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9-04 14:40:07
9월 1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데이비드 핀처 서부극 범죄 스릴러 <비터루트> 연출
핀처 감독은 최근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했으며,
<비터루트> 외에도 오징어게임 리메이크 <스퀴드 게임: 아메리카>와 <차이나타운> 스핀오프 시리즈 등 다른 여러 프로젝트들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핀처 감독 몸이 10개인가요?
9월 첫째주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엔야 테일러 조이, <겨울왕국> 실사판에서 엘사역 하고싶다 언급
안야 테일러 조이가 최근 인터뷰에서 만약 <겨울왕국> 실사 영화가 제작된다면 엘사 역을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엘사 역할을 맡고 싶은 이유로 자신의 조카들을 언급하며, “우리 고모가 엘사야”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겨울왕국 실사판은 정말 멋질 것이며, 손에서 얼음 조각을 쏘아내는 것은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데이비드 핀처 서부극 범죄 스릴러 <비터루트> 연출
데이비드 핀처가 넷플릭스를 위해 서부극 범죄 스릴러 <비터루트>를 연출할 예정입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될 예정이며 영화의 줄거리는 노년의 목장이 자신의 전 재산을 도둑맞은 후, 은행을 털고 도둑들을 추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돈을 되찾기 위해 이러한 모험을 떠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보안관으로 일하는 자신의 아들에게 쫓기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길복순> 스핀오프 <사마귀> 제작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의 스핀오프 영화 <사마귀> 제작을 발표했습니다. <사마귀>는 살인 청부 업계의 모든 룰이 무너진 혼란 속에서 A급 킬러 '사마귀'가 긴 휴가 후 컴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는 훈련생 시절의 동기이자 라이벌인 '재이', 그리고 은퇴한 레전드 킬러 '독고'와 함께 1인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이번 영화는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이 각본에 직접 참여하며, 임시완, 박규영, 조우진이 출연해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기 영화 <디 어프렌티스> 포스터 공개
트럼프 전기 영화 <디 어프렌티스>의 포스터가 공개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젊은 시절을 다룬 전기 영화로, 그의 부동산 사업가로서의 초창기 뉴욕에서의 활약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트럼프는 냉혹한 변호사 로이 콘의 지도 아래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 분투하며, 미국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 사고방식의 형성 과정을 탐구합니다. 영화는 알리 아바시가 감독하고 세바스찬 스탠이 트럼프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지만, 우리는 사람의 한쪽 면 밖에는 보지 못한다. 과학적으로도 사람은 4차원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이 보는 세상은 너무나 평면적이다. 세상은 나라는 1인칭 시점에서 본 2차원 평면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밈으로,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비둘기 아래 담장 있어요'가 있다. 서로 다른 입체 공간의 색이 비슷하기만 해도 그 사이에 공간이 있는지 언듯 알기 쉽지 않아 일어나는 착시에 대한 밈이다.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걸 알려면 다양한 경험과 보이는 대로 다 믿지 않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은 초등학교 5학년인 무기노 미나토(쿠로가와 소야)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모습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과 주변인물들을 바라본다. 말 그대로,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그 시점이 달라져가며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보면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을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라쇼몽>이 세상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해하거나 거짓말하는 인간 모두에게 담긴 이기주의를 다루고 있다면, <괴물>은 보이지 않는 진실을 오해하거나 이해하게 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여기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진 세상을 향한 서늘한 비판적 시선이 더욱 날카롭게 꽂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괴물은 누구게?
무기노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미나토를 혼자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그녀는 일찍 죽은 남편을 대신해, 바쁘게 살며 씩씩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점점 알기 어려워지고, 어떤 학교생활을 하는 지도 알 수 없다. 어느날부터 미나토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한다. 걱정이 되지만 아무렇지도 않으려 애를 쓰는 사오리. 결국 그녀는 미나토의 담임선생인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폭력을 썼다고 듣게 되고 학교를 찾아간다.
지금까진 평범한 영화 같았지만, 여기서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기이한 흐름을 타게 된다. 교사폭력으로 학교에 항의하러 온 걸 아는 선생님들은 무언가 대책회의를 하고 방안을 마련한 모양인데, 그 모양새가 너무도 기이한 나머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느낌이다. 학부모인 사오리의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반응하며 답을 하고, 그녀의 말이나 항의에는 고개나 몸을 살짝 틀며 회피할 뿐이다. 대놓고 무시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정상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해결하려 했다는 결과를 남기려는 것인지, 무언가를 숨기는 것인지, 학교는 왜 호리 선생님을 감싸는 것인지, 호리 선생님은 왜 이런 와중에 사탕을 먹거나 웃고 있는 것인지. 관객마저 너무도 답답하고 이상해 공포감을 느낄 정도다. 게다가 호리 선생님은 유흥업소를 다닌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미나토와 친하게 지냈다는 호시카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와도 만나보지만 무언가 이상하고 찝찝한 느낌이 든다. 괴물은 학교인가? 호리 선생님인가? 요리인가?
그러다 시간을 거슬러, 영화의 시점이 호리 선생님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유흥업소에 다닌다는 것은 동거하는 애인과 같이 다니는 걸 보고 아이들이 제멋대로 지어낸 이야기처럼 보인다. 사오리의 시선과 달리, 호리 선생님은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폭력교사라는 오해를 받고,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애인도 떠난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호리 선생님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몰아간 거짓말을 한 미나토가 밉다. 괴물은 미나토인가? 집요한 사오리인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학교인가?
영화가 조금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지만, 우리는 타인의 삶을 온전히 알지도 못한 채,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사람을 재단하곤 한다. 이제 이어지는 미나토의 시선에서, 미나토는 '괴물은 누구게'라는 게임을 한다.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자신이 못 보게 자신의 머리에 붙이고, 상대가 설명하는 것으로 그림을 맞추는 게임이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상대방의 시선으로만 알 수 있다. 내가 왜 괴물로 보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괴물은 누구게?'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괴물은 없다
미나토와 요리는 과연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반 아이들은 키가 작고 여자애 같고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하는 요리를 괴물 취급한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요리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아이이긴 해도, 나빠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면 사오리가 느끼던 미나토의 조금 이상한 행동들은, 미나토가 요리에게 잘보이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두 아이의 순수한 우정, 아니 우정을 넘어선 그 무언가. 미나토는 요리의 세계를 받아들이며 고민한다. 미나토가 엄마인 사오리에게 물어본,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인간일까?"라는 말은 사실 요리의 아빠가 요리를 학대하며 한 말이었다. 미나토는 요리의 존재, 나아가서 요리가 따돌림당하고 학대받는 아이라는 걸 엄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 좋은 호리 선생님의 핑계를 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모든 것들의 오해의 시작이고 틀어지게 된 이유였다.
호리 선생님과 학교를 괴물로 알고 있었던 사오리. 미나토를 괴물로 알고 있던 호리 선생님. 그러나 모두 괴물이 아니었다. '괴물은 누구게?'를 맞추려고 했지만 다들 괴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막 2차 성징이 오려는 시기, 5학년. 그 사이에 알게 되는 같은 성별의 친구에 대한 우정을 넘는 마음. 그것에 미나토는 혼동을 느끼고 갈등하고 감추려 한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미나토의 그런 마음을 감싸준 것은 사오리에게 괴물 같아 보이던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이 그런 얼빠진 행동을 하고 있던 것도, 사오리나 호리 선생님에게는 좋지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나토의 마음을 해소해 주는 단 한 명의 어른이었다. 또한 이야기가 진행되며 초반 건물에 불을 지른 것이 미나토처럼 보였다가 사실은 요리였다는 식으로 흘러가, 요리가 정말 괴물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요리의 그런 행동들은 아버지의 학대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각각의 사람들은 잘못을 하고 죄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그저 오해이기도 했고,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게 과연 그들을 탓하기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다. 과연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던 사람들, 괴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혹 괴물은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괴물은 있다
이렇게 시점이 달라지며 서로 다른 저마다의 이유를 조금씩 드러내는 중에도, 여전히 감독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잘못을 덮으려는 일본 문화와, 낙인 찍힌 이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 그리고 아동학대다. 애초에 학교는 왜 폭력교사 때문에 찾아온 학부모를 그렇게 대했을까?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학교라는 시스템이 어떤 잘못 때문에 이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법적으로 막으려 한 조치들이다. 사실 그런 대응과 조치들이 일을 더욱 확산시켰고, 미나토와 사오리, 호리 선생님 간의 오해를 더욱더 크게 만들었다.
일본에는 '臭い物に蓋をする (냄새가 나는 것에 뚜껑을)'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단 일단 덮어서 그것이 없던 것처럼, 그저 가리고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만 한다는 뜻이다. 이 속담은 일본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박힌 문화를 설명해 준다. 한국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그것을 떠나서, 가깝게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나 코로나19의 대응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더욱 큰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덮어두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문제가 더욱 커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괴물 같아 보이는 개개인에게는 애정을 드러내면서, 일본의 이런 문화는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하나의 괴물은 바로 집단 따돌림이다. 여자애 같고 조금 특이하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이지메는 '그런 일은 당연히 있지'정도로 보여준다. 이 아이들이 가장 큰 괴로움도 바로 그런 집단 따돌림, 자신들이 다수이고 따돌려도 되는 정당한 타깃이 정해지면 누구나 놀이하듯 죄책감없이 참여하는 것. 아무도 그것을 들여다보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 이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은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따돌림이 심하다. 심지어, 되게 이상하지만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따돌림도 성행한다. 얼마 전에는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를 따돌림시켜서 문제가 되었었다.
처음엔 요리가 따돌림당하지만, 나중에는 호리 선생님이 따돌림당한다. 아니, 처음부터 호리 선생님은 따돌림을 일삼는 아이들의 먹잇감이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선생님이 여자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영상을 찍으며 걸스바에 드나든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선생님에게 요리와 미나토에 대한 거짓 정보를 준다. 결국 호리 선생님이 학교에서 잘렸을 때는, '돼지의 뇌'를 문 앞에 두고 그를 조롱한다. 너희 같은 것들은 죽어라라고 노래를 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 따돌림 문화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할 수 없다. 감독은 따돌림하는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괴물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혐오해도 되는'누군가에게 마음대로 집단 혐오를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죽어라'라고 노래를 부르며.
또한 요리의 아빠는 요리를 학대하고 있다. 부동산 일을 하며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부인도 어디 갔는지 없고, 매일같이 욕조에 가두고 때리는 것 같다. '돼지의 뇌'는 그런 요리를 학대하며 내뱉은 말이다. 사실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에도 이유를 찾자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감독은 단순히 세 사람의 시선이 중요해서 요리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뺀 것은 아니다. 교장선생님도 슬쩍 풀어주지 않았던가? 요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성정체성이 어떻든, 어떤 특이한 생각을 하든, 그것이 학대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곧 괴물이다.
----------
모든 사람들의 오해와 불행이 한 지점으로 뭉쳐, 요리가 말하던 빅 크런치가 가까워지고 있다. 미나토의 이상행동은 요리와 비밀기지에서 놀며 생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이었다. 그들이 뛰어노는 터널 저편의 숲에 놓인 기차, 그곳은 그들만의 낙원이다. 하지만 그 기찻길을 따라 달리다가, 결국 폐쇄되어 있어 다리를 건너지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그 안에서 행복했다. 미나토는 그것이 우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 요리가 불을 지른 것이라는 걸 깨닫고 혼란이 오지만 결국 사랑을 찾아간다.
폭풍우가 치는 세상, 미나토와 요리는 빅 크런치를 맞이하기 위해 그들만의 터널 끝 기차에 앉는다. 사오리와 호리 선생님이 그들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어 찾아 나설 때, 그들은 빅 크런치를 맞이한다. 마치 질을 통해 세상에 다시 태어나듯, 터널 밑 작고 축축한 통로를 기어가 새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곳엔 폭풍우가 없고 햇살이 내리쬔다. 그들이 가지 못했던 막혀있던 기찻길 다리도 어느새 열려있다. 미나토와 요리는 새로 태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괴물로 바라보는 일은 없으리라.
-
- 복잡한 감정이 나쁜 생각으로 이어질 때 필요한 이야기
-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감정은 복잡하다. 땅따먹기 하듯 정확하게 선 그을 수 없고 돈을 셀 때처럼 정확히 셈할 수 없다. 어림짐작할 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때론 모순되는 감정이 뒤엉켜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랑, 외로운 질투처럼 머리로는 이해 못 할 기분에 사로잡힌다. 복잡한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쁜 생각으로 이어질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속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해결책을 고민해보자.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The Professor and the mad man)'은 빅토리아 시대 '옥스퍼드 사전 편찬'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다. 사전 편찬 책임자인 '제임스 머리(멜 깁슨)'은 방대한 양의 문학 인용문을 찾기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그의 편지가 우연히 정신병원에 구금된 윌리엄 마이너(숀 펜)에게 닿게 된다. 사전 편찬에 알 수 없는 열정을 느낀 윌리엄은 제임스에게 단어 예문 보내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을 예고편으로 미리 만나보세요! ▼
언어에 능통한 두 주인공이 등장한 덕분에 영화의 대사가 한 편의 문학작품 같다. 주인공들의 생각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거나 복잡한 감정을 시 구절처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가 문학 인용문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의되지 않는 언어를 바다로 설명한다.
“어휘의 바다에서 우릴 이끌어 줄 해도나 나침반은 없습니다. 과학이 규정한 기준들이 중요했듯이 영어 또한 그만한 존중을 받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의 단어를 보내주십시오. 그물처럼 얽힌 편지의 놀라운 미로 속에서 함께 힘을 쏟으며 연대합시다.”
은밀한 암호 같은 대사와 달리 화면 연출은 굉장히 솔직하다. 윌리엄이 낯선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정신병원의 가학적인 치료 장면까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짓 없이 보여준 잔인한 현실과 아름답게 들리는 대사는 상반된 매력을 뽐내며 관객이 주인공들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옥스퍼드 사전에 숨겨진 이야기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의 원작은 저널리스트 사이먼 윈체스터가 출간한 <교수와 광인>이다. <교수와 광인>은 옥스퍼드 사전 편찬 당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영화의 핵심 소재인 '옥스퍼드 사전'때문에 단어 자체가 주는 따분함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원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검색의 시대이니 종이 사전을 만드는 내용이 처음에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영단어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강한 의지를 상징한다. 옥스퍼드 사전은 1150년 이후의 영어를 모두 수록했고, 단어의 형태, 철자, 의미의 변천이 상세하게 기술되어있다. 12권의 초판이 완성될 당시 414,825개의 표제어와 1,827,306개의 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전이 출판되지 않았다면 영어의 많은 부분은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옥스퍼드 출판부는 매년 그해 등재하는 신조어를 발표할 권위를 부여받았다.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나요?
역사에 길이 남을 옥스퍼드 사전의 편찬 과정은 치열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현실의 얄궂은 장난으로 인해 복잡한 감정과 고뇌에 빠진다.
제임스는 사명감과 무력감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제임스는 사전을 편찬하며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학문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그는 사전 편찬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헌신하지만, 수많은 단어와 예문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좌절한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빈자리에 지쳐 눈물을 흘리고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는 이들에게 가능성을 의심받는다. 위기에 처한 그에게 구세주처럼 윌리엄이 나타난다.
윌리엄의 사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의사이자 장교로 살아온 윌리엄의 내면엔 깊은 자괴감과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돌한다. 그는 군인 시절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끝내 정신질환마저 앓게 되며 밤마다 낯선 사람의 환영을 본다. 정신병원에 갇힌 그는 뛰어난 어휘력으로 사전 편찬의 해결사 역할을 한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예문을 찾는 순간엔 낯선 사람에게 쫓기는 느낌에서 벗어나 무언가 쫓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만남과 동시에 친구가 되어 자연스러운 대화를 한다.
영화는 사전 편찬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자세히 보면 사전을 만들던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어딘가 조금씩 상처 입고 외로운 이들이 모여 서로를 걱정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의 관계를 우정, 가족, 연인처럼 다른 단어로 부를 수 있으나 모든 관계의 밑바탕엔 사랑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느낄 때 그들의 복잡한 감정은 방황을 멈춘다. 나아가 서로를 향한 사랑만이 그들 앞의 고난을 헤쳐나 힘을 준다.
다시 우리의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이다.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질문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고 감정의 바다에서 당신을 이끌어 줄 해도나 나침반은 없다. 그러니 그물처럼 얽힌 사랑의 놀라운 미로 속에서 함께 힘을 쏟으며 연대해보자.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adeinx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패딩턴_페루에가다
8년 만에 돌아온 《패딩턴_페루에 가다》를 뒤늦게 봤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피난하는 어린이를 지켜본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가 창조한 곰 이야기〈패딩턴〉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제작했던 헤이데이 필름에 의해 2014년 1편이 공개되고, 2017년 2편은 역대급 호평을 들으며 007시리즈를 이를 새로운 영국산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했다.
프로듀서 로지 앨리슨는 존 루이스 백화점 크리스마스 광고로 유명한 CF/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두걸 윌슨에게 연출을, 그리고 〈숀 더 쉽〉의 마크 버튼에게 각본을 맡겼다. 초반부부터 CF처럼 상큼하게 시작한다. 영국 시민이 된 패딩턴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방인의 포용, 통합을 강조한다. 패딩턴의 숙모 루시가 머물고 있는 은퇴한 곰을 위한 요양원의 수녀원장(올리비아 콜먼)이 보낸 편지로 인해 그녀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된다. 딸은 대학입시에 바쁘고, 아들은 게임에 푹 빠져 있어 외로운 메리 브라운(에밀리 모티어)는 페루로의 여행이 가족이 모두 함께 모일 수 있다며 환영한다. 한편 신중한 헨리 브라운(휴 보네빌)은 새로운 상사의 조언에 따라 위험에 감수한다. 브라운 부부의 동의하에 패딩턴(벤 위쇼)은 루시 숙모를 찾기 위해 열대우림의 정글에 도전한다.
〈인디아나 존스〉식의 어드벤처와 가족 코미디 영화 그 중간 지점에서 헤매던 영화를 살린 것은 두 가지 덕택이다. 첫 번째는 페루와 콜롬비아에서 촬영된 풍광을 CGI로 보정했지만,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는 해방감을 안긴다. 둘째는 연기다. 예를 들어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엘도라도에 목숨 건 조상의 혼령에 시달리는 선장을 연기하고, 올리비아 콜먼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줄리 앤드루스를 패러디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가 영국을 벗어나면서 브렉시트 이후의 난민 문제로 생긴 반이민정서를 꼬집는 부조리 개그가 사라져 아쉬웠다. 대신에 고향 페루에 돌아간 패딩턴이 자신을 길러준 친부모 같은 루시 숙모를 찾는 모험은 자신의 뿌리를 제확인하는 것이다. 성년에 가까워지며 서로 멀어져 가던 브라운네 식구들이 함께 고난을 헤쳐가며 결속을 다지게 된다. 그런데, 아동 관객을 위해 유머를 설명하느라 템포가 처지고 개그의 밀도가 낮아졌다. 그 점이 아쉽다.
그렇지만 파블로 그릴로와 시각효과 팀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놀랍다. 실사 피규어를 적절히 사용해서 이물감을 줄여서 그런지 그럴싸해 보였다. 〈아프리카의 여왕〉, 〈블리트〉, 버스터 키튼에서 착안한 액션/슬랩스틱 시퀀스로 존경의 의미를 표한다.
총평하자면 《패딩턴_페루에 가다》은 전작보다 아쉽다. 그러나 〈패딩턴〉 시리즈가 가진 요소들, 이를 테면 이방인의 포용, 팝업 그림책 스타일의 영상미, 예의범절의 중요성,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존했다.
-
- 역사적 토대위의 완성형 오컬트,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왓챠피디아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과 ‘봉길’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
지난 2024년 2월, 오컬트를 좋아하는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왔던 영화가 개봉했다. 한 줌에 불과한 오컬트판에서 그저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던, 절대 기대할 수도 없었던 천만 관객이 나온 <파묘>이다. <파묘>는 시작부터 달랐다. 웰메이드 오컬트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나로서는 큰 감명을 받았던 <검은 사제들>을 연출하신 감독님께서 또 다시 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드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오매불망 극장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메인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게, 예고편에 드러난 스토리가 기대했던 만큼 흥미로웠으며 포스터 디자인은 그러한 기대감을 최대한으로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출처 : CGV
각 등장인물의 시선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디자인 요소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미니멀한 형태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가 쉽지 않은데, <파묘>가 그걸 해낸 것이다. 한국 오컬트의 근간에 있는 '풍수지리'를 활용함은 등장인물 중 '풍수사'가 있었기에 예상할 수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동서남북의 개념을 메인 포스터에 적용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더욱 새롭게 다가왔던 거 같다. 보통 극의 전체적인 내용과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으려고 하지, 디테일한 소재를 활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점부터 나는 '아, 감독님께서 기초부터 꽉 잡고 가는구나' 싶어서 스토리에 대한 기대가 더더욱 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 CGV
위 버전의 포스터 또한 너무 취향이었다. 가장 먼저 공개되었던 캐릭터 포스터처럼 미니멀한 구성임에도 여느 포스터보다도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경문이 써져 있는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긴장된 표정과 눈빛이 강렬하게 다가오고, 스토리의 진행이 얼마나 긴박할지 은연중에 상상하게 되는 즐거움 또한 이끌어냈던 거 같다. 각 캐릭터의 얼굴 일부만을 배경으로 사용하여 영화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되, 여백을 살리는 디자인으로 타이틀 또한 각인되었기 때문에 '홍보' 포스터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감히 생각한다.
'파묘', 이토록 직관적인 단어를 제목으로 선택한 것도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한국 오컬트 중에서도 특히나 '묘'와 관련된 속설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기 마련이다. 묫자리는 해가 잘 드는 곳으로 해야 한다, 묘가 있는 부근에서 무언가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등 예로부터 이어진 유교 사상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현상들을 위와 같은 미신들로 이미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파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공동체를 정확하게 건드렸다. 묘를 파헤쳤다고! 큰일났네,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포인트1. 오컬트와 미스터리의 곁들임
오컬트는 곧 종교이자, (나에게) 종교는 곧 오컬트이다. 사람의 맹목적인 믿음과 순수한 신념은 아이러니하게도 괴기스러운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다. 장재현 감독의 연출작 중 <검은 사제들> 또한 이러한 공식을 완벽하게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서양 오컬트의 주요 소재인 '악마'와 '엑소시스트'를 거의 그대로 끌고 왔다는 점에서, 물론 연출은 독보적이고 완벽했지만, 여타 외국 작품들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미지를 떠나 이제는 조금 더 한국스러운 오컬트를 갈망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파묘>가 이 부분을 완벽하게 간파한 것이다.
출처 : 왓챠피디아
한국식, 아니, 조금 더 넓게 가보자. 동양적인 오컬트란 뭘까? 개인적으로 동양의 오컬트 근간에는 '음양오행'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주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어떠한 이상현상이나 초자연적인 일을 이해해보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바로 그 공식이다. '금, 수, 목, 화, 토'의 다섯 가지 원리에 따라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또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보는 사주에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오행'은 스스로의 인생을 파악하기에 간단한 방법으로 일컬어진다. 예를 들어, 모 연예인의 사주에 '수'가 부족해 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승승장구했다거나 하는, 일반인들도 피해갈 수 없는 정설과도 같은 미신이다. 다른 예로 SNS에 밈처럼 퍼져 있는 일화를 보면, 문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도 '사주에 ㅇㅇ이/가 부족해서 했어요'라고 하면 납득하게 된다는, 그런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는 한국의 무교와 연관되어 있는 여러 직업이 한 데 모인다. 직접 영가를 파악하고 굿을 진행하는 무당, 그 옆에서 경문을 외는 또 다른 무당,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관, 그 옆에서 마지막까지 예우를 다 하는 장의사. 어떻게 보면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이 '묘'라는 하나의 소재로 모여 각자의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매력적이다. 여러 개의 장으로 나누어질 만큼 복잡했던 <파묘>의 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이들이 처음 묘를 보러 갈 때 끝없이 이어지는 산 속을 굽이굽이 들어간다.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자처하여 들어가는 모습과도 같다. 그리고 이들은 경로를 잘못 들어가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초~중반부까지 이어지는 숨막히는 전개로 한 사건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숨을 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후반부가 시작되며 위 나레이션이 나온다. 내비게이션 음성을 활용한 트랜지션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미스터리함을 가중시키는 데 한 몫 했다. 이대로 끝이기에는 아쉬운 타이밍이었고, 그런데 대체 일이 어떻게 꼬이려나 상상도 안 되던 시점에 '첩장'이 나온다. 그리고 이 문제상황을 발견한 인물은 다름아닌 상덕이다. 처음부터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피하고 싶어했던 상덕이 오히려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는 발걸음을 하게 된다. 수직으로 꽂혀 있는 거대한 무덤은 서양 오컬트의 '역십자가'를 떠올리게 했다. 순수한 믿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거꾸로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죽은 자의 영원한 안녕을 바라는 무덤이 수직으로 서 있을 수는 없는 거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알아챈다.
포인트2. 인상깊은 연출
출처 : 왓챠피디아
여러 등장인물 중 무당 조합이 <파묘>의 흥행을 이끌었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현대적으로 풀어낸 무당의 모습만으로도 획기적인데, 생사가 오가는 오컬트 세계관에서 두 인물의 서사까지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병에 걸려 평범한 삶을 포기한 후배가, 선배와 같이 있기만 하면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완벽한 캐릭터 디자인은 감독의 투철한 자료 수집에서 기인했다.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무당에 관한 정보를 찾아 다니던 중, 신병을 겪고 무교에 발을 들이며 몸에 경문을 문신한 분을 뵐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봉길'의 삶은, 섬세한 고증을 통해 더욱 실감나게 구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름 없는 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또한 다시금 언급하고 싶다. 뱀의 움직임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직부감으로 담아낸 쇼트와 긴장감을 더해주는 사운드가 나오다가, 한 순간 끊긴다. 적막이다. 무덤과 그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을 매우 넓게 잡은 롱 쇼트는 그러한 정적과 소름 돋게 잘 어울렸다. 광활한 풍경이 주는 압도감을 적절하게 활용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배경에서 이어지는 화림의 대살굿 씬은 컷 연결부터 사운드 디자인까지 정말 완벽했다. 새까만 재를 얼굴에 바르는 화림의 강렬한 눈빛과, 그 뒤를 받쳐주는 봉길의 기세 있는 목소리는 지금까지 접한 '굿'을 재현한 장면들 중 가장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서양의 엑소시스트와 동양의 굿은 어떻게 보면 일반인에게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성립이 되는가, 하는 갑론을박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분야이기에 조금 동떨어진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파묘>의 굿 시퀀스는 매우 차별적이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온 힘을 다 해 지금의 행위에 임하고 있는지 화면 너머의 관객인 나조차도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출처 : 왓챠피디아
이외에도 정말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는데, 첫 번째 관이 열리고 그 혼령이 여기저기 날뛸 때, 과연 전화를 하는 상덕이 진짜일까, 문 앞에서 말하고 있는 상덕이 진짜일까? 하는 나폴리탄 괴담식 공포가 그대로 매체에 드러난 경우는 처음이라 속으로 굉장히 반가웠다. 공포 장르에서도 다른 시각/청각적 요소 없이 텍스트로만 즐기는 나폴리탄 괴담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소소하게 즐기고 있던 소재가 이렇게 영화의 한 장면으로 활용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출처 : 쇼박스
그리고 도깨비놀이! 오컬트 장르답게 생소한 옛 설화를 기반으로 호러스러운 장면을 구현한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사실 '도깨비놀이'는 정확하지 않은 출처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명확한 행위가 있긴 하지만, '대화'만으로 영가를 속여 불러온다는 방법 자체가 오컬트에서 바이블로 등장하는 분신사바/위자보드와 같은 기묘한 분위기 그 자체이기에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함에 적절한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전통적인 기괴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이에 더해, 제한된 공간에서 어떠한 물리적 상호작용 없이 네 사람만의 대화 흐름에 맞추어 카메라가 움직이며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부분 또한 감탄스러웠다. 도깨비놀이 자체는 제주도에서 발현된 일종의 굿이지만, 모든 지역의 사투리가 활용되었다는 요소도 꽤 매력적이었다. 절대 한 데 존재할 수 없는 각자의 지역적 특징을 지닌 것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목표로 모여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고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를 부르고 있다, 는 모순적인 상황에 혼란한 심리가 완벽하게 작용되었다고 본다.
물론, 아쉬웠던 부분도 몇 가지 있다. 초반에 화림과 상덕의 나레이션을 통해 사건의 시작과 등장인물들의 특성을 설명했던 만큼, 이후에도 설명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다. 특히 두 번째 관이 열리고 오니가 처음 등장한 직후, 화림이 혼령과 정령의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덕에게 이야기할 때, 앞으로 우리가 결말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게 되는 중요한 장면인 거 같은데 그저 말로만 설명하는 전개가 조금 아쉬웠다. 짧은 몽타주로 구성되고 끝났던 화림의 일본 요괴에 대한 끔찍했던 일화를 조금만 더 자세히 다루었다면 훨씬 매력 있게 표현될 수 있었을 거 같아서 더욱 마음에 남았던 거 같다.
1장에서 간접적으로 다가왔던 공포 요소와 달리, 2장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오니의 모습으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표했을 것이다. 현실적인 공포가 아닌 판타지물에 나올 법한 크리처의 느낌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크리처 소재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마음 속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커다랗고 붉은 공으로 디자인된 <파묘>의 도깨비불은 평소에 '도깨비불'이라는 소재 자체에 큰 흥미를 가지고 어떤 장르에서 어떤 형태로 활용될 수 있을지 상상해보던 나에게는 또 다시 실망스러운 부분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를 무력화시켰던 오니를 무찌르는 방법이 음양오행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금과 목은 상극이다'였다는 게, 누구보다도 전문가인 지관 '상덕'이 마지막에서야 깨달았다는 설정까지 결정적인 단서라고 보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웠다.
포인트3. 역사적 의의
출처 : 왓챠피디아
<파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탄탄한 역사적 소재의 기반 위에 오컬트를 잘 올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기가 흐르는 산맥에 철심을 박아서 그 기운을 끊어버린다는 속설, 오랜 시간 동안 별 거 아닌 미신이라고 여겨졌으나 계속 회자되는 증거와 영화 개봉 당시 대중들의 반응으로 하여금 해당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성이 분명히 있었음을 입증했다고 본다. 당시 삼일절이 가까워지던 시기에 개봉했던 점과, 극중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성함 그자체이며, 영화 구석구석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이스터에그를 심어 놓았다는 것이 결합되어 큰 시너지를 냈다고 판단된다.
올해로 제106주년 삼일절을 맞았지만, 일본의 만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파묘>는 매우 직설적이고 명확한 연출로 일제강점기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의식하고 기억해야 할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독립운동과 광복을 넘어, 독재와 민주화운동까지. 말 그대로 피로 쓰여진 우리의 자유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여담으로,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영화 <파묘>는 동물권에 대해 올바르지 않은 태도로 임한 사실이 있다. 제작사 측에서 피드백을 통해 자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으나, 작품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직접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먹어야 할 은어를 감쪽같이 젤리로 만들고 여우 또한 CG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마케팅 요소로 활용했으면서, 오로지 촬영을 위해 살아 있는 은어를 대량으로 죽이고 실제 돼지의 사체를 폭력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작품을 소비해야 마땅하다고 판단된다. 이는 공포/오컬트 장르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관련 종사자와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백록
-
- 죽기전에 봐야할 판타지 윌리 웡카 연대기
3영3색의 매력이 한데 담긴 웡카 연대기 보고가세요
죽기전에 봐야 할 영화 1001편에 든 1971 <윌리웡카와 초콜릿 공장>
1971년 작품의 오마주에 가까운 2005 <찰리와 초콜릿공장>
원작의 세계관을 토대로 ‘윌리웡카’의 오리지널 이야기를 다룬2023 <웡카>
북미에서는 이미 1억 9천만달러를 넘기며 티모시 샬라메의 최고 흥행작 등극! 패딩턴 1,2를 감독한 폴 킹 감독과 휴그랜트의 움파룸파 대변신 ! 국내 최초로 4DX 상영관에서 초콜릿향을 선보인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됩니다.
1
진 와일더 / 조니 뎁 / 티모시 샬라메
2
웡카 시그니처 로고 변천사
3
실제 왜소증을 겪는 배우들을 기용했던 기존 영화와 달리 180cm가 넘는 '휴 그랜트'가 움파룸파 역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4
<윌리웡카>와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성공한 사업가 윌리웡카는 자신의 후계자를 가리기 위해 아이들을 공장으로 초대하는 이야기와 달리 <웡카>는 '달콤 백화점'에 웡카 자신만의 초콜릿가게를 여는 여정을 그린다고 합니다.
5
기존 욕심 많은 아이가 빠졌던 초콜릿 강, 이번엔 웡카가 빠져있다?
줄거리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여정 좋은 일은 모두 꿈에서부터 시작된다! 마법사이자 초콜릿 메이커 ‘윌리 웡카’의 꿈은 디저트의 성지, ‘달콤 백화점’에 자신만의 초콜릿 가게를 여는 것.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모자 가득한 꿈과 단돈 12소버린 뿐이지만 특별한 마법의 초콜릿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서 낡은 여인숙에 머물게 된 ‘웡카’는 ‘스크러빗 부인’과 ‘블리처’의 계략에 빠져 눈더미처럼 불어난 숙박비로 인해 순식간에 빚더미에 오른다. 게다가 밤마다 초콜릿을 훔쳐가는 작은 도둑 ‘움파 룸파’의 등장과 ‘달콤 백화점’을 독점한 초콜릿 카르텔의 강력한 견제까지.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는 길은 험난하기만 한데…
-
- 과거사를 바라보는 성찰의 태도
과거사를 바라보는 성찰의 태도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파이의 아내>는 NHK에서 방영된 TV 드라마를 영화의 형식으로 다시 제작한 영화다.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폭로하고 성찰하는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공영방송 NHK의 제작지원 하에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본래 8K 카메라로 촬영되고 NHK 자사의 4K/8K 채널에 한정적으로 방영 예정이던 드라마는 베니스 영화제 극장 상영을 위해 재작업하는 과정에서 화면비 변경(1.78:1->1.85:1)과 색보정 작업 등을 거쳐 2K로 변환됐다. 8K의 선명한 화질이 2K가 되면서 그 선명도가 떨어진 것임은 분명할 것이나 이 영화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고, 예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 때문에라도 둘 사이의 화질 차이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으며 이 영화는 더욱 회자되었고, 영화화는 잘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모던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이 생각은 영화를 볼수록 독특한 영화라는 판단으로 확대됐다. 이 영화는 분명 1940년대 고베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고, 인물들의 연극적은 대사 톤과 당시대를 옮겨 놓은 듯한 세트, 인물의 동선을 팔로잉하는 연극적인 촬영 방식 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가 이 영화가 전통적인 역사 내지 시대극의 형식이나 스파이 장르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느냐는 질문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물론 이 말이 이 영화가 과거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떠한 관점에 편향된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이 영화가 구성되는 방식에 독특한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먼저, 이 영화의 방점은 어디에 찍혀있나. 보통의 정통 스파이물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방점은 제목대로 스파이보다도 '아내'에 찍혀있다. 보통의 스파이물이라면 범인 찾기 혹은 범인이 범인임을 들키느냐 마느냐 하는 데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파이가 누군지를 초장부터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화의 초점 자체가 스파이가 아닌 그의 아내 사토코에게 맞춰져 있다. 영화는 대부분 사토코의 시점을 따라가고, 관객은 사토코의 심정에 이입을 하며 극을 따라가게 된다. 유사쿠가 스파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둘은 섬유무역회사를 운영하며 유복한 생활을 즐겼다. 이들의 집 내부를 보면 유사쿠가 서양의 문화를 동경하고 그에 매료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다가오는 전쟁과 함께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 날 유사쿠는 전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만주를 보고 오겠다며 급히 만주로 떠나고,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만주에서 돌아온 유사쿠는 달라져있다. 이상함을 눈치챈 사토코는 그를 추궁하고, 그가 만주에서 일본군이 병균으로 생체실험했고, 그로 인해 죽은 수많은 주검을 목격하고 그 증거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미국으로 가져가 폭로하려는 그의 계획을 듣는다. 헌병대장이 되어 돌아온 사토코의 옛 친구 야스하루의 존재가 부각되는 건 이 시점부터다. 세 인물이 서로를 의심하며 빚어내는 갈등은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지탱해나간다. 야스하루는 유사쿠를 의심할 만한 정보를 일부러 그녀에게 흘리고,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풀리지 않는 그의 행동에 점점 의심을 갖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가지기도 한다.
자신은 '코스모폴리탄'이라며 세계시민을 자처하는 유사쿠는 자국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려 하고, 사토코는 지금까지 유사쿠의 곁에서 누린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토코는 처음엔 그를 배신한다. 남편의 금고에 있던 노트를 야스하라에게 가져가 조카 후미오가 체포되게 만들고, 자신의 남편 또한 의심받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남편을 택하고, 남편이 스파이라면 자신은 스파이의 아내다 되겠다 선언한다. 그녀를 움직인 것은 '진실'을 밝힌다는 대의보다 사랑이었고, 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유사쿠였다. 그러나 대의가 동기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남편이 만주에서 가져온 필름을 영사해 그가 보고 들은 만주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목격하고, 그를 돕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미국으로 떠나는 날, 사토코는 유사쿠에게 배신당한다. 누군가 사토코의 행방을 고발해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 숨어있던 사토코는 일본군에게 발각되고 붙잡힌다. 사실 그녀가 맞이하는 결말은 암시됐다. 그녀가 유사쿠, 후미오와 함께 찍은 필름에서. 바로 이 필름, 영화 안의 또 다른 영화 안에서 사토코는 연인의 금고를 털다가 연인에게 들키고, 연인은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겨 배신자가 자신의 연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달아나는 연인 사토코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사토코는 그 총알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연인은 죽은 사토코를 안고 슬퍼한다. 이 필름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 다시 상영된다. 많은 일본군들 앞에서. 관객은 그때서야 사토코가 봤던 만주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재촬영한 필름의 일부를 보게 되며, 또한 거기에 입혀진 유사쿠의 필름을 다시 보게 된다.
필름이라는 매개의 의의는 사실상 이 영화의 핵심이다. 관객은 만주에서 벌어지는 생체실험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못하고,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실험노트와 영상을 찍어온 필름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게 된다. 진실을 밝히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기능한다. 또한 필름은 사토코가 유사쿠를 적극 지지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단순 전달을 넘어 새로운 의의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필름은 그가 그곳의 참상을 직접 보고 들으며 찍어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영상물을 재촬영한 결과물이다. 그곳의 진실은 필름 안에 다시금 담겼고, 누군가가 그것을 그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목격하고 진실을 알게 되도록, 그것에 대한 직시와 판단을 가능토록 만들었다. 유사쿠가 사토코와 함께 찍은 필름이 덧입혀진 필름을 일본군이 다 같이 보게 되는 것 또한 반대의 의미에서 이 영화의 중요 씬 중 하나다.
덧입혀진 필름에 당황하던 사토코는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주 훌륭하다"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이어서 배를 타고 떠나며 유유히 손인사를 하는 유사쿠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을 배신했던 연인을 역으로 배신한 인물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겠으나,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수감된 사토코에게로 다시 초점을 맞춘다. 패전의 그림자가 고베에까지 드리웠을 때, 사토코가 불바다가 된 조국을 바라보며 뱉는 대사는 당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미친 나라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은 미친 사람이 되고, 미친 사람은 미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정상적이지 않은 조국의 패전은 그 비정상의 무너짐에 있어서는 기쁨이 되겠지만, 조국의 패배라는 면에서는 슬픔이 된다. 바닷가에 가 그제야 울분을 토하는 사토코의 모습은 그런 조국을 둔 개인이 결국 맞닥뜨리게 된 피할 수 없는 비극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사를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금의 일본이 가져야 할 양심과 반성 의식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전쟁 중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시대물을 작업해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자유와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보이고, 국가 안 개인이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국가에 의해 어떻게 빼앗기게 되는지 그려낸다. 감독의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양심선언처럼도 느껴지는 이 영화는 군국주의의 잔재 속 극우주의가 만연한 일본에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같다. 지식인이자 예술인의 입장에서 자국의 과거사를 드러내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작금의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묻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성찰적 태도는 일본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새로운 물결 중 한 부분이다.
-
- 블랙 위도우, 가족의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퇴장! 안녕!
블랙위도우가 지난 주 개봉했어요.
나탸사 로마노프의 마지막 영화인데요. 옐레나 라는 동생이 등장하고 엄마와 아빠까지 등장을 하죠.
사실은 어린 시절 3년 동안 같이 보냈던 가짜 가족입니다.
그들과의 인연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나타샤는 어벤져스 멤버들과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죠.
그래서 나타샤가 생각하는 가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라가는 영화에요.
꽤 멋진 액션 장면들이 있구요. 격투 액션이 적은게 아쉽긴 하지만..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하세요!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
- 마이티 토르와 다시 돌아온 토르! 마블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Rabbitgumi 입니다!
토르의 새로운 단독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번에 4번째 토르 단독 영화인데요.
1편과 2편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평가를 받았던 시리즈지만,
3편에서 타이카 와이키키 감독이 연출하면서 재치 넘치는 영화로 재탄생했죠.
4편도 같은 감독이 연출해서 그 분위기는 유지됩니다.
그럼 과연 이게 효과적으로 마블에 안착했을까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는 아래 링크에서! :)
https://rabbitgumi.stibee.com/
브런치는 아래 링크에서!!
-
- 영화 <내가 날 부를 때> 30초 예고편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돈을 벌고 공부하며 고군분투하던 ‘안란’.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몇 번 본적도 없는 어린 남동생이 안란에게 덜컥 맡겨진다.
동생을 키우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누나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어른들.
“내 인생에는 너만 있는 게 아냐.
나에게도 우주가 있어”
-
- 영화 <야쿠자 어쌔신> 예고편
후카미 아키라는 아버지 미쓰오가 어린 시절에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이후 일본 지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마지마 그룹의 요시키 회장에 의해 길러졌다. 그는 조직의 특급 암살자로 활동하며 평소에는 회장의 딸 유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청소부로 일하며 비밀리에 그녀를 경호하고 있다. 어느날 조직 내 반란이 일어나고 회장은 후카미에게 숨겼던 과거를 알려준다. 그리고 유이를 지켜달라는 최후의 업무를 맡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