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11-15 16:57:27
나 역시 자인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가버나움>
아이의 손에 칼을 쥐게 한 것은, 그가 피를 보겠다는 선택을 한 것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가버나움> Capernaum, 2018 제작
레바논 외 | 드라마 | 2019.01.24 개봉 | 15세이상관람가 | 126분
감독: 나딘 라바키
나 역시 자인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가버나움>
이 영화는 이오아나 유리카루의 <레모네이드>(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2004), <어느 가족>(2018), 션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는 분명 다르게 다가온다. 나열한 영화 속 주인공들을 모두 만났다 자부해도 <가버나움> 속 자인과의 만남을 ‘익숙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15분의 기립박수’와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지도 모른다. <가버나움>은 어느 리뷰에서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는 작품이다.

‘가버나움’은 성서에 등장하는 도시로, 예수가 축복하는 동시에 인간의 욕심에 의해 처참히 무너져 내릴 거라 예언한 곳이다. 성서에서는 ‘축복’과 ‘멸망’을 함께 품고 있는 마을이지만, 자인이 사는 곳은 오직 ‘멸망’만이 존재한다. 감독의 가버나움은 기적보다, 혼돈에 초점을 맞췄다.
<가버나움>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은 그들에게 지독한 굶주림과 끝없는 노동을 강요한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유일하게 자인의 부모만이 기구한 인생에 절망하기만 한다. 자식들에게 아무런 힘이 없는 이름을 던져주고 거리로 내쫓는다. 우리가 자인에게서 일말의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은 함께 사는 부모가 여전히 젖병을 물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혼돈 속에 갇힌 자인을 복잡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색 바랜 빨간 신발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사하르(여동생)가 생리를 시작하자, 자인은 불안함을 내비친다. 그녀도 떠나간 다른 여동생처럼 남자에게 팔려갈 것이 분명했다. 그 주도권은 자신의 부모가 휘두를 것도 아이는 알고 있었다. 끝내 자인은 여동생을 가게 주인에게 빼앗기고 만다. 지키겠다 맹세한 오빠의 절실함은 부모의 매질로 손쉽게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집을 나와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 자인은 바퀴맨 복장을 한 할아버지를 따라 작은 놀이동산에 내린다.
놀이동산, 그곳은 아이에게 주어진 새로운 세상일까? 페인트가 다 벗겨진 놀이기구를 통해 짐작했겠지만, 역시 아니다. 하지만 자인은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너무나 자신과 똑같은.
아이는 식당에서 일하는 라힐과 그녀의 딸 요나스를 만난다. 요나스를 집에서 돌보는 것으로 자인은 라힐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나무판자들이 간신히 바람을 견디고 있는 판자촌에서 아이는 또다시 동생을 성심성의껏 돌본다. 비극에 비극이 더해지는 순간에도 그들은 내내 웃고 있고, 우린 말 못 할 고통을 느낀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는 너무나 익숙한 하루일 뿐이었고 미소마저 사라지게 할 여유가 없었을 뿐이었다.
가버나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자인만이 아니다. 불법체류자 라힐 역시, 딸과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신분증을 구해야만 한다. 비극 속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생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순식간에 라힐이 경찰에 잡히고, 자인은 요나스와 긴 기다림을 함께 하다 결국 불법 신분증을 만드는 어른에게 속아 요나스를 두고 집으로 향한다. 출생신고서를 가지러 집에 온 그 순간, 사하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불행이 끊임없이 두 사람을 덮쳐오지만, <가버나움>은 이를 너무나 태연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게 자인은 법정에 서서 순순히 자신이 한 충격적인 행동을 읊는다.
여동생의 남편을 칼로 찔렸음을.

절망스럽지만, 자인이 간신히 암흑을 찢고 나와 처음 마신 건 엄마의 모유가 아니라 술이었을 것이고, 처음 눈을 떠 본 것은 밤마다 헐떡이는 부모의 옆모습이었을 것이다. 일찌감치 깨달았겠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열두 살로 추정되는 아이는 부모를 고소하기 전까지 그 권리가 자기에게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부모는 아이의 앙상한 신체를 때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끝내 아이를 자기의 손으로 가버나움에 가둬버린다. 더 충격적인 건, 그들이 끊임없이 가버나움 안에서 새 생명을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자인의 손에 칼을 쥐게 한 건, 가난에 힘입어 현실을 부정하는 법밖에 모르는, 무능력하면서 요란하기만 한 부모의 만행 때문이다. 따라서 자인이 법정에 서서 ‘가난이 아닌 부모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건 당연한 결과다. 모든 걸 통달한 어린아이의 나지막한 선언이 이 작품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도 다니지 못했던 아이가 스스로 삶의 고난과 슬픔을 터득했음에도 가족은 불완전하다 못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았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었던 자인에게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될 수 없었고, 아이는 선택한다. 부모를 버림으로써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기로.
그렇게 밝은 웃음을 지으며 다시 시작한다.
<가버나움>는 감각적인 장면 전환과 역동적인 스토리, 실제 빈민가에서 캐스팅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성된 수작이다. 그 덕에 필자는 쉽게 감동할 수 없었다. 물론 감동과는 아주 먼 이야기지만, 이 작품을 ‘레바논의 고립된 현실에 직격탄을 날리는 영화’라고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신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나 역시 자인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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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름날, 달콤 쌉싸름했던 첫사랑의 추억
최근 주변에서 재밌다는 이야기가 자꾸 들려서 정주행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풋풋한 고등학교 시절의 학원물을 다룬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미스터리로 빠졌고 나중에는 스릴러까지 등장했죠. 무엇보다도 닳고 닳은 ‘타임슬립’이란 소재를 지루하지 않게 전개해나갔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21회차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게 만들었죠. 여기까지 들으신 분이라면 벌써 무슨 작품인지 눈치채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대만드라마 ‘상견니’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수많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배우 허광한 인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국내 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해서 벌써 기대를 모으고 있죠. 영화 ‘여름날 우리’ 입니다.
영화 ‘여름날 우리'에서 (왼쪽부터) 요우 용츠 역을 맡은 장약남과 저우 샤오치 역의 허광한.
그날도 친구들과 싸움을 벌이던 저우 샤오치(허광한 분)는 학교로 걸어 들어오는 한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요. 이름은 요우 용츠(장약남 분). 오늘 전학 온 학생이었죠. 누가 봐도 눈에 띄는 그녀는 전학 옴과 동시에 학교의 많은 남학생에게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저우 샤오치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죠.
저우 샤오치는 학교 수영부였지만 수영 실력이 그렇게 출중하지 않았고 공부와는 더더욱 친하지 않았는데요. 그런 그가 요우 용츠에 소위 말해 꽂히게 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요우 용츠는 매일 싸움만 하는 그가 달갑지 않았는데요. 그런 그녀에게 이제 다신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어느 날 그의 라이벌 중 한명인 수영부 주장이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싸움을 걸어오는데요. 저우 샤오치는 몸싸움 대신 수영 대회에서 이기겠다 큰소리치죠.
여담으로 사실 저우 샤오치 역의 허광한은 실제 ‘물 공포증’이 있다고 하는데요. 수영 선수로 나오는 이 영화 출연 자체가 그에겐 큰 도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가 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허광한 배우도 이 영화를 찍으며 물 공포증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수영선수로 등장하는 저우 샤오치 역의 허광한 배우는 실제 물 공포증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우 샤오치는 밤낮없이 수영 연습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1등은커녕 3등에 머무르게 됩니다. 개인 기록으로는 최고 성적이었지만 그는 크게 실망했죠. 요우 용츠는 그동안 그의 노력을 봐 왔기 때문에 3위도 잘한 거라며 칭찬했고,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그렇게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요우 용츠는 어느 날 밤 전화 한 통 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고 이후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졸업 후 PC방에서 알바하던 중 친구가 찾아와 자신이 지원할 학교의 사진을 보여주는데요. 하늘이 돕기라도 한 걸까요. 사진 속엔 나의 ‘그녀'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죠. 이제 그에게는 인생에서 단 한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녀와 같은 대학에 가 그녀를 만나는 것. 그때부터 집에 틀어박혀 공부하기 시작하는데요. 과연 그는 그녀를 만나 첫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작품은 3년 전 개봉한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영화의 큰 흐름은 ‘너의 결혼식’과 유사하지만 디테일이 조금 다릅니다.
영화 ‘여름날 우리'는 2018년 개봉한 국내 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환승희 역의 박보영과 황우연 역의 김영광.
예를 들면 ‘여름날 우리’의 저우 샤오치는 고등학생일 때부터 수영선수였고 이를 특기로 대학에 들어간 반면 ‘너의 결혼식’의 황우연(김영광 분)은 딱히 특기랄 게 없었습니다. 단지 승희(박보영 분)를 따라 들어간 대학에서 승희의 남자친구가 미식축구 주장이라는 말을 듣고 질투심에 미식축구 시작하게 되죠. 또한 두 사람을 다시 이어준 계기가 된 음식도 ‘너의 결혼식’에서는 떡볶이였던 반면 ‘여름날 우리’에서는 꼬치로 나오는데요. 어쩌면 두 나라의 가장 대중적인 음식을 선택했다 볼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한국인의 정서적인 면에서 ‘여름날 우리'가 ‘너의 결혼식'을 따라갈 순 없겠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나의 소녀시대’ 등 대만 특유의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해드릴 만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지난 4월 30일 중국에서 개봉한 이후 노동절 연휴 흥행 1위를 기록했으며 한화로 약 1400억원의 수익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기존에 한국 리메이크 작품들, ‘중반 20세(수상한 그녀)’, ‘대인물(베테랑)’, ‘양광제메이타오(써니)’ 등 중에서도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손꼽혔다고 하죠.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대만의 대세 배우와의 만남. 기대되신다면 8월 25일 극장에서 확인해보세요.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본 리뷰는 브런치 작가 '수리'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팀에서 업로드한 게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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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법을 찾아야 한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로, 아내(루니 마라)와 별거 중이다.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점점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Al
영화는 '인공지능'의 소재를 가지고 줄거리가 이어가지는 로맨스 영화다. 보통 '인공지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차가움', '냉정함'이 있다면 이 영화는 이러한 선입견을 무시하는 의외로 따뜻한 영화이다. 그렇다고 또 직접적인 로봇의 등장도 아니고 음성으로 등장하는 Al이므로 시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아닌 청각적인 부분에서 흥미를 돋는다.
색깔
주인공인 테오드로는 소화하기 힘든 밝은 계열의 의상을 입는다. 아마 화려한 외면과는 다른 우울한 내면을 비교하고자 표현한 거 같지만, 점차 사만다를 만나며 그 밝은 계열의 색상처럼 로맨스가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나 주인공의 모습들이 환해진다. 왠지 모를 행복감이 든다.
주제
'사랑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사랑'등의 기본적이면서도 원초적인 주제를 담았다. 복잡미묘하면서도 다시 보면 간단명료한 주제인 '사랑'을 정말 잘 표현한 영화이지 않나 싶다. 게다가 인공지능을 넣다보니 그 주제가 보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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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윅 세계관 속 또 다른 불꽃
<존 윅> 세계관에서 ‘착한 킬러’라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은퇴를 결심한 존 윅(키아누 리브스)조차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세상의 모든 킬러들에게 쫓기는 사냥감이 되어버린다. 이 세계에서 과거를 지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 속 “I am working on it(지금 노력 중이야)이라는 짧은 대사는 그 불가능을 깨닫는 순간에도 발버둥치고 싶은 마음,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지막 의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결심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존 윅>시리즈를 경험한 관객들은 안다.
결국 존 윅이 깨닫는 건 복수 이후에도 자신이 여전히 그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이 룰과 관계망은 자발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허락과 조건, 혹은 죽음을 통해서만 끊어진다. 영화 <발레리나> 속 이브(아나 데 아르마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향한 복수심으로 살아왔고, 그 집념은 그녀를 조직의 규칙마저 깨뜨리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옳은가, 아니면 자신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가. 이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며, 관객을 한동안 붙잡아 둔다.
[첫 번째 감정] 이브의 분노
이브의 분노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잃은 순간부터 시작된 감정은 그를 킬러의 세계로 끌어들인 원동력이자 족쇄였다. 다른 이들은 이브의 변화를 만든건 이브에게 찾아온 운명이라 포장하지만, 실상 모든 길은 이브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그녀가 만든 방향 위에 주변 인물들이 엮였을 뿐이다. 이 분노는 이브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배하며, 복수라는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영화 내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브의 모습에서 그 의지를 볼 수 있다.
이 강력한 감정의 절정은 후반부 화염방사기 시퀀스에서 폭발한다. 불꽃이 뿜어져 나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그녀 내면 깊숙이 응축된 분노의 형상처럼 보인다. 마치 모든 것을 불태우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선언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은 영화 속 모든 액션 장면을 통틀어 가장 감정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다. 이 액션은 이브라는 인물의 감정의 끝자락이자, 앞으로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서는 입구다. 똑같이 화염 방사기를 들고 공격하는 킬러가 무척 강력해 보이지만, 이브가 전혀 기죽지 않는건, 아마도 그 분노 때문일 것이다.
존 윅이 그녀를 이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누구보다 깊은 분노가 어떤 길을 만들고, 또 그 길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안다. 비탈길이 가득한 사이비 종교 본거지를 오르내리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을 제거하는 이브의 모습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분노가 때로는 생존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느낀다.
[두 번째 감정] 존 윅의 공감
이 영화에서 존 윅은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이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래서 가장 가까이서 그녀를 말리고자 한다. ‘바바야가’라 불리며 킬러 세계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는, 복수의 길이 얼마나 끝이 없고 허무한지를 체감했다. 그렇기에 이브에게 멈추라고 말하는 장면엔 이브가 멈추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래도 여기서 멈췄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떠오른다. 하지만 존 윅의 말 속에는 이미 체념이 섞여 있다. 그 역시 이브가 돌아서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건 이미 존 윅이 걸어온 길이다.
존 윅이 다른 킬러와 구분되는 지점은 ‘공감’이다. 아내와의 삶은 그에게 다른 종류의 감정을 남겼고, 그것이 그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공감은 이 세계에서 약점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브는 아직 그 감정의 깊이에 닿지 못했지만, 복수의 끝에서 결국 존 윅이 선 자리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이브도 그 공감능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또한, 존 윅의 공감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연대감이자, 자신과 닮은 이를 바라보는 두려움이다. 그는 이브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기에 안쓰러워한다. 이 감정은 영화가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로 확장된다.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힘이 아니라, 누군가의 공감과 손길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존 윅은 폭력을 이용해 그 상황을 벗어나려 애쓰는 사람이지만, 결국 그 모든 폭력을 멈춰야 다시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다. 이브는 그런 존 윅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세 번째 감정] 윈스턴의 따뜻함
윈스턴(이안 맥쉐인)은 콘티넨탈 호텔의 지배인이자, 이 세계에서 가장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규율에 철저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의외의 온기가 있다. 이브를 돕는 장면, 특히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그 복잡한 내면을 엿보게 한다. 그는 룰을 깨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그가 콘티넨탈 호텔이라는 중립지대를 만든 이유는 단순한 비즈니스만이 아니다. 살육과 복수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지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공간은 총성 대신 침묵이 허락되는 몇 안 되는 장소이며, 그것이 윈스턴이 지키려 한 평화의 방식이다. 시리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방식이 점점 따뜻하게 느껴지는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차갑기만한 킬러의 세계에서 윈스턴의 존재는, 어쩌면 그 자체로 이 세계를 지탱시키는 힘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따뜻함은 그를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세계관의 균형추로 만든다. 냉정함과 온기가 공존하는 인물, 그 복합성 덕분에 윈스턴은 다른 캐릭터들과 차별화된다. 그의 존재는 이브와 존 윅 모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무리 잔혹한 세계라도, 그 안에 온기를 품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은 없다는 것.
<존 윅>과 어깨를 나린히 하는 여성 액션 시리즈의 탄생
<발레리나>는 <존 윅> 시리즈의 스핀오프로서, 원작의 액션과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인물을 통해 감정의 결을 확장하려 한다. 총격전과 근접전, 그리고 후반부의 화염방사기 시퀀스까지, 액션 설계는 탄탄하다. 특히 공간을 활용한 액션과 동선 설계는 원작 팬들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만, 여성 킬러라는 설정에서 기대했던 서사적 차별점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은 아쉽다. 존 윅의 서사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전개는 신선함을 조금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는 스핀오프라는 한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를 발판 삼아 후속작에서 더 뚜렷한 개성을 보여줄 가능성이 남아 있다.
렌 와이즈먼 감독은 스턴트맨 출신은 아니지만, 다수의 액션 영화 연출 경험을 바탕으로 원작의 무드를 해치지 않는 연출을 선보였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날렵하고 세련된 액션을 소화하며 주연으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했고, 키아누 리브스, 가브리엘 번, 노먼 리더스, 안젤리카 휴스턴 등 조연 배우들도 서사의 완성도를 높였다. 현재까지의 흥행 성적은 안정적인 출발을 보였으며, 앞으로의 <존 윅> 세계관 확장에도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 큰 스크린에서 관람할수록 액션의 박력과 세계관의 디테일이 더욱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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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고 싶은 학교는?
다들 개학, 개강 잘 맞이하셨나요?
비대면 수업이 대면으로 전환되면서,
거리에 학생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봐서 반갑기도 하고,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설렘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그래서 개학, 개강을 맞이해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클래식
(The Classic, 2003)
synopsis
엄마의 젊은 시절 편지와 일기장을 발견했다.
읽어갈수록 엄마의 옛사랑과 나의 지금 사랑이 닮았다고 느끼는 건 착각일까.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속으로, 함께 떠나볼까요?
cine pick!
제목처럼 한국 로맨스의 '클래식'인 영화.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와 너무 예쁜 주인공,
그리고 듣기만 해도 설레고 아련한 OST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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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카로 살아남는 법
(Mean Girls, 2004)
synopsis
케이디는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 퀸카 집단에 들어가지만,
퀸카들의 리더의 전 남자친구가 케이디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cine pick!
하이틴의 정석 영화이자 가볍게 볼 수 있는 팝콘 무비입니다.
린제이 로한, 레이첼 맥아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
세 배우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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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 2007)
synopsis
예고로 전학 온 첫날, 교정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린다.
소리에 이끌려 문을 연 음악실. 거기 한 여학생이 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홀연히 사라진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녀. 그녀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
cine pick!
영화를 안 본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한 피아노 배틀 장면.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주연 배우, OST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몇 번을 봐도 똑같이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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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Architecture 101, 2012)
synopsis
서연과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었다.
서연이 승민을 찾아와 꿈에 그리던 집을 지어 달라 하고
둘 사이엔 다시 사랑이 싹튼다.
cine pick!
아련하고 풋풋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영화.
조정석 배우의 인생 캐릭터 '납득이'가 탄생하고,
수지 배우에게 '국민 첫사랑'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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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녀시대
(Our Times, 2015)
synopsis
1994년 대책 없이 용감했던 고등학생 시절, 유덕화 마누라가 꿈인 평범한 소녀 ‘린전신’과
학교를 주름잡는 비범한 소년 ‘쉬타이위’의 첫사랑 밀어주기 작전
cine pick!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만 청춘 영화.
유치하면서도 순수한, 그리고 사랑스러운 주인공의
매력의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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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 실격
(Heroine Disqualified, 2015)
synopsis
하토리는 자신과 소꿉친구 리타를 사랑의 '히로인’과 '히어로'라 여기며
언젠가는 연인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리타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
cine pick!
코다 모모코의 만화 '헤로인 실격'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유쾌하고, 통통 튀고,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많은 이들의 사카구치 켄타로 입덕작이기도 합니다.
Streaming Service
웨이브, 티빙, 왓챠
싱 스트리트
(Sing Street, 2016)
synopsis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라피나에게 첫눈에 반한 코너. 잘
보이고 싶어서 밴드를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한 코너는 덜컥 라피나를 뮤직비디오에 섭외하고,
그날부터 코너는 급하게 밴드 멤버를 모으기 시작한다.
cine pick!
영화를 다 보면, 영화 OST를 찾아
플레이리스트에 담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OST도, 배우도, 메시지도 너무 좋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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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여름날 우리
(My love, 2021)
synopsis
너에게 풍덩 빠져버렸던 17살의 여름.
너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1살의 여름.
그리고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cine pick!
싱그러운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두 배우의 감정선이 돋보이고, 케미가 좋은 영화.
Streaming Service
웨이브, 티빙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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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긴 예고편 속 고가의 장난감들, <해피엔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피엔드 Happy End, 2017 | 프랑스 외 | 드라마 | 107분
감독: 미카엘 하네케
아주 긴 예고편 속 고가의 장난감들, <해피엔드>
아주 긴 예고편
난 엄마한테 완전 질렸어. 징징거리면서 모든 사람을 열 받게 해.
아빠는 벌써 몇 년 전에 떠났어. 그는 그걸 견디기 힘들었나 봐.
이젠 내가 그걸 감당해야 해.에브는 엄마의 우울증약을 먹은 햄스터가 죽어가는 모습을 sns에 올리며 말한다. 아주 시니컬하게 자신에게 닥친 현 상황을 제시한다. 소파에 누워 발작을 일으키는 엄마를 휴대폰에 담으면서 "구급차 불러야겠다."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계획적으로 엄마를 잃을 예정인 아이가 내보인 이 태연한 행위는 <해피엔드>가 앞으로 써 내려갈 충격적인 이야기의 예고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에브는 드디어 엄마에게서 벗어나 아빠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대저택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건 모두 누리며 살 수 있는 로랑 가문에 드디어 입성한 것이다. 부가 아닌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해 아빠를 따라갔지만, 에브는 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아빠와의 공간은 허울만 좋은 곳이었고 아이는 여전히 '혼자'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로랑 가문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 에브. 치매 환자 할아버지(조르주), 교양만 떠는 고모(앤), 실속 없는 반항아 사촌(피에르), 거짓말쟁이 아빠(토마스), 멍청한 새엄마(아나이스)에게 에브는 잠시 있다 갈 손님에 불과했다. 엄마의 죽음으로 로랑 가문에 정식 일원으로 들어왔음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출처: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그래서 에브는 핸드폰을 들고 로랑 가문의 몰래카메라를 자처한다.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아이는 직접 로랑 가문의 감춰진 사실을 들춰내며 자신의 삶에 사랑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실히 깨닫는다. 할아버지는 기회만 되면 자살을 계획하고, 고모는 오로지 '나'의 세계를 완벽히 구축하기 위해 가족은 안중에도 없다. 고모의 아들은 매번 말썽을 일으키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아빠는 끊임없이 다른 사랑에 빠져버리고, 새엄마는 부르주아 가문의 며느리에 만족하며 더 이상의 삶의 고민을 끝낸다.
그토록 원했던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은 에브의 손에 의해 진실이 폭로되며 산산조각 난다. 안타깝게도 아이가 본 로랑 가문의 민낯은 너무나 익숙한 그림이었다. 징징거리던 엄마의 얼굴과 다르지 않았고, 죽은 햄스터를 손으로 찔려보던 자신과 소름 돋게 똑같았다. 그들과 다른 선상에 있는 줄만 알았던 에브는 사실 로랑 가문의 3세대 공주였다. 이런 잔인한 깨달음에도 영화는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어주지 않는다. 쉽게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끝이 없는 미로에 갇힌 건 관객이 아니라 로랑 가문이다. <해피엔드>의 출구 찾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사건이 아닌 인물들의 삶만 들여다봐도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이 들 것이다. <해피엔드>는 뚜렷한 해결책도 없는 예고편을 아주 길게 만들고도, 어둠에 가려진 진실과 비밀을 냉철하게 제시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극사실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이 궁금하다면, 추천한다.
출처: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비싼 장난감의 탈출
로랑 가문에서 인간적인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덜 비정상적인 인물을 찾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가족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지 파헤치는 에브도 사실 그들과 같은 범주에 있는 인물이니까. <해피엔드> 속 로랑 가문은 모두 고가의 장난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절대 서로를 버리지 않는다. 더 많은 이의 눈에 모범이 되어야 하고, 기품 있게 전시되어야 하며, 가족의 비극은 또 하나의 우아한 에피소드가 돼야 한다. 강박적인 그들의 가치는 아무리 땅바닥에 내리 꽂혀도 살아남는다.
그것이 비싼 장난감을 자처하는 그들의 무시할 수 없는 가치이자 힘이다.
할아버지는 제대로 큰 자식 하나 없는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치매란 강력한 질병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가족이란 '거대한 전시장'에서 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이라곤 아무짝이 쓸모없는 돈뿐이다.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고 자식들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과거 병상에 누워있던 아내를 직접 하늘나라에 보낸 그 강력하고도 유일했던 힘은 홀로 로랑 가문의 마스코트로 남게 되면서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는 저녁 식사 때마다 싸우는 딸과 손자는 물론이고, 머저리인 아들의 바람기와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두려움에 떠는 손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며느리를 보며 죽음을 갈망한다. 할아버지는 딸이 자신의 결혼식을 망치려 드는 손자의 손가락을 부러트리는 것도 온몸이 묶인 채 제일 앞 좌석, 1열에서 감상해야 했다.
출처: 영화 <해피엔드> 스틸컷
에브는 엄마가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아빠가 결국 자신을 버릴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비싼 몸값으로 책정된 아이는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 할아버지가 매번 실패했던 것처럼 에브 역시 자유로운 삶을 가질 수 없다.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버려진다 하더라고 도망갈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휠체어에 탄 할아버지의 삶은 자신의 암묵적인 미래로 점쳐진다.
"모두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란 아빠의 말에 이미 신뢰를 잃은 에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비극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할아버지를 보면서 어떻게 자신의 다음 스텝을 구상할까. 에브는 적어도 그보다 더 많은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어릴 뿐더러, 몰래 카메라 경험으로 보고 배운 것이 넘쳐 난다. 폭력적이기만 했던 학습 효과가 얼마나 클까. 사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분명한 건 바다로 휠체어를 밀며 들어가는 할아버지를 보고 난 후에 벌어지는 에브의 행동이 <해피엔드>의 진정한 끝맺음이 될 거란 점이다. 그러나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대저택이 있는 한 로랑 가문에선 쓸모없는 장난감은 있을 수 없다. 가진 만큼 더 필요한 게 그들이니까.
긴 예고편인 <해피엔드>가 결코 해피엔딩을 그릴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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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DJ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시사회에 초청받아 개봉 전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삶의 방향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갑자기 찾아오고 미처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내 삶은 이미 방향을 바꾸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변화를 모두 대비해서 준비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런 변화에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큰 변화의 시기는 20살 성인이 된 이후일 것이다. 우리는 성인이 되고 처음 느끼는 해방감을 마음껏 즐긴다. 대학에 가고 사회인이 되는 과정에서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 하고 실제로 그 꿈을 위해 또 다른 준비를 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 과정 속에서 오는 변화는 우리가 대처 가능한 예측된 범위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일 것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일 하나가 더해진다면 삶의 흐름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란 누군가의 죽음이나 사고, 질병 같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수들은 삶을 다채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꽤 큰 괴로움을 동반한다.
예상치 못한 출산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전혀 준비되지 못한 출산은 미혼부나 미혼모의 길을 가게 만들거나 이른 나이의 결혼 생활로 접어들게 만든다. 출산 자체는 고귀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다면 그걸 맞는 당사자는 혼란 속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특히, 아직 2–30대 사회인이 막 되려는 시기에 만나게 되는 출산은 생각보다 많은 혼란과 제약을 만든다. 가족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자신이 하려던 꿈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다. 그래서 그 당사자의 마음을 무척 조급하게 만든다.
DJ를 꿈꾸던 젊은 미혼모의 이야기
영화 <둠둠>의 주인공 이나(김용지)는 젊은 미혼모다. 그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출산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윤유선)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고, 이나 본인도 아직은 아이를 키워낼 심리적, 경제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엄마는 자신의 딸이 낳은 아이를 거부한다. 그래서 이나는 교회 지인 부부에게 아이를 맡기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구상하기 시작한다. 영화 초반 그의 무표정한 모습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이나의 모습이 현실을 직시하기보단 계속 그 결정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계속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서 도망치려 애쓰는 중이다.
일단 현재 그가 선택한 것 중,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DJ를 포기하고 일반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일이 무척 지루해 보이지만 이 직업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 가능하면 소통을 줄이고 멀리 떨어지려 애쓴다. 그렇게 엄마로부터의 독립을 꿈꾸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엄마를 혼자 두기엔 마음이 불편하고 같이 지내자니 그것도 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아직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왠지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생각보다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아이를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잠깐잠깐 아이를 보러 가서 뚫어지게 아이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 앞에 과거에 즐겨하던 DJ 콘테스트에 나갈 기회가 생긴다. DJ를 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음악을 연주하던 이나에게 그 콘테스트는 자신이 원하는 삶에 다가갈 수 있는 꿈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가 주변부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음악이고 그걸 실현해줄 도구가 바로 콘테스트다. 그래서 이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 콘테스트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가 디제잉을 하는 모습과 음악에 몰두하는 모습을 통해 그가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고 앞으로 더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나 역을 맡은 배우 김용지는 마치 진짜 고민 속에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영화 속에는 필리핀에 자신의 아이를 두고 온 엄마가 나온다. 그는 교회에 봉사활동을 하고 비행기 티켓을 얻으려고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려 애쓴다. 그 역시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처지다. 주인공 이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나와 다른 점은 필사적으로 아이를 다시 데려오려 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들 사이에 있는 차이점을 더욱 명확하게 해 준다. 이나는 여전히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반면 필리핀 엄마는 아이를 찾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작지만 극명한 차이는 이나가 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미래의 꿈과 아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영화 속엔 이나의 출산 직전 장면이 잠깐 등장한다. 그 짧고 긴박한 순간을 통해 그에게 찾아온 것이 그에게 얼마나 혼란스러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엄마는 당황스러워하고 그걸 보는 이나도 당황스럽다. 영화 전반에 이 둘의 관계는 계속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엄마와 이나의 관계는 완전히 깨진 것 같지만 결국엔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가족이다. 흔들리는 엄마를 닮아가는 이나 본인의 모습이 아이를 데려워 키우는데 큰 벽을 만든다. 그걸 다 잊는 방법은 바로 음악에 몰두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DJ들의 모습과 음악 디제잉을 하는 모습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 자체가 주인공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고 그 좋아하는 일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활용된다. DJ 콘테스트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고 또 주변의 일들과 떨어지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나의 모습은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관객은 이나의 음악이 바뀌어가는 것을 통해 그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미혼모로서의 삶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게 바로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둡고 낡은 클럽에서도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고 미래를 꿈꾸는 이나의 선배 준석(박종환)은 조금 힘겨워 보이지만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 <둠둠>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삶의 변화 앞에서 미래의 길을 선택하려는 주인공 이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그것에 장애가 될 것 같은 아이는 같은 미래에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선택을 주저하는 이나의 모습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생각보다 이나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늘 그렇듯 이런 선택은 쉽지 않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열쇠는 남은 가족에게 있다. 영화는 이나와 엄마의 모습과 그들 나름대로의 노력을 통해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미래에 담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음악영화라기보다는 한 가족의 치유극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 속 이나는 무척 조급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차분히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나간다.
영화는 주인공 이나가 어떤 일을 겪어서 임신을 하게 되었는지, 아이의 아빠가 어디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지금 현재 겪고 있는 마음의 고민을 영화에 담을 뿐이다. 또한 엄마와 있었던 과거의 모든 일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이나 라는 인물의 현재와 미래다. 무엇보다 지나간 과거보다는 지금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전달한다. 가만히 버스에 혼자 앉은 이나의 모습이 꽤 마음에 남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하이스트레인저]로부터 제공받았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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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진중한 연기도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뜻하게 볼 수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니 주변 관계들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전체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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