 산골 마을에 다다랐고, 바로 그 곳에서 시골 소년 부르노를 만난다. 젊은 사람이 죄 빠져나가고 그 마을의 유일한 소년이던 그는 또래 애들보다 부쩍 어른스럽다. 친구도 없이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린 피에트로는 금새 그에게 매료된다. 두 사람의 우정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지만 앳된 우정은 어른들의 사정 따위에 쉽게 훼손되곤 하는 법이다.
소년이던 두 사람은 서른이 넘어서야 재회한다. 그 사이 피에트로는 이렇다할 좋아하는 일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다 아버지와 의절하다시피했고,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부르노는 벽돌공이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쭉 벽돌공 일을 했다.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피에트로의 아버지였다. 산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종종 피에트로, 또는 피에트로와 그 친구인 브루노를 산에 데리고 가곤 했는데, 피에트로와 연락하지 않게 된 후로부터는 브루노를 친아들처럼 아끼며 그와 등반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부르노에게 산 중턱에 있던 쓰러져가던 집을 고쳐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피에트로와 부르노는 그 유언에 따라 집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둘은 바로 이 집을 말미암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2. 산을 사랑한 남자들
이 영화는 산을 사랑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피에트로는 아버지인 '조반니'의 산에 대한 애정을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산속에서 만난 부르노와의 나날을 좋아했고, 그와 재회함으로써 산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부르노는 평생을 산에서 살아왔고, 산 바깥을 동경했지만 다시금 산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산은 삶의 터전 그 자체이다. 피에트로와 부르노에게 산이란 우정, 사랑, 삶이 있게 한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나 산은 언제나 변덕스러운 법.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초목이 무성하던 곳은 언제라도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산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인생의 여러 장면들을 연상케 하는데,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의 삶 역시 아주 변화무쌍하다. 평온 끝에는 시련이, 고난 끝에는 다시 평화가 깃드는 그들의 삶은 어찌보면 비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실상 그것은 인간 전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중에서 피에트로가 만났다던 네팔의 고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가장 높은 산과 나머지 여덟개의 산이 있고, 가장 높은 산을 잃은 사람은 나머지 여덞개의 산을 평생 방황한다'고. 어쩌면 이 말처럼, '삶이란 자신의 첫번째 산을 상실하고 남은 여덟개의 산을 떠도는 것과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빙하와 물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여태 지나온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사람은 다만 나아갈 뿐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우리의 첫번째 산을 그리며, 협곡과 절벽 너머로 나아가며. 어쩌면 조반니, 부르노, 그리고 피에트로가 산에 그토록 목을 매던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3. 여덟 개의 산
극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알프스 산의 전경이다. 그것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면서 그와 동시에 관객을 압도한다. 깊은 심해를 바라볼 때와 마찬가지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기분이 느껴지는데, 그런 탓인지 피에트로와 부르노가 그토록 그 산을 사랑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꽤나 잔잔하다. 마냥 즐겁지도, 마냥 우울하지도 않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들의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삶을 그려내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삶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1. 웅장한 알프스의 대자연: 말해 뭐하나? 스틸컷에는 감히 담기지 않는 웅장함이 있다.
2. 산을 사랑한 남자들의 행보와 인생 비교: 조반니, 피에트로, 부르노의 삶과 그들 간의 관계를 분석해보라.
3. 피에트로와 부르노가 처한 상황과 느끼는 감정에 따라 바뀌는 의상의 색 (이건 내 마음대로 추측한 것이긴 하지만 의외로 색과 상황이 일치하는 구석이 있다.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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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디>,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야"
씨네랩으로부터 언론배급시사회를 초청받아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개봉 전 <웬디>를 관람하였다.
피터팬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6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웬디>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인 '피터'가 아닌 '웬디'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터팬'을 그려낸 작품이다.
<웬디>의 감독 벤 자이틀린은 어린 시절부터 재미와 자유를 추구하는 피터팬을 꿈꿨지만, 영화 <비스트>를 연출한 후 삶 전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여 이를 계기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바로 '피터팬'을 각색한 <웬디>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든 싫든 성장하고 변화하게 되며,
이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어린 시절 품었던 확신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 벤 자이틀린 감독
기찻길 옆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도우며 살고 있는 웬디에게는 쌍둥이 남자 형제인 더글라스와 제임스가 있다. 이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의 마음 속에는 호기심과 모험심, 수갈래로 뻗어나가는 꿈들이 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모험에 대한 꿈을 꾸던 날 밤, 웬디는 기차를 타고 있는 소년 '피터'를 발견한다. 더글라스, 제임스와 함께 기차에 탄 웬디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로 살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웬디의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낯설다'였다.
내가 어렸을 때 관람하고 지금 어렴풋이 기억하는 영화 <피터팬>의 분위기는 동화같은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웬디>는 동화라기보다는 '야생', '거칠다', '생생하다', '스릴 넘친다'라는 단어들이 더 어울리는 영화이다.
어른들이 없는 세상 속에서 어린 아이들은 여기저기를 모험한다. 동시에 방황한다.
여러 사건사고를 겪는 아이들이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서툴다. 불안정하다.
마치 알게 모르게 점점 몸과 마음은 자라지만, 아직 내면에 '아이로 남고 싶다'라는 생각이 존재하여 생기는 불협화음같다.
그리고 이러한 불협화음은 웬디의 불안한 시선을 통해 잘 전달된다.
영화를 보며 가장 놀랐고, 감탄한 점은 아역배우들의 연기였다.
'웬디' 역할의 데빈 프랑스, '피터' 역할의 야슈아 막, '더글라스' 역할의 게이지 나퀸, '제임스' 역할의 개빈 나퀸 등 모든 아역배우들이 영화와 하나가 되는 연기를 선보였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섬이 주요 배경이기에 아역배우들이 영화를 이끌었는데, 이질적인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이 섬에서는 희망을 잃으면 늙게 된다. 더 이상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섬에서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모두 희망과 기쁨을 잃어버린 '아이들'이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쌍둥이 형제 중 제임스는 항상 함께 하던 더글라스가 섬에서 없어지자, 깊이 절망한다.
"희망을 버리면 안 돼. 그게 널 늙게 하는 거야."
웬디는 제임스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제임스는 결국 희망을 잃고 점점 노화하기 시작한다.
이 순간 나는 수없이 많은 꿈과 희망을 가졌다가 시간이 흘러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꿈을 하나둘씩 포기한 '나 자신'을 떠올렸다. 그 동안 나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오곤 했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이 '나 스스로 나의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주체적이고 활동적인 웬디는 용맹하게 모험을 주도한다. 노화가 시작된 제임스를 회복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이어나간다. 희망을 잃고 어른이 된 사람들에 대항하고, 바닷 속 '어머니'의 존재를 깨닫기까지의 모든 여정의 주체는 '웬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야."
웬디는 '자연스럽게 나이가 드는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늙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웬디는 섬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간 웬디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레 늙어가며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피터는 섬에 계속 남아 있는다. 피터는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란 것이다. '나이 듦'의 가치를 깨달은 웬디와 상반되는 결정을 하였다.
"마법은 피터의 섬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이제부터 피터의 이야기는 잠자리 이야기에 그쳐 있다."
웬디가 겪은 '피터가 사는 섬'에서의 이야기는 모험 이야기가 되어 웬디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희망과 꿈이 가득한 삶을 사는 아이들에게 모험에 대한 강한 욕구를 불어넣는 '잠자리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또다시 피터가 탄 기차가 찾아온다. 어린 웬디를 닮아 강한 모험심과 호기심을 간직한 웬디의 딸은 이 기차를 탄다. '영원히 어린 아이로 남을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웬디의 딸이 '나이 듦'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과연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지, 아니면 영원히 어린 아이가 되어 그곳에서 살아갈지.
'잃어버린 꿈과 희망, 그리고 동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영화였다.
어린 시절 나는 정말 무수한 꿈을 가진 아이였으며, 항상 희망찬 아이였다. 하지만 커가면서 자연스레 이 꿈과 희망들은 사라졌다. 포기했다기보다는 '사라졌다'라고 표현해야 적절한 것 같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점점 현실을 깨닫고 이에 적응해가며 자연스레 내가 가진 (조금 무모하다고도 생각되는) 꿈은 사라져갔다.
이런 꿈들은 이제 막 어른이 되어 현실에 치여 힘들게 살아갈 때 문득 떠오르곤 한다. '아 그땐 이런 꿈을 가졌었지', '그땐 참 순수했지', '어릴 땐 겁도 없었다' 등의 생각처럼 말이다. '어렸던 나 자신'이 그립다기보다는 '어릴 때 내가 가졌던 순수한 꿈'이 그리운 것 같다. 순수했던만큼 많은 열정을 가졌고,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으니까. 사실 지금도 종종 그립다.
하지만 '피터'가 나타나서 어린 아이로 남을 수 있는 섬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면 거절할 것 같다.
현실세계에서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많이 힘들고 버티기 어렵다. 언제 진짜 어른이 될지도 불확실하다. 마냥 불안정한 시기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또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수많은 경험을 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면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마냥 순수하기만 하던 꿈이 아닌, 앞으로 살아가며 '진짜 이루고자 하는', '진짜 이룰 수 있는' 꿈을 가지게 된다. 이 꿈은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이 영화 속의 '웬디'처럼 말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지혜만큼 값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피터의 섬'에서 겪는 일들이 아무리 재미있고 뜻깊다 해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어린 아이들보다는 다소 지친 현실을 살고 있거나 때때로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혹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도기를 겪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늙는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다.
이 모험을 하며 우리는 여러 감정을 겪고 이를 통해 또다른 교훈을 배우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또다른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
피터의 섬 안에 줄곧 있으면서 이런 흥미진진한 모험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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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피상적 인간 관계에 대한 독특한 시선
전작 ‘욕창’으로 고령화 사회에서 직면할 수 있는 노인 문제에 대한 가부장적 가족 관계와 돌봄 노동 등을 조명했던 심혜정 감독의 신작 한국 독립 영화 〈너를 줍다〉를 관람했습니다. 신인감독들이 주로 소개되는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당신으로부터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미확인’, ‘밤 산책’, ‘우리와 상관없이’, ‘수궁’, ‘어쩌다 활동가’, ‘폭설’, ‘믿을 수 있는 사람’, ‘잔챙이’와 함께 출품된 작품으로, 아무 생각 없이 버려지는 쓰레기로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지수를 통해 현대 사회 속 사람들 간의 관계를 독특하게 바라봅니다. 자칫 범죄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가고 있어 색다른 소재의 활용과 더불어 전체적인 분위기도 색달랐는데 다른 분들은 어떠셨을지 궁금하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그의 쓰레기에는 품위가 있다”
사랑에 배신 당한 지수는 타인의 쓰레기를 뒤지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최선을 다해서 깔끔하게 버린 쓰레기가 눈에 띈다. 옆집 남자 우재의 것이다. 지수는 그가 궁금하다. 지수는 쓰레기 정보로 그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우재와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그의 밝고 따뜻함, 그리고 상처들. 지수는 점차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예고편│Trailer
영제: Flowers of mold│감독: 심혜정│각본: 심혜정, 이수진
원작: 하성란 소설집 ‘옆집 여자’에 수록된 단편 ‘곰팡이꽃’
출연진: 김재경, 현우 외 多│장르: 드라마│상영 시간: 104분
국가: 대한민국│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왓챠피디아 2.6
초청·수상 내역: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 CGV상)
“버려지는 것들이 그 사람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해”
사람들이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내용물을 통해 이웃들의 성향과 취향을 기록하는 특이한 버릇 혹은 습관을 가진 지수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지금 사회의 인간 관계를 들여다보며 나아가 특별한 사랑까지 파고듭니다. 시점에 따라 쓰레기를 뒤지는 행위가 범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버려진 것을 통해 진짜 모습을 접근하는 방식은 굉장히 독창적이게 다가옵니다. 밀키트 마케터이자, CS라는 직업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그녀의 성향을 보여주며 치장된 말과 행동으로는 알 수 없는 진짜 모습을 판단하는 그녀만의 소통법임을 알려주죠. 그리고 깔끔한 일처리로 인정받는 직장과 180도 다르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모습은 왜 그런 행위를 하였는지 궁금증을 일으킵니다.
호실별로 쓰레기를 찾아 세세히 사진과 매일 기록을 꼼꼼히 남기며 타인에게 벽을 느끼는 일종의 정신병처럼 비치는데, 과거 연인의 잘못된 행위가 남긴 상처에 대한 자기방어적 트라우마이자, 보호 본능이었습니다. 다시 상처받기 싫은 그녀의 단단한 잠금장치, 영화는 그것을 해제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게 새로운 관계라 여겼는지 낯선 우재와의 만남으로 전반부의 긴장감과 새로운 출발의 애틋함 사이에서 묘한 기류로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결국 사람의 문제는 사람으로 해결돼야 하고 진정한 관계는 진실한 소통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시선을 애둘러서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만든 단절된 인간관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누구에게나 실시간으로 자신을 뽐내지만, 양면이 다른 동전처럼 전혀 알 수 없는 속마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른 이들을 따라 마치 내 취향인 양 똑같은 모습으로 동질감과 유대감, 관심에 목메는 사회이기 때문에 지수처럼 꾸밀 것 없이 버려진 쓰레기들을 봐야 진짜를 볼 수 있는 가짜로 가득 찬 안타까운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영화 〈너를 줍다〉는 그렇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묘하면서도 진지한 시선을 던지며 나아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남깁니다. 지수의 화사해진 스웨터처럼 우재와의 새로운 출발을 통해 더 이상 남들의 흔적이 그녀의 쓰레기봉투에 없길 바라면서 말이죠.
한 줄 평: 피상적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사회를 쓰레기봉투에 담은 재밌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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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 뉴 이어 / A YEAR-END MEDLEY, 2021
작년 설에 개봉한 <새해전야>의 당초 개봉일은 2020년 12월 30일이었습니다.
제목처럼 "새해"를 맞이하려했지만, "코로나19"로 개봉이 연기되며 이대로 이뤄지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 영화는 17만명에 그치며 쓸쓸히 극장을 퇴장했는데, 이번 <해피 뉴 이어>는 제목대로 개봉을 했습니다.
다만, 그 때와 달리 더 심해진 "코로나19"로 극장과 함께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 "TVING"에도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서복>과 <미드나이트> 다음으로 세 번째 결정입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해피 뉴 이어>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어느덧, 새해를 앞둔 연말 15년째 남사친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호텔리어 ‘소진'의 속도 모른 채 ‘승효’는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발표합니다.
근데, 결혼하는 장소가 자신이 일하는 호텔이고 축가를 불러달라고 하니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간다.
그리고, 호텔 대표 ‘용진’과 하우스키퍼 ‘이영’, 가수 '이강'과 매니저 ‘상훈’, 장수공시생 ‘재용’, 도어맨 ‘상규’와 그의 첫사랑 ‘캐서린’, 그리고 맞선남 ‘진호’까지 이 곳 "엠로스 호텔"로 모여드는데...올 한해, 극장은 행복할 수 있을까?
1. 공식에 충실한 영화, 재미도 충실할까?
앞서 말한 <새해전야>처럼 영화 <해피 뉴 이어>도 크게 다른 점이 존재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이 기원을 올라서면, <러브 액츄얼리2003>부터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2010>까지 한데 모이기 어려운 배우들을 집합시켜 배우들의 얼굴보는 재미는 보장합니다.
여기에 "옴니버스"구성으로 다들 이야기씩 꽤나 하니 특정 시즌을 노린 작품이라고 욕해도 궁금하실겁니다.
<해피 뉴 이어>도 공식에 크게 엇나가는 작품은 아니라 이를 기대하면서, 보았습니다.해피?, 언해피!
먼저, 영화 <해피 뉴 이어>의 분량을 살펴보면 138분으로 평균 120분 내외로 끝나는 영화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많죠?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많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러브 액츄얼리,2003>가 130분,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2009>이 129분, 그리고 <발렌타인 데이,2010>이 125분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앞서 언급한 14명의 캐릭터, 이야기로는 총 6개의 이야기가 존재하니 이를 제대로 소개는 커녕 시작도 할지 걱정이 들었는데요.
그리고, 영화는 그런 우려를 그대로 보여주고 맙니다.2. 이게, 없다구요?
아시다시피, "옴니버스"는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가 기록한 255만명이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수요가 적은 장르입니다.
이런 이유로는 이전 <새해전야>에서 밝혔듯이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만 본다면, "멀티캐스팅"과 유사하나 "옴니버스"는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전개어 이야기의 연결도 되지 않아 캐릭터별로 이야기를 봐야 하는 관객들의 피로는 다른 영화에 비해 배가 된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러닝타임은 길어지고, 캐릭터들의 설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단면적으로 소개되어 매력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에서 보듯이 "옴니버스"는 하나의 이야기만을 전개하는 여타 영화들과 다르게, 각 이야기들을 전개하니 관객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더 많은데요.
그래서, "옴니버스"에는 이를 방지한 하나의 장치가 존재합니다.아니, 그렇게 깊은 뜻이?
다시, <새해전야>의 리뷰를 빌려오면, '그렇기에 "옴니버스"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캐릭터들의 동선을 겹치는 우발적인 장면들 넣는다. 스크린 너머 관객들은 알지만, 극 중 캐릭터들을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만들어지는 재미는 "옴니버스"를 즐기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가 그러한 방법입니다.
이번 <해피 뉴 이어>에서도 이를 살펴볼 수 있지만, 여타 작품들에 비해서 많이 약한 것이 아쉽습니다.
극의 전개를 뒤바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알아도 그만일 정도로 설명으로 그치니 이런 장르적인 재미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3. 기본도 없이 잔재주에 치중한다.
그렇기에 지적되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른 개연성도 심하게 흔들립니다.
먼저, 극 중 설정상 오랜 짝사랑을 해온 '소진'과 ‘승효'의 관계를 풀어나가기엔 사전 설명이 너무 없어 이에 납득가질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건축학개론> 혹은 <너의 결혼식>같은 작품들도 과거 에피소드만으로 절반을 넘게 할애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준비 동작인거죠.
다음으로 ‘용진’과 ‘이영’의 관계인데, 이 역시 중간을 빼먹은듯한 설명으로 '이들이 왜, 빠졌는지?'가 아니라 "왜, 싸웠는지?"로 빠져 난감할만큼 이야기가 군데군데 빠진 느낌입니다.
이외에도 ‘상규’와 그의 첫사랑 ‘캐서린’도 '소진'과 ‘승효'에서 지적된 문제가 반복하고, 고딩 커플은 비중도 없으니 이래저래 아쉬운 점들이 많습니다.음악 좀 꺼주세요.
극중 '이강'의 매니저 ‘상훈’이 상대 소속사 사정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고있자니 <엽기적인 그녀>가 떠오르는건 저뿐만은 아닐겁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 <해피 뉴 이어>의 감독이 이를 연출한 "곽재용"감독이거든요.
물론, "신승훈"의 "I Believe"가 나오지는 않지만 다른 노래를 재생하며 이에 대한 "오마주"가 짙게 묻어 나옵니다.
영화 <해피 뉴 이어>는 노래가 많이 나오는 작품인데, 극 중 시간상 배경이 연말이라 길가에 흘러나오는 캐롤마냥 계속 재생됩니다.
문제는 이게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런 이유로는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이야기 전개가 엉망이라 음악으로 분위기를 녹여도 녹여지지 않다는 것이죠.
배우들 얼굴에 해피했다가 한 살 더 먹을 것만 같은 긴 분량과 아무런 내용이 없는 저의 새해 결심을 본거 같아 화만 납니다.※ 쿠키, 이런 비스무리가 있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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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보다 별로라고? / 여전히 기발한 연출의 병맛 영화 / 웹툰 암살요원 준 시즌 2 / 권상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히트맨 2"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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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디슈」 1차 예고편 분석 그리고 예매권 이벤트
?'모가디슈(2021 여름)' 1차 예고편 확장판 분석
그리고 예매권 이벤트
*자세한 내용은 고정댓글 참조- 모가디슈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제작: 강혜정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정만식, 구교환, 김재화, 박경혜 외
촬영: 최영환
조명: 이재혁
편집
미술
음악
의상
주제곡
촬영 기간: 2019년 11월 ~ 2020년 2월
제작사: 대한민국 외유내강, 덱스터 스튜디오, 필름케이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대한민국 국기 2021년 7월
화면비
상영 시간: 121분
제작비: 240억 원#모가디슈 #모가디슈리뷰 #모가디슈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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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헌트> 공식 2차 예고편
8월 10일까지 1분이 1시간 같아요? 내 시간개념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