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2-24 08:22:07
누구도 주인공일 수 없는 아메리칸드림의 잔혹한 설계도
영화 〈브루탈리스트〉

전쟁 중인 유럽을 탈출해 미국에 도착한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가 한 성매매 업소에서 남성 성노동자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난 그런 쪽 아니야’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은 그가 훗날 마주할 해리슨의 끔찍한 성폭력을 예감하는 것이 아닐까. ‘이쪽’과 ‘저쪽’의 구획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선언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해리슨에게 강제로 자리를 부여받는 라즐로가 느낄 비감이 도입부의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느꼈다.
재능 있는 유대인 건축가가 이주 후 미국 하층부를 전전하다 한 거부의 눈에 들어 대형 프로젝트를 맡은 후 종내에는 영광을 얻는다는 이 영화의 줄거리는 우리가 이미 여러 영화에서 본 이방인의 성공 스토리와는 결이 다르다. 노인이 되어 휠체어에 탄 채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는 전시에 참석한 그의 얼굴은 피로해 보인다. 라즐로 부부를 떠나 이스라엘로 향한 조카 조미아가 정작 라즐로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삼촌의 업적을 설명하는 대목은 그의 피로감에 공허함을 더한다.
‘성공한 유대인’이 있는 것은 맞다. 그들의 성취는 종종 아메리칸드림의 증거로 전시된다. 그러나 그 성공은 아름답지 않았다. 지적 허영과 과시욕, 속물적 근성의 화신, 즉 가장 미국적인 인물인 해리슨은 라즐로를 자신의 자랑스러운 수집품 정도로 대우하고, 라즐로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술 취한 그를 강간한다. 그는 라즐로에게 “넌 그저 밤거리 매춘부야”라고 말한다. ‘선’을 넘지 말라는 선언이다. 라즐로 프로젝트의 철학과 예산이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자 미국 사회의 주인은 돈이며, 그 돈을 가진 사람은 나라는 점, 즉 자신은 성 구매자이며 너는 성 판매자라는 점을 라즐로에게 극한 모욕을 주는 방법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라즐로는 그 충격에 휩싸여 더욱 자신의 예술적 목표(혹은 해리슨의 야망)인 건축물에만 집착하고 자신이 쌓아 올린 건축물에 유폐된 듯 영혼을 강탈당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라즐로는 걸작을 창안했으나 영혼을 상실했고, 미국식 속물주의를 대변하는 해리슨은 사건이 폭로된 이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으며, 늙고 지친 라즐로를 기념하는 행사에서는 과거 그를 떠난 조카가 확신에 찬 얼굴로 숙부의 업적을 칭송한다.
이 영화가 아메리칸드림의 오욕에 관한 문제 제기라는 인상을 받은 건 그래서다. 이 세 사람이 이루는 구도에서는 누구도 온전한 아메리칸드림의 주인공일 수 없다. 자수성가했다는 자부심으로 예술에 대한 심미안 없이 뭐든 돈으로만 하려는 해리슨도, ‘걸작’을 만들었으나 생기를 잃어버린 라즐로도, 홀연히 등장해 숙부의 성취‘만’ 이야기하며 뒤늦게 자신이 라즐로의 혈육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조미아도.
영화가 한창 건축이 진행 중일 때 고통받던 라즐로를 비추다가 갑자기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노쇠한 라즐로의 얼굴로 점프하는 것은 아메리칸드림에 영광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설계의 일환일 것이다. 사람들은 완성된 건축물만 본다. 그 이면의 설계도를 상상하지 않는다/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반대로 ‘라즐로의 아메리칸드림’에서 완성물이라 할 그의 건축물과 그로부터 피어나는 영광의 순간들을 뺀 채 그 영광의 설계도만 보여준다. 누군가의 장식품으로서만 예술가일 수 있었던 이방인, 그런 이방인 예술가들이 없었다면 구축되지 않았을 미국이라는 허상, 설계 과정의 문제는 덮고 결과물만 바라보며 찬사를 보내는 사회가 이방인의 아메리칸드림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누구도 주인공일 수 없는 아메리칸드림의 잔혹한(brutal) 설계도 말이다. 라즐로가 ‘아름다움의 견고한 본질’을 추구하는 브루탈리스트였다는 점은 이 설계도가 품은 역설을 더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사람은 죽어도 예술은 남는다’는 통념 혹은 진실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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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1958년 ‘별하나’의 포스터 ©영희야 놀자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위태로움이었다. 여성국극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나는 여성국극을 하는 이들이 마주쳐야하는 냉정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슬픔을 느꼈다.
전통 예술의 맥을 이어가려는 두 주연 박수빈씨와 황지영씨는 분명 열심이었지만 그들의 노력이 외면당하는 현실은 냉정하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조영숙 명창의 존재마저도 그녀의 90세라는 나이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는 압박감과 안타까움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었고 ‘역할이 맞는지’, ‘여성국극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녀들의 불안은 여성국극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처럼 느껴졌다.
이 끊어질 듯한 여성국극의 슬픈 운명은 공연 현장에서 더 뚜렷해졌다. 전통의 맥을 잇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궁에서 열린 공연은 조촐했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명창의 무대 앞에서 지루한 듯 등을 돌렸다. 짧은 관심 속에서 전통 예술은 외면당하고 있었고 그런 현장을 지켜보며 냉소적인 시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문제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낯선 가락, 느린 호흡 그리고 현대적이지 못한 공연 방식과 마케팅. 관객과의 거리감은 명확했고 나 역시 슬슬 지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관광지 한복판에서 열린 공연은 조촐했고 어설픈 홍보 속에서 누군가에겐 평생의 무대가 관광객에겐 그저 잠시 스쳐 가는 볼거리로 전락하는 듯해 씁쓸했다.
일본 신사에서의 전통 의식을 1시간 가까이 열심히 촬영하던 외국인들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한국의 궁에서는 우리의 예술이 외면당하고 있었다. 여성국극의 현주소는 그렇게 묘한 공허함을 안겼다. 명창이 직접 무대에 올랐음에도 사람들은 짧은흥미를 보이다 곧 자리를 떠났고, 그 장면은 어쩌면 여성국극의 끊어질듯한 현재를 상징하는 장면 같았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탁월한 지점은 바로 이 위태로운 현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냉담한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이어가려는 명창과 후계자들의 용기와 고집은 마치 춘향의 굴하지 않는 강인함처럼 느껴졌다. 나 또한 점차 이들의 고군분투에 몰입하게 되었다. 수빈씨는 조영숙 명창이 살아 있을 때 반드시 한 번 더 큰 무대를 올리고자 투자처를 찾아다니며 사력을 다했고 그 간절함은 여성국극이라는 예술의 정신으로 확장되었다. 투자처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여성국극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존재했다. 수빈씨가 마주한 현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끈기와 진심은 이 다큐의 긴장감을 이끌어갔다.
이옥천, 이소자 등 명창들을 찾아가며 레전드 춘향전을 다시 만들려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이 겪어온 세월을 담담히 말하는 장면에서 그들이 그 속에서 지켜낸 여성국극의 정신을 마주했다. 오랜 시간 흩어졌던 이들이 모여 무대를 준비하는 장면은 단순한 공연 준비가 아닌 어떤 "정신의 복원"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먼 친척을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듯한 어색함은 잠시, 그들은 여성국극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손을 맞잡는다. 그들이 걸어온 길 그리고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성국극은 오랫동안 편견 속에 있었다. 여성이 남성 역할을 하고 또 여성을 사랑하는 서사를 연기하는 것. 과거에는 작품이 쏟아지고 팬덤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외면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낯선 예술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오히려 그 섬세함과 감성 그리고 여성 특유의 디테일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명창들은 지금도 굳은 발성과 강인함 동시에 섬세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작은 체구와 노인의 몸으로 춘향과의 사랑을 연기하며 오히려 남성보다 더 단단한 힘을 느꼈고 그 무대는 단순한 전통의 계승이 아닌 살아 있는 예술이었다.
이 다큐에 등장하는 명창들은 모두 노인이며 여성이다. 후계자들 또한 여성이다. 우리는 종종 그것만으로 그들을 연약하게 바라본다. 남성의 굵직한 발성이 없는 무대, 노인의 느릿한 몸짓.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여성국극에 대한 열정과 혼 그리고 전통을 지키려는 강인한 우직함은 그런 편견을 단숨에 깨트린다. 굵직함 대신 섬세함과 강인함으로, 젊음 대신 세월의 깊이와 노련함으로, 그들은 무대를 채우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히려 그런 섬세함과 단단함이 이 예술의 진짜 매력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들이 전통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유행을 좇기보다 쑥대머리의 마무리 가락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가다듬는 조영숙 명창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고집과 신념을 보았다. 이 정도면 됐지가 아니라 이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단호함. 그것이야말로 전통의 힘이었고, 그 디테일을 지켜내는 정신이 곧 여성국극의 생명력이었다. 클래식 음악처럼,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깊이는 단숨에 다가오는 법이 아니다. 어느새 나도 여성국극의 운율과 말투 그리고 섬세한 표현 속에서 전율을 느꼈고 그 예술성에 감탄하고 있었다.
여성국극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어느새 정년이라는 드라마를 찾아보고 여성국극의 지난해 공연 예매 창을 뒤적이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건 어쩌면 다시 타오를 준비가 되었음을 스스로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성국극 그 연약한 듯 강인하고 타오르는 예술과 전통. 그리고 이 다큐로 목격한 과정과 공연을 본 뒤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국극은, 이 아름다운 전통예술은, 끊어질 듯 하나 이어지고 사라질 듯 하지만 영원할 것이다.
다시 여성국극이 화려하게 부활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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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 87편 무료로 감상하자!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인디그라운드에서 새롭게 구성된 <2022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전 작품 87편을 상영하는
스페셜 위크를 지난 20일을 시작으로 29일까지 진행한다고 합니다.
영화제 혹은 상영 후에는 보기 힘든 독립 영화인만큼 이번 기회에 좋은 작품들을
접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추천을 시작해볼까요?٩( ᐛ )و
텐트틴트
ⓒ 네이버 영화
synopsis
동주는 오래 사귄 연인 성곤과의 지루한 연애를 개선하기 위해 성곤을 집에서 내쫓지만, 결국
관계 회복은 산으로 간다.
cine pick!
톡톡 튀는 재기발랄한 매력이 가득 담긴 이준섭 감독의 단편영화 <텐트틴트>는 제 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이끌었다.
힘찬이는 자라서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정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소연의 집에 집들이를 간다. 늦게 도착하는 또 다른 친구
보영을 기다리면서 정희와 소연, 소연의 남편 강석은 정희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설전을 벌이게 된다.
cine pick!
김은희 감독의 영화 <힘찬이는 자라서>는 여성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실제 문제를 다룬 영화로
유수의 영화제에 후보로 올라섰으며, 제 13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돛대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항상 계획을 세우지만, 매번 실패하는 은구의 마지막 계획은 멋진 죽음이다.
cine pick!
배우 이주승이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돛대>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제 39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제21회 전북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하였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 네이버 영화
synopsis
강을 끼고 있는 마을, 장문안(䢿). 산하의 친구가 강에 빠져 죽은 지 1년 뒤, 마을에 하나 뿐인
중학교가 폐교를 결정한다.
cine pick!
이루리 감독의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영상미가 아름다운 영화로 주인공 산하의
온기가 전해지며 여운이 짙게 남는 영화이다.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
ⓒ 네이버 영화
synopsis
추락 사고 후 초월적 신체 능력을 갖게 된 영화배우 차유진.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예상
밖의 문제가 생긴다. 직접 만든 코스튬이 겨울이 되면 너무 춥다는 것! 고민 끝에 유진은 평소
무시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세상을 바꾸는 덕후들의 연대가 시작된다.
cine pick!
최우진 감독의 첫 작품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는 '어떤 분야든 덕후들이 연대했을
때 그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연출의도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더불어 감독의 영화
덕후력도 느껴지는 작품이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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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두둥실 휘감은 무지개 너머, 영화 <오즈의 마법사>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유명한 작품일수록 잘 읽어보지 않게 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대충은 아니까? 다른 고전도 유명한 문구만 알면 '뭐.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니까'하면서 넘기듯이. 책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얕고 넓은 교양으로만 관심이 있어서 그럴 거다. 오즈의 마법사도 비슷하다. 아, 오즈의 마법사? 알지 알지.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나오는 그 이야기. 아, 그리고 영화 OST에는 좋아하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도 나오고. 주디 갈랜드가 도로시로 나오잖아. 윈드오케스트라에서 벌써 두 번이나 OST를 연주하기도 했어. 하지만 내용을 더 깊이 물어본다면 하다못해 오즈가 어떤 인물인지조차 잘 모르는 게 들통날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 읽어볼 마음이,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할 일 없는 일요일 저녁. 넷플릭스도 왓챠도 동하지 않는 저녁, 책장에 꽂힌 <오즈의 마법사> 책을 꺼내 들게 된 것이다.
네 다음 1939년생(!)
아차 싶었다. 선물 받아놓고 너무 고이 모셔놔 버렸네. 동화니까 술술 읽힐 테니 부담 없이 펼쳤다. 책 표지와 군데군데 들어가 있는 일러스트도 소담하니 반가웠다. 책이 좋아지는데 일러스트도 크게 한몫했다. 정말 동화 같았으니까. 얼마 되지 않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만 읽으니 아쉬워 영화도 같이 보았다. 그래, '그' 주디 갈랜드가 도로시로 나오는 그 영화 <오즈의 마법사>. 1939년에 이만한 작품을 만들었으니 문화유산에 기재될 만하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일 때 어느 곳에선 이런 판타지 영화가 제작되었다니! 물론 지금 CG를 생각하면 이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다시 눈을 비비고 제작연도를 생각해보자. 1939년. 지금 어떻게 영화가 제작되는지 보다 그때 어떻게 찍었을지가 더 궁금할 지경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그녀를 아프게 했는가
물론 문화유산이 된 것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함께다. 도로시를 통해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지만 실제론 도로시에게 주어진 건 괴롭힘과 약물, 다이어트를 강요한 어두운 현실. 주디 갈랜드는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을 후회했을까? 성공은 역시 독이 묻은 행운이었을까? 그녀의 입장은 알 수 없지만 영화는 그녀가 출연하지 않았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하게 초반부터 나오는 그녀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 얌전한 버전의 스칼렛 오하라를 보는 듯한 당돌하면서 귀여운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모른다. 슬픈 얘기를 많이 듣고서 봐서 그런가 간혹 투덜거리면서 봤다. 아니, 얼굴이 어때서, 체구가 어때서! 왜 못생기고 살이 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는지! 좋기만 한데.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대체 불가능하게 좋은데! 카메라가 문제였을까, 사람들의 눈이 문제였을까? 심지어 그녀의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우리에게 수많은 웃음과 행복을 주고 본인은 불행했을 주디 갈랜드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면, 그 와중에 어딘가 찜찜했다면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와 책의 기본적인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도로시는 강아지 토토와 함께 토네이도로 집째(!) 날아와 버렸다. 도로시는 고향인 캔자스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친구 3인방 허수아비는 뇌를,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겁쟁이 사자는 용기를 갖고 싶어서 함께 오즈를 찾아가게 된다. 오즈는 소원을 들어줄 테니 서쪽의 마법사를 없애라는 조건을 달았고 약속을 지켰더니 알고 보니 위대한 마법사는커녕 도로시와 집이 멀지 않은 서커스 극단 마술사. 오즈의 실체는 실망스러웠으나 모두들 원하던 것을 가지고 도로시는 토토랑 같이 집에 돌아온다. 참으로 행복한 이야기.
그러나 차이점이 명백히 존재한다. 갈등구조.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 그리고 그들이 원하던 소원. 책에는 특별한 갈등구조가 있지는 않으며, 장애물이 있다 해도 함께 노력해서 고비를 넘긴다. 이미 3인방은 뇌와 심장과 용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왜 당신들만 몰라!) 뇌가 없는 허수아비가 고민의 순간 해결책을 찾아낸다거나,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이 발밑에 벌레를 다치게 할까 봐 안간힘을 쓰고, 용기가 없다는 사자가 깊은 물살을 점프해서 친구들을 데려다주고 위험할 땐 '크오와왕'하면서 위협도 할 줄 안다. 이쯤 되면 내 머리와 몸통과 내면에 있는 것은 뇌인가, 심장인가, 용기인가. 실제로 오즈가 서쪽 마녀를 없앤 대가로 준 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이 밖에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기를 헤쳐나갔다는 점, 그리고 각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 또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 약간 잔인하기는 하다. 양철 나무꾼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굳이 40번의 도끼질로 40마리의 늑대를 죽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반면 영화는 갈등구조를 뚜렷하게 표현하기 위해 서쪽 마녀를 지속적으로 악역으로 입력시킨다. 책에서 읽을 땐 그저 오즈가 서쪽 마녀를 없애야지만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 일종의 '퀘스트'에 불과했는데 영화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종종 나와서 도로시와 3인방을 괴롭히고 염탐한다. 큰 위기는 외부의 도움을 받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에메랄드 시로 가기 전에 양귀비꽃 들판 장면이다. 책에서는 도로시, 토토와 겁쟁이 사자가 양귀비 냄새에 취한 걸 보고 양철 나무꾼과 허수아비가 바쁘게 열 일 하고, 어쩌다 친구가 된 쥐 친구들의 도움을 보태 빠져나왔다. 영화에선 나무꾼과 허수아비는 그저 '어쩌지'를 반복하다가 북쪽 마녀가 뾰로롱 분홍색 비눗방울을 타고 와서 눈을 내려주면서 해결된다. 거 참, 예쁜 장면이긴 했지만 김 빠졌다. 4인방의 활약이 궁금했지, 북쪽 마녀님이 눈을 내리는 걸 기대하진 않았으니까.
"그럼 저한테 뇌를 못 주시나요?"
허수아비가 물었습니다.
"너는 뇌가 필요 없어. 매일 새로운 걸 배우고 있으니까. 아기들이 뇌가 있다고 많이 아는 건 아니잖아. 경험을 통해서만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단다. 세상을 오래 살수록 경험도 많이 쌓이는 법이야."
(중략)
"그러면 내 용기는요?"
사자가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내가 보기에 넌 이미 용기 있는 사자야. 너에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자신감이야. 생명이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위험에 처하면 두려워하기 마련이지. 그런 두려움을 이기고 위험에 맞서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란다. 그런데 넌 그런 용기를 이미 많이 가지고 있잖아."
(중략)
그러자 양철 나무꾼이 물었습니다.
"내 심장은요?"
"글쎄, 그건 말이지. 네가 심장을 갖고 싶어 하는 게 오히려 잘못인 것 같아. 심장은 사람들을 대부분 불행하게 만들거든. 그 사실을 알면 심장이 없는 걸 행운으로 여길 텐데. "
- p. 234-236
<오즈의 마법사>의 핵심. 즐거운 소원 성취 시간이다. 오즈는 허수아비, 사자, 양철 나무꾼에게 "네가 원하는 건 이미 너에게 있거나 딱히 받을 필요가 없는 거야"라는 식의 답변을 한다. 뇌가 없어도, 용기가 없어도, 심장이 없어 보여도 이미 다 제 기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소원을 들어주는 방식 역시 당사자에게 믿음을 더해주는 정도다. 허수아비에게는 왕겨와 핀, 바늘로 만들어진 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를 것)를 주고, 양철 나무꾼에게는 겉은 비단에 속은 톱밥인 심장을 넣어주고, 사자에겐 마치 초록색 병에 든 액체를 접시에 놓고 이걸 마시면 용기로 변한다고 하면서 만족스러운 선물을 준다. <어린 왕자> 뺨칠 설득력 아닌가. 자, 네가 원하는 뇌도, 심장도, 용기도 여기 있어.
어디 보자, 자네에게 필요한 건 말일세
"당신이 약속한 양철 나무꾼의 심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또 약속한 겁쟁이 사자의 용기는? 허수아비의 뇌는?"
"누구나 뇌를 가질 순 있어. 그건 열등하고 소모적이야. 땅이나 바다에서 사는 모든 겁쟁이 하등 생물이 뇌를 가지지. 내가 있던 곳의 대학에선 모두가 위대한 사상가로 태어난다네. 그들이 졸업을 하면 네 것보다 나을 바 없는 뇌로 깊은 생각을 해낸단다. 네가 갖기 못한 건 졸업장이야. 따라서 나에게 갖춰진 지적인 권위와 '대학위원회의 공식적인 인정'에 따라 여기 당신에게 영예로운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바이네."
"사자, 자네는 용기가 없어 도망간다는 망상에 빠져있지. 지혜와 용기를 착각하는 거야. 내가 있던 곳의 영웅을 얘기해주자면 해마다 그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퍼레이드를 벌인다네. 그들은 자네와 다른 게 없어. 자네가 갖지 못한 것은 메달이야. 마녀에게 맞선 특출난 용맹과 뛰어난 공적으로 자네에게 훈장을 수여하네. 자넨 전설적인 용사임을 기억하게."
"양철 친구, 자넨 심장을 원하지. 심장이 없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네. 심장은 완벽히 만들어지지 않는 한 실용적일 수가 없다네 내가 있던 곳에 매일 선행만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네. 사람들은 그를 '선행자'라고 불렀지. 하지만 그가 큰 심장을 가진 건 아니었어. 자네가 갖지 못한 건 단지 표창장이야. 따라서 자네에게 친절에 대한 감사로 기꺼운 마음으로 존경과 애정의 선물을 주겠네. 그리고 기억하게, 감성적인 친구여. 심장은, 자네가 얼마나 사랑하느냐보단 얼마나 자네가 사랑받느냐가 중요하다네"
-영화 <오즈의 마법사> 中
영화에서는 당사자의 믿음과 안도를 위한 선물이라기보다 타인에게서 인정받을 수 있는 증명용으로서 선물을 주었다. 허수아비에게 뇌라는 게 있는 건 쉽지만 '위대한 사상가의 똑똑한 뇌'를 주고자 박사학위를 주고, 사자에게도 보통 크고 작은 용기가 아닌 '영예로운 용기'를 뜻하는 메달을, 양철 나무꾼에게도 그냥 콩닥거리는 심장 말고 '착한 심장'을 가진 걸 보여주려고 심장 모양으로 똑딱거리는 시계를 표창장이라며 준다. 사실 저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실제 현실이라면 박사학위와 메달과 표창장에 껌뻑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여태까지 지켜오던 동화적인 이야기가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아 아쉬웠다. 박사학위와 메달, 표창장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걸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럼 그들은 다시 뇌와 용기, 심장이 없는 존재란 말인가. 누구를 위해 증명해야 하는가. 게다가 저 박사학위는 잘못하면 학위 위조에 걸릴지도 모른다! 저 메달, 저 표창장 역시 공신력이 있는 것인가? 사기꾼 아니랄까 봐 선물도 사기로 준 건 좋은데 나중에 뒤탈이 있을 만한 선물이다. 오즈가 착한 사람이면서 나쁜 마술사라고 본인이 한 말이 맞는 말인가 보다. 마술사가 현실적이면 나쁜 마술사지, 안 그런가?
집이 천국입니다
우리의 도로시는? 도로시랑 토토는 정말 고생 많았다. 물론 우연찮게 못된 마녀를 제거해주는 대단한 일을 하고 왔지만 말이다. 다른 친구들이 선물을 받을 때 속으로 참 애간장을 많이도 태웠고. 애당초 책에선 은색 구두였고, 영화에서는 빨강 구두였던 마녀의 구두 사용법만 알았어도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그녀는 구두를 구두의 용도로만 썼고 고생 끝에 집이 천국이라는 쉬운 결론을 얻었다. 영화가 더 김 빠지는 건 도로시가 짐작건대 아픈 와중에 꿈을 꾼 것처럼 표현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처음에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을 만났을 때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냐는 말을 하는데 그게 복선이었다니! 병문안 온 아저씨 삼인방이라나! 세상에, 이게 다 꿈이라니 너무 서운하지 않나. 진짜 갔다 왔는데! 하면서도 집이 천국이라는 도로시 얼굴은 보기 좋지만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면에서 책의 전개와 결말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책으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선사한다. 도로시의 집은 흑백이나 갈색이었던데 비해 오즈의 나라에서는 총천연색으로 비친다. 갑자기 모든 게 색깔이 생겼을 때의 그 아름다움이란! 또 도로시만큼이나 토토를 잘 부각해주었다. 강아지를 괴롭힐 때마다 도로시는 돌직구를 날리는 프로 강아지 사랑꾼이었고, 토토 역시 원작에는 없던 위기의 순간 도로시를 구하는데 크게 일조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저 작은 강아지 토토가 매우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어떻게 영화를 찍었을까 싶을 정도. <Somewhere over the rainbow>라는 언제 들어도 좋은 주디 갈랜드의 노랫소리에 깨알같이 손을 주는 토토의 귀여움까지 확인할 수 있고, 오즈의 세계를 예쁜 원색으로 꾸며놓고 노래와 춤이 가득한 축제로 만들어주었으니까. 마지막으로 <Ding-Dong, The Witch Is Dead>, <Follow the Yellow Brick Road>, <If I Only Had A Brain> <We're Off to See the Wizard>처럼 아기자기한 수록곡이 중독적으로 귀를 맴돈다.
김동인의 <무지개>라는 소설에서는 무지개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존재다. 조금만 더 가보자고 하다가 눈 깜짝할 새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소년들이 넘쳐난다. 그 이야기 속 무지개가 위험하고 절대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면 오즈의 마법사 속 무지개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진짜 무지개였다. 위험하지도 않고 희망을 주는 좋은 무지개. 꿈이든, 꿈이 아니었든 어떤가. 영화 속 도로시에겐 자려고 하면 생각나는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마음이 둥실 휘감겨서 무지개 너머 도로시와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 오즈와 함께 하는 기분인걸. 감사해야겠다. 무지개를 손에 움켜잡으려는 게 문제지, 무지개 너머를 꿈꾸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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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한 3개의 이야기, <우연과 상상> 리뷰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배우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나카지마 아유무, 모리 카츠키, 시부카와 키요히코, 카이 쇼우마, 우라베 후사코, 카와이 아오바
※개봉 전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해 관람한 작품입니다.
개봉일 : 5월 4일
개인 평점 : ⭐️⭐️⭐️⭐️+0.5 (4.5/ 5)
우연과 상상 리뷰 3줄 요약
1. 3개의 단편 영화로 구성된 영화
2. 제목처럼 우연과 상상이 존재하는 순간들을 다룬 스토리
3. 우연과 상상이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연과 상상> 포스터 [출처: 씨네랩 제공]
-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감독
최근에 먼저 개봉했던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감독님으로 그보다 앞서 <우연과 상상>이 베를린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해피아워>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상영시간이 무려 317분이라 차마 보진 못했다.
<우연과 상상>이 <드라이브 마이카>보다 먼저 나온 영화지만 <드라이브 마이카>는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이랑 골든 글로브 비영어영화상까지 받아서 먼저 개봉하고 뒤이어 우연과 상상이 개봉하는 것 같다.
<우연과 상상> 스틸 컷 [출처: 씨네렙 제공]
- 우연과 상상에 대한 3개의 이야기
영화 속 등장하는 3개의 단편 모두 우연과 상상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다.
단편이라는 사전 정보 없이 보러 갔었기 때문에 첫 번째 이야기는 뒷이야기가 궁금했는데 홀연히 끝나버렸다.
<우연과 상상> 두 번째 이야기 스틸 컷 [출처: 씨네렙 제공]
그에 반해서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더 닫힌 결말에 가까웠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렀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가 가장 기승전결이 다이나믹 했는데, 중간에 극장 내 웃음소리가 들릴만큼 피식하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는 스토리는 아니었다.
<우연과 상상> 세 번째 이야기 스틸 컷 [출처: 씨네렙 제공]
마지막 이야기쯤 되니까 이번 스토리에서는 어디에 ‘우연’과 ‘상상’이 있을지 예상하면서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우연’도 ‘상상’도 예기치 못한 부분이었고 3개의 스토리 중 가장 훈훈했던 내용 같아서 여운이 있던 마무리였다.
<우연과 상상> 첫 번째 이야기 스틸 컷 [출처: 씨네렙 제공]
가장 재밌게 보았던 건 첫 번째 이야기로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꽤나 복잡한 심리묘사가 보는 재미를 더해서 좋았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첫 번째 이야기에는 미모의 한국계 배우분께서 출연하셨다.
- 우연과 상상 30초 예고편
*단편으로 구성된 영화이기 때문에 예고편도 스포일러가 꽤 크다고 생각해서 30초 버전으로 가져왔다. 딱히 반전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예고편도 보지 않고 보러가는 것을 추천하는 편이다.
<우연과 상상> 30초 예고편 [출처: 그린나래 미디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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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간에 그려낸 서로의 초상화.
이 글은 영화 [승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 드라마 촬영 후 후보정까지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적나라하다는 표현 밖에는 붙여줄 수가 없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초상화를 남기는 것은 어명의 영역이었기에 그 어떤 숨김도 거짓도 없어야만 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당연하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에 담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땐. 마냥 어명이라 하더라도 신이 나지는 않았을 것만 같다. 애써 숨기고 싶었던 곰보 자국이 그림 안에서 살게 될 자신의 뺨 위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단점마저도 초상화에 들어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제자인 창호(유아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했을 때. 조훈현(이병헌)은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의 곰보자국들을 들여다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익숙한 흉터뿐만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기풍에 있는 부스럼까지 발견했을 때의 그 무력감은. 아마도 바둑의 신(神)과 겨루어도 질 것 같지 않았던 그 당시 그의 자존감의 크기만큼이나 크고 깊었을 것이다.
처음엔 제자의 초상화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들여다보니 보인 것일 뿐이라 믿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을 결승전에서 앞에 두고 스승의 초상화를 또 한 번 묵묵히 그려내는 제자의 모습을 보며. 훈현은 자신의 장점도 단점도. 승패를 가린다는 어길 수 없는 어명 같은 하나의 목적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창호가 그린 초상화가 자신과 똑 닮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몸을 일으켜 애써 그 초상화 앞에서. 그리고 그 초상화의 주인 앞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더 들여다보았다가는 정말로 제자에게, 혹은 제자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으니까.
사진 출처:다음 영화
스승과 승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데 훈현은 꽤 오랜 세월을 바쳐야 했다. 그동안 결승마다 만난 자신의 제자 앞에서 수도 없이 패배와 친해져야 했다. 무관왕이라는 타이틀 아닌 타이틀도 어느새 그의 옆에서 입김이 느껴질 위치에서 머물곤 했다.
자신의 제자는 물과 같아서. 칼처럼 예리한 자신은 베어낼 수도. 손에 쥘 수도 없었다. 그는 속절없이 차디찬 물에 떠밀려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리 자신을 휘둘러도 창호의 눈썹 하나조차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에 빠져 죽는 것 외에 남은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신(戰神) 조훈현에게 후퇴한다는 말까지 수식어가 될 수는 없었다. 그는 분명 제자에게 스승과 승부는 다른 것이라 가르쳤으며. 자신이야 말로 이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칼로 제자를 베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달궈진 자신을 식혀서 단단하게 연마해 주는 것이 제자의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순간부터. 조훈현의 손에는 제자의 모습. 아니 자신의 라이벌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 완성되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다시 만난 제자는 자신에겐 패배를 배우게 한 스승이 되어 있었고, 승리를 알려준 스승을 만난 제자는 훈현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의 초상화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기묘한 사제관계의 라이벌은, 다시 한번 치열하다 못해 피가 마르는 신선놀음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 신선놀음의 끝에는 분명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더 이상 그 결과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물론 제삼자의 입장이라 그랬을지도.)
자신의 스승과 대국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자신의 곰보자국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스승과 제자, 라이벌 사이를 오가는 이 대국은. 단순한 승부라는 말을 넘어서서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으니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바둑판 위에서 펼쳐진 그들의 대결은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이 남긴 서로의 초상화가 단순한 기보가 아닌. 인생의 기보로 남았기에 나 역시도 이런 영화를 보며 그들의 흉터에서 느껴지는 아픔마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면서;책임지지 못한 돌에 대하여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는 할아버지에게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도 말고. 이곳을 잊어버리라는 말을 듣는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야 없었겠지만. 그만큼 토토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쯤은 어린 토토라도 이해했을 것이다. 어린 창호의 왼손에 채워진 시계는 그런 걱정과 염려를 담뿍 담은 채 굳건히 채워졌다.
물론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창호는 변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묵묵히 해내며 앞으로 정진했다. 스승인 조 국수에게 배운 것처럼 바둑돌 하나하나에도 책임을 다 했고 그 결과 정상의 자리를 15년가량이나 지키며 남에게도. 스승과 라이벌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분명 매우 좋은 영화이며 큰 만족감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나올 수 있었던 영화였으나. 그는 초심을 잃은 토토가 되어 영화 속에서만 강렬한 연기를 보일 뿐이다.
조훈현의 시점만이 아닌 이창호의 시점으로도 영화를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커버린 토토가 할 것은 참회밖에 없기에. 이 영화의 영광과 대단함이 한 풀 꺾이는 것만 같은 아쉬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가르친 참된 스승이었다. 배우 유아인에게도 그런 스승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동시에 드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영화관에서 팝콘 안 먹기 2회 성공
2. 오늘 점심 회식인데 도망가고 싶다.
3. 이 비를 통해서 불이 반드시 꺼졌으면 좋겠다.
#승부 #김형주 #이병헌 #고창석 #유아인 #한국영화 #실화바탕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영화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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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쳐 가는 감정들과 스며드는 소리들
왕가위의 영화 가운데 <타락천사>(1995)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는 <중경삼림>(1994)이다. <타락천사>는 질척거리는 불편한 감정들과 공존할 수 있는 찰나의 위안과 휴식을 머금으려는 영화였다. 어떤 것도 과하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출하는 날 것의 영화이기도 했다. 제멋대로 감정을 덧칠하는 <타락천사>의 작법은 <중경삼림>에서 출발한다. 시선과 감정을 교환하는 인물들의 사이를 파고드는 긴장감이 위태로운 무드를 만들어내지만, 그 속에서 낭만을 찾아서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중경삼림>의 매력 아닐까. 감정의 얽힘을 형상화하는 <중경삼림>의 투박한 시도는 어쩐지 <타락천사>의 거친 스타일보다는 매끄럽게 느껴진다. 다양한 인물의 사연이 얽힌 에피소드를 은근슬쩍 교차하던 <타락천사>와는 달리, <중경삼림>은 비교적 분명하게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를 구분해서 배치한다. 하지만 떨어진 듯 보이는 두 이야기는 몇몇 연결고리를 통해 유기적인 덩어리로 재편된다. <중경삼림>에서 감정은 어지럽게 스치기만 하고, 음악과 목소리는 언제나 깊숙이 스며들고, 기억은 보존된 채로 어딘가에 남아 있다.
스쳐 가는 감정들
<중경삼림>의 도입부는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쉴 새 없이 화면을 흔들던 왕가위는 갑작스레 남자와 여자가 스치는 순간을 프레임에 가둬버린다. 내레이션하는 남자(하지무)는 뻔뻔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찰나를 가두는 건 쉬워도, 그들의 감정을 보존하는 일은 어렵다. 왕가위의 세계의 단골손님인 스텝 프린팅과 정지 화면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쳐 가는 감정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표출하고 강조하는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런 왕가위 특유의 기법들은 화면을 멈추고 인물들을 머무르게 해서라도 감정을 붙잡고 싶다는 감독의 간절함이 형상화된 산물로 기능한다.
하지무는 메이를 잊기 위해 술집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손바닥 뒤집듯 실연과 사랑을 오가는 듯하지만, 사실 그렇게 해서라도 실연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지무의 간절함이 오히려 와닿는다. 그러니까 스치는 감정의 표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심연에는 낙인처럼 박힌 짙은 감정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마약 밀매상은 언제나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풍성한 블론디 가발로 머리를 가린다. 덕분에 밀매상의 감정은 헤아리기 어렵다. 스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왕가위는 그의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밀매상의 의뭉스러운 속내를 내레이션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화창해질지 모르니까 늘 레인코트와 선글라스를 함께 착용한다는 밀매상의 독백은 그녀의 감정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구간 가운데 하나다. 놓쳐버린 마약 운반책들을 잡지 못하면 일이 번거로워질 거라는 내레이션 또한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를 잘 표현한다.
한편으로 인물들의 감정은 여전히 아리송하게 스크린을 맴돈다. 경찰 663은 스튜어디스인 애인과 이별한 뒤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지 않는다. 오히려 페이가 663 앞으로 온 편지를 몰래 읽는다. 이때 왕가위는 단골 식당에 함께 있는 경찰 663과 페이를 프레임에 가두고 응시한다. 전경(前景)에선 행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데, 후경에 위치한 두 사람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서로의 감정은 묘하게 서로의 마음을 스쳐 간다. 663을 향한 페이의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애인을 떠나보낸 663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중경삼림>의 인물들이 표출하거나 감추는 감정들을 우리는 이따금 포획할 수 있지만, 어쩐지 떠나보내거나 스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며드는 소리들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왕가위는 <중경삼림>에서 종종 ‘소리’를 활용한다. 음악은 감정을 실어 나르는 최적의 도구이자, 그 자신이 감정 표출의 주체로 기능할 수도 있다. 이때 왕가위가 <중경삼림>에서 음악뿐 아니라 유독 매달리는 소리가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경찰 하지무는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옛 애인 메이를 잊지 못해 전화를 걸었지만, 어쩐지 전화를 받는 이들에겐 메이를 찾는 전화가 아니라 안부 차 전화드렸다고 둘러대기만 한다. 하지무는 메이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하지무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이의 목소리를 끝내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상실의 빈자리를 잠시 스친 마약 밀매상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채운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무와 마약 밀매상의 본격적인 만남은 옷깃이 스치던 찰나를 거쳐 어둑한 술집에서 꽃을 피운다. 그들이 가까워질 시간은 하룻밤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사정 때문에, 서로의 속내를 깊게 공유하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감정들이 무심하게 스치는 자리엔 무엇이 남았는가. 그건 바로 하지무의 삐삐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이다. 만남이 종료된 이후, 감정이 스쳐간 이후에 남은 건 그 소리가 전부다. 밀매상의 축하 메시지는 비록 그녀의 목소리로 직접 전달되진 않았지만, 안내원을 매개로 하지무에게 스며든다. <중경삼림> 속의 이런 특징적인 소리는 성취될 수 없었던 직접적인 감정의 교환보다 더 넓은 층위의 소통을 만들어낸다. 하지무의 마음에 밀매상의 소박한 진심이 스며든다. 묻어놓았던 감정을 나누고, 지쳐버린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 소리를 매개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재밌게도 하지무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밀매상을 바(Bar)에서 처음 만나 말을 걸 때도, 당신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며 너스레를 떨지 않았나. 그는 저녁마다 단골 식당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질리도록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때 두 번째 에피소드의 경찰 663 역시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네는 모습이 어쩌면 두 에피소드를 연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663은 스튜어디스였던 전 애인과의 이별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그는 실연의 아픔을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로 대체하려고 한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향해 그만 울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빈자리를 무언가로 채우려는 고독이 짙게 묻어 나온다.
이렇게 어디서든 말을 멈추지 않는 663에게 스며드는 소리가 있다. 바로 단골 가게의 종업원 페이가 틀어 놓은 음악이다. <중경상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그렇다. 663이 등장하는 그 감성 가득한 신을 기억하는가. 그때 페이가 크게 틀어놓은 음악인 ‘California Dreamin’은 내화면 영역에서 외화면으로 확장되어 관객을 자극한다. 또한, 이 음악은 663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페이가 바꿔 놓은 CD로 인해, 663에게도 은근슬쩍 스며들고야 만다. 페이가 663의 집에서 종아리 마사지를 받는 장면에서, 663은 ‘California Dreamin’을 재생하며 전 애인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라고 말한다. 이에 페이는 코웃음치며 속으로(내레이션) 내가 CD를 바꿔놓은 줄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어느덧 663의 마음속은 음악을 통해 페이로 가득 채워진다.
그 자리에 남은 기억들
감정이 어지럽게 스쳐간 자리, 소리가 아련하게 스며든 자리엔 뭐가 남아 있는가. 소박한 추억이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아닐까. <동사서독>(1994)에서 왕가위는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탐닉한다. <중경삼림>의 인물들 역시 기억에 매달린다. 기억은 평생 동안 우리의 머리를 맴돈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 평생을 가져가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면 한편으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있다. 하지무에게 메이와의 추억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한순간에 털어내야 할 기억이기도 하다. 그에게 스물다섯 번째 생일 아침은 메이 없이 맞이하는 외로운 날이기도 하지만, 밀매상의 축하 메시지가 마음을 채워준 날이기도 하다. <중경삼림>을 대표하는 대사가 있다. 하지무의 내레이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다.
한 여자가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 주었다.
난 그 말 때문에 이 여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친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왕가위, <중경삼림>(1994)
하지무는 온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저분해진 밀매상의 구두를 타이로 닦아준다. 잠에서 깬 밀매상에겐 하지무의 온기가 묻은 채로 놓인 구두 한 켤레가 남는다. 그 구두를 보면 밀매상이 과연 하지무를 떠올릴까? 밀매상에게 하지무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 확신할 순 없지만, 카메라는 가발을 벗어 던진 채 프레임을 빠져나가는 밀매상을 간신히 붙들고 화면을 멈춰버린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1994년 5월 1일인 통조림을 비춘다. 붙들기조차 힘든 스치는 감정들이 지나간 자리엔 유통기한을 지워버리고 싶은 통조림이 남는다.
페이는 떠나면서 663에게 편지를 남겼다. 663은 그 편지를 일 년 간 고이 간직한다. 일 년 후 스튜어디스가 된 페이와 식당을 넘겨받은 663이 재회한다. 663과 페이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식당엔 ‘California Dreamin’이 크게 울려 퍼진다. “언제부터 이런 시끄러운 노래를 좋아했죠?”, “이제 습관이 됐어요”. 지난날의 감정들은 미묘하게 스치며 그들 또한 함께 어긋났지만, 페이의 음악은 663에게 스며들었고, 그의 마음속은 페이의 편지와 시끄러운 음악들을 매개로 하는 추억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젠 시끄러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듣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663에게 페이는 젖어버린 항공권을 새 항공권으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젖은 항공권을 간직했던 663의 일 년과, 스튜어디스가 되어 노래를 따라 캘리포니아에 갔다 온 페이의 일 년은 서로의 기억에서 어떤 시간으로 남아있을까. 새로운 항공권이 가져다줄 시간은 그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이미지 출처: https://screenmusings.org/movie/blu-ray/Chungking-Express/index_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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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복 후기 / 티빙 동시 개봉 / 공유, 박보검의 환상 케미 / 복제인간이 현실이 된다면...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서복”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복제인간, #박보검, #공유, #브로맨스, #티빙,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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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펫 다이어리> 예고편
알쏭달쏭 마이펫들의 일상이 공개된다!
고양이 벨라와 앵무새 앨빈, 개 베이글은 한 집에 사는 반려동물들이다.
사람들이 없을 때면 세 친구는 따분해하면서도 텔레비전 앞 소파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셋은 툭하면 서로 장난 삼아 말다툼을 벌이고 서로를 놀리곤 하는데,
‘개의 날’에 텔레비전에 다양한 개의 모습이 나오자 이를 계속 지켜보던 앨빈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벨라와 베이글을 걱정하게 만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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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몬스터 아카데미> 메인 예고편
상위 1%의 천재들만 다니는 ‘크랜스턴 아카데미’ 그곳에 전학 온 괴짜 천재 소년 ‘대니’! 학교 최고의 엄친딸 ‘리즈’와 묘한 라이벌 신경전을 벌이며 아슬아슬한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대니’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발명에 도전하던 중 무심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포털을 열게 되고, 그곳에 봉인되어 있던 수많은 몬스터들이 학교를 뒤덮는데! 저세상 몬스터들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