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8 10:31:01
[JIMFF 인터뷰] 3년만에 세상 밖으로
'오랜만이다' 이은정 감독 인터뷰
3년만에 세상 밖으로, 이은정 감독의 '오랜만이다' |
개막식부터 이어진 비소식과 더운 날씨에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아주는 관객들이 많다. 이은정 감독은 첫 장편영화이자 음악영화를 선보이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2020년 팬데믹과 맞물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온 영화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과 ‘연경, 음악, 그리고 이은정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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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와 함께 간단한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를 연출한 이은정입니다. 영화 '오랜만이다'는 오랫동안 가수의 꿈을 꾼 연경이 서른 초반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꿈을 포기할지 고민하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시절에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기타 하나가 첫사랑 현수로부터 배달되며 다시금 떠오른 첫사랑, 꿈과 현실 사이 청춘들의 고민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구상하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 제작사 대표님이 ‘지하철에서 첫사랑을 만나 보내는 하루’를 음악 영화로 오랫동안 기획하셨는데요. 제가 연출을 맡았을 때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을 1년 정도 멈추었어요. 그때 절반가량의 시나리오도 다시 썼거든요. 처음에 작성한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촬영을 중단한 1년의 기간이 감독님께는 더욱 깊이 있어진 시간이 되었을까요? 영화 속 연경이도 꿈을 향해 도전하지만, 자꾸만 벽에 가로막히고 좌절하고 어쩌면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닌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사실 촬영이 중단되니 연경과 감정이 동일시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바뀐 시나리오를 감독님과 배우님들께서 좋아하셔서 나머지 절반을 새로운 시나리오와 합쳐 완성했어요. 기존의 시나리오는 로맨틱 코미디 성향이 강했다면 완성작은 훨씬 차분하고 음악인으로서 연경의 성장담이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저에게는 이 영화 자체가 연경이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작업하는 가운데 촬영이 계속 중단되다 보니 “아냐 넌 할 수 있어, 될 수 있어”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연경이가 마지막에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데 울컥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곡 추천 부탁드립니다. 여고생 연경과 잘 어울리는 곡인 '천문학은 모르지만', 현대에서 부르는 '무지개'라는 곡을 추천드립니다. '무지개'를 들을 때 각자의 느낌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제가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감성인 것 같아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처음입니다.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어요. 저 혼자 3년 가까이 영화 '오랜만이다'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언제 세상에 나와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러다 영원히 안 되면 어쩌지 불안감도 생겼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저의 불안을 해소해 준 느낌이에요. 처음으로 극장에서 상영한 것을 보게 되어 의미가 있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에 감동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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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이은정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 상영 후 곧바로 음악 공연을 하는 ‘히든트랙’에 참석했다. 당시 관객과 가까이에서 만나 영화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게 진짜 음악영화제’라 마음에 와닿았다고 전했다. 이은정 감독은 연경과 음악의 연장선에 서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이은정 감독은 영화 '오랜만이다' 음악들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음원도 나오고 나중에 노래방에서 나오면 따라 부르고 싶다는 즐거운 꿈을 밝혔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에디터 : 김문숙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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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꽃은 크리스마스 눈처럼 자유의 씨앗을 흩뿌렸다,
출처 : CGV
우리는 서로 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었다!제2차 세계대전, 인도네시아 자바섬.무사도 정신을 맹신하는 일본군 대위 요노이는포로수용소에서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와 마주하게 된다.사형 직전의 잭을 자신의 수용소로 데려온 요노이는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면서도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끊임없이 갈등한다.한편,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국군 중령 존 로렌스는영국군과 일본군, 양측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수용소의 분위기는 점점 격화된다.전쟁의 포로이자 인간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과연 전쟁터 한가운데에서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우선, 이 영화를 있게 한 제목과 대표곡에 드러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중심 메타포가 아니다. 물론 크리스마스 자체의 상징성에 기대어 주요한 메시지가 더욱 강조되는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알기 전부터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수도 없이 반복해 재생한 기억이 있었고, 어린 시절임에도 곡의 멜로디를 들으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고는 했다. 그리움, 슬픔? 그렇다면 무엇이 그립고 왜 슬픈 것일까? 지금에 와서는 쉽게 떠오르는 질문도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했던 그때의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이 곡이 지닌 수많은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출처 : CGV
국내 첫 정식 개봉인만큼, 리뉴얼된 포스터는 심하게 아름다웠다. 색상의 혼합을 활용한 것도, 약간은 빛바랜듯한 배경의 질감도, 철조망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특정된 두 장면이 가지는 의미도. 작품을 직접 감상하기 전부터 직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취향이 아닌 '전쟁'이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낄 정도였는데, 감상한 후에는 그 마음이 더 커져 서울에서 파주까지 보위의 개인 포스터를 얻으러 가기도 했다. '전쟁', 나는 전쟁이라는 특수성 짙은 배경으로 소재를 갖는 영화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이기에 잔인한 장면이 동반되고 근본적인 불쾌감을 일으키는 부분을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포스터 디자인에 홀려 보러 갔을까? 아니다. 83년도에 제작된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정식 개봉을 이루어낼 만큼 부정할 수 없는 어떠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감상하고 배우는 입장에서, 긴 시간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그 이유를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때마침, 아트나인에서 GV를 진행하는 회차가 있어 전문가들의 설명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납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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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장센
필름 특유의 빛바랜, 알록달록한 색감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눈이 즐거웠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사형 선고를 받기 전 셀리어스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외출 준비를 하고, 누군가와 단조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는 숱한 상황들 가운데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기억하고 지키는 듯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의미심장한 노래도, 능청스러운 연기도 매력적이지만 특히 위 사진처럼 담배를 피우는 척하고, 담뱃재를 털고, 바닥에 던져 발로 짓이기는 행동이 바닥에 묻은 흰색 자국(마치 담뱃재처럼 생긴)으로서 한 씬을 완성시키는 흐름이 매우 취향이었다. 정갈한 발걸음으로 프레임 아웃하며 액팅이 마무리되는 일련의 행위들은 예술 그 자체였다.
출처 : CGV
그 직후, 사형 집행을 받는 보위가 결박되고 일본군이 안대를 씌우는 장면이 나온다. 셀리어스는 당당한 눈빛으로 이런 것 씌우지 않아도 된다며 저항한다. 손이 묶여 있는 바람에 고갯짓만으로 그들의 행동을 저지해야 하는데, 그 몸짓과 눈빛이 겹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오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잭 셀리어스'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자긍심이 매력적이다. 셀리어스의 뒷모습이 보이며 사격 개시의 정렬을 맞추는 일본군들의 무빙도 굉장히 정갈하다. 기계의 움직임처럼 군더더기 없는 액팅과 여백을 적당히 활용한 인물의 배치가 심각하게 아름다워 실제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2. 캐릭터
드용&가네모토(맨처음의 두 군인) / 로렌스&하라 / 셀리어스&요노이
극 초반 씬들에서 세 가지 주요 관계성이 모두 제시된다. 두 군인이 지닌 의미는 초반에, 하라와 로렌스는 중반에 드러나며, 셀리어스와 요노이는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극의 진행이 마무리되는데, 관계성이 지닌 의의를 제외하고서도 각 캐릭터들의 특성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어 2시간 가량의 스토리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자의 서사가 완벽하게 묘사된다.
출처 : 미디어캐슬
우선, 데이비드 보위로서 표현된 '잭 셀리어스'가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미학적이다. 위 사진은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군사재판이 열리면서 공간과 인물의 정보를 동시에 제공해야 하는 복잡한 씬이기 때문에 첫 장면을 롱샷으로 잡았으리라 판단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각 인물에 대해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정보값을 판단하고 앞으로 흘러갈 씬을 파악하게 되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중심에 위치하여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보위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출처 : CGV
GV에서 듣기로는 셀리어스 역에 유력했던 배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너무 여지 없이 잘생긴 외모라서 캐스팅이 불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감독은 보위와의 캐스팅 여부를 결정하고자 하는 미팅 직전, 그의 연극을 먼저 관람하며 그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속으로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고 한다. 영화 이전부터 보위가 쌓아 온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그의 외모가 지닌 오묘한 매력을 증폭시켰다고 생각한다.
'요노이'의 첫 등장은 군사재판이 아닌 드용과 가네모토가 일본군에게 잡혀 존엄성을 짓밟히는 장면에서 나온다. 문제에 대해 제대로된 전후상황도 살피지 않고 하라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가네모토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요노이는 마치 '해결사'의 위치처럼 여겨진다. "폭력적인 하라와 달리 요노이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자연스럽게 그렇다,는 답변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요노이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군사재판에서 더욱 굳어진다. 말 안 통하는 극우주의자들과 달리, ‘군사재판’이라는 성격이 뚜렷한 장소에서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의응답을 통해 셀리어스를 옹호해주는 씬으로 캐릭터 설명을 대신한다. 그러나 점점 드러나는 그의 실체는 일본의 역겹고 비상식적인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아집의 상징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빗대어, 요노이는 셀리어스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음을 감독은 꽤나 명확하게 드러내고 강조했다고 본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드용의 죽음을 기리는 꽃과 일본군에 저항하는 만두를 배부하고 독방에 수감되면서, 요노이는 매일같이 순찰이라는 명분으로 그를 찾아갔다. 값이 꽤 나갈 것 같은 카펫을 들고. 매일밤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갑작스레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렌스와 함께 탈출한 셀리어스는 요노이를 마주하고 왜 물리적인 충돌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언제나 당당함으로 무장한 그가. "나만 이기면 자유인데 왜? 왜 싸우지 않지?" 절망하는 듯한 요노이의 대사에 이어 즐거운듯 미소를 보이고 칼을 내려놓는 셀리어스의 감정이 과연 어떤 형태였을지는 미지수일 것이다.
출처 : CGV
윈체스터 학교 출신의 '로렌스'는 포로로 잡힌 영국군 중 유일하게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군 주요 인사인 요노이와 하라에게 자주 대화 상대로 불려가고는 한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영국군의 리더는 로렌스에게 어느 학교 출신인지 물어보고, '윈체스터'라는 대답을 듣고는 비웃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당시의 '윈체스터'는 귀족으로서 세상 물정 모르고 어딜 가나 아부하는 일종의 기회주의자와 같은 특성을 시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로렌스는 스스로의 신념을 중시하고 굳건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덕목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전장에서 정반대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극중 결정적인 상황에서 옳은 목소리를 내는 건 로렌스 뿐이다. 일본의 악습을 향해 '아닌 건 아니다'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펼치는 것도, 셀리어스의 독단적인 행동(그러나 옳은)에 대해 옹호하는 것도, 부당한 대우의 개선을 바라고 행동하는 것도 전부 로렌스이다.
왜 제목도, 극의 플롯도 로렌스를 대상으로 했을까? 보통은 주연 캐릭터와 연관된 장면으로 엔딩 시퀀스를 구성하기 마련인데 그저 조력자인, 혹은 그들만의 개별적인 서사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캐릭터로 시작과 끝을 맺었는데도 의미 전달이 확실하고 주연 캐릭터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점이 매우 감탄스럽다.
3. 상징
'상징'은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파트이다. 특정 사물과 상황으로 비유하여 극의 깊이감과 레이어를 더하는 방식은 나에게 보다 강력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집중할 상징은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이다.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나아가 현대에서는 서로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 받는, 누구나 행복감을 느꼈으면 하고 또 그만큼 상대에게 무언가를 베풀게 되는 그러한 날이다. 그렇다면 '전쟁 속 크리스마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출처 : CGV
권력을 가장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하라는 억울하게 독방에 갇힌 셀리어스와 로렌스를 본인의 임의로 풀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불러 술에 취해 살짝 들뜬 말투로 'Father Christmas(파더 크리스마스)'를 언급한다. 말그대로 '산타'이다. 박애주의와 인류애의 상징, 산타가 되고자 했던 하라. 전쟁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형태인가? 이 질문은 무조건적인 호의와 애정을 담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그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반인륜적인 전쟁에서는 누명을 쓴 누군가를 도와주는 정도,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지만 그럼에도 상황적 제약으로 인해 쉽게 실천할 수 없었던 정의로운 '선행'을 베푼 하라의 모습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거 같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정상성으로 일컬어지는 행위를 감히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전쟁 속 크리스마스가 발현되는 한계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씨를 뿌렸고, 우리는 그 곡식을 거두는 거 같다”
위 문장은 종전 후 전범국의 주요 인사들이 사형 당하고, 그중 하나인 하라 또한 사형을 목전에 앞둔 어느날 밤 로렌스가 면회온 씬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자유의 씨앗을 심은 것은 각자의 속에 어떤 것이 뿌리내린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꼴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일본군을 토대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적에게 잡히면 절대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아'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아' '이미 일본을 위해 영혼을 바쳤고 죽음을 각오한 목숨이야'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전체성에 잡아먹혀 거짓된 자긍심을 고수하고 할복자살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하라와 요노이, 그리고 이를 따르는 수많은 일본군들. 이러한 메시지는 비단 과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는 체제에 순응하려고 태어났는가? 정녕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파고들고 사유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4. 노래, 사운드
현대에 와서 리마스터된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부드러운 음율이 돋보이는 반면,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투박한 음질이 오히려 더 감정을 증폭시킨다. 특히 오리지널 버전만이 지닌 강하게 내려찍는 느낌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와 조합되며 더욱 그 느낌이 좋았다. 이와 견줄 정도로 귀를 사로잡았던 OST가 또 있는데, 바로 'Sowing the Seed'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에 사용될 만한 느낌이 아닌,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극적인 장면들에 쓰일 법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보편적인 음악이 아니었기에 전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크리스마스'의 고유한 이미지를 몽환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영화 자체도 잘 만들어졌지만 음악을 통해 완벽한 결과물이 되었다고 느꼈다.
출처 : CGV
OST 외에도 음향 자체에 집중할 만한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일본군의 장례를 빌어주는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일본군의 반복적인 구타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로렌스가 일본식 정좌를 애써 해내려는 모습, 비논리와 비상식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 없는 요노이와의 대화, 격앙되는 감정 속 장례지도를 끊임없이 진행하는 하라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고, 그 모든 요소가 조화롭지 않아서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5. 일본
사실,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감독이 누구인지, 전작은 무엇인지, 제작 비화가 따로 있는지 등 관련 정보를 전혀 찾아보지 않고 극장에 들어선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또한 감독이 일본인인줄 모르고 봤을 정도이니 가늠이 되실 거라 생각한다. 워낙 유명한 데이비드 보위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난 작품이니 그저 동양과 서양의 합작이겠거니 싶었는데, 로케이션과 배우, 제작들이 여러 인종으로 섞여 있을 뿐 감독 자체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일방적인 침략을 일으키고, 지금에 와서도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만행들을 자행했으며, 현대까지도 그 잘못된 방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마냥 평범한 관점으로 감독과 작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옳지 않은 대사나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음에도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거의 없었다. 후반부의 로렌스 대사 중 하나가 일본인을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잘못된 것을 옳다고 말하는 식의 비약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감독이 회피하지 않고 일본의 고질적인 악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씬들이 여럿 있었다. 극 자체가 조선인 가네모토와 네덜란드인 드용의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애정으로 구성되는 시퀀스로 시작하는 만큼, '동성애' 즉 기본적인 인권이 짓밟히고 일본인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양상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며 강조하고 싶었던 의도로 보인다.
그 시대인 걸 감안하고 요즘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여러 의미에서 앞서 나간 작품인 건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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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피로 얻은 산 자들의 자유를 빼앗길 뻔한 날, 12월 3일,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공간인 전쟁에서, 크리스마스의 눈처럼 자유와 평등을 흩뿌리고자 했던 영화. 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전쟁의 상황적 배경에서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고 싶었는지 확실하게 드러냈고, 그 제작자의 의도는 동성애를 첫 대목에 위치함으로써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의 잔혹함을 극대화한다.
고전영화의 특징일까?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기교가 없고 모든 장면과 시퀀스가 매우 깔끔하고 정확하다. 담고자 하는 의미가 그대로 보이며, 컷과 컷의 연결점 또한 의도가 명확하다. 그러나 보위의 이미지와 류이치의 음악의 조합이 요즘 영화들의 화려한 스타일을 넘어서서 기교를 부리는듯 착각을 일게 한다.
다만, 모든 요소가 수려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창작 방향성을 잡아나가려고 하는, 말 그대로 발아하기 직전에 모여 만들어진 작품인만큼 작품이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에, 투박하지만 보다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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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점철된 봉준호식 살아남기!
<기생충> 이후 약 5년 만의 신작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사회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봉준호 감독의 시선도 그러한 듯하다. <기생충>을 통해 한 줌의 빛도 행복도 허락하지 않았던 감독은 <미키 17>을 통해 희망을 얘기한다. 그것도 사랑으로 점철된 희망을. 물론, 그 도착 지점까지 가는 과정은 다수의 작품에서 보여준 세상의 불합리함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힘 없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달라졌다. 이게 관객들에게 덜컹거림으로 작용할 듯 하지만 어쩌면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건 희망이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더 확고해보인다.
인생은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매듭을 풀기 어렵다.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인생이 그렇다. 친구 티모(스티븐 연)의 꼬드김에 마카롱 사업을 하다가 폭삭 망한 그는 무서운 사채업자를 피해 티모와 함께 지구를 떠나려 한다. 외계 행성 개척 우주선을 타기로 마음먹은 것도 잠시, 미키는 자신에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가장 고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이 비인간적 기술로 반복 재생되는 미키는 부속품처럼 우주선 내 노동자로 살아간다. 17번째 복제로 태어난 미키는 얼음 행성 생명체인 ‘크리퍼’를 만나 죽을 위기에 놓인다. 다행히 살아 우주선으로 복귀한 안도감도 잠시, 왓더~~ 자신의 옆에 미키 18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법규를 위반한 ‘멀티풀’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그럼 누가 죽어야 할까? 17? 18? 에잇 신발~~
| 이름 없는 노동자의 이름(실존)찾기미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수없이 등장하는 이 질문. 어쩌면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키는 이 질문을 매번 듣지만, 대답을 피한다. 정확히 말하면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죽음을 반복하는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운명을 가진 이에게 죽음의 개념은 우리와 좀 다르다.
그런 그에게 미키 18이 나타나고 처음으로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한다. 미키 17은 큰 범주안에서는 본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객체로 받아들인 미키 18을 본 후, 자신의 삶이 빼앗길까봐 두려워한다. 특히 멀티플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미키 17은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하며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동안 바보처럼 수동적인 삶을 택했던 미키 17은 이 상황을 통해 비로소 능동적인 삶을 취한다. 그는 장대한 미래를 위한 목적으로 실험 쥐처럼 쓰이고, 부속품처럼 사용됐던 자신의 삶이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의 삶은 어떤 의미고, 나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이 그것.
극 중 되풀이되는 그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지 않다. 죽는 게 직업이지만, 다수의 이익과 생명을 위한 목적에 사용되는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건 참혹할 따름이다. 복제품임에도 생명을 갖고 태어났지만, 독재자 케네스(마크 러팔로)는 보란 듯이 그 생명을 박탈까지 한다. 일말의 존중 없이 그게 직업이니 그 본분을 다하라는 말뿐이다. 이는 위험하고 질 낮은 노동 현실에 놓인 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SF 장르를 뚫고 현실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통해 펼쳐지는 후반부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미키 17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복제 인간이지만, 어엿한 생명체로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 그 노력과 결단의 값은 다행히도 긍정적이다.
| 봉준호 필모그래피의 집대성, 복제품?<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는 <설국열차>의 사회와 비슷해 보이고, 행성의 원래 주인인 크리퍼는 <옥자>의 슈퍼 돼지를 연상시킨다. 나사 빠진 듯한 미키의 모습은 <괴물>의 강두(송강호)를, 크리퍼와의 대화를 위한 통역기는 <설국열차>의 통역기의 초기 버전처럼 보인다.
그동안 쌓아 올린 봉준호 감독의 이력, 그리고 영화 속 장치들이 이 영화 곳곳에 보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독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어서 만든 게 영화라면, 제목처럼 이 영화는 ‘봉준호 8’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장편 8번째 작품이다.)
그만큼 <미키 17>에는 그동안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 비판, 계급에 따른 불평등, SF 설정을 가져와 희망 없는 현실을 빗댄 이야기 등이 들어있다. 이런 소재와 주제 이곳저곳에 섞여 있는데, 이를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하지만 그 활용 면에서는 물음표다.
<기생충>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번 영화는 사회 문제로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은 우려 때문인지, 웃고 넘어간다. 때때로 깊이 들어가도 될 듯한 부분도 살짝 발만 담근다. 물론, 이 부분이 크게 모난 구석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생충>을 생각하고 온 관객들이라면 아쉬운 지점인 건 맞다.
| 서구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봉준호식 일갈, 흘러넘치는 건 흠!아쉬움을 메우는 건 동양인으로서 서구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비판 의식에 있다. <미키 17>은 우주선 내 개척 사회를 이끄는 케네스와 일파(토니 콜렛) 부부를 통해 멍청한 독재자의 민낯을 보여주고, 정치와 종교(특히 개신교)와의 결탁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지를 오롯이 보여준다. 이는 현 미국 사회는 물론, 유럽을 포함한 서구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얼굴 마단인 케네스와 뒤에서 조종하는 일파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어떤 부부가 생각난다.
우주 행성을 개척한다는 목적으로 모인 독재자와 그를 신봉하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행성 주인인 크리피를 열등한 벌레로 보고 이들을 말살하려는 모습은 개척이라는 목적 아래 영토 및 물적 확산을 위해 식민지를 단행했던 서구 사회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존중 대신 하대하고, 약탈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매스껍다. 특히 크리피 꼬리를 잘라 믹서기에 갈고 최고의 소스라 칭하는 일파의 모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 중요한 건 이들의 만행을 정작 자신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3자의 시선이자, 동양인의 시각으로 서구 사회를 그린 영화는 객관성을 확보하며 비판 어린 시선에 무게감을 더한다. 이에 때때로 고민과 통쾌함을 번갈아 갖는 재미가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런 이야기들이 흘러넘친다는 것이다. 앞서 미키를 통해 하위 계층 노동자의 현실과 권력과 종교의 결탈, 독재자의 만행, 서구 사회의 어두운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137분에 넣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다. 보기보다 인풋이 많고 그에 따른 생각이 번지다 보니 순간순간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동안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 파워 오브 러브, 사랑만이 살길이다!그럼에도 이 영화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줄을 남길 수 있는 건 ‘사랑’ 덕분이다. 영화에서 ‘사랑’은 그 중요성이 크다. 먼저 감독의 첫 번째 멜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키와 나샤(나오미 애키)의 사랑은 그 위력을 발휘한다. 많은 이들에게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미키지만, 오로지 나샤에게는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이다. 복제 번호는 다르지만 그 또한 미키로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 시험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그 옆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쩌면 미키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 주는 이가 바로 나샤다.
이들의 멜로 라인을 견고하게 쌓는 건 이 힘든 시기에 필요한 건 ‘사랑’이라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극 중 관계를 맺는 이들은 각자 필요에 의해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서로를 이용하고, 착취한다. 하지만 미키와 나샤는 무조건적인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독재자 및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없는 그 마음이 이들에게는 있다.
후반부 크리퍼와 전쟁을 치를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를 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미키 17, 18과 나샤 등이다. 마음속에 사랑과 존중이 있는 이들이기에 비로서 크리퍼와 소통을 할 수 있고, 참혹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감독이 극 중 산재한 문제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손쉽게 해결한다는 생각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혼란스럽고 혼탁한 현실 사회가 더 심화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사랑’의 의미는 위대하고 더 커 보인다. 사랑 또는 존중이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크다. 이 잔혹한 사회 실상이 염세적이었던 감독의 마음마저 바꾼 듯하다. 그만큼 사랑은 위대하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덧붙이는 말: 극 중 미키의 삶을 바꾼 매개체로 빨간 버튼이 나온다. 그 버튼을 누른 후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그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빨간 버튼이 있을 터. 그 버튼을 또 한 번 누를 때가 오기 마련인데, 두렵지만 막상 누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자아가 보인다. 미키처럼 말이다. 생존 자체가 힘든 세상에서 자신만의 빨간 버튼을 찾고 눌러보면 어떨까! 사랑도 하고!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
평점: 3.5 / 5.0
한줄평: 사랑으로 점철된 봉준호식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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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삶에서 잊지 못할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힘은 시간의 축적에 비례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순간, 한 마디의 말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망가진 시계를 열어 크고 작은 톱니바퀴를 전부 바꿀 필요는 없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멈춰버린 시간을 흐르게 만들지 모르는 일이다.
영화 <만추>는 늦가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을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 애나(탕웨이)의 삶 때문일 것이다. 가정폭력, 남편의 죽음, 7년간의 수감 생활. 그녀의 표정을 앗아간 지독한 세월은 건조하고 쌀쌀한 가을의 공기 안에서 더욱 짙은 고독을 품도록 만들었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한 남자는 그녀에게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연의 순간을 나누는 동안 감정은 저도 모르게 힘을 지니게 되고 만다.
단 한 번의 순간
애나는 엄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3일간의 시간을 허락받고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훈(현빈)을 처음 마주한다. 훈은 이상한 사람이다. 돈 없이 누군가에게 쫓기며 버스에 올라탄 것도 모자라, 처음 보는 애나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돈까지 빌린다. 이토록 기묘한 첫 만남이지만, 그때의 애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로 한 사람이 되었는지 모른다. 고작 30불의 지폐는 7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랜만에 그녀가 사람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훈은 30불을 담보로 애나에게 시계를 건넨다.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에게 시계는 ‘양심’보다는 ‘작은 미끼’에 가까웠다. 그가 할애하는 시간만큼 돈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아니까. 계속해서 애나에게 ‘몇 시예요?’라 물으며, 내가 당신의 기억에 남기를, 당신에게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함께 하는 시간에는 마음이라는 대가가 붙는다는 것을.
영화 <만추>는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감정을 완벽하게 담아낸 로맨스 영화다. 한정된 시간 속 시계를 매개로 우연인 듯 운명인 듯 마주치는 두 사람이 서로의 고독과 상처를 마주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조각난 마음에 서로가 딱 맞는 조각임을 알아차리도록 한다. 애나에겐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를 위하는 척 자신을 위하는 사람들뿐이었다. 훈은 자신의 외양과 다정한 말에 놀아나는 거짓된 사랑만을 나눠왔다. 상대를 위하는 말 한마디에 돈이며, 진심이며 모든 것을 내어주는 쉬운 사람들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 마침 애나에게는 나를 위해주는 말이 필요했고, 훈에게는 미끼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시계는 그들의 사이를 오가며 서로가 운명의 상대임을 확인시켰다.
그렇게 애나와 훈은 함께 시애틀의 거리를 걷는다. 오프닝 장면 속 불안한 걸음으로 홀로 거리를 내달리던 여자는 없다. 그녀의 추억이 담긴 시애틀의 이곳저곳을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3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마음 가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던 애나는 자신에게 계속해서 시간을 물으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자 훈에게 남은 시간을 맡겨보도록 한다.
데이트를 시작한 두 사람이 올라탄 오리버스의 가이드는 외친다.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서로 다시 만날 일을 없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인생은 짧아요. 즐기세요. 마음을 열고, 지금 사랑하자구요!’ 그렇게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데이트를 이어나간다.
단 한 마디의 말
<만추>에서의 애나의 삶은 지독하리만큼 수동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얽매인, 필요에 의해 불려지는 삶. 남편도, 가족도, 옛사랑 조차도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용해’ 왔다. 널 사랑하니까, 너의 삶을 위해서. 입 한 번 떼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방적이고도 아픈 사랑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사랑이란 특별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순간에서 영화 같은 순간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데이트의 끝자락, 범퍼카를 탄 그들의 눈앞에 한 커플이 나타난다.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지만 다투는 듯 보인다. 잠시 눈길을 끌었지만 거기까지다. 그러나 그 순간 훈이 더빙을 시작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애나는 훈의 대사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꽤나 그럴듯한 연극이 완성되었다. 평범한 한 장면이 한순간 영화의 한 장면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멈춰있는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만들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멈춘 듯 느끼게 만들었다. 그녀에겐 깨고 싶지 않은 화려하고 멋진 꿈이었는지 모른다.
이내 곧 애나의 눈은 슬픔에 잠긴다. 꿈같은 시간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도망치듯 달려 나간 곳에서 애나는 사실을 말한다. ‘나는 내일 감옥에 돌아가야 해요.’ 그렇게 애나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훈에게 털어놓는다. 비록 중국어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훈은 그녀의 말을 누구보다 따듯하게 들어주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에 자신이 아는 단 두 단어 ‘하이(좋네요)’와 ‘화이(안 좋네요)’로 얼렁뚱땅 대답하면서. 하지만 애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용기를 주고, 위로가 되었을 답이었다.
훈 역시 마찬가지다. 애나는 10불을 건네며 버스비를 제외한 데이트 비용이라고, 고마웠다고 말한다. 돈을 주면서 구걸하는 사랑이 아닌, 그동안 훈이 받은 돈에 비하면 우습기만 한 한 장의 지폐를 건네면서 말이다. 목숨을 쫓기면서 버릇처럼 던진 미끼에 자꾸만 예상하지 못한 대답과 얼굴을 보여주는 애나였다. ‘나랑 같이 있을래?’라고 말하는 고객이 아닌, ‘오늘 고마웠어요. 난 여기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여자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우연을 운명으로
언제 안개가 다시 질지 모른다고 말했던 오리버스 가이드의 말처럼 어느새 안개가 자욱이 깔린 시애틀. 애나는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감옥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번엔 옆에 훈이 있다. 애나와 훈은 둘의 첫 만남을 다시 만든다. 범퍼카를 탔을 때와 같이 어색한 연극을 시작하면서 말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하고 갑갑한 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 더욱 짙은 안개가 온 세상을 가리고, 버스는 휴게소에 잠시 멈춘다. 그곳에서 훈과 애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훈은 말한다. 감옥에서 나오는 날 이곳에서 만나자고. 그들이 나눈 3일의 시간 어느새 사라지고, 그녀의 손목엔 우연의 시작이었던 시계만이 남아 있다. 시애틀에서 시계 덕분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처럼, 꼭 다시 만나고 싶은 훈의 마음을 담았는지 모른다. 다시 한번 우연의 씨앗을 심어 운명의 힘이 자라도록.
시간이 지나 출소한 애나는 휴게소 카페에 앉아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약속한 그날,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할까. 하지만 이내 곧 설레는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이네요.’라는 짧은 문장을 연습하며, 건조하고 쌀쌀한 늦가을에도 노란빛의 따스함이 남아 있음을 알려준 그를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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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마 없는 시~원한 사이다 전개 영화 5편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가슴을 뻥 뚫게 만들어주는 액션으로
<범죄도시 3>가 무서운 속도로 벌써 600만을 넘었는데요,
그러하여 오늘 씨네랩은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이는 고구마 없는 사이다 전개 영화 5편을 준비했습니다.
취향저격, 고구마가 뭐죠? 빠른 전개 + 몰입도 높은 사이다 영화 5편,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미스슬로운
Miss Sloane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개요: 드라마, 스릴러 | 미국
감독: 존 매든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마크 스트롱, 구구 바샤-로, 알리슨 필, 마이클 스털버그
개봉: 2017.03.29.
배급: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시놉시스
승률 100%를 자랑하는 최고의 로비스트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총기 규제 법안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모두가 포기한 싸움에 뛰어들게 된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슬로운’은 뛰어난 전략으로 한 번도 굴복한 적 없는 거대 권력에 맞서지만, 동시에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게 되는데…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숨통을 조여도 나한테 징징대진 마'
CINEPICK
승률 100%를 자랑하는 최고의 로비스트로 분한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극을 달하는 작품.
속도감 있는 전개와 예측 불허의 결말,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러닝타임 132분 내내 독보적인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캐시트럭
Wrath of Man
ⓒ ㈜스튜디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개요: 액션 | 영국, 미국
감독: 가이 리치
출연: 제이슨 스타뎀, 스콧 이스트 우드, 조쉬 하트넷
개봉: 2021.06.09.
배급: ㈜스튜디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시놉시스
캐시트럭을 노리는 무장 강도에 의해 아들을 잃은 H(제이슨 스타뎀). 분노에 휩싸인 그는 아들을 죽인 범인의 단서를 찾기 위해 현금 호송 회사에 위장 취업한다. 첫 임무부터 백발백중 사격 실력을 자랑하며, 단숨에 에이스로 급부상한 H. 캐시트럭을 노리는 자들을 하나 둘 처리하며, 아들을 죽인 범인들과 점점 가까워지는데… 자비는 없다, 분노에 가득 찬 응징만이 남았다. 그의 분노가 폭발한다!
ⓒ ㈜스튜디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Lungs, Liver, Spleen, Heart.'
CINEPICK
<알라딘>의 가이 리치 감독과 고난이도의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해내는 찐 액션 배우 제이슨 스타뎀의 만남!
강렬한 분노에 걸맞은 묵직하고 리얼한 액션을 선사하며 처절한 응징과 복수극을 담은 작품으로 속도감 있는 연출과 액션, 생생한 사운드에 대한 호평으로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걸캅스
Miss & Mrs. Cops
ⓒ CJ ENM
개요: 코미디, 액션 | 대한민국
감독: 정다원
출연: 라미란, 이성경, 윤상현, 수영, 염혜란, 위하준, 주우재, 강홍석, 김도완
개봉: 2019.05.09.
배급: CJ ENM
시놉시스
민원실 퇴출 0순위 전직 전설의 형사 '미영'과 민원실로 밀려난 현직 꼴통 형사 '지혜' 집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 대는 시누이 올케 사이인 두 사람은 민원실에 신고접수를 하기 위해 왔다가 차도에 뛰어든 한 여성을 목격하고 그녀가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란 사실을 알게 된다. 강력반, 사이버 범죄 수사대, 여성청소년계까지 경찰 내 모든 부서들에서 복잡한 절차와 인력 부족을 이유로 사건이 밀려나자 ‘미영’과 ‘지혜’는 비공식 수사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수사가 진전될수록 형사의 본능이 꿈틀대는 ‘미영’과 정의감에 활활 불타는 ‘지혜’는 드디어 용의자들과 마주할 기회를 잡게 되는데… 걸크러시 콤비의 비공식 합동 수사가 펼쳐진다!
ⓒ CJ ENM
'일망! 타진!'
CINEPICK
나쁜 놈 때려잡는 걸크러시 콤비 라미란 & 이성경을 필두로 시원한 액션과 통쾌한 활약을 담은 영화.
디지털 성범죄자를 추격하는 내용의 코믹 액션 영화로 라미란, 이성경의 질주하는 사이다 면모와 통쾌한 케미가 빛을 발휘한 작품입니다.
범죄도시 3
THE ROUNDUP : NO WAY OUT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요: 범죄, 액션 | 대한민국
감독: 이상용
출연: 마동석, 이준혁, 아오키 무네타카
개봉: 2023.05.31.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대체불가 괴물형사 마석도, 서울 광수대로 발탁! 베트남 납치 살해범 검거 후 7년 뒤, ‘마석도’(마동석)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살인사건을 조사한다. 사건 조사 중, ‘마석도’는 신종 마약 사건이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수사를 확대한다. 한편, 마약 사건의 배후인 '주성철'(이준혁)은 계속해서 판을 키워가고 약을 유통하던 일본 조직과 '리키'(아오키 무네타카)까지 한국에 들어오며 사건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가는데... 나쁜 놈들 잡는 데 이유 없고 제한 없다. 커진 판도 시원하게 싹 쓸어버린다!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경찰이 뭐야. 민중의 몽둥이 아니야'
CINEPICK
개봉 일주일만에 벌써 6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현재 압도적인 흥행률을 자랑하고 있는 <범죄도시 3>
타격감, 리듬감, 그리고 보는 재미와 시원함으로 매 순간 사이다처럼 터지는 작품으로 마석도(마동석)에 대적하는 악역을 투톱으로 내세워 더 큰 긴장감을 만들어냈고 악의 스케일이 커진 만큼 이들을 응징할 때 쾌감 또한 극대 달하는 작품으로 현재 절찬 상영 중입니다.
장고:분노의 추적자
Django Unchained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개요: 드라마, 액션 | 미국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제이미 폭스, 크리스토프왈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리 워싱턴, 사무엘 L. 잭슨
개봉: 2013.03.21.
배급: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시놉시스
아내를 구해야 하는 분노의 로맨티스트 ‘장고’ 그를 돕는 정의의 바운티 헌터 ‘닥터 킹’ 그들의 표적이 된 욕망의 마스터 ‘캔디’ 복수의 사슬이 풀리면, 세 남자의 피도 눈물도 없는 대결이 시작된다! 와일드 액션 로맨스, <장고:분노의 추적자>!
'장고, D.J.A.N.G.O. D는 묵음이지'
CINEPICK
노예제도를 난도질하는 통쾌하고 시원한 복수를 담은 작품으로 쿠엔틴 타란티노만의 스타일리시함으로 미국과 유럽 박스오피스 1위를 이룬 바 있으며 해외 및 국내 관객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총 5편의 영화 어떠셨나요?
시원함 2배, 스트레스 2배 풀리는 유쾌, 상쾌한 사이다 영화로 스트레스 시원하게 날리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GONI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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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진의 <창밖은 겨울>
본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작년 전주 영화제에서 볼 영화가 없어서 선택한 영화였다. 당연히 기대감도 없이 심드렁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꽤나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흥미로워지기 시작한 지점은 MP3의 주인을 기다리는 공기사의 태도였다. 나의 질문은 “MP3로 어쩔 건데?”였다. 아주 사소한 무언가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영화는 누군가가 잃어버린 혹은 버린 MP3로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간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거나 명작은 아니다. 분명 이 영화는 누군가의 습작품처럼 미학적인 야심보다는 이야기에 충실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영화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따뜻함은 어떤 특정한 장면이나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점은 분명 진해라는 공간에서 드러난다. 작년 전주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내가 이 영화에서 “좋다”라고 생각한 지점들이 어떤 지점들인지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보면서 첫 장면부터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내가 본 느낌은 감독이 “진해”라는 공간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지형적인 쇼트나 진해만의 특색이 느껴지는 쇼트는 없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찍은 시점 쇼트나 몇몇 풍경 쇼트들은 마치 누군가가 항상 일상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소중한 순간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다.
영화의 첫 장면은 버스를 모는 공기사로 시작한다고 이야기하면 그건 틀린 것이다. 우린 화면에서 버스를 모는 공기사를 보지만 첫 장면에서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한다. 첫 장면은 아침방송으로 시작한다가 맞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공기사의 전 여자친구가 공기사에게 이별 통보를 하면서 한 말이 아침방송을 듣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마도 영화를 하는 사람 혹은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디테일이지 않을까. 맨날 밤을 새는 직업. 혹은 언제 일어나고 언제 자는지 정해지지 않은 삶. 이 부분을 지적한 까닭은 이 영화는 디테일이 꽤나 훌륭하게 설정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심지어 MP3를 고치러 방문한 문구점에서 주인 할아버지가 돌고 돌아서 돌아가라는 대사 또한 마치 공기사의 마음과도 같지 않은가. 이 돌고 도는 것은 로터리에서 시각화된다. 영화관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은 그것이 웃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진행시키는 감정이거나 혹은 어떤 은유적인 표현들의 디테일들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공기사가 아침방송을 듣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영화를 포기한 이유와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결합된 것임은 추정이 가능하지만 정말 아침방송을 듣고 싶다고 이야기한 전 여자친구의 말 때문에 그는 버스 기사가 된 것일까. 이렇게 생각이 닿는 순간 어쩌면 공석우는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겠구나 싶다.
만약 시사회에 감독이 참석했고 관객들에게 질문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또 다른 질문은 공기사의 엄마를 찍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에서 엄마와 함께 출근하는 장면과 졸혼을 이야기한 뒤에 거리를 걷는 장면은 모두 뒷모습으로 찍혔다. 이 뒷모습이 유달리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영애와 걸을 때 패닝으로 뒷모습이 보이는 것과는 다른 감정적 효과를 자아낸다. 영애와 걷는 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영애와의 걷는 장면에서의 뒷모습은 마지막 쇼트에서 정서적 힘이 발휘된다. 그런데 이 마지막 쇼트도 앞에서의 뒷모습과는 다르다. 앞에서의 두 쇼트는 정면으로 찍을 수도 있는 쇼트다. 여기서 뒷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가 화제가 된다면 아마도 한선화라는 배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는데 난 예능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다만 한선화가 아이돌이었고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연기를 계속해도 되겠다는 관객들의 인정을 이 영화에서 얻어낸다. 그건 어쩌면 <건축학개론>의 수지와도 같다. 수지와 한선화를 비교하는 건 아니다. 다만 <건축학개론>에서 서연이라는 캐릭터는 내면을 표현하거나 딜레마를 겪거나 혹은 섬세한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건 <창밖은 겨울>에서 영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캐릭터를 감싼다. 연기라기보다는 마스크와 감독의 영리한 디렉션이 결합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영애의 입에서 탁구 시합을 나가려는 것이 탁구에 남은 미련인지 후회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고 대답했을 때 공기사는 미련인지 후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영화 협회에 다시 참석한다. 난 여기서 공기사가 얻는 대답이 미련일지, 후회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연출할 지도 궁금했다. 다시 보고 있는 과정에서도 첫 번째 감상에서 놓친 이 답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감독은 여기에 미련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또다시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미련인지, 후회인지도 깨닫기 전에 저쪽에서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답을 준다. 그 순간 미련이건 후회이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거기서 이미 끝난 것이라고 감독은 이야기한다.
MP3가 돌고 돌아서 결국 결국 공기사에게 도착한다. 그것은 전 여자친구를 거치고 유실물 센터를 거쳐서 수리를 받고 마침내 영애에게 도착했을 때 그 MP3의 이어폰은 영애과 공기사가 한 쪽씩 끼게 된다. 이제 우리는 돌고 돌아서 마침내 MP3가 목적지를 찾았다는 것을 느낀다. 이 순간 우리는 따뜻함을 느끼지만 그것보다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디테일의 힘, 즉 돌고 돌아서 MP3가 도달하는 곳을 공기사가 돌고 돌아 영애에게 도달했다는 것으로 일치시킨 기분 좋은 유쾌함을 느껴야 한다. 아, 오랜만에 보는 진정으로 따뜻한 한국 영화다.
2022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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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가 뭘 하는지 보라
-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들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내면은 진정으로 선하다고 믿어". 이 말들은 우리에게 '모종의 영감'을 주는데, 그건 그 말들이 우리 귀에 좋게 들린다는 뜻이다. 이 말들은 살해된 소녀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이는 걸 용납하는 우리 문명의 타락에 대해 용서받은 기분이 되게 해준다. 그리고 만약 그 말들이 살해된 소녀에게서 나왔다면, 글쎄, 그렇다면 그 말들은 틀림없이 진실일 테니 우리는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게 틀림없다. 살해된 유대인이 내려주는 그런 은총과 사면이라는 선물이야말로(정확히 기독교 사상의 핵심에 자리 잡은 선물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네의 은신처에서, 그가 쓴 글에서, 그가 남긴 '유산'에서 너무도 간절히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죄 없는 죽은 소녀가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었다고 믿는 것이 다음과 같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다. 안네가 '내면이 진정으로 선한' 사람들에 관해 쓴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이었다. 그 문장을 쓰고 3주 뒤,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다.어떤 사람들이 살아 있는 유대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보여주는 사실이 여기 있다. 그 사람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이 사실은 안네 프랑크의 글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되풀이해 말할 가치가 있다. 그의 일기를 읽는 독자들은 작가가 집단 학살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것이 그의 일기가 집단 학살에 관해 쓴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그런 작품이었다면 그 일기는 전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우리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은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생생하고 자세하게 연대기순으로 정리해 쓴 글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 기록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안네의 일기가 얻은 명성 같은 무언가를 얻지 못했다. 그런 무언가에 가까이 갔던 기록들은 오직 은폐라는 똑같은 규칙, 자신을 박해한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예의 바른 피해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규칙을 준수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었다.이디시어판은 <나이트>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자들에 대한 그리고 제목이 암시하듯 무관심으로(혹은 적극적인 혐오로) 그런 살해를 가능하게 했던 세상 전체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위젤은 후에 프랑스인이자 가톨릭 신자이며 노벨 상 수상자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도움을 받아 '나이트 La Nuit’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프랑스어판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젊은 생존자의 분노를 신학적 고뇌로 전환한 작품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속한 사회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떤 독자가 듣고 싶어하겠는가? 신을 비난하는 것이 낫다. 이런 접근법은 위젤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에 이 책이 미국이 베푸는 호의의 전형인 오프라 북클럽 선정작이 되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도 일본의 십 대 소녀들이 안네의 일기를 읽었듯 이 책을 읽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되려면 위젠은 많은 것을, 훨씬 더 많은 것을 은폐해야 했을 것이다.<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주의: 참사가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음.
현시점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라기엔 너무 참여-미디어 아트의 영역으로 나아가 버린 것도 같다. 대부분의 글로벌 관객들에겐 영화보다도 먼저 사회적 책무를 인지하고 유의하는 행동주의 예술가의 수상 소감 영상이 전해져왔다.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오스카에서 유대계 정체성(Jewishness)과 홀로코스트를 또다른 전쟁/학살을 위해 오용하지 말 것을 촉구한 후, 곧장 전세계 시오니스트의 돌을 맞는다. 그 자신 역시 유대계이면서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정면으로 반대한 그가 손을 덜덜 떨며 준비해온 ‘선언’을 수행할 때 우리는 일종의 경외를 느낀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가 선 곳에 가장 먼저 균열을 내며 우리 인간의 자격을 되묻는 모습. 그렇듯 순교를 불사한 지성인의 결기는 어떤 이에게나 강렬한 전율로 다가오니까.
한편 미디어 아트로서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흥미로운데, 우선 이 영화가 전시하는 풍광은 오프닝부터 경박하리만큼 경쾌하고 그늘 없다. 르누아르의 사랑 넘치는 가족 연작을 떠올리게 할 만큼 밝은 햇볕 속, 떼죽음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며 안전한 부귀를 누리는 가족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건전한 수용소 미관 조성’을 위해 라일락 관목을 꺾지 말라고 엄숙하게 공지 방송을 하고, 아이들은 곧 도살될 유대인들처럼 아버지 루돌프의 눈을 가리고 그를 정원으로 데려가 깜짝 생일 파티를 선물한다. 어머니 헤트비히가 정성껏 돌보는 아름다운 정원과 윤기 나는 검은 개와 건강한 5남매까지, 완벽한 소품을 둔 듯 잘 가꿔진 이 삶이 평범할수록 도리어 벽 너머의 - 어쩌면 이미 삶이 아닐 - 삶(들)에 대한 암시가 숨을 죄여온다.
헤트비히를 포함한 장병 부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잔머리 하나는 대단한’ 유대계 희생자들을 비웃고, 그들로부터 갈취한 밍크 코트와 보석들을 두르고 힘을 과시하지만 이 과시는 절대 노골적이거나 공개적이지 않다. 다른 부인의 거대한 코트를 두고 다른 여자들과 “여제 같다”며 부러워하고 비꼬았던 헤트비히는 강아지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은 문 안에서 제게 떨어진 코트를 몰래 입어보며 만족해한다. 그러나 값비싸고 보드라운 코트는 헤트비히가 평소에 입던 평범한 원피스에 비해 너무나 어울리지 않고 어딘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또 헤트비히는 코트 주머니 안에서 나온 립스틱 - 그러니까 이것이 원래는 살아 있었던 누군가의 소유임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끔찍한 소품 -을 발라봤다가 이내 쓱쓱 문질러 지워버린다.
이 은근함, 이 비밀스러움은 회스 부부를 포함한 독일인 전범 가족들이 그 시점 도달한 삶이 절대 처음부터 그들 소유가 아니었단 사실을 제시한다. 그들이 부유했었고 똑똑했던 유대인들을 멸시하거나, 장모가 과거의 유대인 고용주를 떠올리고 “그 여자도 지금 저기 있으려나?” 상상하며 어딘지 고소해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이전에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을 갖고 있었던 이들에 대한 질시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말하자면 상위 계층을 ‘몰아냄’으로써 계급 이동에 성공한 하위 계층의 승리감, 도취감 내지는 자족과 뿌듯함이 이들의 얼굴에 부드럽게 퍼져있는 것이다.
“그이는 저보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라며 수줍은 듯 의기양양한 듯 말하는 헤트비히, ‘불합리한’ 전출에 항의하다가 결국 “이런 ‘희생’을 감수하는 게 삶이란다”라고 애마에게 말하는 루돌프. 우습고 불쾌한 기분이 정점을 찍는 것은 부부가 강가에 서서 발령 소식에 대해 논의하는 씬에서다.
난 죽어도 여기 안 떠나.우리가 열일곱 살 때부터 꿈꿔온 삶이잖아.총통도 그렇게 연설하셨잖아.동쪽으로 가서 보금자리를 찾으라고.즉 헤트비히와 루돌프는 “그동안 꿈꿔왔던 삶”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들여왔으며 그 삶을 ‘부당하게’ 뺏기지 않기 위해 더한 노력도 불사할 거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 노력이란 건 물론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탈취하고 강간하는 일에 일조하거나 “태우고, 식히고, 비우고, 채우고”의 반복을 직접 설계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나 루돌프의 ‘일’은 사람을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일정하게 먼 거리에 고정된 다중 시점의 카메라를 통해서만 그려지고 있는데, 헤트비히가 일궈온 꽃밭과 온실이 이토록 아름다운데, 손만 까딱하면 네 명의 하녀들이 벌벌 떨며 궂은 일을 대신해주고 전시 중에도 케이크와 비싼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벽 뒤에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게 죽든 나머지 가족들이 알게 뭐란 말인가.
“초콜릿 같은 거 있으면 꼭 챙겨줘”라며 남편에게 당부하는 씬을 통해 공범임을 입증한 헤트비히의 몸과 움직임은 ‘어쩔 수 없이’ 루돌프의 그것에 비해 비인간성의 일상화에 더 깊게 일조한다. 루돌프는 수용소장이고 헤트비히는 그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사람을 죽이고 처리하는 효율적 프로세스를 직접 설계하는 자고 헤트비히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 그럼으로써 당시에 침묵하거나 적극 가담한 일반적인 독일인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돌프가 참석한 나치 장교들의 회의보다도 헤트비히의 신경질적 짜증이 극 전반에 긴장감 도는 중력을 더한다. 그는 결코 상냥하거나 일관된 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 기분이 상하면 “너 하나쯤 재로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니”라며 하녀를 위협하는 여주인이다. 무의식적인 듯해서 더 공포스러운 무시. 힘을 제대로 다루는 법도 모르고 뒤따르는 책임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갑자기 쥐어진 타인의 생사여탈권. 성실한 군인이고 좋은 아버지였던 루돌프가 창녀를 사는 위선이나, 헤트비히가 남편보다 집을 선택하는 자기중심성은 그래서 놀랍지도 기이하지도 않다.
상실 없는 상실과 공포 없는 공포, 무게감 없는 무게를 전달하는 작품을 ‘보며’ 관객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얼마나 시각적 정보에 의존하는지를 계속 의식하게 된다. 벽 뒤에서 무언가 가동되는 소리. 간헐적인 총소리와 희미한 통곡과 비명 소리. 게르만 아기의 울음과 유대인 아기의 울음은 기묘하게 뒤섞이고 개들은 담장 안팎에서 하울링을 주고받는다. 헤트비히의 어머니처럼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이 모든 불길한 소리를 못 견뎌 말없이 떠나버릴 정도지만, 내부인들은 백색소음 정도로 치부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우리 눈에 푹푹 박혀오는 풀꽃의 선명한 빛깔, 새빨갛고 예쁜 수영복과 희디흰 게르만족 피부의 조화, 맑은 강물 앞 단란한 가족이 노니는 풍경이란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왔을 것인가.
눈과 귀의 기이한 간격을 최대한으로 유지하며, 눈을 극적으로 속이고, 클로즈업 없는 원경으로 눈이 해석하는 정보값을 어긋나게 하길 의도하던 영화는 돌연 마지막 5분간 오류 없이 명확한 장면을 송출하니, 바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관을 열심히 쓸고 닦는 현대의 풍경이다. 80년의 간극을 뛰어넘게 해줄 통로는 암전 속 빛이 새어 들어오는 좁은 바늘구멍이다. 이는 원시적인 카메라를 즉각 은유한다.
루돌프 회스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돌연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를 찍는 카메라를 직시하고, 블랙박스가 ‘보여준’ 미래를 감지한다. 이 응시는 영적이고 마술적이다. 루돌프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역시 루돌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루돌프는 그날 밤 자기 공적을 치하하는 파티에서마저 ‘이 사람들을 가스로 몰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전화 너머 헤트비히에게 즐거이 말한다. 즉 그는 ”당신은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필사의 합리화로도 보호받지 못할 괴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붙잡혀 구타로 앙갚음당하고 결국 교수형을 당할 자신의 운명을, 악인 하나를 징벌하는 것으론 복구되지 않을 수십만의 생명을, 시원하게 토해내지도 못할 만큼 무거운 죄악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짊어진다.
드문 고요 속 루돌프는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아우슈비츠의 집에서 온 방 불을 끄고 문을 잠그며 침실로 올라갈 때와 같은 속도로.
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의 우릴 반성하고 직면하기 위해 이루어집니다.'그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보라'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뭘 하는지 보라'.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보여줍니다.조나단 글레이저
그때 거기에서 일어났던 일과, 지금 여기에서 내 눈앞이 아닌 곳에서 담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고 말할 사람들. 어쩌면 이미 늦어버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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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에 가려진 서사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그린 나이트” 후기입니다. 난해하지만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아래 네이버지식백과에 나온 원작시에 대한 해설을 참고하고 영화를 감상하신다면 판타지와 원작을 비교하면서 충분히 영화를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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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리뷰 (스포일러 O) - 정답보다 중요한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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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야”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
그는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기피 대상 1호인 `이학성`은
어느 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수학을 가르쳐 달라 조르는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난다.
정답만을 찾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한지우`에게
올바른 풀이 과정을 찾아나가는 법을 가르치며
`이학성` 역시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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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1차 예고편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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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쇼미더고스트> 메인 예고편
영혼까지 끌어모아 마련한 돈으로 드림 하우스에 입성한 20년 절친 예지와 호두.
완벽한 줄 알았던 집에 귀신이 들자, 돈도 갈 곳도 없는 둘은 귀신을 내쫓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귀신보다 무서운 서울 물가 때문에 지쳐버린 두 사람은
값비싼 전문 퇴마사 대신 특별할인 이벤트 중인 꽃도령 퇴마사 기두와 셀프 퇴마에 나서는데…
"귀신님, 아직... 안 나가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