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5-27 05:32:27
처음 보는 친구들과 밴드 결성하게 된 썰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벨 앤 세바스찬의 리더 스튜어트 머독의 감독 데뷔작이자 베를린 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된 작품!
바로 <갓 헬프 더 걸>입니다.
음악 영화인만큼 OST가 정말 좋지만, 영상미까지 뛰어나
눈도 귀도 모두 즐거울 수 있는 영화입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이브 | 에밀리 브라우닝
FILMOGRAPHY
갓 헬프 더 걸 (2014)
슬리핑 뷰티 (2011)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2004)
AWARDS
Ashland Independent Film Festival, 2007
Australian Film Crritics Association Awards, 2012
Australian Film Institute, 2005
제임스 | 올리 알렉산더
FILMOGRAPHY
잇츠 어 신 (2020)
퍼니 버니 (2015)
갓 헬프 더 걸 (2014)
AWARDS
British LGBT Awards, 2020
Brooklyn Film Festival, 2015
Brookly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5
캐시 | 한나 머레이
FILMOGRAPHY
찰리 세즈 (2018)
디트로이트 (2017)
갓 헬프 더 걸 (2014)
AWARDS
CinEuphoria Awards, 2020
Evolutio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5
Ourense Independent Film Festival, 2015
어떤 내용인가요?
이브는 거식증을 앓고 있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공연을 보러 온 이브는 공연장에서 기타리스트 제임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제임스는 이브와 함께 제임스가 기타를 가르쳐주고 있는 캐시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셋은 친한 친구가 된다.
이브, 캐시, 제임스는 밴드를 하기로 결정하고, 밴드부원을 모집하려고 한다.
과연 셋은 밴드부원을 모집해서 밴드를 결성하고,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Reviews
"따뜻한 색감"
마치 추억 속 한 장의 사진을 꺼내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나는 따뜻하고 빈티지한 색감으로
아련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영화의 색감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영상을 확인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I_mWZNoa2vg
"세 배우의 케미"
이 영화 역시 세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는데요.
노래가 나올 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삼인방의 모습이 무척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온전히 그들의 세상 속에서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밀리 브라우닝"
세 배우(에밀리 브라우닝, 올리 알렉산더, 한나 머레이)가 주연을 맡고 있지만, 에밀리 브라우닝이 맡은 이브의 이야기가
영화의 흐름을 주로 진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이브라고 생각하는데, 이브라는 캐릭터가 가진 전체적인 스토리가 외형에서도 나타났으며, 비언어적 표현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갓 헬프 더 걸>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갓 헬프 더 걸>은 음악 영화를 좋아하는 분께 꼭 추천드리고 싶고, 빈티지한 색감, 패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뒷 내용이 궁금하다면 넷플릭스에서 <시니어 이어>를 시청해보세요!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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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는 티키타카! 류승룡이 다시 돌아왔다!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장르만 로맨스가 개봉했습니다.
배우인 조은지 감독의 상업장편 영화 데뷔작이죠.
주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가 매력적이고, 특히 류승룡 배우의 코믹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물론 진중한 연기도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뜻하게 볼 수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니 주변 관계들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전체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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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뷸런스, 정신차린 마이클 베이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
?Rabbitgumi입니다!!
파괴지왕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앰뷸런스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아주 크게 기대받던 영화는 아니었죠.
예고편을 봤을 때, 은행을 털고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여서 뻔하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꽤 재미있는 액션 영화였습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 스타일이 그대로 들어가있는데 조금은 질질 끈다거나 오버하는 장면이 줄었어요.
이야기 구성에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액션과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긴장감 만은 확실히 잡습니다.
영상과 음향이 멋집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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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 10년의 여정
이순신과 함께한 뜻깊은 10년 그 시간을 되짚어 보다?️ #노량죽음의바다 10년의 여정 영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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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플래시> 메인 예고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스피드! 빛보다 빠른 슈퍼 히어로가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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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유리병 편지에 답장을
감독] 서아현
출연] 송강원, 서아현
시놉시스]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 여성이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현이 절친한 친구이자 동성애자 남성인 강원과 우정을 쌓는다. 영화는 서로 다른 성 정체성과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크고 작은 다름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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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편지를 받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편지를 받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연자인 ‘강원’ 혹은 출연자이자 감독인 ‘아현’, 혹 다른 누군가일까요? 발신자를 알 수 없으니 이 편지를 유리병 편지라고 해 두겠습니다. 유리병 편지가 뭔지 아시나요? 편지를 유리병에 담아 봉해 바다에 띄워 보내는, 수신자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입니다. 20세기의 낭만 같은 것이 묻어 있죠.
익명의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답장을 건네는 심경으로 적어 봅니다. 일단 저에 대해 말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이 글을 읽을지, 이 영화를 볼 지 정할 수 있을 테니까.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의 아현처럼,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축에 서 있습니다. 교회 품에서 자랐고, 지금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가장 따뜻한 말도, 가장 징그러운 말도 교회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동성애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꽤 오래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인데, 왜 콕 집어 동성애자만 배척하는 걸까요? 왜 동성애자는 ‘용서받지 못할 죄’ 취급을 받는 걸까요? 음란과 탐욕도 함께 기록된 죄인데, 왜 거기에는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는 걸까요?
비슷한 의문을 품어 보았다면, 아니 꼭 의문이 아니어도 호감 혹은 멸시 어떤 감정이라도 품어 보았다면, 무색무취가 아닌 다른 색깔이 당신 안에 있다면 한 번쯤 보시면 어떨까 권해 보고 싶습니다. 결혼과 연애, 종교와 사랑. 스스로를 동성애자라 부르든 기독교인이라 부르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가 아닌가요? 한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해 보아서 나쁠 건 없습니다.
우리는 닮아 있다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점에서 아현과 비슷한 축에 서 있었다고 말했죠. 착잡한 표정의 아현 뒤로 그의 방을 보았습니다. 영화 <레토> 미니 포스터, 바다가 그려진 엽서, 세이브더칠드런 마크. 비슷한 결의 그림들이 제 방 벽에도 붙어 있습니다. 이전의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착잡함 또한, 제가 최근 몇몇 기독교인 친구들과 말해왔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한편 강원을 보면서도 저와 비슷한 축에 서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공동체community”를 계속 이야기하는 그가, 공동체의 힘을 믿는다는 말이, 상처받았을 때에도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던 그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배운 좋은 말 중에서도 손꼽아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거든요.
아현과 강원처럼, 우리 같이 친구 되어 고민하면 안 될까 하는 말랑말랑한 생각이 올라옵니다. 나와 다른 이들과 섞이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정말 두려운 건 섞이지 못하는 감각입니다. 돌이켜 보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섞이는 순간의 대화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공통점이 있어도 차돌처럼 단단한 마음 앞에서는 결국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요. 상대가 절 볼 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래서 쓴 답장
모두가 모두의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랬다면 여기가 천국이겠죠. 가끔 반목하거나 튕겨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동시에 상처 주는 것조차 지긋지긋해서 도망치고 외면하는 마음도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최후의 순간까지는, 서로의 다양한 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서로 반목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이미 너무 어려우니까요. 각자 소용돌이를 안고 걸어가는 세상이니까요.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강원을 담은 영상들을 보며, 아현은 물론 강원 본인조차 자신에게 스스로 몰랐던 여러 가지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일면들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찬찬히 담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소중한 유리병 편지를 받게 되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웃고 울고 각양각색의 감정들을 오랜 시간 동안,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서 담아 준 두 사람에게 답장할 수 있다면… 짚어주어 고마운 지점이었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는 물론 퀴어 퍼레이드에서도 들리지 않을 ‘회색’의 이야기, 소중히 건네받았습니다.
추신. 이 영화를 꼭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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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 08. 25 ~ 2022. 09. 01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상영
2022. 08. 26. 20: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2022. 08. 28. 13: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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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속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디스클로저 (Disclosure : Trans Lives on Screen, 2020)
<센스 8>이나 <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같은 다양한 작품에서 LGBT 사회, 그 중 트랜스젠더인 인물들이 등장해 미디어에서 그들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 있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편견들과 왜곡된 이미지들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14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미디어 속 고정된 트랜스젠더 역할의 비판 및 실제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주변 매체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말한다.
<더 많이 보여질수록, 괴롭힘당한다>
우리가 흔히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에도 트랜스젠더의 상황이 들어맞는다. 그들이 스크린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오히려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를 묘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이들의 심리적 두려움으로 번져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970년대만 해도, <플립>과 같은 드라마 속에서 트랜스여성은 일종의 ‘유머코드’를 위해 존재했다. 그들이 등장할 때면 관객의 웃음 소리가 백사운드로 삽입되었고, 이를 TV로 보는 시청자들이 이들에게 가지게 되는 인상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완전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이 아닌 특정 행위를 즐기는 ‘크로스드레서(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을 일컫는 말)’라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이 행동은 당시 법적인 제제를 받기도 했으며, 이런 사회적 인식은 여성의 이미지를 폄하하는 전형적인 잘못된 예시이다.
여기에는 인종차별적 문제 또한 있다. 흑인 남성이 드레스를 입는 장면들에 대한 일정한 클리셰가 있는데, 남성성의 억제라는 것을 희화화하여 보여주는 의미이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매체에서 다뤄지며 유색인종인 트랜스젠더는 마치 존재할 수 없다는 듯한 폭력적인 인식을 계속해서 심는다. 영화는 인터뷰 중간중간 이들이 직접 봐왔던 영화나 비디오 속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제대로 이들의 생활을 보여준 것들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성장과 트랜스 과정을 겪게 되면서 주위의 도움이 절실했고,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트랜스젠더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미디어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범죄의 타겟이 되어 피해자로 등장하고, 주변 인물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존재를 숨겨야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슬프지만 주변 환경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매체는 당사자의 감정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에 더 공감하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에서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제는 트랜스젠더 시청자들의 입장을 더 생각하고, 그들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다행히도 지금은 여러 미디어에서 이들의 일상을 잘 그리고 있어 스토리에 더욱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인물은 <센스8>의 노미 마크스이다. 트렌스 여성인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자신을 표현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인물로, 전문 해커로서 유능한 커리어우먼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트렌스젠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미래 세대는 미디어를 통해 이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미디어에 이어 현실에서의 변화가 무엇보다 최종의 목표이자, 가장 필요할 때이다.
<디스클로저>는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또는 웃음으로 소비되었던 트랜스젠더에 관한 인식을 재확인한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당사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것.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시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제목은 트랜스젠더들이 두려워하는 폭로의 순간을 의미하지만, 이는 더 나아가 회피의 대상에서 이들간의 긴밀한 연대로 이어지도록 투쟁한 그들을 스크린에 담는다. 이제는 미디어가 활동 영역을 넓히고, 그들을 향한 그동안의 잘못된 표현들을 비판할 수 있는 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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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러영화에는 재미도 있고 슬픈 전설까지 있어
여러분은 어떤 것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화되면 무섭다. 거의 대부분 현실로 이뤄지는 게 함정이지만 이 공포에 무덤덤함이란 없다. '혹시 누가 화장실 물을 안 내렸으면 어떡하지' 싶으면 간혹 그 더러운 광경을 보게 된다. 비단 시각적인 것으로만 국한 지을 필요는 없다. '이 쯤되면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싶으면 잃어버린다. '돈 다 쓸 것 같아'라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돈이 빠진다.
당연히 우리 모두 다 재미없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에 혹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외로 내 운명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믿는 신에 다들 기대곤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점을 활용한 예술 장르가 공포영화고. 한국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대만에서 호러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이 영화, 무섭다, 기괴하다. 당신의 110분을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주 걸린 여자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 보자.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
저주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백하는 여자. 자기를 리궈난이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과거에 있던 일을 털어놓는다. 끔찍한 금기를 건드렸다는 여자. 금기를 건드린 탓에 리궈난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카메라를 들고 간 경찰서에는 의문의 자살사고가 벌어진다. 계속되는 불행에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체념하기로 한 것 같다. 리궈난은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고 금세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 딸의 불행을 극복하고 싶어서에요”
카메라는 리궈난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리궈난에겐 딸 한 명이 있다. 어두운 낯빛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리궈난. 리궈난은 양육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친모로서의 권리가 박탈될지도 모른다. 카메라와 리궈난은 한 남자와 만난다. 아마 공동으로 양육권을 가질 아버지가 되는 분인 것 같다. 촬영하고 있는 영상의 목적 ‘영상일기’를 설명한다.
둬둬는 리궈난 인생의 전부다. 그녀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유일하게 웃는 것도 딸을 만날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편하게 굴러가진 않는다. 같은 차에 탔는데도 흐르는 어색한 기류. 차에 타서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둬둬와 리궈난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간단한 놀이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녀. 둬둬는 어머니 리궈난에게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돌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작됐다. 리궈난은 정해져 있던 저주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뻔하다. 이 영화는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주에 걸리는 설정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아무 이유도 계기도 모른 채로 맞이한 비극, 식인종 연쇄살인마와의 대담, 내재되어있는 분노 폭발 등 기존에 있는 호러 영화 수작들처럼 창의성 있는 도입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금기를 건드리게 된 계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하다. 당장 떠오르는 <텍사스 전기톱 2022>부터 <이블데드>까지 전통과 근본의 주요 소재를 기시감이 들 정도로 답습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저주의 시각화다. 이 저주를 시각화한 방식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이점을 부여한다. 이 저주에 힘을 빡 줘서인지 인트로에 힘이 영 없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이 단점이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가 예상대로 이어진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자극적인 저주뿐이다. 단점이 이런 선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편집이 좀 산만한 감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의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찍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이 장르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내용이 좀 있다. 구체적으로 초입부의 저주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첫 번째로 저주가 시각화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은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폭주하는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다음 장면에 '어떻게 주인공들이 저주에 걸리게 됐는가'를 정작 영화에서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지라 전반부는 기능적으로 단지 분위기만 제시하기 위해 쓰인 느낌이 강하다. 냉장고에 물건들이 다 엎어지고, 느닷없이 꼽등이가 날아들며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후반부까지 통일성 있게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그냥 잊힌다. 이 장면에서 둬둬가 저주가 걸린 부분을 1/3으로 줄이고 중반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초반부는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쓰인다. 이때 이 영화의 미술팀이 열일을 해서 무서운 느낌을 내는 건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영화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자극적으로 높은 템포를 단지 유지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을 썼다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지루하다가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치 있고 흥미로워서 영화의 서사가 희생된 느낌?
이 단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에서 쓴 현재 시퀀스 바로 다음은 과거 회상이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한 마을의 전통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 취재는 리궈난이 저주에 걸린 계기가 된다. 그니까 둬둬가 걸려있는 저주의 증상을 보여주고 리궈난이 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엇갈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중반부 터닝포인트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근데 이건 사실 좀 더 쉽게 전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저주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위험에 빠져들어요'라고. 그러면 이 저주가 대체 뭐하는 것이길래 인물들을 이렇게 끔찍한 비극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의문점이 든다. 난 이 저주의 숙주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데 계속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불필요한 건 아닌데 주인공이 어겼던 종교적인 금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끊기는 느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배치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게 현재 시점에서 겪는 저주 연출이 현실적으로 기괴해서 그렇지 미술팀의 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만 천천히 쌓아 올린 빌드업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주에 걸린 모녀의 모습 - 과거에 어떻게 저주에 걸렸는가 - 현재 관점에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 - 하이라이트 신(과거 회상) - 엔딩으로 이어져도 극이 훨씬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단점 중 하나는 엔딩이다. 아마 "..?" 싶을 것이다. 중후반부까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이미지에 무색하게 좀 허무하게 끝난다. 근데 이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에너지가 강점인 영화다. 그래서 엔딩이 그렇게까지 페널티는 아니다. 좀 어이없을 뿐. 아무 인상도 주지 못하는 엔딩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
이 영화는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일단 앞에서도 쓴 시각 디자인은 정말 노력의 대가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기괴한 이미지를 너무 잘 짰다. 어쩜 그렇게 무서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초반부에 어떤 할머니가 차 밖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신이 있다. 그냥 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구경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하는 행동들, 몸의 각도들, 대사들까지 경제적인 활용법이 돋보인다. 이 감독은 어떻게 해야 그냥 지켜보는 행위로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괴한 짓만 골라서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제1원칙 '일단 무서워야 함'을 아주 충실히 충족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계속 생각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만든 세트장은 진짜 실제로 그런 게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뭐라 뭐라 보여주지 않아도 디자인의 현실감 하나로 모든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각 디자인의 강점은 신체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분명 여러분들이 다 익숙한 맛일 것이다. 근데 그 익숙한 맛에서 살짝 비켜나가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부에 입 안을 열었는데 치아가 많은 장면이 있다. 이 때 치아가 좀 누리끼리하지 않다. 정말 새하얗다. 근데 입 안이 또 완전 새빨간색은 아니다. 적당히 빨갛다. 적당히 빨갛고 아예 새하얀 치아를 탁한 조명으로 묘사한다. 이 이미지에서 오는 기괴함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그리고 무슨 피부에 발진이 나는 형태도 현실감 있게 잘 그렸다. 단순히 끔찍하게만 그려서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 일어날 법한 상처라서 더 무섭다. 이 상처를 비추는 조명이나 촬영 방식도 잘 골랐다. 연출자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믿음이 가는 이 느낌
<랑종>이 생각난다. <랑종>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이 있다. 아시아권의 영화감독이 동양적인 소재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궤를 공유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장점을 공유한다. 바로 신뢰를 팍 주는 중심인물들이다. <랑종>에서는 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다큐를 보는 듯한 든든한 연기를 보여줬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유사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물의 특성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표정연기와 대사 치는 톤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 사람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폭발하는 연기 역시 생동감 있게 잘 소화했다. 이 인물의 행보, 등장과 퇴장을 유심하게 지켜보면 극의 배경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또 모녀의 연기 역시 좋았다. 특히 아역 배우 둬둬를 맡은 배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이 호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을까? 90년대-00년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귀신 들린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했다. 또 리둬난 역을 맡은 배우도 리액션 연기가 좋았다. 기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내면을 탄탄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불안한 각본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세 배우의 호연 덕이다.
그냥 보기 좋아
영화를 왜 볼까? 난 그냥 본다.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본다.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개체가 주는 특성은 남다르다. 가끔은 장점이고 단점이고 나발이고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가 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점을 충실히 구현하는 좋은 영화다. 일정한 톤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극에 빠져드는 장점이 될 것이다. 시각 디자인팀이 만든 영화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것이다. 작년 <랑종> 역시 무서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랑종>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변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 깐 상태로 보기 좋은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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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이 낳은 거짓의 왕국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만들기 (Inventing ANNA, 2022)
채널 : 넷플릭스 시리즈, 9부작 완결 │ 장르 : 미국, 범죄·드라마
제작 : 숀다 라임스 │ 출연 : 줄리아 가너(애나), 애나 클럼스키(비비안), 아리안 모아이드(토드), 케이티 로우즈(레이첼) 외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델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결핍은 양날의 칼 같다. 어떤 결핍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게 하지만, 어떤 결핍은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들기도 하니까. <애나 만들기>의 ‘애나 델비’는 단연 후자의 경우다. 애나 델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에서 금수저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여러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았던 실제 인물이다. 본명은 ‘애나 소로킨’. 금수저 상속녀는커녕 실제로는 트럭 운전수의 딸이었다. 사실상 무(無)수저에 가까웠던 애나는 어떻게 ‘찐’ 금수저들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일화를 하나씩 양파 까듯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최대 재미 요소다.
애나는 사교계 유명인사들과 어울려 다니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미술과 패션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언변 또한 그에 못지않게 화려했으며 성격도 화통해서 인맥 넓히기에도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사기꾼의 삼박자를 완벽히 갖춘 셈.
애나는 그렇게 뉴욕 사교계를 발판으로 하여 조금씩 인맥을 넓혀나갔고,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모두 그녀를 독일인 상속녀라고 믿었다. 그럴수록 애나는 대담해져,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겠다며 은행을 상대로 200억 규모의 대출을 신청하게 되는데… 결국엔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며 애나의 시대도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내로라하는 은행가와 기업인들 모두가 애나를 진짜 금수저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가히 놀라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모두가, 애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세상엔 왜 이런 캐릭터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걸까. 사람이 얼마나 결핍이 심하면 이토록 제 삶을 송두리째 꾸며내게 되는 걸까. 드라마는 그 화두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애나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녀가 당신들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 말한다. 애나 델비는 두말할 것 없이 돈이면 다 되는 이 자본주의 시대의 슬픈 초상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만 치부하기에 애나의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롭던가. 애나의 이야기에는 실로 수많은 사람이 걸쳐져 있었다. 애나를 금수저라고 믿었던 각종 유명인사들. 그들이 애나를 곁에 둠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이익과, 그 배경에 깔린 저마다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했다. 애나를 거대한 사기꾼으로 만드는 데에 과연 그 수많은 사람들이 기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례로 ‘레이첼’을 들어보자. 그녀는 애나의 사기행각을 맨 처음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인물이자, 애나의 친구이기도 했던 여성이다. <베니티 페어>에 근무하던 레이첼은 애나와 어울려 다니며 자신 또한 얻은 것이 상당했다. 함께하는 동안 많은 비용을 애나가 지불했고, 때로는 옷도 얻어 입었으며, SNS에 자랑할 사진과 럭셔리 라이프와 인맥과 기타 등등을 상당 시간 애나가 제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둘의 우정이 끝난 건 함께 떠난 모로코 여행에서였다. 그때 애나를 대신해 큰 여행비용을 레이첼이 결제했는데 그 돈을 애나가 갚지 않으면서 관계가 깨진 것이다. 레이첼은 실은 애나가 빈털터리였던데다 자신이 돈까지 낸 게 몹시 억울하고 빡이 쳤다. 그런데 그 말을 비틀자면, 레이첼에게 애나는 금수저일 때만 의미있는 친구라는 뜻이 아닐까.
사람들이 모든 순간 투명한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마음을 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금전 등의 이익 때문에 맺는 인간관계도 있을 테다. 그걸 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애나 소로킨이라는 정신 나간 여자가 금수저 연기를 하다가 뽀록이 났다’라는 한 줄의 줄거리 이면에는, 애나와 다를 것 없는 욕망으로 꿈틀대는 인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음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애나가 물질의 결핍에 의해 사기꾼이 된 것처럼, 그들 역시 물질을 이유로 애나를 곁에 둔 사람들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욕망에 의해 관계한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실제 '애나 소로킨' (사진출처:연합뉴스)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애나는 여러 사기행각을 죄목으로 12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2021년 가석방되었다. 그리고 이런 애나의 이야기는 넷플릭스가 32만 달러, 한화로 약 4억을 주고 사들여 현재의 드라마로 만들게 되었다고. 자신을 상품화해 이목을 끄는 그녀의 재주는 감히 높이 평가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런 재능만큼은 애나가 가진 ‘진짜’가 아니었을까. 그 천부적 재능을, 거짓이 아니라 진실로 쌓아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이 있다. 누군가에겐 그게 돈이고, 명예고, 학업이고, 인맥일 뿐. 애나는 화려하고 부유한 척을 하자 사람들이 보여왔던 그 관심과 호의에 중독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트럭운전수라고 할 때보다 외교관이나 석유 재벌, 태양열에너지 사업가라고 할 때 보여왔을 사람들의 눈빛, 자신의 몸에 두른 옷이 초호화 명품일 때 사람들이 보내온 동경. 그런 것들이 보잘것없이 고달픈 자신의 현실을 잊게 했는지도 모른다. 뒤틀린 결핍이 낳은 4년의 가상 세계에서 애나는 행복했을까. 그녀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괘씸해 마지않아야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또한 쉬이 접을 수는 없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결국 중요한 건 사람, 존중
실제 일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는 이런 씬이 있다. 애나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던 기자가 교도소로 애나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애나는 기자에게 ‘당신이 입은 옷은 싸구려’라며 무시하다가도, 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묻는다. “면회, 또 올 거죠?” 그때의 애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수많은 부자 친구들을 거느렸지만, 모두가 그녀를 필요로 하고 동경했었지만, 번번이 얻을 수는 없었던 사람의 진짜 온기를. 삶에 있어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래서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 해도, 누군가가 그 자체로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해준다면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무수저 트럭운전수의 딸 애나 소로킨을 긍정해주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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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선율 속 폭력
천재 피아니스트,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보사노바 황금기를 책으로 담으려던 기자 ‘제프 해리스’. 우연히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에 매료된다. 하지만 30년 넘게 음악 활동을 멈춘 그의 삶은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제프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여러 음악가들과 인터뷰를 거듭하며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데...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아르헨티나 투어 중 실종되었다는 것!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줄거리
제프 해리스는 우연히 한 앨범에 실린 테노리우 주니오르(Francisco Tenório Júnior)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된다. 귀를 사로잡는 음악에 연주자를 살펴보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보사노바 황금기를 기억하는 음악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던 그는 점차 음악인들의 기억 속에 한 조각씩 존재하는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삶으로 빠져든다.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여느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잊혀지다 명대로 죽은 걸까? 영화는 1960년대 보사노바를 이끌었던 음악인들 취재에서 점점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행적에 대한 조사로 태를 바꾼다.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 역시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속 제프 해리스처럼 우연히 듣게 된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연주를 듣게 되고 그에 홀려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행적을 조사하게 된다. 그는 150명가량을 인터뷰하며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삶과 실종 이후의 행적을 낱낱이 밝혀낸다.
'보사노바(bossa nova)', 포르투갈어로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이 단어는 1960년대 브라질에서 탄생한 음악의 한 형식이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이 작곡하고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icius de Morais)가 작사한 카에타노 벨로주(Caetano Veloso)의 'Chega de Saudade'를 최초의 보사노바 노래라 일컫는다. 보사노바는 미국 내에서도 열풍이었는데, 1960년대에 뉴욕 카네기 홀에서 콘서트가 열리고 주앙 지우베르투가 스탄 게츠와 함께 제작한 보사노바 앨범 [Getz/Gilberto]가 미국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하며 미국 곳곳에서 보사노바 음악이 울려 퍼졌었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보사노바 황금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프 해리스는 보사노바 음악인들을 인터뷰하고 애니메이션은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당시를 살았던 이들의 향수를 생생하게 그려내며 우리를 보사노바 황금기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인다. 보사노바를 영화관으로 데려온 이 영화는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잘 모르던 사람들까지 황금기를 그리워하며 보사노바를 음미하게 만든다.
제프 해리스는 보사노바 황금기에 함께 존재했던 테노리우 주니오르도 조사하는데,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실종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며 영화는 미스터리로 장르가 바뀐다. 제프 해리스는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지인들을 인터뷰하며 실종된 그날에 대해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보사노바 황금기를 담은 재즈 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이라면 이때부터 자신이 생각했던 장르와는 달라 당황할 수 있으나 영화는 그 황금기를 살아온 하지만 곧 사라진 테노리우 주니오르 개인의 이야기로 집중된다.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1976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니시우스와의 공연 후 사라진다. 그의 친구들은 테노리우 주니오르를 찾지만 현재까지도 그는 발견되지 못한 채 영영 실종 상태로 남고 만다. 그런데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실종된 지 10년이 지난 1987년, 그의 행적이 아르헨티나 병장 클라우디오 바예호스의 증언에서 발견된다. 그는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그날 그 밤에 군 순찰대에게 체포를 당했고 고문을 당하다 그로부터 9일 뒤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그저 피아노 연주를 하러 온, 브라질 사람인 그가 어째서 아르헨티나에서 살해당한 것일까.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실종된 1976년부터 아르헨티나에서는 군사정권의 독재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 최소 9천 명에서 최대 3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시 남아메리카 전역이 군사독재로 뒤덮였고,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협동하여 위험분자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민간인들을 탄압한다. 아르헨티나 병장의 인터뷰, 그리고 비니시우스를 비롯한 많은 테노리우 주니오르의 지인들이 행방을 찾다 발견한 정황증거들이 테노리우 주니오르 역시 이 독재정권의 피해자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제 군사정권 시절을 조명하며 그 시기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비춘다.
보사노바에 큰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는 이 피아노 연주자의 삶은 재즈 영화가 아니라 미스터리, 이제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되었다. 이는 독재정권이 관련 없는 민간인에게까지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영화는 군사독재에 대해 상세히 다루며 주변국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협력했고 군사독재가 지난 후에도 가해사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숨겨왔는지 등에 대해 생존자들의 목소리와 재구성한 애니메이션으로 상세하게 보여준다. 보사노바 황금기의 피아노 연주자였던 테노리우 주니오르 한 개인의 삶은 결국 거대한 독재정권의 희생양으로 끝이 난다.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강렬한 색채를 이용한 애니메이션으로 화려했던 보사노바 황금기와 폭력이 난무했던 군사독재 시절을 담아냈다. 동시에 이젠 지인들의 말과 사진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은 테노리우 주니오르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살려내며 그의 음악을 귀만으로 듣는 것이 아닌 연주하는 모습과 함께 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테노리우 주니오르라는 개인의 삶으로 재즈,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이 모든 장르를 아우른 이 영화는 결국 한 인간이 국가에 의해 어떻게 희생당했고 이 실종으로 남은 희생이 남은 이들에게도 그리고 보사노바 음악에도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전한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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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년전 오늘의 영화] 소년시절의 너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주 바로 N년 전, 오늘 개봉한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오늘은 2년 전에 개봉한 증국상 감독의 <소년시절의 너>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네이버 영화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연출한 증국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소년시절의 너>는
79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61개 부문에서 수상하였는데요. 중국 개봉 당시, 예매 7시간 만에
170억 원의 실시간 예매량을 기록하였고, 개봉 5일 만에 수익 1,400억 원을 돌파하였으며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유지하였습니다.
깊은 감정 연기와 통통 튀는 매력으로 국내 관객을 사로 잡은 저우동위와 중국 인기 아이돌 그룹 TF BOYS의 이양천새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히 이양천새 배우는 장편 영화 첫 주연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복잡한 내면 연기를 표현해내며 열연을 펼쳤습니다.
이전까지 중국에서 주로 나왔던 청춘 로맨스 영화가 아닌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기에 작품성에 대한 호평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왓챠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웨이브, seezn, U+모바일tv, 티빙,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대여하여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소년 시절의 너>의 T.M.I
1.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8관왕 달성
ⓒ 네이버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제39회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총 8개 부문에서 수상하였습니다.
2. 저우동위의 눈물 연기
ⓒ 네이버 영화
영화에는 저우동위 배우가 우는 장면이 많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매번 다른 눈물 연기를 선보인 저우동위.
실제 관계자가 말하길 영화 속에서 저우동위가 등장하는 18번의 눈물 연기 장면에서 평균 7.5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3. 삭발
ⓒ 네이버 영화
저우동위와 이양천새 두 배우 모두 실제로 삭발을 하였으며, 두 배우를 응원하기 위해
감독과 제작진도 함께 삭발을 하였다고 한다.
4. 이양천새 배우가 가장 많이 NG를 낸 장면
ⓒ 네이버 영화
이양천새 배우가 가장 NG를 많이 낸 장면은 사과를 깎아서 첸니엔에게 주는 장면이었다고 한다.(삭제된 장면)
사과를 깎다가 껍질이 계속 끊기는 바람에 여러 번 촬영했다고 한다.
5. 면회 장면에서 이양천새의 웃음
ⓒ 네이버 영화
두 사람이 눈물을 흘렸던 면회 장면에서 증국상 감독이 웃음을 지어보라고 디렉션을 주었고,
이를 듣고 저우동위 배우가 입모양으로 '바보'라고 했고, 이를 본 이양천새 배우가 웃음을 지은 것이었다.
<소년 시절의 너>가 좋았다면?
<소년시절의 너>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시는 분들, 영화를 좋게 보신 분들은
동일 감독인 증국상 감독의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추천드립니다!
유수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며, 중국의 대표 영화제 금마장에서도 2관왕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소년시절의 너>는 왓챠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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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기는 티키타카! 류승룡이 다시 돌아왔다!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장르만 로맨스가 개봉했습니다.
배우인 조은지 감독의 상업장편 영화 데뷔작이죠.
주요 등장인물들의 티키타카가 매력적이고, 특히 류승룡 배우의 코믹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물론 진중한 연기도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따뜻하게 볼 수 있어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니 주변 관계들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전체 영상을 봐주세요. ^^
제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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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뷸런스, 정신차린 마이클 베이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
?Rabbitgumi입니다!!
파괴지왕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앰뷸런스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아주 크게 기대받던 영화는 아니었죠.
예고편을 봤을 때, 은행을 털고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여서 뻔하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꽤 재미있는 액션 영화였습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 스타일이 그대로 들어가있는데 조금은 질질 끈다거나 오버하는 장면이 줄었어요.
이야기 구성에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액션과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긴장감 만은 확실히 잡습니다.
영상과 음향이 멋집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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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 10년의 여정
이순신과 함께한 뜻깊은 10년 그 시간을 되짚어 보다?️ #노량죽음의바다 10년의 여정 영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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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플래시> 메인 예고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스피드! 빛보다 빠른 슈퍼 히어로가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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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유리병 편지에 답장을
감독] 서아현
출연] 송강원, 서아현
시놉시스]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자 여성이자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현이 절친한 친구이자 동성애자 남성인 강원과 우정을 쌓는다. 영화는 서로 다른 성 정체성과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크고 작은 다름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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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편지를 받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편지를 받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연자인 ‘강원’ 혹은 출연자이자 감독인 ‘아현’, 혹 다른 누군가일까요? 발신자를 알 수 없으니 이 편지를 유리병 편지라고 해 두겠습니다. 유리병 편지가 뭔지 아시나요? 편지를 유리병에 담아 봉해 바다에 띄워 보내는, 수신자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입니다. 20세기의 낭만 같은 것이 묻어 있죠.
익명의 편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답장을 건네는 심경으로 적어 봅니다. 일단 저에 대해 말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당신이 이 글을 읽을지, 이 영화를 볼 지 정할 수 있을 테니까.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의 아현처럼,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축에 서 있습니다. 교회 품에서 자랐고, 지금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가장 따뜻한 말도, 가장 징그러운 말도 교회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동성애자를 대하는 태도에는 꽤 오래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인데, 왜 콕 집어 동성애자만 배척하는 걸까요? 왜 동성애자는 ‘용서받지 못할 죄’ 취급을 받는 걸까요? 음란과 탐욕도 함께 기록된 죄인데, 왜 거기에는 아무도 돌을 던지지 않는 걸까요?
비슷한 의문을 품어 보았다면, 아니 꼭 의문이 아니어도 호감 혹은 멸시 어떤 감정이라도 품어 보았다면, 무색무취가 아닌 다른 색깔이 당신 안에 있다면 한 번쯤 보시면 어떨까 권해 보고 싶습니다. 결혼과 연애, 종교와 사랑. 스스로를 동성애자라 부르든 기독교인이라 부르든,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가 아닌가요? 한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해 보아서 나쁠 건 없습니다.
우리는 닮아 있다
‘기독교인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점에서 아현과 비슷한 축에 서 있었다고 말했죠. 착잡한 표정의 아현 뒤로 그의 방을 보았습니다. 영화 <레토> 미니 포스터, 바다가 그려진 엽서, 세이브더칠드런 마크. 비슷한 결의 그림들이 제 방 벽에도 붙어 있습니다. 이전의 세상과 섞이지 못하는 착잡함 또한, 제가 최근 몇몇 기독교인 친구들과 말해왔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한편 강원을 보면서도 저와 비슷한 축에 서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공동체community”를 계속 이야기하는 그가, 공동체의 힘을 믿는다는 말이, 상처받았을 때에도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던 그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배운 좋은 말 중에서도 손꼽아 좋아하는 말이 ‘공동체’거든요.
아현과 강원처럼, 우리 같이 친구 되어 고민하면 안 될까 하는 말랑말랑한 생각이 올라옵니다. 나와 다른 이들과 섞이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정말 두려운 건 섞이지 못하는 감각입니다. 돌이켜 보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섞이는 순간의 대화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공통점이 있어도 차돌처럼 단단한 마음 앞에서는 결국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요. 상대가 절 볼 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래서 쓴 답장
모두가 모두의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랬다면 여기가 천국이겠죠. 가끔 반목하거나 튕겨 나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습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동시에 상처 주는 것조차 지긋지긋해서 도망치고 외면하는 마음도 알고 있잖아요. 그러나 그 최후의 순간까지는, 서로의 다양한 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서로 반목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만으로도 이미 너무 어려우니까요. 각자 소용돌이를 안고 걸어가는 세상이니까요.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강원을 담은 영상들을 보며, 아현은 물론 강원 본인조차 자신에게 스스로 몰랐던 여러 가지 면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떤 일면들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찬찬히 담을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소중한 유리병 편지를 받게 되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웃고 울고 각양각색의 감정들을 오랜 시간 동안,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서 담아 준 두 사람에게 답장할 수 있다면… 짚어주어 고마운 지점이었다고 인사하고 싶습니다. 교회에서는 물론 퀴어 퍼레이드에서도 들리지 않을 ‘회색’의 이야기, 소중히 건네받았습니다.
추신. 이 영화를 꼭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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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2. 08. 25 ~ 2022. 09. 01
영화 <퀴어 마이 프렌즈> 상영
2022. 08. 26. 20: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2022. 08. 28. 13:00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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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속 그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디스클로저 (Disclosure : Trans Lives on Screen, 2020)
<센스 8>이나 <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같은 다양한 작품에서 LGBT 사회, 그 중 트랜스젠더인 인물들이 등장해 미디어에서 그들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 있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편견들과 왜곡된 이미지들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14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미디어 속 고정된 트랜스젠더 역할의 비판 및 실제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주변 매체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말한다.
<더 많이 보여질수록, 괴롭힘당한다>
우리가 흔히 역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에도 트랜스젠더의 상황이 들어맞는다. 그들이 스크린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오히려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를 묘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이들의 심리적 두려움으로 번져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1970년대만 해도, <플립>과 같은 드라마 속에서 트랜스여성은 일종의 ‘유머코드’를 위해 존재했다. 그들이 등장할 때면 관객의 웃음 소리가 백사운드로 삽입되었고, 이를 TV로 보는 시청자들이 이들에게 가지게 되는 인상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완전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이 아닌 특정 행위를 즐기는 ‘크로스드레서(이성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을 일컫는 말)’라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이 행동은 당시 법적인 제제를 받기도 했으며, 이런 사회적 인식은 여성의 이미지를 폄하하는 전형적인 잘못된 예시이다.
여기에는 인종차별적 문제 또한 있다. 흑인 남성이 드레스를 입는 장면들에 대한 일정한 클리셰가 있는데, 남성성의 억제라는 것을 희화화하여 보여주는 의미이다. 이런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매체에서 다뤄지며 유색인종인 트랜스젠더는 마치 존재할 수 없다는 듯한 폭력적인 인식을 계속해서 심는다. 영화는 인터뷰 중간중간 이들이 직접 봐왔던 영화나 비디오 속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제대로 이들의 생활을 보여준 것들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성장과 트랜스 과정을 겪게 되면서 주위의 도움이 절실했고,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트랜스젠더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미디어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범죄의 타겟이 되어 피해자로 등장하고, 주변 인물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존재를 숨겨야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슬프지만 주변 환경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것이다. 매체는 당사자의 감정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에 더 공감하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에서 현실에서의 변화로>
이제는 트랜스젠더 시청자들의 입장을 더 생각하고, 그들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다행히도 지금은 여러 미디어에서 이들의 일상을 잘 그리고 있어 스토리에 더욱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인물은 <센스8>의 노미 마크스이다. 트렌스 여성인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자신을 표현하는데에 거리낌이 없는 인물로, 전문 해커로서 유능한 커리어우먼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트렌스젠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미래 세대는 미디어를 통해 이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미디어에 이어 현실에서의 변화가 무엇보다 최종의 목표이자, 가장 필요할 때이다.
<디스클로저>는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또는 웃음으로 소비되었던 트랜스젠더에 관한 인식을 재확인한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당사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것.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시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제목은 트랜스젠더들이 두려워하는 폭로의 순간을 의미하지만, 이는 더 나아가 회피의 대상에서 이들간의 긴밀한 연대로 이어지도록 투쟁한 그들을 스크린에 담는다. 이제는 미디어가 활동 영역을 넓히고, 그들을 향한 그동안의 잘못된 표현들을 비판할 수 있는 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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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호러영화에는 재미도 있고 슬픈 전설까지 있어
여러분은 어떤 것에 무서워하는가?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이뤄지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다. '이렇게 될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게 현실화되면 무섭다. 거의 대부분 현실로 이뤄지는 게 함정이지만 이 공포에 무덤덤함이란 없다. '혹시 누가 화장실 물을 안 내렸으면 어떡하지' 싶으면 간혹 그 더러운 광경을 보게 된다. 비단 시각적인 것으로만 국한 지을 필요는 없다. '이 쯤되면 뭐 하나 잃어버릴 것 같은데' 싶으면 잃어버린다. '돈 다 쓸 것 같아'라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돈이 빠진다.
당연히 우리 모두 다 재미없는 삶을 싫어하기 때문에 혹시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이게 심해지면 불안장애라는 병으로 발현되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외로 내 운명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은 거의 클래식에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각자가 믿는 신에 다들 기대곤 하는 거 아니겠어? 그 점을 활용한 예술 장르가 공포영화고. 한국과 그렇게 멀지 않은 곳 대만에서 호러영화 한 편이 공개됐다. 이 영화, 무섭다, 기괴하다. 당신의 110분을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하다. 저주 걸린 여자의 삶 가까이에 다가가 보자.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
저주가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백하는 여자. 자기를 리궈난이라고 소개한 주인공은 과거에 있던 일을 털어놓는다. 끔찍한 금기를 건드렸다는 여자. 금기를 건드린 탓에 리궈난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카메라를 들고 간 경찰서에는 의문의 자살사고가 벌어진다. 계속되는 불행에 삶에 벌어지는 일들을 체념하기로 한 것 같다. 리궈난은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고 금세 이 영상을 찍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우리 딸의 불행을 극복하고 싶어서에요”
카메라는 리궈난의 일상으로 옮겨간다. 리궈난에겐 딸 한 명이 있다. 어두운 낯빛이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보이는 어머니 리궈난. 리궈난은 양육권을 뺏길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평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친모로서의 권리가 박탈될지도 모른다. 카메라와 리궈난은 한 남자와 만난다. 아마 공동으로 양육권을 가질 아버지가 되는 분인 것 같다. 촬영하고 있는 영상의 목적 ‘영상일기’를 설명한다.
둬둬는 리궈난 인생의 전부다. 그녀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유일하게 웃는 것도 딸을 만날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편하게 굴러가진 않는다. 같은 차에 탔는데도 흐르는 어색한 기류. 차에 타서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그래도 둬둬와 리궈난은 행복할 자격이 있다. 간단한 놀이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녀. 둬둬는 어머니 리궈난에게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돌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시작됐다. 리궈난은 정해져 있던 저주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사실 뻔하다. 이 영화는 호러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호러 영화에서 주인공이 저주에 걸리는 설정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아무 이유도 계기도 모른 채로 맞이한 비극, 식인종 연쇄살인마와의 대담, 내재되어있는 분노 폭발 등 기존에 있는 호러 영화 수작들처럼 창의성 있는 도입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금기를 건드리게 된 계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뻔하다. 당장 떠오르는 <텍사스 전기톱 2022>부터 <이블데드>까지 전통과 근본의 주요 소재를 기시감이 들 정도로 답습하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저주의 시각화다. 이 저주를 시각화한 방식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차이점을 부여한다. 이 저주에 힘을 빡 줘서인지 인트로에 힘이 영 없는 건 분명한 단점이다.
이 단점이 영화 초반부에 제시되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점이다. 이야기 전개가 예상대로 이어진다. 눈길을 잡아끄는 건 자극적인 저주뿐이다. 단점이 이런 선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편집이 좀 산만한 감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영화의 등장인물이 직접 카메라를 찍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형식)의 특성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데 이 장르의 특성을 감안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내용이 좀 있다. 구체적으로 초입부의 저주의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첫 번째로 저주가 시각화되는 장면이 있다. 이 신은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후반부의 폭주하는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다음 장면에 '어떻게 주인공들이 저주에 걸리게 됐는가'를 정작 영화에서 힘을 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대놓고 드러나는지라 전반부는 기능적으로 단지 분위기만 제시하기 위해 쓰인 느낌이 강하다. 냉장고에 물건들이 다 엎어지고, 느닷없이 꼽등이가 날아들며 불이 깜박깜박하는 것이 후반부까지 통일성 있게 나타나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그냥 잊힌다. 이 장면에서 둬둬가 저주가 걸린 부분을 1/3으로 줄이고 중반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초반부는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만 쓰인다. 이때 이 영화의 미술팀이 열일을 해서 무서운 느낌을 내는 건 충분하다. 그런 측면에서는 영화의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자극적으로 높은 템포를 단지 유지하기 위해서 러닝타임을 썼다는 점은 사람에 따라서 지루하다가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치 있고 흥미로워서 영화의 서사가 희생된 느낌?
이 단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에서 쓴 현재 시퀀스 바로 다음은 과거 회상이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던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한 마을의 전통을 취재하려고 한다. 이 취재는 리궈난이 저주에 걸린 계기가 된다. 그니까 둬둬가 걸려있는 저주의 증상을 보여주고 리궈난이 이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엇갈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은 중반부 터닝포인트가 있기 전까지 지속된다. 근데 이건 사실 좀 더 쉽게 전개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초반부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 저주를 알면 알수록 더 큰 위험에 빠져들어요'라고. 그러면 이 저주가 대체 뭐하는 것이길래 인물들을 이렇게 끔찍한 비극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걸까? 의문점이 든다. 난 이 저주의 숙주에 대해 알고 싶다. 그런데 계속 저주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불필요한 건 아닌데 주인공이 어겼던 종교적인 금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영화는 초반부터 중반까지 끊기는 느낌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엇갈려 배치할 필요가 없는 느낌이었다. 이게 현재 시점에서 겪는 저주 연출이 현실적으로 기괴해서 그렇지 미술팀의 열일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다행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을 보여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만 천천히 쌓아 올린 빌드업이 불친절한 것은 영화의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저주에 걸린 모녀의 모습 - 과거에 어떻게 저주에 걸렸는가 - 현재 관점에서 저주와 싸우는 인물들 - 하이라이트 신(과거 회상) - 엔딩으로 이어져도 극이 훨씬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의 다른 단점 중 하나는 엔딩이다. 아마 "..?" 싶을 것이다. 중후반부까지 쌓아 올린 압도적인 이미지에 무색하게 좀 허무하게 끝난다. 근데 이 영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무섭고 기괴한 에너지가 강점인 영화다. 그래서 엔딩이 그렇게까지 페널티는 아니다. 좀 어이없을 뿐. 아무 인상도 주지 못하는 엔딩이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
이 영화는 이렇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사실 장점이 훨씬 더 크다. 일단 앞에서도 쓴 시각 디자인은 정말 노력의 대가가 그대로 나타났다. 일단 기괴한 이미지를 너무 잘 짰다. 어쩜 그렇게 무서운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초반부에 어떤 할머니가 차 밖에서 인물을 관찰하는 신이 있다. 그냥 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딱 달라붙어서 구경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서 하는 행동들, 몸의 각도들, 대사들까지 경제적인 활용법이 돋보인다. 이 감독은 어떻게 해야 그냥 지켜보는 행위로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괴한 짓만 골라서 러닝타임을 끌고 가기 때문에 호러 영화의 제1원칙 '일단 무서워야 함'을 아주 충실히 충족한다. 그래서 이 영화 자체가 재미있는 영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계속 생각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만든 세트장은 진짜 실제로 그런 게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뭐라 뭐라 보여주지 않아도 디자인의 현실감 하나로 모든 설득력을 갖는다.
이 시각 디자인의 강점은 신체를 활용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분명 여러분들이 다 익숙한 맛일 것이다. 근데 그 익숙한 맛에서 살짝 비켜나가서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초반부에 입 안을 열었는데 치아가 많은 장면이 있다. 이 때 치아가 좀 누리끼리하지 않다. 정말 새하얗다. 근데 입 안이 또 완전 새빨간색은 아니다. 적당히 빨갛다. 적당히 빨갛고 아예 새하얀 치아를 탁한 조명으로 묘사한다. 이 이미지에서 오는 기괴함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그리고 무슨 피부에 발진이 나는 형태도 현실감 있게 잘 그렸다. 단순히 끔찍하게만 그려서 무서운 게 아니다. 진짜 일어날 법한 상처라서 더 무섭다. 이 상처를 비추는 조명이나 촬영 방식도 잘 골랐다. 연출자의 섬세함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믿음이 가는 이 느낌
<랑종>이 생각난다. <랑종>과 이 영화는 어느 정도 비슷한 감이 있다. 아시아권의 영화감독이 동양적인 소재로 호러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궤를 공유한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도 장점을 공유한다. 바로 신뢰를 팍 주는 중심인물들이다. <랑종>에서는 님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다큐를 보는 듯한 든든한 연기를 보여줬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는 유사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물의 특성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인물의 표정연기와 대사 치는 톤으로 신뢰감을 형성한다. 이 사람은 진짜 그럴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로 이어지는 폭발하는 연기 역시 생동감 있게 잘 소화했다. 이 인물의 행보, 등장과 퇴장을 유심하게 지켜보면 극의 배경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또 모녀의 연기 역시 좋았다. 특히 아역 배우 둬둬를 맡은 배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이 호러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을까? 90년대-00년대 아마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귀신 들린 연기를 깔끔하게 잘 소화했다. 또 리둬난 역을 맡은 배우도 리액션 연기가 좋았다. 기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내면을 탄탄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불안한 각본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이 세 배우의 호연 덕이다.
그냥 보기 좋아
영화를 왜 볼까? 난 그냥 본다.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본다.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개체가 주는 특성은 남다르다. 가끔은 장점이고 단점이고 나발이고 순수하게 무서운 영화가 끌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 장점을 충실히 구현하는 좋은 영화다. 일정한 톤으로 기괴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극에 빠져드는 장점이 될 것이다. 시각 디자인팀이 만든 영화의 에너지를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을 것이다. 작년 <랑종> 역시 무서운 영화였다. 이 영화는 <랑종>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는 갖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변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맥주 깐 상태로 보기 좋은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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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이 낳은 거짓의 왕국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만들기 (Inventing ANNA, 2022)
채널 : 넷플릭스 시리즈, 9부작 완결 │ 장르 : 미국, 범죄·드라마
제작 : 숀다 라임스 │ 출연 : 줄리아 가너(애나), 애나 클럼스키(비비안), 아리안 모아이드(토드), 케이티 로우즈(레이첼) 외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애나 델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결핍은 양날의 칼 같다. 어떤 결핍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게 하지만, 어떤 결핍은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부정하도록 만들기도 하니까. <애나 만들기>의 ‘애나 델비’는 단연 후자의 경우다. 애나 델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에서 금수저 독일인 상속녀 행세를 하며 여러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일삼았던 실제 인물이다. 본명은 ‘애나 소로킨’. 금수저 상속녀는커녕 실제로는 트럭 운전수의 딸이었다. 사실상 무(無)수저에 가까웠던 애나는 어떻게 ‘찐’ 금수저들을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 그 일화를 하나씩 양파 까듯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최대 재미 요소다.
애나는 사교계 유명인사들과 어울려 다니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미술과 패션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언변 또한 그에 못지않게 화려했으며 성격도 화통해서 인맥 넓히기에도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사기꾼의 삼박자를 완벽히 갖춘 셈.
애나는 그렇게 뉴욕 사교계를 발판으로 하여 조금씩 인맥을 넓혀나갔고,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모두 그녀를 독일인 상속녀라고 믿었다. 그럴수록 애나는 대담해져, 나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들겠다며 은행을 상대로 200억 규모의 대출을 신청하게 되는데… 결국엔 은행이 대출을 거절하며 애나의 시대도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내로라하는 은행가와 기업인들 모두가 애나를 진짜 금수저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가히 놀라운 점이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모두가, 애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세상엔 왜 이런 캐릭터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걸까. 사람이 얼마나 결핍이 심하면 이토록 제 삶을 송두리째 꾸며내게 되는 걸까. 드라마는 그 화두를 시청자에게 던진다. 애나를 무작정 비난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녀가 당신들의 삶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 말한다. 애나 델비는 두말할 것 없이 돈이면 다 되는 이 자본주의 시대의 슬픈 초상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만 치부하기에 애나의 이야기는 얼마나 다채롭던가. 애나의 이야기에는 실로 수많은 사람이 걸쳐져 있었다. 애나를 금수저라고 믿었던 각종 유명인사들. 그들이 애나를 곁에 둠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이익과, 그 배경에 깔린 저마다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했다. 애나를 거대한 사기꾼으로 만드는 데에 과연 그 수많은 사람들이 기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례로 ‘레이첼’을 들어보자. 그녀는 애나의 사기행각을 맨 처음 세상에 드러나게 한 인물이자, 애나의 친구이기도 했던 여성이다. <베니티 페어>에 근무하던 레이첼은 애나와 어울려 다니며 자신 또한 얻은 것이 상당했다. 함께하는 동안 많은 비용을 애나가 지불했고, 때로는 옷도 얻어 입었으며, SNS에 자랑할 사진과 럭셔리 라이프와 인맥과 기타 등등을 상당 시간 애나가 제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둘의 우정이 끝난 건 함께 떠난 모로코 여행에서였다. 그때 애나를 대신해 큰 여행비용을 레이첼이 결제했는데 그 돈을 애나가 갚지 않으면서 관계가 깨진 것이다. 레이첼은 실은 애나가 빈털터리였던데다 자신이 돈까지 낸 게 몹시 억울하고 빡이 쳤다. 그런데 그 말을 비틀자면, 레이첼에게 애나는 금수저일 때만 의미있는 친구라는 뜻이 아닐까.
사람들이 모든 순간 투명한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마음을 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금전 등의 이익 때문에 맺는 인간관계도 있을 테다. 그걸 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애나 소로킨이라는 정신 나간 여자가 금수저 연기를 하다가 뽀록이 났다’라는 한 줄의 줄거리 이면에는, 애나와 다를 것 없는 욕망으로 꿈틀대는 인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음을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애나가 물질의 결핍에 의해 사기꾼이 된 것처럼, 그들 역시 물질을 이유로 애나를 곁에 둔 사람들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욕망에 의해 관계한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실제 '애나 소로킨' (사진출처:연합뉴스)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애나는 여러 사기행각을 죄목으로 12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2021년 가석방되었다. 그리고 이런 애나의 이야기는 넷플릭스가 32만 달러, 한화로 약 4억을 주고 사들여 현재의 드라마로 만들게 되었다고. 자신을 상품화해 이목을 끄는 그녀의 재주는 감히 높이 평가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런 재능만큼은 애나가 가진 ‘진짜’가 아니었을까. 그 천부적 재능을, 거짓이 아니라 진실로 쌓아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이 있다. 누군가에겐 그게 돈이고, 명예고, 학업이고, 인맥일 뿐. 애나는 화려하고 부유한 척을 하자 사람들이 보여왔던 그 관심과 호의에 중독이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트럭운전수라고 할 때보다 외교관이나 석유 재벌, 태양열에너지 사업가라고 할 때 보여왔을 사람들의 눈빛, 자신의 몸에 두른 옷이 초호화 명품일 때 사람들이 보내온 동경. 그런 것들이 보잘것없이 고달픈 자신의 현실을 잊게 했는지도 모른다. 뒤틀린 결핍이 낳은 4년의 가상 세계에서 애나는 행복했을까. 그녀로 인해 피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괘씸해 마지않아야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또한 쉬이 접을 수는 없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결국 중요한 건 사람, 존중
실제 일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는 이런 씬이 있다. 애나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던 기자가 교도소로 애나를 면회하러 갔을 때. 애나는 기자에게 ‘당신이 입은 옷은 싸구려’라며 무시하다가도, 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묻는다. “면회, 또 올 거죠?” 그때의 애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결국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수많은 부자 친구들을 거느렸지만, 모두가 그녀를 필요로 하고 동경했었지만, 번번이 얻을 수는 없었던 사람의 진짜 온기를. 삶에 있어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래서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닌지도 모른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삶이라 해도, 누군가가 그 자체로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해준다면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무수저 트럭운전수의 딸 애나 소로킨을 긍정해주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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