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4-22 13:39:43
4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쿵푸팬더4> 100만 돌파!
<쿵푸팬더4> 100만 돌파!
하지만 전주에 비해 주말 관객수가 감소했는데요.
차주 <범죄도시4>의 개봉으로 박스오피스 순위는 큰 변동이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쿵푸팬더4>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1주 차 보다 관객 수가 크게 감소하며 간신히 정상을 지켜낸 것으로 보입니다. 2위는 1,178만 명을 달성한 <파묘>가 차지하였고, <남은 인생 10년>이 범상치 않은 흥행세를 보이며 3위를 기록했습니다.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4>가 개봉하는 오는 24일부터 박스오피스가 크게 변동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A24 작품 중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시빌 워>가 2주 차에도 1위를 지켜냈습니다. 납치된 ‘발레리나 뱀파이어 소녀’의 저택 탈출 호러를 그린 <애비게일>이 2위,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가 누적 수익 1억 7천만 달러를 기록하며 3위로 내려왔습니다.
Relative contents
-
-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음악의 힘
혼자 산 지 오래된 사람들은 혼잣말을 잘한다. 혼잣말은 대개 말로 끝나지 않고 리듬을 부여받는데, 나이듦의 증거라고도 한다. 난 주로 '안경이 어디 갔을까'를 노래한다. 안경잽이들에게 가장 난제는 안경찾기이다. 안경이 있어야 안경을 찾는데, 안경이 없어서 안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어디에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책 싫어하고 운동 싫어하고, 미술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음악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동서고금 어디에도 그들만의 음악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슈퍼스타K, K팝스타, 위대한탄생,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국민가수, 싱어게인... 노래 경연 프로그램만 해도 벌써 몇 개인지.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들 어쩜 그리 노래를 잘하는지.
그덕에 내한 온 해외가수들이 감격하고, 음악영화들이 대박을 터뜨린다. 나도 음악영화들을 참 좋아하는데, 3일차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두 개의 음악영화를 보고 왔다. <코다>와 <노래로 쏘아올린 기적>이다.
이 영화들을 음악영화라고 감히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노래가 주제이니 거칠게 음악영화로 분류해본다.
장애인 가족 속 비장애인 자녀, <코다>
<코다>는 농인가정의 청인 자녀를 뜻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아카데미에서 상 받았다 정도나 알았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터라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찾아보니 프랑스 영화인 <미라클 벨리에>의 리메이크판이었다. <미라클 벨리에>의 주인공 폴라는 초등학생이고 <코다>의 루비는 고등학생이다. 폴라 엄마랑 루비 엄마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폴라의 부모는 목축업에, 루비의 부모는 어업에 종사하고 폴라에게는 남동생이, 루비에게는 오빠가 있다, 정도가 바뀐 설정이다. 주인공이 청소년으로 설정되면서 남학생과의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도 한 스푼 첨가되었다.
장애인을 부모로 둔 비장애인 아이는 한 번도 아이일 수 없다. 세상으로부터 부모를 지켜야 하고, 비장애인들의 세상에 부모의 언어를 통역해주어야 한다.
농인의 가정에 청인, 게다가 노래 잘하는 자식이라니. 이건 축복일까? 자식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아예 노래라는 게 어떤 것인지 들어본 적이 없어 그저 물고기를 잘 잡은 것과 비슷한 기분일까. 감히 추측할 수 없지만, 그냥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로 느껴본다.
영화는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자식인 루비마저도 부모를 도와야 할 사람, 지켜야 할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을 가족에게로 갈아넣고자 한다.
그러나 오빠의 말처럼, 루비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의 가족들은 잘 살았다. 비장애인들과 함께 그럭저럭 살아왔다. 장애인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비슷하지 않은가. 정상인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 사회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장애도 있으면서 왜 애를 낳아서는, 거기에 속된 말들까지 덧붙여.
노래가 뜻대로 되지 않자 루비는 말한다. 한 번도 부모님 없이 해본 적이 없다고. 루비의 부모는 좋은 부모였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다뿐이지 스스로의 역할들을 해내며 살아간다.
장애인을 재단하고, 범주화하고, 자신만의 개념 속으로 밀어넣는 것, 즉 대상화는 혐오이고 폭력이다. 그건 장애인이 아니야, 내가 아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행동해야지, 바람직한 장애인의 모습이 아니니 도울 필요도 없지, 장애인이면 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이런 문장들이 랜선을 타고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폭력을 자행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음악은 <미라클 벨리에>가 좋았고, 영상미는 <코다>가 좋았다. 두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 오디션을 볼 때 수어를 함께 사용하는 장면은 <미라클 벨리에>에서도, <코다>에서도 눈물이 났다. 다 알면서도.
폐허 속에서도 음악이 흐르네,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
영화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네 명의 아이들이 냄비 따위를 들고 노래를 해서 돈을 버는데, 벌이가 영 시원치 않다. 그중 노우르는 유일한 여자아이이자 모임의 리더이다. 어지간한 남자아이들보다 배포도 크고 용감하며, 똑똑하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 났지만 꿈이 크지 않은 동생 무함마드에게, "유명해져서 세상을 바꿀 거야"라고 말하라며 협박하는 무서운 누나이기도 하다.
이들은 물고기를 잡아 번 돈을 밀수꾼자에게 날렸지만 사원에서 코란 성가를 불러 돈을 벌어 악기를 마련한다. 무함마드는 동네 음악선생에게 과외도 받는다. 이후 결혼식 축가 등 돈 되는 대로 일을 하다가(그 어린 아이들이) 갑자기 누나 노우르가 신부전으로 쓰러진다.
너무 비싼 수술비 때문에 신장이식을 받던 노우르는 투석 중 사망하는데, 그 이후 무함마드는 대학에 진학하여 노래가 아닌 택시기사로 학비를 번다.
그러나 우연히 음악경연대회에 원격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옛날 누나와 함께 투석하던 아밀을 만나게 된다. 무함마드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는 아밀을 보고 무함마드는 다시 한번 누나를 떠올리고, 노래를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TV에서 '아랍 아이돌'이라는 경연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된다. 장소는 이집트. 가자지구에서 이집트까지는 사실상 갈 수가 없다. 그때, 무함마드는 예의 돈 떼먹은 밀수업자를 찾는다. 비자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밀수업자도 폭탄으로 인해 다리를 잃었다. 전쟁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파괴한다. 무함마드는 가까스로, 또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겨우 이집트에 도착하지만, 표를 구할 수가 없다. 절망한 무함마드는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른다. 무함마드의 노래소리를 듣고 옆칸에 있던 사람이 표를 주고, 무함마드는 경연에 나간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무함마드가 노래를 부를 때 가자지구의 사람들이 열렬히 환호하는 모습이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도 음악은 축제가 되고, 한 명의 영웅을 응원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모은다.
음악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폐허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를 구원하는 소리.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은 사실 스토리라인이 허술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클리셰가 지나치고, 또 신파적이기도 하다. 부자연스러운 대사들과 연기들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한다.
<코다>가 헐리우드식의 전형적인 영화라면, <노래로 쏘아 올린 기적>은 우리에게 너무도 낯선 문법이다. 배우, 이름, 음악, 배경, 모든 것이 낯설다. 두 영화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에는 상대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은 너무도 생경하였는데, 나는 외국의 음악이라면 팝이나 알지 그 외 문화권의 노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감동 포인트를 찾는다는 것도 사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고, 지금도 수많은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의 사람들이 학살되고 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신의 이름으로 백린탄 등의 미사일을 쏘며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죽인다. 한때 홀로코스트를 겪었으면서도 팔레스타인의 민간인들을 다 죽일 기세이다.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적인 것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 상당히 꺼려지지만, 한 개인으로서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의 편을 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관심을 가진다. 자원과 관련되기 때문이 아닐까? 러시아의 석유, 천연가스와 우크라이나의 밀 농사가 각국의 경제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직까지도 내전이 그치지 않는 아프라카 대륙의 르완다, 최근에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내전, 그리고 수십 년째 지속되는 팔레스타인 전쟁, 미얀마의 민주항쟁에는 관심이 덜하다.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예상해 본다. 가자지구에 미사일이 날아가도 우리나라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목소리로 가자지구의 상황을 알렸다.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나라일지라도 한 가수가 유명해짐으로써 가자에 대해, 팔레스타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실화여서 슬프고, 실화여서 다행이지만 또 불행이기도 하다.
폐허에서도 예술은 살아있고, 당장 집이 날아가고 사람들이 죽어도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한다. 그것이 음악의 힘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 이래 음악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고,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를 어찌 기존의 문법으로 재단하고 비평하겠는가. 그건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찾아왔을 때 해도 늦지 않다.
-
- 7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7월 3주차의 극장가를 달군 영화들과 박스오피스 다함께 알아볼까요?
.
.
.
[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7월 셋째 주, 1위를 차지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그 뒤를 잇는 굳건한 <엘리멘탈>은 역주행을 넘어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대표작은이 되면서 꾸준한 관객들이 호평 속 기분 좋은 흥행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주말 관객수 120만명을 넘기면서 5일째 누적관객수 170만,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인공지능 '엔티티'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에단 헌트의 활약을 그린 영화로, 완성도 높은 액션으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서는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 위에서 악당과 맨몸 액션을 선보이고 이후 등장하는 절벽 추락씬등 짜릿한 톰크루즈의 도전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엘리멘탈>은 428만 관객 돌파와 함께 역대 픽사 영화 중 국내 매출 1위까지 달성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주말을 지나 누적 관객수 428만 명을 돌파해 멈출 줄 모르는 흥행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엘리멘탈>의 흥행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이목이 집중되고있습니다.
재개봉 첫날 6위로 출발했던 '여름날 우리'는 재개봉 3주차에 오히려 순위가 두 계단 상승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두 청춘스타 허광한과 장약남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첫사랑의 모든 순간을 완벽한 케미로 그려내며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여성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누적 관객수 20만 명을 돌파하며 경이로운 역주행 신화를 작성해 나가고 있는 <여름날 우리>의 흥행 추이에 이목이 집중이 됩니다.
<범죄도시>의 흥행으로 전체 매출액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6월 한국영화 매출액에서 92.8%를 기록했다고하며 팬데믹 이전 한국영화 97.3% 수준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눈 뗄 수 없는 CG 액션, 릴 웨인, 에이셉 라키 등 레전드 힙합 뮤지션들이 다수 참여한 강렬한 ost들로 채운 힙한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5위를 차지하며 누적관객수 87만을 기록하며 점점 순위권에서 밀리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7월 셋째주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 북미 박스오피스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동 성노예와 구출 이야기를 다룬 <Sound of Freedom> 2위, <인시디어스: 빨간문>이 3위 <인디아나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4위를 기록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PART ONE>은 북미 공개 첫 주말 매출액 5600만 달러를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습니다. 이 수치는 해당 시리즈 중 3번째로 높은 기록으로 영화 제작비에 가까운 수익을 첫주에 내면서 성공적으로 시리즈를 기록하였습니다.
-
- 1917(2019/ 미국)
- (이미지 출처: 구글이미지)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4월6일. 노란 들꽃으로 가득한 어느 아름다운 들판. 나무에 기대어 영국 병사 둘이 잠시 눈을 붙이고 있다. 영국 육군 제8보병연대 소속 톰 블레이크 병장과 윌리엄 스코필드 병장이다. 블레이크에게 한 중사가 다가와 병사 한 명과 함께 사령부로 가보라는 명령을 전하면서 이들의 꿈 같은 휴식은 끝이 난다.
블레이크는 별것 아닌 명령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옆에 있던 스코필드와 함께 사령부에 도착하나 사령관 에린모어 장군으로부터 매우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독일군의 계략에 빠져 다음날 아침 총공격을 할 데번셔연대 지휘관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중지 명령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데번셔연대 군인 1,600명의 목숨이 걸린 임무였다. 더욱이 그 연대엔 톰 블레이크의 형, 조셉이 소속되어 있는 형편. 장군은 진지 건너편 독일군이 작전상 후퇴를 한 상황이어서 저항이나 공격은 없을 것이니 즉시 떠나라고 명령한다.
신중한 스코필드는 장군의 정보가 틀린 것이라면 적에게 노출될 지도 모르니 밤에 출발하자고 의견을 제시하지만 형을 구해야만 한다는 급한 마음에 블레이크는 당장 출발하라는 명령과 적은 없다는 정보를 강조하며 그 자리에서 임무에 나선다.
아군 진지의 좁은 참호밖으로 나가는 것부터가 난관. 최전선의 지휘관이 일러준대로 아군 철조망, 무너진 청음초, 적군 철조망까지의 길은 정확했으나 그 뒤부터는 오직 둘이 지도에 의지해 나아가야만 했다. 장군의 말대로 독일군은 철수한 후여서 공격은 없었지만 철수하면서 설치한 부비트랩이 폭발하는 바람에 죽을 뻔한 스코필드를 블레이크가 간신히 구한다.
위기를 넘기며 전진하다가 영국과 독일의 공중전에 노출되고 마는 두 사람. 추락한 독일군 비행기가 폭발하기 직전, 블레이크는 적군이 편히 죽게 그냥 두고 가자는 스코필드의 의견에 맞서 독일군을 구하나 그의 칼에 찔려 전사하고 만다.
반사적으로 독일군을 사살한 뒤 블레이크의 죽음으로 망연자실한 스코필드. 정신을 차리고 전사한 친구의 반지와 인식표를 챙기며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데 그의 앞에 다른 연대 소속 아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지휘관인 스미스 대위는 스코필드의 목적지에서 가까운 에쿠스트까지 차를 태워주겠다며 호의를 베푼다.
우여곡절 끝에 에쿠스트에 이르는 다리 앞에 도달했으나 독일군의 폭파로 다리가 두 동강이 나 차로는 건널 수가 없었다. 스코필드는 스미스 중위와 헤어져 무너진 다리를 간신히 건너는 중에 매복 중이던 독일군의 저격을 받는다. 한 건물의 2층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안 그는 혼자 남은 독일군을 사살하나 적군이 쏜 총에 철모가 날아가면서 받은 충격으로 쓰러져 계단을 굴러 잠시 의식을 잃는다.
어둔 밤. 떨어지는 빗물에 눈을 뜬 스코필드는 조명탄이 터지는 가운데 에쿠스트 마을로 진입하던 중 적의 추격을 받는다. 그곳은 이미 적에게 점령 된 상태. 도망하다가 간신히 몸을 피한 곳에서 숨어지내고 있는 한 프랑스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버려진 갓난 아기를 기르고 있었다.
서툰 프랑스어와 영어를 교환한 끝에 데번셔연대가 있는 숲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된 스코필드는 여성과 아기에게 음식이 없음을 알고 그가 지니고 있던 식량 모두와 우유를 남긴다. 이제 곧 날이 밝아 총공격 명령이 떨어질 시각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긴박한 상황.
적들이 사방에 포진해 있을 것이지만 스코필드는 장군의 명령과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명탄과 총알을 헤치고 전진해야만 한다.
결국 적군들의 일제사격을 받게 되자 이를 피해 강물로 뛰어들어 생사를 수 차례 오간 후에 프랑스 여성이 알려준대로 강을 따라 가다가 강둑으로 헤엄쳐 나가 숲에 이른다.
죽을 고비를 너무 많이 넘긴데다 총도 군장도 모두 잃어버리고 기진맥진한 스코필드는 숲속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린 듯 끌려간다. 소리를 따라가니 숲속에 빼곡히 들어찬 사병들 가운데서 한 사내가 찬송가를 부르고 나머지 병사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데번셔연대였다. 그러나 이들은 후발대이고 선발대는 이미 출격한 후였으며 블레이크의 형은 선발대였다.
일각을 다투는 형편에 참호 속을 누비다가는 매켄지 중령의 공격명령을 도저히 중지시키지 못할 것임을 즉각 깨달은 스코필드는 참호 밖으로 뛰쳐나와, 적진을 향해 순차적으로 돌격하는 병사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내달려 사령부로 향한다.
드디어 공격명령 30초 전에 매켄지 중령에게 장군의 친서를 전달하는 스코필드. 간신히 공격은 중지시켰지만 이제는 블레이크와의 약속을 지킬 차례.
조셉 블레이크를 찾아 이리저리 뛰던 그는 톰이 알려준대로 그와 닮은 블레이크 중위를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와의 두 가지 약속도 지키게 된다.
<1917>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이다. 92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촬영상,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거머쥐었던 화제작이어서 꼭 보려고 아껴두었었다. 그리고 소문대로 롱테이크는 볼만했다.
우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여서 그런지 내러티브에 힘이 있다. 전장에 있어 보지 못했거나 치열한 전투를 여러 차례 겪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지 못할 대사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관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차대전이라는 큰 전쟁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 하나 없이 이 영화를 대작으로 느껴지게 한 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여겨지게 하는 롱테이크 촬영기술에 돌려야 할 것이다. 영화 공부를 하며 수 천 편의 작품들을 보았지만 이렇게 촬영한 영화는 처음 보았다. 카메라도 등장인물들도-전방과 후방 모두에서-움직이게 동선을 배치하여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긴박감을 유지한다. 콘티를 도대체 어떻게 짰을까.
스코필드가 정신을 잃는 장면에서 암전이 있던 것 빼고는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테이크로 진행되는데 편집은 또 어떻게 한 것일까.
요즘 영화들이 리얼리티를 기치로 내세우며 특별한 촬영기법이나 편집방법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나 TV드라마처럼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는데 정말 오랫만에 영화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철조망에 걸려 있거나 땅에 파묻히거나 물 위에 떠 있는 시체들의 모습은 폭력적인 교전 장면을 대신하여 전쟁의 잔인함과 허망함을 충분히 전달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분노하게 만든다.
백미는 스코필드가 매켄지 중령을 만나기 위해, 돌격하는 전우들과 직각의 방향으로 뛰는 광경이다. 그가 카메라 앞으로 전력을 다해 계속 달려 오는데도 카메라와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목적지에 쉽게 닿지 못하는 답답함과 저러다 끝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하는 장면. 이는 또 국가와 국가 사이의 치열한 전쟁 가운데 한 개인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야만 하는 또 하나의 전쟁이 동시에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한 장면이기도 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슴에 사랑하는 이들의 사진 두어 장을 품은 채 생명을 걸고 전투에 나서는 젊은 군인들과, 그들의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을 제물로 삼아야만 얻어지는 국가의 위신과 이익의 대비가 관객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어찌 생각하면 롱테이크의 촬영기법이 관객의 시선을 제한하는 듯하여 다소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무에서 시작하여 나무로 끝나는 마무리가 진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영화 전체를 마치 편집하지 않은 한 장면처럼 만들어 두 시간 가량을 신속하게 지나게 한 샘 멘데스 감독의 실험적인 연출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인류 역사를 통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었던 무수한 젊은이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지켜보며 만약 정치인들이 군인들만큼이나 사리사욕 없이 그들의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해 왔다면 우리나라는, 세상은 좀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하릴없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2020.최수형).
-
-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
" 심심한데 맛있는 영화 한 편 보고 싶을 때 "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 <리틀 포레스트>. 사실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영화를 봤지만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아 끝까지 보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보러 가려고 표까지 끊어놨건만 밀려드는 일이 바빠 보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차차 잊혀 간 작품으로 남을 줄 알았는데 ... 이런저런 영화를 보다 보니 자극적인 맛에 질린 때가 오고야 말았다. 액션은 너무 정신없고, 드라마는 너무 마음 아프고, 로맨스는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껴두었던 이 영화가 떠올랐다. 주저 없이 영화를 틀고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보았다. 103분이라는 적당한 러닝타임 동안 숨소리만 내고 영화를 즐겼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아주 진한 여행을 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를 특별하다고 정의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다만, 기존에 있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영화였다. 정말 <리틀 포레스트>만의 색깔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꽤 슬픈 일이다. 꿈을 위해 도시로 나선 사람들이 각박함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다는 건 그리 현대사회가 가진 슬픈 이면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 속 미디어는 귀농에 대한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장면들로 가득 채워 도시와 대비되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마치 그곳을 현실처럼 꾸며놓는다. 하나, 20년간 시골에서 자란 내가 생각하기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꿈꾸는 시골에서의 삶이란 영화만큼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리틀 포레스트> 완벽한 대리만족의 영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보지 않았기에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은 이럴 때 이점이 된다. 그저 낭만을 편집해 붙여놓은 장면들은 간접적으로 겪어 보기에는 행복한 꿈이지만, 현실은 이상적인 판타지가 아니다. 감독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언질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다.
그러니까, 현실성은 많이 떨어진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고 몇몇 관람객들도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틀 포레스트>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아마 '힐링'이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따듯한 난로를 켜고,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요리해먹고, 친구들을 만나 그저 수다나 떠들 수 있는 그런 환경은 현대인들이 가장 꿈꾸는 이상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도시로 모여든다. 도시에서의 삶은 다친 마음과 허무한 나날뿐이다. 도시를 떠나올 때 혜원(김태리 분)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시험에서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해가는 삶이란 결국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에서 누구에게도 재촉받지 않고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것에만 집중한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괜찮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 이 단순한 문장으로 영화는 진짜 소중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작정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해서 살아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맞는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음식을 담아내는 컷들이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감독이 마치 어떻게 찍어야 예쁘게 나오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음식의 조리과정이나 맛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영화를 찾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성을 다한다는 것, 온 마음을 전부 내비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틀 포레스트> 속 음식에 관한 의미는 깊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길거리에 파는 컵밥 같은 게 아니라 직접 수확한 재료로 시간을 들여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본질적인 의미에 관한 '채움'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무하고 공허하기만 한 도심 속 삶에서 내 손으로 만들어본 적 없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것. 음식은 사계절의 시간을 따라가며 마음속 엄마(문소리 분)를 불러일으키고, 때를 기다려 하루를 보내도록 유도한다. 영화 속 음식은 곧 혜원의 내적 감정을 좀 더 활성화하는 장치였을 것이다.
먹는 것으로 시작해 먹는 것으로 끝을 낸다면, 먹방과 다를 것 없는 한 편의 영상으로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본질은 이야기에 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영화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스토리면에서도 타 영화들과 비교되지 않는 탄탄한 구성을 선보인다. 서울살이에 지쳐버린 딸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오래전에 떠난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감독은 영화 초반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그랬다' 식으로 이야기를 군데군데 던져두고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도 하지 않는다. 관객은 백 스토리를 통해 '그랬겠구나'하고 암묵적인 내용만을 파악할 뿐이다. 하나, 놀랍게도 이러한 전개가 큰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읊조리는 주인공을 따라 천천히 가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당도해있다. 삶 속 여유에 대한 메시지를 이야기해주기 위해 비교적 느리게 스토리를 전개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마치 지루한 전개에 답답해하는 관객들에게도 여유를 가져라 하고 말하듯이 말이다. 유년시절의 주인공과 현재의 주인공, 시간의 순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 이유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여백이 많은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극의 호흡을 느리게 다듬어 관객에게 쉴 시간을 주는 그 순간은 극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러한 여백을 만드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여유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아름다워야 하며, 셋째는 흐름을 끊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나가야 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이러한 여백의 공간을 천천히 메워나간다. 계절이 되었다가, 재료가 되었다가, 마음이 되었다가 말이다. 겨울을 시작으로 이어가는 계절 컷은 시간의 진도를 맞출뿐더러 각 계절이 가진 색과 향을 그대로 담아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과 초록색으로 도배된 봄, 찐한 햇빛을 머금은 여름과 갈색빛의 가을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이해시키는 여백들은 영상미와 더불어 영화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주위 인물인 재하(류준열 분)나 은숙(진기주 분)의 모습을 보면 혜원을 만날 수 있다. 재하는 자존감을 갉아먹는 회사에서 뛰쳐나와 농사라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고, 서울의 삶을 꿈꾸는 은숙은 현실과 타협하고 고향에서 살아간다. 영화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현실의 모든 삶을 포기하고 농촌으로 돌아와 그럭저럭 살아라가 아닐 것이다. 혜원이 선택해야 할 삶의 방향을 친구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적당히 괜찮게 타협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벗어나고 진짜 자신의 삶 근본으로 돌아올 것인지 말이다. 혼란스러운 혜원의 마음이 남 일 같지 않은 건, 20대라는 배경과 인물 설정이 현대 사회 취업준비생인 20대들과 지나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그냥 휘둘리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혜원의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고한다. 때문에, 감독은 재하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다. 혜원은 지금 아주심기를 준비중일 거라고. 아주 쓸쓸한 겨울 될 테지만 좀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지는 시기가 오게 될 거라고 말이다. 당신도 아주심기를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앞서 말했듯 영화가 단순히 귀농의 판타지를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는 다소 머니까 말이다. 임순례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만의 공간에서 당신만의 휴식'이 아닐까. 어린시절에 살았던 고향이 혜원에게 하나의 '공간'이 되었듯이 당신 또한 그러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집이 될수도 있고, 카페가 될수도 있고,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오로지 당신의 공간에서 당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통해 성장하고 바뀌어나가는 것. 이러한 성장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근본을 찾아낼 것을 강조한다. 또한 감독은 20대 혜원의 모습을 통해 당신의 휴식을 권고한다. 바쁜 도시생활에서 벗어난 혜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삶은 늘 뜻대로 되지 않고 버겁기만 하다. 주위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서서 똑같은 위치에 맴돌고 있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청춘이 없을 것이다. 영화는 말한다.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에 집착하기보다, 혜원의 '배가 고프다'는 말처럼 인간의 기본 욕구에 좀 더 충실하라고.
무작정 좋은 영화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고, 너무 영상미에만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 사회 영화는 너무 맵고 짠맛에 길들여져 있다. 이것이 꼭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자극적인 것들로는 마음을 채우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흥미롭지 않으면 관객들이 봐주지 않으니까, 소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의 <리틀 포레스트> 열풍은 반가우면서도 낯설었다. 맵고 짠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순한 맛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컷들의 연속, 영상미가 돋보이고, 카메라를 통해 완성되는 요리와 맛까지 ... 현대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영화처럼 부작으로 나누어 상영했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동시에 한 편으로 끝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만한 여지를 주었구나 라는 만족감이 든다.
출처 : <리틀 포레스트> In Movie.
-
- 4번 만에 갱년기 치료 뚝딱, 요상한 서비스
* 해당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감독 소피 하이드는 영화 <52번의 화요일>로 2014년 제30회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16살의 빌리는 성전환 수술을 하려는 엄마와 떨어져서 살면서 1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만난다. 52번의 화요일을 겪으며 욕망, 책임,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후 소피 하이드 감독은 단편, 다큐멘터리 등의 활동을 이어오다 2019년 로라와 타일러의 우정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탐구를 이야기하는 소설 원작 영화 <애니멀즈>를 내놓았다.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에는 소피 하이드 감독의 자신감이 가득 들어있다. 이것은 감독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게다가 그 이야기는 연기 인생 40년 만에 파격 노출을 감행하기로 한 배우 엠마 톰슨의 지원으로 더욱 탄탄해진다. 배우 다릴 맥코맥도 감독과 배우의 보이지 않는 압박 사이에서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소소한 코미디가 적재적소에서 소재의 무거움을 누그러뜨리지만, 영화 전체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2022> 포스터
<성의 즐거움을 모르며 중학교 종교 교사로 은퇴한 60대 여성>
낸시(서비스 이용을 위해 만든 가명)는 남편이 2년 전에 죽었고, 아들과 딸 모두 타지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비슷한 연배의 애인이 있지만, 젊은 남성이 주는 에너지는 무엇일까 궁금해 큰돈을 주고 성매매를 하기로 한다. 그는 생전의 남편과 아주 재미없는 성생활을 하였고, 학교에서 성매매의 문제점에 대해 가르쳤으며, 치마를 짧게 올리고 다니는 여학생들을 불러 걸레라고 혼을 냈었다. 그러나 첫 성매매에서 리오(서비스 제공을 위해 만든 가명)를 만나 폭풍 질문을 쏟아낸다. 성 노동자들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고객들은 어떤 이유로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그들의 어머니도 자녀가 이런 직업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그는 이런 것들이 너무 궁금하다.
다시 리오를 만난 낸시는 이번에 해야 할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진도를 나가보려고 한다. 해보고 싶었지만 사회적인 통념에 갇혀서 또는 남편이 터부시 해서 못했던 것들을 리오에게 털어놓고 하나씩 클리어 해 나간다. 리오의 도움으로 성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던 낸시는 자신도 리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그의 진짜 이름을 궁금해하고, 그의 진짜 삶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어 한다. 심지어 교사로 일했던 경력을 내세우며 그의 어머니와 상담하는 것을 자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리오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리오와 마지막 만남에서 낸시는 자신을 속박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호텔 1층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한 때 가르쳤던 제자에게 자신의 과오를 사과하고, 리오와 자신의 관계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가 성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리오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이별의 말을 하고, 낸시는 리오가 없어도 자신의 몸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성의 즐거움을 모르며 중학교 종교 교사로 은퇴한 60대 여성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석유 회사에 다닌다고 가족에게 거짓말하는 성 노동자>
리오는 아일랜드계 기독교 학교를 다녔다. 어른들이 없는 주말에 친구들을 불러 놀다가 여럿이 엉켜 뒹구는 모습을 어머니가 목격하고 난 후, 그는 어머니에게 죽은 자식이 된다. 심지어 길에서 만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쳐 버린다. 성 노동자의 과거 상처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낸시 앞에서 무장해제가 되어 버렸다. 현재에 집중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활과 거리를 두고 몸에 대한 소통을 해야 고객이 원하는 판타지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양한 유형과 욕구를 가진 고객들과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나 그가 만든 '리오'는 낸시의 공격에 무너져버린다. 그는 결국 평정심을 잃고 고객에게 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내 보이고 만다.
리오는 인터넷에서 석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후기를 모아 가족들에게 메일로 안부를 전해오고 있었다. 낸시의 말을 듣고 군인으로 일하는 동생에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솔직하게 공개하였는데,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며 석유 회사에 다닌다는 말은 전혀 믿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낸시에게 전했다. 리오는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삶에서 한결 후련해진 마음을 느낀다.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석유 회사에 다닌다고 가족에게 거짓말하는 성 노동자
<극강의 가성비로 만든 스마트한 영화>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호텔 방 안에서 촬영되었다. 심지어 공간이 달라지면 긴장감이 높아질 것 같다는 낸시의 취향에 의해 같은 방으로 만남이 예약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머무는 호텔 방도 모두 같았다. 물론 최대한 앵글을 바꾸며 장면 전환을 위해 노력했지만, 공간의 제약을 확장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배우의 대화는 마치 로드무비처럼 여정이 있는 듯이 그려졌다. 물론 호텔 밖을 나가지는 않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에 가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길 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호텔 방 안의 공간은 소파, 침대, 거울, 화장실의 크게 네 곳으로 세분화할 수 있겠다. 소파는 대화와 경청의 공간, 침대는 여정의 공간, 거울은 사색의 공간, 화장실은 현실의 공간이 되어 동반자와 함께 몸의 여정을 통한 해방을 그린다. 또한 그동안 미디어가 여성의 몸을 다루었던 전형적인 방식에서도 탈피하여 극강의 가성비로 만든 스마트한 영화다.
호텔 방 안에서 로드무비가 가능하다.
리오는 가족들에게 석유 회사에 다니면서 석유시추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다니며 바다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석유 탐사를 하는 일을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리오의 직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 디즈니의 변화는 실패했다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는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부모는 자녀가 안전하고 좋은 길로만 가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라면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게 되는 그 이후에도 완벽하게 안전한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최선은 그 많은 길 중에서 가장 안전한 길이다. 이미 자신이 걸어왔던 길, 그게 아니라면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미 지나갔던 안전한 길로 자녀가 가길 원한다.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좀 더 편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자녀의 입장에서 그 길은 이미 남들이 가봤던 길이다. 전혀 새롭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자녀들이 새로운 길을 궁금해한다. 그저 호기심에서 머물 수도 있지만 일부는 그 호기심의 벽을 뚫고 새로운 경험을 하러 뛰쳐나간다. 부모의 생각대로 거기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최대한 조심하면서 나아가는 자녀는 그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창의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그건 부모가 생각하지 못했던 발전이자 진보다.
보수적인 부모와 진보적인 자녀의 갈등을 다룬 영화
영화 <인어공주>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자녀와 부모의 대립이 전면에서 다뤄진다. 물론 이 영화의 이야기 중심 주제는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위해서 넘어야 할 관문은 남녀 모두에게 부모다. 부모는 이 둘의 관계를 반대하며 더 나아가 각자가 살고 있는 새로운 사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를 위험한 존재로 보며 교류를 차단하려 애쓴다. 그런 상황에 놓은 두 남녀에게는 더 상대방에게 다가가려는 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힘은 일종의 반항심으로 부모에게 반기를 들게 한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에리얼(할리 베일리)이다. 인어인 그녀는 인간 사회와 인간이 쓰는 물건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아버지 트리톤 왕(하비에르 바르뎀)의 눈을 피해 인간이 쓰는 물건을 모으고 배 위 인간들의 모습을 훔쳐본다. 인간에 의해 아내를 잃은 트리톤 왕의 입장에서 인간들은 위험한 종족이고 교류가 불가능한 종족이다. 그래서 그는 막내딸은 에리얼이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에리얼의 자유를 속박하면서 그녀를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이 속박은 에리얼의 반항심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크게 만든다.
에리얼이 사랑에 빠지는 에릭 왕자(조너 하우어 킹) 역시 보수적인 어머니 밑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입양된 그는, 안전한 길로 가길 원하는 어머니의 말을 답답해한다. 어느 날 배가 폭풍우에 침몰하게 되고, 에리얼이 그를 구하면서 그는 바다에서 자신을 구해준 존재를 찾아다닌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이용해 은인을 구해 다니는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영화
1989년에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실사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인어공주>는 보수적인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 독립적인 선택을 하는 에리얼과 에릭 왕자의 사랑이야기를 원작과 거의 동일하게 담았다.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으면서 몇 가지 변주를 줬다. 에리얼을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꾼 것이 가장 큰 변화이고, 음악의 색깔도 좀 더 R&B 의 느낌을 넣어 변주했다. 이야기 자체를 변주하진 않았기 때문에 큰 줄기는 익숙한 느낌을 주고, 작은 변주로 새로운 느낌을 주려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 변주가 그렇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에리얼을 흑인으로 변경한 것은 큰 변화다. 최근 디즈니 작품들의 방향은 좀 더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주의(PC주의:Political Correctness)를 여러 작품에 적용하면서 마블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유색인종으로 바꾸고,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들에도 인물들의 인종과 역할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이런 디즈니의 행보는 변화가 적용된 영화들이 훌륭하고 재미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마블에서 최근 개봉했던 영화들 중 <샹치>, <블랜팬서: 와칸다 포에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는 모두 주인공이 유색인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흥행성적이나 관객들의 평가가 과거의 마블 시리즈들에 비해서 그렇게 좋지 않다. 무엇보다 바뀐 캐릭터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꽤 크게 다가온다. 팬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디즈니의 대표 작품인 <인어공주>를 실사화하는 프로젝트는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패한 변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을 흑인으로 바꾼 선택은 제작 단계부터 무수한 논쟁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에 기억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속 에리얼의 이미지와 다르다는 것은 큰 반발을 불러왔다. 디즈니는 마치 에리얼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른 세상으로 나가는 것처럼 자신의 뜻을 그대로 밀어붙여 작품을 완성했다. 뮤지컬 장르의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롭 마샬 감독을 고용해 완성도를 높이려 애썼다.
에리얼 역을 맡은 할리 베일리는 가수 출신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노래들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하지만 문제는 에리얼이라는 배역과 할리 베일리의 이미지가 좀처럼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흑인이라는 인종의 문제를 떠나서 좀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원작의 에리얼에 비해 할리 베일리가 맡은 에리얼의 이미지는 좀 더 강인하다. 할리 베일리의 머리스타일인 드레드록스(레게 머리)도 기존의 인어공주 이미지와 상반되는 인상을 준다. 이런 요소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을 적지 않게 방해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에릭 왕자와의 감정 교류와 갈등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만든다.
대표적인 영화의 사운드트랙 중 '언더더씨'가 흥겹게 흘러나오고 다른 노래들도 들려오지만 캐릭터들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 탓에 보는 관객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이건 각본의 탓도 크다. 과거 애니메이션 원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끌고 왔지만, 그 당시에는 진보적으로 보였던 캐릭터들이 지금은 너무 익숙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기존의 틀을 벗어나 반항하는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너무 충실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안정을 추구했지만, 그래서 이 영화가 새롭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한다.
이 영화의 다른 단점으로는 어두운 화면을 들 수 있다. 물속에서의 모습도 마찬가지고 지상에서 벌어지는 장면들도 너무 어둡게 느껴진다. 좀 더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어색한 CG와 어두운 화면이 섞이면서 영화의 질감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이런 어두운 화면은 밝은 영화의 분위기를 낮춰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영화 말미 인어족들이 에리얼의 뒤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장면은 분장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에리얼의 고모인 울슐라(멜리사 맥카시)다. 원작과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를 훌륭한 가창력을 뽐낸다. 비록 악역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캐릭터다.
영화 <인어공주>는 아이들이 보기에 다소 긴 러닝타임(135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어두운 화면과 조금 무섭게 등장하는 울슐라 캐릭터 덕분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기에도 적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와 캐릭터, 러닝타임 등 영화가 가진 장점에 비해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영화 <인어공주>는 여러모로 아쉽게 느껴지는 실사영화다. 이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향후 디즈니가 실사화하는 여러 영화들에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ChatGPT에게 물어본 <인어공주(1989)>: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contents/230516175954142ah
-
-
-
- 영화 <아이 스틸 빌리브> 메인 예고편
가수를 꿈꾸는 대학생 '제레미'는 우연히 공연장에서 '멜리사'에게 첫눈에 반한다. 운명같은 사랑도 잠시, '멜리사'의 암이 발병하면서 그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되고, '제레미'는 그녀를 위해 기적을 노래하기로 하는데.. 전 세계를 울린 기적의 노래가 시작된다.
-
- 영화 <당신은 학생인가> 메인 예고편
왜 우리가 하는 공부는 고통스러울까?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갓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뭉쳤다.
그렇게 시작된 학생주도 교육개혁 프로젝트. 5년간 그들의 움직임은 학교를 다니는 사람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야할 시사점을 던져준다. 당신은 학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