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2-23 20:13:55
북으로 간 남한 스파이
암호명 흑금성 실화영화
보통 첩보물이라고 하면 어디에 몰래 숨어 들어가 주인공 버프로 100명이 총을 쏴도 치명상을 입지 않는 무적으로 많이 묘사가 되곤 하는데, 이번 영화 공작의 경우 총성 없이 쫄깃함을 선사하고 있어요. 이 영화의 경우 북으로 간 남한 스파이 흑금성을 실화를 담고 있어서 더욱더 쫄깃하고 몰입하며 볼 수 있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럼 영화 공작 리뷰 시작해 보겠습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첩보, 스릴러, 시대극
감독 : 윤종빈
각본 : 권성휘
출연진 :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개봉일 : 2018년 8월 8일
평점 : 7.86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웨이브, 왓챠
기획 의도
1993년,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된다.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서 스카우트된 박석영(황정민)은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안기부 해외 실장 최학성(조진웅)과 대통령 외에는 가족조차도 그의 실체를 모르는 가운데 대북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 주재 북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한 흑금성.
조국을 위해 굳은 신념으로 모든 것을 걸고 공작을 수행했던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강등에 휩싸이는데...
여담
영화 공작은 첩보물에 흔히 사용되는 총격 신이 없음에도, 연출과 디테일 덕분에 완성도가 매우 높아 몰입하며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공작은 실제 흑금성을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내용의 절반 이상은 사실이라고 해서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공작의 결말을 살펴보자면
안기부에서는 박석영의 꼬리를 자르기 위해 언론사에 흑금성의 정체를 폭로하게 되면서 위기에 놓은 박성영은
호연지기를 맺은 리명훈 덕분에 박석영을 살려주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박성영은 납북 합작 광고를 통해 리명훈과 재회하게 되며 예전에 서로에게 선물로 줬던 시계와 넥타이핀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인사를 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쫄깃함을 선사해 줬는데, 이 장면들이 대부분 실제라고 생각이 되니 이 당시 흑금성은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공작을 펼쳤을지 상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한줄평 : 총성 없는 쫄깃한 첩보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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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을 찾아서(2007)> 리뷰
얼마 전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의 <행복을 찾아서(2007)>를 감상했다. 현재는 사업가이자 연설가로 부유한 삶을 누리는 크리스 가드너의 삶의 한 부분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일까. <행복을 찾아서>는 러닝 타임의 대부분을 주인공의 고달픈 시절에 집중한 후, 영화 말미에 이르러 간신히 행복한 마무리를 보여준다. 이렇듯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놓친 적 없는 이의 이야기는 욥기에서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인류에게 오래되고 익숙한 플롯이다. 필립 모슬리의 삶을 기반으로 삼았다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나 존 카니 감독 본인의 이야기가 기본 뼈대였다는 <싱 스트리트(2016)> 등을 비롯한 영상 매체와 다양한 문학은 물론, 신문 기사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전형적이라 해도 뻔하진 않고, 감동과 교훈을 한 번에 선물하는 소위 ‘안전한’ 서사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행복을 찾아서>를 가족과 함께 봐도 좋은 영화로 추천하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리뷰를 남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굳이 사회 고발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한 개인을 영광스럽게 그려내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할지라도, 이따금, 어떤 예술이 세상의 허점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내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찾아서>를 보는 동안엔 여러 책이 머리를 스쳤다. 예컨대 대런 맥가비의 『가난 사파리』, 스테퍼니 랜드의 『조용한 희망』, 조문영의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내게 누구나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장밋빛 아메리칸드림 홍보영화로 다가오지 않았다.
간단히 <행복을 찾아서>의 시놉시스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는 구식 스캐너를 파는 세일즈맨이다. 당장 매일의 생계가 걱정되는 상황이지만 불안이라는 파도를 가족과 함께 견뎌왔다. 그런데 세금, 집세, 어린 아들 크리스토퍼 가드너(제이든 스미스)의 어린이집 비용을 부담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순간 아내 린다(탠디 뉴튼)는 떠나겠다고 한다. 아들을 임신한 순간부터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자신했던 크리스의 말이 오래도록 실현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그의 얼굴은 참담하리만큼 무표정하다. 이렇게 아내와 헤어진 크리스 가드너는 딘 위터 레이놀즈의 주식 중개인 인턴십 프로그램을 택한다. 우연히 추천받은 이 프로그램은 6개월 동안 지속되지만, 합격률은 단 5%에 불과하고, 심지어 그 동안 봉급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린다는 그에게 묻는다. 그건 후퇴 아니야?
우리는 크리스 가드너가 결국 모든 기회를 쟁취하고 백만장자가 되었음을 알기에 린다를 향해 조금만 더 남편을 믿어주었으면 좋았으리라 말하기 쉽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당신이 린다의 상황이었더라면 어땠을까? 당장 생존의 위협이 다가왔다면 합리적인 사람들은 대개 결과를 보장받을 수 없는 꿈을 추구하는 대신, 매일의 삶을 연장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린다가 아들 크리스토퍼를 데리고 뉴욕으로 떠나 가족의 식당 일을 도우려 했듯.
그러나 크리스는 이 미치도록 적은 확률의 ‘가능성’을 선택했다. 이것이야말로 그를 타인과 다르게 만든 지점이고,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개인을 저토록 궁지에 내모는 사회는 얼마나 취약하고 몰인정한가?
“결과적으로” 크리스 가드너는 노력 끝에 자수성가에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지만, 만일 그가 인턴직 기회를 몰랐더라면? 도둑맞은 스캐너를 찾지 못했거나, 교통사고를 더욱 크게 당했더라면 어땠을까? 대런 맥가비는 자신의 책 『가난 사파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가난은 일자리 부족도 문제지만,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면서 실수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게 문제이기도 하다.” 그의 말은 영화 곳곳에서 증명된다. 크리스 가드너는 끊임없이, 쉼 없이 달려야 한다. 페인트칠하다 경찰서에서 밤을 보내고 달려가 면접을 보는 그의 모습, 부유한 이들 앞에서 자신의 서러운 상황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장면, 당장 모텔을 전전할 돈조차 부족해 아들의 손을 잡고 교회의 자선사업에 의지하고 발을 구르거나 전철역의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던 삶의 편린은 너무도 절박하다. 일련의 상황과 조건이 크리스의 열정에 기름을 부었을 수 있겠지만, 이렇듯 성공하는 사람이 있으니 희박하기 짝이 없는 가능성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보편적 대중에게 설파하는 건 지나치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대 사회는 단순히 한 개인의 열정과 노력, 희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더욱 많다.
심지어 영화의 제목의 유래가 되었고, 크리스가 언급했던 문장조차 그다지 찬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토머스 재퍼슨이 미국의 헌법에 명시했다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라는 구절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혁명론』을 통해 이렇게 주장한다. 재퍼슨이 뜻한 바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적 차원의 행복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공적 행복이었다고. 실제로 재퍼슨이 어떤 생각을 하며 해당 문구를 헌법에 넣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간단히 미국이 영국 왕정의 핍박을 피해 온 이들이 세운 국가였다는 점, 당시 미국이 민주주의를 최초로 제도화한 근대적 국가인지라 많은 용어가 보편적이지 않았으리라는 점만이라도 고려한다면 아렌트의 주장은 퍽 설득력 있게 들린다. 진실로 재퍼슨이 헌법에 급작스레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기까지 한 ‘행복의 추구’를 포함한 이유가 개인의 사적 행복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삶의 설움을 떨치기 위해 개인적으로 발버둥 친 크리스의 노력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허해지기까지 한다. 그가 가진 불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지만, 한 편으로는 그저 약간의 행운이 부족해 제2, 제3의 크리스 가드너가 되지 못했을 이들이 틀림없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일방적으로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일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저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의 신념처럼,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산 사람을 해치지 않을 방어 체제는 언제고 필요하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필요하다면 인간의 기본 권리와 개인의 삶이 소외되지 않기를 고민했던 헤겔의 법철학을 가져와도 좋겠다. 현대에 오며 낡아버린 철학일지라도 그가 했던 고민의 뿌리는 작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의 생존조차 살얼음판인 이에게 “행복은 환경을 비롯한 외부적 요소와 무관하며, 개인의 힘만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공허하다 못해 잔인한데다가, 더 나은 사회를 고민할 수 없게 만들지 않는가.
잠시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의 내용을 인용해본다.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더니,
한 친구가 이런 내용으로 답글을 달았어요.
"선생님 이야기처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바꿔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바꾸려고 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걸 바꿀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꼭 높은 사람이 되어야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두 명의 예외적인 성취를 칭송하고 지금의 시스템에 만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우리에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일인분의 행복을 위해선 당신과 세상이 필요하므로 이것은 나를 위한 일이자 당신을 위한 일이며 사회를 향한 발돋움이다.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는 세상, 개인의 능력에 맞는 사다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점차 세계가 어려워진다는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요즈음이지만, 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민사회에 대해 낙관을 가져본다.
* 참고 문헌
조문영.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김누리 .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대런 맥가비. (김영선 옮김) 『가난 사파리』
소병일.(2018).헤겔의 행복한 인간.철학사상,(68),129-153.
이재정. (2015). 행복의 공공성: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철학연구, 133, 263-282
정원규. (2020). 아렌트 공적 행복 개념의 발전적 재구성을 위한 보충적 논제들. 사회와 철학, 40, 4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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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집 토토로>, 도덕적 이상에 대한 욕망
<이웃집 토토로>, 도덕적 이상에 대한 욕망
<이웃집 토토로>의 시작은 이상하게 불안하다.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는 사츠키 가족의 트럭은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이동을 편히 받아들이는 인간의 시지각적 특성을 고스란히 배반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캐러멜을 나눠먹는 화목한 가족처럼 보이는 그들에게 하나의 부재가 제시된다. 이 트럭엔 엄마가 없다. 그들의 엄마는 결핵에 걸려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런 엄마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이들 가족이 단체로 자전거를 탈 때에도 동선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불안감 조성은 후반부 사츠키와 메이가 엄마에게 큰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전전긍긍하는 두려움의 심리를 탁월하게 증폭시킨다.
하지만 관객을 상대로 한 형식적 불안과는 달리 작중 인물들은 이러한 불안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천진난만한 자매 사츠키와 메이는 새 집을 탐방하며 ‘마쿠로 쿠로스케’라 불리는 검댕 벌레를 목격하지만 전혀 겁먹지 않는다. 이때 그들의 아빠 쿠사카베는 “밝은 데서 갑자기 어두운 곳에 가면 마쿠로 쿠로스케가 보이는 거야.”라며 출몰 원인을 진단해주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말한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의미가 단순한 광량의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쿠로 쿠로스케는 이후 창문이 활짝 열린 2층 방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이때 밝은 곳과 어두운 곳에 함유된 의미는 단순한 광량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의 물질적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사 온 시골집은 어두운 곳, 그전에 머물던 도시의 집은 밝은 곳으로 도식화된다. 그리고 마루코 쿠로스케는 물질적 감퇴의 징표이자 그 음울한 기운을 담은 불안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위에도 언급했듯 이러한 도식이 사츠키와 메이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썩은 나무도 웃음의 대상이 되고, 청소와 빨래도 즐거운 놀이가 되며, 시골집은 어두운 곳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의 대상처럼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메이는 마쿠로 쿠로스케를 게임하듯 잡은 다음 언니에게 자랑하듯 뛰어간다. 이후, 그녀는 마쿠로 쿠로스케가 곧 사라질 거란 말에 “재미없어!”, “난 무섭지 않아.”라고 외치며 섭섭함까지 내비친다. 그렇다면 마쿠로 쿠로스케의 출몰 동기는 아이들의 눈높이가 아니라 쿠사카베 같은 어른의 사고에 맞춰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아내의 간병과 건강을 위해 도시에서 시골로 왔다는 사실을 이내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이전이 어른의 세계에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른에게는 부정적인 일이 아이들에게는 새로움이라는 긍정적 결과로 작용하는 아이러니. <이웃집 토토로>는 어른과 아이의 표면적인 충돌은 전무함에도 그들의 정신과 내면의 층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충돌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어른과 아이의 충돌 세계를 그리는 여타 영화들과 달리 쿠사카베는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의 충돌을 대중적인 화법으로 탁월하게 그렸던 스필버그와는 정반대의 노선인 셈이다. <미지와의 조우>, <E.T>, <에이아이>와 달리 이 영화에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물리적 충돌뿐 아니라 정신적 긴장 관계의 시각적 표현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사회나 환경과의 갈등도 전혀 없다. 그렇기에 <이웃집 토토로>의 서사는 지나칠 정도로 평평하고 평화롭다. 만일 당신이 프로듀서라면 질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 이야기가 가능한가. 어떻게 90분 남짓의 상업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수 있는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야기를 성립할 최소한의 수수께끼를 제시한다. 다름 아닌 ‘토토로’라는 미지의 생명체. 그 친근하면서 동시에 기이한 존재를 향해 집중되는 단일한 미스터리. 그렇다면 토토로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존재는 왜 중요하게 다뤄지는가, 질문해 봐야 할 것이다.
토토로의 정체와 존재론
이사를 온 날 밤, 사츠키 가족이 다함께 목욕을 즐길 때 목욕탕 바깥에서는 불안을 상징하던 검댕 벌레가 비상하여 녹나무의 우듬지를 향해 올라간다. 마치 <모노노케 히메>에서 숲의 정령 ‘고다마’가 어느 나무를 향해 줄지어 걸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주인공 아시타카는 그 나무를 보며 “너희 엄마냐?”라고 묻고, 고다마는 마치 그렇다는 듯 딸깍거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를 <이웃집 토토로>에 대입해 보면, 숲의 정령 토토로가 살고 있는 녹나무는 사실상 누군가의 엄마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누구의 엄마인가. 메이가 작은 크기의 토토로를 따라가다 녹나무의 구멍에 빠져 얼마간 굴러 떨어지는 장면에서, 그 긴 통로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의 자궁처럼 형상화되어 있다. 그 자궁에서 나온 인물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메이. 그렇다면 녹나무의 자식은 사츠키와 메이인 셈이며, 역으로 녹나무는 그들의 엄마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사는 토토로는 누구인가. 사츠키와 메이의 엄마인 녹나무를 지키고, 그 안에서 포근히 쉬는 것을 즐기는 자. 즉각 떠오르는 이름은 너무 당연히 쿠사카베다. 숲의 정령 토토로가 숲을 지키며 그곳에서 쉬는 것처럼 쿠사카베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간병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녀의 쾌유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자이다.
둘의 연결성은 위에 서술한 바 있는 목욕탕 장면에서 보다 명료하게 증명된다. 이 장면에서 쿠사카베는 거센 바람에 집이 흔들려 사츠키와 메이가 불안에 빠지자 돌연 악당 고릴라처럼 “하하하!” 웃더니 보디빌더처럼 상체를 부풀리고 이내 욕조의 물을 내리친다. 순식간에 바닥은 물바다가 되고 물방울은 사방으로 튀어 마치 비가 내리는 듯 보인다. 이는 중반부 비 내리는 버스 정류장 장면과 연계된다. 억센 비가 쏟아지자 사츠키와 메이는 우산을 놓고 간 아빠를 마중 나간다. 하지만 아빠를 실은 버스는 한동안 도착하지 않고 메이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그러던 어느 순간, 고요히 빗소리로 가득했던 버스 정류장에 발소리가 들리고 이상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토토로의 등장. 사츠키는 쿠사카베에게 전달하기 위해 가져간 여분의 우산을 토토로에게 씌어준다(토토로는 이 우산을 돌려주지 않고 자신의 것인 양 가져간다). 우산을 매개로 쿠사카베와 토토로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후,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재미를 느낀 토토로는 목욕탕에서 쿠사카베가 그랬던 것처럼 큰소리를 내며 상체를 부풀려 점프를 한다. 일순 잎사귀에 맺힌 빗물이 소나기 쏟아지듯 떨어진다. 이윽고 토토로는 고양이 버스를 타고 퇴장하고, 곧이어 일반 버스를 타고 쿠사카베가 도착한다. 미야자키는 지금 명백히 둘을 연결시키고 있다.
토토로와 아빠, 녹나무와 엄마라는 도식은 미야자키가 즐겨 활용하는, 자연과 인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애니미즘적 믿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에 머물지만 그것을 떠나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영혼의 실체. 토토로는 아빠의 신체에서 빠져나온 영적 존재이고, 녹나무는 엄마의 신체에서 빠져나온 영적 존재이다. 그들이 담당하는 역할은 일종의 돌봄 서비스다. 토토로는 어린 사츠키와 메이 옆에 보호자가 부재할 때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를 보호하려는 부모의 본성이 함축된 비인간의 모습은 이미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죽은 부모를 대신하여 그들의 딸 시타를 지키는 거대 경비 병정으로 구체화된 적 있지만, <이웃집 토토로>는 죽은 신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체에서 영혼을 분리시킨다. 아직 현실 세계에서 버젓이 살고 있는 실존 인물의 영혼을 일종의 대리자로 소환하는 것이다. 다른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동일한 주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사츠키와 메이가 토토로를 볼 수 있는 순간은 위에도 잠시 언급했듯 쿠사카베가 직무나 간병 등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을 때다. 일에 몰두하다 어느새 영혼이 사라지고, 시간 개념이 없어져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훌쩍 시간을 점프해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었을 것이다. 노동의 순간은 결국 사적인 시간의 부재를 뜻하고, 이는 아이를 보호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병실에 있는 엄마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치료와 회복이라는 노동을 하고 있다). 미야자키가 애니미즘을 필요로 한 건 부모 없이 남겨진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따뜻한 가족주의의 발현을 위해서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강의 신 ‘하쿠’는 신발을 주우려다 물에 빠지게 된 어린 소녀 치히로를 구해준다.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강의 신체에 빠져버린 소녀를 강의 영혼이 구해주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애니미즘적 관점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나우시카가 분노한 오무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뒤 부활하는 장면을 나우시카의 신체와 영혼의 분리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토토로에게 나무 열매를 선물 받은 사츠키와 메이는 엄마에게 마당 정원에 씨앗을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아 낙담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흐뭇하게 읽는 엄마의 얼굴이 드러난 다음 장면에서 싹이 나기 바라는 사츠키와 메이의 간절한 소망은 곧바로 실현된다. 토토로 가족이 의식을 치르고, 사츠키와 메이가 이에 동참하면 나무는 어느새 거대하게 자라난다. 이후, 토토로는 그들을 팽이에 태워 창공을 날아오른다. 이때 “우리가 바람이 된 거야.”라는 사츠키의 대사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자연을 파괴한 대가로 폐허가 될 위기에 처한 제국의 시민들과 나우시카가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바라던 반성적 태도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인간과 비인간, 인간과 자연의 동화를 황홀하게 각인시킨다. 나무초리에 앉은 사츠키와 메이는 그렇게 아빠와 엄마가 분한 영혼의 대리자들 곁에서 극진히 보살핌 받는다.
토토로는 실존하는가
꿈에서 깨어난 사츠키와 메이는 토토로와 함께 성장시킨 나무가 사라졌음을 확인한다. 혹자는 이 장면을 놓고 어쩌면 토토로를 그저 꿈의 형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메이와 토토로의 첫 만남 시퀀스는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맺음되고, 버스 정류장에서의 만남은 그녀가 잠든 이후에 이뤄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초월적이고 허황된 꿈의 잔영이자 환상의 조각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는 토토로가 현실의 땅 위에 실존하는 존재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메이는 엄마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그녀의 병원을 찾아 헤맨다. 사츠키는 이웃 주민들과 함께 길 잃은 메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끝내 그녀를 찾지 못하자, 사츠키는 토토로에게 가 메이를 찾아달라며 애원한다. 이 장면에는 트릭이 없다. 꿈이거나 환상일 가능성이 배제된, 그야말로 현실의 장면이다. 그렇다면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토토로는 어떻게 현실의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여기엔 두 가지 가설이 따른다. 하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의 결실이 토토로를 소환해 낸 것이라는 가설. 다른 하나는 초월적 존재가 실존하기를 바라는 미야자키의 소망 혹은 정말 그렇다고 여기는 강력한 믿음의 결과라는 가설(“이 신기한 생명체는 이제 더 이상 일본에 살지 않습니다. 아마도.”라고 적힌 <이웃집 토토로>의 포스터 문구를 보고 미야자키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 신기한 생명체는 여전히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라고 바꾸라며 소리친 적 있다). 전자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어떤 특권적인 세계가 있으리라는 동심의 판타지를 품게 하고, 후자는 현실 세계에 긍정적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이상적 낙관을 상상해 보게 만든다.
그러나 전자의 가설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은 토토로의 존재를 믿는 자가 사츠키와 메이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쿠사카베는 토토로를 만났다고 하소연하는 메이에게 “거짓말이라고 생각 안 한단다. 숲의 주인을 만났나 보다. 운이 좋은 거야. 근데 늘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란다.”라며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공표한다. 그런데도 그는 단 한 차례도 초월적 존재와 조우한 적이 없다. 사츠키, 메이와 쿠사카베 사이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 아이와 어른이라는 나이의 차이뿐이다. 그렇다면 이 가설에는 초월적 존재와의 만남이 어린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이 첨언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두 가지 가설을 종합해보면, 미야자키는 어린 아이들만을 위한 초월적 존재가 실존하기를 바라거나, 정말 실존한다고 믿고 있다는 말이 된다.
플래시백의 부재
미야자키 하야오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간과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플래시백의 잦은 사용이다. <이웃집 토토로>는 그의 이전 작품들,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와 다르게 플래시백이 없는 최초의 영화다. 플래시백은 그의 세계에서 이후에도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주제 의식과 서사에 가장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그가 플래시백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그의 동경이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어린 시절과 그때 비롯된 모험심과 낭만. 그는 어린 시절의 한 시간이 어른의 십 년보다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 적 있다. 그런 연유로 그의 플래시백은 한 번도 긴 호흡으로 이어진 적이 없다. 파편적인 작은 기억. 하지만 그 작은 파편 하나가 어른의 십 년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진다. 미야자키 세계에서 그 작은 기억의 파편은 주제의 핵심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단초가 된다. 그런데 그 핵심적인 플래시백이 <이웃집 토토로>에는 없다.
그 이유는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 자체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의 플래시백이기 때문이다. 그는 앞선 세 작품에서 동경의 대상으로서 유럽을 배경 삼았던 것과 달리 1950년대 본인의 어린 시절, 심지어 자신이 살았던 실제 공간을 토대로 하여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그에게 그 자체로 동경의 대상이자 그가 평생 구현하고자 했던 유토피아의 가장 현실 가능성 높은 모델이다. 도덕적인 아이들과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영혼의 보호자들, 그리고 이타적인 이웃 주민들이 만들어 내는 협력 공동체. 더불어 이를 감싸는 포근하고 정겨운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 이 영화의 감동은 이러한 유토피아의 구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감동의 이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웃집 토토로>의 감동은 유토피아와 같은 목가적 공동체의 일관된 도덕성에 있다. 이 세계에서는 일종의 안타고니스트로 기능했던, 사츠키와 메이 자매가 겪는 엄마의 부재와 그로 인한 불안을 전부 도덕적인 주변 인물들이 해소시켜 준다. 위에서 언급했듯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런 세계가 있다고 진짜 믿는 것 같다. 단순한 소망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실재하는 세계. 그의 오랜 파트너이자 스튜디오 지브리의 메인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가 사츠키 같은 착한 아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하자 미야자키가 화를 내며 한 대답 “있어, 그게 나란 말이야!”는 그런 그의 믿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는 스쳐 지나가는 인물, 배경, 동물들까지 모두 올바르고 이상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엄마의 병원을 찾아 나선 메이가 어느 골목에서 염소를 만나는 장면이다. 엄마에게 선물할 옥수수를 염소로부터 지켜내는 메이의 결연한 모습은 그 자체로 사랑스럽지만 우리는 느닷없이 튀어나온 염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염소를 언젠가 본 적 있다. 다름 아니라 미야자키의 극장 애니메이션 데뷔작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에서 보았다. 소녀이자 공주인 후지코의 반지를 빼앗아 보물을 손에 넣으려는 탐욕스런 백작은 마침내 그녀의 반지를 압수하여 자신의 반지와 그녀의 반지를, 시계탑에 양각되어 있는 염소 조각의 두 눈에 꽂는다. 보물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던 백작은, 그러나 한곳으로 모이는 시침과 초침에 끼어 압사 당한다. 이내 시계탑이 무너지고 수문이 열리면서 성이 호수의 물로 채워진다. 이로써 호수 밑에 가라앉아 있던 고대 로마 도시의 유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기의 괴도 ‘루팡’은 아름다운 로마의 유적들을 가리켜 “모든 인류를 위한 진정한 보물이네. 내 주머니에 넣기엔 너무 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염소는 탐욕의 제국을 멸망시키고 정화의 물을 뿌리게 함으로써 전 인류에게 회복의 희망을 전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염소가 뜬금없이 메이 앞에 등장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엄마의 부재 속에 그녀의 회복을 염원하는 한 어린 소녀의 마음을 이상한 방식으로 위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에서 염소는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의 장면은 메이라는 하나의 인물을 넘어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현실의 모든 아이들에게 보내는 미야자키의 따스한 포옹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문득 의심이 든다. 이 영화의 감동이 정말 작중의 도덕적인 인물들과 미야자키의 선한 믿음에서만 기인하는 걸까. <이웃집 토토로>가 감동적인 가장 큰 이유는 도덕적인 인물들의 협력과 부모의 부재를 극복해 나가는 어린 아이들의 올곧은 간절함이 우리의 욕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이상적인 공동체 속에서 도덕적인 인간들과 협력하며 살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에. <이웃집 토토로>의 탁월함은 사회의 무한 경쟁과 자본의 억압 속에 잠시 잊고 살았던 ‘도덕적 올바름’에 대한 욕망과 그것의 가치를 상기시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우리의 도덕적 이상에 대한 욕망을 찍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위에 언급한 미야자키의 믿음과 우리의 욕망은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서사를 추동하는 원동력은 촘촘히 설계된 영화의 플롯이 아니라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모두 생채기 하나 없이 이상적인 결말을 맞이했으면 하는 우리의 선한 욕망이다. 그 욕망을 투영하며 영화를 따라간 끝에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엔딩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도덕적 이상에 대한 욕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싱그러운 음악이 우릴 축복해준다. 마치 우리에게 앞으로도 계속 그 욕망을 실현시켜주기를 당부하는 것 같이. 그런 탓에 잠시 잊고 있던 도덕적 인간에 대한 욕망이 사츠키와 메이가 심었던 나무 열매의 씨앗처럼 땅을 뚫고 무럭무럭 피어날 것만 같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 적어도 선해지고 싶은 욕망이 우리 심연에 잠재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진다. 과연 한 편의 영화가 이 이상의 가치를 넘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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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 버스터즈> 1984년도 작과 2015년도 작 비교하기
1984년도에 나온 아이번 라이트만 감독의 <고스트 버스터즈>와 그를 리메이크한 작품인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 버스터즈>의 가장 큰 차이점인 주인공들의 성별반전이다. 원작에서 주요한 임무를 맡은 이들이 모두 남성이었던 반면에 리메이크 작에선 그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다. 리메이크 작의 감독인 폴 페이그는 자신이 만든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여성들이 중심에 있는 영화를 제작해왔다.
1984년도에 나온 이 영화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뉴욕 한복판에서 귀신을 퇴치하는 과학자들’이라는 아이디어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고스트’들의 나름 귀엽게 캐릭터화된 모습일 것이다. 또한 결말에 등장하는 생각치도 못했던 악당의 등장은 신선하다. 그렇기에 생소한 이야기와 만화적인 캐릭터의 영화적 구현은 관객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력하고 있는 또 다른 요소인 코미디의 측면에서는 그 명성에 비해 이렇다 할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코미디가 가진 시대적 한계와 더불어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4명 중 중심을 맡고 있는 벤크멘(빌 머레이)은 첫 장면부터 나타내길, 자신의 직무보단 여성에게 더 관심있는 전형적 ‘카사노바’적 캐릭터이다. 따라 그가 지닌 여성편력은 그대로 그의 농담에 적용되고 그가 내뱉는 농담들은 즐거움보단 불쾌함을 선사한다. 또한 다른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개성있는 캐릭터의 모습보다는 ‘귀신을 퇴치하는 과학자들’이라는 타이틀에 소모되는 존재들에 불과하다. 딱히 호감이 가거나 눈길을 끄는 캐릭터가 없는 상황에서 맞이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적어도 그 주인공 4명이 느끼는 위기감을 한 관객으로서 함께 느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원작에서 아쉬웠던 점은 악마 ‘고저’에 의해 악령에 씌었던 다나 바렛(시고니 위버)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4명의 주인공이 모두 남자인 이 영화에서 비중있는 캐릭터를 맡은 여성은 다나가 유일하다. 영화 속 여성들은 거의 벤크맨에게 관심있는 여성과 관심없는 여성으로 나뉜다. 다나는 벤크멘이 관심있는 여성에 속했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비중있는 여성마저 여럿 영화에서 반복했던 단지 ‘섹슈얼한 이미지’의 여성으로 소비됨을 문지기가 된 다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다나는 문지기가 된 후 악마의 형상을 하고 공포심을 자아내기 보다는 남성에게 ‘매혹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악마임에도 불구하고 벤크멘에게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데 치중한다. 다나의 역할은 그에 그친다. (극 중 열쇠지기가 되는 루이스(릭 머래니스)와 비교해본다면 ‘굳이, 왜’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습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인 <에일리언(1979)>에서 강인함과 냉철함으로 무장하여 남근으로부터 파생되는 권력을 상징하는 에일리언과 맞서 싸우는 시고니 위버의 모습을 아는 관객에게 (별개의 작품이지만) 되려 당혹스러움을 선사한다.
리메이크작인 <고스트 버스터즈(2016)>는 원작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그대로 전복하려는 듯이 주연들을 모두 여성을 바꾸면서 큰 변화를 주었다. 원작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지만 분명한 개별영화로서 원작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주인공마다의 캐릭터가 확실 해졌고 그로 인해 그들이 주고받는 합에서 오는 개그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유령의 모습들 또한 시대의 발전으로 더욱 화려해지고 볼만해졌다. 무엇보다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점은 영화에서 줄 곧 여성의 역할이라 여겨졌던 ‘비서’의 자리에 남성(크리스 헴스워스)을 배치했으며 이를 계속 활용하여 해학의 요소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숱한 남성 중심의 코미디 영화들은 여성을 ‘멍청한 금발미녀’의 스테레오타입에 가두고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게 했으며 능력보다는 외적인 모습을 강조함으로 여성을 눈요기감으로 전락시켰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자리에 최근 할리우드에서 남성미로 대표되는 배우를 대입시켜 영화사의 전적들을 비꼬는 장치로 영화에 활용한다. 이 탁월한 미러링은 영화를 보는 내내 통쾌함으로 이어진다.
원작의 팬층이 두터웠던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사실은 영화 속 캐릭터인 고스트 버스터즈를 흉내내고 꿈꿀 수 있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남성으로 한정됐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만난 영화 속 캐릭터를 내면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이는 원작이 가진 분명한 한계점이다. 리메이크 작은 단순히 남성판이 있기에 만들어진 여성판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닌 듯하다. 자신만의 개성으로 무장한 이 히어로들은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여되었던 클리셰들을 반복하지 않는다.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고 ‘엄마’나 ‘아내’의 역할에 구애받지 않은 채 오롯이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실행한다. 외적인 모습 또한 많은 대중들의 머리에 각인된 ‘여성미’ 따위를 충족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보여 진다. 이는 여성에게 더 자유롭고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내면화할 기회를 준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부당하게 그려졌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자라나기도 이전인 무려 5년 전에 이 영화가 코미디 장르를 등에 업고 관객에게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는 것은 놀라웠다. 이는 영화에 대한 완성도와는 별개로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이 영화를 ‘즐기고’ 싶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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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 속 카나리아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기 오염으로 황폐해진 2071년 서울. 사람들은 네 구역에 나뉘어 산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최상류층 거주 구역인 코어 구역. 중상류층 거주 구역인 특별구역. 산소를 공급받아 살아가는 일반구역. 아무런 지원이 없는 난민구역. 산소를 독점한 천명 그룹과 산소를 전달하는 택배 기사 없이 이 세계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혁명은 있는 법. 난민 출신 택배기사 '5-8'(김우빈)이 속한 지하 조직 '블랙 나이트'는 천명 그룹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천명그룹 대표 '류석'(송승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5-8은 자기 진의를 의심하는 군인 '정설아'(이솜)와 택배기사를 꿈꾸는 난민 '사월'(강유석)을 이용해 류석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택배기사> 선배의 전철을 답습하다
한국 영화 시장은 SF 불모지다. 한국 SF 영화는 특히 더 성공하기 어렵다. 팬데믹 이후로 기간을 한정해 보자. 그나마 넷플릭스 <승리호>가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정이>나 티빙에서 공개된 <서복>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도 실패를 맛봤다.
의아하다. 한국 SF 영화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 걸까? 이유야 많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국 영화는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소재 자체는 흥미롭다. 달 탐사, 안드로이드, 복제 인간, 외계인, 시간 여행... 할리우드도 오랜 기간 사랑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소재나 설정은 배경에 불과하다. 판은 잘 깔아놓지만, 결국 다른 장르로 돌아선다. <고요의 바다>, <정이>, <서복>의 끝은 모두 신파다. <외계+인 1부>도 SF라고 하지만 <전우치> 속편처럼 보인다. 굳이 SF 영화를 표방하지 않아도 스토리텔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도 마찬가지다. 한국 SF 영화의 고질병을 답습했다. 소재는 신선하다. 택배기사가 디스토피아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영웅이라는 발상. 대기 오염이 극심한 지구에서 산소를 확보한 기업이 권력을 잡는다는 설정. 그럴듯하다. 하지만 다른 SF 영화와 비교해 보면 <택배기사>는 실패에 가깝다. 소재를 활용하는 디테일, 소재와 주제 의식의 결합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 클리셰의 향연도 참신한 소재를 끝내 가리고 만다.
디테일: <매드맥스> 대 <택배기사>
<택배기사>와 비교하기 좋은 영화로는 우선 톰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꼽을 수 있다. 소재를 활용하는 디테일의 문제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 두 영화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좌지우지하는 '절대 반지'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영화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따라서 시각매체인 영화는 이 절대 반지의 힘을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매드맥스>는 과제를 훌륭히 수행했다. 뜨거운 해와 녹초 하나 없는 메마른 사막. 배경만 봐도 목이 탄다. 거칠게 울리는 배기음은 그 자체로 갈증을 일으킨다.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임모탄 조가 물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순간 엄청난 양의 물이 폭포처럼 떨어진다. 사람들은 폭포 밑에서 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담기 위해 발악한다. 그 순간 이 디스토피아 사회의 계급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관객은 언제 어디서나 물을 절박하게 갈구하는 맥스에게 이입하기 쉽다.
<택배기사>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배경은 있다. 한국의 봄을 닮은 지저분한 대기와 메마른 땅은 산소가 중요한 이유를 알려준다. 그러나 산소의 중요성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직접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몇 분 못 버틴다는 대사는 힘이 없다. 등장인물이 너무나도 쉽게 마스크를 벗다 보니 임팩트가 부족한 까닭이다. 그 결과 산소를 지배하는 천명의 권세도 막연하게 느껴진다. <택배기사> 속 세계에 빠져들기 어려운 이유다.
메시지: <설국열차> 대 <택배기사>
<택배기사>는 메시지도 뭉툭하다. <택배기사>의 주제의식은 <설국열차>의 그것과 유사하다. 두 작품 모두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 삼아 체제 유지에 혈안인 기득권층을 비판한다. 자연 재앙이 닥친 가운데 권력층은 물자 배급을 제한한다. 철저히 칸을 나눈다. 단단한 계급 사회를 조직해 사회를 안정시킨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이용하는 비인도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비기득권층은 폭동을 일으키고, 혁명을 시도한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단순히 계급투쟁을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자고 쉽게 말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혁명이 궁극적으로 실패한다는 통찰을 보여줬다. 제 아무리 성공한 혁명이라 해도, 지배계층만 바뀔 뿐 실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혁명을 일으킨 이들도 권력에 취할 테니. 월포드가 커티스에게 자리를 넘겨주듯이. 그러니 이 악순환을 끝낼 방법은 하나다. 남궁민수처럼 아예 기차에서 탈출해야 한다. 따라서 <설국열차>는 불합리한 체제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하자는 외침이었다.
<택배기사>는 <설국열차> 같은 야망도, 통찰도 없다. 비판의 칼날은 충분히 예리하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안일하다. 시리즈 후반부에 천명그룹은 무너진다. 류석은 모든 권력을 잃는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가 힘을 잡는다. 대통령은 새로운 보금자리인 A 구역이 모든 난민에게 열려 있다고 발표한다. 류석은 악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선으로 규정된다. '권력자만 바뀌었을 뿐 체제는 그대로 아닌가' 하는 의심은 이분법적인 구도 사이에 설 수 없다. 산소와 거주 구역이 여전히 권력자의 손아귀에 있는데도. 즉, 5-8의 혁명은 새로운 권력자에게 힘을 몰아줬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풍부한 이야기를 펼칠 만한 설정은 일차원적으로 소비된다. 예를 들어 5-8은 태양을 가린 먼지가 옅어지고 햇빛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기차 밖 얼음이 녹고 추위가 약해지고 있다는 <설국열차>의 설정과 판박이다. 그런데 함의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언젠가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는 일반론적인 희망을 보여주는 데서 그친다. 반면에 후자는 혁명이 단순히 지배층 타도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핵심적인 설정이다. 기차 밖에서도 살 수 있으니 기차라는 시스템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는 야망이 담겼다.
카나리아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택배기사>는 공허하다. 어두운 배경은 다양한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대기업의 음모와 계급 사회에 대한 경고는 다급하지 않다. 공허함은 클리셰가 채워 넣는다. 대기업 회장과 저항군 리더의 멘토가 막역한 친구, 동료 사이였다는 식의 익숙한 반전이 뒤따른다.
막연하고 평면적이며 예측 가능한 대립 구도 속에서는 캐릭터도 살아남기 어렵다. 카리스마 있는 히어로도, 위협적인 빌런도 없다. 그저 나쁘게 보여야 하니 나쁜 짓만 골라하는 악역을 내세운다. 실제로 류석의 행적은 기업의 수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어리석다. 그는 폭주하다가 알아서 무너지고 혁명은 성공했다고 치켜세운다. 에피소드 6개에 긴장감이 감돌 수도 없고, 결말에 쾌감이 있을 수도 없는 이유다.
더 큰 문제도 보인다. <택배기사>의 실패가 <택배기사>만의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접한 OTT 작품 중 적지 않은 수가 최소한의 개연성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활용하지만, 고민의 흔적이 부족하다. 현실 속 사건, 클리셰, 상징적인 장면을 짜깁기하고 이목을 끌 스타를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우려된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촉발된 한국 콘텐츠의 성장이 양적 성장에서 멈추는 것은 아닐까 싶다. <택배기사>가 카나리아는 아닐까 싶다. K-콘텐츠 시장이 의외로 빨리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노랑새는 아닐까.
Dreadful 끔찍함
K 콘텐츠의 새 미션. 카나리아가 죽기 전에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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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6월 둘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이번 주에는 전체적으로 구름이 껴 흐린 날씨가 지속될 것 같은데요.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전국에 비가 오린다고 하니 다들 우산 챙기세요!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범죄도시2> (-)▶ 4주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범죄도시2>가 이번에 누적 관객 수 1000만을 돌파하였는데요!
코로나 이후 첫 천만 영화이자, 역대 20번째 천만 한국 영화입니다.
주말 동안 (6월 10일~6월 12일) 관객 수 81만 7,03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50만 3,886명을 돌파하였습니다.2. <브로커> (NEW)▶ 첫 개봉과 동시에 2위 자리를 차지한 송강호, 강동원 주연의 영화 <브로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수상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한국영화, 그리고 화려한 라인업 등으로
많은 관객이 관람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말 동안 (6월 10일~6월 12일) 관객 수 51만 5,374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77만 3,36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 줄거리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과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보육원 출신의 ‘동수’(강동원).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그들은 베이비 박스에 놓인 한 아기를 몰래 데려간다.
하지만 이튿날, 생각지 못하게 엄마 ‘소영’(이지은)이 아기 ‘우성’을 찾으러 돌아온다.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안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솔직하게 털어놓는 두 사람.
우성이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아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기가 막히지만
소영은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에 상현, 동수와 함께하기로 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형사 ‘수진’(배두나)과 후배 ‘이형사’(이주영).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고 반 년째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조용히 뒤를 쫓는다.3.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1)▶ <브로커>의 개봉으로 순위가 한 단계 내려가게 되었는데요.
주말 관객 수가 6월 첫째 주와 비교했을 때 3분의 2가 줄어들었습니다.
주말 동안 (6월 10일~6월 12일) 관객 수 31만 6,15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61만 8,86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03회 예측 이벤트는 6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유저분들이 예측해주신 영화 <브로커> 의 6월 10일, 6월 11일, 6월 12일의 관객 수 스코어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브로커>의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47%, 여성 53%로 여성이 더 높은 비율을 가진 걸 알 수 있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20대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30대,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브로커>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3세 이하의 여성과(790,000명)과 10대 후반 남성(800,000명)이었습니다.
또한 <브로커 >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0.5%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브로커>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극장판 포켓몬스터DP: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1)▶ <극장판 포켓몬스터DP: 기라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은 6월 둘째 주에 3위에서 4위로 내려왔는데요.
주말 관객 수가 저번과 비교했을 때 거의 비슷한 수를 보이고 있어, 순위가 떨어지게 된 원인은 <브로커>의 개봉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주말 동안 (6월 10일~6월 12일) 관객 수 12만 1,22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2만 812명을 돌파하였습니다.
5. <그대가 조국> (▼1)▶ <그대가 조국>는 3주째 박스오피스 TOP5 순위 안에 진입해 있는데요.
주말 동안 (6월 10일~6월 12일) 관객 수 1만 2,87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31만 6,00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개봉과 동시에 <Jurassic World Dominion>이 차지했습니다.
6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역시 지난 번 박스오피스 TOP 5 순위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요.
<Jurassic World Dominion>이 1위를 차지하면서 6월 첫째 주 순위에서 모두 한 단계씩 하락했습니다.
주말 동안(6월 10일~6월 12일) <Jurassic World Dominion>의 매출액은 $143,370,000 (한화 약 1,845억)의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6월 10일 ~ 2022년 6월 12일)1.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 1억 4,337만 달러 (누적 1억 4,337만 달러)2. <탑건: 매버릭> 5,000만 달러 (누적 3억 9,334만 달러)3.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488만 달러 (누적 3억 9,780만 달러)4. <밥스버거: 더 무비> 233만 달러 (누적 2,708만 달러)5. <배드 가이즈> 224만 달러 (누적 9,152만 달러)...씨네픽의 6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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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 막시모프가 내 시간을 없애버렸어
그토록 기다리던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팔콘 앤 윈터 솔저>나 <로키>가 한창 방영중일 때 국제적으로 들려오는 평판만 확인할 정도였는데 실제로 볼 수 있게 됐으니 완전히 감개무량이다. 나는 사실 이 <완다비전>이 너무 궁금해서 나무위키로 슬쩍 읽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개봉했던 영화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이나 <블랙 위도우>와는 다르게 인물의 깊은 내면묘사가 이뤄져 알고 봐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아마 직접 보면 알 것이다. 내면묘사가 단순히 인물의 양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꼭 가져야 할 연출 지점과 어우러져 신기했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루는 글로벌 드라마답다.
주연은 두 명이다. 아이언 맨이 만든 똑똑한 AI 비전과 하이드라가 만들어낸 초능력자 완다(스칼렛 위치)다. 이 둘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만든 커플로 깊은 사랑에 빠졌다. 배우 둘이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올슨과 폴 베타니는 MCU의 히어로들 중에서 제일 몰입이 필요한 역할일 텐데 이번에도 무난하게 각자의 롤을 잘 소화해냈다. 나는 초능력자가 된다던가 AI가 된다던가 하는 생각을 단 1분도 해본 적이 없다. 근데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 답게 어떻게든 하는 걸 보면 역시 프로는 다른가보다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또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엘리자베스 올슨 진짜 예쁜 것 같다. 같이 나오는 캣 데닝스도 물론 예쁘다. 근데 엘리자베스 올슨은 고상하게 아름답다. 심지어 연기까지 잘한다.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랑스러움부터 연이은 좌절로 인한 어두운 내면까지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내가 배우면 이렇게 멋있게 연출해놓은 판 안에서 연기할 맛 날 것 같다. 또 폴 베타니 목소리 너무 섹시하다. 얼굴도 잘생겼다. AI 의상에선 몰랐는데 과거 미국에서 유행했던 코디를 입혀놓으니 '와 진짜 멋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무튼 드라마는 배우들의 호연과 깔끔한 색감, 또 과거 미국 드라마들에 대한 오마주까지 아다리가 맞아떨어지는 삼박자 연출로 깔끔하게 잘 뽑혔다. 나는 이 장점들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 드라마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단순히 마블 팬이라서 재미있는 작품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1. MCU 정주행, 필요한가요?
네!!!!!!!!!!!!!!!!!!!!!!!!!!!!!!!!!!!!!!!!!!!!!!!!!!!!!!!!!!!!!!!!!!!!!!!!!!!!!!!!!!!!!!!!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
- 이 이하부터 <어벤저스 : 엔드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 보신 분들, MCU 정주행하고 옵시다 -
2. 앞으로의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작품인가요?
일단 이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할 정도라면 인류 반이 날아갔었다는 극의 설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타노스는 생명체 반을 날리기 위한 준비물을 모두 구하는 데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인피니티 워>에서 그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에서 비전이 갖고 있던 마인드 스톤이 뽑히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가 죽게 된다. 결과적으로 어벤저스는 타노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완다 역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멘토 스티브 로저스와 나타샤 로마노프까지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다. 가족, 친구, 사랑 모든 걸 다 잃은 완다. 그녀에게 기댈 곳이라곤 단 1도 없다. 그런데 드라마 1화부터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비전이 살아서 완다와 함께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아니, 비전 죽은 거 아냐? 와 아니, 갑자기 느닷없이 평범한 시트콤이 되어버린다고? 다. 이 두 가지가 이 드라마의 기본 설정이다. 작품은 이 두 가지의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해주며 왜 주인공 둘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완다에게 비전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이는 곧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로키>와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에서 다룰 '멀티버스' 세계관이 열렸던 개연성을 보여준다. - 아, 이것을 설명해주는 건 스포일러가 아니다. 왜냐면 케빈 파이기가 완다비전이 멀티버스랑 관련 있다고 오피셜을 내렸기 때문이다. - 또한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하는 듯한 암시도 있었으니 MCU의 팬이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셈이다. 아, 포스터에도 나오듯 완다 막시모프라는 인물이 '히어로냐 빌런이냐'의 양자택일 안에서 어떤 선택을 고르는 지도 굉장히 중요하니 새로운 안티 히어로의 등장을 지켜본다는 점에서도 볼 이유가 분명하다. 아, <앤트맨>에서 나왔던 지미 우와 <캡틴 마블>에서의 모니카 램보, <토르 : 천둥의 신>에서의 달시 루이스, <엑스맨>의 피에트로도 나오니 마블의 팬들은 즐겁게 보기 좋을 것 같다.
3. '빌런 혹은 히어로'? 갑자기?
'완다가 빌런이냐 히어로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고?'라고 포스터를 보고 의문점이 들 수 있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아니 한번 히어로면 영원한 히어로지 빌런이 된다고? 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의문점은 내가 지극히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완다비전>까지 오기 전, 그녀의 처지를 살펴보자. 주인공이 사랑했던 인물들이 자기 의사랑 상관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험상 이럴 땐 누군가의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막상 아무도 없으니 그녀가 감당하기엔 슬픔은 너무 컸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그녀의 처지를 복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데 드라마는 그녀의 섬세한 내면묘사를 바탕으로 이 인물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공감하게 만든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로 남을지. 강한 내면을 되찾음으로써 그녀의 자아를 다른 쪽으로 비틀지, 드라마는 철저한 미스터리로 우리들의 시간을 없애버린다. 결국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인물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4. 이야기의 완성도는 어떤가요?
일단 1회독을 끝낸 지금 생각해 보니 딱히 구멍은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색감이 은근히 좋아서 이야기에 몰입하기 좋다. 또 도입 3화까지 살짝 지루한 구석이 있을 것 같긴 하다. 근데 그게 플롯의 누수때문이 아니라 천천히 내용을 만들어 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5번에서도 썼지만 빌런에게 읭? 싶은 구석이 있긴 하다. 근데 보기에 페널티가 있고 이런 건 아니다.
5. 빌런의 묘사는 어떠한가요?
기존에 마블의 빌런들을 돌이켜 봤을 때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의 만다린, <스파이더맨 : 홈커밍>에서의 벌처가 생각난다. 전자는 담당 배우의 엄청난 카리스마가 만든 느낌이 강하고 후자는 생활밀착형 빌런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쉬웠다. 이 <완다비전>에서의 빌런은 이들과 살짝 다른 맥락이다. 이 빌런(들)은 엄브릿지형으로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재수가 없다. 또한 밑도 끝도 없는데 인물의 성격 자체가 그럴 법해서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의 지모 대령의 정확히 반대 기능을 하는 악역인 셈이다. 현실에 저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거나 직장상사거나 후배면 진심으로 싫을 것 같다. 이런 가까이 가기 싫은 캐릭터를 잘 묘사해 나름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6. 다른 히어로의 탄생? 무슨 뜻인가요?
이는 3번의 질문과도 이어진다. 완다는 앞으로 히어로가 될지 빌런이 될지 알 수 없는 캐릭터다. 이 인물이 후의 MCU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가 새로운 히어로의 탄생을 꼼꼼히 지켜보면 알 수 있다. MCU의 방향성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새로운 능력자와 함께 지켜보도록 하자.
7. 고전 미국 시트콤을 오마주 했다던데?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떤 드라마를 본떠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서는 시트콤에 대한 오마주가 이 극에서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무조건. 오마주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작품을 위한 오마주가 된 것이다. 또한 이런 연출 방식이 드라마의 호러, 스릴러 향 첨가에 도움을 준다. 기존에 장르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다른 재미요소가 될 것이다. MCU의 작품이 평단에서 호평받았던 경우가 드문 걸로 아는데 이 작품은 이 지점에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오징어 게임>과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8. 액션 맛집 마블, 이번에도 닉값 하나요?
액션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한 화에만 나오는 정도? 두 주인공 폴 베타니와 엘리자베스 올슨이 워낙 연기를 잘했고 CG도 매끄럽게 잘 뽑아서 극을 이끄는 흡입력이 좋다. 굳이 액션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액션의 퀄리티가 별로냐? 난 좋았다. 등장인물의 특색들을 잘 살렸다.
4.5/5.0
강력추천!
디즈니 플러스를 처음 구독한 분들이라면 부담없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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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지내던 동석이형을 건드린 깡패 ㅋㅋㅋ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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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락 -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코인 대폭락사태,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해당 리뷰영상은 영화 제작 및 배급사 무암을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이며
작품 [폭락]은 1월 15일 개봉합니다! 예매는 아래 사이트를 이용해주세요 :)
“기대에 부응해야지?” 엄마 옥자의 열성과 본인의 타고난 욕심으로 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으로 위장 전입한 도현. 벤츠타고 다니는 부자이면서 장애 혜택을 받아먹던 친구에게 교환학생의 기회마저 뺏기고, 그 친구가 진짜 장애인이 아니었단 걸 알게 된 그 때부터 정부 지원금의 맹점에 눈을 뜬다. 대학교 창업동아리에서 만난 동기 지우와 함께 청년·여성·장애 등의 가산점을 악용해 청년 창업 지원금을 수급하고, “창업 지원금은 나랏돈으로 망해 보라고 주는 눈 먼 돈”임을 간파해 의도적으로 고의부도와 폐업을 전전한다. 투자자 케빈에게 억대 후원을 받는 암호화폐 벤처를 창업한 도현은 야망에 이끌려 ‘MOMMY’ 코인을 개발해 역대 최고치의 실적을 내지만, 알고리즘과 불완전 이자 수익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모니터가 들어오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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