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2025-07-11 18:45:12
돌아오니 선녀였다
시네마 천국
나이를 먹으면 봤던 영화도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다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영화가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감상만 되풀이될 것이라는 생각에 재개봉되더라도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한 편이라도 새로운 영화를 보며 얻어걸릴 또 다른 특별한 영화를 기다렸지만, 사실은 핑계에 불과하다. 아무런 근거도, 기준도 없이 보냈던 시간은 한 번도 본 적 없으며 어딘가에 존재하지도 않을 이상적인 영화에 대한 동경의 크기만큼 길었으리라. 이런 생각을 깨게 해준 영화가 최근에 재개봉한 <시네마 천국>이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잘려 나간 무수한 키스 씬 필름으로 토토와 알프레도의 절절한 사랑, 그리고 남겨진 사랑의 흔적에 감동하는 어른들이 기억에 남았는데, 다시 보니 <시네마 천국>은 완전한 로맨스 영화였다. 토토가 성장하며 만끽한 사랑 그리고 그들과의 이별에서 특히 느꼈는데, 이때 알프레도가 꺼낸 사랑 이야기. 공주를 100일간 기다리던 남자 이야기에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이해할 수 있다. 그 모든 기다림과 절심함도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는 걸.
시골에서 자란 토토는 고향이 세상의 전부라고 느끼며 살아갔다. 마냥 행복한 앞날만 보장되지는 않지만, 부족한 것도 없었다. 그저 알프레도와 애인 그리고 가족들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계속.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도 언젠가 끝을 맺는다. 토토는 알프레도의 설득으로 더 큰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자연스럽게 애인과의 관계도 마무리되고 가족마저 소원해진다. 그런데 토토가 더 넓은 세계에서 성공은 할 수 있어도 사랑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일회적인 관계들로 빈자리를 채우지만,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가 있을까. 작고 우스운 사랑이더라도 사랑인데 한번 내다 버린 사랑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후회가 쌓이고 방황은 커간다. 어디에서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차갑게 내보낸 알프레도의 사망 소식이었다.
알프레도는 사랑이 뭔지 알고 있었다. 일평생을 한 자리에서 영사만 하던 그가 줄곧 마주한 것은 영화 속 세계였다. 가난하고 죽음이 도사리던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았고, 큰 세계에 대한 열망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열망을 어린 친구 토토를 위해 남겨두었다. 알프레도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해질 길을 알면 주저하지 않고 그 길을 보내줄 수 있는 어른이었다.
그 화룡점정은 엔딩 씬에서 이뤄진다.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돌려보며 눈물을 훔치는 유명한 장면이다. 토토는 마지막 모습이 차가웠던 알프레도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려 나간 무수한 키스 컷들처럼 자신의 사랑과 추억들이 좌절되더라도 마음 속에 영영 남을 수 있음을 그는 깨닫는다.
여기서 나는 100일간 공주를 기다린 남자 이야기의 의미를 수정해 본다. 그 이야기는 '사랑은 언젠가 끝이 난다'라는 뜻보다 '사랑에는 때가 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이처럼 나는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 없는 사랑을 만끽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믿어본다. 한 번 끝낸 이야기들에도 다름을 느끼고, 언젠가 그 이야기들에 토토처럼 눈시울을 붉히는 날이 다가올 수 있으리라.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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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보다, 돌아보다
8월 26일 (목), 바로 어제 '돌보다, 돌아보다'라는 슬로건 아래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그 스물세 번째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7대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문가영'이 사회자로 나서며, 핫펠트(예은)의 축하공연과 개막작 <토베 얀손>의 상영으로 그 문을 연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6일(목)부터 9월 1일(수)까지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에서 7일간 개최되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일상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온 사람들의 품으로 느리지만 차근차근 많은 작품들이 돌아오고 있고, 이와 함께 앞으로를 위한 '영화제'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칸 영화제가 2년 만에 다시 개최되었으며, 2021년 7월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필두로 국내 많은 영화제 역시 하반기에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 하반기! 철저한 방역수칙 아래 개최될 영화제 목록을 지금부터 같이 알아볼까요?
잇츠 CINE PICK!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대사 문가영 (출처 : 키이스트) /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식 포스터 / 뮤지션 핫펠트 (출처 : 아메바컬쳐)
일시 : 2021.08.26(목) ~ 2021.09.01(수), 총 7일간
장소 :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문화비축기지
규모 : 27개국 119편 영화 상영 (장편 74편, 단편 45편) / 온라인 : 66편 (장편 44편, 단편 22편)
슬로건 : '돌보다, 돌아보다 (A Caring Reflection)'
올해 공식 슬로건 ‘돌보다, 돌아보다’는 ‘누군가를 관심 가지고 보살핀다’는 뜻의 ‘돌보다’와 ‘내 주변과 지난 일을 되돌아본다’는 ‘돌아보다’를 나란히 배치해, 팬데믹 상황의 장기화를 잘 버텨온 서로를 응원하고 주변과 일상을 돌아보는 성찰을 통해 단단하게 함께 나아가기를 제안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함께 영화 보기를 통해 영화제가 창출해 온 가치를 안전한 방법으로 이어가면서도, 오프라인 영화제의 제약을 뛰어넘어 온라인으로 영화제의 영역을 확장시켰습니다. 상영작의 절반이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상영되고, 프로그램 이벤트는 사전녹화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전면 무관중,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요. “발견”과 “아시아단편”, “아이틴즈” 등 경쟁섹션의 영화와 신작, 고전 영화 등 다양하게 구성된 온라인 상영작 66편 (장편 44편, 단편 22편)은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ONFIFN’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배두나, 김아중X변영주, 문가영의 스타토크,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스페셜 토크, “안부를 묻다: 여성영화제의 친구들에게”, 감독 대 감독, 쟁점포럼 등의 행사는 온라인으로 생중계 될 예정이며, 스페셜 토크와 해외 감독들의 GV는 사전녹화되어 송출된다고 합니다.
개막작 - <토베 얀손> (Tove)
핀란드, 스웨덴 | 2020 | 100min | Fiction
감독 : 차이다 베리로트 | 출연 : 알마 포이스티, 크리스타 코소넨PROGRAM NOTE : <토베 얀손>은 ‘무민’ 시리즈의 창조자, 퀴어 예술가 토베 얀손의 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시기부터 10여 년간 삶을 그리고 있다. 관객들이 가장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춤을 추듯 몽환적으로 또는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토베의 모습이다. 그리고 곧 2차 세계 대전 한가운데 방공호에서 무민 캐릭터의 원형을 스케치하는 토베의 모습이 이어진다. 무민 시리즈의 탄생과 성공에 안착하기까지 토베 얀손의 작가적 경력이 영화의 원경이라면, 전경에는 여성 퀴어 예술가 토베 개인이 맺는 개인적 관계들과 그로 인한 불안과 긴장, 자아의 발견과 성장,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과하며 발산되는 토베의 에너지와 얼굴 표정이 내세워진다. 거의 항상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 있으며 시종일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카메라는 이러한 영화적 구조를 뒷받침하며, 아버지와의 갈등, 비비카 반들레르와의 연애, 평생의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레와의 만남이 어떻게 토베의 작품 세계에 불가분의 영감을 주는지 보여 준다. 린다 바스베리의 16mm 촬영은 투박함과 온화함을 동시에 전달하며, 영화의 엔딩에 삽입된 8mm 푸티지는 영화 내내 토베가 보여 준 자유로운 움직임과 활력, 생동감의 원천을 확인시켜 준다. [황미요조]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공식 포스터
일시 : 2021.09.09(목) ~ 2021.09.16(목), 총 8일간
장소 : 메가박스 백석, 고양아람누리
규모 : 39개국 126여편 영화 상영
비전 : 평화, 소통, 생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아시아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도약이번 영화제의 메인 포스터로 선정된 사진은 노순택 작가의 작품 '백기완의 주먹'입니다. 올 2월 타계한 사회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불끈 쥔 주먹을 담은 사진으로, 약자와 소수자가 있는 곳에서 함께 투쟁하고 활동한 백기완 선생의 모습처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역시 관객, 영화인과 함께하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 사회를 진실하게 비춰갈 것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이 사진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하여 전세계가 어려운 시기임에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변함없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믿으며, 코로나로 위축된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있기에, 영화제 역시 '좋은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한다'는 영화제 본연의 역할을 이어가려 한다고 전했습니다. 영화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극장 상영은 이어가되, 이와 함께 자체 개발한 스트리밍 서비스 VoDA(보다)를 통해 온라인 상영을 병행해 관객들이 영화제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고 하는데요. 영화제는 앞으로도 관객과 다큐멘터리 창작자의 만남을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 전했습니다.개막작 - <수프와 이데올로기> (Soup and Ideology)
일본, 한국 | 2021 | 118min | Documentary
감독 : 양영희 (YANG Yong-hi)
SYNOPSIS :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일본에 남은 것은 어머니와 딸 뿐이었다. 혼자 사는 노모가 걱정된 딸은 매달 도쿄에서 오사카의 본가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러한 딸에게 어머니는, 문득 당신이 제주 4.3의 체험자라는 말을 꺼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둔 기억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어머니는 자신이 제주 4.3에 어떻게 관련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제17회 인디애니페스트
일시 : 2021.09.09(목) ~ 2021.09.14(화), 총 6일간
장소 :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인사아트센터
온라인 상영 : 2021.09.10(금) 10:00 ~ 2021.09.24(금) 17:00 [Vimeo]
슬로건 : 人비트人1. (형용사) 개재하는, 중간의
2. (애니메이션 용어) 키프레임 사이에 들어가는 프레임
3. (영화제 슬로건) 또 한번 보고 듣고 말하는 우리들의 사이를 이어 주는, 인디애니페스트!
2005년부터 매년 주목할 만한 해외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 국내외 애니메이션계의 긴밀한 네트워킹을 이어오며 매년 전 세계의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을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해온 '인디애니페스트'는 국내 유일의 독립애니메이션 전문 영화제에서 세계 유일의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영화제입니다. 인디애니페스트는 지난해 여타 영화제들이 코로나19 이슈로 인해 온라인 개최 등의 형식 변경과 축소 개최로 행사를 치른데 반해 기존 오프라인 개최 방식을 고수하며 성황리 영화제를 마무리해 크게 주목받은 바 있는데요. 영화제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12년째 이어온 국제 협업 프로젝트 '릴레이 애니메이션' 등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개막작 - <죽이고 떠나라> (Kill It and Leave This Town)
폴란드 | 2020 | 88min | Animation
감독 : 마리우스 발친스키 (Mariusz Wilczynski)
PROGRAM NOTE : 마리우스 빌친스키 감독은 다양한 형태의 상실과 절망을 겪는 주인공들의 정신적으로의 불안한 여정을 과거와 현재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종종 외설적인 묘사로 가득 채워 놓는다. 작품의 스타일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 서사의 문법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결로 다가온다. 절제된 흑백의 선과 거친 얼룩의 색채가 스며든 우울한 판타지는 파편화된 몽상들과 뒤엉켜 낯선 거리감까지 드러낸다. 그러니 굳이 해석하려 애쓰지 말고 감독이 미처 전하지 못해 나지막이 읊조리는 독백에 감각을 기울이며 잠시나마 감정의 전이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추혜진]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관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영화 그리고 영화제와 함께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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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드라마를 보고서야 루이14세를 이해했다, 드라마 <베르사유>
- 베르사유 (Versailles, 2015-2018) 시즌3 완결
제작 : 프랑스·캐나다, 역사·드라마 │ 연출 : 다니엘 로비, 크리스토프 슈르베, 자릴 라스페르, 또마 벵상
극본 : 사이먼 미렌, 데이비드 울스텐크로프트 │ 출연 : 조지 블래그덴(루이14세), 알렉산더 블라호스(필리프 공작),
안나 브루스터(몽테스팡 부인) 외 다수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다
나폴레옹 사망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나폴레옹에 대해 재해석한 발언이 화제였다. 오랜 시간 프랑스의 영웅으로 치하되어왔던 나폴레옹의 화려한 공적들 뒤로는, 전쟁 중독과 더불어 인종차별 및 여성차별이라는 단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은 변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과거에 평가된 인물들도 모두 현대의 관점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빛나는 태양왕으로만 익히 배워왔던 ‘루이 14세’를 보다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낸 드라마 한 편을 보게 됐다. 바로 프랑스와 캐나다가 합작하여 만든 드라마 <베르사유>다. 딱딱한 교과서로 루이 14세를 접했던 나는, 그간 루이 14세에 대해서라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남긴 절대군주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드라마 <베르사유> 역시 그가 군주로서 황금기를 걷던 시절을 조명하긴 하지만, 3편의 시즌으로 이루어진 긴 이야기 속에는 ‘인간’ 루이의 삶이 녹아있다. 군주로서의 위엄과 공존했던 오만과 허영, 그리고 여러 업적 아래 가려진 불안과 고독에 대해서 말이다. 새벽 두 시까지 눈을 붙이지 못하며 단숨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 할 수 있었던 건, 그런 관음적 즐거움을 이 드라마가 가득 담고 있었기 때문인 듯 싶다.
루이는 왜 변덕스럽고 외로웠을까
드라마에 비친 루이의 모습 중 한 면은 아주 화려하고 권세가 드높았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 면은, 아무도 믿지 못하고 급기야 몽유병과 불면증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나약한 루이를 보여준다. 실제로 베르사유 내에서는 연쇄독살사건이 일어난 적 있으며, 루이를 암살하려다 발각된 외부세력들도 몇 차례나 있었다. 그로 인한 루이의 정신적 두려움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 두려움을 가리는 방어적인 오만과 함께. 어쩌면 그가 건설한 절대왕정의 틀, 베르사유라는 위대한 건축물은 모두 자신이 언제 소멸할지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기인했던 걸까.
루이 14세는, 선왕인 루이 13세가 결혼 23년 만에 낳은 후계자였다. 오랜 기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선왕과 왕비를 두고 불임이라는 설도 돌았었고, 뒤늦게 태어난 루이 14세와 필리프 공작(루이의 남동생)을 두고서도 왕비가 불륜을 저질러 낳았다는 루머가 돌았었다고 한다. ─ 실제로 이 논란을 두고 시즌3에서는, 선왕이 다른 남자와 왕비를 관계하게 하여 루이 14세를 낳았다는 픽션이 가미되는데, 역사적 진실은 그 누구도 지금껏 모른다.
어쨌거나 출생부터 이야기가 많았던 루이 14세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여러 세력들 속에 성장해야 했다. 성인이 되어 궁전을 파리에서 파리 외곽인 베르사유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귀족들의 끊임없는 불만과 대신들의 반대를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상처가 많은 조개일수록 더 맑고 단단한 진주가 피어난다고 했던가. 출생부터 집권 기간 내내 불안과 고독을 경험했던 루이 14세는 업적과 위세에 집착하며 살아간 결과, 결국 우리가 아는 ‘태양왕’으로 기록되며 프랑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루이 14세에게 영향을 끼친 여인들
루이의 양면을 보여준다는 것 말고도, 드라마 <베르사유>의 또 다른 재미를 꼽자면 그건 바로 그를 둘러싼 여인들일 것이다. 실제로 왕비 ‘마리 테레즈’ 말고도 여러 명의 애첩을 두었던 루이는, 옆에 어떤 정부를 두느냐에 따라 성격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즌1에서는 남동생 필리프 공작의 아내인 ‘헨리에타’와의 불륜을, 시즌2에서는 빼어난 미모로 루이를 쥐락펴락했던 ‘몽테스팡 후작부인’을, 시즌3에서는 철저한 종교적 신념으로 루이에게 내적인 안정을 안겨준 ‘맹트농 부인’을 다룬다. 세 여인의 성격이 모두 다르고, 그로 인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루이를 보는 것은 때로는 마음 아프고 때로는 분노가 치미는 일이었다.
누구도 믿지 못했던 국왕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루이의 갈망이었던 걸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왕비를 제외하고는 루이의 정부들은 모두 루이에게 역사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헨리에타는 요절했으며, 몽테스팡 부인은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흑마법에 가담했고, 맹트농 부인은 훗날 루이가 개신교를 박해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드라마지만 영어 대사를 쓰는 드라마
영국 발음으로 대사를 하는 배우들을 보고, 당연히 처음엔 영국 드라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방영한 나라는 채널 ‘CANAL+’의 프랑스다. 실제로 루이 14세와 베르사유라는 소재가 프랑스의 것이니, 프랑스에서는 왜 자국의 역사를 영어로 제작해 다시 프랑스어로 더빙하냐는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엔 프랑스 궁정을 배경으로 영어를 쓰는 것이 적응이 안되기도 하지만, 점점 그 이질감보다는 배우의 연기력과 쫄깃하고 섬세한 연출력에 빠져들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그만큼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일 테다. 자부심 높은 프랑스 국민들에겐 조금 상처가 되었을지 모르나, 캐나다와의 합작으로 영미권까지 흡수한 덕에 이 드라마가 오늘날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 꼭 화낼 일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역사드라마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
십 년 전쯤, 오랜 시간 프랑스의 마녀로 오해되어온 ‘마리 앙투아네트’를 재해석했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힘 있는 자에 의해 기록된 수많은 역사들이 인물을 평면적으로 묘사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녀였고, 콜럼버스는 위대한 개척자였고, 명성황후는 일본 자객에 의해 시해당했다는 이유로 선하고 가련한 왕비로 오랜 시간 각인되어왔다. 하지만 사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매우 자애로운 성격이었고, 콜럼버스는 개척이 아니라 원주민 땅을 침범한 것이며, 명성황후는 살아생전 국고를 탕진한 매우 지독한 왕비였다는 것이 현대에 이르러 조명되고 있다. 역사 속에 딱딱하게 자리 잡은 이러한 인물들을 다각도로 탐구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인들의 즐거움이자 사명일 것이다.
자기가 세상 잘 난 줄 알았고, 실제로도 잘났던 루이 14세에게도 말 못 할 허물은 많았다. 국민들의 배고픔을 이해하지 못했고, 개신교를 박해했으며, 충직한 대신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외면하며 무리한 전쟁을 이어나갔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독불장군이었으나, 그러면서도 하염없이 여인들의 입김에 녹아드는 한 남자였던, 인간 루이를 만나보는 기쁨 그리고 고통이 모두 <베르사유>에 담겨있다. 3편의 시즌 속에서 루이를 만나는 동안, 많은 이들이 그의 단면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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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을 쥐었다, 폈다
최근 <오징어 게임>까지 'K-콘텐츠'가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 도전하지 못한 장르가 있다면 "뮤지컬"이다.
물론, <삼거리 극장, 2006>이 존재하나 '상업 영화'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이번 <인생은 아름다워>가 상업적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뮤지컬 영화'이다. - 물론, 개봉을 기다리는 <영웅>도 있다!
혹자는 국내 뮤지컬 인기가 떨어지는 이유에 '가사가 한국어'라는 이유를 언급하나, <라라랜드, 2016>를 보는 "미국인"과 <레미제라블, 2012>을 듣는 "프랑스인"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영화는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세연'이 남편 '진봉'에게 마지막 생일 선물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이야기이다.
1. 왜, 인기가 없을까?
앞서 말했듯이 유독, 국내에서의 뮤지컬 제작이 꺼려지는 이유에 '가사가 한국어'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외국 작품을 가져와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부 가사와 음의 길이가 맞지 않아 어색할 수도 있지만 이를 핵심으로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1952>는 일련의 과정으로 통해서 "뮤지컬"을 제대로, 설명한다.
영화는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뮤지컬"을 소개하나 만만치 않는 그 과정을 소개한다.배우가 마이크에 대사를 하지 않아 녹음이 안되거나 몸에 부착하면, 심장 박동이 들리고 오디오 선에 넘어지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보여준다. - 극 중. 시사회에선 진주 목걸이 만지는 소리도 들린다!
이외에도 그동안 표정과 몸짓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했던 배우들은 발음과 대사 암기 등 변화에 따른 발전이 동반된다. - 실례로 많은 무성 영화 스타들은 유성 영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지거나 새로운 얼굴들이 출연했다!
이렇게, "뮤지컬"은 문화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면 동시간대의 국내 상황은 어땠을까?2. 많고 많은 시대 중에서...?
현재,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로 정의되는 "나운규"의 <아리랑, 1926>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개봉한 작품이다.
이후 "한국 전쟁"과 "냉전"을 맞이한 영화는 "반공"을 앞세운 선전물이 되었으니 문화의 발전을 떠나 감히, 낭만을 논할 수나 있었을까?
그렇다면,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왜, 1990년으로 설정했을까? - 극 중. 서울 극장에 <사랑과 영혼, 1990>이 걸려있다.
이런 이유에는 90년대만큼이나 문화의 다양성을 논하기에 좋은 시기가 없기 때문이다.대통령 직선제(6월 민주항쟁)를 가져왔으나 "군부"가 유지되며, 지속되는 데모로 사회는 불안정했지만 "X세대"가 등장하는 등 문화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음악만 살펴보면, "김수희"의 "애모(트로트)"를 비롯해 "서태지와 아이들(힙합)", "신승훈(발라드)", "김건모(레게)", 그리고 "HOT(아이돌)"까지 한 번의 성공으로 우르르 뒤따라가는 펭귄들이 아니라 무모한 콜럼버스들이 판치던 시대이다.
여기, <쉬리, 1999>를 시작으로 "블록버스터"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탄생하는 등.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3. 옛 방식이 무식하지만...
이렇게, 모든 환경이 갖춰진 <인생은 아름다워>이나 보여주는 결과물은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오리지널 넘버'를 대신해 '이문세'의 <조조할인>을 비롯해 '이적'의 <다행이다>와 '토이'의 <뜨거운 안녕> 등 익숙한 대중가요를 뮤지컬스럽게 편곡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갖춰진 세트에서 보여주는 군무들을 하나의 테이크가 아니라 '편집'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앞서 말했듯이 "뮤지컬"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의 시대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탄생한 장르로 고집스럽게 긴 테이크를 가져간다.
이런 이유에는 당시. "편집"이라는 기술이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얼굴의 표정과 행동만으로 이야기의 현실성을 지켜냐야하는 '고육책'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본 작품에서 보여주는 "뮤지컬"은 90년대~00년대 이야기가 있는 뮤직비디오 "드라마 타이즈"에 더 가깝다.4. 첫 술에 배부를 쏘냐!
물론, 영화가 선정한 선곡 리스트와 편곡은 마음에 들지만 힘을 받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뮤지컬 장면에 들어가는 순간이 어렵다!
이런 이유는 이야기의 톤과 음향이 갑자기 튀기 때문인데, 완력기가 있었으면 할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할 정도로 힘들었다.
극 중. 마지막에 "세연"과 아이들의 통화에서 눈물이 날 뻔하면서도, 비염(훌쩍훌쩍)에 그친 점도 이러하다!무엇보다 이야기에도 아쉬움이 생긴다.
극 중. 아내 '세연'의 모습은 희생만을 강요하는 윗세대 어머님들의 모습이 겹치며, 무심한 남편 '진봉'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지나치게 "스테레오"이다.
결국, 이 모든 갈등이 봉합되는 전개와 개연성도 어설픈 노랫소리에 잠식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날 뻔한 건 어디까지나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이니 오해하지는 말자!그래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끝나고 나서 플레이 리스트로 또 한 번 즐기는 미덕을 제공하니 좋게 봐주시길... :)
· tmi. 1 - 결혼식 장면에서 부르는 "이적"의 <다행이다>는 공교롭게도, 실제 아내분과의 결혼식 축가로 만들어진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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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착오적인 스타워즈의 현주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다이들이 몰살당하고 은하 제국이 설립되자 타투인 행성의 외딴 동굴에 잠적한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이완 맥그리거)'. 제자였던 '아나킨 스카이워커(헤이든 크리스텐슨)'가 악의 세력인 시스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는 새로운 희망이 될 '루크 스카이워커(그랜트 필리)'를 남몰래 보호하며 숨죽여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비완은 생존한 제다이들을 사냥하는 빌런 '세 번째 자매(모제스 잉그램)'를 대면하고, 그녀가 루크의 쌍둥이 남매인 '레아 오르가나(비비안 리라 블레어)'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레아를 구출하러 간 오비완의 앞에는 다스 베이더가 되어버린 옛 제자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등장하고, 오비완은 오래전 펼쳤던 다스 베이더와의 운명적인 대결의 순간이 다시 찾아왔음을 깨닫는다.
디즈니+에서 공개된 <스타워즈> 시리즈의 실사 드라마인 <오비완 케노비>는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로부터 10년 후 시점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는 악의 세력인 시스를 막지 못한 채 은둔한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가 1977년도 작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에서 알렉 기네스 경이 연기한 현자 오비완 케노비로 거듭나는 계기를 보여준다.
<오비완 케노비>를 향한 기대는 상당했다. 오비완 케노비라는 캐릭터도 인기가 적지 않은 데다가 애증의 제자인 아나킨 스카이워커도 20여 년만에 같이 실사 시리즈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실사영화였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혹평과 흥행 실패를 맛본 이후, 근래 <스타워즈> 시리즈가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기대감을 증폭했다. 디즈니+ 드라마 <더 만달로리안>이 흥행과 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고, 이후 <더 북 오브 보바 펫>도 소기의 성과를 이룬 만큼 <오비완 케노비>가 그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6부작으로 구성된 <오비완 케노비>는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고, 작금의 스타워즈 시리즈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친다.
물론 프리퀄이자 스핀오프라는 정체성에 충실하기에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 없지는 않다. 우선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중심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진주인공인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그의 스승인 오비완 케노비의 애증이 뒤섞인 관계가 위치한다. 특히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시스의 복수>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로 자신을 배신, 포기한 오비완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아나킨은 두 손으로 직접 오비완을 제거하고자 하며, 타락한 제자를 직접 베어야 했던 오비완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이러한 아나킨의 집착과 오비완의 회한을 과거 스승과 제자로서 광선검 대련을 하던 오비완과 아나킨의 모습과 대조한다. 이러한 연출은 두 인물의 감정선을 절정으로 고조시킴과 동시에 한 편의 에피소드 내에서는 짜릿한 반전까지 이끌어낸다.
또 여섯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오비완과 아나킨이 쌓아 올린 서사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운명적인 재대결이 등장하고, 이는 <스타워즈> 1, 2, 3편인 프리퀄 시리즈와 4, 5, 6편인 오리지널 시리즈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 중심에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정체성이 소멸되고, 그 유명한 다스 베이더로 완전히 각성하는 장면이 있다. 제다이였지만 악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하여 다스 베이더가 된 아나킨. 드라마는 결투 도중 다스 베이더의 헬멧 안에 여전히 아나킨의 얼굴과 음성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며 다스 베이더라는 악인의 내면에 제다이인 아나킨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또 정확히 어느 시점을 계기로 아나킨의 정체성이 사라졌는지를 짚어주면서 프리퀄에서 묘사된 아나킨과 오리지널 삼부작에 등장한 다스 베이더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고 그의 서사를 보충한다. 여기에 아나킨에게 용서를 구하던 오비완이 다스 베이더가 된 그를 완전히 포기하는 장면까지 더해지면 기존 시리즈에 비해 이들의 비극적인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이처럼 과거의 전설들을 재소환하고, 그들의 서사에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이는 선택의 효과는 수많은 오마주들 덕분에 극대화된다. 자신이 아나킨을 죽였다는 다스 베이더에게 오비완은 "그럼 내 친구는 정말 죽어버렸군"이라고 일갈하는데, 이는 시리즈 6편인 <제다이의 귀환>에서 "그렇다면 제 아버지는 정말 죽었군요"라고 말하는 루크의 대사와 판박이다. 또한 제다이 마스터로 다시금 거듭난 후 수련을 떠나는 오비완이 어린 루크에게 "안녕(hello there)?"이라고 인사를 건네는데, 이 대사는 <새로운 희망>에서 오비완이 루크에게 건넨 첫 대사 이기도 하다. 오비완에게 포스의 영이 되는 법을 알려주려는 그의 스승 '콰이곤 진(리암 니슨)'과 시스 군주인 팰퍼틴 황제의 재등장 역시 <스타워즈> 팬들이라면 쉬이 흘려보낼 수 없는 순간들이다.
문제는 애매모호한 드라마의 방향성 때문에 위의 장점이 퇴색된다는 점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오비완 케노비의 드라마여야 했다. 젊고 이상주의적이었던 제다이 오비완 케노비 대신 아끼던 제자의 배신, 동료들의 죽음과 수호하던 국가의 파멸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오비완을 묘사해야 했다. 이와 동시에 미처 끝나지 않은 아나킨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오리지널 삼부작에 등장했던 현자 오비완 케노비로의 변화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막상 공개된 드라마의 초점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오비완에 대적하는 새로운 빌런인 세 번째 자매의 서사가 겉돌기 때문이다. 사실 세 번째 자매는 드라마의 진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다스 베이더에게 복수심과 혐오감을 품었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조금씩 다스 베이더를 닮아간다. 오비완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다스 베이더처럼 그녀도 복수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며 타락한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의 악행을 반성하고 갱생하는 전개는 완전히 악에 물드는 다스 베이더와 제다이의 정체성을 되찾는 오비완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작중 그녀와 오비완의 접점이 거의 묘사되지 않다 보니, 두 주인공은 각자의 성장과 변화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 결과 세 번째 자매는 좀처럼 오비완과 다스 베이더 사이에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심지어 다른 캐릭터의 분량을 빼앗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에 더해 전반적인 구성이나 연출이 세밀하지 않다 보니 방향성을 잃은 드라마의 표류도 끝나지 않는다. 6부작으로 구성된 분량 내에서 다루기에는 전체 내용이 과한 것인지 몰라도, 등장인물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식의 작위적인 전개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불완전한 액션씬 역시 아쉬움을 키운다. 세 명의 성인이 어린 레아를 눈앞에서 놓치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스톰트루퍼들은 이번에도 주인공들의 활약을 보여주기 위한 밋밋한 뒷배경으로 소비된다. <스타워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광선검 대결도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완전하지 않은 CG로 인해 어색한 문제를 노출한다. 이는 시리즈의 중추적 인물인 오비완과 아나킨이 복귀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큰 결과물이다.
무엇보다도 드라마가 새로운 이야기와 앞으로의 비전을 보여주기보다는 인기 있는 캐릭터들의 이름값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본 작의 장점마저도 퇴색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화라고도 불리는 <스타워즈>는 본질적으로 선과 악의 운명적인 대결을 그려낸 거대한 서사시였고, 신화 속 영웅들의 초인적인 활약을 즐기는 시리즈였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등장한 <스타워즈> 속 이야기는 현시점에서 사실 더 이상 소구력이 없다. 선악의 구분이 확실했던 냉전 시기와 달리 현대 사회의 많은 주체들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손쉽게 나뉘지 않으며, 현대인들은 거대한 악보다도 모습을 감추고 있어서 예상할 수 없는 테러와 같은 악을 더 위협적으로 여긴다. 그래서 악을 처단하는 선한 영웅보다는, 쉽사리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정글과도 같은 현실에서 영웅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매 순간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공감을 자아내기에 더 용이하다.
이는 21세기의 <스타워즈>라 불리는 MCU의 '인피니티 사가'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물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나 <엔드게임>도 비극적 서사시로 보이는 측면이 있으며, 선악의 장엄한 대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스 베이더에 비하면 타노스는 현대적 테러리스트에 더 가까운 빌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통해 전략적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한 후 손 쓸 틈 없이 달아난다. 기습을 당한 어벤져스도 제다이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시스를 완전히 제거하여 우주의 균형을 되찾고 평화를 수복하는 제다이와 달리,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면 결코 완전하다고 볼 수 없는 복수를 하는 데 그친다. 이는 9.11 테러 이후 복수를 꿈꾼 미국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히 복수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과 오버랩된다.
물론 그간 <스타워즈>도 시대상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왔다. 당장 프리퀄 삼부작은 은하 의회의 의장이었던 팰퍼틴이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수단을 활용해 은하 제국의 황제가 되는 이야기를 통해 테러와 같은 위협에 맞서기 위해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던 21세기 초반의 세태를 꼬집었다. 근래 스타워즈 시리즈 중 성공을 맛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만달로리안>의 주인공인 현상금 사냥꾼 딘 자린은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다. 항상 기습과 배신을 경계하면서도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나름의 사랑과 믿음이 있는 그는 보다 현대적인 영웅상에 가깝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역시 제다이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을 그려내어 호평받았다. 하지만 <오비완 케노비>는 수십 년 전의 인물들을 재소환하여 오래전에 끝맺은 선과 악의 대립으로 회귀한다. 그 결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오비완 케노비가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알렉 기네스 경이 연기한 현자 오비완이 되어갈수록 그는 더 평면적인 캐릭터로 변하고, 그와 아나킨의 대립은 흥미가 덜해진다.
<오비완 케노비>를 포함해 현재 디즈니+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작품을 유독 한국에서만 늦게 공개하는 일련의 상황도 결코 작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이는 한국에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기가 적다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른 결정이겠지만, 동시에 디즈니가 스타워즈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긴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자신만의 낭만이 있었기에 지난 수십 년간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절대다수가 악의 세력인 시스와 제국의 편으로 넘어갔고, 몇몇 되지 않는 소수이자 약자인 제다이와 저항군만이 악에 대항하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이들이 기적적으로 승리하는, 대세를 거스르는 용기와 낭만이 숨 쉬는 이야기. 이것이 스타워즈의 매력이었다. 그렇기에 시대의 흐름인 자본주의적 분석을 차별적 대우의 이유로 대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는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디즈니+는 끊임없이 스타워즈 드라마들을 준비 중이다. 이미 계획 중인 것만 해도 <만달로리안> 시즌 3, <아소카>, <안도르>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이 전부 과거의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다. <만달로리안>과 <아소카>는 프리퀄과 오리지널 시리즈 사이의 시간대를 다루는 작품이고, <안도르>는 2017년에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의 외전 겸 프리퀄이다. 즉, 이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이미 정해진 결말로 귀결되는 작품들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또 <오비완 케노비>의 완성도를 보면 <스타워즈> 시리즈의 완전한 부활은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P(Poor, 형편없음)
프랜차이즈의 마지막 남은 이름값까지 고갈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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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떠나갈 모든 것들에게 전하는 사랑고백
"우리 아들은 엄마를 졸졸 쫓아다녀. 낼모레 30인 애가."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난 우리 엄마가 짱이라고 생각한다. '엄마 좋아해요!'식의 카톡을 하루에 한 번은 보내는 듯한 나. 엄마가 퇴근하고 나서 집에 오면 엄마가 보는 TV에 옆에 쪼르르 눕는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고 아빠에게 말한다. "얘 봐봐. 낼모레 30인 애가. 이제 좀 징그러워." 사실 30이 되려면 4년 언저리가 남았지만 아무튼 낼모레 30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강박장애가 가진 힘 중 하나가 되는 그런 생각이다. 바로 내일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엄마가 짱이라고 생각한다. 후회하기 싫으니까 엄마에게 하루라도 주접을 떨어야 하는 것이다. 난 심지어 이모티콘도 샀다. '아들 짱이지?' 하는 이모티콘이다.
그래서 한 2달에 한번쯤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 건강검진받았죠?"라고. 엄마는 이제 슬슬 짜증내기 시작한다. "아 받았다고!" 엄마가 사실 통통한 체형이라 운동을 하면 좋을 나이와 시기가 됐다. 그래서 사실 걱정이 많다. 진작에 엄마한테 헬스클럽 등록권을 갖다 주면 좋았을 걸 50대 후반이 되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우리 엄마는 짱이다. 언젠가 내가 눈을 감는 날이 갑자기 올 수도 있지 않나. 또 이 가정은 엄마에게도 적용된다. 이 두려움 때문이라도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아도 후회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한다. 그게 내가, 또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미결 사건으로 떠나보낸 사랑은 참 사람을 아프게도 만든다. 무뚝뚝한 진봉 씨는 형사 장해준 씨와는 다른 사랑을 하고 있다. 무뚝뚝한 남자와 순박한 여자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인생은 아름다워>다.
갑자기 찾아온 마지막 날
그날은 그렇게 멀지 않았던 날이었다. 부부인 진봉과 세연. 남편 진봉은 세상 무뚝뚝한 사람이다. 세연은 정 많지만 어딘가 유약해 보이는 아내다. 둘은 세연의 몸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갔다. 그렇게 그날도 오늘 같았던 하루였다. 세연은 폐암 진단을 받게 된다. 폐암이라. 그냥 흘려보냈을 친구 아주머니들의 대화도 하나하나 가슴에 박히기 시작한다. 실감이 나지 않는 세연. 그건 진봉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날이 머지않았다. 세연은 생각이 많아진다.너무 어린 아이들. 둘 다 10대다. 딸은 담배를 많이 피워 선생님께 혼쭐이 났다. 아들은 엄마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아이들. 엄마, 아빠라는 존재는 뒤로 하고 한눈 열심히 팔고 있다. 한눈만 팔고 있으면 다행인데 아이들은 그냥 부모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 같다. 큰일 났다. 딸의 아침 등굣길 스타킹도, 진봉의 휴지도, 아들의 알약도 챙겨줘야 하는데 세연은 이제 끝을 바라보고 있다.
한 숨도 못 잔 세연. 이제 여름옷을 버릴지 겨울 옷을 버릴지 고민하고 있다. 점점 무서워지는 세연.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봉은 속 긁는 소리만 벅벅 하고 있다. 아직 해보지 못했던 것이 너무 많이 남았다. 버킷리스트를 계획하는 세연. 명품도 사보고, 운전도 직접 해보며, 메이크업도 받아보고, 전국일주 여행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하고 싶었던 우선순위는 옛사랑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눈 감는 날 이전에 진득하게 사랑받으며 떠나고 싶었다. 세연은 진봉과 함께 첫사랑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에선 신선해
뮤지컬 영화라.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적당히 음악 들어간 영화 말고 확실한 뮤지컬 장르는 확실히 못 본 듯싶다. <알라딘>이나 <라라랜드>처럼 출연진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노래하는 경우는 사실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없다. 나의 가장 최근 시청 기록 업데이트는 <아네트>다. 아무튼 이 장르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 영화사를 뒤로 하고 이 <인생은 아름다워>가 나왔다는 점은 제작진들과 배우들의 노고에 감사해할 만하다. 이 영화가 그냥 막연하게 '우리나라에서 한 신선한 시도'라서 좋은 평을 들어야 할 것은 아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낡았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은 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초반부는 사실 좀 아쉽다.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이 들어가는 파트가 있다. 이때 류승룡 배우가 맡은 강진 봉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첫 구절 '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를 말한다. 이 부분 정말 어색하다. 뭐라 구체적으로 쓸 수가 없다. 맥락상 굉장히 심각한 음악이 들어가야 앞으로의 강진봉 서사에 플러스가 있을 텐데 밝은 노래를 넣었다. 가사가 '언제쯤 세상을 알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멜로디가 너무 신난다. 멜로디가 신나다 못해 춤을 춘다. 성격적 특성상 강진봉은 아내 앞에서는 딱딱하더라도 내면에서는 울음을 삼켜야 한다. 이럴 때 <그녀의 웃음소리뿐> 같은 음악이 들어가도 좋을 텐데 굳이 그걸 넣은 이유는 의문이 든다. 또 <잠도 오지 않는 밤에>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들어간 방식도 너무 전형적으로 딱 넣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연은 시한부 인생이 됐다. 그럼 인생 전부를 관통하는 소회나 회한이 들어가는 쪽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단적인 상황만을 충족하는 삽입곡이 들어간 지점은 좀 아쉽다. 전체적으로 더 깊고 비참해야 할 이야기의 톤이 불규칙적으로 변하는 느낌? 더 구체적으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유기견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노래다. 뭐 그건 작사가 이적의 사정이니 최국희 감독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했잖아'라는 가사가 들어간다. 이 '다시 돌아온다고 했잖아' '그대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가 들어가고 이 노래의 상황이 제시되면 이질감이 든다. 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 어머니와 자식을 아예 못 만나는 건 아닐 것이다. 제목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것만 보고 평면적으로 넣어서 흐름에 살짝 지장이 갔다고 생각한다. 인지도가 있는 노래를 고르고 싶었나? 그러나 <라라랜드>나 <비긴 어게인>의 삽입곡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좋다고 느낀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부산에 가면>과 <아이스크림 사랑>이 들어간 부분이었다. <부산에 가면>은 가수 최백호가 참여한 노래다. 이미 지나가버린 사랑을 추억하는 쓸쓸한 후회가 담겨있는 곡이 전자였다. 삶의 끝자락에서 사랑받지 못했던 인생을 반추하는 게 가사의 내용이다. 그리고 중후반부까지 쭉 아쉬움이 많았던 세연의 삶을 조명하는데, 이 선곡은 이후의 러닝타임을 관통하는 좋은 선택이었다. '파도에 부서져 깨어진 조각을 맞춰본다'라는 가사가 세연의 옛사랑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내포하는 좋은 문장이었다. 그리고 또 이 영화에서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기억의 조각과도 비슷한 기억을 한다. 세연의 추억이 딱 완성되는 부분이 지역과 관련된 기억이 모두 합쳐져 시너지가 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 점에서 '부산'이라는 선택지를 중심으로 전국일주를 도는 영화의 공간적 세팅과도 잘 맞았던 선곡이었다. 또한 <아이스크림 사랑>은 세연의 첫사랑을 연기하는 박세완 배우가 나오는 과거 파트에 삽입되는 노래다. 이때 상대역인 옹성우 배우는 아이돌 출신이라 춤추는 선이 이쁘다. 그러나 반대로 박세완 배우가 정말 의외였다. 이게 춤추는 장면을 촬영, 편집으로 대충 때우는 게 아니라 긴 테이크와 빠른 속도로 구성되어 있어서 얼핏 봐도 안무 외우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과거 시퀀스들은 정말 잘 찍었다. 옹성우 배우가 좀 클리셰 같지만 그래도 멋있는 오빠 역할을 너무 잘 소화했고, 박세완 배우도 감정의 높이를 구현하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그 와중에도 이 영화를 본 관객분들이라면 이 <아이스크림 사랑> 파트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선곡만큼 보다 빛났던 부분은 바로 <애수>와 <솔로예찬>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일단 전자 <애수>는 이 영화의 초대형 스포일러가 되는 부분이니 생략하기로 한다. 이 후자 <솔로예찬>이 들어가는 부분은 장면 구성 자체를 잘했다. <라라랜드>에서 미아가 파란 원피스를 입은 채로 춤을 추던 장면을 많은 분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때 기억에 남았던 것이 인물 간의 빠지는 동선이나 색감 배치를 감각적으로 잘해서 시퀀스 자체의 완성도가 높았다. 이 <솔로예찬>이 들어간 시점, 가사의 내용, 이야기의 서사까지 각본가의 꼼꼼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류승룡, 염정아 두 배우가 춤을 잘 추기도 했고 소품을 활용했던 것도 좋아서 <솔로예찬>을 모르는 분도 이 곡을 선명하게 기억할 것 같다.
김새는 느낌
이렇게 장단점으로 작용하는 뮤지컬 형식이지만 각본에도 단점이 있다. 바로 강진봉 캐릭터다. 이 캐릭터의 후반부 전까지의 행보 모든 게 다 이상하다. 일단 강진봉 캐릭터의 기본 설정은 '무뚝뚝한 성격'이다. 그러나 극에서 제시되는 부분은 무뚝뚝한 성격이 아니다. 그냥 소시오패스다. 일단 자기 아내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자기 볼일 볼 때 휴지 안 주냐고 징징댄다. 또 그 상황 이후에 막말을 해댄다. 게다가 이 사람은 직업이 공무원이다. 꾸준히 출퇴근하는 일을 해야 한다. 뭐 직업이 자기 인생에서 중요할 순 있다. 이를 충분히 설명하면 그나마 납득이라도 갈 텐데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로 '이 사람의 근태'가 작동한다. 이 부분과 '아내와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는 강진 봉의 태도'는 그냥 안 맞는다. 이 사람의 인생 동기부여는 과연 무엇이었나?라는 의문이 든다. 또 극 중에서 '내가 너니까 같이 살아주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건 시한부 건 아니 건간에 이런 사람이랑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세연은 과연 무슨 잘못인가? 하는 의문점이 들 정도다. 이 인물이 이렇게 틱틱대는 습성은 후반부에서 떡밥이 회수된다. 뭐 이런 이야기 구성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러닝타임 거의 전반을 차지하는 까칠함이 후반부에 잠깐으로 회수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연출적으로 힘을 빡 준 게 아니고 그냥 '그랬다더라'식의 이야기 전개가 이 영화에 어떤 강점으로 작용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강진봉 캐릭터가 아예 비현실적으로, 기능적으로만 사용되다 보니 오세연 캐릭터에게도 구멍이 생긴다. 대체 이 사람이랑 왜 결혼한 걸까?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부부의 로드무비에 살짝 어색함이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자녀 둘의 캐릭터 설정에 아쉬움이 크다. 일단 아내 세연과 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 세연이 왜 이런 처지에 처했는가?를 암시하고 싶었던 듯하다. 이는 아들 캐릭터에서도 알 수 있다. 아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과 진봉의 과거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가족끼리 뭔가가 유전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런데 애초에 이 두 설정이 굳이 들어가야 했는지? 는 의문이다. 일단 세연이 그런 병이 생겼다는 직접적인 근거가 되지 않는다. 그냥 엄마, 선생님 말 안 듣는 애의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기능적으로 소재를 활용한 셈이다. 또 후자 아들의 욕심과 관련한 부분에도 굳이 그가 그런 미래를 꾸릴 이유가 없다. 그냥 딸의 서사 안에서도 이야기를 구성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를 넣었다는 것은 음악영화라는 강박 때문에 넣어야만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는 영화의 형식과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극초반부의 내용과 후반부의 내용은 수미상관을 이룬다. 이 대비를 통해 한 인물은 성장한다. 그런데 어떤 인물들은 신기할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이 역시 최국희 감독이 인물을 기능적으로만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작은 부분이지만 로드무비의 근본적인 계획에서 의문점이 드는 부분도 있다. 이 지점은 관객분들이 러닝타임 끝까지 보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관이 명관
또 이 영화에 강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은 배우들의 퍼포먼스다. 일단 류승룡 배우는 최고작을 경신했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강진봉 캐릭터는 많이 비현실적이다. 시한부인 아내 옆에서 신기할 정도로 까칠한 진봉. 이에 힘입어 직장 생활에서도 민원을 많이 받는 폐급 공무원 역할을 맡았다. 이 사람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는 있겠는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를 위해서 후반부에서 이 사람의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에 힘을 팍 줘야 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잘 수행한다. 특히 극후반부 독백 신은 글쓴이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 이 영화가 뻔한 신파극이 아닌 창의성을 가지는 지점이 이 시퀀스라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류승룡 배우에게 진심이 느껴졌다. 관객이 몰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각자의 삶에 보내지 못했던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당신의 그 사람이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진심이다.
또 염정아 배우 역시 엄청났다. 염정아 배우가 맡은 오세연 캐릭터 역시 비현실적이다. 극의 초반부에 제시되는 강진봉은 세상 이런 쓰레기가 없을 정도로 나쁜 놈이다. 또 아이들도 보통 싸가지가 없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리액션 연기를 수행하며, 아이들도 사랑하는 어머니 연기를 잘 수행했다. 또 이 배우가 갖고 있는 미션이 있다. 바로 울 때, 웃을 때 감정을 선명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전자의 경우 '울 때'는 이 인물이 가진 불운을 섬세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이때 매번 우는 모습을 바꾸면서 각각의 시퀀스마다 개성을 부여한다. 또 이 '웃을 때'는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이어진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설득력을 부여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다른 세 배우도 좋았다. 옹성우-박세완-심달기 배우는 설레는 틴에이저 로맨스를 잘 구현했다. 특히 옹성우 배우는 <서울 대작전>에선 커리어의 최저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유아인, 문소리 같은 베테랑들도 오그라드는 연기를 보여주게 만드는 영화의 톤이 이 배우에게도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 파트에서, 인물의 뒷배경을 유지하면서 내면의 무언가를 숨긴 연기를 잘 수행한다. 그리고 발성이나 눈빛 연기도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배우가 임시완 배우만큼이나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사랑>에서의 연기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뒷배경을 잘 살렸다. 또 내가 좋아하는 박세완 배우도 감정의 높낮이를 잘 구현했다. 앞의 옹성우 배우와 함께 좀 전형적인 연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 구성이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건 사랑에 빠지면 빠진대로 그 깊이를 묘사하는 방식의 힘이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는 각본에서 철저하게 인과관계를 제시하지 않아도 설득력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박세완 배우는 어린 10대의 얼굴로 자기만의 연기를 수행한다. 또 심달기 배우가 물리적으로 그렇게 분량이 길진 않다. 그러나 이 배우는 굳이? 싶은 불필요한 캐스팅이 아닌 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연기 방식으로 잘 소화한다. 이후에 이 영화는 심달기 배우가 맡은 역할이 성인이 된 후에도 굉장히 중량감이 있는 캐스팅을 골랐는데 두 사람이 잘 어울렸다고도 생각한다.
떠나갈 모든 것들에게
인생은 아름다워. 제목만 보면 현재를 즐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물론 지금 왓챠피디아를 켜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난 그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이 영화가 지나간 것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세연의 사랑을 그리는 방식, 그리고 영화의 엔딩이 어떤 인물로 끝나는가에 대한 부분, 포스터만 봐도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그렇다. 이 지점을 추렸을 때 영화에서 강력하게 작동하는 모티브는 이별이다. 무슨 이별이나? '행하지 못했던 이별'이다. 또 세연이 삶 전체를 관통하며 사랑받지 못했다는 미련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 두 지점은 별개같이 느껴지지만 영화에서 하나의 결론으로 향한다. 바로 내 삶에 대한 반추다. 이 반추 끝에 결국 이별하게 된 인물들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뭉클한 느낌이 든다.
결국 영화는 모든 삶을 아름답다고 하되 좀 다른 느낌으로 변화구를 던졌다. 바로 어떤 인생이든, 현재가 아름답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든 삶은 박수받아 마땅하다는 뜻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기억과 그 기억에 남아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 그 기억 끝에 어떤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이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얼 생각하게 만들까? 지나간 사람이 남기고간 추억에 대해서 반추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 추억이 현실로 옮겨오면 별 볼일 없게 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는 아직 너무 많은 노래와 사랑이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 없이 사랑하고 또 그들을 기억할 준비를 기꺼이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삶을 살았건 인생은 아름답다. 아니, 후회없이 사랑하고 있는 당신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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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로 없는 멜로 영화
사랑은 이기적이다 못해 잔인하기까지하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하던 때에는 세상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의 세상 역시, 그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사랑의 속성을 이기적이라 부르는 이유는 어쩌면 이 모든 일말의 행동들이 ‘사랑에 빠진 나’를 위해 행하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돌고 돌아 기어코 만난 주연들이 아닌, 그 들 주위에 허우적대는 조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뉴욕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돌아온 매튜는 사업차 홍콩으로 가기 전, 우연찮게 한 호텔에서 2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 리사의 흔적을 찾는다. 아무 말없이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그는 그녀의 발자취를 뒤쫓던 중 리사의 아파트를 찾게 되나 자신이 리사와 다른 여자를 착각했음을 깨닫는다. 심지어 이름마저 같은 그녀에게서 매튜는 도무지 리사의 흔적을 지울 수 없고, 결국 그는 자신의 추억을 더듬어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리사를 찾기에 이른다.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주연으로 시작하여 조연으로 끝이 나는 영화다. 대개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오르며 두 주인공에 감정이입한 관객들이 그 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것과 다르게 이 영화는 반대로 사랑 이면에 있는 그 잔인함에 절로 마음이 갑갑해진다. 엔딩크레딧이 오르고 나서도 여전히 매튜를 사랑하고만 또 다른 리사(알렉스)가 끝까지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튜를 향한 애잔하고도 처절한 알렉스의 짝사랑 탓에 그의 친구 루크 역시 자신의 사랑을 철저히 외면당한다. 순식간에 주연에서 조연들로 전략해버린 사람들의 처량함에 결말이 야속하기까지하다. 그러므로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미치도록 한 여자를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순애보가 아닌 그토록 이기적이고도 씁쓸한 사랑 그 이면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에 자행되고 마는 수많은 이기적인 선택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는 사람들, 상처 주는 사람들. 행복하면서도 불행하고, 불행하면서도 행복한 사랑의 이중성.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 이중성에 대한 잔인하고도 씁쓸한 멜로 아닌 멜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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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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