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2-25 14:53:50
12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개봉 6일만에 200만 돌파한 노량
<서울의 봄> 열기를 이어받아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 6일만에 200만 명의 관객수를
돌파했습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오는 25일까지 성탄절 연휴 동안 관객 몰이를 이어갈것으로 전망됩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노량: 죽음의 바다>는 12월 25일 오전 10시를 넘어가면서 누적 관객수 2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2위로 오른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수를 기록하면서 황정민은 <국제시장> <베테랑>에 이어 <서울의 봄>으로 3번째
천만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해양 액션 블록버스터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이 개봉 첫날 전체 외화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습니다. 전 세계 흥행 수익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호평받았던 <아쿠아맨>과 달리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의 흥행 전망이 밝지 않아보입니다. 북미에서 1위에 올랐지만 레드 카펫이나 프리미어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았고, 만듦새도 아쉽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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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오의 순수함을 살려준 동반자인 보모 글로리아!
시놉시스
클레오는 보모인 글로리아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글로리아가 보모 역할을 그만두고 자신이 살던 섬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클레오의 곁에는 자신의 아버지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런데 클레오가 방학을 하고 글로리아가 있는 섬으로 여행을 가게 되자 그곳에 있는 글로리아의 가족을 만난다. 클레오가 가져온 짐 보따리에는 글로리아와 그녀의 가족들을 위한 선물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글로리아를 만날 수밖에 없는 클레오에게는 무슨 일들이 펼쳐질까?
클레오가 태어났을 때부터 유일한 부모 역할을 해준 건 글로리아였다. 글로리아는 클레오를 자신의 진짜 자식처럼 사랑해 줬는데 클레오도 글로리아를 믿고 의지했으며 곁에 없으면 불안해했다. 결국에는 글로리아가 자신의 조국으로 떠나자 클레오는 엄청나게 불안에 떤다. 그런 클레오를 본 클레오의 아버지는 글로리아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데 그곳에서는 클레오가 감당하지 못할 것들이 넘쳐났다.
그건 바로 글로리아의 딸인 난다와 아들인 세르자 때문이었는데 난다는 뱃속에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세르자는 자신의 진짜 가족이 아닌 클레오를 외면한다.
클레오는 자신의 곁을 항상 함께해 줄 글로리아가 진짜 가족이라고 여겼고 평생을 지켜줄 줄 알았다. 너무 기대한 나머지 글로리아도 챙길 가족이 있다는 걸 알았고 어린아이의 순수함 때문인지 그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림 삽화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데 때묻지 않는 순수한 동화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또한 이 영화는 보모 역할로 인해 자신의 진짜 가족을 책임지지 못한 글로리아의 시선도 다루며 선진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보모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에서 클레오를 떠나보내고 우는 글로리아를 보면서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느껴지지만 클레오의 어린 동심을 채워주는 유일한 동반자이자 진정한 부모 노릇을 한 글로리아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만약 클레오에게 글로리아가 없었다면 어떻게 자랐을지 필자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클레오와 글로리아는 영원히 떨어져 있어도 같은 가족이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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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온 이들의 아름다운 견고함이 바벨탑을 세워 올리다.
브루탈리스트. 이는 건축계의 한 사조인 브루탈리즘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20세기 초부터 그 인기가 시작된 브루탈리즘은 건축에 사용된 자재들을 전부 노출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에 대해 흉물스럽다거나 아름다워야 할 건물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하지만 현재에도 노출 콘크리트, 노출 인테리어 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브루탈리즘의 시대적 인정을 반증할 것이다. 필자는 이 브루탈리즘을 '솔직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콘크리트, 철골, 대리석 등 사용하는 자재들을 있는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기하학적인 구조와 함께 멋스럽게 표현한 것이 마천루와 같은 건물을 휘황찬란한 유리로 꾸며낸 것만큼이나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점은 영화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그의 생애 중 가장 멋있고, 사람들이 감탄하고, 좋아할 부분만을 채용하여 그를 빛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는 그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을 즐기게 하여 관객 스스로가 인물에게서 희노애락의 복합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름에서 드러나는 그 사조처럼 인물과 그 인물을 뒷받침해주는 시대적 배경, 영화의 서사적 구조 그리고 메시지까지 단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아주 솔직하면서도 맹렬하게 향해간다.
- 철골만큼이나 단단하지만 그만큼 차가운 영화적 구조
영화는 '서막 - 제1막: 도착의 수수께끼 - 인터미션 - 제2막: 아름다움의 견고한 보존 - 에필로그'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는 마치 한 편의 희곡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하는데, 특히 본 작품의 유별난 특징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바로 인터미션이다. 본 작품의 경우 러닝타임이 215분인데, 본 작품만큼이나 러닝타임이 긴 작품들마저도 별개의 인터미션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본 작품에 왜 인터미션이 존재하는지는 꽤나 중요하게 보여지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서사의 깊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서막과 제1막은 가족들 품에서 어쩔 수 없이 도망치게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작품의 주인공 "라즐로"의 고군분투 적응기를 비춘다. 그 사이에 등장하는 수 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은 관객들이 그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그의 건축가로서의 탁월한 재능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2막에선 "라즐로"가 "해리슨"을 만나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해내는 과정, 그 안에서의 갈등, 그 속에 비춰지는 인간의 본질과 아이러니함을 비추면서 에필로그에선 그 이야기들을 모두 마무리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정리한다. 위 설명에서 느낄 수 있듯, 각각 파트별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굉장히 많고,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들도 깊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주는 영화적 미장센마저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를 모두 소화해내기엔 관객 이탈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 깊이감을 보존하기 위해 인터미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인터미션 자체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검은 화면을 유지한 채 무(無)의 상태로 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작중 "라즐로"가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와 조카딸을 데려오기 위해 필요한 사진을 스크린에 띄우고, 동시에 누군가 악보를 보며 피아노를 치는 것만 같은 ost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터미션이라는 시간을 공백의 시간이 아니라 연결의 시간,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체험의 시간으로서 이용했다는 것이다.
작품의 유별난 특징은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에서도 엿 볼 수 있다. 작품이 시작되고, "라즐로"가 미국에 도착해 연줄이 있는 기회의 땅 '필라델피아'로 떠나는 버스를 타면서 타이틀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이 시작되는데, 그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선 타이틀, 감독 그리고 주연 배우들, 유명 배우 몇 명의 이름들이 디졸브되는 식으로 간단하게 비푼다. 그러나 본 작품의 경우엔 로우 앵글로 저무는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1인칭 시점을 스크린에 띄운 채 수평 방향으로 이동하는 오프닝 크레딧을 보여주게 되는데, 한 두명의 이름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스태프들의 이름을 보여준다. 또한 엔딩 크레딧의 경우, 화면이 암전된 후 등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좌측에서부터 우상향하는 식으로 엔딩크레딧을 보여주는데, 이 또한 작품의 매력이다. 이러한 특징들의 이유엔 첫 번째, 작품의 전반적인 유별난 특징, 작품이 지니고 있는 매력들을 오프닝 크레딧을 통해 암시하는 역할을 위함이고, 두 번째, 작품 내 이야기의 주축인 건축에 있어서 사선과 수평이라는 개념을 서사 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작품을 구성해나가는 전반에 걸쳐 드러내고자 함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 또한 흥미롭다. 유대계 헝가리인인 천재 건축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부자의 이야기를 작품에선 다루게 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그들의 배경사를 빼놓고 서사를 풀어나가기엔 한계가 존재해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과거사를 스스로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드러내게 하고, 결코 플래시백과 같은 부연의 영화적 장치들을 이용하여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는 길을 달려가는 버스, 나아가는 기차, 앞으로 향하는 배 등의 수평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로우앵글과 롱테이크를 곁들여 계속해서 찍듯 이야기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아가게끔 펼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들이 앞으로만 달려나간 후 남은 그 흔적들, 그 발자취들이 곧 과거이자 역사였고, 영화는 현재와 앞으로의 지향점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합쳐 이야기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이처럼 영화의 본격적인 서사를 이야기하기 전부터 굉장히 많은 요소의 특징들을 캐치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고, 이들 모두는 본격적인 서사와 그 장대한 이야기들을 뒷받침해주는 데에 탁월한 역할들을 해나간다.
- 튼튼한 시멘트벽도 연약한 액체였던 것처럼 - 영화 속 주 인물
필자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까지 하는 걸 보면 영화는 그 사람을 칭찬하는 걸까 아님 다른 뜻이 있는 걸까?" 그 인물이 칭찬 받아 마땅한 장면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법한 장면들까지도 서슴없이 보여주는 인물 중심 작품들이 꽤나 존재한다. 이런 작품들을 볼 때면 필자는 위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남았는데, 본 작품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찾은 것만 같다.
필자의 답은 '인물 중심 영화라고 해서 그 인물을 예찬하기 위해서만 작품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인물을 구사하는 방식마저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브루탈리즘'스럽게 표현하였다.
1. 라즐로 토스
작중 주인공이자 유대계 헝가리인인 "라즐로 토스"는 헝가리에서도 시립 도서관을 지을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해 그의 프로젝트는 모두 무산되었고, 가족들과도 강제로 생이별하게 되어 도망치던 중 그의 선택으로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쇼트 이후 곧바로 "라즐로"를 등장시킨다. 어둑한 어딘가, 잠에서 깬 그는 급하게 자신의 짐을 챙긴 채 밖으로 나가려 했다. 너무도 어둑해 이곳이 어디인지 쉽사리 분간이 안 되던 그때, 그는 밖으로 향하였고, 그제서야 관객들은 그곳이 이민선임을 알게 된다. 이후 카메라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여주는데, 이를 뒤틀린 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마치 미국으로 온 "라즐로"를 향해 미국은 환한 미소보다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작품이 "라즐로"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는 "라즐로"가 비운의 천재 건축가로서 그의 고단한 삶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만 담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삶에 대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의구심을 품게끔 제작되었다. 그가 미국으로 도착하자마자 한 그의 첫 행보는 다름 아닌 사창가에서의 성행위였다. 또한 이민선에서 알게 된 동료에게도 꼭 보자는 약속을 서로에게 연거푸 했음에도 그 이후 그에 대한 언급도, 만남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를 가지고 그의 인성적인 부분을 질타를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그가 무례하게 작업 인부를 쫓아낸다거나 마약에 중독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에 대한 불쾌한 눈빛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과는 반대의 면 또한 비추는데, 그의 독창적인 브루탈리즘 건축법을 활용한 건축물들을 통해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그가 출신, 종교, 외양, 성격 등으로 천대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동정심이 가게 했고, 그가 건축에 몰입하여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마저 들게 했다. 이렇듯 영화는 한 인물을 굉장히 솔직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다뤄, 한 인간에게서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강직해보이면서도 동시에 시대적 흐름에 한없이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한 지식인에 대해 관객이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했고, 영화는 그의 복합적인 면모가 어떤 식으로 그의 건축에 담겨지는지를 엿볼 수 있게끔 치밀하게 계산되어 표현했다.
2. 해리슨 리 밴 뷰런
영화 속 악역이자, 동시에 영화 내에서 가장 입체적인 면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첫 등장은 "라즐로"가 "해리슨"의 아들 "해리"에게 청탁을 받아 "해리슨"의 서재를 공사하던 중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마주한 아수라장이된 집에 화가 나 "라즐로"를 쫓아낸 "해리슨"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다소 다혈질적스러워 보이고,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이후 "라즐로"에 대한 사회적 평판, 공사된 서재의 상태 등을 미루어 보아 그에게 사과 겸 스카우트를 하기 위해 "해리슨"은 그를 다시 찾아가게 되고, 파티 이후 "라즐로"와의 독대를 통해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이야기 속엔 "해리슨"도 "라즐로"가 겪은 고통과 상처를 지닌 인물임을 눈치챌 수 있다. "해리슨"이 작중 인물들 중 가장 입체적인 특징을 지닌 데에는 바로 이런 지점 때문이다."해리슨"이 없었다면 "라즐로"는 스카우트될 수도, 미국에서 건축가로서 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한 그에게 숙식을 제공했고,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에겐 다른 직장을 추천해줬으며, "라즐로"가 다른 이들과 스타일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면 언제나 "라즐로"를 믿어주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면만 있었다면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해리슨"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기업의 후계자가 된 가족경영의 수혜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사로 말했듯 전쟁 중에 선박을 만드는 사업을 했고, 더 빠르고, 더 싸게 만들어 이득을 본 자수성가형 부자로 추측된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행위를 다시 관찰하면, 다소 어색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그의 아들의 소개와는 달리 책을 읽는 장면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라즐로"가 만들어준 멋진 서재와 독서용 의자 또한 독서용이 아니라 면도용 의자로 사용되었다. 그의 서재의 책들 또한 모두 초판본이라는 점 그리고 "라즐로"가 만든 서재에 대해 최초엔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외부에서 칭찬이 일자 그제서야 "라즐로"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점 또한 그의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엔 다소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된다. 또한 "라즐로"와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품의 중후반부 있었던 일을 미루어본다면 영화는 "해리슨"에 대한 인물 관객 평가를 입체적으로 그리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엘리자베스"가 영국에서 영어를 전공했다고 하자 그는 돌연 "라즐로"에게 그의 구두닦이 같은 영어 발음이나 고치라고 농담한다. 어쩌면 그저 웃자고 한 말일 수 있겠지만 "엘리자베스"를 처음 맞이한 자리에서 "라즐로"를 그런 식으로 비하하려는 태도 그리고 농담 후 급기야 그에게 동전을 던지고, 다시 주워달라는 그의 행동엔 그의 경박스러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 양질의 교육, 화목한 가정의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로 표현된다. 영화는 그의 이러한 점을 그의 경박스러운 태도를 통해 표출시켜 했고, 이를 구체화시켜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이어지게 했다. 어쩌면 이는 "라즐로"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동안 미국에서 자수성가하기 위해 지나온 세월들과 그 속의 시련과 아픔에 대한 복수의 감정으로도 보여진다. 결국 "라즐로"에 대한 자격지심은 그와 프로젝트를 재개하기 위해 떠난 이탈리아에서 그를 강간하는 것으로서 폭발하고, 이는 "엘리자베스"에 의해 고발되어 그는 행적을 감춘 채 영화 속에서 사라진다.
3. 엘리자베스 토스
서막-제1장과 제2장-에필로그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엘리자베스"의 유무이다. 서막과 제1장에선 엘리자베스가 등장하지 않은 채 "라즐로"에게 그녀가 보내는 편지의 내레이션으로만 그녀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의 초반부에선 그녀가 고국에 남은 채 얼만큼 "라즐로"를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그녀도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등으로만 그녀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다. 인터미션이 끝난 직후 우린 곧바로 "라즐로"가 승강장을 찾아 "엘리자베스"와 조카딸 "조피아"의 실물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영양실조로 인한 골다공증으로 휠체어를 타게 되었고, 다리의 상태만큼이나 그녀의 표정과 몸 상태는 그간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초반부 등장 방법 그리고 그녀의 전반적인 연약한 외양은 2부의 본격적인 이야기에서 역전이 되고, 어쩌면 그녀는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가장 강직한 모습을 지닌 인물로서 이후 장면들을 휩쓴다.
그녀는 사고로 인해 프로젝트가 무산되어 힘들어 하는 "라즐로"에게 방법을 제시하려 노력했고, 그간의 노력과 고생을 충분히 이해하려 했으며, 어쩌면 "라즐로"는 건축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가족과의 또다른 이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녀만큼은 가족의 이별에 극렬히 반대했고, 가장 가슴 아파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재벌가 사이에서도 그녀의 지식 수준은 전혀 꿇리지 않았고, 오히려 "해리슨"은 그녀에게도 지적 대화에서 밀려 "라즐로"에게 느꼈던 감정을 그녀에게서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신체적으로 매우 연약한 상태의 그녀가 보인 강직한 행보는 오히려 "라즐로"의 강직한 재능과 건축가로서의 재능에 비해 한 없이 연약하고, 나약한 내면과 비교된다. 그녀의 이러한 강인함은 결국 영화의 종반부 "해리슨"에 대한 폭로로 증명된다.
"라즐로"에게 그동안 미국에서 어떠한 상처를 받아왔고, 어떤 고통을 품어왔는지 듣게 되었고, 마침내 그녀는 "해리슨"과 그의 가족들에게 찾아가 강간당한 사실을 폭로한다. 그는 물론 그의 아들 "해리"마저도 이에 반발하여 그녀를 쫓게 되고, "해리"는 그의 아버지에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물으려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홀연히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다. 이 일련의 장면, "엘리자베스"가 집에 도착해 "해리슨"에 대해 폭로하고, 쫓겨난 후 "해리"가 "해리슨"을 찾는 그 과정을 영화는 롱테이크로 촬영했고, 인물의 시점쇼트가 아니라 각 장면 속 중요한 인물이나 행동하는 인물만을 카메라 안에 담아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이는 마치 그 사건 속 모든 인물들을 카메라가, 영화가 감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였고, 이는 결국 답을 내릴 수없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혼란한 인물들을 대변하고, 동시에 자격지심의 폭발, 그로 인해 벌어진 폭로, 또 그로 이어진 가족들의 분열을 일련의 연장선에 두어 관객들이 직접 그들을 평가할 수 있게 촬영하였다.
- 레지스탕스의 염원이 모인 청회색 대리석처럼 모두의 염원이 모여 만들어진 인스티튜트
미국에서 고난에 빠진 "라즐로"를 빼어내 새로운 일자리, 아메리칸 드림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한 "해리슨"은 "라즐로"에게 자신의 이름을 담은 건물을 지어달라 부탁했다. 그 부탁이 바로 '밴 뷰런 인스티튜트',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건축물이다. 영화는 그 인스티튜트를 만드는 제작하는 과정부터 디자인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발표함으로써 허가받는 과정들을 모두 세밀하게 담아냈는데, 이 전 과정을 보고난 후면 이 인스티튜트는 그저 서사의 배경이나 건축물 중 하나로 소비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처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했던 "해리슨"은 몇가지 사항을 첨언한다. 도서관, 체육관, 예배당, 강당이 모두 모인 공간이었으면 하고, 특히 체육관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와 어린 시절 레슬링 경기를 하러 다니던 좋은 기억이 있어 꼭 포함시켜줬으면 한다는 점이다. "해리슨"이 건물을 만들고 싶어했던 최초의 이유엔 자신만의 원초적 바람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 장면들에서 "해리슨"은 "라즐로"의 건축에 대해 그리 이해한 것 같진 않지만 주위 평가에 매료되어 그를 예찬하기 바빴고, 이후 장면에서도 술을 모으던 그가 술 수집 취미에 한계를 느끼면서 하늘을 바라보고자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는 건축에 이해나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 인물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가 인스티튜트를 제작하고자 한 이유는 바로 최근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술 수집 취미를 말하는 대사에선 결론적으로 "해리슨"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고, 그제서야 하늘을 바라볼 건물을 짓겠다고 말한 것을 미루어 보아 그는 자신만의 바벨탑을 통해 유한한 삶에 대한 욕망을 건물로써 풀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는 "라즐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화의 에필로그를 보면 "조피아"의 연설을 통해 "라즐로"가 어떻게 건물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라즐로"는 인스티튜트를 제작할 당시, 자신과 자신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수용된 수용소의 크기, 사이즈, 소재 등을 차용하여 제작하였고, 인스티튜트를 통해 그 당시의 고통과 상처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건축에 담아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하나의 공통된 건물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다른 생각, 다른 염원을 가진 두 인물이 모여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결국 인스티튜트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인스티튜트를 제작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화물을 옮기던 열차가 폭발하여 공사가 중단되었고, 공사 중 "해리슨"의 실종과 "라즐로"의 알 수 없는 행방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조피아"의 연설 중 그녀는 인스티튜트가 1972년까지 제작이 멈췄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인스티튜트 공사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중단되는 이유와 그 근거에 대해서 서사적으로 꽤나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를 재개시킬 수 있었던 과정 그리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지 등은 다루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을 실패와 극복이라고 한다면, 보통 실패를 비중있게 다룬 만큼 극복 또한 신중히 다루지만, 영화는 그 사이를 생략시킨 후 "해리슨"의 변호사가 "라즐로"를 다시 찾는 씬, "조피아"의 연설씬을 통해 관객이 그 전 과정을 스스로 상상하게끔 했다.
인스티튜트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십자기 형상 빛 또한 이 점을 공유한다. 시민들에게 건물을 소개해주기 위해 마분지로 만든 모형 건물에 빛을 쏘아 재현하는 씬이 있으나 관객에겐 그 빛이 어떤 형상으로 그려지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또한 이후 장면에서도 언급 정도로만 알 수 있었는데, 영화는 "해리슨"이 사라져 건물 안을 살피던 극의 종반부에서 십자가 모양의 빛 형상을 보여준다. 영화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을 때 이의 중간부를 생략하고, 종반부에서 모든 실마리를 푸는 식으로 극을 진행한다. 건물을 제작하게 된 계기도, 만드는 과정 속 고난을 이겨낸 과정도,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형상마저도 말이다. 영화가 이렇게 생략을 한 이유엔 영화의 메시지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거를 다루지 않는다. 과거사가 장황할 것만 같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오히려 그 과거사에 대해 씬적으로 다루지 않느다. 영화는 당시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적응의 시련과 고통, 차별을 담아냈고, 특히 한 명의 지식인이자 예술가, 또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이 프로젝트를 수행해내기 위해 수 많은 시행착오들 속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종반부 에필로그에서 "라즐로"의 조카딸 "조피아"의 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전한다. "중요한 건 목적지이지 과정이 아니다." 결국 영화는 이전 배경,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통해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버티고 생존하기 위해 버티는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 속에 인간으로서 겪는 아이러니함과 복잡한 심적 요소들을 담아 인간 삶의 의미와 그 한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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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서는 안될 욕심을 눈에 담다.
기가 막히는 코믹 연기로 늘 웃음을 주었던 유해진 배우가 '왕'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특히 유해진 배우의 인터뷰 중에 첫 등장부터 웃으면 어쩌나 라는 말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기존의 친숙한 이미지와 왕의 이미지가 매치가 되지 않아 이질감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기대되는 가운데, 좋은 기회를 얻어 미리 시사회를 볼 수 있었다. 소현 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 ‘올빼미는 11월 23일 개봉 예정이다.
뛰어난 침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수, 그는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형익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어의가 되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궁에 들어가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동생과 떨어져야 했던 경수는 그럼에도 동생의 약값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매사에 입조심을 해야 하는 궁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8년 동안 청나라에 갇혀있던 소현세자가 돌아오며 굴욕적인 역사를 마주한다. 아들이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인조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되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에 띄지 말아야 할 올곧은 시선과 알 수 없는 시선이 교차하지만 좁혀지지 않는다. 조선의 존폐보다는 그때의 치욕이 앞서는 모습이 그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형태를 비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권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인조는 변화라는 낯선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선의 존폐가 달린 문제에 서로 다른 욕망이 비치며 갈등이 극대화된다. 한편 보이지 않는 탓에 소리에 집중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밤이 되며 스산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날 밤, 보지 말아야 할 핏빛 욕망을 눈에 담게 되며 그의 운명 또한 많은 변화를 맞이 한다.
욕심에 눈이 먼 자, 진실에 눈을 뜬 자의 영화의 갈래가 나뉘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진실을 감출 것인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본 것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저울질이 시작된다. "안 보는 게 좋다고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더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는 말과 자신을 믿어주던 두 눈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 선명함에 온 힘을 다하여 진실을 지키지만 자신의 지키려 했던 진실이 권력의 힘에 짓눌린 모습을 마주한다. 무모함을 이길 정도로 그가 믿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권력에 눈이 먼 한 왕의 탐욕적인 모습을 그려 기존의 왕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왕으로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끊임없이 손에 쥐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이용하면서도 내내 불안한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다만 근엄함과 중후함은 사라진 열등감과 욕망으로 점철된 광기 어린 왕만이 남아있어 조금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에도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미스터리 스릴러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펼쳐 그 단점을 감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틈 없는 연기가 영화에 잘 녹아들었기에 극의 몰입을 높였다. 특히 경수와 소현세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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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 현실 속 총 천연색 꿈
이 글은 영화 [더 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샤흐리야르 왕의 마음이 이랬으리라.
불륜을 저지르는 왕비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을 왕의 마음이 로이(리 페이스)는 어쩐지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자신의 꼬라지를 본다면, 오히려 왕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찰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가련한 환자는 사랑에 배신당한 것도 모자라, 커리어 까지도 자신의 척추처럼 박살 나게 생길 위기였으니까. 이 기구한 운명을 꼼짝없이 견뎌야만 하는 답답함을 알아주는 누군가라도 등장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로이의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리 봐도 아직 숫자를 3까지 밖에 모르는 것만 같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운타루)의 존재가 전부였다.
그러나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 앞니 빠진 암살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자신이 결국 그렇게 넘고 싶어 하는 요단강(?)도, 쉽게 건널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의 운명까지 내걸어 볼 심산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러 온 이 구원자의 손길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로이는 입을 열었다. 이 얕고 가는 자신의 목숨줄을 좌지우지하게 될지도 모르는 꼬마 샤흐리야르 왕 앞에서. 로이는 기꺼이 세헤라자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이 암살자의 스턴트는 실로 대단했다.
로이가 수행할 수 없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스턴트 역할을 거리낌 없이 수행했다. 물론 이 초보 복면에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3이 넘어가는 숫자에 기겁을 하기도 하고(!) 공범인 주제에 도덕적 잣대가 너무 높아 대역을 하지 않겠다며 생떼를 부리기도 했지만. 세헤라자데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황홀경에 빠져 망설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미션 수행의 시간이나 방법도 치밀해져 갔다.
하지만 마지막 미션의 벽은 이 하룻강아지 대역에게는 여전히 조금은 높았다. 닿을 듯 닿지 않아 힘껏 까치발을 해야 할 것임을. 로이는 알 수 있었다. 로이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싶었고. 그러려면 알렉산드리아에게 연료를 계속 불어넣어 까치발의 끝에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간신히, 하지만 반드시 쥐어져야만 했다.
그는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라도 스턴트를 이어가야만 했다. 오디어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더 험하고 어려워져 갔고. 그의 애달픈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스크 밴디트는 충실하게 로이의 대역을 해냈다. 알렉산드리아의 눈이 여전히 처음처럼 빛나는 것을 보면서. 로이는 현실의 자신도. 자신의 대역인 밴디트로서도. 조금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도, 삶도 조금씩 간절해지는 세헤라자데는 자꾸만 자신의 왕이자 대역인 알렉산드리아 앞에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로이는 다리에서 떨어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두가 실패했다며 손가락질을 하던 그 순간을. 단 한 번의 낙하로 인해. 자신이 알던 사람들의 등 외에는 이제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은 없을 것만 같았다. 로이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서 있던 곳이 참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로이를 대신해 그 높은 곳에 안간힘을 써서 올라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낙하해 버린. 이 꼬마 스턴트역을 보며. 로이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로이의 작은 왕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라고 명령했지만. 세헤라자데는 이제 이 허무맹랑한 모험의 끝이 자신의 손으로 이뤄져야 함을 알고 있었다. 로이는 환상 속 모든 인물들을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패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길이며 인물들의 마지막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추락은 마치 영화 [인셉션]의 킥(kick)과도 같아서. 두 세계에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저 한 세계에서 추방할 뿐. 그 어떤 의미의 실패도, 죽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의 추락으로 인해 겁에 질린 로이는 그 사실조차 쳐다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겁쟁이인 자신을 대신해 기꺼이 추락을 감행했고. 결국 그를 죽음이라는 망상에서 구해냈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결국 세속적 욕심이 3까지 밖에 없는 무자비한 왕(?)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추락이자 실패라 여겼던 작품을 이 꼬마 대역에게 보여주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심의 끝에. 두 운명 공동체(?)는 겨우 웃어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쫓은 뒤 덩그러니 둘 만 남아버린 환상의 세계는 이제 끝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몇 번이고 재생될 것만 같은 유일하고도 독특한 이야기가 되어. 두 벤디트의 뱃속에서 영원히 날갯짓을 할 것이다. 더 이상의 추락은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힘차게 날아오르면서.
마치면서
정제 탄 수.. 단순당 최고!!
그들의 인생은 서로를 만나기 전 까지는 흑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로를 만나는 순간부터 꾸게 된 모든 꿈들은 총천연색이었다. 차갑고 메말랐던 일상이 이렇게 질감과 색감으로 넘쳐나는 것으로 변화할 때까지의 지분은 거의 모두 알렉산드리아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영화를 보며 그저 잿빛에 지나지 않았던 회사원의 하루를 예쁘게 물들여 준. 같이 영화를 봐준 친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만두 또 먹으러 가쟈!!!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추락, 스턴트, 그리고 세헤라자데의 모티브를 가지고 글을 써 보았습니다.
[이 글의 TMI]
1. 정말 물리적으로 시간이가 없다. 돌아버림
2. 환상 속 5인조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후레쉬맨 같아서 빵 터짐
3. 이런 뽀송한 질감의 영화 너무 좋다
[다음 리뷰 예고]
미키 17!!
원작이랑 얼마나 다를지(?) 기대된다. 근데 봉감독님 나빠.. 애를 원작보다 열 번이나 더 죽였어ㅠㅠ
#더폴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브런치작가 #네이버인플루언서 #munal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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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설 특선영화 라인업
작년 극장 개봉영화들 놓친사람 모여롸 24년도 설도 온가족과 함께 영화 즐길 수 있다구요 #아시안컵 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설 특선영화로 훈훈하게 보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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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주차, 최신 씨네뉴스
'마이크로어그레션' 이란?
‘아주 작은’이라는 뜻의 마이크로(micro)와 ‘공격’이라는 뜻의 어그레션(aggression)의 합성어로
일상생활에서 흑인, 동양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엠마스톤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시상식 행동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전형적인 '마이크로어그레션' 이라는 비판과 '경황이 없는 자리일것, 지나친 해석이다' 라고 보는 입장으로 갈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오펜하이머 아카데미 7관왕 싹쓸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촬영상, 음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7관왕에 올랐습니다. 감독은 수상 무대에 올라 “이 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해줘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고, 이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머피는 “20년간의 배우 생활 동안 가장 창의적이고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라며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참사를 다룬 <마리우폴에서의 20일> 오스카 장편 다큐상 수상
우크라이나 영화 역사상 첫 아카데미 수상작인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참상을 담은 장편 다큐멘터로 마리우폴에 남아 있던 종군기자 취재팀이 기록한 참사를 담고있습니다. 체르노프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일이 없었다면 좋았을것,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은 영사와 맞바꿀 수 있다면 이 상을 교환하고 싶다”며 수상소감을 전했습니다.
차별이다 VS 지나친해석이다 오스카 시상식장 ‘마이크로어그레션’ 논란
제9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각각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엠마 스톤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수상자 엠마스톤은 양자경이 주는 트로피를 바로 받지 않고, 옆에 있던 제니퍼 로렌스의 손에 가져다준 뒤에야 받은것과, 수상자 다우니 주니어는 트로피를 건네받을 때 콴과 인사를 나누지 않고 다른 배우들과 친밀감 표시를 하는 두 배우의 행동이 전형적인 ‘마이크로어그레션’이라는 비판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샤론스톤 “상대 배우와 성관계 요구” 영화 제작자 실명 폭로
배우 샤론 스톤이 과거 영화 촬영 당시 프로듀서에게 상대 배우와 실제 성관계를 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톤은 과거 영화 <슬리버> 촬영 중 프로듀서였던 로버트 에번스가 자신을 사무실로 불러 “나는 에바 가드너와 잤다. 너는 빌리 볼드윈과 자야한다”고 했으며 스톤은 “내가 빌리 볼드윈과 자면 빌리 볼드윈의 연기가 더 나아질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서포터즈 모집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25회 영화제 서포터즈’를 모집합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서포터즈는 영화제 예매 혜택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유료회원 제도로 가입비는 5만원이며, 그 이상 금액도 납부할 수 있습니다. ‘서포터즈’에 가입한 관객에게는 회원카드가 발급되고, 해마다 공식 책자 무료 제공과, 영화제 상영작 1매당 1000원 할인이 적용된 혜택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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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주 최신 개봉영화(샹치, 켈리 갱, 코다, 습도 다소 높음, 최선의 삶)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9월 1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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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제작한 해적 애니매이션 영화 [영화리뷰/결말포함]
#해적영화#조니댑#스피븐스필버그
▼구독은 여러분의 큰 힘입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Nqd...
▼무비워크 먹여살리기???
https://toon.at/donate/637245550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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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허슬> 공식 티저 예고편
운이 다한 농구 스카우트(애덤 샌들러)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엄청난 실력에 험난한 과거를 가진 선수를 외국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결국 그는 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독단으로 이 천재 선수를 미국에 데려가는데. 두 사람은 난관을 무릅쓰고 NBA에서 성공할 자질을 갖췄음을 입증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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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마블스> 메인 예고편
한 팀이 되면 모든 게 바뀌고 모두가 바뀐다! 환상의 팀워크로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