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2-23 20:13:55
북으로 간 남한 스파이
암호명 흑금성 실화영화
보통 첩보물이라고 하면 어디에 몰래 숨어 들어가 주인공 버프로 100명이 총을 쏴도 치명상을 입지 않는 무적으로 많이 묘사가 되곤 하는데, 이번 영화 공작의 경우 총성 없이 쫄깃함을 선사하고 있어요. 이 영화의 경우 북으로 간 남한 스파이 흑금성을 실화를 담고 있어서 더욱더 쫄깃하고 몰입하며 볼 수 있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럼 영화 공작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첩보, 스릴러, 시대극
감독 : 윤종빈
각본 : 권성휘
출연진 :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개봉일 : 2018년 8월 8일
평점 : 7.86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웨이브, 왓챠
기획 의도
1993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서 스카우트된 박석영(황정민)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안기부 해외 실장 최학성(조진웅)과 대통령 외에는 가족조차도 그의 실체를 모르는 가운데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한 흑금성.
조국을 위해 굳은 신념으로 모든 것을 걸고 공작을 수행했던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강등에 휩싸이는데...
여담
영화 공작은 첩보물에 흔히 사용되는 총격 신이 없음에도, 연출과 디테일 덕분에 완성도가 매우 높아 몰입하며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공작은 실제 흑금성을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내용의 절반 이상은 사실이라고 해서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공작의 결말을 살펴보자면
안기부에서는 박석영의 꼬리를 자르기 위해 언론사에 흑금성의 정체를 폭로하게 되면서 위기에 놓은 박성영은
호연지기를 맺은 리명훈 덕분에 박석영을 살려주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성영은 납북 합작 광고를 통해 리명훈과 재회하게 되며 예전에 서로에게 선물로 줬던 시계와 넥타이핀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인사를 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쫄깃함을 선사해 줬는데, 이 장면들이 대부분 실제라고 생각이 되니 이 당시 흑금성은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공작을 펼쳤을지 상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한줄평 : 총성 없는 쫄깃한 첩보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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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한친구의 아침식사 - 양산형 대만 청춘 멜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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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두근대는 느낌 알아?”
세상 종말이 와도 먹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귀요미 먹방 요정, 웨이신
좋아하는 친구에게 1년 동안 아침 조공을 하는
댕댕이 조공 소년, 요우췐
“나는 1년 동안 절친 앞으로 온 아침 조공을 먹었다”
절친에게 아침 조공을 바친 친구와 사랑에 빠질 확률은?
러블리 먹요정 + 댕댕이 조공 소년 = 첫사랑 먹방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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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이스> 캐릭터 예고편
부산 건설현장 직원들을 상대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보이스피싱 전화로 인해 딸의 병원비부터 아파트 중도금까지,
당일 현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같은 돈을 잃게 된다.
현장작업반장인 전직형사 서준(변요한)은 가족과 동료들의 돈 30억을 되찾기 위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중국에 위치한 본거지 콜센터 잠입에 성공한 서준,
개인정보확보, 기획실 대본입고, 인출책 섭외, 환전소 작업, 대규모 콜센터까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스케일에 놀라고,
그곳에서 피해자들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기획실 총책 곽프로(김무열)를 드디어 마주한다.
그리고 그가 300억 규모의 새로운 총력전을 기획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상상이상으로 치밀하게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실체!
끝까지 쫓아 반드시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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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림걸즈> 메인 예고편
“신사 숙녀 여러분, ‘더 드림즈’를 소개합니다”
1960년대 세계를 뒤흔든 스타 탄생! 전설의 소울 트리오 ‘더 드림즈’
같은 꿈을 키워온 세 친구 ‘디나’, ‘에피’, ‘로렐’의 드라마틱한 데뷔부터
화려한 성공, 아찔한 스캔들까지!
이들을 둘러싼 사랑과 우정, 박수와 환호가 히트송 퍼레이드와 함께 펼쳐진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환상의 무대가 지금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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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 끝에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몇 년 전, 친구와 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을 했다. 샌프란에서 출발해 LA를 찍고 샌디에이고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LA로 올라오는, 나름의 모험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번을 왕복할 정도의 거리를 달리면서 온갖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했고, 미국이란 땅이 낯선 나를 위해 유학 중인 친구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흔한 미국 사람이 홈리스가 되는 시나리오'가 기억에 남는다. 친구에 따르면 미국 서민들의 경우 차를 한번 수리하는 비용과 인건비가 원체 비싸기 때문에 차 유리창이 깨져도 신문지로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도심 외곽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어느 날 차가 완전히 고장 나기라도 하면, 수중에 단돈 몇 천 달러가 없어서 수리비를 변통하지 못한다.(렌트와 보험비를 포함한 기본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수중에 현금이 많이 없다고 한다. 저축이란 개념도 약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차를 타고 직장에 가지 못 하여 직장에 잘린다. 직장에서 잘리면 렌트와 보험을 내지 못하고, 그러다 어처구니없게도 홈리스로 전락한다.
샌프란 도심 거리에 보이는 홈리스들은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있었는데 실은 파트타임 일을 몇 개씩 뛴다고 한다. 이들은 차가 없기 때문에 다운타운을 떠나지 못하고 슬럼을 형성한다. 미국인에게는 마치 신발과도 같은 자동차가 없다는 것은 일자리의 선택 범위를 확연히 좁히면서, 삶의 방식까지도 제한한다. <노매드랜드>를 보았다면,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과 위와 같은 홈리스들이 질적으로 어떤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펀이 자처한 유목민 생활은 도심의 홈리스의 삶보다도 더 척박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의도치 않게 동정 어린 눈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마주친 옛 학생 앞에서 펀은 자신이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엄연한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선포한다. 홈은 곧 하우스라는 공식에 들어맞지 않을 뿐, 그녀는 홈리스와 다르게 기동력과 안식처를 동시에 쟁취했다고 청중을 설득하고자 한다. 후반부에 카센터에서 구제불능이 된 고물 밴을 집이자 안식처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주장에 진정으로 동조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펀은 마치 60년대 히피 라이프를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 유아적이라는 인상마저 주기에 이른다. 이러한 세간의 오해를 뒤로하고 그녀의 여정은 계속된다.
현대인의 끝나지 않는 노동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들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중산층에게는 소박하게는 집 한 채 마련, 궁극적으론 경제적 자유가 최종 목표라고도 한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이 촉발한 금융위기부터 지금의 Covid-19까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그 10년 간 경제적으로 낙오한 이탈자들 뿐 아니라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이 '소박했던' 바람은 신기루 같은 꿈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떠도는 주체로 남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한 삶을 실제로 실천하고 사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영화는 증명한다.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활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마치 구석기시대로 회귀한 듯한 생활 풍경을 묘사한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을 하듯 아마존 물류센터, 캠핑장, 고속도로 식당에서 단기 일자리를 구하며 동굴에 몸을 누이듯 밴 안에 몸을 누인다. 특히 영화는 실제 노매드인 린다 메이, 스웽키, 데이브와의 우정을 통해 이들의 다공성(porous)이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노매드 식의 연대에 주목한다. 구석기인들처럼 이들은 서로 평등하고 계급을 의식하지 않으며 식량과 불을 나눈다.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은 서로 교환하거나 나누고, 노동의 품앗이를 한다. 불을 지피는 모습, 공룡, 화석, 먼 별빛 등 태곳적을 상징하는 고고학적인 소재들이 도처에 등장한다.
방법론에 대하여
본 영화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 저, <노매드랜드 : 21세기에 미국에서 살아남기>라는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주인공 펀과 데이브를 제외한 일군의 조연 역으로 실제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연기하도록 하였다. 어딘가 익숙한 이 작법은 다름 아닌 TV 다큐멘터리의 DNA를 가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법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침 최근에 그의 20년간의 영화 자서전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이 감독의 작업 방식과,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데뷔작 <환상의 빛>에서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국적이고 동양적 가치관을 읽어내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서 그는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부러 무관한 정서의 작품을 찍고자 하였으며 마치 재즈에 비유할 수 있는 TV의 즉흥적인 성격을 가진 비연극적인 작품을 찍고자 한 것이 바로 <원더풀 라이프>이다. 그는 <원더풀 라이프>의 방법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나 픽션이라는 식으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해석하며,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배우든 일반인이든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규칙을 정한 것입니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문 장르 안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직접 연기하는 인물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것이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놀라운 화학작용을 발견한다. 이로써 인터뷰는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표현의 생성 과정이 된다.
<노매드랜드> 역시 픽션과 다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를 두고 '픽션에 다큐멘터리식 터치가 들어갔다'거나, '페이크 다큐'라고 단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그의 영화에 다큐식 터치가 가미되었다는 평가에 억울하다고 반응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들을 다큐식 촬영을 단순 차용하여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은 자오의 섬세한 연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카메라는 광활한 대자연과 그 안에서 늙고 풍화되어 가는 인물들을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극적이거나 작위적인 연출을 지양하는 대신, 대상이 스스로를 자연스레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애정과 시간을 들여 지켜보고자 한다. 특히 현실 고발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여 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감독은 노매드의 삶에 미묘하고도 아주 깊숙이 그러나 그들의 존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침투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카메라의 존재와 배우의 존재는, 노매드들이 스스로의 삶을 인식하는 태도에도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노매드인 출연진들도 이제 카메라 앞의 배우처럼 자기 삶에 대한 표현 욕구를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이들만이 가진 긍지, 강인함, 존재론적 고독을 발견한다.
펀 역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또한 본인이 연기를 한다는 사실, 스스로가 배우라는 사실조차 잊고 5개월의 긴 여정 동안 순전히 펀이라는 인물로 살아간다. 맥도먼드는 실제로 아마존에 이력서를 내고 취업도 하고, 밥 웰스가 설립한 RTR(Rubber Tramp Rendezvous)에 머무는 노매드들과 교류를 하며 함께 생활한다. 그동안 누구도 그녀를 유명 여배우라고 의심해본 적 없을 만큼, 맥도먼드는 생활 연기에 녹아들어 완벽하게 한 캐릭터를 체화할 수 있었다. 이 성실하기 그지없는 배우는 나중에 펀이라는 인물의 핵심 코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터뷰한다(링크). RTR에 처음 입성했을 때 펀은 처음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역할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밥 웰스와 일대일로 대면할 때 자신의 이야기(실은 픽션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두 사람의 독대 장면은 후반부에 한번 더 반복되는데, 맥도먼드 배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순수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밥 웰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 장면이 끝나고 배우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타인의 삶을 대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는 완전히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감독이나 제작자의 생각을 투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감독은 배우 양쪽에게 정보의 불균형을 주고 돌발적인 지시를 내린다든가 하는 '조작'과 테크닉을 통해 즉흥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밥 웰스가 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상실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은, 펀이라는 같은 처지의 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토로이자 고백이었다. 이 장면은 밥 웰스를 외부인으로서 관찰하면서 얻어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였고 그녀의 남편도 멀쩡히 살아있다 한들, 그가 드러낸 진실된 감정은 결코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영화은 이런 진귀한 장면을 포착, 발굴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맥도먼드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해버리고 용서를 구한다. 그 순간 아주 밀도 있게 형성된 특별한 관계는 다음 국면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배우와 카메라를 통해 실존하는 인물들의 삶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다가가려고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성숙한 태도를 취한다.
애도를 마치고 나면
이제 비로소 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008년 경기침체로 미국 엠파이어의 석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은 폐허가 되고 만다. 사랑하는 남편 '보'마저 병으로 떠나보내자, 펀은 집을 청산하고 밴 한대를 몰고서 노매드의 생활을 시작한다(영어로는 hit the road라고 표현하는데 모든걸 박차고 길 위로 떠나는 이미지가 상기된다). 이 유랑길은 1) 생존을 위한, 2) 도피를 위한, 그리고 3) 애도를 위한 유랑이다. 먼저 1) 생존이란, 삶의 터전을 잃은 이가 때때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수렵/채집하는 과정이다. 초반에 비치는 아마존 물류 시스템의 부감은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주인공이 저 18세기의 낭만적인 방랑객이 아니라 21세기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방을 떠날 수 없는 취약계층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다음으로 2) 도피는, 상실로부터의 도피이다. 펀은 늘 새로운 시도나 친구들의 초대를 거절하는 습성이 있다. 펀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모든 옛 기억들을 자신의 밴에 차곡차곡 쌓아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데이브가 이를 훼손했을 때 노여워하고 심지어 다시 접착제로 붙이기도 한다.
이런 회피형 인물이, 의도치 않게 다른 노매드들과 스치고 대자연의 존재를 마주하며 하나둘씩 상처를 씻어내려가게 된다. 그녀는 한시적인 일을 하면서 유독 오물을 치우거나 얼룩을 닦는 일을 많이 한다. 샤워를 하는 뒷모습에서 검은 물이 씻겨내리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즉, 펀은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씻고 정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주어진 애도의 과업을 완수해가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노년의 성장 영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서사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깨닫고 돌아오는 서사인가?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 아니라 떠남을 위한 떠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첫번째에는 도망치고 잊기 위해, 두번째에는 기억하고 되찾기 위한 떠남이다. 예컨대 펀에게는 몇번 정착할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 주변에는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망이 있다. 데이브와 언니 부부의 존재가 그러한데, 이들은 펀이 도피와 애도의 순례를 끝마쳤을 때 노매드의 삶을 버리고 정착하게 될 것인지를 다시한번 자문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로드무비의 여정이 반지처럼 한 번의 원을 그렸을 때, 그녀를 추동하는 힘은 생존을 위한 갈구도, 과거로부터의 도피도, 상실한 자의 애도도 아닌 태생적인 자유로움과 독립심, 강인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는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지며, 망자의 시선으로부터 끝내 자유로워진다.
스웽키가 마침내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보내온 영상에서 제비들은 알을 깨고 나온 껍질을 물가에 떨구고 어디론가 한없이 떠돈다. 겉으로 보기에 목적이 없는 어지러운 비행일 지라도 자연의 순리 안에서 이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비상하고 있는 것일 테다. 이처럼 스스로의 방랑에서 각자 그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 노매드들이 거쳐야 할 통과 의례이자 숙명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거대한 자연의 풍광과 목격한 자의 내면의 풍경을 2.39:1의 웅장한 시네마스코프 안에 담아내는 데 성공하였는데, 과연 테렌스 멀릭 스쿨이라고 자처할만하였다. 또 한편으로 감독은 노매드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균형을 잡기 위하여, 평범한 가정의 일상 안에서도 생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려 한다. 펀이 데이브의 집에 초대받아서 데이브 손자를 어색하게 안고 있다가 잠든 아기의 손을 쥐어보는 장면은, 거대한 나무와 자라나는 여린 잎을 보듯이 자연을 바라볼 때와 같은 순일한 감정을 자아낸다.
마치며
이 글의 서두는 홈리스가 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길 위를 달리고 대자연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시선은 점차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대자연 그 자체, 자연 앞의 나의 미약한 존재에 대한 감각으로 옮겨갔다. (<노매드랜드>도 이러한 순차를 따르고 있다) 우리가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험해보이는 절벽임에도 어떠한 보호막도 쳐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안내 간판에는 <접근하지 마시오, 바다사자 어미가 갓 낳은 새끼들을 떠날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인간에게 추락할 수 있다,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는 커녕, 너의 위험은 내 알 바 아니고 생태 환경을 위해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 미국 특유의 자유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되었다. 노매드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를 닮아있다. 야생에 맨몸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상황이 얼마나 위험할지를 스스로 가늠하고 판단하면서 더듬거리며 길을 나아간다. 스페어타이어도 없이 서부를 횡단하는 펀에게 선배 스웽키가 조언해주듯이, 이들은 사회적 보호막에 의지하는 대신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외침과 손길을 의지한다.
우리의 자동차 여행은 사실 험난했다. 하루 50불짜리 에어비앤비 숙소는 형편없었고 위험한 다운타운 동네의 안 좋은 집을 예약하여 숙소를 옮긴 적도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자동차로 미 서부를 횡단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절대 못하겠단 생각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늘 떠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그만큼 정주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고 제대로 잘 정착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기도 했던 것 같다. 영화 전반부에 노매드들이 무모하고 고집스럽단 인상마저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 판단을 진정으로 거둘 수 있었다. 제비들이 알을 깨고 날아다니는 데에는 어떤 말과 해석도 필요 없듯이,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풍화하는 삶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그동안 나름 여러 대륙의 대자연들을 찾아다니면서 눈물이 흐를 만큼 위엄있는 그 풍경들이 여행자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강하게 뇌리에 박혀 때때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 내 삶에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노매드랜드>도 그런 영화가 될 것만 같다.
2018년 겨울, 몬테레이 베이의 석양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지수 옮김 pp. 32-45
이미지 출처
https://www.vogue.com/article/oscar-predictions-2021https://tonebenderspodcast.com/159-nomadland-with-sergio-diaz-and-zach-seivers/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nomadland-film-making-of-spc-intl/index.html
https://i.pinimg.com/originals/1c/77/90/1c779035984fbca2c3080c4e93fb8490.jpg
https://www.imdb.com/title/tt9770150/mediaindex/?ref_=tt_mv_sm2021년 4월 26일 감상 / 2021년 4월 28일 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karenine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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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
개봉 당시 런닝맨에 나와 어리버리한 매력을 뽐냈던 이동휘. 그 기억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 <어린 의뢰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제목이 '어린 의뢰인'이어서 이동휘가 변호사고 의뢰인이 어린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의뢰가 아동학대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 시놉시스
“제가 동생을 죽였어요”
당신에게 찾아온 뜨거운 질문! “당신은 이 아이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인생 최대 목표는 오직 성공뿐인 변호사 정엽. 주변에 무관심한 그에게 다빈과 민준 남매가 자꾸 귀찮게 얽힌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형 로펌 합격 소식을 듣게 된 ‘정엽’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살 소녀 다빈이 7살 남동생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 뒤늦게 미안함을 느낀 정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다빈의 엄마 지숙에게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어린 의뢰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무서웠던 어른들
영화 <어린 의뢰인>을 보면서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빈과 민준이의 주변에 있었던 어른들이었다. 남매가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말리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애를 심하게 잡네. 또 시작이네. 남의 집일에 신경쓰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며 그저 외면을 하고, 다빈이 동생을 죽였다 하여 경찰에 잡혀 갈 때도 어느 누구도 다빈이의 편에서 걱정해주는 이가 없었다. 다빈이는 이에 "어른들은 믿는거 아니야."라고 킹콩 인형에게 말을 하고, 재판에 가서도 어른들을 믿지 못해 입을 닫는 상황이 펼쳐지고 만다. 그저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참혹한 광경을 방관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그 주변 사람이었던 선뜻 나설 수 있을까 반성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방관자의 얼굴과 내 얼굴이 겹쳐지면서 남매에게 굉장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시각을 엿보다
아동학대에 관련된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관객을 방관자적 시각으로 거나 가해자의 시각으로 두게된다.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등장하기에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끔 연출이 대부분 이뤄진다.
하지만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는 계모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형 속의 카메라를 제시하면서 피해 동의 입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계모의 얼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단시간 내에 보여준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직접적인 연출 뿐 아니라 정엽과 함께 햄버거를 난생 처음먹는 남매의 모습을 통해서도 학대아동의 슬픈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엄마는 어떤 느낌이에요?” 그저 순수하게 묻는 것 같지만 결국 계모로부터 엄마의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사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호기심이 넘치는 말투로 물어봐서 더욱 가슴이 저렸던 부분이었다.
내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고 계모의 행동에 화가 나고 무관심한 주변 어른들에 분노하다가 이른 결론은 혹시 나에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였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 넘어간 일이 없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특히 마지막 크래딧이 올라갈 때 한 해 아동학대 피해 신고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도 학대받는 아동이 있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졌다. 더는 방간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무시하진 않았는지 살펴보게 되는 영화였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학대 아동의 초점에서 영화를 풀어내 어른들의 반성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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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일의 밤> -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제8일의 밤 (The 8th Night)
개봉일 : 2021.07.02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태형
출연 : 이성민, 박해준, 김유정, 남다름, 김동영, 이얼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번민하는 검은 악마의 눈과 번뇌하는 붉은 악마의 눈이 만나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각기 다른 사리함에 봉인된 두 눈은 지옥의 문을 열 순간만을 기다린다.
<제8일의 밤>은 끝없이 이어지는 문을 지키는 자의 운명과 문을 열려는 악의 욕망,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7개의 징검다리가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7월 2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반응은 꽤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내에서 통용되는 소재 자체는 좋았으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결국 불필요해진 감정들이 아쉬웠다.
결국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건 대가없는 희생과 선함뿐인 건가. 악에 잠식당한 사람들에게 남는 커다란 구멍과 그 틈을 넘나드는 붉은 눈의 괴기함이 나에겐 완전한 공포보다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악이 원하는 지옥은 무엇이기에 무력한 사람들을 이토록 끈덕지게 괴롭히려 하는 걸까. 개인적으론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진 못하는데, 걱정보단 덜 공포스러웠기 때문일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식은땀이 날 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보는 이를 놀라게 하거나 악몽을 걱정할 만큼 잔혹한 공포 같은 것에 집중했다기보단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지옥문을 지키는 선한 자의 대립. 그리고 어리석은 사랑에 묶인 운명과 그 또한 감싸 안는 선한 자가 내미는 손과 주어진 숙명. 이런 주제들에 더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죽죽한 장마철을 내쫓을 서늘해질 만큼의 공포 영화를 찾고 있다면 아쉽게 느껴질만한 공포랄까. 그래도 전하려고 한 메시지와 의도, 배우진들의 연기가 좋아 한 번쯤은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제8일의 밤 시놉시스
붉은 달이 뜨는 밤,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이 7개의 징검다리를 밟고 자신의 반쪽, ‘검은 눈’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제8일의 밤, 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 고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세상이 될 것이다.
북산 암자의 ‘하정 스님’(이얼)은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제자 ‘청석’(남다름)에게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며, ‘선화’를 찾으라고 유언을 남긴다. ‘청석’은 주소지만 적힌 종이를 들고 길을 떠나던 중 사리함을 잃어버리고 그곳에서 정체모를 소녀 ‘애란’(김유정)을 만나게 된다. 한편, 괴이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들이 발견되고, 강력계 형사 ‘김호태’(박해준)와 후배 ‘박동진’(김동영)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괴시체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수사를 이어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때가 되었구나. 전해라… 놈이 왔다”
사리함이 박준철 교수에 의해 발견된 2005년. 정밀 감식 결과 사리함은 최근에 합성된 ‘가짜’라는 결론이 나고 교수는 고고학을 50년쯤 퇴보시킨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기꾼. 교수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는 의심이 아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자신의 말이 진짜임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번뇌의 붉은 눈 사리함에 제물들의 피를 붓는다. ‘번뇌’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 박준철 교수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욕망이다. 악마는 그의 욕망과 제물들의 피를 받아 세상에 깨어나고 지옥문을 열기 위해 징검다리를 밟는다.
지옥의 문을 열려는 악마. 그리고 징검다리 마지막에 서있는 문을 지키는 자.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그의 운명을 내려받은 진수(선화 스님)과 청석. 징검다리를 두고 악마와 지키는 자는 대립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사람들이 주고받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녀 보살은 자신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될 운명을 사주가 같은 동진에게 넘기고, 북산에 있는 지키는 자들(스님)은 자신의 명이 다할 때쯤 다음 사람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넘겨준다.
진수와 청석은 청석의 어머니가 낸 사고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청석의 어머니가 낸 교통사고로 진수는 아내와 딸을 잃는다. 그리고 청석의 어머니는 죗값을 갚겠다며 자살을 택한다. 하정 스님과 진수는 홀로 남겨진 어린 청석을 북산으로 데려온다. 그 순간부터 청석은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받을 인물이 된다. 청석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적이 없지만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머니, 스님들에 의해 운명을 부여받는다. 2년이 넘도록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청석의 목에 걸린 ‘묵언’ 목걸이를 걸어준 하정 스님. 그 목걸이를 끊어내고 새로운 신발을 신겨준 진수. 두 사람은 청석의 운명을 결정하고, 다시 바꾸는 인물이다.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청석의 묵언수행이 끝이 나고 새로운 신발을 신게 된 건 청석이 새로운 운명, 지키는 자의 운명을 받게 되는 순간임을 암시한다.
호태는 물에 빠져 죽었어야 할 동진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호태와 동진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동진이 일을 하던 중 어떠한 사고로 인해 다리와 눈을 다쳤고, 호태는 그로 인해 깊은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모두가 호태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호태는 동진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떻게든 동진을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가 살려낸 동진은 결국 악마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되고, 호태는 동진의 몸에 들어간 악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운명이란 것은 변하지 않고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뿐이다.
<제8일의 밤>에서는 끊어내지 못한 운명과 숙명을 발목에 묶인 족쇄로 표현한다. 애란은 학대받던 자신을 구해준 새아빠 준철을 위해 악마를 소환하는 제물이 된다.
“그리고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냥 믿고 싶어져.”
준철은 악마를 불러내겠다며 어리석은 꿈을 꾸지만 애란은 자신의 전부인 아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 애란의 발목엔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고 애란은 그것을 끊지 못한다.
진수는 악마를 유인하기 위해 덫을 치며 자신의 발목에 단단히 끈을 묶는다. 이미 사리함을 열 운명이 청석에게 내려졌음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마지막 징검다리이며 청석이 나를 죽이면 악마도, 지키는 자의 운명도 끝이 날것이라 예상하고 발목에 끈을 묶는다. 그가 희생을 감수하고 발목에 끈을 묶은 건 지금껏 외면해왔던 ‘귀신을 천도해야 한다’는 숙명을 이제야 단단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북산을 떠난 순간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이 돌아갔음을 알게 된 진수는 발목에 묶인 끈을 힘껏 내리쳐 덫을 벗어나 청석을 따라간 악마의 뒤를 쫓는다. 발목에 묶인 끈을 끊어낸 진수는 결국 자신을 희생해 ‘마지막 징검다리인 청석을 통해 악마가 부활할 것’이라는 운명을 바꿔놓는다.
내 아내와 딸을 죽인 가해자의 아들. 진수는 모두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 존재를 용서한다. 진수는 청석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포기하고 북산을 떠난다. 그리고 번뇌와 번민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던 진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던 죄책감을 털어내고 청석을 용서한다. 사실 아이에게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아이를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사고 날부터 제8일의 밤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다시 봉인된 사리함과 남게 된 지키는 자 청석.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준 스님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겐 새로운 숙명이 생겼다. 애란의 서글픈 눈을 바라보며 먼저 손을 내밀던 그의 선함이 오래도록 지옥의 문을 단단히 누르고, 덮어주길. 누군가는 지옥의 문을 지켜야 하는 운명.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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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축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축구에 대해 생각해본다. 둥근 공과 단단한 땅.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스포츠. 공 대신 깡통을 굴려 가면서도 할 수 있고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축구.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으며 가장 열정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는 지구 상의 위대한 종목.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꿈꾸고 상상하는 게 축구. 축구라는 건 참 대단하구나.
축구에 대해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 건 <자타리의 축구 선수들>(2020)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다.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에 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야 상대 얼굴의 윤곽을 볼 수 있는 곳. 중동의 요르단, 그중에서도 자타리라는 지역의 거대 난민 캠프. 이곳에도 축구를 하는 청년들이 있다.
10대 후반이자 절친인 파우지와 마흐무드는 학교에 가는 대신 축구를 한다. 이들의 꿈은 유명한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호날두 같은 세계적인 선수. 이 지독하고 열악한 환경을 유일하게 탈출할 방법이 축구다. 파우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있다. 둘은 흙먼지가 날리는 캠프 안 운동장에서 또래들과 구슬땀을 흘린다. 실력이 뛰어난 둘은 카타르 유명 축구 아카데미인 어스파이어 아카데미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다.
삶의 희망이 축구뿐인 둘을 카메라는 73분 동안 조용하게 보고 듣고 담아낸다. 구멍 난 운동화나 가난함에 힘겨워한다거나 비관적인 삶의 태도 같은, 인위적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장면이 없는 게 이 다큐의 특징이다. 비극적이지도 않고 낙관적이지도 않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여줄 뿐이다. 파우지와 마흐무드는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청소년이자 이성에 관심 있는 평범한 10대이며 훈련이 다 끝나면 집에 전화해 안부를 묻는 아들이다.
하지만 둘은 난민이라는 정체성, 그 무게감을 항상 지니며 살아간다. 공부를 계속해 어떤 학위라도 받아놓으면 도움이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마흐무드는 “전 그저 난민이고 학위를 딴다고 해도 난민일 것”이라고 말한다. 어스파이어 아카데미의 초록 잔디 운동장과 체계화된 훈련을 받고 유명 축구스타들의 응원을 받다가도 파우지는 캠프 외부에 나가 있는 아버지의 건강을 확인한다.
축구 덕에 둘의 삶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대회 결승전. 무릎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파우지가 선발 명단에 올랐다. 자타리 캠프의 가족들과 주민들이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중계를 본다. 파우지와 마흐무드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호응하고 손뼉을 친다. 파우지가 골을 넣었고 팀은 승리를 거둔다. 이후 열린 기자회견. 마흐무드가 말한다. “전 세계 난민들이 기회를 얻게 해 주세요. 난민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감독은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빌드업해 온 게 아닐까,라고 나는 추측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동등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그 기회. 난민을 떠올렸을 때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지 우리의 자격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자 한 마디였다.
축구는 끝났다. 파우지와 마흐무드는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아카데미에 다녀왔지만 둘은 스카우트되지 않았다. 삶은 극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바뀐 거라곤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이 잔디 깔린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 그럼 이들의 축구는 끝난 것일까. 나는 기억한다.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 무게감을 짊어지고 차곡차곡 만들어갔던 그 담담한 여정을, 거기서 가능성과 희망과 의지를 조용히 다졌던 둘의 이야기를. 축구는 끝났지만 그럼에도 축구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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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무료한 목요일에 활기를 더해줄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한눈에 정리해 드릴게요 :)
그럼, 5월 둘째 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BTS 지민 ‘분노의 질주’ 메인 OST로 참여
ⓒ 빅히트 뮤직
방탄소년단 지민이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OST에 한국 아티스트 최초로 참여했습니다.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에서 방탄소년단 지민이 보컬로 참여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Angel Pt.1’의 트레일러 버전 음원을 5월 9일 깜짝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Angel Pt.1’의 공식 풀버전은 오는 18일 공개될 예정이며,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17일에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할 예정입니다.
팀 버튼 <비틀쥬스>, 36년 만에 속편 제작
ⓒ 네이버 영화
팀 버튼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비틀쥬스>가 36년 만에 속편 제작을 확정하며,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9일 미국 매체에서 워너브라더스가 <비틀쥬스2>의 개봉일을 2024년 9월 6일로 확정지었으며, <웬즈데이>의 주연 배우 제나 오르테가가 합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히트맨 2> 크랭크인 예정
ⓒ 네이버 영화
배우 권상우, 정준호, 황우슬혜, 이이경, 이지원 등 다섯 배우가 <히트맨 2>로 다시 뭉치게 되었습니다. 9일 기사에 따르면 다섯 배우가 <히트맨 2>의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 검토를 긍정적으로 마쳤다고 합니다. 현재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있으며, 6월 초쯤 크랭크인 예정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히트맨>은 누적 관객수 240만 명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뛰어넘은 흥행작으로 이번 속편 역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고마츠 나나·사카구치 켄타로 내한 확정
ⓒ 네이버 영화
배우 고마츠 나나와 사카구치 켄타로가 영화 <남은 인생 10년> 홍보를 위해 내한을 확정하였습니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스무 살에 난치병을 선고받은 '마츠리'가 삶의 의지를 잃은 '카즈토'를 만나 눈부신 사계절을 장식하는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일본에서 2022년 1분기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기도 하였습니다. 주연 배우 고마츠 나나와 사카구치 켄타로, 프로듀서 쿠스 치아키가 6월 4일과 5일 한국 방문 예정입니다.
안소희, <수학여행> 배리어프리 내레이션 참여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배우 안소희가 1969년에 개봉된 유현목 감독 영화 <수학여행>의 배리어프리 버전 녹음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안소희는 "<수학여행> 배리어프리버전으로 따뜻한 마음을 함께 전할 수 있어 뜻 깊었고, 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더 깊이있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해당 작품은 후반 작업을 거쳐 6월부터 공동체상영을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인어공주>, 북미 시사회에서 호평
ⓒ 네이버 영화
8일(현지시간) 북미에서 영화 <인어공주>의 첫 시사회가 열렸고,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며 여러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어공주>는 늘 바다 너머의 세상을 꿈꾸던 모험심 가득한 인어공주 '에리얼'이 조난당한 '에릭 왕자'를 구해주며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 금지된 인간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험을 그린 디즈니 실사 뮤지컬 영화입니다. 한편 '인어공주'는 국내에서 오는 24일 개봉할 예정입니다.
이것으로 씨네랩이 들려드리는 오늘의 씨네뉴스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주말이 다가오니 조금만 더 힘내서 시간을 보내봅시다!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HIZY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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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영화 <117편의 러브레터>
죽음에 대해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던가. 죽는다는 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한다는 거라고. 내 식대로 하자면 이렇게 적을 수 있을까. 죽는다는 건 더 이상 영화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일 것이다. 죽음에 관한 문장에서 내가 내 삶을 유지해야 할 유용한 근거 하나를 얻게 되는데, 결국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하므로 나는 살아야 한다.
그렇게 미클로시(밀란 쉬러프)는 살았다. 자신의 생명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듣고도. 누군가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직 사랑하는 힘이 자신의 삶을 이끄는 추동력이었으므로. 시한부라는 진단을 듣고서 곧바로 117명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가 아직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장면이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의 간절한 편지에 응답한 여인은 열일곱 명. 미클로시는 자신이 사랑할 사람을 한 명 선택한다. 릴리(에모크 피티)라는 여인이다.
미클로시가 릴리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친구 해리에게 그는 왜 자신이 릴리에게 마음이 가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알파벳 b를 우리 엄마처럼 써.” 미클로시는 덧붙인다. “그리고, 아프대. 나도 아파.” 이 장면은 흥미로운 논리학 하나를 우리에게 던져주는데, 너의 ‘있음’이 나의 ‘없음’을 채워줄 거라 기대하며 너에게 매혹당하는 것이 욕망이라면, 사랑은 나의 ‘없음’이 너의 ‘없음’을 알아볼 때 발생한다는 것. 미클로시와 릴리 둘 모두의 ‘없음’은 단연 둘이 앓고 있는 폐결핵과 신장 질환일텐데, 이것은 사랑의 성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촉진시키는 둘의 매개물이라는 것. 신형철은 이 점에 대해 유려하게 이미 표현한 적 있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6쪽)
이렇게 느낀 건 릴리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새벽의 열기’에서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클로스는 글씨를 정말 예쁘게 잘 썼다. 아름다운 글씨, 우아한 세로획. 단어들 사이에는 다시 숨을 쉬는 데 필요한 만큼 여백이 머물렀다. 편지를 다 쓰면 그는 봉투를 찾아내서 집어넣은 다음 봉인하고, 머리맡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에 기대 놓았다.” (피테르 가르도시, 새벽의 열기, 12쪽) 릴리는 미클로시의 편지에서 아름다운 글씨체만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 빈 공간을 찾은 것이다. 릴리도 미클로시의 첫 편지에서 그의 ‘없음’을 알아차린 거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미클로시와 릴리, 둘 사랑의 이행과정이 편지, 목소리(전화), 얼굴이라는 점은 필연적이다. 편지부터 시작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이겠지만, 또 편지여서 사랑이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편지는 너의 부재를 더욱 감각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나는 너의 빈자리에 내 사랑을 하나씩 채운다. 자주 얼굴이라는 너의 현존에서부터 시작하는 오늘날의 사랑이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사랑의 깊이다. 우리의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우리는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이정식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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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중국에 위치한 본거지 콜센터 잠입에 성공한 서준,
개인정보확보, 기획실 대본입고, 인출책 섭외, 환전소 작업, 대규모 콜센터까지!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스케일에 놀라고,
그곳에서 피해자들의 희망과 공포를 파고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기획실 총책 곽프로(김무열)를 드디어 마주한다.
그리고 그가 300억 규모의 새로운 총력전을 기획하는 것을 알게 되는데..
상상이상으로 치밀하게 조직화된 보이스피싱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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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키워온 세 친구 ‘디나’, ‘에피’, ‘로렐’의 드라마틱한 데뷔부터
화려한 성공, 아찔한 스캔들까지!
이들을 둘러싼 사랑과 우정, 박수와 환호가 히트송 퍼레이드와 함께 펼쳐진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환상의 무대가 지금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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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 끝에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몇 년 전, 친구와 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을 했다. 샌프란에서 출발해 LA를 찍고 샌디에이고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LA로 올라오는, 나름의 모험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번을 왕복할 정도의 거리를 달리면서 온갖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했고, 미국이란 땅이 낯선 나를 위해 유학 중인 친구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흔한 미국 사람이 홈리스가 되는 시나리오'가 기억에 남는다. 친구에 따르면 미국 서민들의 경우 차를 한번 수리하는 비용과 인건비가 원체 비싸기 때문에 차 유리창이 깨져도 신문지로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도심 외곽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어느 날 차가 완전히 고장 나기라도 하면, 수중에 단돈 몇 천 달러가 없어서 수리비를 변통하지 못한다.(렌트와 보험비를 포함한 기본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수중에 현금이 많이 없다고 한다. 저축이란 개념도 약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차를 타고 직장에 가지 못 하여 직장에 잘린다. 직장에서 잘리면 렌트와 보험을 내지 못하고, 그러다 어처구니없게도 홈리스로 전락한다.
샌프란 도심 거리에 보이는 홈리스들은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있었는데 실은 파트타임 일을 몇 개씩 뛴다고 한다. 이들은 차가 없기 때문에 다운타운을 떠나지 못하고 슬럼을 형성한다. 미국인에게는 마치 신발과도 같은 자동차가 없다는 것은 일자리의 선택 범위를 확연히 좁히면서, 삶의 방식까지도 제한한다. <노매드랜드>를 보았다면,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과 위와 같은 홈리스들이 질적으로 어떤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펀이 자처한 유목민 생활은 도심의 홈리스의 삶보다도 더 척박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의도치 않게 동정 어린 눈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마주친 옛 학생 앞에서 펀은 자신이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엄연한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선포한다. 홈은 곧 하우스라는 공식에 들어맞지 않을 뿐, 그녀는 홈리스와 다르게 기동력과 안식처를 동시에 쟁취했다고 청중을 설득하고자 한다. 후반부에 카센터에서 구제불능이 된 고물 밴을 집이자 안식처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주장에 진정으로 동조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펀은 마치 60년대 히피 라이프를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 유아적이라는 인상마저 주기에 이른다. 이러한 세간의 오해를 뒤로하고 그녀의 여정은 계속된다.
현대인의 끝나지 않는 노동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들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중산층에게는 소박하게는 집 한 채 마련, 궁극적으론 경제적 자유가 최종 목표라고도 한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이 촉발한 금융위기부터 지금의 Covid-19까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그 10년 간 경제적으로 낙오한 이탈자들 뿐 아니라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이 '소박했던' 바람은 신기루 같은 꿈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떠도는 주체로 남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한 삶을 실제로 실천하고 사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영화는 증명한다.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활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마치 구석기시대로 회귀한 듯한 생활 풍경을 묘사한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을 하듯 아마존 물류센터, 캠핑장, 고속도로 식당에서 단기 일자리를 구하며 동굴에 몸을 누이듯 밴 안에 몸을 누인다. 특히 영화는 실제 노매드인 린다 메이, 스웽키, 데이브와의 우정을 통해 이들의 다공성(porous)이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노매드 식의 연대에 주목한다. 구석기인들처럼 이들은 서로 평등하고 계급을 의식하지 않으며 식량과 불을 나눈다.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은 서로 교환하거나 나누고, 노동의 품앗이를 한다. 불을 지피는 모습, 공룡, 화석, 먼 별빛 등 태곳적을 상징하는 고고학적인 소재들이 도처에 등장한다.
방법론에 대하여
본 영화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 저, <노매드랜드 : 21세기에 미국에서 살아남기>라는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주인공 펀과 데이브를 제외한 일군의 조연 역으로 실제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연기하도록 하였다. 어딘가 익숙한 이 작법은 다름 아닌 TV 다큐멘터리의 DNA를 가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법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침 최근에 그의 20년간의 영화 자서전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이 감독의 작업 방식과,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데뷔작 <환상의 빛>에서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국적이고 동양적 가치관을 읽어내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서 그는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부러 무관한 정서의 작품을 찍고자 하였으며 마치 재즈에 비유할 수 있는 TV의 즉흥적인 성격을 가진 비연극적인 작품을 찍고자 한 것이 바로 <원더풀 라이프>이다. 그는 <원더풀 라이프>의 방법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나 픽션이라는 식으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해석하며,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배우든 일반인이든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규칙을 정한 것입니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문 장르 안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직접 연기하는 인물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것이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놀라운 화학작용을 발견한다. 이로써 인터뷰는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표현의 생성 과정이 된다.
<노매드랜드> 역시 픽션과 다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를 두고 '픽션에 다큐멘터리식 터치가 들어갔다'거나, '페이크 다큐'라고 단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그의 영화에 다큐식 터치가 가미되었다는 평가에 억울하다고 반응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들을 다큐식 촬영을 단순 차용하여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은 자오의 섬세한 연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카메라는 광활한 대자연과 그 안에서 늙고 풍화되어 가는 인물들을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극적이거나 작위적인 연출을 지양하는 대신, 대상이 스스로를 자연스레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애정과 시간을 들여 지켜보고자 한다. 특히 현실 고발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여 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감독은 노매드의 삶에 미묘하고도 아주 깊숙이 그러나 그들의 존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침투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카메라의 존재와 배우의 존재는, 노매드들이 스스로의 삶을 인식하는 태도에도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노매드인 출연진들도 이제 카메라 앞의 배우처럼 자기 삶에 대한 표현 욕구를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이들만이 가진 긍지, 강인함, 존재론적 고독을 발견한다.
펀 역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또한 본인이 연기를 한다는 사실, 스스로가 배우라는 사실조차 잊고 5개월의 긴 여정 동안 순전히 펀이라는 인물로 살아간다. 맥도먼드는 실제로 아마존에 이력서를 내고 취업도 하고, 밥 웰스가 설립한 RTR(Rubber Tramp Rendezvous)에 머무는 노매드들과 교류를 하며 함께 생활한다. 그동안 누구도 그녀를 유명 여배우라고 의심해본 적 없을 만큼, 맥도먼드는 생활 연기에 녹아들어 완벽하게 한 캐릭터를 체화할 수 있었다. 이 성실하기 그지없는 배우는 나중에 펀이라는 인물의 핵심 코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터뷰한다(링크). RTR에 처음 입성했을 때 펀은 처음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역할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밥 웰스와 일대일로 대면할 때 자신의 이야기(실은 픽션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두 사람의 독대 장면은 후반부에 한번 더 반복되는데, 맥도먼드 배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순수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밥 웰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 장면이 끝나고 배우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타인의 삶을 대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는 완전히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감독이나 제작자의 생각을 투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감독은 배우 양쪽에게 정보의 불균형을 주고 돌발적인 지시를 내린다든가 하는 '조작'과 테크닉을 통해 즉흥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밥 웰스가 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상실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은, 펀이라는 같은 처지의 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토로이자 고백이었다. 이 장면은 밥 웰스를 외부인으로서 관찰하면서 얻어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였고 그녀의 남편도 멀쩡히 살아있다 한들, 그가 드러낸 진실된 감정은 결코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영화은 이런 진귀한 장면을 포착, 발굴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맥도먼드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해버리고 용서를 구한다. 그 순간 아주 밀도 있게 형성된 특별한 관계는 다음 국면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배우와 카메라를 통해 실존하는 인물들의 삶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다가가려고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성숙한 태도를 취한다.
애도를 마치고 나면
이제 비로소 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008년 경기침체로 미국 엠파이어의 석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은 폐허가 되고 만다. 사랑하는 남편 '보'마저 병으로 떠나보내자, 펀은 집을 청산하고 밴 한대를 몰고서 노매드의 생활을 시작한다(영어로는 hit the road라고 표현하는데 모든걸 박차고 길 위로 떠나는 이미지가 상기된다). 이 유랑길은 1) 생존을 위한, 2) 도피를 위한, 그리고 3) 애도를 위한 유랑이다. 먼저 1) 생존이란, 삶의 터전을 잃은 이가 때때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수렵/채집하는 과정이다. 초반에 비치는 아마존 물류 시스템의 부감은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주인공이 저 18세기의 낭만적인 방랑객이 아니라 21세기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방을 떠날 수 없는 취약계층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다음으로 2) 도피는, 상실로부터의 도피이다. 펀은 늘 새로운 시도나 친구들의 초대를 거절하는 습성이 있다. 펀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모든 옛 기억들을 자신의 밴에 차곡차곡 쌓아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데이브가 이를 훼손했을 때 노여워하고 심지어 다시 접착제로 붙이기도 한다.
이런 회피형 인물이, 의도치 않게 다른 노매드들과 스치고 대자연의 존재를 마주하며 하나둘씩 상처를 씻어내려가게 된다. 그녀는 한시적인 일을 하면서 유독 오물을 치우거나 얼룩을 닦는 일을 많이 한다. 샤워를 하는 뒷모습에서 검은 물이 씻겨내리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즉, 펀은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씻고 정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주어진 애도의 과업을 완수해가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노년의 성장 영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서사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깨닫고 돌아오는 서사인가?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 아니라 떠남을 위한 떠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첫번째에는 도망치고 잊기 위해, 두번째에는 기억하고 되찾기 위한 떠남이다. 예컨대 펀에게는 몇번 정착할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 주변에는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망이 있다. 데이브와 언니 부부의 존재가 그러한데, 이들은 펀이 도피와 애도의 순례를 끝마쳤을 때 노매드의 삶을 버리고 정착하게 될 것인지를 다시한번 자문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로드무비의 여정이 반지처럼 한 번의 원을 그렸을 때, 그녀를 추동하는 힘은 생존을 위한 갈구도, 과거로부터의 도피도, 상실한 자의 애도도 아닌 태생적인 자유로움과 독립심, 강인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는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지며, 망자의 시선으로부터 끝내 자유로워진다.
스웽키가 마침내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보내온 영상에서 제비들은 알을 깨고 나온 껍질을 물가에 떨구고 어디론가 한없이 떠돈다. 겉으로 보기에 목적이 없는 어지러운 비행일 지라도 자연의 순리 안에서 이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비상하고 있는 것일 테다. 이처럼 스스로의 방랑에서 각자 그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 노매드들이 거쳐야 할 통과 의례이자 숙명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거대한 자연의 풍광과 목격한 자의 내면의 풍경을 2.39:1의 웅장한 시네마스코프 안에 담아내는 데 성공하였는데, 과연 테렌스 멀릭 스쿨이라고 자처할만하였다. 또 한편으로 감독은 노매드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균형을 잡기 위하여, 평범한 가정의 일상 안에서도 생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려 한다. 펀이 데이브의 집에 초대받아서 데이브 손자를 어색하게 안고 있다가 잠든 아기의 손을 쥐어보는 장면은, 거대한 나무와 자라나는 여린 잎을 보듯이 자연을 바라볼 때와 같은 순일한 감정을 자아낸다.
마치며
이 글의 서두는 홈리스가 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길 위를 달리고 대자연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시선은 점차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대자연 그 자체, 자연 앞의 나의 미약한 존재에 대한 감각으로 옮겨갔다. (<노매드랜드>도 이러한 순차를 따르고 있다) 우리가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험해보이는 절벽임에도 어떠한 보호막도 쳐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안내 간판에는 <접근하지 마시오, 바다사자 어미가 갓 낳은 새끼들을 떠날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인간에게 추락할 수 있다,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는 커녕, 너의 위험은 내 알 바 아니고 생태 환경을 위해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 미국 특유의 자유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되었다. 노매드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를 닮아있다. 야생에 맨몸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상황이 얼마나 위험할지를 스스로 가늠하고 판단하면서 더듬거리며 길을 나아간다. 스페어타이어도 없이 서부를 횡단하는 펀에게 선배 스웽키가 조언해주듯이, 이들은 사회적 보호막에 의지하는 대신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외침과 손길을 의지한다.
우리의 자동차 여행은 사실 험난했다. 하루 50불짜리 에어비앤비 숙소는 형편없었고 위험한 다운타운 동네의 안 좋은 집을 예약하여 숙소를 옮긴 적도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자동차로 미 서부를 횡단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절대 못하겠단 생각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늘 떠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그만큼 정주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고 제대로 잘 정착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기도 했던 것 같다. 영화 전반부에 노매드들이 무모하고 고집스럽단 인상마저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 판단을 진정으로 거둘 수 있었다. 제비들이 알을 깨고 날아다니는 데에는 어떤 말과 해석도 필요 없듯이,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풍화하는 삶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그동안 나름 여러 대륙의 대자연들을 찾아다니면서 눈물이 흐를 만큼 위엄있는 그 풍경들이 여행자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강하게 뇌리에 박혀 때때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 내 삶에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노매드랜드>도 그런 영화가 될 것만 같다.
2018년 겨울, 몬테레이 베이의 석양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지수 옮김 pp. 32-45
이미지 출처
https://www.vogue.com/article/oscar-predictions-2021https://tonebenderspodcast.com/159-nomadland-with-sergio-diaz-and-zach-seivers/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nomadland-film-making-of-spc-intl/index.html
https://i.pinimg.com/originals/1c/77/90/1c779035984fbca2c3080c4e93fb8490.jpg
https://www.imdb.com/title/tt9770150/mediaindex/?ref_=tt_mv_sm2021년 4월 26일 감상 / 2021년 4월 2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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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
개봉 당시 런닝맨에 나와 어리버리한 매력을 뽐냈던 이동휘. 그 기억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 <어린 의뢰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제목이 '어린 의뢰인'이어서 이동휘가 변호사고 의뢰인이 어린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의뢰가 아동학대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 시놉시스
“제가 동생을 죽였어요”
당신에게 찾아온 뜨거운 질문! “당신은 이 아이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인생 최대 목표는 오직 성공뿐인 변호사 정엽. 주변에 무관심한 그에게 다빈과 민준 남매가 자꾸 귀찮게 얽힌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형 로펌 합격 소식을 듣게 된 ‘정엽’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살 소녀 다빈이 7살 남동생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 뒤늦게 미안함을 느낀 정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다빈의 엄마 지숙에게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어린 의뢰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무서웠던 어른들
영화 <어린 의뢰인>을 보면서 가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빈과 민준이의 주변에 있었던 어른들이었다. 남매가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말리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애를 심하게 잡네. 또 시작이네. 남의 집일에 신경쓰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하며 그저 외면을 하고, 다빈이 동생을 죽였다 하여 경찰에 잡혀 갈 때도 어느 누구도 다빈이의 편에서 걱정해주는 이가 없었다. 다빈이는 이에 "어른들은 믿는거 아니야."라고 킹콩 인형에게 말을 하고, 재판에 가서도 어른들을 믿지 못해 입을 닫는 상황이 펼쳐지고 만다. 그저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참혹한 광경을 방관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그 주변 사람이었던 선뜻 나설 수 있을까 반성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방관자의 얼굴과 내 얼굴이 겹쳐지면서 남매에게 굉장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시각을 엿보다
아동학대에 관련된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관객을 방관자적 시각으로 거나 가해자의 시각으로 두게된다.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욕설이나 폭력적인 장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동시에 등장하기에 그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게끔 연출이 대부분 이뤄진다.
하지만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는 계모의 결정적인 증거로 인형 속의 카메라를 제시하면서 피해 동의 입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계모의 얼굴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단시간 내에 보여준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직접적인 연출 뿐 아니라 정엽과 함께 햄버거를 난생 처음먹는 남매의 모습을 통해서도 학대아동의 슬픈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엄마는 어떤 느낌이에요?” 그저 순수하게 묻는 것 같지만 결국 계모로부터 엄마의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사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호기심이 넘치는 말투로 물어봐서 더욱 가슴이 저렸던 부분이었다.
내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고 계모의 행동에 화가 나고 무관심한 주변 어른들에 분노하다가 이른 결론은 혹시 나에게 찾아온 어린 의뢰인은 없었을까?였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 넘어간 일이 없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특히 마지막 크래딧이 올라갈 때 한 해 아동학대 피해 신고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고, 영화를 보고 있는 지금도 학대받는 아동이 있다는 문구를 읽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졌다. 더는 방간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무시하진 않았는지 살펴보게 되는 영화였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학대 아동의 초점에서 영화를 풀어내 어른들의 반성을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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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일의 밤> -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제8일의 밤 (The 8th Night)
개봉일 : 2021.07.02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태형
출연 : 이성민, 박해준, 김유정, 남다름, 김동영, 이얼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번민하는 검은 악마의 눈과 번뇌하는 붉은 악마의 눈이 만나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각기 다른 사리함에 봉인된 두 눈은 지옥의 문을 열 순간만을 기다린다.
<제8일의 밤>은 끝없이 이어지는 문을 지키는 자의 운명과 문을 열려는 악의 욕망,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7개의 징검다리가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7월 2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반응은 꽤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내에서 통용되는 소재 자체는 좋았으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결국 불필요해진 감정들이 아쉬웠다.
결국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건 대가없는 희생과 선함뿐인 건가. 악에 잠식당한 사람들에게 남는 커다란 구멍과 그 틈을 넘나드는 붉은 눈의 괴기함이 나에겐 완전한 공포보다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악이 원하는 지옥은 무엇이기에 무력한 사람들을 이토록 끈덕지게 괴롭히려 하는 걸까. 개인적으론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진 못하는데, 걱정보단 덜 공포스러웠기 때문일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식은땀이 날 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보는 이를 놀라게 하거나 악몽을 걱정할 만큼 잔혹한 공포 같은 것에 집중했다기보단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지옥문을 지키는 선한 자의 대립. 그리고 어리석은 사랑에 묶인 운명과 그 또한 감싸 안는 선한 자가 내미는 손과 주어진 숙명. 이런 주제들에 더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죽죽한 장마철을 내쫓을 서늘해질 만큼의 공포 영화를 찾고 있다면 아쉽게 느껴질만한 공포랄까. 그래도 전하려고 한 메시지와 의도, 배우진들의 연기가 좋아 한 번쯤은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제8일의 밤 시놉시스
붉은 달이 뜨는 밤,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이 7개의 징검다리를 밟고 자신의 반쪽, ‘검은 눈’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제8일의 밤, 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 고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세상이 될 것이다.
북산 암자의 ‘하정 스님’(이얼)은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제자 ‘청석’(남다름)에게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며, ‘선화’를 찾으라고 유언을 남긴다. ‘청석’은 주소지만 적힌 종이를 들고 길을 떠나던 중 사리함을 잃어버리고 그곳에서 정체모를 소녀 ‘애란’(김유정)을 만나게 된다. 한편, 괴이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들이 발견되고, 강력계 형사 ‘김호태’(박해준)와 후배 ‘박동진’(김동영)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괴시체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수사를 이어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때가 되었구나. 전해라… 놈이 왔다”
사리함이 박준철 교수에 의해 발견된 2005년. 정밀 감식 결과 사리함은 최근에 합성된 ‘가짜’라는 결론이 나고 교수는 고고학을 50년쯤 퇴보시킨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기꾼. 교수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는 의심이 아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자신의 말이 진짜임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번뇌의 붉은 눈 사리함에 제물들의 피를 붓는다. ‘번뇌’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 박준철 교수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욕망이다. 악마는 그의 욕망과 제물들의 피를 받아 세상에 깨어나고 지옥문을 열기 위해 징검다리를 밟는다.
지옥의 문을 열려는 악마. 그리고 징검다리 마지막에 서있는 문을 지키는 자.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그의 운명을 내려받은 진수(선화 스님)과 청석. 징검다리를 두고 악마와 지키는 자는 대립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사람들이 주고받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녀 보살은 자신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될 운명을 사주가 같은 동진에게 넘기고, 북산에 있는 지키는 자들(스님)은 자신의 명이 다할 때쯤 다음 사람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넘겨준다.
진수와 청석은 청석의 어머니가 낸 사고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청석의 어머니가 낸 교통사고로 진수는 아내와 딸을 잃는다. 그리고 청석의 어머니는 죗값을 갚겠다며 자살을 택한다. 하정 스님과 진수는 홀로 남겨진 어린 청석을 북산으로 데려온다. 그 순간부터 청석은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받을 인물이 된다. 청석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적이 없지만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머니, 스님들에 의해 운명을 부여받는다. 2년이 넘도록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청석의 목에 걸린 ‘묵언’ 목걸이를 걸어준 하정 스님. 그 목걸이를 끊어내고 새로운 신발을 신겨준 진수. 두 사람은 청석의 운명을 결정하고, 다시 바꾸는 인물이다.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청석의 묵언수행이 끝이 나고 새로운 신발을 신게 된 건 청석이 새로운 운명, 지키는 자의 운명을 받게 되는 순간임을 암시한다.
호태는 물에 빠져 죽었어야 할 동진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호태와 동진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동진이 일을 하던 중 어떠한 사고로 인해 다리와 눈을 다쳤고, 호태는 그로 인해 깊은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모두가 호태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호태는 동진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떻게든 동진을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가 살려낸 동진은 결국 악마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되고, 호태는 동진의 몸에 들어간 악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운명이란 것은 변하지 않고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뿐이다.
<제8일의 밤>에서는 끊어내지 못한 운명과 숙명을 발목에 묶인 족쇄로 표현한다. 애란은 학대받던 자신을 구해준 새아빠 준철을 위해 악마를 소환하는 제물이 된다.
“그리고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냥 믿고 싶어져.”
준철은 악마를 불러내겠다며 어리석은 꿈을 꾸지만 애란은 자신의 전부인 아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 애란의 발목엔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고 애란은 그것을 끊지 못한다.
진수는 악마를 유인하기 위해 덫을 치며 자신의 발목에 단단히 끈을 묶는다. 이미 사리함을 열 운명이 청석에게 내려졌음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마지막 징검다리이며 청석이 나를 죽이면 악마도, 지키는 자의 운명도 끝이 날것이라 예상하고 발목에 끈을 묶는다. 그가 희생을 감수하고 발목에 끈을 묶은 건 지금껏 외면해왔던 ‘귀신을 천도해야 한다’는 숙명을 이제야 단단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북산을 떠난 순간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이 돌아갔음을 알게 된 진수는 발목에 묶인 끈을 힘껏 내리쳐 덫을 벗어나 청석을 따라간 악마의 뒤를 쫓는다. 발목에 묶인 끈을 끊어낸 진수는 결국 자신을 희생해 ‘마지막 징검다리인 청석을 통해 악마가 부활할 것’이라는 운명을 바꿔놓는다.
내 아내와 딸을 죽인 가해자의 아들. 진수는 모두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 존재를 용서한다. 진수는 청석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포기하고 북산을 떠난다. 그리고 번뇌와 번민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던 진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던 죄책감을 털어내고 청석을 용서한다. 사실 아이에게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아이를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사고 날부터 제8일의 밤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다시 봉인된 사리함과 남게 된 지키는 자 청석.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준 스님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겐 새로운 숙명이 생겼다. 애란의 서글픈 눈을 바라보며 먼저 손을 내밀던 그의 선함이 오래도록 지옥의 문을 단단히 누르고, 덮어주길. 누군가는 지옥의 문을 지켜야 하는 운명.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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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축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축구에 대해 생각해본다. 둥근 공과 단단한 땅.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스포츠. 공 대신 깡통을 굴려 가면서도 할 수 있고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축구.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으며 가장 열정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는 지구 상의 위대한 종목.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꿈꾸고 상상하는 게 축구. 축구라는 건 참 대단하구나.
축구에 대해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 건 <자타리의 축구 선수들>(2020)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다. 포장되지 않은 흙바닥에 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야 상대 얼굴의 윤곽을 볼 수 있는 곳. 중동의 요르단, 그중에서도 자타리라는 지역의 거대 난민 캠프. 이곳에도 축구를 하는 청년들이 있다.
10대 후반이자 절친인 파우지와 마흐무드는 학교에 가는 대신 축구를 한다. 이들의 꿈은 유명한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다. 호날두 같은 세계적인 선수. 이 지독하고 열악한 환경을 유일하게 탈출할 방법이 축구다. 파우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있다. 둘은 흙먼지가 날리는 캠프 안 운동장에서 또래들과 구슬땀을 흘린다. 실력이 뛰어난 둘은 카타르 유명 축구 아카데미인 어스파이어 아카데미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다.
삶의 희망이 축구뿐인 둘을 카메라는 73분 동안 조용하게 보고 듣고 담아낸다. 구멍 난 운동화나 가난함에 힘겨워한다거나 비관적인 삶의 태도 같은, 인위적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는 장면이 없는 게 이 다큐의 특징이다. 비극적이지도 않고 낙관적이지도 않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여줄 뿐이다. 파우지와 마흐무드는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청소년이자 이성에 관심 있는 평범한 10대이며 훈련이 다 끝나면 집에 전화해 안부를 묻는 아들이다.
하지만 둘은 난민이라는 정체성, 그 무게감을 항상 지니며 살아간다. 공부를 계속해 어떤 학위라도 받아놓으면 도움이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마흐무드는 “전 그저 난민이고 학위를 딴다고 해도 난민일 것”이라고 말한다. 어스파이어 아카데미의 초록 잔디 운동장과 체계화된 훈련을 받고 유명 축구스타들의 응원을 받다가도 파우지는 캠프 외부에 나가 있는 아버지의 건강을 확인한다.
축구 덕에 둘의 삶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대회 결승전. 무릎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파우지가 선발 명단에 올랐다. 자타리 캠프의 가족들과 주민들이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중계를 본다. 파우지와 마흐무드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호응하고 손뼉을 친다. 파우지가 골을 넣었고 팀은 승리를 거둔다. 이후 열린 기자회견. 마흐무드가 말한다. “전 세계 난민들이 기회를 얻게 해 주세요. 난민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감독은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빌드업해 온 게 아닐까,라고 나는 추측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동등한 상황에서 주어지는 그 기회. 난민을 떠올렸을 때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지 우리의 자격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장면이자 한 마디였다.
축구는 끝났다. 파우지와 마흐무드는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아카데미에 다녀왔지만 둘은 스카우트되지 않았다. 삶은 극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바뀐 거라곤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이 잔디 깔린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 그럼 이들의 축구는 끝난 것일까. 나는 기억한다. 기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 무게감을 짊어지고 차곡차곡 만들어갔던 그 담담한 여정을, 거기서 가능성과 희망과 의지를 조용히 다졌던 둘의 이야기를. 축구는 끝났지만 그럼에도 축구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