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2023-01-04 15:57:16
지니의 존재와 질문, <3000년의 기다림>
이 영화를 보고 난 당신의 세 가지 소원은?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달한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가 우연히 소원을 이뤄주는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를 깨워낸다.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세 번.
영화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때때로 매우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내용을 전할 때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영화 또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야기가 내용 전달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서술자는 익숙한 내용을 재밌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도 한다.

<3000년의 기다림>은 알리테아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통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지니는 표면적으로 알리테아의 ‘소원’을 묻지만 이를 통해 상대방의 ‘갈망'을 알아낼 수 있다. 반대로 알리테아는 지니의 이야기들을 통해 지니의 갈망을 느낀다. 알리테아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갈망을 포기했던 지니의 이야기에 사랑과 갈망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사랑으로 자신의 갈망 덮었던 알리테아는 사랑으로 인해 상대방의 갈망을 지켜주는 선택을 한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스웨덴의 공포영화 <렛 미 인>이 떠오른다. 알리테아는 마법과 같이 정령 지니를 만나게 되지만 이는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 상상력이 풍부한 알리테아가 들려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알리테아는 지니를 처음 만나고 자신의 상상친구였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달했지만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알리테아에게 지니가 들려주는 3000년의 이야기는 이미 알리테아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의 재구성 또는 재기억이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알리테아는 지니와의 대담을 통해 자신의 사랑, 갈망, 삶, 죽음 그리고 시간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알아가는 과정을 가졌다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세 가지 소원, 예전부터 많이 들어온 소재이지만 영화를 보기 전 떠올렸던 세 가지 소원과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세 가지 소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이 영화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오랜만에 잔뜩 기대를 했고 그 기대에 한 치의 부족함 없이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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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다시 보고 싶은 영화 5편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은 날이죠.
오늘 씨네랩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를 5편을 뽑아봤습니다.
따뜻해지는 날씨와 함께 냉소를 녹일 따뜻함이 가득한 영화 5편, 지금 만나보시죠!
코코 (2018)
Cocoⓒ 네이버 영화
감독: 리 언크리치
출연: 안소니 곤잘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벤자민 브랫
장르: 애니메이션, 모험, 코미디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황홀한 모험이 시작된다!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 미구엘은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의 기타에 손을 댔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의문의 사나이 헥터와 함께 상상조차 못했던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데… 과연 ‘죽은 자들의 세상’에 숨겨진 비밀은?ⓒ 네이버 영화
'죽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관람객 코멘트 왓챠피디아 c***님
패밀리 맨 (2000)
The Family Man
ⓒ 네이버 영화
감독: 브렛 라트너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티아 레오니, 돈 치들
장르: 코미디/판타지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4분
니콜라스 케이지의 감동 판타지 코미디
월스트리트를 주무르는 최고의 실업가 잭 캠벨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일로만 보낸 후 잠이 든다. 그러나 잠에서 깬 그의 곁에는 13년 전 야망을 위해 헤어졌던 애인 케이트가 누워 있고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뉴저지 타이어 가게의 영업사원이 돼 있다. 하루 아침, 그의 다른 삶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네이버 영화
'가장 평범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임을 보여주는 영화.'
관람객 코멘트 네이버 qjsd****님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2012)
We Bought a Zoo
ⓒ 네이버 영화
감독: 카메론 크로우
출연: 맷 데이먼, 스칼렛 요한슨, 엘르 패닝, 패트릭 후짓
장르: 가족/드라마/코미디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24분
용기와 희망 속에서 건네는 삶, 가족의 의미
모험심 강하고 열정적인 칼럼니스트이자 두 아이들의 아버지 벤자민 미(맷 데이먼)!
최근,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사를 결정하고,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집엔 무려 250여 마리의 리얼 야생 동물들이 사는 폐장 직전의 동물원이 딸려 있는 것!
동물원의 ‘동’자도 모르는 벤자민은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서 동물원을 사기로 결심한다.ⓒ 네이버 영화
'이 영화를 왜 5점을 주는가라고 묻는다면 "Why not?"이라 대답할수 잇을것이다.'
관람객 코멘트 왓챠피디아 김광*님
행복을 찾아서 (2007)
The Pursuit of Happynessⓒ 네이버 영화
감독: 가브리엘 무치노
출연: 윌 스미스, 제이든 스미스
장르: 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절망 속에서 살아남은 희망, 그리고 용기, 전 세계를 울린 기적 같은 감동 실화!
하나뿐인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를 위해서라면 살아남아야 하는 그에게 인생 마지막 기회가 다가온다.6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 속에서 반드시 행복해져야 하는 그의 절실한 도전이 시작되는데…ⓒ 네이버 영화
'행복한 꿈을 망상이 아닌 현실로 이어주는 절실함과 부성애'
관람객 코멘트 씨네랩 모모**님
집으로 (2002)
The Way Homeⓒ 네이버 영화
감독: 이정향
출연: 김을분, 유승호
장르: 가족/드라마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87분
이 땅의 모든 할머니께 바칩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손주 ‘상우’예요”
도시에 사는 7살 개구쟁이 ‘상우’가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집에 머물게 된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와의 시골살이… ‘상우’ 인생 최초의 시련은 과연 최고의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네이버 영화
'가장 한국적인 영화, 가장 한국인의 눈물과 닮은 가족영화'
관람객 코멘트 네이버 ohju****일상적인 것이 때론 가장 그립고 소중하듯,
올해 5월은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여운이 가득한 영화를 함께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GONI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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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 2022)
“당황스럽지만 결국 빨려들게 되는 그들의 우주”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액션, 판타지, 모험
러닝타임 : 126분
감독 : 샘 레이미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베네딕트 웡, 레이첼 맥아담스, 치웨텔 에지오프, 소치틀 고메즈
개인적인 평점 : 3.5/5
쿠키 영상 : 2개 (엔딩 크레딧 중간에 1개, 엔딩크레딧 후 1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줄거리
끝없이 균열되는 차원과 뒤엉킨 시공간의 멀티버스가 열리며 오랜 동료들, 그리고 차원을 넘어 들어온 새로운 존재들을 맞닥뜨리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 속, 그는 예상치 못한 극한의 적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타임라인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뉴욕에 남아있던 스티븐(닥터 스트레인지)은 전 연인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다. 스티븐은 아직 크리스틴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남아있지만 크리스틴의 “행복하지?”라는 질문에 애써 괜찮은척, 행복한 척을 해 보인다. 그가 아주 지독한 후회를 느끼고 있는 찰나, 포탈이 열리며 괴물과 함께 멀티버스의 키를 쥐고 있는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가 등장한다. 차베즈와 대화를 나눠본 결과, 여러 우주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걸 알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 중 가장 유능한 마법사였던 완다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여러 우주를 떠돌게 된다.
작년 12월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렸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개봉 이후 5달 만에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했다. 제목부터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멀티버스를 팔 거야!”라고 선언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혼란스러운 멀티버스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며 이 캐릭터들을 더 사랑하게 됐고, 2시간 동안 아주 즐겁게 즐겼다. 영화 안에 이것저것 차려진 메뉴가 참 많아 음미하기에 바빴다. 근데 정리가 덜된 밥상을 마음껏 즐기려다 보니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다운 눈호강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했을 때, 새로운 유형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에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스티븐의 능력과 서사, 베네딕트 컴버배치 배우가 뿜어내는 매력.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영화가 보여준 웅장한 시각적 효과, 흔히 말하는 눈뽕! 그 눈뽕에 머리가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멀티버스’라는 키워드보다는 스티븐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이번엔 어떤 공간들을 보여줄지가 가장 기대됐다. <노 웨이 홈>에서도 스티븐이 만들어낸 공간을 볼 수 있었지만 다소 어색한 CG에 실망했던지라.. 그래도, 이번엔 닥터 스트레인지의 2번째 솔로 영화인데! 괜찮겠지!! 하며 희망 회로를 불타게 돌렸다. 그리고 희망 회로를 불태운 만큼 이 영화는 내가 만족할만한 퀄리티의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다. 첫 관람은 꼭 왕왕 큰 용아맥에서!!를 외친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캐릭터의 색을 잘 살린 디자인과 다양한 우주의 모습, 반사의 활용, 영화의 메인 컬러 빨간색을 잘 활용해 시각적인 공포를 높인 부분, 역동적임과 동시에 긴장감을 높여주는 화면 연출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껏 본적 없는 어둡고 잔인한 마블 영화
마블 영화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이 봐도 괜찮은 영화, 슈퍼히어로 영화. 많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마블의 이미지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좀 다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배우들이 ‘새로운 마블 영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라고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고, 예고편을 봐도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듯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매우 어두운 톤을 갖고 있는 영화다.
분위기가 전보다 진중해지기도 했고, 어둡고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꽤 많다. B급 공포 영화의 명인으로 불리는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역동적인 화면과 ‘마블 영화’라는 틀을 깨며 가감 없이 집어넣은 점프 스퀘어, 다소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처와 액션 신들, 좀비물처럼 느껴지는 요소들도 꽤 많기에 ‘아이들과 함께 보는 마블 영화’라는 이미지는 잠깐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블 영화’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색을 지켜낸 샘 레이미 감독의 능력에 감탄했다. 모 영화 같은 경우엔 마블 영화지만 너무 자신의 색을 지키는 바람에 말아먹은 경우도 있었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지키며 감독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마블 영화로 이런 걸 한다고?
영화 개봉 전 공개된 홍보 영상 속, 샘 레이미 감독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 정말 멋있다!’고 느꼈으면 한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 이 영화 정말 멋있다!’ 150번도 더 말해 드릴 수 있다.
영화의 개봉일이 어린이날 전날이어서 그런지 ‘어린이날을 노리고 개봉한 마블 영화’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예고편을 안 보고 그 어린이날 연휴 개봉이 주는 느낌에 속은(?) 관객들이 꽤 많은 듯 보인다. 추가로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생각하고 간다면 꽤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블이라고 이런 걸 안 하고 못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인간적인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전에 개봉했던 <블랙 위도우>와 <노 웨이 홈>처럼 꽤나 인간적인 영화였다. 개인적으론 <엔드게임> 이후로 마블이 1대 히어로들의 상처를 하나둘 내놓고, 그것을 회복시키며 이들의 은퇴 수순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블랙 위도우>, <노 웨이 홈>, <호크아이>, 그리고 최근 예고편을 공개한 <토르: 러브 앤 썬더>와 이 영화까지. 커다란 전투를 마친 히어로들의 내면에 남은 아픔과 미련을 툭 까놓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안정감을 쥐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강인한 히어로여도 이들도 사람이기에 상처를 받고, 사랑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스티븐의 경우는 능력을 얻고 칼자루를 쥐게 된 이후 연인 크리스틴과 헤어지게 됐고, 완다는 원치 않는 능력을 얻은 후 전투를 치르다 오빠 퀵실버와 연인 비전을 잃는다. 어디에도 풀어놓을 수 없었던 이들의 슬픔과 분노는 멀티버스의 문을 열게 되고, 스티븐과 완다는 멀티버스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깨우침을 얻는다.
사랑하는 모든 걸 잃은 완다, 어벤져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언제나 이성적으로 결정을 해야 했던 스티븐. 큰 힘을 가졌기에 많은걸 희생한, 아픈 손가락이었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 나와 세상과 자신을 구해가는 과정이 개인적으론 다소 안쓰럽고 슬프기도 했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멀티버스를 꿰뚫는 단 하나의 키워드 ‘사랑’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티븐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이별했고, 완다는 사랑을 지키지 못해 결국 악에 현혹된다. 얻지 못한 사랑을 마무리 짓기 위해 시작된 멀티버스 이야기는 돌고 돌다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 스티븐은 깨진 시계의 알판을 고치며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완다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또 다른 완다를 통해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희생하며 상황을 정리한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지켜주기도 하고, 위로해주기도 한다. 각자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조금씩 다른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들을 한 번에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노 웨이 홈>에서 앤드류의 피터 파커가 그러했듯 스티븐 또한 또 다른 우주를 통해 사랑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위로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닥터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아쉬웠던 점
영화 자체는 정말 재밌었고, 타고난 과몰입러로서 온갖 감정을 다 동원하며 감상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다. 개인적으론 완다를 100%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차베즈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며 다른 우주에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이 그저 ‘작은 보너스’ 같은 느낌으로 반짝 빛났다 사라지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완다 비전>을 본 관객이라면 완다가 왜 다크홀드에 손을 댔는지, 왜 드림 워킹을 하게됐는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겠지만, <완다 비전>을 보지 않고 영화 속 완다의 설명만 들은 관객이라면 그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급발진을 한 빌런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완다의 마지막이 상당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멀티버스 속 완다와 협력을 하는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사실상 완다는 은퇴 수순을 밟게 될 텐데 이 캐릭터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 게 못내 아쉬웠다. 매번 아픈 모습만 보였던 캐릭터인데 해방의 절차도 이렇게 어렵고 가슴 아프게 만들어버리다니… 속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멀티버스의 문을 여는 새로운 능력자 차베즈는 배우의 매력, 서사와는 별개로 별다른 반짝임이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제 첫 등장이기도 하고, 멀티버스가 확장되며 차후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갈수도 있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깜짝 등장한 캐릭터들은, 긴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에 프로페서가?!’하고 놀랐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쳐갔을 뿐… 아, ‘너를 믿는다’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하나 남기긴 했다…
최근 마블 영화를 보며 느낀 아쉬움들
마블이라는 프랜차이즈는 가히 독보적이고 거대하다. 마블 이전에도 마블 이후에도 여러 히어로 영화들이 제작되었지만 마블의 히어로들과 이들의 세계관을 이길 프랜차이즈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나 DC 히어로 같은 크고 훌륭한 다른 히어로 프랜차이즈도 존재하지만 대중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온 곳은 마블이 아닌가. 마블은 마블만의 영화를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관객들의 취향, 극장가의 풍경이 함께 바뀌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런 히어로 영화를 유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이들의 거대한 자본력과 제작 형태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마블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거나 무조건적인 흥행 공식을 따르고 있는 건 팩트니까). 전세계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는 프랜차이즈인 만큼 마블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다양하다. 실제로 2019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마블은 시네마가 아닌 테마파크에 가깝다.”는 한 마디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국내 팬들이 바라보는 마블의 이미지 또한 가지각색이다.
이번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퇴장로에서 들은 이야기와 개봉 전, 후 SNS의 반응을 보면… 최근 마블의 이미지가 꽤 하락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불만들은 크게 <엔드게임> 이후 은퇴한 캐릭터들에 대한 아쉬움 / 예, 복습에 대한 부담 / 개연성의 실종, 캐릭터들의 매력 부재 등이 있다. <엔드게임> 이후 1세대 히어로들의 은퇴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치고 다른 아쉬움들을 짧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마블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랜차이즈이다 보니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한다 해도 이전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상태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되었고, 그 부담은 배로 늘어났다. 이번 영화만 해도 꼭 <완다 비전>을 봐야한다, <로키>, <왓이프>도 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디즈니 플러스 역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 전, 디즈니 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을 만나보라며 광고를 하기도 했다.
다른 시리즈를 모르면 새로운 영화도 온전히 즐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를 공부하고 가야 하다니. 상당히 부담스럽고 피곤한 상황이다. 물론 실제로 ‘이걸 안 보면 이해 못 함!’ 정도의 상황이 나오지 않도록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긴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다음에도 디즈니 플러스 예, 복습에 신경 써야 할지… 걱정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재밌게 즐길 순 있지만 ‘알고 가야 더 보이는 영화’라고 한다면, 결국 이전 것들을 보지 않으면 100% 즐길 수 없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다 정말 ‘고인물들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는 건 아닐까?
오래된 프랜차이즈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감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커다란 세계관 안에서 뛰노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사이의 구분은 지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계속 이렇게 장벽을 높여간다면 자칭 덕후가 아닌 사람은 더 이상의 접근을 피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그리고 최근 들어 느낀 가장 큰 아쉬움은 개연성의 실종이다. 활활 타오르는 덕심을 잠깐 내려놓고 말하자면, 영화는 분명 재미는 있는데… 가끔 개연성을 잃는다. 지금은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왜 이건 이유를 말 안 해주지?”라는 질문이 떠올라도 배우들을 보며 어느 정도 흐린 눈을 하고 있지만 이 흐린 눈 필터를 언제까지 장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쉬워도 다시 티켓을 끊게 되는 테마파크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들도 있고, 어떤 영화는 나를 크게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분간 이 환상적인 테마파크 안에 머물 것 같다. 적어도 오래 함께해온 1세대 히어로들이 남아있는 한은 말이다. 이만큼 나를 즐겁고 슬프고 설레게 하는 프랜차이즈가, 이렇게 성공한 테마 파크가 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쉽고 저래서 아쉽다고 말하면서도 토르가 개봉하면 당장 달려갈 내 모습이 벌써 눈에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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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은 아니지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를 좀 더 깊게 감상하려면, 이 영화를 두 계보의 연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구파도의 필모그래피다. 그는 청춘의 질감을 포착할 줄 아는 감독이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그가 각본을 쓴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는, 첫사랑의 경험을 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하 로코물) 특유의 장르적 문법과 결합한 영화다. 한편, B급 괴수물 〈몬몬몬 몬스터〉는 전혀 다른 느낌의 청춘물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로코물 주인공과는 정반대에 있는 ‘왕따’ 학생으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상처만 받은 청춘이다. 요컨대, 구파도는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혹은 가장 참혹한 순간을 (로코물이든 괴수물이든) 장르적으로 풀어내는 데 재능이 보여온 감독이다.
구파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계보는 장르 영화의 문법, 그중에서도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 보다 집중했을 때 드러난다.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비롯해, 프렝키 첸 감독의 〈나의 소녀시대〉, 〈장난스런 키스〉 등은 국내에서 꽤 관심을 받은 영화들이다.
대만 로코물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로코물이 더 이상 주류 장르가 아니라는 상황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로코물의 ‘위기’는 로코물의 주 소비층이었던 2030 여성이 페미니즘 의식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애 사랑을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로코물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로코물이 소소한 화제는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신드롬을 일으킬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만 로코물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주류가 될 순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소비층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로서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로코물의 시대적 위기와 이를 돌파해내는 방식은 영화 내부의 표현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여름날 우리〉를 비롯한 대만 로코물뿐만 아니라 한국의 로코물(〈피끓는 청춘〉, 〈너의 결혼식〉 등) 역시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로코물은 아니지만 화제를 모았던 대만 멜로 영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국의 〈건축학 개론〉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다루는 이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 과거인 이유는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 대만에서는 90년대 초반에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사람들의 관심은 ‘체제’, ‘정의’와 같은 거창한 것들에서 일상으로 옮겨왔다. 사랑은 일상의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하게끔 해주는 최상의 소재다. 즉, 퍽퍽한 삶을 영위하기 바빠 사랑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시대적 조건과 맞물려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소비함으로써, 과거의 아름다움을 척박한 현재로 연장시키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 영화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돌아와 보자. 이 영화는 귀신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첫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두 계보(청춘 영화‧로코물)의 연장에 있다. 하지만 결이 조금 다른 지점도 있다. 이 영화는 대만 로코물의 문법을 ‘위반’한다. 기존 대만 로코물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연출로 사랑을 판타지‘처럼’ 그려낸 데 반해,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함으로써 대만 로코물의 장르적 성취를 스스로 허물어버린다. 사람들이 대만 로코물에 기대하는 건 이제 더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랑을 ‘현실’에서 펼친다는 점인데, 영화의 무대를 아예 판타지로 바꿔버림으로써 대만 로코물 특유의 ‘비현실적 현실감’이 사라진 것이다. 사랑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있을 때는 성취 가능한 것처럼 보여 몰입할 수 있지만, 아예 판타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면 오히려 공허한 현실을 환기해버리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요컨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패착은 판타지‘같은’ 영화를 바라던 관객에게 ‘대놓고’ 판타지를 표방했다는 데 있다. 저승세계의 시각적 구현과 저승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다 보니 대만 로코물의 기본이 훼손된 것이다. 이 영화는 ‘창조적 파괴’라기에는 저승세계의 비주얼과 역할이 어딘가 밋밋하고, 대만 로코물의 문법에서도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문법의 파괴가 언제나 혁신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싶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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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마시고 떠나라…하나가 될 테니
왓챠 오리지널 예능 <조인 마이 테이블>(6부작)에는 만나서 주로 먹고 마시고 구경하고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게 전부인데 예사롭지 않다. 그 발걸음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우리 사회에 가려져 있는 다양한 국가의 이웃과 가족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다.
이주민들은 대한민국의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은 왜 한국에 정착하게 됐을까. 대학 사제 간인 이금희 아나운서와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 등의 책을 쓴 박상영 작가가 진행자이자 관찰자로 나섰다. 이주민들이 각자 한국에 오게 된 사연, 자신들의 인생 음식을 담은 초대장을 받은 둘은 해당 이주민이 사는 지역을 여행하고 음식을 맛본다.
1화는 예멘 난민으로 2018년 제주에 정착한 이스마일씨가 주인공. 그는 이주민가정지원센터에서 난민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고향의 맛이 그리울 때는 예멘 식당에서 파흐샤(양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찌개)를 먹는다. 이스마일의 초대장을 받은 둘은 제주 무사책방에서 만나 여행을 시작한다.
그저 걷고 보는 여행이 아니다. 둘은 방문한 지역의 역사성을 짚어내며 동시에 이주민의 고향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눈다. 커피하우스에서 예멘 커피를 마시면서 2018년 자국 내전 때문에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온 이야기를 꺼낸다. 박 작가가 "(예멘이) 단지 아랍국가라는 정보만 있으니까… 특히 예멘에 대해 사람들이 격렬했던 반응은 잘 몰라서, 우리가 아랍에 가진 선입견이나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컸던 것 같다"고 하자 이 아나운서는 "두렵기 때문에 배타적으로, 인간의 최우선적 목표는 생명과 안전이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당시 예멘 난민에 대해 환영하는 의견도 컸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배타적인 시선도 많이 있었다. 둘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또 당시 예멘인들이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 논란이 된 일을 박 작가는 "난민에게 정보만큼 중요한 게 없다. 무전기처럼 생명줄인 것"이라고 잡아준다. 팩트체킹인 셈이다.
온평리 포구를 거닐면서는 제주 고, 양, 부씨의 시조인 삼신과 바다 너머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의 혼인 실화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이 아나운서가 "국제결혼의 시초?"라고 하자 박 작가는 "사실은 이미 우리 가정들이 다문화 가정"이라며 "(자신의) 충청도 어머니와 경상도 아버지가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다. (둘은) 같은 문화권이라고 볼 수 없다"라며 웃는다.
바로 여기에 <조인 마이 테이블>이 지향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태초에 인류가 탄생했을 때부터 수 없는 교류를 하고 만남을 주고받은 우리들이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국가와 피부색과 언어와 생각은 다르더라도 우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을. 그렇기에 국가 경계 너머의 누군가를 단순한 몇 갈래의 시선과 선으로 감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진짜 중요한 건 서로 존중해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포용력이라는 것을 이 예능은 조용히 역설한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몇 가지의 뉴스와 사건들로만 비쳤을 이주민들의 진짜 이야기가 이 예능을 통해 빛을 낸다.
2화에서는 박 작가가 국내 최대 이주민 밀집 지역인 안산에서 다양한 외국어 간판이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글로벌에 와 있네요"라고 말한다. 3화에서는 이 아나운서가 BTS(방탄소년단)가 미국에서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한국어로 한 사실을 전하며 "미국 본토잖아. 미국 사람들이 주로 (방송을) 보는 건데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거야. 이제는 그런 시대인 거지"라고 한다. 세심한 관찰로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미 섞여 있었다.자칫 다큐멘터리처럼만 흘러갈 수 있었던 이 예능의 균형을 잡아주는 건 맛있는 음식 덕택이다. 보글보글 뚝배기에서 끓는 파흐샤, 프라이팬 기름에 척척 볶아진 나시고랭(동남아식 볶음밥),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서 몇 시간이나 푹 구워진 바비큐의 탐나는 비주얼과 침 고이게 하는 사운드는 이 예능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1화에서 파흐샤를 먹던 이 아나운서는 방송 끝에 이렇게 말한다. "평화는 다른 게 아니고 음식이고 사랑이야. 음식하고 사랑만 있으면 평화야" 딱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모두에게 필요한 감수성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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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
모든 존재는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주 품곤 한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모호한 문제다. 때로는 그 질문을 깊게 고민하면서 존재론적인 문제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론 이 고민이 답답하고 불편해 외부로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런 고민들은 철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뚜렷한 답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그저 삶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르는 의문들을 마주할 뿐이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순간들은 특별히 예측할 수 없다. 연애, 결혼, 아이의 탄생,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의 사이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죽음은 삶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그 자체로 큰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삶의 고통과 죽음을 연결해 우울함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춘기는 이러한 생각들이 더욱 예민해지는 시기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더욱 깊어지고, 많은 청소년들이 불안과 혼란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성장의 시기에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 깊어진다. 청소년들은 자주 자신이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철저히 질문하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동반하는데, 이 혼란을 잘 견뎌내는 것만이 삶의 복잡성을 받아들이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인 화두로 등장한다.
[첫번째 감정] 리디아의 혼란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는 삶 전체가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녀는 과거 <비틀쥬스> 1편에서 이미 사춘기를 겪으며 죽음을 동경하던 청소년이었다. 당시 리디아는 세상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과 죽음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죽음 이후에도 일종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리디아는 죽음이 곧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지며, 죽은 사람들조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리디아는 죽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삶의 불편함과 혼란스러움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죽음이 곧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리디아는 죽음을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틀쥬스(마이클 키튼)라는 혼돈의 존재와 마주하면서, 실제로 죽음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 역시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죽음도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1편에서 리디아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힘을 얻었다.
이번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리디아는 중년이 되어 등장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리디아는 사춘기 시절과는 또 다른 혼란에 직면한다.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와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으며, 결혼 생활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그녀는 여전히 삶의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 리디아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의문들을 다시 꺼내어 묻는다. 이번에도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딸에게 자신이 겪었던 혼란을 물려주고 싶지 않지만, 딸은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그들 사이의 소통은 단절된다. 어쩌면 리디아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혼란과 방황을 겪고, 그 답을 찾으려 애썼으니까.
[두번째 감정] 아스트리드의 혼란
리디아의 딸 아스트리드 또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 어머니와의 소통 문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겹쳐 그녀는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낀다. 아스트리드는 어머니처럼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는 그녀가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스트리드는 죽음이란 것이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가족의 죽음, 특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며 겪는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아스트리드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팀 버튼의 세계관에서는 죽음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처럼 묘사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일 뿐이며, 죽음 자체는 슬픔의 대상이 아니다. 아스트리드는 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결국 어머니 리디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스트리드가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 곁에 늘 있었음을 깨닫고,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죽음은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묘사된다. 팀 버튼이 창조한 이 세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하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조차 비극으로 다뤄지지 않으며, 그저 일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이는 죽음이 곧 삶의 일부이며, 둘은 별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번째 감정] 비틀쥬스의 혼란
비틀쥬스는 그 자체로 혼란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그의 존재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비틀쥬스는 스스로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가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 소환된다는 것이다. 이는 혼란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누군가에 의해 촉발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리디아나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이 결국 비틀쥬스를 소환하게 된다는 설정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혼란이 결국 외부의 영향과 내부의 불안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방식과 유사하다.
비틀쥬스는 단순히 악당이나 장난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혼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그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혼란은 마치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도 같다. 비틀쥬스는 우리가 직면한 혼돈을 극대화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인물들처럼, 관객들 또한 그 혼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팀 버튼 감독은 독특한 상상력과 기괴한 미학으로 유명하다. <비틀쥬스> 1편은 80년대 당시에도 파격적인 연출로 주목을 받았고, 이번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그 후속편으로서 팀 버튼다운 세계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그가 30년 만에 이 시리즈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한 번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1편이 내포했던 혼란과 유머, 그리고 기괴함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2편에서는 중년의 리디아를 통해 성숙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을 잘 전달한다. 위노나 라이더는 리디아로서의 혼란과 방황을 탁월하게 표현했고, 제나 오르테가는 신세대 캐릭터인 아스트리드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삶과 죽음을 탐구한다. 비틀쥬스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 역시 특유의 괴짜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의 혼란스러운 본질을 완벽하게 살려낸다.
결국 이 영화는 혼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영화 속 리디아나 아스트리드는 자신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따뜻함과 사랑을 영화 말미에서야 발견한다. 그것이 곧 삶의 의미이자 살아가야할 이유다. 또한 영화의 맨 마지막, 리디아의 새엄마인 딜리아(캐서린 오하라)이 죽음 이후 아무렇지 않게 저 세상 열차를 타는 모습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3QpAc6i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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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로즈
#클로즈
감독_루카스 돈트,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목 끝까지 잠겨오던 서러움을 애써 삼키다 결국 터뜨리고야마는 울음엔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섞여있는가. 어느 날, 문득 닥쳐온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진작에야 꺼냈어야하는 말들은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당사자의 가슴속에 침전해버린다.
감독은 “다정함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 다정함의 상실이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10대 시절 꼭 붙어다니던 두 소년 레오와 레미. 둘은 점차 멀어지게 되고, 결국엔 어느 것 하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잃게 되는 것, 잃어버리고야 마는 것. 레오와 레미의 우정이, 사랑이,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무너지는 과정이 마음 아팠다. 그 시절에 존재하던 다정함이 이제는 무형의 것이 되었기에. 레오가 꽃냄새 자욱한 벌판을 뛰어다니다가 뒤를 돌아봐도, 레미는 그곳에 없을 것이기에.
두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던 영화. 눈빛에 담긴 섬세한 감정선이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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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묘 - 굿판을 깔아준 베테랑 선배들과 칼춤을 추는 젊은 천재 후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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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내에 이도현 배우가 맡은 배역(봉길)의 이름을 '봉림'이라고 잘못 표기해둔 부분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더 유의하여 영상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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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세계 - 아름다움과 아픔이 비례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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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한 남자가 출소했다. 그가 본 세상은...
13년간 감옥에 복역 중이던 전직 야쿠자 미카미는 새로운 각오를 품고 출소한다.
변해버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매번 트러블을 일으키지만
주변 이웃들의 작은 관심과 애정으로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자신의 갱생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어 하는 진지한 청년과도 만난다.
하지만 13년이라는 시간의 공백과 범죄자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정상이라 말하는 이 세상은 자신이 소중히 지켜온 것마저 버리게 만들어 버린다.
이 세상은 과연 그가 꿈꾸던 멋진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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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리뷰 예고편
20세기 초 프랑스에 위치한 오래된 가상의 도시 블라제
다양한 사건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미국 매거진 ‘프렌치 디스패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편집장의 죽음으로
최정예 저널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마지막 발행본에 실을 4개의 특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당신을 매료시킬
마지막 기사가 지금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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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메인 예고편
2025년을 열 최고의 판타지 로맨스 [말할 수 없는 비밀]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