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하늘2023-10-12 23:16:59
라벤더와 레드에서 핑크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 세상을밝혀라>리뷰
수학여행을 가든, 노래방을 가든, 길거리를 돌아다니든 나의 질풍노도와 함께 그녀들은 함께 했다. 어떤 날은 우리를 향해 s.e.s는 고백했다. ‘너를 사랑해, 나의 마음이, 너를 생각할수록.’ 그러다가 이에 질세라 다른 날은 핑클이 부탁했다. ‘언제나 날 지켜줄 너라고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줘.’ 계속되는 사랑 고백에 수많은 사람들은 라벤더색 풍선(S.E.S)을 들고 목이 터지라 “에쓰이에! 에쓰이에!” 외쳐댔고, 또 반대편에서는 빨강 풍선(핑클)을 흔들며 격렬하게 소리 질렀다. “핑클 짱 핑클 짱.”


철부지 녀석 하나가 내게 물어왔다. “넌 도대체 에스이에스와 핑클 중에 누굴 좋아하는 것이냐?” 평소 핑클을 좋아하던 그 녀석은 나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너는 아군이냐! 적군이냐!” 이 안타까운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선 삼국지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황건적의 난 이후 난세의 어려움 속에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운 꽃과 같이 피어나는 영웅들의 이야기. 그 개개인의 인물들의 매력에 빠지는 것이 바로 삼국지에 즐거움이거늘, 위, 촉, 오중에 어느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당신은 충성스러움과 신의의 표본인 산상의 <조자룡>과 유비, 관우, 장비가 모두 덤벼도 거뜬하게 막아내는 무력과 달리 한 여인을 향한 로맨티시스트 <여포>, 도저히 승부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엄청난 지략으로 판을 바꾸는 <제갈공명> 등. 각 나라마다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이 많은데, 어찌 위, 촉, 오중 하나를 고르란 말인가? 그럼에도 선택을 강요한다면 나는 SES에서는 유진을, 핑클에는 이진을 선택하겠다. 그러자 그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피아 식별을 향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이후 내게는 수많은 걸그룹이 스쳐지나갔다. 대학 시절 함께한 소녀시대, 군생활을 도와준 2NE1, 그러나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위로와 기쁨을 허락해준 두 그룹만큼의 임팩트는 찾아오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놀랍게도 그녀들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 아이가 생겼고, 자연스레 그녀들도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돌 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방송에서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그 시절 설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때로 라벤더 빛으로 때로 붉은 장미 빛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그렇게 지내던 내게 또 강렬한 색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블랙핑크> 다양한 걸그룹의 진화 속에서 한국의 팝 장르는 K-POP이라는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걸그룹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기가 있다는 뉴스들을 간혹 볼 때마다, 그 시절, 보라색, 빨간색 풍선을 흔들어 대던 때가 생각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혼과 육아, 그리고 끝나지 않은 학업과 노동의 현장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잘 버티고 있다며 다독여야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 때도 있었고, 걸그룹은 멀고 먼 이야기로 지나가고 있었다. 연일 바쁜 삶 가운데 축 쳐진 볏단처럼 살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헬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땀 흘리는 러닝머신 속에서 나의 속도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가사 중에서...
헬스장을 갈 때마다, 이 곡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지겹고,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트와 함께 멜로디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한 번 더 힘을 가했다. 그리고 멈추려 할 때 로제는 말했다. “두 번 생각해~” 그렇게 두 번 생각하고 있다 보면 제니는 내가 젤 좋아하는 부분을 부르고 있다.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어느덧 이 노래는 삼십 대를 보내는 내게 다시 흥과 에너지를 가져다줬다. 그리고 헬스장에서 수영강으로 옮겨진 나의 무대에 블랙핑크는 때로 봄에는 휘파람으로 시원함을, 여름에는 마지막처럼으로 청량함을, 가을에는 뚜두 뚜두로 열심을, 겨울에는 불장난으로 한 번 더 뛸 수 있게 해 줬다.
자연스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를 블랙핑크의 팬으로서 즐겁게 시청할 수 있었다. 음식에 있어서 풍미를 증폭하고 개선케 하며, 밸런스를 가져다주고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재료를 통해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든 《소금. 산. 지방. 불》을 독창적인 색감과 영상미로 이끌어주었던 캐럴라인 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라는 사람의 탄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블랙핑크가 되기까지의 장면들을 통해 그녀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제니의 인터뷰와 솔직한 모습은 아빠미소를 갖게 만들었다. 팬으로서 본 다큐멘터리였기에 전반적인 대부분의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고, 특별히 그들의 프로듀서인 테디가 생각하는 블랙핑크와 노래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음에 즐거웠다.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K팝을 단순히 십 대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트로트처럼, 재즈처럼, 클래식처럼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고, 나이와 출신과 종교와 직업을 떠나 좋아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길 바랬다. 그것을 블랙핑크를 통해서 설득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나왔으면 했다. 블랙핑크 다큐멘터리에 k-pop 장르의 접근성을 다뤄 달라는 것이 다소 방향성이 엇나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 K-POP은 십 대도 이십 대도 삼십 대도 충분히 즐기고 누릴 수 있음을 요청한 것은, 지금 이 나이에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대한 지지와 인정이 필요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시절처럼 신곡이 나올 그날을 매일 기다리고, 책받침과 스티커는 필요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뛰고 싶을 때, 청량한 햇살과 드라이브할 때, 덤벨을 하나 더 들어야 하는 그때...
그리고 내 마음속에 여전히 청춘과 젊음과 에너지를 느끼고 싶을때
나는 계속해서 블랙핑크를 찾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라벤더와 레드를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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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시리즈를 잇는 진짜 속편!
살다 보면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일들을 다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비밀이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다르다. 그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가족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거나 곤란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소한 비밀들은 때때로 시간이 지나고 다른 가족에게 털어놓기도 하지만 큰 비밀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묻어두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그 비밀을 간직하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만 알고 있는 무언가를 말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에 큰 그늘이 늘 자리하게 되면서 어떤 이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혼자 지내기도 한다. 그렇게 멀어진 거리는 가족 간의 관계 또한 멀어지게 만들고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남은 가족들은 그 위험에서 벗어나겠지만 그 위험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외로움과 싸우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비밀로 인한 위험이 비로소 세상 밖에 공개되었을 때 남은 가족들은 그제야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비밀을 지키다 생을 마감한 노인과 그 가족의 이야기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그 비밀을 끝까지 지키다 생을 마감한 노인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 노인의 이름은 이곤 스팽글러(해롤드 레미스)다. 영화 초반에는 그가 유령과 벌이는 사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고 그가 죽음을 맞이한 허름한 시골집에 그의 딸과 손주들이 들어온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가족인 이곤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손주들은 할아버지의 이름조차 모르고, 딸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족을 버리고 갔다는 원망을 토해낸다.
이번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손주들인 피비(맥케나 그레이스)와 트레버(핀 울프 하드)다. 특히 피비는 할아버지와 비슷한 스타일의 안경을 쓰고 과학적인 지식과 실험에 관심이 많다. 그는 허름한 할아버지의 집에서 그가 남긴 이상한 기계들을 찾고 유령의 존재에 대해 연구했던 할아버지의 숨겨진 방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과 갑자기 나타나는 유령들에 대해 처음 눈치를 채는 인물이다. 즉, 이 영화 안에서 피비는 그 누구보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그가 남긴 유산과 미스터리를 앞장서서 찾아가게 된다.
이곤의 딸인 켈리(캐리 쿤)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느 순간 갑자기 시골로 사라져 연락도 없이 지냈던 자신의 아버지는 켈리의 마음속에 가족을 버린 사람에 불과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의 마지막 집으로 오긴 했지만 그곳에서조차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라는 존재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더 급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자신의 자녀들과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일이다.
할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손녀 피비
켈리는 과거 조금은 이상한 괴짜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피비에게서 본다. 피비는 과학적인 호기심과 지식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그것을 활용하여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유령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할아버지가 남긴 기계들을 이용해 그 유령들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오빠인 트레버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유령 사냥을 시작한다. 그가 유령에 대한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할아버지가 남긴 비밀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것과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피비는 할아버지와 그의 딸 켈리 사이의 오해를 푸는 일종의 메신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피비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1984년과 1990년에 개봉했던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진짜 속편이다. 그러니까 2016년에 나왔던 여성판 <고스트 버스터즈>보다는 좀 더 정통성이 있는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시리즈가 조금은 괴상하고 톡톡 튀는 유머를 보여줬다면 이번 영화는 그렇게 톡톡 튀는 유머의 맛은 줄어들고 가족에 대한 드라마가 좀 더 보강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시리즈가 가직 매력을 일부 가져오고는 있지만 기존의 매력을 조금 줄이고 다른 매력으로 채워 넣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인 피비를 제외하면 오빠 트레버나 다른 친구들, 그루버슨 선생님(폴 러드) 같은 인물들은 특별한 능력이나 역할 없이 기능적으로 필요해 넣은 캐릭터들로 보인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중심인물로 부각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해결하고 진행시키게 되는 건 피비뿐이다. 특히 이번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고스트 버스터즈> 1편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편에 등장했던 악령과 괴물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해결방법 또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벌어지는 유령과의 대결이나 물리치는 장면들에서 새로움을 느끼기는 어렵다.
기존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영화
이 영화는 기존 시리즈 팬들을 위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연령을 낮추면서 새로운 팬들을 위한 장치들도 넣었지만 이 영화에 더 환호할 층은 바로 과거의 팬들이다. 기존 시리즈에 등장했던 고스트 버스터즈 카, 유령 잡는 기계들을 비롯하여 영화의 후반부에는 과거 시리즈의 고스트 버스터즈 팀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영화 정보에 업데이트된 배우 명단 중, 빌 머레이, 댄 아크로이드, 어니 허드슨 같은 기존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유령을 잡는 모습을 본 과거 팬들은 이 영화에 환호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강화된 드라마를 통해 가족의 화해를 그리지만 기존 팀원들과 이곤의 재회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존의 시리즈보다 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곤 스펭글러 역을 맡았던 배우 해롤드 레미스는 2014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과거 원작 시리즈의 각본을 썼고, 다른 여러 영화들에 각본을 썼다. 또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 같은 인기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는 배우 해롤드 레미스에 대한 작별인사를 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를 위한 여러 따뜻한 장면들이 영화 후반부에 담겼다.
이 영화를 연출한 제이슨 라이트만은 과거 원작 시리즈의 감독인 이반 라이트만의 아들이다. 사실 제이슨 라이트만은 이런 류의 오락영화를 만든 경험이 많지 않다. <툴리>나 <인디에어> 같은 잔잔한 드라마를 연출하는데 더 재능이 있었던 감독이지만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원작 시리즈에 비해 톡톡 튀는 매력은 부족하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드라마는 조금 보강되었다. 여러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과거 팬들을 위한 영화로는 손색이 없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 리뷰>
https://youtu.be/gTeB_1hLG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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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개봉 첫 주에 누적 관객 수 230만 명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던 <하얼빈>이 2주 차에도 여전히 선두를 지켰습니다. <하얼빈>은 12월 24일 개봉한 후, 단 하루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하얼빈>은 라트비아, 몽골 등지를 아리 알렉사 65 카메라로 촬영하고 아이맥스 포맷으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관객들의 기대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음악에 참여하였고, 과거 비틀스가 녹음했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여 사운드의 퀄리티를 높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소 높은 손익분기점 약 650만 명이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편, 봉준호 감독, 최동훈 감독 등 다양한 인사들이 “고결한 인격의 사람들을 품격 넘치는 촬영과 연출로 영접하게 해주신 제작진과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영화”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국내 주말 관객 수 2위는 깜짝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소방관>이 누적 관객 수 350만 명을 기록하며 차지했습니다. <하얼빈>에 이어 또다른 국내 영화 대작이라고 기대받았던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은 3위를 기록하였으나, 개봉 첫 주 누적 관객 수 32만 명으로 다소 아쉬운 성적을 보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1위의 자리는 <무파사: 라이온 킹>에게 돌아갔습니다. 2,383만 달러의 수익을 추가한 <무파사: 라이온 킹>은 북미 누적 1억 6,800만 달러, 전 세계 4억 7,6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흥행을 이어가고 있으나, 제작비가 2억 달러를 초과한 만큼 새해에도 꾸준한 흥행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 비해 이르게 개봉했던 <수퍼 소닉3>는 2,120만 달러로 2위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북미 1억 8,750만 달러, 전 세계 3억 3,6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해당 프랜차이즈의 총수익은 10억 달러를 넘어서 프랜차이즈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3위는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를 연출해 믿고 보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신작 <노스페라투>가 차지했습니다. F.W. 무르나우 감독이 만든 역사적인 공포영화 <노스페라투>를 원작으로 하여 릴리 로즈 뎁, 니콜라스 홀트, 빌 스카스가드 등이 출연하는 새로운 <노스페라투>는 북미 누적 수익 6,940만 달러, 전 세계 1억 달러를 돌파하며 인디 영화로서는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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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렁하지만 유연하게
네오 소라의 <Happy End>는 제목 그대로 종국에 행복을 발견하는 영화다. 행복이 작은 불씨로 틔워진 채 영화는 막을 내리고, 관객은 아주 개운하지는 않는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중한 불씨를 횃불로 키우기 위한 고민이 현실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끝이 있지만, 인류의 삶은 (멸망하지 않는 이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이 되어 극장 바깥에서 다시 상영된다.
코우와 유타를 중심으로 한 다섯 명의 음악동아리원은 학교에서 유명한 사고뭉치다. 고3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을 드나들정도로 대담하며, 교장 선생님의 훈계에도 지지 않고 오히려 대들정도로 무모하다. 이들이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재일한국인, 미국인, 중국계 일본인, 토종 일본인이 모인만큼, 고유한 개성이 섞여 마치 히피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존재감을 분출한다. 다양성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의견을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코우와 유타 사이에서의 균열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이 히피클럽도 위기에 봉착한다.
클럽에 다녀온 새벽, 코우와 유타는 교장 선생님의 자동차를 세로로 세우는 기행을 저지른다. 교장 선생은 눈엣가시였던 히피클럽 무리를 불러 강하게 압박했고, 특히 재일 한국인인 코우에게 인간종의 차이를 운운하는 등 혐오 표현을 일삼으며 조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립이 계속되자, 동아리 방을 폐쇄하고 AI시스템 파놉티(Panopty)를 가동하여 카메라를 통해 학교 곳곳에서 학생들을 감시하고, 언행을 검열하도록 했다. 히피클럽원들은 동아리방이 폐쇄된 것에 분개하며 감시 시스템을 피해 클럽 앞으로 음악 장비를 옮기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코우는 힘을 보태면서도 교장의 모욕적인 언행에 큰 반항심을 느끼며 더 큰 움직임을 꾀한다.
코우의 반항심에 더 큰 불을 지핀 것은 총리의 긴급 담화문이었다. 수차례 울리는 지진 경보에 대국민 긴급사태조항을 발효하면서, 지진 때마다 불법 입국자와 범죄자들이 판을 쳤다는 기울어진 역사적 사실을 환기한다. 총리의 담화 이후로 교내 일본인과 비일본인을 분류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비일본인 학생들의 자유가 위협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은 좌시하지 않고 행동한다. 교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며 판옵티의 철거를 요구한다. 코우가 사회를 바꾸려는 움직임에 힘을 쏟는 동안 순수 일본인인 유타는 방황한다. 코우와 멀어진 것이 속상하면서도 사회 시스템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비일본인 학생들의 농성이 성공하고, 교장은 강당에서 학생들에게 판옵티의 조건부 철회를 약속한다. 자동차 테러 주동자가 자수할 것. 교장의 발언을 두고 판옵티의 철회를 찬성하는 무리와 반대를 주장하는 무리가 갈라져 뒤엉킨 가운데, 유타는 본인의 혼자 저지른 소행이었음을 밝히고 퇴장한다. 이후 판옵티는 철거되고, 유타는 퇴학당한다. 코우와 유타는 졸업식을 마치고 화해하며 작은 화합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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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End>는 하이틴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느 학원물처럼 성장 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환기시키는 역사,사회극의 내용을 담고 있다. AI 감시 시스템인 판옵티는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제시한 교도소 '판옵티콘'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며, 나아가 조지 오웰의 '1984' 빅브라더를 교내에 이식한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연결지을 수 있다. 또한 총리의 왜곡된 발언은 마치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학살을 자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하는 방식과 비슷하며, 제국주의 시대 자국민 중심 정책을 펴는 독재자들을 연상케 한다. 먼미래 이른바 지구촌 사회가 도래하여 다인종이 하나의 국가에 공존하는 시대에, 획일화를 강조하며 폭력을 일삼는 현상은 반복됐다. 그러나 이들은 행동했고 자유를 쟁취했다. 더 기쁜 것은 인류의 미래인 학생들이 변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다.
지진 경보음은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전국민을 미지의 공포로 밀어넣는다. 공동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 데 모이게 함과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일본인과 비일본일을 구분하며 분열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코우의 자백은 큰 의미를 가진다. 기득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순수 일본인이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고 공동선을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판옵티 철회라는 작은 변화에 불과할 뿐이지만, 넓은 차원에서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유타와 비일본인 코우의 화해가 이를 암시한다. 이 작은 화합으로부터 내진설계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대판 싸워도 우스운 장난으로 풀어내는 남학생들처럼,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중심만은 지키고 있는 내진설계는 전인류적 공포인 지진을 효과적으로 방어한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흔들리는 이러한 태도는 다양성이 피어날 미래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유타와 코우가 일구어낸 작은 불씨를 마음 속에서 보살피며 우리의 횃불로 키워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유하고 반추해야 한다.
딱딱한 것보다 물렁한 것이 더 잘 찌끄러지지만, 충격을 잘 흡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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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참석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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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작업
부모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작업
*개봉 전에 배급사 알토미디어㈜ 측에서 제공한 스크리너로 관람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는 컬러와 흑백이 교차되며 전개된다. 릴리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재는 컬러로, 그녀의 기억과 편지를 통해 영화 속에서 재현된 과거는 흑백으로 표현된다. 이 영화의 흑백 씬들을 보다 보면 그것이 극 연출인지 실제 역사 기록물인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당시 스웨덴 수용소에 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아카이브 영상으로, 감독이 의도적으로 영화 곳곳에 삽입한 것들이다. 역사적 사실의 기록물과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씬들, 그 근원이 되는 릴리의 기억과 편지의 내용들이 영화 안에서 섞인다.
영화 말미에 가서 이 영화를 부모에게 바친다는 문구를 보면서도 충분히 추측 가능하지만 영화의 감독 피테르 가르도스는 미클로시와 릴리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의 아들이다. 이 영화는 감독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감독은 영화화 이전에도 이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 <새벽의 열기>를 집필했었는데 이 소설 또한 영화의 원작 격이라 볼 수 있다. 영화의 처음 부분에서 릴리에게 편지를 건네받는 남자는 감독 자신이며 감독은 자신이 자신 부모가 서로에게 보내던 편지를,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느낀 모든 것을 관객에게 최대한 온전히 전달하려 노력했다.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서사 사이사이의 부족한 공백에는 편지 내용과 어머니의 기억을 바탕으로 감독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여느 영화 속 인물들은 실의에 빠지거나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남은 생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의 미클로시는 그런 전형적 성격의 인물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자마자 남은 삶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 믿고 행동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게 요양원에 있는 117명의 여자에게 117통의 편지를 보내 무턱대고 자신과 사랑하고 결혼할 사람을 찾는 그의 행동은 다소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끝내 성사되고, 그는 릴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키워 가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직접 요양원으로 찾아간다. 주치의는 그의 건강상태를 걱정하며 그를 만류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2,500km의 먼 여정을 떠난다. 오직 릴리를 만나기 위해서.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건 두 사람의 아픈 신장과 폐뿐만이 아니다. 릴리의 친구 유디트는 릴리에게 집착하며 릴리가 모르게 미클로시가 보낸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가 선물한 겨울 외투 옷감을 가위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등의 행동을 한다. 릴리는 확증을 찾지는 못하지만 심증만 갖고 있을 뿐이다. 앞서 언급한 감독의 상상력은 여기에 가미되기도 했다. 유디트에 대한 묘사는 감독 어머니의 당시 친구 유디트가 그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반 의심 반 확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것에 살을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 사랑에 가장 큰 문제는 두 사람의 종교였다. 두 사람은 유대교인이지만, 릴리는 유대교가 아닌 개신교 신자로 거짓 등록된 상태였고, 이 점은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다.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미클로시는 결국 그녀를 따라 개신교도로 개종해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종교보다도 사랑을 택한 것이다. 이들의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이들 소식이 스웨덴 랍비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랍비는 은밀하게 두 사람을 설득해 유대교식 결혼을 치르도록 돕는다. 많은 난관이 닥쳤으나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 이들의 사랑을 막지 못했고, 두 사람은 무사히 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된다.
무모해 보였던 미클로시의 선택이 점점 맞아 들어가며 그가 자신의 연인 릴리를 찾아 사랑을 하고 결국 결혼까지 해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 가슴 뜨거운 순수한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듯하다. 병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고, 수용소와 요양원에 갇혀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임에도 두 사람은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만을 바라보며 그 난관들을 헤쳐나간다. 영화는 두 사람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영화로써 재현해내며 그들의 발자취를 차례로 되짚어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키워가는 모습은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일 테다. 어쩌면 그 시대의 사랑이자 낭만이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동시에 이 영화의 말도 안 되는 모든 것들이 감독 부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은 다시금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에서 편지라는 두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는 얼마 전 개봉했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라스트 레터>와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의 물성(物性)과 감성(感性)을 가득 담아 내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들의 편지를, 부모의 기억을 감독이 필자가 되어 관객에게 긴 편지 한 통에 써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내용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되짚어보고 기억하려는 태도와 함께.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두 사람의 러브레터를 담아낸 영화이면서 또한 자식인 감독이 자기 부모에게 보내는 열렬한 러브레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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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000년의 기다림
여기 요술램프 지니처럼 3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나타났어요.
영화 3000년의 기다림으로 상대방의 소원을 들어주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있어요~
과연. 주인공은 어떤 3가지 소원을 빌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로 3000년의 기다림 영화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감독 / 각본 : 조지 밀러
출연진 : 이드리스 엘바, 틸다 스윈튼
개봉일 : 2022년 05월 20일
평점 : 7.80
스트리밍 : tvN , NETFLIX, 왓챠, 웨이브
기획 의도
알리세아 비니는 남편과 헤어지고 외롭게 사는 중년 민속학 학자다.
이스탄불로 출장 간 알리세아는 그랜드 바자르에서 왠지 눈길을 잡아 끈 병 하나를
사게 되고 호텔로 돌아와 손질을 하다가 실수로 병을 열게 된다.
풀려난 진은 알리세아에게 소원을 빌라고 말하지만,
알리세아는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이에 진은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게 되는데...
여담
영화 3000년의 기다림 주인공인
틸다 스윈튼은 우리에게 설국열차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는 흥행에는 대실패했다.
코로나 시기에 개봉한 작품으로 영화 홍보에 실패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로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니 요정에 대해 한 번 더 재탕?! 하는 느낌으로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모으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후기 및 결말
영화 3000년의 기다림 결말을 살펴보자면.
알리세아 비니는 3가지 소원을 말해야 하는데,
첫 번째 소원으로는 자신과의 사랑에 빠지는 소원을 빌며 본인 집의 영국으로 향하게 된다.
두 번째 소원으로는 소원으로 죽어가는 정령을 깨우기 위해 말을 하게 한다.
세 번째 소원으로는 정령에게 자유를 선사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클리셰를 덕지덕지 붙여놔서
영화를 보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전계와 흐름으로 이어간다.
킬링타임으로 심심하다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3000년의 기다림 어떨까 싶다.
한줄평 : 당신의 3가지 소원을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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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그 땅에 영화가, 사람이 있다
DIRECTOR. 가자의 영화감독들
SYNOPSIS.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팔레스타인 영화감독 스물두 명이 전쟁 중인 가자 지구에서 그들 각자의 삶을 포착한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픽션의 혼합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인간 정신의 굳건함을 강력하게 증언한 작품.
“내가 죽는다면, 세상에 울림이 있는 죽음이 되길 바란다. 그저 한 줄 속보에 실리거나, 희생자 숫자로만 남고 싶지는 않다. (…) 나는 세상이 듣는 죽음,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묻히지 않을 불멸의 이미지로 남고 싶다.”
지난 4월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자택에 있던, 이스라엘군의 로켓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 파티마 하수나(25세)의 말이다. 그는 사진 기자인 동시에 다큐멘터리 작가로, 그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칸영화제 독립영화 병행 섹션에 초청된 다음 날 사망했다. 일곱 명의 일가족이 함께. 영화 <그라운드 제로>를 보며 얼마 전 보도로 접한 그의 소식을 떠올린 건, 마치 그에 이어지는 느낌의 편지로 이 영화가 시작했기 때문이다.
익명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상정한 <셀카>는, 본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 편지가 상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멋지게 살았던 걸 알아 줬으면 해. 그곳의 삶과 사랑을 사랑했음을.”이라는 말은 파티마 하수나의 말에 화음처럼 울린다.
사실 22개의 작은 이야기 조각이 모여 있는 <그라운드 제로> 자체가 거대한 화음처럼 울려퍼진다. 뉴스 보도 속 숫자와 통계, 머나먼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 쉬운 가자의 소식은 22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피부에 서늘하게 와 닿는다. 그 중에는 땅에 떨어진 밀가루를 두 손으로 주워담으며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다 말하는 순간, 폭격으로 시신이 분해될 경우에 대비해 아이들의 팔과 다리에 이름을 굵직하게 남기며 우는 엄마들의 마음 (그리고 그건 이름이 아니라 죽음임을 알고 함께 우는 아이들의 마음), 24시간 안에 3번이나 폭격을 당해 몇 번이나 구조된 사람의 마음, 종일 줄을 서고 또 서도 물과 음식과 전기를 얻지 못한 하루를 보내는 마음, 건물 잔해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울부짖는 마음, 심지어 가족의 죽음 소식을 듣고 영화 촬영을 멈출 수밖에 없던 감독의 코멘트로 영화를 닫는 (그야말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마음…처럼 우리가 마음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는 깊은 절망과 참담함도 있다.
이 절망은 아주 거대하지만 동시에 아주 미시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폭격을 피해 도망가느라 두고 갔던 고양이를 다시 만났을 때 터지는 눈물, 좋은 평가를 받았던 미술 과제들을 먼지 덮인 잔해 속에서 하나씩 끄집어내는 착잡한 손길, 과거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기분이 들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인공들의 상황에 자꾸 내 상황이 겹쳐 보이는 공포, 설거지와 목욕과 청소 마지막으로 변기 물까지 한 동이 물을 여러 차례 재활용하는 손길…
재난은 언제나 거시적인 동시에 미시적이다. 산불 피해가 닥쳤을 때 사라진 건 집과 과수원만이 아니었던 것처럼, 가자지구를 덮친 전쟁은 건물을 부수고 가족만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당장 얼굴에 바를 로션이 없는 것, 피난하느라 두고 온 책이 생각나는 것, 아침에 마실 차 한 잔이 없어진 것, 북적거리는 텐트 한가운데서 아침을 맞는 것… 삶에서 사라진 것들을 추어 보면 언제나 손끝에 닿는 작은 것까지 변해 있다. 그곳에서 절망은 일상 언어이고, 현실이 악몽처럼 느껴지는 날들은 너무나 많다.
22개의 작품 절대 다수가 3개 로케이션으로 거칠게 요약되는 상황은 이 제약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건물의 잔해로 덮인 길거리, 텐트촌, 그리고 잃어버린 시절을 상징하는 듯한 바다. 허락된 장소가 없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가자지구 사람들의 삶이 집약된 장소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영화인들은 목소리 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달려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꼭 쥐고 있었고, 모든 것이 한정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삶이 어떠한지, 가자지구가 지금 어떠한지를 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여주려 애썼다. 다큐멘터리도, 극영화도, 아이들과 함께 만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나 인형극도 모두 마찬가지다.
22개 중 편지를 상정한 <셀카>를 상영 첫머리에 넣은 것은 아무래도 이 영화가 하나의 유리병 편지로 이곳에 도달했다는 의미 아닐까. 그렇게 시작한 영화는 차라리 기억을 잃고 싶을 만큼 끔찍한 현실, 악몽 같은 현실, 눈뜬 이곳이 어제의 미래인지 과거인지 헷갈리는 현재를 노래로 덮으며 마무리한다. 평화와 꽃, 음악과 예술 안에서 아이가 천천히 글쓰기를 배우고 노래는 계속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하나의 선언이다. 그 땅에 영화가 있다. 목소리가 있다. 사람이 있다. 너와 나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이 목소리, 이 선언은 더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목소리는 기이하리만큼 그 비극에 대해 침묵하고 있거나, 아니면 인간의 생명과 가장 먼 이야기를 끌어오며 과장된 크기로 발화되고 있지만… 이제는 이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the untold stories from Gaza”, 가자 지구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이제는 말해져야 할, 이야기들이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2025.04.29-05.09) 상영일정]
2025.05.01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상영코드 160)
2025.05.05 메가박스 전주객사 10관 (상영코드 519)
2025.05.09 CGV전주고사 3관 (상영코드 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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