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1-25 07:46:26
흉측하게 그로테스크하고, 불쾌하게 교훈적인
영화 〈서브스턴스〉

메시지는 심플하다. 사회가 나이와 몸매, 외모를 기준으로 여성의 가치를 매기고 여성 스스로도 이 기준을 내면화했다는 것. 중요하지만 새롭지는 않은 주제다. 그렇다면 전달 방식이 중요해진다. 관객이 ‘알고 있다’고 여기는 주제를 다시금 각인시키려면 무미건조해서는 곤란하다. 혁신적 접근으로 관객의 머릿속을 충격적으로 갱신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다른 영화를 압도하고 이 주제의 왕좌에 오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서브스턴스〉가 가는 길이다. 여성의 외모를 철저하게 위계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은 여러 장르의 여러 영화가 천착해온 주제다. 선배들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가서는 자신만의 특이성을 획득할 수 없다. 〈서브서턴스〉의 선택은 흉측하게 그로테스크하고 불쾌하게 교훈적인 심리 스릴러다.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기본 이야기 구조에서 시대와 성별을 바꿨다고 보면 된다. 과거 오스카상을 수상했으나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출연자로 근근이 활동을 이어가는 엘리자베스. 그녀 커리어가 쇠락한 가장 큰 이유는 나이와 그로 인한 외모 변화다. 50대에 진입한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또래보다 ‘월등한’ 외모를 가졌지만 업계 관계자는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매력적’으로 보지 않는다. 50세 생일, 엘리자베스는 에어로빅 쇼에서 해고당한다.
그러나 뜻밖의 반전 기회가 찾아온다. 엘리자베스는 은밀하게 한 약물(서브스턴스)을 권유받는다. 세포 분열을 촉진시켜 또 다른 나를 탄생시켜주는 약이란다. 엘리자베스를 모체로 한 또 다른 신체와 자아를 가진, 무엇보다 엘리자베스보다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는 이렇게 탄생한다.
규칙이 있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일주일 간격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한 사람이 활동할 때, 다른 사람은 깊은 수면에 빠져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교체 기간을 어기면 상대방의 신체에 치명적 손상이 가해진다(이를테면 신체 일부가 ‘늙고 추한’ 상태로 변한다). 수의 탄생으로 자신이 젊었을 때 누린 커리어의 상승 곡선을 다시 시작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기분이 좋다. 일주일간 잠들었다 깨어날 때마다 길거리와 TV에 수의 얼굴이 점점 더 많이 나오는 데서, 업계 관계자와 남자들이 다시금 자신에게(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수가 주는 기쁨은 엘리자베스의 슬픔과 좌절의 원천이기도 하다. 수와 대비되는 자신을 볼 때마다 자괴감에 빠지고, 자신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데 박탈감을 느낀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수에게 질투를 느끼기 시작한다. 불만은 수에게도 있다. 급속도로 자기 가치를 올리는 중인 수는 일주일마다 자기 몸을 엘리자베스에게 내줘야 한다는 게 불만이다. 그래서 조금씩 규칙을 어기고 교체 기간을 미룬다. 그러면 엘리자베스의 신체는 더 ‘흉해진다’. 점차 엘리자베스의 감정이 증오로 물든다.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라는 서브스턴스의 가치가 흔들리고, 두 사람은 폭주를 거듭한다. 폭주의 끝은 파멸이다.
〈서브스턴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끔찍할 정도로 기괴한 이미지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늙고 추해지는’ 엘리자베스의 몸 이미지 말이다. 이 이미지는 우리를 고민케 한다. 늙은 몸이 추하기만 한가? 괴물이 연상될 정도로?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에 한정하자면, 이 질문은 적합하지 않다. ‘여성은 늙으면 외모가 쇠락하고 매력을 상실한다’는 명제는 영화의(그리고 우리 사회의) 절댓값이다. 극단적으로 ‘추한’ 엘리자베스의 몸은 사회가, 그녀 스스로가 나이 든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고발하는 수단일 뿐, 노인 여성의 몸이 실재하는 방식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가(그리고 여성 자신이) 나이 든 여성의 몸을 얼마나 왜곡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상징으로서 늙은 몸에 그로테스크함을 결부해 영화 이미지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까, 변화한 엘리자베스의 몸을 보고 욕지기를 느끼는 관객은 왜 사회는/나는 나이 든 여성의 몸을 저런 방식으로 왜곡해 상상할 수밖에 없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 심리 스릴러 장르가 자아내는 불편한 긴장감과 결부한 ‘끔찍한’ 육체 이미지가 우리의 통념에 틈입해 머릿속을 헝클어뜨리는 것이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 다른 자아와 신체를 가진 하나의 존재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또 다른, 그래서 의미심장한 맥락 역시 갖는다. 수는 엘리자베스에게서 태어났고, 두 사람은 교체 주기마다 서로의 피를 교환한다. 즉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무수히 반복‧순환되어온 ‘모녀 관계’를 닮았다. 엘리자베스는 자기 몸에서 나온 수를 보고 크게 만족하지만 이내 자신을 방치하고 착취해 홀로 승승장구하는 수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수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물심양면 돕기는커녕 훼방만 놓기 일쑤라는 데 마찬가지로 분노한다. 전형적인 모녀 관계 갈등 양상이다. 이렇게 ‘나’이자 ‘타인’, 가장 친밀하고도 먼 존재인 ‘엄마와 딸’의 관계성 속에서 두 여성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의 정신을 현실에서 구현하지 못한다(그랬다면 아마 〈서브스턴스〉는 두 여성이 성차별적, 외모 차별적 사회를 풍자하는 코미디 영화가 되었을 터다).
그 결과는? 여성들은 연대하지 못하고 서로를 적대한다. 여성을 위축시키는 왜곡된 통념은 안정적으로 재생산된다. ‘일부’ 남성들은 이 통념에 기생한다. 엘리자베스와 수처럼 적대적 관계성을 반복하는 개별 여성들은 명멸하다 사라진다. 〈서브스턴스〉가 선보이는 끔찍한 이미지들을 매개로, 우리는 다시금 훼손된 연결성을 복원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비로소 ‘흉측한’ 엘리자베스의 몸과는 다른 나이 든 요성의 몸을 상상하며 기쁘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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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순간 카리스마로 압도하는 역대급 배우들로 탄생한 영화
이 영상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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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이트」 이 영상을 보고나면 이해가 될 겁니다 (*결말포함/영화리뷰)
? '그린나이트' 영화리뷰/결말포함 해석영상(*스포일러) 가웨인 기사, 녹색기사, 아서왕 전설
- 그린나이트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판타지, 호러
각본, 감독: 데이빗 로워리 원작: 중세 전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제작: 토비 할브룩스, 제임스 M.존스턴, 데이빗 로워리, 팀 헤딩턴, 테레사 스틸 페이지, 애런 길버트
출연: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외
촬영: 앤드류 드로즈 팰러모
음악: 대니얼 하트
편집: 데이빗 로워리
제작사: 레이 라인 엔터테인먼트, 브론 스튜디오, 세일러 베어
수입사: 대한민국 찬란
배급사: 미국 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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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라임 보스> 30초 예고편
얼굴도 본명도 절대 드러내지 않는 마약왕 a.k.a ‘개구리’는
미국 아칸소주를 지배하는 최대 마약 조직의 보스.
그리고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원 딜러 ‘카일’과 ‘스윈’은
위장 작전 중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이를 수습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흘러간다.
그날의 잘못된 선택이 세 사람을
아슬아슬한 만남으로 이끄는데...
위험에 빠진 마약왕의 마지막 작전!
목숨을 걸고 완전 범죄를 완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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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돌풍> 공식 예고편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6월 2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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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집요하게 파헤친다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을 입증하듯이, '파묘'는 집요하게 파헤친다. 중반 이후에 살짝 휘청이기도 했지만, 끝까지 완주하면서 관객들이 갈구했던 새로운 그림과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요소가 잘 버무려진 '험한 것'의 맛이 강력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잇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영화다. 어렸을 적 100년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본 감독의 기억에서 출발해 파묘, 동양 무속 신앙 소재가 가미됐고, 여기에 미스터리한 사건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조화롭게 엮였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작인 만큼, 오컬트 장르는 맞다.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복잡한 서사로 구성된 '사바하'보다는 비교적 이해 난이도가 쉽고 정통 오컬트 요소가 강했던 '검은 사제들'보다는 장르가 복합적이다. 중간에 위치해 있지만, '파묘' 역시 섬뜩한 기운을 내뿜는 건 매한가지다.
영화가 초반부 관객들의 몰입도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믿음'의 힘이 컸다. 조상묘를 잘 쓰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믿음, 조상묘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후손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을 잘 이용하면서 땅과의 연관성을 기이하고 괴이하게 풀어낸다. 이장과 살풀이로 땅에 은 것들을 위로하는데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한다.
악지 중의 악지에 묻혀있던 조상님의 원혼의 모습이 슬쩍슬쩍 비침과 동시에 자신의 후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은 확실히 소름 끼친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점프 스케어를 쓰지 않아도 장재현 감독이 심어준 장치들은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날뛰는 원혼을 막기 위해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당 화림(김고은), 화림의 제자 봉길(이도현)의 팀플레이도 꽤나 쫀쫀했다.
중반부에서 끝내도 될 법했지만, '파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파헤치러 나아간다. 친일파 조상님이 묻혔던 악지에 또 다른 '험한 것'이 숨겨진 것을 감지하면서 영화의 스토리는 가족사에서 한반도의 과거사로 확장한다.
그러면서 '파묘'는 오컬트에서 퇴마물로 변화하는데 이 지점에서 보는 이에 따라 재미의 호불호가 갈린다. 험한 것의 정체가 일본 귀신 '오니'로 밝혀지면서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한마디가 비로소 이어지는데, 이때부터 지나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면서 요동치던 심장이 안정화(?)되어간다. 괴기한 오니의 비주얼도 생각만큼 무섭지 않아 위압감이 떨어진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파묘'의 단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빙의한 듯한 연기 차력쇼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대배우' 최민식은 40년 경력 풍수사 그 자체였다. 흙을 맛보고, 땅을 바라보며 숨 쉬는 것만으로도 스크린을 압도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장의사 영근 역을 맡은 유해진은 관객들의 시선에 가까운 캐릭터를 맡았고 동시에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특유의 존재감으로 환기시킨다.
매우 인상 깊었던 건 김고은이 분한 화림이다. 무당으로 변신해 범접불가의 포스를 뿜어내는가 하면, 신명 나는 대살굿 연기를 선보이며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또 보는 내내 '멋쁨'의 매력까지 뽐내니 새로운 인생캐릭터를 만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묘'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도현 또한 훌륭했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파격적인 비주얼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선배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연기력으로 한 축을 이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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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스웨덴] 사랑이라는 모순에 대해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트와일라잇>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뱀파이어의 인기를 체감케 한 소설로도 잘 알려진 <렛 미 인>은 두 차례 리메이크 될 정도로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전무후무한 서정 뱀파이어물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리는 작품 중 하나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해당 영화는 원작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스톡홀름 외곽의 소도시 블라케베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단순 로맨스를 넘어 관객들로 하여금 갇혀있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 일종의 성장과도 같은 묘한 감상을 갖게 한다는 작품으로도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일 년 중 반절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눈이 내리는 그야말로 열기의 화창함과는 상반된 곳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온 세상의 소음을 흡수할 정도의 눈이 내린 어느 날, 고요 속에 살아 숨쉬던 도시는 소녀 '이엘리' 를 맞이하게 되고 소년 '오스칼'은 그녀의 비밀에 점차 다가가게 된다.
혹시 누군가와의 사랑이 세계를 바꿔놓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여기 소년 오스칼의 세계가 그러하다. 이엘리라는 소녀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게 된다. 그녀가 단순히 뱀파이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스칼은 지속적인 학교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인물로 유일한 여가라고는 단조로운 아파트를 뛰쳐나가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를 흉내내며 그를 찌르는 상상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눈 내리는 고요한 놀이터를 배경으로 그렇게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던 두 소년과 소녀는 만나게 된다.
오스칼이 이엘리에게 빠지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외톨이었던 자신의 새로운 친구일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가해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어른들이 제안하는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다름 아닌 폭력이다. 밤이 찾아오면 더욱 고요해지는 이 곳에서 두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맞물린다. 그야말로 더 큰 성찰로 나아가지 못한 단순한 아이들의 해결책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유혹적이다. 오스칼은 어쩌면 어른 그 이상을 웃도는 나이이나 영원히 12살로 살아가는 이엘리에게서 폭력 이라는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오스칼은 그런 이엘리의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시간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겪게 된다.
영화는 그야말로 이러한 모순의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채 조용하나 거침없는 전개를 선보인다. 냉전 이후 처절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치열하지도 않는 삶을 사는 후기 산업 사회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여가라곤 산책과 수다가 전부인 삶을 산다. 이를 배경으로 폭력으로 하나가 되는 두 아이는 모순적이다. 폭력을 통해 폭력 속에서 구원 받는다는 서사는 물론 그들을 둘러 싼 한 밤 중 눈부신 눈더미와 같은 배경 역시 아이러니의 이미지를 갖는다. 제목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엘리라는 비극은 초대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 존재이다. <렛 미 인>은 극중에도 강조되어 등장하지만 뱀파이어인 그녀가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지만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인다. 이엘리의 보호자였던 호키는 물론 오스칼 역시 그녀를 자진해 맞이한다. 그렇게 의도된 모순들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말 마저 이엘리가 과연 오스카를 이용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의문을 남기는 와중 그들이 결국 알면서도 선택한 비극이라는 모순이 갖는 의미와도 같은 지점이 강조되기에 서정을 자극한다 볼 수 있다. 순리는 납득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큰 울림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예외는 그 자체로도 모순을 품고있으나 특별함을 갖고 있다. 영화 <렛 미 인>이 보여주는 서사 또한 그러하다. 더불어 12살 아이인 오스칼의 시점이기에 관객은 일정 부분 그의 나이대로 돌아가 잘못된 것임에도 그 선택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에서 다시 주요 소재를 살펴본다면 왜 모순이 갖는 단점이 해당 영화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원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뱀파이어라는 특정 설정 역시 모순의 일종으로 십분 작용한다. 사실 뱀파이어는 근사한 외모와 비극적 배경으로 여러 콘텐츠의 매력적인 소재가 되어주나 현실을 사는 뱀파이어는 어쩌면 그 환상과는 꽤 큰 차이를 보일지 모른다. 우선 콘텐츠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이들은 피를 섭취하며 그 외의 음식물에는 몸이 먼저 거부감을 보인다. 그렇기에 늘 살인이 따라 다님으로 유랑이 불가피하다. 또한 대체로 평생을 살며 이들의 시간은 추정컨대 죽음을 맞이한 날에 멈춰져있다. 그것을 장점으로 부를 쌓는 류의 스토리도 다수 존재하나 이엘리의 시간은 12살에 멈춰져있다. 경제 활동은 물론 법적으로 홀로 살아가기에 장벽이 존재하는 나이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엘리는 보호자 호킨의 사냥을 통해 피를 공급 받으며 살아간다. 여기서 이 호킨과 이엘리의 관계성이 영화 속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소녀인 이엘리에 비해 호킨은 아버지로 보일법한 외모의 어른이다. 그는 이엘리를 위해 낯선 곳에서 사냥을 시작하지만 어쩐지 그의 행동은 허술하기만 하다. 제대로 된 피를 구하기도 전에 사람들에 의해 장비를 잃어버리기도, 제대로 된 사전 조사 없이 사냥감을 구하려다 모든 것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고마움은 커녕 이엘리는 모질게 대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호킨은 불평하지 않는다. 그 어떤 감정의 표현 없이 이엘리만을 위한다. 그가 딱 한 번 자신의 의견을 소리내 말하는 것은 오스칼과의 만남을 중단하라는 때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실패한 사냥을 책임지기 위해, 더 나아가 이엘리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얼굴 위로 염산을 부어 끝내 이엘리의 허기를 채워주게 된다. 그렇다면 이 관계성은 영화 속 서사에 왜 들어가게 된 것일까.
호킨의 마지막 대사가 '이엘리' 였음으로 미루어보건데 이들은 부녀지간이 아닌 연인 사이였음이 암시된다. 호킨 역시 오스칼의 나이에 그녀를 따라 나섰던 것일지 모르며 그렇게 호킨의 시간 역시 이엘리와 만나는 그 순간 멈춰버렸을지 모른다. 끝까지 이엘리에게 헌신하는 감정이 사랑이라면 어쩌면 결국 이엘리에게 구원 받았음으로 함께 길을 떠나게 된 오스칼 역시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 역시 가능케 한다. 하지만 이렇게 호킨과의 관계성을 통해 한 차례 그들의 미래가 예고된 바와 달리 결말은 기차 차장 너머 한껏 들어오는 햇살을 강조하며 아름다운 새출발로 묘사된다. 오스칼은 그 환한 빛을 맞이하며 어둠 속에 잠긴 자신의 사랑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내며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아침과도 같은 사랑의 시작이 결국 밤의 희생양이 되는 호킨의 결말처럼 끝나리라는 일종의 예고, 순환의 흔적은 잔인하나 동시에 찬란하기도 하다.
엔딩 크레딧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을 꽉 감은 채로 강한 빛을 마주하면 눈 앞을 가득 채웠던 어둠은 점차 붉은 색의 빛으로 물든다. 검은 엔딩 크레딧의 배경은 꽉 감았던 오스칼의 시야를 대변하듯 칠흑같은 어둠의 색이었다가 점차 피붉은 색으로 변화한다. 오스칼이 최후가 어쩌면 호킨의 최후처럼 반복되는 일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오스칼의 세상, 권태와 폭력에 노출되어있던 세상은 이엘리라는 광폭적인 사랑에 의해 변화를 맞이했다. 이는 명백한 구원이다. 눈부시도록 밝은 수영장에서 죽음의 위기에 놓였던 오스칼이 이엘리를 바라보기 훨씬 이전부터 구원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오스칼 뿐일까? 더 짙은 어둠을 찾아, 더욱 긴 겨울을 찾아 유랑하던 이엘리는 이제 어둠 속에서 먼저 오스칼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어쩌면 오스칼의 존재는 단순 호킨의 대체제가 아닌, 다시 시작된 시간 즉 영원을 사는 이가 다시금 맞이하는 원형의 시간일지 모른다.
눈 부시도록 시린 스웨덴의 눈은 아이러니 하게도 긴 밤과 함께 찾아온다. 추위도 잊은 소녀에게 오스칼은 과연 무엇을 깨닫게 해준 것일까. 찬안한 밤의 설원은 그렇게 두 사람을 방관한다. 관객들 역시 그 끝이 비극일지 찬란할지 알 수 없으나 소년과 소녀를 다른 시간으로 보내줄 수 밖에 없다.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알고 있으나 그 끝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사랑의 모순됨은 그렇기에 우리가 가장 열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많은 색을 띄고 있는 것 역시 그때문일지 모른다. 내 삶이 슬펐기에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노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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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청부 살인 설계자 강동원의 완벽 변신!
6일째 1위를 달리고 있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꺾고
1위에 올라설수 있을지! 5월 마지막주 개봉예정작 같이 만나보아요
5월 마지막주 개봉예정 PICK
설계자
-강동원 X 이무생 X 이미숙
드림 시나리오
-니콜라스 케이지 X 줄리안 니콜슨
오늘부터 댄싱퀸
-리브 엘비라 키페르순 라르손 X 빌리아르 크루센 비오달
창가의 토토
-오노 리리아나 X 야쿠쇼 코지
설계자
The Plot
개요: 범죄, 드라마 | 한국 | 99분
감독: 이요섭
출연: 강동원, 이무생, 이미숙, 이현욱, 탕준상
개봉: 2024.05.29.
배급: (주)NEW
시놉시스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
그의 설계를 통해 우연한 사고로 조작된 죽음들이 실은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번 타겟은 모든 언론과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유력 인사.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수 있는 위험한 의뢰지만 ‘영일’은 그의 팀원인 ‘재키’, ‘월천’, ‘점만’과 함께 이를 맡기로 결심한다.
철저한 설계와 사전 준비를 거쳐 마침내 실행에 옮기는 순간 ‘영일’의 계획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데...!
드림 시나리오
Dream Scenario
개요: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02분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줄리안 니콜슨, 릴리 버드, 마이클 세라 등
개봉: 2024.05.29.
배급: ㈜올랄라스토리, 메가박스중앙㈜
시놉시스
소심하고, 한심하고, 평범 그 자체여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감 없는 ‘폴’로 인해 온 세상이 떠들썩해진다! 왜? 그가 지구상 모두의 꿈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실존 인물 맞나요? 왜 당신 꿈을 꾸죠? 도대체 누구세요?” SNS 메시지 폭주, 인터뷰 출연, 광고 모델 요청은 물론, 심지어 꿈속 만남이 현실로 이어지는 기막힌 일까지! 꿈속 남자에서 모두가 꿈꾸는 남자로 거듭난 ‘폴’! 하지만 갑자기 그가 등장하는 모든 꿈들이 악몽이 되는데…
오늘부터 댄싱퀸
Dancing Queen
개요: 드라마 | 노르웨이 | 92분
감독: 오로라 고세
출연: 리브엘비라 쉬퍼, 스툴라 하르비츠, 빌야르 크누세 등
개봉:2024.05.29.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시놉시스
16만 팔로워를 가진 힙합 댄서 E.D.윈에게 첫눈에 반한 12살 소녀 미나는 운 좋게 오디션을 통과하고 E.D.윈의 댄스 크루에 들어간다. 공부와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에 인생 첫 좌절을 마주한 미나. 하지만 포기란 없다! 한때 춤으로 이름 좀 날렸던 할머니의 지도하에 남사친 마르쿠스와 비밀스러운 연습을 시작하는데… 함께라면 할 수 있어! ★오늘부터 댄싱퀸★
창가의 토토
Totto-Chan The Little Girl at the Window
개요: 애니메이션, 드라마 | 일본 | 114분
감독: 야쿠와 신노스케
더빙:오노 리리아나, 야쿠쇼 코지, 오구리 슌, 박지윤, 장광 등
개봉: 2024.05.29.
배급: (주)디스테이션
시놉시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토토’는 엄격한 규율로 가르치는 이전 학교와 달리, 있는 그대로의 ‘토토’를 품어주는 새로운 학교로 가게 된다. 인자한 교장 선생님, 전차로 만들어진 교실,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곳에서 ‘토토’는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는 나날을 맞이하는데… 사랑스러운 토토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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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없이도 북한을 논할 수 있다는 자신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 10년 만에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은 남몰래 휴전선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준비한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고, 낮은 출신성분 때문에 미래를 마음대로 계획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 하지만 규남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탈주를 시도한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을 말리던 중 함께 탈주병으로 체포되어 버린다.
그런데 꼼짝없이 총살형을 기다리던 규남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온다.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이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킨 것. 현상 덕분에 사단장 직속보좌가 된 규남은 곧바로 그 자리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현상은 자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물러설 길 없는 추격에 나선다.
북한 사용법 리뉴얼
한국 영화에서 '북한'이라는 소재는 활용법이 어느 정도 확립됐다. 작품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공식에 충실하다. 우선 주인공은 대부분 공작원 혹은 군인이다. 그들을 도와주든, 견제하든 고위 정치인도 자주 개입한다. 자연히 장르는 첩보물이거나 전쟁 영화다. 간혹 가다가 <크로싱>처럼 탈북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도 등장하지만, 상업영화라는 틀 내에서는 그 빈도가 잦지 않다.
스토리텔링에서는 '민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던 이들이 한 민족임을 실감하면서 점차 동료애나 전우애를 쌓아 나간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이나 사랑은 언제나 미완의 완성이다. 잠깐동안 외국에서 만나거나,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애틋함만 남기고 죽는다. <공동경비구역 JSA>, <공조>, <고지전>, <의형제> 등 모두 마찬가지다. <사랑의 불시착>도 로맨스를 중심에 뒀을 뿐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는 이 공식에 반기를 든다. 주인공은 여전히 군인이지만, 스토리텔링은 신선하다. 북한 사람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남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냈기 때문. 또 곁가지를 과감히 쳐내고 제목에 걸맞은 템포와 긴장감을 조성해 장르적 쾌감도 극대화했다. 그렇기에 <탈주>의 도전은 충분히 유의미해 보인다. 비록 한국 영화 공식을 완전히 전복하지는 못해도, 꽤 큰 균열을 낸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간결해서 남다른 시작
<탈주>는 시작부터 남다르다. 탈주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연출과 편집이 눈을 사로잡는다. 모두가 잠자는 새벽에 몰래 깨어나 비밀 통로를 이용해 부대 밖으로 나가는 규남. 그는 지뢰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고, 초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부대 막사와 DMZ를 전력으로 오간다. 조금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는 컷 전환과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이 장면은 질주하는 주인공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독립적인 시퀀스로서도 강렬한 이 장면은 영화의 성격과 전개를 암시하는 시작점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가 오프닝만큼이나 간결하기 때문. <탈주>에는 불필요한 잔가지가 거의 없다. 노래 '양화대교'를 삽입한 플래시백이 대표적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도 먼저 떠나보낸 규남. 영화는 그의 개인사를 가사와 오버랩하면서 탈북을 선택한 그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구질구질한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이에 더해 현실적인 묘사 덕분에 규남의 현재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겨우 잡은 멧돼지 고기를 전부 장교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제대 후에도 당의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거나, 밝은 조명이 가득한 남한 측 휴전선을 바라보는 순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군의 꿈이 남 일이 아닌 이유
스토리텔링도 신선하다. 북한을 다룬 기존 한국 영화와는 달리 북한군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남한 관객이 감정이입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규남과 현상의 미묘한 관계성이 있다. 러시아로 피아노 유학을 갔다 온 엘리트 장교, 현상. 현상네 집안 전속 운전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흙수저, 규남. 이들은 '실패할 자유'를 대할 때 가장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규남에게는 실패마저도 자유다. 이미 인생이 정해진 북한 체제 하에서 그는 실패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실패할 자유마저도 갈망한다. 반면에 현상은 자유가 두렵다. 피아니스트로서 실패하고 군인이 된 그에게 자유란 실패를 껴안고 견뎌야 하는 책임과 부담이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에게 실패할 자유를 포기하고 정해진 대로 살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보면 현상의 추격은 북한군 장교로서의 책무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양가적인 감정선 덕분에 규남의 탈주는 마냥 남 일이 아니다. 이미 정해진, 안정적인 길을 따르라는 사회의 압력은 휴전선 이남도 지배하기 때문. 더 나아가 압박에 시달린 청년들이 실패할 자유를 요구하며 몸부림치는 광경은 남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탈주>는 한국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한다. 민족이라는 프레임 없이도, 북한을 그저 은유로써 활용하면서도 색다른 감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담한 스토리텔링에는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현상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문제다. 고위층 자제, 피아니스트, 클래식 애호가라는 묘사가 기시감이 짙다. 이는 <브이아이피> 속 '김광일'(이종석), <사랑의 불시착> 속 '리정혁'(현빈) 같은 북한 고위층 캐릭터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현상이라는 인물은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서사에 걸맞은 탁월한 스릴러
규남과 현상의 묘한 관계성과 서사는 장르의 매력을 살릴 줄 아는 연출을 만나 필사적인 추적극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일례로 <탈주>는 상황을 영리하게 설정한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2일 후에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정보는 비 때문에 지뢰 배치가 바뀌기 전 휴전선을 넘어야 한다는 긴박함을 강조한다. 이는 사단 본부에서 탈출하고, 보위부를 사칭하는 규남의 무리한 행동에도 강력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에 더해 서스펜스를 조절하는 완급조절도 탁월하다. 이 영화는 94분 내내 도망자와 추적자 구도가 강강강강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사단 본부나 경무부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처럼 중간중간 개그씬이 삽입된 덕분에 관객의 피로감은 우려만큼 크지 않다. 이에 더해 규남과 현상의 갈등 구도만 부각돼 지루해질 만한 순간에는 동혁 캐릭터가 분위기를 환기한다.
물론 모든 장면이 의도대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유랑민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의도를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불필요해 보인다. 아마도 규남처럼 북한 체제에 불만을 지닌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규남의 탈주극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추격극 중에 변수를 더해 결이 다른 위기감을 고조하려는 목적도 느껴진다.
후자의 의도는 적중했다. 모든 탈출로를 차단한 후 규남을 포위하는 현상의 계획은 한정된 공간에서 조여들어가는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이는 속도감과 에너지가 부각되는 전후 장면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하지만 유랑민들이 단순히 도구적으로 소비되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그들에 대한 복선도 없었고, 그들의 사연도 피상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규남과 그들의 서사가 매끄럽게 맞아 들어가지는 않는다.
결국 문제는 뒷심
마지막으로 후반부는 뚝심이 부족하다. 초중반부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서인지는 몰라도, 익숙한 전개에 기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동혁이 사살되고 규남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신파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는 그전까지 시원하게 내달리는 영화 콘셉트와는 상반된 답답함을 안기며, 이 괴리감은 에필로그까지도 이어진다.
거듭되는 편의적인 전개도 몰입감을 저해한다. 충분히 저격할 수 있는 순간마다, 그리고 남한이 눈앞인 상황에서 영화는 한 템포씩 늦추며 전개를 억지로 꼬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발만 밟아도 죽는 지뢰밭을 유달리 주인공만 손쉽게 피하는 식이다. 이는 규남과 현상의 외적 갈등과 현상의 내적 갈등이 마지막 순간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탈주>의 클라이맥스는 피로감이 가중된다. 반복되는 클리셰로 인해 거침없는 전반부가 미리 쌓은 점수를 다 까먹은 셈이다. 무엇보다도 초중반에서 보여준 남다른 가능성이 유달리 인상적이다 보니, 익숙함과 타협한 후반부의 선택은 되려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Acceptable 무난함
민족 없이도 북한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영화적 명제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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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춥고 두려운 감정을 이겨 내게 하는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
푸른 빛의 작업복을 입고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는 공장에서 매트리스를 만들고, 퇴근 후 공장을 나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버건디 코트 깃을 여미며 자전거에 올라, 코 끝이 빨개진 채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로 어디론가 가는 주인공으로 시작되는 영화 <앵그리 애니> 영화 속에서는 오랜 시간을 지나 여러 계절을 지나가는데도, 이상하게 이번 겨울 코 끝이 싸하게 추운 기분이 들때면, 애니가 코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던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춥고, 두려운 감정의 끝에 만나는 따뜻한 누군가의 기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추위를 함께 이겨내는 작은 빛이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혼하면 아이는 셋을 낳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결혼 7년차에 첫째를 낳고 4살 터울로 마흔 넘어 둘째를 낳고 나니,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예민함과 넘치는 에너지를 둘 다 소유한 둘째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노산의 엄마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농담 삼아 둘째가 첫째였다면, 나는 둘째를 낳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 말을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던 그즈음 생리가 늦어지면 겁이 덜컥 나곤 했다.
‘셋째가 생기면 어쩌지.’
아이를 원해 결혼 후 5년 넘게 애태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뭐가 달라진 걸까? 그때보다 나는 오히려 아이라는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더 사랑을 품게 되었는데…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구나. 죄책감과 혼란스러움이 함께 찾아왔던 경험이 있다. 복잡한 감정 속에서 임신과 임신 중단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 순간이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애니는 1974년 프랑스 교외의 한 작은 마을, 매트리스 공장에서 일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몸에 밴 익숙한 손으로 바느질을 해 매트리스를 만든다.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어느 밤 자전거를 타고 한 서점을 찾아간다. 서점 한쪽 커튼을 젖히면 작은 공간이 나오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 사람들의 안내로 모임이 진행된다.
당시 프랑스에서 임신 중단은 불법이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신 중단을 결정한 여성들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뜨개질바늘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잘한다는 아주머니’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애니가 찾아간 곳은 MLCA(임신 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의 활동을 하는 곳으로, 의료진과 함께 안전하게 무료로 임신 중단을 할 수 있게 하는 단체다.
이들은 몸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수술 전 한 번 더 만나 수술 도구를 하나씩 꺼내어 보여주며 수술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은유나,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영화적인 어떤 환상 같은 것은 없다. 마치 관객들도 알아야 한다는 듯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하나씩 천천히 과정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이제 애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함께 알아간다.
설명의 과정만큼이나 수술의 과정 역시 거의 리얼타임에 가깝게 상세히 묘사한다. 수술대 위에 오르는 애니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함께 숨을 고르고 노래를 불러준다. 편안한 선율의 노래를 부르는 눈을 마주치며, 애니는 손을 잡고 두려움의 시간을 함께 지나간다. 애니에겐 출산 경험 보다 더 편안했던 순간이 되었다.
고마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를 함께 키우던 옆집 친구가 임신을 중단하기 위한 비전문가의 시술 중 사망하게 되면서, 애니는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MLCA(임신 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누군가 잃을 수는 없다는 생각, 어쩌면 그 누군가가 애니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렇게 애니는 따뜻한 커피를 만들고, 두려움으로 찾아온 또 다른 자신의 손을 잡아준다.
임신 중단을 선택하는 사람의 사연은 다양하다. 낳고 싶지만, 남자친구가 안된다고 해서, 25살에 이미 다섯 아이를 낳아서, 이제는 더 이상 낳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17살의 소녀까지. 두려움에 떨거나, 죄책감에 울부짖는 사람들. 임신을 중단하게 된다는 것은 영화 속 많은 여성에게, 두려움과 죄책감과 그리고 때때로 불쾌함과 고통이 뒤섞인 감정을 준다. 각자의 격동적인 감정을 애니와 활동가들은 가만히 안아준다.
“괜찮아. 내가 곁에 있어 줄게. 걱정되는 게 당연한 거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영화는 이런 사람들에게 임신 중단에 대해 논쟁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눈맞춤과 다정한 말,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옆에서 함께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은 달라져야 하기에’ 다정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손을 잡아주는 애니를 보며, 이러한 연대는 그 어떠한 것보다 따스한 위로가 되어, ‘낙태’ 라는 엄청난 경험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그 마음을 전해 받은 내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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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덕희 | 실화의 힘을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운영하던 세탁소에 불이 나 급히 대출을 알아보던 '덕희'(라미란). 때마침 거래은행의 '손 대리'(공명)가 전화로 딱 맞는 대출상품을 추천해 준다. 덕희는 수수료 3,200만 원을 8차례에 걸쳐 손 대리에게 보내지만, 이내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돈도 없이 거리에 나앉은 그녀는 경찰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하지만 '박 형사'(박병은)는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수사를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손 대리가 덕희에게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온다. 자기 이름이 '재민'이라고 밝힌 그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나가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반신반의하던 덕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민과 공조하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필살기를 하나씩 가진 친구 '봉림(염혜란)', '숙자(장윤주)', '애림(안은진)'과 함께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이무생)'을 잡기 위해 직접 중국 칭다오로 향한다.
한끝 부족한 선택과 집중
실화 기반 창작물은 언제나 같은 고민을 한다. 실화 중 어느 부분에 집중할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실화의 모든 인물, 사건, 갈등을 다루기에는 시간 압박이 있으므로. 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 가해자, 조력자, 목격자, 경찰 등 중에서 누구에게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되기도 한다.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추격자>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처럼.
<선희와 슬기>를 연출한 박영주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시민덕희>에서도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시민덕희>는 2016년에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을 직접 잡은 세탁소 주인 김성자 씨의 사연을 다뤘다. 이 사건도 각색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도 손을 뗀 사건을 직접 수사한 시민, 시민의 공로를 가로챈 무능한 경찰, 양심적인 선택을 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결국 붙잡힌 총책 등 독특한 서사를 지닌 인물이 많기 때문이다.
<시민덕희>는 사건을 두 줄기로 나눴다. 우선 덕희와 재민이 정보를 캐내려 협력하는 서사가 중심이다. 그 덕분에 범죄 영화나 스릴러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진다. 주변부는 코미디로 꾸몄다. 덕희와 재민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과 사건은 분위기 전환을 위한 웃음거리가 됐다. 일장일단이다. 전자가 생동감 넘치고 독특한 범죄 영화를 탄생시킨 원동력인 반면, 후자는 그 성과를 발목 잡는 원인이 됐다.
중심은 잘 잡았다
비록 범죄 영화지만, <시민덕희>에서는 스릴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범인을 쫓는 과정보다 피해자의 절박함이우선시된다. 라미란의 열연 덕분에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세상이 무너진 듯한 울분이 생생하다. 덕희가 손 대리를 찾으러 간 은행에서 보이스피싱 사실을 깨닫고 호흡곤란으로 쓰러질 때. 매뉴얼만 되풀이하는 경찰과 통화할 때. 제보를 무시하는 박 형사에게 욕을 할 때. 피해자의 절절함이 스크린으로부터 묻어난다.
또 하나의 특이점이 있다. 보이싱피싱범 재민이다. 사실 보이스피싱범이 피해자에게 직접 제보한다는 전개는 실화라 해도 자칫 황당할 수 있다.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다루는 시점을 살짝 바꿔서 개연성을 높인다. 피해자나 경찰의 입장이 아닌, 보이스피싱 조직 내부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묘사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도 보이스피싱 조직 구조와 수법 묘사가 더 입체적이고 자연스럽다.
그 덕분에 재민의 서사도 풍부해진다. 영화는 보이스피싱 조직을 둘로 나눈다. 재민처럼 사기당한 후 협박과 강요 때문에 조직범죄에 이용당하는 가해자 겸 피해자가 있다. 반대쪽에는 총책을 비롯해 주도적으로 조직을 관리하는 범죄자가 있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다 보니 재민이 총책과 조직을 밀고하는 이유, 그의 정의로움과 양심이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에도 설득력이 붙는다.
이처럼 탈출을 꿈꾸는 재민의 절실함과 빼앗긴 돈을 찾으려는 덕희의 절박함이 어우러지면서 <시민덕희>는 여타 범죄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을 확보한다. 이는 장르적 쾌감으로도 이어진다. 그들이 어떻게 접선할지, 어떻게 정보를 전달할지, 들킬지 안 들킬지 지켜보는 재미와 긴장감이 적지 않다.
주인공 말고는 아쉬운 캐릭터
두 주인공을 집중 조명한 여파도 크다. 먼저 악역 문제가 눈에 띈다. 범죄 영화에서는 위압적인 빌런이 필수다. 피해자의 두려움을 강조하고, 위기감도 고조하면서 장르의 재미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패니까. 그런데 빌런에게 할당된 분량이 부족하다 보니 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저 한국 영화에 자주 등장한 조선족 조폭 중 하나로 보일 뿐이다. 결국 그를 체포하는 순간의 쾌감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다른 캐릭터 역시 과하게 도구적이다. 일단 덕희 친구들은 전반적으로 비슷하다. 과하게 호들갑 떨면서 웃어야 할 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캐릭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 숙자는 철부지 없는 동생, 봉림은 정 많은 언니라는 조연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캐릭터 구성도 편의적이다. 덕희 친구들은 사건 해결에 필요한 능력치를 하나씩 나눠 갖고 있다. 일례로 보이스피싱 조직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때마침 통역을 담당해 줄 조선족 친구 봉림이 직장에 있다. 칭다오에서는 봉림의 여동생 애림이 때마침 택시 기사로 일하는 중이다. 경찰에게 보낼 증거 사진은 때마침 아이돌 찍덕 출신인 숙자가 확보한다. 총책 검거라는 결말을 위해 모든 우연이 겹치고 있으니 부자연스럽다.
실화를 조금만 더 믿었더라면
조연 캐릭터 문제는 영화의 구조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시민덕희>의 장점은 경찰의 무신경함과 무능함을 이겨내는 피해자와 제보자의 사투에 있다. 공권력의 도움을 기대 못하는 일반 시민의 억울함. 그렇지만 스스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특별한 시민을 보는 쾌감. 그 둘의 조합이 <시민덕희>만의 특별함이다.
이때 핵심은 경찰이다. 경찰이 의도적으로 덕희의 제보를 무시할 때 두 주인공의 감정선과 활약이 더 돋보이고, 장르적으로도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박 형사는 한 발 늦게 뒷북치는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로 묘사되며, 코미디 도구 중 하나로 소비된다. 이처럼 경찰 캐릭터의 역할이 모호하니, 영화 전반의 진중한 분위기와 간혹 등장하는 코미디는 좀처럼 잘 섞이지 않는다.
이는 아쉬운 마무리로 이어진다. 현실에서 경찰은 김 씨에게 공로를 가로채려고 검거 소식을 알리지 않았고, 신고보상금도 주지 않았다. 반면에 <시민덕희>는 일반적인 한국 영화처럼 해피엔딩이다. 덕희는 아이와 친구들과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총책을 체포한 후 경찰은 존재감이 없어진다.
그 결과 <시민덕희>만의 개성도 옅어진다. 계속해서 실화에 충실했다면, 경찰도 아닌 시민이 직접 나서야 했던 덕희의 서사가 마지막까지 돋보였을 것이다. 경찰 같은 공권력의 역할에 관해서도 질문을 던지며 보이스피싱은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의 범죄라는 메시지도 강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민덕희>는 경찰을 덕희의 조력자로 바꿨고, 결국 스스로 잠재력을 억누르며 평범한 범죄 오락 영화로 귀결됐다.
이에 더해 마케팅도 아쉽다. 마케팅 문제는 크게 두 경우가 있다. 좋지 않은 완성도를 마케팅으로 감춰버린 나머지 영화를 본 후 관객의 실망감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내용과 완성도는 준수한데, 포스터나 예고편이 관객을 좀처럼 유인하지 못할 때도 있다.
<시민덕희>는 후자다. 영화를 보면 예상 못한 장점이 치고 들어올 때의 놀라움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포스터의 느낌이나 예고편의 방향성은 전형적인 한국의 범죄 코미디 영화 같은 인상을 준다. 내용물인 진중한 드라마보다는 코미디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 비록 실망스러운 대목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장점을 스스로 가려버린 셈이다.
Poor 형편없음
어긋난 기대, 의외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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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순간 카리스마로 압도하는 역대급 배우들로 탄생한 영화
이 영상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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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나이트」 이 영상을 보고나면 이해가 될 겁니다 (*결말포함/영화리뷰)
? '그린나이트' 영화리뷰/결말포함 해석영상(*스포일러) 가웨인 기사, 녹색기사, 아서왕 전설
- 그린나이트 영화정보 장르: 드라마, 판타지, 호러
각본, 감독: 데이빗 로워리 원작: 중세 전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제작: 토비 할브룩스, 제임스 M.존스턴, 데이빗 로워리, 팀 헤딩턴, 테레사 스틸 페이지, 애런 길버트
출연: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외
촬영: 앤드류 드로즈 팰러모
음악: 대니얼 하트
편집: 데이빗 로워리
제작사: 레이 라인 엔터테인먼트, 브론 스튜디오, 세일러 베어
수입사: 대한민국 찬란
배급사: 미국 A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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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크라임 보스> 30초 예고편
얼굴도 본명도 절대 드러내지 않는 마약왕 a.k.a ‘개구리’는
미국 아칸소주를 지배하는 최대 마약 조직의 보스.
그리고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원 딜러 ‘카일’과 ‘스윈’은
위장 작전 중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이를 수습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흘러간다.
그날의 잘못된 선택이 세 사람을
아슬아슬한 만남으로 이끄는데...
위험에 빠진 마약왕의 마지막 작전!
목숨을 걸고 완전 범죄를 완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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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돌풍> 공식 예고편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 6월 28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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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집요하게 파헤친다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을 입증하듯이, '파묘'는 집요하게 파헤친다. 중반 이후에 살짝 휘청이기도 했지만, 끝까지 완주하면서 관객들이 갈구했던 새로운 그림과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요소가 잘 버무려진 '험한 것'의 맛이 강력했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잇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영화다. 어렸을 적 100년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본 감독의 기억에서 출발해 파묘, 동양 무속 신앙 소재가 가미됐고, 여기에 미스터리한 사건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조화롭게 엮였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작인 만큼, 오컬트 장르는 맞다.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복잡한 서사로 구성된 '사바하'보다는 비교적 이해 난이도가 쉽고 정통 오컬트 요소가 강했던 '검은 사제들'보다는 장르가 복합적이다. 중간에 위치해 있지만, '파묘' 역시 섬뜩한 기운을 내뿜는 건 매한가지다.
영화가 초반부 관객들의 몰입도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믿음'의 힘이 컸다. 조상묘를 잘 쓰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믿음, 조상묘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후손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을 잘 이용하면서 땅과의 연관성을 기이하고 괴이하게 풀어낸다. 이장과 살풀이로 땅에 은 것들을 위로하는데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한다.
악지 중의 악지에 묻혀있던 조상님의 원혼의 모습이 슬쩍슬쩍 비침과 동시에 자신의 후손들에게 복수하는 과정은 확실히 소름 끼친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점프 스케어를 쓰지 않아도 장재현 감독이 심어준 장치들은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날뛰는 원혼을 막기 위해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당 화림(김고은), 화림의 제자 봉길(이도현)의 팀플레이도 꽤나 쫀쫀했다.
중반부에서 끝내도 될 법했지만, '파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파헤치러 나아간다. 친일파 조상님이 묻혔던 악지에 또 다른 '험한 것'이 숨겨진 것을 감지하면서 영화의 스토리는 가족사에서 한반도의 과거사로 확장한다.
그러면서 '파묘'는 오컬트에서 퇴마물로 변화하는데 이 지점에서 보는 이에 따라 재미의 호불호가 갈린다. 험한 것의 정체가 일본 귀신 '오니'로 밝혀지면서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한마디가 비로소 이어지는데, 이때부터 지나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면서 요동치던 심장이 안정화(?)되어간다. 괴기한 오니의 비주얼도 생각만큼 무섭지 않아 위압감이 떨어진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달리는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파묘'의 단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빙의한 듯한 연기 차력쇼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대배우' 최민식은 40년 경력 풍수사 그 자체였다. 흙을 맛보고, 땅을 바라보며 숨 쉬는 것만으로도 스크린을 압도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장의사 영근 역을 맡은 유해진은 관객들의 시선에 가까운 캐릭터를 맡았고 동시에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특유의 존재감으로 환기시킨다.
매우 인상 깊었던 건 김고은이 분한 화림이다. 무당으로 변신해 범접불가의 포스를 뿜어내는가 하면, 신명 나는 대살굿 연기를 선보이며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또 보는 내내 '멋쁨'의 매력까지 뽐내니 새로운 인생캐릭터를 만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묘'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도현 또한 훌륭했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파격적인 비주얼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선배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연기력으로 한 축을 이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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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속으로...스웨덴] 사랑이라는 모순에 대해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트와일라잇>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뱀파이어의 인기를 체감케 한 소설로도 잘 알려진 <렛 미 인>은 두 차례 리메이크 될 정도로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전무후무한 서정 뱀파이어물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리는 작품 중 하나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해당 영화는 원작 소설의 배경이기도 한 스톡홀름 외곽의 소도시 블라케베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단순 로맨스를 넘어 관객들로 하여금 갇혀있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 일종의 성장과도 같은 묘한 감상을 갖게 한다는 작품으로도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이야기는 일 년 중 반절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눈이 내리는 그야말로 열기의 화창함과는 상반된 곳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온 세상의 소음을 흡수할 정도의 눈이 내린 어느 날, 고요 속에 살아 숨쉬던 도시는 소녀 '이엘리' 를 맞이하게 되고 소년 '오스칼'은 그녀의 비밀에 점차 다가가게 된다.
혹시 누군가와의 사랑이 세계를 바꿔놓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여기 소년 오스칼의 세계가 그러하다. 이엘리라는 소녀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게 된다. 그녀가 단순히 뱀파이어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스칼은 지속적인 학교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인물로 유일한 여가라고는 단조로운 아파트를 뛰쳐나가 자신을 괴롭히는 상대를 흉내내며 그를 찌르는 상상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눈 내리는 고요한 놀이터를 배경으로 그렇게 폭력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던 두 소년과 소녀는 만나게 된다.
오스칼이 이엘리에게 빠지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외톨이었던 자신의 새로운 친구일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가해의 흔적을 발견하는 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어른들이 제안하는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다름 아닌 폭력이다. 밤이 찾아오면 더욱 고요해지는 이 곳에서 두 사람의 세계는 그렇게 맞물린다. 그야말로 더 큰 성찰로 나아가지 못한 단순한 아이들의 해결책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유혹적이다. 오스칼은 어쩌면 어른 그 이상을 웃도는 나이이나 영원히 12살로 살아가는 이엘리에게서 폭력 이라는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오스칼은 그런 이엘리의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시간을 뛰어넘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겪게 된다.
영화는 그야말로 이러한 모순의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채 조용하나 거침없는 전개를 선보인다. 냉전 이후 처절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치열하지도 않는 삶을 사는 후기 산업 사회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여가라곤 산책과 수다가 전부인 삶을 산다. 이를 배경으로 폭력으로 하나가 되는 두 아이는 모순적이다. 폭력을 통해 폭력 속에서 구원 받는다는 서사는 물론 그들을 둘러 싼 한 밤 중 눈부신 눈더미와 같은 배경 역시 아이러니의 이미지를 갖는다. 제목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엘리라는 비극은 초대 받아야 들어올 수 있는 존재이다. <렛 미 인>은 극중에도 강조되어 등장하지만 뱀파이어인 그녀가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지만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인다. 이엘리의 보호자였던 호키는 물론 오스칼 역시 그녀를 자진해 맞이한다. 그렇게 의도된 모순들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말 마저 이엘리가 과연 오스카를 이용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의문을 남기는 와중 그들이 결국 알면서도 선택한 비극이라는 모순이 갖는 의미와도 같은 지점이 강조되기에 서정을 자극한다 볼 수 있다. 순리는 납득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큰 울림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예외는 그 자체로도 모순을 품고있으나 특별함을 갖고 있다. 영화 <렛 미 인>이 보여주는 서사 또한 그러하다. 더불어 12살 아이인 오스칼의 시점이기에 관객은 일정 부분 그의 나이대로 돌아가 잘못된 것임에도 그 선택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에서 다시 주요 소재를 살펴본다면 왜 모순이 갖는 단점이 해당 영화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원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뱀파이어라는 특정 설정 역시 모순의 일종으로 십분 작용한다. 사실 뱀파이어는 근사한 외모와 비극적 배경으로 여러 콘텐츠의 매력적인 소재가 되어주나 현실을 사는 뱀파이어는 어쩌면 그 환상과는 꽤 큰 차이를 보일지 모른다. 우선 콘텐츠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이들은 피를 섭취하며 그 외의 음식물에는 몸이 먼저 거부감을 보인다. 그렇기에 늘 살인이 따라 다님으로 유랑이 불가피하다. 또한 대체로 평생을 살며 이들의 시간은 추정컨대 죽음을 맞이한 날에 멈춰져있다. 그것을 장점으로 부를 쌓는 류의 스토리도 다수 존재하나 이엘리의 시간은 12살에 멈춰져있다. 경제 활동은 물론 법적으로 홀로 살아가기에 장벽이 존재하는 나이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엘리는 보호자 호킨의 사냥을 통해 피를 공급 받으며 살아간다. 여기서 이 호킨과 이엘리의 관계성이 영화 속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소녀인 이엘리에 비해 호킨은 아버지로 보일법한 외모의 어른이다. 그는 이엘리를 위해 낯선 곳에서 사냥을 시작하지만 어쩐지 그의 행동은 허술하기만 하다. 제대로 된 피를 구하기도 전에 사람들에 의해 장비를 잃어버리기도, 제대로 된 사전 조사 없이 사냥감을 구하려다 모든 것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고마움은 커녕 이엘리는 모질게 대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호킨은 불평하지 않는다. 그 어떤 감정의 표현 없이 이엘리만을 위한다. 그가 딱 한 번 자신의 의견을 소리내 말하는 것은 오스칼과의 만남을 중단하라는 때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실패한 사냥을 책임지기 위해, 더 나아가 이엘리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얼굴 위로 염산을 부어 끝내 이엘리의 허기를 채워주게 된다. 그렇다면 이 관계성은 영화 속 서사에 왜 들어가게 된 것일까.
호킨의 마지막 대사가 '이엘리' 였음으로 미루어보건데 이들은 부녀지간이 아닌 연인 사이였음이 암시된다. 호킨 역시 오스칼의 나이에 그녀를 따라 나섰던 것일지 모르며 그렇게 호킨의 시간 역시 이엘리와 만나는 그 순간 멈춰버렸을지 모른다. 끝까지 이엘리에게 헌신하는 감정이 사랑이라면 어쩌면 결국 이엘리에게 구원 받았음으로 함께 길을 떠나게 된 오스칼 역시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 역시 가능케 한다. 하지만 이렇게 호킨과의 관계성을 통해 한 차례 그들의 미래가 예고된 바와 달리 결말은 기차 차장 너머 한껏 들어오는 햇살을 강조하며 아름다운 새출발로 묘사된다. 오스칼은 그 환한 빛을 맞이하며 어둠 속에 잠긴 자신의 사랑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내며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아침과도 같은 사랑의 시작이 결국 밤의 희생양이 되는 호킨의 결말처럼 끝나리라는 일종의 예고, 순환의 흔적은 잔인하나 동시에 찬란하기도 하다.
엔딩 크레딧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을 꽉 감은 채로 강한 빛을 마주하면 눈 앞을 가득 채웠던 어둠은 점차 붉은 색의 빛으로 물든다. 검은 엔딩 크레딧의 배경은 꽉 감았던 오스칼의 시야를 대변하듯 칠흑같은 어둠의 색이었다가 점차 피붉은 색으로 변화한다. 오스칼이 최후가 어쩌면 호킨의 최후처럼 반복되는 일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오스칼의 세상, 권태와 폭력에 노출되어있던 세상은 이엘리라는 광폭적인 사랑에 의해 변화를 맞이했다. 이는 명백한 구원이다. 눈부시도록 밝은 수영장에서 죽음의 위기에 놓였던 오스칼이 이엘리를 바라보기 훨씬 이전부터 구원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오스칼 뿐일까? 더 짙은 어둠을 찾아, 더욱 긴 겨울을 찾아 유랑하던 이엘리는 이제 어둠 속에서 먼저 오스칼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어쩌면 오스칼의 존재는 단순 호킨의 대체제가 아닌, 다시 시작된 시간 즉 영원을 사는 이가 다시금 맞이하는 원형의 시간일지 모른다.
눈 부시도록 시린 스웨덴의 눈은 아이러니 하게도 긴 밤과 함께 찾아온다. 추위도 잊은 소녀에게 오스칼은 과연 무엇을 깨닫게 해준 것일까. 찬안한 밤의 설원은 그렇게 두 사람을 방관한다. 관객들 역시 그 끝이 비극일지 찬란할지 알 수 없으나 소년과 소녀를 다른 시간으로 보내줄 수 밖에 없다.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알고 있으나 그 끝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하다. 사랑의 모순됨은 그렇기에 우리가 가장 열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많은 색을 띄고 있는 것 역시 그때문일지 모른다. 내 삶이 슬펐기에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노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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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다섯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청부 살인 설계자 강동원의 완벽 변신!
6일째 1위를 달리고 있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꺾고
1위에 올라설수 있을지! 5월 마지막주 개봉예정작 같이 만나보아요
5월 마지막주 개봉예정 PICK
설계자
-강동원 X 이무생 X 이미숙
드림 시나리오
-니콜라스 케이지 X 줄리안 니콜슨
오늘부터 댄싱퀸
-리브 엘비라 키페르순 라르손 X 빌리아르 크루센 비오달
창가의 토토
-오노 리리아나 X 야쿠쇼 코지
설계자
The Plot
개요: 범죄, 드라마 | 한국 | 99분
감독: 이요섭
출연: 강동원, 이무생, 이미숙, 이현욱, 탕준상
개봉: 2024.05.29.
배급: (주)NEW
시놉시스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
그의 설계를 통해 우연한 사고로 조작된 죽음들이 실은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번 타겟은 모든 언론과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 유력 인사.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수 있는 위험한 의뢰지만 ‘영일’은 그의 팀원인 ‘재키’, ‘월천’, ‘점만’과 함께 이를 맡기로 결심한다.
철저한 설계와 사전 준비를 거쳐 마침내 실행에 옮기는 순간 ‘영일’의 계획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데...!
드림 시나리오
Dream Scenario
개요: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102분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줄리안 니콜슨, 릴리 버드, 마이클 세라 등
개봉: 2024.05.29.
배급: ㈜올랄라스토리, 메가박스중앙㈜
시놉시스
소심하고, 한심하고, 평범 그 자체여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감 없는 ‘폴’로 인해 온 세상이 떠들썩해진다! 왜? 그가 지구상 모두의 꿈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실존 인물 맞나요? 왜 당신 꿈을 꾸죠? 도대체 누구세요?” SNS 메시지 폭주, 인터뷰 출연, 광고 모델 요청은 물론, 심지어 꿈속 만남이 현실로 이어지는 기막힌 일까지! 꿈속 남자에서 모두가 꿈꾸는 남자로 거듭난 ‘폴’! 하지만 갑자기 그가 등장하는 모든 꿈들이 악몽이 되는데…
오늘부터 댄싱퀸
Dancing Queen
개요: 드라마 | 노르웨이 | 92분
감독: 오로라 고세
출연: 리브엘비라 쉬퍼, 스툴라 하르비츠, 빌야르 크누세 등
개봉:2024.05.29.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시놉시스
16만 팔로워를 가진 힙합 댄서 E.D.윈에게 첫눈에 반한 12살 소녀 미나는 운 좋게 오디션을 통과하고 E.D.윈의 댄스 크루에 들어간다. 공부와 달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에 인생 첫 좌절을 마주한 미나. 하지만 포기란 없다! 한때 춤으로 이름 좀 날렸던 할머니의 지도하에 남사친 마르쿠스와 비밀스러운 연습을 시작하는데… 함께라면 할 수 있어! ★오늘부터 댄싱퀸★
창가의 토토
Totto-Chan The Little Girl at the Window
개요: 애니메이션, 드라마 | 일본 | 114분
감독: 야쿠와 신노스케
더빙:오노 리리아나, 야쿠쇼 코지, 오구리 슌, 박지윤, 장광 등
개봉: 2024.05.29.
배급: (주)디스테이션
시놉시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토토’는 엄격한 규율로 가르치는 이전 학교와 달리, 있는 그대로의 ‘토토’를 품어주는 새로운 학교로 가게 된다. 인자한 교장 선생님, 전차로 만들어진 교실,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곳에서 ‘토토’는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는 나날을 맞이하는데… 사랑스러운 토토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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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없이도 북한을 논할 수 있다는 자신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 10년 만에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은 남몰래 휴전선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준비한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고, 낮은 출신성분 때문에 미래를 마음대로 계획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 하지만 규남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탈주를 시도한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을 말리던 중 함께 탈주병으로 체포되어 버린다.
그런데 꼼짝없이 총살형을 기다리던 규남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온다.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이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킨 것. 현상 덕분에 사단장 직속보좌가 된 규남은 곧바로 그 자리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현상은 자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물러설 길 없는 추격에 나선다.
북한 사용법 리뉴얼
한국 영화에서 '북한'이라는 소재는 활용법이 어느 정도 확립됐다. 작품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공식에 충실하다. 우선 주인공은 대부분 공작원 혹은 군인이다. 그들을 도와주든, 견제하든 고위 정치인도 자주 개입한다. 자연히 장르는 첩보물이거나 전쟁 영화다. 간혹 가다가 <크로싱>처럼 탈북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도 등장하지만, 상업영화라는 틀 내에서는 그 빈도가 잦지 않다.
스토리텔링에서는 '민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던 이들이 한 민족임을 실감하면서 점차 동료애나 전우애를 쌓아 나간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이나 사랑은 언제나 미완의 완성이다. 잠깐동안 외국에서 만나거나,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애틋함만 남기고 죽는다. <공동경비구역 JSA>, <공조>, <고지전>, <의형제> 등 모두 마찬가지다. <사랑의 불시착>도 로맨스를 중심에 뒀을 뿐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는 이 공식에 반기를 든다. 주인공은 여전히 군인이지만, 스토리텔링은 신선하다. 북한 사람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남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냈기 때문. 또 곁가지를 과감히 쳐내고 제목에 걸맞은 템포와 긴장감을 조성해 장르적 쾌감도 극대화했다. 그렇기에 <탈주>의 도전은 충분히 유의미해 보인다. 비록 한국 영화 공식을 완전히 전복하지는 못해도, 꽤 큰 균열을 낸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간결해서 남다른 시작
<탈주>는 시작부터 남다르다. 탈주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연출과 편집이 눈을 사로잡는다. 모두가 잠자는 새벽에 몰래 깨어나 비밀 통로를 이용해 부대 밖으로 나가는 규남. 그는 지뢰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고, 초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부대 막사와 DMZ를 전력으로 오간다. 조금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는 컷 전환과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이 장면은 질주하는 주인공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독립적인 시퀀스로서도 강렬한 이 장면은 영화의 성격과 전개를 암시하는 시작점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가 오프닝만큼이나 간결하기 때문. <탈주>에는 불필요한 잔가지가 거의 없다. 노래 '양화대교'를 삽입한 플래시백이 대표적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도 먼저 떠나보낸 규남. 영화는 그의 개인사를 가사와 오버랩하면서 탈북을 선택한 그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구질구질한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이에 더해 현실적인 묘사 덕분에 규남의 현재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겨우 잡은 멧돼지 고기를 전부 장교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제대 후에도 당의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거나, 밝은 조명이 가득한 남한 측 휴전선을 바라보는 순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군의 꿈이 남 일이 아닌 이유
스토리텔링도 신선하다. 북한을 다룬 기존 한국 영화와는 달리 북한군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남한 관객이 감정이입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규남과 현상의 미묘한 관계성이 있다. 러시아로 피아노 유학을 갔다 온 엘리트 장교, 현상. 현상네 집안 전속 운전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흙수저, 규남. 이들은 '실패할 자유'를 대할 때 가장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규남에게는 실패마저도 자유다. 이미 인생이 정해진 북한 체제 하에서 그는 실패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실패할 자유마저도 갈망한다. 반면에 현상은 자유가 두렵다. 피아니스트로서 실패하고 군인이 된 그에게 자유란 실패를 껴안고 견뎌야 하는 책임과 부담이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에게 실패할 자유를 포기하고 정해진 대로 살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보면 현상의 추격은 북한군 장교로서의 책무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양가적인 감정선 덕분에 규남의 탈주는 마냥 남 일이 아니다. 이미 정해진, 안정적인 길을 따르라는 사회의 압력은 휴전선 이남도 지배하기 때문. 더 나아가 압박에 시달린 청년들이 실패할 자유를 요구하며 몸부림치는 광경은 남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탈주>는 한국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한다. 민족이라는 프레임 없이도, 북한을 그저 은유로써 활용하면서도 색다른 감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담한 스토리텔링에는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현상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문제다. 고위층 자제, 피아니스트, 클래식 애호가라는 묘사가 기시감이 짙다. 이는 <브이아이피> 속 '김광일'(이종석), <사랑의 불시착> 속 '리정혁'(현빈) 같은 북한 고위층 캐릭터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현상이라는 인물은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서사에 걸맞은 탁월한 스릴러
규남과 현상의 묘한 관계성과 서사는 장르의 매력을 살릴 줄 아는 연출을 만나 필사적인 추적극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일례로 <탈주>는 상황을 영리하게 설정한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2일 후에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정보는 비 때문에 지뢰 배치가 바뀌기 전 휴전선을 넘어야 한다는 긴박함을 강조한다. 이는 사단 본부에서 탈출하고, 보위부를 사칭하는 규남의 무리한 행동에도 강력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에 더해 서스펜스를 조절하는 완급조절도 탁월하다. 이 영화는 94분 내내 도망자와 추적자 구도가 강강강강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사단 본부나 경무부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처럼 중간중간 개그씬이 삽입된 덕분에 관객의 피로감은 우려만큼 크지 않다. 이에 더해 규남과 현상의 갈등 구도만 부각돼 지루해질 만한 순간에는 동혁 캐릭터가 분위기를 환기한다.
물론 모든 장면이 의도대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유랑민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의도를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불필요해 보인다. 아마도 규남처럼 북한 체제에 불만을 지닌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규남의 탈주극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추격극 중에 변수를 더해 결이 다른 위기감을 고조하려는 목적도 느껴진다.
후자의 의도는 적중했다. 모든 탈출로를 차단한 후 규남을 포위하는 현상의 계획은 한정된 공간에서 조여들어가는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이는 속도감과 에너지가 부각되는 전후 장면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하지만 유랑민들이 단순히 도구적으로 소비되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그들에 대한 복선도 없었고, 그들의 사연도 피상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규남과 그들의 서사가 매끄럽게 맞아 들어가지는 않는다.
결국 문제는 뒷심
마지막으로 후반부는 뚝심이 부족하다. 초중반부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서인지는 몰라도, 익숙한 전개에 기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동혁이 사살되고 규남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신파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는 그전까지 시원하게 내달리는 영화 콘셉트와는 상반된 답답함을 안기며, 이 괴리감은 에필로그까지도 이어진다.
거듭되는 편의적인 전개도 몰입감을 저해한다. 충분히 저격할 수 있는 순간마다, 그리고 남한이 눈앞인 상황에서 영화는 한 템포씩 늦추며 전개를 억지로 꼬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발만 밟아도 죽는 지뢰밭을 유달리 주인공만 손쉽게 피하는 식이다. 이는 규남과 현상의 외적 갈등과 현상의 내적 갈등이 마지막 순간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탈주>의 클라이맥스는 피로감이 가중된다. 반복되는 클리셰로 인해 거침없는 전반부가 미리 쌓은 점수를 다 까먹은 셈이다. 무엇보다도 초중반에서 보여준 남다른 가능성이 유달리 인상적이다 보니, 익숙함과 타협한 후반부의 선택은 되려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Acceptable 무난함
민족 없이도 북한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영화적 명제의 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