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1-29 22:23:14
절망과 죄책감, 그리고 후회가 만든 구원의 길
-<검은 수녀들>(2025)





우리는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 처음엔 단순히 ‘불리기 위한 호칭’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름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될 모든 이야기와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렇기에 이름을 부르고, 또 불린다는 행위는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서로 다른 이름들 속에서 ‘나는 누구이고, 넌 누구인지’를 확인하며 관계를 맺는다. 이름이 없다면 나 자신을 정의하기도 어렵고, 타인에게 나를 제대로 각인시키기도 힘들다. 결국 이름이란, 우리 내면을 드러내고 서로를 구분 짓는 뿌리이자, 한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시가 된다.
영화 <검은 수녀들>에서 우리는 유니아, 미카엘라, 바오로라는 ‘이름’을 지닌 세 인물을 만난다. 수녀이자 신부인 이들이 각각 품고 있는 절망, 죄책감, 후회는 그들의 이름 속 정체성을 흔들고 시험한다. 어둠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구마 의식을 둘러싼 제한과 의심 속에서, 이들은 자기 자신의 이름에 걸린 책임과 소명을 다시금 떠올린다. 과연 절망이 오히려 힘이 될 수 있을까, 죄책감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을까, 후회가 도움의 손길로 바뀔 수도 있을까? 다음부터 살펴볼 세 가지 감정은 이 영화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는 출발점이다.
[첫 번째 감정] 유니아 수녀의 절망감

유니아 수녀의 과거가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과 태도, 그리고 반응하는 방식에서 그녀가 깊은 절망감 속에 머물러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조금은 외로운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니아 수녀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돕고 구하려고 애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녀의 절망감이 오히려 그녀를 움직이는 동력처럼 보인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마주할 때조차, 그녀는 흥분하거나 극단으로 치닫기보다 담담하게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태도가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이유는, 유니아 수녀가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을 띠면서도, 막바지까지 타인을 위해 구마 의식에 나서는 모습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상징한다. 절망감은 흔히 사람을 고립시키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유니아 수녀는 그 절망 위에 일종의 ‘책임감’을 덧씌워,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된다.
특이하게도 영화는 이 ‘절망감’이 유니아 수녀에게서 연민이나 연약함이 아닌, 더욱 단단한 ‘투쟁심’을 끌어낸다고 묘사한다. 실제로 그녀가 처한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구마 의식은 허가받은 신부만이 거행할 수 있는데, 유니아 수녀는 이 제약을 뛰어넘을만한 권한도, 신분도 갖고 있지 않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무당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사람을 구하고, 악령을 막아내려 애쓰는 모습은, 절망을 극복하는 데 있어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두 번째 감정] 미카엘라 수녀의 죄책감

영화 곳곳을 살펴보면, 미카엘라 수녀가 어릴 적부터 죽은 이들을 보아왔다는 암시가 있다. 친구가 자살한 듯한 과거가 엿보이는데, 그녀는 그 환영을 지금도 계속 목격한다. 이상한 기운이나 귀신 같은 존재가 주변을 맴돌면, 미카엘라 수녀도 금방 눈치채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질병’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려 든다.
아마도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현재 그녀를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 대신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미묘한 부채감, 무엇인가 바꿀 수 있었을 텐데 바꾸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녀를 무력하게 만든다. 미카엘라 수녀는 그러한 마음의 짐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수동적인 태도에 빠져 버린다. 그러나 유니아 수녀를 만나면서부터, 그녀는 조금씩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죄책감은 사람의 행동을 옭아매는 강력한 감정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을 처벌하려는 듯한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미카엘라 수녀는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으로 이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만, 유니아 수녀를 통해 ‘죄책감이 나 때문에 생긴 감정’이라면,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자각을 얻는다. 그제야 그녀는 더 이상 뒤로 숨지 않고, 마주보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미카엘라 수녀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이, 사실은 새로운 결심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감정] 바오로 신부의 후회

바오로 신부는 영화 전반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인물임에도, 의외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사실 그는 ‘정신병 같은 건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으며, 구마 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그는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취약해 보이는 존재가 바오로 신부다.
다만 흥미로운 건, 바오로 신부가 어느 순간 결단을 내린 뒤의 모습이다. 영화는 그 과정 자체를 상세히 보여주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구마를 돕는 인물로 바뀐다. 바오로 신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구마 의식을 직접 행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위한 물품과 장소, 그리고 현실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후회’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진작 믿었다면, 아니, 적어도 무관심하지 않았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의 감정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후회라는 감정은 이미 벌어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사람을 무력감에 빠뜨리지만, 동시에 그 무력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도 만든다. 바오로 신부가 보여주는 반전과 지원은, 여전히 죄의식과 후회를 품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고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로 인해 유니아 수녀가 고립되지 않고 끝까지 악령에 맞설 수 있게 된다는 점은, 후회가 뒤늦은 도움일지언정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이야기 속 논쟁거리
정신병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란거리다. 누군가는 의학적·과학적 치료가 최선이라고 주장하고, 또 누군가는 영적인 문제나 전통적 주술적 방식(무당, 굿 등)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 영화 <검은 수녀들>은 구마 의식이라는 종교적 접근, 그리고 무당을 통한 민속적 접근, 의학적인 치료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시각에 따라 대처법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현대사회에서도 정신적 문제나 질병을 두고 각기 다른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데, 영화가 그런 복합적인 관점들을 끌어모았다는 점은 꽤 흥미롭다.
물론 이야기 자체에 완벽하지 않은 구멍들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어느 한쪽 방식만이 옳다고 단정 짓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트라우마나 초자연적 현상에 접근하는 시도를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질병’ 혹은 ‘이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다원성을 반영하는 사례일 것이다. 사람마다, 혹은 문화권마다 시각이 다르고, 그 다름이 때로는 갈등을 낳지만, 동시에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게도 만든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던지는 메시지
영화 <검은 수녀들>은 제목만 보면 어두운 분위기의 공포·오컬트 장르로 느껴지지만, 정작 핵심은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한다. 유니아 수녀의 절망감, 미카엘라 수녀의 죄책감, 그리고 바오로 신부의 후회를 통해,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과 상처가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펼쳐 보인다. 우리는 종종 절망, 죄책감, 후회 같은 감정이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영화는 그 감정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그래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분명 영화상에서 아쉬운 구석이 없진 않다. 마치 급작스럽게 변하는 바오로 신부의 태도나, 미카엘라 수녀가 어떤 식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지 좀 더 구체적인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뚜렷하다. ‘결국 인간을 흔드는 건 외부의 악령이 아니라, 우리가 내부에서 품고 있는 절망, 죄책감, 그리고 후회가 아닐까?’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진득하게 남는 여운이 있다면, 그것은 곧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감독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큰 사건과 스펙터클에 집중하기보다는, 인물 간의 심리적 갈등과 변화를 다루는 데 공을 들인 영화라서, 한 편의 심리 드라마를 본 듯한 인상을 남긴다. 오컬트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타인을 구하기 위해 절망감을 이겨내고, 과거의 죄책감을 짊어진 채라도 한 발씩 나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이 영화 <검은 수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일상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이름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자, 내가 지닌 모든 감정의 집합체다. 그리고 그 감정들 사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순간, 우리는 자기만의 구원과 용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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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신, 희생, 그러나 우정
<아워 프렌드>는 사랑, 우정, 이별, 죽음이라는 주제를 일상적 배경에서 그려내는 작품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말이죠, 사실 아주 뻔한 이야기를 예상했어요. 당연히 눈물이 약간 나겠고, 심금을 울리려고 꽤 노력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 예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어디에선가 있을 법하면서도 어디에서도 없을 것 같은 이야기였고, 사랑, 우정, 이별, 죽음이라는 흔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함부로 쓰지 않는 세심한 영화였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아워 프렌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아워 프렌드>는 2023년 11월 22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아워 프렌드
Our Friend
<아워 프렌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 '니콜'과 그의 남편 '매튜', 그리고 그들의 곁에 함께하는 친구 '데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작품은 에스콰이어 매거진에 실린 'The Friend'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반으로 하는 실화 영화입니다. 극 중에서처럼 남편 '매튜'가 직접 에세이를 썼죠.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이른바 ‘신파’라고 부르는 감성 팔이 영화의 대표적인 소재거리입니다. 그런 영화에서는 다 죽어가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없던 힘을 짜내어 십여 분이 넘도록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두고 감정의 요동을 겪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구태여 클로즈업으로 강조하거나,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사람의 모습 뒤에 더 슬픈 음악을 깔곤 하죠. 그러나 <아워 프렌드>는 조금 다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과 주변인들의 모습에서 억지로 슬픔을 짜내기보다는 죽음의 그늘에서 그들이 겪는 우여곡절을 찬찬히 짚어가는 데 집중합니다.
이를 위해 영화는 '니콜'이 암 선고를 받는 시점을 중심으로 시간 순서를 이리저리 뒤섞는 플롯을 사용합니다. 퍼즐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퍼즐 조각을 맨 처음부터 하나씩 순서대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 재미가 없을 테지요. <아워 프렌드>의 플롯도 이와 비슷합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이야기 조각을 차례대로 배열하지 않고, 이곳저곳의 퍼즐을 조금씩 채워가는 방식을 취하죠. 그렇게 세 사람이 어떻게 우정을 쌓았고, '데인'이 왜 ‘니콜'과 '매튜' 가족 곁에 머물렀는지를 알게 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제시하는 시간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모으다가, 이윽고 ‘세 사람의 우정’이라는 그림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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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트로를 포함한 몇몇 장면에서 인물들을 근거리에서 포착했다가 조금씩 원거리로 이동해 관조하는 촬영 방식을 택합니다. 가까이에서 촬영할 때와 멀리서 촬영할 때 관객이 화면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는 면에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저는 그의 명언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 진실을 알 수 없다'는 말로 해석하곤 합니다.
멀리서 보면 '니콜'과 '매튜' 가족, 그리고 '데인'의 관계는 단순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암에 걸린 친구에게 과하리 만치 헌신하는 연민 많은 친구. 친구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호구 같은 친구. 하지만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데인'은 자신을 깎아내리고 낮추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니콜'은 그런 '데인'의 진짜 가치를 알아봐 준 유일한 친구였죠. '데인'은 바보 같이 우직하고, 우스꽝스러운 스탠드업 코미디를 좋아하며, 실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언제나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다. 직장을 옮기는 것은 한참을 망설이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사는 곳을 떠나는 결정쯤이야 가뿐하게 내리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남들에게 '데인'은 그저 별난 놈이었을지 몰라도, '니콜'은 그런 그를 프루트 루프(Fruit Loop, 어리석고 이상한 사람을 부르는 말)라는 사랑스러운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니콜' 덕분에 만나게 된 '매튜' 역시 '데인'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매튜'는 '데인'이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 때 그를 외로움의 늪에서 꺼내준 동아줄이었거든요.
그럼, 마음속에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니콜'과 '매튜' 가족을 위해 사는 곳, 직장, 애인을 떠나 1년이 넘는 뒷바라지를 자처한 '데인'의 행동은 과연 지나친 헌신과 희생일까, 진정한 우정일까?
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서로의 이야기를 쭉 지켜봐 온 ‘니콜', '매튜', 그리고 '데인'뿐일 것입니다. 극 중 어느 과거 회상 장면에서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는 '니콜'을 두고, 그녀의 오랜 친구 '샬럿'이 이런 말을 합니다. "I have stories." 너의 지나간 시간들을 아는 친구는 나뿐이라는 의미의 말이었는데요. 이 대사는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대입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 역시 단편만 봐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죠.
그렇지만 이 영화가 세 사람의 지나간 시간들을 지근거리에서 천천히 알아갈 수 있도록 했으니, 이를 핑계 삼아 감히 저 질문에 답을 해보고 싶습니다. ‘데인’의 행동은 분명한 헌신과 희생이었으나, 명백한 우정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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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라!’ 하고 만든 영화에는 끄떡없지만, ‘울지 않아도 돼.’ 하고 만든 영화에 하릴없이 무너지시는 분들 계신가요? 그렇게 저는 <아워 프렌드>의 내용을 곱씹을 때마다 눈물을 쏟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아워 프렌드>는 마음 한구석이라도 따뜻하게 데우고 싶은 추운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꺼내볼 따뜻함과 애틋함을 가진 영화로 제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올 겨울 이 영화와 함께 따뜻한 우정의 온기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Summary
두 딸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던 '니콜'과 '매튜' 부부. 어느 날, '니콜'이 말기암 선고를 받고 '매튜'는 점점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져 내리던 중 두 사람의 오랜 절친인 '데인'이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가브리엘라 코우퍼스웨이트
출연: 다코타 존슨, 케이시 애플렉, 제이슨 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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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카 구아다니노의 반짝이는 여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찬바람이 불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샤이닝>, <캐롤>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취향이 변덕스러운 탓에 장르가 완전히 다른 작품들이지만 하얗게 내리는 눈과 찬 공기를 가르며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감화되고, 화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런가 하면 날이 더워지면서 떠오르는 작품들도 있다. <어톤먼트>, <위대한 개츠비>, <아가씨>, <해변의 폴린>… 여러 작품들이 보고 싶어지지만 내게 여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서스페리아>이지만, 그가 담아낸 여름이 스크린에서 너무나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은 2017년 개봉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다. 물 속에서 막 건져 올린 듯, 매끈한 빛이 나는 첫사랑의 기억과 겨울을 맞음으로써 상실되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인생 영화’처럼 각인되었다.
미묘한 감정들을 아주 세심하게, 어느 순간엔 재치있게 묘사한 만큼 여운도 길게 남는다. 길게 누워 그리스 신전의 프리즈를 장식한, 디오니소스이 조각상 같은 티모시 샬라메의 외형, 그리고 꾹꾹 눌러 쓴 세심한 편지 같은 그의 연기가 영화에 힘을 실어 준다.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는 것은 집 앞 작은 수영장 끄트머리에 기댄 엘리오가 올리버를 바라보지 않으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악보를 애써 내려다보는 장면, 자전거를 타고 뒤돌아 가려다 아쉬운 듯 한번 더 던지는 눈길 같은 이미지이다.
엘리오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찰랑이는 물 밖으로 건져 낸 미술품,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식사, 열리고 닫힌 문들이 내리쬐는 햇빛과 더운 공기를 화면 밖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곧 첫사랑의 설렘과 혼란과 같은 감정으로 변모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가진, 화면을 채우는 요소와 색채를 감정과 감상으로 변환시키는 솜씨는 그가 다른 예술이 아니라 영화감독이기에 발산할 수 있는 멋진 능력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이 첫사랑의 가슴 뛰는 감정과 성장통에 집중한다면 진실된 자아와 욕망의 발견을 다룬 이야기는 <아이 엠 러브>이다.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한다. 윤이 나는 바닥이 깔린 저택, 엠마(틸다 스윈튼)가 저녁 만찬을 위해 손님 자리를 배치한다.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우뚝 선 저택에서 사람들은 스포츠와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집은 유산을 상속받을 가족들, 접시를 들고 카펫 위를 걷는 가사도우미들, 고가구, 벽에 걸린 그림들로 채워졌지만 가장 빠르게 와닿는 감정은 만족과 평안이 아니라 공허함 또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다. 예컨대 틸다 스윈튼이 밀라노 대성당의 공중부벽 사이를 지나는 장면에서 감독은 과도할 정도로 화려한 성당의 장식 안에 그를 가둔다. 한겨울의 저택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아치와 높은 첨탑마다 서 있는 조각상에 갇혀 있다. 엠마는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텅 빈 삶에서 걸어나온다.
그의 사랑은 어떤 건축물에도 둘러싸여 있지 않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작은 그늘조차 없는 잔디며 풀 위에서 피부를 마음껏 드러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욕망과 해방의 감정이 몰려든다. 단순히 감각적인 장면의 연속이 아니라 영화 전후의 배경의 대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종국엔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 그 자체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여름에 시작한 사랑이 겨울에 이르러 끝나고, 벽난로 앞에 무릎을 끌어 안고 앉은 소년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 반면, <아이 엠 러브>는 겨울에서 시작해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가는 엠마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영화에 담은 여름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가 곧 계절 그 자체가 불러일으킨 감정처럼 기억되기 때문이다. 더운 공기를 헤치며 걸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사랑이 강령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관객에게도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반짝일 그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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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빠는 34살이고요. 창문 청소부예요.
<풀 몬티, 1997>, <스틸 라이프, 2013>로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 <노웨어 스페셜(Nowhere special)>은 마이클이 아빠 존을 통해 죽음이 무엇인지 배워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창문 청소부로 일하는 34세 존은 몹쓸 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홀로 4세 남자아이 마이클을 키우고 있다.
존은 짧은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고, 위탁 가정에서 양육되었다. 존의 주변에는 마이클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존은 직접 마이클의 가정을 고르기로 한다. 그러나 후보군에 있는 가정들은 모두 마이클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모가 학력이 높은 가정으로 보내면, 마이클이 공부의 압박을 많이 받을 것 같고, 낳은 아이와 입양한 아이가 여럿 섞여 있는 가정으로 보내면, 남매들 틈에서 마이클이 적응하며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 같다. 마이클의 조건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가정으로 보내면, 천덕꾸러기로 살 것 같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한부모 가정으로 보내면, 남들과 다른 결핍에서 상처를 받게 될 것 같다. 존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에 해야 하는 이 선택이 너무 어렵고, 괴롭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 2020> 포스터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창문'을 키워드로 정리해볼 수 있다. 창문은 두 공간을 분리하여 안과 바깥을 구분해주지만, 안에서 밖을 보거나 밖에서 안을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 신체에서 창문은 빛이 들어오는 눈이며, 이 창을 통해 보는 행위는 시선이 되고, 관점이 된다. 게다가 영화관의 스크린은 작품을 볼 수 있는 아주 커다란 창문이다. 이쯤 되면 존의 직업이 창문 청소부라는 것에 화들짝 놀라야 마땅하다.
<더러워진 창문을 열심히 닦는 존>
창문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더러워진다. 사람들은 자기 집이나 가게의 창문을 스스로 닦지 못하고, 돈을 주고 존을 부른다. 존은 비누 솔과 스퀴지, 손목 스냅을 이용해 깨끗하게 창문을 닦는다. 그러나 존은 합당한 이유 없는 욕을 듣기도 하고, 열심히 일해놓고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존이 창문을 닦으며 들여다본 안의 모습은 지금 내 처지와 비교했을 때,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마이클 또래의 친구들이나 아빠와 엄마가 모두 갖춰진 가정을 보면 '최고의 아빠'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마이클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입양 가정을 찾는 일은 창문을 닦는 것과 비슷하다. 갑자기 찾아오는 통증이 힘겹지만, 최대한 창문을 깨끗하게 닦아야 그 안을 조금이라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4살 존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로 세상의 일을 배우는 마이클>
마이클은 유독 맑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졌다. 아이가 무언가를 쳐다보는 장면을 카메라가 정지된 이미지처럼 보여주는 장면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마이클이 자신의 창문으로 세상의 일을 배우는 순간이다. 아빠 존은 아직 4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를 통해 이미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마이클은 나무 아래에서 죽은 딱정벌레를 보며 아빠의 몸도 곧 이 벌레처럼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집, 저 집을 함께 돌아다니며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도 벌써 알았다.
아빠는 여러 입양 후보 가정을 보고도 마이클이 갈만한 곳을 선택하지 못했지만, 마이클은 이미 결정했다.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트럭 장난감에 실을 사탕 꾸러미를 가져다준 아줌마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아줌마에게 최종적으로 과연 나를 받아줄 가정인지 결정할 질문을 한다.
"아줌마는 언제 죽나요?"
4살 마이클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배움이 일어난다.
<스크린으로 존과 마이클을 만난 나>
아이를 낳고 기를 때, 특별한 조건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입양의 경우 법률로 조건을 따로 명시해두고 있다. 한국은 입양 특례법에 양친이 될 자격으로 양자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재산이 있을 것, 양자에 대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양육과 교육을 할 수 있을 것, 양친이 될 사람이 아동학대ㆍ가정폭력ㆍ성폭력ㆍ마약 등의 범죄나 알코올 등 약물중독의 경력이 없을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신자 친양자 입양도 가능해지도록 민법과 가사소송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그동안 한부모는 아이를 양육하는데 부적합한 가정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친생자나 친양자 모두 아이들은 자신들이 양육될 가정을 선택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마이클은 아빠와 함께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했던 결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창문 청소부였던 아빠에게 받았던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면, 가까이에 있던 존이 와 마이클의 두 눈을 깨끗하게 닦아줄 것이다.
마이클의 행복을 빈다.
또 다른 마이클들의 행복도 빌어본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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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가을에 만나보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30일 , 서커스 당나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당나귀EO 등 10월 첫째 주 개봉예정작 같이 알아보아요
30일
30days
ⓒ 네이버영화
개요: 로맨스, 코미디 | 한국 | 119분
감독: 남대중
출연: 강하늘, 전소민등
개봉: 2023.10.03.
배급: (주) 마인드마크
시놉시스
“완벽한 저에게 신은 저 여자를 던지셨죠” 지성과 외모 그리고 찌질함까지 타고난, '정열'. “모기 같은 존재죠. 존재의 이유를 모르겠는?” 능력과 커리어 그리고 똘기까지 타고난, '나라'. 영화처럼 만나 영화같은 사랑을 했지만 서로의 찌질함과 똘기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완벽한 남남이 되기로 한다. 그러나! 완벽한 이별을 딱 D-30 앞둔 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동반기억상실?
CINE PICK!
<스물>이후 두 번째로 호흡하는 강하늘, 전소민이 부부로 다시 만났습니다! 두 배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번 영화로 스크린 데뷔를 이룬 송해나, 엄지윤이 눈길을 끕니다
당나귀 EO
EO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폴란드 | 88분
감독: 백승기
출연: 산드라 지말스카, 이자벨 위페르 등
개봉: 2023.10.03.
배급: 찬란
시놉시스
가련한 눈망울의 회색 당나귀 EO는 세상의 전부였던 서커스단으로부터 구조된 뒤 폴란드와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에 오른다. 평화로운 농장, 훌리건으로 가득한 축구장 공포의 소시지 공장, 쇠락 직전의 저택...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겪은 인간 세계는 다정하면서도 잔혹하다.
CINE PICK!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 및 각본의 2022년작 폴란드 영화로 제 75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입니다. <당나귀 발자타르>에서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화로 한 폴란드 서커스단에서 태어난 당나귀의 일생을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당나귀의 시선으로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직시하는 도전적 시도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독의 개성이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크리에이터
The Creator
ⓒ 네이버영화
개요: SF | 미국 | 133분
감독: 가렛 에드워즈
출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 젬마 찬, 와타나베 켄, 매들린 유나보일스 등
개봉: 2023.10.03.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이것은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싸움입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류와 AI 간의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인류를 위협할 강력한 무기와 이를 창조한 ‘창조자’를 찾아 나서고, 그 무기가 아이 모습의 AI 로봇 '알피'란 사실을 알게 되는데…
CINE PICK!
<고질라>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연출, 각본, 제작을 맡은 오리지널 SF 영화로 감독은 인터뷰에서 “리얼리즘과 퓨처리즘을 동시에 담으려 노력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여행 중 승려들이 사찰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로봇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팟 제너레이션
The Pod Generation
ⓒ 네이버영화
개요: SF, 멜로/로맨스, 코미디 | 영국 | 109분
감독: 소피바르트
출연: 에밀리아 클라크, 치웨텔 에지오포
개봉: 2023.10.03.
배급: (주)왓챠
시놉시스
임신/출산 2.0 이제는 팟이 대신 낳아드립니다. 기술이 자연을 능가하게 된 머지않은 미래. 거대 테크회사 임원 레이철은 승진하면서 모두가 탐내는 최첨단 자궁센터의 예약 기회를 얻는다. 알을 닮은 인공 자궁 팟, 모니터링 앱, AI 상담사까지, 상상할 수 없던 ‘팟 제너레이션’ 부모 되기 여정이 지금 펼쳐진다!
CINE PICK!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이미 국내 관객을 만난 이 작품은 기술이 발달한 근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 자궁인 ‘팟’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해보기로 한 신혼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제39회 선덴스영화제에서 알프레드 P. 슬로안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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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게 살자.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머릿속이 시끄럽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학업부터 직장, 돈, 사람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대인에게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의 주인공 '마르타'가 말한다. 그렇게 많은 것을 고민하며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 Out of My League, Sul più bello>는 희귀 유전병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는 '마르타(루도비카 프란체스코니)'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이다. 이탈리아 토리노를 배경으로 지역 랜드마크인 몰레 안토넬리아나(Mole Antonelliana)와 포 강(povor)을 아름답게 표현하여 유럽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개봉 당시 이탈리아에서 우수한 흥행 성적을 거두며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넷플릭스가 판권을 구매하며 유럽 전 지역에 공개되었고 세 번째 시리즈가 제작될 예정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키싱부스> 등 인기 있는 로맨틱 코미디를 제작한 넷플릭스의 선택이니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할 만하다.
영화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를 1분 30초 만에 확인하기▼
영화의 구성은 주인공 '마르타'를 둘러싼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그녀의 소꿉친구 '페데리카(가야 마시알레)', '야코프(요체프 기우라)'와의 우정이다. 세 사람은 한 집에 살며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서로의 편이 되어준다. 심지어 3살 때 부모님을 잃은 '마르타'의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페데리카'와 '야코프'는 아이를 낳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는 '아르투로(주세페 마조)'와의 사랑 이야기다. 집안과 학벌, 외모 등 빠지는 부분 없이 완벽한 그는 마르타를 까칠하게 대하지만, 곧 그녀에게 빠져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꾼이 된다.
익숙한 로맨스 클리셰는 요즘 감성에 알맞은 연출과 영화 미술이 합쳐져서 톡톡 튀는 개성을 지닌다. 다채로운 카메라 구도와 편집으로 인물의 시선과 행동을 지루하지 않게 담아낸다.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세련된 영상미와 음악으로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몬스 침대의 광고와 비슷하다. 인물의 의상이나 소품은 강렬한 원색 계열이되 빈티지한 색감을 사용해서 감각적이다. '페데리카'가 화려한 빨간 머리에 대비된 초록색 재킷을 입어도 주변의 색감과 어우러져 홀로 튀거나 어색하지 않다.
또한 <나의 흑역사 로맨티카>는 일상과 밀접하면서 로맨스 코미디에서 흔하게 등장하지 않은 장소인 마트를 활용한다. 마트는 '마르타'가 할인 상품 안내 방송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소로 그녀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장소이다. 첫 데이트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마트를 헤매는 '아르투로'의 모습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Q.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한가요?
'아르투로'를 만난 순간부터 '마르타'의 행동은 거침없다. 그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학교와 조정 클럽을 따라다닌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아르투로'의 질문에 당당하게 '저녁 식사'를 외치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녀의 직진 본능은 스스로 인생을 선택한 적 없던 '아르투로'의 사랑을 얻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안타깝게도 '마르타'의 병세는 악화되고 그녀는 '아르투로'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별을 고민한다. 연애를 통해 달라진 '아르투로'는 사랑은 원래 수많은 헤어질 이유가 있으므로 지금 이 순간만 신경 쓰자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결국 그들은 현실적인 이유를 고민하기보다 서로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무한한 사랑을 약속한다.
단순하고 거침없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시종일관 해맑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행동할 용기를 준다. 그러니 영화가 끝난 후엔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마음 가는 대로 단순하게 행동해보자. 영화 속 '마르타'와 '아르투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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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우리가 잊어버린 진짜 소통의 방식에 대해
Director
Iván FUND
Cast
Mara BESTELLI, Marcelo SUBIOTTO, Anika BOOTZ, Betania CAPPATO
시놉시스
아르헨티나 시골의 어느 먼지 나는 길, 반려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소녀의 능력을 팔아 기회주의적인 보호자들이 생계를 이어 나간다. 이게 마법이든 사기든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이 서비스는 진짜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은 보물이라는 것.
들어가며 :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메시지>는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독특한 영화였다. 소재적으로 애니멀커뮤니케이터, 대안가족 등의 개념이 등장하지만 절대 영화의 본 목적인 '소통과 여백'이 존재해야 할 자리를 설명이나 억지 사건으로 채우지 않기에 더욱 순수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잊어버린 진짜 소통의 방식에 대해
아니카가 동물의 비공간에 채널링하여 그들의 영혼과 대화하는 방식은 고요하다. 침묵 속에서 감정을 교류하고, 그것은 아니카의 시적인 언어로 변환된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만나며, 그들의 경험과 교류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배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이 원하는 내용과 자신이 믿는 것 사이에서 부드럽게 중개를 해주는 건 미리엄의 몫이다. 운전을 하고 수금을 하는 로헤르는 이들을 목적지까지 잇는 사람이니 아니카에게 두 어른의 존재는 세상과 아니카를 이어주는 동반자적 관계가 된다.
흑백의 화면은 다채로운 자연의 풍경이나 서사적 장치보다 이야기가 가진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 때문에 불친절도, 학대도 아니지만 어쩐지 무친절해 보이고 때로는 아니카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미리엄와 로헤르의 태도는 혹시나 모를 극적사건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묘한 긴장감을 주기도 하다. 그러나 일이 없을 때 밴에 모여 아니카의 흔들리는 유치를 뽑아주기도 하고, 이빨요정에게 소원을 비는 아니카의 베개 밑에 짤막한 진실의 메시지와 함께 돈을 넣어주는 장면, 서툴게 조작키를 움직이며 인형뽑기를 하거나 아니카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여정에 동참해주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이것이 그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진짜 소통에 대한 이야기임을 확신시켜 준다. 이들은 식구였다.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 가족보다 더 관계의 본질에 가까운 사이.
<메시지>는 단순한 생계 수단을 위해 뭉친 세 명의 방랑자 존재 연합을 넘어, 어린 아이인 아니카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가는 성장의 과정을 돕는 어른의 여정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쯤 아니카가 미리엄에게 다가와 새의 영혼을 통해 미리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미리엄이 따뜻하게 아니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세상에 이런 연대만 있다면 마음이 아픈 동물도, 사람도 없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희망을 품어보게 된다.
Schedule in JIFF
2025.05.02. (금) 21:00 CGV 전주고사 3관
2025.05.03. (토) 20:00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2025.05.06. (화) 20:30 CGV 전주고사 4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4월30일 ~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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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사제들의 뒤를 잇는 "검은 수녀들" / 단순하지만 독특한 설정 / 크게 무섭지 않은 순한 맛 호러 /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검은 수녀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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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빙 <미드나이트> 티저 예고편
<미드나이트>는 한밤 중 살인을 목격한 청각장애인 ‘경미(진기주)’가 두 얼굴을 가진 연쇄살인마 ‘도식(위하준)’의 새로운 타겟이 되면서 사투를 벌이는 극강의 음소거 추격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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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드백> 30초 예고편
한때 잘 나가던 스타였지만 지금은 잊혀진 자비스 돌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라디오 DJ 제안을 수락한다. 하지만 첫 방송 이후, 예전부터 좋아했다는 스토커가 등장해 생방송 중인 방송국을 공격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