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5-09 17:17:08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이 만났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로봇 드림(Robot Dreams), 2024
스페인 / 애니메이션 / 102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어두컴컴한 집 안, 맛없는 냉동 도시락이 전자레인지 안에서 빙빙 돌아간다. 2인용 게임을 혼자 하는 게 익숙한 도그의 저녁밥이다. 도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설렘이나 기쁨, 행복은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일상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간혹 찾아오는 새로움은 앞으로 다가올 지겨움으로 여겨질 뿐이다. 무엇 하나 즐겁고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도그는 오늘도 옆집 커플의 행복을 애써 외면하며 입에 숟가락을 집어넣는다. 무료한 하루가 또 이렇게 가나 싶었는데, 돌연 TV 광고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외로우신가요?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도그는 곧바로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존재가 등장하자 도그의 일상은 180도 바뀐다. 도그의 친구이자 가족,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가 된 로봇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반려 로봇이지만, 나의 짝을 의미하는 ‘반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로봇 역시 (도그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된다. 영화는 도그와 로봇의 존재를 특정한 종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한다. 우린 냉동 도시락이 데워질 때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 어떻게든 머무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로봇 드림>은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을 만나게 했다.

둘의 시너지는 순풍을 타고, 재미없던 삶은 무한한 행복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해수욕장에서 강제 종료된 로봇으로 인해 멈추고 만다. 로봇이 고장 난 이유는 언급되지 않는다. 바다를 헤엄치고 잠수까지 한 로봇이 고장 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영화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도그가 외로움에 빠진 이유나 로봇을 움직이는 주요 부품에 관한 설명, 로봇의 자연스러운 감정 및 이성 습득도 마찬가지다. 전부 영화의 몰입도를 깨트릴 수 있는 물음표지만 이야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전개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빈 곳에 별표를 붙이고 시간을 들여 메우려 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못해 주인과 더는 함께할 수 없는 로봇에 더 집중한다. 무엇보다, 도그와 로봇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직진하기 바쁘다. 일찍부터 작고 사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중요한 건 뒤가 아니라 앞에 있고,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이 될 오늘’이 더 가치 있다는 <로봇 드림>만의 심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폐장을 선언하고 여름 개장을 예고한 해수욕장 공고문 앞에서 도그는 절망한다.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반려 로봇을 샀는데 한순간에 외로움을 반납받게 된 상황이라니, 도그와 로봇에게 벌어진 첫 번째 위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둘의 첫 이별(위기)은 별다른 사건충돌 없이 영원한 이별로 남는다. 이야기는 도그와 로봇의 각자 입장으로 나눠 두 갈래로 진행된다. 역시 <로봇 드림>이 가진, 아주 능숙하고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로봇을 데려올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도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신문 광고에 또 반응한다. 설산에서 처음 본 동물들과 썰매를 타며 나름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눈사람에 눈코입을 선물하며 제2의 로봇을 만나고, 새해 기념으로 연을 날리다 멋진 선글라스를 낀 오리도 사귀지만, 역시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을 기준으로 한, 기울어진 저울을 가진 도그에게 다른 동물과의 관계 형성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해수욕장에 멈춰 있던 로봇은 꿈을 연속적으로 꾸며 진짜 세상을 경험한다. 꿈이 전부 악몽이지만,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로봇은 ‘성장’한다. 도그 없이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고, 관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영역임을 몸소 체험한다. 슬픔과 별개로 기존 관계가 깨지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인생의 아이러니한 흐름도 깨닫는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관계(삶)가 주는 진짜 교훈은, 전제를 잘 알고 있음에도 매번 다시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로봇은 해수욕장 개장 후 원숭이에게 구출되지만, 악어가 운영하는 철물점에 팔려 온몸이 산산이 조각난 후 전원이 꺼진다. 삶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순간, 너구리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외로움에 결국 굴복한 도그는 상점에 반값으로 나온 틴(로봇)을 산다. 한때 도그의 반려였던 로봇은 몸통 대신 달린 카세트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완전한 이별과 함께,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반려’가 또 등장한 순간이다.
너구리와 살기 시작한 로봇은 틴과 함께 걸어가는 도그를 우연히 발견한다. 둘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 로봇은 다시 한번 꿈꾼다. 도그는 몸이 바뀐 로봇을 단번에 알아보고, 둘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지만, 곧이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틴은 도그를, 너구리는 로봇만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로봇은 카세트 되감기 버튼을 눌러 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곤 도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인다. 도그는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로봇도 팔과 다리를 흔든다. 나란히 서서 같이 췄던 춤을 각자 다른 곳에서 추는 도그와 로봇. <로봇 드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이다음에 등장한다. 호텔 꼭대기 층에서 춤추던 로봇이 도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재빨리 숨는 장면이다. 로봇과의 추억에 젖어있던 도그는 돌아선다. 그렇게 틴과 손을 잡고 로봇과 영영 멀어진다.

우리는 알고 있다. 왜 로봇이 꿈을 꾸고, 도그가 왜 틴을 사고, 로봇이 마지막 순간에 왜 숨어버렸는지. 우린 모두 각자의 외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나를 위한, 오직 나만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두 배로 더 빨리 쓰기도 한다. <로봇 드림>은 이를 로봇(꿈)과 도그(외로움 탈피)로 보여줬다. 로봇이 겪은 불행과 도그가 겪는 슬픔은 형태만 다른 특별한 데칼코마니였다. 꿈(로봇)은 현실(도그)이고, 현실을 겪은 로봇은 다시 현재를 살기 위해 꿈을 꿨다. 도그도 멈추지 않고 로봇과 같은 모양을 찍어내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원하는 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세상에서 외로움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나아가 전반에 깔려있던 구멍에 과거가 돼버린 관계(기억)들을 채우게 하고, 불완전한 관계를 향한 갈망이 메마르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한다. 특히 도그와 로봇이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 속 엔딩과 연결되면서 짜릿한 쾌감을 선물한다(주인공도 삶에 허덕이다 마침내 자기만의 알코올 농도를 찾고, 엔딩 삽입곡 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에 맞춰 막춤을 춘다).

완벽하지 않고 때론 상식적으로나 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간관계 안에서 꿈을 꾸다 다시 꿈을 접고, 또다시 꿈꾸며 사는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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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깊은 메시지가 안에 담긴 B급 영화,
총 여섯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B급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 네이버 영화
synopsis
평범하다 못해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 스즈메는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스파이 모집’ 광고를 발견한다. 무심코 전화를 해버린 그녀는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cine pick!
평범한 주인공 스즈메가 우연히 스파이로 활동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뻔한 일상에도 아직 알지못하는 다른 세계가 있고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구를 지켜라
ⓒ 네이버 영화
synopsis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위험에 처할 거라고 믿는 병구는 재앙을 막기 위해 이번 개기월식까지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야만 한다.
cine pick!
사회의 대한 풍자를 영화에 녹인 <지구를 지켜라>는 당시에는 흥행하지 못한 채,
평론가들에게만 호평을 받았었는데 수작이라는 입소문을 타며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작품이다.
족구왕
ⓒ 네이버 영화
synopsis
식품영양학과 복학생 만섭은 캠퍼스 퀸 안나의 남자친구 강민을 족구 한 판으로 무릎 꿇게
만든다. 만섭은 순식간에 교내 히어로가 되고, 취업준비장같이 지루하던 캠퍼스는 족구
열풍에 휩싸인다.
cine pick!
B급 감성에 코미디, 청춘 로맨스 장르의 <족구왕>은 그 안에 대학생들의 현실을
풍자하는 깊은 메시지를 담으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불량 공주 모모코
ⓒ 네이버 영화
synopsis
삶에서 드레스가 제일 중요한 모모코는 짝퉁 명품을 팔아오던 유일한 물주인 아빠가 실직하게
되자, 직접 돈을 벌기 위해 집안의 유일한 재산인 짝퉁 베르사치의 판매책으로 나서게 된다.
cine pick!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연출한 감독의 작품 <불량 공주 모모코>는 재기발랄함이 가득
담긴 영화이다. 의상 보는 재미와 예쁜 영상미로 눈이 재밌는 영화이다.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
ⓒ 네이버 영화
synopsis
고민해결사무소 ‘스페셜액터스’에 들어가게 된 배우 지망생 카즈토가 사이비 종교 단체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맞춤 위장 코미디.
cine pick!
일본 B급 영화로 유명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B급 감성 안에서 가족애를 보여주며 감동과 위로를 준다.
지옥의 화원
ⓒ 네이버 영화
synopsis
압도적 격투 능력만 있다면 최강의 여직원으로 칭송 받는 세계,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오코가
싸움에 휘말리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오피스 코믹 액션
cine pick!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첫 공개 후 독특한 설정과 재미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작품이다. 오피스물인만큼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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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대학살은 왜 기억되어야 하는가?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대 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 주의
감독: 고훈
출연진: 양경인, 파치스
시놉시스: 제주 4.3 사건의 구술 작가인 양경인과 르완다 출신 한국 유학생 파치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제주 4.3 사건과 르완다 제노사이드 사건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딸이라는 것. 이런 두 사람이 한국과 르완다를 오가며 '그날'이 남긴 상흔과 그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1. 비극은 지척에 있다
전쟁과 학살 소식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요즘이다. 몇 천 명, 몇 만 명이 넘게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 숫자가 너무나 거대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 중 많은 수(특히 2-30대의 젊은 세대)는 아마도 그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는 있되 그 참혹함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분단 국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럭저럭 평화로운 시기를 살고 있지 않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참혹함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순진하게도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들을 '어느 머나 먼 딴 나라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거친 귀납적 도출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필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랬다.
그러나 쉽게들 착각하는 바와는 다르게, 이러한 학살의 비극은 우리와 그다지 동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그럭저럭 누리는 평화의 이면에는 수많은 죽임과 죽음이 있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매카시즘(반공 열풍)의 광기에 인해(좀 더 깊고 우울한 배경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다루지 않겠다.) 2~3만여 명이 살해당한 제주 4.3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다른 한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 사건은 충분히 경계되고 기억되어야 마땅할 것인데, 4.3이라고 하면 '아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정작 사건의 발단과 경위, 결과의 끔찍함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고, 한국 역사 교과서에서 그 진상을 명확히 묘사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2014년의 일이었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제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학살의 끔찍한 상흔은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이들에 의해 오래도록 묵인되었다. 이토록 가까운 학살의 추억을! 우리는 그래서인지 때때로 이것을 기억하고 되새겨야만 하는 이유조차 모르기도 한다.
영화 <그날의 딸들>은 제주와 르완다의 학살을 경험한 피해자의 입과 그 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이러한 인류사의 어두운 이면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그것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풀어 나간다.
2. 그날의 딸들
영화는 제주 4.3 사건 구술 작가인 양경인 씨와 르완다 출신 대학생인 파치스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국적도 세대도 다르지만 대학살의 피해자의 딸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제주 4.3 사건과 르완다 제노사이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누군가들의 정치적인 야욕과 선동에 의해 민간인이 잔혹하게 살해되었고 그것이 오래도록 묵인되었으며 그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이 평생토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주에서는 '속슴허'라는 말이 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인데, 4월 3일부터 시작된 '그날'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하다가는 잡혀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또 제주에는 이름을 특이하게 짓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행여나 잘못 불려나갔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제주에는 비슷한 시기에 온 마을이 제사를 지낸다. 제주 인구의 열 중 하나가 '그 사건'으로 인해 희생되어서다. 제주도의 활주로 아래에는 숱한 죽음이 있었고, 천지연 폭포의 밑바닥에는 스러져간 억울한 영혼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르완다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있는 집이 드물다. 거대한 '인종 말살'의 과정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생을 다했기 때문이다. 구원과 가르침의 장이어야 할 성당과 학교는 살육의 장이 되었고, 학살의 생존자들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친다. 서로 죽고 죽이던 투치족과 후투족이 공식적으로 '화해'한 지는 2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민족이나 과거를 묻는 일은 금기시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십년이 흘렀지만 학살의 흔적은 아직도 생생하다.
3. 학살의 상흔을 치유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양경인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그를 통한 피해자들의 용서"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
제주 4.3 사건은 양경인 작가를 비롯한 진상 규명을 위해 애쓴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실제'하게 되었다. 정부는 마침내 국가 권력의 과오로 인해 수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되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비로소 마음 놓고 아픔에 대해 논할 수 있었다.
르완다는 국가 차원에서 투치족과 후투 족의 화해를 주도했다. 그들은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사과와 용서의 필요'를 설파했다. 후치족에게 남편과 아이들을 잃은 여인은 가족을 살해한 이웃을 용서했다. 분노와 원망에 사로잡혀서는 남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웃이자 원수인 남자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4. 비극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우리가 비극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한층 선명해진다.
그것은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와 희생자가 참상의 트라우마 혹은 죄악감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참상의 당사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1947년 4월 3일에 벌어진 대학살은 그로부터 47년 후인 1994년 4월 7일에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그날'의 처참함을, '그날'의 아픔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오는지를, 그것이 오늘날에 어떤 방식으로 잔존해 있는지를. 우리가 '그날'을 끝 없이 경계하고 되새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비극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므로.
[상영 일정]
[부산국제영화제 10.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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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수 없는 삼각형이라는 세계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슬픔의 삼각형>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이전 작품인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을 매우 인상 깊게 봤었다.
인간의 웃기고 추한, 하지만 주변에서 봐 왔던, 혹은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모습이 잘 담긴 작품이기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이렇게 감독의 전작처럼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현실의 많은 부분을 흡수시켜놓은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모델 커플인 '칼(해리스 디킨슨)'과 '야야(샬비 딘)'의 이야기, 2부는 초호화 크루즈 안에 탑승한 부자와 선원들의 이야기, 3부는 사고로 인해 크루즈가 전복된 뒤 무인도에서 살아남게 된 크루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영화는 모델 오디션을 보러 간 칼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의 제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가 언급된다.
면접관은 칼에게 미간의 주름을 펴보라는 말을 빗대어서 '슬픔의 삼각형을 펴보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이 '슬픔의 삼각형'은 뷰티 업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미간의 주름이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를 지녔다.
칼과 야야는 식당에서 계산 문제를 가지고 다툰다.
칼은 여자친구인 야야가 식탁 위에 있는 계산서를 모른 척 했다며, 자신은 돈 때문에 시비 거는 게 절대 아니라고, 돈 때문에 이런 말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고 계속 주장한다.
야야는 계산서를 모른 척 한 것이 아니라고, 결국 식당값을 계산한 칼에게 현금을 주겠다고 하지만 이들의 말다툼은 식당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지속된다.
이 장면에서도 웃음 포인트가 곳곳에 있다.
대표적으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주기적으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계속 막으며 말다툼하는 둘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칼은 조금은 찌질한 면모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나. 상대방의 찌질한 모습들이 보일 때 순간 짜증은 나지만 이걸 이유로 마냥 그 사람을 미워하진 않는다.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부터 현실과 많이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말다툼을 했다고 해서 칼과 야야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야야는 모델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수명이 있으므로 자신을 과시용 와이프로 삼지 않을, 자신을 진짜 사랑해줄 남자를 찾는다.
그리고 칼은 그녀에게 그런 남자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인플루언서인 야야의 협찬으로 둘은 초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둘은 또 다툰다.
야야가 상체를 탈의한 남자 승무원에게 웃으면서 인사했다는 이유로 또 작은 말다툼을 나눈다.
하지만 이런 말다툼이 모두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야야도, 칼도, 그리고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도 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 역시 우리네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크루즈 안의 모든 승무원들은 무조건 손님들에게 웃어보이고, 무엇이든 다 긍정의 대답을 할 것을 교육받는다.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은 쓰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이 승무원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
승객들을 대한 뒤 받을 돈을 생각하며 열광하고, 춤춘다.
하지만 '선장(우디 해럴슨)'은 승객들 응대에는 관심이 없다. 책임감도 없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지게 된다.
승객 1명이 자신을 응대하는 승무원에게 지금 당장 수영하라고, 선장이 와서 저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명령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근무시간에 수영할 수는 없어서 승무원이 적당히 거절하려고 하지만, 이 부자 승객은 넘어가지 않는다.
현실에서 만났던 이런 진상들이 생각나서 이 장면은 좀 많이 머리가 아팠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선장은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고, 결국 모든 승무원들은 이 승객의 명령에 따라 수영복을 입고 다함께 수영하게 된다. 이 승객 1명의 명령 때문에 각자 쉬고 있는 배 안의 청소부와 같은 직원들도 모두 강제로 수영을 한다.
그리고 승선 파티에서 부자 승객들이 본격적으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난기류라는 상황 속에서 마구 흔들리는 배 안에서 고급진 음식들을 먹던 승객들은 하나둘 토하고, 설사한다. 결국 변기도 역류하게 되어 배 안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러시아 부자이자 자본주의자인 '디미트리(즐라트코 부리치)', 유명한 모델 인플루언서인 칼과 야야, 세계 평화를 위해 수류탄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노부부를 포함한 수많은 '부자 승객'들은 체면 차릴 겨를도 없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이들이 떠난 자리를 치우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배에서 꼿꼿이 균형을 유지하며 서 있는 승무원들과 청소부들이다.
하지만 해적들이 이 배에 수류탄을 던져, 결국 배는 전복되고 무인도에 도착한 일부 사람들만 살아남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수류탄은 앞서 수류탄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는 노부부의 수류탄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주된 내용인, 3부가 시작된다.
기존 크루즈에서는 선명한 삼각형의 계급이 있었다.
가장 위에는 이 배의 손님인 여러 '부자 승객들'.
그 밑에는 승객들을 직접 응대하며 종종 두둑한 팁도 받는 '승무원들'.
그리고 가장 밑에는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온)'과 같은 사람들.
계급의 가장 맨 아래에 있던 이들은 2부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한 곳은 '섬'이다.
개개인들이 지녔던 모든 것들이 '무'로 변하고, 오직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만이 필요한 곳.
이곳에서 기존의 삼각형은 뒤집힌다.
유일하게 물고기를 잡을 줄 알고, 불도 피울 줄 아는 애비게일이 삼각형의 맨 꼭대기로 향하여 강한 권력을 쥐게 된다.
사실 섬에 있으면 모든 계급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존의 계급이 뒤집힐 뿐, 계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강한 권력을 쥐게 된 애비게일은 이제부터 자신이 이곳의 '선장'임을 모두에게 선포하며, 자신의 뜻대로 행동할 것을 강요한다.
이것도 현실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여전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들이 있다.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리고 권력을 쥐게 되는 사람들은 꾸준하게도 자신이 지닌 힘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용한다.
참 씁쓸한 현실이다.
그리고 섬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애비게일은 칼에게 먹을 것을 조금 더 챙겨주는 대신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야야는 그런 칼을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아이러니했고, 복잡했고, 흥미로웠던 관계이다.
나는 칼이 단순히 음식을 더 챙겨먹기 위해 애비게일이 원하는대로 모두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존에 야야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어떤 부족한 감정을 애비게일과의 관계를 통해 채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씁쓸하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쭉 나온다.
러시아 자본주의자인 디미트리는 파도에 떠밀려 온 부인의 시체를 보며 잠시 슬퍼한 뒤, 부인의 반지랑 목걸이를 따로 빼서 챙긴다. 무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구해달라는듯이 계속 울부짖던 다친 당나귀를 사람들이 힘을 합쳐 때려 죽인 뒤 식량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또 서로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한 뒤, 자신들이 해냈다며 벽화까지 남긴다. 남자들은 애비게일에게 가는 칼을 짓궂게, 노골적으로 놀리기도 한다. 나름 무인도 생활에 적응하여 상대방의 수염도 깎아주고, 웃고 떠들며 그렇게 생활을 이어나간다.
영화는 야야와 애비게일, 칼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야야는 섬 구석구석을 더 찾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고, 애비게일은 이런 그녀를 따라간다.
마침내 야야는 이 섬에 존재하는 리조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한다.
야야는 선뜻 발걸음을 내딛지만, 애비게일은 주저한다.
왜냐하면 애비게일은 다시 저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 삼각형의 맨 아래로 추락하기 때문에.
애비게일이 삼각형의 맨 꼭대기에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슬프게도 무인도 안에서만 한정된다.
결국 애비게일은 살기 넘치는 표정으로 야야를 몰래 뒤에서 죽이려고 하고, 야야는 이런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한다. 자신의 비서가 될 것을.
그리고 본능적으로 야야가 위험함을 느낀 칼이 그녀를 찾아 섬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중간중간 계속 씁쓸하던 감정이 결국 끝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자신이 지닌 권력을 지키기 위해 눈앞에 있는 야야를 죽여야 하는 애비게일,
이런 애비게일에게 부자 인플루언서인 야야가 추천한 직업은 자신의 비서.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남자 칼.
'슬픔의 삼각형'은 결국 궁극적으로 계급사회를 뜻하는 것이었다.
단, 이 삼각형은 사라지지 않는다. 순간 뒤집힐 수는 있어도 여전히 삼각형은 존재한다. 계급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 개인의 욕망과 욕심'이다.
크루즈에서는 부자 승객들의 이기적인 욕망과 위선으로 인해 삼각형이 존재했고,
섬에서는 애비게일의 욕심으로 인해 또다른 삼각형이 존재했다.
현실과 많이 닮아 있어서, 영화 속의 인간들이나 현실의 인간들이나 다를 게 없어서 더 웃음이 나오고, 씁쓸해지는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배우는 야야를 연기한 샬비 딘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이 작품이 그녀의 유작임을 알게 되었다.
샬비 딘은 관객들이 <슬픔의 삼각형>을 본 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싶어하면서 극장을 떠나길 바랐다.
그녀의 소망대로 이 영화는 지금도 끊임없이 많은 궁금증과 이야깃거리를 관객에게 던져줬으며,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 글의 마지막에 그녀를 향한 슬픔과 좋은 연기를 보여줬음에 감사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담아본다.
-
- 뒤집힐지언정 결코 부서지지 않는
* <슬픔의 삼각형>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슬픔의 삼각형 (2022)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
출연: 우디 해럴슨, 해리스 딕킨슨, 찰비 딘, 돌리 드 레옹
장르: 코미디, 드라마
상영시간: 147분
국가: 스웨덴, 미국
개봉일: 2023.05.17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한참 기울어져 버린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147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비교적 긴 편에 속하지만 젠더와 계급(혹은 사회적 지위),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빈부격차에 대한 풍자가 쉴 새 없이 이어져 체감 상영 시간은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다.
1부 '야야와 칼'은 전통적인 구조의 남녀 관계가 전복된 산업에서의 연인 관계를 통해 젠더 갈등을 논한다. 남성 모델인 '칼(해리스 딕킨슨)'은 시작부터 인터뷰어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한다. 이는 '칼' 한 사람에 대한 모욕이나 희롱이라기보다는 여성 모델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하는 남성 모델 산업의 실태를 언급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해석된다. 남성 모델의 수입은 여성 모델의 1/3에 불과하며 게이들의 성적 희롱을 견뎌야 한다는 통념이 존재하며 미팅에서 헤프게 웃어보라는 소리를 듣는 둥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 오프닝 시퀀스가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러한 불합리한 처사가 여성에게 적용된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이 보아 왔지만, 성별이 전복된 케이스는 흔히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과 남성 모델 간의 수입 차이는 '칼'과 '야야(찰비 딘)'의 데이트에서 젠더 간의 갈등을 촉발시킨다. '야야'는 여성 모델이기 때문에 '칼'보다 수입이 많고, 훨씬 잘 나간다. 하지만 데이트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쪽은 '칼'이다. 단지 돈을 언급하는 남성은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야야'는 본인이 '칼'보다 수입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굳이 본인이 돈을 내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지는 않는다. 그녀의 무신경한 행동은 '칼'의 분노를 유발하고, 급기야 감정싸움으로 치닫는다. 어찌 보면 '칼'의 행동은 쪼잔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 또한 연인 관계에서 비롯된 성적 고정관념 때문에 생긴 시각일 터다. 결국 남자는 '팩트'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여자가 문제를 인식하게끔 만들고, 여자가 본인의 행동을 인정하는 것으로 두 남녀의 싸움은 일단락된다. 상처가 될 법한 말들을 주고받았지만, 둘 사이에는 얄팍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고, 또 SNS를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이해관계로도 얽혀 있다.
2부의 '요트'는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계급 간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무대다. 돈으로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부자들, 그리고 군말 없이 지시를 따라야 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이들의 경계선에 있는 듯한 인플루언서 커플까지. 영화 포스터에 볼 수 있듯 세 계급은 마치 삼각형 같은 구도를 이루고 있다. '슬픔의 삼각형'이란 1부 모델 오디션 장면에서 언급된 미간 사이의 주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계급 간의 구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세 계급이 전부는 아니다. 삼각형에 낄 수조차 없는, 부자들의 눈에 띠지 않는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노동자 계급이 뒤편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요트에 오른 최상류층들은 위선과 모순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다. 일례로,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했다며 애정을 다지는 부부는 수류탄을 제조하는 방산업자다. 전쟁으로 남의 목숨을 팔아 번 돈으로 부를 축적한 작자들이 '사랑'을 논하고 있으니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똥(비료)'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왕이 된 러시아 갑부의 아내는 어떠한가. 그녀는 연회를 준비하는 요트 직원들로 하여금 수영하며 놀 것을 지시한다. 근무 중에 수영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요구이지만 직원들은 이에 불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요트 위에서 슬라이드를 타고, 러시아 부자는 자신이 마치 노동자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선량한 사회지도층이 된 듯 도취된다. 영화는 모순으로 똘똘 뭉친 인간 군상들을 통해 노골적일 정도로 자본주의가 만든 계급사회를 풍자한다.
위선자들의 향락과 사치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악천후로 크루즈가 흔들리자 부자들은 최고급 음식을 앞에 둔 채 저항 없이 토사물을 내뿜기 시작한다. 고상한 척으로 절대 막을 수 없는 생리 현상 앞에 수치심을 느낄 여력 따위는 없다. 제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일지라도 한낱 먹고 싸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화는 가감 없이 보여준다. 변기를 붙잡은 채 괴로워하며 배설물 속을 헤엄치는 부자들의 모습은 안쓰러움이 들기는커녕 폭소를 부른다. 비위를 자극할 정도로 더럽고 노골적인 장면들을 활용하긴 했지만 그들의 과거 행적을 돌이켜 본다면 이 정도는 자비로운 처사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요트가 박살 나는 순간 역시 그들이 저지른 위선이 바다 위 암초가 되어 스스로를 나락으로 굴러떨어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평화나 운운하던 방산업자들은 결국 본인들이 만든 수류탄에 의해 종말을 맞았으니까.
요트는 전복됐고, 온전할 것만 같았던 삼각형은 뒤집혔다. 3부 '섬'은 계급의 최하위 층에 있던 화장실 청소부 '애비게일(돌리 드 레옹)'이 그를 고용한 상류층 위에 군림한다. 제아무리 부자들일지라도 당장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요트에서 그들이 뱉은 토사물과 똥을 닦던 여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혈혈단신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이들은 아주 잠깐 동안 함께 화합하여 작은 평등 사회를 이루는 듯했다. 하지만 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잡을 줄 아는 '에비게일'이 등장하면서 8명의 소수 집단에도 자연스레 계급이 생겨나고 이들만의 생존 질서가 형성된다. 기존의 계급이 역순으로 뒤집히는 것도, '에비게일'을 중심으로 한 모계사회가 형성되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쯤 돼서 1부의 '야야'와 '칼'의 대화를 한 번 더 소환해 본다면 영화는 더욱 재밌어진다. 앞서 '야야'와 젠더 고정관념에 대해 열띤 입씨름을 벌였던 '칼'은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같은 포지션에 가두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섬에 떨어진 이후 '칼'은 '야야'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던가. '에비게일'을 도와 물을 길어오고, 일손을 돕는 것은 '야야'였으며 '칼'은 가만히 앉아 한밤중에 프레첼이나 훔칠 뿐이었다. 마치 본인이 성적 고정관념의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했던 그는 막상 여자친구를 지켜주어야 할 순간이 닥치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야야'는 더 이상 그에게 섹시한 남성이 될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녀는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았다. 앞서 여자친구에게 성토하듯 외쳤던 '칼'의 이상과 논리도 결국 모순에 불과했음을 보여준 셈이다.
관객은 '에비게일'이 요트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견뎌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누구지?'라 묻는 '에비게일'에게 '화장실 청소부'라 답하는 관리인 ‘폴라'를 통해 작업 노동자들에 대한 평소의 인식이 드러난다. 애초에 요트도 없어진 마당에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책이 무슨 소용이람. 따라서 '에비게일'이 이룩한 작은 혁명은 관객의 응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며 꼼짝없이 그를 선장으로 모시는 돈 많은 남성들의 태도 변화는 일종의 ‘사이다’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합리한 계급 구조가 뒤집혔을 때, 이상적인 평등 사회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는 게 곧 드러난다. 섬의 주도권을 잡은 ‘애비게일’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는 듯했다. 능력 없는 남성에겐 식량이 주어지지 않았고, 몸이 불편한 여성은 일을 못해도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제공받았다. 엄격하지만 합리적이고, 규칙만 잘 지킨다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법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집단 내에 균열을 일으키는 장본인은 시스템을 만든 ‘애비게일’ 쪽이다. 그녀는 구조정에서 잘생긴 백인 남성인 ‘칼’과 잠자리를 즐기고, 성을 착취당한 '칼'의 손에 쥐어지는 건 고작 프레첼 한 봉지뿐이다. 이는 곧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를 선악 관계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불합리함을 경험했던 계급 최하위의 노동자가 권력을 쥐었을 때 그들 역시 자신들을 착취했던 부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순적인 인간으로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부는 작품의 제목이 가진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야야'와 '애비게일'은 무인도인 줄 알았던 섬에서 리조트를 찾는데 성공한다. 섬에 문명이 존재하고,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건 희망적인 소식일 터이나 기쁨에 젖은 '야야'와 달리 '애비게일'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어둡다.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애비게일'이 만든 임시 사회의 끝을 의미한다. '애비게일'은 다시 화장실 노동자의 위치로 되돌아갈 것이며 그녀 앞에 굴복했던 부자들은 다시 계급 최상위층에 올라 그녀를 부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리조트는 '애비게일'에게 희망 같은 존재가 돼줄 수 없다.
제목이 '슬픔의 삼각형'인 이유는 사회의 계급 구조가 뒤집힐지언정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그 완고한 특성이 절망과 허무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애비게일'은 8명의 생존을 돕는 데 일조했으나 현실로 복귀했을 때 그가 얻을 수 있는 보상이라곤 기껏해야 '야야'의 비서 자리다. '야야'가 은연중에 내비친 멸시 어린 태도에서 이들 사이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의 벽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애비게일'은 마침내 분노한다. 리조트를 발견한 건 '야야'와 자신뿐. 눈앞의 대상을 제거한다면, '애비게일'은 지도자로서의 권력을 누리고 젊고 잘생긴 남성의 몸을 계속해서 탐할 수 있다. 살의가 넘쳐흐르는 독사 같은 그의 표정,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에 젖은 '야야', 그리고 뒤늦게 '야야'를 구하러 가는 '칼'의 삼각 구도로 이야기는 끝난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됐지만 '칼'과 '야야'의 로맨스도, '애비게일'의 행복도, '야야'의 생존도 모두 기대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하나같이 다 모순적이고, 그놈이 그놈이니까. 본작은 모든 걸 조목조목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비판과 풍자를 휘갈겼지만 궁극적으로는 폭력과 욕망, 위선으로 똘똘 뭉친 모든 인간의 몸뚱이를 해체해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감독의 냉소적인 시선은 관객의 씁쓸한 감정을 한없이 끌어올리고, '칼'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같이 '슬픔의 삼각형'을 절로 찌푸리게 된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 받아 작성한 게시물입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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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영화 다른 배우, 리메이크 영화 8선
글로벌 시대를 맞아 영화들도 글로벌하게 제작되고 있는 요즘!
그에 따라 리메이크 영화들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리메이크 영화의 장점은 같은 캐릭터를 여러 배우의 연기로 접할 수 있다는 점 아닐까요?
나도 몰랐던 내 취향에 맞는 배우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여러분은 어느 배우의 연기가 취향에 맞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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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독전 시즌2를 맞이하며
영화 독전을 아시나요?!
원래 재미있게 본 콘텐츠가 있다면
그 대사가 기억이 강렬하게 남잖아요!
저는 바로 영화 독전이 그랬어요!
영화 대사 中
"어떤 한 인간을 X나게 집착하다 보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신념 같은 게 생기거든?"
저는 이 장면이 엄청 강렬하게 다가왔나 봐요~
그럼, 영화 독전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액션, 스릴러, 느와르, 공포, 미스터리, 서스펜스
감독 : 이해영
각본 : 정서경, 이해영
출연진 : 조진웅, 류준열, 김성령, 박해준, 차승원, 김주혁
개봉일 : 2012년
평점 : 8.42
스트리밍 : NETFLIX
기획 의도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
실체 없는 적을 추적하라!
의문의 폭팔 사고 후, 오랫동안 마약 조직을 추적해온 형사 '원호'
의 앞에 조직의 후견인 '오연옥'과 버림받은 조직원 '서영락'이 나타난다.
그들의 도움으로 아시아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과 조직의 숨겨진 인물
'브라이언'을 만나게 되면서 그 실체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잡게 되는데...
여담
영화 독전은 짜임새 높은 스토리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력 하나만큼은 일품인 영화이다.
무엇보다 영화 독전에서 조진웅이 실제로 마약을 흡입하는 과정에서
이 가루의 정체는 소금과 분필 가루였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아파 보였을지도?)
영화 독전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불리며
독전 시즌 2가 촬영 중에 있다고 한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독전 결말을 살펴보자면...
서영락(류준열)이 이선생으로 밝혀지며,
이선생을 잡기 위해 원호(조진웅)은
라이카에게 미리 위치추적기를 심어
이선생을 찾는데 성공한다.
이 둘은 집안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다
집안에서는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말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평이 갈리긴 하지만.
시즌 2를 생각하면 조진웅이 류준열을 쏜 거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즌 2에는 류준열이 안 나오기 때문에?!
이 영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배우들의 미친듯한 연기력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 부분만 살펴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빛을 발휘했던 영화였다.
한줄평 : 넘어설 수 없는 연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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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지내던 동석이형을 건드린 깡패 ㅋㅋㅋ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에취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llwey01
사용중인 이어폰 : 저지연 무선이어폰 GTW270 hyb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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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결말포함] 자유시간 없는 슬픈 킬러의 운명은? 1부
#킬러영화#액션영화#레옹
이 영화는 1부와 2부로 놔눠져 있습니다
영화 '안나'는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 있는 영화입니다
스토리나 액션도 뛰어난 영화이지만 주인공의 입장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더 큰 감동이 선사될 것입니다구독?부탁드려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영화 '안나'
네이버별점8.64#무비워크#영화추천#영화#재미있는영화#영화리뷰#최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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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미소리> 메인 예고편
여기 소리에 울고 웃는 부녀가 있다 매미소리만 들으면 곡소리를 내는 딸, '수남' 곡소리 나는 초상집만 다니면 신명이 나는 아버지, '덕배' 최악의 죽음을 맞이하려는 딸과 최고의 죽음을 찾으려는 아버지 진도의 어느 뜨거운 여름날 20년 만에 마주친 부녀의 듣그러운 불협화음 한 판이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