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9-25 10:33:56
9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9월 넷째 주
한국에서는 <잠> 북미에서는 <더 넌 2> 3주째 호러, 스릴러 돌풍이 불고 있습니다. 새로 개봉한 <가문의 영광: 리턴즈>가 2위를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9월 4주차 박스오피스 순위 같이 알아볼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영화 <잠>이 개봉 이후 3주째 정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6번째 시리즈를 맞이한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7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위, 할리우드 레이싱 액션 영화 <그란 투리스모>가 5만여명을 동원하며 3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개봉 첫 날 부터 혹평세례를 받고 있는데, 허술한 내용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더 넌 2>가 매출액 84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3주째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익스펜더블4>는 매출액 830만 달러를 올려 2위로 출발,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이 3위를 기록했습니다. <더 넌>은 1956년 프랑스 한 성당에서 신부가 죽은 채 발견되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아이린 수녀가 의문의 사건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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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차'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8★/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리에와 그의 아들 유토. 리에는 둘째가 병으로 죽었고, 그 이후 남편과 이혼했으며, 최근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상실의 슬픔을 통과하는 중이다. 별일 없다는 듯 의연한 표정으로 가게를 정리하지만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이내 일그러지고야 마는 그녀의 얼굴과 함께 시작하는 영화는, 그녀가 마주한 압도적 슬픔의 크기를 관객에게 단번에 확인시켜준다.
그런 그녀에게 수줍은(혹은 음침한) 얼굴의 한 남자가 다가온다. 이름은 다이스케라 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다이스케는 자주 리에의 문구점에 찾아와 그녀와 안면을 트고, 리에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림이다. 곧 리에와 다이스케는 결혼한다. 다이스케는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외지인이기에 종종 마을 사람들의 근거 없는 험담에 시달린다. 하지만 리에는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유토를 자기 자식처럼 돌봐주고, 리에와 함께 예쁜 딸을 낳아 키우는 중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해주고 가정에 충실한 다이스케가 주는 일상의 안정감과 안전감이 리에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벌목 일을 하던 다이스케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한 것. 그러나 어렵게 찾아온 행복이 또다시 자신을 배신한 것과 사랑하는 사람이 허망하게 떠나버린 것을 슬퍼할 새도 없이, 리에에게 또 다른 혼란이 찾아온다. 다이스케의 제삿날에 찾아온 그의 친형이 영정을 보고는 그가 다이스케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에는 몇 년간 가족을 이루고 산,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은 남자의 이름을 하루아침에 빼앗긴다. 이제 다이스케는 미지의 존재를 지칭하는 ‘X’가 된다.
리에는 전에 이혼 소송을 도왔던 변호사 키도를 찾는다. 능력 있는 변호사인 키도는 이 사건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강한 끌림을 느껴 X의 발자취를 좇는다. 키도의 아내가 사건에만 열중하느라 그가 가족에 소홀해지고 어딘가 변한 것 같다며 불만을 표할 정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키도가 만난 사려 깊거나, 소름 끼치거나, 리에처럼 수수께끼를 마주한 사람들을 거쳐 마침내 X의 정체와 함께 왜 키도가 이 사건에 그토록 열심이었는지가 드러난다.
X는 살인자의 아들이다. 키도는 재일 3세다. 즉, 둘은 모두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나 필연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감당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 X는 자신에게 살인자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괴로워햇고, 키도는 심지어 장인어른조차 ‘자네는 다른 재일과는 달라’라고 말할 정도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했다. 두 사람 서사의 교차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면서, X가 다이스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건 자신의 의지로는 걷어낼 수 없는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기 위한 오롯한 선택이었음이 드러난다.
X의 선택, X에 대한 키도의 매혹, 그리고 재일조선인 키도가 X의 길을 따라간다는 결말부의 암시. 〈한 남자〉는 차별·낙인의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내면을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 문법과 결합한다. 그럼으로써 장르 문법을 그저 훌륭히 활용한 것을 넘어 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언제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될지 모르는 차별·낙인의 대상자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긴장감을 미스터리 장르 특유의 불편한 긴장감으로 변주해 펼쳐내는 것이다.
손가락질받는 소수자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연민과 공감의 정서는 〈한 남자〉가 갖는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미스터리와 드라마가 결합되었다고 하면 작위적 신파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남자〉는 소수자의 삶을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음으로써 그런 함정을 비켜 간다. 리에와 유토는 X의 과거를 알고도 그를 남편/아버지로 인정하고, 키도는 X의 용기에서 자신에게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즉, X에서 리에로, X에서 키도로 이어지고 확장되는 낙인찍힌 자의 서사는 미스터리의 긴장감과 드라마의 따뜻함이라는 이질적 대상을 매끄럽게 연결한다. 주제와 형식, 장르의 측면에서 한국 영화 〈화차〉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놀랍도록 매혹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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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로는 성공, '콘크리트 유토피아'로는 실패
사랑하는 수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망가진 세상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지완(이준영)이다. 활을 메고 있는 지완. 눈앞에 악어괴물이 보인다. 활시위를 당긴다. 악어에게 적중한다. 죽은 것 같다. 악어에게 다가가는 지완. 하지만 악어가 갑자기 살아나서 지완에게 달려온다. 질겁하는 지완. 근처에 있는 차에 잽싸게 숨는다. 위기에 처한 지완을 도와주는 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남산(마동석)이다. 악어의 목을 자른 남산. 악어 사체를 가지고 가서 마을 사람들과 식량을 나눈다. 남산 덕에 위기를 넘긴 지완. 지완과 남산은 가족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친한 사이다. 지완이 턱없이 어린 탓에 둘이 친구야?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남산은 정이 많다. 한편 지완이에겐 짝사랑하는 여자 애가 있다. 바로 수나(노정의)다.남산은 어릴 때 수나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어 안면이 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지완의 연애 이야기는 남산과 대화하기에 적합하다. 남산에게 수나 이야기만 하는 지완. 이 두 사람에 일상에 큰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수나가 양기수(이희준)에게 납치된 것이다. 무너진 세상. 남산과 지완, 그리고 또 다른 손님이 기수 일당의 본거지로 직진한다.
형은 좀비를 찢어
<황야>는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한 영화에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을 200% 활용한다. 우리가 마동석 배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가 액션스타라는 점이다. <황야>는 마동석 배우가 구현 가능한 액션을 전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각종 ‘~파이팅’이 다 있다. 총기액션, 나이프파이팅, 맨손 격투 등 온갖 방식으로 나쁜 놈들을 두들겨 팬다. 영화 줄거리도 이 액션 역량을 다 보여줄 수 있게끔 짜여 있다. 가령 빌런 무리들에겐 특별한 점이 있다. 이 부분을 주인공 일행이 금방 간파한다. 그러나 이 약점을 공략하기 전엔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마동석 배우의 액션연기로 채웠다. 그리고 디스토피아라는 설정은 주인공 남산이 총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음과 동시에 나쁜 놈들이 활개 치기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자잘한 요소들을 나름 근거를 제시하며 살려 액션 보는 맛이 좋다. 이 액션이 와일드하기만 하면 뭔가 맥이 빠질 것이다. 이에 당위성이 생긴 폭력 묘사가 극의 재미를 돋군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름 ‘마동석 액션영화’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바로 이은호 역을 맡은 안지혜 배우의 등장이 이것의 근거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설정 자체를 잘 살린 편은 아닌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생기는 이야기의 느슨함을 안지혜 배우의 액션연기로 끌고 간다. 처음부터 영화가 연출로 이 인물이 ‘중요해!’라고 강조한 것이다. 가령 이 이은호 캐릭터가 처음 등장할 때 장면을 보면 강렬하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에서 이은호 캐릭터가 이렇게 등장할 이유가 크게 있는 건 아니다. 장영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처럼 초반부에 등장해도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관객이 신선함을 느껴 주의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관객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연출을 보여줬다. 이후에도 <황야>의 이은호는 이 신선한 동력을 충분히 이행한다. 글쓴이는 첫 번째 공간을 바꾸고 나서 이 인물 중심으로 테이크를 길게 짠 장면을 최고로 뽑는다. 확실히 허명행 감독이 무술감독 출신이라 어떻게 해야 생동감이 사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 이 배우의 이 장면은 여태까지 본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 액션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용감한 시민
글쓴이는 이준영 배우를 좋아한다. 왜? 이 분 잘생겼는데 연기도 잘한다. <D.P>와 <마스크걸>에서 양아치 연기를 생각해 보면 뭔가 스테레오 타입의 나쁜 놈 같으면서도 자기만의 색이 굵었다. 그러나 글쓴이는 두 드라마보다 <용감한 시민>에서의 연기를 더 좋아한다. 이 <용감한 시민>에서 한수강이라는 인물 역시 액션이 중요했는데 시원시원하게 잘 소화한다. 본작 <황야>에서도 똑같이 액션연기를 보여주는데, 남산과 안지혜와는 다른 결의 액션을 보여준다. 이 두 인물과의 차이점을 눈 크게 뜨고 보면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는데 글쓴이는 이준영 배우가 디테일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황궁아파트
사실 액션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했던 것은 디스토피아 묘사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세계관을 공유한 작품답게 이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용하는 것은 대지진이다. 대지진이 일어난 지구. 당연히 온 세상은 폐허가 됐다. 시각적인 묘사에 있어 이 난장판을 잘 묘사했냐? 고 묻는다면 글쓴이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노란색으로 색감을 뺀 부분이나 무너진 건물을 구성하는 적지 않은 요소들까지 나름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글쓴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부산행>과 겹쳐 보이는 점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폐허가 된 세상을 묘사하는 데에는 좋았지만 고유의 색이 흘러넘친다고 보긴 어렵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디스토피아 묘사가 개성이 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관객들에겐 비판 요소로 읽힐 수도 있다.
어디서 봤는데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쓴이가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은 문제 해결 방식이다. 이 영화의 플롯을 대략적으로 써보겠다. 주인공이 있다. 이 주인공을 둘러싼 세상은 온갖 나쁜 놈들 천지다.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한다. 푸근하지만 주먹 하나는 살벌한 주인공이 이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 우리는 비슷한 플롯을 알고 있다.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다. 마동석 배우가 속해있는 빅펀치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시그니처를 못 보고 지나가도 ‘이거 그거 아닌가’ 느낄 수 있을 만큼 <황야>가 개성이 뚜렷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마동석 배우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러라고 캐스팅한 것 아닌가? 하지만 글쓴이는 ‘범죄도시’ 시리즈와의 기시감을 문제 해결 방식에서만 근거를 찾고 싶지 않다. 바로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가 있다. 이 캐릭터는 수많은 빌런들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이는데, 마동석 배우의 전작에서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심지어 유행어가 돼서 인기도 끌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황야>를 보고 생각한 점 중 하나는 이야기가 텅 비어 보인다는 점이다. 왜? 이 영화는 무언가를 시도하려다가 말았다. 이 시도하다 만 것은 장르적인 특성이다. 우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리즈의 전작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써볼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탐구한다. 이 아파트를 둘러싼 사람들을 양분해서 ‘한국 사람들은 이곳(아파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분명 의도가 있다. 바로 공동체가 지켜야 할 윤리의식을 한 집단 하의 두 사람(명화/영탁)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질문한다. 이것을 왜 아파트라는 배경을 통해 질문할까? 바로 우리 한국사회는 사는 곳으로 서로에게 편견과 혐오를 표현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출을 통해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외국영화 중 <블레이드 러너 2049>나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도 각각의 철학적인 물음을 건네는 영화다.
하지만 이 <황야>에는 그런 장르적인 특성이 안 보인다. 물론 몇 번 시도는 한 것 같다. 양기수(이희준) 배우의 캐릭터의 대사 몇 줄이나 영화에서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분명 어느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 대사 몇 줄 빼고는 문제를 심화시킨다거나 하는 장치가 많이 부족하다. 단지 주인공 일행을 위기에 더 밀어놓는 것 말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면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 <황야>의 내적 논리는 플롯 안에서 구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물들이 하는 몇 마디로 끝낸다. 이렇게 나사 빠진 토대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사건의 끝마무리가 깔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느껴졌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마무리가 된 것이다.
반쪽짜리 성공
이러다 보니 이 영화가 굳이 디스토피아라는 배경을 가져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만약 이게 범죄도시 7쯤 돼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뒤집어 패버리는 마석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솔직히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영화의 기획의도에 구멍이 생기는 결함이 된 것이다.
반대로 영화의 액션은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범죄도시 2>의 액션이 극찬받았던 이유는 사운드 덕분이다. <황야>는 <범죄도시 2>처럼 사운드를 살리고, 또 촬영에서도 카메라를 흔들지만 나름 동선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허명행 감독이 액션 하나는 정말 잘 살렸기 때문에 글쓴이는 <범죄도시 4>가 기대된다. 뭐 어차피 이 영화 각본 쓴 사람이 <범죄도시 4> 각본 쓴 것 아니잖아? 드라마가 어떻게든 보완이 됐을 테니 K-채드 스타헬스키(<존 윅 4>의 감독)가 허명행 감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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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쪽만큼 이상하진 않습니다만
6★/10★
〈괴인〉을 보고 난 후,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고 적힌 포스터의 질문에 “그래도 당신만큼 이상하진 않습니다”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주인공 기홍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말 못 할(혹은 인지하지도 못한) 이상한 구석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핵심이 기홍의 이상함에 있는 듯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종종 짜증을 유발하는 기홍의 이상함을 중요하게 다루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 이상한 남자가 먹고사는 방식과 주변 사람과 어울리는 방식에도 주목한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기홍에게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거나 그가 사회적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 즉 기홍의 이상함에는 별다른 변명거리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손가락질받기 쉬운 한국 남성의 부정적 전형성을 대체로 모두 갖추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기홍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대신, 그저 조금은 이상한 방식으로 그를 좇는다. “무관심했거나 혹은 미워했거나 심지어 두려워했던 타인이라 할지라도 긴 시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과연 기홍의 이상함을 다르게 바라볼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중년의 문턱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는 기홍은 인테리어 일을 하는 목수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2년쯤 됐고, 그전에는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이 남자, 거슬리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피아노 학원 인테리어 공사 중, 빠른 임금 지급을 요청하는 연장자 일용직에게 반말로 소리를 지른다거나 젊고 예쁜 피아노학원 원장에게 슬쩍 말을 놓으며 작업 중 쉬는 시간에 피아노를 쳐달라고 조르는 모습을 보라! 기홍의 친구 경준은 왜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냐고 묻지만, 기홍은 ‘네가 아직 노가다 세계를 몰라서 그런다’라고 핀잔을 준다. 다른 노동자들은 학원 원장의 피아노 연주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녀와 혹시라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은 기홍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디 이뿐인가. 직장을 다니는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기홍은 자기 수입을 말도 안 되게 부풀려 과장하고, 술집에서 합석한 초면의 여성에게는 대뜸 집에 놀러 오라고 어설픈 수작을 건다.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는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부모님과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동생을 두고 매정한 태도로 자리를 떠 가족을 속상하게 한다. 기홍의 이 모든 이상함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톤으로 그려진다. 그를 부러 나쁘게 보이게 만드려는 인위적 목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기홍의 리얼함은 여기서 나온다. 대부분의 출연진을 비전문 배우로 채운 것도 이러한 연출 의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것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일상의 모습을 닮은,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인 장면들이 현실적인 톤으로 펼쳐진다.
그러던 중 사건이 생긴다. 어느 날 자신의 승합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알게 된 기홍은 블랙박스를 통해 피아노 학원 공사 중에 누군가가 학원 건물에서 차 위로 뛰어내렸다는 걸 확인한다. 기홍은 그가 월세를 살고 있는 집주인 정환과 함께 용의자를 찾아 나선다. 길가에서 블랙박스에 촬영된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찾은 기홍은 자백을 받아내고 수리를 맡기려 그와 함께 카센터를 방문한다……. 그러나 이 일련의 사건들은 플롯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상함을 지닌 기홍이 다른 사람과 만나 관계 맺을 계기를 마련해주는 보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현재 직장이 없어 울적한 집주인 정환과 정환의 부인 현정, 기홍의 친구이지만 그와는 다른 결의 무게감을 가진 경준, 그리고 어딘가 선량한 구석이 있는 용의자 하나. 이들은 모두 나름의 이상함이 있다. 정환은 실없게 굴며 기홍에게 다가와 용의자를 찾는 일을 돕고, 하나는 그런 둘의 모습을 황당해하면서도 기홍에게 거리 두지 않는다. 경준은 허세만 잔뜩 깃든 친구 기홍과는 달리 성실하고 묵직한 태도로 차근히 일을 해나가려는 인물이다(요즘 같은 때, 이런 태도는 분명 ‘이상’하다). 하나는 충분히 기홍의 추궁을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이 범인이 맞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수리비까지 지불하겠다는 책임감을 보인다(마찬가지다).
기홍은 이들과의 관계에서 대체로 자신의 그 못난 이상함을 반복한다. 기홍의 이상함은 상대의 이상함과 맞물려 종종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면 그 이상함은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기홍의 이상함이 그렇듯 종종 해로운 효과를 자아낼지라도 말이다. 이상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이상한 케미는 자신에게 이상한 구석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상한 구석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상함의 이유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케미는 종종 그들의 이상함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차를 망가뜨린 용의자를 찾던 기홍은 막상 하나가 눈앞에 나타나자 마음이 약해진다. 하나가 자기 잘못을 적극적으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본 후 기홍은 형편이 좋지 않은 하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듯싶다. 이외에도 영화에는 문제 많은 기홍의 의외의 면모에 마음이 열게 되는 몇몇 순간이 있다. 이 열림은 우리 모두가 이상하다는 것을 불가피한 조건으로 받아들인 이후에 가능해진다. 만약 기홍의 이상함을 너무 성급히 본질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그를 계속 바라보기를 거부했다면 이 열림의 순간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케미를 온전히 갈무리하지 않은 채 끝난다. 그저 눈살 찌푸려지는 한 남자의 이상함이 언제나 문제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그런 그에게도 종종 “다르게 보일” 만한 면모가 있다고, 그리하여 이 불편한 남자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질문, “당신도 나처럼 이상하잖아요”라는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그쪽만큼 이상하진 않습니다만 마음은 조금 열렸습니다.”
덧. 기홍이 왜 이상하다는 건지 모르겠다면, 당신 문제 있다. 아니, 이상하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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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2011)> 리뷰
바쁜 나날이 계속되다 보니 머리를 비우고 일상을 까맣게 잊을 팝콘 무비가 간절했다. 아마 적당한 블록버스터를 보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나는 어쩐 일인지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라이크 크레이지>를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이 영화는 내 한 시간 반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감각적이면서도 일상적이고, 스크린 속에 존재하는 세상임에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다른 영화처럼 정확한 대본을 두 주연 배우에게 주는 대신, 50페이지 분량의 간략한 스토리 라인만을 제공한 게 전부였다는 제작 비하인드가 어쩌면 이 영화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처: 다음 영화 포토영화의 뼈대가 되는 시놉시스는 이렇다. LA에서 영국 여자 애나(펠리시티 존스)와 미국 남자 제이콥(안톤 옐친)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순간의 사랑을 연장시키고픈 욕심에 애나의 학생 비자의 최대 체류일을 무시한 두 사람의 연애는 난항을 겪게 된다. 단순히 여행 목적으로도 미국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된 애나와 제이콥은 의도치 않게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자신이 없는 기간이 길어짐에도 여전히 충만하게 일상을 살고 있는 애나의 런던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고 멀어지지만, 애나는 제이콥의 공간에 발 딛지도 못한 채 잠시간의 만남과 더 긴 이별을 극복해야만 한다. LA에서 격정적으로 타올랐던 사랑은 점차 추동력을 잃어간다. 자신의 언어로 상대를 기록하고, 힘껏 가구를 만들어 주었던 원동력은 시간과 함께 흩어진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한 번쯤 해 보았을 질문을 여기서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대체 뭘까? 사랑을 이루는 구성 요소는 무엇이며, 그 구성 요소 중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고, 작품마다 각기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서사를 부여한다. 다만, 대개 로맨스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이 피어나는 과정을 집요하게 잡아내 아름답게 그려낸다는 것을 주요 특징으로 삼는다. 아마도 영화는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이 투영된 콘텐츠이며,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피어난 사랑을 완벽하게 쟁취해내는 모습을 조명하는 편이 관객들의 감정을 고양시키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라이크 크레이지>는 다르다. 감독이 영상에 담아내는 것은 사랑이 죽어가는 과정이다.
출처: 다음 영화 포토영화 초반부의 꿈결 같은 한때는 지독하리만큼 짧았다.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겠으나, 자꾸만 흔들리는 카메라의 시선은 둘의 관계가 어쩐지 불안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특별한 서사 없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나열되었던 일상적인 숏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격렬하고 짧은 지를 대변한다. 하지만 동시에, 둘이 빠르게 스며들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이유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한다. LA에서 보낸 시간은 애나와 제이콥이 서로를 완벽하게 점유했던 시절이다. 시공간과 연인이 하나가 되어 자신의 삶 곧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애나와 제이콥이 욕심껏 시간을 연장하자 두 사람이 넘어야 하는 것은 비단 시간뿐이 아니라 공간으로 확장되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애나와 제이콥의 사랑은 남은 러닝타임 동안 느리게 질식한다. 서로의 삶이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존재하자 공유할 수 있는 세계가 점차 좁아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비행기로 오가는 시간과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결국, 인내가 각인된 팔찌는 희망이 부식되었을 때 끝내 달아나고, 끊어진다.
그렇다, 애나와 제이콥의 관계에서 태어난 사랑이란 감정은 영화 내에서 거듭 자신의 이름을 바꾼다. 한때는 미칠 듯 격렬한 열정이었고, 결혼을 통해 되찾고자 했던 미련이기도 했다. 애나와 제이콥이 안쓰럽기도 하고, 공감이 가는 까닭은 두 사람이 꺼져가는 사랑을 살리기 위해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애나가 미국에 갈 수 없는 시간이 기약 없이 늘어지고, 그나마 붙잡았던 희망조차 절망으로 돌아올 뿐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다 보면, 상대방에게 이제 그만하고 서로를 놓아주자는 말을 쉽사리 할 수 없는 머뭇거림을 이해하게 된다. 연인을 포기한다는 건, 단순히 그가 내 미래에서 퇴장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으므로. 온 삶을 공유했던 이와의 이별은 그와 사랑을 나눴던 자신의 청춘과 미래를 약속하며 아등바등 노력했던 시간이 함께 침몰한다는 걸 뜻하지 않던가.
출처: 다음 영화 포토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어쩌면 사랑이란 두 연인의 세계가 합일되는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달콤한 시간을 경험했기에 애나와 제이콥은 서로를 차마 놓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언뜻 성가시게 느껴지는 짐이 되어 있다고 느끼면서도 상대방은 곧 자신이었으므로. 그러나 사랑은 인내심이 없어 둘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더 이상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사랑은 죽어갔다. 이 사실을 외면하는 건 그저 사망 선고의 지연에 불과하다. 더욱 비극적인 건, 실체가 사라진 감정은 둘을 붙잡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두 사람이 유령이 된 사랑에 매여 있던 시간이 길었을 뿐.
끊어진 사랑의 고리를 잇고자 했던 애나는 다시금 미국으로 향하고, 제이콥은 샘(제니퍼 로렌스)과 헤어지지만, 애나와 제이콥이 마주하게 되는 건 너무도 깊고도 푸른 허무, 오로지 그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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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함께> 시리즈 속 지친 삶을 위로하는 명대사 공개!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신과함께- 죄와 벌>과, 영화 <신과함께-인과 연>이 1월 재개봉되며 영화 속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로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인기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과함께> 시리즈는 저승에서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신과함께-죄와 벌>과 환생이 약속된 마지막 49번째 재판을 앞둔 저승 삼차사가 그들의 천 년 전 과거를 기억하는 성주신을 만나 이승과 저승, 과거를 넘나들며 잃어버린 비밀의 연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신과함께-인과 연> 2편으로 각각 1,440만 명, 1,227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시리즈 모두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다.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는 3편과 4편 제작 소식을 알리기도 해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신기록과 완성도 높은 CG를 자랑하는 영화 <신과함께>의 후속편을 기대하며 재개봉한 영화 <신과함께> 주인공들의 다양한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 하지 말자" - 수홍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에서 ‘수홍’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력으로 뜨거운 호평을 받은 김동욱 배우는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자”라는 명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진한 울림을 선사했다. 극 중 자신의 형 ‘자홍’을 먼저 떠나 보낸 후 원망과 그리움이 사무친 마음을 표현한 이 대사는, 많은 관객들의 기억 속 삶에 위로가 되는 명대사로 남아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도, 지금 김자홍 씨처럼 저승 와서 말할 때 보면 다 예쁜 추억이 되어있어요" – 덕춘
러블리한 매력과 섬세한 연기력으로 ‘덕춘’역을 완벽히 소화한 김향기 배우의 아름다운 명대사도 돋보인다. ‘덕춘’의 대사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도 지금 김자홍 씨처럼 저승 와서 말할 때 보면 다 예쁜 추억이 되어있어요”는 관객들을 긍정적인 사고로 가득 채워준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요즘, 힘을 북돋아주는 덕춘의 명대사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쁜 인간은 없다는거, 나쁜 상황이 있는거지" – 성주신
저승차사 출신의 집을 지키는 ‘성주신’역할을 맡은 마동석 배우도 주옥 같은 명대사로 수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강한 인상의 ‘성주신’이 나지막이 전하는 속 깊은 대사 “나쁜 인간은 없다는거, 나쁜 상황이 있는거지”는 삭막한 세상 속 타인의 상황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영화 <신과함께> 3편 촬영은 올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지난 1월 7일과 21일 재개봉하여 지금 전국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영화 <신과함께>시리즈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우리의 마음을 위로 받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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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고통과 비극, 그 속에 남겨진 사랑을 건져올리며
* 이 리뷰는 영화 <그을린 사랑>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을린 사랑>은 쌍둥이 남매에게 도착한 편지 한 통으로 시작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나왈 마르완. 쌍둥이 시몬과 잔느의 어머니다. 나왈 마르완이 최근 유명을 달리하며 쌍둥이에게 유서를 남긴 것이다. 유서에는 자신의 시신을 엎어달라, 비석에 비문도 새기지 말라는 충격적인 부탁이 단호하지만 간결한 어투로 쓰여있다. 나왈은 쌍둥이에게 한 가지 부탁을 더 남긴다. 두 통의 편지를 주인에게 전해주라는 것. 한 통의 편지는 쌍둥이의 형이자 오빠, 또 다른 한 통은 쌍둥이의 아버지에게 남긴 것이다.
쌍둥이는 어머니로부터 생전에 자신들에게 이부형제가 있다는 사실은 물론,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도 듣지 못했기에 이 부탁을 다소 황당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공증인은 쌍둥이가 어머니의 유언대로 편지를 전달하고 나면 제대로 장례를 치러도 된다는 이야기를 마저 전해준다. 시몬은 분노한다. 시몬은 나왈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남들처럼 장례도 치르고 비석도 새길 것이라 하지만, 잔느는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한다. 그렇게 잔느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의 편지와 여권을 받아, 어머니가 살았던 고향으로 떠난다.
어머니가 아닌 나왈 마르완을 찾아
쌍둥이를 낳고 기른 어머니의 이름은 나왈 마르완.
쌍둥이는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평생을 함께 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 잔느는 어머니 나왈 마르완의 고향에 도착해 어머니가 남긴 흔적들을 차츰 찾아간다. 영화는 잔느의 발걸음과 오래 전 나왈의 발걸음을 교차하여 보여주며,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되짚어준다.
사막, 비포장 도로가 널리 펼쳐진 뜨거운 중동 한복판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왈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와합이라는 무슬림 난민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아이를 가지게 되고 도망치려 하지만 가족에게 발각당해 명예 살인 당할 위험에 처한다. 와합은 목숨을 잃지만 나왈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아이를 잃게 된다.
나왈은 아이 고아원에 보내면서 발 뒷꿈치에 문신을 새긴다. 점 세 개가 일렬로 늘어선 모양의 문신을 통해 아들과 언제라도 다시 만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이후 나왈은 대학에 진학하지만, 점차 내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이가 있는 지역까지 내전이 번져오자, 나왈은 아이를 구해오기 위해 내전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사라진 아이와 옮겨온 분노
<그을린 사랑>은 가상의 중동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첨예한 종교 갈등과 내전 상황을 통해 레바논 내전을 모티프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와 무슬림의 첨예한 갈등이 반복되던 당시, 두 집단은 서로에게 학살에 가까운 복수를 일삼는다.
나왈은 난민 캠프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기독교군에게 습격을 당하고, 기독교인임을 밝힌 나왈을 제외한 모두가 살해 당한다. 특히 나왈은 버스에 타고 있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엄마인 척 하지만, 기독교군은 이를 비웃듯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가는 어린 소녀에게도 총구를 겨눈다. 총에는 신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나왈의 아이가 있던 고아원도 흔적도 없이 불 타 있다. 나왈이 타고 온 버스도, 그 안에 타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불타는 버스, 사라진 아이, 잿더미가 된 마을 안에서 분노는 나왈을 집어삼킨다. 이후 나왈은 복수를 꿈꾸며 반란군에게 합류해, 기독교 인사를 살해하려다 붙잡혀, 감옥에 수감된다.
노래하는 여인
정치범들이 수감되는 감옥 안에서 나왈은 무려 15년 동안 수감된다. 의연한 표정, 투신하지 않는 꼿꼿함,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하는 나왈의 모습에 감옥 속 이들은 나왈을 "노래하는 여인"이라 기억한다. 하지만 나왈에겐 노래를 멈추지 못한 이유가 있다. 감옥 안에서 울리는 타인들의 비명 소리, 고문 소리. 반복적으 이루어진 잔인한 고문과 강간. 그 안에서 나왈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 했던 것이다. 결국 나왈은 고문관이었던 아부 타렉의 성폭행으로 아이를 임신하고 감옥에서 출산하게 된다.
두 통의 편지, 한 명의 주인
잔느와 시몬은 나왈이 감옥 안에서 출산한 아이가 자신들의 형이자 오빠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왈의 출산을 도왔던 간호사를 통해 나왈이 출산한 아이들이 자신임을 알게 된다. 시몬은 나왈이 함께 일했던 반란군의 수장을 만나는데 성공하고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만류에도 진실을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시몬은 자신의 형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고아원에서 군 조직으로 가, 군사로 키워졌다는 것.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했다는 것. 그리고 이후 고문관이 되어 감옥으로 향했다는 것. 그리고 이름을 "아부 타렉"으로 바꿨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나왈이 쓴 두 통의 편지의 주인은 단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왈은 죽기 전, 캐나다에서 자신의 아이를 마주한다.
발 뒷꿈치에 새겨진 문신을 보고 다가갔던 나왈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지만, 아부 타렉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왈을 알아보지 못한다. 나왈은 편지에 그 사실을 적는다. 당신으로 인해 아이를 낳았고, 고통스럽고 괴로웠지만 자신이 낳은 쌍둥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또 다른 고백을 한다.
이 비극을 덤덤히 밝히는 동시에, 여전히 자신의 아들을 사랑한다고. 네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하기로 했던 것처럼 여전히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며 아부 타렉을 용서한다.
진실을 마주한 뒤 분노와 고통 속에 남겨진 쌍둥이들에게도 편지를 남긴다. 너희 아버지이자 형이자 오빠를 가졌을 때, 그 시작은 분명히 사랑이었다고. 그러니 너희는 증오와 고통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태어난 이들이라고. 사랑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과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2시간 넘게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관 곳곳에서는 한숨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는 비극 속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나왈은 이 고백을 통해 대를 이은 비극의 뿌리를 끊고 싶었을 것이다.
지키지 못했던 아들은 폭력의 도구가 되어 자신의 앞에 나타났고, 아이들은 고통 속에서 잉태되었다.
언젠가 드러날 진실은 나왈이 낳고, 사랑했던 자식 모두를 상처 입히고 나왈이 겪었던 오랜 고통을 다시 반복시켰을 것이다.
독방에 갇혀 15년을 보냈던 나왈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갇혀 보낼 것이다.
나왈은 이를 끊어내기 위해 고백을 택한 것이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비극에 휘말려 서로를 훼손한 가족들이, 이 삶을 형벌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더는 이러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마음을 걷어내고 비극으로 불탄 삶 속에서 한 줌 재가 된 사랑과 애정을 건져냈던 것이다.
더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나왈이 남긴 사랑이라는 거대한 마음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했습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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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의사는 “여전히” 경험이 없는지 질문하며 비웃듯 갱년기를 진단한다.
처방받은 호르몬 패치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이상해지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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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각과 머릿 속 공상이 생생히 살아나며 그동안과 다른 자유를 맛보게 되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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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컴패니언> 1차 예고편
로맨틱한 저녁식사에 갑자기 🩸🩸🩸 ?! 통제불가 로맨스 [컴패니언] #companion #컴패니언 #드류행콕 감독 #2025년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