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3-11-21 14:22:37
삶의 지지대가 되어 주는 친구
[영화 '아워 프렌드' 리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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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점을 뒤집는 천재감독의 명대사
천재? 괴짜? <이터널 선샤인> <무드 인디고> 등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씨네필들을 사로잡은 미셸공드리 감독.
공드리 감독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비주얼, 음악과 영상의 조화, 섬세하고 깊이 있는 대사들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데요.
미셸 공드리의 영화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공드리의 솔루션북>이 8월 14일 개봉합니다.
<이터널 선샤인> 2005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가슴 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지기만 하는데...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요?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무드 인디고> 2014
VIVID 칵테일을 제조하는 피아노를 발명해 부자가 된 콜랭과 당대 최고의 철학가 장 솔 파르트르에게 빠진 그의 절친 시크. 두 사람은 우연히 클로에와 알리즈를 만나게 되면서 운명과도 같은 사랑을 시작한다.
PASTEL 서툴지만 진실된 고백으로 클로에와 결혼에 성공한 콜랭. 반면 시크는 알리즈와 함께 파르트르의 강연에 다니고, 그의 물건을 수집하는 등 값비싼 열정을 이어간다.
MONO 그러던 어느 날, 콜랭은 클로에의 폐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고, 치료를 위해 전재산을 바치기에 이른다. 한편, 시크는 콜랭이 결혼자금으로 건넨 돈마저 파르트르 물건 수집에 모두 써버리고, 이런 그에게 알리즈는 점점 지쳐간다.
COLORLESS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난생 처음 험난한 노동을 시작한 콜랭과 우상에 미쳐 사랑을 등진 시크. 마침내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환상은 색을 점점 잃어가는데…
<수면의 과학> 2006
삭막한 현실에서 벗어나 꿈 속에서 살고픈 드리밍 보이 ‘스테판’. 짝사랑하는 옆집 그녀 ‘스테파니’가 영혼의 짝이라 확신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기란 꿈처럼 쉽지가 않은데… 꿈꾸는 모두를 위한 ‘스테판’의 Sweet Dream!
<마이크롭 앤 가솔린> 2016
작고 소극적이지만 섬세한 예술가, 마이크롭 ‘다니엘’.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가솔린 냄새 풀풀 풍기는 괴짜 모험가, ‘테오’. 첫만남에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 본 소년들은 영혼의 단짝이 된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가던 중, 길고 긴 여름방학을 맞아 다니엘과 테오는 프랑스 전국을 누비는 로드 트립을 계획한다. 가진 건 고철상에서 주운 잔디깎이 모터와 널빤지뿐. 우여곡절 끝에 제법 그럴싸하게 완성된 시크릿 드림카! 낭만 없이 볼 수 없는 미운 열여섯의 깜찍발칙한 반항이 시작된다.
<공드리의 솔루션북> 2014
영화감독 마크는 자신의 새로운 걸작이 제작자들 때문에 망할 위기에 처하자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숙모가 있는 마을로 탈출한다. 머릿속에 쏟아지는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실행하기 시작하는 마크.
세계가 인정한 천재 감독과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감독을 동시에 해내는 그는 영화의 완성이 늦어지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솔루션북’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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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의 앙상블을 확인하다
지난 2018년 청룡영화상에서 한지민에게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미쓰백>. 한지민의 연기는 언제나 실망한 적이 없지만 과격한 배역을 맡았던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과연 교도소도 다녀오고 사회에 버림 받은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면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니 그 연기가 궁금하다는 생각에 보기 시작했다.
영화 <미쓰백> 시놉시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매 순간 날 배신하는 게 인생이야”
“이런 나라도, 같이 갈래?”스스로를 지키려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되어 외롭게 살아가던 백상아. 누구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마음에 두지 않던 어느 날 나이에 비해 작고 깡마른 몸, 홑겹 옷을 입은 채 가혹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아이 지은을 만나게 된다. 왠지 자신과 닮은 듯한 아이 ‘지은’을 외면할 수 없는 상아는 지은을 구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미쓰백>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
영화 <미쓰백>을 보면서 좋았던 부분은 배우들의 앙상블이었다. 타이틀롤로서 영화를 이끌어가는 한지민과 그런 한지민이 지키고자 하는 아이 김시아. 그리고 이 둘을 보살피는 조력자로서이 이희준. 이렇게 3명의 배우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캐릭터를 잘 표현해서 부담스럽지 않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지민 보다 훨씬 눈에 가는 배우가 있었다. 아동학대범 주미경 역을 맡은 권소현 배우였다. 솔직히 진짜 아동학대범 데려다가 영화를 찍은 줄 알았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영화 캐릭터로만 보인다기 보다는 현실 속 배우와 캐릭터가 겹쳐서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간극이 영화 <미쓰백>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던 작품이었다.
아동학대의 사회적 환기
영화 <미쓰백>의 목적은 아마도 아동학대의 사회적 환기일 것이다. 그래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영화를 제작했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영화의 한계인데 이런 아동학대가 있다!!를 보여줄 뿐 뭔가 직접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흡한 초동대처로 인해 분노를 느끼지만 그 분노는 영화가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 사라지고 만다. 정치성이나 사회성을 디는 모든 영화 작품이 갖는 한계를 영화 <미쓰백>에서 다시금 느껴 더 안타까웠던 것 같다.
드라마 <마더>와 너무 비슷했던 작품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뛰어났고 연출 역시 답답하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안타까웠던 점은 드라마 <마더>와 이야기 구성이 굉장히 비슷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보는 느낌이 아니라 리메이크작을 보는 것 같았다. 사건의 구성과 연결이 비슷하다보니 장면장면마다 마더의 장면이 겹쳐보여서 오히려 아동학대라는 주제를 제대로 환기시키기 보다는 다음에는 저런 장면이겠구나, 그 다음에는 이렇게 진행될테고, 하면서 머릿속에서 자동 스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아동학대범에 대한 분노보다는 드라마 <마더>와 완전 똑같구나 하는 감상평이 먼저 나왔던 것 같다.
비슷한 작품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었지만 영화 <미쓰백>은 배우들의 앙상블 만큼은 완벽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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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없이도 북한을 논할 수 있다는 자신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 10년 만에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은 남몰래 휴전선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준비한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고, 낮은 출신성분 때문에 미래를 마음대로 계획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 하지만 규남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탈주를 시도한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을 말리던 중 함께 탈주병으로 체포되어 버린다.
그런데 꼼짝없이 총살형을 기다리던 규남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온다.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이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영웅으로 둔갑시킨 것. 현상 덕분에 사단장 직속보좌가 된 규남은 곧바로 그 자리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현상은 자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물러설 길 없는 추격에 나선다.
북한 사용법 리뉴얼
한국 영화에서 '북한'이라는 소재는 활용법이 어느 정도 확립됐다. 작품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공식에 충실하다. 우선 주인공은 대부분 공작원 혹은 군인이다. 그들을 도와주든, 견제하든 고위 정치인도 자주 개입한다. 자연히 장르는 첩보물이거나 전쟁 영화다. 간혹 가다가 <크로싱>처럼 탈북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작품도 등장하지만, 상업영화라는 틀 내에서는 그 빈도가 잦지 않다.
스토리텔링에서는 '민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던 이들이 한 민족임을 실감하면서 점차 동료애나 전우애를 쌓아 나간다. 하지만 그들의 우정이나 사랑은 언제나 미완의 완성이다. 잠깐동안 외국에서 만나거나, 본국으로 송환되거나, 애틋함만 남기고 죽는다. <공동경비구역 JSA>, <공조>, <고지전>, <의형제> 등 모두 마찬가지다. <사랑의 불시착>도 로맨스를 중심에 뒀을 뿐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종필 감독의 신작 <탈주>는 이 공식에 반기를 든다. 주인공은 여전히 군인이지만, 스토리텔링은 신선하다. 북한 사람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남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냈기 때문. 또 곁가지를 과감히 쳐내고 제목에 걸맞은 템포와 긴장감을 조성해 장르적 쾌감도 극대화했다. 그렇기에 <탈주>의 도전은 충분히 유의미해 보인다. 비록 한국 영화 공식을 완전히 전복하지는 못해도, 꽤 큰 균열을 낸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간결해서 남다른 시작
<탈주>는 시작부터 남다르다. 탈주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연출과 편집이 눈을 사로잡는다. 모두가 잠자는 새벽에 몰래 깨어나 비밀 통로를 이용해 부대 밖으로 나가는 규남. 그는 지뢰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조금씩 완성하고, 초시계로 시간을 재면서 부대 막사와 DMZ를 전력으로 오간다. 조금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는 컷 전환과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이 장면은 질주하는 주인공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독립적인 시퀀스로서도 강렬한 이 장면은 영화의 성격과 전개를 암시하는 시작점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영화가 오프닝만큼이나 간결하기 때문. <탈주>에는 불필요한 잔가지가 거의 없다. 노래 '양화대교'를 삽입한 플래시백이 대표적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도 먼저 떠나보낸 규남. 영화는 그의 개인사를 가사와 오버랩하면서 탈북을 선택한 그의 절박함과 결연함을 구질구질한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이에 더해 현실적인 묘사 덕분에 규남의 현재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겨우 잡은 멧돼지 고기를 전부 장교들에게 빼앗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제대 후에도 당의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거나, 밝은 조명이 가득한 남한 측 휴전선을 바라보는 순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군의 꿈이 남 일이 아닌 이유
스토리텔링도 신선하다. 북한을 다룬 기존 한국 영화와는 달리 북한군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남한 관객이 감정이입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규남과 현상의 미묘한 관계성이 있다. 러시아로 피아노 유학을 갔다 온 엘리트 장교, 현상. 현상네 집안 전속 운전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흙수저, 규남. 이들은 '실패할 자유'를 대할 때 가장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규남에게는 실패마저도 자유다. 이미 인생이 정해진 북한 체제 하에서 그는 실패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기에 실패할 자유마저도 갈망한다. 반면에 현상은 자유가 두렵다. 피아니스트로서 실패하고 군인이 된 그에게 자유란 실패를 껴안고 견뎌야 하는 책임과 부담이다. 그래서 현상은 규남에게 실패할 자유를 포기하고 정해진 대로 살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보면 현상의 추격은 북한군 장교로서의 책무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양가적인 감정선 덕분에 규남의 탈주는 마냥 남 일이 아니다. 이미 정해진, 안정적인 길을 따르라는 사회의 압력은 휴전선 이남도 지배하기 때문. 더 나아가 압박에 시달린 청년들이 실패할 자유를 요구하며 몸부림치는 광경은 남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탈주>는 한국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한다. 민족이라는 프레임 없이도, 북한을 그저 은유로써 활용하면서도 색다른 감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담한 스토리텔링에는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현상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문제다. 고위층 자제, 피아니스트, 클래식 애호가라는 묘사가 기시감이 짙다. 이는 <브이아이피> 속 '김광일'(이종석), <사랑의 불시착> 속 '리정혁'(현빈) 같은 북한 고위층 캐릭터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현상이라는 인물은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서사에 걸맞은 탁월한 스릴러
규남과 현상의 묘한 관계성과 서사는 장르의 매력을 살릴 줄 아는 연출을 만나 필사적인 추적극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일례로 <탈주>는 상황을 영리하게 설정한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2일 후에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정보는 비 때문에 지뢰 배치가 바뀌기 전 휴전선을 넘어야 한다는 긴박함을 강조한다. 이는 사단 본부에서 탈출하고, 보위부를 사칭하는 규남의 무리한 행동에도 강력한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에 더해 서스펜스를 조절하는 완급조절도 탁월하다. 이 영화는 94분 내내 도망자와 추적자 구도가 강강강강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사단 본부나 경무부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처럼 중간중간 개그씬이 삽입된 덕분에 관객의 피로감은 우려만큼 크지 않다. 이에 더해 규남과 현상의 갈등 구도만 부각돼 지루해질 만한 순간에는 동혁 캐릭터가 분위기를 환기한다.
물론 모든 장면이 의도대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유랑민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의도를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불필요해 보인다. 아마도 규남처럼 북한 체제에 불만을 지닌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규남의 탈주극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또 추격극 중에 변수를 더해 결이 다른 위기감을 고조하려는 목적도 느껴진다.
후자의 의도는 적중했다. 모든 탈출로를 차단한 후 규남을 포위하는 현상의 계획은 한정된 공간에서 조여들어가는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이는 속도감과 에너지가 부각되는 전후 장면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하지만 유랑민들이 단순히 도구적으로 소비되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그들에 대한 복선도 없었고, 그들의 사연도 피상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규남과 그들의 서사가 매끄럽게 맞아 들어가지는 않는다.
결국 문제는 뒷심
마지막으로 후반부는 뚝심이 부족하다. 초중반부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해서인지는 몰라도, 익숙한 전개에 기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동혁이 사살되고 규남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신파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는 그전까지 시원하게 내달리는 영화 콘셉트와는 상반된 답답함을 안기며, 이 괴리감은 에필로그까지도 이어진다.
거듭되는 편의적인 전개도 몰입감을 저해한다. 충분히 저격할 수 있는 순간마다, 그리고 남한이 눈앞인 상황에서 영화는 한 템포씩 늦추며 전개를 억지로 꼬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발만 밟아도 죽는 지뢰밭을 유달리 주인공만 손쉽게 피하는 식이다. 이는 규남과 현상의 외적 갈등과 현상의 내적 갈등이 마지막 순간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탈주>의 클라이맥스는 피로감이 가중된다. 반복되는 클리셰로 인해 거침없는 전반부가 미리 쌓은 점수를 다 까먹은 셈이다. 무엇보다도 초중반에서 보여준 남다른 가능성이 유달리 인상적이다 보니, 익숙함과 타협한 후반부의 선택은 되려 더 큰 아쉬움을 남긴다.
Acceptable 무난함
민족 없이도 북한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영화적 명제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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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가 희망을 낳은 순간
팀 버튼 감독식의 독특하고 약간의 그로테스크함도 느껴지는 연출이 잘 묻어 나온 영화이었다. 인간보다 정 있고 어쩌면 더 인간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유령들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는 모습들이었다. 중간마다 등장하는 뮤지컬스러운 모습들도 영화를 보며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였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령신부> 스틸컷
유령
당신은 유령을 믿는가? 여기서 잠깐 귀신과 유령의 차이가 궁금해할 거 같은 글을 읽는 당신을 위한 부가설명으로 차이점을 적어보겠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귀신은 「1」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는 넋.「2」 사람에게 화(禍)와 복(福)을 내려 준다는 신령(神靈).「3」 어떤 일에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4」 생김새나 몰골이 몹시 사나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5」 오직 외곬으로 어떤 일을 하거나 어느 한 곳에만 붙어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고, 유령은 ㉯ 유령(幽靈) 「1」 죽은 사람의 혼령.「2」 죽은 사람의 혼령이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3」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는 것.이라는 뜻을 적용한다. 즉, <유령신부>는 '유령 「2」'에 가까운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에 유령신부라고 명칭을 취했다.
색
영화의 나오는 유령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섭고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닌 인간계 보디 더 쾌활하고 활기찬 모습들로 나온다. 인간계와 유령계의 차이는 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계는 탁한 회색과 어두운 계열의 색상으로 암울해 보이는 풍경과 속세적인 대사, 의욕 없어 보이는 네거티브적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반면 유령계는 파란 피부에 다양한 색상이 드러나는 공간 속에서 축제와 연회를 즐기는 유령들의 유쾌한 모습이 등장한다. 이러한 인간계와 유령계 간 색의 대비로 생명이 있는 인간계보다 더 활기차 보이는 유령계를 드러내어 그동안 공포스러운 존재로 등장하는 유령의 이미지를 벗어나게 해 준다.
오해
그들은 처음에 오해를 낳았다. 망쳐버린 결혼식 예행연습으로 마음이 상한 '빅터'가 숲 속에서 계속 결혼식 예행연습을 한다. 그러던 중 무심코 '에밀리' 손가락 뼈에 결혼반지를 끼어넣어 빅터는 얼떨결에 지하세계로 들어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다. 빅터는 원하지 않게 청혼을 해버렸고 에밀리는 자신에게 건 청혼인 줄 알고 예행연습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서로 다르다. 빅터는 '빅토리아'와의 사랑과 만남을 원하기 때문에 결혼을 원하고 에밀리는 그녀가 살아있을 때 이루지 못한 결혼이라는 한(恨)을 풀기 위해 결혼을 원한다. 하지만 에밀리는 빅터와 결혼할 수 없는 사실과 빅토리아의 존재를 알아채며 자신은 점차 이루질 수 없는 사랑임을 짐작한다. 끝끝내 결혼식을 진행하지만 에밀리는 자신의 부케를 빅토리아와 빅터에게 주고 에밀리는 그녀만의 자유를 얻으며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은 결혼이라는 한이 아닌 결혼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던진 자유이다. 오해로 빚은 순간이 에밀리에게 자유를 주고 빅터에게는 빅토리아와의 사랑을 주는 희망적 결과가 돼버린 셈이다. 약간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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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명 하에 박탈당한 모든 것을 위해
어릴 적에 상상해본 적이 있다. 만약 백 년이나 이백 년쯤 일찍 태어났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아름다운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운이 좋아봤자 규방 규수. 혹 팔자가 사납다면 어디까지 떨어질지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결국 그 망상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대에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싱겁게 끝났다. 오랜만에 비슷한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면서였다.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줄거리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2020년 첫 만점을 준 작품으로도 많이 알려졌지만, <씨네21> 평론가 별점 또한 반짝반짝해서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서 (2월 10일 기준) 13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영화는, 내용만 보면 자못 단순하다. 화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라는 귀족의 초상화를 의뢰받아 그가 사는 섬으로 향한다. 의뢰를 맡긴 이는 엘로이즈의 어머니로, 딸의 결혼 전에 남편 될 사람에게 미리 초상화를 보내 두려는 심산이었다.
엘로이즈의 언니는 결혼을 앞두고 목숨을 잃었는데 하녀 소피부터 동생 엘로이즈까지 모두가 내심 자살로 추측한다. 결혼을 피해 수도원에 들어가 있던 엘로이즈는 언니가 남긴 미안하다는 편지를 받고, 원치 않는 결혼으로 떠밀려 나온다. 그런 엘로이즈는 결혼 초상화에 모델로 설 마음이 전혀 없으니, 산책 친구인 척 몰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조건이 마리안느에게 붙었다. 마리안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를 바라보고, 엘로이즈도 그런 마리안느를 마주 보면서 두 사람 사이에서 새로운 감정의 기류가 피어난다.
한 사람의 절망
이 영화는 탄탄하다. 뒤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미로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매 장면이 명화 같아서 다음이 궁금할 틈도 없었다. 음악이 없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종이에 슥슥 그림 그리는 소리, 따닥따닥 불이 타오르는 벽난로 소리에 맞춰 나도 같이 숨을 죽인 탓이다. 그러다 한 번씩 그 촘촘한 연결이 의도적으로 삐그덕거리며 튿어질 때, 어린 시절 바이킹 처음 탔을 때처럼 심장이 철렁한다. 모닥불 앞에서 마비된 듯 서로를 바라보다 급작스럽게 움직임이 시작될 때라든가, 마을 여인들이 모여 주문처럼 들리는 노래를 시작할 때, 두 사람의 작별 장면에서도.
그중에서도 삐끗하는 정도가 심하다고 느꼈던 건 마리안느가 저택 안에서 환상을 보는 장면이다. 하얀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유령처럼 떠오르는 엘로이즈의 모습을 중간중간 본다. 솔직히 말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전설의 고향이야 뭐야..."였다. 나중의 장면과 연결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작위적인 장면 아닌가, 싶다가... 어쩌면 엘로이즈가 아니라 엘로이즈의 언니 모습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절벽으로 뛰어내린, 그렇게 결혼이라는 견고한 미래로부터 도망친, 절망했던 한 사람.
어쩌면 마리안느가 태워버린, 얼굴이 지워진 초상화도 엘로이즈의 언니 것이었는지 모른다. 엘로이즈에 비해 다소 현란한 손 모양을 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엘로이즈의 그림은 몰래 그려야 했으니, 누가 봐도 요구받은 포즈 같은 그런 손 모양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유령이든 초상화든 어디까지나 한 관객의 해석이고 추측일 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한 갈래 가능성일 뿐이다. 다만 내가 이 영화에 엘로이즈 언니의 그림자가 계속 기웃거린다고 느낀 이유는 엘로이즈가 결혼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이유와 아마 같을 것이다. 꼭 같은 경험이 없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정서겠지.
두 사람의 사랑
결혼이 싫어 수도원으로까지 도망쳤음에도 끝내 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자 엘로이즈는 더 도망치지 못한다. 초상화 모델이 되길 거절하는 이상의 반항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나타난, 빤히 응시하는 시선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면서 엘로이즈의 삶에 사랑이라는 불이 켜진다.
두 사람은 예술가였고, 각자의 미학이 공명하는 사랑을 했다. 마리안느가 꿈을 꾸고, 손을 움직이는 예술가라면 엘로이즈는 생각하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꿈꾸게 만드는 예술가랄까. (마음을 확인한 후 마리안느가 "내 꿈을 꿨어?" 물으면 엘로이즈는 "네 생각을 했어." 대답한다.) 처음 완성된 초상화를 볼 때도 두 사람은 화가와 미술 비평가처럼 대화하며 단박에 서로의 말 아래 깔려있는 마음까지 알아차린다.
엘로이즈는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묻는다. 같은 장면에서 서로가 관찰한 서로의 면면을 ("모두 알고 있군요") 말하는 두 사람을 보면, 화가와 모델은 같은 장소에서 다른 장르로 예술을 펼쳐가는 두 사람의 예술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요즘 세상엔 그렇지도 않겠지만, 시대극 속에서라면 으레 모델은 화가에 비해 부수적인 인물로 인식된다. 존재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는 그인데도.
게다가 이 이야기를 할 때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우리는 동등한 지위라고, 정확히 같은 지위라고 단호하게 강조한다. 높으신 분이라고 놀리듯 던진 마리안느의 말을 다잡으며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사였지만, 어쩐지 뮤즈라는 이름으로 예술가의 자리를 박탈당해온 이들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인의 자리에서 내쳐진 이들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까미유 끌로델, 그는 예술가로서도 연인으로서도 깎여나간 이름이니까.
이 영화는 그렇게 수많은 이들을 떠오르게 만들고는 고스란히 감싸 안는다. 목적어 자리에 갇혀 있던 이들을 구해내어 그들이 빼앗긴 주어의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뮤즈와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박탈당했던 예술가와 연인들의 자리를 오롯이 되찾아 준다.
세 사람의 연대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귀족 아가씨는 요리를 하고 하녀는 자수를 놓는데, 화가가 가운데서 술을 똑같이 따라 한 잔씩 나누어준다. 자연스럽게 술을 받아 홀짝이고 각자의 일을 계속하는, 문자 그대로 정확히 같은 지위의 세 사람. 엘로이즈가 수도원 생활을 표현할 때 썼던 "평등이 주는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첫 초상화가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두 예술가에게 버려지고,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말미를 조금 더 주며 자리를 비운 단 며칠. 짧은 시간 세 사람은 친구가 되어 시간을 함께 보낸다. 마을 여자들이 모닥불 근처에 모일 때도 함께 가고, 카드놀이를 하거나 책을 함께 읽고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한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하녀 소피가 민간요법에 의지해 낙태를 꾀할 때 같이 바다로 들로 다니며 돕고, 중절 수술을 하러 갈 때에도 동행했다.
그리고 이들의 아름다운 연대는 이내 예술로 승화한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 침통한 분위기가 감도는 밤, 엘로이즈는 그 순간을 단박에 예술로 바꾸어 버린다. 요청에 의해, 누군가가 눈대중해볼 대상이 되기 위해 예술의 객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주체가 되어 순간을 뒤틀고 비집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뒤집어, 가련한 객체였던 에우리디케를 선택의 주체로 만들었듯이 또 그렇게.
세 사람 모두에게 그런 힘이 있었다. 여성 화가에게는 주제 하나도 쉬이 내어주지 않던 시대에 게릴라전을 치르듯 그림을 그리던 마리안느에게도, 상대는 자신의 초상화까지 그려가는데 자신은 상대가 사는 도시밖에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억지로 결혼을 해야만 하는 엘로이즈에게도, 원치 않았던 임신을 혼자서 떨치고서는 시든 꽃을 활짝 핀 자수로 담아내는 소피에게도 그 힘은 보인다. 그리고 그 힘은 그들끼리만 보낸 그 며칠 가장 활활 타오른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함께 있는 힘으로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홀로 있음도 결국 자기 자신을 끝없이 의식하며 스스로와 함께 있는 것일 테니. 이 영화에서 그림은 함께 있거나, 함께 있던 시간을 되새길 때 그리는 것들이다.
또한 음악이 나오는 장면은 단 세 장면뿐인데, 모두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을 들려주는 장면, (개인적으로는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처음 입 맞추고 싶었던 순간이 이때일 거라고 믿고 있다. 같이 본 친구는 다른 장면을 꼽았지만.) 물리적으로 옆에 서서 눈을 마주치면서 음을 쌓아가는 여자들의 노래는 물론이고, 몸으로는 떨어져 있는 마지막 장면조차 엘로이즈의 시선 끝에는 누가 봐도 확실히 마리안느가 아른거리고 있다.
예술이란 단어는 너무 크고 깊어, 나로서는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분명 예술이란 사랑하는 눈에서 시작될 때 그 본질의 의미를 갖는 것일 거라고 믿는다. 또 역시 예술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 같은 유미주의자들에게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아름답지 못하게 담는 것은 폭력이 될 수밖에 없고, 폭력의 양상을 보이는 순간 예술은 이미 본질을 상실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술과 사랑은 어쩐지 닮아있어, 이 영화의 두 예술가 사이에서 부드럽게 얽히고 파도처럼 고동친다. 시선 속에서, 대화 속에서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던 그것에, 두 예술가가 캔버스 앞에 마주하는 순간부터 불이 붙는다.
이 영화는 당대 여성의 지위를 고민하는 여성의 메시지를 배제하고 볼 수 없고, 아주 대놓고 두 여성의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고, 그들이 펼치는 예술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셋은 마치 케르베로스의 세 머리 같아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생존의 결을 같이 한다고 느낀다. 주인공들끼리 보낸 5일이 아름다웠던 건, 그 셋이 부드럽게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랑은, 여성은 이런 존재라고 보여주는 것만 같다. 나는 예술도 여성성도 사랑도 모두 무언가를 강인하게 감싸는 힘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어그러진 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한 사람의 절망, 두 사람의 사랑, 세 사람의 연대 안에서. 그렇게 이 영화는 보여준 이들과 보여주지 않은 이들까지 감싸 안으며 우아하게 타오른다. 한 번 붙은 불은 꺼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슈베르트의 <여름>처럼 강렬한 사랑의 기억 하나가 박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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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10 = 사랑’, 누가 뭐래도 사랑!
‘75+10= 85’가 아니다. 사랑이다. 누가 뭐래도 사랑! T는 도저히 이해 못 하는 이 답의 도출 과정을 보여주듯 <달짝지근해: 7510>는 MBTI는 물론, 성향도 성격도 다른 치호(75)와 일영(10)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10~20대의 달콤한 사랑은 아니지만, 이에 못지않은 풋풋하고 순수하고, 달짝~지근한 40대의 사랑은 가슴을 요동치기에 충분하다.
신은 그에게 외모와 친화력 대신, 미각을 줬다. 절대 미각으로 두부 과자를 만들어 회사 성장에 큰 공을 세운 치호(유해진). 그는 오로지 집, 회사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가 좋아하는 건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와 과자,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형 석호(차인표)다. 도박에 빠져 살며 매번 돈만 가져가는 못난 형이지만, 치호에겐 소중한 가족. 그러던 어느 날, 석호는 캐피털에서 일하는 미혼모 일영(김희선)의 대출 상환 요청 전화를 받고, 치호에게 이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형의 빚을 갚기 위해 캐피털을 찾은 치호는 우연한 사고로 일영과 연을 맺게 되고,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달짝지근해: 7510>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남과 다른 성향과 과거를 지닌 이들을 사려 깊게 바라보고 응원하는 작품이다. 굳이 나누자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보단 <펀치 드렁큰 러브>에 가깝다. 서로 다른 성향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이루는 과정은 같지만, 사회에 잘 융화되기 어려운 이들(치호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일영은 미혼모라는 점)이 만나 서로의 빈 곳을 메우고, 사랑하고, 힘이 되어주는 부분은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펀치 드렁큰 러브>의 베리(아담 샌들러), 레나(에밀리 왓슨)의 러브 스토리와 닮았다.
영화의 전반부는 두 캐릭터의 상반된 성격과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충분히 할애한다.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사랑하는 로코 공식은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이들이 얼마나 사회적 편견과 시선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치호는 그냥 쳐다봄에도, 째려보고 꼬나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일영은 미혼모라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지만, 치호와 반대로 미소와 해탈 어법으로 대응한다. 마치 예전부터 받았던 편견에 생긴 마음의 굳은살을 매만지며 말이다.
이런 사회적 편견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치호와 일영은 서로의 공통점을 차차 알아가고, 각자의 빈 곳을 메워준다. 치호는 일영에게 장롱면허 탈출을 도와주고, 일영은 치호에게 건강을 위한 집밥을 제공한다.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더 가까워지는 이들은 뒤늦게 사랑의 감정에 빠진다.
영화는 뻔한 사랑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의 사랑 방법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틈만 나면 아재 개그를 날리고, 밥 먹다가 방귀를 뀌는 등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이 이어지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서로를 배려, 이해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누가 뭐라든 이들 애정행각의 주체는 남들이 아닌 자기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석호의 반대와 일영의 대학생 딸에 관련된 이슈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끊을 수가 없고, 한 번 나눈 마음을 돌려받을 수 없는 게 인지상정. 사랑에 서툴지만 서로를 기다리고 배려하며 그 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별나 보이지만 아름답고, 풋풋해 보이지만 성숙한 이 로맨스가 관객들의 마음을 이끄는 건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한(연출, 각색), 이병헌(각본) 감독의 시선에 기인한다. 두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다르지만, 이들은 영화를 통해 모두 사회 울타리 안 보다 밖에 있는 이들에게 주목하고, 응원과 희망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치호와 일영처럼 서로 다르지만 숨겨진 공통점을 알고 손잡은 두 감독의 사려 깊은 시선은 영화에 잘 녹아 흐른다.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유해진과 김희선은 그 자체로 치호와 일영이 되어 우연히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으로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특히 유해진은 치호가 가진 순수한 소년의 이미지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김희선은 드라마 <토마토> 등 1990년대 보여줬던 캔디형 캐릭터를 바탕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등 각각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차인표, 한선화, 진선규는 물론, 정우성, 염혜란, 임시완, 고아성 등 카메오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도 보는 맛을 더한다.
숏츠가 주류인 시대, 도파민 중독 시대에 <달짝지근해: 7510>은 긴 시간 우려내야 하는 사골국 같은 영화처럼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로코이고 이는 단점으로 보이기 쉽지만, 남을 향한 이해와 배려가 상실된 각박한 세상 속에서 영화는 오히려 빛을 낸다.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한 감동의 수프처럼, 치호와 일영의 사랑은 감동과 위로를 동시에 전한다. ‘75+10= 85’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공식도 함께~사진제공: 마인드마크
평점: 3.5 / 5.0
한줄평: 별나 보이지만 아름답고, 풋풋해 보이지만 성숙한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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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시리즈 속 모든 상징과 철학 뽀개기 #02 | 매트릭스 인문학 리뷰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4 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 리저렉션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매트릭스 1~3》 인문학 결말포함 영화리뷰 #2
*후속영상
#1 [네오는 테스형♪] https://youtu.be/gckW2TYRFMc
#3 [빨간 옷의 여자] https://youtu.be/X_fQcoytk70
#4 [오라클은 악마다?] https://youtu.be/fLgWf7NWkn8
#5 [스미스는 왜 졌을까] https://youtu.be/Uas0KZDCQec
*추천영상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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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ㄷㄷㄷ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찍을수 밖에 없는 이유.보시면 압니다.[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크리미널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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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웨이> 메인 예고편
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그 곳,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비행기 사고로 불시착한 미지의 섬에서 소년은 알 수 없는 거대한 어둠의 존재를 맞닥뜨린다.
그것을 피해 물과 식량이 풍족한 안락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우연히 날지 못하는 작은 새를 도와주고 친구가 된다.
그리곤 지도와 모터 사이클을 발견하게 되는데….
안락한 곳에서 안주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떠나야 할 것인가…
결국 소년은 작은 새와 함께 어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 섬을 탈출하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타고 거대한 산맥과 바다를 넘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 어둠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혹시 소년의 불안과 공포일까?
그리고 소년과 작은 새는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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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라스트 레터>
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하면 믿어줄래요?
닿을 수 없는 편지로
그 시절, 전하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과 마주한 이들의
결코- 잊지 못할 한 통의 러브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