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3-14 17:18:15
감각적인 프로덕션 디자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세계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가여운 것들> <더 랍스터>
기묘한 영화 전문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비현실적이고 우화적인 설정, 정교하고 인공적인 미장센이
돋보이는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가여운 것들>
<더 랍스터>의 프로덕션 디자인 같이 살펴보아요.
여러분들의 최애 영화는 뭔가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절대 권력을 지닌 히스테릭한 영국의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권력의 실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와 신분 상승을 노리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의 욕망 하녀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은 여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치기 시작하는데…
[가여운 것들]
천재적이지만 특이한 과학자 갓윈 백스터(윌렘 대포)에 의해 새롭게 되살아난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 갓윈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던 벨라는 날이 갈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넘쳐난다. 아름다운 벨라에게 반한 짓궂고 불손한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 웨더번(마크 러팔로)이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자는 제안을 하자, 벨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으로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떠나고 처음 보는 광경과 새롭게 만난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되는데….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놀라운 반전과 유머로 가득한 벨라의 여정이 이제 시작된다.
[더 랍스터]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완벽한 짝을 찾아야만 한다. 홀로 남겨진 이들은 45일간 커플 메이킹 호텔에 머무르며, 완벽한 커플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짝을 얻지 못한 사람은 동물로 변해 영원히 숲 속에 버려지게 된다. 근시란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고 호텔로 오게 된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새로운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숲으로 도망친다. 숲에는 커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을 선택한 솔로들이 모여 살고 있다. 솔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절대규칙은 바로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 것!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근시를 가진 완벽한 짝(레이첼 와이즈)을 만나고 마는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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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 / Ghostbusters: Afterlife, 2020
영화의 제목만으로 이 영화를 안다는 건 저처럼 나이를 많이 먹었거나 많은 영화들을 봐왔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동명의 노래를 들어보신다면 '어! 이 노래가 이 영화에 나오는 거였어?'라고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는 84년에 첫 선을 보였고, 89년 2편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흥행이 전혀 안되건 아니었습니다. - $296,578,797과 $215,394,738로 각각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성적을 기록했으나 수뇌부의 기준에는 못 미쳤나 봅니다.
그리고 2016년 기존 남성 캐릭터들을 여성으로 바꾸며, '리메이크'를 강행했지만 평가와 흥행이 실패하며 그대로 '유령'이 돼버리고 맙니다.하지만, 이대로 멈추기에는 아쉬움이 컸을 겁니다.
이에 영화는 "제이슨 라이트만"감독을 선임하는데, 특이사항이라면 아버지가 "이반 라이트만"으로 대표작이 <고스트버스터즈>라는 것이죠.
이 소식에 '낙하산'이라는 말도 나오겠지만, <주노>를 시작으로 <인 디 에어>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아왔으며, 최근 "샤를리즈 테론"의 <툴리>까지 흥행은 아쉬워도 실력을 인정받은 그이기에 때아닌 기대를 끌어모았는데요.
그렇게, 아들이 만든 시리즈의 3편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재밌는 건 평론가의 반응과 관객들의 반응이 상반되는데, 이는 16년 버전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었는지?' -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의 감상을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한 남성은 황급히 집으로 들어오지만, 끝내 목숨을 잃고 마는데요. 이에 연락을 받은 딸의 가족은 남겨진 그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시골이고, 외진 곳에 있는 만큼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던 가운데 '피비"는 집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물건을 발견하고, 지하실을 찾게 되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고스트버스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내가 누군지 알겠니?
1. 30년도 더 된 영화들을 찾아봐야 하나요?
앞서 말했듯이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시리즈'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이는 즉슨, 고정 관객층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런 시국일수록 이런 영화들의 개봉은 불가피하지만 좋은 선택지로 보이나 문제는 전작 <고스트버스터즈>가 1984년에 나온 영화입니다.
그나마, 빠른 최근 작이 89년에 나온 작품이니 빨라도 32년 전에 나온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2016년에 나온 영화가 있지만 이는 전혀 상관없는 작품이 되었으니 이번 <라이즈>를 보려면 30년도 넘은 영화를 찾아봐야 하니 높디높은 진입장벽에 해당 관람을 포기하는 팬들도 존재할 겁니다.
무엇보다 30년이나 넘은 영화인만큼 요즘 같은 매끈한 시각효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죠.그럼에도, 찾아봐야 할까?
저는 이에 "굳이, 안 보셔도 문제없습니다"라고 말할 겁니다.
이런 이유에는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가 '시리즈'에 속하지만 전작들과의 텀이 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를 영화에서도 하나의 과거담으로 적용시켜 역으로 "궁금증"을 자아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활용시킵니다.
여기에 어린 주인공들의 성장을 "귀신"과 접목시킨 <그것2017-19>의 사례대로 밟아가니 어색함은 느껴지지가 않아 하나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합니다.2. 그래도, 시리즈를 찾아본다면 달라질 거예요.
다만,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일부 개연성이 아쉬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극 중 숨겨진 "고스트 트랩"을 발견하는 우연성 짙은 장면이나 보지도 못한 "먹깨비"의 존재와 등급을 유추하는 장면은 그러한데요.
특히,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의 러닝 타임은 124분으로 앞선 107분의 1편과 2편보다 더 많은 분량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미스플레이"입니다.
이런 이유는 앞서 말한 길어진 시리즈의 텀을 정리하는 것과 새로이 소개할 "피비"와 같은 아이들의 설명으로 보이는데요.
이에 "시리즈를 챙겨봤어야 하나?"싶은 후회도 생기겠지만, 이는 예습을 못한 우리의 잘못은 아니잖아요.그래도, 찾아본다면 달라질 거예요.
이렇게, 본다면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다소 평범한 범작에 그치겠지만 앞선 "시리즈"들을 챙겨본다면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겁니다.
앞선 84년 89년에 나온 영화의 분위기는 마냥 어둡지만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귀신"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영화는 내내 코믹스러우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는데, 이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마시멜로맨"이죠.
여기에 "먹깨비"의 존재도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것보다 먹는 것에 초점을 두었으니까요.
근데, 앞서 <그것>시리즈를 언급한 이번 <라이즈>에서는 그 분위기가 정반대로 흘러나갑니다.3. 기술의 발전에 비례하는 무서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펼쳐지는 "유령"과의 추격전과 대결부터 영화는 이전과 다른 다크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런 이유에는 "점프 스케어"와 같은 공포 영화의 방식을 일부 차용한 것도 있지만, 보여주는 비주얼의 발전이 크더군요.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가 "고저"와 '도사견'같은 하수인들입니다.
84년 영화에서는 기술의 한계로 옷과 섬광 효과, 그리고 점토와 같은 질감으로 표현되어 어설픈 감이 없지 않는데요.
이제는 강산도 3번이나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그 비주얼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발전하는 기술만큼 무서워진다.
앞서 말했듯이 '도사견'의 모습을 한 하수인들은 그 자체만으로 제법 무섭습니다.
특히, 마트에서 보여주는 추격전은 저라도 "꺄아!"를 극장에서 떠나가라 할 정도로 압도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고저"도 84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성의 모습과 남성의 목소리는 외양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 만큼 완벽했으니까요. (이에, '정치적 올바름'도 나오죠)
그런 점에서 이번 <라이즈>에서는 외양에 있어 합격점이나 그 안에 있는 이야기는 84년 영화에서 조금 더 뻗어나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신을 봉인한 "고스트 버스터즈"와의 관계가 존재하나 그를 부활시키려던 시장의 이야기는 정작 풀어내지 못했네요.4. 다음 고스트 버스터즈는 언제쯤?
그럼에도,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세대교체"라는 시점에서 바라보면 만족스러운 영화입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세대교체"는 정말 어려운 숙제인 것이 '나이'를 빌미로 삼자니 당장의 성적이 눈에 아른거리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는 "로다주가 아닌 아이언맨이 맞나?'라고 팬들의 반발심만 살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다음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을 기대케한다는 것은 이전 16년 작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던 것일까요?무릎을 꿇어 맞춰준다 한들...
이번 <라이즈>와 16년 작품, 모두 전작의 주인공들이 "카메오"로 나오는 것은 맞지만 보여주는 위상은 정반대입니다.
<라이즈>의 경우. 공식적인 후속작인 만큼 악당 "고저"와의 관계부터 보여주는 힘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16년의 경우. 극의 전개에 아무런 영향도 없는 캐릭터들로 축소되니 두 영화 새로운 주인공들을 위한 의도된 푸시라고 한들 느껴지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분명히,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번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일어나라"라는 부제만큼 쓰러진 팬심을 다시 기립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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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앳된 얼굴의 청년이 교도소의 왕이 되기까지
8★/10★
어느 범죄자 소년이 감옥에서 ‘갱생’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느와르, 범죄 영화 〈예언자〉(2010)를 보며, 자크 오디아르가 영화적 재미와 정치적 메시지를 배합하는 데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감독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주인공 말리크는 부모가 없다. 어릴 때부터 감옥을 들락거렸다. 아랍계이긴 하나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프랑스어와 아랍어 모두를 말할 줄 안다. 그러니까, 말리크의 정체성은 ‘혼종적 백지 상태’다. 그래서 감옥의 왕으로 군림하는 또 다른 수감자 세자르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이너서클에는 들지 못하고, 아랍계 죄수들에게서는 동포를 팔아먹은 자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말리크의 정체성은 바꾸어 말하면 어디 한 곳에 속하지 않고 두 세계를 오고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록 완전한 ‘내부인’은 되지 못할지라도, 즉 확고한 정체성은 갖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말리크는 타고난 순발력과 대담함으로 이를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 스승, 아버지, 교도관 등의 역할을 종합해 폭력적으로 군림하던 세자르를 잡아먹고 새로 왕좌에 오른다.
영화에는 세자르와 그 수하들이 감옥에 점차 아랍계 죄수가 많아지는 데 불만을 표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유럽계 간수들이 자기들 편이라 감옥을 장악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랍계 죄수들을 자신들 통치하에 두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세자르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말리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과 맞물린다. 동료들이 다른 감옥으로 이송되고, 아랍계 죄수들은 점점 늘어나면서 세자르는 서서히 몰락한다. 그리고 말리크는 ‘타고난’ 인종적 정체성으로 아랍계 죄수 무리에 스며들어 그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한다. 지금까지도 프랑스에 횡행하는 인종주의적 극우의 공포 속에서 ‘백지’ 상태이던 말리크를 아랍계의 수장으로 만든 건 뭘까? 프랑스인을 우대하고 아랍계를 차별한 (감옥) 시스템 그 자체다. 말리크는 다른 모든 죄수와 마찬가지로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도모했고, 특출나게 성공해 왕좌를 대체했을 뿐이다.
앳된 얼굴의 청년 말리크가 몇 년의 수감 기간 중 ‘갱생’ 및 ‘교화’되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예언자’로 등극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말리크는 수감되자마자 세자르의 강압적 요구로 아랍계 죄수 레예브를 살해한다. 이후 레예브의 유령과 말리크가 대화하거나 함께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말리크의 성장은 그가 레예브의 환영을 ‘불태우고’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이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에서 죄책감을 거쳐,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던 한 남자가 강력한 남성 주체로 우뚝 선다.
말리크의 성장은 극우와 인종주의를 둘러싼 감정 역학과 더불어 젠더 정치의 측면에서도 흥미롭다. 세자르가 그에게 레예브를 죽이라 했을 때, 말리크는 동성애자 레예브의 성기를 애무해주다 입안에 숨긴 면도칼로 그의 목을 공격하려 한다. 계획이 어그러져 그 방법으로 죽이진 못하지만, 세자르가 말리크에게 알려준 살인의 방법은 말리크가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갓 입소한 말리크는 세자르가 아랍계 남성의 성기를 빨다 살해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존재, 즉 ‘호모’ 혹은 ‘여성’이었다. 말리크에게 규범적 의미의 남성성은 부재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말리크는 죽은 동료 리야드의 아내, 아이와 함께 걷는다. 가장의 죽음으로 위기를 맞은 이성애 핵가족의 구원자로서 행진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수많은 남자가 뒤따른다. ‘여성’이자 ‘호모’였던 그는 수컷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남자’로 거듭난다. 〈예언자〉는 이처럼 여러 정치적 주제를 종횡무진 망라하며 장르의 재미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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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벨바그 캐다 보면 결국 바르다!
오늘은 사진, 영화, 설치 미술 등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우리를 사로잡았던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6주기입니다.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선뜻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분들을 위해 씨네픽지기가 필모그래피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첫 만남은 어렵게 느껴질지라도 한번 만나게 되면 바르다 감독과 사랑에 빠지게 되실 거에요.혹, 작품이 많아 무엇부터 볼 지 고민이 된다면 <방랑자>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우선적으로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감상해 볼까요?*인터뷰 발췌: 「아녜스 바르다의 말」, 아녜스 바르다&제퍼슨 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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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목적인 믿음에 던지는 물음표 - 누구를 향한 믿음인가?
영화 <계시록>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가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1. 종교와 욕망, 누구를 위한 믿음인가?
눈에 보이는 것, 즉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들은 '증명'이 가능하다. 무엇을 샀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에 대한 증명. 그러나 '믿음'은, '종교적 믿음'은 증명할 수 없다. 하나님은 내 눈 앞에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고, 신자들은 그를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믿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절대자인 신이 신자에게 내리는 '계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를 다루는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종교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결국 '신은 존재하는가?'로 모인다. <계시록>의 민찬 또한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신에게 기도하고, 신과 신자들을 위해 찬송가를 부르고, '계시'를 받기를 기다린다. 신을 믿는 자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있다. 제가 잘 되게 해 주세요, 제 아들이 취업을 잘하게 해 주세요, 저 사람보다 제가 성공하게 해 주세요. 결국 간절히 바라는 기도는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성취와 욕망 충족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은 이 지점에서 엿볼 수 있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지방의 작은 교회 목사를 맡고 있는 민찬은 동네에 대형 교회가 들어선단 사실을 알게 되고, 그 교회 목사가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기도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한다는 것은, 그리고 어떤 대상에게 기대어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는 신이라는 존재가 위안이 된다면, 그리고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면 설령 신이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의 대상으로써 기능을 다한 것이므로.
그러나 <계시록>의 민찬은 자신의 욕망을, 그리고 충동을 '신의 계시'라고 스스로 세뇌하고 위안하는 인물이다. 이는 교회에 찾아왔던 낯선 남자, 양래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자신의 딸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얽히는 사건들 사이에서 드러난다. 하원하는 딸을 데리고 오는 걸 깜빡한 사이, 웬 낯선 남자가 딸을 데리고 갔다는 소식을 들은 민찬은 자연스레 양래를 의심하고 만다. 양래가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양래에게 '신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건넨 것과는 달리, 일이 일어나자마자 자연스레 '그럴 것 같은' 인물로 양래를 떠올린 것이다.
딸을 찾기 위해 양래의 집 앞으로 간 민찬은 우연히 양래의 수상쩍은 행동을 보게 되고, 양래를 쫓아 산 중턱까지 갔다 양래와 몸싸움을 하고 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밀려 굴러 떨어진 양래는 정신을 잃고 만다. 돌에 머리를 부딪힌 채 쓰러져 있는 양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민찬에게 걸려오는 전화. 딸을 찾았다는 전화다. 양래는 딸의 실종과는 관련이 없었고, 이미 양래는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다. 이제, 민찬은 어떻게 해야 할까.
2. 구도의 전복과 새로운 역할 부여, '신의 대리인'과 '범죄자' 사이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에서 민찬만이 엇나간 욕망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래는 민찬의 딸을 유괴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그날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고, 민찬이 있는 교회에 다니던 여자아이, 아영을 유괴했다. 이 때문에 민찬이 범죄를 저지른 대상은 '완전무결한' 자도, '과거를 청산하고 지금은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도 아닌 채 서 있다. 경찰들은 양래에게 범죄를 저지른 대상을 쫓는 게 아닌,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양래를 쫓는다.
아영을 찾기 위해서는 양래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민찬은 경찰들이 양래를 찾도록 가만히 둘 수 없다. 양래를 찾게 되는 순간, 양래의 범죄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될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순간 민찬의 내면에서 민찬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신의 계시를 받고 '범죄자를 단죄하는' 일을 하게 된, 신의 대리인이 된다. 그 순간부터 일을 수습하기 위해 민찬이 벌이는 일들은 꽤나 흥미롭다. 민찬이 불안함을 애써 지우기 위해 택한 방식은 '계시'다. 자신이 이런 일을 벌이게 된 것도, 다시 살아난 양래를 발견하게 되어 2차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도, 모든 것들이 신이 계시를 준 것이라는 뜻이다. 경찰 대신, 그리고 피해자 대신 신의 계시를 받은 자신이 양래를 단죄할 것이며, 그 단죄의 방식으로 양래를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것.
범죄를 숨기느라 바쁜 민찬에게, SKY평안교회 담임목사인 국환은 동네에 들어설 교회의 목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한다. 원래 내정자였던 국환의 아들이 신자와 연애를 했다는 사실이 공론화가 되면서, 새로운 담당 목사가 필요해진 것. 신을 향해 욕망을 내비치고,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고 믿어온 민찬에게 이는 확신을 주는 소식이 된다. 자신이 옳게 행동하고 있다는, 신이 자신에게 계시를 준 것이 맞다는 확신.
다시 발견한 양래가 '아영이 아직 살아 있다'며 자신을 죽이면 아영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한 순간부터 민찬의 욕망은 확실히 엇나간 모습을 보인다. 되레 양래가 '경찰을 부르라'고 말하며 민찬을 '미쳤다'고 비난하고, 민찬은 양래를 납치한 채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의 순간에 서 있다. 민찬과 양래의 피해자-범죄자 구도는 이때 완전히 전복된다. 사실상 민찬은 양래에 의해 피해를 본 게 없음에도(딸이 유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었으므로), 민찬의 오해에 의해 시작된, 뒤바뀐 범죄자-피해자 구도가 이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모두가 양래를 범죄자라고 가리키며 쫓고 있을 때, 민찬은 그 범죄자의 숨을 끊기 위해 쫓는다.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서.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으면서, '신의 계시'라는,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이라는 자기위안을 품은 채로.
3.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 우연성 짙은 사건의 마무리
계시록은 그 욕망 아래 벌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범죄자-피해자 구도의 전복을 눈여겨 보았을 때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여성 인물들의 활용은 아쉽게 느껴진다. 민찬의 아내는 오직 '신을 믿지만 바람을 피운', 그래서 민찬이 속죄하도록 만드는 인물로만 소비된다. 연희는 과거 같은 성범죄자에게 피해를 입은 여동생의 환영을 보는 경찰로 등장하는데, 과거 얽혀 있는 서사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침착하며, 경력이나 활동 비중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우연히' 발견하는 것들이 많다.
민찬의 수상쩍은 낌새를 파악하는 것도 우연히 민찬의 흙 묻은 신발을 봐서, 양래를 찾게 되는 것도 혹시나 싶어 찾아간 교회 앞에서 우연히 민찬의 타이어에 묻은 오디를 발견해서 이루어진다. 우연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민찬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방식은 '계시'를 받은 것이 민찬이 아니라 연희라는 느낌이 들게 할 정도다. 자신이 구하지 못한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경찰이 된 인물이 마지막 순간 극적으로 같은 입장에 놓여 있는 어린 피해자를 구하게 되는 구도까지도 그 느낌이 해소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인물 각자가 가진 욕망의 정도로만 비교했을 때 엇나간 욕망을 더욱 드러낼 수 있는 건 민찬이 아니라 연희다. 새 교회의 목사가 되고 싶다는,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민찬의 욕망에 비해 연희의 욕망은 긴 시간 끌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한 여동생의 환영을 보며 계속해서 죄책감에 시달리던 연희가, 양래가 잡힌 뒤 여동생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양래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지를 알아보는 모습은 침착하다 못해 건조하게까지 느껴진다. 여동생과 관련된 서사는 '피해자 간의 연대'를 위해서만 쓰이고, 이외의 모든 순간에서 연희는 우연히 단서를 발견하는 경찰 히어로에 가깝게 등장한다는 점은 아쉽다.
4.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
다만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에서 이렇게 신과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들은 그 작품들이 드러내는 인물들의 욕망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느끼도록 만든다. 민찬의 욕망을 쫓다 보면 민찬의 행동이 억지스럽다고 느낄 수 없고, 연희의 욕망을 쫓다 보면 연희가 과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는 모두 그들 각자에게 부여된 서사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욕망 아래 발생한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갈무리지을 것인지에 따라 그 욕망이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지가 달라질 뿐이다.
한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절대자인 신으로부터 온 답신, '계시'. 누구도 해석해줄 수 없고, 누구도 실체로써 존재하는 증거물을 내보일 수 없다. 그래서 이 계시와 답신은 더더욱 그 믿음과 해석에 의해 다르게 읽힌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는 신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우리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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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쳐 가는 감정들과 스며드는 소리들
왕가위의 영화 가운데 <타락천사>(1995)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는 <중경삼림>(1994)이다. <타락천사>는 질척거리는 불편한 감정들과 공존할 수 있는 찰나의 위안과 휴식을 머금으려는 영화였다. 어떤 것도 과하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출하는 날 것의 영화이기도 했다. 제멋대로 감정을 덧칠하는 <타락천사>의 작법은 <중경삼림>에서 출발한다. 시선과 감정을 교환하는 인물들의 사이를 파고드는 긴장감이 위태로운 무드를 만들어내지만, 그 속에서 낭만을 찾아서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중경삼림>의 매력 아닐까. 감정의 얽힘을 형상화하는 <중경삼림>의 투박한 시도는 어쩐지 <타락천사>의 거친 스타일보다는 매끄럽게 느껴진다. 다양한 인물의 사연이 얽힌 에피소드를 은근슬쩍 교차하던 <타락천사>와는 달리, <중경삼림>은 비교적 분명하게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를 구분해서 배치한다. 하지만 떨어진 듯 보이는 두 이야기는 몇몇 연결고리를 통해 유기적인 덩어리로 재편된다. <중경삼림>에서 감정은 어지럽게 스치기만 하고, 음악과 목소리는 언제나 깊숙이 스며들고, 기억은 보존된 채로 어딘가에 남아 있다.
스쳐 가는 감정들
<중경삼림>의 도입부는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쉴 새 없이 화면을 흔들던 왕가위는 갑작스레 남자와 여자가 스치는 순간을 프레임에 가둬버린다. 내레이션하는 남자(하지무)는 뻔뻔할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찰나를 가두는 건 쉬워도, 그들의 감정을 보존하는 일은 어렵다. 왕가위의 세계의 단골손님인 스텝 프린팅과 정지 화면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쳐 가는 감정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표출하고 강조하는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그런 왕가위 특유의 기법들은 화면을 멈추고 인물들을 머무르게 해서라도 감정을 붙잡고 싶다는 감독의 간절함이 형상화된 산물로 기능한다.
하지무는 메이를 잊기 위해 술집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손바닥 뒤집듯 실연과 사랑을 오가는 듯하지만, 사실 그렇게 해서라도 실연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지무의 간절함이 오히려 와닿는다. 그러니까 스치는 감정의 표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심연에는 낙인처럼 박힌 짙은 감정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마약 밀매상은 언제나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풍성한 블론디 가발로 머리를 가린다. 덕분에 밀매상의 감정은 헤아리기 어렵다. 스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왕가위는 그의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활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밀매상의 의뭉스러운 속내를 내레이션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화창해질지 모르니까 늘 레인코트와 선글라스를 함께 착용한다는 밀매상의 독백은 그녀의 감정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구간 가운데 하나다. 놓쳐버린 마약 운반책들을 잡지 못하면 일이 번거로워질 거라는 내레이션 또한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를 잘 표현한다.
한편으로 인물들의 감정은 여전히 아리송하게 스크린을 맴돈다. 경찰 663은 스튜어디스인 애인과 이별한 뒤 자신에게 온 편지를 읽지 않는다. 오히려 페이가 663 앞으로 온 편지를 몰래 읽는다. 이때 왕가위는 단골 식당에 함께 있는 경찰 663과 페이를 프레임에 가두고 응시한다. 전경(前景)에선 행인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데, 후경에 위치한 두 사람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서로의 감정은 묘하게 서로의 마음을 스쳐 간다. 663을 향한 페이의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애인을 떠나보낸 663의 마음은 점점 복잡해져 간다. <중경삼림>의 인물들이 표출하거나 감추는 감정들을 우리는 이따금 포획할 수 있지만, 어쩐지 떠나보내거나 스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며드는 소리들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왕가위는 <중경삼림>에서 종종 ‘소리’를 활용한다. 음악은 감정을 실어 나르는 최적의 도구이자, 그 자신이 감정 표출의 주체로 기능할 수도 있다. 이때 왕가위가 <중경삼림>에서 음악뿐 아니라 유독 매달리는 소리가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경찰 하지무는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옛 애인 메이를 잊지 못해 전화를 걸었지만, 어쩐지 전화를 받는 이들에겐 메이를 찾는 전화가 아니라 안부 차 전화드렸다고 둘러대기만 한다. 하지무는 메이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하지무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이의 목소리를 끝내 들을 수 없었지만, 그 상실의 빈자리를 잠시 스친 마약 밀매상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채운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무와 마약 밀매상의 본격적인 만남은 옷깃이 스치던 찰나를 거쳐 어둑한 술집에서 꽃을 피운다. 그들이 가까워질 시간은 하룻밤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사정 때문에, 서로의 속내를 깊게 공유하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감정들이 무심하게 스치는 자리엔 무엇이 남았는가. 그건 바로 하지무의 삐삐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이다. 만남이 종료된 이후, 감정이 스쳐간 이후에 남은 건 그 소리가 전부다. 밀매상의 축하 메시지는 비록 그녀의 목소리로 직접 전달되진 않았지만, 안내원을 매개로 하지무에게 스며든다. <중경삼림> 속의 이런 특징적인 소리는 성취될 수 없었던 직접적인 감정의 교환보다 더 넓은 층위의 소통을 만들어낸다. 하지무의 마음에 밀매상의 소박한 진심이 스며든다. 묻어놓았던 감정을 나누고, 지쳐버린 서로를 위로하는 일이 소리를 매개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재밌게도 하지무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밀매상을 바(Bar)에서 처음 만나 말을 걸 때도, 당신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며 너스레를 떨지 않았나. 그는 저녁마다 단골 식당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질리도록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때 두 번째 에피소드의 경찰 663 역시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네는 모습이 어쩌면 두 에피소드를 연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663은 스튜어디스였던 전 애인과의 이별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 그는 실연의 아픔을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로 대체하려고 한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향해 그만 울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빈자리를 무언가로 채우려는 고독이 짙게 묻어 나온다.
이렇게 어디서든 말을 멈추지 않는 663에게 스며드는 소리가 있다. 바로 단골 가게의 종업원 페이가 틀어 놓은 음악이다. <중경상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그렇다. 663이 등장하는 그 감성 가득한 신을 기억하는가. 그때 페이가 크게 틀어놓은 음악인 ‘California Dreamin’은 내화면 영역에서 외화면으로 확장되어 관객을 자극한다. 또한, 이 음악은 663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페이가 바꿔 놓은 CD로 인해, 663에게도 은근슬쩍 스며들고야 만다. 페이가 663의 집에서 종아리 마사지를 받는 장면에서, 663은 ‘California Dreamin’을 재생하며 전 애인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라고 말한다. 이에 페이는 코웃음치며 속으로(내레이션) 내가 CD를 바꿔놓은 줄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어느덧 663의 마음속은 음악을 통해 페이로 가득 채워진다.
그 자리에 남은 기억들
감정이 어지럽게 스쳐간 자리, 소리가 아련하게 스며든 자리엔 뭐가 남아 있는가. 소박한 추억이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아닐까. <동사서독>(1994)에서 왕가위는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탐닉한다. <중경삼림>의 인물들 역시 기억에 매달린다. 기억은 평생 동안 우리의 머리를 맴돈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 평생을 가져가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면 한편으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있다. 하지무에게 메이와의 추억은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한순간에 털어내야 할 기억이기도 하다. 그에게 스물다섯 번째 생일 아침은 메이 없이 맞이하는 외로운 날이기도 하지만, 밀매상의 축하 메시지가 마음을 채워준 날이기도 하다. <중경삼림>을 대표하는 대사가 있다. 하지무의 내레이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기도 하다.
한 여자가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 주었다.
난 그 말 때문에 이 여자를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친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왕가위, <중경삼림>(1994)
하지무는 온종일 돌아다니느라 지저분해진 밀매상의 구두를 타이로 닦아준다. 잠에서 깬 밀매상에겐 하지무의 온기가 묻은 채로 놓인 구두 한 켤레가 남는다. 그 구두를 보면 밀매상이 과연 하지무를 떠올릴까? 밀매상에게 하지무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까? 확신할 순 없지만, 카메라는 가발을 벗어 던진 채 프레임을 빠져나가는 밀매상을 간신히 붙들고 화면을 멈춰버린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1994년 5월 1일인 통조림을 비춘다. 붙들기조차 힘든 스치는 감정들이 지나간 자리엔 유통기한을 지워버리고 싶은 통조림이 남는다.
페이는 떠나면서 663에게 편지를 남겼다. 663은 그 편지를 일 년 간 고이 간직한다. 일 년 후 스튜어디스가 된 페이와 식당을 넘겨받은 663이 재회한다. 663과 페이가 처음 만났던 그 순간처럼, 식당엔 ‘California Dreamin’이 크게 울려 퍼진다. “언제부터 이런 시끄러운 노래를 좋아했죠?”, “이제 습관이 됐어요”. 지난날의 감정들은 미묘하게 스치며 그들 또한 함께 어긋났지만, 페이의 음악은 663에게 스며들었고, 그의 마음속은 페이의 편지와 시끄러운 음악들을 매개로 하는 추억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젠 시끄러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듣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663에게 페이는 젖어버린 항공권을 새 항공권으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젖은 항공권을 간직했던 663의 일 년과, 스튜어디스가 되어 노래를 따라 캘리포니아에 갔다 온 페이의 일 년은 서로의 기억에서 어떤 시간으로 남아있을까. 새로운 항공권이 가져다줄 시간은 그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이미지 출처: https://screenmusings.org/movie/blu-ray/Chungking-Express/index_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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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경삼림 리뷰 / 重慶森林 / ChungKing Express
중경삼림 / 重慶森林 / ChungKing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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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1994년 홍콩,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술집을 찾은 경찰 223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술집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마약밀매상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고 있는 경찰 663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쥔 단골집 점원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
- 네이버 영화
/ 감상 /
; 첫번째 이야기 ;
경찰 223과 마약밀매상의 이야기.
경찰223은 과거의 연인에게 실연을 당했지만, 이 사실을 부정하며 4월 1일부터 본인의 생일인 5월1일까지 매일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구매한다.
그녀와의 이별을 만우절 장난이라고 생각하며 부정하는 모습이다.
그녀가 돌아올거라고 믿고 싶은거다.
그러나 용기내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녀가 아닌 다른 남성이 전화를 받았고
그 일을 기점으로 본인이 알고 있지만 계속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슬픈 현실을 극복하기위해 여태껏 모아왔던 파인애플을 먹어치운다.
무려 30개나 되는 파인애플을 말이다.
영화에서 223은 파인애플을 먹으며 작은 미소를 띄고 맛있게 먹는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 슬픔을 본인의 방식으로 극복하고 싶어서 꾸역꾸역 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파인애플을 다 먹어치움으로써 그녀를 다 잊어버린듯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꾸역꾸역 먹은 파인애플들을 결국 모두 다 개워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가 파인애플을 먹을때 그의 옆에 어항이 있다.
그 어항은 그의 눈물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가 그녀를 상징하는 파인애플을 먹으며 웃고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으며 어항에 물이 갇혀있는걸로 보아 그가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술집에서 만난 마약밀매상에게 파인애플을 좋아하냐며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말로만 새로운 사람을 사랑할 것이라며 다짐하였지 사실 아직도 전 애인을 잊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와의 만남 이후, 223은 마약밀매상과 함꼐 호텔로 향한다.
지쳐 쓰러져버린 그녀를 차마 깨우지 못하고, 그녀의 구두를 닦고 떠나는 223.
본인과 같이 실연당한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마음이 돋보였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연을 잊기 위해 비오는 날 조깅(이라하지만 달리기)를하는 223.
쏟아지는 빗속에서 조깅을 하는 그의 모습은 이제서야 본인의 감정에 솔직해진 그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았다.
쏟아지는 빗물이 그의 눈물 같았다.
이후 본인의 삐삐까지 버리며 그녀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리기로 다짐하는 223.
그러나 그의 삐삐에 새로운 알림이 온다.
받아보니 마약밀매상이 전하는 생일축하메세지.
이 메세지를 받고 좋아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본인에게 새로운 '영원한' 사랑이 시작될 것 같다는 설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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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첫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223은 영원한 사랑의 존재를 믿고, 사랑에 목마른 풋풋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인이 믿고 싶었던 사실을 부정당해 상처 받는 여린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실연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을 억지로 참아내고 극복하려고 하는 모습이 괜시리 짠했다.
파인애플씬에서 본인의 감정과 대조되는 그의 행동을 생각하면 약간 눈물이 날 것 같다..
; 두번째 이야기 ;
경찰 663과 페이의 이야기.
매일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던 663.
그러다 주인장에게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 권유에 다라 피시앤칩스를 구매한다.
그리고 이것이 빌미였는지 전애인과 헤어지게 된 663.
식당메뉴도 이렇게 선택지가 많은데, 사람은 오죽하겠냐며 그녀를 이해하고
본인의 상황을 무마해보는 663.
663은 본인의 집에가서 물건 하나하나에 말을 걸며 자신의 감정을 물건으로 대신하여 헤아려 본다.
그리고 젖어있는 걸레를 하나하나 짜주며 이렇게라도 울어본다.
이처럼 663도 223과 같이 본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방식대로 풀어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더 짠하게 느껴진다.
한편 음식점 종업원 페이는 663에 집착하며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본인의 방식대로 하나씩 변화시킨다.
그의 집에 있던 전애인의 흔적을 본인의 흔적으로 하나씩 바꿔 놓음으로써 그녀의 빈자리를 본인으로 대체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이 조금 소름돋긴하지만, 어떻게 보면 663이 슬픔을 조금 더 빨리 제대로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어간 둘은 일년 후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리고 일년 후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한다.
첫번째 약속에서 엇갈린 그들이 마주침으로써 될 인연은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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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663은 223과 달리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랑의 표본인 것 같았다.
진실된 인연을 만나기를 고대하는 성숙한 청년 같았달까.
그가 사물 하나하나에 말을 걸며 본인의 마음을 달래고,
넘쳐버린 물을 혼자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특히 그 물청소하는 씬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왈칵..
갑자기 본인의 애인이 돌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집에 방문했지만
나를 반기는 것은 그녀가 아닌 물이 흥건히 넘쳐버린 빈 방..
마치 그녀가 올 것 같아 급히 집으로 향했지만 그녀가 없는 사실을 알아채고 펑펑 울어버린 모습 같았다. 물론 방이 그를 대신하여 운 것이지만.
그 흥건한 물이 그의 마음 속에 깊이 억눌러져있던 그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마침내 터져버리고, 그의 울분이 해소가 되는 씬이었던 것 같다.
그가 실컷 울어버린(물론 방이 대신하였지만) 이 씬을 계기로 그는 내면의 감정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고, 비로소 페이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녀와 더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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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물'은 메타포로서의 큰 역할을 한다.
'물'이 그들의 '눈물'을 의미함으로써 배우들이 직접 눈물을 보이지는 않지만 물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의 감정표현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영화를 볼 때 이 '물'의 존재를 유심히 관찰하며 감상하면 캐릭터들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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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이야기가 더 좋았다.
첫번째 이야기는 좀 정신없고 전개가 매끄럽지 않고 난해하다.
그리고 223의 사랑이 조금 더 가벼운 사랑이었어서 663의 사랑보다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가벼운 사랑이었다는게 223의 감정이 진실하지 못하고, 그의 사랑이 가짜 사랑이라던가 그런의미가 아니라 20대초반의 그런 풋풋한 가벼운 사랑인 것 같다는 말이다.
경찰 223은 내 또래다.
그러다 보니, 그가 느끼는 그 사랑의 감정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오기 때문에 덜 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애인이 없으면 난 못살 것 같고, 다음 애인이라는 것은 없을 것 같고, 이 애인이 전부일 것 같은 마음에 붙잡고 싶어하는 그런 20대 초반의 사랑말이다.
그리고 나도 알고 그도 안다.
경찰 223은 새로운 연인을 충분히 만날 수 있고,
그 애인을 통해 그 전의 애인은 충분히 잊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처럼 223의 새로운 사랑이 쉽게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의 사랑이야기가 나에게 그렇게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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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경찰 663의 이야기는 나에게 깊숙이 스며들었다.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은 경찰 663의 사랑에 대한 태도이다.
떠나가버린 전애인을 그리워하되,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를 빨리 잊기위해 가벼운 만남을 하지도 않으며,
본인의 방식대로 차근차근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그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본인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묵묵히 버티는 그의 성숙한 모습도 너무 좋았다.
'인연'을 믿고, 페이와의 만남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도 너무 멋졌다.
경찰 663의 모습은 20대 초반인 내가 보기에 가장 성숙하고 아름다우며 멋진 남성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내가 상상하는 젠틀하고 멋진 남성의 표본 !
특히 마지막에서 페이를 매우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정말..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진짜 수많은 영화를 봐오면서 내 얼굴이 붉어지고 진짜 심장이 쿵쾅거리게 설렌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렇게 진짜로 설렌적은 처음이었다..
이 마지막 눈빛때문에 두번째 이야기가 첫번째 이야기보다 좋았다.
내 영화 인생에서 처음있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해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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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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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돼 ‘안토니오 르블랑'이라는 이름을 얻은 한 남자.
그에게는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 ‘캐시'와 사랑스런 딸 ‘제시’,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가 전부다.
“나는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닙니다.”
어느 날, 억울한 상황에 휘말려 경찰에 붙잡힌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이민단속국으로 넘겨지고,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알게된 그는 강제추방 위기에 처하는데…
가족을 지키고 싶은 그의 뜨거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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