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1-04 23:49:27
한 입 베어 물어 보면
영화 <은빛 살구> 리뷰
SYNOPSIS.
퇴근 후 뱀파이어 웹툰을 그리는 웹툰 작가이자 비정규직 웹디자이너 ‘정서’(나애진). 남자 친구 ‘경현’(강봉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서울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지만 계약금 준비가 쉽지 않다. 이에 엄마 ‘미영’(박현숙)은 이혼할 때 ‘영주’(안석환)에게 받은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건네주고, ‘정서’는 아버지 ‘영주’가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 벌교횟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가깝지만 먼, 낯선 가족들의 욕망에 휘말리게 되는데…
POINT.
✔️ 다양한 배우들의 연기가 맛깔나는 작품. 주연 나애진 배우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시상헀으며, (대단한 거 알았지만 역시나 너무나도) 대단한 안석환/박현숙 배우의 호연도.
✔️ 그리고 이 호연은 촘촘하게 설정된 캐릭터와 미술이 있기에 가능. 저기 어디 사는 누구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들.
✔️ 묵호라는 공간을 훌륭하게 활용한, 좋은 로컬시네마
✔️ 음악감독 김사월. 상서롭고 신비롭게 퍼지는 음악과 중간중간 색소폰 소리, 엔딩크레딧에서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사운드까지 모두 좋았습니다!
✔️ 어쩌면 우리가 '한국 독립영화'에 기대하는 건 바로 이런 영화 같기도!
✔️ 영화는 1월 15일 개봉합니다.

혈연이라는 말의 무게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들 중에 '피가 당긴다'는 말이 있다. 대충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어감에 더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을 만큼 속절 없이 끌린다는 어감으로 쓴다. (비록 구글 검색 결과는 고혈압이 나왔지만... 종종 들어본 말이다. 나만 들은 건 아니겠지?) 그런가 하면 부모자식처럼 혈연으로 가까운 사이를 더러는 '피붙이'라고도 한다. 늘 그렇다. 피라는 단어는 끈끈한 단어들과 접착력이 좋다. 비록 실제 피는 매우 주의해서 섞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서 가족영화에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작게나마 붙이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조합이다. 보통 뱀파이어물에 가족을 작게 붙이는 형태에 더 익숙한 우리에게 상당히 생소한데도 말이다. 가족은 사랑과 돌봄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여야 하기에 많은 경우 간과되지만, 사랑 없이 돌봄의 역할만 부여하는 것은 결국 고혈을 빨아먹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정서가 업무 전후 시간에 틈틈이 그리는 웹툰에 등장한다. 포털에 웹툰을 연재하며 언젠가 웹툰 작가로 대박 날 꿈을 꾸는 동시에, 디자인 회사에서 비정규직 자리를 간당간당 유지하고 있다. 익숙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다. 청약을 발판 삼아 결혼을 준비하고, 지금 하는 일과 양립 가능한 파이프라인을 찾고... 그러나 무엇 하나 녹록하지 않은 모습이.

어찌저찌 피붙이라는 말에 걸치기는 하지만, 혈연 관계가 애매한 새 가족이 섞여 있고, 그나마 그들을 보지 않은 시간도 꽤나 길었다. 그 어색한 관계 위에, 영화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진 각자의 욕망과 각자의 계산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아무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그걸 거부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자기 속내를 언제 드러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어쩐지 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조금 촌극처럼 보인다. 이는 정서의 예비 남편인 경현까지 등장하면서 극에 달한다.

가짜처럼 뻣뻣한 법적 '진짜'와
어떻게 보면 정해진 듯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광경이다. 청약이 당첨된 아파트를 위해 계약금을 마련해야 하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부모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온 역사를 관망하게 되고, 다소 현타가 오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친구들 앞에서는 또 자랑처럼 이야기하고. 아무튼 돈은 필요하니까 예비 신부를 달래 가며, 한우와 과일을 사서 재빨리 달려오는 남자친구의 모습까지.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자꾸 불화한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혈연을 기반으로 한 아빠-정서의 관계 혹은 엄마-정서의 관계, 혼인이라는 법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하는(혹은 했던) 아빠-엄마의 관계, 아빠-새엄마의 관계, 경현-정서의 관계가 각각 뱀파이어 이미지와 맞물리면서 다소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차용증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운 엄마와 아빠도 그렇다. 아빠와 헤어지고 열심히 일하면서 정서를 키운 엄마의 역할은 누가 보아도 톡톡했을 것이고, 아빠 또한 나름대로 용돈이나 다른 방법들로 정서와의 혈연을 자연스럽게 연장해 나간다. 이들은 딸에 대해 의무가 있음을 알고 있고 또 가끔은 권리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차용증 때문인지 다소 역할극처럼 뻣뻣하다.

경현과 정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마루와 강아지 같은 부드럽고 희망적인 일상어들을 사용해 미래를 설계하지만, 아파트 하나만 빠지면 훅 위태로워질 관계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차이, 안정적 삶을 위해 회사를 버티고는 있지만 사실 그 안에서 포기한 각자의 꿈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점 등이 하중을 보탠다.

진정성 있는 '가짜'와
애초에 별로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시작했고, 서운하면 "가짜 언니"를 운운하고, 멀리 산 시간이 있어 서로 신뢰가 깊지 않음에도, 오히려 정서-정해 자매의 관계 쪽이 좀더 가족의 바이브를 풍긴다. 이들을 가족으로 묶어낸 것은 공간을 공유했다는 것 하나 뿐이다. 심지어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들은 공간을 공유한 상대의 시간을 미루어 보며 친근감을 느낀다.
정서가 고향 집에 두고 간 것들을 정해도 먹고 자랐다. 정서가 본 영화 제목에서 거북이 이름을 따 오고, 오래된 만화책을 쌓아 놓던 언니가 그린 웹툰에 좋아요를 꼬박꼬박 누른다. 담배나 남자친구처럼 아직은 부모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언니의 그림자를 느끼며 살았다. 정서 또한 자신이 거쳐 온 시간과 중간중간 닮아 있는 정해가 아주 먼 존재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얼핏 대조적인 것 같지만 사실 둘 다 각자의 삶에 매여 있는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제법 괜찮은 자매의 모습처럼 보인다.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건 무엇일까. 혈연은 중요한 요소지만 혈연이 다는 아니라는 문장은 이제 진부하지만, 여기서도 명확히 느껴진다.

내 안의 '진짜'와 '가짜'
사실 피를 빼앗기기도 하고 내어주기도 하는 뱀파이어는, 피의 이동 방향만 놓고 보면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촌극처럼 뻣뻣한 장면을 연출하는 관계가 있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녹아든 면을 보여주는 관계가 있지만, 전자가 절대악이고 후자만이 진짜인 것은 아니다. 가족은 그냥.... 그런 것이다. 늘 진심이기만 한 관계는 없다.
여기에는 우선 정서의 내부에도 '진짜'와 '가짜'가 오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 이 사회에서 사는 우리 모두 실은 진정성을 품을 때와 적당히 뻣뻣할 때가 있는 존재라는 이유도 있다. 자본이 사람을 얽어매고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이 첨단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진짜 원하는 모습도 아니라 그냥 '남들 다 그러고 사니까' 정도의 감각을 갖기 위해서 자아의 어떤 부분을 버려야만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서의 가족에서는 차용증이라는 형태로 매우 명백히 드러났고, 그만큼 아빠의 욕망이 유난히 두드러지지만... 사실 그 감정 자체는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다. 오랜 친구, 결혼을 약속한 연인, 가족의 관계에서도 이는 온전히 예외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자아는 영영 버려지지 않는다. 지금은 환멸밖에 남지 않은 정서의 아빠와 엄마 사이 같지만, 어렸던 정서에게 아빠가 남긴 색소폰 연주 CD에 얽힌 추억을 말하는 엄마는 분명 빛바랜 사랑과 오랜 상처까지 스산하게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에는 사랑만을 가득 끌어안고 있었을 사람. 지금은 욕망의 폭주 기관차처럼 살고 있는 아빠는 뿌리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또한 생선 머리를 단숨에 잘라 피가 배지 않도록 회를 치는 기백을 정서에게 물려준 사람으로서, 그 열정을 사랑으로 승화했던 시간이 있었으리라.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운 은빛 단면이 우리의 살갗에 끊임없이 느껴지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은빛 살구라고 하지만, 은행에는 고소한 속살이 있듯이.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말과,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에 강렬하게 깔리는 사운드가 마음에 들었다. 그게 마치 정서의 은행 속살 같아서. 김치찌개에 먹는 밥 두 그릇 같아서.
어린 시절을 묵호에서 보낸 정서의 그림에는 곰치를 비롯한 물고기들이 등장한다. 졸업 작품을 큰 돈 들여 구매하는 아빠나 물고기 위에 기어이 매직펜으로 정서의 이름을 적게 만드는 엄마나, 둘 다 정서의 마음 가까이에 있지 않은 건 매한가지지만, 정서의 물고기들은 붉은 피를 넘어서 푸르게 생동할 것이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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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 이후 은퇴 선언을 했던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스크린으로 돌아옵니다.
2025년 개봉을 앞둔 복귀작은 그의 아들인 로넌 데이 루이스의 감독 데뷔작인 <Anemone>입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로넌 데이 루이스가 공동 집필한 이 작품은 아버지, 아들, 형제 간의 복잡한 관계와 가족 간의 유대에 관한 탐구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숀 빈, 사만다 모턴, 사무엘 버텀리, 사피아 오클리-그린이 출연 예정이며,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벤 포드스맨이 촬영 감독을 맡았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나의 왼발> (1989), <데어 윌 비 블러드> (2007), <링컨> (2012)에서의 연기로 세 차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메소드 연기'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첫 오스카를 수상한 <나의 왼발>에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일랜드 작가 크리스티 브라운을 연기할 당시, 촬영 중간에도 휠체어로 움직이며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여 달라고 요구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또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1994)의 잘못된 IRA 폭탄 테러범으로 몰린 게리 콘론을 연기할 때는, 며칠 동안 추운 감방에서 최소한의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네이버 VOD 서비스 '시리즈온' 운영 종료 예정
네이버의 영화·방송 VOD 서비스 '시리즈온'이 오는 12월 18일에 운영을 종료할 예정입니다.
네이버는 최근 공지를 통해 "디지털 플랫폼 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콘텐츠 판매를 종료하게 됐다"며, "구매한 콘텐츠는 보관함 기능을 통해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리즈온 이용권은 12월 12일 자정부터 사용이 불가하며, 개별 콘텐츠 구매는 12월 18일부터 종료됩니다.
<전, 란> 강동원, 영화 프로듀서로서의 활발한 활동 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로 프로듀서로서 첫 활동을 시작한 배우 강동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영화 프로듀서로서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연기를 더 하고 싶어요. 그래서 프로듀싱도 하고 있는 거죠. 저는 제 일이 너무 좋아요. 제 아이디어를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어서 제작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내년 촬영 예정인 판타지 사극 TV 시리즈는 2년 전에 본인이 시놉시스를 썼으며, 현재는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봉준호 감독에게 영화화 연출 요청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역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가 봉준호 감독과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공개했습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초기, 주연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는 봉준호 감독의 <도쿄!>(2009)에 출연한 인연으로 그에게 연출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비록 시간이 맞지 않아 어렵게 되었지만,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봉 감독의 말에 영화를 연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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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아름다운 노래를 쌓자
지난 세기에 태어난 사람 중 아바(ABBA)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예컨대 80년대 한국의 중학생이었던 나의 부모는 아바의 음악을 즐겨 들었고, 4명의 혼성 그룹이 둘씩 부부라는 이야기를 신기하게 여겼으며,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그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래를 청춘의 순간으로 기억했다. 자동차 뒷자리에서 들은 그들이 틀어 둔 아바의 노래들은, 이후 90년대에 태어난 내게 ‘어린 시절 가족 여행’이라는 기억에 박제된다. 바깥으로 눈발이 날리는 강원도의 도로를 달리면서 듣는 <winner takes it all>은 어린 마음을 아련하게 흔들고, <dancing queen>은 경쾌하게 기쁨의 온도를 높였다. 비슷하게 아바의 노래에 기억을 포개 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의 음반 판매량과, 음반 이후의 세대도 아바를 기억한다는 점, 게다가 영화와 뮤지컬로 여러 차례 그들의 음악이 새로운 세대를 계속 만났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난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작 <아바: 더 레전드>는 그야말로 ‘더 레전드’인 아바의 음악과 그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70년대를 친절하게 조망해 주는 영화다. <Waterloo>로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했던 유로비전 무대를 필두로 하여, 네 사람의 환한 미소가 담긴 흑백 사진과 익숙한 음악으로 문을 열고, 아바의 첫 싱글부터 되짚으며 그 아우라를 피부로 느끼게 만든다. 아바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자신의 추억까지 포함한 과거의 기억을 돌려주며, 그들의 음악이 남긴 반짝임만 느꼈던 이후 세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음악의 낯선 서사를 잘 정리해 준다. 그러므로 누구와 함께 보아도 좋을,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전설의 시대를 선형적으로 정리하는 수준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미 ‘더 레전드’가 되어 있는 지금의 이면을 비춘다. 그들의 노래는 너무나 환하게 빛나고, 밝고 힘차고, 오랫동안 널리 사랑받았다는 걸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아바의 노력이나 그들이 겪은 무대 이면의 시간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70년대로 우리를 데려가는 이 영화는, 당시 아바에게 꽂히던 다양한 시선을 고루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알지 못하던 아바를 드러낸다.
종이와 연필보다는 머리에 곧바로 남는 멜로디를 찾아내는 순간, 키치한 옷차림의 “가벼운 팝” 그룹이라는 이유로 평론가들의 혹평을 뒤집어쓰거나 반대 시위에 맞부딪히거나 아바의 음악을 희화화하고 비하하는 목소리를 마주하는 순간, 그들의 음악보다는 관계나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성희롱적 발언에 더 관심이 있는 언론 앞에 서는 순간, 여성 멤버들의 관계에 대한 가짜 뉴스가 퍼지는 걸 들으면서도 실상은 건강한 경쟁심을 발휘해 무대를 준비하는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아바가 얼마나 건강하고 빛나는 아티스트인지를 새삼 깨닫는 한편, 아바가 아닌 다른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많이 보았다는 기시감도 동시에 느낀다. 사람들의 반응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비판이라고 생각하며 던지는 말들 중에는 단순한 비난이 얼마나 그럴 듯하게 섞여 있는지, 수많은 말의 홍수 속에서 그걸 걸러내는 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안에서 길을 잃기는 얼마나 쉬운지 한 걸음 멀리서 보게 되는 기분이다. 그러나 아바는 ‘일의 기쁨과 슬픔’ 안에서 파도 타기를 계속하며 자기 세계를 확장해 결국 전설이 된다.
아바의 노래는 쉽고 다정하다. 그러나 동요처럼 마냥 해맑다는 느낌보다는, 그림자를 아는 빛 느낌이다. 기묘하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 들어 두근거리는데, 그 세계가 아바의 목소리처럼 밝고 힘차서 나를 해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정말 “영 앤 스위트 온리 세븐틴”의 마음이다. 그 아바의 노래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A면이라면, 이 영화는 마치 음반 B면에 들어있는 명곡 같다.
최선을 다해 자기 색깔을 기세로 밀어붙인 이들은 그렇게 A면과 B면을 아름다운 노래로 가득 채운 명반 같은 존재가 된다. 스무 살이 된 제천의 세월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하며, 개막작으로 더없이 완벽한 선택이었음을 느낀다. 앞으로도 길이길이 기억될 아바의 시간과 제천의 시간을 동시에 기대하게 된다. 이 두 이름에 포개진 추억을 가득 가진 모두의 시간까지 가득 담아, 오래오래 아름다운 노래를 쌓자.
[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일정]
9월 5일(목) 19:00 제천예술의전당(개막식)
9월 7일(토) 17:00 제천시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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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함없는 20년 지기 영국 누나의 사랑학개론
역시 이 누나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좋아할 수밖에. 2000년대 초반에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젠 두 아이의 엄마이자 50줄에 접어든 브리짓 존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스럽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브리짓 존스의 변함없는 매력을 전하는 동시에 조금 더 성숙해진 사랑의 개념을 그녀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한다. 1편부터 그녀와 함께 걸어온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그 자체로 반가운 작품이다. 그것도 눈물 나게.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의 아침은 전쟁터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을 등교시켜야 하는 그녀는 매일 이 쉽지 않은 일을 해낸다. 몇 년 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남편 마크 다시(콜린 퍼스)가 이었으면 더 수월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는 현실을 마주하며 특유의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그러던 어느 날, 브리짓은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이어리를 다시 쓰고, 방송국에 취직해 일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도 시작한다. 그것도 20대 꽃미남 록스터(리오 우달)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더 나아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동년배 교사 스콧(추이텔 에지오포)과도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가 30대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 것처럼, 네 번째 시리즈인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극 중 브리짓 존스의 나이에 맞게 50대 여성들의 현실을 조명한다. 예전처럼 그녀는 불투명한 미래와 진정한 사랑 찾기에 상처받고, 외로워하며, 이를 술과 애정하는 친구들과의 수다로 풀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이며, 사별의 아픔도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예전처럼 당당함과 용기도 줄어들었다.
50대라면 충분히 공감대를 살 이야기를 전반부에 뿌린 영화는 이를 발판 삼아 20대 남자와의 불같은 사랑으로 환기한다. 현실에서 쉽게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이지만, 브리짓은 이 잊고 지냈던 뜨거운 감정으로 점점 화사하게 빛난다. 그리고 우중충했던 과거의 삶과 안녕을 고한다. 중요한 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열병과도 같은 이성과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그 범위를 확장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성숙해진 브리짓처럼 영화 또한 시리즈의 중심축인 ‘사랑’의 개념을 확장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표현한다. 사는 환경이 변했고, 위치가 달라졌고, 더 챙겨야 하는 이들이 많아진 브리짓 존스의 중요한 선택들은 전작들보다 현실적이고, 그 자체로 공감대를 갖는다. 이를 통해 동년배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다. 어쩌면 이 부분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주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이번 영화는 단순히 추억 팔이에만 무게 중심을 둔 작품은 아니다. 중년여성으로서 갖는 고민과 두려움을 충분히 들려주고, 이를 조금씩 타파해 가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브리짓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전작들에 비해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이어진다는 점에서 짜임새는 헐겁다.
이런 단점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의 8할은 르네 젤위거에서 나온다.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는 기분 좋게 만드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해맑은 눈웃음만 봐도 마음을 열리게 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이 계속 이어지는데, 순간 20여 년전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되어도 2%, 아니 20% 부족하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이 캐릭터는 르네 젤위거만이 연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런 모습을 조금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예전에 입었던 파자마와 음악, 상황 등을 만든 제작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다니엘 역에 휴 그랜트를 비롯해, 시리즈에 출연했던 다수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그리 반가울 수 없다. 특히 르네 젤위거와 마찬가지로 다니엘 역을 맡은 휴 그랜트 또한 그 매력이 변함없다. 그 또한 세월을 비껴갈 수 없었지만, 과거 다니엘의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 매력은 그대로 선보인다.
영화는 브리짓 존스와 함께 늙어가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겠지만,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2~30대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은 건 사실이다. 전작에 나왔던 명장면을 패러디하고 주요 아이템을 오버랩시키는 등 팬들만이 아는 즐길 구석이 의외로 많다. 만약 이 영화를 심드렁하게 봤다면 집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꼭 한 번 보기 바란다. 50대의 브리짓도 20년전에는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용기를 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스럽다는 것도. 제2의 인생을 위해 오늘도 웃는 브리짓을 응원한다. 영원히~덧붙이는말: 쿠키는 없다. 하지만 엔딩크레딧과 함께 전 시리즈의 스틸이 화면을 수놓는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브리짓 존스와 마크 다시, 다니엘, 그리고 지금도 이 영화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모든 인물의 모습은 그 자체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눈물 나는 감동도 전한다. 시리즈의 팬이라면 손수건은 필수니 꼭 가져가길 바란다.
사진 제공: 유니버셜 픽쳐스
평점: 3.0 / 5.0
한줄평: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은 영국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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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도의 탈을 쓴 심리 체험 드라마!
다수의 스포츠인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싶다고. 권투, 태권도, 유도 등 눈앞에 있는 상대와 시합을 벌이는 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는 검도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색의 옷과 호구를 쓰고 상대에게 일격을 가하는 이 스포츠에서 상대 선수는 곧 자신처럼 보이기 마련. 검도를 소재로 한 <만분의 일초>는 이 점을 극대화하며 오롯이 체험하는 자신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대회에 참가한 재우(주종혁). 외딴 산속 내 합숙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곳에서 과거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 태수(문진승)를 만난다. 재우가 태수를 더욱더 증오하는 건 사고 이후 검도 사범인 아버지가 그를 애제자로 삼았기 때문. 악연이자 이제는 경쟁자로서 태수를 만나야 하는 재우는 훈련에만 매진한다. 하지만 선발대회 참가자 중 가장 좋은 실력을 갖춘 태수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어렸을 적부터 친분이 있었던 감독이 대회 참여 기회를 줬다는 오명도 그를 괴롭힌다. 매주 탈락자가 생기는 선발 시스템의 압박을 받는 재우는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며, 결국 다른 참가자에게 피해를 주고 만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만분의 일초>는 검도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살리는 연출이 돋보인다.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선수들의 호흡과 음성, 죽도의 타격음, 구르는 발걸음 등 검도 이외의 것은 음소거 된다. 기존 스포츠 영화와 달리,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갖가지 요소는 일부러 배제한다. 이로 인해 오롯이 선수의 움직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자신도 모르게 숨죽여 이들의 대결을 바라본다.
1:1 대결이라는 점에서 대련 시 죽도를 잡은 손이나 구르는 발의 리듬과 스텝 등을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는데, 마치 서부극에 나오는 총잡이들처럼 결전을 벌이기 전 눈과 손을 클로즈업하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부분과 오버랩된다. 경기 과정에서 벌어지는 스펙터클한 면을 부각하지 않으며, 최대한 담백하고 건조한 카메라 워킹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영화는 오롯이 검도를 체험하는 동시에 주인공 재우의 심리를 체험하는 여정을 그린다. 풍경 소리로 시작해 풍경소리로 끝나는 형식은 마치 정신과 상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듯한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로 빨려 들어가는 극 중 내용은 결국 검도를 소재로한 한 인간의 내면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송태섭이 농구로 형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이겨낸다면, 재우는 검도를 통해 자신을 옥죄는 미움과 증오의 늪에서 벗어난다. 재우에게 검도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매개체로 비춰지는데, 이는 아버지라는 대상과 오버랩된다. 재우에게 아버지란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가족을 버리고 형의 원수인 태수를 애제자로 받아들인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 이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태수도 마찬가지다. 태수를 향한 재우의 증오는 아버지를 향한 증오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극 중 재우가 태수를 이기지 못하는 건 일렁이는 마음의 동요다. 검도는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글거리는 분노는 그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죽도를 잡은 손의 떨림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 결국 지난한 과정을 통해 그가 깨달은 건 최종 상대가 바로 유년 시절 상처를 간직한 자기 자신이라는 것. 마지막 대결에서 죽도의 끝을 향하는 건 태수이지만, 상대가 자기 자신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재우의 내면 밑바닥까지 끌고 가는 영화 특성상 보는 이의 감정 소모가 심한 편이다. 점차 강박에 시달리는 재우의 트라우마 극복기는 보는 이들에게도 그 힘겨움이 느껴지고, 때로는 피로감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재우의 심리 여정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드라마 <이상한 나라의 우영우>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주종혁은 대사 보단 표정과 움직임으로 인물이 가진 감정을 표출하고 토해낸다. 특히 애증의 관계인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놓지 않은 손, 마지막 태수와의 대결 때 비로소 놓는 손 등 손 연기도 탁월하다. 맞상대인 태수 역의 문진승 또한 과거의 일에 죄책감을 가진 상황에서도 스스로 채찍질하고 연마하며 비워내는 구도자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준다.
영화 <만분의 일초> 스틸 /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관객이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김성환 감독의 말처럼, <만분의 일초>는 검도의 세계, 인간 심리의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 강도를 높이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고 쭉 뻗어 나가는 이야기, 재우의 마음을 대변하듯 어둠으로 시작해서 끝내 자신을 이기고 새하얀 세상을 바라보는 마무리가 깔끔하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영화적 체험, 극장에서 느껴보길 바란다.
평점: 3.0 /5.0
한줄평: 검도의 탈을 쓴 심리 체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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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생각은 적게, 행동은 바로
생각은 적게, 행동은 바로. 권철 감독의 버텨내고 존재하기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한국경쟁 부문에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초정하였다. 작품 속 일곱 뮤지션은 광주극장에서 각자의 ‘버텨내고 존재함’을 말한다. 8월 13일,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에서 권철 감독님을 만나 특별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를 소개해주세요.
이 작품은 뮤지션 최고은님이 2019년부터 진행한 커밍홈 프로젝트의 기록입니다. 고은님은 광주극장에 친한 뮤지션들을 초대하여 광주를 소개하고자 진행하였고 그 연출을 제가 맡았습니다. 광주극장에 가서 준비를 하다보니 극장의 느낌이 좋아서 한 편의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기획에서 시작한 영화가 아닌, 쌓인 기록을 편집하여 만든 영화입니다.
극장과 뮤지션. 어떻게 보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같아요.
이 영화는 극이 아닌 기록과 나열의 영화입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음악과 함께하는 영화제이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사실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을 거의 해보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출품하고 싶어서 마감 기한에 맞추어 급하게 제출했습니다.
광주극장에는 다양한 공간이 있는데, 뮤지션마다 공연하는 장소를 다르게 한 이유가 있나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기획자이신 고은님이 ‘광주극장에 안 와본 사람들도 마치 와본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뮤지션 여덟 팀을 보여주는 단순한 기록의 나열같지만, 나름의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았어요. 영화관에 들어와서 표를 사고, 대기를 하고 극장에 들어선다.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순서대로 입장문, 매표소, 대기실 등의 흐름으로 연출했습니다.
그럼 뮤지션의 장소나 순서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셨는지 궁금해요
뮤지션의 장소나 순서는 음악의 분위기나 주제에 따라 배열했습니다. 시작 주제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김일두, 김사월을 앞에 배치하고, 그 다음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곽푸른하늘, 고상지님의 음악, 마지막은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정우님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노래로 마무리했습니다.
영화의 독특한 인서트들이 기억에 남아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나요?
이 영화는 뮤지션들의 라이브와 그 사이에 인터뷰를 넣은 단순한 구성인데요. 한 편으로 이으려다보니 인서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일두님이 화분으로 바뀌는 것은 촬영 중 갑자기 김일두님이 싱그러운 화분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즉흥적으로 찍은 장면이에요. 궁금해하셨던 곽푸른하늘님의 ‘포도봉봉’은 제가 캐릭터를 생각해서 준비한 소품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버텨내고 존재하기’인데요. 감독님께서는 어떻게 버텨내고 존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하하. 사실 저는 김일두님의 말씀처럼 생각을 적게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이어서 버텨낸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만약 제 스타일로 영화의 제목을 정해본다면 ‘광주 극장의 지박령들’이라고 짓고 싶네요.(웃음)
감독님의 앞으로 꿈이나 목표가 있을까요?
저는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영상을 시작했고, 지금도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기획과 연출이 들어간 음악 영화를 만들고 싶네요. 저는 재미있는 걸 좋아해서 다음에는 좀 더 키치하고 막 나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벌써 몇 가지 아이디어도 생각해 놓았습니다. (웃음)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들여 만들어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또 참여하고 싶습니다.
버텨내고 존재한 광주극장에서 뮤지션의 다양한 음악을 재미있게 풀어내어 보여주며, 영화와 음악을 나란히 선보이는 이 작품은 어쩌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가장 닮아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권철 감독의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만들어 낼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luna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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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어스킨> - ‘죽여주는 멋진 가죽, 계속 입을 건가요?’
디어스킨 (Le Daim, Deerskin)
개봉일 : 2020.01.01 (한국 기준)
감독 :미스터 와조
출연 : 장 뒤자르댕, 아델 에넬, 알버트 델피
‘죽여주는 멋진 가죽, 계속 입을 건가요?’
당신의 옷장엔 진짜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이 몇 벌이나 있나요? ‘죽여주는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별생각 없이 사들였던 가죽옷들. <디어스킨>을 보고 나면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이 왔을 때, 그 옷을 꺼내 입기 껄끄러워질지도 모릅니다.
전 재산을 털어 100% 사슴가죽으로 이뤄진 빈티지 재킷을 손에 넣은 <디어스킨>의 주인공 조르주는 재킷을 바라보며 위험한 상상에 빠진다. 낡고 멋없는 재킷이 아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나의 재킷. 바라만 봐도 행복한 내 재킷. 다른 사람들은 절대 입을 수 없지. ‘그러니 세상에 재킷을 입은 사람은 내가 유일해야 해.’ 라는 쉬이 공감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린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영상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끝내주네, 죽여주는 스타일.” 장난이나 웃음이 서린 표정이 아닌 진지한 표정으로 뻔뻔하게 거울을 바라보는 조르주의 모습에 “골 때리네..”라는 말과 웃음이 절로 나오는 영화였다. 꽉 맞는 재킷을 입은 그는 본인을 영화감독이라 말하며 거울 앞에 서있는 자신에게, 재킷을 입은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민다. 그리고 재킷을 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명한다. “죽을 때까지 재킷을 입지 않겠습니다.” 조르주의 행동이 ‘재킷’이라는 사물에 꽂힌 미치광이에 지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저 한마디에 이 영화의 모든 걸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람 정말 미쳤지만, 나름 의미 있게 미쳤다.
디어스킨 시놉시스
44세 조르주, 자신의 전 재산으로 꿈꾸던 100% 사슴가죽 재킷을 사고 덤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감독 행세를 한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을 입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들의 재킷을 없앨 계획을 세우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조르주는 전 재산을 털어 100% 사슴 가죽 재킷을 구매하기로 한다. 새로운 재킷을 모시러 가는 길, 그는 입고 있던 재킷을 쿨하게 벗어 변기에 쑤셔 넣는다. 왠지 합성 가죽 정도로 이루어졌을듯한(?) 그 재킷을 내다 버리고, 부드러운 사슴 가죽 재킷을 입은 순간 7000유로가 아깝지 않은 만족감이 조르주를 휘감는다. 재산을 두고 아내와 분쟁 중인 복잡한 상황이지만 그는 현실보다 지금 몸에 두르고 있는 재킷에 집중한다. 조르주는 세상과의 유일한 연락 수단이었던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재킷과 함께 받은 캠코더를 손에 든다.
“끝내주네, 죽여주는 스타일.”
죽여주게 마음에 드는 재킷을 입으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이 모두 내 재킷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고, 자신감이 차오른다. 카드엔 잔액이 한 푼도 남지 않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조르주는 당당하다. 왜냐면 난 죽여주는 재킷을 입었으니까!
“내 소원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 입은 사람이거든.”
조르주는 자살한 직원에게서 사슴 가죽 모자를 뺏고 사슴 머리 박제와 사슴 모양 촛대 앞에 앉아 모자를 써본다. 사슴, 사슴, 사슴. 그의 몸을 감싸기 위해 몇마 리의 사슴이 희생됐을까. 마치 드래곤볼을 모으듯 하나둘 모이는 사슴 가죽 옷들. 사슴 가죽이 더해질수록 조르주의 자신감은 하늘로 치솟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 ‘유일한 재킷 입은 사람 되기’ 프로젝트에 새로 참여하게 된 술집 종업원 드니스. 그녀의 돈과 편집 기술이 더해지자 조르주의 영화 제작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조르주의 테이프에 담긴 재킷을 입은 위풍당당한 조르주의 모습, 재킷을 트렁크에 넣으며 ‘재킷을 입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 재킷을 입고 있다가 조르주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모습. 드니스는 조르주가 넘긴 테이프를 보며 당황 대신에 감탄을 하고 돈을 가불 받아 조르주에게 사슴가죽 바지를 선물한다. 드니스의 선물로 조르주의 사슴 가죽 풀세트와 그의 영화가 완성된다.
“죽여주는 스타일, 안 보여요?”
조르주가 말하는 죽여주는 스타일, 동물 가죽으로 도배된 이 죽여주는 스타일은 가죽 재킷을 입은 주인들을 죽게 만든다. 조르주와 마주친 사람들 중 죽지 않은 사람들은 재킷을 입지 않은 사람들뿐이다. 심지어 “재킷을 입지 않겠다”라며 재킷을 조르주의 트렁크에 넣은 사람들은 그에게 돈을 받기까지 했다. 영화의 말미에는 사슴 가죽 풀세트를 입은 조르주도 총을 맞는다. 사슴이 사냥꾼의 총에 맞아 쓰러지듯, 사슴 가죽을 도배한 조르주도 사냥총에 목숨을 잃고 드니스는 그의 가죽 재킷을 벗긴다. 우리가 입는 가죽옷은 이런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듯이 말이다.
이 영화에서 재킷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저 길을 걸어가기만 해도 맞아 죽거나 찔려 죽는다. 죽여주는 재킷을 입고 죽을 것인가, 죽여주는 스타일을 포기하고 생존할 것인가.. 나는 죽여주는 스타일 대신 생존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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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최고, 최악의 CG 장면들
#산돌구름 #마블CG #엔드게임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1. 2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마블의 CG
01:02 아이언맨3 가짜 로다주
02:09 에이지 오브 울트론 마크45
02:53 디에이징 효과
03:52 시빌워 토니&스파이더맨
05:04 닥터스트레인지의 마법
05:57 CGI 팬서
07:08 엔드게임 Final Battle
07:57 헐크버스터 in 와칸다
08:28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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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4] (브런치작가/영화리뷰/결말x) 액션의 타격감을 업그레이드해 돌아온 시리즈-고질라vs콩
고질라 시리즈는 2편이 개봉되었었고, 킹콩 시리즈도 2편이 개봉되었죠.
이번에 개봉한 고질라vs.콩은 고질라 시리즈의 연속선 상에 있습니다.
킹콩의 앞선 두 편은 무시되거나 가볍게 처리되고 있죠.
그런데 이번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킹콩이에요.
고질라는 사람과 소통을 하긴 어려운 괴수인데 반해 킹콩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대화도 가능하죠.
그래서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쪽은 킹콩 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영화에서는 메카 고질라가 등장하고 킹콩과 고질라가 대결을 벌여요.
이들이 싸울 때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지만 그것을 보는 관객들은 그 타격감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죠.
과거 시리즈와 비교할 때 서사는 역시 엉망이지만, 액션이나 CG는 더 좋아졌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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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버지의 길> 메인 예고편
세르비아의 작은 시골마을.
부당해고를 당해 일용직으로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두 아이의 아버지 니콜라.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회사에 대한 분노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부패한 사회 복지과는 자신들의 이득만을 위해 두 아이들의 양육권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버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힘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들을 빼앗겨 버린 니콜라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단 하나의 일념으로
300km가 넘는 거리인 수도 베오그라드까지의 긴 여정을 결심한다.
모든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되찾을 권리와 정의를 위해
아버지 니콜라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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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티저 예고편
"안녕하세요, 정다은 간호사입니다” 정신병동에 처음 근무하게 된 다은이 마주할 다이나믹한 일상 우리들에게 ‘다시’ 좋은 아침이 올까요?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11월 3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