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5-01 00:43:14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개성 있었던 일본 영화
<우연과 상상> 영화 시사회 후기
3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일본 영화!<우연과 상상>
하니엘의 영화 미리 알기
스구미와 메이코는 절친이다. 메이코는 스구미에게 소개받은 남자에 대해 어떻냐고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훈훈한 남자이며 첫 만남에 성관계를 하려고 했는데 쉽게 돼질 않았다. 메이코는 카즈야키와 스구미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 물어본다. 카즈야키라는 남자는 전 여자친구가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스구미는 음담패설을 한다. 서로의 이야기가 코드가 통했는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이야기가 계속된다. 스구미가 집에 도착해 내리고 난 후에 메이코는 자신이 가는 목적지와 다른 원래 있었던 회사로 돌아가는데 그곳에는 회사의 사장이자 스구미의 남자인 카즈야키가 있었고 메이코는 계속해서 카즈야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데...
나오는 성적 매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쉽게 몸을 내주는 여자이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나오와 함께 TV를 보는데 자신의 대학교에서 불어(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세가와라는 교수가 쓴 소설로 상을 받는 것을 본다. 사실상 나오도 그 교수님을 아는지라 상을 받은 세가와 교수가 자신의 제자였던 나오의 남자에게 갑질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가와 교수를 찾아가 미인계로 유혹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자식과 남편이 있었다. 세가와 교수 앞에서 나오는 책 중에 자신이 좋아했던 야한 구절을 자신의 목소리로 낭송을 하는데... 과연 나오에게는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걸까?
제논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편리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끊게 되고 예전처럼 편지나 우편으로 소식을 전하게 된다. 나츠코는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지만 존재감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는 동창이 있지만 나츠코는 쉽게 친해지지 못한다. 고등학교 동창회가 끝나고 나츠코는 미카 아야라는 자신과 유독 친했던 동창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미카 아야라는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놀란다.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의 집까지 찾아간 나츠코는 안절부절한다. 그러나 미카 아야와 닮은 여자와 나츠코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이 둘은 과연 어떤 사이로 발전하게 될까?
난해했지만 코믹 요소도 있어서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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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7년'의 끝은 장엄했도다
- (※ 영화 '명량', '한산: 용의 출현' 스포일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10년에 걸쳐 '이순신 3부작'을 기획한 김민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장엄한 마무리였다. 성웅(聖雄) 충무공 이순신의 마지막을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표하는 예우였다.'노량'은 조선과 왜군 간 7년 전쟁의 끝자락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전작인 '명량'에서 명량 해전 이후 전황이 뒤바뀐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박용우)가 숨을 거뒀고 왜군에게 퇴군 명령이 떨어졌다. 명군 도독 진린(정재영)과 함께 고니시 유키나가(이무생) 군을 봉쇄하던 이순신(김윤석)은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와중에 왜군에게 퇴로를 열어주려는 진린과 고니시를 구원하기 위해 500척의 수군을 이끌고 오는 시마즈 요시히로(백윤식)를 앞두고 이순신은 다시 한번 전투를 준비하게 된다.'역사가 스포'인 만큼 '명량', '한산'처럼 이미 이 영화가 흘러가는 방향과 엔딩이 어떻게 될지는 교육 과정을 제대로 마친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김한민 감독이 어떻게 재현할지 관심이 모아졌다.관객들이 원하는 역대급 해상 전투 신을 보여주기 위해 김한민 감독은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초반부터 서사 빌드업에 치중한다. 명군에게 퇴각하는 척 속임과 동시 시마즈를 끌어들여 이순신을 꺾으려는 계략을 꾀한 고니시, 고니시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이순신을 생포하려는 시마즈, 왜군의 퇴각을 승리라 여기며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려는 진린, 아들과 부하들의 죽음을 가슴 한 켠에 묻은 채 왜군 섬멸을 외치는 이순신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와 감정선을 디테일하게 풀어낸다.드라마였다면 느린 호흡으로 캐릭터별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데 할애해도 충분하겠지만, 152분 러닝타임에서 무려 1시간 이상 투자해서 표현한다. 효율적으로 압축하지 못한 채 평면적으로 나열하고 있어 관객들에게 다소 지루하게 다가온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는 이순신의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본격적으로 노량 해전이 시작되는 순간, 지루했던 영화의 분위기가 반전되어 '시간순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이는 마치 전작인 '한산'과 비슷한 전개방식인데도 넋 놓고 보게 만든다.특히 '노량'에서는 '명량', '한산'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야심이 응축된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 100분가량 펼쳐지는 최후의 전쟁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부터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까지 조선, 왜, 명나라 3개 군사들이 한데 뒤엉키는 백병전, 한치 양보 없이 치고받는 해상 전술이 한 데 담겨 할리우드 부럽지 않은 스케일과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중 조선, 왜, 명나라가 핑퐁하듯 절묘하게 이어가는 롱테이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해상 전투와 함께 각국이 처한 상황, 인물들 간 목적 및 욕망들이 묻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전쟁 중 갑자기 튀어나오는 플래시백, 이순신의 내적 감정표현 등이 '명량'에서 지적받았던 과함으로 다가오기 때문. 엔딩에서 장엄하게 표현하며 마무리하긴 하나, 이 부분을 두고 찜찜한 표정을 지을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수많은 배우들이 '노량'에서 나오기 때문에 배우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중 최민식, 박해일에 이어 3번째 이순신을 연기한 김윤석은 앞선 두 배우들과 달리 연기에 힘을 빼면서도 당시 이순신의 감정과 생각들이 이럴 것이며 자신의 방식대로 잘 표현해 냈다. 다만, 진린과 시마즈 등 다른 주요 인물들이 많아서인지 분량 면에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이순신 한 인물에 좀 더 깊게 빠져들고 싶었던 관객들을 100% 충족하지 못했다.이렇게 김한민 감독이 10년 공들인 이순신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시작은 비록 허술했던 부분이 보였으나, 그의 3부작 마무리는 장엄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이순신 3부작 이후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포함한 7년 전쟁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밝혔는데, 과연 드라마로 구현하는 김한민 감독의 앵글이 어떨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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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디 옆에 오은영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좀 달랐을 텐데
철이 들 때가 됐는데
케이시. 이제 그만하자. 차에 탑승한 케이디 가족. 여느 때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케이디는 엄마 말을 안 듣고 있다. 어떤 것에 먹이를 주고 있는 케이디. 원래 있을 때 잘해야 하는 법인데 부모님은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다. 스크린 타임 30분으로 하지 않았어? 언쟁이 오가는 부부. 금세 언쟁은 눈길에 대비를 안 했다는 소재로 이어진다. 안전하게 벨트 끼고 아무것도 안 해도 모자랄 판에 돌발행동을 한다. 놀라는 케이디의 엄마. 케이디! 안전벨트 해! 차는 잠깐 흔들릴 정도로 방향을 주체하지 못했다.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잠깐 멈춰 서기로 한 부부. 제설차가 눈을 치울 때까지 잠시 대기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때, 큰 차가 갑자기 케이디 가족을 들이받는다.
젬마는 AI를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일 하고 있는 엠마. 전 세계 만국공통으로 통하는 것이 직장생활 아닌가. 경쟁사의 표절부터 달달 볶는 상사까지 여러모로 짜증 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원래 훈수가 창작과 실행보다 쉬운 것이다. 상사의 이래라 저래라에 짜증 난 젬마는 자기가 만든 기계 ‘메간’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다. 시원찮은 상사의 반응. 상사 데이비드에게 메간을 보여줄 때 이 기계가 좀 이상한 리액션을 보여준 것도 한몫한다. 그런데 이 메간만큼이나 젬마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카 케이디다. 언니를 잃은 젬마. 사실 마음이 많이 복잡하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일에 전념하지만 그녀에게도 가족을 잃은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다. 임시 보호자가 된 젬마. 케이디에게 뭔가 힘이 될 수는 없을까?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젬마의 직업이었다. 그래. 내가 AI를 만들었었지? 메간과 케이디가 서로 잘 지내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일거양득 아닐까? 언뜻 보면 빛나는 센스지만 이 아이디어는 오히려 케이디와 젬마를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블룸하우스 맛
블룸하우스는 2010년대 중반부터 관객에게 신선한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우선 이야기에 그렇게 제한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큼 발랄함은 영화 내적을 굉장히 플러스 요소가 된다. <해피 데스데이>나 <살인 소설>, <인비저블 맨>은 뭐 뻔하다면 뻔한 호러지만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 잘 눌러 담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생각한다. <2014년 <위플래쉬>부터 시작해서 2017년 <겟 아웃>까지 데이미언 셔젤과 조던 필이라는 신인 감독을 등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 두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좀 알아주는 아티스트들 아닌가? 작년 <놉>이나 올해 <바빌론>까지 수작을 뽑아내는 데 있어 안목이 좋았던 제작사의 선택이 잘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M. 나이트 샤말란과 스파이크 리라는 베테랑을 다시 등장시킨 전례도 있다. <23 아이덴티티> 시리즈의 샤말란도 뭐 나름 성과가 있지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석권한 <블랙클랜스맨>은 스파이크 리의 직업이 인권운동가가 아닌 영화감독임을 세계에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신선한 선택을 보여주는 블룸하우스답게 이 영화도 남다르다. 일단 AI와 호러라는 선택이 좀 익숙해 보이지만 영화가 가지는 선택은 다른 영화들과 다른 느낌은 분명히 있다. 우선 기존 호러 영화가 공포를 다뤘던 방식은 1) 인간이 무섭거나 2) 초자연적인 행동이 무서운 것이 주류를 이뤘다. 우리가 잘 아는 <랑종>이나 <곡성>은 2)에 속하고 인간이 무서운 쪽은 <미드소마>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가장 무서운 이유는 AI 때문이다. 신선하다. 이 신선한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는 기괴함이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이끌어간다. 메간의 얼굴을 보면 글쓴이는 솔직히 그래픽을 입힌 티가 너무 났다. 너무 인간같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는 어떤 분들은 불쾌한 골짜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이 AI가 기계의 사용자인 젬마의 계산을 어떻게 뛰어넘는지도 역시 호러 요소로 작동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뉴스들을 생각해 볼 때 많은 분들이 ‘언젠가 AI가 인류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뉴스들을 영화가 어떻게 활용했을까? 막연히 ai가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케이디의 정서적 교류와 예측불가능함이라는 양가적인 특성으로 소화한 것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기획력이 좋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의외로 철학적
영화에서 내적으로 작동하는 모티브는 두 가지다. 첫 번째. 가족구성원의 유대감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다. 우선 전자 가족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는 한 인물의 직접적인 대사로 나온다.’ 넌 언제?’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약간 초중반부에 나오긴 하지만 이 문장이 작품 전부를 꿰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반부. 젬마는 케이디에게 선물을 했다. 바로 AI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젬마는 제이디에게 이상한 선물을 했다. 여기서부터 젬마는 케이디에 대해서 좋은 어른으로서 아이를 성장시킬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 젬마의 선택은 2부로 이야기가 전환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반복된다.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별로 가족으로서의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이 부주의는 영화의 핵심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임감은 중반부 찍고 벌어지는 대환장파티의 결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젬마의 내적인 결함을 영화의 원동력으로 사용한 것이다. 극의 서스펜스와 모티브를 병치시킨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한 질문은 첫 번째 모티브도다 더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장 첫 장면 케이디가 부모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또 실험실 내부의 사람들은 영화 끝에 가서 어떤 입장에 놓이는지, 젬마의 부주의가 어디까지 반복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영화 자체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 영화에서 인간과 기계는 주종관계가 뒤엎어진 것처럼 보인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모든 리액션들이, 인간이 주체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분명히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위해 잠식된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이 부분을 여러분이 집중해서 본다면 좀 색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때 사람이 더 주체적으로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상한 준비물
뭐 이렇게 나름 철학적인 것도 넣고 장르적인 특색도 어느 정도 넣었다고 해서 단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영화 내적인 이야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는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영화 내적으로 품고 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를 지탱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중에서 메간이 벌이는 일들이 과연 가능할까? 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근본적인 설정에서도 의문점이 생겼다. 처음 케이디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다음에 바로 메간을 선물하는 행동이 좀 의문이었다. 영화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설정이지만, 또 젬마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무조건 필요한 일이지만 사건 자체의 현실성이 좀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뭐 케이디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모를 수 있다. 영화 내적으로 눈이 쏟아졌던 것이 교통사고의 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 부부와 최소한의 대화도 없이 그런 선물을 했다는 것은 의아하다.
또 중반부 기점 찍고 전반과 후반의 이야기 전개가 확 달라진다. 후반부부터 메간의 광기가 폭발한다. 이 광기가 폭발하고 난 후는 흥미롭지만 전반부의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후반부가 오히려 더 폭발적이어서 전반부가 인간적인 느낌? 특히 (이미 해외에서 유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에 메간 춤추는 신 웃기다. 이 춤추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 가치가 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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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쪽처방
요새 즐겨보는 <금쪽같은 내 새끼>는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해 부모에게 육아법을 코칭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선 이를 '금쪽 처방' 해준다고 표현한다. 원조 육아 프로그램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보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더 중점으로 다뤄주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면들이 꼭 등장한다. 그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하는 심리 검사에서 위험 수준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 상담 센터에 강제로 가야 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상담 센터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해진 기간 동안 억지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하는 심리 검사는 그냥 행복하다고 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성인이 되서야 나는 어린 시절 아픔을 과거로 묻을 수 있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나오는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화를 보다 정말 금쪽 처방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아이를 보게 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케빈’이었다.
영화 전반부는 엄마인 에바가 주로 나온다. 창백한 얼굴에 초점 없는 눈으로 나오는 에바는 갑자기 동네 이웃에게 한 대 맞기도 하고 집과 차가 모두 빨간 페인트에 덮이기도 한다. 무슨 죄라도 지은 걸까 생각이 들 때, 과거로 보이는 숏컷 머리에 에바가 나오고 중심 사건으로 보이는 장면이 슬쩍 나온다. 사람들이 모여있고 구급차, 경찰차들이 보인다. 에바는 사람들을 헤집고 걸어간다. 후반부에는 남편과 아들, 딸이 등장하며 에바의 과거 모습이 주로 나온다. 아들인 케빈은 전형적인 중2병 아이같다. 그리고 에바는 그런 케빈을 어려워한다. 다정한 부자관계와 달리 모자관계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케빈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말을 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말을 하지 않아서 병원에 데려갔지만 정상이었다. 공놀이를 하며 케빈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케빈은 엄마 머리 꼭대기에 있는 듯 행동한다. 여행가인 에바가 지도를 붙여 꾸며놓은 방 안을 물감으로 더럽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케빈은 항상 남편 앞에선 순한 양이 됐다. 아이가 엄마에게 애정을 원하는 걸까 싶기도 했지만 뭔가 께름칙했다.
현재로 돌아와 삶을 잃은 듯 살아가는 에바가 교도소를 방문한다. 교도소에는 머리가 깎인 케빈이 앉아있다. 그리고 미스터리였던 중심 사건이 펼쳐진다. 케빈은 어릴 적부터 화살을 가지고 놀았다. 청소년이 되고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화살로 케빈은 살인 사건을 일으킨다. 학교 체육관에 출입구를 걸어 잠그고 친구들을 쏜다. 그녀에게 주먹을 날렸던 이웃집 여자는 살인사건 피해자 엄마였다. 사람들을 헤집고 케빈을 찾던 에바는 그가 가해자임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마찬가지로 활에 맞아 죽어있는 남편과 딸을 본다. 케빈이 선사한 엄청난 사태는 에바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자유분방한 여행가였던 에바는 케빈을 가지고 자유를 포기했다.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 일인지 영화 속에서 짧게 등장하는 에바의 육아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에바는 부족할 순 있어도 최선을 다한 엄마였다. 그건 분명했다. 그것도 모르고 에바를 망가트린 케빈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케빈이 선천적 싸이코패스인지, 후천적 싸이코패스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에바가 케빈을 원치 않았고 케빈을 육아하는 데 있어 옳지 못한 행동들이 있었기 때문에 후천적 싸이코패스가 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엄마가 처음인데 어떻게 육아가 완벽할 수 있을까. 내 아이도 가끔은 미워 보이는 법이라 그랬다. 서툴러서 한 실수에 비해 케빈의 대가는 너무 컸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나오는 아이들처럼 금쪽 처방을 받았더라면 케빈은 달라졌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가 케빈에게 살인 동기를 묻자 케빈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에바와 케빈이 포옹한다. 이 장면들을 보며 케빈이 교화될 수 있는 아이구나 싶었다. 사실 아버지와 동생까지 죽인 살인자이지만 그래도 변명거리가 있다면 그 아이는 아직 아이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보통 아이가 아닌 케빈이 설계한 계획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긴했다. 오은영 박사님이라면 어떤 금쪽 처방을 내렸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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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온한 공동체를 지탱하는 온기
불온한 공동체를 지탱하는 온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느 가족>(2018) 비평
<앙: 단팥 인생 이야기>와 일련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에 출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배우 기키 키린이 2018년 9월 15일 향년 75세에 세상을 떠났다. 30대부터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할머니 역할을 도맡아왔던 그녀는 유작 <어느 가족>에서 부쩍 수척해진 얼굴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다들 고마웠어.”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실제 배우의 육체와 겹쳐 묘한 감상을 길어 올린다. 그러나 죽음을 암시하는 배우의 신체와는 별개로 시바타 하츠에의 죽음은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차근히 밟아온 나에겐 다소 의문스러운 죽음이다. 이전 히로카즈의 가족영화들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 사망한 가족의 자장을 좇거나, 결말부에 가족 구성원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담아왔다. <어느 가족>의 하츠에처럼 서사 중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은 그의 영화 목록에서는 이례적이다. 특히 그 대상이 그간 그의 가족들을 정신적으로 지탱해온 어머니라는 점에서 더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면 하츠에는 왜 영화 중간에 죽어야 했으며, 왜 하필 그녀가 죽어야 했는지 영화 전반을 둘러보며 그녀의 사인을 밝혀보자.
히로카즈 감독은 국내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어로 ‘만비키’(万引き)라는 ‘shoplifters’는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라는 뜻과 동시에 ‘그들 자신이 여러 곳에서 도둑질을 당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있다.”(<씨네21>, 2018.5.30.)라고 밝혔다. 후자의 의미를 따르면, 원제 <万引き家族>은 ‘훔쳐진 가족’으로 번역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훔쳐진 가족인가. 시바타 가족은 혈연이 아닌 사회 혹은 실제 가족에게서 버려진 구성원들로 이뤄진 유사 가족이다. 유리(사사키 미유)와 쇼타(죠 카이리)는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노부요(안도 사쿠라)를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부르진 않지만, 가족 외부의 사람은 쇼타와 함께 거리를 지나가는 노부요를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가족의 형상을 충족하고 있다. 그러나 어설프게 형태만 충족한 이 가족은 사회 시스템 앞에서 철저히 무기력해진다. 사회는 영화 종반부에 그들을 프레임 속 각자 다른 자리에 불러 세우고 유사 가족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시바타 가족을 해체한다. 즉, 사회는 혈연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유사 가족을 훔쳐낸다. 그런데 그 역도 성립한다. 시바타 가족은 동기의 무고함을 차치하고 보면 진짜 가족에게서 구성원들을 훔쳐 온 가짜 가족이다. 오사무는 차에 방치된 쇼타를 주워오고, 노부요는 유리에게 폭력을 가하던 진짜 가족에게서 아이를 법적 절차 없이 입양한다. 하츠에 역시 아키(마츠오카 마유)가 전 남편의 손녀인 것을 알면서도 아키의 가족에게 묵인하고, 시바타 부부도 오사무가 노부요에게 폭력을 가하던 남편을 죽인 뒤 사회적 계약 없이 맺어진 관계다.
그런데 하츠에가 시바타 부부를 집으로 들인 사연은 불투명하다. 단지 하츠에가 그들을 선택했다는 대사만 주어질 뿐 구체적인 동기는 말해지지 않는다. 하츠에는 전 남편이 죽은 뒤에도 그가 재혼하여 낳은 아들을 찾아가 위자료를 받아내는 속물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연금을 목적으로 집에 얹혀살며 그녀의 돈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시바타 부부를 가족으로 선택한 이유가 의뭉스럽다. 하츠에의 진짜 아들은 그녀에게 연락 한 통 없는 무심한 아들이고, 그녀는 보험을 들어서라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부고를 전하고 싶어 한다. 정황상 그녀는 자신의 노후를 함께 해줄 가족이 필요했던 인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가짜 가족에게는 '워크셰어(Workshare)'라는 공동의 규칙이 존재한다. 오사무가 쇼타에게 하는 “유리도 뭔가 도움이 되어야 같이 살기 편하지 않겠어?”라는 발언에서 시바타 가족은 암묵적으로 그 공모를 준거로 구성원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금으로 경제적 자족성을 갖춘 하츠에가 시바타 부부를 받아들인 이유는 시바타 가족의 속물적인 규칙과 어긋난다. 이 불균질을 감수하고서라도 히로카즈 감독이 그녀를 유사 가족 안에 편입시킨 이유가 뭘까.
하츠에는 이름의 존재에서도 다른 가족들과 궤를 달리한다. 하츠에를 제외하고 시바타 가족의 구성원들은 가족 외부에서 불렸던 이름과는 다른 가명을 하나씩 갖고 있다. 유리를 찾는 TV 뉴스를 보고 그녀를 몰래 키우기로 합의한 가족들은 유리에게 ‘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그녀를 숨긴다.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보다 전이지만, 친부모에게서 받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쇼타 역시 오사무로부터 그의 본명인 ‘쇼타’라는 이름을 이어받았다. 시바타 부부와 아키 역시 본명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쇼타-오사무, 유코-노부요, 사야카-아키. 숨겨야 하거나 숨기고 싶은 이름을 가진 인물들의 본명이 사회와 진짜 가족에게서 밀려났을 당시의 이름이라고 본다면, 그들은 가명을 지어 과거의 이름을 숨기려 한다(가족이 해체되는 취조실에서 사회로부터 숨겨진 이름이 끄집어내지는 귀결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이름은 하츠에로부터 이어진 ‘시바타’라는 성으로 묶인다. 즉, 과거의 이름들을 은닉하기 위해 지은 새로운 이름들은 하츠에의 성을 받아 온전한 이름으로 기능한다.
이름 외에도 아이들은 어른으로부터 무엇인가 유전된다. 쇼타와 유리는 각각 가족을 부양하려다 다친 오사무의 오른발과 가족으로부터 받은 노부요의 상처가 유전처럼 전해진 아이들이다. 오사무는 공사현장 텅 빈 공간에서 “다녀왔어” “어, 쇼타”라고 자문자답한다. 오사무의 본명이 쇼타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관객들은 그가 불이 꺼진 곳에서 자신을 반겨줄 누군가를 바라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빠라는 호칭에 집착하던 오사무는 버려진 아이를 어린 시절 외로웠던 자신의 분신으로 삼아 “어, 쇼타”라고 반겨줄 아버지가 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남편에게서 폭력을 당한 기억이 있는 노부요는 유리가 친부모에게서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그녀는 욕실에서 자신의 상처와 닮은 유리의 상처를 보고 아이를 끌어안아 몸에 품는다. 어쩌면 시바타 부부는 아이들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비가역적인 가족력처럼 쇼타는 다시 고아가 되고 유리는 다시 폭력적인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남은 하츠에로부터 아키에게는 무엇이 유전되었을까. 쇼타와 유리가 다시 시바타 가족이 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키는 아무도 없는 하츠에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가 섹스 노동을 할 때 가명으로 동생의 이름을 쓰는 것으로 보아, 아키는 동생에게 악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녀는 하츠에가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금전적 원조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진짜 가족이 아닌 하츠에의 집에 다시 돌아올 정도로 실제 가족에게 감정의 골이 깊다. 그래서 그녀는 하츠에와 같이 실제 가족이 존재하면서도 그들과의 관계를 끊고 홀로 살아가려 한다. 애정결핍이 있고 속물적인 가족의 규칙에 반감을 표했던 아키는 하츠에에게서 집을 이어받아 새로운 대안 가족을 만들어 하츠에의 자리를 대신할 혐의가 있다. 즉, 집의 소유주이자 재개발을 넌지시 바라는 부동산 업자로부터 집을 사수하는 하츠에는 아키에게 다른 가짜 가족이 거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집을 물려준다.
<어느 가족>에서 버려질 법한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집의 풍경은 마치 버려진 시바타 가족의 은유처럼 보인다. 일본 가족영화의 뿌리인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다다미방처럼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집은 미학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가족은 그 단어의 피상적인 뜻처럼 집으로 묶인 집단이다. 따라서 사회 시스템 속 가족의 형성과 위기를 탐구해온 히로카즈의 영화적 관심사에서 집은 포기할 수 없는 무대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집은 사회의 공간과 대비하여 의미를 형성해왔다. <어느 가족>의 집도 사회와 시바타 가족을 구분하는 경계처럼 존재한다. 영화 초반부 집 내부는 가족의 형성이 주는 안온한 기운이 형형한 공간이다. 오사무의 자상한 얼굴과 노부요의 모성은 관객에게 시바타 가족 사이에 복류하던 도덕적 균열을 가리는 알리바이로 작용한다. 그들은 관계에서부터 사회의 윤리를 비껴가지만, 외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집 안에서는 문제없는 가족처럼 보인다.
과거를 숨기려는 이름들에 성을 주고 가족을 사회와 경계 지어주는 은닉처를 제공하는 하츠에는 시바타 가족 구성원들에겐 집과 같다. 그래서 집 밖의 공간인 해수욕장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으며 가족이 되려는 그들을 보면서 하츠에는 마치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안녕을 고한다. 그 이후 집에 묻힌 하츠에는 시바타 가족이 사회로부터 해체되는 취조실 시퀀스 도중 그녀 역시 집에서 꺼내진다. 하츠에가 집이고 그 집이 사회로부터 시바타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였다면, 하츠에의 죽음으로부터 가족이 사회에 노출되는 건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어느 가족>은 집 내부에 편재했던 따스한 온기를 결말까지 안일하게 이어가지 않는다. 영화는 하츠에의 죽음 이후, 피가 아닌 마음과 유대로 연결되었다고 말하던 가짜 가족들의 옆구리 바짝 서늘한 공기를 밀어 넣는다. 하츠에가 죽자 오사무와 노부요는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녀를 묻기 위해 욕실 바닥을 판다. 양심의 가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얼굴은 벽 너머로 할머니의 시체를 쓰다듬는 아키의 슬픈 손짓과 대비되어 섬뜩하다. 뒤이어 시바타 부부는 하츠에의 유산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한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을 방치한 어머니를 악인으로 비추지 않음으로써 사회 시스템의 부재를 지목했던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에선 어른을 포함한 가족 안으로 카메라를 끌고 와 문제를 가족내부에서도 진단한다. 단순히 사회를 적으로 두고 투쟁하는 가족을 숭고하게 그리지 않고 가족 내에 산재한 위태로움을 기어코 들춰내는 이 영화는 가족의 실패를 사회 시스템만의 잘못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유사 가족의 나체는 아이 쇼타에 의해 드러난다. 늙은 하츠에가 불온한 가족을 지탱하는 온기였다면 어린 쇼타는 태만한 가족의 폐부를 찌를 냉기다. 홍수정 비평가의 “누군가는 가족 모두를 경찰 앞에 불러모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영화가 한 세계의 문을 여는 방법이 진정 어린아이의 몸에 상처를 새기는 것뿐인가."(<씨네21>, 2018.08.16.)라는 의견에는 함께할 수 없다. 쇼타는 도덕적 규범에 게을렀던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가족 외부에 호기심을 피력하는 인물이다. 하츠에가 죽자 그녀가 가려주던 가족의 불온을 감지한 쇼타는 유리에게 도둑질의 전이를 한 차례 막아준 문방구 주인의 죽음을 목격한다. 그래서 이제 아이는 두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나선다. 마트에서 유리의 도둑질은 들키지 않았지만, 쇼타는 양파를 들고 도망치며 주의를 끈다. 다시 말해, 쇼타는 유리가 걸릴 걸 두려워한 게 아니라 도둑질하는 행위 자체를 막기 위해 도망친다. 그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자문했을 것이다. 결국 아이는 가짜 가족의 집이 아닌 막다른 다리를 선택한다. 홍수정 비평가의 의문이 생긴 이유는 상처를 피해의 흔적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쇼타의 상처가 시바타 가족이 편안하게 이어가던 잘못된 내력에서 절연하려는 결연한 성장통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가족을 예비할 어린아이 손에서 이뤄져야 한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쇼타의 환부다. 영화는 쇼타가 다리에서 떨어져 다친 발을 오사무의 다친 발과 같은 오른발로 슬며시 겹쳐둔다. 오사무의 발은 사회 서비스인 산재보험에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 쇼타의 다친 발은 쇼타를 버리고 도망치려는 다른 가족들에 의해 방치된다. 그들의 환부는 부위만 같을 뿐 각각 사회와 대안 가족에 의해 곪아간다. 즉, 영화는 쇼타와 오사무의 환부에 외면하는 방관자를 다르게 지목한다. 이 뒤바뀐 진술 사이에 하츠에의 죽음이 있다. 사회 시스템의 부재가 가족의 내부결함으로 도치되는 경계에서 가족을 아슬아슬하게 이어주던 집으로서의 하츠에가 사라지는 건, <어느 가족>이 함께 지목하려 했던 두 의문을 스크린 위에 세우기 위한 서사적 결단인 셈이다.
유사 가족의 무력함 이전에 가족 내에 떠돌던 생기를 목격했던 나로서는, 취조실의 조사관이 시바타 가족에게 묻는 “아이에게 도둑질을 시킨 게 양심에 걸리지 않았나요?” “아이에게는 부모가 필요해요.”와 같은 선명한 발언들이 시바타 가족에게 심정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 그런데 조사관의 물음은 언젠가 시바타 가족이 스스로 물었어야 하는 지연된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오사무의 “가르칠 게 도둑질밖에 없었다.”와 노부요의 “누군가가 버린 걸 주워왔을 뿐이다.”라는 답변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오사무가 아버지로서의 해야 한다고 믿었던 역할이 오인된 착각이었고, 자신의 상처가 아이에게 이어지지 않게 하려던 노부요의 애처로운 자기방어였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끝끝내 가족으로 불리지 못하고 다시 부모를 잃어버린 쇼타와 아파트 난간으로 내몰린 린의 얼굴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가족의 형성과 해체만 보여줄 뿐 아이들은 시작과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이 막을 내린다.
<어느 가족>의 돌아온 결말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생략된 세계를 보여준다. 시바타 가족은 쇼타를 버리고 도주하려다 한 빛에 포착되는데, 조명을 든 주체가 등장하지 않아 마치 객석에서 뻗어 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치 쇼타를 버리려는 시바타 가족의 이기심이 관객에게 들킨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에 이어서, 취조실 장면에서도 시바타 가족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흡사 그들이 관객에게 답변하는 듯 보인다. 사회와 유사 가족, 두 집단 모두의 불완전함을 전시하며 끝나는 영화는 막연한 낭만주의적인 희망을 품지 않는다. 다만, 영화의 시작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유리가 침묵으로 거부의 의사를 표하고 스스로 난간 밖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쇼타가 이제는 아빠를 추억하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유리를 구해줄 새로운 가족의 부재와 쇼타의 속삭임이 오사무에게 닿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쇼타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유리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목격자로서 관객이 존재한다. 시바타 가족의 자기변호와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언급한 영화는 그 이상 말하지 않는다. 이제 유리와 쇼타가 자라 오사무와 노부요가 될지도 모르는 심증만 남은 재판에서 유일한 증인인 관객이 발언할 차례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헤운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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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4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주, 한국 작품이 많이 개봉을 하는데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4월 넷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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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11분
감독: 김지훈
출연: 설경구, 천우희, 문소리 등
개봉: 2022.04.27
배급: (주)마인드마크
줄거리
명문 한음 국제중학교 학생 ‘김건우’가 같은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남긴 채,
의식불명 상태로 호숫가에서 발견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
하지만, 담임 교사 ‘송정욱’(천우희)의 양심 선언으로
건우 엄마(문소리) 또한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다.
세상의 이목이 한음 국제중학교로 향하고,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가해자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데…
관전 포인트
늘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내는 배우 설경구, 천우희, 문소리가 만나 기대를 높이고 있는데요. 특히 영화의 제목이 매우 강렬해 사람들에게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대두되고 있는 문제인 학교 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봄날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02분
감독: 이돈구
출연: 손현주, 박혁권, 정석용 등
개봉: 2022.04.27
배급: 콘텐츠판다
줄거리
한때는 잘나가던 큰형님 '호성'(손현주). 8년 만에 출소해 보니 남보다 못한 동생 '종성'(박혁권)은
애물단지 취급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오랜만에 만난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는 인맥 다 끌어 모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밑천삼아 기상천외한 비즈니스를 계획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세력 다툼을 하는 두 조직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눈치라고는 1도 없는 '호성'의 친구 '양희'(정석용)가 술에 취해 오지랖을 부리는데...관전 포인트
따스한 공감을 전하는 영화 <봄날>은 이돈구 감독이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힘없는 뒷모습을 보고,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봄날을 그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시작하게 된 영화라고 합니다. 주역 6인의 연기 경력이 도합 152년이라고 하니 연기 하나만큼은 믿고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쿠폰의 여왕
ⓒ 네이버 영화
개요: 코미디 | 미국 | 110분
감독: 아론 고뎃, 기타 펄라필리
출연: 크리스틴 벨, 커비 하월 버티스트 등
개봉: 2022.04.27
배급: (주)영화특별시SMC, (주)왓챠
줄거리
쿠폰 모으기를 삶의 낙으로 삼으며 마트 직원에게 ‘쿠폰으로 창조 경제’를 설파하던 주부 코니.
어느 날, 공짜 쿠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웃집 절친이자 유튜버 꿈나무인 조조를 설득해 실행에 착수, 대박을 터뜨린다.
비즈니스 대성공의 기쁨을 만끽하며 명품부터 슈퍼카, 최신 무기 쇼핑까지 돈세탁에 열중하던 그때,
수상함을 감지한 마트 손실 방지 전문가 켄이 본격 수사에 나서는데…!관전 포인트
<겨울왕국>의 안나, 그리고 <가십걸>의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로 국내에서 유명해진 배우 '크리스틴 벨'. 코미디가 너무 잘 어울리는 배우이기에 관객들에게 또 어떤 웃음을 선사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또한 <크루엘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커비 하웰-밥티스트도 출연하여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달빛 그림자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92분
감독: 에드문드 여
출연: 고마츠 나나, 미야자와 히오 등
개봉: 2022.04.27
배급: (주)영화사 오원
줄거리
행복한 날들이 무심코 지나가던 중 ‘사츠키’의 연인 ‘히토시’에게 갑작스런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 이후 ‘사츠키’는 깊은 슬픔에 짓눌려 지내는데…일상을 되찾아 가는 그녀 앞에 나타난 ‘우라라’ 그녀에게 이끌려 ‘달 그림자 현상’에 조금씩 다가간다.
관전 포인트
불가사의한 현상을 소재로 잡고, 여러 판타지적인 요소가 첨가된 로맨스 영화 <달빛 그림자>.
로맨스 장인이자, 영화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 배우 고마츠 나나가 주연을 맡았다.
또한 국내에 많은 팬을 보유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기에 기대를 한층 높이고 있습니다.
평평남녀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21분
감독: 김수정
출연: 이태경, 이한주, 이봄 등
개봉: 2022.04.28
배급: 씨네소파
줄거리
바쁜 회사일로 연애는 못하고 기막힌 아이디어는 까이기 일수 승진은 남의 이야기
열정만렙 33살 만년대리! 우리의 영블리 영진.
어느 날, 능력은 없지만 빽은 있는 낙하산 준설이 그녀 앞에 떨어지고
하루도 평평할 날 없는 영진의 고달픈 일상이 시작되는데…관전 포인트
이 영화는 김수정 감독이 친구의 직장생화에 대해 듣다가 친구와 썸을 타게 된 남자 동료의 심리가
흥미로워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독립영화계에서 유명한 배우 '이태경'이 스크린에 컴백해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 네이버 영화
개요: 공연실황 | 영국 | 122분
감독: 브랫 설리반
출연: 맷 헨리, 킬리언 도넬리 등
개봉: 2022.04.28
배급: CGV ICECON
줄거리
폐업 위기의 구두공장을 물려받은 ‘찰리’는
우연히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과 다른 ‘롤라’를 만나 공장을 일으켜 세울 빅 아이디어를 얻는다.
많이 찍어서 싸게 파는 보통 구두 대신 적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틈새시장 공략!
80cm 남성용 부츠 ‘킹키부츠’가 바로 그 아이템이다. 둘은 ‘킹키부츠’를 완성해 패션쇼에 서기로 하지만,
신발끈 풀리듯 자꾸 작은 문제들이 생기고 마는데...관전 포인트
국내에서 벌써 4연을 올렸고, 곧 5연을 올릴 예정인 <킹키부츠>. <뮤지컬 킹키부츠 라이브> 영국 웨스트엔드의
공연 실황을 담은 작품입니다. 해외를 나가기 어려운 현재, 극장에서 해외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OTT 공개 예정작
괴이
ⓒ TVING
개요: 스릴러 | 한국 | 6부작
감독: 장건재
출연: 구교환, 신현빈 등
개봉: 2022.04.29
스트리밍: TVING
줄거리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그것'의 저주에 현혹된 사람들과
전대미문의 괴이한 사건을 쫓는 고고학자의 이야기.
관전 포인트
포스터와 티저 속에서 풍기는 기묘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는데요.
<방법>, <부산행>, <반도>에서 극본을 맡았던 연상호 감독이 극본을 맡고,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감독인
장건재 감독이 감독을 맡아 기대감을 모으고 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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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연 | 발버둥칠수록 벗어날 수 없는 업보의 늪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채업자'(조진웅)에게 진 빚을 아직 갚지 못한 '박재영'(이희준). 기한이 다가올수록 그는 마음이 급해진다. 이에 아버지를 죽인 후 사고사로 위장하고, 사망보험금으로 사채를 갚기로 결심한 재영. 그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족 출신 살인 전과자 '장길룡'(김성균)에게 아버지 살해를 의뢰한다. 하지만 길룡이 아버지의 사망을 사고사로 위장하는 데 실패하면서 재영의 계획은 예상 못한 나비효과를 초래한다.
한편, 한의사 '한상훈'(이광수)는 애인 '이유정'(공승연)과의 데이트 도중 음주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다.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목격자까지 생기자 상훈은 사고를 숨기려 한다. 시체를 암매장하고 목격자 '김범준'(박해수)의 입을 돈으로 막으려는 것. 그러나 범준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해 오면서 그의 계획은 또 다른 사고를 낳고, 사건과 사고가 연이은 끝에 범준, 재영, 유정, 그리고 '이주연'(신민아)의 악연이 모습을 드러낸다.
업보로써 직조한 피카레스크 스릴러
힌두교나 불교 같은 인도 계열 종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카르마(Karma), 곧 업과 업보다. 이들 종교에서는 모든 지각 있는 존재의 행위와 결과가 그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연쇄적으로 묶여 있다고 여긴다. 원인으로 작용하는 그들의 생각이나 언행은 업이고, 업의 결과는 업보다. 업에 따라서 업보는 달라질 수 있다. 선업을 쌓았다면 좋은 업보를, 악업을 쌓았다면 나쁜 업보를 감당해야 한다.
이때 업보는 당장 행위자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언젠가는 되돌아온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 다다음 생, 혹은 사후의 내세에서라도 업보는 행위의 당사자에게 무조건 되돌아간다. 인도 계열 종교는 대체로 한 개체가 죽더라도 소멸하지 않고 윤회하는 세계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 업보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해탈을 통해 윤회의 수레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검사외전>, <리멤버>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이일형 감독의 신작 <악연>은 'Karma'라는 영어 제목에 맞게 업보의 수레바퀴에 갇힌 이들을 조명한다. 무관해 보이는 캐릭터 7명이 어떻게 연이 닿고, 그 악연이 업보가 되어 되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에피소드 6개를 앉은자리에서 보게 만드는 지독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악연>의 구조와 구성 자체가 업보의 의미와 무게를 체감할 수 있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하지만 <악연>의 뒷맛은 개운치 않다. 중독적인 첫맛과는 다른 이질적인 맛이 느껴진다. <악연>은 업보의 굴레에 갇힌 이들만 보여주지 않는다. 후반부에서는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들과 그 방법도 보여주고자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악인들이 얽히고설키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분위기가 깨진다는 것. 그 결과 중반부까지의 임팩트도 빛이 바래고 만다.
설계된 반전
<악연>의 첫인상은 독특하다. 수많은 반전 덕분이다. 얼핏 보기에 <악연>의 반전은 장르적 특성 같다. <악연>이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악행에 토를 달지 않고, 도덕적 옹호도 하지 않는 피카레스크 장르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만 보더라도 주연을 제외하면 빚쟁이, 사기꾼, 살인자, 꽃뱀, 불륜남 등 악인으로 가득하다. 서로서로 뒤통수를 쳐도 어색하지 않은 판이 처음부터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악연>의 반전은 장르적 특성과는 별개의 작법에 가깝다. 단순히 주인공들이 변심하거나 상대를 배신하는 전개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반전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유도하기 위한 구조적 설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악연>의 반전은 일관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건의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사건의 원인을 나중에 보여주면서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앞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식이다.
일례로 상훈과 유정은 처음에 연인처럼 보이지만, 이내 유정이 범준과 작당해서 상훈의 돈을 털어먹으려는 사기꾼임이 드러난다. 심지어 상훈도 일방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한참 후에 등장하면서 더 큰 충격을 안긴다. <악연>은 이러한 반전의 결과를 각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원인은 다음 에피소드에 배치하면서 작품의 유기성과 몰입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인과의 역순으로 풀어낸 업보
<악연>의 반전은 그 자체로 영화 제목이자 주제의식인 'Karma(업보)'라는 개념을 영상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업보라는 개념은 단순히 직선적인 인과관계를 뜻하지 않는다. 하나의 원인이 있을 때, 그 원인이 다방면으로 영향으로 끼치면서 두 개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기에 업보는 의도치 않은 나비효과를 유발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언제나 행위자에게 되돌아온다.
<악연>의 반전은 업보의 나비효과를 직관적으로 설명해 준다. <악연>은 시간을 역행한다. 결과를 먼저, 원인은 나중에 보여준다. 또 그 원인을 만들어낸 그 이전의 원인도 나중에 알려준다. 이를 몇 차례 반복하면 모든 사건의 기점인 하나의 사건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원인이 서로 다른 사건에 영향을 끼치면서 서로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이 결국 하나의 실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상훈과 유정의 데이트는 유정과 범준의 범죄행각과 상훈의 불륜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상훈의 부인이 사설업체를 통해 남편을 뒷조사하는 과정에서는 범준의 신원이 밝혀진다. 범준의 행적을 역으로 추적하면 그와 유정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이 드러나고, 아무런 접점이 없어 보이던 재영과 주연이 그들과 악연으로 얽힌 최초의 사건 또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즉, 한 사건의 파장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결과들을 초래하고, 그 결과가 행위자들에게 되돌아온다는 업보의 개념 그 자체가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이루는 셈이다. 따라서 그저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는 지독한 악연과 업보의 무게감을 자연스럽게, 저절로 체감할 수 있다. 심지어 <왕좌의 게임>이 연상될 정도로 주인공들을 거침없이 퇴장시키기에 그 업보는 더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해탈하지 못하고, 해방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업보가 쌓여서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스타일리시하지만,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세련되지 못했다. 후자를 전담하는 이주연 플롯의 완결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견 모순적인 '수동적 능동성'에 기반한 각성을 보여줘야 할 그녀의 서사는 수동적인 이미지로만 가득하다. 그 결과 주연은 업보의 굴레로부터 주도적으로 해탈하기보다는 해방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쾌감도 크지 않다.
겉보기에 주연은 분명 수동적인 인물이다. 각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예상치 못한 업보를 쌓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강간 피해자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는 착실히 경력을 쌓은 의사일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오프닝 장면부터 등장했고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있는 주요 인물인데도, 그녀의 이야기는 중심부에서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수동적 이미지 이면에는 능동적인 이주연이 숨어있다. 성폭행을 주도했던 재영이 자기 환자로 입원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녀는 재발한 트라우마와 치열하게 맞서 싸운다. 재영을 향한 살의는 점점 커져 가고, 그녀는 살의를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그를 죽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더 나아가서 그와 관련된 모든 사건을 잊고, 고통과 복수심에 집착하지 않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는 이 장면은 주연의 능동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악연>은 이 기회를 놓친다. 주연이 결단을 내리는 그 순간, 드라마는 그녀의 남자친구 '윤정민'(김남길)에게 먼저 주목한다. 살인을 저지르면 그들처럼 삶이 망가진다며 만류하는 그의 설득이 그녀의 변화보다 부각되는 것. 그 대가로 <악연>의 의도는 흐려진다. 메시지를 담아내야 할 주연의 능동성이 수동적 외양에 전부 가려진 탓이다. 이는 흰 눈이 내리는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주연이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이 공허한 이유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역효과
윤정민의 존재는 또 다른 역효과도 유발한다. 과거의 고통과 트라우마에 집착하는 대신, 그 갈망을 멈출 때 새롭고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주연의 깨달음은 다른 방식으로도 묘사된다. 그녀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가해자들이 인과응보를 받는 식이다. 주연을 강간한 재영도, 그를 이용한 유정도, 그녀를 부추긴 범준도 각자의 업보를 죽음으로 되돌려 받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윤정민의 존재와 역할은 업보라는 주제의식을 약화한다. 재영의 사채 빚을 몰랐던 범준은 재영 행세를 하다가 난데없이 사채업자 패거리에게 납치당한다. 얄궂게도 윤정민은 사채업자 조직에서 장기밀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결국 정민은 범준의 모든 장기를 떼어내고 그를 죽이면서 주연의 복수를 대신한다.
이 전개는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일단 윤정민이라는 캐릭터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써 기능하면서 극의 완성도를 저해한다. 주연을 설득해서 그녀를 각성시키도 하고, 여자친구를 대신해서 복수도 자행하면서 모든 갈등을 편의적으로 종식하기 때문이다. 불법 장기 밀매 사업에 관여한 그가 정작 업보를 받지 않는다는 점도 큰 틀에서는 주제의식에 어긋나는 묘사라고 볼 수 있다.
김남길이라는 배우를 특별출연시킨 반전의 효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 드라마는 그가 수상한 전화를 받고, 친척 핑계를 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그가 불법 조직과 연이 닿아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다 보니 범준이나 재영이 업보를 돌려받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즉, 마지막 반전은 앞선 반전들과는 달리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서 뻔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잘 만든 스릴러가 아쉬운 이유
이일형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같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 사회적 복수, 정의, 방벌이다. <검사외전>은 사법과 정치 영역의 부패 문제를, <리멤버>는 친일파 청산 문제를 정리, 해결하는 영화였다. <악연>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과연 사회가 청소년 범죄를 충분히 정의롭고 응분히 처벌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악연과 업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써 제기하는 드라마니까.
그렇기에 작위적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구축으로 인해 완결성이 무너진 <악연>의 아쉬움은 작지 않다. 흥미롭게 곱씹어 볼만한 메시지와 소재가 장르적 쾌감으로만 소비되면서 불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분명 잘 만든 스릴러이고, OTT 시청자 입장에서는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오락인데도 <악연>의 몇몇 단점이 유독 눈에 잘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Acceptable 무난함
진단은 맞았지만 처방이 잘못된 탈업보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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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불호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
#날씨의_아이 #스포일러_없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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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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