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3-21 11:41:13
3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이정재 주연 <애콜라이트> 예고편 공개 화제, 6월 4일 개봉
<애콜라이트>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유튜브 좋아요수와 싫어요수가 비례한 가운데,
이정재가 비중 높은 역할로 보여져 팬들의 기대가 높아지고있습니다.
<파묘> 베트남서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
천만 등극을 앞둔 영화 <파묘>가 아시아에서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해 20일 만에 약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현지 개봉 한국 영화 1위에 올랐습니다. 베트남에서도 한국 영화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아시아권에서도 흥행 순풍을 맞고 있습니다.
이정재 주연 스타워즈 <애콜라이트> 6월 4일 공개
배우 이정재가 주연을 맡은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가 오는 6월 4일 공개된다고 합니다. 이정재는 제다이 ‘마스터 솔’역을 맡았으며 스타워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혜롭고 큰 존경을 받는 강력한 제다이 마스터 솔은 포스를 다루는 법에 능합니다. 그는 곧 감정적인 갈등을 겪게 됩니다’ 라고 설명되있으며 위험한 인물과 대결하며 광선검 액션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마고로비 게임 <심즈> 영화화
영화 배우 겸 제작자 마고 로비가 <바비>에 이어 게임 ‘심즈’를 영화화 한다고 합니다. ‘심즈’ 게임을 만든 제작사인 EA와 마블 시리즈 <로키>의 시즌 1 감독으로 알려진 케이트 헤론이 합류하여 같이 제작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게임 ‘심즈’는 인류의 일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으로 성격, 특성, 관계가 변하는 아바타로 플레이하는 ‘생활’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입니다.
메가박스 ‘장국영 기획전’ 영화 5편 재개봉
메가박스에서 배우 장국영을 추모하며 ‘R.I.P 장국영’ 기획전을 연다고 밝혔습니다. <영웅본색> <영웅본색2> <천녀유혼> <아비정전> <패왕별희> 총 5편을 만나볼 수 있으며, 특별관을 제외하고 전 작품을 9900원에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기획전 전용 관람권 1매와 장국영 엽서북을 메가굿즈샵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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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함 뒤의 악의, 두 소녀가 갇힌 집
할리우드 제작사 A24는 다른 스튜디오들과 달리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이를 영화로 옮기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회사다. <유전>, <미드소마>, <펄>처럼 감각적인 공포 영화를 선보이는가 하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언컷 젬스>, <더 웨일> 같은 드라마 장르도 파격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단순히 오락성과 작품성 중 하나만을 골라 집중하기보다는, 관객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점이 A24의 강점이다. 그래서 A24의 로고가 뜨는 순간, 왠지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오는 4월 2일 한국에 개봉 예정인 <헤레틱>도 그런 A24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공포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점프 스케어나 피 튀기는 장면을 최소화하고, 심리적 압박감과 폐쇄감을 극대화해 ‘새로운 형식의 공포’를 시도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A24가 제작한 영화 중 7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두었으나, 정작 한국에는 정식 개봉하지 않아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작품이기도 하다.
<헤레틱>은 두 명의 소녀 선교사가 외딴 지역에 사는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의 집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늘 그렇듯 문을 두드리고 자신들의 신앙을 전하려 애쓰지만, 비오는 날 만나게 된 리드의 집은 묘하게 불편한 기운이 감돈다. 거실의 불이 마음대로 꺼졌다 켜지고, 문이 잠기거나 창문이 어딘지 모르게 작고 답답해 보이며, 집주인 리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어쩐지 기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폐쇄된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첫번째 감정] 미스터 리드의 따뜻함
첫인상에서 리드는 순수하고 인자한 노인처럼 보인다. 팩스턴(클로이 이스트)과 반스(소피 대처)가 노크를 하자마자 그는 문을 활짝 열고, “얼마나 날씨가 험악하냐”며 따뜻한 미소를 건넨다. 감미로운 차와 파이를 내오며, 별안간 찾아온 두 선교사를 흔쾌히 환대한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누군가가 방문해주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보이는데, 덕분에 소녀들은 ‘이 집에서 포교 활동을 순조롭게 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갖는다.
그러나 리드의 친절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숨어 있다. 처음에는 소녀들의 종교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질문이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교리나 신앙에 대해 묻는 것 같지만, 문득문득 끼어드는 리드의 말에는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 이때 팩스턴과 반스는 말은 이어가면서도, 속으로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관객 역시 리드의 웃음 뒤편에 감춰진 음산함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리드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은 처음엔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해석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마치 미로 같다는 인상을 준다. 따뜻한 미소와 구불구불한 주름 사이 어디선가 악의가 비죽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이처럼 리드는 “마음씨 좋은 노인”이라는 첫 이미지를 무기로, 두 소녀를 천천히 자기 세계로 끌어들인다. 관객에게도 그 과정이 기이하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데, 이는 휴 그랜트의 섬세한 연기가 만들어낸 섬뜩한 온기 덕분이다.
[두번째 감정] 반스의 의심
두 사람 중 먼저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쪽은 반스다. 팩스턴보다 한결 냉철하고 논리적인 면모를 보이는 반스는, 리드가 내놓는 말들에 무언가 꼬투리가 있다는 걸 빠르게 눈치챈다. 영화는 반스가 아주 독실한지, 혹은 단지 친구를 돕기 위해 전도 활동을 하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가 상대적으로 세속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의심부터 하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리드의 대화가 알쏭달쏭해질수록, 반스는 하나씩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한다. 문이 자동으로 잠기고, 조도가 계속 바뀌는 집 안에서 ‘혹시 우리가 갇힌 건 아닐까’라는 경계심을 키워나간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품어온 신앙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괴상한 현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과연 이 사람이 제기하는 질문이 단순한 신앙적 호기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인가?”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의심이 모든 문제의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이상한 낌새를 잡아도, 함정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 반스는 분명히 “이 집은 위험해”라고 인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탈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끊임없이 리드가 던지는 미끼에 말려들면서, 불신이 불신을 낳고 갈수록 꼬여만 간다. 그렇다고 반스가 완전히 패닉에 빠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이 영화에서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은 바로 반스이며, 관객은 그녀의 시선에 의지해 이 집의 이면을 함께 탐사하게 된다.
[세번째 감정] 팩스턴의 믿음
팩스턴은 두 소녀 중 좀 더 신앙심이 깊은 캐릭터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진심으로 종교에 귀의했고, 그 믿음으로 포교 활동을 해내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리드의 호의에 별다른 의심 없이 순응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반스가 불안감을 호소하기 시작하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팩스턴 역시 주저하게 된다.
그럼에도 팩스턴은 가장 마지막까지 신앙적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을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하려 든다. 반스가 이성적으로 문제 해결을 모색한다면, 팩스턴은 종교적 신념을 통해 “끝까지 견디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이런 상반된 접근 덕분에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팩스턴이 보여주는 호기심과 집착은 더욱 흥미롭게 부각된다.
결국 팩스턴이 맞닥뜨리는 마지막 시점에서는, 리드가 유도해온 괴이한 논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차분하고 약해 보이던 팩스턴이 어떻게 반격에 나서는지를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이 과연 어떤 국면을 열어줄지, 그리고 그 믿음이 리드의 끊임없는 조작과 통제를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관객은 팩스턴의 시선에 몰입하게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하게 되는 새로운 호러영화
<헤레틱>은 겉으로 보면 “종교와 신앙의 충돌”을 다룬 호러 영화로 보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오리지널과 표절’에 대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낸다.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몇 가지 소재—모노폴리와 부루마블 같은 보드게임의 역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립(Creep) 노래가 표절 시비에 휘말린 설정—는 마치 하나의 ‘보드게임’을 펼쳐두고 플레이하는 느낌을 준다. 집 안 곳곳에 배치된 기묘한 창문, 눈부실 만큼 화려한 벽지 등은 관객에게 소름 돋을 만큼 치밀한 미술 설계를 체감하게 만든다. 이 밀실 안에서 “이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질문이 종교적 차원뿐 아니라 예술, 창작, 인간관계 전반에 해당하는 주제로 확장된다.
특히 휴 그랜트가 맡은 리드 캐릭터는 이전에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영화 속에서 보여준 “스윗한 남자”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노팅힐>의 사랑스러운 남주인공, <웡카>에서 보여준 유쾌한 움파룸파의 일면이 여기서는 광기 어린 악역으로 돌변한다. 그의 많은 주름살이 처음엔 인자해 보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미로 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 이중성에 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괴이한 플레이를 하는가”라는 의문이, 극의 긴장도를 끝까지 유지시키는 동력이다.
함께 출연하는 소피 대처는 <컴패니언>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국내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다. 이번에도 반스 역으로서 차분하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보여주며, 팩스턴 역의 클로이 이스트와 호흡을 맞춘다. 두 소녀의 미묘한 대비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견인하는 만큼,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가 매끄럽게 형성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헤레틱>의 완성도에는 쟁쟁한 제작진도 한몫한다. 먼저 감독 스콧 벡 & 브라이언 우즈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 각본을 맡아 호러 장르에 확실한 흥행력을 입증한 듀오다. 밀실 구조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연출, 사소한 디테일을 공포의 장치로 변환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촬영감독 정정훈은 <올드보이>, <웡카> 등을 통해 독특한 화면 미학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밀폐된 공간과 화려한 미장센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미술감독 필립 메시나는 <오션스> 시리즈의 세련된 스타일에 더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이 집을 지옥의 한 단면처럼 형상화했다. 이처럼 현장감 넘치는 세트 디자인과 공포를 야금야금 스며들게 하는 촬영 기법이 결합돼, 관객은 마치 보드게임 속 말을 움직이듯 기괴한 심연으로 끌려들어간다.
종합해보면 <헤레틱>은 단순한 호러영화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종교와 믿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 창작과 표절의 문제, 두 소녀의 우정과 의심, 그리고 휴 그랜트가 선사하는 서늘한 이중성까지 다채로운 요소가 뒤섞여 관객을 사로잡는다. 무서우면서도 묘하게 빠져들게 되는, A24 특유의 심리적 공포가 흐르니 “이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꼭 챙겨볼 만하다.
4월 2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평소 A24가 만든 영화들을 좋아했다면 <헤레틱>도 분명 흥미롭게 보게 될 것이다. 만약 기존 점프 스케어 위주의 공포영화가 식상해졌다면, 이 밀실 스릴러의 서늘한 재미를 통해 새로운 공포의 영역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집 안 가득 퍼지는 의심과 믿음의 대립, 그 끝에서 기다리는 무언가는 예측을 뛰어넘을 만큼 묵직하다. 영화를 본 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신념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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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마케팅사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을 반영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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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 ‘같은 곳을 바라봤던 소중한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친구
개봉일 : 2001.03.31.
감독 : 곽경택
출연 : 유오성, 장동건, 서태화, 정운택, 김보경, 기주봉
"같은 곳을 바라봤던 소중한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한없이 막역하고, 언젠가는 힘에 부칠만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단어 ‘친구’. 아주 진하고 가까우며, 그렇기에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릴 수도 있는 관계를 담은 이 영화는 어쩌면 흔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친구’라는 단어를 영화 이름으로 선택했다. 눈에 잘 띄지 않을법한 이 평범한 제목의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유명사처럼 남아 마음 한편 어딘가에 구겨져있던 친구에 대한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나는 이 영화를 아주 최근에 처음 접했다. 너무도 유명해 항간에 떠돌던 여러 명대사들과 사진들로 인해 이미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항상 뒷전으로 미뤄뒀던 영화였다. ‘누아르’ 느낌이 섞인 장르를 크게 선호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말이다. 언젠간 봐야지~하고 있던 찰나에 아직도 그 영화를 보지 않았냐는 지인의 잔소리에 떠밀려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마음이 찡해지는 영화였다.
<친구>는 폭력과 영역싸움, 분노와 욕설 같은 것들로 채운 일차원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아버지의 직업과 집안 환경, 물질적인 가치를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어울려 ‘친구’가 된 소년들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된다. 네 명의 소년은 친구의 조건을 재거나 따지지 않는다. 그저 함께할 때 즐겁고, 웃음이 나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소년들은 한곳에 모여 하나의 우정을 맹세한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때까진 잘 몰랐다. 친구관계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고 유치하지만, 보통 중학생이 될 때쯤이면 친구들 사이에도 ‘서열’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대놓고 누가 1등, 2등이라 명하지 않아도 그 무리를 유지하는 중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친구>에서는 조폭 아버지를 둔 타고난 싸움꾼 준석이 이 무리의 1등, 동수는 2등이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였던 어린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네 명의 소년들은 각자 갈 길이 달랐다. 더 이상 한곳을 바라볼 수 없었던 우정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이미 생겨버린 틈을 메우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아니면 애초에 우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푸른 바다의 품에 안겨 물장구를 치던 소년들이 차가운 길바닥에 내려앉는 순간을 함께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채워주었던 인연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지금까지 함께했다면 우리는 친구였던 사람이 아닌 친구로 남아있을까?
친구 시놉시스
추억은 마치 바다 위에 흩어진 섬들처럼 내 머릿속을 떠다닌다. 나는 이제부터 기억의 노를 저어 차례차례 그 섬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이 영화를 추억의 섬들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1976년 13살, 호기심 많던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유오성),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장동건), 화목한 가정에서 티 없이 자란 상택(서태화), 밀수업자를 부모님으로 둔 귀여운 감초 중호(정운택). 넷은 어딜 가든 함께 했다. 훔친 플레이보이 지를 보며 함께 낄낄거렸고, 이소룡의 브로마이드를 보며 경쟁하듯 흉내 냈고,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를까 하며 입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푸르게만 보였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동네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준석, 이소룡을 좋아하는 중호, 3학년 때 전학 온 동수, 공부를 잘하는 상택. 비슷한 구석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넷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어린 소년들은 바다에 함께 놀러 가 뜨거운 햇살 아래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르게 헤엄칠까’와 같은 사소한 주제로 아웅다웅하며 시간을 보낸다. 특별할 일 없던 보통의 시간도 네 명이 함께 모이면 즐거운 시간으로 변한다. 이런 관계가 바로 ‘친구’다.
“친구 아이가."
네 명의 친구들은 잠시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상택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고, 중호는 여전히 까불거리며 친구들 사이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준석과 동수의 모습이다. 건달 아버지 밑에서 자란 준석은 예전부터 ‘싸움꾼’으로 통하는 학생이었고, 동수는 준석의 곁에서 함께 싸움에 뛰어드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준석의 뒤를 따르는 동수를 보며 “쟤는 부하냐?”고 묻는다. 같은 반 학생은 그 질문에 준석은 학교 통, 동수는 학교 부통이라고 답한다.
준석과 동수는 친한 친구지만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1등과 2등이라는 서열을 갖고 있다. 준석은 여전히 “친구 아이가?”라는 말을 던지며 동수와 상택, 중호에게 우정을 강조하지만 동수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보인다. 동수는 준석에게 “내는 니 시다바리가?”라고 물으며 열등감을 보인다.
동수가 열등감을 갖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 동수의 아버지는 장의사다. 3학년 때 이사 온 동수는 5학년이 될 때까지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아버지의 직업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동수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해하거나 존중하기보단 부정적으로 바라봤고, 그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수의 마음속엔 분노와 열등감이 가득 차게 되고, 동수가 학교의 유리창을 깨부수던 날부터 4명의 우정도 함께 깨지기 시작한다.
준석, 동수, 상택, 중호는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한다. 사실 선택했다기보단 애초에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달랐다. 상택과 중호는 대학에 진학했고, 동수는 감옥에, 준석은 마약에 빠지게 된다. 상택과 중호는 연락이 끊긴 준석과 동수에게 다시 찾아가는데,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망가져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연말 분위기에 들떠있는 크리스마스 길거리. 상택은 준석을 들러업고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러 간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약 후유증으로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준석의 뒤 어딘가에서 이런 외침이 들린다. 상택은 누가 봐도 처참히 망가진 준석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다. 언젠가 불리한 싸움에 말려들던 날, 그리고 준석을 통해 좋아하는 진숙을 소개받던 날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듯 상택은 준석과의 의리를 지키려 노력한다.
“우리 넷 중 삶의 색깔이 비슷했던 녀석 둘마저도 또다시 각자의 색깔로 쪼개지고 말았다.”
그에 반해 동수는 의리보단 자신의 길을 택한다. 동수는 돈을 내밀며 의리에 대해 말하는 눈칼자국의 손을 잡는다. 새로운 조직의 행동대장이 된 그는 준석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동수는 준석의 조직에 쳐들어가 부하들을 살해하고, 준석은 부하들의 뼈를 찧는 소리를 들으며 분노를 삭힌다. 친할 친, 옛 구를 써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사이를 뜻하는 ‘친구’. 의리로 가득한 사이라 설명되는 관계 ‘친구’. 준석과 동수는 언제부턴가 친구의 범주를 벗어난다.
준석은 ‘친구로서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 동수를 찾아간다. 동수는 준석의 제안을 거절하고 준석을 내보낸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꾼 듯 상택을 보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준석의 부하들에 의해 살해된다. 마지막 부탁을 통해 어떻게든 친구 관계를 잡아보려다 실패한 준석은 그 관계가 끝났음을 인지하고 빠르게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에게 동수는 친구 동수가 아닌 자신을 죽이려 한 새로운 조직의 행동대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상택과 중호는 준석이라도 살리겠다며 재판에 도움을 주려 안간힘을 쓰지만 준석은 그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동수가 칼에 찔리던 날, 우정을 다짐했던 친구 준석의 존재도 함께 사라졌으니, 준석은 중호와 상택의 ‘친구로서 주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사라진 것이다. 동수의 친구였던 준석은 동수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진다.영화의 마지막, 다시 소년들의 모습이 나온다.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 작은 소년들은 튜브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조오련과 바다거북의 시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들은 “너무 멀리 온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발맞춰 육지를 향해 헤엄을 친다. 우정과 친구라는 단어로 뭉친 네 사람은 같은 목표를 위해 한 방향을 바라보며 발을 구른다. 하지만 현실 속 그들은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준석은 동수 편을 들었던 것도 같다는 말과 함께 준석, 동수, 상택, 중호의 찬란한 우정은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기 전까진 <친구>가 우정의 대상들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누군가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영화가 맑은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달렸던 소중한 그들을 기리는 영화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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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레이니 - 그녀가 블루스
마 레이니 - 그녀가 블루스
소품 같은 영화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다. 음악 영화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흑인 음악가들이 등장하는 흑인의 역사 이야기가 본질인 영화다. 그럼에도 음악은 훌륭하고, 서사는 비극적이다. 미국 흑인들의 삶에 내재된 필연적 비극성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가 활동하던 1920년대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때였다. '마' 레이니는 1886년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1880년대는 흑인이 노예에서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것이 1865년이고, 링컨이 이끄는 북부가 전쟁에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이미 영국에서는 1833년에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미국 특히 남부에서 흑인 노예는 노동력의 절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백인 농장주들이 노예제 폐지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이것이 결국 남북전쟁의 빌미가 된 것이다.
'마' 레이니는 1886년에 태어났는데, 흑인음악 블루스는 이때 서서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블루스의 뿌리가 아프리카라는 건 흑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내용이다. 블루스는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이자 '저항 음악'으로 태어났으며, 흑인이 집단으로 거주한 남부에서 태어나 흑인들의 대이동을 통해 북부로 퍼져갔다.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흑인들은 딜레마에 놓인다. 남부는 농업-주로 면화-이 발달했고, 북부는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는데, 북부에서 공업이 가파르게 발전하면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반면 남부의 농업은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덜 필요하게 되고, 흑인들은 생존을 위해 남부에서 북부로 대이동을 한다. 이때 움직인 흑인이 대략 6백만 명이라고 한다.
흑인들은 북부로 이동해 노동자로 변신한다. 남부에서 노예로 살았던 것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 아니, 어쩌면 더 나쁜 상황에 놓였을 수 있다 - 북부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역시 노예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북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두고 북부의 공업 자본가와 남부의 농업 자본가가 서로의 이권을 지키려는 다툼이라는 것이 정설인데, 북부의 공업 자본가가 승리함으로써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노동자가 되어 착취당하는 본질에서는 변함이 없게 된다.
마치 한국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군사독재정권이 농업과 농민을 수탈하면서 농산물 가격을 묶어두고, 농민이 생존을 위해 도시로 올라와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과 매우 비슷한 과정이 이때 이미 발생한 것이다. 흑인들도 대도시 변두리에 자리 잡으면서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
1927년, '마' 레이니는 고향 조지아주 콜럼버스를 더나 북부 시카고로 향한다. 시카고에는 파라마운트 레코드사가 있고, 이곳에서 음반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초반에 잠깐 콜럼버스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들이 시카고로 와서 음반 녹음하는 작업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흑인 음악인 '블루스'는 '마' 레이니가 태어나던 1880년대 이후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마' 레이니가 시카고로 가서 음반을 녹음하게 되는 배경에는 남부 흑인들이 북부로 대이동해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흑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듣고 싶어하고, 음반 회사 - 백인들이 운영하는 - 는 흑인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음반을 만들어 판매해서 돈을 벌기 위해 당대 최고 유명한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를 초대한 것이다. 이때 음반 회사는 '블루스'를 '인종 음악'이라고 불렀다. 백인들은 여전히 흑인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있지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흑인 가수와 밴드를 존중해 주는 척 할 뿐이다. 극중에서 '마' 레이니의 태도가 매우 공격적이고 불손하게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마' 레이니는 10대 때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데, 18살-1904년-에 결혼하면서 남편 윌리엄 '파' 레이니의 이름과 성을 붙여 거트루드 맬리사 닉스 레이니로 이름을 바꾼다. 남편의 이름에 '파(pa)'가 있어서 자신의 중간 이름에 '마(ma)'를 넣었다.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남부, 남서부 일대를 다니며 공연을 했고, 1920년 무렵에는 이미 전국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가 최초로 음반을 녹음한 때는 1923년으로, 파라마운트 음반회사와 계약한다. 하지만 그는 1928년에 마지막 음반을 내고, 1933년 그의 나이 47세에 은퇴하면서 더 이상 순회공연도, 음반 녹음도 하지 않는다.
'마' 레이니가 1933년에 은퇴하게 된 배경은 블루스 가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실력이 출중한 가수들이 많아지면서 여성 보컬의 인기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 된다. 또한 흑인 음악을 백인들이 가로채 연주하고, 음반을 내면서 흑인 가수들이 설 무대가 사라진 것도 한 원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흑인 음반 제작자가 나타나지만, 초기에는 백인들이 음반 제작자로 '인종 음악'을 만들어 흑인 예술가를 착취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마' 레이니가 음반을 녹음하는 것도 같은 이유고, 트럼펫을 불던 재능 있는 연주자 레비가 작곡한 음악을 단돈 5달러에 하는 백인 제작자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마' 레이니는 블루스 음악의 초기 가수이자 음반을 낸 가수로 '블루스의 어머니'로 일컬어진다. 이 영화는 '마' 레이니가 음반 녹음을 하러 와서 발생하는 반나절의 시간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무대연극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의 원작이 희곡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원작은 어거스트 윌슨의 희곡이다. 윌슨은 희곡작가이면서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고, '흑인 행동주의자 극단'을 창설해 흑인운동의 일환으로 희곡을 쓰고, 연극을 발표한 실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1982년 작품 '지트니'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이 영화의 원작인 '마 레이니의 검은 궁둥이'를 1984년에 발표하면서 뉴욕비평가상을 받는다. 이후 1987년, '펜스'로 퓰리처상, 뉴욕연극비평가상을 받으면서 유명 작가의 자리를 굳힌다.
연극으로 이미 크게 성공한 작품이고, 영화로도 잘 만들었다. 이 영화의 제작자로 덴젤 워싱턴이 참여했는데, 그도 '마' 레이니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마' 레이니와 그의 밴드가 시카고에 도착해 음반회사의 녹음실에서 음악을 녹음하고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밴드 연습실에서 밴드 멤버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에 있다.
'마' 레이니와 백인 음반 제작자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과 갈등은 영화에 긴장을 불어 넣는다. 아직 '세계대공황'이 닥치지 않은 때여서 거리는 약간의 여유가 보이는데, 스쳐가듯 보이는 시카고의 거리나 상점에서는 흑인과 백인의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이들이 함께 섞이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백인 음반제작자는 '마' 레이니의 까다로워 보이는 요구를 모두 수용하면서 음반 제작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음반을 만들기만 하면 흥행은 완전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음반회사의 제작자인 백인의 입장에서는 하찮은 흑인이라 해도 큰돈이 되기 때문에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밴드 연습실에서는 네 명의 흑인 연주자들이 연습한다. 트럼펫, 더블베이스, 트럼본, 피아노를 맡은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노인에서 청년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보이며, 하루 일당 25달러를 받고 연주를 하는데, 그나마도 이들은 괜찮은 처지였다.
트럼펫을 부는 레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이가 있다. 털리도, 커틀러, 슬로드래그는 밴드 활동을 오래 한 사람들이고, 자신의 직업에 비교적 만족하고 있다. 레비는 재능 있는 트럼펫 주자이면서 작곡도 하고, 자신의 밴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큰 청년이다. 이들은 '마' 레이니의 노래에 맞는 밴드 연습을 하는데, 레비는 자신의 연주 방식을 고집한다. 연주하면서 애드립도 많고, 기존의 전통 형식의 블루스에서 보다 빠르고 경쾌한 인트로를 넣으려 한다. 이들이 겪는 음악적 갈등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기도 하다.
레비를 제외한 세 명의 나이든 흑인은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체념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흑인의 삶에서나마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레비는 자신이 백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렸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레비의 아버지는 어렵게 돈을 모으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넓은 땅을 매입한다. 농사를 지어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던 레비의 아버지가 며칠 외출할 일이 생겼고, 그 사이 백인들이 집으로 쳐들어와 레비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레비의 가슴을 칼로 찔러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집에 돌아온 레비의 아버지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렵게 마련한 땅을 그들 백인 - 아내를 강간한 백인 - 에게 팔고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다음, 레비의 아버지는 혼자 몰래 고향을 찾아가 네 명의 백인을 살해하고 잡힌다. 레비의 아버지는 산채로 화형을 당하면서도 백인을 향해 웃었노라고 레비는 말한다.
레비의 뒤를 이어 커틀러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흑인 목사가 기차역에 도착했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이미 기차가 떠난 뒤여서 망연하게 있었는데, 건너편에서 백인들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걸 알고 기차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목사여서 성경책을 들고 있었지만, 백인들은 흑인 목사를 '깜둥이'라고 불렀고, 성경을 뺐어 찢어버렸으며, 조롱한다. 이때 레비가 커틀러의 말을 가로막으며 흑인에게 '신'은 없다고 말한다. 불행한 처지에 놓인 흑인을 도와준 신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 대목이다. 흑인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원하지 않는 삶을 강제당한 흑인의 처지와 백인에게 억압, 착취당하는 존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강하게 들어 있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블루스'를 노래하는 '마' 레이니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살았던 당대의 흑인의 삶을 그린 것이다. 그들에게 블루스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사회에 저항하는 언어이기도 했다. '마' 레이니는 이렇게 말한다. "노래는 기분 좋으라고 하는게 아냐,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하는 거지." 블루스를 이해하면, 흑인의 삶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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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유예된 항해의 빛
감독] 담가명Patrick TAM
출연] 장국영Leslie CHEUNG, 하문석Pat HA, 엽동Cecilia YIP, 탕진업Kent TONG
프로그램 노트] 홍콩의 영화평론가 스티븐 테오는 <명검>(1980)으로 데뷔한 담가명의 작품들을 두고 “홍콩 뉴웨이브 작가들 중 가장 덜 언급된 인물이지만, 서극이나 허안화 등과 비교해 가장 ‘성숙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 말했다. 더불어 “그는 동료 감독들에 비해 가장 세련되고 모던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도 덧붙였다. 담가명의 색깔이 가장 짙게 담겼다고 할 수 있는 <열화청춘>(1982)은 ‘왕가위의 <아비정전>의 전편’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우리가 기억하는 장국영의 상처받은 청춘의 이미지를 앞서 보여준 영화다. ‘장국영 비긴즈’라고 불러도 될 이 영화에서 그는 ‘노마드’라는 요트를 타고 언제나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을 섬세하게 연기하고 있다. 또 하나, 당시 담가명 감독의 영화가 동료 뉴웨이브 감독들의 영화와 비교해 가장 남다른 점이 바로 탁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었는데, <열화청춘> 등 여러 작품을 함께한 장숙평 미술감독은 그가 직접 발굴한 인재나 다름없다. 1980년대 모던 홍콩 영화의 진면목이 <열화청춘>에 담겼다. (주성철)
*영화 <열화청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홍콩의 여름은 덥고 습하다
영화는 덥고 습한 홍콩의 한 대금업자 집에서 시작한다. 대금업자를 찾아와 통 사정을 하는 빚쟁이에게 밉지 않게 퉁을 놓으면서도, 대금업자는 정작 ‘실무자’에게 모두 중국인이니 살살 하라고 하지 않았냐며 꾸짖는다. 우리 모두 중국인, 하다 못해 이 물건도 중국 물건… 이런 대사들은 홍콩 영화라서 의미심장하다.
같은 홍콩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저택도 있다. 호젓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있는 집. 그가 결혼을 통해 이 집에 들어오기 전의 집 주인이었을 여성, 그러니까 앳된 얼굴의 장국영이 연기하는 루이의 어머니는 라디오 DJ였다. 루이는 그 시절의 소리를 녹음해 자꾸만 듣고 있다. 소리를 죽여 놓은 텔레비전 위로, 라디오에서 베토벤 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더없이 동양적인 풍경 위로.
“동서양이 뒤섞인” 매력은 홍콩에 대한 교과서적인 표현이지만, 그 덥고 습한 여름은 단순히 동서양의 조화 뭐 그런 말로만 두루뭉술 담기지 않는다. 이 여름은 동양도 서양도 아닌, 그냥 홍콩만의 무드다. 비록 이 영화 속 청춘들은 쇼핑과 보석에 대한 구문을 익히며 일본어 회화를 열심히 배우고, 가부키 춤이나 액자 속 일본 가면 같은 문화를 즐기지만, 이들이 다른 장면에서 보여주는 홍콩 무드에 비하면 그 어설픈 흉내들은 어쩐지 조금 우스워 보인다. 홍콩만의 무드는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신스케를 대하는 아퐁의 입을 빌려 왜색에 일갈을 던지기도 한다.
이렇게 일본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뒤섞이는 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홍콩 무드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진짜로 홍콩 무드가 더 좋아서 그렇다. 일본의 여름도 덥고 습하지만, 일본 영화나 만화 속 모습은 언제나 맑고 청량한 연둣빛이라 좀 거짓말 같은 데 비해 홍콩의 여름은 벽면의 곰팡이까지 사실적이다. 강렬한 색감, 거기 놓인 물건들, 홍콩을 담은 여름 장면들이야말로 진짜 여름 같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면면들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왜 그 시절의 홍콩 영화는 이토록 매혹적인가?
#떠나기 전에 가장 빛난다
이 영화는 감각적이다. 당연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홍콩 영화 대다수를 맡은 미술감독 장숙평의 손이 닿았다. 왕가위에 비해 덜 알려진 이름이지만, 담가명은 홍콩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왕가위도 그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담가명 영화는 아주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장국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장국영인데. 아직도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얼굴의 앳되고 싱그러운 시절에, 그에게 유독 잘 받는 '유약하고 고독한 부자 청년' 역할이다. 소품과 옷의 색감들도 하나 같이 예뻐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음악과 여름, 젊음과 색깔이 사방천지에서 튀어나온다. 팍팍한 오늘날의 세상에서 보면 그것은 얼핏 여유로 비친다. 오늘날의 우리가 옛 홍콩 영화를 사랑하는 데에는 그 감각도 한 몫 할 것이다. 세상이 당장 끝난다 해도 오늘은 여름을 즐기겠다는 듯이, 마치 이 여름이 영원할 것처럼 향유하는 감각. 현실감은 조금 없어도 좋다. 실제로 토마토의 낡은 여행가방에는 화려하고 나풀나풀한 옷가지 몇과 조악한 봉제인형 정도만 들어있지만, 고작 그 정도 물건만 끌어안고도 토마토는 딱히 살아갈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 본다. 왜 여름과 청춘이 유독 옛 홍콩에서 빛날까? 그 세 단어 모두 시한부의 감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열화청춘>의 ‘청춘’들은 흘러 넘치는 정염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버스 안에서도 참지 못할 만큼 서로를 향한 사랑에 목이 마르지만, 부나방처럼 서로를 향해 자신을 온전히 던지지만, 그럴수록 스크린 밖에서는 유한을 실감할 뿐이다. 사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가족과 이웃의 방문으로 계속 호흡이 끊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쥐어 보려는 노력.
1994년작 <중경삼림>을 필두로 한 왕가위의 영화들이 1997년의 홍콩 반환을 목전에 둔 시점의 스산하고 각자 외로우며 알 수 없는 감각들로 붕 뜬 마음을 보이고 있다면, 1982년작 <열화청춘>은 그와 다른 결의 묘한 불안, 유한하기에 더욱 빛나는 순간의 감각들을 담고 있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 전, 그러니까 1970년대의 홍콩이 그랬으니까. 1990년대와는 다른 결의 묘한 불안이 깔려 있던 시기였다. 1971년, 중국의 UN 가입은 중국이 ‘중국’임을 인정받는 순간, 그러니까 대만의 ‘주권’을 밀어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99년의 할양 기간을 마치면 홍콩은 반드시 중국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1970년대 홍콩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다시 요동쳤다.
1970년대가 가고 이 영화가 개봉하는 1982년은 마거릿 대처가 중국을 찾아 홍콩을 테이블에 올린, 그러나 아무 성과가 없이 결렬된 회담이 있던 해이기도 하다. 끝이라는 감각은 서서히 가까워 오는데, 아직 그 감각이 목을 턱 조이기까지는 한참 남아있을 때. 그렇다고 존재가 소진되지 않겠지만, '끝'의 이후에는 결코 지금 같지 않을 거란 예감을 목도할 때. 오후 4시 쯤의 햇살을 움켜쥐어 밤을 막아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그런 정염이 이 영화에 있다.
#항해는 유예된다, 그러나
루이의 방은 어쩐지 바다 같고 배 같다. 벽도, 이불도, 침대 옆의 등과 그 옆의 연필까지도 모두 짙은 푸른색이다. 심지어 루이가 잠시 냄새를 탐닉하겠다고 가져온 기름 통마저도. 텔레비전 위에는 배 모형이 놓여 있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갈 것만 같은 무드의 방이다. 급기야 루이가 보트를 푸른색 페인트로 칠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정작 영화에 나오는 배 ‘노마드’ 호에는 어쩐지 ‘배’의 감각, 그 운동성과 생기가 없다. 분명 바다에 나가 있고, 정박하고 있던 배를 바다에 풀어놓은 것이건만, 루이의 방만큼도 운동성이 없다. 루이는 이 배를 타고 아라비아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여기서 아라비아라는 말은 과연 유토피아, 발할라, 샹그릴라와 얼마나 다른 이름일까 싶다. 이상향은 이상향일 뿐, 항해는 유예된 채였다. 유예된 항해는 성공할 수 없다. 배의 여정은 목적지에 다다를 때야 완성되므로.
청춘들이 노마드 호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때 사랑했던 인연을 숨겨 보는 정도다. 이를 계기로 떠날 궁리도 해보지만, 항해가 유예된 동안 이미 가까워진 존재가 있다. 불시에 도적처럼 덮쳐온 자객의 존재. 극과 극은 통한다고, 난징 대학살을 벌인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과 역사적으로 척을 지고 있음에도,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에서 중국과 아주 다른 모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는 아름다운 장면이 참 많았지만, 가장 꿈처럼 보였던 장면은 마지막으로 식탁을 같이 차리는 네 사람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 같”다는 말에, “사회가 뭔데?” 거칠게 되물으며 우리가 사회라고 대답하고, 바로 이어 네 사람이 같이 식탁을 차린다. 그 모습은 정말 ‘사회’ 같다. 누가 누구에게 군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어 각각의 할 일을 하며 그 결과를 함께 누리는.
어쩌면 이들이 ‘아라비아’에서 차리고 싶었던 식탁, 거기서 이루고 싶은 사회도 이런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살아남은 루이와 토마토가 이런 식탁을 차릴 수 있을까. 요원해 보여 더 꿈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을, 언젠가 미래의 다른 영화에서 기시감으로 느끼고 싶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11:00-12:33 메가박스 부천스타필드시티 5관 (상영코드 412)
7월 5일 20:00-21:33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상영코드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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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언 박성광의 감독 데뷔 영화 '웅남이' 스포일러 포함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웅남이
(23.03.22 개봉)
감독: 박성광
출연: 박성웅 등
코미디언 박성광 님의 상업 영화 데뷔작 '웅남이'!
원래 연출과를 나오셨고 감독의 꿈이 있으셨다고 해요
어느 평론가의 이 바닥이 만만하냐는,, 평을 봤는데
그 정도로 재미없진 않았거든요
제가 개화냈던 소울메이트보다 20배는 나았고요
첫 데뷔작 치고 이 정도 센스면 괜찮다 싶었어요
물론 저는 앞뒤 안 가리고 웃기기만 하는
킬링 타임용 영화도 좋아하고
개그맨 특유의 말장난도 좋아하기에
개취일 거 같긴 합니다
사실 이렇게 좋았다~ 고 해도
리뷰를 쓰면 아쉬웠던 점만 나열하게 되긴 해요
'웅남이'는 오락성과 작품성,,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애매하게 놓친... 영화였어요
오락성만 가지고 간 코믹 영화엔 <컴백홈>이 있는데요
제가 정말 안 좋아하는 조폭+느와르였음에도
2022 TOP5영화에 꼽힐 만큼 배꼽 잡았거든요
'웅남이'는 <싱크홀>처럼
무언가 교훈을 줄 만한... 내용은 아니라서
오락성만 챙겼어도 제몫은 했을 영화인데
아무래도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부담이었는지
어떻게든 진지함을 몇 스푼 첨가하려 하더라고요
그러나 그 진지함이 몇 초 못 간다는 점
그리고 모든 캐릭터가 박성광 님 같았달까요
창작자는 본인의 모습을 캐릭터에 녹인단 말이 있긴 한데
제가 지금껏 개콘 등에서 봐 온
박성광 님의 모습과 흡사한 캐릭터만 열댓 명이었어요
그러니까 남녀노소 성향 다른 캐릭터가 10명이 넘는데
다 박성광 같은 말투를 구사하고 있는......??
그래서 정말 웃기다! 하는 장면도
다같이 웃기려고 해서 재미가 반감되더라고요
캐릭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불필요한 캐릭터가 너무 많아요 ㅠㅠ
이이경 님도 같이 무대인사 돌길래
투 탑인가 보다 했거든요 근데 아니었음...
그냥 일개 친구일뿐인데,, 좀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
근데 그 독특한 캐릭터가 한둘이 아니에요
여사친은 술에 집착해서 웃기고,
여경은 욕을 잘해서 웃기고, 남경은 철없어서 웃기고,
아주 자암깐 나오는 단역까지도 어이없어서 웃기고
그렇다 보니 장면마다 힘 있게 웃기는 게 아니라
소소하게 피식거리게만 된달까요
그리고 스토리 개연성이 좀 약했어요
웅남이에게 형제가 있거든요
(박성웅 님 1인 2역)어쩌다가 둘이 떨어지게 되었고
각자 엄마, 아빠와는 어떤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풀어 줬으면 했어요
웅복이는 왜 아빠를 죽이려다가 못 죽였으며......
(어릴 때 챙겨 줬긴 한데 감정선이 이어지진 않음)차라리 처음부터 웅남-웅복 구도로 갔어야
엔딩에서 웅복이가 폭탄을 떠안을 때 슬펐을 거예요
그리고 폭탄 자기가 떠안았으면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설명 1도 없이 해피로 끝남,,, (??)
그리고 감독만 알고 가는 게 지나치게 많은 느낌?
웅남이가 25년만 살 수 있다는 오해를 했을 때
아빠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는 건
그냥 바로 뒷장면에 배치했어도 좋았을 거 같은데
끝까지 모르쇠하다가 쿠키처럼 나오더라구요
추측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만,,
관객은 알고 웅남이만 몰랐다면 더더 웃겼을 거 같아요!
역시 리뷰 쓸 땐 좋은 말을 안 하게 되네요... 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값은 아깝지 않았어요
중간에 나갔다는 평이 있던데
전 그 정돈 아니었습니다 하하
쿠키가 가장 웃기다고 하던데 ㅋㅋㅋㅋㅋㅋㅋ
쿠키 스포 하자면 정우성 님이 깜짝 등장하십니닷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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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율이 맞지 않는 시의 아름다움, <문라이즈 킹덤>
*영화추천*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감독: 웨스 앤더슨
운율이 맞지 않는 시의 아름다움, <문라이즈 킹덤>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아이들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들의 간섭에 벗어나기 위해선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 욕망을 아이들이 가진 미성숙함이라 여긴다. 어른의 개입은 아이가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자연스러운 욕망과 당연한 절차. 꽤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와 어른이 각자의 입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대화를 회피하기 위해 만든 단순한 대답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입장을 선언하는 목적 말고는 아무 의미 없는 말로, 운율이 맞아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시 같은 거다.
완벽한 사람이 완벽한 사랑을 하는, 그런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문라이즈 킹덤>엔 위와 같은 아이와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운율이 맞지 않는 시를 품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목적에 따라 아이와 어른이란 두 역할로 나뉜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고, 서로의 해결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을 기다리는 결말에 가까워진다. 그들은 점차 자기가 맡은 역할이 상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다른 길을 걷고 있으나 같은 풍경을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새 아이와 어른은 서로를 구분 지었던 장막을 없애고 ‘나’의 진심을 털어놓으며 예정되지 않은 선택을 한다.
영화는 세상과 우릴 아이와 어른, 감성과 이성, 솔직함과 거짓말 등으로 나누지 않는다. 빠르고 쉽게, 편리하게 분류하지 않는다. 열두 살 샘과 수지가 벌인 사랑의 도피를 섬 경찰과 수지의 부모, 카키 스카우트 대장, 사회복지국 직원이 개별적으로 겪는 사건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 인물들은 감독이 구축한 독보적인 세계관(공간) 안에서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격돌한다. 운율이 맞지 않은 시들의 위험한 실수가 충돌할 때마다 이야기는 위트와 진솔함을 넘나들고, 결과적으로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문라이즈 킹덤>은 황홀하고 우아한 영상미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더 매력적인 건 인물들의 대사다. 이들의 대화 속엔 영화가 끊임없이 보여줬던 상징이나 명확한 의도가 없다. 독립적인 장치로서 사건을 이끌고, 정체된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면서 어느 순간 관객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함께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듯한 확신을 갖게 한다. 운율이 맞지 않는 시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이랄까.
출처: 영화 <문라이즈 킹덤> 스틸컷(네이버)
분명 비밀스럽고도 마법 같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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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시대] 끝장리뷰 | 대만과 중국 | 에드워드 양의 양가성 | 예술에 대한 코멘트 | 오프닝, 결말해석 | 제목분석 | 아킴과 찰리 채플린 상징
[독립시대](199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대만
Chapter 2 예술
00:00 독립시대
01:20 대만 은유
02:45 유자의 곤혹
04:07 제목 분석
04:57 아킴과 채플린
08:18 양덕창 예술론
09:40 오프닝, 결말해석
11:39 별점 및 한 줄 평
11:5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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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하인드 더 트리> 메인 예고편
절대로 뒤돌아 보지 말것!
커플인 에이미와 제이는 북인도로 함께 여행을 떠나 즐거운 휴가를 보낸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 제이는 아름다운 숲속 깊은 곳에서 에이미에게 프러포즈를 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후 리조트로 돌아가던 두 사람은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다가 현지 주민들이 아이를 상대로 구마 의식을 행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두 사람은 좁은 곳에 갇혀 있는 아이를 꺼내 몰래 리조트로 데려오지만 아이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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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치와와> 예고편
치와와가 죽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녀의 진짜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던 '치와와'가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고 토막살인 된 상태로 도쿄만에서 발견된다.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치와와의 친구들은 함께 자주 가던 술집에 모여 그녀를 추억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명확해지는 것은 아무도 치와와의 본명, 출신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