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04 23:49:27
한 입 베어 물어 보면
영화 <은빛 살구> 리뷰
SYNOPSIS.
퇴근 후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나애진). 남자 친구 ‘경현’(강봉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울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 준비가 쉽지 않다. 이에 엄마 ‘미영’(박현숙)은 이혼할 때 ‘영주’(안석환)에게 받은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건네주고, ‘정서’는 아버지 ‘영주’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 벌교횟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가깝지만 먼, 낯선 가족들의 욕망에 휘말리게 되는데…
POINT.
✔️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가 맛깔나는 작품. 주연 나애진 배우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시상헀으며, (대단한 거 알았지만 역시나 너무나도) 대단한 안석환/박현숙 배우의 호연도.
✔️ 그리고 이 호연은 촘촘하게 설정된 캐릭터와 미술이 있기에 가능. 저기 어디 사는 누구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들.
✔️ 묵호라는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한, 좋은 로컬시네마
✔️ 음악감독 김사월. 상서롭고 신비롭게 퍼지는 음악과 중간중간 색소폰 소리, 엔딩크레딧에서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 어쩌면 우리가 '한국 독립영화'에 기대하는 건 바로 이런 영화 같기도!
✔️ 영화는 1월 15일 개봉합니다.

혈연이라는 말의 무게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들 중에 '피가 당긴다'는 말이 있다. 대충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어감에 더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을 만큼 속절 없이 끌린다는 어감으로 쓴다. (비록 구글 검색 결과는 고혈압이 나왔지만... 종종 들어본 말이다. 나만 들은 건 아니겠지?) 그런가 하면 부모자식처럼 혈연으로 가까운 사이를 더러는 '피붙이'라고도 한다. 늘 그렇다. 피라는 단어는 끈끈한 단어들과 접착력이 좋다. 비록 실제 피는 매우 주의해서 섞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서 가족영화에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작게나마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조합이다. 보통 뱀파이어물에 가족을 작게 붙이는 형태에 더 익숙한 우리에게 상당히 생소한데도 말이다. 가족은 사랑과 돌봄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여야 하기에 많은 경우 간과되지만, 사랑 없이 돌봄의 역할만 부여하는 것은 결국 고혈을 빨아먹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정서가 업무 전후 시간에 틈틈이 그리는 웹툰에 등장한다. 포털에 웹툰을 연재하며 언젠가 웹툰 작가로 대박 날 꿈을 꾸는 동시에, 디자인 회사에서 비정규직 자리를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다. 익숙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다. 청약을 발판 삼아 결혼을 준비하고, 지금 하는 일과 양립 가능한 파이프라인을 찾고... 그러나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모습이.

어찌저찌 피붙이라는 말에 걸치기는 하지만, 혈연 관계가 애매한 새 가족이 섞여 있고, 그나마 그들을 보지 않은 시간도 꽤나 길었다. 그 어색한 관계 위에, 영화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진 각자의 욕망과 각자의 계산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아무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그걸 거부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자기 속내를 언제 드러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어쩐지 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조금 촌극처럼 보인다. 이는 정서의 예비 남편인 경현까지 등장하면서 극에 달한다.

가짜처럼 뻣뻣한 법적 '진짜'와
어떻게 보면 정해진 듯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광경이다. 청약이 당첨된 아파트를 위해 계약금을 마련해야 하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부모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온 역사를 관망하게 되고, 다소 현타가 오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친구들 앞에서는 또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아무튼 돈은 필요하니까 예비 신부를 달래 가며, 한우와 과일을 사서 재빨리 달려오는 남자친구의 모습까지.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자꾸 불화한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혈연을 기반으로 한 아빠-정서의 관계 혹은 엄마-정서의 관계, 혼인이라는 법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혹은 했던) 아빠-엄마의 관계, 아빠-새엄마의 관계, 경현-정서의 관계가 각각 뱀파이어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차용증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엄마와 아빠도 그렇다. 아빠와 헤어지고 열심히 일하면서 정서를 키운 엄마의 역할은 누가 보아도 톡톡했을 것이고, 아빠 또한 나름대로 용돈이나 다른 방법들로 정서와의 혈연을 자연스럽게 연장해 나간다. 이들은 딸에 대해 의무가 있음을 알고 있고 또 가끔은 권리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차용증 때문인지 다소 역할극처럼 뻣뻣하다.

경현과 정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마루와 강아지 같은 부드럽고 희망적인 일상어들을 사용해 미래를 설계하지만, 아파트 하나만 빠지면 훅 위태로워질 관계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차이, 안정적 삶을 위해 회사를 버티고는 있지만 사실 그 안에서 포기한 각자의 꿈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점 등이 하중을 보탠다.

진정성 있는 '가짜'와
애초에 별로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시작했고, 서운하면 "가짜 언니"를 운운하고, 멀리 산 시간이 있어 서로 신뢰가 깊지 않음에도, 오히려 정서-정해 자매의 관계 쪽이 좀더 가족의 바이브를 풍긴다. 이들을 가족으로 묶어낸 것은 공간을 공유했다는 것 하나 뿐이다. 심지어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들은 공간을 공유한 상대의 시간을 미루어 보며 친근감을 느낀다.
정서가 고향 집에 두고 간 것들을 정해도 먹고 자랐다. 정서가 본 영화 제목에서 거북이 이름을 따 오고, 오래된 만화책을 쌓아 놓던 언니가 그린 웹툰에 좋아요를 꼬박꼬박 누른다. 담배나 남자친구처럼 아직은 부모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언니의 그림자를 느끼며 살았다. 정서 또한 자신이 거쳐 온 시간과 중간중간 닮아 있는 정해가 아주 먼 존재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얼핏 대조적인 것 같지만 사실 둘 다 각자의 삶에 매여 있는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제법 괜찮은 자매의 모습처럼 보인다.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 혈연은 중요한 요소지만 혈연이 다는 아니라는 문장은 이제 진부하지만, 여기서도 명확히 느껴진다.

내 안의 '진짜'와 '가짜'
사실 피를 빼앗기기도 하고 내어주기도 하는 뱀파이어는, 피의 이동 방향만 놓고 보면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촌극처럼 뻣뻣한 장면을 연출하는 관계가 있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녹아든 면을 보여주는 관계가 있지만, 전자가 절대악이고 후자만이 진짜인 것은 아니다. 가족은 그냥.... 그런 것이다. 늘 진심이기만 한 관계는 없다.
여기에는 우선 정서의 내부에도 '진짜'와 '가짜'가 오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 이 사회에서 사는 우리 모두 실은 진정성을 품을 때와 적당히 뻣뻣할 때가 있는 존재라는 이유도 있다. 자본이 사람을 얽어매고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이 첨단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진짜 원하는 모습도 아니라 그냥 '남들 다 그러고 사니까' 정도의 감각을 갖기 위해서 자아의 어떤 부분을 버려야만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서의 가족에서는 차용증이라는 형태로 매우 명백히 드러났고, 그만큼 아빠의 욕망이 유난히 두드러지지만... 사실 그 감정 자체는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다. 오랜 친구, 결혼을 약속한 연인, 가족의 관계에서도 이는 온전히 예외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아는 영영 버려지지 않는다. 지금은 환멸밖에 남지 않은 정서의 아빠와 엄마 사이 같지만, 어렸던 정서에게 아빠가 남긴 색소폰 연주 CD에 얽힌 추억을 말하는 엄마는 분명 빛바랜 사랑과 오랜 상처까지 스산하게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는 사랑만을 가득 끌어안고 있었을 사람. 지금은 욕망의 폭주 기관차처럼 살고 있는 아빠는 뿌리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또한 생선 머리를 단숨에 잘라 피가 배지 않도록 회를 치는 기백을 정서에게 물려준 사람으로서, 그 열정을 사랑으로 승화했던 시간이 있었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운 은빛 단면이 우리의 살갗에 끊임없이 느껴지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은빛 살구라고 하지만, 은행에는 고소한 속살이 있듯이.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말과,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에 강렬하게 깔리는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게 마치 정서의 은행 속살 같아서. 김치찌개에 먹는 밥 두 그릇 같아서.
어린 시절을 묵호에서 보낸 정서의 그림에는 곰치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등장한다. 졸업 작품을 큰 돈 들여 구매하는 아빠나 물고기 위에 기어이 매직펜으로 정서의 이름을 적게 만드는 엄마나, 둘 다 정서의 마음 가까이에 있지 않은 건 매한가지지만, 정서의 물고기들은 붉은 피를 넘어서 푸르게 생동할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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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 '확신'이 될 수 있을까?
-이 리뷰에는 시리즈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의 주요 결정을 할 때 우리는 ‘감’ 혹은 ‘확신’이라는 걸 느낀다. 그 선택을 하지 말라는 혹은 선택하라는 느낌. 그건 아주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할 수도 있다. 그동안 내가 보고 들었던 것과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면 더 좋다고 이야기한 여러 근거들을 바탕으로 어떤 결정을 한다. 바로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통해 우리는 ‘확신’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고 믿는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여러 확신할만한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충분히 근거를 들며 설명할 수 있고, 또 꺼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편하다.
반대로 어떤 순간에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건 없지만 그냥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감’ 이 작동할 때다. 여기엔 내세울만한 근거가 없다. 그저 과거 자신의 경험 속에 녹아들어 있는 느낌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순간이다. 그건 ‘확신’은 아니지만, 그 느낌은 우리가 그것을 ’ 확신‘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무 근거도 없지만 그냥 그 느낌을 믿고 선택을 한다. 그것이 옳은 선택일 수도, 나쁜 선택일 수도 있다. ’ 확신‘과 ’ 감‘ 으로 선택한 것들 모두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 O 난감>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판단할 때, ‘감’ 혹은 ‘확신’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분명 옳은 길이라 생각하고 선택하지만 이들이 만난 감정들은 인물 자신들에게 계속 혼란이라는 것을 던져준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맞다고 확신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진짜 맞는지 계속 의심하게 된다. 평범한 대학생 이탕(최우석), 강력계 형사 장난감(손석구) 그리고 연쇄살인마 송촌(이희준)이 가진 ‘감’ 혹은 ‘확신’은 정말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감정 - 대학생 이탕의 '감'
이탕은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괴롭힘을 당하는 힘없는 피해자였고 대학교에 가서도 어떤 식으로 살아갈야할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겐 특별한 목표도 없고 그저 학교에 다니면서 알바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던 어느 날 그는 진상 손님을 만나고 얼마 후, 그 손님과 같이 있던 일행과 길에서 다툼을 벌인다. 그리고 들고 있던 망치로 상대의 머리를 쳐 죽음에 이르게 한다. 평범했던 그가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 이후 이탕에게는 특별한 '감'이 생긴다.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이탕이 처음 죽였던 남자가 알고 보니 연쇄살인범이었고, 두 번째로 죽이게 된 여자 역시 알고 보니 살인범이었다. 그가 가진 '감'은 지나가다가도 문득 범죄자의 느낌을 받고 돌아보며 새로운 살인 대상을 찾는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이탕은 그런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돌아다닌다. 여기엔 조력자인 노빈(김요한)의 도움이 있었다. 노빈은 자신의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으로 범죄 대상을 물색하거나 증거를 없애고, 이탕이 살아갈 수 있게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탕은 자신의 감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저 지나가다 어떤 느낌 만으로 죽일 상대를 찾아낸다. 조력자인 노빈의 도움이 있지만, 그건 살인 대상을 찾은 이후에 벌어진다. 어쨌든 이탕이 죽인 모든 사람은 강력한 범죄의 가해자들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받은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죽어 마땅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확신'없이 벌어진 그 살인들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걸 지켜보는 일반 사람들에게 그게 영웅적인 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탕이 자신이 하는 살인들에 자신 없어하는 것도,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 있다. 그저 '감'만으로 살인을 하는 것,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괴물이 되어야만 하는 평범한 학생 이탕은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계속 허우적댄다.
두 번째 감정 - 전직 형사 송촌의 '감'
이 시리즈의 최대 빌런인 송촌은 전직 형사였다. 그는 살인범이었던 아버지의 과오를 바로 잡고자 형사에 지원해 좋은 형사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경찰 내부의 시선이 그렇게 곱지 않다. 특히나 가장 좋지 않게 보는 건 장난감 형사의 아버지다. 어떤 사건을 거친 이후 그 역시 조력자 노빈을 만난다. 그리고 그는 노빈의 도움으로 나쁜 범죄자를 죽이면서 살인 행위를 이어간다. 송촌 역시 자신만이 가진 '감'으로 범죄자를 찾고 응징한다. 그가 가진 '감'은 그가 형사로서 가진 것이기도 하고, 그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송촌은 새롭게 영웅 노릇을 하는 이탕이라는 인물을 만나서 상대가 가진 '감'에 대해서 묻는다는 것이다. 송촌은 이탕에게 죽일 상대가 범죄자라는 '확신'이 있는지 묻는다. 송촌이라는 인물은 자신이 물색한 상대를 죽일 때 상대가 범죄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형사적인 느낌과 감으로 판단해 실행할 뿐이다. 그래서 송촌은 오랜 기간 그런 살인을 해오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송촌 역시 '확신'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살인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그가 멈추는 건 자신의 '감'이 틀렸거나 이제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송촌은 자신의 끔찍한 행위들을 정당화할 '확신'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전까지 그는 '감'에 따라 누군가를 추적하거나 살인을 해나간다. 그가 이야기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건, 그가 가진 '감'이 무서울 만큼 꽤나 정확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탕의 '감'과 송촌의 '감'은 무엇이 다른 걸까. 결국 두 사람의 그 느낌 때문에 그들의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세 번째 감정 - 현직 형사 장난감의 '감'
형사 장난감은 다신이 맡은 구역에서 벌어지는 살인들을 보고 그것에 이탕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자신의 '감'으로 '확신'한다. 그래서 이탕이 일했던 편의점을 몇 번이나 방문해서 이탕에 대해서 조사하고 이미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른 각도로 살펴본다. 하지만 그는 이탕이 살인을 했다는 증거나 목격자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이탕이 살인범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장난감 형사는 무엇 때문에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건 그만의 '감'이 있기 때문이다. 형사로서의 '감'이 그에게 이탕이 살인범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사실 장난감 형사는 송촌 역시 추적하고 있다. 이탕과 마찬가지로 송촌이 영웅 놀이를 하고 있는 살인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탕이 송촌과 같은 분류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형사로서의 '감'만 있을 뿐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추적하는 힘이 떨어지게 되는 것도 그가 가진 증거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역시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말미, 장난감 형사는 어떤 사건 때문에 분노에 가득 차 송촌을 죽이려 한다. 그가 가진 '확신'은 '분노'와 함께 뒤섞여 엄청난 감정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만약 그 에너지를 이기지 못해 그가 살인을 한다면 그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되면 결국 이탕, 송촌과 장난감의 행동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가.
시리즈 <살인자O난감>은 '감'이 만들어내는 '확신'이 얼마나 약해빠진 것인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아무 증거도 없이 자신들의 '감'을 '확신'으로 바꿔 살인을 행하거나 누군가를 잡으려 한다.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 세 인물 모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지 못했다. 이탕, 송촌, 장난감을 각각 대비시키던 시리즈는 이야기의 후반부에 세 인물을 한 곳에 몰아넣어두고 어떤 것이 맞는지 보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감'이 더 믿을만한가. 그 '감'은 진짜인가.
이 이야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감'을 느끼면, '행동'으로 옮기고 그 결과에 '확신'을 가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하고 있을 이 감정의 프로세스가 과연 정말 옳은 것인지, 맞게 하고 있는 것인지, 시리즈 <살인자O난감>이 재차 묻고 있다. 세 인물이 가진 능력이 진짜 초능력인지 아니면 그냥 느낌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지만, 이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본 모든 사람들은 '감'으로 '확신'한다. 이들의 능력이 진짜라는 것을.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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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챔피언처럼 임하는 자세
아주 오랜만에 늦은밤까지 열정적으로 올림픽을 보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남자양궁 단체전에서 김우진 선수와 엘리슨 선수의 경기는 그야 말로 심장을 뛰게 하는 경기였다. ‘ 어? 대한민국이 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슛오프에서 4.9mm차이로 금메달을 딴 순간은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영화관계자인 지인이 ‘이게 현실인데, 이렇게 시나리오 쓰면 욕먹을 것 같다.’ 고 말할 만큼 감동적이고 울컥한 순간이 많이 연출된 올림픽. 그래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올림픽의 스토리는 자주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은 국민적 무관심 속에 출전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올림픽 2연패의 주역인 최고의 핸드볼 선수 미숙, 그러나 온 몸을 바쳐 뛴 소속팀이 해체되자, 그녀는 인생의 전부였던 핸드볼을 접고 생계를 위해 대형 마트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일본 프로팀의 잘나가는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던 혜경은 위기에 처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대행으로 귀국한다. 팀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인 미숙을 비롯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노장 선수들을 하나 둘 불러모은다.
실제로 영화의 모티브였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소집부터 난관이었다. 당시 여자 핸드볼 실업팀은 5개, 국가대표 선수 일당은 2만 원에 불과했는데, 선수가 모자라 은퇴한 선수까지 불러들여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여자 핸드볼 감독으로 활약 중이던 임오경 선수 투입을 시작으로 오성옥, 오영란 선수 등이 합류해 훈련에 돌입했다고 한다.
혜경은 초반부터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전력 강화에 힘쓰지만 그녀의 독선적인 스타일은 개성 강한 신진 선수들과 불화를 야기하고 급기야 노장 선수들과 신진 선수들간의 몸싸움으로까지 번진다. 이에 협회위원장은 선수들과의 불화와 여자라는 점을 문제 삼아 혜경을 감독대행에서 경질시키고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 안승필을 신임 감독으로 임명한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중요했던 혜경이지만, 미숙의 만류와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감독이 아닌 선수로 팀에 복귀해 명예 회복에 나선다.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뒤로하고 이제 감독으로의 성공적인 전향을 꿈꾸는 승필. 그는 선수들을 배려하지 않은 과학적인 프로그램과 유럽식 훈련 방식을 무리하게 도입해 한국형 핸드볼이 몸에 익은 노장 선수들과 갈등을 유발하고 오히려 대표팀의 전력마저 저하시킨다. 심지어 혜경과의 갈등으로 미숙 마저 태릉을 떠나버리고 대표팀은 남자고등학생 선수들과의 평가전에서도 졸전을 펼친다. 미숙의 무단이탈을 문제 삼아 엔트리에서 제외하겠다고 공표하는 승필. 안타까운 혜경은 불암산 등반 훈련에서 자신이 먼저 완주하면 미숙의 엔트리 자격 박탈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한다. 혜경은 미숙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리고 승필은 그런 그녀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는데… 결국 혜경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의 노력으로 미숙은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고, 승필과 신진 선수들도 그녀들의 핸드볼에 대한 근성과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려는 투지를 인정하게 된다. 마침내 최고의 팀웍으로 뭉친 그들은 다시 한번 세계 재패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아테네로 향한다.
그렇게 출전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리 여자 배구 선수들은,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7경기에서 맹활약을 보여주며 마지막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는 19번의 동점과 2번의 연장전을 치르며 온 국민에게 투지를 보여줬고, 마지막 승부 던지기까지 숨 막히는 승부를 보여주며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이미 결말을 알고 보기 대부분이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으로는 호기심을 주기가 어렵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문소리, 김정은 등의 여배우들이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로 완벽하게 변신, 경기 장면을 역동적으로 재현해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어떤 메달을 받던지 색에 상관없이 축하하고, 메달을 따지 못했더라도,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묵묵히 견디며 지나온 시간을
응원하지만 예전에는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죄인이 된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당시 여자핸드볼 선수단의 은메달은 그 과정자체가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색이 무슨 차이가 있나. 무슨 소용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4 파리 남자양궁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딴 엘리슨 선수의 인터뷰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슛오프에서 김우진이 간발의 차로 이겼다고 속상하지 않다. 오랫동안 꿈꾸던 경기였다. 김우진과 나는 챔피언처럼 쐈고 그게 중요하다.” 메달의 색으로 나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고, 기나긴 시간을 묵묵히 지나온 경쟁자이나 동료인 상대선수의 최선 또한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 진짜 챔피언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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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2046년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는 작가 '차우'는 평소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고 많은 여성과 일회적인 만남만 지속한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바이양'과도 육체적인 관계만 즐기지만 '바이양'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호텔 사장의 딸 '징웬'의 도움을 받아 소설을 함께 쓰기 시작한 '차우'는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차우'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투영된 소설의 결말은 무엇일까
- 네이버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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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기대하고 봤는데... 실망스러웠던 영화.
미쟝센이나 시각적인 부분이 화양연화나 중경삼림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스토리다.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 차우가 가장 실망스러웠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이 영화는 차우의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해서 스토리텔링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곧 '차우'다)
화양연화에서는 수리진의 손을 잡는 것 조차 망설이던 남자가 여기서는 아주 잘도 날아다닌다.
화양연화와는 대조되는 그의 태도를 보고있자니 '어우 저질스러워'라는 생각도 들며, 솔직히 꼴보기 싫었다.
과거에 연연하면서 자기연민,자기미화,자아도취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늙은이.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본인의 외모와 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다니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하..
그러면서 다 홀려놓고, 그 여자가 본인에게 사랑에 빠지면 과거에 연연하며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짜증났다.
특히 가장 화가 났던 씬이 두개가 있는데,
1. 바이링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돈을 쥐어주는 장면
2. 바이링이 모든 여자에게 다 이렇게 대하냐고 물을때 "아니 한명 빼고. 우리 엄마." 라고 대답하는 차우, 그리고 바이링이 하루만 차우를 빌리고 싶다고 할 때 "내가 모든걸 다 빌려줄 수 있다고 했는데, 하나 안되는게 지금 생각났어." 라고 차우가 답하는 씬.
진짜 장난하냐?
아니 화양연화에서는 아슬아슬 선 잘 타며 매너있게 행동하더니 여기서는 선이라는게 없다. 이미 그 선을 넘어버린지 오래.
그러면서 중간에 징웬을 사랑하게 되니까 '사랑은 타이밍이다.' 를 시전하는 모습을 보니.. 하..
화양연화가 차우의 미화된 기억이라는 설이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그게 확실해졌다.
차우 본인의 직업이 기자,작가인만큼 이 사람은 본인의 생각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능숙한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미화시키면서 풀어가는건 덤.
주인공 차우는 아직도 본인만의 화양연화에 갇혀사는 것 같아 보였다.
2046이란 번호에 집착하는것만 봐도 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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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우에 대한 내 생각이 곱지 않다보니,
영화에 나오는 2047소설 내용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마저도 차우의 본인미화, 자기연민 덩어리의 내용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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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화양연화가 화양연화인 이유는 스쳐지나가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연연하면 더이상 화양연화가 아니예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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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정전,중경삼림,화양연화가 종합적으로 합쳐진 왕가위 영화의 믹스
= 2046
그래서.. 궁금하신 분들은 뭐 보셔도 좋긴한데..
그렇긴한데..흠...
( 보신다면 위의 아비정전,중경삼림,화양연화 다 보시고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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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3.5
"괜찮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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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예측 <브래들리 쿠퍼>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전문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할리우드 소식은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배우 브래들리 쿠퍼의 영화 속 베스트 TOP 10 캐릭터입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의의 최근 신작인 <나이트메어 앨리>에 제작자 중 한명으로 또한 배우로서 출연했는데요.
북미에서는 개봉을 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개봉일자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2022년에는 상반기에는 개봉을 하지 않을까 예상이 됩니다.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브래들리 쿠퍼는 <웨딩 크래셔>(2005)와 <행오버>(2009) 등 코미디 영화에서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3)과 <아메리칸 허슬>(2014)에서 엄청난 연기로 비평가들의 극찬은 물론
오스카 후보에도 여러번 노미네이트 된 엄연한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았습니다.
어느 덧 20년차가 넘는 할리우드 배우가 된 브래들리 쿠퍼. 이제는 감독으로서도 훌륭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타 이즈 본>이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행오버>에서 <나이트메어 앨리>까지 브래들리 쿠퍼의 영화 속 베스트 캐릭터를 알아보면서
2022년 오스카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될 것으로 예상되는 <나이트메어 엘리>,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리커리쉬 피자> 속에서의
역할까지 알아보겠습니다.
TOP 10. <조이(JOY)> (2016,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브래들리 쿠퍼는 '닐 워커'역으로 홈쇼핑 채널 QVC의 경영 이사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한 2013년작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감독인 데이비드 O. 러셀과 제니퍼 로렌스, 로버트 드니로 배우들이 모두 다시 만난 작품이네요.
TOP 9. <웨딩 크래셔> (2005, 데이빗 돕킨 감독)
'잭 색 로지' 역으로 극중 잘난 척하는 가벼운 캐릭터인데요.
브래들리 쿠퍼는 초창기에는 약간 재수없고 밉상인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것 같습니다.
TOP 8. <행오버> (2009, 토드 필립스 감독)
'필' 역할로 대학동창인 세 친구 중의 한 명인 역할입니다.
친구 '더그'의 결혼을 앞두고 총각파티를 위해 라스베가스로 떠나게 되는데.
잔뜩 술을 마시며 놀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친구 '더그'는 사라지고, '더그'의 결혼식은 당장 내일이고..
'더그'를 찾기 위한 친구들의 좌충우돌, 난장판이 되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입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이 역할로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TOP 7. <아메리칸 허슬> (2013,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2014년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
'리치 디마소'역으로 극 중 사기범을 잡는 FBI요원 역을 맡았습니다.
<아메리칸 허슬>은 브래들리 쿠퍼가 제작자 중의 한명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며,
브래들리 쿠퍼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상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합니다.
TOP 6. <리커리쉬 피자> (2021,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존 피터스' 역으로 분량은 극 중에서 7분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급력만큼은 기억에 충분히 남는 역할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카에서 후보로 지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하니, 과연 그의 연기가 궁금해집니다.
TOP 5.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2012,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
'에이버리 크로스'역으로 극 중 경찰관입니다.
생계를 위해 은행 강도일을 벌인 루크(라이언 고슬링)를 과잉진압하며 죽이게 되며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매일 힘들어하는 역할입니다.
TOP 4.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2012,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정신병원에서 퇴원했지만 여전히 조울증을 앓고있는 '팻' 역할을 맡았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전 세계적으로 2억 3천 5백만 달러 이상의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브래들리 쿠퍼는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습니다.
TOP 3.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4,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미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명사수 '크리스 카일' 역을 맡았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인데요.
전쟁에 참전하는 한 남자의 복잡한 내면 연기를 가슴 아프면서도 순수하게 해석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당시 2014년 북미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영화이면서 브래들리 쿠퍼는 또 다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TOP 2. <나이트메어 앨리> (2021, 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
카니발 유랑단 '열 가지 쇼'에서 마술 무대를 담당하는 영리하고 잘생기고 야심찬 청년 '스탠턴 칼라일'역을 맡았습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이 영화의 공동 제작자이면서 또한 이번 2022년 오스카의 남우주연상을 받을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TOP 1. <스타 이즈 본> (2018, 브래들리 쿠퍼 감독)
<스타 이즈 본>의 감독이면서 '잭슨 메인'역으로 참여한 작품.
미국의 컨트리 음악 스타 가수 역할을 맡았으며 극 중 앨리(레이디 가가)와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연기호흡과 노래 호흡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스릴을 준 작품입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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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라이트만 담백하고 나머지는 어수선한
전설과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자 서윤복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부분이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손기정. 하지만 우승의 기쁨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상식에 올라가는 손기정. 입고 있던 옷에 그려있는 일본 국기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다. 뒤집힌 조선 총독부. 손기정을 겁박한다.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닌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는 말을 마지못해 기록한다. 손기정의 육상선수 커리어는 그때 끝났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1947년에서 시작된다. 냉면집에서 서빙 일을 하는 서윤복은 돈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손기정은 나라가 일제에게 벗어났다 하더라도 영 즐거운 일이 없다. 아들과 떨어진 일상. 매일을 술로 보낸다. 국민적인 영웅이라 ‘손기정 상’ 같은 시상식에 초대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그가 친한 동료 남승룡, 냉면집 아르바이트생 서윤복과 함께 보스턴 마라톤 대회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강제규 감독은 3년 후의 <쉬리>로 당시 한국영화 관객 신기록을 경신한다. <쉬리> 이후 4년이 지난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실미도>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일이라 당시의 충무로도 반향이 컸다. 이렇게 강제규 감독이 상업영화라는 분야에 있어 두각을 드러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감정적으로 진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큰 규모의 신을 찍을 때 인물들을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묘사하는 끔찍한 전쟁의 참상은 영화의 후반부를 위해 필수적이다. 격렬하고 광폭한 전쟁이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인물들은 전쟁의 광기에 혹해버렸다. 광기에 취한 인물들이 전투 도중이나 군 막사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투 장면을 시각화하는 방식에도 감독의 장기가 들어가 있다. 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 장면은 좋은 의미에서 너절하다. 후반부 진태(장동건)가 피 흘리며 전투를 벌이고 난 후 다음 장면은 깔끔하게 씻은 진석(원빈)이다. 심지어 진태가 처절하게 싸우는 반면 진석은 누군가와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한다. 당연히 진태의 상황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데, 두 인물 간의 시각적인 대비로 전쟁의 속성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는 칙칙한 색감, 깔끔한 인물 동선, 처절한 전장의 분위기를 카메라로 담으며 한국전쟁이라는 지옥도를 구현한다. 이 지옥도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후반부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신이 감동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번 강제규 감독의 신작 <보스턴 1947>는 강제규 감독의 장기들이 알차게 들어가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신은 당연히 마라톤 장면이다. 이 장면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핵심이 되어 한국사회의 강인함과 서윤복의 단단한 내면을 상징한다. 인물이 뛰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방식이 영화의 몇 사건을 비유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화는 주인공 3인방을 보스턴에 곱게 보내지 않는다. 몇 가지 위기를 만드는데, 그 위기 이면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47년은 미군정이 한반도를 통치하는 시기였다. 한국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라 대회 참여의 금전적, 행정적 부분에서 지원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대응하는 과정은 혼자 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마라톤과 유사하다. 사실상 1부의 초중반부와 2부의 후반부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암시하는 서윤복의 마라톤은 영화의 웅장함에 안성맞춤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 글쓴이를 포함한 적지 않은 관객들이 '또 억지로 눈물 쥐어짜는 요소 넣었겠네' 우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이 우려를 무색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인간의 결기와 의지를 영화 후반부에 방점 찍어 마무리했다. 이 장중한 하이라이트를 위해 강제규 감독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보스턴의 날씨를 구현하기 위해 호주에서 촬영한다거나, 임시완, 배성우 배우가 러닝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이나 400여 명의 외국 배우와 함께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화라는 양날의 검
이 영화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세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야기 안에서 한국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는 설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1,2부의 이야기 이면에 깔려있는 시한폭탄임과 동시에 강제규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국민성을 보여주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설정이 정직하게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초반부 주인공 3인방은 선수 엔트리 등록을 위해 관련 부처를 찾아간다. 이 장면에서 담당 공무원이 손기정 일행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사실적이다. 영화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손기정 선수와 관련한 부분이 몇 등장하는데, 이 문제와 1947년의 보스턴은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 없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만 봐도 비슷한 예시가 몇 있다. 또한 궁핍한 한반도를 보여주는 방식도 극 중 등장인물들이 마라토너라는 점에 잘 어울린다. 신발은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영화는 신발을 수급하는 문제를 무작정 으쌰 으쌰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길 만큼 합리적으로 해결한다. 이 현실성과 관련한 부분은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2부에는 역사의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은 꼼꼼함이 느껴진다. 영화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후일담을 찾아보면 이 인물들을 꽤나 잘 살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마라톤 장면에서 특정 사건이 약간 영화적인 왜곡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1947년의 보스턴에서 실제로 이뤄졌던 일이라는 것이 놀랍다. 영화가 실화라는 점을 잘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실화라는 틀에 안주한 흔적이 아쉽다. 어쭙잖은 신파극을 가볍게 벗어난 후반부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더라도 플롯의 나머지 부분들은 예상가능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인물들이 납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박은빈 배우가 맡은 역할은 이야기에서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단지 서윤복에게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박은빈 배우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 전의 작품이 아니었어도 이 인물에 대한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어렵게 대회에 참여해서 상을 받았어. 그럼 곱고 순한 여성 캐릭터는 영화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할 것 같은가? 이 문제의 답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또 영화 1, 2부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무례하다. 구체적으로 2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어떤 두 미국인이 갖고 있는 비중이 크다. 이 두 인물은 관객들에게 '빨리 화 내!' 겁박하는 느낌마저 든다.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1947년이라지만 현실감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2부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더 차갑고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 서윤복이 어떤 모습으로 달리기를 했는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차라리 이 부분을 구현하는 게 이야기의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인다. 영화의 기획의도에 희생된 인물들이 아쉬웠다.
슬렁슬렁 넘어가다
영화는 인물들의 욕망과 관련한 문제를 손쉽고 전형적으로 해결한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주인공 서윤복이다. 서윤복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어머니다. 서윤복은 아픈 어머니를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초반부에서 영화는 서윤복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서윤복은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다. 서윤복이 초반부에 달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몇 번 대사를 치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마냥 이상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영화의 1부가 가진 큰 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영화는 이 문제를 굉장히 쉽게 해결한다. 물론 그 사건이 이 인물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건 인물의 동기부여에 대한 문제인거지 실제 이 인물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사실 이 문제는 2부에서 원인만 달라진 채로 반복된다. 영화 2부에서도 이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1부의 어설픈 마무리가 더 아쉽게 느껴진다. 남승룡의 경우에도 문제를 맺고 끝는것이 불확실하다. 이 인물은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이 욕망을 가진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남승룡은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단 조금의 과정도 없이.
영화가 가진 아쉬운 점 중 하나는 통일성이다.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가장 큰 이물감 두 개는 배성우와 하정우 배우다. 우선 배성우 배우와 하정우 배우는 다른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정우 배우가 맡은 손기정 역은 <수리남>의 강인구와 별 차이가 없다(심지어 헤어스타일도 비슷하다). 이러다 보니 손기정과 남승룡이 아니라 하정우와 배성우 배우 각자가 대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는 임시완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달리는 신이 아닌 선에서, 이 영화에서 본 임시완 배우는 어쩐지 <미생>과 <불한당>에서 본 기시감이다. 김상호 배우도 이 배우가 등장했던 사극의 어느 장면처럼 연기한다. 대표적으로 이 인물들이 2부에서 밥을 먹는 신이 있다. 배우들의 일상연기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이 더 두드러져 강제규 감독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비단 연기 말고도 편집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신파극에 대한 반발심리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이야기는 생략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특히 남승룡의 서사에서 더 느껴진다. 아마 배성우 배우의 개인적 에피소드 때문인 듯). 이것 덕분에 뚝뚝 끊긴다. 심지어 인물이 오롯이 대사를 칠 때에도 컷전환이 캐릭터를 방해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표적으로 손기정이 남승룡, 서윤복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서로 대화하는 신인데 말 중간에 시점이 바뀐다. 그동안 강제규 감독이 규모가 큰 신을 깔끔하게 연출했다는 점과 반대로, 소수의 인원이 대화하는 신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밑반찬이 아쉽네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기획의도에 충실하다. 스포츠 신파극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관객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장면은 멋진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변 등장인물을 콘셉트 아래에 가둬놓은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큰 덩어리들은 있는데 중간단계들이 좁고 얕다. 이 얕은 깊이 덕에 영화 자체가 올드하게 느껴진다. 정작 영화가 우려하는 점은 다 보완했지만 이를 덮기 위한 수가 반대로 단점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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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야 공주 이야기
가구야 공주 이야기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지브리 작품을 보다가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발견했다. 언듯 보기에 '이웃의 야마다군'과 비슷한 그림이어서 꽤 오래 전 만든 작품일까, 했지만, 몇 년 전에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일본의 문화와 생활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외국사람이 볼 때, 일본에 관한 역사와 전통,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의 원전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래동화, '타케토리 오키나 모노가타리(竹取翁物語解)'다. '대나무를 파는 노인 이야기'인데, 전래동화와 이 작품의 줄거리는 거의 같다. 다만,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서는 '가구야공주'의 탄생과 성장, 생활을 전래동화보다 핍진하게 그리고 있어 관객이 '가구야공주'에게 감정적으로 동화하도록 만드는 과정이 길게 이어진다.
작품의 서사는 매우 불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전래동화가 나타난 시기가 9세기에서 10세기 무렵이라고 하니, 그때는 일본에도 불교가 한창 번지고 있을 때였다. 660년에 백제에서 건너간 불교는 상대적으로 후진 문화였던 일본 사회에 놀라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졌고, 문화선진국이던 백제에서 왕인이 직접 불교를 전파하니, 일본의 토호, 영주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도 불교에 호감을 갖고 받아들였다.
물론 불교가 일본에 들어간 초기에는 일본 황실과 귀족 세력이 반대하고 거부했지만, 이미 일본 민중 사이에서는 불교가 상당한 호감을 갖는 종교였고, 이때 일본의 서쪽 지방을 중심으로 고려 때 일본으로 건너간 고려인들과 이후 백제인들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불교는 안정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가구야공주 이야기'가 불교를 바탕으로 한 전래동화라는 건 작품 내용에서도 나타나는데, 가구야공주가 대나무에서 태어나기 전, 전생에서 살았던 곳이 '달'이었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때, 가구야 공주를 맞이하려 달에서 오는 사람을 보면, 선녀와 보살과 함께 부처님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것은 불교의 '윤회'를 상징하며, 삶과 죽음이 결코 다르지 않고, 인간은 윤회를 거듭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대나무를 잘라 도구로 만들어 파는 노인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노인이 대나무를 자르고 있을 때, 대나무 하나에서 빛이 밝게 비추는 걸 발견하고, 그 나무를 베어보니 대나무 안에서 아주 작은 아이가 나왔다. 이런 탄생 설화는 고대 영웅에게 흔히 있는 장면이다. 알에서 태어난 주몽, 처녀 임신으로 태어난 예수 등이 그런 설화의 주인공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아이는 금새 쑥쑥 자라서 동네 사람들이 '대나무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노인은 대나무숲에서 다시 빛나는 대나무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황금과 비단을 발견한다. 노인은 대나무에서 태어난 아이가 예사롭지 않은 아이라는 걸 깨닫고, 공주처럼 고귀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수도-천황이 있는 도시-로 나가 저택을 마련하고 아이를 도시로 데려와 공주처럼 키운다. 그때까지 아이는 산골에서 동네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며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는데, 도시로 오면서 친구를 모두 잃는다.
노인은 예사롭지 않은 아이를 고귀한 공주처럼 키워 귀족이나 황제에게 시집 보내는 것을 꿈꾸고, '가구야 공주' 또는 '공주(히메)'라고 부르며 극진하게 모신다. 가구야 공주가 성년이 되는 해, 사흘에 걸친 성대한 잔치를 하고, 그 소문을 듣고 양반, 귀족의 자제들이 몰려와 가구야 공주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가구야 공주는 그들과 결혼하기를 원치 않고, 산골에서 살았던 그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며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데,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스스로 불행해서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히 소원을 빌자, 가구야 공주가 전생에 살았던 곳이 '달'이었고, 그곳에서 다시 자기를 데리려 온다는 걸 알게 된다.
가구야 공주는 이승을 떠나기 전, 자기가 어려서 살았던 산골을 두 번 찾아간다. 첫번은 산골 마을이 황폐하게 변해 있었고, 함께 어울려 살던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 모두 사라졌다. 대나무가 자라지 않아 물건을 만들 수 없게 되자 다른 지역으로 떠난 것이다. 그리고 다시 8년의 세월이 지나 두번째 찾아간 산골에서 떠났던 마을 주민이 돌아오고 있는 걸 발견한다. 그 사람들 가운데는 도시에서 만났던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이미 결혼해 아이가 있었다.
가구야 공주는 고귀한 신분이어서 구중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가지만, 그가 어려서 자란 곳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시간 역시 산골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자연 속에서 뛰놀던 시기였다. 도시에서 고대광실에 살며, 호의호식하는 삶은 생기가 없는, 몸은 살아 있어도 더 이상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박제된 삶이라는 걸 가구야 공주는 깨닫고 절망한다.
어느 시기나 가난한 민중은 먹고 살기 위해 떠돌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산골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대나무로 물건을 만들지 못하자 먹고 살기 위해 흩어진다. 그렇게 도시로 나와서 도둑질을 하다 잡혀 맞기도 하고, 빌어 먹기도 하면서 삶을 유지하는데, 결국 삶의 터전인 산골마을로 돌아오면서 다시 행복을 찾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가구야 공주는 삶을 옥죄는 도시에서의 삶-정형화되고, 격식에 얽매이며, 통제된 삶-에 질식할 것 같았고, 더 이상 이승에서의 삶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간절히 이승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원인은, 자신이 귀족 또는 황제에게 팔려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였다. 귀족이나 황제가 자신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들의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이 말한 조건에 따라 혼인을 해야 하며, 황제의 후궁으로 선택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야 하는 비참한 삶이 싫었던 것이다.
가구야 공주는 고대광실에 살면서도 예전 산골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며, 궁궐같은 저택의 한쪽에 작은 시골집을 짓고, 밭과 정원을 만들어 산골에서 살던 환경과 비슷하게 생활한다. 그가 이승을 떠나기 전, 고통스러운 기억보다 더 간절했던 것은 산골에서 살았던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땅(지구)으로 내려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도, 지구에 살던 사람이 간절하게 부르던 노래 때문이었다. 자연 속에 살며 꾸밈없이 소박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으면서, 가구야 공주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미 결정된 귀환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가구야 공주는 본디 달에 사는 보살(신선)이었으나, 이승의 삶을 동경해 선계(달)에서 쫓겨나 대나무 속에서 아이로 태어난다. 아이 없이 사는 늙은 부부에게 맡겨져 지극정성으로 돌봄을 받으며 자라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꾸밈없고, 거칠 것 없이 살아간다. 이것은 '자연'이라는 '신'이 본래는 무소무위, 어디에도 걸리는 것 없는 자연 그 자체라는 걸 말한다. 그러다 인간이 만든 '문명'에 갇히면서 '자연'은 힘을 잃고, 생기를 잃게 된다. 인간의 문명은 도식적, 형식적, 인위적, 이기적, 파괴적 속성을 가졌기에, 자연은 인간의 문명이 두렵고 무섭다.
인간이 만든 문명은 자연(신)을 쫓아내고, 거부하며, 외면한다. 자연(신)은 더 이상 인간과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자연으로 살고자 하지만, 그마져도 인간이 파괴한다. 결국 자연(신)은 피폐, 황폐하게 변하고, 인간이 살지 않는 먼 곳-달-으로 떠난다. 이 작품은 사람의 관점이 아닌, 가구야 공주 -자연(신)- 의 관점에서 쓰였기에,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인간의 배신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연(신)의 입장을 드러낸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전생에 살던 곳이 '달'이라는 건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기, 민중의 의식을 반영한다. '여성'은 우주만물을 만든 신이자, 자신-일본 민중-을 만들고 돌보는 어머니 자연의 존재를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즉, 자연은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바뀌고, 씨 뿌리고, 수확하는 일련의 생산이 땅을 통해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생산'을 하는 것은 곧 어머니, 여성이라는 의식과 맞닿게 되기 때문이다.
'달'은 동양에서 신비로운 믿음의 대상이었다. 중동과 서양이 '태양'을 유일신으로 믿었던 것처럼, 동양에서는 '태양'보다는 '달'을 숭배했는데, 그 믿음의 근거에는 '농업'이 자리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것은 절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절기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은 '양력'이 아닌 '음력'이라는 걸 이미 이 시대 이전부터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달'이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달'과 관련한 많은 설화와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따라서, 가구야 공주가 여성으로 이승에 내려와 자연과 함께 어울리다 도시-인간의 문명-에 살지 못하고 다시 원래 살던 곳 - 달 -로 돌아가는 것은 당시 민중의 삶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설화가 된다. 여기에 불교적 장치 -윤회-가 개입하면서, 가구야 공주는 언제든 다시 이승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희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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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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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그 여자의 집 건너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공식 예고편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자 애나. 애나에겐 매일이 똑같다. 와인에 취해 하릴없이 창문 밖의 삶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 그런 그년의 삶에도 드디어 볕 들 날이 찾아오는 걸까? 길 건녀편에 잘 생긴 남자가 귀여운 딸과 함께 이사를 왔다. 그러나 애나의 희망은 잔혹한 살인 사건을 목격하면서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마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는 살인사건. 애나는 과연 무엇을 목격한 걸까? <그 여자의 집 건너 편 창가에 웬 소녀가 있다>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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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블러드 브라더스 : 맬컴 엑스 & 무하마드 알리> 공식 예고편
20세기를 풍미한 두 아이콘의 놀랍고도 비극적인 우정을 담은 《블러드 브러더스: 맬컴 엑스 & 무하마드 알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복서 무하마드 알리, 그리고 ‘네이션 오브 이슬람’과 미국 흑인들의 지도자로서 엄청난 영향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준 맬컴 엑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우정을 나누기엔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었다. 올림픽 챔피언이었던 무하마드 알리는 언제나 거침없이 의견을 표현했고, 화려한 언변으로 백인 언론에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맬컴 엑스는 전과가 있는 지식인에서 혁명적 지도자가 되었고, 백인들의 억압에 맞서 싸웠으며, 스포츠를 사소한 게임으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유대는 깊었고, 우정은 진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