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1-04 19:37:57
안아주고 싶은 등짝
영화 <연소일기> 리뷰
SYNOPSIS.
"나는 쓸모없는 사람일까?"
한 고등학교 교실의 쓰레기통에서 주인 모를 유서 내용의 편지가 발견된다. 대입 시험을 앞두고 교감은 이 일을 묻으려고 하고, 정 선생은 우선 이 편지를 누가 썼는지부터 찾아보자고 한다.
"일기야, 안녕?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어"
편지와 학생들의 글씨 모양을 비교하던 정 선생은 편지 속 한 문장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든다. 열심히 쓰다 보면 바라던 어른이 될 거란 믿음으로 써 내려간 열 살 소년의 일기. 정 선생은 일기를 읽으며 묻어뒀던 아픈 과거와 감정들을 마주하고, 학생들을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POINT.
✔ 홍콩 금마장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작
✔ 독특하게도 부산국제영화제 리퀘스트시네마로 첫 선을 보였는데, 평이 좋았습니다
✔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길 잃지 않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영화, 감정의 에너지가 커다랗게 전해지는 영화. 전 요즘 이런 영화가 참 좋더라고요.
✔ 경쟁을 일상으로 여겨 온 한국인이라면, 다소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있어요
✔ 10살 소년을 연기하는 황재락 배우의 얼굴이 오래 아른거릴 거예요
✔ 11월 13일 개봉
영화 <연소일기>는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의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높이를 가늠해 보며 계단을 오르고, 옥상에서 소리를 질러 보는 아이의 등짝. 영화는 이제부터 아이 삶을 따라가며 몇 번의 상승과 하강을 그려낼 것이다.
또 한편에는 '정 선생'이 있다. 영화는 현재의 정 선생과 과거의 아이를 교차해 보여준다. 기억과 현실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매개가 되는 것은 어느 날 정 선생의 학교에서 발견된 유서 비슷한 편지이다. 스스로가 쓸모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그래서 사라져도 빨리 잊힐 것이라는 말. 그 말은 정 선생을 10살 아이의 일기장으로 데려간다.
정 선생을 잡을 때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불안하게 흔들거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턱을 괴거나 엎드리거나 칠판을 보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들이 고여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10살 아이는 폭력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터져 나갈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의 시기 안에 있다.
(언제든 우리의 현재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신의 현재가 괴롭든 괴롭지 않든) 우리는 과거에 누구나 한 번 이상 괴로움을 겪었다. 형태와 깊이는 제각각이지만, 어떤 것은 금방 잊히고 어떤 것은 영영 생채기로 남지만, 그래서 오늘 우리의 얼굴에서 어제의 괴로움이 다 읽히지는 않지만,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 선생의 동료 교사들만 보아도 그렇다. 그들에게 유서 비슷한 편지는 공허한 문장으로만 읽힌다. 어릴 때 한번쯤은 하는 생각이라면서. 그들에게도 익숙한 문장이라는 뜻이다. 기억 속에 문장의 기표는 남아 있지만, 그 뒤에서 터져 나갈 것 같았던 기의들은 잊혔다.
그러나 정 선생은 10살 아이의 일기장이 떠올라 버린 이상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없어, 상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본다. 유서 편지의 문장과 똑같은 일기장 속 문장을 끈으로 삼아, 교차 편집된 과거에서 10살 아이가 연필로 써내려간 일기장의 기억을 펼쳐 보여준다.
일기를 쓰게 된 계기도, 일기 속 문장들도... 10살 아이의 세상은 녹록지 않다. 필연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나이다. 남들 눈에 비춰지는 성과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히스테릭해져 가는 어머니, 아이와 다르게 뭐든 잘 해내는 동생의 모습은 다소 도식적으로 그려졌지만, 10살 아이의 캐릭터가 선명하여 그 단점을 상쇄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황재락이 연기하는 10살 아이 요우제를 사랑하게 된다. 아이는 비록 공부를 잘 못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데에 재능이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문구를 좋아하는 걸로 보아, 공부 아닌 다른 데 재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10살 요우제의 재능을 헤아려 보지 않는다. 그에게는 메트로놈에 딱딱 맞는 것만이 올바른 음악이다. 정해진 박자 바깥의 풍성함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답이 아니라면 모두 틀렸다는 그의 독선은 가족을 차별과 폭력으로 물들인다. 그 독선적 세계 또한 카메라에서 계속해서 흔들린다.
부모의 편협한 시야 안에서, 10살 아이의 세상은 조금씩 쪼그라들고 무너진다. 보고 있노라면 이 일기가 10살 아이의 세상이 무너져간 기록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 선생이 유서의 주인공을 찾아 헤매는 순간에도 일각에서는 폭력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세계를 보며, 얼마나 많은 세상이 이렇게 무너지고 쪼그라들고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요우제라는 10살 아이에게 맞춰진 소실점은 수많은 아이들에게로 투사된다.
그 구도 안에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실어 나르고자 한 감정이 묵직하게 전달되어 온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특히 골목 사이로 아이들이 뛰는 장면에서, 카메라 앵글을 따라 세상이 뒤집힐 때, 우리는 비로소 메트로놈 박자 바깥의 세상을 느낀다. 무너지지 않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느낀다. 거기에는 기꺼이 손 내미는 다정함, 함께 보내는 시간, 솔직하게 터놓은 마음이 있다. 그것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절절한 마음을 담아 던지는 영화다.
영화를 보며 심규선의 <살아남은 아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살아남은 아이인지 모른다. 유서를 발견해도 어린 시절 한번쯤 해보는 생각 아니냐고 말하는 교사들도, 독선적인 형태의 성취만을 인정하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에게 맞추는 데 눈물도 인생도 쏟아낸 어머니도... 사실 그들 또한 과거의 어느 순간, 터져 버릴 것 같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불쏘시개처럼 나를 자꾸만 헤집어대는
어린 시절의 아름답지만은 않던 기억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라 지금의 네가 되는지
들춘 기억에 귀엣말처럼 속삭여주고 싶다 (...)
너는 살아남은 아이 미움과 무관심 속에서
이 어둠은 너의 별빛을 더 환하게 할 뿐 꺼트릴 순 없어
너는 살아남은 아이 눈물의 반짝임 모아서
저 은하수처럼 흐르며 또 살아갈 거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자꾸 현실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시기를 넘어 바라던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가끔은 뒤늦은 후회의 눈빛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해도, 그럼에도 다시 시작해볼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런 소망을 품고, 옥상에 선 아이의 등짝을 끌어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 안의 <연소일기>에는 그런 문장들이 적힌 페이지가 있을 것이다. 차마 끌어안지 못하고 놓쳐버린 등짝들이. 지금이라도 끌어안고 싶은 등짝들이.
이 영화를 마주한 당신의 <연소일기>에서는 어떤 페이지가 펼쳐질까. 이 영화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 일기인 동시에, 당신 내면의 일기장을 부드럽게 펼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겨줄 것이다. Time still turn the page라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 그대로. 과거에 덮어두고 온 상처 투성이 일기더라도, 오랜 시간 흐른 후에 다시 페이지를 고이 넘길 수도 있는 법이니까. 넘어간 페이지에서 다정한 마음을 가득 끌어안고 상영관을 나올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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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니 선녀였다
나이를 먹으면 봤던 영화도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다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영화가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감상만 되풀이될 것이라는 생각에 재개봉되더라도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한 편이라도 새로운 영화를 보며 얻어걸릴 또 다른 특별한 영화를 기다렸지만, 사실은 핑계에 불과하다. 아무런 근거도, 기준도 없이 보냈던 시간은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어딘가에 존재하지도 않을 이상적인 영화에 대한 동경의 크기만큼 길었으리라. 이런 생각을 깨게 해준 영화가 최근에 재개봉한 <시네마 천국>이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잘려 나간 무수한 키스 씬 필름으로 토토와 알프레도의 절절한 사랑, 그리고 남겨진 사랑의 흔적에 감동하는 어른들이 기억에 남았는데, 다시 보니 <시네마 천국>은 완전한 로맨스 영화였다. 토토가 성장하며 만끽한 사랑 그리고 그들과의 이별에서 특히 느꼈는데, 이때 알프레도가 꺼낸 사랑 이야기. 공주를 100일간 기다리던 남자 이야기에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이해할 수 있다. 그 모든 기다림과 절심함도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는 걸.
시골에서 자란 토토는 고향이 세상의 전부라고 느끼며 살아갔다. 마냥 행복한 앞날만 보장되지는 않지만, 부족한 것도 없었다. 그저 알프레도와 애인 그리고 가족들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계속.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도 언젠가 끝을 맺는다. 토토는 알프레도의 설득으로 더 큰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자연스럽게 애인과의 관계도 마무리되고 가족마저 소원해진다. 그런데 토토가 더 넓은 세계에서 성공은 할 수 있어도 사랑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일회적인 관계들로 빈자리를 채우지만,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가 있을까. 작고 우스운 사랑이더라도 사랑인데 한번 내다 버린 사랑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후회가 쌓이고 방황은 커간다. 어디에서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차갑게 내보낸 알프레도의 사망 소식이었다.
알프레도는 사랑이 뭔지 알고 있었다. 일평생을 한 자리에서 영사만 하던 그가 줄곧 마주한 것은 영화 속 세계였다. 가난하고 죽음이 도사리던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았고, 큰 세계에 대한 열망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열망을 어린 친구 토토를 위해 남겨두었다. 알프레도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질 길을 알면 주저하지 않고 그 길을 보내줄 수 있는 어른이었다.
그 화룡점정은 엔딩 씬에서 이뤄진다.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돌려보며 눈물을 훔치는 유명한 장면이다. 토토는 마지막 모습이 차가웠던 알프레도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려 나간 무수한 키스 컷들처럼 자신의 사랑과 추억들이 좌절되더라도 마음 속에 영영 남을 수 있음을 그는 깨닫는다.
여기서 나는 100일간 공주를 기다린 남자 이야기의 의미를 수정해 본다. 그 이야기는 '사랑은 언젠가 끝이 난다'라는 뜻보다 '사랑에는 때가 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이처럼 나는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 없는 사랑을 만끽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믿어본다. 한 번 끝낸 이야기들에도 다름을 느끼고, 언젠가 그 이야기들에 토토처럼 눈시울을 붉히는 날이 다가올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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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덤: 아신전> 활과 화살을 든 돼지의 처연한 복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추파진에 파견된 첨절제사 '민치록(박병은)'은 백 년 간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폐사군에서 강을 건너온 파저위 여진족의 시체를 발견한다. 만주를 통합하고 있던 파저위 여진족과 조선 간의 외교적 분쟁이 야기될 수 있음을 직감한 치록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선 땅에 들어와 사는 여진족 상저야인을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만호부락의 '타합(김뢰함)'에게 밀정으로 활동할 것을 명한다. 이에 타합은 병든 아내와 어린 '아신(김시아)'을 뒤로한 채 파저위 여진의 본진으로 향한다. 남겨진 아신은 어머니를 살릴 수 있을 거라 믿고 생사초를 캐기 위해 집을 나서지만, 그 사이 '아이다간(구교환)'이 이끄는 파저위 군사들이 들이닥쳐 만호부락의 부락민을 몰살한다. 큰 슬픔 속에 오갈 데 없어진 아신은 치록을 찾아가 몸을 의탁하고, 성인이 된 '아신(전지현)'은 복수의 날을 준비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의 두 번째 시즌은 '이창(주지훈)'과 '서비(배두나)'가 생사초와 역병 환자들이 가득한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베일에 싸인 인물인 아신을 만나는 것으로 끝이 났었다. 스핀오프이자 프리퀄인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은 바로 마지막에 얼굴만 비친 아신의 정체와 사연을 풀어내는 작품으로, 영국 BBC의 드라마 <셜록>의 시즌 3과 시즌 4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었던 <셜록: 유령신부>처럼 시즌 2와 시즌 3간의 가교 역할을 맡는다.
흥미로운 것은 기존 시리즈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셜록: 유령신부>와 달리 <킹덤: 아신전>은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 감상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 만큼 뛰어난 독립성과 완결성을 자랑한다는 사실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시즌 1의 김성훈 감독 연출 아래에서 감정 과잉으로 인해 극의 리듬과 템포를 깬다는 시즌 2의 문제점이 해소된 결과, 조선에 좀비가 창궐하게 된 계기와 아신의 생애는 전반적으로 매끄럽고 안정적으로 펼쳐진다. 호랑이 자리에 카메라를 배치하면서 속도감과 쫓기는 몰이꾼들의 두려움, 다급함 등을 잘 살려냄과 동시에 CG의 한계를 잘 피해 간 액션씬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무엇보다도 <킹덤: 아신전>이라는 한 작품은 물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두 모티브, '돼지'와 '활쏘기'의 활용을 빼놓을 수 없다. 차갑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담긴 아신의 복수극을 전달함에 있어서 이들이 결정적인 몫을 맡기 때문이다. 우선 돼지를 보자. <아신전>은 아신과 관련된 이들을 모두 돼지에 비유한다. 아신의 아버지는 조선의 백성들을 만지고 돕는 것조차 금지되고 멸시받는 돼지 잡는 백정으로 등장한다. 치록의 명령으로 조선과 여진을 오가는 밀정이었던 그는 여진족에게 붙잡힌 후 돼지나 다름없는 몸으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그의 부락민들도 마찬가지다. 부락민들은 여진족이지만 조선의 관리감독 하에서 살아가며 조선에 협력했던 상저야인으로, 조선이 파저위 여진과 민감한 외교적 문제에 휘말리자 언제든 필요할 때 도살되는 돼지처럼 버려진다. 조선군에게 몸을 맡긴 아신도 돼지우리에서 잠자고, 조선군의 허드렛일을 도맡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러나 영화의 중후반부에 들어서 아신과 그녀의 가족, 부족민들의 비참함을 보여주던 돼지는 그 의미가 뒤바뀐다. 이제 돼지는 조선군에 대한 비유다. 아신은 성인이 된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멧돼지를 사냥하던 것처럼 자신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간 조선군들을 차례로 사냥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생사초를 이용해 조선군을 앞뒤 가리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물체를 들이받는 멧돼지나 다름없는 좀비로 변신시킨다. 그리고 그 좀비들의 홍수에 갇힌 조선군은 그녀 앞에서 자신이 도살장에 갈 차례를 알고 떨고 있는 돼지 마냥 순서대로 죽어간다.
'돼지'에 담긴 의미의 변화는 아신이 서 있는 장소의 변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돼지우리에 있는 평상에도 눕지 못한 채 땅바닥에서 잠을 청했던 그녀는 돼지보다도 계급이 낮은 존재였다. 그러나 조선 군영에 좀비를 퍼트린 그녀는 이제 지붕 위에서 조선군과 좀비들, 곧 모든 돼지와 멧돼지들을 내려다보고 자유로이 활을 당겨 그들을 사냥한다. 마지막 남은 단 한 명의 조선군도 자신의 아버지가 당했듯이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시킨 후에 가볍게 불사른다. 자신들의 부족이 불탄 것처럼, 또 파저위 여진족 본진에 불을 지른 것처럼.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파저위 여진족에게 활시위를 당기는 아신을 비추는 엔딩은 조선군도 여진족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을 돼지 잡듯 사냥하는 복수귀가 되어버린 그녀의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렇게 돼지라는 소재를 통해 아신의 성장과 변화의 서사를 보여주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아신전>은 그 결과물인 아신의 성격과 상태를 활과 화살에 담아낸다.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의 '활쏘기의 선'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궁사는 자기 앞의 과녁을 맞히는 일 이외에는 자기 자신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활쏘기가 불붙은 초로 다른 초에 불을 붙이듯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이러한 표현은 그 자체로 아신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아신이 활 쏘는 모습에는 돼지로 지내야 했던 긴 세월 동안 너무나도 깊어진 복수심에 잠식된 나머지 인간다움을 버린 복수귀로 변한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그녀는 팽팽히 당긴 시위에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던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화살을 걸어 원수인 조선군과 여진족을 향해 날리며 죽음이라는 진심을 전해준다.
이는 작중 좀비들을 볼 때의 충격이 지난 두 시즌에 비해 덜할 뿐만 아니라, 그 오싹함의 결이 미묘하게 다른 이유로도 이어진다. 그간 <킹덤> 시리즈에서 좀비는 그 자체가 공포스러운 미지의 괴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시즌 2의 대미에서 이창과 그의 동료들이 궁궐에서 근접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시청자들이 감정적으로 이입된 주인공들과 직접 대면하는 존재들이었다. 달리 말해 즉각적이고 뜨거운 공포를 자아내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아신전>에서 좀비는 더 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좀비는 철저히 아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조종된다. 이제 좀비는 보다 처연한 공포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좀비 그 자체의 존재보다는 그들의 흑막으로 존재하는, 인정사정없이 민간인과 조선과 여진의 모든 생명체를 죽이려는 아신의 존재가 더 강렬한 섬뜩함을 자아낸다. 당장 가족들과 본연의 삶을 되찾고 싶어 하는 그녀의 회한이 사무친 마지막 장면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아신전>의 결말은 좀비가 만들어진 경위와 그들의 존재보다도 아신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유로 스스로 좀비나 다름없어졌고, 복수에 미친 살인귀가 되었음을 보여주기에 그 어떤 장면보다 무섭고 소름 끼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손에 쥔 활과 화살에 담겨 있다.
조금 더 시각을 확장시켜보면 활쏘기는 <킹덤>이라는 시리즈의 맥락 안에서 시즌 1과 시즌 2에서 위기에 빠진 조선, 그리고 앞으로 더 큰 위기에 빠질 조선을 암시하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시리즈의 배경이 조선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조선에서 궁술은 왕이 직접 장려할 만큼 중시되었는데, 공자가 사대부에게 권장한 육예인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중에 사(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군자는 경쟁하는 바가 없으나 활쏘기에서는 경쟁한다"는 논어의 말씀처럼 활을 쏘는 것은 예절을 남과 겨루는 일이었기에 도리와 예의를 익히는 심신 단련의 수단으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즉, 활쏘기는 단순한 무예를 넘어서 조선의 이데올로기를 직접 실천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아신전>은 성리학 국가인 조선의 상징적 이데올로기인 충과 효가 버려지는 세태를 만악의 근원으로 설정한다. 타합을 비롯한 상저야인들은 그들의 충성에도 불구하고 조선으로부터 그 대가나 보상을 받기는커녕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여진족에게 몰살당한다.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불효를 범한 아신은 부족민들이 죽게 된 이유를 조선군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파저위 여진족의 시신에 꽂힌 화살을 보고 깨닫는다. 활쏘기는 조선의 근간인 충효가 무너졌고 더 이상 무용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적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아신의 화살이 조선을 겨누는 것은 곧 <아신전> 이후의 시간대에서 조선의 존립이 흔들릴 것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시간상 <아신전>보다 뒤의 일을 다루었던 <킹덤>의 두 시즌에서 조선은 왜란뿐만 아니라 해원 조 씨의 세도정치로 인해 왕위의 승계까지 흔들리는 등 내정이 엉망인 상태로 등장한다. 또한 이는 두 번째 외전인 <킹덤: 세자전>과 <킹덤>의 세 번째 시즌에서 조선이 다시 한번 피바다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자신의 왕위를 버리면서까지 유학의 이데올로기를 다시 세워 조선이라는 국가와 사직, 종묘를 지켜낸 이창과 그의 안타고니스트인 아신이 대립하고 충돌할 미래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아신전>의 활과 화살은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복선이 된다.
<아신전>에 아쉬움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제목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보니 초지일관 아신의 복수극을 그려내고 있고, 따라서 본래 시리즈에서 특출 났던 좀비 영화의 장르적 매력은 결코 강하지 않다. 달리 말해 아신이라는 캐릭터에게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이번 스페셜 에피소드에 대한 호불호는 필연적으로 갈릴 수밖에 없다. 아신이라는 인물이 대사가 많지 않다 보니 그녀의 감정선을 그녀의 주변 상황으로부터 캐치해야 하는 것도 한몫 거든다.
또한 생사초를 최초로 사용하거나 발견한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이 생기는 점, 동물에게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되지 않는 설정이 의아한 것처럼 이전작들에서 남겨둔 생사초를 비롯한 여러 설정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것은 시리즈의 팬들이 다소 실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신의 사연에 조금이라도 몰입하는 순간, <아신전>이 아신의 성장기와 시리즈의 프리퀄, 더 나아가 화려한 예고편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성공적인 작품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성공적인 복수극, 스핀오프, 프리퀄, 그리고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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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개성 있었던 일본 영화
3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일본 영화!<우연과 상상>
하니엘의 영화 미리 알기
스구미와 메이코는 절친이다. 메이코는 스구미에게 소개받은 남자에 대해 어떻냐고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훈훈한 남자이며 첫 만남에 성관계를 하려고 했는데 쉽게 돼질 않았다. 메이코는 카즈야키와 스구미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남자는 전 여자친구가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스구미는 음담패설을 한다. 서로의 이야기가 코드가 통했는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이야기가 계속된다. 스구미가 집에 도착해 내리고 난 후에 메이코는 자신이 가는 목적지와 다른 원래 있었던 회사로 돌아가는데 그곳에는 회사의 사장이자 스구미의 남자인 카즈야키가 있었고 메이코는 계속해서 카즈야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데...
나오는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쉽게 몸을 내주는 여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나오와 함께 TV를 보는데 자신의 대학교에서 불어(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세가와라는 교수가 쓴 소설로 상을 받는 것을 본다. 사실상 나오도 그 교수님을 아는지라 상을 받은 세가와 교수가 자신의 제자였던 나오의 남자에게 갑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가와 교수를 찾아가 미인계로 유혹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자식과 남편이 있었다. 세가와 교수 앞에서 나오는 책 중에 자신이 좋아했던 야한 구절을 자신의 목소리로 낭송을 하는데... 과연 나오에게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제논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편리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끊게 되고 예전처럼 편지나 우편으로 소식을 전하게 된다. 나츠코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지만 존재감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는 동창이 있지만 나츠코는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고등학교 동창회가 끝나고 나츠코는 미카 아야라는 자신과 유독 친했던 동창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미카 아야라는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놀란다.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의 집까지 찾아간 나츠코는 안절부절한다. 그러나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와 나츠코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 둘은 과연 어떤 사이로 발전하게 될까?
난해했지만 코믹 요소도 있어서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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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긴 예열을 거치면 화끈하게 폭발한다!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을 아는가?
<고질라: 파이널 워즈> 같은 일본에서의 블록버스터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 같은 B급 매니아들의 취향을 정통으로 저격하는 속칭 쌈마이의 귀재라 불리는 감독이다.
이후로도 <다운레이지>, <도어맨>, 죠 단테, 데이빗 슬라이드, 믹 개리스, 알레한드로 브뤼게 감독과 같은 호러 영화의 거장들과 함께한 옴니버스 영화 <나이트메어 시네마> 등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선보여왔다.
현재 기준(2023.06)으로 그의 최신작인 <더 프라이스 위 페이>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섹션에서 소개되었다.
필자는 보통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면 3대 영화제 초청작을 위주로 보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다수가 예술성이라 솔직히 연속으로 보면 힘이 들때가 있는건 사실이다.
그럴 때 가끔씩 이런 작품(?)으로 환기를 시키는데 그 환기에 딱 적절한 작품이었다.
전당포 강도 두 명은 강도가 성공할 찰나에 총격전이 일어나 인질로 전당포 손님이었단 한 여자를 잡고 도망친다.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한 농가에 숨게되지만,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슬래셔 영화".
본 영화는 슬래셔 장르로 진입하기까지의 예열이 예상보다 길게 느껴지는 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슬래셔 장르로 진입하는 순간 화끈하고 창의적인 고어가 관객들을 반겨준다.
마치 악인전마냥, 선과 악을 대결이 아닌 악과 악의 대결로서, 누가 더 광기가 있는가, 누가 떠 똘끼(?)가 있는가 승부하며 펼쳐지는 강렬한 슬래셔 씬들이 예열까지의 지루함을 한번에 잊게 해준다.
할로윈,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등 여러 슬래셔 장르의 오마주와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세련되고 화끈한 연출이 잘 어우러지는 킬링타임 무비의 수작이라 평할 수 있다.
아쉽게도 현재로서 한국 수입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 작품이 의외로 소수 개봉이나 VOD로 수입이 잘 된 편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도 충분히 수입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그것도 2차 시장에서 아주 좋아하는 호러 영화니.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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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탈리스트>, 몇몇 장면들과 질문들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2024, 브래디 코베)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1
멀미하며 터널을 빠져나가는
<브루탈리스트>는 취조실에 갇혀 패닉한 조피아의 정면 얼굴로 시작해, 라즐로 토스 회고전에서 자신 있는 연설로 숙부와 숙모의 유산을 기리는 나이든 조피아의 정면 얼굴과 오프닝 오버랩으로 끝난다. 일종의 느슨한 액자로 다가오는 이 구성은 영화를 조피아가 쓴 라즐로의 전기처럼 바라보게도 한다. 조피아는 라즐로(와 에르제벳)에게서 얻은 가르침을 설명하며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목표가 중요하다“라는 문장을 강조한다. 바로 그 ‘과정’, 즉 라즐로가 헝가리 출신 유대인 이민자로서 아메리칸 드림에 배반당하면서도 ‘고작 몇 미터의 높이를 포기하지 않는’ 과정을 목격하고 나서 듣게 되는 대사다. 텍스트만으로는 위험하게 들리는 이 문장 자체가 가치관이라기보단- 가치관이나 태도를 지키기 위한 주문일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과정’의 서술 방식은 집요하게 상세하되 목적지를 분명히 두고 있어 고통의 전시나 낭만화로 읽힐 위험을 피한다. 고난과 완성된 작품을 잇는 어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는 ‘그러한 맥락으로’에 가깝다.
액자 안의 두 번째 오프닝은 미국에 닿은 라즐로의 모습에 에르제벳의 편지가 보이스오버되는 시퀀스다. 비좁은 공간에서 막 잠에 깨어 부랴부랴 인파를 헤치고 나가는 라즐로를 따라가는 롱테이크는 매초가 갑갑하고 초조하다. 편지가 화면을 빠져나가는 와중 라즐로는 그곳에서 빠져나가려 애쓴다. 부드럽게 흐르는 내레이션-편지와 더디게 나아가는 인물, 그 ‘방향’은 서로 어긋나는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실제로는 아직 닿지 못한 에르제벳의 음성이 라즐로를 이끌며 함께 암흑을 벗어나는 듯한 연출이다. 라즐로는 마침내 야외로 나가 탁하고 환한 공허를 만난다. 무언가를 보고 환호하는 그는 화면 맨 하단에 몰려 있다. 이내 카메라는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을 찍는다. 자유의 여신상, 다만 거꾸로 뒤집혀 있거나 횡으로 돌아가 있다. 노골적인 만큼 효과적인 은유다.
이어 라즐로가 탄 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에 타이틀과 크레딧이 겹치는데, 도로/차를 가로지르는 수평 방향으로 진행된다.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지럽다. 그 멀미의 감각으로 라즐로의 언어를 감히/조금이나마 알아들어 보기를 제안하는 것일까. 이를 비롯해 영화에는 자동차의 시점으로 도로를 달리거나 터널을 지나는 숏이 몇 삽입되어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 ‘가로막히며 더디게 나아가는’ 감각이 있었다면 이 숏들에는 ‘안전장치 없이 위태롭게 달리는’ 감각이 있다. 특히 에르제벳과 말다툼하며 어두운 도로를 운전하는 씬은 상징적이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며 심리적 거리는 멀어지는 듯도 보였던 부부는 나란히 어둠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라즐로는 단 하나 헤로인에는 굴복했으나 자신을 유혹하고 내리누르는 나머지 것들은 거슬렀다. 그가 멀미하고 구역질하며 캄캄한 터널을 견디고 환한 빛에 다다를 수 있게 도운 것은 그 자신과 에르제벳 외 누구도 아니었다.
사라진 해리슨
오프닝 크레딧처럼, <브루탈리스트>에서는 솟아오르거나 나아가는 라즐로와 그를 방해하는 ‘미국적인 것’이 대립한다. 이미지와 언어/소리가 서로 불일치함으로써 본질을 암시하기도 한다. 해리슨 밴 뷰런이 라즐로를 연회에 초대해 설득하며 아름다운 일화와 명분을 늘어놓을 때, 화면에는 내기 포커를 치며 값비싼 술을 홀짝이는 파티 참가자-부자-들의 몽타주가 흐른다. 꼭 중세 유럽 귀족들마냥 예술가를 ‘후원’하며 제 소유물로 두려는 듯한 해리슨은 그들 중 하나이면서 홀로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위선자, 겸손함과 우아함을 연기하다 실패하는 나르시시스트다. 화를 펄펄 내며 강렬하게 등장한 그의 퇴장은 모호하다. 실질적으로 ‘없다시피 한’ 그 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되었다.
<브루탈리스트>는 관람이 끝나자 마자 페이버릿 씬이 자동으로 생기는 종류의 영화였다. 거기엔 의외로 라즐로가 없었다.(애드리언 브로디가 담배를 무는 모든 씬은 논외로 한다.) 남편의 성폭력 피해를 알게 된 에르제벳은 보조기구를 짚고 천천히 해리슨의 저택으로 걸어 들어간다. 식탁에 둘러앉은 해리슨, 아들 해리, 딸 매기 등등. 에르제벳은 입구에 몰려 우뚝 선 채 해리슨을 폭로한다.(휠체어 이용/걷기를 에이블리즘에 오염된 의도로 구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으나, ‘작가가 상징을 드리우려 했다’기 보다는 ‘에르제벳에게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즐로 역시 엔딩에서는 휠체어에 타 있기도 하고. 영양실조로 하반신이 마비된 적이 있는 에르제벳은 휠체어에 앉아야 이동이 더 자유롭다. 그럼에도 서서 걸어 들어가기를 택한 까닭은, ‘내가 불편해지고 심지어는 위험해지더라도 저들을 내려다보거나 적어도 물리적으로 동등한 눈높이에 있기 위함’이었던 것이 아닐까.) 해리슨은 뒤늦게 부인하고 제발 저리듯 라즐로를 해고하겠다고 선언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해리는 과하게 분노하며 에르제벳을 질질 끌고 나가 내동댕이친다. 매기는 해리를 비난하지만, 그의 ‘순수한’(기계적인) 선의는 이 영화에서 생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숏은 끊어지지 않고, 카메라는 되돌아가 아버지를 찾는 해리를 따라 긴긴 계단을 오른다.(이 부분에서 조 알윈이 놀라웠다.) 해리는 좀 이상하다. 흥분해 있고, 화나 있고, 방금 한 행동에 대해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고 있는 듯도 하고… 헌데 복합적인 격앙에 담긴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그의 일부는 어쩐지 당황해 있고, 무언갈 감추고자 하지만 실패하는 것도 같다. 그는 해리슨의 혐의가 사실임을 내심 짐작하거나 그 자신이 한 일을 돌이키고 있을 수도 있다.(조 알윈도 유사한 이야기를 한다.[DAZED]) 여기서 시간/편집 순으로 한참 전의 시퀀스를 떠올리는 관객도 있었을 것이다: 만취한 해리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라즐로를 협박하며 조피아를 언급한다. 얼마 후 호숫가에 있는 조피아에게 산책을 청한다. 두 사람을 그대로 고립시킨 채 영화는 호숫가의 다른 쪽으로 주의를 돌린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해리슨, 매기, 에르제벳 등등. 의미 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에르제벳은 최선을 다해 웃고 적절히 반응한다. 어느 시점에 배경에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숲에서 걸어오는 해리와 조피아가 포착되는데, 클로즈업이 아닌 평이한 숏이다. 늘 그렇듯 말없는 조피아와 답지않게 조용한 해리에게서 읽히는 신호는 많지 않다. 해리는 술이 좀 깬 것 같다. 아까는 수영복 차림이던 조피아가 평상복을 입고 있고, 걸어오며 가디건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이 찰나를 우리는 계단을 오르는 해리에게서 다시 발견할 수도 있다. 위계는 은근하고 명확한 것은 없다.
해리슨은 저택에 없다. 해리와 매기는 사람을 모으고 개를 풀어 주변을 수색한다. 컴컴한 화면에 횃불만이 밝혀진 가운데 개들과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은 어쩐지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곧 라즐로가 설계한 커뮤니티 센터에 다다른다. 영화는 빈 건물의 곳곳을 조명한다. 말소리들은 높은 천정과 차가운 벽 사이에서 유령처럼 떠돈다. 카메라는 라즐로가 설계한 ‘빛의 십자가’에 머문다. 그리고 몇 십 년을 건너뛰어 라즐로 토스 회고전을 촬영한다. 밴 뷰런 일가는 재등장하지 않는다. 해리슨은 영화에서 증발했다. 이민자 예술가 라즐로의 경험과 유산, 일관된 태도, 그의 고난을 고스란히 견뎌내고 체화한 ‘브루탈리즘’ 건축 예술은 역사에 남았고 기려진다. 그러나 그의 착취자, 미국인 억만장자 해리슨은 악인으로조차 기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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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소되었거나 되지 않은 질문들
- 관람 전 질문: AI 사용이 필요했는가? 연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
: 두 배우의 헝가리어는 훌륭했으나, 워낙 어려운 언어라 세밀한 리얼리티를 위해 녹음된 대사를 다듬는 데에 사용했다고 하던데… 두 인물이 ‘헝가리어를 꽤 능숙하게 구사하는 비헝가리인’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정도로 중요했다면 ‘양해’할 수는 있지 않을까. 헝가리어는 주로 편지 내레이팅에서 쓰였고, (내 생각이지만)헝가리인을 포함한 관객들이 그 완벽함에 감명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허나 워낙 민감한 이슈고… 이렇게 바운더리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것저것 ‘수정’하기 시작하다 점점 배우 각자의 고유성을 침범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을 하며 판단을 유보중이다. 다만 제작진의 AI 사용 결정 ‘탓에’ 오스카가 다른 배우에게 돌아간다면 애드리언 브로디는 속이 좀 쓰릴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는 이미 연기상을 여럿 수상했고 BAFTA 수상 소감에선 사려깊게도 동료 후보들을 모두 호명했다.)
- 관람 후 질문: 영화는 은근히 시오니즘을 지향하고 있는가?
: 조피아는 ‘예루살렘 행’이 소명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을 듣고 “그럼 우린 유대인이 아닌 거니?”라고 혼란을 표했던 에르제벳은 후에 ‘여기선 살 수 없다’며 이스라엘로 가자고 말한다. 아마 브래디 코베도 영화에 대한 반응에 ‘시오니즘’이라는 화두가 등장할 것임을 예상했을 것 같다. 그가 NYFCC 작품상을 수상하며 (이스라엘의 웨스트뱅크 점령을 다룬 팔레스타인 다큐멘터리)<No Other Land>를 서포트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을 간접적 근거로 들 수도 있으나, 당연히 이야기 내 맥락을 먼저 살펴봐야 할 테다. 조피아의 단정을 곧이곧대로 이해해야 할까? <브루탈리스트> 주인공들이 (아마도 1950년대에) 이스라엘 행을 결정하는 바탕에는 막연한 희망과 동경보단 구체적인 좌절이 있다. ‘그나마 가능한 살길’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감독은 “캐릭터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 주위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DAZED]) 라즐로와 에르제벳은 헝가리에서 각각 인정받는 프로 건축가/교수와 저명한 기자였으나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고 서로 이별했다. 아메리카에서 라즐로의 드리밍은 지속적으로 제지당한다. 역시 고초를 겪은 조피아는 두 사람의 관찰자이기도 했다. 헝가리와 미국에서 그들은 ‘살 수가 없’다. 물론 그 ‘살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아온 터전을 침범한다. 허나 적어도 이들 가족의 경우는 이미 ‘건국’된 이스라엘로 향하는 것이지 그 반대의 순서는 아니다.(그래서 문제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영화 전반부에는 트루먼의 ‘이스라엘 국가 선포’ 연설이 보이스오버 되는 씬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을 ‘거꾸로 자유의 여신상’으로 은유하며 허상과 위선 덩어리로 바라보는 <브루탈리스트>는, 미국 대통령의 ‘승인’ 또한 무책임한 제스처이며 허상이라고 암시하는 것일까? 과해석일 수도 있다. (미국은 하얗고 가자지구‘도’ 미국의 것이며 ‘신이 주신 두 개의 성별’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 백악관에 들어앉은 지금, <브루탈리스트>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묻는가?)
기념비적 연기들
아직도 <피아니스트>만이 자주 화자되나, 애드리언 브로디는 꾸준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곤 했다. 다만 때로 ‘도저히 모를’ 작품과 캐릭터를 택했기에 고유의 분위기와 퍼포먼스가 제대로 빛나지 못했을 뿐이다.(가끔은 그가 웨스 앤더슨 픽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대 배경과 캐릭터 설정에서 어쩔 수 없이 <피아니스트>를 떠올리게 되었으나, <브루탈리스트> 작품 자체 만큼이나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는 ‘새로운 고전’이라고 일컬을 만했다. 라즐로는 큰소리를 낼 때 가장 취약해 보이고 가만히 미소 지을 때 가장 단단해 보인다. 압도하고 누르기보단 거센 바람에 바스러지며 꼿꼿이 상처받는 자. 연약하며 우아하고 엉망인 채로 고고한 존재감이라고 할까… 모조리 사랑하기는 힘든 인물이었으나 라즐로 토스는 <디태치먼트>의 헨리와 나란히, 내 ‘애드리언 브로디 최애 퍼포먼스’ 목록에 올랐다. 멋진 서재 리모델링을 보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드미트리마냥 열을 펄펄 내는 해리슨 앞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빼무는 라즐로-보십시오 이것이 애드리언 브로디 입니다. 그래, 늘 당신이 배우로서 좀 더 주목 받았으면 했었다.
펠리시티 존스의 연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굉장했다. 앉아있건 서있건 누워있건 화면 어디에 있건 중심이 되었다. 에르제벳이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라즐로를 위한’ 역할로 남아 아쉽기는 했으나, 그는 이끌리기보다는 이끄는, 무조건적인 응원이 아닌 이해를 선행한 지지를 보내는 동반자였다. 남편이 빠르게 미는 휠체어나 남편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탄 에르제벳은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제지하고 질문하고 따지고 주장했다. 폐쇄적인 구석이 있는 라즐로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고 성공했으며, 이내 남편의 대변자 자리에 위치했다. 헤로인을 맞고 사랑을 나누며 라즐로가 입밖으로 내지 않았을 수도 있는 성폭력 피해를 알게 되는 에르제벳은, 마치 남편의 내면을 읽는 것처럼 보였다. 토스 부부의 베드신들은 기묘하고 불편하고 애처로우며 아름다운데, 육체의 하나됨을 넘어선 생각과 정서의 하나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편집도 편집이었고, 펠리시티 존스의 액션을 애드리언 브로디의 리액션이 받쳐주며 마디마디 환상적으로 맞물리는 연기 합이 대단했다.
+ 가이 피어스도 물론 훌륭했고, 라피 캐시디는 관심 배우 목록에 올렸고, 스테이시 마틴은 ‘아무것도 안 하는’ 역할을 맡았고, 기대했던 이삭 드 번콜은 애드리언 브로디와 공사장 컨셉 화보를 찍은 후 퇴장했고, 조 알윈은 내내 효과적으로 신경을 거스르다 앞서 언급한 롱테이크에서 ‘뭔갈’ 해냈다.
* 참고 인터뷰
DAZED | Joe Alwyn and Brady Corbet on The Brutalist: ‘It’s very, very rad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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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개봉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비> !마고로비, 라이언 고슬링 가수 두아리파까지 핫한 라인업들로 기대는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요 그럼 이번주 개봉작 같이 시작해볼까요~?
바비
Barbie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미국 | 114분
감독: 그레타 거윅
출연: 마고로비, 라이언고슬링, 두아 리파등
개봉: 2023.07.19.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시놉시스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바비랜드'에서 살아가던 '바비'가 현실 세계와 이어진 포털의 균열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켄'과 예기치 못한 여정을 떠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CINE PICK!
그레타거윅 감독은 첫 작품 <레이디 버드>에서 제 75회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했고 <작은 아씨들>로 제 92회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세계에서 주목받는 여성감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연기력과 스타성을 모두에게 인정받아 현채 할리우드에서 활발이 활동중인 마고로비는 <바비>의 제작자이자 주인공을 맡아 놀라운 활약을 펼칠 예정입니다.
인시디어스: 빨간문
nsidious: The Red Door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 미국 | 107분
감독: 패트릭 윌슨
출연: 타이시민스, 로즈 번, 패트릭 윌슨 등
개봉: 2023.07.12.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
시놉시스
<인시디어스: 두번째 집> 이후 램버트 가족이 다시 겪게 되는 끔찍한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조쉬'는 수상한 존재가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느끼고,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한 ‘달튼'은 봉인된 기억 속 빨간 문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램버트 가족에게 연달아 기괴한 사건들이 일어나고과거의 비밀이 끔찍한 악몽으로 되살아나는데…
CINE PICK!
인시디어스’가 5년 만에 다섯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램버트 가족과 함께 서늘한 악몽으로 초대합니다. 영화 ‘인시디어스: 빨간 문’(감독 패트릭 윌슨)은 ‘인시디어스: 두 번째 집’ 이후 램버트 가족이 다시 겪게 되는 끔찍한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인시디어스> 시리즈를 처음부터 함께한 배우 패트릭 윌슨은ㅇ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트라우마를 잊으려고 최면을 받은 가족들에게 10년 뒤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라고 의도를 밝혔습니다.
더 썬
The Son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영국 | 122분
감독: 플로리안 젤러
출연: 휴 잭맨, 로라 던, 바네사 커비 등
개봉: 2023.07.19.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시놉시스
“그 무엇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성공한 변호사로 뉴욕에서 행복한 새 가정을 이룬 피터는 어느 날, 전처에게 아들 니콜라스가 학교를 나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피터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지만 애를 쓸수록 두 사람의 사이는 어긋나기만 하는데…
CINE PICK!
젤레르 감독이 직접 쓴 연극을 바탕으로 연출한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아들이 아닌 아버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아들을 예전 모습으로 돌리려 애쓰는 피터를 보여주면서 과연 좋은 부모는 어떤 것인지,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부모는 자기 행복은 기꺼이 포기해야만 하는 전지, 이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이냐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합니다.
보통의 카스미
I Am What I Am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04분
감독: 다마다 신야
출연: 미우라 토코, 마에다 아츠코, 이토 마리카
개봉: 2023.07.19.
배급: (주)비싸이드 픽쳐스
시놉시스
카스미 said “난 연애도 안 하고 싶고 애초에 그런 감정도 없고 혼자서 살 수 있고 그게 쓸쓸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불행하게 느낀 적도 없어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게 나인 걸 어떡해?” 나는 나일 뿐! LOVE MYSELF! 혼자인 게 가장 행복한 보통의 ‘카스미’가 온다!
CINE PICK!
30대에 접어든 카스미는 점점 또래에서 멀어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카스미는 평생 연애 감정도 성욕도 느껴본 적 없고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성도 여럿 있지만, 혼자가 편하고 지금 이대로의 삶에 만족해 합니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통상적인 기준을 벗어난 카스미를 보며 MZ 세대들이 공감할 만한 영화입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She Likes That
ⓒ 네이버영화
개요: 멜로 | 일본 | 122분
감독: 구사노 쇼고
출연: 카미오 후주, 야마다 안나 등
개봉: 2023.07.19.
배급: 홀리가든
시놉시스
“…를 좋아해, 너만 아는 비밀이야” 그날, ‘그 코너’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숨기고 살아가는 고등학생 ‘안도’와 ‘미우라’. 같은 반 친구 정도로만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우연히 서점의 한 코너에서 부딪히게 되고, 뜻밖에 ‘미우라’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적인 시간들을 함께 보내는 나날들이 많아진 두 사람. 어느새 ‘미우라’는 ‘안도’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
CINE PICK!
웹소설로 인기를 끈 뒤 드라마에 이어 극영화로 제작된 작품입니다.「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호모이지 내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장르는 멜로 로맨스이지만 평범한 로맨스가 아닌 세상의 편견에 부딪히며 우정과 사랑을 아우르는 둘의 관계를 그릴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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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오어 티 영화 후기 / 중국영화 맞아?! / 대만 로코인줄 ㅎㅎ / “스물” 느낌의 유쾌한 코믹 드라마
영화직관하는남자 영직남의 "커피 오어 티"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윈난의 아름다운 풍경과 흥겨운 OST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중국영화, #코미디, #드라마, #팽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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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헐크버스터가 온다!
#왓이프 #아이언맨 #마블레고
2021. 06. 0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왓이프 아이언맨!
00:41 유출된 레고
02:32 왜 사카르에?
03:06 레고가 페이크라면?
03:55 접점이 없는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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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신 테르마이 로마이> 공식 예고편
《테르마이 로마이》가 넷플릭스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일본 만화대상 2010',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단편상'을 수상한 야마자키 마리의 걸작 만화 《테르마이 로마이》가 넷플릭스 시리즈 《신 테르마이 로마이》란 이름으로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이번 시리즈 구성에는 원작자 야마자키 마리도 직접 참여했는데. 왜 루치우스는 욕장 건축가가 되려 했던 것일까? 현대 일본뿐 아니라 에도 시대로도 시간 여행을 하는 그를 만나보자! 원작 만화에선 미처 그리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은 속편으로서 새롭게 제공될 시간여행 목욕탕 코미디. 목소리 출연: 츠다 켄지로 원작 만화: 야마자키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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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메인 예고편
샤오미만 사랑해 온 직진남 샤오룬 하지만 청혼하려던 순간 갑작스런 사고로 저승에 간다. 환생하고 싶으면 붉은 실로 커플 매칭을 하는 월하노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느데, 하필 사사건건 부딪히던 핑키와 파트너가 된다. 드디어 이승으로 내려온 '월하노인' 샤오룬과 핑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 우리가 인연을 맺어줘야 할 인간이 샤오룬이 평생 사랑했던 단 한사람. 샤오미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