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신고

댓글 신고

MOVIEREAD2025-06-05 20:01:17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

영화 <바튼 아카데미> 리뷰

 

 

흔히 '가족'이라는 단어를 보면 혈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와 피가 섞인 엄마, 아빠, 남매나 자매. 혹은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족 같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키우던 애완동물, 나와 오랜 기간 함께한 친구, 내게 정말 소중한 존재인 이들. 현 사회에 들어서, 기존의 우리가 기억하던 '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족'의 정의는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어디까지를 가족이라고 보느냐에 따라 그 범위는 크게도, 좁게도 바뀔 수 있다. 이는 더는 '유전자를 나누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인공에겐, 누가 진짜 가족일까?

 

영화 <바튼 아카데미>

감독 알렉산더 페인

주연 폴 지아마티, 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1. 모두가 떠난 순간, 우리만이 함께


영화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학생들이 모두 떠난 학교에 꼼짝없이 발이 묶인 중년 교사 폴, 주방장 메리, 그리고 자유를 꿈꾸는 학생 앵거스가 만들어내는 잊지 못할 연말 이야기다. 폴 허넘은 방학을 맞은 바튼 아카데미에서, 방학이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학교를 떠나지 못하게 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담당하게 된다. 그중에는 오늘 보스턴에 가기로 했다며 수업을 일찍 끝내달라던 앵거스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계획과 달리, 엄마가 새아빠와 단둘이 신혼여행을 가게 되어 앵거스를 데리고 갈 수 없다며 계획 취소 통보를 해 버린 것. 보스턴에 가 아빠를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앵거스는 그토록 떠나고 싶어하던 학교에 남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지라고 여겼던 네 명의 학생들은 곧 '전용 헬기'가 있는 집안의 학생을 따라, 부모님의 허가를 받고 스키를 타러 학교를 떠난다. 여기서도 앵거스는 예외다. 다른 학생들의 부모님이 전화를 받고 허락을 해 준 반면, 앵거스의 엄마는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앵거스의 답답한 마음을 모르는 듯 엄마의 허락은 들려올 리가 없고, 결국 앵거스는 학교에 남은 단 한 명의 학생이 되어 엄격하고 고지식한 역사교사 폴 허넘과 함께 방학을 보내게 된다.

 

 

 

 

 

-2. 정반대의 둘 = 부딪히며 성장하게 된다는 건 공식!


엄격하고 고지식한 역사교사, 학교를 싫어하고 떠나고 싶어하던 학생.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하게 된, 입장도, 나이도, 모든 게 다른 둘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부딪히고 멀어지기만 하면 성장할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영화는 이 둘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같은 공간에 이들을 몰아넣고, 하나의 조건을 부여한다. '폴 허넘은 앵거스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 

 

미성년자인 앵거스의 부모가 앵거스를 돌볼 수 없는 동안, 폴 허넘은 앵거스의 교사로서, 보호자로서, 또 한 명의 관찰자로서 늘 그와 함께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다시 말해 앵거스는 폴 허넘 없이 어디에도 갈 수 없고, 폴 허넘은 앵거스를 두고 떠날 수 없다. 이는 그들이 서로 안 맞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함께하도록 만들고, 마침내 어느 순간 서로를 생각하고 지지하도록 만드는 발판이 된다.

 

영화가 흘러갈수록 앵거스가 폴 허넘에게 보이는 태도의 변화는 꽤나 인상적이다. 끊임없이 갈등하던 이들은 어느 순간 서로를 위해, 우리만의 '앙트레 누'를 만들고, 이를 비밀로 지켜주기로 한다. 영화에서 '앙트레 누'는 '우리만의 비밀 이야기'를 뜻한다. 병원에 가 보험 적용을 해야 했을 때, 폴 허넘은 보험 적용을 하고 부모님께 알리고 나면 자신은 교사 자격이 없어 해고되고 말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폴 허넘을 본 앵거스는 폴 허넘에게 아빠 행세를 하라는 듯 눈치를 주며,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는데, 이 소식을 엄마가 알게 되면 다시는 아빠를 못 볼 것'이라고 둘러댄다. 거짓말을 통해 사고를 무마하고, 폴을 지켜준 것이다.

 

'거짓', 다시 말해 서로가 알게 된 서로의 '앙트레 누'는 이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든다. 이후 허넘은 여행 중 대학교 동창을 만난 순간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대신, 거짓말로 근황을 꾸며내 이야기한다. 앵거스는 허넘을 속이고 병원의 아빠를 보러 가려다 오해를 빚게 된다. 계속해서 함께했음에도 서로에게 미처 털어놓을 수 없었던 각자의 사정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시도한다.

 

이는 이후 보스턴에 가 아빠를 만난 앵거스가 이 사실을 들킨 뒤 앵거스의 엄마에 의해 사관학교로 보내질 위기에 처한 순간 정반대의 구도로 다시 드러난다. 앵거스가 허넘이 교사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병원에서 자신과 허넘의 관계를 속였다면, 이번에는 허넘이 앵거스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쪽을 선택한다. 허넘은 자신의 '고향'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자신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튼 아카데미'에서의 직위를 유지하는 대신, 앵거스를 위해, 지도자로서, 교사로서, 또는 2주간의 양육자로서의 선택을 한 것이다.

 

 

 

 

 

-3. 짧은 기간, 그만큼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이들은 허넘의 선택이 갑작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들이 바튼 아카데미에서 함께 보낸 '2주'는 짧디 짧고, 결과만 두고 보자면 앵거스는 허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몰래 아빠를 보러 가다 사고를 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허넘과 앵거스의 유대를, 그들의 관계를 얼마나 깊다고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오히려 앵거스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앵거스와 오랜 기간 함께한 앵거스의 엄마가 아니라, 2주간 앵거스를 이해하고, 앵거스를 위한 연말 파티를 해 준 폴 허넘이다. 그렇기 때문에 앵거스는 폴 허넘에게, 그리고 요리를 준비해 준 메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크리스마스를 보낸 건 처음이라고.

 

이는 앵거스가 새아빠는 가족이라고 느끼지 않지만, 허넘과 메리에 대해서는 유대와 위로를 느끼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폴 허넘, 메리, 앵거스는 저마다의 이유로 바튼 아카데미에 '홀로' 남아 있다. 폴 허넘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방학 기간 담당 교사를 맡게 되었기 때문에, 메리는 바튼 아카데미 출신 아들 커티스 램을 베트남 전쟁으로 잃었기 때문에, 그리고 앵거스는 엄마와 새아빠가 신혼여행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떠났기 때문에. 저마다의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이 셋은, 함께 연말 파티에 가면서, 함께 연말 트리 앞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함께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가까워진다. 이들이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각자의 결핍을 딛고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앵거스가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폴 허넘이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 순간에, 메리가 자신의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술에 취해버린 순간에.  

 

이들을 누가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그리고 서로를 위해 먼저 나서고자 하는 순간.

그들은 모두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감싸안을 수 있는 충분한 존재가 된다.

 

작성자 . MOVIEREAD

출처 .

  • 1
  • 200
  • 13.1K
  • 123
  • 10M
Comments

Relative content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