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혁2021-10-03 22:50:39
#새콤달콤 / Sweet & Sour, 2021
사랑이 한없이 새콤달콤하지만은 않는다.
<사냥의 시간>을 시작으로 <콜 - 차인표 - 승리호 - 낙원의 밤>에 예정된 <제8일의 밤>까지 "넷플릭스"로 향하는 한국 영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여기 <새콤달콤>도 이에 해당되지만, 기대할 점이 있는 영화입니다.
첫 번째, 지금의 '넷플릭스'를 만드는데 일조한 장르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키싱 부스>같은 '로맨틱 코미디'인데, <새콤달콤>도 그렇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서야 택했다는 것에 기대치가 있었고, 두 번째로 이 영화를 연출한 "이계벽"감독입니다.
전작 <럭키>가 일본 영화 <열쇠도둑의 비밀>을 리메이크한 영화로 이번 영화도 <이니에이션 러브>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그 감각을 믿었습니다. (물론, 필자는 원작을 못 보았기에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보게 된 영화 <새콤달콤>은 어땠는지? - 영화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응급으로 병원에 오게 된 장혁은 그곳에서 계약직 간호사 "다은"을 만나고, 서로의 상냥함에 이끌려 그들은 이내 연인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혁은 회사에 파견을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은 파견직 "보영"을 만납니다.
으르렁거리는 사이이지만, 같이 일을 하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평범한 로코 아닌가?
1. 익숙한데, 끌리는 이유에는?
앞서 말했듯이 해당 영화가 원작이 존재해 챙겨보기 전에 결말을 아는 관객도 있을 거고, 무엇보다 비교선상에 올라갈 겁니다.
그렇기에 영화 <새콤달콤>은 "굳이, 이를 챙겨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관객들에게 납득시켜야 합니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본 필자는 원작 <이니에이션 러브>를 챙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두 영화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 <새콤달콤>을 말하는 데는 가장 정확할 겁니다.
익숙하고 익숙하다.
영화 <새콤달콤>의 가장 큰 매력은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해당 영화의 제목처럼 편의점에서 파는 간식처럼 이 영화의 장점은 "클리셰"로 말하는 익숙함입니다.
특히, 이 익숙함이 만화에서나 볼법한 설정을 연상하게 만드는데요.
극 중 뚱뚱한 남주가 뜻하지 않게 예쁜 간호사와 사귀게 되면서, 자신도 살이 빠져 잘생겨지는 내용의 애니는 <새콤달콤>이 아니더라도 많을 겁니다.
그만큼 익숙한 판타지로 시작하고 해소시켜주는 영화 <새콤달콤>은 욕해도 보게 되는 막장 같은 매력을 풍깁니다.
2. 배우들은 제 역할을 다 해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익숙하니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갈 텐데요.
영화 <새콤달콤>은 이런 점에서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잘 살려냅니다.
이야기는 "장혁"을 맡은 "장기용", "다은"역의 "채수빈"과 "보영"역의 "정수정"분이 이끌어나가는데요.
배우들의 연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욕과 같은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장혁"과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은"과 "보영"만으로도 충분히, 이들이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베테랑 조연 배우들까지 배우들의 매력은 익숙함을 더 무섭게 만듭니다.
원래, 연애란 이런 건가요?
영화 <새콤달콤>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로 연애를 기반으로 웃긴 상황을 연출하는데요.
그만큼 "연애"는 기본으로 깔아두는 장르로 영화가 보여주는 메타포가 눈에 띕니다.
특히, 조명으로 이들의 분위기를 해석할 수 있는데 환한 곳에서는 이들의 숨겨진 모습을 의미함으로 극 중 '커피'로 직장에서의 환심을 사거나 직장 상사의 불평불만을 삼키는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와 반대로, 어두운 곳에서는 자신들의 진심으로 공개되는 것으로 극 중 "보영"이 "장혁"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그렇죠.
이처럼 영화 <새콤달콤>은 관객들을 전구로 이들의 감정도 읽게 만드는 도사로 만들어내려 합니다.
3. 약간의 여지를 두었다?
그렇게 본 영화 <새콜달콤>의 이야기는 어딘가 예상이 갑니다.
줄거리에서도 말했듯이 누군가의 아픔으로 시작된 연애는 "연민"으로 시작되었으니 이는 동등한 입장보다는 앞서거니 뒤쳐지는 관계이니까요.
그렇기에 이들의 사랑이 익숙하고 뻔한 로코인건 이런 이유으로 배우들의 매력에 기대었을겁니다.
근데, 영화가 반전을 숨겼고 이런 해석을 머쓱하게 만드는데요.
마치, 시험에서 미세하게 말장난을 쳐놓은 100점 방지 문제처럼 미묘한 말장난은 앞선 해석을 뒤집어 놓습니다.
근데, 나쁜 X은 변하지 않잖아
한차례 진행되었던 영화는 되감기해 다른 영화로 빠르게 보여주어 관객들의 뒤통수를 때려놓기에 충분한데요.
그렇게, 다시 본 관계의 감정은 "연민"이 아닌 동등한 입장으로 보이는데 이런 이유는 직접 확인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영화는 "장혁"을 나쁜 놈으로 묘사하고 반전에서도 이런 사실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장혁"의 나쁜 모습을 더 강조하지만 일방적인 "다은"의 해석이 달라질 여지를 제시합니다.
물론, 원인이 "장혁"에게 존재하지만 이 때문에 "다은"의 행동을 정당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정답을 모르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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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이번 주 개봉, 공개 예정인 작품들을 소개해드릴 예정인데요.
배우 김선호의 1년만의 복귀작 <귀공자>부터,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온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까지, 다채로운 이번주 개봉작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귀공자
The Childe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 한국 | 118분
감독: 박훈정
출연: 김성호, 강태주, 김강우, 고아라 등
개봉: 2023.06.21.
배급: (주)NEW
시놉시스
“난 단 한번도 타겟을 놓쳐 본 적이 없거든” 필리핀에서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며 병든 어머니와 살아가는 복싱 선수 ‘마르코’. 어머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평생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으로 향하던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가 나타나 그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마르코’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숨통을 조여오는 ‘귀공자’를 필두로, ‘마르코’를 집요하게 추격하는 재벌 2세 ‘한이사’, 필리핀에 이어 한국에서 우연히 ‘마르코’와 재회한 미스터리한 인물 ‘윤주’까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은 단 하나의 타겟을 쫓아 모여들고,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혼란과 광기 속 ‘마르코’는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단 하나의 타겟, 광기의 추격이 시작된다!
CINE PICK!
배우 김선호의 영화 첫 도전기인데요, '신세계' '낙원의 밤' '마녀'시리즈 등 누아르 장르 액션 히트작들을 내놓은 박훈정감독님의 새로운 신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많은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김선호 배우는 기존 드라마에서 많이 보여졌던 다정한 로맨스 남자주인공의 이미지를 벗고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독한 캐릭터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대본상에서도 김선호가 연기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전개 내내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주인공이 악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피카레스크' 장르를 구사하는 박훈정 감독의 신작 '귀공자'는 더운 여름에 서늘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Spider-Man: Across the Spider-Verse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액션, 모험 | 미국 | 140분
감독: 조아킴 도스 샌토스, 켐프 파워, 저스틴 톰슨
출연: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인펠드 등
개봉: 2023.06.21.
배급: 소니픽처스코리아
시놉시스
스파이더맨 VS 스파이더맨?! 여러 성장통을 겪으며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 모랄레스’. 그 앞에 다른 평행세계의 스파이더우먼 ‘그웬’이 다시 나타난다. 모든 차원의 멀티버스 속 스파이더맨들을 만나게 되지만, 질서에 대한 신념이 부딪히며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기는데… 상상 그 이상을 넘어서는 멀티버스의 세계가 열린다!
CINE PICK!
정식 개봉 직후, 전작에 이어서 압도적 호평을 받으며,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의 또다른 예시가 될거라는 평들이 나왔습니다. 전편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코믹스 스타일의 영상미는 이번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멀티버스 소재를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현란해졌으며 동시에 엄청난 양의 각종 스파이더맨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소수 평론가들은 전편에 비해 과도한 현란함을 지적했지만 대다수의 관객과 평론가는 전편을 넘어선 실험적 시도에 높은 평가를 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달에 개봉하는 <플래시>도 멀티버스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어 두 영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북 오브 러브
Book of Love
개요: 코미디, 멜로 | 미국 | 106분
감독: 아날레인 칼 y 메이어
출연: 샘 클라프린, 베로니카 에체귀 등
개봉: 2023.06.21.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시놉시스
“내 책이 19금 야설이 됐다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던 영국의 로맨스 소설가 ‘헨리’ 어느 날 바다 건너 멕시코에서 자신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멕시코, ‘헨리’는 가이드를 자처한 번역가 ‘마리아’와 함께 북 콘서트에 나서는데, 이거, 제대로 통역하는 거 맞나요? 무언가 이상한 관객들의 반응! ‘헨리’는 그의 로맨스 소설이 ‘마리아’로 인해 19금 야설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사건건 으르렁,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 두 사람! 당장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와중, ‘헨리’는 출판사로부터 ‘마리아’와 함께 신작을 써보라는 황당한 제안을 받게 되는데… ISTJ 영국 남자 X ENFP 멕시코 여자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소설은 과연 어떤 장르가 될지? 예측불가! 소통불가! 로맨스
CINE PICK!
<헝거게임> <미 비포유>에 출연했던 샘 클라프린, '내 이름은 후아니'로 고야상 최우수 신인여배우상, 밀라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휩쓴 베로니카 에체귀가 만난 로맨틱 코메디 영화!
멕시코 거리에서 선남선녀의 로맨틱 코미디가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굿바이
Departures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30분
감독: 타키타 요지로
출연: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
개봉: 2023.06.21. 재개봉
배급: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주)팝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도쿄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갑작스런 악단 해체로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고향으로 돌아간다. “연령, 경험 무관! 정규직 보장!” 여행사 구인 광고로 면접을 보고 바로 합격! 그러나 여행사는 국내도, 해외도 아닌 인생에서의 마지막 여행인 죽음을 배웅하는 장례지도회사! ‘다이고’는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에게 일을 배우며 사명감을 갖게 되지만, ‘미카’와 주변 친구들은 그를 피할 만큼 새 출발을 반대하는데… 모두에게 전하는 사랑의 인사, “다녀오세요. 다시 만나요, 우리”
CINE PICK!
<굿바이>는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었던 작품으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이미 해외 유수 영화제와 평단을 사로잡은 작품입니다. <굿바이>는 장례지도사라는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인생의 끝이라고 여겨지는 ‘죽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야기를 잔잔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웰메이드 힐링 무비입니다. 일본 특유의 장례 문화가 깃든 신선한 소재를 가장 보편적인 감성으로 전한 따뜻한 이야기에 세계 각국의 언론과 평단이 열광했습니다. 올 한 해, 힘들고 지친 일이 많아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만큼 11년 만에 다시 극장을 찾은 <굿바이>는 우리 모두에게 진한 감동의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명탐정코난: 하이바라 아이 이야기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
Detective Conan: The Story of Ai Haibara: Black Iron Mystery Train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 일본 | 89분
감독: 미야시타준이치
출연: -
개봉: 2023.06.23.
배급: CJ ENM
시놉시스
운행 중에 추리 게임이 진행되는 미스터리 트레인에 소년 탐정단과 함께 탑승하게 된 하이바라 아이와 에도가와 코난. 미스터리 트레인에서 시작될 추리 게임에 대한 기대도 잠시, 소년 탐정단에게 의문의 미션이 담긴 봉투가 도착하고 곧이어 열차 내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한편, 사라진 조직원인 셰리를 추적하고 있는 검은 조직의 진은 미스터리 트레인에 그녀가 탔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베르무트, 버번까지 합세해 하이바라 아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미스터리 트레인, 그 안에서 발생된 밀실 살인 사건의 진실은!? 하이바라 아이는 검은 조직의 눈을 피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CINE PICK!
누적 발행부수 2.7억 권을 돌파한 최고의 추리 만화 [명탐정 코난] 원작의 '명탐정 코난: 하이바라 아이 이야기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이 7년만에 등장한 검은 조직에 대한 스토리를 공개해 눈길을 끌고있는데요.
'명탐정 코난: 하이바라 아이 이야기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은 신이치를 위기에 빠지게 했던 독약 APTX4869(아포톡신4869)를 개발한 검은 조직의 코드명 '셰리'에서, 정체를 숨기고 코난과 함께 지내고 있는 '하이바라 아이'의 최대 위기 상황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애니의 극장판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다시 재개봉한 명탐정 코난도 많은 사랑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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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히림의 전쟁 | '반지의 제왕'이라서 눈감는 안일함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주로서의 삶을 답답해하며 전사가 되고 싶어 하는 로한의 공주 '헤라'(가이아 와이즈). 어느 날, 그녀는 소꿈친구이자 웨스트마크 영주 '프레카'(숀 둘리)의 아들 '울프'(루크 파스콸리노)의 구혼을 받는다. 그러나 곤도르와 혼약을 맺은 로한의 왕 '헬름'(브라이언 콕스)도, 연심이 없었던 헤라도 구혼을 일언지하로 거절한다. 헬름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프레카는 결투를 청하고, 헬름은 결투 중 예기치 못하게 프레카를 죽이고 만다.
이에 격분하며 복수를 다짐하며 자취를 감췄던 울프. 그는 수년 뒤 로한의 적인 던랜드인을 이끌고 나타나 로한의 수도 에도라스를 습격한다. 헬름과 두 아들 ‘할레스’(벤자민 웨인라이트)와 ‘하마’(야즈단 카푸리)는 기마대 로히림과 함께 전투에 나서지만, 내부의 배신이 겹치면서 대패한다. 두 왕자를 모두 잃은 헬름과 헤라는 울프의 군세에 밀려 나팔 산성에 그대로 고립되고,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방도를 찾기 시작한다.
높고도 험한 <반지의 제왕>이라는 벽
영화팬들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도는 말이 있다. 20년 전 <반지의 제왕> 포스터가 과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팩트였더라. 아직까지도 '21세기 최고의 판타지 영화'라는 마케팅 문구는 <반지의 제왕> 몫이기 때문. 피터 잭슨 본인이 만든 <호빗> 삼부작도, 아마존 프라임이 심혈을 기울인 <힘의 반지> 드라마도 10억 달러 흥행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동시에 달성한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는 비견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판타지 영화 팬들은 <반지의 제왕>을 늘 그리워한다. 이 시리즈를 처음 본 전율을 언제 다시 느껴볼까 궁금해하면서. 이는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이하 <로히림의 전쟁>)이 낯선 외양에도 불구하고 특히 궁금한 이유였다. '반지 전쟁' 250여 년 전 로한의 왕 헬름과 그의 딸 헤라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피터 잭슨과 앤디 서키스가 제작할 영화 <반지의 제왕: 골룸 사냥>에 앞서서 팬들을 가운데땅으로 초청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약 한 달 늦게 공개된 결과물은 다소 실망스럽다. 원작에서는 이름조차 없었던 주인공 '헤라'의 서사는 평범하고, 그녀의 활약상을 보각한 각색은 부자연스럽다. 카미야마 켄지가 맡은 애니메이션 작화도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그러나 판타지와 <반지의 제왕>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로히림의 전쟁>을 싫어할 수 없다. 곳곳에 삽입된 <반지의 제왕>과의 연결고리를 찾다 보면 아쉬움이 절로 잊히기 때문이다.
에오윈을 넘지 못한 헤라
<로히림의 전쟁>의 성패는 헤라에게 달려 있었다. 애초에 원작에 없는 인물의 재조명이 기획 의도니까. 그런데 정작 헤라는 새로울 게 없다. 그녀는 공주로서의 삶을 답답해하며 전사가 되길 꿈꾼다. 공주로 태어났기에 다른 왕족과의 혼인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헤라는 모든 구혼을 거절한다. 대신 그저 말을 달리며 모험을 떠나는 삶을 꿈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주 접한 말괄량이 공주가 바로 헤라다.
문제는 헤라와 똑같은 캐릭터가 이미 20년 전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했다는 것. 로한 제2왕조의 마지막 왕인 세오덴의 조카딸이자, 제3왕조의 첫 번째 왕 에오메르의 동생인 '에오윈'(미란다 오토)이 주인공이다. <로히림의 전쟁>에서 내레이션도 맡은 그녀는 전투에 나선 남자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처지를 답답해하며 남몰래 무술을 연마했다. 심지어 왕명을 어긴 채 '펠레노르 평원의 전투'에 나서서 마술사왕까지 죽였다.
그런데 두 캐릭터가 겹쳐 보일수록 헤라는 에오윈에 비해 매력이 부족하다. 에오윈과 달리 헤라는 완성형 캐릭터이기 때문. 에오윈은 공주에서 전사로 변모해 가는 인물이었고, 관객도 그녀의 좌절과 성장을 함께 겪으면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헤라는 이미 완성된 전사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그녀의 감정선에 이입하기 어렵고, 그저 활약상을 구경할 수밖에 없다. 헤라에게서 에오윈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반지의 제왕 2> 다시 보기
그 결과 <로히림의 전쟁>에서는 프리퀄 겸 스핀오프만의 매력이 돋보이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다루는 사건 자체의 한계가 명확하다. 사건의 전개나 세부적인 전투 양상이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이하 <반지의 제왕 2>을 반복하기 때문. 아이센가드의 적, 수적 열세 상황에서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는 주인공, 그 순간 헬름 협곡 위에서 등장하는 로히림 등.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적군이 오크가 아닌 인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헤라는 이처럼 <반지의 제왕 2>의 반복에 불과한 이야기에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존재였다. 원작 소설은 그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니까. 그저 헬름에게 딸이 있었고, 그녀를 향한 울프의 구혼을 거절했다는 내용만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헤라를 어떤 캐릭터로 묘사하고 그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붙여주느냐에 따라 <로히림의 전쟁>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극 중 헤라는 기존 캐릭터들의 조각모음에 불과하다. 그녀는 그저 세오덴처럼 농성하고, 아라고른처럼 최후의 돌격을 결심하고, 레골라스처럼 숱한 적군을 무찌르고, 간달프처럼 지원군을 끌고 온다. 기존에 못 본 역할을 선보이는 게 아니라, 여러 캐릭터가 맡았던 역할을 혼자 해낼 뿐이다. 결국 <로히림의 전쟁>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반지의 제왕 2>를 일본풍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것에 불과해 보인다.
실수는 반복된다
오히려 헤라의 존재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구간도 적지 않다. 기존 서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헤라의 활약상을 부각하려다가 전개가 꼬이기 시작한다.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은 헤라의 활약상을 덧댄 흔적이 가려지지 않은 셈이다. 이는 <호빗> 3부작에서 소설에 없던 오리지널 캐릭터, '타우리엘'이 중심이 된 로맨스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흐름이 끊겼던 문제점과도 유사하다.
특히 헤라가 등장할 때마다 전투 시퀀스의 흐름이 꼬이는 경우가 잦다. 아이센 여울목에서 펼쳐진 전투와 수도 에도라스의 함락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시퀀스에서는 크게 세 주체가 등장한다. 헬름과 군대는 전투를 펼치고, 울프와 그의 본대는 헬름의 군을 우회해 수도 에도라스로 진격하고, 헤라는 울프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수도를 방어한다.
그런데 전투가 진행될수록, 특히 헤라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시점부터 세 주체의 행적은 꼬이기 시작한다. 분명 여울목에서 부왕 옆에서 전투 중이었던 헬라스가 에도라스로 먼저 진군한 울프를 갑자기 앞지르는 식이다. 본편에서 엘프인 레골라스가 간신히 대적한 무마킬을 헤라가 혼자 죽이는 과장된 묘사도 시리즈의 일관성을 저해한다. 헬름 협곡에서 헤라와 그녀의 시녀 올윈이 숱한 적군을 대적하는 전개도 같은 맥락에서 의아하다.
프리퀄을 지탱하는 각색과 작화
안일하게 전편의 영광에 기댄 것 같은 헤라 캐릭터의 만듦새는 군데군데 몰입도를 높인 장점과 대조되기에 더욱 아쉽다. 각색한 울프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원작에서 그는 아버지를 죽인 헬름을 향한 복수심 때문에 로한을 침략한다. 반면에 영화는 울프의 동기를 더 구체화한다. 그가 헤라에게 품은 연심이 집착으로 변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덕분에 승전하기 직전 그가 헤라를 놓지 못해서 패배하는 전개도 그저 허망하지는 않다.
헬름의 아들 하마의 최후를 변경한 각색도 인상적이다. 원작에 그는 나팔 산성 앞에 주둔한 울프의 군대를 기습하다가 사망한 반면, 영화에서는 울프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헬름이 보는 앞에서 처형당한다. 이는 헬름의 좌절감, 광증, 복수심을 강조하며, 더 나아가 헬름 협곡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이유를 알려주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처럼 <로히림의 전쟁>은 원작이 간략히 다룬 감성적인 측면을 깊이 파고든다.
각색 외에는 작화가 놀랍다. 카미야마 켄지가 본래 배경을 그리는 미술 스태프 출신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경에서 보여주는 가운데땅 풍경은 그림인지 실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밀하다. 일례로 오프닝의 경우 평원에서 말을 타는 헤라와 그 위를 날아가는 독수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순간적으로 실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나팔 산성의 전경을 비추는 순간도 실사 영화 부럽지 않은 장엄함이 느껴진다.
다만 전투 시퀀스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로히림의 전쟁'이라는 부제만 보면 실사영화 속 로한의 기병대의 웅장한 돌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림만으로 실사영화 수준의 장대한 전투 시퀀스를 보여주기에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나마 보름달을 배경으로 프레알라프가 이끌고 온 지원군이 울프의 군대를 공격하는 장면만큼은 명장면으로 뽑기에 손색없다.
가운데땅은 여전히 반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히림의 전쟁>에는 <반지의 제왕> 팬이라면 아쉬운 대목이 눈에 밟혀도 모른 척 넘어가 줄 수밖에 없는 포인트가 적지 않다. 사루만의 재등장 때는 작고한 크리스토퍼 리가 <호빗> 촬영 당시 더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헤라가 반지만 찾는 모르도르의 오크들을 만나고, 그 순간을 궁금해하는 간달프와 헤라가 연락을 취하는 대목 또한 '반지 전쟁'과의 연결고리를 암시하기에 흥미롭다.
전반적으로는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유사하다. <반지의 제왕>에 못 미치는 완성도가 아쉽지만, 아라고른과 레골라스의 우정을 암시하는 대목이나 노년의 빌보 배긴스를 연기한 이안 홈이 출연한 순간에 결국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뉴라인 시네마 로고가 등장하고 로한의 테마 음악이 흘러나올 때부터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Acceptable 무난함
'반지의 제왕' 향이 소량 첨가된 판타지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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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면과 혐오, 분노가 만든 폭력의 세계
지금 우리 학교는 (ALL OF US ARE DEAD, 2022)
“외면과 혐오, 분노가 만든 폭력의 세계”
개봉일 : 2022.01.28. (넷플릭스 공개)
감독 : 이재규, 김남수
출연 : 박지후, 윤찬영, 조이현, 로몬, 유인수, 이유미, 임재혁
개인적인 평점 : 3/5
지금 우리 학교는 줄거리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겪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동명의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을 원작으로 한 새로운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2022년 1월 28일 날짜로 공개됐다. 2021년을 뜨겁게 달궜던 <오징어 게임> 이후,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에 대한 관심도가 상당히 높아진 만큼 ‘한국 드라마 콘텐츠’라는 타이틀을 달면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만만치 않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공개된 <지옥>은 ‘한국 드라마 콘텐츠’로 큰 관심을 받으며 스트리밍 1위를 달성했고, <고요의 바다>는 1위를 찍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한국형 SF’의 새로운 장을 열며 마무리되었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공개된 시리즈들 모두 어떤 방향으로든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꽤 괜찮은 성공이 거듭되면서 기대감이 더욱 쌓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어딘가 모자랐던 걸까. 나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 시리즈는 장단점이 뚜렷한, 완전한 성공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작품으로 남아버렸다.
긴 러닝타임, 길게 늘려진 답답한 이야기
<지금 우리 학교는>은 <킹덤>에 이어 넷플릭스에서 2번째로 제작된 한국형 좀비 드라마다. <킹덤>은 시즌당 4-60분 내외의 러닝타임을 가진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것에 비해 <지금 우리 학교는>의 러닝타임은 거의 두 배에 달한다. 그렇다고 <킹덤>이 특히 짧았던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사용한 <스위트홈>과 최근 공개된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D.P>, <마이네임>, <고요의 바다>, <지옥> 등이 모두 10편 내외로 구성되었던걸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눈에 띄게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시리즈다.
한 회차당 60분 정도, 총 러닝타임은 709분에 달하는데, 처음엔 “원작에도 등장하는 인물이 워낙 많으니까.. 12화인 이유가 있겠지?”싶었는데, 시리즈를 다 보고 나니 “왜 12화까지 만들었지?”싶었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았다는 부분은 어느정도 느낄수 있었으나, 깊게 표현됐다기보단 한번 쓰고 내팽개치고, 또 잠깐 보여주고. 하는 식으로 짧게 반복되니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8-10화 내외로 과감하게 쳐냈다면 지금보다 만족도가 훨씬 올라갔을지도.
여러 인물들이 만나게 되면 당연히 갈등이 생기게 되고, 어느 정도 고구마를 먹은듯한 답답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시청자들이 그 고구마를 견디는 이유는 갈등이 해소될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 즉 사이다를 꿀꺽꿀꺽 마시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인데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사이다가 부족하다. 숨 막히게 반복되는 답답한 상황과 고립. 갈등 요소가 해소되나? 싶은 순간, 갈등을 야기한 인물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래... 상황상 어쩔 수 없지...”, “그래... 얘네 고등학생이잖아...”를 반복하며 마음을 달랬다.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구성과 납작한 인물들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꽤 많은 캐릭터들이 나온다. 초반부엔 이름조차 제대로 외우기 힘들 만큼 말이다. 교내에는 청산과 온조가 주축이 된 무리와 하리와 미진이 주축이 된 무리, 은지와 철수로 구성된 폭력의 피해자 무리, 교내 최고 빌런 귀남까지 총 4개의 시점이 있다. 그리고 학교 밖엔 온조의 아빠 소주 무리와 도시로 들어온 스트리머와 형사 무리, 효산시 봉쇄 작전을 실행하는 사령관까지.
사실 등장인물들이 많은 건 단점이라고 할 수 없으나, 문제는 한 무리 안에서도 인물들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는 점과 각 무리가 갖고 있는 톤 자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곧 멸망해버릴듯한 세상이 주는 절망과 무거움을 작은 코믹 요소들로 중화시키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특정 인물들의 이야기만 너무 큰 변주를 준 느낌이라 아쉬웠다. 톤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다양함보다는 산만함이 크게 느껴졌다.
정말 가감 없이 이야기하자면, 산만한 이야기를 꽉 잡고 갈 중심인물이 많이 없었다는 점도 이 시리즈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학교는> 원작을 접한지 오래 지나서, 원작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보며 이런 생각을 정말 자주 한 것 같다. “얘 웹툰에서도 이랬었나?”
모든 인물들이 매력적이고 입체적일 순 없다. 그래도 이 산만함을 꽉 쥐고 끌어갈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았다면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4-5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크게 아쉬웠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시청 중에 지쳐버린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단점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영리한 좀비 액션
그럼에도 <지금 우리 학교는> 시리즈를 끝까지 완주한 이유.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좀비들과 펼치는 영리한 액션신들 덕분이었다. 학교라는 고립된 공간 속, 길쭉하고 좁은 복도의 특성을 활용한 아슬아슬한 액션, 교내 물품들과 건축 자재들을 이용해 구성한 영리한 액션들과 그 안을 유연하게 비집는 카메라의 시점. 그 모든 액션들을 받아쳐주는 좀비들의 그로테스크한 움직임. 그리고 역하게 느껴질 만큼 잘 만들어진 비주얼까지. 아쉬운 점은 다 미뤄두고, 이 액션신과 배경을 만들기 위해 담당자분들과 배우분들 모두 정말 고생하셨다는 칭찬은 아끼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론 고지대를 선점한 상태로 이어진 액션신들이 인상 깊게 남았다. (특히 도서관 장면)
신선한 얼굴들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신선한 얼굴들이 대거 출연한다. <벌새>로 소중한 날갯짓을 보여준 박지후 배우,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유미 배우, 여러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탄탄한 연기력을 뽐낸 이상희 배우처럼 은근 낯이 익은 배우들도 있고, 언젠가 한 번쯤 봤었던 <슬의생>의 장윤복 역을 연기했던 조이현 배우, 영화 <생일>에서 설경구 배우의 아들 수호를 연기했던 윤찬영 배우, 조금은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는 로몬, 유인수 배우까지. 이 신선한 얼굴들엔 기시감 같은 뻔한 것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보여준 연기와 배우들 간의 합이 빈틈없이 완벽했다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적어도 이들의 차기작이 궁금해지게 만든 시리즈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순간에 지옥이 된 세상에서 꼬집고자 하는 것. 호불호가 갈리는 표현 방법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효산 고등학교에서 살아남은 학생들과 학교 밖, 효산시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바이러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며 한순간에 지옥이 된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뿌리치고, 달려오는 좀비들에 맞서며 구조의 순간을 기다린다. 아이들이 갇힌 세상은 온통 공포와 괴성, 불신으로 가득하다. 학교 밖에서 이 사태를 알게 된 어른들은 아이들을 구하러 지옥으로 몸을 내던지기도 하고, 다수의 생존과 소수의 희생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 안에 그려지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공감과 울분, 분노 등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꼬집고자 하는 방향은 확실하다.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가 누군가에겐 지옥일 수 있다는 것.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방관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 폭력의 구렁텅이가 깊어질수록 그 안에선 더욱 지독한 폭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폭력이 지배한 세상 속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혐오 등등.. 방향성은 충분히 알겠으나 표현 방식에 대한 호불호가 꽤나 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이 문제들을 꼬집기 위해 사용된 국회의원 캐릭터와 가해자와 피해자 캐릭터들이 다소 일회성으로 소비되었다는 점과 논란이 될만한 폭력 표현 방식 등이 있겠다.
지옥 같은 학교에서 손을 잡는 아이들
폭력이 만들어낸 작은 멸망과 그 상황에서도 파이 게임을 하는 어른들. 아이들은 어른들을 기다리며 지쳐가고, 끝내 버려졌음을 알게 된 순간 더욱 견고하게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간다. 그들의 작은 세계 속에선 믿음, 사랑, 우정, 희생이 교차하고, 이 모든 감정은 단 하나의 목표. 생존을 위해 사용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생존이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천국, 누군가에겐 지옥이던 학교가 이젠 모두에게 공평한 지옥이 되어버린 상황. 희망 같은 건 가질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잠시나마 희망의 스파크를 튀겨본다.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면 아이들끼리 손을 잡고 서로에게 몸을 기대며 휴식이나 수면을 취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순간들이 정말 좋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기대는, 본능이자 깊은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좋았다. 좀비가 창궐한 와중에도 수능과 고3이 될 내년을 걱정하는 팍팍한 분위기를 잠깐이나마 풀어주는 것 같아서.
좀비물이라기보단 하이틴 로맨스로 본다면
<지금 우리 학교는>을 설명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는 ‘한국형 좀비 드라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분야를 즐겨보는 팬들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은 부족함이 많은 시리즈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클리셰로 가득한 진행에 생존을 앞에 뒀다기엔 예상보다 더욱 답답하게 행동하는 인물들까지. 특히 좀비물의 스탠더드로 불리는 <워킹데드>나 앞선 한국형 좀비 <킹덤> 정도를 기대했다면..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이틴 로맨스 초점으로 바라본다면.. 어쩌면? 좀비에 집중했을 때보다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탈출과 고립, 희생과 이별이 반복되며 자연스레 쌓여간 감정들이 언젠가 한 번쯤은 훅- 다가오는 순간이 있을 테니까. 슬픔으로든 아주 큰 분노로든, 그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제대로 마무리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남은 건 맞잡은 손뿐인 아쉬움이 가득한 시리즈였지만... 이를 계기로 ‘K-좀비’의 장이 더 넓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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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크아이>의 페이소스를 다방면으로 밀어붙이는 뚝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은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중 과거 범죄자들을 죽이고 다녔던 과거의 자신, '로닌'이 목격되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에 클린트는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가짜 로닌을 찾아 나서고, 불법 경매장에서 우연히 로닌 슈트를 갖게 된 22살짜리 궁수 '케이트 비숍(헤일리 스타인펠드)'를 만난다. 본래 클린트는 슈트를 회수한 후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케이트가 목격한 범죄 현장 속 로닌과 관련된 미스터리가 끝내 그의 발목을 잡는다. 한편 아버지를 죽인 로닌을 향한 복수심에 불타는 '마야(알라콰 콕스)'의 조직인 트랙수트 마피아와 나타샤 로마노프의 복수를 하려는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는 점차 클린트를 위협해오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대신 다시 한번 히어로 호크아이가 되기로 결정하고, 평소 호크아이를 동경해오던 게이트와 파트너가 되어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
서른 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한 MCU에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슈트를 입거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지니거나, 아예 신이나 다름없는 수많은 히어로가 공존한다. 그들에 비하면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활과 화살만 들고 히어로 활동을 하는 호크아이는 너무나도 약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어벤져스> 1편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원년멤버로서 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클린트 바튼이라는 평범한 인간이 호크아이라는 히어로로 활동할 때 느껴지는 페이소스(pathos)에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자. 도저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동료들마저 울트론을 대적하기 버거워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가족을 이룬 히어로인 호크아이는 어벤져스의 일원이었기에 가족을 뒤로하고 활과 화살만을 든 채 전장으로 나서야 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가족을 잃고 범죄자를 죽이고 다니는 로닌이 되었다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시간여행에 자원하는 <엔드게임> 속 호크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즉, 특수한 능력이 없더라도 목숨이 위험한 전쟁터에 나아갈 수 있는 정의감과 용기라는 히어로의 미덕과 자격을 희생을 감수하고 온몸을 던져 보여주는 것이 호크아이의 힘이자 정체성이고 매력이었다.
이러한 호크아이의 캐릭터성은 디즈니+에서 공개된 MCU의 네 번째 드라마 <호크아이>에서도 든든하게 극의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무엇보다도 리빌딩이라는 MCU 페이즈 4의 대전략이 페이소스라는 캐릭터성을 통해 영리하게 실행된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페이즈 4의 작품들은 대체로 기존에 미처 풀어내지 못한 히어로의 서사를 정리하고,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 또는 후계자들을 소개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성의 관점을 녹여내고자 노력 중이다. 이때 클린트의 페이소스는 <호크아이>가 페이즈 4에 속한 작품으로서 이 모든 역할을 해내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당장 드라마 속 호크아이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지구와 우주를 구한 영웅이지만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은 자부심이나 뿌듯함도 아니고, 다른 동료들에 비해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도 아니다. 그저 극심한 상실감이다. <어벤져스>의 뉴욕 전투를 묘사한 뮤지컬 '로저스'를 보더라도 호크아이는 스스로를 희생한 나타샤 로마노프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처음으로 어벤져스가 결성된 현장의 기념비 앞에서도 그는 나타샤와 다른 동료들의 희생에 빚을 지고 있다며 눈물을 쏟는다. 그는 다른 동료들이 죽거나, 은퇴했거나, 극심한 부상을 입었거나, 우주로 떠나버린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어벤져스의 일원으로서 그 무게감을 온전히 지탱해야 한다.
드라마는 이러한 호크아이만의 페이소스를 다방면으로 확장시키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후계자이자 동시에 파트너인 케이트 비숍과의 관계 형성이 대표적이다. 뉴욕 전투 도중 호크아이 덕분에 목숨을 건진 후 호크아이를 아이돌로 여겨온 케이트. 우연히 로닌의 슈트를 갖게 된 그녀는 자신이 목격한 범죄 현장의 미스터리를 풀어내기 위해 로닌 슈트를 매개로 클린트와 동행하게 되고, 각자의 이유로 클린트에게 복수하려는 마야, 트랙수트 마피아, 그리고 옐레나에게 쫓겨다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케이트는 그녀를 보호하고 또 범죄에 맞서기 위해 가족과 함께하는 수년만의 크리스마스도 뒤로 한 채 임무에 나서는 클린트로부터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던 히어로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배운다. 그래서 그녀를 둘러싼 여러 위협과 복잡한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임무에 나설 수 있겠냐는 클린트의 질문에 케이트는 다음처럼 답한다. "오직 날 수 있고 레이저를 쏴야만 영웅이 되는 건 아님을 당신이 보여줬으니까요. 어떤 대가가 따르든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누구든 영웅이 될 수 있다고요". 이렇게 클린트의 페이소스가 보여준 히어로의 자격이 케이트 비숍에게도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드라마는 깔끔하게 세대교체를 진행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클린트의 슬픔은 영화 <블랙 위도우>의 쿠키 영상에서 암시된 옐레나의 갈등이 해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 마블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클린트와 옐레나는 나타샤라는 가족을 잃었다는 아픔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단지 클린트의 아픔은 스스로를 희생하려는 나타샤를 끝내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의 모습으로, 옐레나의 아픔은 나타샤의 죽음을 클린트의 탓으로 돌리는 복수심의 형태로 드러날 뿐이다. 그래서 옐레나는 과거 나타샤와 자신의 추억을 클린트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와 자신이 같은 처지에 놓여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둘 간의 오해와 갈등도 일단락된다.
더 나아가 다양성의 관점에서도 <호크아이>는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데, 구체적으로는 '다름'의 의미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준다. 어벤져스 활동으로 인해 왼쪽 청각을 거의 상실한 클린트는 보청기 없이는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드라마는 클린트의 청각장애를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도록 연출한다. 보청기가 없는 클린트의 관점에서 주변 소음이나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저 웅웅 거릴 뿐이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케이트의 도움 없이는 집에서 걸려온 막내아들의 전화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클린트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낸다.
이러한 클린트의 서사는 빌런인 마야가 청각장애에 접근하는 방식과 대조를 이루기에 더욱 흥미롭다. 마야는 어려서부터 일반 학교에 다니며 청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입 모양을 읽거나 순간적인 표정의 변화를 포착해 청각정보의 빈자리를 시각정보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이런 마야의 관점에서, 청각의 부재는 결손이나 단점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에 불과하다. 전투 도중 보청기를 잃고 허둥대는 클린트에게 “당신은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청인의 상태가 정상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장애와 비장애는 어떤 위계도 없이 그저 '다르다'라고 인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표현이다. 이렇게 호크아이의 정체성, 곧 그만의 페이소스를 서로 대비되는 농인의 시점과 이야기로도 확장시키면서 <호크아이>는 지난 십 년간 한 캐릭터를 착실히 빚어온 MCU의 저력을 증명해 보인다.
다만 중심 주제로부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인상적인 스토리텔링과 별개로, 슈퍼히어로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호크아이>는 기대 이하이 액션이라는 결정적 문제를 노출한다. 두 히어로의 특출 난 궁술 실력과 그에 준하는 격투 실력, 그리고 특수 화살의 다양한 기능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액션씬이 지나치게 비슷한 장면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트랙슈트 마피아를 다리 위나 주차장, 빙판 위로 모두 모아놓고 특수 화살의 효과를 이용해 다수의 적을 한 번에 처치하는 식의 장면이 연이어 등장하다 보니 드라마가 말미로 향할수록 액션신은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후반부에 캐릭터의 서사나 그들의 갈등이 갑자기 마무리되는 것도 단점이다. 특히 주인공 일행에 비해 다소 빈약하게 묘사되었던 빌런들의 이야기가 빈약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데어데블을 MCU로 합류시켰듯이 <호크아이>도 에코의 삼촌이자 넷플릭스 드라마 <데어데블>의 빌런이었던 킹핀을 등장시켰는데, 킹핀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퇴장하다 보니 그 의미가 퇴색되는 감이 있다. 다만 디즈니+에서 공개된 다른 마블 드라마들도 전반적으로 빈약하고 성급한 마무리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는 <호크아이>만의 문제로 보기도 애매하다. 그렇기에 MCU 작품이라는 한계만 감안할 수 있다면, <호크아이>는 여전히 그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깊이와 무게감 있는 이야기로 무장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A(Acceptable, 무난함)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캐릭터의 정체성과 서사에 깃든 힘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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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의 이반
공포의 이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1984년 4월, 미국 클리블랜드 세븐힐즈 마을에서 포드 공장에서 오래 일하고 퇴직한 한 백인 노동자가 경찰에 체포된다. 그의 이름은 존 뎀얀유크.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이었다.
그의 혐의는 나치 부역자이면서 전쟁범죄자, 유대인 수용소에서 학살을 실행한 살인자였다. 평온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이웃 주민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사람 좋고 이웃들과 잘 지내고, 공장에서도 동료들 사이의 평판이 좋고, 가족들에게도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였던 사람이 입에도 담기 어려운 잔인무도한 유대인 학살자라니.
1940년대 폴란드에는 독일이 만든 유대인 수용소가 여러 곳이 있었고, 이곳에서 무려 17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다. 그리고 뎀얀유크가 있었던 소비보르 수용소와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만 65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미국 사법부는 존 뎀얀유크의 전쟁범죄 가담에 대한 재판을 통해 유죄를 선고하고, 미국 추방령을 내린다. 미국 내부에서는 나치 전쟁범죄를 재판할 수 있는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추방령과 동시에 이스라엘에서 뎀얀유크를 전쟁범죄자로 체포했다.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게 된 뎀얀유크는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그가 확실한 '공포의 이반'이라고 주장했다. 생존자들이 말하는 '공포의 이반'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가 칼과 몽둥이로 유대인을 찔러죽이고, 때려죽이고, 온갖 악행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공포의 이반'으로 지목된 존 뎀얀유크는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 자신은 '공포의 이반'이 아니며, 잘못된 정보로 억울하게 잡혀온 피해자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에서 존 뎀얀유크를 변호해 줄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그 가운데 변호를 자처한 이스라엘 변호사 요람 셰프텔이 있었다.
존 뎀얀유크 사건은 1961년 같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과 비교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재판 참관과 그 결과를 책으로 엮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펴내면서 '악의 평범성'을 설파한 것으로 유명한 '아이히만 재판'은 확실한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1962년 5월 31일, 사형집행으로 전쟁범죄자를 처형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 자신이 직접 나치 전범 재판을 참관하고 싶다고 '뉴요커'에 요청했고, '뉴요커'가 받아들여 특파원 자격으로 이스라엘에서 머물며 재판을 참관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제목으로 재판 과정을 책으로 펴냈으며, 그 내용에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 즉, 아이히만은 독재, 관료주의 체제에서 상부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관료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 아이히만이라는 '개인'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은 특별한 인간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정체를 몰랐거나, 속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아이히만은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 나중에 다양한 증거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 즉, 아이히만은 히틀러 독재, 전체주의 체제에서 단순히 주어진 명령에 충실한 관료가 아니라, 그 자신이 유대인 말살에 확신을 갖고 실행한 확신범이라는 것,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믿었고,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를 절멸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했으며, 자발적, 능동적으로 학살을 지휘했다는 증거가 나타난다. 이동기 교수는 학살자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략)전체주의 체제든 아니든 독재와 억압은 단순히 지배 이데올로기나 관료제 또는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인식 전제다. 그것에는 지배 구조의 억압에 동참하는 행위자들의 능동적인 집단적 자기 형성의 과정이 항시 존재한다. 억압과 폭력의 가해자들 또는 가해 가담자들은 위로부터의 명령이나 관료제적 구조하에서 ‘선이냐 악이냐’ 식의 실존적 결단을 요구받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지배는 익명의 체제나 관료제적 기제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다. 지배는 항상 집단적 실천을 전제하고 폭력은 항상 구체적 가해자를 필요로 한다. 그 실천과 가해 행위는 대개 명령과 지시를 수동적으로 집행하는 이들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넘어 점차 자신의 일을 정확히 인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심지어 관료제나 위로부터의 명령을 초월하고 경계를 뛰어넘는 행위자들에 의해 더욱 광폭하게 이루어진다.(후략)
즉,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학살 행위를 하는 인간이 반드시 존재하며, 나치 학살자들이 바로 그런 신념을 가진 자들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존 뎀얀유크도 아이히만과 같은 인물이다. 존 뎀얀유크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그는 독일군 부대에 들어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인물이다.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생존자들은 존 뎀얀유크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모두 같은 증언을 했고, 재판 과정에서 존 뎀얀유크의 나치 당시 사진과 나이 들어서의 사진을 분석한 전문가의 견해, 쏘련에서 나온 2차 세계대전 당시 존 뎀얀유크의 신분증 원본, 미국 이민국에서 작성한 존 뎀얀유크의 인터뷰 내용 등 존 뎀얀유크가 '공포의 이반'이라는 증거는 충분했다.
하지만 존 뎀얀유크의 변호사 요람 셰프텔은 생존자 로젠베르크의 증언을 뒤집는 문서를 제출한다. 로젠베르크는 '공포의 이반'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가 저지른 만행을 고발했고, 그의 눈을 보고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지목한 사람이었는데, 1947년에 작성한 문서에서 1943년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 폭동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공포의 이반'이 살해당했다고 자필로 쓴 내용이 나온 것이다.
로젠베르크는 딜레마에 빠졌다. 증언대에서는 분명 존 뎀얀유크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지목했으나, 그가 1947년에 자필로 쓴 진술서에는 '공포의 이반'이 폭동의 와중에 살해당했다고 썼으니 말이다. 로젠베르크는 그 진술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쓴 것이며, '공포의 이반'이 살해되었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은 것이었다고 진술한다.
결국 1988년 4월 18일, 이스라엘 법원은 존 뎀얀유크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존 뎀얀유크와 변호사들은 즉각 항소하고, 그 사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이 역사적 사건으로 쏘련 KGB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비밀문서를 공개하는데, 존 뎀얀유크의 변호사 요람 셰프텔은 모스크바와 키에프를 다니며 KGB 담당자를 만나 트레블링카 수용소와 관련한 비밀문서를 받아낸다.
요람 셰프텔이 받은 비밀문서에는 트레블링카에서 유대인 학살에 부역했던 부역자들이 남긴 진술서가 많았는데, 그 진술서에 '공포의 이반'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그들의 진술에 의하면 '공포의 이반'과 존 뎀얀유크는 닮지 않았다. 요람 셰프텔은 이 문서를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했고, 1993년 7월, 항소법원은 존 뎀얀유크와 그의 변호사 주장을 받아들여 존 뎀얀유크를 석방한다.
이 항소심 재판의 문제점은, 검사 쪽에서 제출한 수많은 증거자료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존 뎀얀유크의 변호사가 제출한 나치 부역자들이 남긴 진술서를 증거로 받아들인 것이다. 즉, 나치 협력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생존한 유대인의 증언을 배척했다는 점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매우 무능했거나, '미국시민'을 사형시키는 것에 크게 부담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무려 8년을 끈 이 역사적 재판에서 존 뎀얀유크는 전쟁범죄 가담 여부와 상관 없이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 볼 수 없다는 판단으로 풀려난다. 이 재판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은 존 뎀얀유크의 변호사 요람 셰프텔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국민의 비난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유대인 학살자로 지목된 돈 뎀얀유크의 변호를 자처했고, 항소심에서 결국 무죄를 받으면서 크게 성공한다. 그는 변호사 수임료를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대략 50만달러 이상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하며, 이 재판과 관련한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큰 돈을 번다.
존 뎀얀유크는 미국으로 돌아와 평온한 일상을 보내지만, 미국 법무부는 그가 '공포의 이반'은 아닐지 모르지만, 독일 전쟁범죄,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증거는 확실하므로,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아닌, 독일 법정에 세울 계획을 세운다.
1999년 미국법무부와 이민국은 증거자료를 통해 존 뎀얀유크가 전쟁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독일로 추방한다. 그리고 2009년 독일 뮌헨 법정에서 전쟁범죄, 유대인 학살에 단순가담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는다. 존 뎀얀유크의 변호사는 항소를 결정하고, 존 뎀얀유크는 감옥에 가지 않고 법정에서 풀려난다.
그리고 2012년, 항소심이 열리기 전에 독일에서 사망한다. 항소심 판결이 나지 않았으므로 존 뎀얀유크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죄인 상태로 죽은 것이다.
미국에 전쟁범죄자가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서류가 1973년에 드러났는데, 미국 이민국은 나치, 나치부역자,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 미국으로 이민오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즉, 미국 정부가 독일의 전쟁범죄를 눈감아 준 것이다.
나치는 '반공주의자'라는 이유에서 미국 정부는 오히려 공산주의자와 투철하게 싸울 수 있다는 이유로 나치와 전쟁범죄자들의 이민을 묵인하고 허용했다. 존 뎀얀유크도 이민국 서류를 작성할 때, 자신이 소비보르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기록했고, 자기의 이름이 존 뎀얀유크이기도 하지만, 전쟁 당시에 '이반 마르첸코'라는 이름을 썼다고 자필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반 마르첸코'는 나치 협력자들이 모두 동일하게 진술한 기록에 '공포의 이반'이라는 자의 본명이었다. 즉, 존 뎀얀유크와 이반 마르첸코는 같은 인물인 것이다.
존 뎀얀유크는 확실하게 '이반 마르첸코'이며 '공포의 이반'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할아버지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존 뎀얀유크의 반인륜범죄를 부인하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결국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역사에 묻히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서 희생당한 유대인의 처참한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 참혹한 장면은 그러나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어떻게 저렇게 참혹하게 학살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절멸하겠다는 발상도 비현실적이지만,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나치의 만행은 문명사회라는 20세기를 순식간에 야만의 시대로 만들었다.
유대인이 독일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며, 세계 역사에서 뼈아프게 기록해야 할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세워 독립하면서 그들이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 국가에게 저지른 만행은 유대인의 고통에 연민과 동정을 갖던 마음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더 참혹하게 학살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힘을 갖게 되자, 약자를 짓밟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였던 유대인이 가해자로 탈바꿈하고, 자신들이 당했던 탄압과 학살을 그대로 팔레스타인에게 저지르는 착란적, 도착적 상태에 빠진 것이 마치 광기에 빠진 정신병자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엽기적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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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이 만들어낸 파장
인간은 늘 새로운 세상을 탐험해 왔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고 탐험하면서 주변에서 잘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파한다.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은 지구의 모든 지역을 구석구석 탐험하게 만들었다. 이제 지구상에 더 이상 미개척 지역이 남아있지 않으니 깊은 바다 속이나 지구 밖 같은 물리적으로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곳을 탐험하려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렇게 발전한 기술과 환경 속에 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탐험심 때문이다.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발현된 탐험심은 어떤 열악한 조건에서도 계속 발휘되어 왔다.
애플티비+에 업데이트된 시리즈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은 인간의 호기심이 공동체에 주는 파장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시리즈가 전하는 메시지나 이야기 전개는 무척 흥미진진하다. 이 시리즈는 휴 하위 작가의 책인 <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택하고 있는 이 시리즈의 지구는 황폐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알려져 있다고 쓴 것은 이 시리즈 안에서는 지구 외부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호기심이 공동체에 주는 파장
그러니까 지금 현재 지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등장하는 사일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지하 벙커인 사일로에서 생활하고 있다. 꽤 깊숙한 지하까지 만들어져 있는 사일로에는 각 층마다 꽤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저층일수록 조금 더 낮은 계급이 살아가는 듯한 분위기여서 마치 설국열차를 세로로 세워 땅에다 심어 놓은듯한 느낌도 준다. 각 층의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일을 하고 설국열차만큼의 심각한 계급 차별은 없지만 그래도 저층에는 노동을 많이 하는 노동자 층이 살고 있다.
사일로에는 규칙이 있다. 밖으로 나갈 수 없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인지되어 사일로의 외부로 추방당한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을 살고 지상과 가장 가까운 층에서 외부 카메라로 보이는 지상의 모습을 간간히 보면서 호기심을 달랠 뿐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사일로의 비밀과 외부의 환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시리즈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건 상부층의 보안관들이다. 사일로 전체의 치안과 보안을 담당하는 보안관은 총 2명이다. 초반에는 이 두 사람이 극을 이끌어가는데 특히 흑인 보안관인 홀스턴(데이비드 오예로워)이 초반 중심인물이 된다. 홀스턴과 아내 앨리슨(라시다 존스)과 아이를 낳기 위해 앨리슨 몸에 넣은 피임기구를 제거하고 임신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비밀이 쌓여있는 지하창고 사일로와 외부 환경
몇 개월이 지난 후 앨리슨은 우연히 한 프로그래머를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사일로라는 시스템에 대한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에 앨리슨은 사일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사일로 운영국에 의해 추방을 당하게 된다. 앨리슨이 밖으로 나가는 과정은 최상층 외부 카메라를 볼 수 있는 화면으로 사일로 구성원이 모두 볼 수 있으며, 외부로 나간 인물이 쓰러질 때까지 상황은 그대로 중계된다.
이 시리즈가 흥미로운 건 이렇게 앨리슨으로부터 시작된 호기심이 사라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앨리슨의 호기심은 남편 홀스턴에게 옮겨가 그 역시 앨리슨이 어떤 것을 보고 들었는지를 수사하게 되고 최하층의 줄리엣(레베카 퍼거슨)을 만나게 만든다. 줄리엣도 처음엔 사일로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호기심은 줄리엣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두 번째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홀스턴은 아내가 나갔던 것처럼 사일로를 나가기로 결정하고 결국 아내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사일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홀스턴은 자신의 보안관 후임으로 최하층의 줄리엣을 지목한다. 그렇게 시리즈의 중심축은 줄리엣으로 완전히 넘어간다. 줄리엣의 전 남자친구도 사일로의 비밀과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던 인물이었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래서 줄리엣은 홀스턴의 후임역할을 하기로 결정한다.
최하층이 최상층으로 올라와 사일로의 비밀을 파헤치는 줄리엣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는 관객들도 사일로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게 된다. 줄리엣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꽤 많은 중심인물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줄리엣이 최상층으로 올라오면서부터는 그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홀랜드(팀 로빈스)나 심스(커먼) 같은 인물들은 사일로 전반을 통제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이들은 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사일로의 역사에 대한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을 감시하면서까지 극도로 안정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줄리엣의 등장으로 그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된다.
지극히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을 흔들어놓는 줄리엣의 질문
이 시리즈는 계급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사일로는 왜 만들어졌는가'와 '밖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궁극적으로 중심인물인 줄리엣이 찾아가는 진실이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사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어떤 시스템의 비밀을 파헤친다고 했을 때,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그 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 마치 내부 고발자처럼 줄리엣은 모든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스템을 관리하는 홀랜드와 심스의 입장에서는 그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크게 혼란스럽게 하는 범죄와 같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줄리엣은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주의자 성향이라고 한다면, 홀랜드와 심스는 안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수주의자 성향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 속 진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시리즈 내내 시종일관 안정과 진실은 서로 밀고 밀리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시리즈는 줄리엣의 뒤를 주로 따라가기 때문에 관객들은 진실을 더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생각이 바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 진실이 과연 사일로 속에 구성된 사회 시스템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여전히 지상이 살지 못할 공간이라면 그것을 밝힌다고 했을 때 시스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반대로 지상이 살 수 있는 공간이라면 사일로에 구축된 시스템 속 사람들은 외부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시리즈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은 이렇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야말로 인간이 가진 호기심에서 파생된 일들이 과연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미스터리가 깔려있다. 사일로를 만들어 놓은 조상은 사일로의 역사가 구조, 설계나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렇게 텅 비어있는 과거 때문에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잘 발현시킨다. 이야기 속 줄리엣이 그 중심에 있으며 관객이 그 바로 뒤에 서있다.
총 10편으로 구성된 시즌1을 모두 보고 나면 더 큰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레베카 퍼거슨을 비롯해 팀 로빈스, 커먼 같은 배우들의 열연이 이 이야기에 더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이 시리즈는 시즌2 제작이 이미 확정되었다. 주연인 레베카 퍼거슨이 직접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이 시즌 2에서 어떤 비밀을 더 풀어놓게 될지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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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DUNE)' 영화 예고편 분석 및 원작소설 / 스토리 요약정리
-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듄 #듄영화예고편 #듄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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