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18 00:59:38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페달을 밟던 여름들
영화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걸어서는 닿을 수 없는 드랭블루아
- 같은 선에 서있는 앙토니와 아신. 같은 계층인 두 사람
- 앙토니의 짝눈, 외모 변화가 가지는 의미
- 아빠의 바이크, 자켓의 의미. 엔딩 해석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And Their Children After Them, 2024)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페달을 밟던 여름들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성장, 로맨스
러닝타임 : 145분
감독 : 뤼도릭 부케르마, 조란 부케르마
출연 : 폴 키르셰, 앙젤리나 워레스, 질 를르슈, 사이드 엘 알라미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1992년 여름 동부 프랑스. 기어가는 벌레, 날아가는 파리 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고요한 숲속 호수. 그 근처를 맴돌고 있던 15세 소년 앙토니는 지루함을 느낀다. “심심해 죽겠어.” 앙토니의 말 한마디가 정적을 깬다. 앙토니와 사촌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보트를 훔쳐 강너머 누드비치로 향한다. 앙토니는 그곳에서 부유한 집안의 딸 스테파니를 만나 사랑을 느끼고 그의 세상에 편입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신인배우상 수상 소식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큰 관심을 받은 영화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다양한 계층 갈등과 소년의 사랑, 성장을 담고 있는 아름다우면서도 아릿한 이야기다.
한여름에 만난 첫사랑과 설렘, 일탈과 만취의 짜릿함, 무모한 걸 알면서도 내뻗어보는 주먹, 바이크를 타고 시원하게 내달려보는 숲길, 그 아래 흐르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록 음악. 이 영화엔 청춘의 치기와 여름의 낭만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것을 모두 전복시키는 무거운 현실의 불편함도 함께 담겨있다.
앙토니는 특별할 것 없는, 사실 평범하다기엔 조금 모자란 집안에서 자란 소년이다. 제철 공장에서 일했던 아빠는 술독에 빠져 폭력성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졌고 집안 경제를 함께 책임지고 있는 엄마는 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힘이 없는 두 부모는 바이크와 여행이라는 꿈을 접어두고 현실에 한껏 휘둘리고 있다.
아직 어린 앙토니는 이런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고향을 떠나 텍사스로 가고 싶고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부촌인 드랭블루아에 사는 스테파니와 친해지고 싶다. 하지만 앙토니는 몇 번의 여름을 지나며 알게 된다. 타고난 운명을 벗어나 새로운 계층으로 편입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테파니는 앙토니와 사촌을 드랭블루아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한다. 그런데 앙토니의 집에서 드랭블루아까지 가려면 꼭 바이크가 필요하다. 앙토니는 파티를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아빠 몰래 바이크를 훔쳐 타고 파티에 가기로 결심한다. 바이크를 끌고 나오는 앙토니를 발견한 엄마는 앙토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기곰, 인생이 언제나 재밌는 건 아냐.”
앙토니는 엄마가 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엄마를 뒤로하고 사촌과 함께 바이크를 타고 파티로 향한다. 모르는 얼굴들 사이를 헤매던 앙토니는 스테파니와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 약을 한번 들이켜고는 아주 조금 그들의 세상에 녹아든다.
앙토니는 스테파니와 친해지고 싶다. 그런데 그 바람이 이루어지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앙토니는 파티에서 스테파니 무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약을 먹고 스테파니를 따라 수영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스테파니 무리가 무시하는 유색인종 아신에게 발을 걸기까지 하며 그들과 친해지려 한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앙토니가 붙여준 담배를 물고는 금방 파티 주최자 시몽과 함께 사라지고 앙토니가 한 발자국 다가가 키스를 시도하자 그를 밀쳐내며 거리를 벌린다. 앙토니는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파티가 끝난 후 남은 건 도난당한 바이크의 빈자리뿐이다.
앙토니는 소외된 집안의 아들, 스테파니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다. 두 사람 사이엔 가난한 집안과 잘 사는 집안이라는 계층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어린 앙토니는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스테파니에게 사랑을 표현하지만 매번 다른 이유로 실패한다.
앙토니와 스테파니가 들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두 사람은 앙토니가 살고 있는 가난한 동네와 스테파니가 살고 있는 부유한 동네를 주제 삼아 이야기를 나눈다. 앙토니는 가난한 동네엔 나체족 집시들이 캠핑카에 모여 살고 있다고 운을 뗀다. 이때 스테파니는 자신도 어릴 때 할머니와 잠시 그 동네에 살았는데, 그때 스테파니의 아빠가 담장을 쳐서 들판에 있는 나체족을 안 보이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스테파니와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음을, 그 동네에 사는 앙토니와 스테파니 또한 가까워질 수 없음을 알려주는 말이다.
앙토니와 아신은 파티에서 처음 만난다. 앙토니는 부잣집 백인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아신에게 발을 걸며 자신은 그와 다른 계층의 사람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앙토니에겐 슬픈 일이지만 사실 앙토니와 아신은 ‘소외된 사람’이라는 같은 계층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계층은 두 사람의 아빠 세대부터 이어진다. 앙토니와 아신의 아빠는 제철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였고 노동자와 이민자로 상위층보단 하위층에 속한 삶을 살아왔다. 아빠들과 다른 시대를 살아온 앙토니와 아신은 이런 접점이 없어 일찍 친구가 되지 못하고 서로를 오해했을 뿐이지, 결국 두 사람의 삶은 비슷한 길로 흘러간다.
바이크 사건 이후 앙토니와 아신은 오해를 쌓아간다. 앙토니에게 앙심을 품은 아신은 바이크를 불태워 돌려주고 화난 아빠에게서 도망친 앙토니는 다른 바이크를 타고 그를 찾아가 총을 겨눈다. 겁먹은 아신은 오줌을 지리고 앙토니를 반드시 죽일 거라 다짐한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서있는 바닥을 보면 중앙에 그어진 선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두 사람을 충돌시키거나 그들의 다름을 표현하는 경우엔 선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을 갈라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팽팽한 대립이 일어나는 신임에도 불구하고 앙토니와 아신을 같은 선 위에 나란히 세워놓는다. 앙토니와 아신이 같은 선 위에서, 같은 계층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연출은 이후 96년에 앙토니의 아빠 파트리크가 호수로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실감한 파트리크는 삶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호수로 걸어들어간다. 이때 위에 있는 달빛이 물에 반사되어 마치 파트리크가 그 달빛 위를 걸어가는 듯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아신은 그걸 지켜보다가 파트리크가 사라지자 그가 걸었던 달빛 방향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그를 구하려 한다. 물이 깊어지자 뒤돌아 빠져나오긴 했지만 아신 또한 파트리크와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다.
앙토니는 짝눈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92년, 사촌은 “네 짝눈 때문에 여자들이 도망친다”라고 앙토니에게 장난 어린 디스를 한다. 앙토니는 그에 딱히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헛소리 말라는 듯 받아칠 뿐이다. 이때 앙토니는 앞머리를 길게 길러 자신의 짝눈을 반쯤 덮어두고 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앙토니에겐 외적인 변화가 생긴다. 사춘기를 상징하는 여드름의 흔적이 점점 옅어지고 머리는 점점 짧아진다. 그러면서 앙토니는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다. 그는 마지막 여름이었던 의가사 제대 직후 스테파니에게 차였을 때, 처음으로 자신의 짝눈을 제대로 의식하고 만져본다. 정말 짝눈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건가? 생각하는 것처럼.
앙토니의 짝눈은 그의 외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가 가진 가난, 그의 계층을 상징하기도 한다. 짝눈을 머리카락으로 덮고 있던 92년의 앙토니는 자신의 가난과 집안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테파니에게 끝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도전하고, 아신과 같은 낮은 계층의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94년 여름. 16세의 앙토니는 머리를 조금 짧게 자른다. 앙토니는 여전히 스테파니에게 구애를 하긴 하지만 스테파니가 받아주지 않자 이전에 자전거 앞을 막아세웠던 바네사를 찾아가 관계를 가진다. (바네사는 이웃사촌으로 앙토니와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이때의 앙토니는 자신을 쫓아오는 무언가에서 도망치거나 사랑하는 것을 쫓는 모습을 보여준다.
96년 여름. 18세가 된 앙토니는 군 입대를 위해 머리를 짧게 깎는다. 재회한 앙토니와 스테파니는 육체적 관계를 나누지만 구경꾼들에 의해 중단된다. 스테파니는 바로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 앙토니는 헤드라이트를 따라 멀어지는 스테파니를 지켜보고만 있다.
98년 여름. 앙토니는 오랜만에 사회로 나와 사촌과 그의 아내, 아신, 스테파니를 만난다. 사촌은 부유한 뒤립씨 딸 클레망스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고 아신도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있었다. 두 친구를 만난 후 앙토니는 아빠의 바이크를 훔쳐타고 드랭블루아에 가던 날처럼 아신의 바이크를 훔쳐타고 스테파니를 찾아간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우리의 사랑은 네 상상일 뿐이라며 단호하게 희망의 불을 꺼버린다. 계층을 넘기 위한 앙토니의 마지막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앙토니는 짝눈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계층, 현실을 확실히 인식한다. 그리고 지금껏 애써 품어온 희망을 포기하겠다는 듯이 훔친 아신의 바이크를 돌려주겠다는 연락을 남긴다.
아빠의 바이크, 자켓이 의미하는 것
앙토니는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자유로움과 희망을 느낀다. 시원한 바람과 그 뒤를 따라오는 새로운 삶을 향한 설렘. 그는 바이크를 타고 스테파니를 향해, 미래를 향해 달린다. 앙토니의 아빠도 언젠간 그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바이크를 타고 자유로움과 희망을 느끼던 삶.
하지만 아빠는 자신의 계층을 바꾸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아들은 아빠의 자켓을 입고 언젠가 아빠가 달렸을 그 숲길을 달린다. 그들(어른들)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세상이 변해 누드 비치는 누드 비치가 아니게 되었고 도시를 이끌었던 제철공장은 문을 닫는 변화가 생겼지만 사람들 간의 계층은 여전히 견고하다.
앙토니가 아빠의 바이크를 훔쳐 파티에 가던 날처럼 계층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즐거운 인생을 살면 좋을 텐데, 엄마의 말처럼 인생이란 언제까지나 즐거울 수 없는 것인가 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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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노래로 조국에 안녕을 고하다
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노래로 조국에 안녕을 고하다
한국영화사는 음악영화사다 섹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리뷰
감독] 로버트 와이즈
출연] 줄리 앤드류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시놉시스] 음악을 사랑하는 말괄량이 견습 수녀 마리아는 원장 수녀의 권유로 해군 명문 집안 폰 트랩가의 가정교사가 된다. 마리아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폰 트랩가의 일곱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점차 교감하게 되고, 엄격한 폰 트랩 대령 역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는 자신이 폰 트랩 대령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아이들의 곁을 떠나 다시 수녀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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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e- a deer, a female deer, Ray- a drop of golden sun, Me- a name I call myself, Far- a long, long way to run …. 음악 시간에 모두가 한 번쯤 블러봤을 노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대령의 자식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며 부른 곡이다. 음악 영화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 송 외에는 큰 줄거리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아서 이번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만나보았다.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뒤 폰 트랩 대령은 자식들은 군인들을 통솔하듯이 아이들을 양육한다. 마리아가 처음 가정교사로 폰 트랩 가에 방문을 한 날 건네는 인사만 봐도 굉장히 훈련이 잘된 군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본 마리아는 이러한 교육 방식은 동의할 수 없다며 폰 트랩 대령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빈으로 가 있었던 기간 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7명의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어린아이들답게 자유롭게 뛰놀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다양한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감성을 깨우치도록 만든다. 처음에는 막무가내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가정교사라고 생각하며 마리아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폰 트랩 대령은 연인인 남작 부인에게 아이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선물로 안겨주고, 꼭 통제라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부드러움으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마리아에게서 배워나간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외부 출장이 잦은 본인에게 최선은 아이들을 그저 통제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던 폰 트랩 대령은 자신의 서툰 점을 빠르게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자신 역시 노래를 부르며 새롭게 다가가고, 마리아에게 무례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이처럼 처음이기에 서툴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극에 다양하게 풀어놓고 있었다. 첫째 딸 리즐과 랄프의 첫사랑 이야기, 마리아가 폰 트랩 대령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 등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은 ‘처음’과 처음이기에 겪는 혼란 속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이 모든 과정을 굉장히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었고, 문제 상황에 똑바로 직면하고 맞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길 응원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향한 마지막 인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전쟁 중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견습 수녀 마리아가 해군 대령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결국 폰 트랩 대령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던 터라 그 시기가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어서 놀랐고, 이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넘버들에서 찬란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폰 트랩 대령은 마리아와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나치 독일의 해군 장교로 재부임을 하게 되는데, 폰 트랩 대령은 이에 반발하고 야반도주를 결심한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나치 독일의 군사들은 폰 트랩 저택에 매복해 있었고, 야반도주를 들키자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은 가족합창대회에 나가려고 길을 나서는 중이라는 변명을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합창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 닦았던 아름다운 선율을 오스트리아 국민과 나치 독일 군인 앞에서 선보인다. 이때 폰 트랩 일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칫 잘못하면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참담하면서도 굉장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합창 점수 발표 집계를 위해 폰 트랩 일가는 마지막 인사라는 컨셉으로 모두에게 굿바이 송을 부른다. 집에서 있었던 파티 현장에서 불렀던 굿바이 송은 정말 즐거웠고, 이제 자러 간다는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곡이었다. 하지만 이 곡이 나의 땅이었고, 나의 조국이었던 오스트리아를 향한 마지막 인사로 변하면서 폰 트랩 일가의 생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곡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같은 곡을 다른 상황에 넣어 그 감정의 간극을 크게 준 것이 시대의 아픔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그저 재밌고 귀여운 뮤지컬 영화라고 생각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 제천에서 다시 만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시대의 아픔과 그 속에서도 삶을 어떻게 영위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찬란한 노래로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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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8-12 19:30
메가박스 제천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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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피날레인가
길고 길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시즌까지 정주행 완료하면 '스위트홈'이 달라 보일 것이라고 이응복 감독이 큰소리쳤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혹평 세례를 면치 못했던 시즌 1이 제일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위트홈'은 시즌 3까지 이어오면서 굵직한 이야기를 담아왔다. 시즌 1이 욕망의 씨앗에서 탄생하는 괴물을 선보이며 'K-크리처물'의 시작을 알렸다면, 시즌 2는 장기화된 괴물화 사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며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이 바통을 이어받은 시즌 3은 신인류의 탄생까지 다루며 최종장을 향해 달려 나간다.
동시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전 시즌에서 무리하게 확장시킨 세계관과 빌드업이 망가진 캐릭터들, 회수 없이 떡밥 뿌리기에만 치중에 둔 스토리 전개 등으로 혹평받았던 부분을 만회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시즌 3은 시즌 2에 심어뒀던 복선 회수를 하는 데에 집중했으나, 회수 방식이 마구잡이였다. 회수에만 포커싱 했는지 개연성 또한 없고, 막상 복선이 공개됐을 때에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놀라운 반전 등은 없었다. 시청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복선들을 잔뜩 깔아 뒀는지 제작진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무리하게 확장시킨 세계관 매듭짓기 또한 허술했다. 괴물화와 다른 MH(몬스터휴먼)라고 부르는 특수감염인에 모자라서 신인류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등장했으나, 막상 '스위트홈 3'에서 비중이 크진 않았다. 신인류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은혁(이도현)의 컴백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고, MH는 편상욱(이진욱)과 서이수(김시아) 부녀 간 관계성에 묻혀버렸다.
이와 함께 등장인물들을 무분별하게 죽여나가며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도 지을 수 없었다. 개연성 없이 캐릭터들이 퇴장하는 과정을 봐야 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 따윈 없었다.
시즌 3까지 다 보고 나면 '과연 이 작품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왜 스위트홈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등 물음표도 붙는다. 새 시즌이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결이 너무나도 달라져 같은 작품인지도 혼란스럽고, 시즌 1에서 조명했던 주요 메시지 '욕망과 인간성에 대한 고민' 또한 희석되어 간다.
아, 장점도 있다. 시즌 2에서 차현수(송강)의 적은 분량이 불만이었던 시청자들에겐 이번 시즌에선 100% 만족할 것이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원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갈망했던 이은혁, 이은유(고민시) 남매의 재회도 이번 시즌에서 그려진다. 다만, 깊이감은 없으니 이 점 참고해 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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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조정석 주연의 영화 <파일럿>이 개봉 12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가 파격적인 변신을 거쳐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2024년 여름 개봉 영화 중 최단 시간 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올여름 최고의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또한, 광복절 연휴 주간이 시작되는 다음 주에도 흥행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8월 14일 개봉하는 조정석 주연의 또 다른 영화 <행복의 나라>가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다음 주는 '조정석 주간'이 될 전망입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으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한편,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 수 40만 명을 돌파하며 2위를, <슈퍼배드 4>는
<데드풀과 울버린>을 제치고 3위에 올랐습니다.
국내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데드풀과 울버린>이 개봉 3주 만에 전 세계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올해 두 번째로 10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 되었습니다.
데드풀의 실제 아내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주연한 <잇 엔드 위드 어스>가 2위를 차지했으며, <트위스터스>가 3위에 올랐습니다.
<행복의 나라> <빅토리> <트위스터스> <에이리언: 로물루스> 광복절 전날 기대작들이 줄줄이 개봉하며 박스오피스 순위는 어떻게 변할지! 씨네픽 박스오피스 분석 다음주에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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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세계의 발견이란 인간에게 무엇을 안겨다 주는가?
사후세계의 발견이란 인간에게 무엇을 안겨다 주는가?
<디스커버리> 영화 후기
저명한 물리학자 토마스 하버는 사후세계를 발견하고 전 세계에 알린다. 그 여파로 인해 100만 명이 목숨을 끊게 되고 토마스 하버는 사후세계의 비밀을 방송 인터뷰에서 털어놓는다. 그것은 사람이 죽으면 의식의 일부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 인터뷰 도중 갑작스럽게 PD가 목숨을 끊게 된다. 그 이후로 전 세계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윌은 자신의 아버지인 토마스 하버의 실험을 막기 위해 배를 탄다. 배 안에는 아일라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었고 서로 왜 이곳에 왔는지 대화를 나눈다. 둘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느 대저택에 가게 된다. 과연 그곳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후세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토록 인류가 궁금해하던
사후세계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
하니엘의 생각
|사후세계는 나의 또 다른 삶의 버전인 평행세계이다.
영화 디스커버리에서 밝혀진 사후세계란 자신이 가장 후회했던 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후회를 하곤 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이유를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후세계의 발견으로 인해 슈퍼스타, 운동선수, 토마스 하버의 동료들까지 목숨을 끊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토마스 하버는 막대한 인명 손실에 대한 부담과 책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윌은 아버지가 연구에만 몰두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에 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래서 윌은 아버지인 토마스 하버에게 사후세계 실험을 멈추라고 권했던 것이다. 아일라 또한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못 이겨 죽으려고 하지만 이 광경을 지켜본 윌이 막는다. 그러나 아일라는 그녀를 질투하던 레이시라는 여성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윌은 아일라의 죽음에 슬퍼하여 아버지가 쓰던 연구 장치를 통해 아일라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윌은 아일라라는 여성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아일라가 죽자 그도 따라 죽었던 것이다. 계속 원점으로 삶이 반복되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란 만약 자신의 인생이 괴로워도 이 생에 충실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들의 삶은 똑같지가 않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디스커버리란 영화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4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급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인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이 생에서 풀지 못한 것을 다음 생에서 풀 수 있는 것일까? 만약 당신이 가장 후회되는 일 때문에 괴롭다면 당신은 이 현실에 남아있을 것인가? 물론 사후세계가 발견된다면 말이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고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영화 끝나고 쿠키 영상이 1개 있습니다.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관람한 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하니엘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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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철원 그리고 가족
겨울, 철원 그리고 가족
영화 <철원기행> 리뷰
출처: 다음 영화
김대환 감독의 영화 <철원기행>은 제목을 보는 순간 비슷한 제목의 소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그 제목만으로도 벌써 철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무진기행] 속 무진은 주인공 ‘나’에게 일종의 도피처 같은 장소였다. 가장으로서 사위로서 짊어지어야 할 무게를 잠시 잊기 위해 떠난 무진. ‘나’는 무진에 일상에서는 감히 못할 일들을 묻고 돌아온다. 그렇다면 <철원기행> 속 ‘철원’은 어떤가? 각자의 상상을 품은 채 마주 하게 되는 영화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제멋대로의 생각들을 철원이라는 공간에 자유롭게 풀어주며 그 안의 인물들이 걸어가는 여정을 따라 천천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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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 유난히 많이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노년의 교사 김성근(문창길 분)은 정년 퇴임을 맞이한다. 오랫동안 걸어온 길에 비해 초라한 퇴임식에 온 건 떨어져 살고 있던 아내 여정(이영란 분)과 큰 아들 내외. 기쁜 날 중국집을 찾아 식사를 하는 가족이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게다가 약속 시간에 늦은 막내 아들 수현(허재원 분)이 뒤늦게 합류하며 분위기는 점점 더 불편해지는데. 체 할 것만 같은 식사 자리가 끝나 가던 중 아버지 성근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아내 여정과 이혼하겠다는 것. 큰 아들 동욱(김민혁 분)과 며느리 혜정(이상희 분), 수현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여정은 경악하며 밖으로 나가버리고 만다. 아버지의 폭탄 발언 이후 가족들 간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지만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 폭설로 인해 온 가족이 철원에 발이 묶여버린다.
원치 않게 아버지 성근의 집에 머물게 된 다섯 사람. 그들 안에서 우리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족상을 엿볼 수 있다. 무뚝뚝하고 속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 아버지와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는 어머니. 부모님을 어려워하는 큰 아들과 시부모님께 밉보이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며느리, 그리고 아직은 철없는 막내아들까지. 김대환 감독이 정확히 잡아낸 우리네 가족들의 모습들은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로 다시 태어났고 <철원기행>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관객들에게 찾아왔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다섯 사람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쌓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 역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적 모습으로 영화에 감칠맛을 더하는데. 감독이 특히나 강조하며 드러내는 건 좋은 겉포장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람들의 못난 모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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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치는 영화가 하나 있다. 루벤 외스트룬드 감독의 2014년도 작품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포스 마쥬어> 속 가족들은 눈으로 뒤 덮인 아름다운 알프스의 스키 리조트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데 <철원기행> 속 가족들 역시 갑작스러운 날씨로 인해 그와 같은 행보를 걷는다. 폐쇄된 공간,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온 가족의 낯섦. 그들을 고립시키는 ‘눈’을 매개로 두 영화의 가족들은 서로의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각자의 마음이라지만 한편에 자리 잡은 이기적인 마음 역시 사람의 일부분. 두 영화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우는가 하는 지점에서 다른 길을 걷는다. <포스 마쥬어>가 모종의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그 간의 불편함을 뒤덮어 버리는 반면 <철원기행>은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신들을 맡긴다.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들이 남아 있지만 결코 그 해답을 영화 속에서 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딘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헛웃음마저 나오게 만드는 영화 <철원기행>은 굉장히 불친절하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이혼을 얘기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고 자식 세대가 겪는 문제는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는다. 찝찝함을 남긴 채 막내아들과 엄마는 버스에 오르고 큰 아들 내외 역시 아버지를 뒤로한 채 철원을 떠난다. 그러나 사실 영화는 굳이 친절할 필요가 없었다. 이 모든 일들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는 벌써 우리가 겪고 있을 일들이기에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 이면을 모두가 이미 짐작했을 터였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End of Winter’. 이 땅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이 가족의 겨울은 이제 끝이 났다. 이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오직 하나. 괜한 말 한마디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들의 모습에도 우리가 희망을 느끼는 건 떠나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 끝에 걸린 봄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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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
흔히 '가족'이라는 단어를 보면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와 피가 섞인 엄마, 아빠, 남매나 자매. 혹은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족 같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키우던 애완동물, 나와 오랜 기간 함께한 친구, 내게 정말 소중한 존재인 이들. 현 사회에 들어서, 기존의 우리가 기억하던 '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족'의 정의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디까지를 가족이라고 보느냐에 따라 그 범위는 크게도, 좁게도 바뀔 수 있다. 이는 더는 '유전자를 나누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인공에겐, 누가 진짜 가족일까?
영화 <바튼 아카데미>
감독 알렉산더 페인
주연 폴 지아마티,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1. 모두가 떠난 순간, 우리만이 함께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학생들이 모두 떠난 학교에 꼼짝없이 발이 묶인 중년 교사 폴, 주방장 메리, 그리고 자유를 꿈꾸는 학생 앵거스가 만들어내는 잊지 못할 연말 이야기다. 폴 허넘은 방학을 맞은 바튼 아카데미에서, 방학이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담당하게 된다. 그중에는 오늘 보스턴에 가기로 했다며 수업을 일찍 끝내달라던 앵거스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계획과 달리, 엄마가 새아빠와 단둘이 신혼여행을 가게 되어 앵거스를 데리고 갈 수 없다며 계획 취소 통보를 해 버린 것. 보스턴에 가 아빠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앵거스는 그토록 떠나고 싶어하던 학교에 남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지라고 여겼던 네 명의 학생들은 곧 '전용 헬기'가 있는 집안의 학생을 따라, 부모님의 허가를 받고 스키를 타러 학교를 떠난다. 여기서도 앵거스는 예외다. 다른 학생들의 부모님이 전화를 받고 허락을 해 준 반면, 앵거스의 엄마는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앵거스의 답답한 마음을 모르는 듯 엄마의 허락은 들려올 리가 없고, 결국 앵거스는 학교에 남은 단 한 명의 학생이 되어 엄격하고 고지식한 역사교사 폴 허넘과 함께 방학을 보내게 된다.
-2. 정반대의 둘 = 부딪히며 성장하게 된다는 건 공식!
엄격하고 고지식한 역사교사, 학교를 싫어하고 떠나고 싶어하던 학생.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된, 입장도, 나이도, 모든 게 다른 둘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부딪히고 멀어지기만 하면 성장할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영화는 이 둘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같은 공간에 이들을 몰아넣고, 하나의 조건을 부여한다. '폴 허넘은 앵거스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
미성년자인 앵거스의 부모가 앵거스를 돌볼 수 없는 동안, 폴 허넘은 앵거스의 교사로서, 보호자로서, 또 한 명의 관찰자로서 늘 그와 함께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다시 말해 앵거스는 폴 허넘 없이 어디에도 갈 수 없고, 폴 허넘은 앵거스를 두고 떠날 수 없다. 이는 그들이 서로 안 맞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함께하도록 만들고, 마침내 어느 순간 서로를 생각하고 지지하도록 만드는 발판이 된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앵거스가 폴 허넘에게 보이는 태도의 변화는 꽤나 인상적이다. 끊임없이 갈등하던 이들은 어느 순간 서로를 위해, 우리만의 '앙트레 누'를 만들고, 이를 비밀로 지켜주기로 한다. 영화에서 '앙트레 누'는 '우리만의 비밀 이야기'를 뜻한다. 병원에 가 보험 적용을 해야 했을 때, 폴 허넘은 보험 적용을 하고 부모님께 알리고 나면 자신은 교사 자격이 없어 해고되고 말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폴 허넘을 본 앵거스는 폴 허넘에게 아빠 행세를 하라는 듯 눈치를 주며,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는데, 이 소식을 엄마가 알게 되면 다시는 아빠를 못 볼 것'이라고 둘러댄다. 거짓말을 통해 사고를 무마하고, 폴을 지켜준 것이다.
'거짓', 다시 말해 서로가 알게 된 서로의 '앙트레 누'는 이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든다. 이후 허넘은 여행 중 대학교 동창을 만난 순간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대신, 거짓말로 근황을 꾸며내 이야기한다. 앵거스는 허넘을 속이고 병원의 아빠를 보러 가려다 오해를 빚게 된다. 계속해서 함께했음에도 서로에게 미처 털어놓을 수 없었던 각자의 사정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시도한다.
이는 이후 보스턴에 가 아빠를 만난 앵거스가 이 사실을 들킨 뒤 앵거스의 엄마에 의해 사관학교로 보내질 위기에 처한 순간 정반대의 구도로 다시 드러난다. 앵거스가 허넘이 교사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병원에서 자신과 허넘의 관계를 속였다면, 이번에는 허넘이 앵거스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쪽을 선택한다. 허넘은 자신의 '고향'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자신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튼 아카데미'에서의 직위를 유지하는 대신, 앵거스를 위해, 지도자로서, 교사로서, 또는 2주간의 양육자로서의 선택을 한 것이다.
-3. 짧은 기간, 그만큼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이들은 허넘의 선택이 갑작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들이 바튼 아카데미에서 함께 보낸 '2주'는 짧디 짧고, 결과만 두고 보자면 앵거스는 허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몰래 아빠를 보러 가다 사고를 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허넘과 앵거스의 유대를, 그들의 관계를 얼마나 깊다고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오히려 앵거스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앵거스와 오랜 기간 함께한 앵거스의 엄마가 아니라, 2주간 앵거스를 이해하고, 앵거스를 위한 연말 파티를 해 준 폴 허넘이다. 그렇기 때문에 앵거스는 폴 허넘에게, 그리고 요리를 준비해 준 메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크리스마스를 보낸 건 처음이라고.
이는 앵거스가 새아빠는 가족이라고 느끼지 않지만, 허넘과 메리에 대해서는 유대와 위로를 느끼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폴 허넘, 메리, 앵거스는 저마다의 이유로 바튼 아카데미에 '홀로' 남아 있다. 폴 허넘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방학 기간 담당 교사를 맡게 되었기 때문에, 메리는 바튼 아카데미 출신 아들 커티스 램을 베트남 전쟁으로 잃었기 때문에, 그리고 앵거스는 엄마와 새아빠가 신혼여행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떠났기 때문에. 저마다의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이 셋은, 함께 연말 파티에 가면서, 함께 연말 트리 앞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함께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이들이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각자의 결핍을 딛고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앵거스가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폴 허넘이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 순간에, 메리가 자신의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술에 취해버린 순간에.
이들을 누가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그리고 서로를 위해 먼저 나서고자 하는 순간.
그들은 모두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감싸안을 수 있는 충분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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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비우스 리뷰 - 베놈2의 단점을 답습하다 (스포일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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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합니다]
1. 베놈, 모비우스는 마블의 작품이지만 MCU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는 않는 독자적인 소니 스파이더 유니버스를 구축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01:25 ~ 01:27 01:53 ~ 02:02
2. 제가 러프하게 마블의 작품이라고 한 부분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부족했던 것을 말씀드리며 다음번엔 조금더 검토를 하고 영상 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영상 시청에 불편함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분명 영화 모비어스에도 장점은 있었습니다. 정말 박쥐처럼 공간을 인식하는 시각적인 효과도 인상적이었고, 액션씬 중간중간에 나오는 슬로 모션도 기억에 꽤나 남았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흔히 말하는 겉멋 가득한 무의미한 연출들은 아쉬웠고, 샹치 텐 링즈의 전설에 이은 갑작스러운 에너지파 결말은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습니다.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아쉬운 이야기를 들었던 블랙위도우, 베놈 2, 샹치, 이터널스로 인해 식어가던 마블에 대한 애정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다시금 살리는가 싶더니, 이번엔 모비우스가 그 불씨를 다시 꺼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쉬움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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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스타트>
"나는 매일 부활한다"
늘 똑같은 아침 7시가 되면 일어나
정체 모를 킬러들과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여야하는 남자 '로이'.
무한 타임루프 속에서 매일 죽고 살기를 반복하다
불현듯 자신의 숨겨진 액션 본능에 눈을 뜨게 되는데...
145번째 아침,
오늘부턴 내가 킬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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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랜드 투어> 메인 예고편
2024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타부' 미겔 고메스 감독 작품 그랜드 투어 메인 예고편 "넋이 나간 것만 같은 연인의 황당무계한 사랑의 여행을 내내 홀린 듯이 보게 될 것이다”
- 정성일 평론가
영국 공무원 에드워드는 약혼녀 몰리가 온다는 소식에 결혼을 피해 싱가폴로 도망친다. 몰리는 에드워드를 쫓아 싱가폴, 방콕, 사이공 등에 이르는 그랜드 투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