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3-11-21 14:22:37
삶의 지지대가 되어 주는 친구
[영화 '아워 프렌드' 리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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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오 | 픽사라서 평가절하될 우주 탐험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두 사고로 잃고 고모 '올가'(조 샐다나)에게 맡겨진 소년 '엘리오'(요나스 키브레브). 고모에게서도, 학교에서도, 잠깐 맡겨진 캠프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엘리오는 차라리 외계인이 자신을 데려가 주기를 바라기 시작한다.
어느 날, 사고를 친 후 올가 사무실에서 고모를 기다리던 엘리오는 우연히 외계인과 연락이 닿는다. 보이저호에 실린 황금 접시를 본 외계인들이 지구로 보낸 통신이 올가가 근무하는 공군 기지에 도착한 것. 이에 엘리오는 지구 대표를 자칭하며 외계인들의 모임인 '커뮤니버스'로 소환된다. 엘리오는 마음을 나눌 친구 '글로든'(레미 에드걸리)을 만나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이내 그의 앞에는 우주를 위험에 빠뜨릴 위기가 닥친다.
‘픽사다움'의 두 얼굴
"픽사답다" 혹은 "픽사가 픽사했다." 지난 30여 년간 픽사가 제작한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평가할 때 통용된 대표적인 찬사다. 애니메이션 영화인데도 유별나게 성인 관객을 울리는 데 특화된 픽사 고유의 미덕을 담아낸 표현이기도 하다. 픽사의 첫 장편 영화인 <토이 스토리>부터 가장 최근의 10억 달러 돌파 작품인 <인사이드 아웃 2>에 이르기까지 '픽사다움'은 순간순간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유지됐다.
'픽사다움'에는 몇 가지 원동력이 있다. 사소한 일상에서 대부분의 아이가 보편적으로 느끼고 겪는 감정과 경험을 발견하는 관찰력. 누구나 한 번쯤은 머릿속으로 그려봤을 법한 그림과 보편적인 경험을 하나로 엮는 상상력. 익숙한 감정을 시류에 맞는 현대적인 소재와 관점으로 풀어내면 창의력. 이 모든 것을 스크린 위의 현실로 불러올 수 있는 기술력. '픽사다움'은 이 역량들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픽사의 진가는 <인사이드 아웃>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라일리'의 이야기는 사춘기를 겪었거나 겪을 모든 관객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 가득하다. 이 보편적인 이야기는 의인화된 감정들이 일하는 감정 본부라는 상상력 덕분에 독특해진다. 더 나아가 감정 본부의 존재는 현대적 관념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영혼, 자아, 감정마저도 뇌 화학물질의 작용일 뿐이라는 생리학적 관점이 감정 본부라는 설정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픽사답다'라는 표현이 마냥 칭찬이 아니기도 하다. 픽사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반복되고 정형화되다 보니 이야기 자체의 독창성이 줄어들었기 때문. 이는 <엘리멘탈> 같은 영화가 여전히 참신한 소재와 뛰어난 영상미로 무장을 해도 과거에 비해 인상적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다. <엘리오>도 마찬가지다. 우주와 외계인을 매개로 삼아 현대인의 소속감을 성찰한 픽사의 신작은 어떤 의미로든 너무나 픽사답다.
픽사다운 장점
<엘리오>에서도 픽사만의 감각은 빛난다. 우선 소재의 장점만 영리하게 활용할 줄 안다. 우주와 외계인은 사실 아이들이 공룡 못지않게 관심을 두는 주제다. 그러다 보니 우주 배경으로 외계인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E.T.> 아류작처럼 보일 수 있다. <엘리오>는 보이저호를 등장시켜 이 함정을 피해 간다. 우주탐사선에 실린 '골든 디스크'를 발견한 외계인이 지구와 인류에 답장을 보냈다는 상상력을 발휘해 차별점을 확보한다.
무엇보다도 픽사의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엘리오>는 네 주인공의 서사를 '소속감의 부재'라는 한 키워드로 묶는다. 그들은 각기 속하고 싶은 공동체가 있지만 소망을 이루지 못해 부유 중이다. 엘리오와 올가는 가족을 되찾고 싶어 한다. 두 외계인 캐릭터의 처지도 유사하다. 하이러그 종족의 군주인 '그라이곤'(브래드 가렛)은 커뮤니버스와 아들 글로든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하고, 글로든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들의 소망과 노력은 묘하게 엇갈린다. 올가는 엘리오와 새롭게 가족을 꾸리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역효과만 난다. 공군 소령인 고모가 본인을 돌보느라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 나머지 자신을 장애물로 여긴다고 느낀 엘리오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기 때문. 대신 엘리오는 어려서부터 소망이었던 외계인들에게서 인정받고자 하고, 커뮤니버스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그라이곤과의 교섭에 자원하기까지 한다.
커뮤니버스에 가입하려는 엘리오의 노력도 역효과를 낸다. 엘리오는 협상에 실패한 뒤 투옥됐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글로든을 만난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강인한 전사가 되지 못한 글로든은 보호자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그들은 서로에게 공감하며 절친이 된다. 그러나 이 우정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한다. 엘리오가 글로든을 인질 삼아 떠난 나머지 그라이곤은 아들과도, 커뮤니버스와도 관계를 개선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픽사다운 감동
<엘리오>는 엇갈린 화살들의 경로를 조정해 왕도적이지만, 감동적인 결말에 도착한다. 그 중심에는 '가족의 재발견'이 있다. 상황을 꼬이게 만든 엘리오와 글로든의 우정은 사실 낯선 일이 아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혼자인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을 맞이한 아이들이 가족보다 친구들에게서 위안을 찾는 경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다시 가족을 찾는 일도 자연스럽다. 부모에게 환영이나 사랑받지 않는다고 느꼈던 아이들은 어른들의 진심을 확인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돌아오곤 하니까. 이러한 감정선의 변화는 극 중 복제 진흙을 통해 드러난다. 엘리오와 글로든 자기랑 똑같이 생긴 복제품을 고모와 아버지에게 보내서 그들을 완전히 속이고, 가족의 품을 떠나려 한다.
하지만 정작 올가와 그라이곤은 진실을 재빨리 눈치챈다.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이라서 힘들고, 육아는 처음인 상황을 이해해 주지 않는 아이들에게 서운하면서도, 처음이기에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잘 알고 사랑하기에 그들은 엘리오와 글로든의 속임수에 당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들러 아이들이 떠나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보호자들의 노력과 사랑 덕분에 두 아이는 오해를 풀고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온다.
위와 같은 감정 변화를 11살 엘리오의 선택과 결정의 동기로 제시하면서 <엘리오>는 몰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성인 관객으로서는 과거 경험을 떠올리며 후회할 수도 있고, 현재 자기 가족 상황에 투영하면서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기에 두 배로 감동적일 수 있다. 이에 더해 이른바 '정상 가족'이 아닌 주인공 덕분에 더 많은 관객의 감정이입도 유도할 수 있다. '픽사가 픽사했다'라는 표현이 안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지금 '소속감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이유
엘리오와 주인공들이 겪는 소속감의 부재가 단순히 우정과 가족애의 차원에 머무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기에 <엘리오>는 더 인상적이다. 어느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한 엘리오의 고독은 겉보기에는 그저 한 어린아이의 아픔이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한 꺼풀 벗겨보면 본래 소속된 공동체가 사라진 가운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채 현대사회를 부유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인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고 지적했다. 자기 자신을 취업 시장, 결혼 시장 등에서 성공적으로 팔려고 노력하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최우선 목표가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본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삶으로부터 소외시킨 나머지 개인은 가족이나 이웃 같은 기존의 공동체와 멀어지고 하나의 원자, 곧 '고립자'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개개인은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회적 존재니까. 그 결과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이지만, 그만큼 외로워한다. 무한한 네트워크 수단을 동원해 수많은 사람과 교류하지만,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깊이 대화하고 관계 맺기 어려워한다. 피상적인 관계가 반복될수록 허무함과 고독만 깊어질 따름이다.
그렇기에 <엘리오>의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하다. 설령 익숙할지라도 간과하고 있었던 가치들을 일깨워주기 때문. 현대인들처럼 무한한 공간에서 소속감을 찾으려 애썼고, 친구도 만들면서 나름 성공적인 결실도 거둔 엘리오조차도 결국에는 고모와 지구로부터 보금자리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따뜻한 위로이자 가능성을 일깨우는 격려일 수 있는 이유다.
픽사다운 이상 혹은 순진함
그런데 현대적 맥락 안에서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준 <엘리오>의 메시지와 메타포는 의외의 부메랑이기도 하다. 커뮤니버스라는 설정의 정치적 맥락을 곱씹다 보면 <엘리오>가 변화를 반영하지 못 하거나 안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극 중 커뮤니버스는 우주 버전 유엔이나 다름없다. 두 단체 모두 각 행성/국가나 종족/민족의 대표가 모여 평화를 추구하고, 분쟁과 갈등을 대화와 토론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커뮤니버스와 유엔은 민주주의 제도와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반하면 범국가/행성적 협력이 가능하다는 믿음 위에 존재하는 셈이다. 하이러그 종족처럼 일견 폭력적인 상대와도 대화로써 공통점을 찾으면 평화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엘리오와 글로든의 우정, 올가와 그라이곤의 공통점이 우주적 갈등을 해소하듯이. 이는 냉전 이후 세계화라는 명목하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세계 각국에 전파한 미국의 국제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엘리오>의 설정은 최근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미국의 협조로 WTO 가입했던 중국이 도리어 미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고, 동유럽과 중동에서 다시 분쟁이 격화되는 등 자유주의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다시금 신냉전 구도로 전화되는 추세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주판 유엔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역설하는 스토리텔링은 좋게 말하면 이상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이브해 보인다.
물론 혹자는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이니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픽사'라는 이름값을 생각했을 때 조금만 더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을 떨치기는 어렵다. 현대인의 존재론적 문제에 관한 고찰과 국제 정치적 맥락을 다루는 사유의 층위가 균형을 못 이룬 나머지 평면적이고 유치한 인상이 유독 진하기 때문이다.
기시감의 연속과 반복된 문제
이에 더해 볼거리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한 광경을 손에 잡힐 것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한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엘리오>의 세계관은 어디서 본 듯하다. 주된 배경인 커뮤니버스만 보더라도 곡선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지고, 외계 종족이 모인 환상적인 공간이라는 점 외에는 특색이 보이지 않는다. 네 원소의 특징을 도시 설계에 녹여낸 <엘리멘탈> 속 엘리멘탈 시티에 비하면 시선을 끄는 힘이 현저히 부족하다.
<소울> 속 '태어나기 전 세상'과 비교하면 추상적이기도 하다. 사실 두 공간은 '일상에서 깨닫지 못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라는 역할을 공유한다. 그런데 <소울>이 '태어나기 전 세상'의 여러 구역, 영혼을 교육하는 공간, 모든 것의 전당, 사적 공간, 어둠의 구역 등을 스토리텔링에 활용했지만, <엘리오>는 커뮤니버스를 소개하는 데서 그친다. 그 결과 <엘리오>는 <소울>의 발상과 구성을 단순히 답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활용법도 아쉽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일례로 <토이 스토리>는 분량과 비중에 무관하게 수많은 장난감의 개성을 명확히 각인시켰다. 그에 반해 최근 픽사 작품은 일부 캐릭터만 활용한다. <엘리멘탈>만 해도 물과 불 캐릭터에만 집중했다. <엘리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외계인 캐릭터 중 글로든을 외에 뚜렷한 활약을 보여준 인물을 떠올리기 어렵다.
종합하면 <엘리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다. 누군가는 배부른 불평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절대적인 완성도 자체는 여전히 준수하고,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흐를 정도로 기본적인 재미는 갖춘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작들이 쌓아 올린 '픽사답다'라는 표현이 더 이상 칭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엘리오>가 보여준 이상, 평가절하는 감내해야 할 숙명이 아닐까 싶다.
Acceptable 무난함
픽사라서 사랑스럽고, 픽사라서 아쉽고, 픽사라서 감내해야 할 평가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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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로 열리는 제안
<콘클라베(Conclave)>(2024, 에드워드 버거)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 올해 3월에 완성한 글
“우리의 확신 사이에” 있는 것
의심을 선택한 사람들
로렌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화면이 들어온다. 한밤중의 도로변, 굽은 등과 가방을 쥔 손이 보인다. 바쁜 걸음, 숨소리와 자동차의 소음은 불협화음을 이룬다. 엘리베이터에 이르자 카메라는 모자를 꽉 쥔 손을 클로즈업한다. 다다른 곳은 교황의 방, 로렌스는 교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 왔다. 엄숙한 추기경들의 표정에 얹히는 것은 긴박한 연주곡이다. 화면은 탁하고 어둡다. 교황의 반지를 가르거나 시신을 다루는 행위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짧은 클로즈업들로 흐른다. 랩핑된 채 흔들리는 시신 위로 타이틀이 오버랩된다. <콘클라베>의 오프닝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스릴러의 톤을 설정한다. “이제 교황의 자리는 공석”이라는 트랑블레의 발단 선언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로렌스의 얼굴은, 그중 이질적이다. 그에게 드리워진 이질감/어긋남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된다.
대부분 실질적 로멜리(영화의 로렌스)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을 <콘클라베>가 영상화하는 방법은 은유와 관찰이다. 카메라는 로렌스의 눈이 돼주기보단 그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와중 주위 배경과 인물을 우회한다. 로렌스가 자신의 의중과 콘클라베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기도에 어려움을 겪는” 그는 잘 열리지 않는 지퍼백에 화풀이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잠들어 버린다. 내면의 불신과 불안은 그가 시선을 외부로 돌려 ‘사소해 보이는’ 것에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다. 추기경 단장인 로렌스는 어떤 면에서 자발적으로 고립된다. 그 신호들은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지 않는다. 로렌스의 연설이 끝나자 마치 그와 적대하듯 앉아 있는 추기경들의 군상이 효과음과 함께 내려앉는다. 아데예미나 트랑블레의 방에서 대화를 나눈 후, 영화는 방 구조를 이용해 안쪽에 있는 상대방을 가리고 문간에 선 로렌스만이 보이도록 촬영한 숏을 끼워넣는다. ‘편’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 매초의 감각을 흡수해 유동하는 자, 로렌스에겐 동료들과 거리를 두고 사고할 시공간이 필요하다.
로렌스가 옷깃을 잡은 테데스코의 손을 뿌리치거나 베니테스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장면에서 프레임은 손이 보이지 않도록 잘려 있다. 카메라가 찍고 있는 것은 행위가 아닌 안면의 진동, (어느 쪽으로건)흔들리는 심리의 노출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으로 진행되는 스릴러지만 효과적인 서스펜스와 쇼크 전달은 사실 주목적이 아니다. 영화는 비밀을 수면 위로 올려 사건으로 다루는 주체, 로렌스의 태도와 심리 변화에 주목한다. 이 ‘주체’는 뚜렷한 욕망과 목표를 가지고 성큼성큼 걷는 대신 짙은 안개를 더듬으며 힘겹게 나아간다. 의심을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는 “조종사”(-벨리니), 그의 선택들은 확신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거리를 두는 자는 로렌스만이 아니다. 콘클라베의 선장이 태운 낯선 자- 영화는 추기경 떼숏을 촬영하며 첫 등장처럼 홀로 동떨어져 있는 베니테스를 놓치지 않는다. 의중 결정 추기경으로 막 로마에 도착한 그의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배치다. 허나 유력 후보를 논하거나 편을 갈라 선거운동을 하고 소문을 부풀리는 정치적 움직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그의 이질성은 비자발성과 자발성을 모두 내포한다.
원작이 그러했듯 영화는 추기경들의 권력다툼과 뒤이어 드러나는 트랑블레의 비리를 중심에 두고 서스펜스를 구성하는 와중, 베니테스의 ‘컨디션’에 관한 정보를 복선으로 끼워 두었다. 지나가듯 꾸준히 언급되던 미스터리의 정체는 갈등이 전부 해소되었다고 여겨질 무렵 새로운 사건의 발단처럼 공개된다. 그러나 이 ‘갈등’/미스터리는 밝혀지더라도 해소되지 않는 것, 아니 해소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분열된 추기경들을 한데 모으는 영웅으로 보였던 그의 교황 선출은 기성 정치의 통합 성공보다는 그 해체의 시작이고 의도치 않은 반역이다. 로렌스가 확신을 지양하고자 하는 이라면, 베니테스는 그 자신의 말대로 “사람들의 확신 사이에 존재하는” 이다. 인터섹스인 그의 몸은 여성/남성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확신의 과학' 사이에 있다. 서구권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기에 신체를 규범에 끼워 맞추는 수술도 받지 않았다. 또한 그는 남아를 선호하는 문화권에서 태어나 남자아이로 길러졌기에 성직자가 될 수 있었다. 소외된 환경이 그가 비규범에 비규범이 얹힌(확신의 성별이분법과 종교의 확신-관습을 깨는) 형상이 되도록 이끈 것이다. 저도모르게 틈새의 몸이 된 그는 교회가 아닌 가치를 따라 종교인의 길을 걸으며 전쟁(:거듭된 확신의 극단적 결과) 피해 여성들을 도왔다. 그가 틈새를 어루만지는 데에 종교를 ‘사용해 온’ 과정에는 선택이 포함된다. 전 교황이 그를 대주교로 임명한 것 역시 선택이고 로렌스가 그를 선거인단에서 배제하지 않은 것도 작은 선택이다. 몸과 정체성, 사명에 관해 오랜 세월 끊임없이 고민/의심했고 끝에 “나는 신이 만드신 그대로”라고 여기게 되었다. 베니테스는 스스로를 ‘남성’/‘여성’으로 확언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낡고 거대한 가부장제”(-피터 스트로겐, [Deadline])를 유지해 온 가톨릭 교회 내에서 노동은 하지만 발언권은 없는 여성들의 지위를 재정립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 <콘클라베>는, ‘여성과 남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아이디어까지 담고 있다.
모든 성sex과 모든 언어를 인식하는
바깥과 연결되는 정치
영화는 여러 언어들을 등장시키며 그것들이 평등하게 취급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테데스코는 일관되게 이탈리아어를 쓰며 라틴어 사용을 주장하고, 그와 로렌스의 대화는 영어도 섞이나 대개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진다. 로렌스와 베니테스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지고, (아마도)나이지리아어는 아데예미와 샤누미가 방에서 언쟁할 때만 뭉개져 들릴 뿐이다. 그러나 로렌스의 연설은 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시작할 무렵 영어로 바뀐다. 베니테스의 식전기도와 연설은 영어로 주의를 환기한 후 스페인어로 전환된다. 그 전환과 함께 작품은 핵심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발화한다. 일부에게 맞춰 구성된 기준에서 탈락되고 소외된 것들을 복기해야 한다고 -자신의 제1언어first language로 먹고 마시지 못하는 이들을 상기시키고 수녀들의 노고를 기리는 베니테스를 통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서구의 식민지배가 앗아간 언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분열된 모든 언어는 들려야 한다. 베니테스가 마법같은 일치를 획득한 듯 보임에도, 원작에 적힌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가 아니었다. 영화에도 새 교황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거나 기꺼워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라틴어로 하나되기’ 식의 통합은 위험한 환상이다. 그의 ‘정체’가 알려진다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테다. 베니테스는 비난을 걱정하는 대신 “신이 주신 내 몸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서로 엇갈리고 충돌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계속해서 조율하며 새로운 가치를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할 일이 아닌가. 이슬람을 악마화하는 테데스코의 연설을 듣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벨리니처럼 손가락질하는 것보다는, 베니테스처럼 외부로 시야를 넓히며 설득을 시도하는 행위가, <콘클라베>가 지향하는 정치에 가깝지 않을까.
그 정치가 인식하고 요구하는 행위자는 발언권을 쥔 이들만이 아니다. 영화는 로렌스 외에 한 명의 관찰자-화자를 더했다. 아그네스다. 오프닝에서 첫 번째 시선인 로렌스가 소개된 후, 콘클라베 당일 아침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아그네스가 보여지며 두 번째 시선이 소개됐다. 로렌스에 비해 비중은 훨씬 적지만 그의 관점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와 더불어 가시화되는 바는 수녀들의 구체적인 노동이다. 로렌스가 실패한 복사를 아그네스가 해주는 장면은 묵언의 지지를 나타낼 뿐 아니라, 수녀들의 노동 없이는 추기경들의 ‘중요한 업무’ 수행도 불가능함을 상징한다. 앞서 샤누미와 로렌스가 대화하지 못하게 막았던 아그네스가 언성을 높여 트랑블레를 폭로하는 것 역시 로렌스에 대한 동의 이상을 의미한다. 베니테스의 식사 기도를 듣고 미소짓는 얼굴이나 로렌스의 연설을 듣는 얼굴, 교황의 방 문 봉인이 깨진 것을 보고 긴장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등, 영화는 아그네스의 마음이 움직이는 찰나에 주목했다. 그것들이 모여 ‘으레 그렇게 해 왔던 것’에 대한 의심으로 형상화된 순간, 목소리가 삭제되었던 존재가 침묵의 봉인을 깨는 장면을 <콘클라베>는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투표권이 없는 그의 선택은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
베니테스는 ‘예상 밖이지만 예정되어 있던’ 리더의 재목이나 초월한/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의 득표는 느닷없는 우연이나 종교적 계시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권력다툼으로 얼룩진 콘클라베를 지나는 동안- 목격하고 감각한 것들이 쌓이고 베니테스의 연설에 다다라 낳은 결과다. 신의 호통처럼 연출된 폭발은 추기경들을 바깥 세상과 연결되게 했다. 교회는(정치는) 전통에 매몰되고 바티칸에 밀폐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의 바람wind/hope을 느끼며 내일을 바라보고 현재를 어루만져야 한다.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 추기경들은 그것을 감지하고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무결’한 교황의 탄생은 검은 우산이 흰 우산이 되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허나 <콘클라베>는 잘 짜인 연극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영화가 살짝 바꾸고 추가한 엔딩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단 원작은, 교황으로 선출된 베니테스와 독대를 마친 로멜리에게서 시선을 빼앗는다. 전통의례를 거부하고 추기경들 각자와 악수하는 “인노켄티우스 14세”와, 그의 온화함에 경쟁자들이 안도하고 테데스코마저 떨떠름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전지적 작가가 묘사한다. 로멜리의 위치에선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를 “볼 수가 없었다”. 멀리서 함성이 들려올 따름이다. 세밀하게 내면을 서술하며 아끼던 주인공을 그 지점에 내버려둔 채로, 로버트 해리스는 오말리가 연통에 불을 지피듯 독자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려는 것 같았다.
영화는 또 하나의 확신이 깨진 로렌스의 성찰을 관찰한다. 눈물의 방을 나온 그는 멍하니 앉아 있다. 홀을 가로지르는 거북이 보인다. 거북을 들고 ‘밖으로 나간’ 로렌스의 귀에 거대한 함성이 들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가 덧붙인,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엔딩이 이어진다. 로렌스의 방, 침대에 앉아 있는 그는 홀가분하고 허탈해 보인다. 닫혀 있던 덧창이 올라가고 빛이 들어온다. 로렌스는 창밖을 내다본다. 수녀 셋이 문을 열고 나와 대화를 나누며 광장을 건너 화면을 나간다. 바티칸의 가장 ‘낮은’, 자주 비가시화되는 곳을 응시하며, 아래에서 위로 퍼져나가는 목소리를 로렌스는 들었을 것이다. 그에게 미래의 방향을 보여주고 거기 포함시키며, 영화는 관객에게 화면 바깥을 의식할 것을 주문한다. <콘클라베>의 끝에는 연극무대와 함께 닫히는 선명한 판타지보단 현실로 열리는 모호한 제안이 있다. (신을 믿든 아니든) 관객이 기억해야 할 것은 로렌스와 베니테스의 여정과 태도, 그리고 같은 쪽을 바라보는 듯했던 그들이 충돌했을 때 이루어지는 대화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로렌스의 태도다. 피터 스트로겐의 말대로 “양극화된 세계”[Deadline]다. <소셜 딜레마>(2020)가 우려했고 <시빌 워>(2023)가 상상-경고한 내전을 (분명 미국의 특수성이 있지만) 미국에 한정된 이야기로 넘겨도 되는가. 이러한 시대에 의심의 태도를 제안하는, <콘클라베>는 소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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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3년만에 세상 밖으로
3년만에 세상 밖으로, 이은정 감독의 '오랜만이다'
개막식부터 이어진 비소식과 더운 날씨에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아주는 관객들이 많다. 이은정 감독은 첫 장편영화이자 음악영화를 선보이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2020년 팬데믹과 맞물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온 영화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과 ‘연경, 음악, 그리고 이은정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소개와 함께 간단한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를 연출한 이은정입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는 오랫동안 가수의 꿈을 꾼 연경이 서른 초반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꿈을 포기할지 고민하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에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기타 하나가 첫사랑 현수로부터 배달되며 다시금 떠오른 첫사랑, 꿈과 현실 사이 청춘들의 고민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구상하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 제작사 대표님이 ‘지하철에서 첫사랑을 만나 보내는 하루’를 음악 영화로 오랫동안 기획하셨는데요. 제가 연출을 맡았을 때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을 1년 정도 멈추었어요. 그때 절반가량의 시나리오도 다시 썼거든요. 처음에 작성한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촬영을 중단한 1년의 기간이 감독님께는 더욱 깊이 있어진 시간이 되었을까요?
영화 속 연경이도 꿈을 향해 도전하지만, 자꾸만 벽에 가로막히고 좌절하고 어쩌면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사실 촬영이 중단되니 연경과 감정이 동일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바뀐 시나리오를 감독님과 배우님들께서 좋아하셔서 나머지 절반을 새로운 시나리오와 합쳐 완성했어요. 기존의 시나리오는 로맨틱 코미디 성향이 강했다면 완성작은 훨씬 차분하고 음악인으로서 연경의 성장담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저에게는 이 영화 자체가 연경이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작업하는 가운데 촬영이 계속 중단되다 보니 “아냐 넌 할 수 있어, 될 수 있어”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연경이가 마지막에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데 울컥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곡 추천 부탁드립니다.
여고생 연경과 잘 어울리는 곡인 '천문학은 모르지만', 현대에서 부르는 '무지개'라는 곡을 추천드립니다. '무지개'를 들을 때 각자의 느낌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제가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감성인 것 같아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처음입니다.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어요. 저 혼자 3년 가까이 영화 '오랜만이다'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언제 세상에 나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러다 영원히 안 되면 어쩌지 불안감도 생겼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저의 불안을 해소해 준 느낌이에요. 처음으로 극장에서 상영한 것을 보게 되어 의미가 있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에 감동이었습니다.
8월 12일, 이은정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 상영 후 곧바로 음악 공연을 하는 ‘히든트랙’에 참석했다. 당시 관객과 가까이에서 만나 영화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게 진짜 음악영화제’라 마음에 와닿았다고 전했다. 이은정 감독은 연경과 음악의 연장선에 서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은정 감독은 영화 '오랜만이다' 음악들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음원도 나오고 나중에 노래방에서 나오면 따라 부르고 싶다는 즐거운 꿈을 밝혔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에디터 : 김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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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직시해야 할 또 하나의 케이
- 1970년대 초, 길에서 우연히 발견된 미오카.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미오카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조작된 서류와 감춰진 기록. K-Number의 진실은 무엇이며, 사라진 서류는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시간과 국경을 넘어, 숨겨진 진실이 풀리기 시작한다.
<케이 넘버> 줄거리
케이팝, 케이뷰티 등 'K-'를 붙여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기 이전, 이미 'K-'를 붙여 세계로 수출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가 허가 하에 홀트아동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의 입양알선기관에서 해외로 입양 보낸 이들은 어떠한 규칙성이 있는 일련번호, K-넘버가 붙여져 해외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보내진 해외입양인들이 추산 20만 명을 넘는다고 하는데, 이 충격적인 숫자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이 어마무시한 숫자와 이들의 입양에 돈이 오간 걸 연관시킨다면 입양을 '사업'으로 이용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 넘버>는 이런 한국의 잘못된 입양 시스템이 횡행하던 과거를 관통한다. 영화는 국가가 주도한 거대한 사업이 된 시작점을 다루며 이 시스템의 이면에 혼혈아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계산, 기부장제에서 미혼모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잘못됐다는 시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낱낱이 들춰낸 사실들에 우리는 당연히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끝낼 수 있지만, <케이 넘버>는 이 잔혹사의 가장 중심인 입양인들을 조명한다. 과거를 들추긴 하지만 영화의 중심은 언제나 현재에 있으며, 입양사업을 하던 시대에서 40-50년이 지난 지금을 살아가는 입양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따라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오카 역시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이다. 자신의 친생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만 4번째 방문 중인 그는 부정확한 자료와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하여 탐문을 이어나가야 한다. 국가도 입양기관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입양인은 여정은 갑갑함과 분노를 일으킨다.
또한 사회가 조금의 책임도 없이 그들을 외면했기에 입양인들은 친생부모를 찾는 과정부터 찾은 이후, 그리고 그저 삶을 살아갈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미오카는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자신을 입양한 미국인 부모가 입양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 없이 입양 간 미국에서 평생을 살아왔음에도 불법 체류자가 될 위기에 처한다. 그는 다행히도 시민권을 얻었지만, 미오카는 말한다. 시민권을 취득하기 어려운 이들도 많다고. 이 문제 역시 국가와 입양기관이 그들 주도하에 아이들을 입양 보냈음에도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내면 끝이었던 무책임한 행태는 끝내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추방된 한 입양인이 정부와 입양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송은 1심에서는 국가기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2심에서는 홀트의 책임 역시 인정하지 않으며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국가 주도하에 입양 보내진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것에 과연 국가와 입양기관의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있을까.
입양인들이 입양된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국적취득 등의 서류상의 문제가 처리되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자신의 입양 정보를 보기도 어려우며,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친생부모를 찾지 못하거나 찾더라도 부모의 거절로 보지 못하는 것에 과연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문제들에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케이 넘버>는 한국의 잘못된 입양 시스템이 잔혹했던 과거의 아픔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가해 행위임을 분명히 한다. 과거에 사후 대처 없이 무분별하게 입양 보낸 무책임한 과거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영화를 통해 입양인들을 약간이라도 알게 됐다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도 직면해야 한다. 당신은 입양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가가 전 세계로 보낸 수십만 명의 입양인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들의 인생에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전 세계로 퍼지는 우리 문화에 'K-'를 붙이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면 제일 처음 'K-'를 붙여 해외로 보낸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케이 넘버>를 통해 입양인들을 약간이라도 알게 됐다면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더 이상 비극을 이어나가지 않게 감시해야 할 것이다. 영화가 준 충격이 이 문제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글은 씨네랩에서 초청받아 참석한 <케이 넘버>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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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보는 친구들과 밴드 결성하게 된 썰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벨 앤 세바스찬의 리더 스튜어트 머독의 감독 데뷔작이자 베를린 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된 작품!
바로 <갓 헬프 더 걸>입니다.
음악 영화인만큼 OST가 정말 좋지만, 영상미까지 뛰어나
눈도 귀도 모두 즐거울 수 있는 영화입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이브 | 에밀리 브라우닝
FILMOGRAPHY
갓 헬프 더 걸 (2014)
슬리핑 뷰티 (2011)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2004)
AWARDS
Ashland Independent Film Festival, 2007
Australian Film Crritics Association Awards, 2012
Australian Film Institute, 2005
제임스 | 올리 알렉산더
FILMOGRAPHY
잇츠 어 신 (2020)
퍼니 버니 (2015)
갓 헬프 더 걸 (2014)
AWARDS
British LGBT Awards, 2020
Brooklyn Film Festival, 2015
Brookly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5
캐시 | 한나 머레이
FILMOGRAPHY
찰리 세즈 (2018)
디트로이트 (2017)
갓 헬프 더 걸 (2014)
AWARDS
CinEuphoria Awards, 2020
Evolutio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5
Ourense Independent Film Festival, 2015
어떤 내용인가요?
이브는 거식증을 앓고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공연을 보러 온 이브는 공연장에서 기타리스트 제임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제임스는 이브와 함께 제임스가 기타를 가르쳐주고 있는 캐시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셋은 친한 친구가 된다.
이브, 캐시, 제임스는 밴드를 하기로 결정하고, 밴드부원을 모집하려고 한다.
과연 셋은 밴드부원을 모집해서 밴드를 결성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Reviews
"따뜻한 색감"
마치 추억 속 한 장의 사진을 꺼내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나는 따뜻하고 빈티지한 색감으로
아련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영화의 색감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을 확인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I_mWZNoa2vg
"세 배우의 케미"
이 영화 역시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는데요.
노래가 나올 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삼인방의 모습이 무척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온전히 그들의 세상 속에서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밀리 브라우닝"
세 배우(에밀리 브라우닝, 올리 알렉산더, 한나 머레이)가 주연을 맡고 있지만, 에밀리 브라우닝이 맡은 이브의 이야기가
영화의 흐름을 주로 진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이브라고 생각하는데, 이브라는 캐릭터가 가진 전체적인 스토리가 외형에서도 나타났으며, 비언어적 표현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갓 헬프 더 걸>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갓 헬프 더 걸>은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분께 꼭 추천드리고 싶고, 빈티지한 색감, 패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뒷 내용이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서 <시니어 이어>를 시청해보세요!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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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장르가 섞였지만, 맛있어요
- 당신에게도 풋풋한 첫사랑 같은 영화가 있나요? 제게는 구파도 감독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그러합니다. 어느 계절에 떠올려도 첫사랑의 온기가 온전히 느껴지고, 생각만으로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데요. 그 영화의 감독과 배우가 다시 뭉쳤습니다. 판타지 로맨스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입니다.※ 2월 7일(월)에 진행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2022년 2월 9일 국내 개봉했습니다.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Till We Meet Again<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의 이야기로 막을 엽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저승의 풍경과 죽음 이후의 절차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신과 함께>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그리는 저승의 풍경은 <신과 함께>와는 사뭇 다릅니다. <신과 함께>의 저승이 한 인간의 죄악을 평가하기 위한 무시무시한 7개의 지옥이었다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저승은 무시무시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죠.영화 초반부, 죽음과 함께 저승세계에 입문한 '샤오룬'을 인도하는 방식에서부터 이 영화만의 색다른 저승 세계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죄질을 평가하는 것은 무서운 창을 들고 서 있는 신이 아니라 스캐너가 달린 컴퓨터입니다. 스캐너로 이마와 혀의 바코드로 찍으면 한 인간이 지나온 전생과 이번 생의 공덕이 단번에 저승 컴퓨터로 전송되죠. 환생의 절차를 알려주는 것도 저승사자 따위가 아닙니다. 키치한 분위기의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재생해줄 뿐이죠. 이 장면은 잘 만든 B급 영화로 유명한 <남자사용설명서>의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과감하고 색다릅니다. 저승에서 일하며 이번 생의 부족한 공덕을 채우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스토리와 저승의 대왕인 염라가 며칠은 안 씻은 듯한 꼬질꼬질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 또한 의외였습니다. 저승에서 활개를 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혹여 저들이 저승의 신에게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들은 조금의 꾸지람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여태껏 봐왔던 저승은 그만큼 무섭고 음침한 분위기였지만, 이 영화 속 저승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구파도 감독은 무지개별로 떠난 자신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저승이 조금은 명랑하고 활기차게 그려진 것도, 어떤 식으로든 환생이 가능하게끔 설치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 두 번째는 이승에 남겨진 '샤오룬'의 여자친구 '샤오미'의 인연 찾기, 세 번째는 500년 전 자신을 죽인 동료들을 벌하고자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설명 등을 일절 보지 않고 영화를 감상한 저는 보는 내내 흠칫흠칫 놀라곤 했습니다. 세 가지의 이야기가 뒤섞여 진행되다 보니 영화의 장르가 쉴 틈 없이 바뀌곤 했거든요. 판타지 로맨스 같다가도 호러 같고, 스릴러 같다가도 코미디 같았습니다.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방문하신다면,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온갖 장르의 폭격에 당황하실 수도 있습니다.'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은 웃음이 픽픽 새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이승의 인연을 붉은 실로 엮어주는 월하노인의 임무를 맡은 '샤오룬'과 '핑키'는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씩 진정한 파트너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샤오룬'을 향한 '핑키'의 사랑도 스멀스멀 싹트죠. '샤오미'의 인연 찾기는 절절한 로맨스입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다며 사랑을 맹세했던 '샤오룬'이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샤오미'의 새 인연을 찾아주는 과정은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선사하죠.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 스릴러입니다. 이미 환생을 거듭해 전생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12세 관람가입니다.)그래서 재미가 없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다들 잡탕밥 드셔보셔서 아시겠지만, 잡탕밥은 그 오묘함이 맛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여 버렸어도 맛은 있었답니다.⊙ ⊙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생과 사를 골몰하게 됩니다. '샤오룬'이 동네 어르신들과 농구를 하다가 별안간 벼락에 맞아 죽었듯이, 어쩌면 저도 이렇게 글을 쓰다가 별안간 건물이 무너져서 죽을 수도 있지요. 요즘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정말 그런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극 중에서도 월노로 활동하는 죽은 자 중에 노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요절한 청년들이었죠. 이렇듯 죽음은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의 무작위성은 죽음을 두렵게 만듭니다.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던지는 '만약'이라는 가정 덕분에 저는 죽음의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겨냈습니다. '만약 죽음이 또 다른 생의 시작이라면? 내가 이미 열 번이 넘는 환생을 거쳐 몇백 년간 존재해왔다면? 사랑, 선의, 그리움 등의 감정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즐거운 가정과 함께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좀 더 알차게 이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인생 1회차 인간을 위해 앞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는 영화가 더 많이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마지막 쿠키 영상을 보고 눈물을 훔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인 만큼,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아루'에게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쿠키 영상에 담았거든요. 쿠키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시고,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마음들을 온전히 느끼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Summary
샤오미(송운화)만 사랑해 온 직진남 샤오룬(가진동), 하지만 청혼하려던 순간 갑작스런 사고로 저승에 간다. 환생하고 싶으면 붉은 실로 커플 매칭을 하는 월하노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데, 하필 사사건건 부딪히던 핑키(왕정)와 파트너가 된다. 드디어 이승으로 내려온 ‘월하노인’ 샤오룬과 핑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 우리가 인연을 맺어줘야 할 인간이 샤오룬이 평생 사랑했던 단 한 사람, 샤오미란다! (출처: 씨네21)Cast감독: 구파도출연: 가진동, 송운화, 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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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피해자, 아줌마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지난 20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공동 대상을 수상한 영화 갈매기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씨네랩의 초청으로 개봉 전 시사회에 참석하고 왔는데요.
김미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데 인디 영화임에도 매우 흥미롭게 본 영화입니다.
한 중년 여성이 가까운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그 이후에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세심히 보여주는데요.
피해를 당하는 모습은 영상에 담지 않고 오로지 피해자의 모습을 통해 모든걸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줌마라고 불리는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중년 여성이라서 그의 피해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어려워하는 장면도 나오는데요.
결국 꿋꿋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우리가 흔히 아줌마라고 부르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이 많이 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 하세요!
영화는 7월 28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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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VS. 콩 영화 후기 / 몬스터 세계의 통합 / 새로운 몬스터버스의 탄생 / 고질라와 콩의 역대급 맞짱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고질라 VS. 콩”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있을법한데, 쿠키영상이 없더라구요~#고질라, #콩, #몬스터버스, #블록버스터, #액션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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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코브라 시즌2> 공식 예고편
바다에 수장된 2차 대전 탄약선이 폭발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서덜랜드는 신임 내무 장관인 조지프 오바시와 코브라를 소집해 비상 대피령을 내린다. 혼란한 와중에 러시아 재벌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자, 서덜랜드는 암살범 검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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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쁘띠 마망> 메인 예고편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 ‘마리옹’과 함께 시골집으로 내려온 ‘넬리’.
어린시절 엄마의 추억이 깃든 그곳에서
‘넬리’는 엄마와 이름이 같은 동갑내기 ‘마리옹’을 만나게 된다.
단숨에 서로에게 친밀함을 느끼는 ‘넬리’와 ‘마리옹’!
하지만 ‘넬리’는 이 우연한 만남 속에서 반짝이는 비밀을 알게 되는데…
“나 비밀이 있어.
내 비밀이면서, 네 비밀이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