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8-12 10:45:27
8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300만 돌파한 <파일럿> 다음주도 조정석 영화 개봉 ?!
조정석 주연의 영화 <파일럿>이 개봉 12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파일럿'은 스타 파일럿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한정우가 파격적인 변신을 거쳐 재취업에 성공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2024년 여름 개봉 영화 중 최단 시간 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올여름 최고의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또한, 광복절 연휴 주간이 시작되는 다음 주에도 흥행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8월 14일 개봉하는 조정석 주연의 또 다른 영화 <행복의 나라>가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다음 주는 '조정석 주간'이 될 전망입니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으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한편,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 수 40만 명을 돌파하며 2위를, <슈퍼배드 4>는
<데드풀과 울버린>을 제치고 3위에 올랐습니다.
국내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데드풀과 울버린>이 개봉 3주 만에 전 세계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올해 두 번째로 10억 달러를 넘긴 작품이 되었습니다.
데드풀의 실제 아내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주연한 <잇 엔드 위드 어스>가 2위를 차지했으며, <트위스터스>가 3위에 올랐습니다.
<행복의 나라> <빅토리> <트위스터스> <에이리언: 로물루스> 광복절 전날 기대작들이 줄줄이 개봉하며 박스오피스 순위는 어떻게 변할지! 씨네픽 박스오피스 분석 다음주에도 기대해주세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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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는 이것 하려고 3000년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분위기 정령
이제는 혼자가 아닌 것이 더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서사학자인 알리세아. 튀르키예로 출장을 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객실을 혼자 쓰고 있다. 텅 빈 객실에 혼자 있다. 튀르키예에는 그랜드 바자르라는 곳이 유명하다고 그랬다. 거기서 의문의 병을 얻은 알리세아. 이게 뭐지? 아무 생각 없이 병을 손질하는 알리세아. 반사적으로 병을 건들고 다시 수납장에 넣으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병에서 어떤 큼지막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나체의 남자. 처음엔 객실이 감당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덩치가 컸던 남자. 눈으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실화가 됐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당황하는 알리세아. 램프에서 튀어나온 거인은 자기의 이름을 '진'이라고 소개했다. 직업은 정령이랜다. 그런 자기를 입증이라도 하는 듯이 TV에 있던 아인슈타인을 느닷없이 꺼내는 진. 알리세 아는 지금 일어나는 일에 최대한 적응하려고 한다.
천지개벽에 정령이라니. 인문학자로서 온갖 나라의 설화들을 들었지만 램프에서 튀어나온 정령은 쉽게 믿기 어렵다. 그렇게 정령 진과 대화하고 있던 도중에 호텔 룸서비스가 왔다. 나가보는 알리세아. 문 밖에서 음식들을 받고 온다. 그 새 덩치가 작아진 정령. 체구가 큰 남자의 체형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인 대화를 하는 두 사람. 정령 진은 알리세아에게 '소원이 있나, 있다면 세 가지만 말해달라'라고 요구한다. 보통사람이라면 바로 답하겠지만 서사학자인 알리세아에게 그런 건 없다. 왜냐면 본인의 논문이력에 근거해, 모든 '소원 들어주는 정령'의 끝은 안 좋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알리세아. 그런 알리세아를 설득하기 위해, 정령 진은 자기의 예전 이야기들을 말해준다.
'매드 맥스' 향 첨가
조지 밀러라는 이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다. 70대 고령의 영화감독이 섹시한 액션영화를 잘 연출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는 듯하며 내내 폭주하는 영화를 연출한 조지 밀러. 아직도 그 도입부에 날것의 동물을 씹어먹는 인물이 생각난다.
이 영화는 전작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와는 정반대인 로맨스 영화다. 그리고 전작처럼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영화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 진의 관점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가? 가 굉장히 화려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이야기들 자체가 뭔가 신선한 것들이 아니다. 요약하면 '왜 진이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는가' 혹은 '상처를 입어서 병 속에 갇혔는가'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점을 갖는 부분은 이를 어떻게 이야기로 펼치는가에 대해 달려있다. 첫 번째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써보자면, 진에겐 사랑이 있었다. 이 사랑은 진을 뿌리치고 극 중 다른 인물에게 마음을 뺏긴다. 이때 마음을 뺏기는 과정을 어떻게 연출하고 있는가?를 보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음악을 연출하는 방식, 유혹에 성공하고 난 후의 모습을 보면 이것저것 효과가 많이 들어갔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메시지는 비슷하더라도 자기만의 언어로 소화한 사랑 이야기를 풀고 있다.
또 이 첫 번째 이야기 이후의 서사도 주목해볼 만하다. 영화는 진의 관점에서 전부 사실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당연히 자기 이야기니까 나름대로의 진실을 전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진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가?를 보면 자기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영화 전체적으로 인물과 좀 떨어져 있는 듯한 거리감이 있다. 이는 두 번째 이야기가 특히 그렇다. 이 두 번째 이야기는 진의 이상한 선택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을 다룬다. 그런데 자기 유리한대로만 말하면 청자인 알리세아와 관객에게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해 화면 촬영 연출부터 섬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인물들에 집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받는지부터, 인물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까지 디테일함의 힘이 영화에서 발현되는 부분이 흥미롭다. 여러분 다들 '솔로몬 왕'에 대해 들어보지 않았나? 영화는 이 솔로몬의 설화도 살짝 변주해서 이야기로 만들었다. 물론 이야기의 낯섦뿐만 아니라 시, 청각적인 쾌감도 잘 챙겼다.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이미지 디자인이 아주 탁월했다. 예를 들어 진이 병 속으로 잡혀가는 연출은 어딘가 익숙해 보이지만 조지 밀러의 전작 특성을 알 수 있다. 또한 거미와 악기 연주로 대표되는 상상력의 힘을 이야기의 밀도에 추가점이 되는 요소다. 또 노래 작곡에 1년이 걸렸다던 삽입곡들도 영화의 창의성으로 표현되는 지점이다.
수미상관형 구조
이 영화의 초반부는 얼핏 보면 굉장히 안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초반부는 바로 이것이다. 외로웠던 알리세아. 알리세아는 다들 떼거지로 몰려다닐 때 조용한 10대 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10대에 어떤 불만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 설정은 그냥 단지 알리세아가 갖고 있는 흘리듯이 넘길 수 있는 설정인 듯 보인다. 그러나 아니다. 이 설정은 영화의 후반부에 직접적으로 반복된다. 간접적으로는 영화에서 끊임없이 모티브로서 활용된다. 이 장면이 들어가는 방식을 눈 크게 뜨고 보셔야 영화 이야기 전개에 인물의 행동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맥락상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는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의 20대 초반 시절, '공감능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다. 왜 이런 걸 생각했을까? 바로 인간관계에서 헛짓거리를 많이 해서 그런 욕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몰랐다. 그렇게 남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공감능력의 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라고 들 한다. 이런 내가 된 이유는 자주 혼자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대 때 외로움도 몰랐고 고독은 아예 감조차 못 잡았다. 글쓴이가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이해가 된다. 반대로 이런 전개는 납득하지 못할 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조지 밀러 감독이 구체적으로 딱 꼬집어지는 감정을 중심으로 한 게 아니라 이야기 이면에 깔려있는 인물들 간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영화화 한 만큼 '새 해는 사랑을 해야 해'라고 마음을 먹은(글쓴이 같은) 관객들에게 추천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가면 루즈한 이야기에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소재는 보편적이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푸느냐? 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영화가 될 수 있다. 물론 로맨스적인 코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진과 알리세아가 푸는 이야기만 들어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선대
여러분의 새해 바람은 무엇인가? 적지 않은 분들이 ‘애인 생기게 해 주세요’가 있을 것 같다. 사랑 말은 쉽지만 직접 해보면 어렵다. 남의 연애는 상담하기 쉽지만 실질적으로 자기는 뭘 못하고 있는 분들 주변에 많은 것만 봐도 그렇다. 왜 연애가 어려운지 생각해보면 이유가 가지각색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를 고민해보면 사실 간단하다. 욕망 때문에 어렵다.
누구는 같이 영화 봤으면 좋겠고. 누구는 같이 드라마 봤으면 좋겠고. 누구는 같이 쇼핑했으면 좋겠고. 아무 생각 없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당연히 하고 싶은 게 다르니까 싸울 수밖에 없다. 안 싸우는 방법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사람은 다들 외롭고 고독해서 사랑받고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고독하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모순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아이러니를 펼쳐나간다. 이야기 내부의 시각적인 이미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낯섦 이 두 가지가 여러분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알리시아의 선택지로 인해 생각해볼 것이 몇 가지 생길 것이다. 그러면 문득 ‘내가 겪는 문제는 돈과 사랑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까? 아무튼 더 간절히 갈망하는 자에게 사랑이 좇아 드는 것 같다. 그럼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정령이 온 우주를 옮겨서라도 사랑을 만들어 주지는 않을까. 1월의 시작을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따뜻한 로맨스로 하라고 권장하고 싶다. 극 중 이드리스 엘바의 피지컬처럼 운동하고, 틸다 스윈튼처럼 우아하고 지적으로 나이 들면 각자의 사랑이 나름대로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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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콜라이트 | 옛것을 버리고 쌓은 공허한 탑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은하 제국 수립 100년 전, 수백 년간 평화를 유지한 제다이 기사단과 은하 공화국. 하지만 제다이 마스터 '인다라'(캐리앤 모스)를 순식간에 죽인 암살자가 등장하면서 평화는 곧장 깨지고 만다. 제다이 마스터 '솔'(이정재)의 제자였던 파다완 '오샤'(아만들라 스텐버그)가 암살자라는 증거가 나온 것. 이에 솔은 제자 '제키'(다프네 킨), 제다이 기사 '요드'(찰리 바넷)와 함께 직접 오샤를 찾아 범행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수사에 돌입한다.
어렵지 않게 오샤의 신원을 확보한 솔. 그러나 그는 또 다른 제다이 마스터 '톨빈'(딘찰스 채프먼) 또한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진짜 암살자는 오샤가 아님을 깨닫는다. 솔은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오샤의 쌍둥이 자매 '메이'의 소재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오샤와 메이 쌍둥이를 조종하는 흑막, '낯선 자'(매니 자신토)의 존재와 음모를 깨닫는다.
어설픈 온고지신
디즈니의 루카스필름 인수 후 <스타워즈> 시리즈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중 특히 '신(新)'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시리즈의 상징인 제다이, 광선검, 스카이워커 가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 제다이도 아니고 포스도 못 다루는 평범한 이들이 주인공인 <안도르>가 대표적이다. <오비완 케노비>나 <아소카>처럼 제다이가 등장한 작품에서도 시리즈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려는 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정재가 제다이 마스터 '솔'로 캐스팅되어 화제를 모은 디즈니+ 드라마 <애콜라이트>도 마찬가지다. 프리퀄 시리즈 이전 시간대를 배경으로 삼아 세계관을 확장했다. 비록 외견상으로는 제다이 대 시스라는 익숙한 구도를 답습했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 절대 선과 악이었던 제다이와 시스를 새롭게 해석했다. 작품 외적으로도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인다. 동양인과 흑인 배우를 주연으로 등장시키며 변화의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애콜라이트>의 시도는 반쪽짜리다. '스타워즈스럽지 않은'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지만, 정작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스타워즈다운'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 괴리의 중심에는 흥미로운 장르, 소재와 주제를 선택하고도 이를 풀어낼 역량이 없음을 증명한 어설픈 서사와 캐릭터가 위치한다.
서스펜스도, 반전도 없는 미스터리
<애콜라이트>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장르다. 드라마의 메인 플롯은 예상과 달리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다. 암살자 메이는 네 명의 제다이 마스터를 죽이려 하고, 제다이 마스터 솔과 그의 과거 제자였던 오샤가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 과정에서 메이와 오샤의 관계, 그들과 솔의 악연, 제다이를 무너뜨리려는 시스의 음모가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절대 선이었던 제다이의 어두운 이면까지도.
이렇게만 보면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기에 최적화된 소재다. 특히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다이가 갖는 위상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제다이는 압도적인 무력과 지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 제다이를 손쉽게 제압하고 죽이는 암살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반면에 <애콜라이트>는 기대와 다르다. 템포는 전반적으로 느슨하고, 스토리텔링의 긴장감도 부족하다.
그 이유는 미스터리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숨긴 결정적인 사건의 진상이 메시지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애콜라이트>의 핵심 주제는 제다이의 과오다. 그간 절대선으로 묘사된 제다이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오히려 그들로 인해 악이 탄생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극 중 등장한 시스, 오샤와 낯선 자 모두 제다이 출신으로 밝혀진다. 즉, <애콜라이트>는 평면적인 제다이 대 시스의 구도에 균열을 내려했다. 그 일환으로 드라마는 솔과 그의 동료들이 마녀 집단과 충돌해 집단 인명 살상을 초래한 사건을 제다이의 과오로 제시한다.
그런데 정작 후반부에서는 이 사건이 제다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들이 마녀 집단을 경계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들이 포스를 남용해 생명체를 직접 창조했다는 증거도 찾았고, 어린아이에게도 포스를 활용한 위험한 의식을 행했기 때문. 즉, 사건의 진상을 알면 알수록 제다이들의 행적에 개연성이 생기고 전체적인 극의 설득력은 오히려 낮아진다.
무너진 캐릭터
장르적 쾌감을 못 살린 각본은 캐릭터의 매력도 함께 무너뜨린다. 사건에 관련된 제다이들은 극도의 죄책감을 호소한다. 톨빈은 명상에만 몰두하고, 켈나카는 고향 행성에 몸을 숨긴다. 솔도 오샤와 메이 자매에게 거듭해서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상술했듯이 극 중 묘사만 놓고 보면 그들의 행동이 그 정도 잘못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정재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제다이들의 행적을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극의 중심을 맡아야 할 오샤와 메이마저 일관성이 부족하다. 이들은 제다이와 마녀, 제다이와 시스 사이에서 방황한다. 제다이의 이면과 어두움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의 서사는 진행될수록 극의 완성도는 낮아진다. 평면적이고, 개연성도 부족하고, 설득력마저 부족하기 때문.
우선 오샤는 밝은 겉모습으로 애써 감췄던 좌절감과 분노가 폭발하자 시스에 합류한다. 아버지처럼 따랐던 스승 솔이 가족이자 친구였던 마녀들의 죽음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문제는 그녀가 솔을 비롯해 요드나 재키 등 여러 제다이를 죽인 낯선 자의 설득에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 6화에 걸쳐 과거의 인연과 애틋한 감정을 보여주다가 불과 한두화 만에 그녀의 변심과 타락을 그려낸 까닭이다.
이야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메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제다이와 마녀들이 대립한 원인 중 하나였다. 제다이가 마녀들을 몰살했다는 오해의 씨앗을 심은 인물이었고, 더 나아가 낯선 자와 시스가 오샤에게 접근할 기회도 제공했다. 하지만 정작 메이의 목적은 명확하지 않다. 그녀는 어머니와 마녀 일족의 복수를 일관되게 노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확고하게 시스로 타락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애콜라이트>는 응집력마저 잃는다.
옛 것을 태우는 온고지신?
이처럼 장르적 쾌감도, 캐릭터의 매력도 살리지 못하다 보니 <애콜라이트>의 방향성에도 덩달아 물음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스타워즈>라는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제다이와 시스라는 명확한 선과 악의 충돌이다. 이때 선악의 대립은 인간적인 감정의 유무도 포함한다. 즉, 제다이와 시스는 단순한 선과 악을 넘어서서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를 내포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프리퀄 시리즈에서 팰퍼틴이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다스 베이더로 타락시킬 때, 그는 온갖 모략과 속임수를 동원했다. 아내 파드메를 향한 아나킨의 사랑마저도 그를 조종하기 위한 지렛대에 불과했다. 반면에 클래식 시리즈에서 아나킨의 아들이 루크는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그를 다시 제다이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애콜라이트>는 이 구도를 무너뜨렸다. 시스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더했다. 낯선 자는 자기를 배신한 메이를 처단하는 대신 오히려 이해심과 관용을 발휘한다. 심지어 그와 오샤는 마치 연인 같이 보인다. 이제 시스 군주와 제자의 관계는 팰퍼틴과 다스 베이더처럼 비인간적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애콜라이트>의 재해석은 지난 수십 년간 시리즈를 지탱한 근간과 설정을 간과한, 다소 과한 시도 같다.
시즌 2는 기다리겠지만...
다행히도 <애콜라이트>에게는 시즌 2를 기대할 수 있는 확실한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액션이다. 사실 루카스필름이 디즈니에 인수된 이후로 <스타워즈>의 상징인 라이트세이버 액션이 예전 같지 않다는 비판은 지속되어 왔다. 본편인 시퀄 시리즈뿐만 아니라 <오비완 케노비>나 <아소카>처럼 제다이 비중이 높은 드라마에서도 라이트세이버 액션 연출이 20년 전 프리퀄 시리즈보다 퇴보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애콜라이트>는 다르다. 광선검이라서 가능한 화려한 움직임을 살려 오랜만에 <스타워즈> 명성에 걸맞은 액션 시퀀스를 만들었다. 마지막 화에서 솔과 낯선 자가 1 대 1로 겨룬 결투 장면이 대표적이다. 절제하면서도 유려한 움직임을 보여준 솔과 쌍검을 휘두르며 변칙적인 수를 두는 낯선 자의 차이점이 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5화에서 낯선 자와 제다이들이 펼친 전투도 놓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카메오의 등장도 시즌 2를 향한 기대감을 간신히 유지시킨다. 팰퍼틴의 스승으로 알려진 다스 플레이거스가 <스타워즈> 시리즈 역사상 처음으로 영상 매체에 등장했고, 가장 유명한 제다이 중 하나인 요다의 뒷모습도 나왔다. 과연 실망스러웠던 각본과 캐릭터의 완성도를 두 인기 캐릭터의 합류로 해결할 수 있을지. <애콜라이트> 시즌 2의 관건이다.
Poor 형편없음
진정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은 '고'를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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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재개봉하기 전에 노래 들으며 쓰는 영화 리뷰
얼른 개봉하길 바랐던 알라딘 속편은 안 나오고 알라딘 4DX 재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으로 보아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실사화 되면서 약간의 각색과 다채로움이 섞여 나름의 매력을 뿜어내어 1200만 명의 관객이 동원되었었다. 음악과 볼거리로 가득 찼던 만큼 여전히 나의 음악 플레이 리스트에 저장되어 있는 알라딘의 시작부터 끝까지 달려 가보자.
영화의 처음은 아빠가 아이에게 배 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된다. 양탄자, 마법, 그리고 램프라는 단어와 함께 웅장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음악과 몰려들어오며 본격적인 이야기의 서막을 알린다. 선택된 자만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는 동굴 속, 그리고 경이롭고 놀라운 신비한 Arabain Night를 예고하며 전환되며 보이는 알라딘. 그는 원숭이 '아부'와 함께 좀도둑질을 하며 살아가는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쟈스민을 도와주게 되면서 One Jump Ahead를 시작하게 된다. 경쾌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알라딘은 관리의 시선을 피하며 익숙한 듯 도망치는데, 쟈스민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하지만 어긋난 타이밍은 그들의 거리마저 멀게 만든다. 그 행동을 책임지기 위해 왕궁으로 들어가게 된 알라딘은 쟈스민을 만날 수 있을까.
왕궁으로 돌아온 쟈스민은 무례한 이웃나라 왕자를 만나게 되고 억지로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여자는 술탄이 될 수 없다는 자파에 의해 쟈스민은 침묵(speechless)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알라딘은 날렵하게 궁으로 들어가 쟈스민의 방 앞까지 도달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나오는 중에 자파에게 납치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동굴 속의 보석을 찾으려는 자파는 알라딘을 이용하여 램프를 가져오라고 시킨다. 자파의 배신과 아부의 순발력으로 램프 속의 Friend Like Me로 지니 설명서를 듣게 된다. *알라딘이 납치된 것을 모르는 쟈스민과 쟈스민을 그리워하는 알라딘의 desert moon은 뒤늦게 공개가 되었다.
지니 설명서를 통해 소원을 빌게 된 알라딘은 재스민 앞에 Prince Ali의 웅장함으로 나타나 A Whole New World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소원을 빌고 마음이 커질수록 본연의 내면과는 멀어지는 알라딘의 모습에 지니는 진심 어린 걱정을 하지만 스스로를 속인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검은 욕망의 손길은 알라딘에게 다시 뻗쳐온다. 알라딘은 위기를 겪으며 그동안 잃어왔던 자신을 되찾고 쟈스민은 speechless를 통해 꿈꿔왔던 꿈을 이룬다. 기존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쟈스민의 독립성이 유독 두드러지는 실사 영화라서 더욱 재미있었다. 몇 가지의 아쉬움을 제외하고는 뮤지컬 영화와 디즈니 실사 영화로서의 매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내가 바꾼 것은 너의 겉모습일 뿐, 너의 내면은 그대로야.
너 자신의 원래 가치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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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한 욕망의 자리는 없다
SYNOPSIS.
더 나은 당신을 꿈꿔본 적 있는가?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 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 탄생하는데... 단 한 가지 규칙,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각각 7일간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한다면 무엇이 잘못되겠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POINT.
✔️ 청소년 관람불가 다양성 영화가 50만 관객을 동원한 사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최초라고.
✔️ 이 미친 흥행은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 이상의 무엇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영화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당신은 그 말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고어한 장면이 있음에도 저는 이 영화를 자꾸 슬프게 되돌아보게 되는데, 여기에는 이 영화 바깥 우리 사회의 이야기들이 깔려 있어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가 끝나지 않네요.
✔️ <에.에.올>의 양자경에 이어, 이 영화를 통해 데미 무어 또한 배우로서의 능력을 빛내 보이는 동시에, 그걸 폄하해 온 사람들에게 멋진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 그러나 배우와 메시지만 주목 받아서는 안된다 싶을 만큼... 편집과 연출도 좋았어요.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암묵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욕구에 관한 이야기다. 시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자유가 주어질 때 함께 솟아나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자가 성별과 여성성에 관한 깊고 견고하게 뿌리박힌 오래된 규칙들을 시험할 때 솟아나는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다. 자아와 문화의 충돌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전히 여성의 권력에 대해 심히 양가적 태도를 취한 세계, 욕구와 수치심을 똑같은 정도로 불러일으키고야 마는 세계 안에서 여성의 욕망을 속박하고 있는 고삐가 덜컥 풀어졌을 때 생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갈수록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세계,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는 세계, 여성의 욕망에 관한 관념이 너무나 협소한 틀 안에 갇혀 있는 세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자신의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심리 구조와 사회구조가 얼마나 오래도록 멀쩡히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전히 소녀들에게 자기부정의 씨앗이 뿌려지고 권장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며, 40년에 걸친 법적·사회적 변화가 진정한 대안적 변화를 아직 일구어내지 못한 까닭에 우리가 행위 주체성과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나, 자신의 욕구는 건전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만족시켜도 될 타당성과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이 부재한다는 이야기다.
캐럴라인 냅 에세이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의 문장들이다. 2003년 출간된 책이지만, 마치 <서브스턴스>를 보고 쓴 감상평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문장들이다. 즉 이 문제는 수십 년 지나도록 변하지 않았으며, 엘리자베스의 에어로빅에서 수의 쇼로 넘어갈 때 느껴지는 것처럼 "갈수록 점점 더 시각에 치중하고 상업성이 짙어지는" 동시에 "여성의 형태가 무자비할 정도로 외현화되"고 있다. <서브스턴스>가 영화관을 나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이유다.
우리가 지독한 외모 지상주의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당연스럽게 여겨지는 명제지만, 그 정도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른 잣대가 드리워지는 이 세상에서, 여성 노화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신체 기능 상실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이전에 사회적인 어떤 것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그리고 후자는 결코 전자에 비해 작지 않다.
이 영화의 초입에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두 가지를 다 경험하는데, (1)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가는 상황 (2) 진행해 왔던 에어로빅 쇼를 "더이상 젊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그만두게 된 상황 중 관객의 뇌리에 더 강렬하게 남는 것은 두 번째 상황 쪽이다. 물론 스토리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만일 엘리자베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그 부고 소식을 인터넷 뉴스 연예면에서 접했다고 해도 대중이 재생산하는 쪽은 두 번째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위에 등장했기에 <서브스턴스>는 몸을 둘로 나누는 비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임에도 더없이 현실적 현상을 담은 영화로 기억될 영화가 되었다.
여성의 욕망: 내 욕망과 사회의 욕망 구분하기
영화 속 상황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접하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좀더 예쁘고 좀더 젊어 보이면 좋다는 정도의 생각은 절대 다수의 여성이 할 것이다. 남성들이 기초 청결에서 약간만 나아간 수준으로 외모를 챙겨도 그루밍족이니 뭐니 하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외모를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다 못해, 그 트랙 바깥에 서겠다는 사람들에게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다느니 뭐라느니 하는 비난으로 이어진다.
문장으로 쓰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사회에서 이 사실을 매일매일 느끼는 사람을 많지 않다. 이 메시지는 대놓고 트랙 바깥에 선 사람이 아니라면, 비난이 아니라 격려의 형태로 비틀어 전달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더 예쁘고 좋잖아. 이렇게 하면 더 건강하기도 할걸? 착하기까지 할걸? 각종 미덕을 뒤섞어 쏟아놓는 말들 안에서, 여성은 사회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엘리자베스는 "젊고 예쁘지 않다"는 (더 늙은) 하비의 입에서 나온 말로 후려치기 당하며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하비의 욕망과 판단은 곧 엘리자베스의 욕망과 판단으로 내려앉는다. 복도를 가득 메운 엘리자베스의 사진은 "젊고 예뻤던"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착실히 쌓아온 커리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하비 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본인조차 자신을 내공이 어마어마한 진행자로 바라보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을 비추어 보며 자신을 멸시하는 엘리자베스의 시선은 사회에서 그에게 실어 올린 것이다. 동시에 엘리자베스는 오랜 기간 "자신을 잘 돌보라"며 여성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어딘가에서 시작된 사회적 욕망은 여성의 안에서 여성과 동일시되고, 남성이 말할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그러나 그 욕망이 시작된 지점, 하비의 입에서 여성은 새우와 과연 얼마나 다른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비가 쩝쩝거리며 뜯어 먹는 새우 장면이 불쾌한 이유는 단순히 위생적인 거부감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있는 살덩어리의 자리가, 하비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자리라서 더욱 그렇다. 이러한 구조에서 생존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정작 스스로의 욕망에는 둔감해지고, 사회적 욕망에 스스로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각종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신경이 몰려 있어 잘못 건드리면 위험해질 수 있는 턱을, 심장만큼 중요하다는 종아리 근육을... 미용이라는 정갈한 단어에 담은 사회적 욕망을 사유로 찢고 째고 주사를 놓으며 상처 낸다. 사람 몸이 레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닌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어디 살을 파내서 어디 다른 데 갖다 붙이라는 그로테스크한 광고가 영화관 가득 쩌렁쩌렁 울린다. 몸이 이물질로 인식해 면역 반응이 일어날 보형물을 몸에 집어넣는다.
이 모든 신체 학대 행위는 "노력"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더 예뻐지기 위한 노력. 자기 관리.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수로 찢어진 두 개의 신체,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말해준다. 그동안 우리가 자기 관리라고, 미용, 노력이라고 불러온 것들의 상당수가 자기 학대였음을. 그리고 사회의 욕망을 이미 체득한 우리는, 누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괴롭히는 법을 이미 가장 잘 알고 있다.
사회의 욕망: 그거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시나브로 체득하고 있는 사회의 욕망은 과연 우리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다 갉아먹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대답은 새우를 씹는 하비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비가 엘리자베스를 해고하고 새로운 얼굴을 찾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과연 얼마나 '업무적인' 과정과 고민이 있었을까? 시청률, 독자 의견, 인터넷 반응... 숫자 하나라도 보았을까? 숫자 이면의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이 있었을까? 아닐 것 같다. 그러니까 '무엇이 끝났느냐'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답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만만하게 확신에 찬 사람처럼 움직인다. 말초적인 자극에만 의존하는 그의 방식이 결과적으로 먹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때도 먹혔고, 섹슈얼한 느낌을 전면에 내세운 수의 쇼에서도 시청률로 돌아왔다. 하비 같은 인간이 많으니 하비 같은 인간이 주먹구구 방식으로 먹고 살면서도,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개저씨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에어로빅을 하는데 꼭 수영복 같은 전신 타이즈를 입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신 타이즈 아래로 쭉 뻗은 엘리자베스의 허벅지를 보며 여성들은 또 한번 사회적 욕망을 잘 체득한 결과물을 모범사례처럼 학습한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타이즈 아닌 옷을 입어 보자 했다면, 수많은 여성들이 타이즈를 비호했을 것이다. 자세가 잘 보여야 좋은 자세를 취할 수 있다든지 하고 타이즈의 효용성을 강조하면서. 비슷한 일은 오늘날의 운동과 레깅스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날들의 결과, 이제 신체를 더 부분적으로 클로즈업하고 효과를 더 많이 넣은 수의 쇼가 등장한다. 뽀얗게 필터를 씌운 쇼 안에서 반짝거리는 수의 신체는 마치... 뽀샤시한 생닭에 스프링클을 뿌려 놓은 느낌이 든다. 최소한 인간의 신체다운 느낌마저 줄어들고 있다.
생각해 보면 무수하게 쏟아졌던, 각종 연예인 이름 뒤에 '후덕'하다는 단어를 붙여 기사를 내던 시절의 연예면을 그냥 둔 결과, 이제 연예기사와 댓글들은 여자 연예인의 신체를 부위 별로 품평한다. 허리나 다리를 언급하던 옛날 기사들도 역겹기 그지없었으나, 승모근이 어쩌고 중안부가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면 정말 인간을 고깃덩이로 보고 있나 싶어 할 말이 없어진다. 더 끔찍한 것은 그런 시선이 내게 체화되고, 승모근과 중안부의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점이다. 하비의 쇼는 계속되고 있다. 자기 자신은 화장실에서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주제에, 25세 이상 여성의 가임 능력을 따지고 있는 찌질하고 나약한 남성성이, 어린 여성의 반짝거리는 재능을 내세워 '성공'을 얻어가는 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이브 문건이 떠오른다.)
내 안에 체화된 사회적 욕망을, 그 욕망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에서 시작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여성으로서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깨닫는다고 해서 당장 내가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가루와 물이 뒤섞여 반죽이 된 것처럼, 나는 여성의 몸을 품평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가 없다. 살이 찌면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신체 부위가 있다. 여기서 온전히 초연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선택이 때로는 한심하고 답답해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슬플 뿐이었다.
혹자는 엘리자베스가 "여전히 아름다움"을 들어 그를 한심해 한다. 그러나 이는 엘리자베스와 똑같은 사고 방식이다. 아름다움의 잣대 자체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다. 거울을 봤을 때 조금 더 주름이 없었거나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옷을 입었거나 새 립스틱을 발랐다면 엘리자베스가 당당하게 프레드와의 약속에 나갈 수 있었을까? 거울을 보지 않았어야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한심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엘리자베스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나의 욕망: 완전한 자리는 없겠지만
그러면 어쩌라고요. 매일매일 소리도 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은 별것도 아닌 지점에서 시작된 주제에 끔찍하게 증폭되다 못해 내 안에서도 울려퍼지는데. 엘리자베스가 능멸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밀쳐지고 끝내 터져 나갈 때, 하비 같은 인간들은 피를 좀 뒤집어쓴 외에는 무사했다. 슬프지만 현실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부분 단위로 품평 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수 같은 여자들이 부족한 면면을 이유 삼아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 뒤에서 새우나 씹고 이나 쑤시며 무사한 배를 두드리는 이들의 시선이 너무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나의 욕망이 오롯이 홀로 서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캐럴라인 냅의 문장들을 더 들어보자.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상태가 비교적 괜찮은 날, 더없이 괜찮은 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내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꼽아볼 것이고, 힘들게 얻어낸 친밀한 관계들에 대해, 두려움을 상대로 한 작은 승리들에 관해, 친구들과 개와 숲과 일에 관해 말할 테지만, 그래도 완전한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완전히 확신하는 답, 최종적인 휴식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별안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마치 우주가 보낸 선물처럼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찾아오는, 내가 잘 먹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더없이 소박하게 포장되어 도착한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그 순간들은 내가 막 노를 젓기 시작할 때 수면을 비추는 아침 햇빛 속에서, 완벽한 한 끼 식사, 완벽한 한 문장, 어떤 손길, 어떤 눈빛 속에서 온다. 마침내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섬광처럼 스치는 만족감, 얼핏얼핏 희미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과 맛, 파이처럼 깊이 음미하며 완전히 누려야 할, 금세 지나가는 순간들이.
엘리자베스가 이런 문장들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나란히 연결되"어서, "애정의 불씨"와 "이해" 안에서 이따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오늘도 현실에서 울려퍼지고 있고, <서브스턴스> 약물은 액티베이터 약병에 담겨 있지만 않을 뿐, 숱한 광고물과 방송과 알고리즘 곳곳에서 우리에게 내리꽂힌다. 좀처럼 필사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캐럴라인 냅의 문장을 종이에 사각사각 적어 보면서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만족스러울 수는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아무튼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법은 평생 배워야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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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성탈출 4 | 아직은 오지 않은 '새로운 시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화한 유인원과 퇴화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 성년식을 기다리던 '노아'(오웬 티그)와 독수리 부족은 갑작스레 '프록시무스 시저'(케빈 듀랜드) 군대의 습격을 받는다. 노아는 혈투 끝에 간신히 살아남지만, 아버지는 죽고 모든 부족은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으로 끌려간다. 이에 노아는 부족을 구출하고 아버지의 복수를 이루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여행길에서 고생하던 노아는 우연히 두 친구를 만난다. 유인원 '라카'(피터 메이컨)는 노아에게 전설적인 유인원 지도자 '시저'의 가르침을 알려준다. 또 자신처럼 프록시무스 시저에게 쫓기던 인간 소녀 '메이'(프레이아 앨런)는 노아에게 유인원과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려준다. 이러한 도움을 토대로 노아는 시저의 가르침을 기만하는 프록시무스를 무찌르고 유인원과 인간 모두를 구할 전투에 나선다.
4편의 저주에 걸리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2024년 봄 극장가는 4편으로 가득하다. <쿵푸팬더 4>가 긴 공백을 깨고 돌아왔고, <범죄도시4>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만 성과는 기대 이하다. <쿵푸팬더 4>는 지난 시리즈의 매력과 캐릭터에만 기댈 뿐이었다. <범죄도시4> 역시 여전한 흥행 파워를 과시했지만, 장기 시리즈의 피로감은 가중됐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이하 <혹성탈출4>)는 올봄의 세 번째 '4편'이다. 2011년에 리부트 된 시리즈의 4편이고, <혹성탈출: 종의 전쟁> 이후 7년 만의 속편이다. 그런데 제목이 퍽 흥미롭다. 지난 삼부작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속편인데도 불구하고, 제목에서 '4'라는 넘버링을 활용하지 않았다. 이로부터는 시리즈의 새 출발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난 주인공인 '시저'(앤디 서키스)를 등장시키지 않듯이.
하지만 <혹성탈출4>도 '4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시리즈의 메시지와 주제의식을 적절히 계승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비주얼을 제외한 대부분이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 그 결과 4편까지 이어진 시리즈에 신선한 피를 수혈할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선뜻 끄덕이기는 어렵다.
시리즈의 정수를 계승하다
<혹성탈출>의 핵심은 유인원과 인류의 대립이다. 하지만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만 화두가 되지는 않았다. 시저에게는 인간 친구가 여럿 있었다. 자기를 키워준 윌. 아내를 치료해 준 말콤. 인간을 향한 복수심과 증오심을 꺾어 준 소녀 노바. 의견이 다른 유인원 및 인간과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시저가 인류와의 공존을 추구한 이유였다. 이처럼 사적 감정을 공적 책무로 승화하는 시저의 여정은 <혹성탈출>의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전편으로부터 300여 년 후를 다루는 <혹성탈출4>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종족 간의 전쟁 사이에서 싹을 틔우는 두 유인원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인류를 무시하는 유인원 노아와 유인원에게 사냥당하던 인간 메이는 우연히 같이 여행을 떠난다. 노아는 프록시무스 시저에게 붙잡혀 간 자기 부족을 구출하기 위해. 메이는 인류의 미래를 건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물론 둘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자기 종족의 존속이라는 목표가 언제나 최우선이기 때문. 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둘은 우정 비슷한 관계까지 나아간다. 친구는 아니지만, 차마 서로를 죽이지는 못하는 관계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미래의 화근을 잘라낼 수 있는데도. 그렇게 <혹성탈출4>는 재개될 유인원과 인류의 전쟁을 미묘한 애증의 감정선 속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앞선 시리즈의 계승만큼 프랜차이즈를 일신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유인원 대 인간의 대립 구도뿐만 아니라 유인원 간의 갈등에도 초점을 맞춘다.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는 인간과 공존할지, 아니면 인간을 제거하고 지구를 차지할지를 두고 다툰다. 이는 2편 <반격의 서막> 속 시저와 코바의 대립을 극대화한 듯 보인다.
이름만 봐도 두 주인공의 대립은 필연적이다. 성경에서 노아는 신의 뜻에 충실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로부터 모든 생명체를 구할 수 있었다. 영화 속 노아도 마찬가지다. 그는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와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라는 시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유일한 유인원이다. 그래서 그는 나름의 방주를 만들어 시저의 뜻대로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리더로 거듭난다.
반면에 프록시무스 시저는 시저를 사칭한다. 인간과 유인원을 모두 지배하는 왕국을 만들고, 인간의 기술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라는 가르침을 악용한다. 그 과정에서 죽어가는 유인원은 신경 쓰지 않는다. 라틴어로 '가장 가까운'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록시마(Proxima)'를 이름으로 쓰지만, 정작 시저가 가장 지양할 선택만 지향한다.
이에 더해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립은 종교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여러 세대가 지난 뒤 시저는 숭배의 대상이 됐고,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는 시저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다툰다. 마치 예수의 가르침을 두고 여러 교파가 싸웠듯이. 또 무함마드의 후계자 자격을 두고 수니와 시아가 전쟁을 벌였듯이. 이렇게 보면 <혹성탈출4>는 <혹성탈출> 버전 <듄>이 될 수도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한계
그러나 기존 삼부작과 차별화될 가능성은 미처 꽃 피우지 못했다. 제작진의 스토리텔링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 영화는 두 주인공의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줄 다양한 맥락과 복합적인 함의를 외면한다. 일례로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을 묘사할 때는 정복 전쟁, 노예제, '시저'라는 호칭처럼 고대 로마를 연상케 하는 요소를 활용한 반면,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립은 단순히 부족의 생존과 탈출 차원으로 국한시킨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치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독수리 부족의 통과 의례가 대표적이다. 노아의 부족에게는 독수리 알을 훔쳐 키우는 성년식이 있다. 이때 둥지마다 최소한 알 하나는 남겨둬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는 독수리 부족이 본질적으로 타 생명체와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영화는 노아와 독수리의 관계를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한다. 노아에게 독수리는 부족의 리더로 거듭나고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하는 도구일 뿐이다. 결국 미묘한 함의는 끝내 전해지지 않는다.
스토리텔링 문제는 메이의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노아 혹은 유인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메이는 철저히 인간중심적이고, 노아의 행보를 방해하는 빌런처럼 보인다. 인류와 유인원의 대립은 극대화되지만, 둘 사이에 작게나마 피어난 우정의 싹은 더욱 작아진다. 그 결과 서사는 다소 평면적이고, 지난 삼부작에 비해 인간 캐릭터의 매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뒷심 부족한 볼거리
볼거리 역시 아쉬움이 적지 않다. 물론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웨스 볼 감독이 새로 메가폰을 잡은 만큼 전체적인 스타일의 변화는 인상적이다. 이전 감독인 맷 리브스가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연출력을 과시한 반면, 이번에는 유인원과 인간의 추격전처럼 역동적인 카메라워크가 눈길을 끈다.
이에 더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제작 경험을 살려 수풀로 뒤덮인 도시와 철골구조, 녹슨 배와 무너진 부두로 만든 프록시무스 시저의 왕국 등의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유려하게 펼쳐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이온 킹> 실사 영화가 사자를 비롯한 동물의 표정을 효과적으로 구현하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유인원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고 포착한 CG 기술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스펙터클은 약해진다. 이전 시리즈에 비해 스케일이 소소하다 보니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를 보는 것 같은 실망감이 밀려들 수 있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구성이 아쉽다. 노아와 프록시무스 시저의 대결은 공격도 반격도 일방적이라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노아와 결속된 독수리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암시가 너무 많아서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공은 속편에게
결과적으로 <혹성탈출4>의 결말은 아쉬움이 크다. 독립된 작품이면 모르겠지만, 네 번째 시리즈에서도 인간과 유인원의 전쟁을 다시 한번 암시하는 결말은 신선함이 부족하다. 돌고 돌아 시저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 여러 프랜차이즈가 같은 실수를 범했기에 특히 우려스럽다. 시리즈 리부트 후에도 매그니토와 프로페서 X의 갈등 구도를 마지막까지 되풀이 한 <엑스맨>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결국 공은 속편에게 넘어간 듯하다. 속편의 전개에 따라 <혹성탈출4>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한 걸음일지가 결정될 테니. 달리 말해 어떤 의미로든 속편을 기다리는 재미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Acceptable 무난함
진짜 무대는 다음으로 미루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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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하게 장점들만 피해간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연상호 감독 작품 대부분을 좋아한다.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과 같은 연상호만의 염세주의적 색채와 연출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훌륭한 상업영화 대뷔작인 "부산행"도 개인적으로는 색채는 옅어도 오락성을 확실히 잡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영화는 여기까지다. "부산행" 이 후 내놓은 두 번째 실사 영화인 "염력"은 미숙함이 굉장히 많이 보여 안타까웠는데, 염력 때 까지만 해도 이번 영화에서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부산행, 일명 연상호 좀비 아포칼립스의 두 번째 실사 영화인 "반도"는 그의 능력을 뽐낸 부산행과 같이 좀비 영화기에 그의 능력이 보여질까 큰 기대를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나는 실망과 후회만이 가득했다. 반도는 연상호 감독이 여러 애니메이션과 부산행에서 보여줬던 능력을 기대한 이들을 실망시키는 영화다. 정말 놀랍게도 부산행에서 보여줬던 장점들은 다 까먹고 단점을 더 부각시킬 뿐만이 아니라 단점을 더 추가했다.
이 영화에서 (그나마)흥미로운 점은 딱 하나밖에 없다.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의 한국 모습인데, 사실 이런 모습은 해외 좀비 영화에서도 충분히 봤던거라 반도만의 아이덴티티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해외 좀비 영화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진부한 요소로 다가왔다. 또한 부산행에 비해 캐릭터의 수가 많아졌는데, 그렇기에 캐릭터성의 깊이와 밀도는 약해졌다. 이로 인해 같이 떨어진 악역의 임팩트는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쟤가 최종보스 포지션이야?" 라는 반응이 나오기까지 할 정도다. 게다가 유치한 대사들과 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은 이러한 캐릭터의 처참함에 기름을 붓는다. 전작인 부산행과는 다르게 배경이 반도 그 자체라 액션의 스케일이 커졌고 다양해졌는데, 문제는 커지고 다양만 해졌지 퀄리티는 역으로 더 떨어졌다. 액션씬들은 CG티가 엄청나게 나는 조잡함을 보여줄 뿐더러 매드맥스를 어설프게 베끼려고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한 카레이싱 장면까지 봐보면, 오히려 수준은 부산행보다 더 떨어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서사 측면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수준 낮은 신파까지 존재한다. 더 한심한 것은 이러한 신파를 보여주겠다고 영화 내에서 설정과 현실성까지 깨부수면서 연출을 한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이 그동안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사회 비판적 시선(개봉 당시 많은 얘기되는 난민 논란을 연상시키는 설정이 있기는 한데 영화 자체가 너무 허술해 사회비판적 시선도 약해졌다)과 염세주의적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전작 염력에서 보여줬던 아쉬운 모습이 그 때만의 실수가 아니라 그냥 연상호 감독의 실력을 한계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독립영화에서 좋은 평을 받던 감독이 상업영화에 진입해서 악평을 받는 사례는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상업영화 대뷔를 훌륭하게 했기에 후속 상업영화에서 더욱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염력과 이번 영화 반도를 보면, 시작만 좋았을 뿐 이것이 본 실력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모습만 보여줄 바에 차라리 실사화는 손 떼시는 게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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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K-좀비는 더이상 그만
#영화 #반도 #리뷰
액션, 드라마│한국│116분
감독 연상호│출연 강동원, 이정현전대미문의 재난 그 후 4년
폐허의 땅으로 다시 들어간다!
4년 전, 나라 전체를 휩쓸어버린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강동원).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반도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 나와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던 중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4년 전보다
더욱 거세진 대규모 좀비 무리가 정석 일행을 습격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폐허가 된 땅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이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한다.
되돌아온 자, 살아남은 자 그리고 미쳐버린 자
필사의 사투가 시작된다!#리뷰문의
adonai0919@gmail.com#트위치
https://www.twitch.tv/sura_chtr#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writerTrack: Syn Cole - Gizmo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pZzSq8WfsKo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Gizmo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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