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2024-05-09 17:17:08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이 만났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로봇 드림(Robot Dreams), 2024
스페인 / 애니메이션 / 102분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기를, <로봇 드림>
어두컴컴한 집 안, 맛없는 냉동 도시락이 전자레인지 안에서 빙빙 돌아간다. 2인용 게임을 혼자 하는 게 익숙한 도그의 저녁밥이다. 도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설렘이나 기쁨, 행복은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일상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간혹 찾아오는 새로움은 앞으로 다가올 지겨움으로 여겨질 뿐이다. 무엇 하나 즐겁고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도그는 오늘도 옆집 커플의 행복을 애써 외면하며 입에 숟가락을 집어넣는다. 무료한 하루가 또 이렇게 가나 싶었는데, 돌연 TV 광고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외로우신가요?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도그는 곧바로 반려 로봇을 주문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존재가 등장하자 도그의 일상은 180도 바뀐다. 도그의 친구이자 가족,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가 된 로봇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간다. 반려 로봇이지만, 나의 짝을 의미하는 ‘반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로봇 역시 (도그처럼) 하나의 인격체로 묘사된다. 영화는 도그와 로봇의 존재를 특정한 종으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표현한다. 우린 냉동 도시락이 데워질 때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 어떻게든 머무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로봇 드림>은 모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도그와 로봇을 만나게 했다.

둘의 시너지는 순풍을 타고, 재미없던 삶은 무한한 행복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해수욕장에서 강제 종료된 로봇으로 인해 멈추고 만다. 로봇이 고장 난 이유는 언급되지 않는다. 바다를 헤엄치고 잠수까지 한 로봇이 고장 나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영화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도그가 외로움에 빠진 이유나 로봇을 움직이는 주요 부품에 관한 설명, 로봇의 자연스러운 감정 및 이성 습득도 마찬가지다. 전부 영화의 몰입도를 깨트릴 수 있는 물음표지만 이야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전개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빈 곳에 별표를 붙이고 시간을 들여 메우려 하지도 않는다. 움직이지 못해 주인과 더는 함께할 수 없는 로봇에 더 집중한다. 무엇보다, 도그와 로봇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직진하기 바쁘다. 일찍부터 작고 사소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구분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중요한 건 뒤가 아니라 앞에 있고, 어제도 오늘도 아닌 ‘내일이 될 오늘’이 더 가치 있다는 <로봇 드림>만의 심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폐장을 선언하고 여름 개장을 예고한 해수욕장 공고문 앞에서 도그는 절망한다.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반려 로봇을 샀는데 한순간에 외로움을 반납받게 된 상황이라니, 도그와 로봇에게 벌어진 첫 번째 위기가 분명했다. 그러나 둘의 첫 이별(위기)은 별다른 사건충돌 없이 영원한 이별로 남는다. 이야기는 도그와 로봇의 각자 입장으로 나눠 두 갈래로 진행된다. 역시 <로봇 드림>이 가진, 아주 능숙하고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로봇을 데려올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도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신문 광고에 또 반응한다. 설산에서 처음 본 동물들과 썰매를 타며 나름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눈사람에 눈코입을 선물하며 제2의 로봇을 만나고, 새해 기념으로 연을 날리다 멋진 선글라스를 낀 오리도 사귀지만, 역시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마음만을 기준으로 한, 기울어진 저울을 가진 도그에게 다른 동물과의 관계 형성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해수욕장에 멈춰 있던 로봇은 꿈을 연속적으로 꾸며 진짜 세상을 경험한다. 꿈이 전부 악몽이지만,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로봇은 ‘성장’한다. 도그 없이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보고, 관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영역임을 몸소 체험한다. 슬픔과 별개로 기존 관계가 깨지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인생의 아이러니한 흐름도 깨닫는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관계(삶)가 주는 진짜 교훈은, 전제를 잘 알고 있음에도 매번 다시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로봇은 해수욕장 개장 후 원숭이에게 구출되지만, 악어가 운영하는 철물점에 팔려 온몸이 산산이 조각난 후 전원이 꺼진다. 삶이 끝났음을 받아들인 순간, 너구리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외로움에 결국 굴복한 도그는 상점에 반값으로 나온 틴(로봇)을 산다. 한때 도그의 반려였던 로봇은 몸통 대신 달린 카세트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완전한 이별과 함께,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반려’가 또 등장한 순간이다.
너구리와 살기 시작한 로봇은 틴과 함께 걸어가는 도그를 우연히 발견한다. 둘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 로봇은 다시 한번 꿈꾼다. 도그는 몸이 바뀐 로봇을 단번에 알아보고, 둘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지만, 곧이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다. 틴은 도그를, 너구리는 로봇만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로봇은 카세트 되감기 버튼을 눌러 꿈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곤 도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인다. 도그는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고, 로봇도 팔과 다리를 흔든다. 나란히 서서 같이 췄던 춤을 각자 다른 곳에서 추는 도그와 로봇. <로봇 드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이다음에 등장한다. 호텔 꼭대기 층에서 춤추던 로봇이 도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재빨리 숨는 장면이다. 로봇과의 추억에 젖어있던 도그는 돌아선다. 그렇게 틴과 손을 잡고 로봇과 영영 멀어진다.

우리는 알고 있다. 왜 로봇이 꿈을 꾸고, 도그가 왜 틴을 사고, 로봇이 마지막 순간에 왜 숨어버렸는지. 우린 모두 각자의 외로움에 벗어나기 위해 애쓴다. 나를 위한, 오직 나만을 이해하는 단 한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두 배로 더 빨리 쓰기도 한다. <로봇 드림>은 이를 로봇(꿈)과 도그(외로움 탈피)로 보여줬다. 로봇이 겪은 불행과 도그가 겪는 슬픔은 형태만 다른 특별한 데칼코마니였다. 꿈(로봇)은 현실(도그)이고, 현실을 겪은 로봇은 다시 현재를 살기 위해 꿈을 꿨다. 도그도 멈추지 않고 로봇과 같은 모양을 찍어내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원하는 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세상에서 외로움과 이별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나아가 전반에 깔려있던 구멍에 과거가 돼버린 관계(기억)들을 채우게 하고, 불완전한 관계를 향한 갈망이 메마르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한다. 특히 도그와 로봇이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 속 엔딩과 연결되면서 짜릿한 쾌감을 선물한다(주인공도 삶에 허덕이다 마침내 자기만의 알코올 농도를 찾고, 엔딩 삽입곡 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에 맞춰 막춤을 춘다).

완벽하지 않고 때론 상식적으로나 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인간관계 안에서 꿈을 꾸다 다시 꿈을 접고, 또다시 꿈꾸며 사는 모두에게 즐거운 한때가 되었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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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려 깊은 시선이 안내하는 아이의 세계
- 누구나 거쳐왔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안경을 쓰지 않고 앞을 바라보는 것처럼 명확하진 않지만, 온기와 촉감, 나긋나긋한 말소리와 사랑한다는 말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한다. <클레오의 세계>는 사려 깊은 시선으로 여섯 살 소녀의 세계를 잠시 엿본다. 누구나 겪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한 뼘 더 성장하는 그 순간 등 84분 동안 유려하게 담긴 그 여름날의 추억은 우리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파리에 사는 여섯 살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 이 소녀 곁엔 언제나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가 있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글로리아는 클레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나라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이들의 관계는 유사 모녀와도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글로리아는 모친상을 당하고, 급히 고향인 아프리카로 간다. 클레오의 곁엔 유모 대신 바쁜 아빠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글로리아의 빈 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아빠는 우울한 딸의 행복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글로리아에게 보낸다. 재회한 클레오와 글로리아. 하지만 그곳의 시간은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도 그 사실은 말하지 않겠죠. 그것은 비밀스럽고 아주 은밀하며 무언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클레오의 세계>는 나라와 인종을 넘어선 소녀 클레오와 유모 글로리아 간의 사랑을 그린다. 감독의 말처럼 이들의 관계를 지탱하는 건 무언의 사랑. 극 중 이들의 관계는 소녀와 유모를 넘어 모녀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상 곁에서 있어 주며 씻기고, 밥 먹이고, 등하교를 도와주고, 놀아주고, 잠을 재워주는 등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부모 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별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갓난아이 시절과 달리, 그 개념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황에서의 이별은 클레오에게 큰 슬픔과 절망으로 다가온다. 마치 엄마와의 이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유년 시절 느꼈던 그 소중한 감정만을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을 알면 이별도 알아야 하는 법. 클레오는 여름방학 동안 더 이상 글로리아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유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모이기 이전에 그녀는 한 남매의 엄마다. 어린 시절 돈을 벌기 위해 클레오를 돌봐 준 글로리아는 늦게라도 진짜 부모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큰 탈은 임신 중이라 보살핌이 필요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아들의 마음도 얻어야 한다. 이에 따라 글로리아와 함께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클레오의 계획은 틀어지고 만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클레오의 세계>의 빛나는 순간은 여섯 살 소녀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여름방학 동안 일련의 일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 속 가장 중요한 인물인 글로리아와의 갈등을 빚고, 도망쳐 나오는 순간, 클레오는 엄마의 품과도 같은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리고 있는 힘껏 수영해 그곳을 빠져나온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여섯 살 소녀는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비로소 엄마(실제 엄마, 유모)와의 이별을 인지하고, 스스로 헤어짐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이 어린 소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극 중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는 클레오다. 감독은 1.37:1 비율의 화면비, 스토리보다 소녀의 감정선으로 이어지는 구성, 요동치는 감정의 파고를 표현한 애니메이션 등 클레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 두려움, 슬픔, 혼란 등 클레오의 감정선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장면은 눈에 띈다. 이는 클레오의 세계로 인도하는 징검다리인 동시에 유년 시절 느껴봤던 마음과 기억을 가닿게 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어 이 꼬마의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랑으로 성장하고 이별로 단단해진 여섯 살 소녀의 마지막 모습은 왠지 모르게 눈물 난다. 홀로서기에 따른 대견스러움일까, 아님 유모와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우리의 얼굴은 담담한 클레오일지, 아님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글로리아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영화 <클레오의 세계> 스틸 / 그린나래미디어(주)
덧붙이는 말: 영화는 ‘로린다 코레이아에게’라는 헌정 문구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이 인물은 극 중 글로리아처럼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의 어린 시절 그를 돌봐줬던 포르투갈 이민자다. 로린다 코레이는 감독이 6살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클로이의 세계>의 또 다른 제목은 <마리의 세계>라고 해도 될 듯싶다.
평점: 3.5 / 5.0
한줄평: 이별의 성장통으로 우리는 자랐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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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는길이 멀었던 이유
다큐멘터리_학교가는 길
감독 : 김정인
개봉일 : 2021.05.05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큐멘터리 학교가는 길 리뷰입니다.
학교가는 길은 2017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설립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요, 서진학교의 설립과정 뿐만 아니라 지역구에서 이루어지는 소외 계층에 대한 대립들,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언뜻 보면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대립하는 사람들 조차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담은, 다양한 시선으로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교가는 길은 우리 주변에 정말 이런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견에 대한 시선들, 배척하는 마음들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학교가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2~3시간 가량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들을 보면서 아직도 장애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겠다는 부모님들의 노력도 엿볼수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제도가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특수학교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삭발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지에 대해서 알고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서울시 강서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부터 많은 역사들을 알아야 영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제가 설명하기에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따로 찾아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감독님과,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부모님과도 만날 수 있는 GV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거기서 감독님께서 하신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자연스러운 사회의 현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합당한 현실인지 물음표를 던질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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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클라베 | 의심으로써 바로 세운 신비함과 믿음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교황 사망 이후 추기경단 단장 '토마스 로렌스'(랄프 파인즈) 추기경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수장을 선출하는 선거, '콘클라베'를 총괄한다. 로렌스는 무사히 선거를 관리한 뒤 다음 교황이 뽑히는 대로 교황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교황청에서 일하는 동안 오히려 신앙심이 약해진 것 같았기 때문.
하지만 콘클라베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혼란스러워진다. 후보 간의 정치 공세가 시작되면서 유력 후보인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트랑블레'(존 리스고),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 추기경과 관련된 추문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이에 로렌스는 추문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는 사이 갑작스레 유력 교황 후보로 떠오른 그는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의심 위에 지어진 교회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토마스는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회자되는 사도는 아니다. 초대 교황 베드로, 배신자 유다, 복음서 저자인 요한 등에 비하면 성경 속 활약이 부족하기 때문. 12 사도에 포함되지 않는 사도 바오로보다도 알려진 행적이 부족할 정도다. 그나마 부각되는 이미지도 부정적이다. 예수의 손과 허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는 한 그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 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사도 토마스는 누구보다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의심은 가장 강력하고 명확한 신앙고백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의 신성을 의심한 것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환희를 담아 예수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이라고 고백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임을 밝힌 토마스의 고백은 기독교의 근간인 삼위일체론의 근거가 된다.
즉, 토마스는 흔히 간과하는 신앙의 핵심 중 하나, 의심을 상징하는 사도라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거나, 자신의 확신에 사로잡혀서 새로운 앎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신까지도 의심하는 사람의 믿음이 더 건강하다는 것. 실제로 토마스를 혼내는 대신 제자의 의혹을 풀어주고 확신으로 가득 채워준 예수의 모습에서도 맹신보다 의심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 토마스의 가르침은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콘클라베>를 통해 스크린 위로도 펼쳐진다. 또 한 명의 토마스,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이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관장하면서 깨달은 의심의 중요성이 정치 스릴러의 형식으로 드러나기 때문. 특히 그의 깨달음이 개인적, 종교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 사회적 함의로도 확장되기에 <콘클라베>는 더욱 흥미롭고, 의미심장하다.
의심하는 '토마스'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의 의심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전임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의심한다. 추기경단 단장으로서 교황의 최측근인 그조차도 교황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 때문. 그는 교황의 사인이 무엇인지, 선종 전에 이상한 낌새는 없었는지를 캐묻는다. 더 나아가 교황이 마지막으로 접견한 사람과 처리한 업무는 무엇인지도 조사한다.
콘클라베 중에는 교황 후보로 거론된 추기경들을 의심한다. 특히 그들의 추문을 조사한다. 수녀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 자신의 추기경직 파면 소실을 감추고 추기경들을 매수했다는 소문. 교황직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거나, 라틴어 미사 부활 및 성소수자 차별과 같이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로렌스는 새 교황이 결정되는 순간까지도 모든 추문의 진상을 확인하려 애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유력 후보들의 추문이 하나 둘 사실로 밝혀지자 콘클라베 결과는 예측불가능해진다. 그 과정에서 로렌스는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유력 후보로 떠오른다. 진심을 담은 그의 강론이 결정적이었다. 콘클라베 전 미사에서 그는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 신을 의심한 예수처럼 의심하는 교황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의심 없는 확신이 통합의 적이고, 다양성이 곧 교회의 힘이라 믿었으니까.
그의 강론은 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촉구하는 진보 성향 추기경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를 차기 교황 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로렌스는 기뻐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과거보다 신앙이 약해졌다고 느끼는 그는 자신이 과연 교황직에 적합한지 의심한다. 더 나아가 다른 추치경들의 추문을 조사한 것이 교황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아니면 관리자의 업무에 충실한 것인지도 자문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의심하는 그는 실로 '토마스'답다.
의심으로써 쌓아 올린 스릴러
삼중의 의심 덕분에 <콘클라베>는 정치 스릴러로서의 쾌감과 종교 영화로서의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다. 우선 로렌스가 모든 소문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과정은 탁월한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로렌스도, 관객도 진실을 모르는 입장이다 보니 마지막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
랄프 파인즈의 연기도 한 몫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 <007> 시리즈, <타이탄>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볼트모트, M, 하데스 등의 역할을 맡은 배우이지만, <콘클라베>는 그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다. 모든 이야기와 의도, 장르적 쾌감까지도 토마스 로렌스의 의심에서 비롯되는데, 랄프 파인즈는 냉정한 듯 흔들리는 눈빛으로 추기경이라는 지위 뒤에 숨은 인간적인 연약함을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한 소문에 관한 상반된 정보가 투표 전후로 제공되거나, 얼마 간의 텀을 두고서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는 식의 완급조절도 인상적이다. 특정 캐릭터를 악역으로 단정하지 않으면서 정치극으로서의 스릴을 끌어올리기 때문. 관객이 캐릭터가 전혀 다른 추기경 중 호감 가는 인물을 응원하도록 유도한 뒤,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의 진실과 그의 최후를 지켜보고 확인하는 과정의 긴장감과 묘미가 상당하다.
이에 더해 일반적이지 않은 배경도 정치극의 스릴을 강화한다. 카메라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콘클라베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교황 사망 시 반지에 표식을 남기는 것, 하얀 연기와 검은 연기를 만드는 방법, 투표 순서 및 방법 등. 이러한 디테일은 콘클라베의 신비함을 벗기고 속살을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쾌감을 충족시키며, 정쟁의 서스펜스도 증폭시킨다. 관음증적 욕망과 권력욕이라는 인간적 욕망이 만나 서로 공명하기 때문이다.
스릴러로 벗겨 낸 신성함
이 대목에서 삼중의 의심은 종교적 메시지도 전해준다. 교황 선거를 정치 스릴러로서 풀어낸 <콘클라베>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성함도 한 꺼풀 벗겨낸다. 실제로 카메라는 전통에 스며든 현대적 흔적을 포착한다. 최신식 호텔을 연상시키는 교황청 숙소, 어벤져스 기지처럼 자동적으로 닫혀서 외부와의 소통을 막는 창문, 투표지뿐만 아니라 염소산칼륨을 함께 태워서 만드는 하얀 연기와 검은 연기가 대표적이다.
현대적 이미지는 교회와 현실의 갈등, 전통과 미래의 모순을 시각화한다. 콘클라베의 속살을 보여줌과 동시에 가톨릭 교회의 속살도 함께 드러내는 셈이다. 실제로 극 중 추기경들을 둘러싼 추문은 사실 낯설지 않다. 이미 수차레 지적받고 공론화된 가톨릭 교회의 오래된 문제들이기 때문. 일례로 신부들의 성 추문과 교회의 조직적 은폐 시도는 <스포트라이트>나 <신의 은총으로> 같은 영화가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다.
추치경들의 부패도 심심찮게 비판받고 있다. 당장 프란치스코 교황도 2020년에 죠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을 시성성 장관에서 전격 경질한 바 있다. 베드로 성금으로 부동산에 투자하고 교회 기금을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문제제기가 경질 이유였다. 이에 더해 교회의 방향성 역시 뜨거운 감자다. 성소수자 및 이혼자, 타 종교인에 대한 처우와 관련해서는 교회 내에서도 좀처럼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즉, <콘클라베>는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는 교회가 현대 사회에 발맞추지 못한 세태를 비판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이 무너지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로마 시내에서 발생한 테러로 인해 성당의 창문 한쪽이 파손되고, 추기경들은 부상당한다. 이 이미지는 교회와 세속을 가르는 강고한 경계의 붕괴와 현대 사회의 변화에 적응 못한 교회의 퇴락을 동시에 상징하는 듯하다.
문을 열어야 보이는 진리
흥미롭게도 <콘클라베>는 폭탄 테러가 발생한 순간의 연출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로렌스는 삼중의 의심 끝에 자기 이름을 투표지에 적는다. 그가 투표함의 문을 열고, 표를 넣으며 함의 문을 닫으려는 바로 그 순간, 시스티나 성당은 폭탄 테러로 인해 먼지로 뒤덮이고 콘클라베는 중단된다. 사건이 수습된 뒤 콘클라베는 파손된 시스티나 성당의 창문이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로 재개된다.
이때 핵심은 '문'이다. 문은 로렌스의 의심을 상징하는 오브제이기 때문. 로렌스에게 문은 '판도라의 피토스'나 다름없다. 피토스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판도라처럼 로렌스는 문 뒤에 숨은 진상을 찾을지, 아니면 문을 외면할지 고민을 거듭한다. 일례로 그는 행방불명된 보고서를 찾기 위해 봉인된 전임 교황의 방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한다. 추문에 휩싸인 추기경들을 조사하기 위해 그들의 숙소 문을 열어야 할 지도 고뇌한다.
하지만 의심 끝에 문을 열면 그는 고통스러울지언정 진실에 한 발짝씩 가까워진다. 즉, 문은 의심을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진실과 진리가 보인다는 메시지의 상징이다. 테러 이후 성당 창문이 열린 채로 콘클라베가 재개된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그가 의심을 멈추고 투표함의 문을 닫으려는 순간, 콘클라베는 엉망이 된다. 마찬가지로 의심 없이 자신이 믿는 신과 교리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의심으로 빚은 <콘클라베>의 진의
테러 이후 다른 종교에 더 강경하게 대응하자고 주장하는 보수파 추기경들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그 누구든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보수파 추기경들처럼 특정 이념에 경도되거나, 특정 사상을 확신하는 극단주의자들로 인해 갈등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이 커지는 중이기 때문. 이는 <콘클라베>의 메시지에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새로 뽑힌 교황도 의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교회 내에서 비주류 지역으로 여겨지는 분쟁 지역에서만 활동했고, 인터섹스이지만 스스로를 남성으로 규정하는 인물이다. 그의 활동과 정체성은 가톨릭 교회가 현대 사회과 교회 사이의 문제와 모순에 대해 관습과 전통에 의존하는 대신 새롭게 대응해야 함을 상징한다. 이는 그가 순결을 뜻하는 '인노첸시오'를 새 교황의 이름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콘클라베>의 모든 플롯을 뒷받침하는 로렌스의 서사도 새 교황의 선출로 완결된다. 이는 콘클라베 시작 미사에서 의심하는 교황이 필요하다던 로렌스의 강론에 맞는 응답이 신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자신에게 아직 신앙이 있는지, 다시 기도할 수 있을지 의심하던 그는 콘클라베로써 답을 찾은 셈이다. 그렇기에 콘클라베 기간 동안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영화가 끝나는 결말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끝없는 의심의 다른 이름, 진리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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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 자발적으로 입문해서라도 받고 싶은 양질의 팬서비스
2021년이 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여파는 극장가에 아직 남아있고 회복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극장가에서 장기적 흥행을 보이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이다. 필자는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은 특정 감독과 작품을 빼면 지지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일본에서 보인 놀라운 흥행과 한국에서도 개봉 전부터 보이는 범상치 않은 예매율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일본에서는 일종의 사회 현상이자 신드롬이라고 평가 될 정도이니. TVA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라 개봉 며칠 전부터 TVA를 정주행했다. TVA를 보고 든 생각은, 영상미와 독창성이 가미된 B급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평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면, 가장 크게는 스토리이다. 스토리를 풀어놓고 보면 정말 진부하다. 시련을 견뎌내고 강해지는 주인공과 추가되는 일행, 그리고 마치 게임의 보스 레이드마냥 적(혈귀)과 싸우는 내용의 반복. 크게 생각할 것 없이 정말 단순한 서사이다. 다만 이를 보충해주는 것은 상당히 공들인 것이 보이는 작화와 때때로 사용되는 적절한 3D의 사용, 그리고 반복되어 나오는 혈귀들이 상당히 다채롭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복이지만 즐겁고 흥미로운 반복이라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것을 극장판으로 관람한다면 어떨까라는 기대감과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TVA의 러닝타임은 30분인데,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거의 2시간(117분)이다. 영화를 보고나니, 필자가 예상했던 장점과 단점이 그대로 나왔다.
TVA의 연장선답게, TVA를 보지 않으면 감흥을 느끼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의 시작부터가 이미 TVA를 보고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재하에 시작을 하기 때문이다. 흔히 '팬'들만을 위한 팬서비스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에 자발적으로 입문해서라도 받아야 하는 수준의 팬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상술하였다시피 서사의 독립성이 낮을뿐더러 연출이 아닌 설명과 독백을 통해 풀어나가는 방식은 정말 진부하고 안일하기 짝이 없지만, 이를 보충하는 캐릭터들의 개성과 힘준 것이 보이는 액션씬은 정말 만족스럽다. TVA에서 보여준 훌륭한 작화를 극장판에서도 안정적으로 잘 보여주는데, 극장판답게 전투씬의 규모가 커져서 재미를 더해준다. TVA가 만족스러웠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팬덤이 말하는 것 처럼 명작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상술하였던 서사와 전개의 반복과 안일함의 단점이 장점으로 일부 덮혀질 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서사적 헛점은 팬덤측에서도 보일 정도인데, 극장판으로 만들기위해 불필요한 장면과 연출로 시간을 끈 것이 확연히 느껴지며, 빌런의 교체와 등장이 정말로 뜬금없다. 웬만해선 호평을 남기는 팬덤에서도 비판점이 나올 정도면 일반 관객들은 대체 얼마나 크게 이 단점을 느낄 것이란 말인가. 영상미 측면에서도 애니메이션계의 획을 그었다고는 말하기 힘든 수준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한정시켜보자면 이미 한참전에 아키라와 같은 뛰어넘을 수 없는, 아직도 영향을 끼치는 혁신이 존재하며, 예술성 측면에서는 유럽 애니메이션들에 한참 밀리고도 남는다. 팬서비스라는 것이 이 영화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철저히 팬덤을 저격한 상업성만이 존재할 뿐, 예술적 측면에서는 칭찬할 점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괜찮은 오락성 영화라 평할수는 있겠지만, 애니메이션계에 획을 그었다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로 인해 처참해진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아직 애니메이션화되지 않은 원작의 분량이 상당히 많고, 벌써 2기 발표가 났다는 점을 들어 귀멸의 칼날 프랜차이즈의 미래를 충분히 주목할 만 하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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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K로 담아낸 거대한 무의미
다큐멘터리에 스포일러랄 게 있겠으나, 그래도 스포일러를 포함한다고 미리 명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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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라 함은 현실이 아닌 것일진대, 현실은 참으로 지난하고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현실적인' 고민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현실적으로 먹고 살 만한지, 현실적으로 내 수준에 맞는 사람은 누구인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투자하는 게 옳은지. 나아가 '현실적인 조언 구합니다'라는 게시판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실적인'이라는 말이 앞에 붙는다는 것은, 극대의 행복이 아니라 어느 정도 고만고만한, 내 능력 한에서 최대로 가능한 정도를 말하는 게 대부분이다. 턱걸이 같다. 턱걸이를 넘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의미는 턱걸이를 할 철봉 위에 있다. 그것을 넘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요즘은 주식에, 부동산에, 코인에, 그러니까 돈이 곧 의미다. 자산을 증식하지 못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하므로 행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이라는 아름다운 착취 속에서 삶의 의미를 부지런히 찾아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건 무엇인가. 모이지 않는 월급, 오르지 않는 노동가치, 그러므로 살 수 없는 부동산, 애프터 없는 소개팅에서 지불한 돈, 건설적이지 않은 잡담, 뭐 그런 것들일까.
의미와 기호로 가득한 세상 너머, 해발 1,500미터 고지에 '오제'라는 습지가 있다. 그 습지는 인간으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지 않고, 인간 역시 그 무엇도 앗아가지 않는다. 박혁지 감독은 <행복의 속도>라는 제목으로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아니, 그 속에 살고있는 사람을 담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쫓는 대상은 대략 80kg의 짐을 지게에 싣고 걸어서 산장까지 가는 '봇카' 이가라시, 이시타카이다. 박혁지 감독은 광활한 습지를 4K의 해상도로 보여주고, 봇카들의 걸음을 뒤쫓는다.
나는 자본주의와 얼마간의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 초반 그들이 80kg를 지고 산을 오르고 걷는 걸 보면서 '모노레일을 깔면 안 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우리나라는 산 곳곳에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 필요한 짐이며 도구들을 실어 올린다. 모노레일을 깔면 무거운 짐들을 금방 보낼 텐데. 게다가 '몸빵을 하면 돈은 많이 벌겠지?' 라는 생각까지.
그러다 후반부에 가서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이며 포드주의 비슷한지를 생각했다. 히말라야도 아닌 산을 걸어서 짐을 옮기는 행위를 경제적이지 않다, 즉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그만 자본과 연결시키며,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도 역시 이 체제 속의 인간일 뿐이었다.
영화는 이가라시와 이시타카의 차별점을 조명한다. 둘 다 봇카이지만 둘은 꽤 다르다. 우선 이시타카는 '일본청년봇카대' 회장으로서 봇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활동가이다. 겨울이 되어 오제의 산장도 문을 닫고, 봇카도 할일이 없어졌을 때 도시로 나가 봇카를 홍보한다.
이시타카가 걷는 도시의 거리는 오제의 속도와는 정반대다. 다급하게 점멸하는 신호등, 그에 맞추어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 다급한 발걸음 사이에 이시타카가 서 있다. 사람들은 봇카 일에서 어떤 보람을 얻는지 묻는다. 이시타카는 말한다. 산장이 있음으로써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산장이 있음이 좋다고.
행위에 보람이든, 의미든, 뭔가가 있어야 하는 걸까?반면 이가라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도 모자라 목에 카메라까지 걸고 걷는다. 오제의 풍경을 카메라에 섬세하게 담는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큰아들을 데리고 짐을 가져다 주던 산장에 가기도 한다. 잠자리를 잡고, 뛰어놀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이가라시의 아내는 농장에서 일한다.
때는 설이다.
이시타카와 이가라시 가족 모두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시타카의 부모는 몸으로 하는 일인데 몸이 상하면 어떻게 할 건지, 그때 되면 어떻게 먹고 살건지를 묻는다. 물론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지만 이시타카의 표정은 어둡다.
이가라시는 노모에게 봇카를 하면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노모는 마치 아이처럼 그 풍경을 반긴다. 이제 가기 힘들어진 그곳, 그 나무, 그 꽃들. 계절과 햇빛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탄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가라시는 대답한다. 누가 기다리고 있고, 시간이 정해져있다면 힘들었겠지만 자기 속도로 걷다 보면 도착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등산을 할 때 나 혼자 느릿느릿 걸어가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다. 그런데 여럿이 갔을 때 무리의 제일 끝에 산을 올라가면 그보다 힘들 수가 없다. 그때부터는 산의 풍경이고 뭐고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서 질문할 수 있겠다. 우리는 왜 힘든가.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남들보다 빨리 걷기 위하여, 남들보다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들이 등에 지고 있는 짐과 봇카의 짐 중 무엇이 더 무겁다고 말하기 쉽지 않을 거다.
카메라는 봇카들의 가쁜 숨, 무거운 발걸음을 집요하게 담다가, 그들의 가정으로 이동했다가, 또 오제의 광활한 자연을 비추기도 한다. 새로운 풍경이 아니다. MSG를 치지 않은, 그래서 맹맹하고 심심한 그들의 일상이다.
초반부에는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했고, 계속 이렇게 걷기만 할 것인가 생각했다. 기승전결도 없고 문제도 없으며, 변화라고는 오제에 찾아오는 계절 뿐인데. 114분의 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봇카들이 걸음을 거듭하고, 나는 봇카들의 걸음을 눈으로 좇으면서 나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고, 어떤 의미들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는지, 그 의미는 대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왜 내 눈에 아름다운 오제에 모노레일을 깔지 않는 저들이 이상했는가.
저들의 행위가 무의미하고 현실적이지 않게 보인 거지. 저렇게 힘든 일을 할 거면 도시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생각.
그래서 행복의 속도는 무엇일까.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속도는 방향을 포함한 벡터값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속도란 행복의 속력과 방향을 내포한 제목일 것이다.
느림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속력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으며 왜 가는지가 더 중요하겠다. 사물에서, 사람에게 덕지덕지 붙은 의미와 상징과 기호들을 걷어내야만 비로소 그것 자체가 보인다.
봇카들은 오제에 거대한 의미를 두지도 않고, 그들이 하는 일에서도 역시 내일은 더 빨리 가야지, 내일은 더 무거운 짐을 들어야지 하고 포부를 갖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자기 속도로 걸어갈 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어쩌면 너무 뻔하게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우리들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어쩌면 지난하고 외로울 길을 각자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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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주차 씨네랩 개봉작 추천작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매 주 화요일!
한 주의 개봉작 중에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을
씨네랩이 직접 큐레이션하여 소개드리는 콘텐츠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는 코로나 팬데믹,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극장가의 관객 수가 현저히 감소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극장가의 개봉작을 추천드리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힘차고 영화로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면서,
그럼 다같이 이번 주 주요 개봉작을 알아보도록 할게요. :)
1. 스크림
공포 | 미국 | 114분
감독 :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 출연 : 멜리사 바레사, 니브 캠벨, 커트니 콕스 등
개봉 : 2022년 2월 17일
배급사 : 롯데엔터테인먼트
"잔혹한 살인 사건으로 우즈보로 마을이 충격에 휩싸인 지 25년이 지난 후, 고스트 페이스를 한 새로운 살인마가 다시 십대들을 노리면서 마을의 어두운 비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관전포인트* :
공포/호러영화의 상징적인 레전드 작품.
11년만에 다시 돌아온 <스크림>은 북미에서 개봉 당시 <스크림>시리즈 역대 최고 박스오피스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개봉 당시 북미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북미의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로부터 역대 <스크림> 시리즈 중 최고 수준의 영화라고 평가받는만큼 <스크림>시리즈를 사랑하시는 관객들 혹은 <스크림>시리즈를 기다려온 관객분들에게 의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지않을까 기대도 해보는데요.
<스크림>을 이끌었던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이제 없지만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감독이 그 유산을 잘 이어받아 신선한 재미와 공포영화의 오락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니브 캠벨'과 '커트니 콕스'등 <스크림>의 역대 주인공, 원년멤버들이 이번 영화에도 출연할 예정이며 새로운 배우들와 조화를 이룬 세대교체 <스크림>의 모습도 기대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드라마 | 일본 | 126분
감독 : 하시모토 나오키| 출연 : 오이다 요시, 아리무라 카스미
개봉 : 2022년 2월 17일 개봉
배급사 : 영화사 진진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 루가 봄과 함께 떠났다 사야카는 처음 겪는 이별이 낯설기만 하다 오래전 아들을 잃은 할아버지 후세와 함께 헤어진 이들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려 하는데… 그곳에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관전포인트* :
일본 나오키상 수상작가 '이주인 시스카'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
<양과자점 코안도르>,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 다양하고 훌륭한 영화를 제작한 영화제작사 '윌코'의 설립가이자 30년 이상의 경력을 통해 일본영화의 대표주자로 불리우는 '하시모토 나오키' 감독의 연출작입니다.
또한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아역 배우 '닛츠 치세'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를 연출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딸로 유명한 아역 배우인데요. 뮤지컬,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역배우라고 합니다.
'닛츠 치세'의 사랑스러운 매력과 그의 반려견과의 앙상블, 또한 극 중 세대를 뛰어넘는 따뜻한 우정을 보여줄 일본의 베테랑 배우 '오이다 요시'와의 연기합도 매우 궁금해지는 영화입니다.
3. 극장판 주술회전 0
애니메이션 | 일본 | 105분
감독 : 박성후 | 출연 : 오가타 메구미, 하나지와 카나, 코마츠 미카코 등
개봉 : 2022년 2월 17일 개봉
배급사 : ㈜대교
"어릴 적 소꿉친구인 오리모토 리카를 교통사고로 눈앞에서 잃은 옷코츠 유타. “약속해, 리카와 유타는 어른이 되면 결혼하기로” 옷코츠는 원령으로 변한 리카의 저주에 괴로워한 나머지, 자신도 죽기를 바라지만 최강의 주술사인 고죠 사토루에 의해 주술고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동급생인 젠인 마키, 이누마키 토게, 판다를 만나면서 굳은 결심을 한다. “살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필요해” “나는 주술고전에서 리카의 저주를 풀겠습니다” 한편, 옷코츠와 친구들 앞에 과거에 일반인을 대량으로 학살해서 고전에서 추방된 최악의 주저사인 게토 스구루가 나타난다. “12월 24일, 우리는 백귀야행을 결행한다” 주술사만의 낙원을 만들려는 게토는 비술사를 섬멸하겠다면서, 신주쿠와 교토에 천의 저주를 내리는데…과연 옷코츠는 게토를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고 리카의 저주를 풀 수 있을까?"
*관전포인트* :
일본의 만화책 시장에서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연재 만화책이라고 평가받는 <주술회전>.
<극장판 주술회전 0>은 역대 일본 TVA 극장판 중 흥행 순위 3위에 등극한 작품이라고 할만큼 유명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개봉하여 지금까지 총 100억엔에 가까운 수입을 달성했다고 하니, 엄청나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원작 만화책을 보신 분들에게는 작품이 애니메이션화(영상화)되어 극장에서 좋은 사운드와 큰 화면으로 만나보실 수 있다는 점에서 희소식이 아닐까 싶으니, 꼭 극장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이 소개하는 개봉작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 개봉작은 평소보다 주요 화제작이 많지 않은 것 같은 예상이 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번 주도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씨네랩 콘텐츠는 다음 주에 더 재밌는 개봉작 소개와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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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아메리카4, "그"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
2021. 04. 2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
*영상 타임라인*
00:00 이제 시작이다
00:43 캡틴아메리카4가 온다
02:34 1대 캡틴, 크리스 에반스
03:48 숙제타임
05:17 와칸다 포에버
06:05 제2의 블랙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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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와이 우먼 킬 시즌 2> 공식 예고편
[왓챠 익스클루시브, 2021년 7월 28일 공개]
쉿, 시체와 비밀은 묻어둘 것!
돋보이는 존재가 되고 싶은 평범한 주부 엠마.
탐나는 것이 생긴 80세 재벌의 젊은 아내 리타.
1949년 LA, 욕망을 선택한 여자들의 치밀한 계획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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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30초 예고편
일도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스물아홉 ‘자영’(전종서).
전 남친과의 격한 이별 후 호기롭게 연애 은퇴를 선언했지만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못 이겨 최후의 보루인 데이팅 어플로 상대를 검색한다.
일도 연애도 호구 잡히기 일쑤인 서른셋 ‘우리’(손석구).
뒤통수 제대로 맞은 연애의 아픔도 잠시
편집장으로부터 19금 칼럼을 떠맡게 되고 데이팅 어플에 반강제로 가입하게 된다.
그렇게 설 명절 아침!
이름, 이유, 마음 다 감추고 만난 ‘자영’과 ‘우리’.
1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1일 차부터 둘은 서로에게 급속도로 빠져들게 되고
연애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관계 속에 누구 하나 속마음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데...
이게 연애가 아니면 도대체 뭔데?
발 빼려다 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